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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액 부문 | 공연자 (Performers) | |||||||||||||||||||||||||||||||
멤버 | (개인 자격) | |||||||||||||||||||||||||||||||
입성 연도 | 2024년 | |||||||||||||||||||||||||||||||
후보선정 연도 | ||||||||||||||||||||||||||||||||
후보자격 연도 | 2006년 | }}}}}}}}} |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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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믹 재거 | 스티비 닉스 | 프레디 머큐리 | 로버트 플랜트 | 커트 코베인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데이비드 번 | 데비 해리 | 조지 클린턴 | 보노 | 액슬 로즈 |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로버트 스미스 | 로저 달트리 | 헤일리 윌리엄스 | 스티븐 타일러 | 크리시 힌드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마이클 스타이프 | 크리스 코넬 | 잭 화이트 | 캐슬린 한나 | 데이비드 리 로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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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모리슨 | 에디 베더 | 캐런 오 | 롭 핼포드 | 재니스 조플린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톰 요크 | 루 리드 | 앤서니 키디스 | 앤 윌슨 | 스티브 페리 | |
<rowcolor=#fff>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로라 제인 그레이스 | 오지 오스본 | 구스타보 세라티 | 체스터 베닝턴 | 그레이스 슬릭 | |
<rowcolor=#fff>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조 스트러머 | 그웬 스테파니 | 이기 팝 | 폴 매카트니 | 브리트니 하워드 | |
<rowcolor=#fff>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리암 갤러거 | 세르이 탄키안 | 코트니 러브 | 제리 가르시아 | 코리 글로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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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티렌 | 폴 웨스터버그 | 데이브 그롤 | 루벤 알바란 | 잭 데 라 로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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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브루스 스프링스틴 | 프레디 머큐리 | 지미 헨드릭스 | 엘비스 프레슬리 | 재니스 조플린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폴 매카트니 | 믹 재거 | 척 베리 | 데이비드 보위 | 패티 스미스 |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커트 코베인 | 스티비 닉스 | 짐 모리슨 | 조니 미첼 | 로버트 플랜트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오지 오스본 | 액슬 로즈 | 밥 딜런 | 보노 | 데비 해리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로라 제인 그레이스 | 조 스트러머 | 캐슬린 한나 | 스티븐 타일러 | 존 본 조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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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
<colbgcolor=#000><colcolor=#fff> 오지 오스본[1] Ozzy Osbourne | |
본명 | 존 마이클 오스본 John Michael Osbourne |
별명 | 어둠의 왕자 Prince of Darkness |
출생 | 1948년 12월 3일 ([age(1948-12-03)]세)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워릭셔 주 마스턴 그린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싱어송라이터 |
장르 | 헤비메탈, 하드 록 |
소속 그룹 | 블랙 사바스 (1968~77, 1978~79, 1985, 1997~2006, 2011~17) |
활동 시기 | 1967년 ~ 현재 |
배우자 | 셀마 라일리 (1971년 ~ 1982년, 이혼) 샤론 오스본 (1982년 결혼) |
자녀 | 6명 |
링크 | |
서명 |
[clearfix]
1. 개요
▲ 1975년 사진 | ▲ 2010년 사진 |
본명은 존 마이클 오스본(John Michael Osbourne). 블랙 사바스의 멤버였으며 그 자신의 솔로 활동도 크게 성공한 뮤지션. 이 분야에서 제일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이다. 노래들도 전설적이지만, 미치광이 수준의 퍼포먼스로 헤비메탈 라이브 공연의 방향을 잡은 위인으로도 유명하다. 전성기였던 70~80년대에는 약물 중독, 기행, 멤버들과 트러블 등으로 문제 많은 인물이기도 했다. 닉네임은 Prince of Darkness.[2] 그 때문에 부인이자 매니저인 샤론 오스본[3]은 자연스럽게 Mrs. Darkness가 되었다.
오지(Ozzy)라는 닉네임은 초등학교 시절, 그의 성인 오스본이 발음하기 힘들고 특이하다고 주변 애들이 줄여서 부르게 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2. 블랙 사바스 시절
자세한 내용은 블랙 사바스 문서 참고하십시오.3. 솔로 시절
상업적인 성공은 오히려 솔로 시절에 이루었는데, 오지 오스본 밴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기타리스트들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값에 맞는 거물급 기타리스트가 아닌 젊고 적당히 알려져서 자기가 컨트롤하기 쉬운, 하지만 실력은 뛰어난 어린 기타리스트들을 선발해서 작업했는데[4][5] 그 기타리스트 모두가 나중에는 락계에 한 획을 그은 수퍼 기타리스트들이 되었고, 가공할 만한 연주실력뿐 아니라 훌륭한 곡을 만들어 오지 오스본을 돈방석에 앉게 해주었다.특히 랜디 로즈 시절 발표된 'Blizzard of Ozz', 'Diary of a Madman'은 헤비메탈의 역사적인 명반이며,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원한 기타 리프로 유명한 Crazy Train 과 Mr. Crowley로 대표되는 이 시절의 곡들은 아직도 오지 오스본 라이브 레퍼토리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랜디의 후임이었던 제이크 E. 리 시절에도 'Bark at the Moon', 'Shot in the Dark' 같은 지금도 라이브에서 빼놓지 않고 연주되는 명곡들이 탄생한다. 잭 와일드는 기타리스트로서는 탁월하다고 평가 받고 오지 오스본 밴드에서 무려 6장의 앨범을 냈지만, 작곡에 있어서는 랜디 로즈나 제이크 E. 리의 임팩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6]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랜디 로즈의 라이브 연주 영상 중 하나이자, 로즈를 상징하기도 하는 곡인 Mr.Crowley[7]
랜디 로즈(Randy Rhoads) - 버니 토메(Bernie Tormé) - 브래드 길리스(Brad Gillis) - 제이크 E. 리(Jake E. Lee) - 잭 와일드(Zakk Wylde) - 거스 G(Gus G.) 순으로 오지 오스본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바뀌었으며, 랜디 로즈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8]하고, 이 여파로 버니 토메[9]와 브래드 길리스[10]는 잠깐 빈자리 채워준 정도밖에 활동을 못했으며, 오지의 재기와 3집 및 4집의 상업적 성공에 큰 기여를 한 4번째 기타리스트 제이크 E. 리도 실력은 랜디 로즈에 꿀릴 게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급 250달러를 받는 세션 취급에다 앰프마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며, 결국 오지가 따로 랜디 로즈 추모 음반을 준비하자 폭발하여 탈퇴한다. 그때 오지는 제이크에게 그가 작곡한 곡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것을 탈퇴 조건으로 내밀었고 진저리가 났던 제이크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탈퇴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Bark at the Moon tour 나 Ultimate Sin tour의 당시 영상을 보면 제이크의 후덜덜한 실력과 화려한 외모, 그리고 다이나믹한 무대 액션을 확인할 수 있다. 잭 와일드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짤렸다(...).[11] 이후 잭 와일드 대신 원래는 파이어윈드, 나이트레이지 등 여러 밴드의 리드를 맡고 있었던 기타리스트 거스 G.를 영입했다. 디오의 사망, 주다스 프리스트의 롭의 포스 감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 당시에 대한 일은 아들인 잭 오스본과 같이 이야기한 영상이 있다.#
블랙 사바스 탈퇴 후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수퍼 밴드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준 것이 랜디 로즈였는데 그가 죽고 난 후에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총기 수집, 애완동물들을 엄청 데려오거나 물질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 어느것도 채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조그만 아이였던 아들 잭 오스본의 눈에도 아버지가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잭은 랜디의 사망 이후 약 3년 뒤에 태어났는데 그런 그가 어린이 시절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면 오지가 받았던 충격이 매우 오래 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허구헌날 마약에 절어 살았던 오지는 온갖 기행을 저질렀는데, 레코드사 이사회에 쳐들어가서 비둘기를 날린 다음 마지막에 날아가는 비둘기 목을 물어뜯거나[12] 독일군 철모를 쓰고 옷은 다 벗어버린 채 알몸으로 질주하는가 하면[13] 알라모에 관광을 갔다가 소변이 너무 마려워서 알라모의 벽에 노상방뇨를 해서 걸리기도 했다(...).[14][15]
하루는 머틀리 크루와 투어 도중 날씨 때문에 잠시 한 술집에 들리게 되는데 마약이 하고 싶던 오지는 마약이 다 떨어져서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니키에게 빨대를 달라고 재촉을 한 뒤 술집에 딸린 수영장 가장자리로 가서 개미굴에 빨대를 들이밀고는 개미들을 마약대신 모조리 흡입하였다. 게다가 그것도 모잘라 바닥에 오줌을 싸더니 그걸 능숙한 혀놀림으로 6번만에 다 핥아 먹었다고 한다. 오지는 머틀리 크루 베이시스트인 니키 식스에게도 너도 한번 해보라며 권유를 하였고 니키는 질 수 없다 라는 생각[16]으로 잔뜩 긴장한 채 오줌을 바닥에 쏘고 그걸 여러 생각과 함께 핥아 먹을려고 얼굴을 갖다대는 순간 오지가 니키를 옆으로 밀어버리곤 바닥에 싸질러진 니키의 오줌을 개 처럼 핥아먹었다고 한다. 이에 니키는 오지에게 당신이 이겼다며 승복하였다.[17] 머틀리 크루의 전기영화 The Dirt에서 이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되는데노출주의 정작 오지는 이런 일화가 생각이 안 난다고...
뭐니뭐니해도 오지의 최고 기행은 무대에서 살아있는 박쥐의 목을 물어 뜯은 것. 그런데 사실 공연 후 광견병이 염려되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원래 모형 박쥐를 물어 뜯으려는 계획이었지만 관객이 진짜 박쥐를 던지는 바람에 그걸 깨물었다고 한다(...).[18] 이런 것 때문에 마이클 솅커가 오지 오스본의 기타리스트가 되려고 오디션에 공모했다가,[19] 오지 오스본의 각종 기행 행각을 전해듣고는 자신의 인생이 개막장이 될 것으로 우려한 나머지 황급히 밴드 가입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현재의 아내이자 매니저인 샤론 오스본을 만나 개과천선했다고 선언했다. 마누라가 교통사고를 당하자 병원으로 달려가서 안절부절못하기도 했고 아내의 애완견인 포메라니안 종의 개를 너무 예뻐해서 개의 털에 얼굴을 비비며 개털로 세수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애처가다.[20] 그런데 어느날 선물로 들어온 보드카 한 박스를 다 마시고는 "나는 곧 지옥에 떨어질 거니까 같이 가자"며 아내를 목 졸라 죽일 뻔해서 경찰서에 갇혔다(...).
참고로 오지와 샤론이 만나게 된 일화도 재미있다. 당시 샤론은 아버지를 도와서 블랙 사바스의 매니저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지를 밴드에서 내쫓은 다음, 디오를 밴드에게 소개해 준 장본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샤론은 자신에게 빌린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러 오지가 장기체류하고 있는 호텔로 갔다가[21] 헤로인과 알콜에 쩔어있는 그를 보고 기겁한다. 이후 그녀는 오지에게 재활치료를 받으라고 설득하기 시작했고 이 모습에 반한 오지가 샤론에게 고백한다. 샤론은 "저 사람 이대로 살다가는 진짜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고백을 받아들였다... 일종의 동정혼인 셈이다.[22] The Talk라는 가정관련 토크쇼에 출연해서 썰들을 풀었는데, 오지는 이미 아이가 2명 딸린 돌싱이었고 본인은 싱글이었는데 한창 둘이 서로 데이트할 때 술에 쩔어 살았다고 한다. 하루는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한답시고 샤론이 술 취한 상태서 눈 앞에 있던 스테이크 나이프로 손목을 살짝 그어서 보여주려 했는데 문제는 취한 상태라 너무 깊게 그어서 병원에 실려갔었다고 한다. 물론 경찰이 출동해서 조사가 들어가면서 샤론은 자살미수로 의심 받아서 따로 격리되고 오지는 오지대로 약물 땜시 격리됐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샤론은 이 악기 하나도 다룰 줄 모르는 오지 오스본에게 남들과는 다른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확신을 하였고 연인이 된 후 본격적으로 그를 프로듀스하기로 한다. 그 결과 오지 자신의 비루한 멜로디 창작 능력에, 수퍼 세션들의 작곡, 연주실력이 더해져서 수많은 명곡들이 탄생하였다. 공식적인 결과로 그가 작곡한 곡들은 총 173곡들이나 된다. 일부 몰지각한 음악평론가들은 그의 작곡 실력에 극찬을 하지만 오지 오스본은 Co-Writer(공동작곡가)로 스스로를 평한다. 아무래도 일류 세션 및 프로듀서들과 같이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그 모든 공을 개인의 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23]
참고로 그녀의 아버지[24]는 오지와 결혼 후 그의 솔로 활동을 매니지먼트하게 된 샤론과 사이가 나빠져서 의절했지만 2000년대 초반 오스본 가족 리얼리티에 출연하면서 극적으로 화해했다.
요즘은 그래도 많이 얌전해진 듯 하며, 가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가족들과 함께 출연하기도 한다. 참고로 딸이 연예인을 꿈꾸는 듯 하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딸이 주인공으로 일본을 체험하는 시리즈가 제작된 적도 있다. 딸인 켈리 오스본은 2000년대 초반쯤 핌프 락이나 모던 락 계열로 음악적인 활동을 잠시 한 적이 있으나 '아버지의 재능을 하나도 이어받지 못했다'는 식으로 대차게 욕을 먹었다. 그래도 아직 영화 출연 및 음악활동은 계속하고 있으며 꽃미남 모델인 루크 워렐과 교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루크 워렐의 바람으로 인해 깨졌다. 지못미
2016년 6월 아내인 샤론 오스본과 따로 산다. 샤론이 오지를 쫒아냈다고(...) 이전부터 오지 오스본은 약물관련 문제로 아내와 갈등을 빚었는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듯 하다. 그리고 어느정도 상태가 좋아졌는지 다시 돌아왔다.
3.1. 멤버
3.1.1. 현재 멤버
2020년 2월 출시된 새 앨범 Ordinary Man에는 거물급 뮤지션들이 세션 멤버로 대거 참여했다. 오지 오스본을 제외한 정식 멤버는 더 이상 없는 듯 하다.- 오지 오스본 (보컬)
- 앤드류 와트 (기타)
- 더프 맥케이건 (베이스)
- 채드 스미스 (드럼)
- 알렉산드라 탐포시 (연주는 참여하지 않고, 작사,작곡에만 참여한 듯 하다.)
- 이 외에도 엘튼 존, 슬래쉬, 톰 모렐로, 찰리 푸스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아래의 멤버 목록은 2019년 기준.
- 오지 오스본 (보컬, 1979-)
- 잭 와일드 (기타, 1987–1992, 1995, 1998, 2001–2004, 2006–2009, 2017-)[25] [26]
- 롭 니콜슨 (베이스, 2003, 2006-)
- 아담 웨이크먼 (키보드, 리듬기타, 2003-)[27]
- 토미 클루페토스 (드럼, 2010-)
3.1.2. 이전 멤버
멤버 교체가 잦은 편이고 세션으로 참여한 연주자도 다수 있기에 이전 멤버는 연주자의 악기별로 따로 정리한다.3.1.2.1. 기타
- 랜디 로즈 (1979-1982) : 해당 항목 참조
- 버니 토미 (1982)
- 브래드 길리스 (1982)
- 제이크 E. 리 (1983-1987)
- 스티브 바이 (1992, 1994)
- 알렉스 스콜닉 (1995)
- 조 홈즈 (1995-2001)
- 제리 캔트렐 (2004-2006)
- 거스 G. (2009-2017) - Dream Evil이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본명은 콘스탄티노스 카라미트로우디스(Κωνσταντίνος Καραμητρούδης)로 그리스 출신이다. 오랫동안 활동하였지만 이리저리 험한 꼴은 당한 듯 하다. 잠이 안와서 오지한테 수면제를 얻어 먹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각성 효과를 일으켜서 다음날 전용기를 놓칠뻔 햇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지가 준 약을 먹은것을 안 에이전시 쪽에선 절대로 오지가 주는 그 어느 약물이나 정체불명의 음료는 마시지말라고 언질을 줬다고한다.
3.1.2.2. 베이스
- 밥 데이즐리 (1979-1981, 1983-1985, 1988, 1991, 1994) : 밴드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 했던 인물로 레인보우, 유라이어 힙, 게리 무어 밴드 등에서 연주한 베테랑 베이시스트이며, 블랙 사바스의 베이시스트 기저 버틀러가 자리를 비웠을 때 블랙 사바스의 앨범도 녹음하였다. 간단한 베이스 라인을 가지고 존재감있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한 리프를 주로 곡에 깔았지만 스타카토와 옥타브 튀기는 플레이로 곡의 그루브감을 아주 잘 살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레인보우의 Gates of babylon이나 오지의 Bark at the moon 같이 데이즐리가 녹음한 곡들이 얼핏 들으면 카피하기 쉬운데 막상해보면 맛깔나게 안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밴드의 초기부터 곡들의 작사를 전담한 주요 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작사를 도맡게된 이유는 그냥 밴드내에서 작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 오지 밴드와 완전히 헤어진 후에는 오지를 디스하는 인터뷰도 자주했고 2016년에는 수익 배분 문제로 소송도 하였다. 이 소송은 기각되었지만 밴드의 로열티 배분과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과거에도 논란이 있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제이크가 밴드를 나가려고 하자 제이크의 저작권을 모두 포기시키기도 했고, Bark at the moon 앨범은 발매 초기에 전곡을 오지가 작사/작곡하였다고 표기 하였으나 제이크가 탈퇴 후 강력히 항의하여 오지 본인도 제이크와 밥, 이 두 사람이 작곡, 작사에 참여했음을 인정했다. 더구나 드러머였던 리 커슬레이크와 함께 2집 Diary of a madman 에서 연주는 물론 송라이팅에 참여했음에도, 오지는 이 둘을 해고하고 앨범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루디 사르조와 타미 알드리지를 크레딧에 올리고 사진까지 싣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아직도 2집의 리듬 섹션을 루디 사르조와 타미 알드리지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2002년에는 오지 오스본 밴드 1,2집에서 밥 데이즐리의 베이스 연주를 지우고 로버트 트루히요를 시켜서 베이스 부분을 새로 녹음한 것을 리마스터라고 내놓았다가 엄청난 논란이 되었고, 결국 2011년 리마스터반에서는 밥 데이즐리, 리 커슬레이크의 연주가 담긴 버전 그대로 제대로 리마스터반을 내놓고 나서야 논란이 마무리되었을 정도였다.* 루디 사르조 (1981-1982) : 해당 항목 참조.* 피트 웨이 (1982)* 돈 코스타 (1982-1983)* 필 소우잔 (1985-1988)* 기저 버틀러 (1988-1989, 1995-1996) : 블랙 사바스에서도 오지 오스본과 호흡을 맞춘 헤비메탈 베이스의 아버지이며 지금도 특유의 공격적인 핑거 피킹과 연주 방식은 젊은 연주자들 못지 않다.* 마이크 이네즈 (1989-1995, 1996, 1998) : 앨리스 인 체인스의 2번째 베이시스트. 오지 중후반기 대표 앨범 No more tears에서 베이스를 연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 실제 녹음은 밥 데이즐리가 했다.[28]* 로버트 트루히요 (1996-2003) : 현재 메탈리카 소속이며 상마초스러운 외관에 걸맞은 힘있는 연주를 보여준다. 팬덤에선 잭와일드, 로버트 트루히요, 마이크 보딘 이 삼인방 조합일때를 상당히 좋아할 때가 많다.* 제이슨 뉴스테드 (2003-2004) : 자신이 메탈리카를 떠나고 로버트가 메탈리카로 옮겨가는 바람에 공석이 된 베이시스트 자리를 잠시 동안 맡았다. 잭 와일드와 갈등이 생겨서 금방 탈퇴했다.* 크리스 와이즈 (2004-2005)
3.1.2.3. 키보드
- 돈 에어리 (1980, 1981-1982, 1983-1985)
- 린드시 브리지워터 (1980-1981, 1982-1983)
- 조니 쿡 (1981)
- 존 싱클레어 (1986-2003)
- 케빈 존스 (1991-1992)
- 릭 웨이크먼 (1995)
- 마이클 베인혼 (1995)
- 마이클 레일로 (2001)
3.1.2.4. 드럼
- 리 커슬레이크 (1979-1981)
- 토미 알드리지 (1981-1983, 1984-1985)
- 카마인 어피스 (1983-1984)
- 지미 디그래소 (1985)
- 랜디 카스틸로 (1985-1994, 1995, 1996, 1998)
- 딘 캐스트로노보 (1994-1995)
- 브라이언 티치 (2000)
- 로이 마요르가 (2000)
- 토미 리 (2001)
- 마이크 보딘 (1996-2000, 2001-2010)
유라이어 힙의 전성기를 같이 했던 명 드러머. 드럼 실력은 물론 코러스 실력도 일품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밥 데이즐리와 함께 1집은 물론 2집 Diary of a madman 에서 연주는 물론 송라이팅에도 다수 참여하였다. 이후 유라이어 힙으로 돌아가 2007년까지 활동하다 은퇴하였고 2018년부터 암투병을 하다 결국 2020년 9월 19일 향년 73세로 사망하였다.
락/메탈 드럼의 살아있는 전설, 1950년도생의 현역이다. 화이트스네이크,블랙 오크 아칸사스, 개리 무어, 매닉 에덴 등 슈퍼밴드에서 활동했었다. 아프로 헤어가 인상적이며 몇안되는 랜드 로즈 라이브 비디오 영상에서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다시 화이트 스네이크에서 활동 중.
메가데스의 Risk와 The World Needs a Hero를 녹음하기도 한 저명한 세션 전문 드러머.
4. 가족관계
- 아내들
- 셀마 라일리
오지의 전처. 오지와 마찬가지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11년간 오지와 혼인관계였지만 오지의 계속된 음주와 마약으로 인해 결혼 생활이 안좋아졌고, 오지의 외도가 두 사람의 이혼에 결정타를 먹였다. 심지어 오지가 후처인 샤론과 만날때도 셀마와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때였다. 오지와의 결혼 생활을 본인의 흑역사로 꼽고있고, 이혼 후 학교 교사일을 하고있다. - 샤론 오스본
오지의 후처. 블랙 사바스의 전 매니저이자, 현 오지 오스본의 매니저. 오지가 샤론을 만나서 사람이 됐다고 할 정도로 내조의 여왕이었고, 지금의 오지가 돈더미위에 있는 락스타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 전처와 이혼으로 인해 관계가 서먹해진 오지의 다른 2자식들과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만들어주기 위해 꾸준히 가족행사에 초대를 했다고 한다. 반면 오지의 전처인 셀마는 아이들을 오지와 최대한 떨어트리려했다.
- 자식들
결혼을 2번해서 자식들이 꽤 많지만 오스본 일가 TV쇼 당시 다들 성인 혹은 사춘기를 겪고있던 때라 켈리와 잭 오스본을 제외하곤 TV에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오지에게 자식들이 많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 엘리엇 킹슬리(1966년생): 오지의 전처인 셀마 라일리가 오지와 결혼 전에 낳은 자식. 셀마와 이혼전까지의 11년동안은 오지는 엘리엇의 양부였다. 연극배우로 활동 중. 혈연적으로 오지 오스본과 관계는 없다.
- 제시카 스타 오스본 (1972년생): 전체 셀마 라일리 사이에서 낳은 장녀. 배우로 활동 중이다. 부모님의 이혼 후 어머니가 철저하게 오지와 떨어트려 놓았기 때문에 아버지 오지와의 사이는 서먹하지만, 이복 동생들과는 사이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않았기 때문에 사이가 안좋다는 오해를 한다고 한다.[29]
- 루이스 존 오스본 (1975년생): 전처 셀마 라일리 사이에서 낳은 장남. 오스본 일가 TV 시리즈의 크리스마스편에 잠시 등장. 가수, DJ로 활동했었고, All night Artist라는 연예인 사무실도 운영하였다.[30] 샤론 오스본과 이복 동생들과 사이가 좋다고한다.
- 에이미 오스본(1983년생): 후처 샤론 오스본 사이에서 낳은 차녀. 가수로 활동 중. TV쇼엔 거의 안 나왔는데 사춘기에 한참 접어들 나이에 자신의 사생활이 TV에 공개돼서 친구들에게 놀림감 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 켈리 오스본(1984년생): 후처 샤론 오스본 사이에서 낳은 삼녀. 가수로 활동 중. 방송에 자주 나왔기 때문에 오지의 딸하면 바로 떠올리는 인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정책을 비판한답시고 모든 히스패닉들이 변기 청소부인양 비하하는 인종차별 발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 잭 오스본(1985년생): 후처 샤혼 오스본 사이에서 낳은 차남. 오스본 쇼 이후 방송업에 관심이 생겼는지 방송 진행, 각본가 등 방송업을 종사하고 있고, 이쪽에 소질이 있엇는지 상도 몇번 받았다. 누나인 켈리 오스본과 마찬가지로 방송에 자주 나와서 오지의 아들하면 딱 떠올리는 인물. 오스본가의 TV쇼 등장할 때는 전형적인 반항적인 락스타의 아들로 나왔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철이 들었는지 착실하게 살고있다. 결혼도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결혼 4년만에 이혼을 하였다. 방송 당시만해도 철없던 10대때라 그런지 비틀즈라던가 옛날 밴드들을 상당히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바뀌었는지 옛날 락밴드를 좋아하게되었고, 아버지처럼 역사 관련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들에 대한 엄청난 존경심을 보여주곤한다.
5. 음악성
솔로로도 성공한 거장급 뮤지션이지만 팬들조차 빈말로도 가창력은 물론 작사와 작곡 능력도 좋지 못하다고 할 정도의 실력이다. 평론가들이 그의 작곡실력을 칭송했다고 서술 되기도 했지만, 실상 블랙 사바스 시절과 솔로 1,2,3,4집 까지 그가 참여한 부분은 보컬 멜로디 파트 뿐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공동작곡이라고 표기 된 곡들 중 부지기수가 보컬 멜로디 파트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샤론 오스본은 오지 단독 작곡으로 표기하고 싶어했다.학력이 중학교 중퇴였기 때문에[31][32] 맡은 파트가 보컬이면서도 가사를 쓰기 힘들어해서 블랙 사바스 시절에는 베이시스트였던 기저 버틀러가, 솔로 시절에는 베이시스트 밥 데이즐리가 거의 모든 가사를 만들었다. 다만 <Sabbath Bloody Sabbath> 앨범의 <Who Are You?>, <Sabotage> 앨범의 <The Writ> 등은 오지가 직접 작사했다.일례로 1집인 Blizzard of Ozz 앨범에서 매니저이자 아내인 샤론은 전곡의 작곡으로 오지 오스본으로 표기하고자 하였으나, 실제 작곡가들인 나머지 멤버들의 강력한 반발로 공동작곡으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작곡가들은 랜디 로즈, 베이스 밥 데이즐리, 드러머 리 커슬레이크 였고, 작사가는 역시 밥 데이즐리였다. 오지는 보컬 멜로디만을 만들었을 뿐이다.
가창력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헤비메탈 그 자체'라고 불리는 음색을 가진 보컬임에도 불구하고 락계열 3대 악치에 들어가기도 하는 등 여기저기서 수난을 많이 당한다. 이유는 롭 핼포드나 로니 제임스 디오와 같은 동시대 보컬들과 달리 발성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고 음역대가 상대적으로 좁으며 타고난 성량도 뛰어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33] 참고로 그렇다고 오지 오스본이 음역대가 낮은 보컬은 아니다. 다소 웅얼거리는 듯한 음색인데다 대표곡들의 상당수가 3옥타브대 중반 이상의 고음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음역대가 낮다는(?)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의 곡들 상당수는 기본 키가 높아서 성인 남성이 평균적으로 육성으로 낼 수 있는 한계음이 계속 나오는 구조의 곡들이 많다. 블랙 사바스 시절에 부른 hole in the sky를 들어보면 이 인간이 미쳤나 싶을 정도로 쉬는 구간 없이 극악의 고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발성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곡을 라이브에서 제대로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워낙 마약과 술, 담배에 쩔어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목 상태도 언제나 형편없다. 랜디 로즈의 몇 안되는 영상 자료로 유명한 crazy train live에선 음정이 계속 플랫 되는 것도 모자라 삑사리도 계속 나 지금도 팬들에게 놀림을 받을 정도. 또다른 영상의 Mr. Crowley나 I don't Know 라이브나 못부르긴 마찬가지다. 빠껫떠문같은건 애교로 보일 정도.
하지만 그의 투박한 보컬이 블랙 사바스의 음산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은 팬들도 인정하는 부분. 뇌쇄적이고 주술적인,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비음섞인 사악한 그 영역은 왜 블랙 사바스와 오지가 헤비 메탈의 창시자 중 하나[34]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튜디오 녹음에 있어서는 뛰어난 음악적 센스와 개성있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커버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헤비 메탈의 원류가 기존의 하드 록에서 더 나간 음침하고 무겁고 기괴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음울하고 탁한 오지의 보컬은 헤비 메탈의 독자성을 정립하는데 중요한 파트중 하나였다. 대표적으로 War Pigs같은 곡에서 그의 카리스마는 하늘을 찌른다. 다만 80년대부터 상술한 롭 핼포드,로니 제임스 디오,브루스 디킨슨등 정돈된 창법과 기량을 갖춘 레전드급 보컬들이 다수 등장하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후배들이 늘어나면서 헤비메탈하면 빠르고 힘차고 고음을 사용하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헤비메탈 뉴비들에게 '헤비메탈같지 않은 보컬' 이라고 불려왔다
당연히 동시대의 딥 퍼플의 이언 길런이나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 같은 사람들에게는 음악성으로나 가창력으로나 비교 대상도 될 수가 없다.[35] 그러나 형편없는 가창력에도 그의 보컬 톤을 살릴 수 있는 음악을 100% 활용하고, 오히려 라이브에서 팬들과 적극 소통하면서 쇼맨쉽을 발휘해 훌륭한 프론트맨으로 활약하여 신예들로만 구성된 블랙 사바스를 레드 제플린,딥 퍼플같은 슈퍼밴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독자성을 구축하고 인기를 높이는데 기여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튼 그의 보컬 실력이 다른 보컬리스트들보다 별로라도 오지가 부른 블랙 사바스의 곡들을 오지만큼 맛깔나게 부를수 있는 보컬은 흔치 않다.[36]
이러한 이유로 롤링 스톤은 2023년에 역대 위대한 가수 200인(The 200 Greatest Singers of All Time) 중 한 명으로 오지 오스본을 선정했다. 링크 롤링스톤이 이 리스트에 오지를 넣은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목소리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멋진 목소리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한다.(“Ozzy Osbourne doesn’t have what most people would call a good voice, but boy does he have a great one.”)
그들보다 인기가 더 많고 더 매력적이고 어마어마한 부자인 락스타인것은 부정할 수 없고, 지금도 그의 팬층은 엄청나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젊을적보다 무대위의 퍼포먼스가 눈에 띄게 줄었다. 물까지 뿌리고 무대 위를 활보하던 시절에 비해 요즘은 마이크 스탠드 근처에만 돌아다니거나, 깡총 깡총 뛴다던지, 손주들 재롱 보듯이 박수를 짝짝 친다. 팬들은 이 모습에 갭모에를 느낀다고 한다.(...)
랜디 로즈가 기타 튜닝하는 모습만 보고 뽑았다는 건 루머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비록 당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지만 밴드로써 한번 정상의 자리를 맛본 프로였던 그가, 겨우 악기 조율하는 거 좀 봤다고 혹시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랜디 로즈보다 걸출한 기타리스트를 확인하지도 않고 걷어차 버리는 짓을 할 리가 만무하다. 당시 이미 랜디 로즈는 신인은 아니었고 콰이어트 라이엇의 기타리스트였다. 튜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오디션 때 눈여겨 본 정도였다고 한다.
Scream 앨범을 마지막으로 앨범을 내지도 않았는데 매년 '최고의 남자 보컬리스트'로 뽑히는게 이상해서 잭 와일드한테 이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잭 와일드 왈: "이제 다들 세상을 떠나버려서 더 이상 투표해줄 원로 보컬리스트가 없어서 그렇다"고 농담조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인터뷰의 이전해에 레미 킬미스터가 타계를 하였고, 그나마 남아있는 원로 메탈 보컬리스트들은 로버트 플랜트, 롭 헬포드, 그리고 이안 길런 정도인데 아무래도 여전히 헤비 메탈의 원류에서 벗어나지 않고 대중적으로 계속 어필하며 헤비 메탈을 해온 가장 인지도가 높은 오지 오스본을 계속 뽑아주는 듯하다. 더군다나 이 중 이안 길런은 목 상태가 악화될대로 악화되어 Smoke on the Water마저 소화하지 못하는 상태고, 로버트 플랜트는 그나마 창법을 바꿔 현재는 3옥타브 까지는 되찾았지만 이제는 헤비 메탈이 아닌 컨트리 뮤직 장르로 노선을 바꾼지라 헤비 메탈 3대장 밴드의 보컬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기량 넘치는 메탈 보컬을 소화하는 보컬리스트는 오지 오스본 밖에 없다. 게다가 롭 핼포드의 경우 본인의 기량도 여전히 좋은 편이고, 주다스 프리스트(밴드) 자체가 헤비메탈계에서의 위상은 오지 오스본 못지 않게 매우 높지만, 오지 오스본에 비하면 메인스트림 차트에서 크게 주목을 하는 아티스트가 아닌 편인지라 이와 같은 인지도 역시 고려되는 듯 하다.
6. 음반 목록
- 정규
- Blizzard of Ozz (1980)
- Diary of a Madman (1981)
- Bark at the Moon (1983)
- The Ultimate Sin (1986)
- No Rest for the Wicked (1988)[37]
- No More Tears (1991)
- Ozzmosis (1995)
- Down to Earth (2001)
- Under Cover (2005)
- Black Rain (2007)
- Scream (2010)
- Ordinary Man (2020)
- Patient Number 9 (2022)
- EP
- My Crowley Live EP (1980)
- Ultimate Live Ozzy (1986)
- Back to Ozz (1988)
- Just Say Ozzy (1990)
- iTunes Festival: London 2010 (2010)
- 라이브
- Speak of the Devil(Talk of the Devil in the UK) (1982)
- Tribute (1987)
- Live & Loud (1993)
- Live at Budokan (2002)
- Ozzy Live (2012)
- 컴필레이션
- The Other Side of Ozzy Osbourne (1985)
- Best of Ozz (1989)
- Ten Commandments (1990)
- The Ozzman Cometh (1997)
- The Essential Ozzy Osbourne (2003)
- Prince of Darkness (2005)
- Memoirs of a Madman (2014)
- See You on the Other Side (2019)
7. 법적 분쟁
90년대 중반부터 상당히 많은 고소 고발건에 휘말렸다.오지 오스본은 자신이 작곡하지 않은 곡들에 본인 이름을 올리고, 실제 작곡가들은 크레딧에서 지워 버린다거나, 표기 하더라도 저작권료를 미지급했기 때문이다. 잭 와일드 가입 초기까지 밴드 멤버들이 작곡한 곡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고, 자기 이름을 슬쩍 올리는 일은 다반사였고, 초반에는 작곡 크레딧에 본인 이름만 올리려는 시도도 자행했었다.
밥 데이즐리와 리 커슬레이크에게 고소 당한 일은 물론, Bark at the Moon 투어에 참여했다가 잘린 레전드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에게도 고소 당했으며, short in the dark 의 작곡가인 베이시스트 필 수전에 대한 로열티 미지급으로 고소 당한 일도 있다.
그외 투어에만 참여했던 멤버들 혹은 앨범에 참여했으나 크레딧에서 지워져버린 멤버들에게 당한 짜잘한 고소건들이 많이 있다.
밴드 초기에 처음 멤버들을 영입할 때 분명히 따로 밴드 이름을 정할거라고 했으나 곧 말을 뒤집고 오지 오스본 밴드로 밴드 이름을 밀어 붙인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다른 멤버들의 반발이 있자 Blizard of Ozz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겨우 멤버들을 설득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오지의 아내 샤론의 주장에 따라 슬그머니 Ozzy Osbourne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랜디 로즈와 더불어 메인 작곡가이자 베테랑 뮤지션들인 밥 데이즐리와 리 커슬레이크가 이에 대해 항의하자 오지 오스본은 아예 2집 크레딧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이들은 유명 밴드인 레인보우와 유라이어 힙 출신으로 오지 오스본과의 협업이 종료된 후, 유라이어 힙에 (재)가입해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거물들인데도 이렇게 대우했다. 그러니 자신이 직접 뽑은 무명 연주자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는 안봐도 비디오...
오지 오스본은 블랙 사바스 시절 멤버들에게 홀대 당하던 설움을 풀려고 하는 것인지, 자신의 밴드를 만든 이후로 잭 와일드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을 아주 홀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제이크 E. 리를 홀대한 것이 유명한데 제이크 E. 리는 실력이 랜디 로즈에 꿀릴 게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급 250달러를 받는 세션 취급에다 앰프마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며, 밴드에서 탈퇴하고 싶다고 요청했을 때 오지는 제이크에게 그가 작곡한 곡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것을 탈퇴 조건으로 내밀었고 진저리가 났던 제이크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탈퇴했다. 또한 루디 사르조의 자서전에 의하면 랜디 로즈를 무척 아꼈다는 평소의 이미지와 달리, 랜디에게도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금전적으로는 세션 뮤지션 취급을 했었다고 한다. 또한 랜디가 2집 발표 후 오지에게 UCLA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기 위해 탈퇴 하겠다고 선언하자, 샤론과 오지가 그를 소송으로 협박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때문에 앨범 1장을 더 내고 탈퇴하는 조건으로 밴드에 남은 랜디는 결국 무리한 스케줄로 투어를 돌다가 비행공포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버스 운전기사가 모는 경비행기에 탔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앨범 발매를 위해 녹음하던 중 멤버가 탈퇴하면, 보통 녹음된 트랙을 지우고 다시 녹음하거나 앨범 제작 참여 크레딧에 이름과 멤버의 사진을 올려주는 것이 최소한의 의리인데, 오지는 그냥 크레딧에 이름을 바꾸고 앨범 사진만 새 멤버들(루디 사조, 타미 알드리지)의 사진으로 바꿔서 출시했다. 후에 밥 데이즐리와 리 커슬레이크가 소송을 걸자 앨범 발매 20여년이 지난 2002년 1, 2집을 재발매하면서 이들의 트랙을 지우고 로버트 트루히요와 마이클 보딘의 연주로 재녹음하여 출시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8. 여담
- 비틀즈 광팬[38]인 것으로 유명하며,실제로 폴 매카트니를 만난 적도 있다. 폴 매카트니 앞에서는 그 또라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점잖은 모습을 보여줬다. 인터뷰마다 "비틀즈는 내 인생을 바꿨다." "비틀즈는 세상을 바꿨다." "내 커리어 전체가 비틀즈에 빚지고 있다." "비틀즈 없는 세상은 흑백 TV 같았다." 등 비틀즈 멤버들이 들으면 낯뜨거워할 말을 쏟아낸다. 링고 스타의 앨범에도 참여했다.
- 2002년 2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내한공연을 가졌다.
- 2014년 8월 시티브레이크 첫째날 헤드라이너로 12년만에 내한공연을 가졌다. 한국에서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님에도 꽤 많은 관객들이 늦은 시간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고 이에 오지옹은 큰절로 화답했다.
- 역사 덕후다보니 다큐멘터리 같은걸 상당히 많이 시청하는데, 하필 2차대전 역사도 상당히 좋아해서 전쟁관련 영화도 자주보는데 그걸 아들 잭 오스본이랑 같이 봐서 어린 잭은 어릴때부터 전쟁영화의 잔인한 장면 때문에 트라우마에 많이 시달렸다고 한다. Osbourne이란 TV쇼에서도 샤론이 집에있을때는 샤론이 집에서 전쟁관련 프로나 영화를 못보게한다. 하지만 잭은 이걸 극복하였는지 타 프로그램에서 아버지와 같이 탱크나 사격장에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애완견 '로키'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휴대폰 배경화면까지도 로키 사진으로 도배하고 다닌다.
-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영국인으로 성인이 될때까지 자랐다보니 영국식 억양이 꽤 묻어있다. 특히 영국계 미국인으로 자란 자식들과 꽤 발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지와 잭이 여행에서 오지의 커버 가수인 'Little Ozzy'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오지는 버밍엄 억양으로 '리틀 아즤'라고 발음한 반면[39] 아들 잭은 미국식으로 '리를 어즤'라고 발음을 하였다.[40] 참고로 잭의 억양 역시 완전히 미국 억양은 아니다. Rhoticitiy의 부재나 t를 미국식으로 d(tap)라 발음하지 않는 때가 보이는 등. https://www.youtube.com/watch?v=qa0C9-1GLxM
8.1. 건강
- 술, 약물을 치사량에 가깝게 오랫 동안 복용해 왔기에 이전부터 곧 요절할 것 같은 락스타로 항상 손꼽혔지만[41]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나이 70을 훌쩍 넘기고도 정정하게 살아 있다.[42] 그래서 평소에도 샤론이 농담으로 "세상이 멸망하면 바퀴벌레들과 당신 그리고 키스 리처즈만 살아남을 것 이다."라고 말했다고. 술과 마약을 그렇게 하고도 죽지 않은 것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라 2010년, 과학자들은 유명인사 최초로 그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였고 연구 결과 실제로 술과 마약에 강한 특수한 유전자가 발견되었다! 대신 오지 오스본의 유전자는 카페인에 치명적일 정도로 약하다고 한다. 당시 연구를 계기로 그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해당 결과는 TEDMED 2010에서 발표했다. #1 #2
- 이후 나이가 든 오지는 건강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43] 술, 담배, 마약을 한 번에 다 끊었고, 술 친구였던 잭 와일드 역시 술을 끊었기에 너무 무료해져서 좀 자극적인 일을 일부러 만들어가면서 놀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무대와 악기가 준비돼있는 클럽에 들어가서 갑자기 둘이 Crazy Train을 공연하고 나온다든지, 파티하는 집이면 아무 집이나 찾아 들어가 아침까지 술을 안 마시고 논다든지.
- 주치의가 우려할 정도로 초콜릿광이다. 아들 말로는 건강을 위해 초콜릿을 당분간 끊으라는 말[44]을 듣고도 영국 고급 초콜렛 상점에서 수천 달러어치 초콜릿을 폭풍흡입했다고. 결국 아들이 오지 오스본의 생일 선물로 기획한 것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위치한 허쉬 본사 투어였는데 뛸 듯이 기뻐하며 이곳 저곳을 투어하는 오지를 볼 수 있다. 상기한 건강상 문제로 허쉬 본사에서 먹은 생일 축하 케이크는 무설탕 케이크.
- 2020년 초 부인 샤론 오스본에 따르면 병원에서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투병 중이나, 2월에 정규 앨범을 또 냈다. 샤론에 따르면 오지의 영화를 기획 중이라고 한다. 2021년엔 앞머리를 흰색으로 브릿지 넣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직 계속 뭔가를 할 것이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8.2. 대중 매체에서
- 블리즈컨에서 블리자드의 사내 밴드인 L70ETC와 합동공연을 하기도 했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CF에 출연했다. "나는 1979년부터 이미 어둠의 군주(prince of darkness)였다"라고 호기롭게 깝치다가 리치 왕과 대면하고는 바로 꼬리내리는 언데드 흑마법사로 등장했다. 특히 광고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외치는 " What's your xxxxing game? "[45]은 압권.
- 영국 드라마 닥터후 뉴 시즌 3 에피소드 12에 아내인 샤론 오스본이 카메오로 출연하였고, 본인은 아내와 같이 찍은 사진으로 잠시 나왔었다.
- 사우스 파크 시즌 2 'Chef Aid' 편에 잠시 등장했다. 여기서는 박쥐 대신 케니 맥코믹의 머리를 통째로 물어뜯었다.
- 그리고 어느 무명 호러 영화에서 무려 전도사역을 맡기도 했다. 악마교 아니고 기독교! Little Nicky란 영화에서 박쥐로 변한 사탄의 머리를 뜯어서 봉인하는 역할로 나왔다.
- 잭 블랙이 주연으로 나오는 게임 브루탈 레전드에도 출연했다. 첫 전투곡으로 칠드런 오브 더 그레이브가 나오는 메탈 그 자체인 게임이다.
- 2016년 개봉한 고스트버스터즈에서 카메오로 출연한다. 약 안 빨았는데도 이상한게 보인다나...
셀프디스
- 2019년 포스트 말론의 신보 Hollywood's Bleeding의 수록곡 Take what you want에 트래비스 스캇[46]과 함께 피쳐링으로 참여했다. 끝 마무리의 기타 솔로가 압권.
[1]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이름은 오지 오즈번이다. 오지 오스본 본인이 사용하는 버밍엄 억양으로는 아지 아즈본처럼 발음한다.[2] 본인 曰. 저를 자꾸 마왕이라 부르는데 사실은 아주 감성적인 사람입니다.[3] 오지에겐 두번째 아내. 오지와 결혼 전에는 랜디 로즈와 잠깐 교제했었다.[4] 블랙 사바스 시절에 동네 친구였던 리더이자 메인 송라이터인 토니 아이오미에게 늘상 눌려 지내며, 탈퇴와 가입을 반복하던 신세였기에, 자신보다 유명한 기타리스트들과는 일하기 싫었을 것이다.[5] 그 이외에도 밴드 리더로서의 위치를 제대로 확립하고 싶었던 것도 있다. 오지 오스본 다큐멘터리를 보면 업계에서 어느 정도 정점에 서있는 멤버들이 말을 안 들어서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심지어 풋내기엿던 잭 와일드도 나이 먹으면서 오지 오스본을 대놓고 놀리는 장면이 있다.[6] 사실 잭 와일드는 오지 오스본 밴드의 역대 기타리스트 중에서는 눈에 띌 정도로 어린 나이에 밴드에 합류하긴 했다. 랜디 로즈도 꽤나 어린 나이에 오지 밴드에 합류했지만 그런 그도 당시 22~3세 정도였으나 잭 와일드의 경우는 사실상 20대가 되자마자 오지 밴드에 들어왔다.[7] 원곡을 들어보면 위화감이 확 오는데, 이때 라이브는 원곡보다 느린 BPM으로 부른다. 원곡을 0.9배속으로 돌려야 이 라이브 버전과 비슷하다. 취향은 듣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느리게 부른 라이브 버전이 오지의 음울한 보컬 톤을 더 부각시키는 편이다.[8] 랜디, 샤론, 오지가 모두 몰려다니며 장난치고 노는 엄청난 절친이었는데 랜디 로즈의 죽음 이후 너무 충격이 큰 나머지 오지는 반쯤 폐인 상태가 되어 울기만 했다고 한다...[9] 이안 길런이 딥 퍼플을 떠난 뒤 만든 솔로 밴드에 잠시 활동했지만 탈퇴했고, 그 시기에 소속사 제트 레코드의 요청으로 랜디 로즈의 사후 다급히 공연을 뛰어야 하는 기타리스트로 LA로 날아갔다. 그런데, 정작 오지와 샤론은 로즈 대신 뛸 기타리스트로 쿠바 출신 로버트 사르조(당시 베이스였던 루디 사르조의 8살 아래 남동생이다.)를 제트 레코드의 연락 없이 불러놨었는데 갑자기 버니 토메가 와버렸다. 음반사가 갑이므로 오지도 로버트 사르조를 돌려보내고 일단 토메와 연습을 몇 번 해봤는데... 토메의 블루지한 기타 연주가 마음에 안 든다고 오지가 토메를 거부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는 나이트 레인저의 리드 기타 브래드 길리스로 교체되고, 토메는 솔로, 세션 기타리스트 등으로 활동하다 2019년 3월 17일자로 작고했다. 향년 66세.[10] 198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그룹 나이트 레인저의 기타리스트로 82년 오지와 잠깐 활동하다가 본업인 나이트 레인저의 기타리스트로 돌아간다. 이 사람도 나이트 레인저라는 인기 밴드를 이끌던 기타리스트고, 훗날 DIO의 주도로 결성한 Hear'n' Aid에 참여해 <Stars>에서 비비안 캠벨과 기타 솔로를 같이한 실력파 기타리스트지만 랜디가 높여놓은 오지의 귀를 만족시키진 못했다. 훗날 인터뷰 내용이 제이슨 뉴스테드 항목에도 나오지만, 둘다 전임 주자가 짧고 굵은 족적을 남긴 뒤 요절해버렸고 그 후임자로서 무게에 눌려 엄청난 푸대접을 받은 오지 오스본의 게스트 멤버라는 점에서 동질감이 있다.[11] 잭 와일드의 개인 프로젝트 - Black Label Society - 같은 문제도 있었지만 탈퇴 이유는 알콜 때문이라고 한다. 오지는 잭 와일드와 둘도없는 술친구였지만 건강 문제로 오지가 술을 끊었는데 잭 와일드는 계속해서 술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지 오스본과 잭 와일드는 여전히 친한 사이이며, 근 20년을 같이 활동했기 때문에 거의 가족에 가깝다고 한다.[12] 매니저이자 아내인 샤론의 원래 계획은 오지가 이사회에 비둘기를 들고 쳐들어가서 비둘기를 풀고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었는데 이 양반이 긴장해서 마약을 빨고 이사회실에 갔다(...).[13] 다른 바리에이션으로 독일 군복을 입고 술에 취해 광란의 상태로 노래 부른 적도 있다.[14] 아직도 공연 금지가 안 풀려서 텍사스 주에서는 공연을 못한다.[15] 히스토리 채널의 아들과 함께 여행가는 프로그램 'Ozzy and jacks world detour'에서 알라모성을 다시 방문하는데, 이때 시청 가서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는데 정확히는 노상방뇨가 아니라 공공장소 만취죄였다고... 그리고 무려 지역 뉴스와 신문에 재방문이 기사화되었다.[16] 본인들이 최고의 망나니 밴드라는 명성을 지키기 위해(...)[17] 머틀리 크루는 자신들이 가장 동물적인 본능을 가진 가장 망나니 밴드라고 생각을 하였으나 오지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우리보다 더 메스껍고 혐오스러운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18]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사우스 파크의 Chef Aid 에피소드에 등장해서 박쥐를 물어 뜯으려고 하다가 올라간 케니 맥코믹을 물어 뜯어 죽여버리신다. 식인종 등장[19] 스콜피온즈 소속이었던 그 기타리스트 맞다. 무려 랜디 로즈(!)의 후임으로 유력했다.[20] 참고로 그 강아지가 코요테에게 습격당해서 죽자 아내와 같이 혼절했다고 한다. 그때 텔레비전 보느라고 강아지가 습격당한 것을 몰라서 굉장히 죄책감이 컸다고 한다.[21] 당시 오지는 밴드에서 해고된 충격으로 호텔에서 방콕하며 지내고 있었다.[22] 이 이야기는 2019년에 오지 오스본이 낸 신보의 Under the Graveyard라는 곡 뮤직비디오에서 아주 잘 묘사했다...근데 오지가 너무 잘 생기게 나왔다...[23] 당연하다. 그가 공동 작곡했다고 표기된 곡들도 사실 그가 작곡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곡이 대부분이다.[24] Don Arden이란 예명으로 리틀 리처드, 블랙 사바스, ELO 등의 여러 거물을 매니지먼트한 음악계 히트메이커로 유명했다. 2007년 사망. 샤론이 떠나고 나서 몇 년 후 아들이 낸 폭력사건으로 인한 법정 분쟁에 휘말려 뮤직 비지니스에서 사실상 밀려난 상태였다.[25] 중간에 나갔다가 되돌아온 경우들이 많은데, 이는 밴드를 아에 나갔기 보단 개인 솔로활동 때문에 밴드를 잠시 비운 것이다.[26] 알콜문제 때문에 2009년도에 밴드에서 짤렸다가, 2017년에 Gus G.가 밴드에서 나가면서 다시 돌아왔다. 사이가 나빠서 짤렷긴 보단 건강 문제 때문에 밴드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27] 예스의 키보디스트였던 릭 웨이크먼의 아들이다.[28] 다만, 전 앨범들과 달리 작사가로서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29] 샤론 오스본이 그래도 오지의 자식들이라 많이 챙겨주고 가족 행사에 꾸준히 초대를하면서 유대감을 만들었다고한다.[30] 금전적 관리가 잘안되었는지 2013년에는 떼돈 버는 락스타인 아버지와 달리 파산을 하기도 하였다.[31] 중학교 1학년 때 가난한 집안사정과 학교생활 부적응이 맞물려 학교를 그만두었다. 오지 오스본은 동급생들에게 허구한 날 맞고 다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서 오지를 가장 많이 두들겨 팬 사람이 바로 훗날 같은 밴드 블랙 사바스에서 기타를 맡게 되는 토니 아이오미였다고 한다.[32] 이 서술만 보고 오지가 밴드 생활 전에 마냥 찐따같은 사람이었다고 착각은 하지 말자. 오지 오스본은 학교 중톼 후 불량한 애들과 어울리다가 갱단에 들어가서 절도 등의 경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을 정도로 거친 삶을 살았다. 근데 경찰에게 붙잡힌 이유가 웃긴데 오지 오스본이 지문을 남기지 않겠답시고 장갑을 끼고 물건을 훔쳤으나 알고 보니 그 장갑에 구멍이 나있어서 여기저기에 오지의 지문이 묻어있었다고 한다... 이후 오지는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손가락에 그 유명한 Ozzy 문신을 직접 세긴다.[33] 복식 호흡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목으로 쥐어짜서 부르기 때문에 소리를 먹어서 부르는 현상이 매우 심하게 일어나며, 음정이 수시로 나가고 삑사리도 자주 난다.[34] 명칭의 창시자는 아니다. 블루 오이스터 컬트라는 밴드가 처음으로 그 이름으로 불렸다.[35] 사실 이런 이유로 특히 로버트 플랜트를 롹 보컬의 정점으로 놓고 연습하는 일명 정통파들이 주류였던 한국의 록음악 씬에서 오지가 못생긴 게 노래도 못 부르는 아저씨 취급 받는 것도 있었다.[36] 국내의 전인권과도 좀 비슷하다. 들국화 시절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무대에서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 하고, 구설수 있는 사생활에 외모도 형편없게 변했으나 그의 노래를 부르는 감성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다.[37] 앨범 표지에 등장한 여자아이 중 한 명이 훗날 영국의 톱 모델이 되는 리버티 로스이다.링크[38] 블랙 사바스 멤버들은 모두 비틀즈 팬이지만 그중 오지 오스본은 거의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급으로 비틀즈를 숭배한다.[39] 보통 영국 영어는 o를 'ㅗ'로 발음해야 할 것 같지만 브리튼 제도 서부 억양(아일랜드, 서부 잉글랜드 등)에선 대부분 o를 'ㅏ'로 발음한다.[40] 사실 이 발음도 cot-caught merger 현상을 반영한 발음이다보니 표준 미국 억양보단 캘리포니아 억양에 더 가깝다.[41] 오지 오스본 본인조차도 '이대로 살다가 한 40세 정도에 죽겠지 뭐' 하는 생각으로 막 살았다고 한다.[42] 부작용으로 심각한 조루 증상이 생겼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륜을 저지르는 등 성관계는 원만한 모양.[43] 대다수 마약에 찌들어 사는 음악가들도 고령이 되면 마약을 끊지 않는 한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 마약을 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키스 리처즈. 이쪽 역시 얼마 안 가고 요절할 것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80세가 다 돼가는 나이에도 정정하다.[44] 초콜릿에는 카페인이 들었고, 카카오를 많이 쓴 고급 초콜릿일수록 더 많이 들어 있다. 카페인 자체가 원래 과용하면 심장마비까지 일으키는 위험성이 있고, 가뜩이나 상술한 대로 오지 본인은 유전적으로 카페인이 치명적인 사람이다.[45] "What's your game?"은 당시 와우 광고 시리즈의 캐치프레이즈였으므로 척 노리스, 미스터 T, 윌리엄 샤트너 등 많은 사람들이 입에 담았지만, 오스본은 여기다 기어이 F-word를 끼워넣어 검열삭제를 당했다.[46] 주다스 프리스트의 드러머 스캇 트레비스(Scott Travis)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