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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44322><colcolor=#fff> 감독 | 전창근 |
각본 | 이정선, 전창근 |
기획 | 이정선 |
제작 | 박정수, 성동호 |
주연 | 전창근, 김승호, 최남현 |
촬영 | 이용민 |
조명 | 윤영선 |
편집 | 이종기 |
음악 | 김희조 |
미술 | 박석인 |
제작사 | 태백영화사 |
개봉일 | 1959년 4월 10일 |
개봉관 | 국도극장 |
관람인원 | 105,142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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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창근 감독이 연출하고 직접 안중근 역으로 출연한 1959년 개봉 영화.당시 한국 영화 3편을 제작할 수 있는 7,200만환 규모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이다. 영화의 하일라이트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면을 위해 안양 스튜디오에 300여평 규모의 하얼빈역 세트를 만들었고, 출연진과 스태프 총 300여명, 연 인원 2만명이 동원되었다. 서울, 블라디보스토크, 하얼빈, 회령, 뤼순 등지를 배경으로 한다. 흥행에도 성공, 관객 10만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1959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5위를 기록했다.
2. 출연진
- 전창근 – 안중근 역
- 김승호 – 고종황제 역
- 최남현 – 이토 히로부미 역
- 송억 – 한규설 역
- 이향 – 이완용 역
- 서월영 – 이지용 역
- 하지만 – 이근택 역
- 변기종 – 이하영 역
- 박빈 – 박제순 역
- 정국산 – 민영기 역
- 박영태 – 권중현 역
- 주선태 – 송병준 역
- 이학재 – 민영환 역
- 석금성 – 유상궁 역
- 강계식 – 안창호 역
- 허장강 - 임권조 역
- 김수천 - 이강 역
- 김일해 - 우덕순 역
- 임운학 - 조도선 역
- 전세권 - 유동하 역
- 김송삼 - 이범윤 역
- 이은심 - 나금봉 역
- 남궁원 – 노인역장 역
3. 줄거리
망국의 기운이 감도는 구한말. 이토 히로부미(최남현)와 친일 대신의 압력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된 지 얼마 후,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는 고종황제(김승호)의 퇴위를 강요한다. 삼흥학교에서 인재양성을 하던 안중근(전창근)은 안창호(강계식)의 연설을 듣고 의병 운동에 참가할 것을 결심하고 연해주로 간다. 그는 한국의병 참모중장, 만주원정군 사령관으로서 동지들과 함께 일본군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벌인다. 안중근과 동지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를 시찰할 것이란 소식을 듣고 하얼빈역에서의 저격을 계획한다. 거사는 성공하지만 안중근과 동지들은 투옥된다. 그는 법정에서도 조선의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일제에 항거하다 사형당한다.4. 기타
이완용 역을 맡은 배우 이향은 가수 문희준의 외조부이기도 한데, 이 영화를 포함해 1959년 신상옥 감독의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 1966년 이규웅 감독의 《마지막 황후 윤비》, 1972년 주동진 감독의 《의사 안중근》 등 총 6편의 영화에서 이완용을 연기했다.안창호 역을 맡은 강계식은 이후 《상해 임시정부》(1968)과 《의사 안중근》(1972)에서도 안창호 역을 연기했다.
5. 수상
- 1960년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 우수작품장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