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14:13:14

김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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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 로고 화이트.svg 공채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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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서울중앙방송(現 한국방송공사) 탤런트
1기(1961) <colbgcolor=#ffffff,#1c1d1f>김혜자 · 박병호 · 박주아 · 양영준 · 정혜선 · 최길호 · 최정훈 · 태현실
2기(1962) 강부자 · 박규채 · 여운계 · 이묵원
3기(1963) 김민자 · 김상순 · 박근형
4기(1964) 곽경환 · 김진해 · 남일우 · 반효정 · 이일웅 · 장욱제
5기(1965) 남정임 · 백일섭 · 이신재 · 이정길 · 하명중
6기(1966) 김봉근 · 남능미 · 문오장 · 민지환
7기(1967) 김용건 · 이대근
8기(1969) 기정수 · 김병기 · 김윤경 · 김창봉 · 맹호림 · 민욱 · 윤덕용유연우
9기(1970) 김진구 · 백윤식 · 이춘식 · 이원종 · 이진숙 · 이현두 · 장학수 · 장항선 · 황범식
10기(1971) 박혜숙 · 한혜숙
한국방송공사 탤런트
1기(1973) 하미혜
3기(1976) 이한수 · 임혁
4기(1977) 서영진 · 양재성 · 유순철
5기(1978) 권기선 · 정애리
6기(1979) 김미숙 · 선우은숙 · 이덕희
7기(1980) 김선화 · 이미경 · 임혁주 · 정종준
8기(1981) 권재희 · 김현주 · 안문숙 · 장희수 · 조용원 · 주용만
9기(1982) 원석연 · 윤승원 · 이원발 · 이종남 · 이청 · 이화영 · 정복임
10기(1983) 김선영 · 김영배 · 손영춘 · 안승훈 · 양미경 · 이경영 · 이한위 · 이효정 · 장정희 · 최석구 · 최재성 · 한경선
11기(1985) 김일우 · 박진성 · 윤영주 · 정하완 · 차기환 · 한혜진
12기(1987) 이영재 · 이주경 · 최수지 · 황덕재
13기(1989) 권혁호 · 김형일 · 박은영 · 변영훈 · 정재은 · 조재현 · 지경원· 지수원 · 진희진 · 홍륜의 · 홍일권
14기(1991) 강민석 · 곽근아 · 권병준 · 김덕현 · 김선애 · 김성희 · 김정균 · 김정난 · 김하균 · 김호진 · 노현희 · 배도환 · 손현주 · 손호균 · 오성열 · 윤아 · 윤진호 · 이병헌 · 이지형 · 임성민 · 조하나 · 최정원 · 함석훈 · 황준원
15기(1993) 강신조 · 김경응 · 김광영 · 김미라 · 김용준 · 김원배 · 김태형 · 박민아 · 박유승 · 박윤선 · 배윤진 · 손종범 · 신소민 · 오지영 · 이주화 · 임호 · 조민희
16기(1994) 김서형 · 성지은 · 윤손하 · 이병욱 · 이윤수
17기(1995) 김광필 · 박상아 · 박현정 · 송윤아 · 이형철 · 정의갑 · 정혜정 · 차태현 · 최재원 · 하다솜
18기(1996) 강경헌 · 김애란 · 김태우 · 박선영 · 신소미 · 안신우 · 유지연 · 윤지숙 · 은세연 · 이상인 · 이주현
19기(1997) 강성진 · 강양화 · 강우경 · 고세원 · 구자미 · 권이지 · 박상욱 · 박정철 · 배민희 · 서동수 · 서윤재 · 이은주 · 이칸희 · 황은하
20기(2003) 고규필 · 김하은 · 신동욱 · 이지훈 · 정겨운 · 정경호 · 지현우
21기(2008) 가득희 · 김예랑 · 김은유 · 이재우 · 지주연 · 최윤영
}}} †: 사망한 탤런트
※ 특채 탤런트, TBC 공채 탤런트는 제외
※ 나무위키 등재 인물만 기입}}}}}} ||
<colbgcolor=#544A4B><colcolor=#fff> 김혜자
金惠子|Kim Hye-ja
파일:52954-508301-sample.jpg
출생 1941년 9월 15일[1] ([age(1941-09-15)]세)
경기도 경성부 회현정
(現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경기여자중학교 (졸업)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생활미술과 / 중퇴)
신체 A형
가족 아버지 김용택[2](1907-1984), 어머니 윤원중(1905-?)
배우자 임종찬(1930-1998[3])
아들 임현식(1964년생)[4][5], 임고은(1970년생)
종교 개신교(예장통합)[6]
데뷔 1961년 KBS 1기 공채 탤런트 (데뷔 [age(1961-01-01)]년차)
취미 골프, 조깅

1. 개요2. 평가 및 위상3. 생애4. 커리어5. 봉사 활동6. 개인사7. 김혜자 도시락8. 출연작
8.1. 드라마8.2. 영화8.3. 연극8.4. 방송8.5. 광고8.6. 뮤직비디오
9. 저서10. 수상 경력
10.1. 이색적 수상 기록10.2. 주요 선정 기록
11. 사건 사고12. 여담
12.1. 김수미와의 관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배우.

2. 평가 및 위상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드라마와 영화 타이트롤 자리를 지켜 내고 있는 몇 안되는 국민배우이자 대배우이다. 특유의 독특한 화술과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드는 신비한 매력을 갖은 인상적인 눈빛, 뛰어난 작품 분석력으로 매 작품마다 탁월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작품 선택 역시 신중하면서 잘 하기로도 유명하다. 그 세대 배우들 중 이미 젊은 시절부터 주연 자리를 도맡아왔고 여전히 그 자리를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에서 나오는 아우라와 연기력 하나로 굳건히 지키고 있다. 드라마 전원일기의 인자한 어머니부터 영화 마더의 기괴한 어머니까지 연기적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은 배우이다. 수많은 대한민국 여배우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배우이다.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를 받은 최초의 배우이다.

3. 생애

1941년 9월 15일(음력 7월 24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0월 25일은 주민등록상 생일이다.

1960~70년대 TV방송 초기 때부터 왕성히 활동했다.[7] 현재까지 고령의 나이에도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애잔하면서도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전 세대에 걸친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1941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지만 1961년 KBS 1기 탤런트 연수를 마치기 전에 결혼하면서 학교를 중퇴했다.[8] 1969년 개구리 남편 출연 이후로는 수십 년 동안 최불암과 부부로 출연한 작품이 많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불암과 부부 기믹으로 엮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느릿한 말투가 특징이다.

그 덕택에 최불암 시리즈에서 최불암과 엮이는 일이 많다. 한창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할 무렵에 진짜 김혜자와 최불암이 부부인 줄 알았다는 국딩들도 많았던 것 같다.[9] 부부로 같이 출연한 것이 30년은 족히 되기에 당대의 학생들 뿐만 아니라 아줌마나 할머니들도 많이 오해하기도 했다. 실제 최불암의 부인은 탤런트 김민자다. 정작 둘은 남남인데도 전부 자로 끝나서 그런지 김민자도 김혜자와 친자매라는 소문이 돌았다.

CJ제일제당 계열사 관련 광고에 주로 출연해왔다. 한창 제일제당 광고에 나올 당시 제일제당은 김혜자를 단순한 CF 모델이 아닌 전무급으로 대우했으며, 김혜자도 20년 넘게 의리를 지켰다.

4. 커리어

1961년 KBS에서 뽑은 한국 최초 공채 TV탤런트 26명 중 1명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데뷔 직후 졸업 연수 작품을 찍은 직후 스스로의 연기력에 실망한 후 잠시 동안 배우를 그만뒀다. 이와 관련해 김혜자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만 컸지 연기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 도망친 것이라고 말했다.[10]

그 뒤 결혼 후, 한 가정의 어머니로 살던 도중 27세의 나이에 다시 연기에 대한 갈망을 느꼈고, 3년간 연극 무대서 ‘연극계 신데렐라’로 살아왔다.[11] 이후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1969년 TV방송을 개국한 MBC에 전격 스카웃되어 본격적인 TV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그래서 20대에는 TV 출연작이 많지 않다. 이후 MBC 드라마 개구리 남편, 강변살자, 학부인, 강남가족, 갈대, 신부일기, 여고동창생, 후회합니다, 당신, 행복을 팝니다 등의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MBC의 간판 스타이자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알렸고 다수의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하면서 톱배우의 반열[12]에 올랐다.

1974년 MBC 제1회 탤런트 연기상에서 김혜자는 최불암과 나란히 최우수 연기상(강남가족)을 수상하였으며 1975년 출연한 신부일기로 제3회 대한민국 방송상 시상식에서 TV 연기상과 제10회 방송윤리위원회상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부문 연기상, 1976년 제12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연기상을 수상했다. 이어 1977년 당신으로 1978년 제14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자상과 MBC 방송연기상 TV 부문 여자 주연상을, 이듬해 행복을 팝니다로 1979년 제1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차지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1975년부터 2002년까지 CJ제일제당 전속 모델로 27년 동안 활동한 이력은 전원일기 출연과 더불어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한 데 일조했다. 당시 제일제당의 대표 브랜드였던 다시다 광고 속에서 외쳤던 “그래 이맛이야”는 지금도 회자되는 대표 유행어이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간 방영된 MBC 전원일기 속 어머니 역으로의 출연을 계기로 ‘한국의 어머니’, ‘국민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최초의 여배우가 되었다. 이 작품에 출연하는 중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많이 선보였지만 이미지가 ‘인자한 한국형 엄마’로 고정되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으니 대표작임과 동시에 족쇄와 같은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1년에는 영화로 진출하여 스크린 데뷔작인 김수용 감독의 만추로 1983년 제2회 마닐라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1988년 방영한 김수현 극본의 드라마 모래성에서는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지 못하고 이혼을 선언하는 중년의 중산층 주부 '현주' 역으로 열연을 펼쳐 드라마가 신드롬[13]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고, 공채 탤런트 데뷔 이래 첫 방송사 연기대상(MBC)을 거머쥐었다. 1989년에는 겨울안개에서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과 자궁암 판정으로 시한부가 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여인 '명애' 역으로 다시 한 번 찬사를 받으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두 번째 수상한다(모래성과 공동). 이 시기를 김혜자의 연기이력에서 전성기로 볼 수 있으며 YouTube 등에서 찾아지는 편집영상으로도 그 엄청난 연기력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 황인뢰 감독 연출, 김희애, 하희라와 공연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출연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하고, 김수현의 극본으로 1991-92년 방영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가부장적인 남편 옆에서 기죽어 사는 그 시대의 엄마이자 아내 '순자' 역으로 출연하여 역대 최고의 시청률[14]을 기록하고 드라마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또 한 번의 연기대상(MBC)을 수상하였다. 1993년에는 고현정, 고소영 등과 함께 엄마의 바다(MBC)에 출연하여 인기를 이어갔고, 94년에는 KBS[15]에서 제작한 24부작 대하드라마 '인간의 땅'에서 농장 주인으로 출연한 토니 커티스[16]와 공연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타가 한국의 드라마에 출연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드라마가 쫄딱 망하는 바람에 이 놀라운 캐스팅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심지어 IMDB의 토니 커티스 필모그래피에도 이 드라마 출연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1995년에는 신은경과 함께 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여기서 그 어떤 방법으로도 자식을 가질 수 없어 유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민숙 역을 맡았는데, 비록 시청률은 높지 않았으나 자식에 대한 집착과 사랑이 뒤섞인 복잡한 캐릭터를 뛰어난 연기력으로 소화해냈고, 이 당시의 열연이 봉준호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이후 그를 주연으로 한 영화를 생각하게 된 계기를 낳았다고 한다.

1999년 MBC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에서 보수적인 남편 옆에서 고통받고, 네 아들들과 그 며느리와의 사이에서도 갈등을 빚는 아내이자 시어머니 '필녀' 역으로 안방극장에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며 20세기 마지막 연기대상(MBC)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마지막엔 남편과 그 입장이 바뀌어 통쾌하게 복수를 하는 모습은 같은 갈등을 겪는 당시 여성들에게 사이다 같은 한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2000년대 초 방송사들이 자연스럽게 탤런트 전속제를 풀기 전까지는 쭉 MBC 드라마에만 출연하였다. 이에 대해 스스로 ''한 때는 '김혜자를 보려면 MBC를 틀어야만 한다' 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방송사가 전속제를 푼 것이 조금은 섭섭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MBC의 주말연속극 그대를 알고부터, SBS와 MBC에서 각각 방영한 특집극 홍소장의 가을이나 봄날의 미소 등에 출연하였고, 주연이 아니면 거의 출연하지 않는 김혜자가 예외적으로 MBC 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2000년대에는 8, 90년대와 같이 굵직한 작품 활동이 많지 않았으나, 오랜만에 김수현의 작품인 2008년 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 타이틀롤로 출연하여 주부의 가출에 관한 화두와 함께 다시 한 번 진가를 인정받으며 그해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009년에는 1999년에 최진실과 공연한 마요네즈 이후 10년 만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출연하여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엄마 역으로 열연하여 국내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11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2010년 LA 비평가 협회상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아시아 배우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TV에서의 이미지가 영화에서도 고정되는 것이 염려되어 영화는 아주 과작으로 출연하는 김혜자에게, 4년간의 꾸준한 구애를 보낸 봉준호의 끈기와 열정은 남다른 것이었고, 긴 세월 <전원일기> 이미지에 갇혀 조금은 흐려진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력이 모성 클리셰를 어둡게 비튼 이 작품에서 다시금 보여지며 대표작을 경신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김혜자가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시절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느껴보지 못했던 세대들에게 <엄마가 뿔났다>와 <마더>는 당시 50년 가까운 경력과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주연의 자리에서 국민 배우로 대접받는 김혜자의 힘을 증명한 중요한 작품이었다.

2011년에는 JTBC청담동 살아요의 '혜자' 역으로 경력 최초 시트콤에 출연하여 초기 JTBC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고, 2015년 KBS에서 방영한 김인영 작가의 착하지 않은 여자들로 오랜만에 지상파 나들이를 하였으며, 이듬 해인 2016년엔 노희경 작가의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노년의 '희자' 역을 맡아 많은 울림을 안겼다. 2016년 이후 한동안 작품 활동이 없다가 2019년 JTBC 눈이 부시게란 작품으로 복귀하였다. 당초 25살의 '혜자'가 시간을 잘못 돌려 70대 노인이 되었다는 설정으로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일반적인 판타지 소재의 드라마로 예상되었으나, 드라마 후반부 25살의 혜자는 없고 70대의 혜자가 치매에 걸려 모든 일을 상상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며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자신의 치매 증세를 인지하게 되는 10회의 후반부 과거 자신의 모습(한지민)과 마주보는 바닷가의 장면과 병실에 누워 읊조리는 대사, 그리고 마지막회 엔딩의 나레이션은 김혜자란 배우가 왜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배우인지 알 수 있게 해준 장면이었다.

다음은 눈이 부시게 마지막 회의 엔딩 나레이션이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위 대사는 이후 열린 제55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수상소감으로 또 한 번 많은 울림을 남겼다.

이후 드라마 출연은 없이 스타다큐 마이웨이 등에 잠시 얼굴을 비췄다가 노희경 작가의 신작인 우리들의 블루스에 극 중 동석의 친모이자 기구한 팔자를 살아온 '강옥동' 역으로 캐스팅되어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다. 말수, 감정표현도 적고 하나뿐인 아들 동석과의 관계도 불편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아들과 마음으로 화해하는 연기를 선보여 큰 울림을 주었다. 많은 대사 없이도 표정만으로 사람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오랜 연기 경력동안 한 번도 호흡을 맞추지 않았던 후배 이병헌과의 연기도 큰 호평을 받아 왜 대배우인지 또 한 번 증명해냈다.

평소나 인터뷰 때 모습을 보면 소녀같으며 나긋나긋하고, 드라마에서는 만인의 어머니 역할을 많이 맡아왔지만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유괴를 감행하다 처절하게 응징받는 여자 역을 맡았던 1995년작 MBC 드라마 '女(여)'나, 비뚤어진 모정에 폭주한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한[17] 마더와 같은 작품에서의 특별한 역할에서도 모두 최고 수준의 연기를 보여주는 걸 보면 이 배우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다. 김혜자의 연기는 단순히 배역을 소화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연기 그 자체에서 작품의 주제의식은 물론, 작품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면모가 있다. 7~80년대 중년 여배우의 배역이 가정주부에 국한되어 있던 한계만 아니었더라면 얼마든지 보다 광범위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덧 80대의 나이지만 여타 원로배우들은 조연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달리 김혜자는 아직도 작품 선정 기준에서 본인이 주연이 아니면 캐스팅을 고사한다고 한다. 아예 조연 출연 제의는 소속사에서 바로 커트할 정도로, 80대임에도 그 연기력과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80대 여배우 중 나문희와 함께 원톱 주연을 소화할 수 있는 소수의 여배우인 셈이다. 동갑의 나문희가 오랜세월 조, 단역연기로 버티다 지금도 살아남아 존재감을 뽐내는 생존자 유형이라면, 김혜자는 드라마 경력의 시작[18]부터 주연으로 출발하여 TV 아이콘이 되고, 영화와 연극 등 연기라는 카테고리로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에서 지금까지도 최고의 배우로 대접받았다. 김혜자의 선배는 물론 후배 배우들마저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고 사라진 이 긴 세월동안 과작은 하였을지언정 끝까지 주연의 자리에서 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을 꾸준히 경신해온 경력은 정말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매체가 다양해 지고 있는 만큼 이런 경력의 배우를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다시 찾아보기란 아주 아주 드문 일이 될 것이다. 2019년 현재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배우 중 김혜자의 몇 안되는 선배 원로배우 김영옥은 "완벽한 배우로 인정한다. 어디에 내보여도 나무랄 데 없는 배우는 틀림없이 그녀이다. 김혜자씨가 저렇게 큰 역, 주류를 이루는 역할을 많이 하는 것이 부러웠다"고 언급했다.

방송사 연기대상 4회 수상(MBC 3회, KBS 1회)이고, 백상예술대상의 TV부문 대상 수상 또한 무려 4회이다.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는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롱런하면서 엄청난 결과물도 여럿 만들었다는 데서 말이 필요 없는 본좌급. 드라마와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여럿 보여주었는데 특히 셜리 발렌타인다우트레전설급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2013년에 선보인 모노드라마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김혜자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5. 봉사 활동

연예인들이 방송국 카메라와 함께 해외 봉사를 가고 그 내용을 영상으로 담는 방식의 자원봉사의 선구자격 인물[19]로 처음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몸을 떨며 울기만 하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해외 긴급구호에 대한 인식을 재고시킨 주인공이다.
월드비전의 사랑의 빵이 바로 이때 김혜자가 만들어 낸 기적같은 자선의 결과물. 이후 이십여년 간 자신의 긴급구호활동을 정리한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출간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머무르기도 했다. 절친인 김수미의 이야기로는, 실제 성품도 알려진 이미지와 똑같다고 한다. 쉬는 날에 쌀 가마니 등에 이고 보육원에 기부 활동을 하러 다녔다고 한다.

6. 개인사

김혜자의 집안은 대대로 명성과 인망 높은 부잣집으로, 조부 김홍두는 군산 노동공제회 초대 회장, 교육후원회장 등을 역임한 지역 유지이자 독립운동을 했던 신간회 회장 출신이다. #일제에 저항했던 군산 객주 아버지 김용택(1907~1984) 역시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투옥생활을 한 적이 있으며, 광복 후 미군정 재무부장(재무부 장관)을 거쳐 1952년 대한민국 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차관까지 지낸 고위 공무원이었다. 아버지는 퇴임 후 서울 응암동의 철거를 앞둔 여섯 평짜리 판잣집으로 이사했으며 김혜자가 집을 마련해드리려고 해도 거절하고 그곳에서 타계하셨다. #판잣집에서 생을 마감한 고위 공무원

SBS에서 토요일 심야에 방영했던 토요미스테리 극장 40회에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6.25 전쟁 당시 가족이 몇 번이고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아버지의 동료였던 민대장이라는 사람의 영혼이 도와줘서 몇 번이나 화를 넘겼다고 한다.관련 영상

아버지가 두 언니를 낳고 미국으로 유학가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20] 취득후 귀국해서 낳은 늦둥이여서 귀여움을 많이 받으며 곱게 자랐다고 한다. 큰 언니와는 무려 19살이나 나이차가 나서 언니가 김혜자의 육아를 해주기도 했다. 5살 아래의 남동생도 있었는데, 경복고 출신에 서울대를 졸업한 재자였으나 27세의 젊은 나이로 한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 요절하고 말았다.[21]

서민 어머니 연기를 많이 했지만, 어릴 적 집은 거실만 200평이었고 그 집에서 매일같이 댄스파티가 열렸다고 하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살림은 커녕 자기 몸 돌보는 수준의 생활도 매우 서툴다고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은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당신 나 없이 어떻게 살아"라며 김혜자 걱정만 할 정도였다고 한다.[22]

한국의 국민 어머니상으로 불리는 여배우지만 실제로는 요리실력이 좋지 않을 뿐더러[23] 남편도 김혜자가 집에서 살림을 하기보다 연기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편이어는지라, 전반적으로 평생 동안 연기해 온 전업주부 어머니 캐릭터와는 정반대의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현재 음식사업에 종사하는 아들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으로는, 자녀에게 따뜻하고,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여느 어머니와 비슷한 수준으로 음식도 잘 만들어 주셨다고. 인터뷰 출처 판단은 독자의 몫.

한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골초였다.[24] 흡연의 계기는 심한 입덧 때문이었다고 한다.[25] 여담이지만 의외로 이러한 케이스들이 많다고 한다. 심지어 임신 전에는 담배 냄새가 역해서 싫어했던 여성이, 임신 후 갑자기 담배 냄새를 갈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임산부에게서 나타나는 이미증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김수미와는 아주 친한 사이라서, 김수미가 어려울 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김수미가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저기서 몇백만원씩 급하게 빌리고 다녔는데, 김혜자가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는 "얘, 넌 왜 나한테 돈 빌려 달라는 소리를 안 하니? 추접스럽게 몇백씩 꾸지 말고,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니?"라며 물어보더니"이거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 때 주든지."라고 하며 정말로 전 재산을 빌려줬다고 한다. 승승장구 결국 김수미는 빚을 청산하고 나중에 김혜자에게 빌린 돈을 다 갚았다.

김혜자와 김수미 둘다 전형적인 어머니상을 잘 연기하지만, 방향은 각각 다르다. 김혜자는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이미지라면, 김수미는 괄괄하고 입담이 걸쭉한 어머니의 모습이 강하다. 후술할 슈퍼스타 감사용에서의 모습이 예외. 물론 김혜자 역시 때로는 현모양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색다른 이미지의 어머니상도 잘 연기한다.

일→집→교회→일→집→교회 생활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독실한 신자로 알려져 있다. 나이차이 많이 나는 남편과 일찍 결혼했다. 가정주부로 평범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이해심 많은 남편이 배우로서의 생활을 허락해 주었다고, 남편의 든든한 지원으로 연기를 할 수 있게되어 고마운 마음에 촬영이 끝나거나 없을 때엔 한눈팔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김혜자보다 11살 연상이었는데 상당한 애처가에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췌장암이 발병했고 1998년에 사망했다. 유퀴즈에서 밝히길 남편이 사망하기 이전에 한문을 못 쓰던 김혜자가 걱정이 되어서 사망 이전에 한자로 부의금 봉투를 수북이 써 주고 사망했다고.[26]

류시화와도 친분이 있는지, 함께 인도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때 김혜자는 매니저에게 맡기듯 류시화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어느날부턴가 류시화가 앞으로의 일정과 상황, 어떻게 다녀야 하는지 대처방법 등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얘기를 하더란다. 김혜자는 '어차피 같이 다닐 건데 왜 저렇게 설명을 하나' 하고 의아해 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러던 어느날 아침 류시화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알고보니 류시화는 혼자 다니던 여행에 익숙한 사람인데 일행이 돕지는 못할망정 '다 알아서 해주세요' 하는 식으로 따라다니기만 하니 답답해서 탈주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 홀로 남겨진 김혜자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분노가 가라앉고 나니 류시화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얘기했던 숙소나 지명, 일정 등을 되새기며 어떻게든 혼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나중에는 김혜자도 이해하고 다시 친하게 지낸 걸로 보인다.

쓰레기 같은 고민 했구나라는 짤방으로도 유명한데 스스로에게 한 말. 원본은 무한도전(2015년 12월 19일 459회)의 무한뉴스에서 인터뷰할 당시 모습이다. 해외 봉사활동을 갔을 때 '이곳의 상황에 비하면 서울에서 했던 고민 따위는 쓰레기 같은 것이었다'라고 표현한 것이다.당시 상황

조곤조곤하고 따뜻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굉장히 강단 있는 인물이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사랑이 뭐길래를 촬영하던 때로, 몸이 아파 탈진해 쓰러질 정도의 상태가 된 윤여정에게 특유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니가 지금 병원을 가면 모든 스태프들이 널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니 쓰러져도 할 건 다 하고 쓰러져라"면서 입에 억지로 초콜릿을 물렸다고 한다. 윤여정은 훗날 이 일을 거론하면서 "내가 여우라면 김혜자는 늑대"라고 평했다.

2023년 9월 전원일기의 외전 격인 회장님네 사람들에 오랜만에 출연했는데, 그동안 수술을 받으면서 많이 헬쓱해진 상태이며, 손주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했거나 결혼했다고 한다.

7. 김혜자 도시락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혜자 도시락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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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출연작

8.1. 드라마

<rowcolor=#fff> 연도 방송사 방송명 배역
1969년 파일:MBC 로고(1969-1974).svg 태양의 연인들
사랑하는 갈대
언젠가 한 번쯤은
개구리 남편 창호 처
1970년 강변살자
1971년 학부인 정아
수사반장
1972년 새엄마
무지개 상아
1973년 113 수사본부
1974년 강남가족
파일:MBC 로고(1974-1981).svg파일:MBC 로고(1974-1981) 화이트.svg 갈대 강자영
1975년 신부일기 어머니
1976년 여고동창생
거룩한 손님
1977년 당신 어머니
후회합니다 지원
수사반장 300회 특집 구혜숙
1978년 행복을 팝니다
미소
바람은 불어도
1979년 엄마 아빠 좋아
안국동 아씨 영빈 이씨
1980년 전원일기 이은심
아베의 가족
의친왕 삼리인
간양록
종점
1981년 나리집
사랑합시다
1982년 파일:MBC 로고(1981-1985).svg파일:MBC 로고(1981-1985) 화이트.svg 어제, 그리고 내일 어머니
1983년 간난이 양어머니 진천댁
1984년 그리워
1985년 조선왕조 오백년 - 풍란 문정왕후 윤씨
1986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파일:MBC 로고(1986-2005) 컬러 화이트.svg 첫사랑 하 여사
1987년 갈 수 없는 나라
1988년 모래성 장현주
1989년 제2공화국 김옥숙
겨울 안개 서명애
행복한 여자
당신의 축배 진상심
1990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정희
아직은 마흔 아홉 박인자
1991년 사랑이 뭐길래 여순자
1992년 두 여자 오혜정
1993년 엄마의 바다 영희
1994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파일:KBS 2TV 로고(1984-2018) 화이트.svg 인간의 땅 김실단
1995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파일:MBC 로고(1986-2005) 컬러 화이트.svg 송민숙
1996년 자반 고등어 김공심
1997년 베스트극장 어머니, 당신의 이야기 현자
그대 그리고 나 김은순
1999년 장미와 콩나물 이필녀
2002년 그대를 알고부터 조남득
2004년 파일:SBS 텍스트 로고.svg파일:SBS 텍스트 로고 화이트.svg 홍소장의 가을 허영숙
2005년 파일:MBC 로고(2005-2011).svg파일:MBC 로고(2005-2011) 화이트.svg 봄날의 미소 박내순
2006년 황태후 박씨
2008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파일:KBS 2TV 로고(1984-2018) 화이트.svg 엄마가 뿔났다 김한자[27]
2011년 파일:JTBC 로고.svg파일:JTBC 로고_White.svg 청담동 살아요 김혜자
2015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파일:KBS 2TV 로고(1984-2018) 화이트.svg 착하지 않은 여자들 강순옥
2016년 파일:tvN 로고(2012-2021).svg파일:tvN 로고(2012-2021) White.svg 디어 마이 프렌즈 조희자
2019년 파일:JTBC 로고.svg파일:JTBC 로고_White.svg 눈이 부시게 김혜자
2022년 파일:tvN 로고.svg파일:tvN 로고 White.svg 우리들의 블루스 강옥동
2025년 파일:JTBC 로고.svg파일:JTBC 로고_White.svg 천국보다 아름다운 해숙

8.2. 영화

<rowcolor=#fff> 연도 제목 배역
1969년 눈물의 여인 최숙자
1982년 만추 혜림[28]
1999년 마요네즈 엄마
2009년 마더 마더
2014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노부인
2017년 순애

8.3. 연극

<rowcolor=#fff> 연도 제목 배역
2015년 길 떠나기 좋은 날 소정

8.4. 방송

<rowcolor=#fff> 날짜 방송사 프로그램명 회차
2002년 9월 19일 파일:SBS 텍스트 로고.svg파일:SBS 텍스트 로고 화이트.svg 스타도네이션 - 꿈은 이루어진다
2014년 12월 19일 파일:JTBC 로고.svg파일:JTBC 로고_White.svg 뉴스룸
2014년 12월 21일 파일:SBS 텍스트 로고.svg파일:SBS 텍스트 로고 화이트.svg 런닝맨 226회
2015년 12월 19일 파일:MBC 로고.svg파일:MBC 로고 화이트.svg 무한도전 459회
2016년 6월 19일 ~ 6월 26일 파일:TV CHOSUN 로고.svg파일:TV CHOSUN 로고 화이트.svg 인생다큐 마이웨이 1회 ~ 2회
2016년 9월 2일 파일:JTBC 로고.svg파일:JTBC 로고_White.svg 뉴스룸
2023년 1월 11일 파일:tvN 로고.svg파일:tvN 로고 White.svg 유 퀴즈 온 더 블럭 176회
2023년 9월 4일 파일:tvN STORY 로고.svg 회장님네 사람들# 47회 ~ 49회

8.5. 광고

8.6. 뮤직비디오

  • 런치백 - 치킨은 살 안쪄요 살은 내가 쪄요 (2017)[31]

9. 저서

  •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오래된 미래, 2008.10.28)
  • 생에 감사해 (수오서재, 2022.12.22)

10. 수상 경력

김혜자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TV 부문 대상[32]
제15회
(1979년)
제16회
(1980년)
신설 김영옥
김혜자
정혜선
(행복을 팝니다)
김민자
(고독한 관계)
제24회
(1988년)
제25회
(1989년)
제26회
(1990년)
사랑과 야망 김혜자
(모래성, 겨울 안개)
평화, 멀지만 가야할 길
사랑이 꽃피는 나무
제44회
(2008년)
제45회
(2009년)
제46회
(2010년)
강호동
(1박 2일)
김혜자
(엄마가 뿔났다)
고현정
(선덕여왕)
제54회
(2018년)
제55회
(2019년)
제56회
(2020년)
비밀의 숲 김혜자
(눈이 부시게)
동백꽃 필 무렵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제11회
(1975년)
제12회
(1976년)
제51회
(2015년)
김자옥
(수선화)
안인숙
(윤지경)
정혜선
(갈대)
김혜자
(신부일기)
홍세미
(행복의 조건)
강부자
(결혼행진곡)
김윤경
(재회)
제13회
(1977년)
제14회
(1978년)
제15회
(1979년)
강부자
(결혼행진곡)
김윤경
(재회)
강효실
(문기와 수미)
김혜자
(당신)
김영옥
김혜자
정혜선
(행복을 팝니다)
제14회
(1978년)
제15회
(1979년)
제16회
(1980년)
강효실
(문기와 수미)
김혜자
(당신)
김영옥
김혜자
정혜선
(행복을 팝니다)
김민자
(고독한 관계)
제24회
(1988년)
제25회
(1989년)
제26회
(1990년)
김청
(사랑과 야망)
김혜자
(모래성, 겨울 안개)
박원숙
(토지)
고두심
(사랑의 굴레)

파일:KBS 로고.svg 연기대상 대상
최수종
(2007년)
김혜자
(2008년)
이병헌
(2009년)

파일:MBC 로고.svg 연기대상 대상
이덕화
(1987년)
<colbgcolor=#FFFFA1,#5D5E00> 김혜자
(1988년)
원미경
(1989년)
김희애
(1991년)
김혜자
(1992년)
김희애
(1993년)
김지수
(1998년)
김혜자
(1999년)
전광렬
(2000년)

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김성원
김자옥
(1974년)
<colbgcolor=#FFFFA1,#5D5E00> 라시찬
김혜자
(1975년)
신구
(1976년)
이영후
반효정
(1988년)
이정길
김혜자
(1989년)
이진수
김창숙
(1990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은관.jpg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19년
이름 김혜자
분야 배우
은관문화훈장(2등급)
}}} ||
<rowcolor=#fff>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66년 제2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신인 연기상
1974년 제1회 MBC 탤런트 연기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강남가족
1975년 제10회 방송윤리위원회상 시상식 TV 드라마 부문 연기상 신부일기
제3회 대한민국방송상 TV 연기상
1976년 제12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1977년 MBC 연예대상 여자 탤런트 부문 당신, 후회합니다
1978년 제14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당신
MBC 방송연기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1979년 제15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33] 행복을 팝니다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1983년 제2회 마닐라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 만추(1982)
1988년 제24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19 그리고 80
MBC 연기대상 대상[34] 모래성
1989년 제16회 한국방송대상 여자연기자상 겨울안개
제25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35] 겨울안개, 모래성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1991년 MBC 방송대상 특별공로상[36] 전원일기
1992년 MBC 방송대상 대상[37] 사랑이 뭐길래
1996년 한국광고주협회 제 4회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좋은 모델상
1999년 제1회 사회복지의 날 대통령 표창상
엘리자베스 아덴 제1회 비저블 디퍼런스 어워드
MBC 연기대상 대상[38] 장미와 콩나물
2002년 MBC 명예의 전당
2003년 제14회 위암 '장지연'상 위암 '장지연'상
제2회 스타 선행 대상 대상
제1회 페미니즘 대중문화 예술대상
2003 한국광고주대회 광고주 밤의 시상식 특별공로상
2008년 KBS 연기대상 대상[39] 엄마가 뿔났다
2009년 제45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40]
제10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마더
제2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제18회 부일영화상
제18회 금계백화영화제 해외 부문 여우주연상
제2회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뷰티풀쉐어링상
제3회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드 여우주연상 마더
제12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여자 연기자상
제10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연기상
2010년 제1회 올해의 영화상 여우주연상
제7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여자배우상
제4회 아시안 필름 어워즈 여우주연상
제14회 미국 LA 영화 비평가협회상
월드비전 국제총제 특별상
2011년 제1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제 30회 세종문화상 사회봉사 부문
2014년 제9회 골든티켓어워즈 연극 여자배우상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2015년 제15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원로배우 부문 인기영화인상
KBS 연기대상 방송 3사 드라마 PD가 뽑은 연기자상(프로듀서상) 착하지 않은 여자들
제 4회 CARI K 드라마 어워즈 여우조연상
2016년 제16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원로배우 부문 인기영화인상
2019년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41] 눈이 부시게
제10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2023년 KBS KBS 빛낸 50인

10.1. 이색적 수상 기록

  • 백상예술대상 4회 TV 대상, 4회 TV 여자 최우수 연기상에 빛나는 엄청난 대기록의 보유자이다.
  • 백상에서 공교롭게도 해당 년대의 마지막 해인 _9년에_, 회차로는 _5회차_ 때 대상을 수상했다. 1979년 15회 시상식 때 드라마 '행복을 팝니다'로 대상, 1989년 25회 시상식 때 드라마 '모래성'과, '겨울 안개'로 대상, 2009년 45회 시상식 때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로 대상, 그리고 2019년 55회 시상식 때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대상을 차지했다.
  • 1999년 35회 시상식은 4월 초에 열렸는데, 98년에 출연한 작품이 없어 아쉽게도 이 때엔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다.[42] 그런데 99년 MBC에서 방영된 장미와 콩나물로 그 해 연말에 연기대상을 받았는데, 만약 해당 작품이 한 해 먼저 방영되었다면 99년 백상 부문의 경쟁이 그리 심하지 않아 TV 부문 대상의 주인공도 김혜자일 수 있었다.

10.2. 주요 선정 기록

파일:한국갤럽 CI_White.svg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최불암 이영애 권상우 김혜자 고두심
6위 공동 7위 9위 10위
최수종 송혜교 장동건 채시라 이서진
2009년
※ 200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김혜자 최불암 김태희 이순재 소지섭
6위 7위 8위 9위 10위
김남주 강부자 장동건 이민호 고두심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김수현 최불암 조인성 김태희 고두심
{{{#!wiki style="margin: -16px -11px" 6위 공동 7위 9위 공동 10위
이순재 김혜자 김희애 이유리 유동근 현빈 }}}
12위 13위 14위
송일국 전지현 이영애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1위 2위 3위 공동 4위
최불암 김혜자 박보검 공유 송혜교
6위 7위 8위 9위 10위
이순재 고두심 최수종 송중기 전지현
{{{#!wiki style="margin: -16px -11px" 11위 공동 12위
현빈 차인표 한지민 김혜수 조인성 남궁민
공동 17위
김해숙 소지섭 김태희 장동건 김수현 정우성 }}}
공동 23위
박보영 이영애
2024년
※ 202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1위 공동 2위 공동 4위
김수현 남궁민 김지원 차은우 김남주
6위 7위 8위 9위 10위
최수종 송중기 최불암 고두심 김고은
공동 11위 14위 1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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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를 빛낸 50인 세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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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가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이하여 선정한 50인의 인물로,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정렬하였다.

선정을 위해 KBS와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이 공동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사내외 전문가그룹 100명과 인구 통계학적 분포에 따라 성별, 연령별로 구성된 KBS 국민 패널 1,800여 명이 참여한 1차 설문 조사로 100명의 후보군을 우선 선정하였다. 이어 3주간 KBS 공영방송 50주년 홈페이지(kbs50.kbs.co.kr)를 통해 일반 시청자 7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종 투표를 실시하였다. 시청자 투표로 선정된 최종 50인은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추천을 받아 미디어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KBS를 빛낸 50인 선정자문위원회’에서 적격성 검토를 거쳐 확정되었다.

[A]: 가요무대 음악 감독을 맡은 KBS 악단장으로, 2022년 사망하였다.
[B]: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을 기획, 연출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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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건 사고

2012년에 주택 양도 과정에서 약 5억 원의 세금을 추징 통보 받았다. 이와 관련해서 김혜자는 고의로 탈세를 한 것이 아니라 실수였으며, 추가 세금은 성실히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

12. 여담

  • 마음에 들지 않는 연기가 tv에 나올 때에는 속으로 방송국이 정전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어렸을 적 상당히 부유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미군정기 재무부 장관이었으며 대지가 900평에 달하는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집이 아닌 공원으로 착각할 정도.# 유퀴즈 방송 기사
  • 조미료 광고를 1975년부터 2003년까지 27년 하여 2000년 당시 한국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 현재 최장수 CF 모델은 1983년부터 39년째 맥심 광고모델을 하고 있는 안성기이다.
  •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배우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도 없는데다 알려진 수많은 행실들 덕에 칭찬하는 사람은 많고 욕하는 사람은 찾기 힘든 모범적인 생활 중이다. 하다못해 자신의 이름으로 나왔던 편의점 도시락마저 지금까지 극찬받고 있다.[43]
  • 전형적인 어머니 이미지인데 반하여 의외로 요리치 속성이 있다. 이는 후술할 김수미와 정 반대.

12.1. 김수미와의 관계

배우 김수미와는 매우 절친한 사이. 같은 어머니상(像)을 연기하지만, 이미지는 많이 다르다. 김수미는 억척스럽고 괄괄한 성격의 여장부 이미지라면 김혜자가 자애로운 현모양처의 전형적 이미지.

물론 김혜자 또한 비뚤어진 모성을 가진 어머니를 연기한 적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의 모습이 그것. 반대로 김수미가 보여준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보여준 감사용의 어머니역은 매우 따뜻하고 살가운 모든 아들들의 어머니상이었다.
재미있게도 현모양처 이미지인 김혜자는 찌개도 제대로 못 끓인다고 하는데 비해 정작 욕쟁이에 괄괄하고 털털한 이미지인 김수미가 요리의 달인인것이 재미있는 부분. 방송에서 김수미가 한 증언에 의하면 김혜자의 손자손녀들이 집에 놀러왔을 때 김혜자가 즉석밥 햇반을 데워 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 서세원쇼에서 김혜자가 출연했을 때 그녀와 친한 김수미가 초청 게스트로 나와서 김치도 못 담근다고 폭풍 디스를 시전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해 김수미가 어려울 때 김혜자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김수미가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웠던 시절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저기서 몇백만원씩 급하게 빌리고 다녔는데, 김혜자는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는 "얘, 넌 왜 나한테는 돈 빌려 달라는 소리를 안 하니? 추접스럽게 몇백씩 꾸지 말고,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니?"라며 물어보더니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 때 주든가."라고 하였다고 한다. 결국 김수미는 빚을 청산하고 나중에 김혜자에게 빌린 돈을 다 갚았다고 한다. 영상
[1] 포털 사이트와 주민등록상 생일은 10월 25일이다.[2] 미군정 시절 재무부장(재무부장관)과 # 대한민국 제3대 사회부(현 보건복지부)차관을 역임했다. 사회부차관에 임명된 시기가 1952년 2월이었는데, 그 직전인 1952년 1월까지 국무총리 서리 겸 사회부장관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훗날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겸 외무부장관이 되는 허정이었다. 김용택 차관 임명 당시 장관은 허정 장관의 후임자 최창순 장관이었다. 허정 장관은 사회부장관 퇴임 후에도 총리서리는 3개월 정도 유임하였다.[3] 사인췌장암.[4] 배우 임현식과 동명이인이다.[5] 김석윤 감독과 같은 초등학교 나왔다.[6] 모태신앙으로 남대문교회 권사님이다.[7] 리스피아르 등 여론조사기관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70년대에 이미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고, 후배들이 계속 등장한 8~90년대에도 각종 인기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했다. 90년대엔 최진실채시라김희선 등에게 1위를 내어주기도 했으나, 여전히 연기력과 화제성을 인정받으며 꾸준히 인기를 누려 90년대 리스피아르 총합조사에선 역시 1위를 차지했다.[8] 과거 이화여대의 금혼 규정 때문에 중퇴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금혼 규정은 구한말 이화학당을 설립하고 운영한 미국인 여선교사들에 의해 제정된 것으로, 신체적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어린 소녀들을 강제 조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린 여학생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시집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선교사들이 설득도 하고, 심지어 방학을 없애기까지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금혼 규정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고, 2003년 폐지되었다. 전두환 아내 이순자도 동 대학 의과대학에 재학하다가 이 금혼 학칙 때문에 중퇴했다. 김영삼 아내 손명순도 동 대학 약학대학에 재학하다가 남편과 결혼했으나 끝까지 결혼 사실을 숨기고 졸업해 약사 국가시험까지 패스했다.[9] 일반인이던 김혜자 남편은 가끔씩 아내가 촬영하는 현장에 와서 지켜보곤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최불암과 둘이 부부 역할을 맡아 이부자리에 같이 누워있는 연기를 하는데 갑자기 최불암이 김혜자에게 속삭이며 아무래도 (김혜자의) 남편이 온 것 같다며 슬쩍 거리를 두더라고 한다. 순간 뜨끔해서 자리를 박차고 남편을 찾아가니 이미 찬바람 일으키며 떠난 뒤였다고 한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자신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한자리에 있는 것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10] 박근형의 말로는 연기를 못하여 김관수(사미자의 남편),김혜자,박근형 모두 KBS에서 쫓겨났다고.....[11] 연극에서 연기력을 향상시키며 제2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기도 했다.[12]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최불암과 함께 남녀 연기자 순위 1위 기록[13] 올림픽 기간임에도 인기리에 방영[14] 역대 평균 시청률 1위(59.6%)[15] 데뷔 초 이후 첫 KBS 출연[16]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그 배우 토니 커티스다. 제이미 리 커티스의 아버지.[17] 관광버스에서 아들의 잘못을 덮은 기쁨을 표현함과 더불어 그러한 일련의 행위들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을 잊기 위해 추는 춤은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내뿜는다.[18] 연극에서 연기력을 다진 후[19] 다 쇼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또 실제로 쇼를 하는 연예인들도 있지만, 연예인이 출연하는 자원 봉사 방송이 사회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20] 대한민국 제2호 경제학 박사[21] 자서전 <생에 감사해> (수오서재, 2022.12.22)에서 밝힌 내용[22] 주연으로 나왔던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의 설정이 유복한 가정주부로 살다 남편의 사업실패와 사망으로 생계전선에 뛰어들어 온갖 풍상을 겪는 것인데 묘하다.[23] 김혜자와 친한 후배인 김수미의 말에 따르면, 손자들이 밥먹고 싶다고 조르면 즉석밥을 데워준다고 한다. 전원일기에서 작중 첫째 며느리로 나왔던 고두심의 말에 따르면 음식을 만들 때 자기에게 이렇게 하는 게 맞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천생 배우여서 이를 익히기 위해 백 번도 넘게 연습해서 몸에 익힌다고 한다. 단 연예계에서 요리솜씨로 정평이 나 있는 김수미의 관점에서 그러하다는 거다. 실제로 김수미는 80년대 초반 MBC 오늘의 요리를 진행하던 중, 함께 출연하는 요리연구가가 음식을 하는 것을 보다가, 답답해서 본인이 직접 칼을 빼앗아 들어 요리재료를 썬 적도 있다. 함께 출연한 요리연구가라는 사람의 칼질이 (비전문가인 김수미가 보기에는) 너무나 서툴렀기 때문이다.[24] 현재는 금연한 상태다. 어느 날 평소처럼 담배를 피웠더니 맛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져서 끄고 다시 피우고, 바꿔가며 피워봤지만 역시나 담배 맛이 예전같지 않게 느껴져서 끊게 되었다. 60대가 되어서야 금연하게 되었다고 한다.[25] 당시 남편의 권유로 흡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26] 지금은 경조사 봉투를 한글로도 많이 쓰지만, 봉투에 한글을 쓰는 문화는 퍼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당시에는 한자로 봉투를 쓰는 게 당연한 시대였다.[27] 두 번째 KBS 출연작이자 대상 수상작[28] 이 영화로 마닐라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29] 전 모델 시미켄은 논란 끝에 잘렸다. 계약이 끝나기도 했고.[30] 커다란 개구리 탈인형과 함께 출연했다.[31] 놀랍게도 김창열과 동반출연 했다.[32] 총 4회 수상으로 최다수상.[33] 백상예술대상 첫 대상[34] MBC 첫 대상[35] 백상예술대상 두 번째 대상[36] MBC TV 개국 30주년[37] MBC 두 번째 대상[38] MBC 세 번째 대상[39] KBS 첫 출연, 첫 대상[40] 백상예술대상 세 번째 대상[41] 백상예술대상 네 번째 대상[42] 남편이 췌장암에 걸린 뒤 불과 한달 반 만에 사망하였다. 그로 인해 작품 출연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43] 혜자스럽다는 말이 칭찬으로 쓰일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