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10:58:52

이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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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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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age.cine21.com/P0000008_SUN_1920.jpg
이름 이순재 (李順載)
출생 1934년 11월 16일[5] ([age(1934-11-16)]세)
일본제국령 조선 함경북도 회령군[6]
본관 광주 이씨[7]
신체 165cm[8], 68kg, A형
학력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
직업 배우, 성우[9]
데뷔 1956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
가족 배우자 최희정(1940년 생), 슬하 2남 1녀
종교 무종교
소속 SG연기아카데미 원장
겸업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

1. 소개2. 활동3. 연예계의 큰어른4. 정치인 이순재5. 기타6. 출연 작품 목록
6.1. 드라마/시트콤
6.1.1. TV6.1.2. 라디오
6.2. 영화6.3. 예능6.4. 광고
7. 수상 경력8. 선거 이력

1. 소개

대한민국의 원로 배우. 오랫동안 연기 생활을 했으며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상도, 야인시대, 거침없이 하이킥, 이산, 베토벤 바이러스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했다. 빈틈없는 자기관리와 신념, 그리고 대체로 선역을 맡아서 이미지가 좋다. 연극부 출신이면서, 집음 장비가 나빴던 옛날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고령인데도 발성과 발음이 아직까지도 뛰어나다. 복합모음인 ㅙ와 단모음인 ㅚ 발음을 구분할 만큼.[10]

함경북도 회령군[11] 출생. 일제강점기, 광복과 6.25 전쟁을 모두 경험했다. 출생지는 회령이지만, 4살 때[12]에 조부모가 있는 경성부로 왔고, 해방 후 부모도 서울로 내려왔다고 한다. 어릴 때 힘들게 살아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비누 장사를 했는가 하면, 중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고 나서 등록금을 안 내도 아무 말 없었다고 한다. 서울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0년 6월 25일, 동생[13] 수영복을 사러갔다가 군인들의 부대 복귀를 종용하는 즉, 6.25 전쟁이 일어났다는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꽃보다 할배 사전 미팅 당시 "배낭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지?"라는 질문에 "6.25 때."라고 답하거나[14], 어릴 적 본 만화가 있으시냔 질문에는 "일제 때 만화는 본 적 있는 것 같다."고 하는 등.
6.25 전쟁 발발(勃發)시 고등학생이었다는 언급을 다룬 기사: 스포츠투데이 기사 오마이뉴스 기사

2. 활동

1956년 대한민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인 HLKZ-TV에서부터 출연했고 KBS의 첫 TV 드라마인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도 출연했기 때문에 그의 연기 인생은 대한민국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의 처음부터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 당시에는 필름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웬만한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방영했으므로 영상자료가 없다. 이순재의 증언으로는 당시 드라마에서는 NG가 나도 그냥 밀어붙였다고 한다. 프롬프트도 따로 없던 시절이라 대본 든 스탭이 밀고 들어오고, 카메라가 줌인 기능이 없다보니 배우한테 들이밀다 부딪히는 장면이 그대로 나가는 등 지금으로썬 상상하기도 힘든 광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디오 테이프가 도입된 이후로도 1980년대까지도 테이프 가격이 비싸다고 테이프를 돌려서 썼기 때문에 1980년대까지의 드라마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당시 이순재가 연기하는 영상은 TV드라마로는 볼 수 없고 주로 영화로 봐야 한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54학번이다. 서울고등학교[15]를 졸업하고 원래 정치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떨어지는 바람에 철학과[16]로 원서를 넣어 재수해서 들어갔다. 이후 평범한 학생연극부에 입부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17] 1964년 12월 7일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해 본격적인 텔레비전 연기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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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순재도 잘생겼어

파일:attachment/yadong.jpg
야동을 매우 므흣하게 보고있는 원로배우

특히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우연히 본 야동에 빠져 가족 몰래 보던 것이 들켜 빈축을 사게 된 일명 '야동 순재' 캐릭터로 인해 젊은 층에 친숙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여지껏 그가 맡았던 역할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역할이었으나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작품의 인기에 일조했다. 하이킥은 젊은 출연자들도 고충을 토로한 일일 시트콤이었던 것을 당시 70이 넘은 배우임을 감안한다면..

게다가 이순재는 타고난 천재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올라운드 그 자체다. '풍운'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 '사랑이 뭐길래'에서의 완고하고 가부장적인 가장,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나이값 못하는 돌팔이 의사, '야인시대'에서는 자상한 할아버지 등 어떤 캐릭터를 맡겨도 100% 소화해내는 모습은 시청자가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방송국 원로대접 받는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악역도 많이 했다.[18]

하이킥 이후 원로 연기자로서 굵직한 사건이 터지면 그의 의견을 묻는 인터뷰가 잦다. 특히 못마땅해 하는게 젊은 배우들이 대본은 안 보고 딴짓한다든가 합 안맞춰보고 혼자 밴에 틀어박혀 있는 것. 남에게 훈련을 강조하며 본인 스스로도 매일 발성 연습을 몇 시간씩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일단 이게 기초작업이고 연기로 가면 시간이 더 왕창 들어간다. 본인은 오랜 연기 인생의 비결로 암기력, 금주, 연구를 꼽았다. 특히 술에 대해서는 당시 깡소주(강소주)를 마시던 배우들은 지금 대부분 연기에서 은퇴했다고 금주를 강조했다.

스스로 작품 복은 좋은데, 상복은 없는 배우라 말할 정도로 히트작은 많지만 굵직한 상과는 인연이 없다.[19] 하이킥의 야동순재 역으로 무한도전 팀과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을 공동 수상한 게 가장 큰 상일 정도.[20] 연기대상을 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김혜자강부자에게 밀려 상을 받지 못했다.

이순재는 젊은 시절에 주연급 톱스타는 아니었다.[21] 이순재는 활동 초창기부터 자기보다 유명한 배우를 많이 만났다. 60년대 시점에서는 신성일, 신영균, 남궁원을 비롯한 사람들이 영화에서 주연으로 수많은 흥행작을 낼 때, 이순재는 이들 영화에서 고작해봐야 조연으로 나오는 정도였다. 70년대 시점에서도 한진희, 노주현, 박근형, 임채무처럼 당시에도 쟁쟁한 후배가 많았다.

그렇다고 이순재가 무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TBC 드라마 남우주연상도 2회 이상 받았을 정도로 입지가 탄탄한 배우이며, 당시에도 실력을 인정받았다.[22] 한 마디로 이순재는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으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구도자의 길을 걸은 덕택에 자기보다 인기 있던 스타가 모두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배우로 거듭난 것이다.[23]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준 '노년의 사랑'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신구와 함께 가장 인지도 있는 남성 장년 연기자일 것이며, 그 실례로 그가 라이나생명 실버 보험 광고에서 말한 대사[24]개그 콘서트도움상회에서 패러디 되며 좋은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실제로 전화를 해보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텔레비전 보험광고에서는 보험가입에 필요한 기본 사항은 물어본다는 자막을 띄우기도... 그러나 이후에는 무자격자의 보장내용 설명이 금지되어 광고내용이 변경되었다. 이후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25]

거침없이 하이킥의 후속작인 지붕 뚫고 하이킥에도 이순재 역으로 출연했다. 전작을 이어 출연하는 단 두명인 배우.[26]

2009년에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에서 주인공 칼 프레드릭슨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일반적인 연예인 더빙' 수준이 아니라 '역대 애니메이션 연예인 더빙 사상 최고의 목소리 연기', '원작 초월' 소리를 들을 정도의 평가를 받을 만큼 절륜한 연기력을 선보였다.[27] 이것이 바로 이순재의 업(業, Karma, 카르마, 운명)이니라. 한 평론가는 "초콜렛"이 아닌 "쪼꼬렛"이라는 할아버지 캐릭터에 맞는 발음을 구사한 것을 극찬하기도 했다.[28] 이순재가 맡은 배역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인 에드워드 애스너도 연극활동은 1940년대[29], 영화산업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베테랑 명배우다. 여담으로 당시 이순재는 디즈니 시리즈에 한국어 더빙을 한 배우&성우들 중 최고참이었다. 정작 이순재 본인은 훗날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더빙이 잘 됐고 안 됐고를 떠나서 자신이 더빙에 참여한 것이 다른 젊고 유망한 성우들의 자리를 뺏는 것 같아서 오히려 미안했다고.[30] 여담으로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극중 아들이었던 정준하 역시 우수한 목소리 연기로 큰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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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긴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으로 1982년 KBS 사극 <풍운>에서 맡았던 흥선 대원군역을 꼽았다. 또한 다시 한번 더 연기하고 싶은 배역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사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윤보선 대통령 역을 자주 맡았다.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삼김시대에서 4번.

가상의 대통령 역도 몇 번 맡았는데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대물, 한반도 등이 그 예. 그런데 이렇게 가상의 대통령일 때는 주로 차기 대선을 앞둔 임기 후반이고, 후임 대통령이 될 등장인물에게 우호적이다. 대체역사물인 마이 프린세스, 더킹 투하츠에서는 국왕이 아닌 국왕의 최측근 역을 맡았다.

그리고 대한민국 괴수물 <대괴수 용가리>[31]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1967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괴수물 매니아들에게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32]

왕비호는 이순재를 까보라는 요청을 주변에서 자주 받았지만 '그건 진짜로 욕먹는다'는 이유로 결국 고사했다. 겨우 한 것도 겨우 "어이! 이순재!"라고, 존칭을 빼고 부른 정도고 바로 사과했다.

2010년부터는 케이블TV 생명보험 광고, 상조회사 광고에 고정 출연 중. 특유의 칼칼한 목소리로 죽을 걸 생각하라고 강권 중.

특히 금융감독원에서 보험 광고에 출연하는 모델 규정을 강화해서, 이순재 역시도 생명보험공사가 주관하는 보험설계사 자격증 시험에 응시해야 했다고. 그 결과, 역시 서울대 출신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동중에 모의고사 문제 풀기에, 보험사의 교육팀으로부터 교육, 자격요건에 해당하는 30시간 온라인 교육을 이수하고, 생명보험 관련 문제에서 60점 이상으로 낙방 한 번도 없이 합격하여 78세의 보험설계사가 되었다.

원문보기: #

파일:external/img.sbs.co.kr/200439217.jpg
리얼리즘!

활동 초기에는 텔레비전 외에 연극 무대에서 열연하기도 했는데, 2010년 12월 10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되었던 돈키호테에서 오랜만에 연극 배우로 출연했다. 기존에 많이 상연되던 뮤지컬 버전인 맨 오브 라만차의 각색이 아닌 프랑스 극작가 빅토리앵 사르두의 중후한 희곡 버전을 택했고, 여기에 일부 한국식 풍자 요소를 더해 연출했다고 한다. 이순재의 배역은 타이틀 롤인 돈키호테. 다만 단독 캐스팅은 아니고, 후배인 한명구가 번갈아가며 출연했다. 종연 후에도 꽤 인기가 있었는지, 2012년 초순에 같은 극장에서 한 차례 더 공연했다. 2017-2019년에도 연극 <장수상회>, <앙리 할아버지와 나>,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에 나오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김슬기와 함께 나온 2018년에 이어 채수빈과 함께 2019년 재공연이다.

2013년 꽃보다 할배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함께 H4로 출연 꽃할배 열풍을 일으켰다. 출연진중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도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며, 빠른 걸음과 멈추지 않는 직진본능으로 '직진순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촬영 내내 엄청난 학구열과 열정을 보여줬고 여행지마다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동물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동물사랑의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자막으로 뜨는 별명은 '숲속의 친구'.

3. 연예계의 큰어른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서 어른 행세하고 대우받으려고 주저앉아 버리면 늙어버리는 거고, 난 아직도 한다 하면 되는 거예요. #
- 꽃보다 할배 스페인 편 中에서[33]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전국 노래자랑송해[34] 다음으로 가장 연세가 많은 현역 연예인이자[35] 대한민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현역 원로 배우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연기 역사의 산 증인.

항상 먼저 모범을 보이는 자세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보통 이순재 정도 되는 원로 배우는 촬영 시간을 앞당겨 주는 것이 관례인데도 다른 배우들이 자신 때문에 촬영 시간이 늦춰지는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몇 시간씩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36] 또한 젊은 연예인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했을 때 따끔한 소리를 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최근에는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한 방송에서 '미투운동을 접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제자나 부하를 내 마음대로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분들 다 아는 분들이라 깜짝깜짝 놀란다. 설마설마했는데 사실화됐다"며 "관객들이나 국민들한테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 꿈을 접은 후배들을 향해서는 "자기 탓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연기) 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연기 재개를 권유했다. 반면 가해자들을 향해서는 "이 분야를 다 떠나야 한다. 다 끝을 내야 하지 않겠나"라며 "다들 깊이 반성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금 한 약속을 잘 지키고 '나 죽었소'하고 평생 엎드려 있으라"고 충고했다.[37]

2018년 4월 20일에 공개된, 차이를 넘어 묻고 차이를 넘어 답하다(차문차답) 캠페인에서 5세, 8세, 10세 어린이들이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을 이순재에게 묻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중 한 여자아이가 '미투가 뭐에요?' 라고 묻자 '그런 말을 알 필요도 없고 그런 말을 생각할 필요도 없어. 너희 때는 그럴 일 절대 없을 테니까' 라고 답을 해 주었다.

승리 게이트가 터지자 2019년 4월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영화 ‘로망’ 기자회견에서 이 사태에 대해 “연예인은 공인은 아니지만, 행위 자체가 전파성이 있어서 공인 역할과 개념이 있다. 조심하고 절제해야 한다”, “연예인이 특권이 어디 있나. 특권의식은 의식에 달린 거다. 연예인이란 결국 인기가 필요한 직업이지만, 요새 착각하는 친구들이 많더라”, "내가 연예인인데 자유분방하면 어때, 그게 예술이야’라고 주접떠는데, 그러면 안 된다”, "빌붙어 비즈니스 같은 게 들어와도 넘어가면 안 된다.", “승리 같은 경우도 그렇다. 30살밖에 안됐는데, 주변에서 바람을 넣는다.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는 일에 끼어들면 잘못 말릴 수 있다. 우리 선배들도 예전에 그러다가 거덜 난 사람 많다. 나 때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자기들이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고 좋은 연기, 좋은 노래 하면 되는데 왜 그런 사업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라고 지적하며 “버닝썬 사건은 사회적 패악에 대한 문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고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주변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

2019년 4월 12일 해피투게더 4에 출연해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하였다. 본인 세대는 인기가 곧 수익성으로 연결되는 세대가 아니었지만[38], 요즘은 달라서 그런지 뭘 잘못 생각하고 사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연예인이 비록 공인은 아니지만 영향력이 큰 만큼 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언급했다. 여담으로 당시 방송 흐름상 자연스럽게 나온 말은 아니고, 사전 인터뷰 때부터 해피투게더측에 양해를 구한 다음 중간에 시간을 마련해서 말한 것이다. 해피투게더라는 국영 공중파 방송에 나오는 김에 작심하고 쓴소리를 날린 것으로 보인다.

4. 정치인 이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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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선거벽보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선거벽보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이지만 대한민국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8년의 13대 총선에도 민주정의당으로 나왔지만, 평화민주당의 이상수에게 근소한 차이(32.3% 대 31.4%, 759표 차이)로 패했다. 첫 번째 선거에서는 따로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당시 현역 의원이었던 민주당 이상수 후보를 제치고 서울 중랑구 갑에서 당선되었다(48.7% 득표, 46,297). 이후 1993년 잠시 민자당 부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비록 선거에서 경쟁 후보로 만났지만 이때 만난 이상수 전 의원과 친해져서 이후 총선에서 이상수 전 의원이 2006년 재보궐선거열린우리당으로 출마했을때 선거운동(정확히는 선거후원회장)도 해줬다고 한다. #

매우 친했던 동료 배우이자 같은 대학 출신인 고(故) 이낙훈이 먼저 정치 활동을 하면서 같이 하자고 권유한 것이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

대한민국의 1세대 실향민 세대가 으레 그렇듯 정치적 성향은 전반적으로 보수이다. 2011년 10월 22일 KBS 1에서 진행한 4대강 정비 사업 홍보 방송 '특별생방송 4대강 새물결맞이'에 출연하여 5분 50초간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산에 나무가 무성하고 강에 물이 풍부하게 흐르면 우리 삶도 풍부해진다'라며, 4대강 사업을 '새로운 문화가 생기고 새로운 행복이 만들어지게 하는 사업'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그는 2012년 대선에서도 박근혜를 지지했다.

다만 게이트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정당과는 연을 접은 듯 하다. 보수 성향이라고 해서, 어느 한 쪽 정당 만을 지지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당장 위의 이상수 후보만 해도..

라디오스타 출연 당시 "어려운 한 해, 불운의 한 해였다. 반드시 극복되리라 믿는다"는 인사말을 건넨 바도 있다. #

5. 기타

  • 아끼는 연기자 후배로는 꽃보다 할배를 통해 언급한 이병헌, 김명민, 이승기, 하지원 등이 있다. 특히 김명민을 향한 칭찬 및 애정이 대단하다. 김명민이 배우로서 노력하는 자세를 보고 있자면 당연한 것일지도. 이서진: 선생님, 저는요...?
  • 건강의 비결에 대해선 술담배를 안하는 것을 꼽았다. 술은 일찍부터 배운 적이 없으며[40], 담배는 1982년도에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당으로 유명한 신구에게 회식 때면 "술 맛 떨어지니까 빨리 가라"라며 쫓겨난다는 듯.
  • 일본 대부업체 아프로서비스그룹 계열사인 OK저축은행에 광고모델인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있다.
  • 차지철과 생년월일이 같다. 이순재와 차지철 두명 다 정치인으로 활동한것도 일치한다.

6. 출연 작품 목록

6.1. 드라마/시트콤

6.1.1. TV

6.1.2. 라디오

  • 삼국지(동아방송)

6.2. 영화

  • 오늘은 왕(1966)
  • 초연(1966)
  • 문정왕후(1967)
  • 해방동이(1967)
  • 한(1967)
  • 막차로 온 손님들(1967)
  • 대괴수 용가리(1967)
  • 몽녀(1968)
  • 아네모네 마담(1968)
  • 언니의 일기(1968)
  • 시발점(1969)
  • 미녀 홍낭자(1969)
  • 성녀와 마녀(1969)
  • 저것이 서울의 하늘이다(1970)
  • 팔도며느리(1970)
  • 분례기(1971)
  • 어머니(1972)
  • 갯벌 속의 여자(1972)
  • 토지(1974)
  • 위험한 사이(1974)
  • 연화(1974)[51]
  • 속 연화(1974)
  • 황토(1975)
  • 서북청년단(1975)
  • 집념(1976)
  • 어머니(1976)
  •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77)
  • O양의 아파트(1978)
  • 사랑의 조건(1979)
  • 화려한 경험(1980)
  • 미워도 다시 한번'80(1980)
  • 사람의 아들(1980)
  • 아빠 안녕'81(1981)
  • 모두들, 괜찮아요?(2005)/원조
  • 음란서생(2006)- 특별 출연
  •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김정호
  • 업(Up)(2009)/칼 프레드릭슨[52]
  •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김만석
  • 로맨틱헤븐(2011)/하느님
  •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2016)/박중식
  • 덕구(2018)
  • 완벽한 타인(2018)[53]

6.3. 예능

6.4. 광고

7. 수상 경력

  • 1966년 제2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연기상
  • 1968년 제11회 부일영화상 신인남우상
  • 1970년 TBC 연기대상 대상
  • 1970년 제6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애독자인기상
  • 1971년 제7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애독자인기상
  • 1972년 제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애독자인기상
  • 1972년 제15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 1974년 제10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애독자인기상
  • 1974년 TBC 연기대상 남자 주연상
  • 1977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1979년 TBC 연기대상 특별공로상
  • 1982년 제9회 한국방송대상 TV 연기상
  • 1984년 제11회 KBS 우수프로그램평가상 연기상
  • 2000년 MBC 연기대상 연기자부문 특별상
  • 2000년 SBS 연기대상 공로상
  • 2002년 MBC 명예의 전당
  • 2002년 문화관광부 문화의 날 보관문화훈장
  • 2004년 SBS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연기상
  • 2007년 제41회 납세자의 날 동대문세무서장 표창
  • 2007년 제1회 엠넷 20's 초이스 베스트 캐스팅상
  • 2007년 제1회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공로상
  • 2007년 제8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탤런트부문 포토제닉상
  • 2007년 MBC 연기대상 사극부문 황금연기상
  •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 2008년 MBC 연기대상 PD상
  • 2009년 제45회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 2009년 제9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원로배우부문 인기영화인상
  • 2009년 MBC 방송연예대상 공로상
  • 2010년 제1회 서울문화예술대상 문화예술인부문 대상
  • 2010년 제10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원로배우부문 인기영화인상
  • 2011년 제20회 금계백화장영화제 남우주연상
  • 2011년 제11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원로배우부문 인기영화인상
  • 2011년 대한민국 CEO 그랑프리 특별상 문화CEO부문
  • 2012년 제1회 K-드라마 스타 어워즈 공로상
  • 2016년 제1회 tvN10 어워즈 예능아이콘상
  • 2017년 제27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 2018년 대한민국지식기업인 문화부문 대상
  • 2018년 제13회 골든티켓어워즈 인기상
  • 2018년 제13회 골든티켓어워즈 연극 남자배우상
  • 2018년 제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 2018년 제7회 대한민국 베스트 스타상 베스트 주연상
  • 2018년 제18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원로배우부문 인기영화인상

8. 선거 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중랑구 갑) 민주정의당 26,483 (31.4%) 낙선 (2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중랑구 갑) 민주자유당 46,297 (48.7%) 당선 (1위)

[1] 1971년에는 대상이 없이 남자·여자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2] 당시에는 대상이 따로 없었고 남자·여자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A] 남녀 구별없이 시상[A] [5] 주민등록상으로는 1935년 10월 10일생인데, 실제로는 저 생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던 당시나 현재 대한민국 헌정회에서는 1935년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2018년자 뭅뭅 인터뷰에서는 (세는나이) 85세로 본인을 소개하였다.[6] 현재 북한 함경북도 회령시.[7] 광주 이씨 21세손 '載'자 항렬이다.[8] 지금 기준으로는 작지 않나 싶을 수 있지만 저 당시 한국남자의 평균키는 160대 중반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9] 한국 드라마가 아직 후시녹음 체제이던 5,60년대에는 모든 연기가 다 더빙이었다. 사실상 성우로서 먼저 데뷔한 셈.[10] 보통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시켜봐도 열에 아홉은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아나운서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ㅙ, ㅚ 는 커녕 장모음 단모음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11] 그 유명한 김종서6진 개척에 나오는 6곳 중 하나.[12] 1938년.[13] 이명재(1994년 사망). 남동생의 아내 이름은 중견 탤런트 정혜선과 동명이인이다.[14] 당연히 피난 가기 바쁜 와중에 배낭 매고 어디 놀러갔을 리는 만무하고 만약 정말 그랬다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한 것이지만, '짐을 짊어지고 멀리 피난을 가는 행위와 배낭을 둘러메고 멀리 여행을 떠나는 행위가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는 뜻 정도로 보면 무난하다. 물론 '짐을 지고 멀리 떠난다'는 행위 놓고 보자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 당연히 피난과 배낭 여행은 본질적으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15] 당시로서는 경기고-서울대와 맞먹는 대단한 학맥 라인이다. 그가 국회의원이 될수 있었던 계기중 하나도 서울고-서울대라는 학맥도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16] 이 시절의 철학계는 독일이 그야말로 대세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번역본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독일어가 필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마누엘 칸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등의 전공책들을 독일어 원서로 읽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독일어 실력이 동년배에 비해 썩 나은 편임을 꽃보다 할배 스위스편에서 독일어로 쓴 지명을 부드럽게 읽음으로써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유럽에서 만난 일본인 팬들과 일본어로 문제 없이 소통 가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전 명문대 출신들은 비록 회화는 어렵더라도 웬만한 일본어 원서는 그냥 읽을 만큼 일본어가 능통하다. 애당초 대학교 교재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거나 국내에서 쓸 만한 교재들이 쓰이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도 박정희 군부독재시절이라 마땅히 읽을 책을 구하지 못해, 자본론을 일본어로 읽었다.[17] 여담으로 이 당시 연극부 부원 중에는 요즘 건달 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도 있었다. 그리고 채현국 이사장을 건너 고건 전 국무총리와도 아는 사이. 사실 고건 전 총리의 아버지 고형곤 박사가 이순재를 가르쳤던 주임교수였다. 한 번은 4학년 때 연극 합숙 연습 때문에 수업을 두 차례 빠져야 해서 찾아가 말했더니 '그래,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 라며 흔쾌히 봐주었다고.[18] 수미옥 13화에 게스트로 출연했을때 술회한 바에 의하면 TBC 범죄수사극 검은수첩에 범인 역으로 고정 출연해 미성년자 강간치사범이라는 지금 이미지로는 상상도 안되는 역을 했었다고 한다. 강간치사범을 포함해서 33번이나 범인으로 출연해서 이미지 회복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고 한다.[19] TBC 시절 이 후에는 큰 상을 받은적이없다.[20] 아무래도 연예대상 시상식인 만큼 같이 수상한 무한도전팀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순재 또한 겸연쩍다는 내용의 수상소감을 했다.[21] 이순재 본인이 직접 자신이 항상 첫번째는 아니고 신성일처럼 스케줄이 넘치는 스타의 대타였다고 밝혔다.[22] 오히려 위에서 거론된 대기만성형의 대표주자는 백윤식이다. 그도 한창 젊은 시절인 70-80년대에는 비중없는 조연에만 머물렀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 드라마 서울의 달로 주목을 받고 2000년대 들어서 영화판에서 굵직하게 활약하여 노년에 들어 입지를 굳힌 케이스다.[23] MBC에서 최민수의 노인폭행 누명을 다룬 특집 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제작진은 연예인들을 둘러싼 각종 악성루머들을 조명하며 한번도 구설수에 없는 이순재를 찾아가 비결을 물었다. 이순재가 말한 비결은 무조건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이라는 것이었다.[24]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도움상회 때문에 보람상조에서 나온 멘트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라이나생명 광고 멘트이다. 이 멘트가 이순재를 대표하는 멘트가 되어서인지, 광동제약의 헛개나무 숙취해소 음료 광고에서도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보험처럼 마시자라는 어레인지된 멘트를 쓰기도 했다.[25] 이 조치 때문에 보험 광고를 촬영하는 연예인인 손범수, 문천식, 정은아, 김상중 등이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26] 다른 한 명은 풍파고 교감 분의 홍순창.[27] 강수진 성우가 맥심 인터뷰에서 '대가는 어디를 가나 통하더라'며 칭찬을 했다. #[28] 사실 이순재는 옛날의 후시녹음 체제 때부터 활동해온 배우라 발음과 발성이 좋은 편이고, 한국 드라마가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었던 옛날 젊은 시절에는 성우로 일하면서 더빙을 해서 얻는 수입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환경이 개선되면서 오래도록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그냥 이순재의 자기 관리와 연기력이 뛰어난 거다. 본인은 카메라 연기와는 방식이 달라서 쉽지 않았다는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 적당히 유명세 마케팅으로 투입된 배우, 아이돌, 개그맨들과는 내공이 다르다. 애초에 가벼운 마인드로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다.[29] 대학생이던 1947년도부터 활동했다.[30] 실제로 수준 미달의 연예인 더빙이 나올 경우 이런 결과물을 만들거면 왜 성우들의 자리를 빼앗았냐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는다.[31] 심형래 괴작이 아니라 판문점에서 솟아난 원조.[32]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여러 나라에 각 나라의 더빙판이 수출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것은 대한민국에는 손상된 판본뿐이고, 오히려 미국 더빙판이 더 온전하다는 것. 2013년 7월 21일 EBS에서 HD 리마스터링된 미국 더빙판을 방영했다.[33] 여행 도우미인 이서진 없이 숙소를 찾아가야하는 상황이라, 비행기에서 잠도 마다하고 스페인어를 속성 공부해서 결국 공항부터 숙소까지 동생들을 이끌고 온 뒤 한 말. 이 내용은 노슬아치 문서에도 있는데 나이 먹은걸 벼슬로 여기는 일부 무개념한 노인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명언이라 할수 있다.[34] 1927년생.[35]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자신이 유일하게 형님으로 부른다고 말했다.[36] 공주의 남자 촬영 당시 김영철의 깨달음[37] 그래도 본인 역시 구시대를 살아와서 나이가 있다보니 걱정되었는지 한 방송에서 하이킥에 같이 출연한 후배 배우 박해미와 같이 식사하면서 하이킥 찍을 때 자신도 그런 적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참고로 박해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인 적이 있다.) 근데 오히려 박해미는 "당시 별명이 야동 순재였음에도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38] 그러면서 "신구나 나나 평생 연기를 했지만 빌딩 한채 없다"는 너스레를 떨었다.[39] 여담이지만 이순재의 출생 당시 미국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다.[40] 뉘앙스를 봐서는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인 것 같다.[41] 92총선 당선 후 나온 드라마여서 문제가 많다.[42] 위에 소개된 작품인 "동의보감"과 같은 역할로 출연했다. 최근 시청자들은 드라마 "동의보감"보다는 "허준"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어서 어차피 같은 역할이긴 하지만, 동의보감에서의 유의태보다는 이 역할로 더 기억하는 것 같다.[43] 이순재 옹의 몇 안되는 정통 악역(?). 부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 더 나쁜 놈(정치수)에게 당하고 몰락하는 역할로 등장하여 호평을 받았다.[44] 직접 출연은 하지 않았고 하야시 집에 초상화로만 등장.[45] 천원짜리에 있는 그 퇴계 이황 맞다. 복장과 분장이 퇴계의 초상화와 영락없는 판박이.[46] 그 유명한 야동순재다![47] 참고로 이순재의 얼굴은 영조의 어진과 많이 닮았다. 고증류 [48] 역시나 그 유명한 방구순재다.[49] 파천무 이후 21년만에 다시 맡은 김종서 역할. 본인도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최근 2012년 공주의 남자 일본진출에 따른 현지 매거진에 의하면 김종서에 대해 많은 자료를 접하고 연구하여 연기에 임했다 한다. 김종서는 공교롭게도 이순재의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을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50] 워낙 미스캐스팅발연기가 넘치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분이라는 평가가 많다.[51] TBC 동명 드라마를 리메이크함[52] 연예인 더빙으로 우려를 받았으나, 상술되어있듯이 오히려 연기를 잘 소화해내 호평을 받았다.[53] 목소리로만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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