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후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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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후 李榮厚 | Lee Young Hoo | |
성명 | 이영후(李榮厚, Lee Young Hoo) |
출생 | 1940년 7월 18일 ([age(1940-07-18)]세) |
서울특별시 | |
데뷔 | 1969년 MBC 특채탤런트 |
종교 | 개신교 |
학력 | 연세대학교 (철학 / 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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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2. 활동
백범 김구 전문 배우로 유명하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연세대 철학과 동기였던 한국 최고의 연극 연출가 오태석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다. 오태석에 의하면 학창 시절 "나는 왜 사는가" 어쩌구 하며 자살한다고 오도방정을 떨기에 그럼 이거나 한번 해보라고 연극을 시켰는데 데뷔작에서 주연상을 거머쥐는 발군의 실력을 토해냈다고 한다.[1]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69년에 MBC TV가 개국하자 입사하여 탤런트로 활약하였다. 초기에는 각종 악역 및 단역을 전전하였으나, 1981년에 제1공화국에서 백범 역할을 실감나게 함으로써 유명해졌다.[2] 오히려 당시 주인공이었던 이승만 역할의 최불암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그 해 MBC 연기대상 등 각종 상을 흽쓸었다.
이후로도 사극 및 정치극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보통 가부장적이면서도 속마음은 따뜻한 아버지 역을 주로 맡지만, 사극에서는 다소 어리버리한 간신 역으로서 거의 막판은 사망이나 관광을 당한다.
10편의 작품에서 백범 김구로 출연했으며, 그 덕에 여러 백범 기념 사업에 관여했고 김구를 고액권 수표에 들어갈 인물로 선정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3] 본인 역시 김구 선생에 대한 자료를 많이 수집했고, 김구의 국가관과 생애에 대해서 강단에 설 정도로 거의 준 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김구를 잘못 해석한 장면이 나오면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고. 더군다나 처조부(아내의 할아버지)가 임시 정부 시절 법무 장관 겸 국무 위원을 지낸 박찬익 선생이고 아내의 숙모 역시 박찬익 선생과 함께 김구 선생을 모셨던 인연이 있어 더욱 각별하게 김구 선생 생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배역. 김구의 차남 김신은 몇 번이나 고맙다며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오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친의 뜻을 받들어 평생 생신상 한 번 받지 않은 분께 밥 한 끼 대접받는 것도 죄스러운 일"이라 정중하게 사양했다고 한다.[4]
2016년 7월에 딸이 있는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로 이민을 떠났다. 예전부터 은퇴하면 가겠다고 여러번 이야기 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교회 활동과 간증, 미주 중앙일보 칼럼 등을 기고하면서 지낸다.
딱 한가지 흑역사가 있다면 바로 희대의 망작 오! 인천에 단역으로 출연한 점인데, 이건 인성 관련은 아니고 단지 필모그래피 문제다. 영화가 워낙 시궁창 영화인 데다가 비중도 매우 낮은 배역으로 얼굴만 살짝 비췄기에 딱히 그의 영화 인생에서 크게 언급되지도 않는다. 오! 인천에 출연 당시 문선명이 돈을 워낙 많이 퍼준 덕분에 그 돈으로 서울특별시에서 집을 샀다는 낭설이 있으나 출처가 없는 루머이다.
3. 출연작
사망 전대 출연작은 사망전대를 문서를 참조.* 백년손님
* 의친왕 - 경사방대감
* 제1공화국 - 김구
* 《거부실록》 : 백산 안희제 - 김구
* 그의 아내 - 김구[5]
* 한 - 김구
* 이용익 - 이용익
* 조선왕조 오백년:추동궁마마 - 이방과
* 3840 유격대
* 아버지와 아들
* 다산 정약용
* 조선총독부 - 김구
* 조선왕조 오백년:설중매 - 김종직
* 조선왕조 오백년:임진왜란 - 이덕형
* 겨울꽃 - 한 사장
* 푸른교실
* 최후의 증인
* 산하
* 선생님 우리 선생님
* 제2공화국 - 김창룡
* 두 권의 일기 - 미희 부
* 여명의 그날 - 김구
* 적색지대 - 배드로 신부
* 뜨거운 강
* 파일럿 - 고영환 기장[6]
* 남자는 외로워 - 권칠성
* M - 최 박사
* 장녹수 - 임사홍
* 내 사랑 유미
* 거미 - 강 박사
* 제4공화국 - 장태완
* 도둑
* 낫
* 미망
* 용의 눈물 - 남은
* 일곱개의 숟가락
* 별은 내 가슴에 - 안 사장
* 내일
* 야망의 전설 - 이현준
* 명성황후 - 흥인군
* 내 이름은 공주 - 최상규
* 태양인 이제마 - 송상
* 장희빈 - 김수항
* 태양인 이제마 - 송상
* 야인시대 - 김구
* 명동백작 - 서정주
* 형사
* 서울 1945 - 김구
* 성공시대 - 정주영
* 제5공화국 - 강창성
* 대왕의 길 - 박문수
* 자유인 이회영 - 김구
* 영웅시대 - 강윤근[7]
* 맨발의 사랑 - 황회장
* 야망의 전설 - 이현준
* 모 시트콤 - 가부장적인 아버지
* 모 종교 영화 - 최봉석 목사[8]
* 삼성제약 쓸기담[9], 까스명수, 디판토, 삼성 우황 청심원, 까스청수 광고 - 주연(1987~1997)
* 오! 인천 - 운전기사[10]
* 피도 눈물도 없이 - 마빡 반장
* 맥랑시대 - 자매의 아버지
4. 여담
- 교회 장로로 알려졌으며 간증을 하고 다닌 영상이나 기사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오! 인천에 출연 당시 문선명이 돈을 워낙 많이 퍼준 덕분에 그 돈으로 서울특별시에서 집을 샀다는 낭설이 있으나 출처가 없는 루머이다.
[1] 김구 역할로 유명세를 얻은 뒤, 오태석이 쓰고 연출한 연극 천년의 수인에도 출연했다. 안두희의 저격 사건을 다룬 이 연극에서도 배역이 김구.[2] MBC 사옥을 걷고 있다가 방송국의 '높으신 분'과 마주쳤는데, 첫마디가 '백범이로구만' 이었다는 얘기가 있다.[3] 이전에는 영화 배우 박암이 전문이었는데, 이영후 본인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4] 비슷한 예로 정도전 전문 배우로 유명했던 김흥기가 있다. 정도전 역할만 세 번 했는데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 거의 준전문가급으로 습득했다고 한다. 용의 눈물에서 태종 역을 맡았던 유동근의 회상에 의하면, '김흥기 선배는 맡은 역할에 대해 역사적 고증을 해 오신 분'이었으며 후배들이 맡은 역할에 대해 역사 공부를 하도록 했다고 하며 사극 작가들과 배우들이 본받을 점이다.[5]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의 회고를 바탕으로 그의 인생을 다룬 1986년 MBC 광복절 특집극.[6] 비행 시간 25,000시간을 자랑하는 베테랑 왕고참 기장이다.[7] 정주영(천태산)을 크게 돕는 노인으로 천태산에게는 거의 양아버지에 가까운 인물. 실제 인물인 오윤근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8] 무당 김을동을 관광 보낸다. 이 영화는 '예수천당'이라는 네이밍 센스를 자랑하는 개신교계 영화로, 구한 말에 목사가 되었다가 이후 신사 참배를 거부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실존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9] 쓸기담 광고의 경우 서승현 씨와 더불어 부부 컨셉으로 중국, 스페인 등지에서 스케일 큰 광고를 여럿 찍었다. 심지어 투우사 체험을 하기도 했다.[10] 보조출연으로 재클린 비셋의 차를 몰고 가다가 폭격을 맞고 퇴장. 이후 차는 재클린 비셋이 직접 운전한다. 출연 시간이 몇 분 되지 않음에도 이 영화에 출연했다고 문선명이 돈을 워낙 많이 퍼준 덕분에 그 돈으로 서울특별시에서 집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