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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안중근 (1972) 義士 安重根 | |
<colbgcolor=#444><colcolor=#fff> 감독 | 주동진 |
각본 | 최금동, 이정선 |
기획 | 최춘지, 반중석 |
제작 | 주동진 |
주연 | 김진규, 박노식, 문정숙 |
촬영 | 전조명 |
조명 | 최원근 |
편집 | 김창순 |
음악 | 김희조 |
미술 | 박석인 |
제작사 | 연방영화주식회사 |
개봉일 | 1972년 2월 16일 |
개봉관 | 국도극장 |
관람인원 | 30,07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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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동진 감독의 1972년 개봉 영화. 영화는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안중근의 항일 투쟁을 그린다.2. 출연진
- 김진규 – 안중근 역
- 박노식 – 이또 히로부미 역
- 문정숙 – 김아려(안중근의 처) 역
- 최남현 – 한규설 역
- 최불암 – 고종 역
- 이대엽 – 김기룡 역
- 하명중 – 유동하 역
- 최성호 – 우덕순 역
- 박암 – 조도선 역
- 장훈 – 이하영 역
- 이향 – 이완용 역
- 김동원 – 이강 역
- 김신재 – 안중근의 모 역[2]
- 손창민 – 안중근의 아들 역(아역)
- 강계식 – 안창호 역
- 김웅 – 이근택 역
- 고설봉 – 박제순 역
- 성소민 – 민영환 역
- 박경주 – 민영기 역
- 양일민 – 엄인섭 역
- 조덕성 – 이지용 역
- 손전 – 권중현 역
- 임성포 – 이재극 역
3. 줄거리
안창호(강계식) 선생의 연설회장에서 그를 온몸으로 사수하던 안중근(김진규)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우덕순(최성호) 등과 함께 대한의군을 조직하여 북만주 일대에서 맹렬한 저항을 하게 되지만 동지 수 십명이 죽고 포로가 되는 어려운 투쟁을 전개한다. 안중근 역시 일진회 도당들에게 피납되어 구타당하고 입원한다. 이때 이토 히로부미(박노식)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침략의 원흉을 제거할 것을 결심한다. 1909년 10월 하얼빈에 도착한 이토를 사살한 안중근은 체포되어 우국지심을 굴하지 않고 초연히 순국한다.4. 수상
5. 여담
이완용 역을 맡은 배우 이향은 가수 문희준의 외조부이기도 한데, 이 영화를 포함해 1959년 전창근 감독의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신상옥 감독의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 1966년 이규웅 감독의 《마지막 황후 윤비》 등 총 6편의 영화에서 이완용을 연기했다.안창호 역을 맡은 강계식은 이전에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와 《상해 임시정부》(1968)에서도 안창호 역을 연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