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역의 실존인물에 대한 내용은 양길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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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인 양길. 배우는 이치우.2. 캐스팅
배우 이치우는 개국에서 김용, 한명회에서 황보인, SBS 장희빈에서 묵재 허적, 왕과 비에서 윤사흔, 무인시대에서 현담윤, 명성황후에서 데라지마 무네노리 등으로 출연한 성우 겸 배우이다. 하지만 소시적에는 이영후와 더불어 백범 김구 전문 배우로 유명했다. 2013년 12월 29일에 향년 7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3. 극중 행적
궁예 어딨느냐!!! 궁예 나와라!!!!!
네 이놈, 은부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나타났느냐!!!!!
초반부의 주인공 격인 궁예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 중간 보스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 성격이 단순하고 언월도를 휘두르는 저돌적인 맹장으로 나온다. 글도 모르는 일자무식인지 제일 먼저 창업한 견훤이 귀부하라는 서신을 보냈을 때[2] 본인이 읽지 못하고, 부하 복지겸에게 건네주어 읽으라 시키기도.
인품이나 능력은 기훤보다 낫다는 판단 하에 궁예가 스스로 죽주성을 바치고 양길에게 몸을 의탁한다. 궁예가 처음 수하로 들어올 때 복지겸이 양길에게 몇 번이고 궁예를 경계하라고 간언했지만 양길은 궁예를 믿었고, 결국 은부와 궁예에게 뒷통수를 맞는다. 은부의 계략으로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 등 주력 장수들이 죄다 궁예의 손에 넘어갔고, 그 상태에서 궁예가 슬쩍 명주성 입성 후 독립해버린 것.
은부의 평에 따르면 도량이 있는 척 하는 소인배에 의심병 환자며 욕심이 많다고 한다.[3] 궁예가 양길을 찾아오기 전에도 그 성격적인 결함 때문에 여러 일을 그르쳤다고 하며, 그놈의 의심병 때문에 은부 역시 양길에게 학을 떼며 궁예에게 의탁하려 했을 정도. 차라리 의심병 때문에 일관적으로 조심성이라도 많았다면 모르겠으나, 정작 양길은 정말로 의심해야하는 부분에서는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은 말만 받아들이고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 중에서 표현된 것만 봐도, 자기가 다룰 깜냥이 안된다는 걸 알 텐데 야심과 체면 때문에 궁예를 부하로 받아들여놓고는 궁예를 또 의심해서 자기 딸과 강제로 결혼시키는가 하면, 그러고도 신뢰가 가질 않는지 허튼 짓을 할까봐 석남사로 보내 약 1년여간 간을 보는가 하면, 궁예가 합방을 하자 오히려 궁예를 의심하는 조언을 하는 복지겸에게 면박을 주더니, 그 큰 명주를 공략하라며 겨우 600명 주고, 또 막상 명주를 치려는 궁예를 의심해서 공격 직전에 불러오는 개짓거리[4]를 하는 등, 이중인격으로 보일 만한 트롤링이란 트롤링은 다 했다. 본인이 말하길 의심하는 것만이 난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 바 있으나, 그것도 상대가 모르게 해야 효과가 있지 의뭉 떠는 재주가 없어 의심하는 중이라는 티를 팍팍 낸다. 쓸데없이 의심을 내보이거나 의심을 풀어서 수하 장졸들의 불신과 배신만 초래하고 말았다. 정작 의심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남을 믿는 태도를 보였는데, 명주성에 입성한 궁예가 아무런 소식도 보내지 않는데도 정작 양길은 궁예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대왕에 등극하는 것만 망상하고 있었다. 본인 딴에는 본인이 직접 궁예와 이야기도 해봤고 궁예를 자신의 사위로 삼은데다 제일 신임하는 복지겸을 딸려 보냈으니 배신의 염려는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안일한 대처였다.
그러나 적어도 장수로서의 능력이나 배포만큼은 충분히 갖춰진 것으로 묘사되며, 참수당할 때에는 '너에게 보낸 내 딸아이가 걱정되지만, 장수로 태어난 이상 죽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는 폭풍간지 유언을 날리며 죽음을 택한다. 궁예의 독립 이후 양길이 처음 선전 포고를 할 때도 궁예가 강비를 들인다는 소식에 그나마 내 딸애를 데리고 있어서 미련은 남았는데 새로 아내를 맞이한다는 말에 공격하기로 결심한 것. 평소에는 찌질하기 그지없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은근히 간지가 사는 양극단의 캐릭터.
이렇게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음에도 무력만큼은 굉장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작중 세계관 최강자로 다른 세계관 최강자급으로 취급되는 궁예나 견훤보다 위로 볼 여지도 있을 정도로 여타 무장들과는 격이 다른 전투력의 소유자이다.[5]
처음 궁예군과 축령산에서 싸울 때는 결투를 벌여 신훤, 원회를 몇 합만에 베어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이흔암[6]은 몇합 주고 받다 한 쪽 팔을 베어 손쉽게 무력화시키고는 이를 돕기 위해 나온 환선길도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퇴각하는 등 궁예의 휘하 장수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다. 고려군은 왕건의 치밀한 작전 수립으로 이길 수밖에 없도록 완벽히 상황 조성을 해놓고 맞붙었음에도 순전히 양길의 용맹 하나에 수백의 군사와 두 장군을 잃는 피해를 입은건 덤. 더욱 놀라운 점은 작중 양길은 중년도 아닌, 이미 노년기에 접어든 인물이라는 것이다.[7] 환선길의 무력이 유금필과 동급인데, 유금필이 2부에서 먼치킨급으로 묘사되는 걸 보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런 환선길을 무장 3명을 연달아 쓰러트린 시점에서 맞붙어 쫓아버렸으니, 견훤이나 궁예와 맞붙어도 패한다고 장담할 수 없고 오히려 위일지도 모른다.[8]
양길의 무력은 드라마 극본가 이환경 작 태조 왕건 소설에서 더 생생하게 알 수 있는데 여기서도 스스로 늙었다고 하면서도 자타가 무력을 인정하고 궁예나 왕건 휘하에서도 양길군에 무서울 것 없다면서도 양길만은 조심해야 한다며 경계를 한다.
실제 소설판 비뇌성 전투에선 양길 휘하의 무장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죽었다는데 설명에 비해 양길만은 마지막까지 혼자서 금대, 종희 등과 맞서 싸우고 거기에 유금필, 박술희, 능산(신숭겸)까지 끼어들어서 달려드는 압도적인 열세에서 치열한 혈전을 벌이다가 결국 체력이 딸려 무기 하나 제대로 들 힘이 없어졌을 때서야 유금필의 공격에 졌다고 나온다.[9] 작중 설정한 양길의 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 아마도 전성기 시절이였으면 이견 없는 최강이었을지 모른다.
작중 인물들은 드라마 상의 양길의 이러한 무예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는데, 궁예는 양길을 처형하기 직전에 그를 보고 이 시대 제일의 용장이라고 평했으며 양길 사후 궁예가 순행을 하던 도중 북원에 이르자 은부와 양길에 대해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은부는 '하늘은 공평해서 양길은 힘은 뛰어났지만 머리가 없었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이걸 반대로 말하면 무력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했다는 것.
이런 양길과의 첫 번째 싸움은 왕건이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다. 당시 궁예는 갓 스물을 넘긴 데다 아직 대규모 병력을 다스려본 경험도 없는 왕건을 총사령관에 임명한다는 파격적인 인사를 감행한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왕건은 노련한 노장처럼 병력들을 통솔했고, 아예 양길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처음부터 예상하여 병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록 궁예 측도 신훤과 원회가 전사하는 등 어느 정도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양길은 아직 애송이이던 왕건에게 대패하여 수천의 군사를 잃는 굴욕을 겪었으며, 이 전투 이후 왕건은 궁예의 의형제가 된다.
이후 양길은 영토도 줄어드는 등 쇠퇴하고 있었는데, 궁예로부터 남하를 명령받았던 왕건의 병력이 죽주에 이르자 이를 막기 위해 마지막으로 대규모 병력을 소집한다. 다만 궁예가 왕건을 내려보냈던 것은 양길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직 혼란했던 당시에 이렇다 할 임자가 없이 공백지대로 남아있는 영토들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양길을 죽이고 싶지 않던 궁예는 은부를 사자로 보내 화친을 제의하는 등 여러 차례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지만, 이미 비분강개한 양길은 끝까지 적의를 보인다. 사실 양길이 화친이고 뭐고 필요없다는 태도로 나올 법한 게, 하필이면 궁예가 사자로 보낸 인물이 대놓고 양길의 통수를 친 은부였던 것. 다만 궁예는 '은부를 사자로 보내면 양길이 노발대발할 것이니 공격할 명분이 된다' 라는 생각이 아니라 워낙 일이 다급하니 곁에 있던 은부를 일단 보내고 본 것에 가까웠다.
두 번째 전투에서는 궁예도 친히 전장에 나서는데, 궁예가 지휘하는 군대가 양길을 상대로 모루 역할을 하는 동안, 왕건은 양길의 퇴로를 차단하고 매복 중이던 양길의 둘째 사위도 죽인다. 결국 포위당한 양길은 끝까지 싸우다 생포당했고,[10] 궁예는 양길을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양길이 계속 자신을 죽이라고 하는지라 어쩔 수 없이 처형하는데, 죽기 직전에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니다. 너라고 나와 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법이 있겠느냐.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태봉국과의 2차례 일전에서 양길은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서서 적군을 상대했는데, 이것만 봐도 궁예 세력과의 규모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궁예는 휘하 장졸들, 장군들만으로 전쟁을 치를 능력이 있는 반면, 양길은 자신이 직접 선봉에 서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는 뜻이다.[11]여기서는 양길에게 적어도 3명의 딸이 있고, 이들 중 두 명 즉, 첫째와 둘째 딸도 양길의 장수에게 시집을 보낸 모양. 그 가운데 둘째 사위는 바로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왕건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셋째 딸인 미향은 궁예가 양길에게 들어온 첫 날 바로 시집을 보냈으나, 궁예는 불가에서 자란 터라 여인 자체를 꺼리는 성격이었기에 아내가 아니라 보살[12]로 대우했다. 결국 미향은 궁예에게 아내로 대접받지 못하면 죽겠다 하여 단 한 번 합방을 하고 궁예가 독립한 이후 아들을 하나 낳았지만, 아들은 명주의 절에 보내져 살아서 아들과 한번도 만나지 못한다. 왕비가 된 강비와는 서로의 동질성을 느끼며 잘 지냈으나 비뇌성 전투 때 종간과 은부의 뒷공작에 죽을 뻔 하기도 했고, 양길이 죽고 북원이 초토화된 이후 연화의 부탁으로 같이 갔다가 이곳 북원으로 순행을 온 궁예의 모습에 분노하여 깽판을 쳤다.[13] 명주로 갔을 때도 아들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에 아들의 환청을 듣는 등 계속 정신이상을 보이다 결국 넘어진 촛불에 의해 숙소가 불에 타면서 그렇게 죽게 된다.[14]
이래저래 군주가 될 재목은 아닌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기훤과는 달리 심한 인간 말종이거나 폭군은 아니었던 관계로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옛 부하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은 주군을 배신하고 죽인 궁예를 증오하였고, 세상을 떠돌면서 복수할 기회를 노렸는데, 때마침 나주를 잃고 비분강개하던 수달에게 찾아가 복수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여 받아들여지게 된다(62회). 이들은 최승우의 명을 받아 자객으로 파견되는데, 철원 공사장에서 독화살을 쏴 궁예에게 중상을 입히는 데 성공하나 궁예가 금강산 도인덕에 겨우 다시 살아난데다 철퇴에 겁을 먹은 마지막 한 명[15]이 후백제와의 연관성을 털어놓으면서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데에도 실패했다.[16] 하지만 이 사건 이후 궁예는 후유증으로 병이 악화되고 미치광이 폭군이 되어 나라를 은근히 좀먹었고, 그것으로 인해 결국 못참아서 왕건을 추대하려는 장군들이 일어선 덕택에 몰락해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간접적으로나마 복수에 성공하기는 했다.
그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양길의 부하들이 초기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한 궁예가 실제론 신라 황족 출신임을 알아내 이를 최승우에게 알려, 견훤이 이로 하여금 궁예 측 내부에 이간책을 쓰도록 조장하는 거대한 후폭풍을 낳았다. 이 때문에 궁예는 나중엔 개인적 원한도 있고, 신라를 더욱 적대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야 했으며 신라에서 투항하는 포로들을 살해하고 북벌에만 집착해 스스로 외교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궁예 역시 양길을 배신한 일이 못내 가슴에 남았는지 어떻게든 양길의 목숨만은 살려주고자 했으며, 훗날 자객들에게 독화살을 맞고 사경을 헤메던 중에 양길과 미향과 경문왕이 자신을 저승으로 데려가려 하는 악몽을 꾸었다. 양길이 군주가 될만한 인물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궁예와 은부의 행동은 배은망덕에 명백한 배신이었기 때문.
[1] 글자 그대로 발 아래(足下)라는 뜻.[2] 견훤이 자신에게 비장의 벼슬을 주겠다면서 귀부하라고 하자 빡쳐서 사신을 죽이라고 소리치는데, 재밌는 점은 불과 몇 회 전 자신이 기훤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 기훤이 보인 반응과 똑같다는 것.[3] 하지만 은부의 양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다름아닌 은부 자신이 진정한 주군이라 여겼던 궁예의 미래의 모습이였고 정도가 양길을 능가하고도 남을 정도였다[4] 이런 소환은 군 지휘에 악영향을 끼친다. 게다가 상식적으로 볼 때 의심이 가는 인물이라면 애초에 출정을 맡기면 안 된다. 관중이 용인술에 대해 말하기를, "의심가면 기용하지 말 것이며, 기용했다면 의심하지 말라." 하였다. 이도저도 아니면 그건 대놓고 배신을 부채질할 뿐이다,라고 했는데 양길은 궁예를 기용했으면서도 의심하는 트롤짓을 반복했다.[5] 같은 작가가 적은 소설에서 이 격이 다른 무력이 더 두드러진다.[6] 코믹한 인상의 캐릭터라서 입만 살아있는 놈으로 보일 수 있는데, 양길은 물론 궁예의 휘하 지휘관이었을 때에도 환선길과 함께 필두맹장이었다. 궁예 사후 이흔암의 난이 묘사될 때 복지겸, 장수장과 2명의 장수를 한꺼번에 맞이하고도 막상막하로 겨룬 바 있다.[7] 양길 스스로 환갑을 넘겼다고 언급한다.[8] 작중 양길이 잡장들이나 장수들을 언월도로 벨 때마다 해당 장면을 양길의 기합과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연출했다. 견훤, 유금필, 수달 등 다른 먼치킨급 맹장들은 일 대 일 결투 등으로 화려한 무예를 연출한 것에 비해, 양길은 기껏해야 가로로 베는 모션밖에 없는데, 이는 양길 역의 이치우가 연로한 데다 당시 당뇨 합병증으로 폐를 절제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복잡한 액션신을 소화하기 버거웠기 때문이었던 듯하다.[9] 심지어 금대, 종희 등이라고 한 걸 보면 삼형제가 끼어들기 전에도 이미 3명 이상이었다는 뜻이니 양길은 최소 6:1 이상으로 싸웠다는 것이 된다. 당연하지만 드라마, 소설 통틀어서 이만한 기행을 보인 인물은 없다. 견훤이나 궁예조차 이만한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10] 여기서도 양길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게 다시 드러나는데,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혼자서 병사들을 다 베어 넘기던 와중 다른 장수들과 일대 다수로 싸우는데 그 순간 다른 장수가 아예 몸을 날려 덮침으로서 양길을 말 위에서 떨어뜨리는 것은 성공하지만, 함께 바닥에 엎어진 와중에도 자신에게 달려든 놈을 밀쳐낸다. 그걸 보고 달려든 다른 장수가 서둘러 내려찍으려던 걸 드러누운 상태에서 밀어내 뒤로 물러서게 하는 괴력을 선 보였지만, 2명이 밀려나가고 3명째 달려든 장군이 목에 칼을 먼저 겨누는 바람에 겨우 제압했다. 그리고 이 중 한명이 바로 금대다. 한마디로 네임드 장군들이 득달같이 빈틈을 노리고 일순간 무력화 시켜도 계속 벗어나며 가장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버텨내는 골 때리는 상황이었던 것.[11] 자신의 휘하였던 은부, 복지겸, 환선길, 이흔암 등이 모조리 궁예에게 가담했다. 더군다나 궁예가 명주와 패서 일대를 장악하며 왕건, 배현경, 홍유, 김언, 김락 등의 인재들을 다 얻은 반면, 양길 곁엔 겨우 동생인 명길과 두 명의 사위뿐이었다.[12] 불교에서 여성 시주를 부르는 용어.[13] 석총보다 앞서 궁예에게 '당신은 미륵이 아니다' 라고 비판한 인물이며, 내심 인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궁예를 떠보기 위해 일부러 비판을 가했던 허월을 제외하면 궁예가 미륵임을 부정한 최초의 인물이다.[14] 보통 상황 같으면 재빨리 그 곳에서 빠져나와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외부에 알리겠지만, 하필 밖에서 못 나오게 내군이 문을 꽉 막아버리고 가버린 탓에 나오지 못했고, 들어가려던 왕건도 접근을 못하여 결국 그 안에서 질식사했다.[15] 나중에 마의태자 역할을 맡은 이병욱이 연기했다.[16] 자신들이 왕건의 작은아버지인 왕평달의 수하라고 주장했다. 다만, 누명이 밝혀졌음에도 왕평달과 왕건의 두 사부는 패서의 호족들이나 병부령 복지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손을 쓴 것이 빌미가 되어 결국 외딴 섬으로 귀양가게 되었으며, '다시는 뭍으로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라는 궁예의 말마따나 퇴장해 출연이 없게 되었다. 실상 왕건이 슬슬 가문의 지도자가 되고 유금필, 신숭겸, 태평, 등 측근진도 정립되는 상황이라 선대인물들이 할 일이 사라졌기에 자연스럽게 퇴장시키는 극중 장치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