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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504년 갑자사화로 인한 제명, 1506년 중종 때 복권 2 1482년 성종의 인신을 위조해 남의 재산을 탈취한 혐의로 인한 제명 3 1504년 조카 이세좌와의 연좌로 인한 제명, 1511년 중종 때 복권 | ||||
徐居正(1420~1488)
1. 개요
조선 전기의 훈구파 문신. 15세기 관학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시인 겸 문장가로 꼽힌다. 호는 사가정(四佳亭).[1]2. 생애
수양대군의 오른팔 중 1명[2][3]으로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후 당시 사명(辭命: 왕명을 전달하는 외교 문서)의 대부분을 전담한 인물이다. 세조 때에는 공조참의ㆍ예조참의ㆍ이조참의ㆍ형조참판ㆍ예조참판ㆍ형조판서ㆍ성균관지사ㆍ예문관대제학 등 주요 관직을 연이어 제수하기도 하였다.주요 저서로는 《경국대전(經國大典)》,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동문선(東文選)》, 《동국통감(東國通鑑)》, 《오행총괄(五行摠括)》, 《동인시화(東人詩話)》,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필원잡기(筆苑雜記)》, 《사가집(四佳集)》, 《역대연표(歷代年表)》, 《연주시격언해(聯珠詩格言解)》, 《동인시문(東人詩文)》, 《향약집성방언해(鄕藥集成方言解)》, 《마의서(馬醫書)》, 《유합(類合)》 등이 있다. 그 외에 한국 최초의 족보인 안동 권씨 《성화보(成化譜)》를 완성하여 간행하기도 했다.
법전ㆍ역사ㆍ지리ㆍ문학 등의 분야에 걸쳐서 활약했다고 할 수 있다. 서거정의 역사 의식은 당대 정치권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데 먼저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동국통감(東國通鑑)』에 실린 서거정의 서문과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세력이 서로 대등하다는 이른바 삼국균적(三國均敵)을 내세웠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의 서문에서는 한국이 단군(檀君)이 조국(肇國: 처음 나라를 세움)하고 기자(箕子)가 수봉(受封: 봉토를 받음)한 이래로 삼국·고려시대에 넓은 강역을 차지했음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러한 영토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 전통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의 『방여승람(方輿勝覽)』이나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와 맞먹는 한국 독자적 지리지로서 편찬하였음을 내세웠다. 『동문선(東文選)』에서는 중국과 다른 한국의 한문학의 독자성을 내세우면서 한국의 역대 한문학의 정수를 담았음을 표방했다.
서거정이 주동해 편찬된 사서·지리지·문학서 등은 전반적으로 조선의 독자성과 위대함을 알리는 쪽에 치중하였으나 훗날 성종의 왕명에 따라 사림파 인사의 참여하에 내용들이 개찬되었다. 많은 문화적 업적을 남겼지만 말년에는 대거 등용된 사림들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화합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성종 대에 등용된 사림들이 작성한 실록에는 부정적인 소인배로 묘사되었다.
조정에서는 가장 선진(先進)인데, 명망이 자기보다 뒤에 있는 자가 종종 정승의 자리에 뛰어 오르면, 서거정이 치우친 마음이 없지 아니하였다. 서거정에게 명하여 후생(後生)들과 더불어 같이 시문(詩文)을 지어 올리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서거정이 불평해 말하기를,
"내가 비록 자격이 없을지라도 사문(斯文)의 맹주(盟主)로 있은 지 30여 년인데, 입에 젖내나는 소생(小生)과 더불어 재주를 겨루기를 마음으로 달게 여기겠는가? 조정이 여기에 체통을 잃었다."
하였다. 서거정은 그릇이 좁아서 사람을 용납하는 양(量)이 없고, 또 일찍이 후생을 장려해 기른 것이 없으니, 세상에서 이로써 작게 여겼다.
성종실록 성종 19년(1488) 12월 24일자 3번째 기사#
15세기 훈구파가 점차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16세기 사림파의 시대가 열리는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구라고 할 수 있다. 1488년 향년 69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 때 ‘문충(文忠)’이란 시호를 받았다."내가 비록 자격이 없을지라도 사문(斯文)의 맹주(盟主)로 있은 지 30여 년인데, 입에 젖내나는 소생(小生)과 더불어 재주를 겨루기를 마음으로 달게 여기겠는가? 조정이 여기에 체통을 잃었다."
하였다. 서거정은 그릇이 좁아서 사람을 용납하는 양(量)이 없고, 또 일찍이 후생을 장려해 기른 것이 없으니, 세상에서 이로써 작게 여겼다.
성종실록 성종 19년(1488) 12월 24일자 3번째 기사#
3. 애묘가
1477년 성종의 오해로 파직당했을 때,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오원자'가 병아리를 노리는 줄 착각했다가 알고보니 사실 쥐를 노리는 것임을 깨달았는데, 이때 오해를 당한 고양이의 처지가 자신의 처지와 같음을 느끼며 시를 지어 이후 관직에 복귀했다는 일화가 있다.출처: 역사툰 / 출처: 인스타@zzgoro4.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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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화, 대나무, 연꽃, 해당화를 심고 정자를 지었으며 서울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은 바로 여기서 유래하였다.[2] 김시습도 신숙주를 변절자라고 길거리에서 욕함에도 신숙주가 뭐라고 못하고 그냥 서둘러 가도록 한 거와 달리 서거정은 배신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서거정은 과거 급제 이전인 20대 초부터 수양대군과 친하게 지내고 수양대군과 같이 24살에 명나라로 다녀오는 비서직을 맡았을 정도로 처음부터 수양대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명나라로 가던 길에 서거정은 갑자기 깨어나 울었는데 놀란 수양대군이 왜 그러냐고 하자 "꿈에 갑자기 달이 구름에 가려졌사옵니다. 달은 어머니를 뜻하는데 이런 것은 어머니에게 안 좋은 일이 있는게 틀림없사옵니다!"라고 간청하여 수양대군이 허락해 조선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갑작스런 병으로 별세하여 장례에 참가했다는 야사도 있다.[3] 서거정이 길을 가는데 김시습이 비아냥거린 야사도 있다. 하지만, 서거정도 질소냐? 라는 듯이 멈춰서서 말로 대꾸하여 한참을 서로 디스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둘 다 서로를 입으로 못 이긴다고 인정하고 가던 길을 가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