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8 01:44:53

머틀리 크루

Mötley Crüe

1. 개요2. 특징3. 바이오그래피
3.1. 멤버
4. 디스코그래피
4.1. 앨범4.2. 싱글4.3. 미디어

1. 개요

LA 메탈의 최정점에 있던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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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성기 시절 모습. 좌측 상단부터 빈스 닐 (보컬), 토미 리 (드러머), 니키 식스 (베이스), 믹 마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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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모습. 왼쪽부터 믹 마스 (기타), 니키 식스 (베이스), 빈스 닐 (보컬), 토미 리 (드러머).

미국록밴드. 대표적인 팝 메탈/LA 메탈 밴드로서, 가장 미국적인 록밴드로 꼽히며, 미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록 밴드 중 하나이다. 전세계 1억장 이상의 판매고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만 2500만장의 앨범을 판매하였다.

2. 특징

LA 메탈과 전형적인 미국식 메탈 밴드의 이미지를 처음 만들어낸 밴드로서, 블루스에 기반한 넘실대는 그루브감과 팝적인 멜로디, 그리고 다소 선정적이고 향락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이름에 다른 록밴드인 모터헤드처럼 움라우트가 들어가지만, 독일어는 아니고 그냥 멋있어 보여서 붙인 거라고.

밴드 결성 초기부터 1985년 Theatre of Pain 시절까지는 영국글램 록헤비메탈에 영향 받은 짙은 화장과 섹슈얼하고 화려한 차림을 하고 나왔는데, 이는 나중에 꽃미남 컨셉을 이용한 LA 메탈의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Girls, Girls, Girls 앨범부터는 미국의 전형적인 Bad Ass 컨셉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 컨셉은 비슷한 이미지의 동 시대 밴드들과 함께 전형적인 미국 록밴드의 이미지를 형성하였다.

특유의 사고뭉치 이미지로도 유명하며, 특히 멤버들의 돌출행동과 사고가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멤버들이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에 빠진 적도 있으며, 빈스 닐은 술 처먹고 사고 치고 감옥에 들락날락 하기도 했다. 드러머 타미 리의 경우 파멜라 앤더슨과 찍은 검열삭제 동영상이 유출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베이시스트 니키 식스의 경우 마약을 과용하다가 심정지가 온 적도 있다고.

사고뭉치 이미지로 인해 헤비메탈롤링 스톤즈(...)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는 듯 하다.

전성기 시절에는 보컬인 빈스 닐이 잘 생긴 얼굴로 인기를 끌었으나, 재결성 이후에는 가장 급격히 노쇠한 멤버가 되었다.

2015년 12월 31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해체하였다가, 2019년 다시 재결합을 선언했다. 2019년에 공개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더 더트'가 인기를 끌면서 젊은 팬들이 늘어난 것이 이유라고 한다. 2020년부터 Poison, Def leppard와 함께 투어에 나선다.

3. 바이오그래피

1981년 1월 17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에서 결성되었다. 다른 밴드에서 탈퇴한 상태였던 니키 식스와 타미 리가 합심하여 기타리스트 믹 마스를[1] 오디션을 통해 영입하고, 타미 리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보컬 빈스 닐을 영입하여 결성하였다.

1981년 그들의 첫 앨범 Too Fast for Love를 셀프 프로듀스 형식으로 제작하여 발매했는데, 발매 후 2만장이 팔리며 셀프 프로듀스 치곤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이후 메이저 음반사인 Elektra Records와 계약하게 된다. 계약 후 리믹스와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발매된 그들의 데뷔 음반은 1987년에 플래티넘을 기록하게 된다.

1983년에는 그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앨범 Shout at the Devil을 발표한다. 이 시기에 발표된 Shout at the Devil (1983), Theatre of Pain (1985), Girls, Girls, Girls (1987) 세 장의 앨범은 그들의 커리어 하이를 상징하는 앨범들로, 수많은 인기 싱글이 쏟아지며 그들에게 세계적인 인기를 가져다준다. 당시에 불었던 MTV 붐과, 글램 록헤비메탈의 이미지를 섞은 그들의 팝 메탈 형식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명실공히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잡게 된다.

1989년에는 그들을 대표하는 앨범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앨범으로 그들의 앨범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인 DR. FEELGOOD을 발매하며 인기의 정점을 찍는다. 머틀리 크루를 상징하는 앨범은 2-5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니키 식스가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쓰러지게 되고 앰뷸런스에 실려가던 도중 사망선고를 받게 되지만 앰뷸런스에는 머틀리 크루의 팬이었던 간호사가 아드레날린을 주사해 겨우 소생시켰다.[2][3] 그로 인해 마약과 방탕한 생활에 대해 멤버들 모두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새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하였다. 본 조비의 'Slipped When Wet'의 엔지니어와 믹싱을 담당하던 프로듀서 밥 락을 영입하였다. 기존의 앨범 제작과정에 비해 밥 락은 아주 섬세한 스타일이 었고 이러한 방식과 맞물려 앨범 전체적으로 기존과 다르게 깨끗하고 명확한 소리가 들리게 된다.[4]

1989년 싱글 Dr. Feelgood을 필두로 Kickstart My Heart, Without You, Same Ol' Situation, Don't Go Away Mad 등 앨범 거의 절반에 가까운 곡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고 앨범 역시 600만장을 팔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메탈의 선봉장임을 자처하면서도 준수한 히트작은 많으나 월드와이드로 메가 히트한 앨범은 없었던 터인데 Dr. Feelgood은 Bon Jovi의 'Slipped When Wet', 건즈 앤 로지스의 'Appitite For Destruction', 데프 레파드의 'Hysteria'와 더불어 메탈씬 최고의 히트작이 되었다.

하지만 1992년 빈스 닐이 밴드를 떠나고 존 코라비를 영입한다.[5] 곧 이어진 그런지펑크의 유행으로 인하여 헤비메탈 전체의 인기가 시들면서 밴드 역시도 침체기에 들어가게 됐다. 1994년 셀프 타이틀 'Motley Crue'를 발매하여 빌보드 차트 8위에 랭크 되었으나 앨범 판매량은 겨우 골드에 그치는 등 상업적으로 실패를 맛보았다.[6]

중간에 빈스 닐이 돌아와[7] 1997년 'Generation Swine'을 발표하며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랭크되지만 기존과 크게 다른 스타일의 앨범이라 골수 팬들이 크게 실망하게 된다. 결국 타미 리가 탈퇴하는 등 멤버의 교체도 일어나고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2004년 재결성하여 다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08년에는 신보인 Saints of Los Angeles를 발표하며 다시금 미국을 대표하는 록밴드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에는 기아 K5(미국명 옵티마) TV광고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2014년 경 나온다는 다음 신보 후 해체 수순을 밟을 예정이라고 하며 파이널 투어랍시고 투어도 만들어 돌아다니고 있는데 왜인지 2015년이 반이 지나갔는데도 잘만 활동하고 있다. 돈을 긁어모으기 위한 훼이크가 아니냐는 추측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고 잘못 알고 있지만 2015년 투어를 끝으로 해체한다고 진작에 얘기했었다.

2019년 3월 22일 머틀리 크루의 전기영화 더 더트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되었다. 그들의 명성(?)답게 섹스, 알콜, 약물, 구속수감으로 뒤범벅이 된 내용인데 플롯 자체는 상당히 심플하고 사실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밴드의 전기영화로의 완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3.1. 멤버

  • 믹 마스 Mick Mars (일렉트릭 기타)
    팀 내 가장 연장자이며 70년대 초중반 부터 여러 밴드를 거친 베테랑 기타리스트.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던 나머지 멤버들에 비해 정말로 조용하고 음악에만 매진했던 멤버로, 리바이벌 글램메탈 붐이 일때 후배 글램메탈 밴드들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피쳐링을 해주는 등의 씬에 많은 기여를 했다. 기타리스트 치고는 특이할 정도로 솔로 욕심이나 화려한 리프 자랑질이 매우 적은 기타리스트계의 이단아 중 하나로 손꼽힌다. 물론 믹이 기교가 없거나 아예 안 한다는 건 아니다. 유투브만 뒤져도 믹의 현란한 테크닉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지만, 믹 정도의 실력을 가진 기타리스트면 라이브 무대에서 잉베이 말름스틴 같이 관객들에게 자기 테크닉을 위시하기 위한 현란한 애드립을 구사하는 자기과시가 쩌는 관심병자들이 상당수인데, 이 양반은 커리어 쌓을 만큼 쌓은 베테랑인데도 옆에선 니키가 불 쇼하고(...) 타미 리가 청룡열차 타면서 두들기는 동안 무슨 베이시스트마냥 묵묵히 자기 담당 연주만 하는 굉장히 이질적인 기타리스트이다. 아무래도 17세 때부터 투병했던 강직성 척추염의 영향으로 거동이 불편해서 일지도... 그래서인지 가장 저평가된 기타리스트로 항상 손꼽히기도 한다.
  • 타미 리 Tommy Lee (드럼)
    긴 팔다리를 이용한 파워 드러밍이 돋보이는 멤버. 이 사람도 빈스 닐 처럼 워낙 사생활이 막장이라 그렇지, 비교적 평범한 수준의 테크닉이지만 밴드 중심을 잡는 박자감각이 뛰어난 드러머라 위의 믹과 마찬가지로 과소평가된 일류 드러머로 항상 꼽히는 드러머 중 하나다. 이 양반도 쇼맨쉽과 관심병이 남달라서, 전술한 롤러 코스터 드럼은 토미 리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산 후에는 솔로 앨범을 발매하여 솔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솔로 앨범 작업은 원맨 밴드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Methods of Mayhem"이란 이름으로 싱글[9].을 발매하였고[10], 1집은 Methods of Mayhem의 후속느낌으로 인더스트리얼뉴메탈의 성향을 띄었으나, 2집 부터는 얼터너티브 록의 성향을 강하게 굳혔다. 2002년도 ETPFEST를 통해 한국에 내한공연을 한 전적이 있다.
    파멜라 앤더슨과 교제하기도 했고, 당시 파멜라 앤더슨과의 섹스 비디오 유출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을 정도로 결성 대부터 지금까지 주욱 개망나니 컨셉을 유지하고 있다(...)[11]. 참고로 본명은 타미 리 베이스(Tommy Lee Bass)이다.
  • 빈스 닐 Vince Neil (보컬)
    타미 리와 함께 밴드의 악명이 떨치는 데 가장 기여한 인물(...) 마약과 술에 취한 상태로 핀란드의 글램메탈 밴드 Hanoi Rocks의 드러머 래즐을 옆자리에 태우고 운전하다 사고를 내 래즐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Hanoi Rocks를 그후 해체하게 된다.
    세바스찬 바하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고음 보컬이며 메탈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라이브에서 가사를 생략하고 앵앵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가사가 많고 빠른 DR. FEELGOOD을 부를 때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팬들의 반응은 주로 "지금 중국어로 노래하냐?" "빈스가 드디어 몽골어를 마스터했다!!!" 등등 조롱하기 일쑤다.
    몸 관리를 전혀 안 하는지 배가 남산만해 팬들로부터 빈스가 임신했다(?)는 의혹을 받기도하며[12] 몇몇 팬들은 진심으로 빈스 닐의 건강상태를 염려하기도 한다. 헌데 딴 데는 다 늙고 살까지 쪘는데 신기하게도(?) 목 관리는 잘된 편이라 젊은 시절 불렀던 노래들을 2019년 50이 넘은 나이에 한 키로 소화한다. 외적으론 훌륭하지만 애석하게도 락커로서의 생명은 다해보이는 본 조비와 완벽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머틀리 크루 해체 이후에도 자신의 밴드를 만들어 왕성히 활동 중이다.

4. 디스코그래피

4.1. 앨범

Too Fast for Love (1981)
Shout at the Devil (1983)
Theatre of Pain (1985)
Girls, Girls, Girls (1987)
Dr. Feelgood (1989)
Mötley Crüe (1994)[13]
Generation Swine (1997)[14]
New Tattoo (2000)[15]
Saints of Los Angeles (2008)

4.2. 싱글

1982
Live Wire
1983
Shout at the Devil
1984
Looks That Kill
Too Young to Fall in Love
1985
Smokin' in the Boys Room (빌보드 싱글 16위)
Home Sweet Home
1987
Girls, Girls, Girls (빌보드 싱글 12위)
Wild Side
You're All I Need
1989
Dr. Feelgood (빌보드 싱글 6위)
Kickstart My Heart (빌보드 싱글 27위)
1990
Without You (빌보드 싱글 8위)
Don't Go Away Mad (Just Go Away) (빌보드 싱글 19위)
Same Ol' Situation (S.O.S.)
1991
Primal Scream
Home Sweet Home '91
1994
Hooligan's Holiday
Misunderstood
1997
Afraid
Beauty
1998
Bitter Pill
1999
Teaser
2001
Hell on High Heels
2004
If I Die Tomorrow
2005
Sick Love Song
2008
Saints of Los Angeles

4.3. 미디어


1987년 발매 싱글 Girls, Girls, Girls. 그들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 할 수 있다.[16]


1989년 발매 싱글 Kickstart My Heart. 위에 언급한 기아 K5 광고 삽입곡이기도 하다.


1989년 발매 싱글 DR. FEELGOOD. 그들의 대표곡으로 꼽히며, 가장 많이 판매된 싱글이기도 하다. 그들만의 그루브감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어서, 웬만한 드러머들도 연주하기 까다롭다는 곡이기도 하다.


그들의 몇 안되는 발라드 곡 중 하나인 Home Sweet Home. 85년에 발매된 후 91년에 재발매되었다. 해당 앨범은 이 곡을 제외하고 전 곡이 금지곡이 되는 바람에 당시에는 국내 발매가 안 되었다.[17] 그런데 노래를 신청하면 방송에서는 틀어 줬다. 존 쿠삭이 주연한 1980년대로 타입 슬립하는 코미디 영화인 Hot Tub Time Machine의 엔딩이 이 곡인데, 위의 85년판 뮤직비디오를 편집해 만들었다. 주인공 세 친구 중 하나 루(Lou)가 니키 식스 포지션인 보컬로 나오며, 당연히 원래 뮤비의 다른 멤버들 연주 장면도 나온다.
https://youtu.be/lDJKsH1Uf4o [스포일러]


[1] 니키 식스와 믹 마스는 서로 머틀리 크루 하기 한참 전에 니키가 어떤 주점에서 알바할 때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손님으로 간 믹은 가게 점원이였던 니키에게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꼰대스러운 언동을 보였고 거기에 열받은 니키는 믹에게 욕설을 난무하였으나 믹은 의기양양하게 자기가 근처에서 공연을 하니 보러오든가라고 니키를 도발했다. 니키는 잔뜩 열받아서 꺼지라고 했지만 사실은 몰래 공연을 보러갔고 믹의 연주에 뻑가버렸다고 한다. 훗날 머틀리 크루 오디션을 통해 둘이 재회했을 땐 둘 다 서로에 대해 기억을 못하였으나 믹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폭소를 터뜨린 타미 리와는 달리 그의 연주를 들은 니키는 곧바로 타미에게 '우리가 찾던 게 바로 이 친구야!'라며 강추했다는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 니키와 믹은 음악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다. 훗날 니키가 존경의 의미로 자신의 허벅지에 믹의 얼굴을 문신하기도 했고.[2] The Dirt에서 이 장면을 아주 상세히 묘사하였다.[3] 여담으로 이 때 구급차를 불렀던 사람이 다름아닌 건즈 앤 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와 베이시스트 더프 맥케이건이었다고 한다. 덤으로, 니키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동안 상기했듯이 간호사가 아드레날린을, 그것도 심장에주사했지만 당시 니키의 마약 중독이 극한에 다다른 때여서 처음 했을 때는 살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간호사가 한 번 더 주사했더니 그 때 살아난 것(...)[4] Metallica의 라스 울리히가 이 앨범을 듣고 후에 밥 락을 영입하여 앨범을 준비한다.[5] 존 코라비는 기타리스트로서도 훌륭한 터라 빈스 닐과 다르게 기타와 보컬을 겸임하였다.[6] 그래도 다른 메탈 밴드의 상업적 몰락에 비하면 이 정도는 선방한 편.[7] 존 코라비는 Ratt의 기타리스트로 합류한다.[8] 여담으로 매드 맥스 개봉 전부터 니키 식스는 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쪽이 원조. 그리고 화염의 크기 부터가 두프 워리어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크고 아름답다.[9] Get Naked[10] 참여 뮤지션이 림프 비즈킷의 프레드 더스트에 릴 킴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엔 최정상을 누리고 있던 뮤지션들이었다.[11] 비디오 유출 당시 동영상 공개를 빌미로 협박을 당하자 인터넷에 무료로 풀기도 했다[12] 2015년 공연 영상에 달린 댓글 중 하나의 내용이 "빈스 임신 7개월 치고는 공연 괜찮게 하네(...)"였다.[13] 유일하게 빈스 닐이 아니라 존 코라비가 참여한 앨범이다. 믹 마스가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으로 꼽았다. 본인한텐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 격이라 한다. 앨범 자켓 디자인 타이틀에 움라우트가 빠진 채로 표기되어 있다.[14] 빈스 닐이 다시 복귀한 앨범. 존 코라비도 일부 코러스와 백킹 기타에 참여하였다. 중요한 건 앨범 순위는 높았으나 머틀리 크루 역사상 최고의 괴작으로 뽑힌다는 점..[15] 타미 리가 탈퇴하고 랜디 카스틸로가 드러머로 참여하였다.[16] 여담으로 박철이 SBS 파워FM에서 '2시 탈출'을 진행할 때 썼던 오프닝곡이었다.[17] 물론 해적판 LP(빽판)는 시중에 돌아다녔기에 팬들은 다 가지고 있었다.[스포일러] 영화 결말이 나오니 주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58초 이후부터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