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11 10:18:13

이근삼

<colbgcolor=darkslategray><colcolor=#fff> 이근삼
李根三
파일:이근삼.jpg
출생 1929년 6월 27일
평안남도 평양부 대찰리 145
(현 평양시 중구역 중성동)
사망 2003년 11월 28일 (향년 74세)
학력 평양사범학교
동국대학교 (영문학 / 학사)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대학원 (연극학 / 석사)
경력 동국대학교 교수
중앙대학교 교수
서강대학교 교수
1. 개요2. 생애3. 작품 활동 및 평가4. 여담5. 가족6.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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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작가, 극작가, 교수.

2. 생애

1929년 평안남도 평양부 대찰리 145번지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평양 종로소학교를 거쳐 평양사범학교에 진학했으나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으로 촉발된 반공운동에 참여했다가 탄압을 피해 1946년 월남했다.

1947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문과에 편입, 1952년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6.25 전쟁 중에는 통역장교로 복무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영어를 가르쳤다. 1955년 동국대학교 영문과에 교수로 부임했다. 이듬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여 연극이론과 희곡창작을 공부하고 1959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하여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극영화과 창설에 관여했다.

1962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옮겼고, 1969년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로 이직했다. 서강대에서 정년퇴직하였고 2003년 11월 28일 사망했다.

한국펜클럽본부 부회장을 역임했다.

3. 작품 활동 및 평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유학 시절 영어로 쓴 첫 희곡 '끝없는 실마리'와 '다리 밑에서'가 노스캐롤라이나 극단에서 공연되었다.

1960년 사상계에 발표한 '원고지'를 시작으로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거룩한 직업' '위대한 실종' '국물 있사옵니다' '유랑극단' '데모스테스의 재판' '30일간의 야유회' '아벨만의 재판' '게사니' '향교의 손님' '막차 탄 동기동창' '이성계의 부동산'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사실주의극 중심을 이루던 연극계에 풍자성을 강조한 희극 형식을 시도하고 서사적 기법을 도입했다. 비상식적인 인물과 소극적 요소를 도입하여 연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특유의 풍자와 해학, 패러디를 통해 사회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현재인의 위선적인 삶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무엇보다 상투적이고 통념화한 연극의 시공간을 깨뜨리고 새로운 연극공간을 확장시켜 연극에 시간의 개념을 확대했으며 서사적 수법, 우화적 수법, 표현주의적 수법, 극적인 아이러니의 수법, 소극적 수법, 음악적 요소, 시적 분위기 등 극적인 제시의 방법을 도입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때문에 한국 부조리극의 효시로 꼽히는 희곡 작가다.

4. 여담

  • 김수미에게 배우를 하라고 권유한 장본인이다. 이후 라디오스타에서 김수미가 언급한다.[1]#

5. 가족

  • 부인 홍인숙(洪仁淑)
    • 장녀 이유리(李惟悧)
    • 차녀 이유원(李惟媛)
    • 3녀 이유정(李惟貞)

6. 수상



[1] 영상 8분 19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