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7 19:21:29

최불암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해당 이름을 필명으로 쓰는 만화가에 대한 내용은 최의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최불암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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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제17회
(1978년)
제18회
(1979년)
제19회
(1980년)
하명중
(족보)
최불암
(달려라 만석아)
이대근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연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장민호
(1968)
최불암
(1969)
함현진
(1970)
함현진
(1970)
최불암
(1971)
김성옥
(1972)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해당 부문 신설 최불암
(1974)
문오장
(1975)
한진희
김진해
(1977)
최불암
이낙훈
(1978)
이정길
(1979)
}}} ||
파일:21279_13531_1733.jpg
이름 최불암(崔佛岩)
본명 최영한[1](崔英漢)
출생 1940년 6월 15일 ([age(1940-06-15)]세), 일본령 조선 경기도 인천부 금곡정[2]
본관 해주 최씨
신체 171cm, 75kg
학력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데뷔 1967년 KBS 드라마 '수양대군'
가족 배우자: 탤런트 김민자
형제자매 무녀독남
취미 여행
특기 골프
종교 천주교(세례명: 프란치스코)출처
기타 사항 제14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한민국 경찰 명예 경무관
불암산 명예산주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배우 활동
2.2.1. 그가 발굴한 배우
2.3. 정치 활동
3. 기타4. 출연작
4.1. 드라마4.2. 기타4.3. 애니메이션4.4. 광고



1. 개요

대한민국배우.

국민 아버지로 유명한 국민배우이자 수사반장, 전원일기로 대표되는 전설적인 장수 드라마들을 주인공으로서 이끌었던 대배우이다. 과언이 아니라 1970 ~ 1980년대 한국 TV 드라마계에서 이 분을 제외하면 설명이 불가능 할 정도의 큰 존재감을 자랑했다. 현재 80에 가까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밥상을 비롯한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며 어린 시청자들에게도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하신다. 그럼에도 늙은 척 하고 다니며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닌다고 동료 선후배 배우들에게 까이셨다

연기 외에 최불암 시리즈로도 유명한 배우. 최불암이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에는 최불암 시리즈를 좋게 여기지 않았으나 몇몇 에피소드들을 몇 차례 접하면서 '사람들이 그만큼 나를 친근하게 느끼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재미있다'라고 생각하여 호의적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출판사에서 최불암시리즈 출판을 위해 집에 찾아왔을 때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으며,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웃고 힘을 낼 수 있게 저작권도 무상으로 줬다고 한다. 최불암 시리즈가 한창 인기를 끌때 일밤에 출연해 최불암 시리즈 꽁트에 본인이 본인 역을 맡아 철저히 망가지는 모습도 보여주기도 했다.

비슷한 경위로 유명세를 얻은 척 노리스와는 동갑(1940년생)이다. 이 외에 이주일, 이소룡 등과도 동갑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940년 6월 15일 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에서 사업가인 최철(崔鐵)과 대한제국 때 궁내 악사를 지낸 집안의 딸 이명숙(李明淑)의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다.

최불암의 가족 중에는 독립운동가가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최불암을 임신한 모친을 국내에 두고 독립운동을 하는 형제들을 따라 중국으로 들어갔고, 해방이 될 때까지 중국에서 사업을 해 큰돈을 벌었다. 그 후 해방이 되고 나서 만주에서부터 인천까지 말을 타고 귀향했다. 말안장에는 돈과 보석이 잔뜩 실려 있었다고.
최불암의 부친은 만주에서 가져온 돈으로 해방 직후 인천에 영화사(건설영화사)와 신문사(인천일보[3])를 차렸으나 직접 제작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부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당시 6살에 불과했던 최불암은 부친의 영정을 들고 영화 시사회에 참석해야 했다.

모친 이명숙 여사는 서울 명동에서 '은성'이라는 대폿집을 열었다. 그곳은 금방 당대 문화인들의 사랑방이 됐다. 그 곳을 드나들던 문인 중 소설가 이봉구는 특히 명동백작이라 불렸는데, 부잣집 아들인 그가 은성에 술자리를 마련하면 서점을 운영하던 박인환(시인)과 가난했지만 멋진 시들로 인기가 많았던 김수영(시인) 등이 모여 많은 일화를 만들어낸 곳이다. 봉구주점이란 별명까지 있었다고. 은성주점 터는 현재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최불암은 단골이었던 당대 문화인들과 대화에 끼기에는 아직 어렸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 예술에 대해 알려준 곳임에는 틀림없었다. 최불암의 개인사적 다큐멘터리마다 어머니를 추억하며 은성주점 터를 찾는 모습이 가끔 텔레비전에 비친다.

2.2. 배우 활동

대중들에게는 주로 텔레비전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라는 인식이 많지만, 젊었을 적에는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다. 원래는 연출을 전공했으나, 자기가 연출을 맡은 연극의 배우가 연기를 못하자 그 대타로 뛴 것이 연기 인생의 시작이었다. 특히 1959년에 극단 '실험극회'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햄릿을 공연했을 때 타이틀 롤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당시 한국에서 햄릿을 연기한 최연소 배우였다고 한다. 다만 평이 안좋았는지 자신이 성에 안찼는지 공연 끝나고 자진해 국방부 퀘스트를 선택했다고 한다. 원래는 외아들이라 군대 안 가도 되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연극배우 시절에는 별로 유명세를 못 탔다. 당시는 외모가 연극배우의 척도 중 하나였는데, 거기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문에 한때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고...[4] 1967년 27살의 나이에 KBS 2기 탤런트로 데뷔하여 처음 맡은 역할이 김종서 장군, 그것도 계유정난 당시의 노년 역할이었다(;;). 이후로 줄곧 노역으로 승부수를 던지게 되었다고... MBC에서 방영된 제1공화국, 제2공화국에서는 아예 이승만 역할을 맡아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제2공화국은 그렇다 치고, 제1공화국 당시에는 40세의 나이에 80대였던 이승만 역을 맡았다...그래도 20대 중반의 나이에 요시다 시게루 역을 맡은 이계인이나, 50대 중반에 가쿠란을 입고 대학생 역할을 한 정동환만 하겠냐만) [5]

1969년에 MBC가 개국하자 그쪽으로 옮긴 후에 대박을 많이 터뜨렸고 스타가 되었다. 현재는 다른 방송국 드라마에도 많이 출연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도 거의 MBC 전속이나 다름없었다.[6] 그래서 최불암 시리즈 중에서 터미네이터가 방송국에 쳐들어왔는데 경비가 '야 여긴 KBS야 MBC가서 찾아봐'라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드라마 외에는 KBS좋은나라 운동본부에 반고정 패널로 장기출연했으며, 그 덕분에 즐겨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7]

전원일기(22년간 방영), 수사반장(18년간 방영) 등 국내 드라마의 전설.[8]

2004년에는 비슷한 연배의 배우인 오지명, 노주현과 함께 코믹영화 까불지마를 찍어 새로운 도전을 하기도.[9]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끝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의리로 특별출연한 김흥국의 애드립 때문에 영화의 몰입도가..[10]

2009년 불암산 명예산주로 위촉되었다. 실은 그전부터 불암산을 이용한 개그가 있었지만, 명예산주가 되면서 본인이 직접 시를 지어 비석까지 만들었는데 비석의 내용에 마지막 문단을 보면 그동안 산이름을 멋대로 예명으로 빌려써서 죄송하다고 고백했다.

노인들중에서 김혜자와 부부인 것으로 착각하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게 다 전원일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김민자가 부인인데, 이 사람 역시 탤런트이다. 결혼 전 최불암이 편모 가정에 외아들인데다 직업이 배우라 반대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민자와 가까워질 생각으로 김민자가 있던 KBS로 이적했을만큼 공을 들인 끝에 결국 결혼에 성공.

1981년에 만화 주제가를 부르기로 유명한 정여진와 함께 듀엣[11]으로 "아빠의 말씀"이라는 음반을 낸 적이 있다. 아빠 언제 어른이 되나요~ 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들으면 바로 이해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12] 90년대 중순 MBC에서 하던 만나보고 싶습니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정여진이 지금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다면서 그 시절을 회상한 바 있다. 그리고 당시 앨범을 내는 준비를 하던 정여진 가 나와 인터뷰와 같이 최불암과 16년만에 만나기도 했다.(참고로 당시 정여진이 준비하던 앨범이 바로 최진실이 나온 영화 주제가 편지 OST)

차마고도, 한국인의 밥상다큐멘터리내레이션을 맡기도 했고 아마게돈 애니메이션 나레이션도 맡은 바 있다.

여담으로 공화국 시리즈에서 허구헌날 그를 디스하고 다니던 박순천 여사 역할로 유명한 성우출신 원로배우 김소원은 그의 처형(妻兄)이고, 배우 최아란은 그의 처조카이다.

참고로 그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도 있다. 물론 진짜로 믿으면 곤란하다.

2.2.1. 그가 발굴한 배우

  • 이동준 : 오직 이동준의 싸움실력 하나만으로 배우로 발굴했다. 실제로 이동준은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혼자 건장한 특수부대원 11명을 쳐잡은 적도 있다.

2.3. 정치 활동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5번) 통일국민당 - 당선 1993.2 탈당
1993.7 민주자유당 입당[13]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 을) 신한국당 33,020 (32.5%) 낙선 (2위)

통일국민당으로 강부자와 함께 통일국민당 전국구(비례대표)의원으로 1992년 14대 국회의원직을 맡기도 했다.(같은 시기 이순재민주자유당 의원이었고, 부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 최불암은 다음해 정주영의 대선 패배 때문에 국민당이 대선에서 패하자 국민당 의원과 함께 민자당으로 옮겼다.)

15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신한국당으로(국민당 해체 이후 옮김) 지역구 의원(영등포 을)으로 출마했으나 철새김민석에게 패배, 낙선하는 아픔을 맛봤다.[14] # 연설장면

여담으로 14대 국회의원 당시에는 전원일기에 출연하는 등, 연예 활동을 겸했다. 이는 이순재, 강부자 등도 마찬가지. 당시에는 이를 막는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불암이 정치를 이유로 연예 활동을 중단한 것은 1996년 15대 총선 때.낙선하고 바로 복귀했다

3. 기타

  • 시인 김지하와 막역한 사이.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 문학사를 장식한 여러 명사들과 친분이 많은데, 이는 어린 시절 당신 어머니가 명동에서 운영한 술집 "은성"이 당대의 문학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박인환, 한하운 등 유명인사들이 막걸리 외상으로 많이 얻어먹고, 또 어린 시절의 최불암에게도 한 잔씩 권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변영로 시인[15]은 아예 은성에 지정석을 꿰차고 앉아있었다고. 변영로 시인이 최불암의 대입 축하잔을 건넸는데 최불암 청년이 마신 잔을 돌려드리려[16] 잔에 남은 술을 바닥에 털자 대뜸 뺨을 때리며 크게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이때의 경험으로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으려는 습관이 생겼다고 함)[17] 지금도 명동 유네스코 회관 맞은편에는 '은성주점 터'라고 쓰인 표지석이 남아 있다. 여담으로 어머니가 타계하신 뒤 은성의 외상 장부를 손에넣고 외상값으로 부자가 될거란 생각을 했었지만 장부를 펼쳐보니 장부의 내역은 모두 암호로 되어 있었고 그것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 최불암은 한때 시청률 70%까지 치솟던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을 하면서 온갖 일들을 겪었는데 특히 담배 때문에 육영수에게 전화를 받았던 일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당시 최불암은 매회 담배 네 대를 피우는 설정을 해놓고 있었다. 시작할 때 한 대, 수사 도중 2대, 사건이 해결되면 또 한 대를 피우는 식이었다. 그런데 박정희가 이 프로의 애청자였고 그걸 볼 때마다 하도 담배를 피워서, 육영수가 최불암에게 담배를 줄여달라고 직접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최불암의 설명.

    "하루는 부속실에서 전화가 왔다고 집사람이 그래요. 청와대라는 건 생각도 못하고 속으로 "부속? 부속이 뭐지?" 그러면서 전화를 받았어요. 일요일, 수사반장이 막 끝났을 땐데, 내가 바꾸니까 "영부인 전화십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기다리는데 누가 웃으면서 "저, 육영수예요" 하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죠. 나는 속으로 뭔가 큰 죄를 지었구나 했죠. 근데 육 여사께서 "제 개인적인 부탁인데요. 담배를 좀 줄여주세요. 최불암 씨가 담배를 태우시면 저 양반도 따라서 태워요." 그러시는 거예요.
  • 정주영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전원일기와 최불암의 열혈팬이어서 전원일기에 농부 역할로 출연할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주영의 TV 출연은 현대그룹 임원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최불암은 전원일기를 하면서 정주영의 자택에도 여러 번 초대를 받았고 드라마팀이 한꺼번에 초청되어 요리를 대접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 관계는 더욱 발전해 최불암은 1992년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정주영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정회장이 이끌던 국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또 최불암은 2004년 방영된 드라마 ‘영웅시대’에선 정주영 역(천태산)을 맡기도 했는데, 말투나 행동이 비슷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드라마 수사반장으로 경찰의 이미지 혁신에 지대한 공을 세운 관계로 주요 출연진들이 모두 명예 경찰관이 되는 영예를 누렸는데 이 중 리더인 최불암은 수사반장이 종편될 당시 명예 경정이 되었다.(현대판 공명첩)[18] 그 이후 대한민국 경찰청은 수사반장 종방 35주년 기념으로 최불암의 계급을 명예 총경으로 진급시켰다.# 2018년에는 그동안의 노고를 기려서 명예 경무관으로 진급시켰다.##
  • 성우 이상훈에게는 연극계 대선배로 이상훈이 연극계 진출에 조언을 주었다. 그러다보니, 성공시대 그 유명한 이미지 패러디 할 때에는 이 두명이 합성된 것으로 될 것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 꽃보다 할배 대만편 1편에 깜짝 출연. 신구박근형, 백일섭 세 할배들과 막역한 사이인 관계로 배웅차 잠시 출연했으며, 한국인의 밥상만 아니었으면 자신도 따라갔을거라 한탄하기도 했다. 무릎이 좋지 않은 백일섭에게 용돈(...)을 하사하기도.그런데 백일섭은 보자마자 부X이 형!이라는 역대급 드립을 선사했다. 공중파였으면 얄짤없이 편집감 ㅎㄷㄷㄷㄷ
  • 특유의 목소리에 힘이 없고, 발음이 시원하지 않으며 흐릿흐릿 불분명하여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 1995년 국회의원이던 당시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여 어린시절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의 양말을 꿰매주며 자신을 돌봐준 동네 누나를 찾은적이 있다. 만난자리에서 누나가 요즘 양말 공장에 다닌다는 말을 듣고는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4. 출연작

4.1. 드라마

4.2. 기타

4.3. 애니메이션

4.4. 광고



[1] 이 이름으로도 들어올 수 있다.[2]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3] 현재 발행되고 있는 인천일보와는 다른 회사다. 현재의 인천일보는 1988년에 창간됐다.[4] 그래서 괜히 자살한 연예인들을 질타하는게 아니다.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고 그걸 극복한 연륜이 있어서이다.[5] 이 이승만 역이 굉장했던 것이, 이후에 어느 배우가 이승만을 연기해도 이승만 자신이 아닌, 최불암의 이승만 연기를 따라하게 되었다... 그나마 최불암의 이승만 연기 아성에 근접한 분은 권성덕.[6] 80년대에 '전속'은 없어졌으나, 의리상으로 계속 MBC에 출연했다고...[7] 관련 일화로 초기에는 '금연' 선언만 하고 담배를 계속 피웠는데, 어느날 시민에게 딱 걸려서 빼도박도 못하고 금연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모 토크쇼에서 고백한 내용.[8] 문성근이 말한 일화로는 최불암이 사는 아파트의 수위가 최불암이 전원일기 촬영갈때는 '회장님'이라고 인사하고 수사반장 촬영갈 때는 '반장님'이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수위 말로는 '최불암을 볼때마다 오늘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위기가 딱 느껴졌다'라고...최불암도 대단하지만 이런걸 알아채는 당시의 수위도 대단하다...[9] 제작과 감독 모두 오지명이 한 작품으로, 사실상 오지명이 독보적으로 이끌어간 영화임에도, 유명한 최불암 시리즈 덕분에 오지명이 주연을 양보했다고...[10] 특별한 역할이 아니라 김흥국 본인역할로 출연했다. 극중에 주인공들이 방송국에 다른 목적으로 잠입해 왔다가, 그냥 우연히 방송국 내에서 지나가던 김흥국을 본다는 정도의 짧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이 멀리서 김흥국을 가리키며 "김흥국이다"라고 하자 걸어가던 김흥국이 그들을 보고 갑자기 "으아~"를 외치고 가 버린다. 왜 으아를 했고 그 장면을 자르지 않고 영화 완성본에 왜 넣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11] 엄밀히 말하면 내레이션. 노래는 정여진만 불렀다.[12] 원곡은 명배우 안소니 퀸이 부른 유명 팝스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13] 이때는 전국구 의원이 탈당한다고 해도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았다! 통일국민당은 탈당한 최영한(최불암의 본명)이 의원직을 안토해내자 헌법소원까지 냈으나 각하당한다.(헌재 1994.4.28. 92헌마153) 판결 요지는 탈당한 전국구 의원의 의원직 유지 여부는 헌법이 아닌 개별입법으로 논의할 문제라는 것으로, 이후 입법을 통해 전국구 및 비례대표 의원이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게끔 하였다.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서 배정한게 전국구인데, 이때 최불암을 포함해서 다수의 통일국민당 전국구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무소속 전국구 의원이라는 희대의 코메디가 벌어졌다. 언론에서 이를 조롱하는 칼럼도 여러차례 나왔다.[14] 이 때 김민석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의 젊고 전도유망한 미남 정치인으로, 지금과 같은 철새 이미지가 없었다. 당시 최연소 의원(31세)이었고, 이 이미지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까지도 그랬다. 하지만 가카에게 광탈하고...대선에서 철새되고[15] 동아일보에 금주 선언문을 투고하고도 술을 못 끊었고, 본인의 수필 중에서도 명정(酩酊) 40년이라는 글이 있을 정도. 40년 인생을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해 살았다는 의미로 제목을 지었다.[16] 잔 돌려마시는 풍습이 대세였던 시절이니까.[17] 당시 받은 술은 막걸리. 쌀로 담근 술을 바닥에 버렸다고 혼이 난 것.[18] 여담으로 1998년 4월 28일 경찰청 사람들에서는 '사기꾼을 잡아라' 특집으로 사기 용의자들을 공개수배했는데, 이 때 최불암이 직접 진행을 맡았고 명예 경정이라는 자막까지 나왔다.[19] 1969년 MBC 개국초기작으로,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라는 유행어도 낳았다.이때부터 김혜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20] 80년대 훌륭한(...) 부자들의 성공담을 다룬 실화 드라마 시리즈. 여기서 정주영편에서 최초로 정주영을 연기한다. 참고로 이 작품중 일부 장면은 정주영 회장 사망후 편집돼서 재방된 경력이 있다.[21] 독립운동하다가 돌아와 입헌군주국을 재건시켰다.[22] 이때 황후가 김혜자.또 부부로 출연했다.[23] 기존의 '국민 아버지'에서 '꼴마초 국민 아버지'로[24] 수사반장에서의 모습으로 TV속에서 주인공인 한태주에게 말을 거는 역할. 원작에서는 70년대 BBC의 새벽 화면조정시간에 나오던 소녀가 이 포지션이였다.[25] 다른 형사들은 모두 출연자의 본명을 썼는데 혼자만 다른 이름이었다[26] 실제 정주영 회장과 막역한 사이였으며, 정계진출도 그의 권유에 의해서였다.[27] 단, 청년 천태산은 차인표가 담당.[28] 당초 유진산 역으로 캐스팅되었다가 방영 직전에 김형욱 역으로 캐스팅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에 갑작스레 개인 사정으로 인해 들에서 유진산 전문 배우로 활약했던 심양홍으로 바뀌면서 하차했다. 아무래도 전작의 '이승만' 이미지 때문인 듯...[29] 80년대 사극의 영조역 단골이었다.[30] 이때부터 타방송사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작가 김수현의 권유로 출연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