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5 20:03:58

1950년대

연대구분
1940년대 1950년대 1960년대
세기구분
19세기 20세기 21세기
밀레니엄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1. 개요2. 문화
2.1. 음악2.2. 영화2.3. 방송
3.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4.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5. 이 시대의 상징6.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7. 1950년대생
7.1. 한국7.2. 해외
8. 195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개요

서기 1950년 ~ 1959년까지를 이르는 연대시기.
대한민국은 사실상 이승만 정권의 본격 1공시대가 한창 도래된 시점이라 볼 수 있다. 1940년대 전쟁과 피폐 등으로 격랑을 겪었던 시기라 이 때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 점차 경제부흥의 기미가 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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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1950년 ~1953년까지 6.25 전쟁으로 인해 연대 초부터 전쟁의 격랑과 시련을 겪게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3년 간의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화되었고 경제상황도 초토화된 상황이었으며 정치상황에 있어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따라 사실상 이승만의 견고한 집권체제가 굳혀졌고 이승만과 맞서는 야당 밎 재야계는 1955년 민주당 창당을 계기로 이승만과 자유당 집권의 대항마임을 표방하였다. 또한 여러가지 정치의 부정도 잦게 일어났던 연대이기도 하였다.

세계에서는 1955년 들어서 UN에 가입하게 되는 국가들이 늘어났으며 이들은 이 연대 들어서 국제사회의 일원임을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동서냉전이 어느 때보다 격화되었던 시기라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의 대립이 장기화되었으며 특히 미국소련 양대산맥 구도가 더욱 굳혀지기도 하였다.

사실상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연대라는 큰 의미를 지닌 연대이다 [1]

1957년 소련스푸트니크를 띄우면서 인류가 최초로 우주에 진출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2. 문화

2.1. 음악

영미권에선 1950년대 초반과 중후반경으로 주류 장르가 바뀌었는데 초반경에는 이전 시대인 40년대를 담습하여 스탠다드 팝, 스윙재즈계열의 중후한 기성장르들이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일종의 혈연관계라 할 수 있는 정통 블루스 뮤직과 스윙재즈 뮤직이 다시금 크로스오버하여 초창기 알앤비가 등장한것이 50년대 초반이다.

그 이후 50년대 중반경에 들어서 척 베리, 리틀 리차드와 같은 뮤지션들이 그루비한 알앤비와 백인들의 템포가 빠른 컨트리 뮤직을 섞어낸 '로커빌리' 장르를 개척해 활동했으며 로커빌리라는 장르는 '로큰롤'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로큰롤 시장을 주류로 끌어올린 장본인은 로큰롤의 황제라 불린 엘비스 프레슬리였고 엄청난 상업적 성공과 이를 통한 파급력으로 인해 50년대 중후반 영미권 음악계의 주류를 바꿔버린다.

2.2. 영화

2.3. 방송

3.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

4.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5. 이 시대의 상징

6.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7. 1950년대생

7.1. 한국

195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1950년 6월 중순 이전에 태어난 생을 제외하면 그 이후에는 6.25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태어난 세대들이었다. 세상을 보자마자 총포탄의 소리를 듣고 피난길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휴전 이후에는 가난함의 시련 속에서 성장하며 미군들이 주었던 스팸 햄캔이나 초콜릿 등을 받으며 어렵게 살아왔다. 다만 이전 세대인 1930, 40년대생들과는 다르게 한국전쟁 당시에 이제 태어났거나 혹은 태어나기도 전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전쟁 자체를 직접 경험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정확히는 전쟁 이후의 황폐화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세대.

10대로 성장하면서는 4.19 혁명도 겪었지만 1963년에 박정희 장기집권 정부가 들어서면서 20대가 되는 1970년대까지 박정희 정부의 시절 속에서 살아야했었다. 30대가 된 이후에는 제5공화국인 전두환 정부 시기를 보냈었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40대 때 'IMF의 희생양으로 명퇴를 당했던 세대들이기도 하다.

박사모, 엄마부대 등에서도 이들은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젊은 시절을 대부분 박정희 시절에서 보내고 자랐던 영향으로 이들 일부는 젊은 시절 박정희의 개발화에 영감을 받아 박정희에 대한 충성심과 존경심도 많다. 10대 때 미군들이 주었던 햄캔이나 과자, 사탕 등을 받으며 먹어야 했고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을 경험하였다가 20대에 가서야 박정희의 개발정책에 변화를 느끼며 어린 시절 가난을 해소해준 분이 박정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과 애착이 높은 편이다.

3당합당을 거치며 보수성향으로 돌아서서 김영삼에게 표를 주었으며 이후에도 이회창에게도 많이 표를 주었다. 하지만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이 DJP연합을 할 때는 50년대생 역시 김대중에게 표를 상당히 던졌고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이 충청권 수도 공약 등을 할 때는 50년대생들 중 충청권 출신들이 노무현에게 상당한 표를 던졌다. 이 때만 해도 50년대생들의 보수성향이 확고하지는 않았으나 민주정부가 친북 정책을 펴고 경제정책에서 실패하자 완전히 보수성향으로 돌아서서 17대 대선18대 대선에서는 이명박박근혜에게 상당한 몰표를 주었고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가 1위를 하는 등 결국 보수성향이 확고해졌다.

미국에 대한 존경심도 높은 편인데 유년기 및 10대 시절 전쟁의 피폐 속에서 주한미군 병사들이 나눠주었던 미국산 과자나 사탕, 햄이나 통조림 등을 받아가면서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은혜로움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들중엔 반미도 있다.

3, 40년대생 만큼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주역들이었다. 1970년대 경제개발화가 되어가는 시절에 대부분 노동을 통해서 산업의 역군으로 기여하였던 마지막 세대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연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대체로 형제수가 5~6명이 대다수이며, 그들의 자녀는 2명을 웃돌고 있는 경우가 다수이다. 근래에는 손주를 본 이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남자 한정으로[9] 아주 극소수는 늦둥이를 본 이들도 있다. 즉, 예순둥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전직 개그맨 서세원과 전직 건축가 이창하가 있다.

지금은 탄핵박근혜(1952년생)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인 문재인(1953년생) 대통령도 이 시기 출생자이다.

연예계에서는 안성기(1952년생), 이덕화(1952년생), 유인촌(1951년생), 태진아(1953년생), 조용필(1950년생), 이수만(1952년생)이 이 연대에 태어났으며, 이슈인 중에서도 조양은(1950년생), 서세원(1956년생), 이창하(1956년생), 그리고 최순실(1956년생) 등도 이 연대에 태어났다.

정치인 및 관료의 경우는 박원순, 노회찬, 심상정, 이낙연, 이정현, 정갑윤, 심재철, 이해찬, 민병두, 정우택, 유승민, 유재중, 서병수, 김정훈, 김기현, 노영민, 조원진, 홍준표, 이우현, 정병국, 이채익, 이주영, 김무성, 정몽준, 최욱철, 김영한, 황교안, 유일호, 권영세, 김문수 등이 있다.

주로 이들이 정치에 진출한 시기는 13대 국회 때이다. 그리고 14대 국회 때 정치에 진출을 많이 하기 시작해서 15대 국회 때 꽃을 피우더니 16대 국회 때는 부조력자가 되고 17대 국회 때는 조력자가 되었다가 18대 국회 때는 다시 주도권을 쥐었다. 19대 국회 때에도 역시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나 20대 국회가 되면서 나이가 들어가며 다시 정치의 조력자로 내려가게 된다.

관료들의 경우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때 고시에 합격하고 노태우 정부 때 관료계에 진출하여 김영삼 정부 때 성장을 시작, 김대중 정부 때는 꽃을 피우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부조력자와 조력자를 거쳐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 주도세력을 유지하다가 점차 퇴임을 하기 시작하고 문재인 정부 이후에는 50년대생 관료들이 대부분 퇴임을 하는 시기에 이르게 된다.

7.2. 해외

일본에서는 이때부터 '정치에 둔감한 세대'로 불리기 시작하며, 이들이 청소년기 될 즈음인 1968년 도쿄대 야스다 강당 사태나 1972년 아사마 산장 사건까지 운동권이 쇠퇴했고, 관심사도 서브컬처 등 내성적인 쪽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1954년생까지를 '시라케 세대', 1955년생부터를 '신인류'라 칭한다. 시라케 세대는 후대에 무언가를 의탁하지 않으려고 하며, 오시이 마모루 같은 애니 제작자의 경우 자신만의 세계관에 구애받으려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1955년생 이후 신인류 세대는 '피터팬 세대'라 불릴 정도로 어린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유지하며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1970년대 초 아이돌 그룹 '캔디즈'의 주 팬층이 바로 이 세대였다.

8. 195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물론, 이는 정부 등의 공공 기관 등에 한정된 얘기이고,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것은 1980년대까지 가야 한다.[2] 당연히 6.25 전쟁 때문.[3] 배추김치가 널리 퍼진건 우장춘 박사의 공이다. 자세한 것은 우장춘 항목 참조.[4] 배추김치가 이때부터 퍼진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먹는 배추 품종이 이 시기에 나온 것이다. 배추김치 자체는 조선시대 후기에도 있었고 김치의 원형은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다.[5] 1956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TV방송국인 HLKZ-TV가 개국했다. 다만 이 당시에 TV방송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라디오조차도 대중화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던데다가 서울에서만 송출되었기 때문에 TV는 철저하게 서울 시내 부유층들의 전유물이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TV있으면 부유층이라는 등식이 지배적이었다.[6] 6.25가 끝난 후 8월 종파사건으로 박헌영 등 반대세력을 모조리 날려버렸다.[7] 메인스토리.[8] 배경은 1편 기준으로 2161년의 먼 미래지만 1950년대 스타일의 미래다.[9] 여자는 50세가 되면 폐경으로 인해 임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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