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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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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꽃을 위한 서시」

다늅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딩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쏘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바숴진 네 두부는 소스라쳐 삼십보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남자와 여자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발바닥만 젖어 있었다고 한다.
-「눈물」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조금 전까지는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이 사람이 어디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뼘 두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치 앞을 못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수가 없다고,
-「강우」

1. 개요2. 생애3. 여담

金春洙 (1922~2004)

1. 개요

대한민국시인. 존재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다룬 시로 유명하다.

2. 생애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충무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 예술학부에서 공부했으나, 1942년에 천황조선총독부를 비판하여 1943년에 퇴학당했다. 1946년에 귀국하여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1946년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 이 때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교단에 들어선 그는 1964년부터 1978년까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남대학교의 문리대 학장을 지내다가 1981년에 정계로 들어오며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동한다.

1948년 첫 시집인 <구름과 장미> 출간을 시작으로 시 <산악(山嶽)>, <사(蛇)>, <기(旗)>, <모나리자에게>, <꽃>, <꽃을 위한 서시> 등을 발표하였다. 다른 시집으로는 <늪>,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處容)>, <남천>, <비에 젖은 달> 등이 있다.

1958년에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에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한편 흑역사도 있는데, 1981년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1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방송심의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제5공화국에 대한 친군부 행위다. 등단 이후 시에 정치적 견해나 현실을 잘 드러내지 않고, 허무주의에 기반을 둔 인간의 실존과 존재를 노래했던 시인으로서는 실망스러운 행보였다. 전두환 대통령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시를 지었다가 지금도 까이고 있는 서정주처럼[1] 김춘수도 전두환을 찬양하는 헌정시를 지었다. # KBS 영상[2]
님이시여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

님이 태어나신 곳은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내동 마을
한반도의 등줄기 소백의 긴 매 뿌리 뻗어내려 후미지고 아늑한 분지를 이룬 곳
천구백삼십년대의 어느 날 님의 일가는 일본 제국주의의 그 악마의 등살을 견디다 못해 정든 땅
이웃을 버리고 머나먼 남의 땅 만주벌판으로 내쫓기는 사람들처럼 억울하게 억울하게 떠나가야만 했으니

그 때 가족들의 간장에 맺힌 한과 분은 아직도 여리고 어린 님의
두 눈과 폐부에 너무도 생생하게 너무도 깊이깊이 박히었을 것입니다

님이 헌헌장부로 자라 마침내 군인이 된 것은 그것은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천구백칠십구년 가을에서 팔십년 사이 이 땅 이 겨레는 더할 나위 없는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우선 그것부터 끄고 봐야하듯이 우선 치안을 바로잡고
우선 인심을 안정시키고 우선 경제의 헝클어진 운행을 궤도위에 올려놓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해내기 위하여 천구백팔십일년 새 봄을 맞아 마침내
제 5공화국이 탄생하고 님은 그 방향을 트는 가장 핵심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님께서 단임으로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천한 일 그것입니다
건국 이래 가장 빛나는 기념비적 쾌거라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님은 선구자요 개척자가 되었습니다

그 자리 물러남으로 이제 님은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
님이시여 하늘을 우러러 만수무강 하소서
쓸데없이 길다
북쪽이랑 다를게 뭐냐

이러한 친군부 행위는 <꽃> 등으로 단순히 김춘수를 서정시인 및 순수시인그리고 난해시인으로만 알고 있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고교 문학 시간에도 이 행적을 언급하는 교사들도 있긴 하다.) 다만 김춘수 본인은 이 시기를 두고, “한 마디로 100%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처량한 몰골로 외톨이가 되어,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쩔 줄 모르고 보낸 세월”이라 회고했다고 전해진다. 출처. 고로 판단은 위키러 개인에게 맡겨 둔다.

2004년 8월, 기도폐색으로 쓰러져 호흡곤란으로 인한 뇌 손상을 입어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했지만, 2004년 11월 29일 아침 9시에 83세로 별세했다.

3. 여담

  •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시 <>과 200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문학파트 중 시 지문에 <내가 만난 이중섭>이 수록되어서, 학생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시인이다. <> 자체도 연시(戀詩)처럼 보일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이라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김춘수의 시풍은 사물의 본질과 인간의 실존, 존재의 세계 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 경북대학교 정문과 학생주차장 사이에 조성되어 있는 KNU 센트럴 파크에 그의 대표작인 "꽃"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3]
  • 2004년 11월 11일에는 제 19회 소월시문학상 특별상으로 받은 상금 30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1] 물론 서정주는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전적이 참으로 화려해서(...) 이 방면으로는 독보적으로 까이고 있지만.[2] 1988년 2월에 있었던 퇴임 만찬 때 낭독되었던 시다. 공식 석상임에도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담배를 꼬나무는 전두환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만 이 당시 흡연 및 금연 문화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은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시외버스에서의 흡연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나,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버젓이 버스 의자에 재떨이가 존재했었다. 당시에는 흡연이 타인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영상을 잘 보면, 객석에서도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3] KNU 센트럴 파크에는 "킹 메이커"라는 별명을 얻은 정치인으로 유명한 김윤환의 시비도 있다. 참고로 김윤환은 영문과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