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3 23:16:08

단군기원

檀君紀元

1. 개요2. 단기 원년의 진실3. 현실의 용례4. 환산방법
4.1. 서기→단기4.2. 단기→서기

1. 개요

2019년은 단기 4352년.
대한민국에서 한때 쓰던 연호. 단군원호(檀君元號)라고도 한다. 단군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2333년[1]을 단기 1년으로 헤아리는 방법이다. 서기 연도에 2333년을 더하면 단기가 된다.[2] 반대로 단기 연도(2334 이상)를 서기 연도로 바꿀 때는 단기 연도에 2333을 빼면 된다.

2. 단기 원년의 진실

세간에는 기원전 2333년이 단군 즉위년도인 듯 착각하기 쉽게 알려졌지만, 국사 교과서에서도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진짜 사실이라고는 절대 명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단기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도 다행스럽게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단기와 비슷하게 일본에서 진무 덴노의 즉위기원을 근거로 한 황기(皇紀) 역시, 진무 덴노가 실존인물이 아닌 신화 속 인물이라는 점에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애당초 고대의 기년법이란 이렇게 국가의 정통성을 위해 끼워맞춘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하다.

심지어 우리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서기(서력기원)도 역사적으로 정확하지는 않다. 예수가 태어난 해를 나름대로 추정한 것이지만, 현대 역사학자들은 그 추정이 몇 년 정도 오차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서기가 서구권의 종교문화를 나타내듯 단기는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문명이 중국 등 외국과 다른 독자 문명이면서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각자 다르게 이어졌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기독교 신자들에게 서기가 (예수가 태어난 실제 연도와 몇 년쯤 차이가 나도) 의의가 있듯이 단기 또한 한민족의 상징적인 시점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

3. 현실의 용례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시절인 1362년, 백문보(白文寶)가 처음으로 단기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이때 백문보는 당시(1362년)가 단군으로부터 3600년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백문보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백문보의 단기는 기원전 2239년(임인년), 또는 기원전 2238년(계묘년)이 원년이므로 동국통감에 기반한 기원전 2333년(무진년) 기준 단기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백문보의 주장은 논의만 됐을 뿐 채택되지는 않았다. 일단 당시 고려가 중국의 연호를 쓰고 있었기에 독자 연호를 쓰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고, 당대에 쓰이던 연호들은 몇 년마다(길어도 수십 년마다) 바꾸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연도가 천 단위로 쓰이는 단군기원을 채택하기엔 많은 사람들에게 버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유럽이 사용했던 로마건국기원(AUC)은 서력기원이 대중화될 무렵에는 이미 천 단위가 넘었고, 서력기원 역시 대중화될 역시 천 단위를 넘었으므로 백 단위를 넘는 연호가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 후 오랫동안 묻혔다가 1909년에 홍암 나철이 창교한 대종교에서 단기 사용을 적극 주장하여 다시 발굴됐다. 이후 꼭 대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민족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종종 단기를 몰래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일본 연호를 따라 썼기 때문이다. 이후 대종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만주에서의 무오독립선언서에 '檀君紀元(단군기원)'이라는 명칭으로 단기가 사용되었으며, 역시 이 영향을 받아 3·1 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에도 '朝鮮建國(조선건국)'이라는 명칭으로 단기를 사용하여 연도를 표기하였다. 다만,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측에서는 수립 당시부터 단기 대신 3·1 독립선언을 한 1919년을 원년으로 하여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였다.

1948년, 즉 단기 4281년, 제헌 국회에서 새 정부의 연호로 단기를 채택하여 처음으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단기를 사용하였다. 이때 이승만을 포함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신 정치인들은 3.1 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을 1년으로 헤아리는 대한민국 연호[3]를 쓰자고 주장한 반면,[4] 국회의원들은 단기 연호를 쓰자고 하였다. 대한민국 연호는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연호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단기를 새 나라의 연호로 채택했다. 이 시기 법률문서나 반민특위 관련 문서 등에서 단기로 연도를 적었음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때는 호적 기록도 죄다 단기로 적었다. 당시엔 단기를 쓰는 게 당연했으므로 굳이 그 연도 표기가 단기라고 명시하지 않고 숫자만 적은 경우도 많다. 지금 서기에 따른 연도 표기를 할 때 서기라고 굳이 명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쌍팔년도라는 단어가 원래는 서기 1988년이 아니라 단기 4288년, 즉 서기 1955년을 의미했다.

1961년 12월,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있는 동안 연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1962년(단기 4295년)부터 단기를 폐지하고 서기를 채택하기로 하여 현재에 이른다. 공문서 등 공식적인 문서에서는 서기만 사용하지만, 민간에서는 단기를 함께 쓰는 경우도 나름대로 있다. 예를 들어 불교 달력에 서기와 함께 불기와 단기를 병용하거나, 신문 날짜란에 서기와 같이 쓰는 식.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졸업앨범 등에 서기와 병기하여 쓰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옛날 건물을 복원할 때 대들보에 이것을 써넣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옛날식(?)으로 하고자 하는 것 같다.

환빠들은 환단고기의 기록을 근거로 환국기원, 신시개천이라는 가짜 연호를 단기와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Microsoft Windows도 단기 달력을 볼 수 있다.

4. 환산방법

4.1. 서기→단기

기원후
서기연도 + 2333 = 단기연도.

기원전
2334 + 서기연도 = 단기연도.

4.2. 단기→서기

단기 2334년 이후
서기연도 = 단기연도 - 2333.

단기 2333년 이전
서기연도 = 기원전(2334 - 단기연도).


[1]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하는 연도는 기록에 따라 다르다. 기원전 2333년은 조선 때 서거정이 쓴 동국통감에서 처음 주장하였다.[2] 단, 서기에는 0년이 없기 때문에 기원전을 단기로 헤아릴 때는 2334를 더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천문학계에서는 기원전까지 헤아릴 때 기원전 1년을 0년으로, 기원전 2년을 -1년으로 간주하고 계산한다.[3] 김구백범일지와 같은 임정 요인들의 기록물에서 '대한민국 XX년'이라는 식으로 자주 쓰였다.[4] 이에 따라 1948년은 대한민국 30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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