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24 16:46:33

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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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안성기 장동건 설경구 최민식 한석규
6위 7위 8위 9위 10위
송강호 신성일 박중훈 정우성 원빈
2009년
※ 200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안성기 송강호 장동건 설경구 신성일
6위 7위 8위 9위 10위
정우성 황정민 김수로 정준호 김혜수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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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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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위 22위
한석규 송중기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예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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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박중훈
朴重勳 | Park Joonghoon
파일:박중훈화보2.jpg
출생 1966년[1] 3월 22일 ([age(1966-03-22)]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現 서울특별시 은평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
신체 178cm, 75kg, B형, 왼손잡이
직업 배우, 영화 감독
가족 배우자 윤순[2]
장남 박배승[3], 장녀 박소휘, 차녀 박미휘
이종사촌형 강석훈[4]
학력 용산고등학교 (졸업 / 35회)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학 / 학사)
뉴욕대학교 대학원 (연기교육학 / 석사)
종교 개신교 (침례회)
소속 파일:나무엑터스 로고.svg
데뷔 1986년 영화 깜보 (데뷔일로부터 [dday(1986-03-15)]일, [age(1986-03-15)]주년)
링크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평가4. 상세5. 감독 데뷔6. 기타7. 출연 작품
7.1. 영화7.2. 드라마7.3. 방송
8. 논란 및 사건 사고9. 수상 내역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배우, 영화 감독

2. 활동

TV보다는 영화에서 주로 활약하였으나 초창기에는 탤런트 시험에도 지원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 다만 합동영화사에서 깜보라는 영화의 배우를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달려갔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맞춰, 동대문 시장 같은 데 다니면서 의상을 준비했으나 다른 배우에게 섭외가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만은 없었서 학교를 안 가고 영화사로 출근을 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에 커피 심부름과 같은 여러 잡심부름을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충무로 상업영화 깜보를 통해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흥행 성적이 그닥 좋진 않았으나 이 영화는 '박중훈'이라는 존재를 충무로에 확실히 각인시킨 영화였다. 그는 그 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하였다.
[navertv(684304)]

1987년 그는 강수연과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청춘 스타로써 발돋움하였다. 현재로써는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유치한 영화지만 어쨌든 현재 나이든 세대가 기억하는 박중훈의 예능감이라든지 아니면 특유의 유쾌함이 물씬 묻어나는 영화로 2010년 이후에는 화질이나 배경을 떠나 연기나 스토리 전개나 연출등이 눈뜨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 영화가 먹혔고이 영화는 그 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였다. 그는 덕택에 1980년대 최재성과 최고의 청춘스타였다.[5] 최재성이 잘생긴 얼굴로 카리스마 있는 위치라면 박중훈은 그의 실제 성격과는 별개로 매우 유쾌하며 밝은 이미지의 스타였다.

1988년, 1990년 최재성과 영화 '내 사랑 동키호테',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에 출연하였다. 두 영화를 통해 확고한 스타로 자리잡았다.

1988년 그는 안성기박광수 감독의 영화 '칠수와 만수'에 출연하였다. 그가 배우의 연기 측면에 좀 더 대중들의 관심받는 계기가 되었다. 극중 안성기와 케미가 이후로 유명해졌다. 그는 1989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90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에, 문성근,심혜진과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에 출연하였다. 청춘스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들끓던 시절, 그는 사회적인 주제 의식을 지닌 영화의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배우로써 한 단계 성장하였다. 그는 '우묵배미의 사랑'으로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6],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그는 최진실이명세 감독의 작품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출연하였다. 미영의 남편 영민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1991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2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1993년 SBS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으로 TV쪽에도 발을 담궜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황일천 병장 역을 맡아 그 해 열린 SBS 스타상에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투캅스'에 출연하였다. 박중훈이라는 배우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1994년 국산 1위 흥행 영화이다. 그리고 안성기와 박중훈의 케미는 그 당시 최고의 케미로 자리매김했다. 1994년에 대종상 영화제에서 안성기와 함께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에는 게임의 법칙에 출연하여 시골 출신 양아치
가 뛰어난 실력으로 중간보스 자리에 오르다가 순진한 성격으로 인해 비운의 죽음을 맞는 용대 역을 맡아 느와르 장르의 연기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그해 열린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다.
이 외에도 최진실과 마누라 죽이기에 출연하였다. 아내가 싫어져 아내를 죽이기로 결심하는 박봉수 역을 맡았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중 하나다.

1993년~1994년은 박중훈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충무로 최고의 배우로 성장하며 당시 인기스타로 발돋움했다. 또한, 영화 투캅스의 인기로 안성기와 박중훈의 케미로 국민배우라는 칭호도 붙여졌다.

투캅스는 2010년 초반까지 반복되던 전형적인 한국식 코미디 영화의 기틀을 세운 작품으로 강우석이라는 감독에게 대한민국 최고감독의 위치를 안겨줌과 동시에 박중훈과 안성기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을 안긴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인하여 같은 해에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상복도 좋았다. 특히 청룡영화상에서는 94,95,96,97 4년 연속으로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고 4연속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 되었다.

1995년 '꼬리치는 남자', '총잡이'에 출연했으나 흥행에 실패하였다.

1996년 '투캅스2'에 출연하며 전작과 같이 그해 국산 영화 1위라는 흥행 성적을 거두며 성공했다.
그리고 '돈을 갖고 튀어라'로 박중훈의 코미디의 진가를 관객들에게 다시 어필하였다.

1997년 '깡패수업'에 출연하였다

3. 평가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동년배 탑급 영화배우들인 한석규, 김윤석, 송강호, 설경구와 비교해서 이례적으로 충무로에 빠르게 자리잡은 케이스다. 다만 박중훈의 스타성에 기인한 부분이지 그의 연기력이나 배우로써의 장점에 기인한 부분은 아니다. 90년대 후반 타이타닉과 쉬리의 연이은 대흥행 이후로 폭발하기 시작한 한국 영화계만 봐온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영화는 시간 없으면 보는 영화, 동시상영[7]이나 해야 겨우 보는 영화로의 인식이 강했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대체적으로 연기력보다는 검증된 배우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덜보고 극장에서도 꽤 오래 걸어주기 때문에 박중훈과 같은 자신만의 확고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들이 인기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수상경력이 화려하다는 이유로 박중훈의 연기력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연기력이 정말 높게 평가된다면 2000년대 이후 안성기와 같이 만든 다소 자전적인 내용에 가까운 라디오 스타를 제외하면 내세울만한 작품 하나 없는 것은 좀 심각한 일이다. 물론 역대 남자배우 중에서는 유일하게 20대에 국내 3대 영화제인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것은 맞으나 연기력외에 그 외적인 요소들도 많이 작용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90년대 및 한국 영화의 대약진 시기로 수많은 배우가 필요했던 200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영화계에 없어서 안될 존재였으나, 말그대로 연기력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가 매우 높아지고 그에 걸맞는 수준의 배우들이 속출하면서 상당부분 자리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2010년도에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삼류 건달역으로 분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8] 상술한 1960년대 생의 배우들이 아직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정점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현재로썬 은퇴나 다름없을 정도로 커리어가 마감된 수준이다.[9] 특별한 반전의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인상적인 필모그래피의 확장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4. 상세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이래 1993년 <투캅스>, 1994년 <마누라 죽이기>, 1995년 <꼬리치는 남자>,<돈을 갖고 튀어라>, 1996년 <투캅스 2>, 1997년 <할렐루야>, <인연> 등 1990년대 영화계를 이끌었다. 이어 2003년에 <황산벌>, 2005년에 <천군>, 2006년에 <라디오 스타>, 2009년 <해운대>, 2010년 <내 깡패같은 애인>을 히트시키며 활동해 오다 2000년대 후반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또한 <양들의 침묵>으로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한 조나단 데미가 그가 출연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선댄스 영화제에서 보고 2001년 영화 <챨리의 진실>에 박중훈을 캐스팅하면서 헐리우드에도 진출했다.

박중훈이 배우가 된 계기가 있는데, 박중훈은 대학교 1학년 때 닥치고 영화사에 찾아가서 4개월 동안 공짜 심부름과 공짜 청소를 해 줬다고 한다. 그러자 영화사 측에서는 심부름과 청소를 한 대가를 영화 주연 자리를 받아서 지불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규형의 최대 흥행작인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라는 영화에 강수연과 같이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해 청춘 스타로 자리 매김했다. 참고로 극중 후반부에 갑자기 철수가 머리를 박박 밀고 나오는데(극중 군대 입대 때문에) 실제로 박박 밀었던 거였다. 감독이나 제작진은 원래 가발을 씌우던지 하여 처리하려고 했더니 박중훈은 가발보다는 진짜로 밀어버리는 게 사실적이라고 하여 스스로 밀어버렸다고 한다.

이 당시 영화계에서 청춘 스타라고 하면 박중훈과 최재성 정도.[10] 실제로도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라는 영화에서는 그 최재성과 같이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참고로 이 영화가 김민종의 데뷔작이였는데, 김민종은 촬영 도중 쉬다가 모종의 사유로 박중훈의 차를 깨먹었다.

박중훈 본인 차의 수리비는 고사하고 그 차로 깨먹은 다른 차 수리비가 1987년 기준으로 50만 원이었다. 당시, 대졸자 한달 월급 수준이었으니 지금으로 치자면 300만 원 이상 값어치라고 할 돈이었다. 박중훈 본인의 말로는 이 사고 때문에 머리 끝까지 빡쳐서 김민종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인연이 되어 박중훈과 김민종은 서로 친한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이후 박중훈은 칠수와 만수로 인연을 맺은 안성기와는 지금도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가장 유명한 콤비를 꼽으라면 안성기와 박중훈을 꼽을 정도로 많은 영화에서 콤비로 출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마누라 죽이기에서는 최진실과, 1995년 꼬리치는 남자, 1997년 인연에서는 김지호와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 코미디 영화들도 흥행을 거두면서 1990년대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는다.[11]

박중훈이 출연한 작품들 중 가장 흥행한 영화들이 코미디 영화인 탓에 대중들에게 코미디 전문 배우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박중훈을 단순하게 한 시대를 풍미한 코믹 배우로만 여기면 안 된다. 사실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던 1990년대 초반까지 제작된 한국 영화는 주로 사회성이 짙은 진지한 영화들이었고 충무로 남자 배우가 지금처럼 연령층이 다양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벼운 코믹물인 투캅스가 흥행하자 해당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박중훈이 코미디 배우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 우묵배미의 사랑을 포함하여 1994년에 개봉한 게임의 법칙,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005년 천군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12]

TV에는 예능 프로그램 위주로 출연했으며, 드라마 출연은 1993년 SBS에서 창사특집극으로 방영한 '머나먼 쏭바강'뿐이었으나 2017년 OCN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에 캐스팅되면서 24년만에 드라마에 복귀했다.

어쨌든 박중훈은 연기 경력만으로는 거물 배우이다. 그런데도 박중훈보다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배우들이 나무위키에 많이 소개된 와중에도 박중훈의 항목은 오랫동안 작성되지 않았다. 흑역사라면 세이예스에서의 어색하기 그지없는 살인마 연기와[13] 발연기를 보여 준 영화 해운대. 작중에서의 '내가 네 아빠다'는 해운대의 명대사 of 명대사다.[14] 영화 해운대에서 박중훈이 이렇게까지 표정 연기를 못했냐는 의견이 많다. 다음해에 출연한 내 깡패 같은 애인으로 오명을 만회하긴 했다.[15] 사실 해운대에서 서울에서 온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너무 스테레오타입에 박혀 별로라는 평들이 많았다.[16]

흑역사로는 신인 시절에 출연한 국산 특촬물 바이오맨[17]도 박중훈과 관련된 이야기에선 절대 안 빠지는 소재 중 하나. 박중훈 본인은 바이오맨 이야기만 나오면 민망함에 몸서리를 치기 바빴고 현재 이 작품이 찾아보기 힘든 레어 아이템이 된 이유가 박중훈이 몰래 비디오를 회수하고 다녔기 때문이라는 농담성 음모론까지 떠돌 정도였다. 그리고 2019년 1월에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해서 신현준의 회전목마 흑역사를 틀자마자 신현준이 바이오맨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방송에서 바이오맨 영상이 나왔다. 신현준이 바이오맨이 역주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마자 진지하게 약속 하나만 하자면서 바이오맨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사실 영화 외에 광고로도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바로 OB 라거 시리즈. 1996년부터 1998년까지 2년 전속으로 출연했다.


OB 라거 첫 광고

초반에는 단독 출연하여 랄라라 댄스만 선보였지만, 이거 하나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중반부터 최종원과 콤비를 이루어 코믹 스타일로 전환하면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특히 1997년 최종원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광고 '라면 한 박스' [18] 편에서의 소비자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고, 1997년 당해 소비자가 꼽은 최고의 광고로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며, 박중훈-최종원 콤비의 OB 라거 시리즈의 시초가 되는 매우 의미있는 광고다. 이후 아이돌 그룹 god박준형도 이 광고에서 중간 합류하여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박준형이 나이들어 보여서 뭔가 이상해 보이지만, 실제 나이로 따지면 박중훈이 박준형보다 4살 많다.[19]

사실 이렇게 장기간 동안 OB 라거 광고를 한 이유는 위에 언급한 랄랄라 댄스와 여러 광고들이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OB 고위층 임원이 어느날 술집에 갔는데, 우연히 박중훈이 OB 라거의 경쟁사의 맥주가 나오자 자기가 OB 모델인데 다른 술 먹으면 안된다면서 가게에 그 술이 없으면 자기가 돈 줄테니 나가서라도 사 오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 전속모델 재계약을 맺은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광고주들은 전속 모델에게 이런 조항을 의무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영화계에서 칠수와 만수로 시작하여 투캅스 시리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등 상당히 많은 작품에서 안성기와 콤비를 이루었다. 박중훈에게 안성기는 사실상의 절친이다. 물론 나이는 안성기가 훨씬 많다. 박중훈 본인 역시도 친한 형동생처럼 지낼 수 있는 건 안성기 선배가 워낙 배려심과 인간성이 좋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자신은 이에 매우 영광스러움을 느끼면서 편하게 지내더라도 마음속으로 존경심을 잃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이 수십년 본 안성기는 방송이나 언론에 비춰진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과 실제 모습이 언제나 오차없이 똑같을 정도로 인격적으로 훌륭하여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후배들 중 완전히 장악한 후배가 하나 있는데, 그게 차태현이다. 원래 차태현은 20대부터 연예계에서 후배들한테는 관대한 편[20]이지만 선배들한테 잘 까부는 스타일로 유명한데[21], 박중훈은 그가 신인 때도 영화를 함께 해서 그런지 박중훈 자체가 무서운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차태현이 그의 말 한 마디면 아예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 가장 무서워하는 선배라고 한다. 참고로 차태현은 영화 할렐루야투 가이즈에서 박중훈과 함께 연기를 했는데, 어쩐지 두 영화 모두 박중훈에게 두들겨 맞는 연기들로 유명하다.[22][23]

2017년 1월부터 자신이 출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의 제목을 본뜬 프로그램으로 KBS 제2라디오가 신설한 라디오 스타의 DJ를 맡게 됐다. 1990년에 DJ(KBS 2FM "박중훈의 인기가요"[24])를 맡은 이후 무려 27년 만에 DJ 마이크를 잡는 것. 그전에는 1988년에 KBS 제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DJ를 맡은 적도 있으니, KBS 제2라디오만 보면 29년 만의 복귀이다. 2018년 12월 31일까지 진행했다.#

5. 감독 데뷔

2013년 10월에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첫 연출작 제목은 톱스타. 엄태웅, 김민준, 소이현이 주연을 맡았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흥행은 하지 못했다. 2014년 중국에서 리메이크했다.

6. 기타

  • 성격이 굉장히 불같다. 화가 나면 엄청나게 무서운 사람으로 과거에 바이오맨을 촬영할 당시 신인 배우인 신미아[25]를 너무 무섭게 갈궜는데 이 때문에 신미아는 박중훈의 '박'자만 들어도 치를 떨었고[26][27] 바이오맨 관련 인터뷰 까불이로 소문난 차태현에게 엄청난 호통을 쳐서 차태현 역시 박중훈에게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 연예계에서도 재테크를 잘 한 케이스로, 수백억대 자산가다. 건물도 몇 개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단 박중훈은 80년대 후반부터 스타덤에 올랐고 90년대 투캅스이후 약 10년 동안 최정상급 배우중에 한 명이었다. 더군다나 개그감이나 말주변도 꽤 괜찮아서 예능에서도 항상 함께 하고 싶은 연예인중에 한 명이었고 덕택에 CF도 굉장히 많이 찍었다. OB 라거의 '라라라' CF는 역사에 남을 만한 CF였다. 본인이 말했다시피 그 절정의 인기 동안 찍은 CF의 개런티가 한 두푼도 아니었고 갯수도 적지 않아 꽤 많은 돈을 벌었고 자신은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펑펑 쓰지 않고 그냥 잘 모아두고 적당히 투자했기 때문에 부자가 된거라고 보는게 맞다. 서장훈과 어찌보면 비슷한 케이스다.
  • 신인시절 실제로는 1966년 3월 생인 자신이 학창시절 친구들은 1965년 3월~ 66년 2월생들이고 연기 생활하기에 너무 어려 보인다고 생각해 데뷔 직후 1964년생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동갑인 줄 알고 친구가 되었던 1964년생 최재성이 나중에 그가 1966년생인 걸 알게 되었으나 대인배의 마음으로 친구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박중훈은 자기 나이 40이 넘고 나서도 매우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1963년생인 김세준 역시 어찌된 영문인지[28] 처음에 박중훈이 1964년생이라고 하자 1살 차이인데 그냥 친구하자며 박중훈과 친구가 되었는데 이는 최재성의 경우보다 박중훈의 입장에서는 더 심각해 진 일이다. 훗날 결국 박중훈이 사실을 털어놓자 꼼짝없이 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박중훈은 선배 최재성은 물론 최재성과 절친했던 영화 감독 겸 배우 진유영(1957년생)과도 친분이 있어 내 사랑 동키호태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진유영은 고교얄개 등으로 이름을 알린 하이틴 스타였으나 인간시장 시리즈의 장총찬 역을 맡으며 성인 배우로 거듭났으며 이후 89 인간시장, 오! 하나님, 독재소공화국, 도둑과 시인 등의 작품을 직접 연출하기도 한 영화인. 최재성은 이장호의 외인구단, 사랑이 꽃피는 나무, 여명의 눈동자를 거치며 최고의 청춘 스타로 인기를 모으던 시절에 진유영, 박중훈과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태, 내 사랑 동키호태를 같이 했으며 진유영의 연출작 독재소공화국과 도둑과 시인에 출연하기도 했다.
  • 노회찬과 상당히 친한 사이인지라, 박중훈이 노회찬을 '회찬이 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회의원 당선 즈음인 2004년 소개받아서 알게되었다 하며, 또한 노회찬이 2008년 노원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노원역 및 그 근방에서 박중훈이 직접 노회찬의 선거 유세를 돕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박중훈이 노회찬을 따뜻하고 매우 좋은 형이라고 호평하고 있다.[29] 2018년 노회찬의 추모식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파일:찬2.jpg
  • 새롬 데이타맨에 투자해 100억원을 벌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 2014년에 시가 290억원짜리 빌딩을 구매했다.
  • 박중훈은 딱 1번, SBS 창사특집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 주인공 황일천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1993년 11월 초에서 1994년 1월 말까지 방영된 작품으로 박중훈, 이경영, 이창훈, 이기영, 성동일, 권해효, 오대규, 김의성, 박근형, 박영지 등이 출연했으며 베트남계 배우들을 출연시켜 리얼리티를 높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이 원작이고 극작가 이윤택이 극본을 담당한 작품이며 변우민, 최수종 등이 주인공 황일천 역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머나먼 쏭바강에 출연한 베트남계 프랑스 여배우 린 당 팜은 1993년 11월에 방영이 시작된 머나먼 쏭바강에 이어 1994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라이 따이한에 연속 출연, 한국배우 이창훈과 연이어 함께 연기하는 인연이 생기기도 했다. 린 당 팜은 까뜨린느 드뇌브 등이 출연한 1992년 개봉 영화 인도차이나에도 출연했다.
  • 대종상 시상식에 기획상 시상자로 나와서 동료 배우들 성대모사를 보여줘 시상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후에도 인터넷에서 꽤나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30] 아래 영상에서도 보이듯 성대모사 당한 본인들의 빵 터지는 반응도 볼거리다.
  • 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바로 전에 찍었던 영화와 같은 출연료를 불렀으나 이전 영화가 망한 관계로 출연료가 깎일 뻔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럼 지금 당장 주지 말고 영화에서의 내 연기를 보고 달라고 하여 한참 후에 결국 원하는 금액을 받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혹시 출연료를 사기당할까봐 촬영 기간 내내 캐릭터에 몰입을 못했다고 한다.
  • 허재용산고등학교-중앙대학교 동기 동문으로 절친이다.[31] 이 때문에 서로 친분이 깊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두 사람 다 유명한 주당이라서 같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대학교 시절 허재와 같이 실려갈 정도로 술을 마신 뒤 집에서 TV를 틀었다가 농구대잔치에 등장한 허재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 전유성과 묘하게 악연이 있는 사람이다. 박중훈이 배우 데뷔 전 KBS 젊음의 행진 통기타 오디션을 보려고 당시 심사위원이던 전유성 앞에서 준비해간 노래[32] 한 소절 부르기도 전에 "나가."라고 말해 박중훈을 잘라버렸다.[33] 박중훈을 영화 데뷔시킨 감독과의 만남에서 마침 전유성과 안면이 있던 감독이 박중훈을 전유성에게 소개하며 "이 친구 어떠냐"고 묻자 그 자리에서 "별론데요"라고 대답했었다. 훗날 박중훈이 배우로 대성한 뒤에 전유성에게 "그때 정말로 제가 별로라고 생각하셨어요?"라고 묻자 그때 전유성이 대답하기를 "나는 아직도 니가 왜 떴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 다만 이와는 별개로 서로 사이는 원만한 것인지 2019년 5월 11일 앞서 tvN 토크쇼 택시에 출연하고 자신의 SNS에 “전유성 선배님은 제가 영화 배우를 처음 할 때부터 정말 오랜 시간 격려해 주시고 많이 도와주신 분”이라며 “오늘 데뷔 50주년 기념 ‘전유성의 쇼쇼쇼’ 공연에서 ‘비와 당신’부르면서 축해드렸어요. 사회는 영자가”라는 글을 올린 뒤 전유성의 무대에 함께 선 이영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을 게시했다. #
  • 주진모가 슬럼프를 겪어 공백기에 빠져 있을 때 박중훈이 먼저 전화를 걸어서 "뭐하냐, 소주 한 잔 하자. 나와라"라며 불러내 같이 소주를 마시면서 "너만한 얼굴 없다"며 "네가 갖고 있는 능력 중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1/100도 안 된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아주 많이 남았으니 하나씩 천천히 보여주면 된다."며 주진모를 격려해 주고 틈틈이 용돈까지 쥐어주었다고 한다. # 이후 박중훈은 제주도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주진모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 주진모에 의하면 공백기 동안 자신을 외면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 국경없는 포차에 출연하여 수준급의 영어를 보여주었다. #
  • 2009년 초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박중훈쇼를 런칭했다가 4개월만에 폐지된 흑역사가 있다. 당시에는 데이비드 레터맨 쇼, 주병진쇼처럼 본인이 단독 호스트로 나와 1대 1로 대화하는 정통 토크쇼를 표방했었며 장동건, 김태희, 정우성, 김혜수, 심지어 3당 원내대표 특집으로 정치인[34]까지 나오는 등 보기드문 게스트를 섭외했으나 2000년대 말 당시 무릎팍도사 등 스피디한 토크쇼가 대세가 되는 흐름에 걸맞지 않은 프로라는 평가를 받고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결국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인 MC 체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박중훈이 고사하고 하차하면서 프로그램은 폐지. 이후 1년 뒤에 김승우의 이름을 걸고 나온 토크쇼는 다인 MC 체제를 도입해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3년 가까이 방송되면서 나름 흥행하는데 성공했다.

7. 출연 작품

7.1. 영화

{{{#!wiki style="margin: 0px -11px; color: #FFFFFF"
{{{#!folding Filmography
{{{#!wiki style="margin-bottom: -11px"
파일:깜보 포스터.jpg
파일:b0007603_4cb9cfb585772.jpg
파일:칠수와만수.jpg
파일:아스팔트위의동키호테.jpg
깜보
주연
1986.3.15
이황림 감독 / 제비 역
[[깜보|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
주연
1987.7.4
이규형 감독 / 철수 역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칠수와 만수
]]
주연
1988.11.26
박광수 감독 / 칠수 역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주연
1988.4.2
석래명 감독 / 호태 역
파일:내사랑동키호테.jpg]]
파일:attachment/바이오맨/bio1.jpg
파일:우묵배미의 사랑 재개봉 포스터.jpg
파일:그들도 우리처럼 포스터.jpg
[[|
내 사랑 동키호테
]]
주연
1989.4.1
석래명 감독 / 호태 역
[[|
바이오맨
]]
주연
1989.2.4
조명화,김청기 감독 / 도일 역
[[우묵배미의 사랑|
우묵배미의 사랑
]]
주연
1990.3.31
장선우 감독 / 배일도 역
[[그들도 우리처럼|
그들도 우리처럼
]]
주연
1990.11.10
박광수 감독 / 이성철 역
파일:external/www.kobis.or.kr/8db7bd5f0f984193b46946510335980b.jpg
파일:external/pds21.egloos.com/e0006522_574418b24032a.jpg
파일:144B2316-7612-4F3E-A56A-BF7BAAA6A67D.jpg
파일:마누라죽이기(포스터).jpg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주연
1990.12.29
이명세 감독 / 영민 역
[[투캅스#s-2|
투캅스
]]
주연
1993.12.18
강우석 감독 / 강민호 형사 역
[[게임의 법칙|
게임의 법칙
]]
주연
1994.9.17
장현수 감독 / 이용대 역
[[마누라 죽이기|
마누라 죽이기
]]
주연
1994.12.17
강우석 감독 / 박봉수 역
파일:MTYSOH2.jpg
파일:external/pds21.egloos.com/e0006522_57441981d8d0b.jpg
[[꼬리치는 남자|
꼬리치는 남자
]]
주연
1995.10.7
허동우 감독 / 재수 역
[[총잡이|
총잡이
]]
주연
1995.7.22
김의석 감독 / 대서 역
[[돈을 갖고 튀어라|
돈을 갖고 튀어라
]]
주연
1995.12.16
김상진 감독 / 천달수 역
투캅스2
주연
1996.4.27
강우석 감독 / 강민호 형사 역
파일:external/image.cine21.com/M0010055_.jpg
파일:external/ce4ed1b91c902fd607612be190df66791e6278a318c3132d24414938265b0f4a.jpg
파일:external/imgmovie.naver.com/A8347-00.jpg
[[깡패수업|
깡패수업
]]
주연
1996.12.21
김상진 감독 / 황성철 역
[[현상수배|
현상수배
]]
주연
1997.9.27
정흥순 감독 / 제이 킴/써니 초우 역
[[똑바로 살아라#s-2.2|
똑바로 살아라
]]
주연
1997.3.15
이상우 감독 / 마고봉 역
[[할렐루야(영화)|
할렐루야
]]
주연
1997.8.9
신승수 감독 / 양덕건 역
]]
]]
파일:external/image.cine21.com/105605_nowhe%5BS617,504-%5D.jpg
파일:영화불후의명작포스터.jpg
[[인연(영화)|
인연
]]
주연
1997.12.25
이황림 감독 / 증권회사 지훈 역
[[아메리칸 드래곤|
아메리칸 드래곤
]]
주연
1998.11.21
랠프 헤메커 감독 / ?역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주연
1999.7.31
이명세 감독 / 우영구 역
[[불후의 명작#s-2.2|
불후의 명작
]]
주연
2000.12.23
심광진 감독 / 김인기/삐에로 역
파일:세이예스.jpg]]
파일:찰리의진실.jpg]]
파일:황산벌.jpg
파일:external/d681b9c5aa2debaedfdceee3abf41c0c55f70bf62399b38dcb2c5ee928b11634.jpg
[[세이 예스|
세이 예스
]]
주연
2001.8.18
김성홍 감독 / 엠/M 역
[[찰리의 진실|
찰리의 진실
]]
주연
2003.1.10
조나단 드미 감독 / 이일상 역
[[황산벌(영화)|
황산벌
]]
주연
2003.10.17
이준익 감독 / 계백 역
[[투 가이즈|
투 가이즈
]]
주연
2004.7.9
박헌수 감독 / 박중태 역
}}}}}}}}} ||
<rowcolor=#FFFFFF,#DDDDDD> 년도 제목 배역 비고
1986년 깜보 제비 [35]
1987년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철수 [36]
됴화
1988년 칠수와 만수 장칠수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호태
지금은 양지
1989년 내 사랑 동키호테 호태
바이오맨 도일
애란
1990년 우묵배미의 사랑 배일도
그들도 우리처럼 이성철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영민
1993년 투캅스 강민호 형사
1994년 게임의 법칙 이용대
젊은 남자 스타 모델 특별출연
마누라 죽이기 박봉수
1995년 꼬리치는 남자 재수
총잡이 대서
돈을 갖고 튀어라 천달수
1996년 투캅스2 강민호 형사 [37]
깡패수업 황성철
1997년 체인지
현상수배 제이 킴/써니 초우
똑바로 살아라 마고봉
할렐루야 양덕건 [38]
인연 증권회사 지훈
1998년 아메리카 드래곤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우영구 형사 [39]
2000년 불후의 명작 김인기/삐에로
2001년 세이 예스 엠/M
2003년 찰리의 진실 이일상 [40]
황산벌 계백
2004년 투 가이즈 박중태
2005년 천군 청년 이순신
2006년 강적 형사 하성우
라디오 스타 최곤
2009년 해운대 김휘
2010년 내 깡패 같은 애인 오동철
2011년 달빛 길어올리기 필용
체포왕 황재성
아리아리 한국영화
2012년 영화판 본인
2013년 톱스타 감독

7.2. 드라마

7.3. 방송

8. 논란 및 사건 사고

  • 1994년 10월 대마초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났다. 박중훈은 자신이 연출한 영화 톱스타에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되면서 광고회사에 손해배상을 하느라 집이 가압류됐던 일화를 담기도 했다.
  • 2004년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면허가 취소됐다. 기사
  • 2021년 3월 28일 음주운전으로 다시 적발되었다.#기사 지인의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 대리기사를 보내고 본인이 직접 지하주차장까지 운전했다고 한다. 2021년 4월 16일 검찰에 송치되었다.#기사 2021년 6월 7일 벌금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

9. 수상 내역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7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깜보
1989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칠수와 만수
1990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우묵배미의 사랑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1991년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3년 SBS 스타상[41] 드라마 부문 최우수연기상 머나먼 쏭바강
1994년 대종상 남자인기상, 남우주연상[42] 투캅스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남우주연상[43] 게임의 법칙
1995년 인기스타상 마누라 죽이기
1996년 투캅스2, 돈을 갖고 튀어라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돈을 갖고 튀어라
1997년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깡패수업
1998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할렐루야
조세의 날 기념 재정경제부장관 표창
2000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프랑스도빌아시아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황금촬영상 최우수인기남우상
2005년 영화의 날 기념 올해의 영화인상 천군
2006년 춘사대상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라디오 스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44]
2007년 황금촬영상 심사위원 특별상
2010년 춘사대상영화제 심사위원 특별 연기상 내 깡패 같은 애인
2014년 뉴욕 아시아 영화제 연예인상


[1] 조기입학으로 1965년생과 함께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허재와 용산고 동기동창이다. 박중훈 본인이 자신의 나이를 칭하기를 범 65년생이라고.[2]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재일교포다. 뉴욕대학교 유학 당시에 만났다.[3] 한국과 일본 이중국적이었으며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한국에서 군복무했다. 기사[4] 새누리당(現.국민의힘) 서초을 前 국회의원(19대), 前 청와대 경제수석[5] 참고로 극중 후반부에 갑자기 철수가 머리를 박박 밀고 나오는데(극중 군대 입대 때문에) 실제로 박박 밀었던 거였다. 감독이나 제작진은 원래 가발을 씌우던지 하여 처리하려고 했더니 박중훈은 가발보다는 진짜로 밀어버리는 게 사실적이라고 하여 스스로 밀어버렸다고 한다.[6] 최연소 수상자.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7] 대한민국의 경우 스크린 쿼터제가 있어 어떠한 상영관이든 필수적으로 한국영화를 3개월이 좀 넘는 시간 동안 상영해야하는 상황인데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스크린 쿼터제는 매우 골치 아픈 제도 였다. 한국 영화는 대체적으로 인기가 바닥인지라 헐리우드 외화를 수입해다가 파는게 훨씬 이득인 상황이라 스크린 쿼터제로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 영화를 상영해야했다. 명량이 대한민국 최고 관객수를 굳건히 지키는 현실에도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80년대 90년대 한국 영화는 현재 케이블 TV에서 수없이 틀어주는 영화만도 못한 처지였다. 이에 대한 꼼수로 인기 없는 한국 영화를 두세편씩 모아서 한 편가격에 후려쳐서 보게 만드는게 스크린 쿼터제였다. 한편에 한편가격을 다 받으면 한국 영화는 틀어놓았는데 극장에 관객은 하나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덤핑 할인을 통해 관람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90년대 후반까지도 엄연히 존재했던 상영방식이다.[8] 평론가 이지혜는 90년대에 박제된 것 같았던 박중훈이 비로소 2000년대로 걸어 나온 느낌이다.라고 평가 할정도로 평론가들의 호평이 이어졌다.[9] 위의 언급된 한석규 역시 90년대 이후로는 이렇다 할 히트작 없이 하락세를 걷고 있었으나 SBS뿌리깊은 나무, 낭만닥터 김사부시리즈로 한동안 발을 들이지 않던 드라마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였고, TV쪽에서는 여전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10] TV 드라마에서는 손창민이 청춘 스타로 자리잡았다.[11] 특히 김지호가 호흡을 너무 잘 맞춰준 덕에 후속작 인연에서는 박중훈이 일부러 김지호로 골라뽑아 연기를 했을 정도였다.[12] 하지만 천군에서의 박중훈은 몸은 백수 이순신인데 대사는 양반의 대사를 하고 톤까지 1980~1990년대 톤으로 연기를 해서 사극에 약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심지어 박중훈의 시대는 갔다는 말까지 나왔다. 천군은 박중훈 뿐 아니라 황정민, 공효진의 연기도 밋밋한 부분이 있다. 극장흥행은 실패했지만 이후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볼만하다는 평이 많다. 그후 다행히도 2006년에 라디오 스타가 성공하여 커리어의 하락세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물론 라디오 스타도 캐릭터들과 주연 배우들의 처지가 싱크가 잘 맞아서 성공했다는 말이 있다.[13] 다만 이건 영화 자체가 워낙 연출 및 대본이 수준 이하인 점도 컸다.[14] 이때 자신의 연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던 듯하다.[15] 영화에 대한 평가도 좋았지만, 평론가들이 대체로 1990년대에 박제된거 같은 박중훈 연기가 드디어 시대에 맞게 바뀌었다는 평가를 했다.[16]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엄정화 역시 연기력을 인정받은 베테랑 배우지만 이 영화에선 그다지 좋지 못한 평을 받았다.[17] 초전자 바이오맨과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관계없다.[18] 이 광고가 방영되기 한 해 전인 1996년 여름에는 무함마드 깐수의 정체가 발각되었으며, 같은 해 가을에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있었고, 몇 달 뒤인 1997년 초에는 김정일의 처조카이자 탈북자인 이한영이 남파간첩에 의해 피살되는 등의 사건들로 인해 광고가 방영할 당시 간첩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꽤 높은 편이었고, 광고에서 이걸 개그 코드로 잘 승화시킨 덕분에 상당히 잘 먹혀 들어갔다.[19] 여담으로 이후 22년 뒤인 2019년에 박준형은 박중훈 대신에 김응수와 함께 OB 라거 CF를 찍었다.[20] 차태현과 같은 작품에 출연하고 나서 차태현을 좋아하고 따르게 된 후배들이 꽤 많다고.[21] 대표적으로 당했다는 사람은 박수홍김제동. 박수홍의 증언에 의하면 친해진 형들에게는 형이라고도 자주 안 부르고 그냥 "일루 와."라고 부른다고. 김제동도 자신이 제일 무서워하는 후배 두 명 중 한명으로 꼽을 정도. 자신을 동생 보듯이 얘기한다고 한다.[22] 특히 할렐루야는 차태현 역할이 부모 때문에 억지로 교회다니는 불량 고등학생, 박중훈이 착한 목사인척 하는 사기꾼이라, 맞는 장면도 불량학생이 목사를 우습게 보다가, 단둘이 있을때 함부로 행동하다가 목사가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서 후려 패는 장면이라 뭔가 선배한테 까불다 맞는 후배의 느낌과 흡사한 느낌이다.[23] 자세히 들어보면 맞는 연기 도중 차태현이 "형!형!"하고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영화에 삽입되었는데, 불량학생이 목사에게 갑자기 형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유튜브 댓글 중 촬영 중 진짜 아파서 박중훈에게 실제로 애걸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24] 이 프로그램에 몰래카메라로 정상에 등극하기 직전의 이경규가 개그를 담당하며 큰 활약을 했다.[25] 서울대학교 출신으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해 채시라와 함께 1980년대 최고의 여성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1990년 KBS 열전! 달리는 일요일에서 초대(初代) 열전용사에 등극하기도 했다. 1999년 배우에서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카레이서로 변신, 국내 최초 여성 포뮬러 카레이서로 유명세를 탔다. 지금은 현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자동차과 초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일뱅크 연예인 레이서부터 시작, 1999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8위에 오르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후 밀려오는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영국으로 떠나, 영국 짐러셀 포뮬러 드라이빙 스쿨 이수, 2000년에는 창원 인터텍에서 5위, 2001년 아시아국제자동차경주대회에서 5위 등을 차지하였다.[26] 원래 신미아는 상대역이 박중훈이라서 선뜻 바이오맨을 출연 계약한 거였는데, 촬영 중 그런 일이 있다 보니... 한국으로 돌아온 후 한 달 뒤에 덕수궁에서 마주쳤는데 큰 거리에서 박중훈과 안 마주치려고 빙 둘러서 갔다고 한다.[27] 이후 박중훈은 이 일을 회상하면서 자신이 신미아에게 너무 심하게 행동했음을 인정하면서 백배사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그녀에게 사과하였다.[28] 그가 사적으로 1964년생들과 친구인 적이 있어서 그냥 한살 차이인 1964년생 정도면 친구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29] 이외에 타 정치인과 유명 배우나 가수가 친분을 자랑하는 경우는 이명박-유인촌, 정몽준-김흥국, 지상욱-지석진-지상렬-지진희 등이 있다.[30] 후에 모 방송에 출연해서 한 이야기에 따르면 저 당시에 시상식이 하도 재미없게 흘러가서 보다 못한 안성기가 분위기 좀 띄워보라고 했다고 한다.[31] 단 박중훈이 재수하여 중앙대에 입학했으므로 대학교 기준으로는 허재가 1년 선배이다.[32] 1979년 대학가요제 대상곡 '내가'다.[33] 나중에 박중훈이 물어보니 전유성이 밝히기를 당시 워낙 많은 신청자가 있다 보니 조금이라도 안 되겠다 싶은 사람은 잘라버려야 해서 그랬다고 한다.[34] 홍준표, 박영선, 나경원 등이 출연했다. 참고로 박중훈은 민주노동당 출신 노회찬과 형 아우하던 사이.[35] 스크린 데뷔작[36] 1987년 방화 1위[37] 1996년 방화 1위[38]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카메오라는 용어를 사용한 작품으로 그 전까지는 찬조출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39] 본명은 우영민이지만 보통 영구라고 부른다. 냄비 받침으로 쓰는 표창장에 그의 본명이 적혀있다.[40] 할리우드 진출[41] SBS 연기대상의 전신.[42] 안성기와 공동수상.[43] 문성근과 공동수상.[44] 안성기와 공동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