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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1e2b,#ffffff><colcolor=#ffffff> 김흥국 金興國 | Kim Heung Guk | |
출생 | 1959년 5월 18일[1] ([age(1959-05-18)]세) |
서울특별시 성북구 번동[2]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3]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경주 김씨 (慶州 金氏)[4] |
신체 | 173cm|O형[5] |
가족 | 배우자 윤태영(1964년생) 아들 김동현(1991년생)[6][7] 딸 김주현(2001년생)[8] |
학력 | 서울화계국민학교 (졸업) 서라벌중학교 (졸업) 서라벌고등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 / 학사) 경희사이버대학교 (실용음악학 / 재학) |
경력 | 제5대 대한가수협회 회장 사단법인 대한민국 해병대전우회 부총재[9] |
직업 | 가수, 방송인 |
데뷔 | 1985년 1집 '떠나간 내님' |
소속사 | C&C 미디어, 리즈엔터테인먼트 |
별명 | 그저흥[10], 흥궈신, 흥켈메, 예능치트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철권 2대 킹, 젤다, 수사자[11], 들이대 총장, 인간빗자루[12], 59년 왕십리턴 |
병역 | 대한민국 해병대 병장 전역 (병 401기) |
종교 | 불교(법명: 운봉)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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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방송인이다.
2. 활동 내역
2.1. 가수
동영상서울 종로 낙원상가에서 하루하루 벌어먹는 무일푼 밴드로 음악가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밴드 이름은 '오대장성'으로 김흥국은 밴드의 드러머였다.[14] 라디오스타에서 한 회고에 따르면 어머니가 말하길 갓난아기 때부터 젓가락으로 식탁을 리듬감 있게 내리쳤다고 하며 예능이나 라디오에서 이 드러머 시절 이야기로 가끔 개그를 친다. 1985년 8월 10일에 서라벌레코드사에서 1집을 내고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무명시절인 1985년, KBS에 출연한 영상. 그때는 콧수염이 없었다.
1988년 2월 15일,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시대> '정아의 겨울일기(연출 정문종)'[15] 편에서 불치병에 걸린 소녀를 다루었는데, 작곡가인 그 소녀의 아버지와 친분 있는 무명가수로 처음 TV를 탔다. 김흥국은 그 에피소드에서 그 소녀를 격려하기 위해 "정아"라는 노래를 자작해 불렀다. 그 이후 이것 덕분에 TV에 신인 가수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상당히 조용한 분위기의 발라드로 김흥국의 대표곡인 호랑나비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이다. 김흥국은 늘 무대에서 담담한 표정에 분위기 잡고 통기타를 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안타깝게도 그 소녀는 1990년 경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89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 출연한 영상.
참고로 1989년 당시 그의 나이 30세.
이런 사연으로 방송을 타게 되었지만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것은 상당히 컬트적 느낌이 나는 댄스곡 "호랑나비"다. 호랑나비라는 노래 하나로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이후 그가 마르고 닳도록 예능에서 우려먹는 '10대 가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어린이 영화 반달가면으로 심형래와 함께 어린이계의 아이돌 자리에도 당당히 오르기도 했다. 이때부터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면서 예능인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흔들흔들 그 당시에 분장 자체가 꽤나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타잔 복장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호랑나비'와 같은 앨범에 수록된 후속곡으로 '흔들흔들'도 나름대로 히트를 쳤으며 이게 그의 몇 안 되는 CF 출연의 소재가 된다. 바로 삼립식품에서 런칭한 흔들흔들바.
광고 영상
호랑나비와 관계된 후일담이 있는데 원래 이 노래는 김흥국을 위하여 작곡된 노래가 아니었다. '논개'로 유명세를 탄 이동기가 1985년 발표하였는데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고 이후 김홍경이란 가수가 1987년에 리메이크하였다.[16] 하지만 두번 모두 알려지지 못하고 묻혔던 곡을 김흥국이 리메이크하자 비로소 알려졌다.
59년 왕십리 1992년 다음 앨범에서 '59년 왕십리'를 발표했는데 호랑나비와는 달리 제법 세련되고 지극히 제대로 된 콘셉트의 명곡이어서 꽤 호평을 받았다. 어느 정도냐면 이 노래를 처음 접하는 사람 중에는 김흥국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김흥국이 부른 게 맞냐?"는 반응도 있을 정도다. 물론 김흥국답지 못한 노래라고 까는 컬티스트들도 존재한다. 물론 이 노래도 처음부터 김흥국이 부른 노래가 아니다. 원래는 가수 김남화[17]가 1987년에 '왕십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노래로, 김흥국의 곡과 비교하면 가사 일부가 다르다. 이 곡은 스테디셀러의 표본이기도 한데, 가요톱텐의 10위 안쪽을 히트곡이라고 판단하던 그 당시에는 히트곡으로 인식이 되지 않았다. 왜냐면 15~30위권에서 몇달을 버틴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성적은 빌보드 연말차트로 환산하면 연말 순위 20~30위 정도는 충분히 된다. 짧게 1위를 했던 노래들의 취급이 이 정도이니 얼마나 가늘고 길게 갔는지 알 수 있다. 동년도에는 한국-미국-프랑스 합작 애니메이션 <털보아저씨와 꾸러기들>의 주제가를 불렀다.
내게 사랑이 오면 59년 왕십리에 이어서 1993년 김흥국은 또 멀쩡한 노래이자 몇 안 되는 히트곡인 '내게 사랑이 오면'을 발표한다. 골든앨범을 제외하면 4집 타이틀곡이지만, 트로트이자 멀쩡한 노래라서 인터넷 사용층에게는 인지도가 떨어진다.
이렇게 노래들로 다시 한 번 히트를 치고 베스트 앨범까지 내면서 1993년까지 가수 인생 최절정기를 달리던 도중, 1993년에 김건모의 레게곡 '핑계'가 큰 인기를 끌자[18] 나도 레게곡으로 한 번 떠보자며 '성인들을 위한 레게 음악'을 모토로 타이틀곡으로 '레게 파티'를 내세운 앨범인 Last Reggae를 1994년에 내놓게 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19]
1994년 Last Reggae | 2017년 레게의神 |
레게 파티 첫 시연 당시 레게 파티2 당시 앨범 재킷에 터번을 쓰고 춤을 추는 사진을 걸어 향후 무식개그로 한 획을 그을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레게는 자메이카의 음악이지만. 참고로 이 '레게파티'에서 랩 파트를 피처링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룹 룰라의 리더 이상민이다. 물론 이때는 듣보잡 신인시절인지라 앨범에 피처링 이름도 올리지 못 했다.(재발매반에서는 올림) 여담으로, 당시 앨범발표 직후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서 홍보를 했는데 위 앨범자켓과 동일한 중근동 스타일 복장에 신발은 중고등학생들이 신고 나오는 실내화를 신고 나왔다. '왜 실내화를 신으셨죠?'라고 진행자가 묻자 '의상비용 지출을 너무 많이 해서 신발에 쓸 돈이 안 남았다' 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렇게 당시에는 시원하게 망했지만. 그럼에도 레게 컨셉과 장르만큼은 제대로였다는 평과 함께 후에는 컨셉에 묻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시대를 앞서간, 내지는 시대를 잘못 만난 노래"로 재평가되었다. 실제로 쿤타, 스컬, 하하 등의 2000년대 이후 활발하게 활동 중인 현역 레게 가수들 사이에서도 레게파티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다. 결국 이 음반은 한참을 지나 2016년이 되어 비트볼 레코드에서 카세트 테이프와 10인치 바이닐로 복각발매되었다. 그것도 새로운 커버와 함께 발매되었다. 여담으로 레게파티의 킬링파트 부분인 기살어 기살어 이후 혀를 낼름거리는 파트는 엄청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가수라고 하는데 히트곡 중에서 59년 왕십리와 내게 사랑이 오면를 제외한 노래는 괴이하다 못해 전파송에 가깝다. 자작곡 '정아'나 본인의 경험담이 담긴 '59년 왕십리'를 보면 1절과 2절이 똑같다고 까일지언정 그렇게까지 음악적 능력이 없는 가수는 아니다. 첫 히트곡 호랑나비가 워낙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노래다 보니 이미지가 그쪽으로 굳었고 이후 발표한 곡들이 호랑나비 만큼 히트를 치지 못하자 계속 B급 감성의 코믹 댄스곡으로 밀다가 망가진 경우다.[20] 사실 레게파티 이후로도 김흥국은 월드컵용 싱글과 기존 대표곡에 신곡 한 두곡을 추가하는 형태일지언정 꾸준히 앨범을 내고 있으니 현역 가수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몇몇 트로트 곡들이 중장년층에게 인지도가 살짝 있는 것을 제외하면, 김흥국의 노래는 월드컵 시즌에도 반향을 못 일으키는 것이 현실일 뿐. 뭐 가수로서는 망가졌으나 아래 서술할 예능부분을 보면 예능에서 성공했으니 다행일지도 모른다. 꼭 가수의 길에서 계속 인정받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보컬 능력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개그맨 이미지를 감안하고 보면 의외로 괜찮다는 평이 꽤 나오지만, 상반되는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정찬우가 (예를 들어 컬투쇼 2015년 2월 10일, 2월 17일 방송에서처럼) 농담반 진담반으로 "형님 노래 못하신다"고 종종 언급하곤 하지만, 애초에 드러머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기도 하고 이후에도 가수로서 순수하게 가창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경우는 없었다. 다만 김흥국 특유의 허스키한 중저음 음색에 대해선 다수가 호평을 하는 편. 가창력 논란하고는 별개로 수십년 동안 음악 물을 먹은 사람답게 가요계의 동향에 밝은 편이다. 김흥국의 라디오 방송을 유심히 들어보면 흘러간 노래나 왕년의 유명 가수, 작곡가들에 대한 정보가 상당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워낙 인맥도 넓은 사람이라 요즘은 소식을 접하기 쉽지 않은 가수들의 근황을 전해주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독도로 날아간 호랑나비
2015년 8월 26일 인순이를 제치고 남진, 송대관, 태진아에 이어 임기 3년의 가수 협회장에 당선되었다.
쇼미더머니5에 길 팀의 보이비의 무대에 특별출연하였다. 말 한마디 안 했지만 무대 출연 자체로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원샷 2016년 6월에 김흥국, 바이브가 부른 원샷이라는 노래가 공개됐다.
2019년, 자메즈의 09년 왕십리에 피처링하였다.
2.2. CF
2.2.1. 대리운전 광고
대전, 세종, 충남 지역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대리운전 광고가 있다.[21] 10시간 버젼도 등장했다. # 본인의 전화위복이라 생각하면 상황이 오묘하게 재미있다. 하지만, 저녁 시간대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대리운전 광고가 그렇듯 수시로 8282 8282 광고를 해 대는데, 어쩌다 한두번 들어야 재밌지, 매일 매일 들이대고 그것도 후크송으로 귓 속으로 전화번호를 자꾸 우겨 넣어서 꽤 고통스럽다. 뭔가 칙칙하게 술에 쩔어오는 기분이라고. 이 광고 때문에 라디오를 끊은 사람이 제법 있다.
흐아! 김흥국이에요!
042-8282, 8282 대리운전!
042-8282, 8282 대리운전!
빨리 오니 불러봐! 8282 대리운전! (김흥국의!)
042-8282, 8282 대리운전!
흐아! 들이대~
042-8282, 8282 대리운전!
042-8282, 8282 대리운전!
빨리 오니 불러봐! 8282 대리운전! (김흥국의!)
042-8282, 8282 대리운전!
흐아! 들이대~
멜로디 자체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이었던 호호 아줌마의 주제가를 패러디한 듯하다.
재밌는 사실은, 이 광고의 화려한 피날레는 본인의 음주운전(2013)이라고. 광고는 14년, 15,16년에도 라디오에서 계속 나왔다고 한다.
사실 김흥국이 음주운전을 일으킨 후 이 광고는 김흥국의 목소리를 삭제하고 여성 목소리로 대체해 송출되었다. 시유라거나 TTS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 톤이 약간 나는 목소리였다. 이후 쥐도새도 모르게 부활했지만, 송출빈도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2017년에는 트위치 같은 인터넷 방송계에서 저배속부터 고배속까지 이어 붙여 놓은 영상이 도네이션 영상으로 계속 나오고 있다. 이유는 그저 중독적이라서. 여러가지 배속버젼도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는데 대표적으로 0.0625배속이 있다. 여기서 한술 더 뜬 0.015625배속도있다.
2018년 대전 라디오 방송 중간 광고로 나왔으며 오사플라워의 대표모델로 광고 출연 중이다.
위의 8282 대리운전과 함께 울산 지역 대리운전 업체인 둘둘 대리운전 광고도 출연한 바가 있다. 지역 영업구역이 달라 겹치기 출연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2.2.2. 그 외 광고 출연
- 몽실통통
- 무학 좋은데이
- 몽쉘
- 다꼬르 팝콘
- 롯데웰푸드 겟투
- SPC삼립 흔들흔들바
- 종이나라
- 롯데하이마트[22]
- 신한은행 써니뱅크[23]
- 쿠차
- 대웅제약 지미콜
- 아모레퍼시픽 리도청청
- 삼성카드 아하론 패스 카드
2.3. 예능
김흥국은 흔히 말하는 '그냥 기운 자체가 웃긴 사람'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그냥 평범한 멘트를 해도 웃긴 사람이라고...특유의 입담과 탁월한 예능감으로 어떤 예능에 출연해도 레전드 회차를 뽑아내는 일명 흥궈신, 예능치트키. 60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세대들이 많이 시청하는 예능에 출연하여 엄청난 인기를 받는 것은 젊은 예능인들도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인터넷 이외에도 평가가 매우 높으며 고정 게스트 A급 대우를 받는다.
어지간해서는 상대에게 리액션을 잘 안 하는 김구라가 김흥국 앞에서는 숨도 못 쉬고 폭소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김구라가 가장 선호하는 파트너이기도 한데, 김흥국이 본인의 특기인 통제할 수 없는 애드리브와 사차원 개그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김구라는 본인의 특기인 지식이나 진행에 더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흥국과 마냥 대등한 위치에서 방송하는 것만도 아닌데, 김흥국이 예측 불허의 사차원 공격을 퍼부으면 김구라는 반격도 제대로 못하고 당한다.
그에게 비슷한 클라스라고 들이댈 수 있는 사람은 전성기 신정환 뿐이었다.[24] 조금 스타일은 다르지만[25] 맥락없이 생각나는 말을 갑자기 지르는데, 그걸로 오히려 엄청 크게 터뜨린다는 데서는 일치한다. 대신 두 사람이 같은 방송에 함께 나오면 신정환이 김흥국에게 많이 밀렸다. 신정환의 예능감이 떨어진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둘 사이에 나이 차이, 데뷔 연차도 그렇고 주로 MC진이었던 신정환에 비해 한 두회 동안 모든 걸 다 쏟아붓는 게스트인 김흥국이 예능 프로에선 더 돋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신정환의 경우 그 날 컨디션에 따라서 기복이 많이 갈리는 반면에, 그는 어떤 게스트들과도 호흡이 잘 맞고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신들린 예능감을 보여주는 편이다. 뛰어난 친화력과 재치있는 입담이 한몫하는 것 같다. 그래도 동시 출연한 불후의 명곡에선 서브 MC에 가까웠던 신정환의 분량이 김흥국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도 있었다.[26] 김흥국과 비슷한 스타일의 예능감을 가진 사람으로는 이계인이 있다.
특히 김흥국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게스트와 방송을 해도 게스트를 살려준다는 점이다.[27] 특히 예능 프로그램 경험이 없는 게스트[28]나 대선배와의 방송을 어려워하는 아이돌 후배들과 함께 출연을 할 때 이 장점이 드러나는데, 김흥국이 먼저 적극적으로 대화를 걸고 리액션을 해주며 분량을 뽑아주고 후배들이 깐족대도 기분 나빠하기커녕 오히려 "들이대~." 하며 받아주기 때문에 분위기가 싸해지는 경우도 없다. 가끔 꼰대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장난일뿐 상대가 받아주지 못하면 깔끔하게 수긍하고 넘어가며 오히려 그 과정에서도 웃음 포인트를 끌어내 시청자들을 빵 터뜨리는 센스를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 김태원 편과 김경진, 김경식과 함께 나온 편. 김태원은 그를 예능계의 초능력자라고 평했다. 강호동조차 "30년 동안 '으아~' 하나만 했는데도 안 질려요."라며 대단함을 인정했을 정도. 무려 당시 10대 아이돌 가수인 현아의 섹시 콘셉트 노래에 춤을 춰주며 분위기를 살려준 적도 있는데, 다른 중년 남자 게스트에게 시켰다면 정색을 하며 끝까지 빼거나 화를 내서 통편집이 되었을 만한 장면이다. 허나 김흥국이었기에 분위기를 엄청나게 띄워준것이었다.
독특한 개그 방식 때문인지 특히 라디오 스타에서 포텐셜을 폭발시켰다. 1년에 한번씩은 꼭 나오는데 총합 8번으로 라스 최다출연 게스트이기도 하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전 시장과 함께 게스트로 나와서도 상반된 성향을 떠나 드립을 터트리기도 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김구라와 실시간 방송을 함께 하기도 하는데 예측불허의 막드립을 보여주며 여전한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다음팟 플레이어로 생방송을 보면 편집으로 거르지 않은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데 소통도 안 놓치는 편이고 반응이 좋은 편이다. 조세호가 프로불참러로 뜨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덕분에 같이 CF를 여러 편 찍었다.
2.4. 출연작
- 일밤 - 몰래카메라, 브레인 서바이버, 은밀하게 위대하게, 진짜사나이
- 공감토크쇼 놀러와
- 행복주식회사 - 만원의 행복
- TV는 사랑을 싣고
-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 가족오락관
- 이홍렬 박주미의 여유만만
- 행복채널
- 무한도전
- 상상플러스
- 불후의 명곡
- 황금알
- 붕어빵
- 전파견문록
- 퀴즈 천하통일
- MBC 가요콘서트
- 코미디하우스
- 음악의 신 / 음악의 신 2
- 웰컴 투 돈 월드
- 퍼펙트 싱어
- 세바퀴
-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
- 나 혼자 산다
- 우리동네 예체능
- 마이 리틀 텔레비전
- 런닝맨
- 쇼미더머니 5
-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 1 대 100
- 냉장고를 부탁해
- 너의 목소리가 보여
- 아빠본색
- 미운 우리 새끼
- 잘 먹는 소녀들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아내가 뿔났다
- 아이돌학교
- 스타쇼 원더풀데이
- 행복한 아침
- 밥은 먹고 다니냐?
2.4.1. 가족오락관
※ 손미나 아나운서가 진행한 회차는 굵게 표시. (13회 출연)- 1989년 12월 26일
- 1990년 7월 24일
- 1992년 10월 9일
- 1994년 5월 22일
- 1994년 10월 28일
- 1994년 12월 16일
- 1995년 3월 9일
- 1995년 5월 18일
- 1995년 8월 17일
- 1996년 11월 6일
- 1997년 4월 23일
- 1998년 1월 14일
- 1998년 5월 27일
- 1998년 6월 24일
- 1999년 1월 27일
- 1999년 5월 5일
- 1999년 6월 16일
- 1999년 8월 11일
- 1999년 9월 22일
- 1999년 11월 17일
- 2000년 4월 5일
- 2000년 8월 10일
- 2001년 1월 13일
- 2001년 10월 20일
- 2003년 8월 9일
- 2003년 11월 22일
- 2004년 4월 10일
- 2004년 11월 20일
- 2005년 3월 12일
- 2005년 7월 30일
- 2005년 9월 17일
- 2006년 6월 10일
- 2006년 11월 25일
- 2007년 6월 23일
- 2007년 12월 29일
- 2008년 4월 5일
- 2008년 7월 12일
- 2008년 9월 13일
- 2008년 12월 27일
3. 어록
터보의 노래 'Cyber Lover'를 씨버 러버[29]라고 하거나, UCLA 대학을 우크라 대학이라고 발언한 것.[30] 이에 대해 본인은 "내가 모르는 노래나 가수가 나오는데, 그냥 소리나는대로 읽었을 뿐이고, 실수가 있어야 재밌다"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 밖에도 다양한 레전드급 방송 실수담을 보유하고 있다.이와 관련해서 김흥국 이름으로 책도 나왔는데[31], 이름은 "김흥국의 우끼는 어록"이었다. 이 책에 의하면 원고가 없어서 나온 사고[32][33]나, 원고를 대충 봐서 나온 사고[34]가 대부분으로 적혀 있으며 대본을 건성으로 훑어보는 데다 노안이 심각해서 벌어진 일이 많다.
이렇고 저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크게 말실수와 반쯤 의도한 말장난으로 나뉜다.
- 말실수
- "남편분은 뭐하시죠?" - "(청취자)사별했어요" - "성격 차이였나요?" ('결별'과 혼동함)
- (1980년대 히트곡으로 알려진 차도균의 '철없는 아내[35]'란 곡을 소개하며) "이번 곡은 '털없는 아내'입니다." 그래놓고 "뭐 제목이 이래?" 되려 역정을 냈다.[36]
- "안녕하세요 조PD(가수)입니다" - "으아 내 노래 좀 많이 틀어줘~[37] 아니 왜 인순이 거만 그렇게 틀어준다 그래? 내거도 좀 틀어 줘봐~'" [38]
- (국악을 하는 세쌍둥이 자매를 소개하면서) "그런데 몇 살 터울이냐?"[39]
- (인간문화재 이은관을 초빙해서 소리도 듣고 대담도 하는 자리에서) "재미있고 멋지신데, 아 시간이 아깝네요."(시간이 부족하네요, 내지는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네요를 잘못 말한 것)
- (박미선 "노래 한 곡 듣고 가죠. 장윤정이 부릅니다.")" 어머니? ... 어머 ... 어머... 어머..."
- "샴쌍둥이의 분리수거가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분리 수술을 잘못 말함)
- "오늘은 10월 1일, 광복절입니다."[40]
- 김구라가 "그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보세요"라고 물어보자 "나 그림 못그려" 라고 대답했다.
- 가수 거미의 노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자, 다음 노래는 친구가 부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41][42]
- (네덜란드에는 손가락 하나로 나라를 지킨 소년이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박미선이 "우리나라에도 그런 소년이 있지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으아~ 이승만 어린이!!" (이승복 어린이를 잘못 말한 것이었다.)
- (외국물자 수입과 관련해서) 박미선 - "우리나라에도 붓통에 목화씨를 들여온 사람 있잖아요") "으아~ 문익환~!"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어느 시인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박미선: "그게 누군지 아시나요?") "그, 저~ 네프킨 아닌가요?"
- (방송국에서 길을 걷다가 만나서 먼저 인사를 한 쥬얼리와 자두에게) "쥬얼리양", "자두양"이라고 불렀다[43]
-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장애인 여러분 축하합니다."[44]
- "독도는 우리 땅! 마라도도 우리땅!"[45]
- (음치 여자가 노래교정을 받는 코너인데 노래를 너무 못하자) "으아~ 날씨가 나빠요~ 날씨탓으로 돌리고 싶네요~ 반주는 나가고 있죠?"
- (출산 시에는 제왕절개보다는 자연분만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던중) "그럼 박미선 씨도 자연유산이에요?"
- (정선희와 진행하던 특급작전에서 청취자가 신곡을 들려 달라고 하자)"으아, 아직 가사를 다 못 외웠어요"[46]
- (아부나 로비로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하던 중) "요새 왜 손 비비면서 아부하는 사람이 많은 지 모르겠어요. 정직하게 살지 왜 그렇게 살아요? 그렇게 비비다 보면 손가락 문신이 다 지워질 거에요." - 지문을 문신이라고 잘못 말한 것이다.
- (미국 유학 중인 아들을 만나러 가서 한인방송에 출연했을 때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소개하며) "방탄조끼가 부릅니다"[47]
- (2016년 설날 라디오 방송에서 상품 LED 텔레비전을 소개하며) '상품은 레드 텔레비전입니다.'
- 라디오스타에서 자신의 막내딸의 영어 실력 자랑을 하면서 "거의 뭐... 원주민 발음이죠." (원어민을 잘못 말함)
- (출연자들이 EXO[48]의 으르렁을 다함께 부르기 시작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따르릉 따르릉".
- 성균관 스캔들에서 송중기의 유행어였던 나 구용하야를 나 박용하야라고 말하는 바람에 성균관 스캔들 팬들과 드라마 갤러리 등지에서 까였다.[49]
-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게스트로 나왔을 때는 백종원을 백종호라고 말한 적도 있다.
- 말장난
- 라디오스타에서 윤종신이 "호랑나비는 굉장히 진보적인 음악이에요"라고 하자, "난 보수인데? 나 진보 아니야!"[50]
- (EXO의 으르렁을 듣고)"무슨 호랑이가 나타났냐. 노래 제목이 '으르렁'이냐. 무슨 동물 노래냐"
- (뮤지를 만난 자리에서 뮤지가 자기소개를 한 뒤에)"이름이 묘지야?"[51]
- (2015년 4월 27일 두시탈출 컬투쇼 생방송 중 보낸 문자)"어, 묘지 나왔네?"[52]
- 함께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부선이 자꾸 괴롭히자 "너 아직도 약해?"[53]
- 복면가왕 판정단으로 출연한 유아의 이름을 몰라서 신봉선이 가르쳐 주자 "어 난 으아야!" 라고 대꾸했다.[54] 당시 모든 연예인 판정단, MC 김성주, 복면가수 양궁소녀, 일반인 판정단까지 모든 사람들이 그야말로 빵 터졌다. 직후 김성주가 "으아 옆에 앉아 계신 유아님." 이라고 받아서 김흥국의 애드립을 살려준다. 이후 유아가 양궁소녀가 하는 개인기가 오마이걸 멤버들이 하는거라고 하면서 자기 맴버가 아닌가 의심하고 김성주가 "만약에 이분이 오마이걸인데 유아씨가 못 맞히시면." 이라고 하자 끼어 들어서 "못 맞히면 오마이갓, 맞히면 오마이걸." 이라고 애드립을 쳤다. 이 오마이갓 오마이걸 드립은 오마이걸 팬클럽인 미라클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 무대에 설 기회가 없다는 말에 김구라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한번 나가보라고 하자 "난 그림 못 그려."
- 음악의 신에 심사위원으로 게스트 출연했는데 참가자가 "엄~ 마~"라는 가사가 있는 노래를 부르자 "효잡니까?" 라고 물었다. 그 와중에 해당 참가자도 "아니요." 라고 답했다.(...)
- 1대100에 출연했을 때 문제 중 하나가 "다음중 하의실종은?"이었는데 김흥국은 당황해서 조우종 아나운서에게 "왜 실종된 거죠?" 하고 "이건 우리 어린 친구들이 좋아할 문제인데 왜 나한테 들이대요?" 그리고 조우종이 "이거 뭔지 아세요?라고 묻자 "돼지같은데?" 그리고 이건 아세요?라고 묻자 "아는 동물이야"
- 적과의 동침에서 스피드퀴즈 정답으로 손석희가 나오자 "이번에 내란음모랑 비슷해 이름이!"
- 출발 드림팀에서 눈썰매장에서 하는 팀대결에 앞서 이창명이 김흥국 소속팀이 지면 어떤 벌칙을 수행하겠냐고 하자, "아 좋아, 지면 이 눈썰매장 눈 다 치우고 갈게요."
- 김구라의 늦둥이 딸 돌잔치에 가서 "구라야, 얘가 올해 몇살이냐?" 라고 물었다고 한다.
- 김건모의 히트곡들(미안해요 등)을 언급하며 칭찬할 때 김건모가 한 곡 불러보라고 부탁하자, 김흥국 왈, "아 정말 미안해요."
- 꼰대희에서 밝히길, 가수 비가 오자 김흥국 왈, "그럼 난 눈이야!" 그것 말고도 꼰대희가 캐롤 하나 내라고 권유하자 "나 불자야."
4. 인맥
친화력이 뛰어나고 특유의 입담 때문인지 인맥이 상당히 넓다. 불교, 해병대, 그리고 축구[55] 세 가지 부분에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이쪽으로 인맥이 많다.- 열혈 축빠로 유명해서 FIFA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응원단을 이끌면서 대한축구협회장이었던 정몽준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 때문에 정몽준의 각종 정치활동에도 따라다니면서 보수성향이 알려지게 된다. 정몽준과는 매우 친한 관계로 썰전에서 정몽준의 인맥에 대해 다루었을 때도 김흥국이 거론이 됐었고, 김흥국과 친분이 있던 김구라와의 통화에서도 그저께도 만났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개인적으로도 자주 만나는 듯 하다.
1997년 음주운전 사건을 일으켰을 때에도 축구모임 회원 2명과 서초동에 위치한 단란주점에서 양주 1병을 나눠 마시고 귀가하던 길이었다고 한다.# 2008년 만원의 행복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홍명보와도 친분이 있는 듯 하다. 김흥국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자비로 응원단을 만들어 원정응원을 온 것을 보고 홍명보가 감동을 받았다고. 당시 평가전을 보러 갔던 김흥국이 하프타임 때 경기를 관람하던 홍명보에게 다가가 자연스레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 해병대의 경우, 당시 육군보다 기간이 짧아서 그냥 별 생각 없이 갔다온 거라는 둥 하면서 마치 지원해서 입대한 것처럼 인터뷰 등에선 말하지만 실제로는 지원한 게 아니라 해병대에 무작위로 징집당해서 간 거였다. 즉 랜덤으로 당첨된 거다. 김흥국의 기수인 401기는 해병대 서울 지역 징집기수다. 예전 해병대는 지원자가 많지 않아서, 홀수/짝수 기수별로 번갈아서 징집기수와 지원기수로 나눠져 있었다.
뜨기 전 무명가수 시절엔 사회에서 해병대 출신들을 만나면 자기 기수를 수십 기수나 높이며 속여서 한참 선배 해병들한테도 오히려 존칭과 선배 대접을 받고 다니기도 했다는 게 해병대 커뮤니티에서 폭로된 바도 있다. 게다가 남들 다가는 군대였는데 유독 해병대 부심을 부리며 마치 특수부대라도 다녀온 것처럼 허풍을 치며 떠벌려대서 그에 대한 대부분 군필 남성들의 인식도 영 좋지 않다. 사실 이런 과도한 군부심으로 인한 구라허풍과 허세 부리기는 비단 김흥국 뿐 아니라 많은 해병대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56] 이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김흥국과 친해진 가수 이정이 김흥국의 권유에 따라 2008년에 해병대로 입대했고[57] 군 복무를 마쳤다. 이게 인연이 되어서 두 사람이 함께 남자의 자격에도 출연한 바가 있으며, 김흥국은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의 내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2024년 3월 12일자로 해병대전우회 부총재직에서 해촉되었다. 해병대전우회 측은 김흥국의 후술할 정당 공개지지 및 선거유세 활동에 대해 정치적 중립 준수를 권고했는데, 이에 김흥국이 자진사퇴하였다고 한다.노컷뉴스
- 대한가수협회 전임 협회장인 태진아와도 매우 친하기로 유명하다. 태진아가 협회장을 해오다가 후임으로 협회장이 된 것이 바로 김흥국이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도 보듯이 김흥국이 자신보다 무려 6살이나 형님인 태진아에게 깍듯이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5. 축빠
유명한 축빠이다. 그냥 축빠 정도가 아니라 축구매니아 = 김흥국으로 정리 가능한 수준의 자타공인 축빠. 유소년 때 화계초등학교에서 축구를 했었으며, 연예인으로 인기를 얻고 나서부터 월드컵 때마다 항상 연예인 응원단을 조직해서 원정 응원을 해왔다. 연예인으로 인기를 얻은 게 1989년이고, 그 다음해인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때부터 자비로 원정응원단을 조직해 월드컵 원정경기에 꽹과리 치면서 응원을 주도했다.[59] 시기로 치면 붉은 악마보다도 먼저 활동한 셈. 그리고 월드컵 송을 발표하는 것도 김흥국이 최초라서, 1995년에 이미 2002 월드컵 코리아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매 월드컵마다 월드컵 송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종종 월드컵 경기에서 관중석이 비쳐질 때 그가 보이곤 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0:5로 참패할 때도 그가 안타까운 얼굴로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게 방송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다만, 그 성격이나 원조축빠라는 부심 때문인지 올드 축구팬과 현재 붉은 악마와는 매우 사이가 안좋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오리 연예인 축구단"이 국대 경기 응원의 중심에 서야 한다며 붉은 악마 지도부와 충돌하기도 했고, 이때 폭언과 폭행을 했다는 설도 있었다. 붉은 악마 초창기인 1997년 당시 해외에서까지 붉은 악마 지도부와 충돌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예선전부터 응원단인 붉은 악마들을 정몽준과의 커넥션을 이용해서 홀대를 하기도 했다. 이유는 붉은 악마측에서 리딩을 맡긴다고 했었는데도, 자신을 중심에 놓지 않고 무슨 응원을 하냐고. 하여튼 이런 일로 하얀 천사라는 응원단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잘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검색하면 특정 종교 응원단 관련만 나온다. 이때문에 붉은 악마 관련 서포터들에게도 축구와 서포터를 통하여 자기가 무슨 권력자인지 아는 위선자라고 엄청나게 비난받았으며 이후 정몽준과 정치적 공천 문제로 보도될 때 정몽준에게 굽신거리며 공천을 부탁할 인물이라고 비난받았다.
2020년대 들어서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당시의 축구를 그리워하는지 다소 옛날식 축구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현대축구를 따라가려는 파울루 벤투 감독에 대해 간간히 못마땅해하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2010년 6월 12일 대한민국과 그리스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를 현지에서 관람하다 응원용 나팔 부부젤라를 불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의외로 부부젤라를 제대로 불려면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극비리에 숙소에서 특훈까지 해서 응원을 했다고 한다.
2010년 6월 26일 16강 진출 기념 & 8강 진출 기원으로 수염을 깎았다. 하지만 16강에서 바로 좌절되었으므로 이번 월드컵의 최대의 피해자 중 한 명이라면 한 명이라 할 수 있겠다.
축구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축구 실력도 상당히 뛰어나서 조기축구계의 지네딘 지단이라 불릴 정도의 실력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김흥국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창시절 내내 학교 축구부 선수였던, 엄연한 축구선수 출신이다. 아래 움짤에도 나오지만 등번호는 본인이 태어난 년도에서 따온 59번을 주로 쓴다.
또한 만원의 행복 출연 당시 일본 연예인 대표팀과 친선 축구경기가 있었는데 돌발미션으로 미드필더 포지션인 김흥국에게 1골 1어시를 주문했는데 미션 클리어 하면서 500원을 획득했다.
결국 피파 온라인 3에 만우절 이벤트로 등장 확정. 티저 이미지에 굉장히 짜리몽땅한 실루엣이 나오자 유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김흥국의 실루엣이라는 걸 발견해냈다.[60] 선수 실루엣 이미지 쓸 게 없어서 아무거나 쓴 거 아니냐는 걱정도 잠시, 티저 동영상이 발표되자 59번을 달고 왕십리턴을 하는 김흥국의 모습이 공개되며 유저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금카도 있는 듯하며, 3일 간 선수 팩으로 지급된다고 한다.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하여 자신이 왜 흥켈메라 불리는지 증명하였다.
심지어 유명 축구선수들만 갖고 있다는 스페셜 영상마저 존재할 정도. 흥켈메 스페셜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의 깊은 축구 사랑도 같이 느낄 수 있다.
이영표 등 한국 축구계 주요 인사들과도 친분이 있으며, 2021년 K리그1 강원 FC의 홈 개막전에도 참석해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이때 이후에도 강원FC경기를 많이 직관했고 2023년 7월 7일 강원FC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2002년에는 <김흥국의 축구이야기> 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1996년 마라도나 방한 당시 마라도나와 같이 게임을 뛰었다.
6. 김포시 홍보대사
2015년 수십년간 살았던 서초구 잠원동 집을 팔고, 돌연 경기도 김포시로 이사간다. 방송국이 있는 일산서구와 상암동에서 가까운 직주 근접성 때문에 김포로 옮긴 것으로 보이지만, 부동산 가치가 어마어마한 강남 아파트를 팔고, 김포 아파트를 매입해 이사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상식과는 정반대인 파격적인 결정으로 꼽힌다.[61] 근데 하필 이사 간 김포 아파트가 인조축구장 딸린 걸포중앙공원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라 축구장 보고 이사했다는 썰도 있다.아무튼 강남에서 김포로 역이주 했다는 점에 호감이미지가 더해져, 김포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김포시 및 김포시민축구단의 홍보대사로 임명된다. 김포시 걸포중앙공원에서 대한가수협회 주최 행사를 열기도 하였다.
김포로 이사가자마자 본인의 아파트 조기축구회에 가입했는데, 특유의 친화력으로 금세 김포지역 인맥을 구축하였고, 급기야 그 인맥 중 하나가 김흥국의 이름을 내건 낙지요리집(들이대 낙지)을 김포에 개업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김흥국이 방송에 출연하면 그 낙지요리집이 자주 언급되며 그곳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비자문제로 딸 김주현의 미국 유학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면서 기러기 생활이 청산되나했지만, 김주현이 반포에 있는 국제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또 다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박원순 서울특별시장과 같이 출연했을 때, 박원순의 당선 때문에 이사간 거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7. 정몽준과의 친분
정몽준과의 친분,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보수성향으로 유명하다.[63]
그래서 한나라당의 절대 우세가 예상되던 2008년 총선 때 정몽준을 등에 업고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김흥국이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인터넷 각 사이트마다 비웃으면서 조소하는 여론이 돌았고, 이는 김흥국의 후견인 정도로 알려진 정몽준에게 정말로 손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정몽준이 주저 앉혔다는 말도 나왔다.[64]
그때 자신이 출마를 하지 못한 이유로 대표적인 친노 연예인으로 유명한 명계남을 탓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국회의원 출마를 개그로 승화시키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김흥국 본인은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스스로는 모든 프로그램을 쉬어야 한다는 이유로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흥국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사실 궤변이나 다름없는 게 정작 명계남은 노무현 지지만 했을 뿐, 본인이 스스로 정계진출 선언을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각으로 입각을 한 것도 아니고 선거 출마를 한 적도 전혀 없다.[65] 김흥국이 정계 진출에 생각이 있었다면 무소속으로라도 출마를 하고 정몽준의 지지를 부탁하면 되는 상황인데 애꿏은 명계남을 탓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명계남이 김흥국에게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 있는 공천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공천을 못 받도록 방해를 한 것도 더더욱 아니다. 자신이 부족해서 출마하지 못한 주제에 남 탓이나 하는 것이다.
결국 솔직히 말하자면, 김흥국이 후보로 보기엔 그냥 여러모로 깜냥이 안 돼서 공천을 못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같은 연예계에서 활약하는 문성근은 낙선했지만, 어쨌든 간에 부산에서 공천을 받고 선거에 출마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흥국이 정계 진출에 관심이 있어서 정몽준의 뒷배경을 바라고 있었다면 가족들이야 반대를 했더라도 주변에서 어느 누가 방해할 사람도 없었으니 당선되든 낙선되든 간에 먼저 한나라당에 입당을 하고 경선에 참여해서 당당하게 경쟁자들을 이기고 지지를 받아 공천을 얻어낸 뒤 선거에 출마하면 되는 거였다. 당장에 가족들이 반대하는 것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으니 공천을 받을만한 배짱도 없었던 것이다.
그 뒤에도 2011년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에 나와서 박상원[66]과 함께 투표를 호소하기도 했고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가 출마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을 선거구에 정몽준과 함께 유세현장에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강재섭은 결국 손학규에게 패배하면서 이른바 '분당대첩'의 희생양이 되고 의원 선수를 5선에서 더 추가하는 데 실패하고 정계에서 은퇴해버렸다.
한편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정몽준에게 노무현 지지 철회를 강하게 밀어붙인 사람이 김흥국이었다고 한다.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면 16대 대선 하루 전날인 2002년 12월 18일 저녁 9시 정몽준이 전격적으로 노무현 지지 철회를 선언하고 자택으로 들어가버렸을 때 같이 따라 들어간 극소수의 최측근에 김흥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김흥국은 문화예술특별보좌관이란 직함을 달고 선거기간 내내 정몽준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정몽준의 결정에 누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여태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공식적으로 자기가 주장했다고 이야기한 이는 김흥국이 유일하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인물들은 대부분 아무런 말도 안 하면서 침묵하고 있다.
사실 2002년 12월 노무현 지지 철회는 정몽준의 정치적 경력을 사실상 끝장내버렸다고 해야 할, 정몽준 정치인생 최대의 패착이었다. 그대로 하루만 더 가만히 있었다면, 참여정부에서 사실상 2인자의 입지를 차지하면서 차기, 또는 차차기 대선주자 중에서 명확한 두각을 드러낼 가능성이 농후했는데 지지 철회로 그 모든 것을 날려버린 것.[67] 게다가 기껏 후보 단일화에 참여하여 노무현을 지지한다고 선언해놓고서는 선거 하루전에 뒤통수를 쳤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까지 얻고 만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정치인이라면 설령 정말 노무현 지지 철회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하더라도 그걸 대놓고 이야기를 할 리가 없다. 대체 왜 자기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서 자기 계파의 보스의 정치경력을 망가트렸다'는 걸 숨기진 못할지언정 자랑까지 하겠는가? 다만 정치인이 아닌 연예인 김흥국은 앞으로의 정계진출 계획이 없는 이상 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도 없으므로 마침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는 김에 "아 그거 내가 했어요." 라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 삼을 수는 있는 것이다.
이 건에 있어 정몽준, 노무현 측은 지금도 침묵하지만, 후보단일화 협상을 위해서 아예 국민통합 21로 당적을 옮긴 김민석은 15년이 지난 2016년 9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서 그 때 상황을 스스로 밝혔다. 다만 노무현과의 통합을 주장했던 김민석은 당시 정몽준과 사이가 멀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몽준과 최후에 함께한 최측근에 들어가지 못 했기 때문에 마지막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마지막 선언 이전까지 김흥국이 정몽준의 옆에 붙어다니면서 단일화를 파기해야 한다면서 열변을 토했다고 증언하였다. 즉, 김흥국이 방송에서 떠드는 것은 사실이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2008년에 이어서 2015년 4월 15일 MBC 라디오스타에 다시 한번 출연하게 되는데, 이 때는 배우 김부선과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김부선은 2012년부터 난방비 분쟁 등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진보가 아니냐는 여론이 있던 상황이었다.[68] 이에 라디오스타 MC들은 나란히 앉아있던 김흥국과 김부선에 대해 '보수 대 진보'라는 정치 프레임을 씌워서 놀리기도 했다.
서울특별시장 선거 때 정몽준이 떨어지자, "서울 떠나야겠다."고 해피투게더에서 말했는데,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2016년, 진짜 서울을 떠나 경기도 김포시로 이사가는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69] 정몽준이 떨어져서 서울을 떠난 게 농담인 건 그가 박원순이랑 친분도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농담이다. 같이 라디오 스타 나왔을 때 박원순이 정몽준이랑 친분있다고 얘기한 순간부터 태도가 돌변하며 시장님 재밌는 분이라며, 박장대소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70]
8. 정치 성향
김흥국/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에서는 MB정부에서 연예인 블랙리스트 물타기 용으로 토사구팽 당하였다고 나와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능과 유튜브 등을 통해 꾸준히 자신의 정치성향이 보수우파임을 드러내왔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의 유세지원에 참여하였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미래통합당 소속은 아니지만 공천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에 출마한 보수성향의 김태호 후보를 지원하였다.2015년 4월 15일 방영된 라디오스타에서는 출연진이 자신의 히트곡 호랑나비가 '코리안 프로그레시브' 즉 진보적인 음악이라고 평가하자 "나 보수인데 나 진보 아니야 보수야 난 진보 아니야 보수야"라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2021년 12월 31일 공개된 구라철 영상에서 새해 일출을 같이 보고 싶은 스타를 고르라는 김구라의 질문[71]에 박근혜를 선택했으며, 새해에 받고 싶은 선물을 고르라는 다음 질문[72]에 역시 박근혜 석방을 선택하였다.# 첫 번째 질문에는 보수우파라면 탄핵의 강을 이미 건넌 시점에서 박근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테지만 두 번째 질문에서는 본인이 자타가 공인하는 축빠이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비롯해 이어 치러진 재보궐선거에 여러 차례 출마하려고 했던만큼 정치적 야망도 있었던 데다 특정인 석방보다 정권교체가 압도적인 대의임에도 박근혜 석방을 선택한 것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를 보고 우리공화당 조원진은 김흥국이 자신의 친구라고 밝히며 박근혜 석방을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임혁, 김종국[73], 배영만, 독고영재, 조영구, 정동남, 장미화, 박일남, 송기윤[74], 최준용[75] 등 다수의 연예인들과 함께 국민의힘 국민스타유세단에 참여, 전국을 순회하며 유세활동을 펼쳐 윤석열 후보의 당선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선 이후인 4월 8일 국민스타유세단 소속 연예인 20여 명과 함께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무실을 찾아 윤석열 당선인과 45분 간 차담회를 가졌고, 기자들의 질문에 "앞으로의 5년이 행복할 것 같다"면서 뿌듯함을 표시했으며# 당선인과 함께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도 공개되었다.#
문제는 자신의 해병대 후배가 순직한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에 관련해 해병대전우회가 공식으로 도움을 요청했으나, 핸드폰만 보면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예비역전우회장의 말에 따르면 경례를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인사만 해줬다고. 이 때문에 해병대전우회 부총재직에서도 짤렸다고 한다. 다만 김흥국 본인은 해촉된 게 아니라, 해병대 정관이 정치에 가담하면 안 된다는 내용 때문에 자기가 스스로 나갔다고 주장한다.# 이후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에 대해 침묵한다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 "뭐가 옳은지 생각해야지 무턱대고 하느냐"고 반박하며 "채상병 외에 2명의 해병은 살아서 왔는데 힘들게 살아온 2명은 왜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가"라는 궤변을 덧붙였다. [76]
최근에 용산구에 위치한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창문에서 대통령실이 보여 매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에게 충성을 외치며 경례한다고 한다.
건국전쟁의 흥행을 보고 아예 영화사 '흥 픽쳐스'를 세워, 박정희와 육영수에 대한 다큐멘터리 그리고 목련이 필때면을 만들겠다고 했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준호와 신현준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정신업쇼'에 출연해 '이번 총선에서 한동훈 위원장과 함께 다니고 싶다'며 다시 한 번 총선 선거지원에 나설 것을 시사하였고, 서울 동작구 을 나경원, 서대문구 을 박진, 경기 남양주시 갑 유낙준 후보 개소식에 참석하며 선거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77]
[뉴스 '꾹'] "섭섭하다 했더니 전화 쇄도".."야단맞았나" 김흥국 '어리둥절' |
그러나 정작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본인에게 밥 한 끼 사주지 않는다며, 그리고 "우파 연예인들은 목숨 걸고 도와 주는데, 우파 정치인들은 그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면서 정계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다만 최근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 당선자와 낙선자를 가리지 않고 갑자기 다량으로 연락이 들어오는 상황이라고.#1, #2
이후 5월 30일에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저녁식사를 했다고 한다. 한동훈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고 하며, 종로의 한정식 식당에 가서 식사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한동훈 위원장은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콜라 한병을 먹었다고 하며 자신은 막걸리 한병을 했다고 한다.
6월 4일에는 황우여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열린 국민의힘 총선 지원 연예인 자원봉사단 간담회에 참석해서 같이 참석한 연예인들과 같이 감사패를 받았다.#
2024년 7월 23일 열리는 국민의힘/제4차 전당대회에서는 한동훈 후보를 지지선언했다.
2024년 광복절에 김흥국이 제작에 참여한 그리고 목련이 필때면이 개봉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도 악평할 정도로 평가가 안 좋다.
2024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조전혁 서울교육감 후보 유세장에도 나타났다.[78]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이후, 해병대전우회에서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자, 한 네티즌이 김흥국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너나 잘해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본인이 정치성향을 엄청나게 밝혀대놓고, 난 가수인데 우파 꼬리표 붙여놓고 인신공격이 너무 심하다는
9. 소속 정당
<rowcolor=#fff> 소속 | 기간 | 비고 |
| 1997 - 2002 | 입당[80]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02 | 탈당[81] |
[[국민통합21|]] | 2002 - 2004 | 창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04 - 현재 | 정당 해산 |
10. 논란 및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김흥국/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11. 여담
- 김흥국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은 단연 콧수염이다. 데뷔 신인시절에 콧수염을 기른 채 활동했는데[82], 아버지께서 생전에 콧수염을 기르셨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고자 젊은 시절부터 콧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하지만 잠깐 콧수염을 깎은 적이 있는데, 그게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올라간 일 때문이었다. 김흥국은 한국이 16강에 가면 콧수염을 밀겠다고 했으며, 한국이 조 2위로 진짜 16강에 오르자 콧수염을 밀었다. 그 이후 다시 콧수염을 길렀다. 콧수염이 워낙 강렬한 이미지였고,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김흥국 하면 그 '콧수염'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과거 개그가요제를 했을 때 같은 콧수염 연예인들인 배철수, 배칠수 등과 같이 의기투합해서 '코털스'라는 밴드를 결성해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콧수염이 워낙 강렬해서 이젠 그 별명을 딸에게 물려주는 지경까지 갔다. 1990년대에는 박상민과 함께 콧수염 가수 투 톱으로 인지도가 많았다.
- 2002 FIFA 월드컵 한국 일본이 열리기 전에 월드컵 한국 유치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한 사찰에서 무려 2002배를 드린 적이 있다.
- 어렸을 때는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1969년 화계초등학교 시절 축구부였으며, 2002년 TV는 사랑을 싣고 에서 당시 주장이었던 홍순만씨를 추적하여 만났으며, 지도자 선생님이었던 한운집 감독과 재회했다.
- 2002년 무렵 해병대스티커를 붙인 차번호 2002번 검은색 에쿠스를 타고 다녔다는 목격담이 있다.
-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코메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는데, 바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최초 희생자가 바로 김흥국.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 방영한 몰래카메라는 인터넷에 흔히 보이는 서양몰카처럼 어떤 깜짝 놀랄만한 상황을 세팅해 놓고 출연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지켜보는 형식이었다. 그러다 한 사람을 목표로 정하고 속이는 형식으로 바뀌었고 김흥국 편이 방송되면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내용은 김흥국이 스케줄상 집을 나올 시간에 맞춰 김흥국이 평소 지나가는 골목 근처에서 불량배들이 여자를 마구 위협하고 희롱하는 상황에서 김흥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하는 것이었다. 평소 해병대 출신임을 강조하며 떠벌리기 좋아하던 김흥국이었던지라 그래도 도움을 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김흥국은 그 여성이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본체만체하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몰카임이 밝혀지자 김흥국은 자신의 이런 비굴한 모습이 절대 방송에 나가면 안된다며 워낙 통사정을 하는 바람에 이번에 한해서 재촬영을 해주기로 했는데, 그렇다고 멋진 의인으로 180도 바꿔버리는 건 너무 조작이라서, 지나갈까 말까 하고 한참 망설이던 김흥국이 다가와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말리는 정도의 설정으로 타협을 봤고 이 재촬영분이 방송에 나가게 된다. 이상의 내용은 당시 일밤 PD의 방송 에피소드들과 후일담을 다룬 회고록 책을 통해 공개되었다.
- 초등학교 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학교 축구부로 운동한데다가, 성인이 된 후에도 현재까지도 계속 연예인 축구단 소속 및 지역 조기축구회 소속으로 수십년간 매주 축구를 해 와서 축구 실력 내공이 상당하고, 축구 운동을 계속 하다 보니 체력도 좋은 편이다.
- 방송에서 '노인들에게 발언권을 더 줘야 한다'라는 발언으로 방송정지를 먹은 적이 있다.
- 그의 딸 김주현이 2017년 7월 아이돌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성적은 계속 하위권을 전전하였다.
- 이분 덕분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야구인이 있다.
-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1989년 당시에 인기에 편승하여 영화<앗싸! 호랑나비>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흑역사가 되었다.
서울 관객이[84] 130명이었다는 이야기까지 있는 그 영화다. 그래도 이 영화보다는 5배나 많은 숫자다.
-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른 적도 있다.
김흥국 - 꿈돌이 김흥국 - 붕붕붕 꿈돌이
바로 꿈돌이.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MBC의 털보아저씨와 꾸러기들이란 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과 엔딩을 담당했었다. 이쪽은 메인보컬.
- 로또 2등에 당첨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넌 이미 돈 많은데 그 돈 나 좀 줘라."하는 전화가 걸려와서 전화번호를 바꿨는데, 어찌 알아내서 계속 전화가 오길래 열불나서 그냥 기부했다고 한다. 마지막 전화에서 "야, 그 돈 너 같은 XX 주느니 기부해서 불우이웃을 돕는 게 훨씬 낫길래 기부했다 임마."고 하자 "이 XX X같은 XX!"를 시작으로 수많은 쌍욕을 날리고는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 2012년 여름과 겨울], 2013년 초에는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딸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그 결과 새로운 구멍 가족으로 결정이 되었다.[85] 사실 아버지 쪽에서 문제가 많은 것과, 롤코 기질이 심했던 거다. 23년에 기러기 아빠 생활을 끝냈다고 알렸다.
- 2014년 피파온라인3 4월 패치에 만우절 이벤트로 선수로 추가됐다. '59년 호랑나비' 아니랄까봐 초기스탯이 59 아니면 95 아니면 9로 죄다 도배.
- SHOW ME THE MONEY 5에서 보이비의 1차 공연 호랑나비에서 등장하였다.
- 대한가수협회 5대 협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추대로 협회장이 된 옛 협회장들과 다르게 최초로 선거로 선출된 협회장이기에 부담감이 크다고 한다. 2015년 8월 26일 오후 2시에 있었던 투표에서 182표 중 117표를 획득, 63표를 얻은 인순이를 누르고 제5대 대한가수협회장이 되었다. 임기는 2015년 9월 28일부터 3년.[87] 라디오나 기타 방송 등에서 남진, 설운도 등이 밝히기를 김흥국이 원로가수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한다. 방송에서 회비18만원 드립이라든지 희화화되기도 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정말 진지하게 임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협회장 기념앨범을 제작했는데 앨범 아트가 골때린다.
- 의외로 밝혀지지 않았는데 본인도 어렸을 적 가난하게 자란 경험이 있어서 2000년부터 김흥국장학재단을 설립, 사비와 주변의 후원금을 모아서 아이들과 원로가수분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원로가수에게까지도 주는 것은 원로분들에 대한 대우와 용돈 차원에서라고 한다. 구글 등에 김흥국장학재단을 검색해보면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기사, 다만 불교방송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단법인을 설립하려면 요건도 까다롭고 자본금도 많이 들어서 정식 등록된 재단은 아니라고 한다.[89]
-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인 이석원이 상당히 좋아한다. 본인이 공홈에 쓰는 일기에도 몇차례 나온 적이 있는데 실제로 무가지를 낼 때 인터뷰로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고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데 바깥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두번 모두 설레였다고 한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 보도되고 각종 뉴스가 언론에 보도될 때 김흥국의 이름이 도마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여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이 연예인 축구단과 친분이 있다고 하였고 연예인 축구단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회오리였으니 이에 김흥국은 회오리 축구단을 나온 지 10년이 되었고 최순득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관계에 대해 부인하였다. 출처.
- 김흥국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게임 캐릭터의 별명이 흥국이이다. 다른 FPS에서 HK를 이니셜이 비슷한 흥국에서 따와 별명으로 지은 것이 그대로 소녀전선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이었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광고 사진이 김흥국의 호랑나비 앨범 표지와 비슷해서 화제가 되었다.
호우!랑나비
- 2018년의 미투 열풍에 휘말리며 연예계 데뷔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오히려 무고에 의한 피해자였음이 증명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논란 및 사건사고 부분으로. 2019년 5월 1일 채널A 시사교양 프로그램 행복한 아침에 출연해서 오랜만에 근황 및 과거 논란에 관한 이야기 등을 털어놓았다. 이렇게 모든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방송 커리어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주로 불교방송과 불교TV 및 2019년에 개설한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하고 있을 뿐 지상파와 종편 출연은 여전히 뜸한 상황이다.
- 평소 미술작품 수집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9년, 2023년 두 번에 걸쳐 나눔소장전을 진행하여 수익금을 불우한 이웃을 돕는 곳에 사용하기도 했다. 참고로 장남 김동현군도 미술작품 활동을 하고있으며 2023년도 나눔소장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하였다.#
[1] 음력 1959년 4월 11일.[2] 現 서울특별시 강북구 번동[3] 최근 대통령실이 위치한 용산구로 이사했다고 밝혔다. 매일 아침마다 대통령실이 보이는 창문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경례를 한다고 한다.[4] 계림군파(鷄林君派).[5] 네이트 프로필, 구글 기준[6] 미국 유학 경력이 있으며,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을 졸업하였고, 육군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 2024년 9월 기준 현재 공무원으로 도봉구청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7급 공채 출신으로 조만간 6급 승진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공무원 합격 후 부모로부터 독립했으며 강북구에서 거주 중이며,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 여학생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자녀들이 있는 유부남이다. 일명 '번칠이'. 김흥국의 고향인 '번동'에서 '번', 부인의 고향인 경상북도 칠곡군의 '칠'을 딴 것이다.[7] 그리와 본명이 같다. 사실 이 이름은 엄청나게 흔한 이름으로, 성씨까지도 흔해서 동명이인이 많다. 대표적으로 중견 탤런트, 김혜수의 첫째 남동생, 종합격투기 선수 겸 예능인, 前 스타크래프트 저그 프로게이머 등 많은 사람들이 이 이름을 달고 있다. 게다가 시대를 잘 안 타는 남자 이름인 만큼 여러 세대에서 흔히 보이는 이름이다.(물론 2020년대에 태어나는 아기에게는 흔하지 않다.) 동명이인이 많다 보니 악질 범죄자조차도 존재한다. 다만, 중견 탤런트 김동현은 김호성이라는 본명이 따로 있으며, 종합격투기 선수 김동현의 경우에는 김동현은 개명한 이름이고 개명 전의 이름은 김봉이었다. 사실 흔한 이름인 만큼 개명 이름으로도 흔하다.[8] 6살 때부터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의 하와이, LA에서 오랫동안 유학하였으며, 이후 귀국하여 아이돌학교에 참가했다. 한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닌 후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교를 졸업했다.[9] 전우회 측에서 정치적 중립을 요청했고 2024년 3월 12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혀 결국 해촉되었다.[10] 대한민국에서 유쾌함으로 1인자라는 의미에서다.[11] 사자의 수컷을 의미한다.[12] 젊은 시절 진한 콧수염이 빗자루 모양 같아서 생긴 별명이다.[13] 1990년, 당시 일밤 MC 주병진이 김흥국이 첫 자녀의 임신 사실을 밝히자 평소의 그의 이미지를 응용하여 애드립을 친 것으로 이후 김흥국을 상징하는 유행어로 자리잡았다.[14] 여성팀이 따로 있었는데, 그 팀 이름은 '연자방아'였다.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던 김희경씨와 재회했다.[15] 해설은 성우 정경애.[16] 참고로 김홍경은 90년 초반 신문에서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나왔다.[17] 후에 김재희라는 예명으로 소양강 처녀의 리메이크곡을 발표했으며 애증의 강 등 몇몇 히트곡을 남겼다.[18] 당시는 가수들이 레게곡을 많이 냈던 시기로, 레게 그룹을 표방했던 닥터레게는 1993년, 룰라도 1994년에 데뷔했다. 투투도 데뷔 당시 레게 음악으로 했다.[19] 이 때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곡을 공개하고 차트인 할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제작자가 갑자기 잠수타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져 결국 음방 한 번도 못나가고 시작도 제대로 못하고 끝나버렸다.[20] 레게파티와 1995년에 나온 후속 앨범 '2002 월드컵 코리아' 이후에 '무정'이라는 트로트 앨범을 다시 내긴 했는데 워낙에 이미지가 훅 가버려서 돌이킬 수가 없었다.[21] 해당 업체는 KBS 7기 코미디언 양원경이 자신의 명의를 빌려주고 시작한 사업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양원경이 직접 홍보하며 같은 CM송을 불렀다. # 김흥국이 광고 모델로 출연한 시점에서 양원경은 손뗀 모양.[22] 조세호와 동반 출연.[23] 써니와 동반 출연.[24] 사실 신정환 자신도 김흥국 앞에서는 한 수 아래라는 멘트를 몇 번 날린 적이 있다.[25] 신정환은 깐족거림과 악동기믹을 바탕으로, 김흥국은 4차원 아저씨 기믹을 바탕으로 무맥락 멘트를 던진다.[26] 이때 MC들이 본인 노래 안무 따라하는 것 보고 김흥국이 개판이라고 한 것이 압권이었다. 당시 전성기급 인기를 구가하던 탁재훈과 신정환이 그 말 듣자마자 데굴데굴 구르며 폭소했었다.[27] 당시 김태원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 경험이 아예 없던 순수한 음악인이었지만, 김흥국과 함께 출연하면서 이 방송을 통해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줬기에 해당 방송 이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알리게 되었다.[28]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도 이천수와 동반 출연했는데, 안정환과 같이 방송하는 자리에서 약간 긴장하고 있던 이천수의 긴장을 풀어주는 여러 멘트들을 날리면서 이천수가 편안하게 방송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29] 미국 국방부는 실제로 Cyber를 '시버'(sibber)라고 읽는다고 알려져있는데, # 원본 문서(pdf)를 보면 알겠지만 가짜다. 미국 국방부도 사이버는 사이버라고 부른다.[30] 이걸 이용한 개그가 예전에 어느 시트콤에도 있었으며, MBC 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 2005년 11월 3일 방영분에서 나온 적 있다. 작중 여주인공이 과외를 하는데 학생(깡순이 김지선 양)에게 "넌 대학 목표가 어디야?"라고 하자 "여기요"하면서 U.C.L.A.라고 써있는 팜플렛을 가리킨다. 그러자 당황한 여주인공이 "아~ 우클라 대학!"이라고 하자 학생 "예? 우클라 대학이요? 그런 게 어딨어요! 에이 순 엉터리!"라고 하며 과외를 그만두자, "아냐, 우클라 대학 있어!"하며 후에 흑인(티모시로 추정)을 데려와 "이 사람 아프리카에서 우클라 대학 다녀!"하면서 "Where are you from?" "(한숨 한 번 쉬고) 우끄라 유니버시티"하는 콩트를 보여줬다.[31] 내용을 보면 절대로 김흥국 본인이 쓴 내용은 아니다. 김흥국의 말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저자 명에 김흥국을 넣어준 것. 다만 김흥국의 허락은 받고 나왔고, 인터뷰 과정 정도는 거친 것으로 보인다. 덤으로 김흥국의 이름으로 나온 책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아동용 서적인 김흥국의 축구이야기다. 물론 이 책도 고스트라이터가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32] 들이대~ 나의 독무대에요 같은 것은 원고가 없이 진행된 결과 나왔다. 대부분은 TV방송에 출연해서 말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PD가 대본을 안 주고 애드립으로 다 때우게 했다고 한다.[33] "아~응애에요" 는 김흥국 본인이 만든 건 아니다. 개그맨 스타이자 김흥국보다 선배인 주병진이 만든 애드립 유행어이다. 김흥국이 일밤 고정 게스트일때, 당시 김흥국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 말버릇인 "으아~그래서요 거기서요"를 반복하자, 진행자 주병진이 "김흥국 씨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응애응애를 안 하고 바로 으아~ 응~애에요라고 했을 거 같네요."라고 애드립을 쳤는데 방청객들 쪽에서 큰 웃음이 터졌다. 주병진이 직접 밝힌 바로, 자신이 이를 인지하고 그 다음주 방송부터 김흥국을 따로 불러서 다른 방송에서도 아기 이야기할 때 그걸 유행어로 계속 쓰라고 시켰다고 한다. 김흥국도 성질이 있는 편이긴 하나, 당대 MBC에서 제일 무서운 개그맨이었던 주병진 앞에서는 꼼짝도 못했고 시키는 대로 다 했었다. 이는 이경규도 마찬가지였고, 일밤에서 두 사람은 주병진에게 충성하면서, 전형적인 보케-츳코미 기믹을 충실히 이행하여 주병진의 디스개그를 당하던 사람들이었다. 나이 비슷한 선배 중 김흥국과 이경규가 무서워하던 연예인이 딱 당대 최고 MC 주병진과 이문세 두 명(근데 둘은 절친이기까지 하다.)이었다.[34] 특히 박미선과 함께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 <특급작전>과 <대한민국 특급쇼>에서 나온 어록이 대다수다.[35]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방송한 SBS 웃으면 좋아요의 한 코너이기도 하며, 박미선과 이봉원이 출연했다.[36] 당시에는 이런 걸 다 PD가 수기로 적어주던 시절이었는데 PD가 글씨를 좀 흘려 썼는지 그렇게 보였다고 한다.[37] 여기서 조PD가 "아 선배님 저는 이번에 인순이 선배님과 음반작업을.."하면서 자기 소개를 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흥국이 이 말을 끊으면서 얘기했다.[38] 이후 본인 해명에 의하면 라디오 PD인 줄 알았다고 한다.[39] 세쌍둥이이므로 당연히 0살 터울이다.[40] 대부분은 6월 25일로 알려져 있지만 김흥국이 직접 낸 책 '김흥국의 우끼는 어록'에서 10월 1일 국군의 날에 한 이야기라고 수록하고 있다.[41] 상상플러스에서 이를 들은 신정환 왈, "영화 스파이더맨 OST 나왔어요?"[42] 해피투게더에서 출연해서 해명을 했는데, 작가가 제대로 써준 건 맞지만 거미가 가수의 이름일 줄은 몰라서 '친구'가 불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거미가 노래를 부르지는 않잖아?"라고 얘기했다. 듣고 보면 일리는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가수 거미는 "김흥국 선배님 덕분에 이 곡이 유명해진 부분도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고, 실제로 방송 프로에서 출연해서 이 농담을 의식하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노래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라고 말했다.# 참고로 1대 1의 이세진도 이렇게 불렀다.[43] 쥬얼리는 이해를 해도 자두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 시기 자두는 자두와 강두의 2인조 혼성듀오였다. 양쪽이 모두 그룹이름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44] 방송 시작 멘트를 저걸로 한 바람에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장애인들의 항의가 빗발쳐서 방송 도중에 사과를 해야 했다.[45] 원래 원고에는 대마도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대마도는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다.[46] 자기 노래 가사를 다 못 외운 것도 이상하지만, 대부분 라디오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PD가 앨범을 튼다.[47] 추후 출발 드림팀 출연 시 이창명이 이에 대해 언급하자, 김흥국이 진지하게 "그건 좀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 이후 방송에서 그 팀의 멤버에게 직접 사과했다.[48] 사실 김흥국이 이 그룹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도 "엑소? 그거 술 아냐?" 그랬다. 코냑의 등급 XO(Extra Old, 최상급 코냑)와 헷갈린 것이었다.[49] 게다가 이때는 하필 박용하가 자살한 지 몇 달 정도밖에 안 되었을 때였다.[50] 윤종신은 음악적 성향을 언급한 것이지만, 본인은 정치적 성향으로 받아쳤다.[51] 뮤지가 두시탈출 컬투쇼 2015년 3월 2일 동네형들 코너에서 직접 밝힌 경험담이다. 이를 들은 김태균 曰 "어머니가 거기(묘지)서 낳으셨나?"[52] 이 날은 뮤지가 3부의 동네형들 코너지기를 맡고 있는 월요일이었는데, 하필 사연 소개 도중에 저 문자가 도착해서 같이 사연을 읽던 정찬우가 급 빵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피해자(?)인 뮤지 曰, "이제 그만 좀 죽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김흥국의 이 말실수 때문에 결국 뮤지의 별명은 묘지로 굳어졌다고 한다.[53] 이때 김부선이 "뭔 약?"이라고 말하면서 되묻자 김흥국은 "비타민ㅋ"라고 대답했다. 다만 이는 뼈 있는 발언인데 실제로 김부선은 마약 전과 5범이다.[54] 사실 김흥국이 "이 친구에게도 기회를 주자구요. 지금까지 못 털고 있어요." 라며 일부러 판을 깔아줬다.[55] 과거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회식자리 상황을 두고 그 상황에서 취해야 할 태도를 출연자들이 연기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글라스 위에 젓가락을 올리고 스트레이트 잔을 세팅한 폭탄주를 발로 차며 당당하게 '난 축구선수니까' 라고 말했다. 이는 예능프로그램인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고 충분히 그 사상을 엿볼 수 있다.[56] 여담으로 김흥국이 거주하고 있는 김포에는 김포/인천 및 서해 5도를 포함한 최전방 도서지역을 관할하는 해병대 2사단이 위치해 있기도 하다.[57]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남진 이후로 현역 가수가 해병대에 입대한 두 번째 케이스이다. 김흥국 본인이 말하길 해병대에 꼭 가야한다고 강요는 안 했으며, 입대를 앞두고 있던 이정에게 조언 정도만 해줬는데 자신을 따라 해병대에 갔다고 한다.[58] 김흥국의 대표곡 <59년 왕십리>처럼 이연복 또한 1959년생으로, 김흥국과 동갑이자, 왕십리 태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표곡을 부른 김흥국은 왕십리가 아닌 성동구 번동 출신이다.[59] 이 당시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해외로 가는 건 돈이 매우 깨지는 행위 였다. 당시 서울에서 로마까지 가는데만 해도 중간 기착을 최소 1번은 해야 했으며 월드컵 표값도 있다는 걸 보면 매우 힘들고 비쌌다. 그럼에도 응원을 갈정도면 축구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다는 거다.[60] 이후 넥슨 이정헌 본부장 인터뷰에 의하면 사실 사람들이 알기를 원했다고 한다.[61] 다만 김흥국 정도 되는 셀럽이 돈 걱정 때문에 서울에 묶여야 할 이유는 없을.테니 그냥 취향(?)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강남에 건물까지 소유할 정도의 재력가 중에서도 기호에 따라 경기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꽤 많다.[62]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때 MC인 윤종신과 같이 게스트로 출연한 김태원이 호랑나비라는 노래에 대해 '당시로선 상당히 진보적인(progressive) 스타일의 노래'라고 논평하자, 그에 대한 김흥국의 대답이다. 음악적으로 진보적이라는 것을 (자신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받아친 격.[63] JTBC 썰전에서, 김흥국 스스로는 정몽준과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난 정몽준 측근 중 유일하게 정몽준에게 부탁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64] 사실 저 무렵에 정몽준은 한나라당 내에서 기반이 없었다. 1992년 통일국민당 창당 이래로 정몽준은 통일국민당 - 무소속 - 1인 정당(국민통합 21) - 무소속을 거쳤고, 심지어 16대 대선 당시에는 (마지막에 철회했지만) 노무현과 단일화해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회창을 물 먹인 이력도 있었다. 그러다가 독자행보를 펼치던 정몽준은 17대 대선 정국인 2007년에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이다. 당연히 당 내 기반은 일절 없으니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어려웠다. 18대 총선 당시 정몽준 라인 인사는 진짜 최측근인안효대 1명이 끝이었다.[65] 사실, 명계남은 공천을 주면서 정계 진출 제의가 들어왔어도 수락하지 않고 거절했을 것이 분명하다.[66] 당시 당 대표였던 홍준표와 인연이 있다. 박상원이 모래시계에서 맡은 배역인 강우석 검사는 홍준표(를 비롯한 여러 특수부 검사들)가 모델이기 때문.[67] 당시 정계에서는 정몽준이 선거 전날 지지 철회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해찬이 아닌 정몽준이 노무현 정권의 2인자가 되었을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정몽준이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잡았으리라는 견해가 흔하게 제기되었었다. 훗날 이해찬 자신이 정몽준과의 대담에서 "그 때 조금만 참고 가만히 있지 그랬냐"며 정몽준을 팩폭해버렸을 정도.[68] 사실 김부선은 진보신당 초기에 홍보대사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 김부선과 절대로 뗄 수 없는 존재다. 대마초 때문에라도 김부선은 진보정당들과 인연이 깊을 수밖에 없다. 대마초 합법화의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곳은 진보 쪽이고 보수 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 대통령 선거 즈음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지지선언을 하면서 정치성향이 뭔가에 대한 의문점이 다시 재점화가 되었다. 그렇다고 선거에 출마한 것도 아니다.[69] 당시 김포시장은 민주당 유영록이였고, 그 다음 시장도 민주당 정하영이였다.[70] 어떻게 본다면, 박원순은 김흥국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현대가와 친분이 있다. 그냥 축구 때문에 알게 되어 친분 생긴 연예인 김흥국과는 달리, 박원순은 정계 입문 전, 현대그룹 자문 변호사를 했었다. 박원순 부인 회사가 현대모비스에게 일감을 몰아줬다는 몰아주기 논란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심지어 생전 정주영이 각별히 아꼈단 썰도 있거니와, 정몽준과는 형, 동생을 할 정도로 목욕탕을 같이 가는 사이였던데다가, 재임 시절 박원순은 현대그룹에게 이례적인 혜택을 준다고 말이 많았다. 민선 6기 서울시장에 당선될 때 박원순은 정몽준을 서울시청에 초대해 서울특별시 특별고문을 맡아달라고 했었다. (물론 2014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토론은 얄짤 없었지만 비교적 바로 화해한 것.) 심지어 박원순이 사망하자, 정몽준은 조문을 하러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71] 1.박근혜 2.추미애 3.심상정 4.전여옥[72] 1.보수당의 정권탈환 2.카타르월드컵 4강 3.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 4.박근혜 석방[73] 터보 김종국이 아니라 야인시대에 신불출로 나온 배우 겸 코미디언을 말한다. 애초에 이 양반은 보수 진영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궤멸당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당당하게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74] 대선 3개월 후 열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증평군수 후보로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이재영 후보에게 301표차로 안타깝게 낙선하였다.[75] 야인시대에 임화수 역할로 나왔다. 한편 김종국이나 최준용과 달리 구마적으로 나온 이원종은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76] 정작 채 상병 동료 병사는 전역 직후 임성근 1사단장을 공수처에 고발했으며 이는 언론에서 다루었다..#[77] 나경원 후보 지원 유세중 4/11일에 지지해달라 했는데 정작 선거일은 4/10일이었다.#[78] 영상 초입부의 조전혁 말투가 안철수하고 살짝 비슷한데, 이는 조전혁과 안철수가 같은 부산 출신이기 때문이다. 둘다 태어난 곳은 부산이 아니나, 학령기를 부산에서 보냈다.[79] 참고로 김흥국은 2024년 10월까지 노래를 1년에 두번씩은 싱글곡으로 계속 내고 있긴 했다. 아무도 몰라서 그렇지[80] 11월 29일, 이영후, 심양홍, 남성훈, 박은수, 최상훈, 남성진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했다.#[81] 국민통합21 창당을 위한 탈당.[82] 다만 데뷔 무명시절에는 콧수염을 기르지 않았다.[83] 과거 MBC의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 브레인 서바이버에서 나이 어린 출연자에게 내가 주인공으로 나온 반달가면과 앗싸 호랑나비를 본 적 있냐는 멘트를 날린 적이 있다. 본인이 80년대 특촬물의 주연이었던 점을 방송에서 직접 어필했다. 참고로 저 질문을 들은 출연자는 모른다고 대답. 사실 작품이 나온 시대를 고려하면 70년대 출생자가 아니고선 쉽게 알 만한 작품이 아니다.[84]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국 관객의 수를 측정할 수 없어서 서울 관객의 수가 곧 흥행 척도였다.[85] 어찌 보면 딸이 한국에 있은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이유도 있다.[86] 에피소드로 따지면 14화다. 주인공 가족이 사기를 당해서 노숙하는 내용.[87] 그리고 그가 사는 김포시에는 김포시 조기축구회 명의로 가수협회장 당선을 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88] 불자인 가수들의 단체.[89] 인터뷰 기사가 대부분 불교계열 언론인 것은, 김흥국이 그저 불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흥국사와는 무관하다. 다만 고양시 소재 흥국사 법회에 참석하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