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00:51:40

궁예(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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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퓨리
1. 개요2. 작중 행적
2.1. 출생의 비밀 및 출사 이전2.2. 양길의 수하로 들어가다2.3. 아지태와의 만남, 그리고 본격적인 타락2.4. 사람을 마구 죽이는 마구니가 되다2.5. 최후
3. 평가
3.1. 무력 본좌3.2. 비타협적 독선3.3. 감정 결핍과 이기주의
3.3.1. 막장 가족사
3.4. 갈수록 나빠지는 판단력
3.4.1. 극단을 오가는 경제관념3.4.2. 궁예의 북벌
4. 기타 이모저모
4.1. 궁예와 미륵신앙
4.1.1. 출사~기훤 휘하 시절4.1.2. 양길 휘하 시절~김순식의 귀순4.1.3. 철원성 함락~비뇌성 전투4.1.4. 비뇌성 전투~미향의 죽음4.1.5. 아지태와의 만남~궁예 암살 미수 사건4.1.6. 철원천도~태봉국 멸망
5. 패러디 및 인터넷 밈화6. 어록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비중으로나 전반부 스토리 전개로 보나 '태조 왕건' 전반부(태봉국 멸망까지)의 '진 주인공'이다. 궁예라는 인물이 사극에서 조명된 첫 사례. 김영철이 연기했으며 아역은 맹세창이 연기했다. 한때 궁예 배역으로 이덕화가 거론됐지만 지극히 평면적인 요승 기믹이 될 것을 우려해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영철의 열연 덕분에 강렬한 인상과 함께 수많은 명대사들을 남겼으며 당시 아이들 사이에 관심법이나 법봉[1]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고[2] 또한 김영철 특유의 억양을 흉내내는 것도 유행했다. 김영철은 이전에도 탄탄한 연기력의 중견 연기자였지만, 궁예 역 이후로 크게 인기가 폭발하여 2000년도에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중년 연기자 중 본좌급 반열에 오르게 된다. 김영철이라는 배우 자체가 연기력과 발성이 출중하다 보니 어느 것 하나 버릴 부분이 없긴 하지만, 초반부와 전반부에 초강력 카리스마 연기를 선보여 국민들과 언론의 폭발적인 인기와 찬사를 받게 되었고, 이때 김영철의 카리스마에 대해 신문사들에서는 "궁예가 환생한 것 같다."고 말하거나 같은 이환경 작가의 드라마였던 용의 눈물태종 이방원 역의 유동근과 더불어 "산도 움직일 것 같은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또 이환경 작가를 비롯한 드라마의 제작진들이 처음부터, 궁예를 중심으로 극을 전개하기로 계획하고(이환경 작가는 인터뷰에서 왕건보다는 궁예와 견훤에게 더 애정이 간다고 밝혔다.) 드라마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간 것과, 또 궁예 김영철의 신들린 연기로 궁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시청률이 높아지자 인기에 편승해 드라마 방영 횟수를 크게 늘려 궁예가 계속 등장하게 됨에 따라 주인공인 왕건이 시청자들과 언론의 주목을 제대로 못 받게 되어서 태조 왕건이 아니라 '태조 궁예' 또는 '미륵 궁예'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최수종은 페이크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굴욕도 당해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 김영철의 궁예가 얼마나 존재감이 막강했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가 있는데, 극중에서 궁예가 사망하자 태조 왕건 드라마 자체가 종영됐다고 착각한 시청자들이 전국에서 속출했다고 한다. 그 존재감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드라마의 이름이 '태조 왕건'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할 정도였던 것이다.

이환경 작가의 전작 '용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도 당시 정치적인 관점에서 우리나라 국민들과 정치인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특히 궁예와 아지태를 당시 현실의 주요 정치인들과 비교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고 이에 궁예와 아지태로 비교된 정치인들은 거세게 반발하는 사태도 생겨났다. 배우 김영철은 그야말로 신들린 카리스마 연기로 폭발적인 찬사와 인기를 얻었지만 오랫동안 궁예 연기를 하면서 장기간 안대를 착용하는 바람에 후유증으로 인하여 양쪽 눈의 시력이 달라져 부동시로 인해 한동안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실 이 사례 말고도 대부분의 애꾸눈 캐릭터를 연기하기엔 상당한 부담이긴 하지만. 거기다가 항상 머리를 민 상태로 추운 겨울에 경기도에서 촬영을 하느라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극초반엔 상의탈의하고 폭포 앞에 앉아있는 장면까지 나온다.

용의 눈물이방원야인시대시라소니와 더불어 이환경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한국 사극에서 무척 보기 드문 특이한 캐릭터다. 단순히 광기어린 군주 캐릭터는 과거 다른 사극들에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뛰어난 능력과 강력하고 기이한 카리스마를 가졌으나, 속을 알기 힘들고 예측할 수 없는 광기로 다른 사람들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드나 그 속에는 인간적인 나약함이 깃들어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는 궁예 뿐이다.

그리고 이런 여러가지 요소가 더해졌기 때문에 한동안 인터넷상에서도 궁예의 관심법이나 그런 것을 관련으로 여러 합성 요소나 은어들이 탄생하는 듯,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독보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으며 태조 왕건의 엄청난 고공행진을 이끌었던 최고의 공신이라 할 수 있다.

2. 작중 행적

2.1. 출생의 비밀 및 출사 이전

신라 북부의 요충지 철원성을 함락하고, 철원성에서 부처님의 나라가 건국되었음을 선포하면서 시작한다. 철원을 함락한 뒤, 왕륭을 제외한 호족들이 자진하여 궁예에 귀부하였는데, 궁예는 호족들이 바친 여인들을 물리면서 그들에게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선정을 베풀라는 일침을 날린다. 그리고 폭설이 내리던 날, 아직 귀부하지 않는 왕륭에 대해 종간과 대화하면서, 자신이 송악[3]으로 쫓겨와 유모와 함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던 그 날을 회상한다.

당시 어린 궁예와 그의 유모는 신라군에게 쫓기며 송악 인근 세달사[4]의 범교 스님에게로 가고 있었다. 신라군의 추격에서 벗어나 간신히 송악에 도착하였으나 유모는 고된 방랑길 때문에 몸이 약해져 쓰러졌는데, 이때 우연히 그들을 발견한 왕륭이 그들을 거두어 자기 집의 방을 하나를 내어주어 쉬도록 하였다. 이때 신라군은 이들을 쫓아 왕륭의 집에 찾아가서는 각간 김위홍의 명을 받았다며 역적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왕륭은 궁예가 그저 역적 누명을 쓴 거라고 생각하고 신라군을 쫓아내버린다. 왕륭이 송악 지역의 유력한 호족인데다 지역의 통치자였고, 그 역시 위홍과 잘 알던 사이인데다가 중앙 정부의 명령이 잘 안 먹힐 시기였는지라 신라군조차 이들을 어찌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직후 죽음을 직감한 유모는 그제서야 궁예가 가진 출생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신라 왕실의 증표를 궁예에게 전달하고, 범교 스님에게로 가라는 유언을 남긴 채 사망한다. 사실 궁예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유모를 어머니로 알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궁예의 유모가 죽던 날에 왕건이 태어났고, 궁예와 왕건의 기구한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침 왕건의 출생을 기념하여 왕륭은 동생 왕평달을 시켜 세달사에 제를 올리라고 하였고, 왕륭은 죽은 궁예의 유모를 거두어 왕평달로 하여금 궁예를 범교 스님으로 데려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궁예가 범교 스님에게 신라 왕실의 증표를 알려주자 범교는 한탄하면서 궁예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다.

여기서는 궁예의 혈통을 신라 경문왕 서자설을 채택했다. 경문왕은 47대 국왕 헌안왕의 사위였다. 헌안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이었는데, 왕족이자 뛰어난 화랑이었던 김응렴, 즉 경문왕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 사위로 삼고 왕위를 잇게 하였다. 하지만 경문왕은 출중한 화랑이었지만 왕으로서의 통치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왕위를 잇기 위해 반강제로 맺어진 선왕의 딸들과 사이에 아들 둘을 두었지만 이성적인 흥미가 없었고, 그렇게 방황하다가 어느 시골 어촌 아낙네에게 반하여 그녀를 후궁으로 삼고 총애하였다. 그러다가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 아들이 바로 궁예이다. 다만 이 드라마에서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당나귀 귀 설화를 경문왕의 줏대 없는 성격을 반영한 설화라고 해석하는 등 경문왕에 대해 그다지 좋은 평을 내리고 있지 않다는 점은 염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미 정실 왕후 소생의 왕자를 둘씩이나 두었고 선왕의 딸이기도 한 정실 부인들이 신분도 낮고 총애를 독차지하는 궁예의 어머니를 좋아할 리가 없었고, 당연히 궁예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경문왕의 왕후들은 점을 보는 관리를 협박하여 궁예의 점괘를 흉하게 조작하였다. 점괘가 좋지 않자 대소 신료들의 여론은 매우 나빠져 경문왕에게 궁예를 죽이라고 계속해서 극구 청을 올렸고, 경문왕의 동생 김위홍도 궁예를 제거할 것을 권한다. 경문왕은 처음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마지못해 대소신료들과 아우 위홍의 뜻에 따르게 되고, 이에 위홍은 군대를 거느리고 후궁전을 기습하여 궁예를 죽이려 하였으나 궁예의 어머니와 유모는 간신히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그러다가 막다른 정자에 다다르자 궁예의 어머니는 정자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유모에게 궁예를 전달했는데 유모가 받는 과정에서 실수로 궁예의 눈을 찔렀고, 이에 유모는 경악해 비명을 지르게 된다.

이후 유모는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해 어린 궁예를 안고 계속 도주하다가 그녀를 계속 추격해온 관군에 죽을 위기에 처했을때 한 화랑의 도움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넘겼는데, 도움을 준 화랑이 바로 범교로 경문왕이 화랑이던 시절 범교와 경문왕은 친구 사이였고, 범교는 뛰어난 화랑이었던 경문왕을 왕으로 옹립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궁예의 박복한 운명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라 왕실의 증표를 유모에게 전달한 사람도 바로 범교다. 그렇게 범교는 궁예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 뒤, 세달사에서 머리를 깎고 불가에 귀의하여 다 잊어버리라고 권하였지만, 머리를 깎던 중에도 궁예의 속마음은 신라 왕실을 향한 복수심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궁예가 머리를 깎을 때 궁예를 데리고 법당으로 간 뒤 지켜보던 사람이 바로 종간이었는데, 그는 궁예의 비밀을 몰래 엿들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궁예는 어린 시절에 성격이 괄괄하여 늘 말썽을 피우며 다녔다고 하는데, 이 드라마 속의 어린 궁예는 그런 악동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오랫동안 거지꼴로 신라군에 쫓기는 생활을 하다보니 상당히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는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종잡을 수 없었다는 평가를, 궁예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로 해석하여 작중 궁예는 10년간 착실하게 불경 공부를 하며 무예와 실용 기술을 익힌 것으로 되어 있다.

약 10년 후, 장성한 그는[5], 범교 스님으로 부터 '선종'이란 법명을 받고선[6], 세달사에서 7년, 외딴 산의 암자에서 3년 간 수행을 하였다. 작중 설정상 세달사에선 스님들에게 단순히 불경 공부만 시킨 것이 아닌 무술, 기초 의학 등, 이 세기말에서 스스로 몸을 지키는데 필요한 각종 실용 기술들을 가르쳤고, 이는 극초반부 궁예가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 외딴 산의 암자에서 3년간의 수련을 한 끝에, 궁예는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암자를 하산해 세달사로 내려간다.

궁예가 하산하고 세달사로 내려가던 중에, 까마귀가 그의 앞에 무언가를 떨어뜨렸는데 그것은 점을 칠 때 쓰는 상아로 만든 산가지 였고 거기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었다. 궁예와 동행하던 종간 또한 세상을 구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었는데, 관상과 점을 보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던 종간은 이를 계기로 궁예를 임금이 될 사람으로 보아 궁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신하가 될 것임을 선언한다.

세달사에서 내려온 궁예와 종간은 범교 스님으로부터 떠나겠다고 말했고, 이때 궁예는 범교 스님에게 자신이 '미륵'이라 선언하고 이로 인해 범교는 그야말로 기가 막혀 한다. 범교는 그렇게 속세로 내려가 본들 소용없다고 다그치나 제자들을 말릴 수는 없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목적지를 눈치채 서라벌의 도선 대사에게 가라는 말을 전하였으며, 그래도 스승이라고 마지막 선처로 서라벌에 왕륭에게 부탁을 해 놓아 궁예와 종간을 서라벌로 안내하도록 한다. 궁예는 종간과 함께 출생의 과거도 정리할 겸 도선대사도 보러 갈 겸해서 송악을 거쳐 뱃길로 서라벌로 가게 되고, 마침 왕륭은 상대등이 된 위홍에게 진귀한 물품들을 바치기 위해 서라벌로 가는 길이었으므로 왕륭, 왕건 부자와 재회한다. 왕건은 당시 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항해 지휘가 흠잡을데 없자 종간은 불안함을 직감하였고, 향후 궁예와 왕건은 상극이 될 것임을 궁예에게 조언하였으나 궁예는 왕건의 재주가 대단함을 감탄하기만 했을 뿐 종간의 조언을 물린다. 사실 이 시점에서 왕건은 유력 호족 가문의 자제이지만 궁예는 이제 막 속세로 하산한, 본인과 종간 둘 뿐인 상황이다. 불안함을 느꼈다 한들 뭘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왕륭, 왕건 부자와 서라벌로 가는 길에 산적 마석대의 습격[7]을 받아 왕륭, 왕건을 호위하고 있던 마사부와 장수장과 왕륭, 왕건 부자의 사병들과 함께 산적들과 싸웠고, 이들 중에서도 궁예와 종간, 특히 궁예는 '신기'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신들린 무예 솜씨로 산적들을 제압하고 있던 중, 김위홍의 부하로 있던 견훤이 군대를 끌고 와 같이 산적을 완전히 진압한다. 이후 견훤에게서 석장을 휘두르는 솜씨가 마치 손오공이 여의봉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는 극찬을 듣는다.[8] 각설하고 궁예와 견훤, 왕건이 서라벌에 가는 도중에 서로 만났다는 것은 물론 드라마에서의 각색이지만 후삼국 시대의 주역들이 서라벌로 가는 길에서 조우했던 것이다.

궁예가 서라벌에 갔을 때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숙부 위홍이 신라 최고의 관직인 상대등으로서 권력을 휘둘렀을 뿐만 아니라, 궁예의 누이이자 자신의 조카인 진성여왕과 불륜행각을 벌이며 나라를 좀먹고 있었다. 궁예는 위홍을 찾아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궁예 어머니의 소재를 물어보면서 동시에 위홍의 정계 은퇴를 권한다. 위홍이 정치에서 은퇴하여 스님이 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궁예의 예언은 현실이 되어, 위홍은 궁예가 떠난 다음날 진성여왕과 동침하던 중 복상사로 죽었다.

그 다음 궁예는 도선대사를 찾아가 자신의 앞날을 묻는데, 도선대사는 궁예에게 "뜻을 이루겠으나 복이 박하니 천하를 얻은들 소용없다."는 말만 남긴다. 훗날 백성의 마음을 얻어 나라를 세우나, 처음부터 그가 가지고 있었던 자신이 '미륵'이라는 터무니 없는 과대망상과 조급증,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미움으로 인해 폭군으로 변하여 파멸하는 궁예를 보면 놀랍게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예언인 셈.

2.2. 양길의 수하로 들어가다

이후 안성시 죽주의 칠장사[9]에서 비구니로 있는 자기 어머니를 찾아가는데, 주막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중 기훤의 부하들이 들어와 약탈을 자행하자, 궁예와 종간은 주먹과 목봉만으로 도적들을 두들겨 패서 쫓아내 버린다. 다음날 궁예 일행이 칠장사로 올라가던 중, 부하들의 보고를 받은 신훤과 원회가 궁예한테 시비를 거는데, 종간은 원회와 일기투를 하여 이겼고, 궁예 역시 덤벼온 신훤을 제압한다. 궁예의 실력에 놀란 원회는 용서를 구하고, 궁예에게 기훤한테 가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어차피 갈 곳도 없던 궁예와 종간은 궁예의 어머니를 뵌 이후, 그 일대에서 장군을 자칭하는 산적 수괴인 기훤의 수하로 들어가게 된다. 칠장사에서 궁예는 어머니와 만나고, 어머니는 궁예가 아들이라는 걸 알아보았지만 이미 속세에 미련을 버린 뒤였다.
소승은 도저히 알지 못할 말씀이십니다. 오늘의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어찌 20년 전의 일을 기억하라 하십니까? 소승은 이미 속가(속세)의 일은 잊은 지 오래랍니다. 인생은 짧고 부처님 만나기는 어렵다 하였습니다. 부질없는 망상에 이끌리지 마시고 수도에 정진하시구려. (방문이 닫기자 궁예 일행이 발걸음을 돌릴 때.) 범교 스님께서 전하라 하십디다.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은 멀고, 잠 못 이루는 이에게 밤은 길다. 작은 번뇌의 끈 하나 버리지 못하고서야 어찌 큰 일을 이루려 하느냐?"[10]하셨소이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석가모니불.
-태조 왕건 9화에서 궁예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한 대사.

어머니를 뵌 이후 궁예와 종간은 기훤의 수하로 들어가는데, 기훤은 하는 일이라고는 살육과 약탈에, 부상병들과 백성들을 그냥 내팽개치고 흥청망청 잔치나 벌이는 전형적인 인간 쓰레기였다. 죽주는 교통의 중심지라 발전의 여지가 있는 곳이었지만 기훤의 막장 운영으로 인해 의원 하나 없는 곳이었고, 스님 생활 당시 의료기술을 어느정도 배운 궁예와 종간은 부상병들과 다친 백성들을 돌본다. 별다른 댓가 없이 병자들을 돌볼 뿐더러, 심지어 부상당해서 식량을 얻지 못하는 병사에게 자기 식량을 선뜻 내어줄 정도로, 궁예는 말그대로 생미륵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덕분에 궁예는 기훤의 부하인 신훤과 원회 및 백성들의 민심을 얻게 된다. 얼마후 기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궁예와 종간에게 불만을 표하자, 궁예는 기훤이 어떻게 행동하나 볼 겸 해서 괴산약탈에 동행한다. 기훤은 괴산을 약탈하고, 백성들과 지역 관리들을 살육하며, 여성들을 성노예로 끌고가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이때 궁예는 죽은 관리의 어린 딸아이가 울고 있는 걸 보고선 아이를 끌어 안아 달랜다. 기훤은 아이를 내려놓으라고 명령을 내렸고, 아이까지 죽이려는 기훤의 모습에 궁예는 분노하였으나, 아이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양길 세력이 자신들의 영역에 있는 괴산을 함락시킨 것에 대해 경고성 서신을 보내자, 기훤은 노발대발하며 사자를 죽이려 하다가 수하들의 만류로 매질을 해서 돌려 보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훤은 세력 차이도 생각지도 않고 무작정 양길세력을 정벌하고자 한다. 그러나 병사 수도 많은 데다 갑주와 병장기도 제대로 갖추고, 정규군 못지 않은 체계를 갖춘 양길군과 달리, 기훤 쪽은 별다른 전략도 없고 체계따윈 없으며, 군장도 통일하지 못한 산적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원회는 양길과 싸우려 하는 기훤을 만류하다가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술세례를 당하고 두들겨 맞는다. 전쟁해봤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 죽을 게 뻔한 상황이며, 포악하고 무능한 기훤이 마음에 안들었던 신훤과 원회는, 그날 밤 쿠테타를 일으켜 기훤을 살해한다. 신훤과 원회는 인망이 두터웠던 궁예를 지도자로 내세웠고(14화), 이 곳에서 큰 뜻을 펼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궁예는 양길에게 항복해 죽주를 바친다.(15화)

양길이 정세에 대해 묻자 궁예는 남쪽은 견훤과 신라가 싸우고 있고, 북쪽은 호족들이 있으니, 고립된 동쪽인 명주성 지역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한다. 궁예가 맘에 들었던 양길은 궁예에게 셋째딸 미향을 시집 보내는데, 승려로서 살아간 궁예는 미향을 여인이 아닌 부처님의 제자로 대한다. 궁예가 말한 대로 동쪽을 도모하기 위해, 양길은 궁예를 변방인 석남사로 보내는데, 궁예를 감시하기 위해 평소에 신뢰하던 은부를 부하로 딸려 보낸다. 그러나 이미 궁예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던 은부는 아예 처음부터 궁예 일행과 협력한다. 은부가 지적했듯이, 변방이라고 하지만 요충지인지라 세력만 불린다면 동쪽으로 확장할 수 있는 석남사에 완전히 믿지 못하는 궁예를 보내는 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석남사에 파견된 궁예는 구휼 활동을 벌여 민생을 안정시키고 평등 사상을 전파하며 병사와 백성들과 함께 생활한다. 여기서 궁예는 직접 밭을 갈고 백성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등 직접 솔선수범한다. 덕분에 1년여 만에 석남사 일대는 안정화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동시에 동쪽을 정벌하기에 충분한 군세를 모으는 데 성공한다. 거기다 은부가 궁예에 대해 좋게 보고를 해 주었기에, 양길은 이를 믿고선 궁예에게 병사 600명을 지원해주고 동쪽을 정벌할 것을 명한다.(16화)

궁예의 군대는 명주성을 제외한 동쪽 지역들을 평정하고 가는 곳마다 굶주린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병자들에게 약을 주는지라 수많은 백성들이 궁예군에 몰렸고, 궁예는 수천의 병력을 거느리게 된다. 문제는 구휼 활동을 열심히 하다보니 명주성에 이를 때 쯤엔 서서히 군량미가 바닥나고 있었다는 것. 명주성은 방어가 견고하고 군사 숫자도 많은 관계로 신중하게 공략하기로 결정하는데, 이때 양길이 궁예를 북원으로 소환한다. 궁예는 북원에 가던 중 허월과 만나게 되었고, 북원에서 처음으로 미향과 첫날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은부의 계략 덕분에 양길의 정예 장수들인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을 데리고 갈 수 있게 된다.

이후 다시 군대로 복귀하던 중 다시 허월과 만나는데, 동행하면서 궁예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허월은 궁예가 스스로를 미륵이라 사칭하는 거짓미륵이고, 미륵을 사칭해 나라를 훔칠려는 도적짓을 하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나라를 훔칠려는 도적이라는 것을 시인한 견훤처럼 나라를 훔칠려는 도적이라는 것을 시인하라고 궁예를 신랄히 비판했다. 이에 종간은 매우 불쾌해하나, 허월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한 궁예는 허월을 쫓아내기는 커녕 허월을 불러 사석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당시만 해도 미륵을 단지 세상을 구할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던 궁예는 허월의 말에 불쾌해 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게 잘못된 행동이냐며 반문한다. 궁예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궁예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욕망과 분노를 지적하던 허월은 독주를 여러 병 비운 끝에 명주성을 궁예에게 주겠다는 기괴한 발언을 한다. 다음날 군량미가 다 떨어졌고, 명주성을 점령하지 못하면 끝장인 상황인 관계로 궁예는 공격을 개시하기 전 원회를 사자로 보내는데, 알고 보니 허월은 명주성의 성주 김순식의 아버지였고 허월은 아들에게 명주성을 궁예에게 주라고 명령한다.[11]덕분에 궁예는 아무런 피해 없이 명주성을 접수하였고, 명주성에서 추가 병력들과 장수들인 배현경, 홍유와 물자만 지원 받고 그대로 김순식에게 명주 지역의 통치권을 남겨준 다음, 철원으로 이동한다.(17~20화) 여기까지가 1화 이전의 내용이다. 물론 여기서 복지겸과 환선길, 이흔암, 은부가 양길 휘하, 배현경, 홍유가 김순식 휘하였다는 전개는 드라마의 창작이다.

이후 궁예는 철원을 함락 시키면서 건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고려[12]라 한다. 이후 다른 패서 지역의 고구려계 호족들과 왕륭, 왕건 부자가 투항하면서 궁예가 송악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왕건 가문에선 사비를 들여 왕궁까지 지어준다. 이때 궁예는 법회를 열어 지배층들에게 백성들을 착취하거나 억누르지 말라는, 매우 이상적인 사상을 전파한다. 이 때 왕건의 아버지 왕륭의 강경한 반대와 왕건을 견제한 종간의 계략으로 애초에 서로 약혼한 사이였던 왕건과 연화는 서로 결혼하지 못하고 궁예와 연화가 결혼하는데 궁예는 연화와 왕건이 약혼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양길이 공격해오자 궁예는, 당시 갓 스물을 넘긴 젊은이 왕건에게 총사령관을 맡기는 파격적인 인사를 감행한다. 종간의 우려와 달리 왕건은 능수능란하게 군사를 지휘하여 양길을 박살내버렸고, 이 전공으로 왕건은 궁예의 의형제가 된다. 여담이지만, 이 이후 왕건에게 한 행동들을 보면 왕건을 진심으로 자기 다음 황제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종간이 왕건이 그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하고 왕건을 자신의 침실에 재우고, 자기 다음으로 황제가 되보는게 어떻냐고 하는 등....

드라마 초반부의 궁예는 호쾌하고 사사로운 것에 연연하지 않는 시원시원한 남자다운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헤아림도 깊고 지혜로워 창업 군주다운 면모 또한 보인다. 기훤의 휘하에 있을 땐 기훤의 무관심에 방치된 다친 병사들을 치료해 주며 자신들에게 배급된 쌀도 내주는 배려심을 보여주었고 석남사에선 대장군인 양길의 사위이자 장수임에도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백성들과 함께 손수 밭을 갈고 일을 하였으며, 명주성을 공략하러 올 땐 군량미를 모조리 풀어 자신을 찾아 몰려들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철원성 공략에는 투항을 권유하러 갔던 사자가 성 앞 진영의 장수의 활에 죽은 채 돌아오자,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 "수많은 희생을 막으려 했던 성스러운 죽음이다. 도솔천에 올라 영생불멸 할 것이다."라며 기도를 해 주었다.

황제가 된 이후에도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송악에 궁궐을 짓는 게 마음에 걸린다 하고, 과거에 인연이 있긴 하지만 일개 신하가 된 왕륭이 죽자 친히 문상을 가기도 했다. 또 적이 되었다곤 하지만 양길의 부하로 있다가 양길을 배신한 양심의 가책과 양길과의 옛 정으로 양길과의 전투를 피하려 했고, 비뇌성 전투에서 양길이 패배하자 자신의 아내인 미향과 함께 조용히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권하기도 했었으며 이후 순행길에서 죽주의 태수가 화려한 식기와 기름진 음식을 내오자 "관리가 청렴해야 백성이 편하다."며 호통을 치며 상을 3찬까지만, 고기를 빼고 다시 차려올 것과 음식들을 구휼소의 병자들에게 줄 것을 지시한다. 특히 그 당시엔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유리잔에 술을 담아서 준비해뒀는데, 궁예가 특별하게 유리잔을 지적해서 "황궁에서조차 이런 비싼 것은 쓰지 않아!"라며 집어든 다음에 깨버렸다. 항복한 호족들이 예물과 미인들을 바치자 정색하며 "백성들은 나의 수족이요 , 부모요, 자식이라 하였소. 지금부터라도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오."라고 꾸짖고, 미인들은 궁에서 일을 하게 하고 예물은 군비에 충당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다만 양길의 강압으로 결혼을 했다고 하지만 어쨌든 부인인 미향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내버리는 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여기까지만 보자면, 미향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을 버리는 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 것 이외에는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었고 어질고 현명한 성군이자 살아있는 부처나 다름없었으나.......

2.3. 아지태와의 만남, 그리고 본격적인 타락

순행길 중, 청주 방문해 달라고 초빙하기 위해 온 아지태와 만나고 난 후부터 궁예는 타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궁예는 자신이 소망하던 불국정토를 이미 현실에서 이룩한 상태였는데, '그러면 앞으로는 뭘 하면 좋단 말인가?'라는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로 거기에 아지태가 '그러면 이제 대동방국을 만드시면 됩니다.'라고 하면서 나타난 것. 이 '북벌'에 반한 그는 아지태를 조정으로 데려왔고, 그의 아첨을 가려듣지 못하고 자신이 진짜 미륵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져가면서 송악에 도읍을 정하였고 궁궐도 이미 있음에도 송악은 원래 왕씨 집안의 것이니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구실로 철원으로 수도를 옮긴다며 무리한 궁궐 건설을 지시한다.

더불어 백성과 신료들에게 옴마니 반메 훔을 외게 하는 등 초심을 잃고, 본격적으로 제대로 권력에 타락해 가게 되며, 미륵신앙을 권력 유지용으로 쓴다. 다만, 권력욕과 망상에 시야가 흐려진 거지 아직 정신은 멀쩡했기에, 석총이 궁예는 미륵이 아니라며 대놓고 직언을 날릴때 석총을 나무라고 경고할 뿐, 별다른 해코지는 하진 않았다. 물론 석총도 궁예가 초심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충고를 한 것이었다.

원래 미륵 신앙은 민심을 모으고 국력을 결집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극초반 허월이 명주를 바치기 직전, 궁예의 성품을 시험해 보기 위해 궁예가 미륵을 사칭하고 있고 미륵을 사칭해 나라를 훔칠려는 도적짓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나라를 훔칠려는 도적이라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한 견훤처럼, 나라를 훔칠려는 도적이라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라고 말하며 백성들 앞에서 궁예를 꾸짖는 장면이 나오는데, 궁예는 이게 잘못된 행동이냐며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이후 허월과의 사석에서 궁예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미륵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는다. 또한 24회에 에 법회를 열었을 때, 궁예는 미륵의 세계를 욕심이 없는 세계, 고통이 없는 세계, 만민이 평등한 세계라고 칭하기도 했다. 궁예는 미륵 신앙을 도구로 이용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민심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었다.

미륵 신앙이 본격적으로 전제 황권에 악용된 것은 아지태의 농간에 놀아 나면서 시작되었고 여기에 놀아나는 궁예에게, 종간은 백성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자신들의 초심을 수없이 간언하나 모조리 씹혔다. 게다가 아지태의 허황된 북벌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높은 이상에는 작은 희생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아집이 생겼고, 나아가 "미륵인 나는 달리려고 하는데 너희 똥막대기들이 쫓아 오지를 못해!"라는 말을 하며 답답해한다. 때문에 타락 전의 법회와, 타락 후의 법회들을 보면 상당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송악에 도읍을 정할 때만 해도 법회를 검소하게 열면서 자신을 직접 미륵이라 표현하지도 않았으며, 여기서 궁예는 위정자들과 호족들에게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백성들을 착취하지 말라고 타이르는 어투로 설교를 하였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법회를 화려하게 열었으며, 법회의 내용도 궁예의 신격화 내지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면 나중에 더 큰 상을 내리겠다는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기존의 불경까지 무시하고 자기가 직접 경전을 저술하려고까지 해서 종간도 '불경은 오직 부처님께서만 쓰시는 것인데.....'라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유명한(?) 관심법도 이 때 언급되기 시작한다. 자신은 오래전에 도를 깨달았으니 관심법을 쓸 수 있다고 자만하는 궁예의 모습은 덤이다.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기 이전, 금성상륙작전이 막 시작 되었을때 이미 궁예는 판단 능력이 흐려졌다는 걸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금성상륙작전은 패서 지역 호족들의 전 재산과 많은 국고를 들인 대규모 계획이었고, 100여척의 전함과 2천여명의 수군 병력이 동원되며, 고려국의 명장들과 맹장들이 다수 참전하는 대규모 전투였다. 이렇게 국운을 건 대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궁예는 수도에서 보고를 시시각각 받으며 유사시를 대비한다는 생각을 하는게 아닌, 황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말이 되는 소리라며 철원으로 가버린다. 그나마 행정능력이 뛰어난 종간이 송악에 남아있어서 망정이지,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중요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천도 계획만 생각한다는 점에서 궁예의 판단 능력이 떨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궁예는 절약과 절제의 미덕을 버리고 극단적인 화려함과 거대한 규모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국가를 건설할 때만 해도 오히려 종간이 군주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적절히 사치 좀 부리라고 간언(3화)할 정도로 실용성과 절약의 미덕만 따졌다. 심지어 이 간언이라는 것조차도 '환관도 두고 궁녀도 두시고...' 하는 정도로 전 근대 시대에는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타락하기 시작한 후에는 반대로 종간이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간언할 정도로, 법회의 화려함과 규모에 집착한다.

아지태를 만나고 부터 궁예는 한계와 타락의 조짐을 보였으나, 이 때의 궁예는 평범한 암군일 뿐이었다. 그리고 후술할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지면서 궁예의 행적과 사상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2.4. 사람을 마구 죽이는 마구니가 되다

무리한 천도로 인한 민심이반과 국론분열을 알아챈 후백제의 최승우는 양길의 옛 부하들을 이용해 궁예 암살을 시도한다. 철원공사 현장에서 독화살을 맞고 쓰러진 궁예는 양길, 미향, 경문왕이 자신을 저승으로 끌고가려는 악몽을 꾸며 사경을 헤멘다.

궁예가 사경을 헤매는 일주일 동안 종간은 금강산 도인을 초청해 궁예를 치유하는 한편, 화살을 쏜 최승우가 보낸 후백제의 자객들에게 거짓 진술을 받아냄으로써 궁예가 의식이 없는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그의 총애를 받는 아지태와 왕건을 동시에 모반 혐의로 죽이고자 한다. 그러나 처형 전에 다시 깨어난 궁예는 자신이 실신했었던 일주일 간의 정무 보고를 종간에게 올리게 지시하고, 두 사람을 모반 혐의로 옥에 가두었다는 보고를 보자마자 극도로 분노한다. 이 대목에서 종간을 불러 올린 궁예가 안대까지 벗고 맨 눈으로 토해낸 저승 다녀온 소감을 말한다. 이 직후 나오는 궁예의 독백을 살펴보면, '내가 죽고 없으면 이 나라를 이끌어갈 만한 인재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자신이 보기에는 왕건과 아지태 모두 죄가 없으며 이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얕은 술책이 있었을 뿐인데, 그토록 믿었던 종간이 겨우 이 정도 계략에 놀아날 정도밖에 안되는가 하는 것. 실은 종간이 왕건과 아지태에게 덤탱이를 씌우려는 것이므로 궁예의 판단이 맞긴 하다(...).

이어 "세상은 이제 다른 모습의 미륵을 보게 될 것이오."라며 독기 품은 선언을 한 궁예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지옥의 서막을 이튿날 열게 된다. 친국 자리에 모반 사건의 용의자로 끌려온 인물들인 아지태, 왕건을 포함한 왕씨 일가, 그리고 진범인 후백제의 첩자들을 세워놓고 궁예는 관심법을 감행하였고, 진범들 중 결국 극한의 공포에 질려 사실을 자백한 한 명만 살려보내는 것으로 깔끔하게 사건을 처리한다. 궁예의 상징인 철퇴 처형씬이 이때 처음으로 등장한다. 법봉 제작은 후의 일.[13] 종간이 일주일을 끈 사건을 이런 식으로 단 몇 분 만에 처리한 궁예는 종간을 비웃듯 흘겨보며 한 마디를 던진다.
궁예: 이렇게 간단한 것인데... 내원은 몰랐던 모양이구려.
종간: .......
76화 中

이 정신질환은 아지태가 주인을 갈아타려 시도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사실 궁예의 인간불신에는 정신질환 이전에도 이미 그 단초가 있었다. 자신이 총애하는 아지태를 사형인 종간이 일부러 죽이려 했음을 눈치챈 것이다. 궁예가 의심가는 인물을 잡아 일부러 그랬는지를 추궁하였으나 그는 극구 부인했고, 종국에는 를 깨물어 자결하고 만다. 심증을 굳힌 궁예였지만 더 이상 추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종간을 불러 이 일을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 직후에 독화살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때를 시발점으로 해서 궁예는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공포만이 옳은 방법이다.'라는 생각을 굳힌다. 독화살 때문에 반죽음을 경험한 뒤로, 궁예는 '천하의 미륵도 언젠가는 죽으며,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너무나 없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혀 왕건마저 지적할 정도의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정신 이상으로 인한 실정으로 북벌은 고사하고 내정부터 악화되기 시작하며, 실정에 실망한 아지태의 주인 갈아타기와 최후 - 강장자의 최후 - 부인과 자식의 처형까지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 이어진다. 석총의 환영으로 인한 리얼타임 킬링 쇼는 덤.

궁예의 몸 상태가 말이 아닌 것도 궁예의 폭정에 한 몫 했다. 도인의 기치료로 간신히 깨어나긴 했지만, 그 후유증이 크게 남아있었다. 자주 고통이 찾아와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였고, 독주로 병나발을 불어야 간신히 고통이 진정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종간을 비롯한 측근들은 궁예가 독주보다는 탕약을 마시고 안정을 취하길 권했으나, 궁예는 탕약을 마시면 몸이 나른해진다며 계속 독주를 병나발을 불었고, 결국 증세는 더욱 심해지게 된다. 이 상태가 몇 년 지속되자 궁예는 수시로 심통을 겪을 뿐더러, 정치는 고사하고 신하들을 대하기도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거의 하루 종일 혼자서 독주를 마시는 게 일상일 지경. 실무를 봐야 할 황제가 폐인처럼 지내고, 그렇다고 왕건이 시중을 맡기 전엔 다른 이가 주도적으로 정치를 할 수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었다.

철원 천도 이후, 궁예는 병적으로 북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천도 및 지나치게 화려한 법회 때문에 국력을 모조리 소모했고, 지나친 노역으로 백성들이 농업에 제대로 종사하지 못하는데 가뭄까지 든 상황에서, 궁예는 미리 북벌을 준비해야 한다며 새로운 군단을 편성하고, 세금과 군역과 노역을 배로 올려버린다.

아지태의 배신에 이어 종간과 왕건이 일찍이 연화의 정혼 사실을 숨겼던 일까지 소급 되면서 인간 불신의 극에 달한다. 권력의 단맛과 영토를 넓히는 야심으로 인해 관심법으로 외척이나 관심법을 쓰고 있는데 기침 하는 신하 1과 열병식에서 비웃은 아녀자들은 물론이고 마음에 안 들면 모조리 죽였다.

심지어 한 마을의 죄없는 백성들을 몽땅 불태워 죽인 것도 모자라서 그 마을이 소속된 지역 사람들까지도 무차별적으로 모조리 학살하기까지 한다. 사건의 발단은 궁예와 왕건 일행이 행차하던 도중 어느 민가에 숨어 있던 어느 백성 세 명이 궁예에게 들을 던진 것으로, 궁예는 이 돌들을 맞고 머리에 피를 흘리게 된다. 당연히 극도로 분노한 궁예는 그 마을 주민들을 모두 잡아오라는 명령을 했고, 잠시 뒤 궁예 앞에 그들은 모두 끌려왔지만, 모두 한결같이 모른다고만 대답할 뿐이고, 잠시 뒤 범인들은 모두 튀었다고 추정되는 보고만 받았을 뿐이다. 그 후 아지태는 이 고을 지배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된다고 말을 했다. 이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무고한 백성들은 풀어주고 고을 지배자에게 죄를 물으며 진범을 수배하라고 명령했겠지만, 궁예는 애먼 마을 사람들을 창고에 가두고 을 질러 태워버리라는 명령과 함께 가축들 역시 도축해서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라는 싸이코패스스런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왕건과 주변 인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실행되었다. 더군다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군사들을 시켜 그 마을이 소속된 해당 지역 자체도 모두 불살라버리고 해당 주민들도 모두 죽여 버리게 하였다.

또 북벌에 필요한 인재들임에도 불구, 신라에 가진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많이 허접한 신라 출신 수군 교관들을 상륙 훈련 시범 도중 한 명도 남김없이 붙잡은 후에 바다에 빠뜨려서 죽여버리고, 자기 아내랑 아들까지 신료들이 다 보는 앞에서도 잔혹한 처형을 강행하며 북벌과 후백제, 신라와의 전쟁에 집착하는 등 마치 진시황까지 연상케 할 정도의, 아니 진시황은 저리가라 수준의 퍼펙트폭군으로 돌변해 버린다. 작중에서 궁예가 진시황을 본받아야 할 군주라고 칭찬한 적이 있었는데, 궁예가 진짜로 마치 진시황처럼 변했다. 작중 궁예의 직접적인 살육 묘사는 이정도만 묘사되지만, 궁예가 언급하길 왕건에게 북벌 계획이 실패했음을 시인하면서, 북벌을 중단하자고 간언한 이들을 모조리 때려 죽인 적도 있다니, 작중 이것 말고도 수 많은 살육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몇 년간 독주 병나발을 불으며 살아간 궁예는 수전증까지 생겼고, 마침내 죽은 석총이 자신을 비웃는 환영까지 보기 시작한다(97화). 위의 영상에서 나온 사건 이후로는 밤마다 석총의 환영에 을 휘두르며 광기를 부릴 정도였다. 이때 내관들이 말리다가 궁예가 휘두르는 칼에 다치거나 죽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후 보다 못한 종간이 궁예의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백두산 도인을 모셔와서 100일 기도 약을 지어먹기까지 하는데, 약을 막 완성한 백두산 도인의 독백에 따르면 궁예의 운명은 이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다. 그걸 거스르려 하니 도인 자신도 끝날 날이 임박했다며 탄식하는 건 . 그리고 예견대로 궁예는 약이 굉장히 세다는 경고에도 걱정 말라고 해놓고선 약을 먹고는 바로 객혈을 하면서 이건 독약이라며 약을 내온 도인을 죽이라는 등 정줄놓 상태에 빠진다. 결국 이 명령은 그대로 실현되어 도인은 은부에 의해 참수된다. 그래서 종간은 은부에게 궁예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명령인 만큼 도인을 살려둘 것이지 왜 궁예의 명을 그대로 시행하냐며 은부를 질책했다.

여튼 대미륵이라고 자칭하던 그도 결국은 한낱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장면 중 하나. 그러나 정신력 문제 외에도 당시 궁예의 사정을 감안할 필요는 있는데, 일단 궁예는 이미 후백제에서 보낸 암살자에 의해 사경을 헤맨 전적이 있어 암살을 매우 경계하고 있는 상태였고, 또한 당시 언급만 봐도 불도 외의 모든 것을 믿지 않았으며 따라서 도인이나 도가 어쩌고 하는 것 또한 전혀 믿지 않았다. 그저 충심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종간이 부탁하니 마지 못해 들어주었던 것. 그런데 이런 배경에 예상치 못한 엄청난 고통이 합쳐지니 순간적으로 정신줄을 놓을 만하기도 했던 셈.

약을 먹고 3일을 푹 잔 후 다시 일어나니 증상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이미 예전 궁예의 모습과는 180도 다르게 성격이 더 변해버린 상태였다. 그야말로 사이비 종교 교주가 다 되어서 관심법 운운하며 괜한 사람들을 때려죽일 때는 왕권에 대한 엄청난 집착뿐만 아니라 폭군의 면모까지 보인다. 정신질환 자체는 나았으나, 이미 그의 성격은 정신질환과 무관하게 일찌감치 망가져 있었고 의심병이 도져 이후 황후와 두 아들까지 죽이게 된다. 심지어는 궁예의 최측근이자 그 폭정을 최대한 은폐하려 했던 종간마저도 크게 실망하여 황후와 왕자들 처형 이후로는 은부에게 "우리가 잘못 생각하였네.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 폐하께서는 실성하셨네. 병이 나으신 것이 아니야. 더해지셨어. 만인이 보는 앞에서 황후마마를 그렇게 죽이시다니...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실성을 하지 않고서는..."라고 탄식할 정도이다. 은부 역시 종간의 말에 공감하며 같이 한탄한다. 일찍이 궁예가 기훤의 수하에 있을 적에는 그들의 학살과 살육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양길의 수하였을 때에는 그 대범하지 못한 의심병과 욕심이 신세를 망친다고 디스했었지만, 그야말로 내로남불인 것이 타락한 뒤의 궁예는 그들의 단점이 오히려 한층 더 스케일 업된 재앙 그 자체, 기훤의 학살과 양길의 의심병이 업그레이드로 조합된 최악의 완전체가 되어 있었다.

이런 인물이기 때문에 자기 부인과 아들을 마구니라 부르며 때려 죽일 때, 그리고 왕건이 반역을 했다고 말하면서 미륵관심법을 쓴다면서 추궁할 때는 그야말로 긴장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정말로 미친 인간인지, 아니면 무슨 목적이 있어서 냉철한 감정으로 이성적 판단에 따라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를 행동을 한다. 또한 극 중 병이 심해졌을 때와 도사가 지어 준 약을 먹고 눈에 있는 다크서클이 생겼다가 지워져 있는데 이것은 정신상태가 영 좋지 않게 되었다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를 표현하는 것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고 하겠다. 물론 위에 말하듯 약 먹은 뒤로는 광인에서 폭군으로 변했지만...

아무래도 스토리가 궁예가 죽고 왕건이 고려를 세워야 하니까 원래는 금방 죽을 캐릭터였지만 배우 김영철이 보여준 특유의 신들린 연기력과 카리스마와 이로 인한 인기 덕분에 비중있는 캐릭터로 변하면서 궁예의 등장이 1기, 견훤과 왕건이 라이벌로 서로 대립각을 내세우는 내용이 2기 같은 에피소드로 나뉘었다. 덕분에 드라마는 '태조 궁예','미륵 궁예' 라는 별명 혹은 비판을 얻었으며, 실제로 방영 당시에 많은 시청자들이 궁예가 죽은 다음부터 드라마가 완전히 끝난 줄 알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고 궁예가 죽었던 회인 '태조 왕건' 120회의 시청률의 경우 60.2%[14]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으로 '태조 왕건'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달성했으나 극악무도했던 극중 궁예의 악행들에 비해 최후는 매우 영웅스러워 이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기도 했다. 실제의 궁예는 어떤지 몰라도 드라마의 이런 궁예라면 최후도 '삼국사기' 궁예전에 적힌대로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어야 했다는 반응들이 나오기도 했다.[15]

2.5. 최후

"대업을 이루시게. 내가 못다한 북벌을 그대가 이루어야 할 것이야. 대제국을 이루시게. 그 말을 하고 싶어 아우를 보자고 한 것이야. 난 일찍이 아우를 죽일 수 있었어. 허나 그렇게 하지 않았어. 왠 줄 아는가? 아우가 형보다 나았기 때문이야.자신이 '미륵'이라면서?부디 대업을 이루시게. 내가 못 다 한 모든 것을 아우가 이루어야 할 것이야. 아우가 말이야."
본편 120회 및 제국의 아침 2회[16]

강비 처형을 방관한 최측근 책사 종간과 본의 아니게 이러한 사태를 유발한[17]내원 종간과 근위대장 은부마저도 '궁예가 미쳤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라고 한탄할 정도로, 강비 처형 건은 모든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특히나 이전까지는 공포정치에 순응만 했던 신하들 대다수가 제발 강비의 목숨만은 살려달라 간언을 하였으며, 심지어는 그 종간과 은부조차 그러면 안 된다고[18]생각하며 호소할 정도였다. 이렇듯 강비는 인망을 얻고 있던 황후였는데, 이런 인물이 끔찍하고 잔혹하게 살해당했으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악하며 충격을 받는 건 당연지사라고 하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작중 강비의 처신들은 다른 궁예에 의한 무고한 희생자들과는 달리 궁예에게 처형당할 만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도를 넘게 끔찍하고 잔혹하게 처형당한 것이 크나큰 문제였다.[19] 이번 사건에 왕건은 무사히 빠져나가긴 했지만 왕건 역시 경악한데다 언젠가 왕건도 강비 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지라, 왕건이 죽을 경우 그 다음 희생양은 자신들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신하들과 장수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궁예의 공포정치에 질린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의 4기장과 염상이 '역성혁명'을 준비하는데, 내군 출신인 염상이 자신의 후임이던 장일을 회유한다. 역시 궁예에게 회의감을 가지고 있던[20]장일은 회유에 넘어가 가담했으며 내군에 거짓 정보들만 들어가게 만들어, 은부가 '역성혁명'에 제대로 대처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의심이 많던 은부도 설마 염상과 장일이 배신할거라 생각치 않았는지 정보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음에도 쿠테타 직전까지 염상과 장일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염상과 장일의 배신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몇일 동안 군의 이동 상황들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또 내원 '종간'과 자신의 통제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수도인 철원의 군대가 마음대로 움직여지고, 또 지방의 군대들이 도성으로 올라오자 "반역이 일어났다."고 한 발 늦게나마 경악하고 이에 대처하기 시작했지만 염상과 장일의 배신으로 인해 말그대로 한 발 늦은 상황이였다.

물론 종간은 이 이전에 뭔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왕건을 제거하고자 임춘길을 이용해 '고경참문'을 만들어 냈으나, 학자들과 최응이 이를 대놓고 방해하면서 실패로 끝나고 만다. 유물을 해석하는 학자들과 최응은 일부러 궁예를 찬양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로 합의한다. 종간은 궁예로부터 이러한 내용을 듣고 자신이 의도한 해석이 맞다고 진언하지만, 궁예로부터 돌아온 것은 '또 왕건 아우 이야기... 이제 제발 그만 좀 하시구려' 라는 핀잔 뿐. 이 직전에 궁예는 관심법을 이용해 왕건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사실을 대놓고 공표한 데다가, 애초에 궁예는 예언이니 뭐니 하는 건 잘 믿지 않는 성격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고경참문을 제대로 해석해봤자 궁예가 자신들을 죽이는데 반해 왕건을 건들지도 않을 테니 학자들이 일부러 거짓 해석을 한 것.

'종간'이 최응에게 임금을 속이는 대죄인 기군망상죄(欺君罔上罪)를 범했다고 언질을 하지만 최응은 최응대로 기군망상죄를 운운하냐고 받아쳤다. 게다가 이 '고경참문'이 평소의 종간이 쓸법한 계략이 아님을 지적한다. 사실 종간은 강 장자 처형 당시, 은부가 왕건을 엮어 넣을 것을 간언하지만, 종간은 명분이 있어야 한다며 함부로 사건을 이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저 합리적인 내원이 저런 계획을 쓸 정도면, 아주 심각한 상황일 것이라는 언급을 한다. 즉 종간 같이 냉철한 인물이 한심한 예언 조작이나 할 정도로, 상황이 완전히 끝이 났음을 알 수 있다.

이로서 왕건 하나만 제거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종간은 삶의 희망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현실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궁예는, 빨리 삼국 통일을 하자며 농번기에 군사를 일으켜 상주를 점령하고 신라와 후백제를 공격하자고 한다든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고 하는 등, 온갖 망상을 내놓는다. 심지어 모든 백성을 군사로 조련하여 북벌을 하겠다는 소리까지 한다. 하지만 종간은 이제 백성들이 가라고 하면 가지 않는데 뭘 할 수 있겠냐는 반응을 보인다. 구체적 계획도 세우기 전에 태봉국이 망해버리긴 했으나, 이미 주요 장수들은 궁예를 끌어내릴 생각을 하고 있었고, 상주 지역은 지형 문제 때문에 공격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데다가, 훈련하는데 필요한 군량도 모자랄 지경에 이른 태봉국과 달리 후백제는 여러번의 대패로 인한 피해를 금방 복구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국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설사 계획이 실행된다고 한들 제대로 되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한편 왕건 역시 본격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왕건은 역성혁명을 거부하고 있었으나, 왕건 역시 자신이 아무리 역성혁명을 거부한다 한들 궁예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궁예가 따로 불러내 가진 술자리에서 왕건이 변심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관심법.'을 쓴 것에 대해 사과하며 웃자, 왕건은 눈물을 흘리며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 그 뒤 신료들이 궁예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서달라고 간청할 때도 계속 거절했으나 결국 첫째 부인의 설득에 눈물을 머금고 수락한다. 아직 상황을 모르던 궁예는 마지막을 예감하고 찾아온 종간과 얘기를 나누던 중 '역성혁명'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받게 되는데, 이에 종간은 궁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떠나간다. 이후 종간은 왕건이 오기 전 독을 마시고, 한참 뒤에 자기를 체포하기 위해 궁에 들이닥친 왕건을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체포되기 직전 미리 마신 독의 독기가 퍼지는 바람에 왕건 앞에서 쓰러진 채로 최후를 맞는다.

한편 궁예는 은부, 금대 및 황제파 내군 병력과 함께 궁을 탈출하고자 했으나 장일이 이끄는 왕건파 내군 병력에게 공격받아 피해를 입었고[21][22], 북쪽으로 도주하다가 매복하고 있던 홍유와 배현경에게 저지되어 야산인 '명성산'에 포위된다. 결국 모든 희망을 잃은 궁예는 최후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이후의 죽음은 역사서와 다르게 비장하고 카리스마 있게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다운 최후로 각색했다. 궁예는 은부에게 자신의 어검이 거기 있다며 마지막을 부탁하고, 술 생각이 난다며 왕건을 불러줄 것을 부탁한다. 그 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어. 인생이 이 찰나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꼬? 허허허... 이렇게 덧없이 가는 것을... 이렇게 가는 것을..."이라고 홀로 말하며 착잡해한다. 그리고 잠시 동안 어린 시절부터 신라를 피해 도망한 일, 불가에 입문하고 종간을 만난 일, 도선대사로부터 질책을 받은 일, 석총 대사와 아지태, 강장자, 강비, 두 태자 등을 끔찍하게 살해한 일들을 회상하며 자신의 악행들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후, 왕건과 마지막으로 을 나누며 하는 대사들이 있는데, 이 장면은 김영철의 제안으로 만든 장면이라고 한다. 왕건은 궁예를 끝까지 죽일 생각이 없었던 듯 "편히 쉴 곳을 마련했으니 함께 가자."고 제안하나 궁예는 "정말 편해지는 길은 눈을 감는 것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한 뒤, 미리 부탁받은 은부에게 신호를 보내 그가 휘두른 어검에 맞고 "아우님. 부디, 성군이 되시게. 성군이...." 라는 자신의 실책을 후회하는 유언을 남기고 최후를 맞이한다. 이후 은부도 자기가 미리 부탁해둔 대로 금대가 휘두른 칼에 맞아 죽고 금대 역시 자신의 검으로 배를 찔러 자결한다. 남은 병사들은 모조리 왕건의 혁명군에 투항했고, 이로써 왕건의 역성혁명은 성공한다. 그러나 왕건은 그 사실을 기뻐하기는 커녕(혹은 그럴 새가 없거나 느끼지 못하고.) 이제는 영원히 이승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 궁예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통곡한다. 그리고 궁예의 과거 모습들을 비춰주며 드라마의 나레이션을 맡은 김종성의 스펀지에서도 보여준 인상적인 목소리와 해설로 궁예의 일대기는 마무리된다.
궁예. 신라 경문왕의 아들로 태어나, 황실의 권력다툼에서 화를 당하고. 한쪽 눈을 잃은 채 유리걸식하다가, 승려가 되었고. 백성들의 인심을 얻어, 황제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 그가 기반을 이룬 옛 고구려 지방의 호족들을 생각하여 국호를 고려라 하였으나, 곧 나라 이름을 대동방국을 뜻하는 '마진', 그리고 '태봉'이라 하였다. 후삼국 중 유일하게, 자주통일을 외치며 외세와 손잡지 않았고, 끝없이 북벌을 꿈꿨음을 그의 행적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을 거듭하면서 그는 전제주의로 절대권력을 휘둘렀으며, 스스로 미륵을 칭하고, 미륵 관심법이라는 전무후무한 독재수단을 이용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이다. 고려사 실록에서는, 그가 지금의 평강군인 옛 지명 부양현에서 혁명 이튿날, 보리 이삭을 베어 먹다가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단한 삶을 살아온 그가, 어찌 보리 이삭을 베어 먹다가 맞아 죽었을까.[23] 역사의 기록을 승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란 것을 생각하며 드라마로서 다시 상상을 발휘해 엮어본 것이다. 아무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실패한 한 영웅의 기록은 이렇게 그 한 장이 마무리되고, 그리고 새로운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

3. 평가

초반의 궁예는 그야말로 생불이었지만 한편으로 그 한계점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주변에 종간이나 은부, 왕건 같은 충신들만 있었을 때는 별 문제 없었으나, 아지태라는 간신을 총애하게 되면서 그 한계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3.1. 무력 본좌

이미 위에서 이야기가 되었지만, 궁예가 태봉 건국 이후부터 전쟁터에 나간 적이 없기에 비중 있는 건 아니지만 사실 이 드라마 내 숨겨진 최강자중 하나이기도 하다.

설정 상 세달사에서 무술 훈련을 받았다고 하며, 덕분에 봉술에 능한 모습을 보인다. 도적 여러명은 그냥 석장으로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 무력화 시킬 수 있을 정도.

왕륭, 왕건 부자와 같이 서라벌로 가는 도중에 산적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궁예는 왕건의 장군이였던 마사부, 장수장, 자신의 참모였던 종간과 더불어 산적과 싸웠고, 이중에 특히 궁예와 종간, 특히 궁예는 신들렸다는 이야기가 맞을 정도로 뛰어난 무예 솜씨로 돌로 만든 지팡이인 석장 하나로 산적들을 제압해 나갔고, 얼마 후 위홍의 명령을 받은 견훤의 군대가 도착해 산적들을 완전히 제압했을때 궁예의 무예를 본 견훤은 궁예의 무예 솜씨에 매우 놀랐고, 궁예 역시 견훤의 무예 솜씨를 보고 매우 인상깊게 여겼다. 산적들을 완전히 제압한 후 견훤은 궁예에 대해서 석장을 휘두르는 솜씨가 마치 손오공이 여의봉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물론 위에서 이야기되었듯이 견훤의 이 대사는 당시 시청자들에게 신랄하게 비판을 받았다. 손오공은 명나라 때의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가상 캐릭터인데, 이때는 아직 당나라가 멸망하기 전으로 명나라 건국때보다 4백년 훨씬 전의 시점인데, 무슨 수로 견훤이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을 알고 궁예의 석장을 휘두르는 솜씨를 손오공이 여의봉을 휘두르는 것에 비교하면서 극찬할 수 있었겠냐는 것이다.

이후 궁예는 자신의 숙부인 위홍을 찾아가 자신의 어머니의 행방을 묻고 위홍이 자신을 죽일려고 한 것에 앞장을 선 것에 따지기 위해 위홍의 집에 들어갈려다 위홍의 집을 숙위하고 있던 견훤과 시비가 붙어 싸우는데, 견훤과 비등한 무위를 보인다. 참고로 이 드라마에서 견훤은 수백근 청동 화로를 냅다 들어 던지고, 말 두 마리로 끌고 가던 통나무를 맨손으로 뺏어선 추격해 오던 왕건의 병사들을 쳐죽이는 모습을 보여 무력 면에선 양길과 더불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젋은 시절 궁예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강한지 알 수 있다. 이때 궁예와 견훤이 서로 싸웠을때도 서라벌로 가는 길에서 산적들과 싸웠을 때와 마찬가지로 견훤이 궁예의 무예에 충격을 받은 반면, 궁예는 견훤의 무예에 대해 매우 인상깊다는 표정만 지음으로서 궁예를 매우 좋아했던 드라마 제작진들이 은근히 궁예의 무예가 견훤보다 낫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뉘앙스가 풍기는 면이 있다. 아니면 궁예나 견훤의 무예 솜씨는 그야말로 막상막하인데, 단지 궁예가 견훤보다 담력이 더 뛰어나서 궁예가 견훤보다 담담한 표정을 지었을 수도 있는 것이고, 혹은 견훤은 무인이므로 싸움을 잘하는게 당연하지만 무술훈련을 했다고 해도 승려가 저렇게까지 강한게 더욱 놀랍기 때문에 더 충격받은 것일 수도 있다.[24]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둘의 싸움은 무승부였다.

그 밖에도 극 극초반부에 '弓裔' 라는 이름과 관련하여 '활을 아주 잘 다룬다'라고도 언급된다. 세달사에 제례를 올리기 위해 찾아갔던 어린 왕건이 무술 수련을 받기 위해 봉을 들고 달려가는 승려들을 보며 '무술 수련도 하십니까?'라고 묻자 종간이 그렇다고 대답하며 '이 스님은 그 중에서도 활을 아주 잘 쏘십니다'라 답하는 장면이 있으며, 서라벌에서 왕륭, 궁예 일행을 습격한 도적을 물리친 견훤이 궁예와 통성명을 하면서 궁예라는 이름을 듣자 '활을 아주 잘 다룬다는 의미로군요'라 말하는 대목이 있다. 다만 실제로 궁예가 활을 당기는 장면은 1화 철원성 전투 외에는 안 나온다는 건 아이러니한 점.

3.2. 비타협적 독선

타락 이전부터 궁예가 가지고 있던 단점 중 하나. 궁예는 처음부터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고, 광인이 되기 전에도 궁예의 목표는 여전히 세상을 구하는 것이었다[25]. 문제는 그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 극 초반에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으나, 아지태를 만나고부턴 대제국의 건설만이 세상을 구하는 방법이라 여기게 되었다. 내실을 튼튼히 다지며 천천히 확장을 진행했다면 문제는 아니었겠는데, 문제는 전쟁[26]을 하느라 재정이 약해진 상황에서 무리한 천도를 하는 등,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계획을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수많은 이들이 현실을 감안해달라 간언했으나, 궁예는 이러한 간언을 모두 무시하고 오직 아지태의 감언이설만 받아들였다. 오히려 자신의 계획에 반대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을 거라며 협박할 정도. 궁예는 제딴에 이 힘든 시기를 참고 견디면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니, 그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희생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궁예는 이를 이해하지 않으려 했고, 남의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게 광인이 되기 전 멀쩡하던 시절부터 그런 것이다. 그나마 이때야 아직 정신이 멀쩡하던 시절이라 이른바 극락이라는 목표가 이성과 냉정을 유지시켜 줬지만 광인이 되고 나서는 그 꿈꾸던 극락이 변질됨은 물론 리미터가 해체되었으니....

나중엔 최측근인 종간마저 간언을 포기해 버렸고, 박유나 염상이 간언하는 걸 말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종간도 궁예와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충신인 만큼 보다 못해 여러 차례 간언을 했으나, 궁예는 이를 다 씹었다. 종간이 단순한 신하 A도 아니고, 궁예가 승려 시절부터 따라다닌 최측근이자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라는 걸 감안하면, 다른 사람이 간언해봤자 궁예가 받아들일 리가 없음은 자명했다. 애초에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고 국고가 바닥난 걸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닌 양반이, 종간이 북벌을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닌 좀만 늦추자는 얘기였음에도 무시하고 무리하게 북벌계획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간언한다는 것 자체가 아예 무의미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궁예의 이런 독선적인 성격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간언을 물리치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간언하는 자들을 협박하더니, 급기야 자신이 진짜 미륵이며, 석가모니는 가짜임을 공표하면서 아예 자신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포장한다.

철원으로 천도한 뒤, 즉 궁예가 미치광이가 된 이후에는 어느 누구도 궁예에게 간언할 엄두조차 못냈으며, 궁예 역시 아무런 상의도 없이 무작정 북벌 계획을 밀어붙인다. 궁예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던 왕건만이 북벌의 비현실성을 간언할 수 있었으나, 궁예는 이조차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2차 나주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왕건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한번 궁예에게 북벌 이전에 궁예 자신의 건강부터 챙기란 간언을 올리지만, 궁예는 만약 왕건이 의형제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라는 살벌한 반응만 보인다. 이후 북벌 계획이 진전은 커녕, 예산이 없어서 훈련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임에도 어느 누구도 북벌 계획의 현실을 간언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3.3. 감정 결핍과 이기주의

(제20화 중, 명주성을 넘길 재목인지 확인하기 위해 궁예와 단 둘이 술을 마시던 중의 허월)
허월 : 그 깊은 가슴속에는 뭘 숨겼는가?
궁예 : 내겐 숨긴 것이 없사옵니다.
허월 : 있어. 그건 욕망과 분노야. 애꾸가 되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어린 날의 그 억울함과 분노. 왕실에서 태어나 왕관과 옥좌를 빼앗겼던 분노. 내 눈은 속이지 못하네. 자네는 다 버리고 다 던졌다고 하지만 그 속에는 불지펴진 욕망과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어. 피끓는 분노 말일세. 아닌가?

이 작품 내에서 궁예는 왕건이나 견훤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왕건은 송악 지역의 유력한 호족이었던 왕륭의 아들로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라났고, 견훤은 이 작품 내에서 유년기가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역시 상주 지역의 호족이었던 아자개의 아들이었던만큼 적어도 궁핍함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성장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반면 궁예는 신라의 왕자로 태어났으나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이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유리걸식하는 불우한 삶을 살다가 승려가 되었기 때문에 궁예에게는 인간적인 감정이 부족하게 되었고 이후 미륵을 자처하게 되면서 더욱 인간적인 감정을 불필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종간이나 왕건을 형제처럼 두면서 심히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냉정한 궁예가 스스로 미륵으로서 인간적인 정을 버리려 하였음에도 결국에는 정을 갈구하는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캐릭터성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후술하다시피 궁예가 이후 타락하면서 성격이 뒤틀리는 데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처음에만 해도 고통을 겪는 백성들을 안타까워하며 그들과 고통을 같이 인내하는 등 말 그대로 성자와 같은 모습을 보였으나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심기가 악화되고 자신의 야망을 최우선시하고 독선적으로 변해가며 타인의 고통을 어린아이 투정쯤으로 여기게 된다. 자신을 따라주지 않는 백성, 그리고 자신에게 악담을 퍼부운 강비 등에게 궁예는 "나는 남들에게 잘해줬는데, 남들은 나를 버렸다"는 식으로 전형적인 피해망상적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철원으로 도읍을 옳기기 시작한 때부터 궁예의 요구는 백성들의 한계를 넘어선 것인데다 그 목표마저도 현실성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중엔 신하들도 궁예를 포기해버렸고 백성들은 폭군을 증오했다. 이러한 사이코패스 같은 면모는 관심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마침내는 강비가 셋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 강비와 두 아들을 처형해 버렸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그야말로 인간을 초월하려다 인간 이하로 떨어져 버린 역설적인 케이스.

3.3.1. 막장 가족사

(제113화 중, 셋째 아이를 출산하기 직전의 연화)
연화 : 폐하는 불쌍하신 분이십니다.
궁예 : (꿈틀) 불쌍하다고...내가...?
연화 : 폐하께서는 평생을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셨습니다. 여인의 지극한 정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십니다. 오로지 야망만 갖고 살아 오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불쌍하다 아니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옛날 죽은 북원부인의 일을 기억하옵니다. 그 가엾은 여인은 어찌 죽었습니까? 그 북원부인이 죽을 때 신첩도 그때 이미 제명에 죽지 못하리라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오랜기간 쫓기는 삶을 살은데다 이후 절에서 청년기까지 생활하다보니 가족애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였기에, 궁예는 강비나 미향과 같은 가족에게 굉장히 무정한 태도를 보인다. 오히려 승려 시절의 사형인 종간이나 의제인 왕건을 가까운 가족처럼 대할 정도. 자식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쌍둥이 아들이 태어나자 엘리트 교육을 시킨다는 명목하에 바로 강비에게서 자식들을 떼어놓은 다음 성인들조차 견디기 힘든 엄격한 교육을 시켰으며, 오죽하면 태자들의 교육을 담당한 박유[27]가 이건 너무 이른거 아니냐며 우려를 표할 정도였다. 쌍둥이 아들이 돌을 넘겼을때 궁예는 후계자를 최고로 키워야한다면서 마지막에 그러다 안 되면 버리는 것이고라는 말을 붙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자식에 대한 태도가 일관적인 것도 아닌게, 궁예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는걸 감안해도, 이후 궁예는 두 태자에게 관심을 가진적도 거의 없었으며, 태자들도 궁예의 얼굴을 거의 본적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궁예가 태자들에게 관심을 가졌을때는 궁예가 '태자들이 자기 자식이 맞나?'라는 의심을 가졌을 때였다(....) 오락가락하는, 그리고 후사를 제대로 신경쓰지 않는 태도는 전근대 전제왕조에게 좋을 리가 없었다.

부인이 많긴 하지만 비교적 평범한 왕건의 가족사, 가족간의 애증과 갈등이 부각된 견훤의 콩가루 가족사와 달리, 궁예의 가족사는 철저하게 비극과, 광기, 살인과 정신붕괴만 판을 쳐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막장 전개를 보여준다. 위에 언급된 대로, 주역인 궁예가 가족이나 친족들에게 제대로 된 애정을 보인 적이 거의 없는데다가, 독화살 사건 이후론 궁예가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 또한 가족 구성원 중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경문왕, 위홍, 강 장자 등)이 여럿 있다는 점도 막장 가족사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렇다보니 가족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고, 또한 궁예를 상대로 정상적으로 가족 역할을 하는 사람도 궁예의 유모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궁예 주변 인물들 중에서 제대로 된 가족 역할을 한 인물들은 의형제인 왕건과 사형인 종간이었다.
  • 경문왕 : 어린 궁예를 죽이자는 여론에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던 인물. 먼 훗날 어느 절에서 경문왕의 영정을 발견한 궁예는 크게 분노하며 영정에 칼을 꽂았고, 그날 밤 궁예는 저주를 받아 구천을 떠돌게 된 경문왕의 영혼이 자신을 방문하는 악몽을 꾸었다. 이후 독화살을 맞고 궁예가 사경을 헤멜 때도 꿈속에서 경문왕의 망령이 나타나는데 그것도 양길, 미향 부녀와 함께 나타나 궁예를 괴롭힌다. 주변의 압력 때문에 마지 못해 그랬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자식을 버린 한심한 아비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자식을 죽이려 드니, 궁예 입장에서는 참으로 끔찍한 인물. 다만 궁예의 꿈들에 나타난 경문왕은 실제 경문왕의 영혼이라기보다는 궁예 자신이 평소 아버지를 극도로 적대시하는 것에 대한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무의식적인 양심의 가책이나 어렸을 적에 경문왕에게 버림받고 신라군들의 추격에 계속 쫓겨야 했던 공포가 꿈에서 역시 무의식적으로 표현이 되었던 것이라고 보는 쪽이 더 타당하며, 어쩌면 이 두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
  • 위홍 : 궁예의 숙부이자, 권력을 위해 어린 궁예를 대놓고 죽이려들던 인물. 그러나 경문왕의 아들들이 후사를 잇지 못하고 죽자, 가문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궁예를 찾아다녔다. 어린 여왕을 업고 국가를 말아먹는 위홍의 모습에 궁예는 분노는 커녕 오히려 한심함만 느꼈고, 위홍을 조롱하기만 했다. 증오할 가치도 못느꼈는지 궁예는 위홍에게 절이 들어갈 것을 제안하지만 위홍은 거절한다. 위홍은 궁예가 떠나고 얼마 뒤, 진성여왕과 밤일을 하던 중 복상사로 죽고 만다.
  • 궁예의 유모 : 친모가 아님에도 수 년간 궁예를 지키다가 결국 객사해버린 불행한 인물. 종간, 왕건 등과 함께 궁예에게 제대로 된 가족 역할을 해 준 몇 안되는 인물이었고, 유모의 죽음은 궁예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 미향(태조 왕건) : 막장 가족사의 피해자 1. 그저 가정을 꾸리고 남편의 사랑을 받길 원하는 평범한 여성이었으나, 무정한 남편 및 남편과 아버지 간의 대립 때문에 인생이 파탄난 인물. 결국 아들은 빼앗기고, 아버지를 비롯한 일가 친척들은 모조리 도륙당했으며, 주변인들은 대놓고 자신을 죽이려드는 현실에 절망한 끝에 정신붕괴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 미향의 아들 : 막장 가족사의 피해자 2. 갓난아기일 때 강제로 어머니와 헤어졌고, 부모가 누군지 모른채 절에서 동자승으로 살게 된다. 내원 측은 미향은 물론 그 아들(궁예의 자식임에도.)도 숙청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내원 측이 몰래 숙청해 버린 것인지, 아니면 미향을 동정하던 측에서 아이를 세상에서 숨겨준 것인지는 몰라도 미향 사후 이 아들 역시 얼마 안 가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궁예 자신도 자신의 이 아들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궁예는 자신을 버린 경문왕에게 크나큰 적개심을 보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궁예 역시 아들에게 똑같은 짓을 저지른 것이다.
  • 강 장자 : 궁예의 장인이 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개인의 지나친 욕심, 한심한 수준의 처세능력, 일반인 수준도 안 되는 정치 판단 능력 등으로 인해 결국 법봉에 맞아 머리통이 터지게 된 인물. 궁예의 입장에서나 강비의 입장에서나 시청자의 입장에서나 강 장자는 황제의 장인으로서는 최악의 인물이다. 궁예의 장인이 된 후 자신과 가문의 권력 강화를 위해 양자를 들여 궁예를 거슬리게 하지 않나, 궁예가 사경을 헤맸을 땐 강비나 내원 측에 힘을 보태주기는 커녕 태자를 보위에 올리고 권력을 누릴 생각만 했으며, 결국엔 권력에 눈이 멀어 아지태와 손을 잡고 쿠테타를 모의하기까지 했다. 결국 황제의 권위를 회복할려는 궁예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 강비 : 막장 가족사의 피해자 3. 연화는 사랑하던 왕건과 이어지지 못했을 뿐더러, 남편인 궁예에게 정을 못 붙인데다가 더불어 쌍둥이 아들들도 사실상 빼앗기듯이 궁예가 데려가 버린다. 이에 왕건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한 집착, 미향의 비참한 최후, 삭막한 궁궐 생활과 궁예의 광기 등이 합쳐지면서 강비의 정신은 피폐해져간다. 결국 아버지가 처형당하고 어머니가 자살하면서 극도로 분노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의 잘못은 생각도 하지 않고 궁예에게 극언을 퍼부었고, 이후 왕건에게 반역을 제안해 이것이 발각되어 처형당하게 되었고 형장에서도 아버지와 자신의 잘못은 생각도 않고 궁예에게 독설만 퍼붓다 극도로 분노한 궁예에게 참혹한 죽음을 맞고, 자신 뿐만이 아니라 두 아들마저도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 강비의 쌍둥이 아들 : 막장 가족사의 피해자 4와 5.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데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성인도 견디기 어려운 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그리고 본인들은 별다른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궁예에게 의심을 받다가, 결국 강비의 반역 사건에 연좌되어 법봉에 맞아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렇게 된 것은 궁예가 두 태자를 친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었다.[28] 별다른 잘못도 없이 어린 황자들이 끔찍하게 처형당하고, 또 미친 황제가 스스로 황조의 후사를 끊어버린 꼴이 되었음에도 어째 아무도 이들이 죽은 것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황조를 지키는데 필사적이던 종간과 은부도 이들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 순백 : 강비가 처형당하기 직전에 낳은 셋째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강비와 떨어져 궁예에게로 갔으며, 강비 처형 후 궁예는 자신의 아들이라며 강한 황제로 키우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나 왕건의 역성혁명이 일어나면서 궁예가 순백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궁궐에 두고 갔었고, 고려 건국 후, 멀리서 강비를 모시던 한 나인에 의해 거두어졌고 이후 병에 걸려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로 왕건과 신료들에게 발견되었을 당시, 왕건 특유의 너그러움과 궁예와의 옛 정을 생각한 왕건의 아이를 살려두라는 명령에 의해 나인과 함께 목숨을 건졌고, 훗날 왕건 밑에서 벼슬까지 했다고 전해진다.[29]

3.4. 갈수록 나빠지는 판단력

고려를 건국할때만 해도, 분명 궁예는 살아있는 부처, 즉 '생불'(生佛)이나 '생미륵'으로 불린만한 면모를 갖추었다. 하지만 아지태를 총애하기 시작하고서 부터는, 그 총명했던 '생미륵'의 면모는 대체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궁예는 비현실적인 판단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궁예는 지출과 영토확장만 생각할 뿐 나머지에 대해선 하나도 생각 안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거칠고 성미 급해보이는 견훤만 해도 무작정 영토 확장만 주장하는 게 아닌, 민생을 챙기고 내실을 다져야 국력이 향상된다는 언급을 종종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궁예의 태봉이 무리한 북벌 계획과 사치로 국력이 피폐해 진 것과 다르게, 견훤의 후백제는 황실 내부의 갈등을 제외하곤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해졌단 이야기가 없다. 고창과 운주에서 대패하였음에도 오히려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군과 대등한 전력을 이끌고 나올 정도였다.[30] 또한 외교적인 감각에서도 '어차피 다 우리가 정복할 땅'이라며 고립주의를 고수했던 궁예보다 한 수 위였다.

도인의 약을 마시고 심통이 나은 뒤로도 흐려진 판단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돌보아야 할 국정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도 종간의 말마따나 아지태와 황후 일만 생각하며, 시중 왕건이 민생 안정을 우선적으로 하는 정책을 준비한 것과 대조적으로, 신라와의 전쟁만 생각한다. 아무래도 도인의 약을 제대로 먹지 못한 부작용 때문인 듯. 이러는 와중에도 평양을 정복한 것을 시작으로 점진적으로 북벌을 추진해야 한다는 왕건의 계획에 동의하며 아지태를 비판하는 등 총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나, 법을 엄히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강비를 처형하기도 하고 삼한 통일을 먼저 이룬 뒤 북벌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농번기에. 그것도 박술희가 공을 들여 우호적인 지역으로 만들어둔 상주를 점령하고 신라를 공격할 것이며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이게 상당한 무리수였는데, 백성들이 당장 먹고 살 식량은 물론 군량미도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그 시기에 일할 일손을 줄이는 것이며, 상주는 박술희 덕분에 우호적이었지만 만약 침공을 받을 시 살기 위해서 내키지 않더라도 견훤후백제와 협조적으로 갈 수 있었다. 상주에 주둔하는 후백제와 더불어 신라까지 상대해야 하는 건 당시의 국력으론 감당하기 어려운데, 그 와중에 평양으로 천도를 한다는건 도저히 현실성이 없는 판단이다. 더군다나 왕건이 쿠테타를 일으키기 직전에는 "전 백성을 군대로 만들겠다."라고 하는데, 이는 여러 전략전술적 문제는 물론 백성들을 편하게 해 주겠다던 초창기의 이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이 무렵의 궁예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릴 능력 자체는 있었으나 그 생각과 판단이라는 것이 보통 사람들과 지극히 다른, 한 마디로 광인이 되어 있었다.강비 처형 직후에 종간이 은부에게 "폐하께서 실성하셨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종간이 궁예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다하는 인물임에도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3.4.1. 극단을 오가는 경제관념

드라마 상에서 견훤과 왕건은 검소함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치나 무리한 지출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궁예는 국가를 건설 할 때만 해도 검소함을 크게 강조하였고, 또한 사치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지태를 만나고 북벌을 망상하게 되면서, 궁예는 검소함은 갖다 버리고 규모의 거대함, 화려함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의 진행에 있어 국력에 무리가 가는지,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지, 장기적으로 진행이 가능한지는 전혀 생각치 않고 오직 남을 쥐어짜서 마련하는 것만 생각하였다.

3.4.2. 궁예의 북벌

아지태를 만난 이후로 궁예는 북벌에 극도로 집착하였다. 국가의 제 1순위 계획으로 정하고, 또한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심지어 사람들까지 죽였다. 하지만 이 북벌 계획이라는 것은 지극히 허술했으며,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군대 규모만 키우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하다 못해 먼저 삼국을 통일하고 기반을 다진 다음, 한반도 북쪽으로 올라간다는 것도 아닌, 수많은 전함과 육군을 이용해 북방에 상륙한 다음, 점령한 영토를 약탈해 그 것으로 계속 전쟁을 수행한다는 방식이었다. 그걸 계획한 아지태도 여러모로 제정신이 아닌 인물이니, 북벌 계획이 정상적인 의미에서 구체적이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북벌 계획을 하는데 있어 발해와 같은[31]다른 집단들과 제대로 연계를 하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다.

훗날 시중이 된 왕건이 겨우 평양 지역을 정벌하는데도, 태평과 태봉국 네임드 장수들과 토의를 하여 계획을 짜고, 병부와 여러 호족들에게 계획을 소개하며 의견을 묻기도 하며, 평양 지역에서 어찌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우고 준비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분명 궁예의 북벌 계획은 정상이 아니었다.

4. 기타 이모저모

젊은 시절, 각간 김위홍[32]에게 "이보시오, 김위홍 각간 나으리. 나는 당신 같은 숙부는 없소이다." 라고 딱 잘라 말할 때와 이후 강 장자를 "잔 받으란 말이오!!" 하면서 일갈하는 장면은 그의 매력적인 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종간에게는 유일무이하게 황제가 되어서도 공적인 자리에서 내원이라고 호칭할 때는 사적으로 사형이라고 부르는 자리에서든 존댓말을 쓴다. 그러면서도 종간과 은부까지 물고 늘어지는 왕건은 종간이나 은부 못지 않게 신뢰하는 인간미도 보여준다. 여러모로 봤을 때 종간이나 왕건과는 애증이 많은 관계라 볼 수 있다. 궁예는 왕건에게 관심법을 쓰면서도 끝까지 그를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미 신숭겸, 복지겸, 홍유, 배현경은 모반을 꾀하기 시작했고 염상, 원극유까지 끌어들인 후 왕건을 군주로 추대하고 모반을 일으켜 황궁으로 쳐들어간다. 궁예는 종간과 사이 좋게 지내길 바랬고, 종간은 궁예에게 끝까지 왕건을 제거하게끔 간언했는데, 종간이 예언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궁예가 왕건을 시중으로 재임명하고 함께 술을 마신 뒤 왕건은 홍유 등의 추대를 받아 진짜로 황궁으로 쳐들어오게 된다. 극 중에서는 황후 처형 이후 116화부터 신숭겸, 복지겸, 홍유, 배현경 등이 황제를 '미치광이'라고 신랄히 비판하며, 반란을 도모하기 시작하고, 왕건을 군주로 끌어들이고 염상과 원극유까지 포섭하면서 조직적으로 도모하는 식으로 반란이 진행된다. 반란 자체가 꽤나 치밀하게 진행돼서[33] 종간이랑 은부가 손을 쓰지도 못하고 왕건이 황궁으로 쳐들어오게 된다. 그 이후로는 알다시피...

119화에서 보게 되면 왕건이 술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습니다, 형님 폐하, 이것이 우리들의 마지막 자리입니다... 어찌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있겠습니까..." 하며 독백하는 것과 궁예가 왕건의 반란을 보고 받고 나서도 믿지 못하며 "이보게, 은부장. 일이 어찌 돌아가는 겐가? 그 아우가 왜 반란을 해! 왜...!" 이러면서 절규하는 것도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처럼 처음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자기 부인과 자식들까지 죽이는 와중에도 왕건에게는 항상 너그러웠고 그를 정말로 친형제처럼 여길 정도로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다. "내 곁에 누가 있겠는가. 아우밖에 없어"(118화)라고 토로할 정도로 때로는 평생을 함께 해 온 사형 종간보다도 더 의지하고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정도다. 물론 후반에 들어 왕건과 마찰을 빚기도 하고 기록에서와 같이 관심법을 쓰기도 하나, 단 한 번도 그에게 해코지를 하려 든 적이 없었다. 죽기 직전에 말하길 아우가 자신보다 나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왕건을 매우 신뢰했으며, 관심법을 쓰던 그 때도 실제로는 왕건을 죽일 마음이 없었을 뿐더러 왕건이 반역에 연루되지도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단지 왕건으로 하여금 스스로 모반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강력한 왕권을 재확인하고자 왕건에게도 관심법을 쓴 것이다. 왕건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잘 따라 주자 모반을 용서한 뒤 왕건을 흐뭇하게 바라본 이유이기도 하다. 118화에서 왕건과 단둘이 술을 마시면서 '처음부터 아우를 어찌해보려는 생각은 없었네'라고 말하며 이런 점을 재확인 시켜줬다.

김영철의 신들린 듯한 열연으로 인하여 미화된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작중 궁예의 중반부 이후 묘사는 최후를 맞이하는 부분을 빼면 미화와는 거리가 완전히 멀다. 후반부 궁예를 요약하자면, 국력 비축과 민생 안정에 대한 개념은 하나도 없이 무조건 대규모 지출과 군사 정벌과 화려함만 추구하며, 신라와 후백제를 그저 쉽게 멸망시킬 수 있는 호구로 보고 있으며, 무작정 군사만 이끌고 나가면 북벌이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보급, 전략 계획도 전혀 없고, 자신은 무조건 옳고 신하들과 백성들을 무조건 폭력과 엄벌, 공포로 다스려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사람 생명을 파리 죽이듯이 너무나 가볍게 여기며, 간언을 듣기는 커녕 오히려 간언을 하는 사람을 협박하거나 때려 죽이며,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살인으로 처리하는 암군이자 폭군으로 묘사된다. 즉, 미화된 캐릭터이기는커녕 오히려 빨리 왕좌에서 쫓겨나 죽어 주는게 도움이 되는 미치광이 살인마 폭군으로 묘사될 뿐이다. 또한 궁예의 폭정에 대해 내레이션은 '비록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만큼 과장이 있겠으나, 분명 궁예가 변한 것은 확실하다'고 표현했다. 즉, 기록상 표현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궁예가 초심을 잃어버린건 맞다는 것이다.

작중에서도 최응이 왕건에 의한 역성혁명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에 종간에게 초심을 잃은 폐하는 군주로서 부적절해졌다고 일침을 놓는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최응의 궁예에 대한 태도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궁예가 이렇게 될 때까지 최응은 왜 보고만 있었을까? 궁예는 최응을 극진히 아껴 그를 '성인'이라고까지 부를 정도였는데, 최응은 궁예의 극진한 총애를 받으면서도 종간과 왕건과는 달리 단 한 번도 궁예의 폭정들에 대해 직언한 적이 없다. 강비와 황자들의 처형 사건 이전까지. 그저 궁예의 비위만 맞춰가며 자리만 보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거의 틀리지 않다. 단 한 번도 궁예의 폭정에 대해 직언한 적이 없었다. 이에 비해 왕건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따져 직언을 많이 했고, 이에 왕건은 늘 최응의 직언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최응에 대해 "경은 학문이 풍부하고 재주가 뛰어나며, 아울러 정치의 요체를 잘 알고 있고, 나라 일을 근심하고 멸사봉공하여 자기 한 몸을 돌보지 않고 충성을 다하니 옛날의 뛰어난 신하들도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고려사 최응 열전에 나온다. 자신이 태어났을때 궁예가 자신의 부모에게 자신을 기르지 말라고 명령해 자신이 죽을 뻔한 것에 대해 악감정을 가졌을까? 또 이 사건 이후 그의 부모가 자신을 숨겨 길렀고, 장성한 이후 자신의 정체를 숨겨 궁예 밑에서 벼슬한 것이 밝혀진다면 자신의 부모와 자신이 화를 입을 것을 우려해, 이런 요인들 때문에 실제 역사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왕건의 경우와 달리 궁예에게는 직언을, 다시 말해 진정한 충성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각설하고 궁예는 초창기 및 타락 이전에는 야망과 이성과 꿈이 적개심과 분노와 욕망[34] 억누르고 있는 만큼, 도움이 된다면 신라계 출신도 받아들였지만,[35] 타락하여 이성이 날아갔을 땐 그 적개심이 우선으로 발현이 되었는지 신라에서 투항한 사람들을 무작정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다. 사실 타락하기 이전에도 그 트라우마가 엄청나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있긴 한데, 가령 42화에 궁예가 부석사에서 경문왕의 초상화를 보고는 분노하며 초상화에 칼빵을 놓고 신라를 멸도라 칭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간이 흐를 수록 궁예의 성격 변화처럼 문서 맨 위의 사진처럼 안대의 재질도 바뀌는데, 처음에는 낡은 가죽으로 만든 안대에서 깨끗한 가죽 안대로[36], 마지막에는 금을 씌운 안대로 바뀐다.

이 작품에서의 강렬한 연기 덕분에 김영철은 야인시대에서 장년 김두한 역할로 캐스팅되어 이환경 작가와의 인연을 한번 더 이어가게 된다. 야인시대 마지막회 막바지에 말년의 김두한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불상 앞에서 지난날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불공을 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석가모니를 자신의 자리를 훔친 도둑이라 칭한 것을 생각나게 하는 묘한 장면이다.

김영철은 이 배역을 통해서 2000년에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17년 후인 2017년에 아버지가 이상해의 변한수[37] 역으로 한 번 더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38]

4.1. 궁예와 미륵신앙

궁예 파트 중,후반부에 잔혹하면서도 똘기어린 장면들이 워낙 많다 보니 궁예가 주장하는 생미륵 = 자신이 '참미륵'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진 성격파탄자이자, 사람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는 최악의 미치광이 마구니.라는 후반부 모습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궁예의 미륵신앙에 대한 인식 및 활용방식, 그리고 '미륵'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의미는 작중 전개에 따라서 많은 변천을 겪었다.

작중 너무나 당연하다듯이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작중 궁예가 미륵을 참칭하는 행위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판하는 이들도 죄다 궁예가 자신의 폭정을 정당화하는데 미륵 신앙을 이용하는 것이나, 또는 궁예가 미친 짓거리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심지어 당시 법상종파의 우두머리였던 석총도 타락하기 전의 궁예는 '미륵'이었다고 할 정도. 하지만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 한들 궁예의 미륵 참칭은 불교의 기본 교리상 얄짤없는 사이비 종교[39][40]인데도 다들 이 부분에 대해선 지나치게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극중의 견훤을 제외하고. 견훤은 극중에서 미륵을 자칭하는 궁예의 행각에 대해 "인간이 어찌 '미륵'일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일갈해, 당시 최고의 고승중 한 명인 석총보다도 더 정확하게 궁예의 행각을 비판했다.

4.1.1. 출사~기훤 휘하 시절

궁예는 출사 당시 범교에게 자신이 미륵이라고 말하긴 했으나, 맥락상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기 보다는, '세상과 백성들을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개척할 영웅호걸이 되겠다.'에 가깝다. 궁예가 부처들은 세상을 구하려 하지 않고 절간이나 산중에 숨어있다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미륵 부처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세상을 구할 능력이 있는 영웅호걸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이후 궁예는 기훤 휘하에서는 선행을 베풀어서 백성들과 병사들에게 생미륵이라고 칭송받긴 했으나, 오히려 궁예는 이를 과찬이라고 겸손해 한다. 신훤과 원회가 쿠테타를 일으켜 기훤을 살해해버린 14회에서, 궁예가 종간과의 사적인 대화에서 이를 듣고선 오히려 겸손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궁예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더 나아가 삼한을 통일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끝내고자 하는 야망과 이상에 불타는 젊은이에 가까웠고, 이후 자신이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한 자칭 참미륵과 백성들과 신료들에게 지탄받고 증오받은 최악의 미치광이 마구니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4.1.2. 양길 휘하 시절~김순식의 귀순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하기 시작했으나, 이 때 미륵신앙은 그저 민심을 안정시키고 세력을 집중시키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궁예의 그릇을 평가하던 허월이 이를 대놓고 지적하자, 궁예는 변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이게 나쁜 행동이냐며 당당하게 밝혔다.당연히 나쁘지. 사이비니까.그 직후 허월이 궁예 스스로 미륵이라 생각하냐고 묻자, 궁예는 세상을 구할 수 있으면 누구나 미륵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드라마 전반부의 왕건이 갖고 있는 미륵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석총이 미륵의 증표인 간자를 건네주었을 때, 군사 태평은 그것이 반역으로 비칠 수 있음을 우려하였으나 왕건은 '참미륵'이라는 칭호를 그저 난세와 백성들을 구원하라는 보편타당한 조언으로 해석했다.
다만 그 시점에서 궁예의 미륵론은 위에서 설명된 '세상을 구제할 영웅'에서 '유일무이한 절대권력의 신'으로 변질되어 있었기에 왕건은 태평에게 설명하면서 "폐하와 내가 생각하는 미륵은 다르다."며 선을 긋는다. 그러나 왕건의 경우, 역성혁명으로 고려의 초대 황제로 등극한 이후 드라마 상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자신을 미륵이라고 선전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이것은 견훤도 마찬가지였다.
궁예에게 있어 미륵 신앙은 그저 대업을 이루기 위한 도구이자 가면에 가까웠다. 위에서 이야기된대로 사이비 종교스런 행동이지만, 허월은 행동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고, 훗날 석총 역시 타락하기 전 궁예의 모습을 미륵이라고 칭했다. 어디까지나 궁예가 세상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미륵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위해서 미륵을 이용하는 것을 경계했을 뿐이었다.당대 최고의 고승중 한 명이 불교경전도 제대로 안 읽으셨나.(....)

4.1.3. 철원성 함락~비뇌성 전투

종간에 의해 신격화가 진행되었으나, 오히려 이 때 궁예는 미륵의 이름을 쓰는 모습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사적인 대화에서 '나는 미륵이요.'라고 칭하는 정도. 오히려 법회 때는 호족들에게 미륵을 곧 만민이 평등한 세계라고 칭하는 등 미륵을 이상향의 의미로 쓰는 모습도 보였다. 사실 궁예가 미륵 신앙을 이용할 일이 별로 없던 것이, 이 때는 국왕으로서의 권력과 위상만으로도 백성과 호족들을 통치할 수 있었고, 또한 호족들도 국가 정책을 잘 따라주는 편이었다. 굳이 신격화까지 끌어올 필요가 없었던 것.

4.1.4. 비뇌성 전투~미향의 죽음

양길이 처형당한 이후엔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의 현생으로 믿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미향의 죽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등, 미륵의 초월적인 모습과 인간의 모습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였고, 궁예 스스로도 자신을 '인간의 육신을 가진 미륵'이라고 평가했다.

4.1.5. 아지태와의 만남~궁예 암살 미수 사건

아지태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궁예는 북벌을 망상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궁예가 표방하는 미륵도 엇나가기 시작한다. 자애로우며, 백성들의 모범이 되는 미륵이 아닌, 굳건한 권력을 가지고, 잘잘못을 철저하게 가리며, 관심법 같은 초능력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미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윽고 궁예는 '나는 미륵이기 때문에, 필멸자들은 무조건 나의 명령을 따라야한다'는 사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또한 선정을 펼치고 모범을 보였기에 백성들이 미륵이라 칭송했던 것을 잊고, 자신은 도를 깨달았기에 미륵이 되었다고 망상하게 된다. 과도한 전쟁과 수도 이전으로 인해 불만이 이 곳 저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를 억누르고자 미륵신앙이 본격적으로 이용된다.

4.1.6. 철원천도~태봉국 멸망

궁예 파트에서 가장 많이 패러디와 조소의 대상이 된 부분으로, 똘기어린 네타성 장면으로 유명한 부분이다. 독화살의 후유증으로 정신이 맛이 간 궁예는, 자신이 미륵이라는 것과, 북벌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한편으로 스스로 도를 깨우쳐 '미륵'이 된 사람이 겨우 질병 하나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해 괴로워하며 독주를 퍼마시던 궁예는 자신을 거짓 미륵이라 비웃는 석총의 환영을 보기까지 한다. 이 때의 궁예는 자신이 참미륵이라고 망상하고 있으며, 사람을 철퇴로 다스리는 살인귀.일 뿐이었다. 궁예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제정상이 아니다보니 자기합리화 및 일종의 발광의 의미로 "나는 미륵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한다.

여담으로 궁예가 양길과 미향에게 계속적으로 동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종간은 궁예가 미륵을 벗어나 자꾸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려고 한다며 우려한 적이 있었다. 종간이 바라던 미륵은 '선정을 펼치는 명군이되, 사사로운 동정심이나 인간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대업을 중시하는 굳건한 임금'이라고 볼 수 있다. 독화살 사건 이후 궁예는 동정심이나 이해심, 감정이입 같은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거짓 미륵이 되었고, 자비와 인간의 감정이 없는 거짓 미륵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최악의 미치광이 마구니가 되었다.

5. 패러디 및 인터넷 밈화

태조 왕건 드라마에서 '가장 카리스마 있고 진지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극중 실소와 조소를 유발하는 수많은 정신나간 과대망상들과 폭정들 때문에' 견훤신검, 아자개, 애술을 능가하는 '태조 왕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패러디와 개그 소재로 활용된 인물'로 이 드라마가 유행할 때, 신라 출신이라는 이유[41]플래쉬로 패러디되었다. 또한 2002년 대선에서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나오면서 회자된 적도 많았다.[42] 이외에도 크레이지 아케이드에서도 거북이보다 속도가 빠른 해적거북이를 '궁예 거북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잊혀졌다가, 심영을 위시한 필수요소들이 너무나도 장기집권한 탓에 심영에서 파생된 김두한의 영향으로 궁예 역시 많이는 아니지만 관련 동영상들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에는 밑의 작품들처럼 내가 고자라니와 같이 합성되는 정도였지만, 점차 궁예만의 합성물이 나오고 있는 중.

위에 나온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니코니코니를 시전하는 신하를 죽이는 장면으로 패러디한 영상도 있다. 그리고 이는 카리스마 대장 버전으로도 패러디되었다.

모에속성을 가진 캐릭터라는 분석도 있다.

파일:W0oiQ8r.png

구글에 의하면 모 정보 기관수장이라고 한다. 구글에서 이걸 봤는지 몰라도 지금은 닉 퓨리 대신 '궁예 관심법'이 뜬다. 누가 지금 하이드라소리를 내었는가 누가 아크원자로 돌리는 소리를 내었는가?

사실은 일베를 이용한 탓에 민심을 잃었다고 한다.[43]

천 오백년 뒤 아이어에서 신관으로 환생하여 법회 중 자신을 비웃으며 능멸한 질악 도사를 옴 마니 반메 훔을 외치며 사이오닉 폭풍으로 처단했으나 이후 질악에 의하여 독약이 들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바람에 해독제도 못 찾고 죽었다는 드립도 있다. 영상

심영 합성물의 범위가 야인시대 전체로 넓어진 이후에는 야인시대나레이션에게 관광을 당하는 굴욕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미레바 와카루 사건으로 인해 다시 뜨고 있다.

불교적 색채, 애꾸눈, 스킨헤드, 독심술 속성 중 하나 정도만 있으면 손쉽게 궁예 드립의 희생양이 된다.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의 대사를 빌려오면 금상첨화.

코미디빅리그에서 2018 궁예란 이름으로 패러디 코너가 생성되었다. 2018년 4월 8일 ~ 2018년 9월 23일 분부터 2쿼터 ~ 3쿼터동안 방영된다.

코미디빅리그에서 2018 장희빈에 궁예로 패러디하며 "어리석은 장희빈이여그러는 자기는 똑똑하고? 짐이(궁예가) 왔도다." 란 대사를 한다. 2018년 10월 7일부터 부터 2018년 10월 14일까지 4쿼터 동안 방영된다.

모 유튜버의 동영상에도 거의 까메오로 등장한다.

복면가왕에서 다 꿰뚫어보고 있느니라 궁예라는 닉네임으로 패러디되었으며, 173회 ~ 174회(87차 경연) 1라운드에 탈락했다.

이젠 아예 민속촌의 벨튀체험장도 점령했다.(...) 스파르타인과 함께한 건 덤.(...)

6. 어록

주로 충성심과 군자의 도, 또는 부하들을 아끼는 발언들이 명대사인 왕건이나, 희노애락의 표현이나 캐릭터의 호방함을 나타내는 발언들이 명대사인 견훤과 달리, 궁예에 경우 중반부터 제정신이 아니다보니 잘 알려진 대사들이 극과 극에 치닫는 것이 특징. 멀쩡한 시절이던 초반부에는 고결함과 높은 이상을 드러내는 발언들을 하는 반면에, 타락하면서부터는 광기와 살의가 뒤섞인 망언들을 내뱉는다.
옴 마니 반메 훔.
최초 등장은 67화.
저놈을 때려 죽여라.
해당 대사 자체는 80화에서 처음 나왔으나, 비슷한 뉘앙스의 발언은 76화에서 처음 나왔다.
마구니! 저기 마구니가 있어!
최초의 마구니 운운은 80화에서 시작되었다.
천하를 훔쳐 백성들에게 되돌리고자 하옵니다. 이것을 어찌 도적이라고 하겠사옵니까?
6화
나라를 지켜요? 나라라? 하하하하! 거 대답 한 번 기가 막히외다~ 이보시오, 김위홍 각간 나으리. 내게는 당신같은 숙부는 없소이다. 나라를 위하여 그리 했다? 아니지, 그것은 당신의 야망 때문이었소. 당신은 이 나라의 대왕보다도 더 큰 권력을 손에 쥐고 싶었던 거요. 그것을 얻기 위해 왕후들과 결탁해서 나를 죽이려 했고 결국은 소원대로 그 권력을 얻었소. 그러나 권력이란 타는 불과 같은 것. 현명한 자는 추위를 녹이고 먹을것을 익혀 먹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 불로 천하를 태우는 법이요.
7화
나는 미륵부처의 힘으로 오늘날 나라를 세웠소이다. 미륵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욕심이 없는 세계, 고통이 없는 세계, 만민이 평등한 세계를 일컫는 것이오. 그대들은 스스로 늘 안고 겸허히 반성을 해야 할 것이외다. 과연 백성을 위해 살았는가? 자신은 배불리 먹고 남들의 굶주림을 외면하진 않았는가? 작은 권력이 있다 하여 불우한 힘으로 가엾은 백성들을 착취하거나 억누르진 않았는가? 과연 내 것을 남에게 주어 본 적이 있는가? 남들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 적이 있었던가? 그렇지 않았다면은 이제부터라도 그것을 깨달아서 지켜야 할 것이외다. 아시겠소이까? 이것이 바로 미륵의 도리외다.
24화
난... 가족이 없어. 난 어렸을 때 가족이나 그 주변으로부터 버림받고 내던져진 과거밖에 없어. 나도 어떤 때는 형님을 갖고 싶고 또 아우를 미치도록 두고 싶을 때가 있었지. 어렸을 때는 내 부모님이 그렇게 보고 싶을 때가 있었어. 그 사람들은 날 죽이려 했고 내버렸지만 말씀이야.
29화
현실에 맞게, 불경을 다시 쓰기로 오래 전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소이다.
(종간 :경전을... 경전을... 새로 쓰시옵니까? (충격) 아니, 경전이란 오로지 부처님만이 쓰시는...)
(궁예가 천천히 돌아본다) 내가 바로... 부처요.
66화
참미륵인 나의 무릎에 그 꽃이 피었노라, 그러나 도둑 석가가 거짓으로 잠든 체 하고 있다가 내 꽃을 가져다가 제 무릎에 꽃았노라.
나는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지만 석가에게 양보를 하였느니라, 그리하여 석가에게 이리 말하였노라. 더럽다, 참으로 더럽다, 네가 먼저 세상을 맡아 하거라.
대중들은 들으라, 세상이 그리하여 고난해진 것이니라, 모두가 석가의 마음을 따라 도둑의 마음이 생겨 혼탁해진 것이니라. 허나, 이제 때는 이르렀고, 곧 나, 참 미륵이 이 세상에 왔노라.
그대들은 모두 이 세상의 고통의 짐을 벗고, 모두가 나를 따라 낙원에 이를 것이니라, 나를 따르는 자는 천상의 셰계, 저 도솔천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니라.
67화
백성들이라는게 참으로 미련하고 아주 이기적이란 말이야. 단순하기가 어린아이 같아서 매일처럼 맛있는 것만 달라고 한단 말이야. 하지만 늘 그럴수가 있나? 때로는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단 말이야. 이 어리석고 미련한 것들이 아무 생각도 없이 배가 고프면 밥그릇을 들이대다가 그게 안되면 곧바로 칼을 들이댄단 말이야.... 아니 그렇소? 내원? 칼, 칼 말이야 칼! 저들이 나를 부처로 만들어 주었고 그렇게 불러 줬어. 헌데, 이제와서 힘이 좀 든다고 해서 칼을 들이대? 그래. 내가 애꾸면 어떻고! 신라에서 버림받은 왕자면 어떠해! (안대를 벗으며) 자, 이 눈을 봐.. 눈이 하나라고 해서 할일을 못한적이 있는가? 신라가 나를 버렸듯이 나도 신라를 버렸어! 신라!! 저 없어져야할 멸도의 무리들을 감히 나와 비교를 해?! 나와?!!!
75화
난... 인자한 미륵으로 살고 싶었어. 존경받고 추앙받는... 부처로 살고 싶었어. 하지만 이젠 다 틀렸어. 시간이 없기 때문이야. 이제부터는... 부처가 아니라 인간 궁예로서 저들을 다스리려 하니 가슴이 아파. (중략) 내가 눈물을 흘리고 이렇게 외롭고 분해 하는 이유가 뭔지 아시오? 저 멀고 고단한 길을 결국 나 혼자 짐을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야.
75화
모두 일어나라! 모두 칼을 들어라! 자신들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 이 미륵에게 주어라! 나는 그것으로 극락을 만들 것이니라. (중략) 우리는 북으로 간다!삼한을 통일하고 저 드넓은 대륙에 미륵의 세계를 만들 것이다! 미륵의 세계를 말이다!
83화
그렇다! 언제 어디서든 성스럽고 좋은 자리에는 마가 낀다 하였다! 그냥 끌어낼 것이 아니다. 저 자는 지금 마구니의 더러운 입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내군들은 무엇을 하느냐?! 저 입을 철퇴로 으깨어 주어라.
83화
내가 백제군에게 화살을 맞아보았지만 백성들에게 돌을 맞아보기는 처음이야! 이런 무지렁뱅이들이 있는가. 글쎄 백성들이 이래! 이 불쌍한 것들을 모조리 한 곳에 집어넣고 태워버리게!
87화
닥쳐! 닥치라고 하였어!
88화
아닐세, 아우. 살려놓으면 나도 괴롭고 도 괴로워. 죽고 싶을 때 죽이게 해주는 것도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이야. 들어가라. 사내답게 죽어라!
94화
뭣이라고? 내가, 내가 거짓이라고?! 석총이 이 놈이 어떻게 또 살아돌아왔느냐?!
97화
잔 받으란 말이오!
105화
먼저 황후는 이 미륵의 아내로서 그 자질을 잃었어! 미륵의 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맑아야 해![44]
116화
닥쳐라! 분명 입으로 날 사모하지 않는다 하였다, 그것은 다른 사내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이 간음이고 간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45]이대로는 아니 되겠다. 여봐라, 도저히 편하게 죽게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법의 무서움을 더 크게 깨닫게 해 줄 것이다. 법봉을 가져다가 불에 달구도록 하여라!
116화


[1] 당시 국내의 학교에서 체벌 존치와 폐지를 놓고 논쟁이 일어나던 과도기였기 때문에 체벌이 이뤄지는 학교에서는 종종 몽둥이를 법봉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아예 교사가 몽둥이에 펜으로 '법봉'이라고 대놓고 써놓는 경우도 있었으니 '태조 왕건'의 궁예가 끼친 영향을 알만하다.[2] 그리고 종영 15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궁예질이란 말은 여전히 유행하고 있다.[3] 지금의 개성으로, 왕륭과 왕건 부자의 근거지이다.[4] 세달사의 위치가 현재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에 위치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경기도 개풍군 일대에 있었다는 이설도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궁예와 왕건의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개풍군 설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5] 세달사에 들어갈 때 궁예는 많아야 10살 내외인 어린 소년이었으므로, 10여년 후라고 해봐야 20대 초중반의 젊은이었다. 그러나 드라마 촬영 당시 40대 후반인 배우가 연기하다보니 나잇대에 비해 노안이 되고 말았다.[6] 실제 기록상, 궁예의 법명은 자칭 '선종'이었다고 한다. 드라마 상에서는 범교 스님이 궁예의 스승으로 등장하기에 실제 역사와는 달라지게 된 것.[7] 서라벌로 항해할 때, 궁예는 재물에 비해 호위병력이 적다고 왕륭에게 지적했다. 왕륭 측에서는 설마 수도 근방에서 뭔 일이 벌어지겠는가 싶었겠지만 당시 신라는 수도 근방에 도적단이 돌아다닐 정도로 망조에 들었다.[8] 사실 서유기는 명초 소설이라 고증에는 맞지 않는다.[9] 궁예 문서의 맨 첫부분에 있는 궁예 그림을 그린 벽화가 있는 바로 그 절이다.[10] 법구경에 나오는 글귀다.[11] 여담으로 허월 역시 범교, 종간 등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던 궁예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정보수집을 통해 궁예의 깊고 은밀한 비밀들까지 모두 알아낼 정도면 궁예에 대해 장기간에 걸친 깊은 사전조사를 한 모양이다.[12] 후고구려는 왕건의 고려와 구분 짓기 위한 구분이지 정식 국호는 고려다.[13] 여기서 바른대로 사건의 전모를 다 말한 뒤에 유일하게 살아나가는 첩자 역할을 맡은 배우이병욱은 이후 마의태자 역할로 다시 출연한다.[14] AC 닐슨 기준[15] 사실 이게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평소 극악무도했던 인간이 죽을때 그에 걸맞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런데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죽는 모습을 본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평상시 궁예의 엄청난 카리스마와 사망시의 영웅적인 모습에 깊이 매료가 되어 궁예를 영웅시했고, 사실 이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이게 드라마니까 망정이지, 실제 이런 드라마의 궁예 같은 인물, 예를 들어 독일의 히틀러가 죽었을때 독일 국민들이 드라마의 궁예가 죽었을때의 대다수 우리나라 국민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면 그야말로 전세계인들에게 미쳤다는 욕밖에는 못 들을 것이다. 궁예와 히틀러 모두 같은 기축년생[16] 죽기 직전 왕건의 회상에서 나왔는데, 두 작품 다 이환경이 작업했기에 가능했다.[17] 그도 그럴 것이 은부와 종간의 원래 계획은 죄인이 된 강비는 폐비로 처리한 후 유배형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무리한 기대였다. 강비의 아버지가 반역을 저지른데다가 강비 본인까지 이후에 반역을 저지른 상태였고 반역을 저지른 이후에도 끝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국문장에서 궁예에게 계속 독설만 퍼부었다. 폐비와 유배로 끝날 일은 절대로 아니였다. 이 경우 이런 황후를 폐비와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끝낼 황제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더군다나 종간과 은부는 과거에 미향을 죽일려고 했던 인물이였다. 그런데 강비는 궁예의 정실 황후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터무니없는 너그러운 조치를 바라는 그들은 그야말로 내로남불이고 수준 이하로 어리석은 생각이였다. 그런데 그들의 황제인 궁예가 강비의 처형을 도에 넘는 끔찍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문무백관들이 다 보는 데서 실시했고, 이는 궁예의 입장은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측면은 있지만 고문과 잔인한 처형이 합법이었던 '봉건시대'의 기준으로 봐도 정상적인 처벌은 절대로 아니었는데다가, 정작 그들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함께 처형되기를 원했던 왕건은 궁예에게 용서받는 걸로 넘어가니(더군다나 궁예는 처음부터 왕건을 처형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 즉, 이 둘은 헛된 기대를 하고 있었단 이야기.) 이 둘 조차도 충격이 클 수 밖에 없었다.[18] 그녀가 처형되는게 불쌍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녀의 처형으로 인한 민심의 악화가 가속화 될 것이 자명하기에 그런 것이다.[19] 여기서 끝나도 이미 최악인데 강비와 태자들의 시신들을 산에 내다버렸고, 이때는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는지 거적을 씌워 산짐승들과 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을 방지는 했지만 '형미'라는 당대의 이름 높은 고승과 그의 제자들이 이를 수습하고 도성에서 공개적인 대규모 장례식을 거행해 여론을 악화시킨 것에 격분한 궁예는 형미를 처형해 버렸고, 이후 궁예는 형미 사건으로 인해 황후와 태자들에 대한 분노가 더 커져 황후와 태자들의 시신을 불태우는 최악의 만행을 다시 저질러 신료들과 선비들,승려들과 백성들의 경악과 분노를 불러일으켜 사태는 더욱 커졌다.[20] 염상이 이때까지 궁예가 저지른 폭정을 말해주자 공감할 정도였다.[21] 내군 병력의 많은 수가 왕건파에 가담했고, 무엇보다 황궁을 향해 진격해 오는 대규모의 중앙군과 지방군들 때문에 무조건 싸움을 피하고 급히 달아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궁예의 엄청난 폭정에도 불구하고 김영철의 신들린 연기 덕택에 여전히 엄청난 인기를 궁예가 얻어서, 궁예의 신임을 얻어 내군 장군이 된 '장일.'이 이때 궁예에게 조금의 미안함도 보이지 않고 궁예를 공격하자 많은 궁예의 열성팬들은 '태조 왕건'의 시청자 게시판에서 장일에게 신랄한 욕을 퍼부었고 이후 장일이 궁예의 죽음 몇회 후, 이흔암의 반란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독화살을 맞고 죽자 매우 통쾌하게 여기는 일이 있었다.[22] 이에 비해 장일과 똑같이 궁예를 배신했던 최응의 경우, 왕건의 역성혁명 당시 궁예의 도주로를 미리 예상해 궁예를 기다리고 있었고 궁예가 도착하자 자신을 극진히 대접했던 궁예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잘 가시라는 뜻으로 정중히 고개를 숙여 궁예의 마지막을 잘 배웅해 궁예의 열성팬들에게 욕을 먹지 않고 찬사를 받았다.[23] 실제로 철원과 평강 등 강원 북부 일대에서 전해지는 궁예에 대한 여러 민간 설화들을 보면 궁예에 대한 여러 엇갈리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리목역, 검불랑역 문서 참조.[24] 그냥 성격 차이일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 견훤은 그야말로 호탕한 상남자로, 감정이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나는 스타일이지만 이 시점에서 궁예는 선하면서도 상당히 냉정하고 침착해서 감정을 잘 티내지 않는 인물이었다.[25] 68회 마지막에 궁예가 독백한다.[26] 천도 얘기가 나올때 왕건은 나주 상륙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27] 박유는 이전에 종간과의 대화에서 아이에게 일찍부터 올바른 교육을 하여 좋은 습관을 들이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런 박유가 보기에도 궁예의 자식에 대한 태도는 너무나 가혹하고 비인간적이었던 것.[28] 연화가 궁예의 황후가 되기 이전에 왕건과 정혼했던 관계였다는 점과 궁예가 연화를 처형하기 직전 그녀에게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간통 여부를 추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궁예가 두 태자를 연화가 왕건과 사통해 낳은 자식으로 의심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는데 철원 지방의 민간 전승에 따르면 궁예가 강비를 왕건과 강제로 사통시켰다는 이야기 또는 강비가 궁예 몰래 왕건과 사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29] 순천 김씨와 광산 이씨의 족보에서 궁예가 조상으로 기록되어 있는 데 그 기록과 순백이 역성혁명 이후에도 죽지 않고 왕건 밑에서 벼슬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추측해보면 궁예의 셋째아들 순백이 광산 이씨와 순천 김씨의 시조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허나 현실에서는 순천 김씨와 광산 이씨의 경우 궁예와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30] 당연히 실제로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드라마에서도 이미 이야기가 되었듯이 후백제는 고창과 운주 전투에서 대패해서 국력이 크게 쇠퇴했다고 나오고, 거기다가 실제 역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929년 12월~930년 1월에 벌어진 고창 전투부터 935년 4월 유금필에 의해 성공한 나주 재탈환 작전까지 6년 동안 후백제는 고려에게 이긴 싸움이라고는 고창 전투에서 대패하고 후퇴하는 견훤이 부하 장군을 보내 순주를 격파하고 약탈해서 후백제로 철수한 것과 932년 9월과 10월 상귀, 상애 등을 통해 고려 수도 개성 근처 지역들을 대규모 해군으로 기습해 약탈하고, 고려의 정규 해군을 일시적으로 격파한 것 이외에는 승리가 전혀 없었고, 모두 고려의 승리로 끝났다.[31] 궁예는 발해 역시 무너뜨려야할 존재로 보았다.[32] 이때 김위홍 역할은 김주영이 연기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8년 뒤 대왕 세종에선 김영철(배우)이 연기한 태종(조선)의 의제 이숙번으로 나온다.[33] 실제로 내군에 있었던 염상이 내군의 장일까지 포섭해서 군의 이동 상태까지 감춘다.[34] 20화에 이에 대한 복선이 나온다. 미친 땡중으로 가장한 허월이 궁예와 술을 마시는데, 이때 허월은 궁예의 숨겨진 분노와 욕망을 언급한다. 물론 당시 성인군자의 모습을 보이는 데다, 그릇도 넓었던 궁예를 마음에 들어한 허월은 명주 지역을 그대로 궁예에게 바쳤다.[35] 가령 극 초반부 에피소드인 13화에선 기훤이 괴산을 공격할 때 주민들을 약탈하고, 신라 출신 관원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나중에 궁예는 그 관원들을 그대로 자리에 놔뒀으면 지역을 통치 하는데 편했을 거라고 한탄한다.[36] 이건 황금 안대를 착용한 뒤에 100화에서 미행을 나갈 때 잠시 착용했다.[37] 여기서는 궁예와는 정반대로 한평생 가족을 위해서 희생했지만, 남모를 비밀을 간직한 가장 역할을 맡았다. 김영철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연기력이 뛰어난지 엿볼 수 있는 대목.[38] 황금빛 내 인생의 서태수 역을 맡은 천호진과 공동 수상. 참고로 이 수상을 통해 김영철은 종전에 유동근(2014년 KBS 연기대상 수상)이 가지고 있던 연기대상 최고령 수상자의 기록을 갱신했다.[39] 불경에서 석가모니가 미래에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보낼 미래의 부처로 세상에 하생해 인류의 모든 전쟁, 범죄, 불법, 부정부패, 사고, 질병, 가난을 없애고 인류의 평균 수명을 8만 4천 세로 늘리고, 이런 만큼 인류의 성장 속도도 늦어져 여성이 5백살은 되어야 시집을 가는 지상의 낙원을 이룬다는 부처로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대 불교 승려들과 신자들 중 궁예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자신이 미륵이라고 칭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로 비유를 하면 기독교를 믿는 한 신학생 출신 정치인이 자신을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전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정신나간 행동이다. 그래서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수십 년 뒤 미래의 일을 자신의 손바닥을 보듯 훤히 보고 예언하고, 또 초능력을 발휘해 맑은 하늘에 먹구름과 광풍과 번개를 불러일으킨 후삼국시대 자타공인 최고의 고승인 도선대사조차도 자신을 미륵이라고 칭하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않은 것이다.[40]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론을 대강이나마 설명함으로서 태조 왕건의 궁예 편을 읽는 독자들이 궁예가 처음부터 미륵을 자칭한 것이 얼마나 정신나간 생각인지, 또 드라마 제작진들이 궁예에 대해 처음부터 얼마나 무리한 설정을 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어 설명을 붙여둔다.[41] 실제 궁예 역을 맡은 배우인 김영철대구광역시 출신이다.[42] 참고로 이때 선거포스터의 후보 사진에 안대를 그려넣거나 공약을 "옴마니 반메홈."이나 "짐은 미륵이니라."라고 낙서하는 철없는 학생들도 다수 있었다. 참고로 이런 짓은 선거법에서 규정하는 범죄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43] 당연하지만 一拜. 한번 절하라는 이야기다. 삼보일배라고 할 때 그것. 사실 요즘에는 많은 한국인들의 발음 체계에서 ㅐ와 ㅔ의 구분이 거의 사라졌으나, 해당 영상에서 종간 역할을 맡은 김갑수는 ㅐ를 정확히 표준 발음대로 읽었기 때문에 ㅔ와 구분된다. 즉 여기서 김갑수는 일베를 발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선 ㅐ와 ㅔ의 발음 구분이 잘 안 되니 일베라고 듣고 밈으로 쓰기엔 좋다.[44] 헌데 강비 역을 맡은 김혜리씨가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면서 궁예의 관심법이 옳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45] 철원 지방의 민간 전승에 따르면 궁예가 강비를 왕건과 강제로 사통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에 의하면 태봉의 왕자들인 청광과 신광은 궁예의 친자식이 아니라 궁예 본인이 연화를 왕건과 일부러 사통시켜 얻은 자식이라는 말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