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역의 실존인물에 대한 내용은 복지겸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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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복지겸의 모습 |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는 길용우.[1]2. 극중 행적
다 당신의 욕심 때문이오! 당신의 욕심이 그렇게 만든 것이오! 뭣들 하느냐! 쏴라! 양길을 잡아라!!!
초반에 나올때는 당나라에서 건너가 유학한 귀족 가문 후예 출신이라는 설정이 붙었고 양길의 부하로 등장했으며 양길은 문무를 겸비한 은부와 복지겸을 가장 총애했는데 사실상 복지겸이 양길의 책사 역할을 해주었다. 딴 마음을 먹고 양길에게 귀부한 궁예,종간의 속셈을 눈치채고 양길에게 궁예를 경계할 것을 누차 진언하나 세력 확장에 한 눈이 팔렸던 양길은 점점 복지겸의 진언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양길은 은부의 계략에 낚여 복지겸을 비롯한 주요 장수들을 죄다 궁예 휘하로 보내버리는데 사실 양길도 궁예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푼 건 아니어서 다른 장수들은 몰라도 복지겸은 감시하라는 역할을 주어서 보낸 것이었다. 그 정도로 복지겸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이를 증명하듯 장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양길을 배반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결국 설득되어 궁예의 편이 되는데 양길이 좋아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고[2] 군주의 재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훤이나 훗날의 궁예와 달리 폭군도 아니고 그저 군주로서의 자질이 좀 떨어지는 것 가지고 양길을 통수칠 수 없어서 처음에는 반대했던 것이다.[3]
궁예의 부하가 되기전 "여러분(종간, 은부, 환선길, 이흔암)이 양 장군이 그릇이 아니라 하여 버리고, 궁 장군이 주군의 그릇이라 하여 따라야 한다 하는데 좋다. 나도 동참하겠다. 단, 만약에 훗날 궁 장군이 양길처럼 백성들의 뜻을 저버린다면 나는 지금 여러분이 한 일을 그대로 따라할 것이니 그 때 가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원망말라!"고 약조를 걸었다. 종간이 웃으며 "그럴 일은 없다"며 무마시키려 하자 단호한 어조로 "만약이라고 했다. 그 때엔 이 복지겸이 하는 일에 원망하지 마라."고 말했다. 결국 궁예가 말년에 정말 미쳐 날뛰면서 민심이 분열되자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제28화에서 양길과 싸울 때 양길이 복지겸에게 내가 네놈은 믿었건만 이라고 외치자 복지겸이 "다 당신의 욕심 때문이오!"라고 맞받아치는 것을 봐서는 내심 양길의 몰락은 양길의 자업자득도 기여했다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궁예 밑에서 맡은 첫 직책은 군권을 총괄하는 병부령.[4] 그렇다보니 왕건이 궁예 밑에서 야전군 사령관일 당시에는 위계상 왕건의 상급자였는데 이 무렵의 장면을 보면 복지겸과 왕건은 상호 존대를 하지만 왕건이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왕건이 신하들 중 으뜸의 자리인 시중이 되고 종국에는 궁예를 몰아내어 고려를 건국하고 군주의 자리에 오르면서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다. 은부, 환선길, 이흔암 등 양길군 출신 장수들 중 유일하게 왕건 및 패서 호족들과 가깝게 지내며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였는데 뭔가 일이 있을 때마다 유 장자 등 패서 호족들과 의논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그 때문에 궁예 암살 미수 사건 당시 종간은 복지겸도 같이 엮어서 살생부에 올렸다.
또한 군권을 총괄하는 병부령이다보니 궁예가 혼수 상태에 빠져있을 때 강 장자가 찾아와서는 다음 황위 얘기를 꺼낸 적도 있었는데 너무나 어이없고 위험한 일인이자 복지겸은 강 장자의 말을 듣는 것을 거부했다. 다른 장수들에 비해 높으신 분이기는 했지만 내군의 견제와 감시도 많이 받는데다 궁예가 무리한 요구[5]를 계속 하고 철원에 있다 보니 궁예의 살생쇼를 자주 보게 되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습을 보인다. 차라리 아무런 생각없이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게 더 좋았다고 한탄할 정도.(제84화) 이후 궁예가 국호를 마진에서 태봉으로 변경하면서 복지겸은 마군장군으로 좌천당했지만 복지겸은 병부령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오히려 좌천당한 것을 좋아했다.[6][7]
왕건의 역성혁명 때(제116화~제120화)에는 4기장(복지겸, 신숭겸, 홍유, 배현경) 중에서도 리더 역할을 맡아 동지들에게 임무를 내려주고 병부령 원극유와 내군 출신인 염상을 전격 포섭해 혁명군이 내군을 압도하는 전력을 확보하는데 일조했다. 이후에는 내군장군을 역임[8]하면서 환선길, 임춘길 등의 반역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왕건을 항상 곁에서 보필하며 내부를 단속하고 전장의 상황이나 주어진 정보들을 취합해서 왕건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역사서에 전공 관련 기록이 없는 것을 반영해서인지 큰 전투가 아닌 이상 어지간해서는 야전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나마 고려 최악의 패전이었던 공산 전투에서는 활약을 했는데 당시 왕건마저도 방심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복지겸만이 후백제의 계략을 계속 의심하였고 여러 고려 장수들이 전사하거나 시간을 벌기 위해 죽음을 자처하는 상황에서 복지겸은 박수문, 박수경 형제와 함께 왕건을 보위하였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9] 신숭겸 등이 후백제군의 눈을 돌리는 사이 왕건 일행은 후백제 군복을 입고 몰래 탈출하는데 이들은 전쟁터에서 빠져나와 군복을 벗던 중 탈영병을 잡던 후백제군과 마주치고 만다.
이 때 복지겸은 후백제 장수에게 변명을 하는 척하며 다가가 후백제 장수를 칼로 찔러 죽인다. 왕건의 경호실장격인 내군장군이라서인지는 몰라도 전장에서 왕건 다음으로 갑옷이 화려한데 잘 보면 제1화에서 철원성주가 입던 갑옷의 재활용이다.[10]
배신을 꺼리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진중한 성품의 소유자인만큼 궁예의 장수들 중 거의 유일하게 양길의 딸로서 궁예에게 시집왔던 미향과의 의리를 끝까지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환선길, 이흔암 등 다른 장수들이 미향을 내칠 것을 강하게 진언해도 유일하게 복지겸은 미향을 지켜준다는 약속을 이행할 것을 주장했으며 궁예가 새로 황후를 들일 때 유일하게 미향을 찾아가서 위로했고 미향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때 속으로 미향의 명복을 빌기도 했다. 그러나 왕건의 역성혁명 이후 궁예의 셋째 자식인 순백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순백이 아기임에도 살려 뒀다가는 후환이 될테니 죽이라고 간언하는 냉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뭔가 캐릭터 붕괴인가 싶지만 미향의 경우와 순백의 경우는 다르기 때문에 복지겸이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복지겸이 양길을 버리고 궁예 휘하에 들어온 것은 양길에게 가기엔 늦었고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는데다 미향은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는 여인이었기에 살아있어도 문제가 될 여지가 별로 없었으나 순백은 폐주 궁예의 친아들인만큼 반란 세력의 상징이자 주도자가 될 가능성도 높은데다 복지겸은 고려 역성혁명의 주동자 중 1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도 왕건이 죽이지 않는 선택을 하자 미소를 짓는걸 보면 말은 죽이라고 했어도 본인도 꺼림칙했던 듯하다. 복지겸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 다른 3명한테 걸렸으면 얄짤 없었을 듯.[11]
유튜브 스트리밍에서는 "의리를 중요시한다."라는 설정과는 달리, 결과적으로 양길, 궁예, 왕건 순으로 군주를 갈아타는 행보를 보였고, 조물성 전투에서 역병에 걸리고도 살아남고, 공산 전투에서도 신숭겸 등 희생을 택한 다른 장수들과 달리 살아나가거나 등 자신에게 닥친 여러 위험과 고비를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12] 배신과 갈아타기, 생존의 화신으로 취급하며 생존왕 복지겸, 배신겸, 박쥐겸으로 부른다.
홍유, 배현경, 신숭겸 같은 다른 동료 장수들이 거칠고 과격한 이미지라면 복지겸은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지장의 모습으로 나오는데 처음으로 섬겼던 양길도 문무를 겸비한 복지겸을 매우 아꼈던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싸움에서도 직접 싸운 상대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13] 홍유, 배현경 급은 될 것으로 보이는데[14] 환선길과 함께 양길군의 양대 맹장이라고 평가받았던 이흔암[15]이 왕건 암살을 목적으로 철원으로 왔을 때 장수장과 함께 2명이서 달려들기는 했으나 밀리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일리천 전투까지 참전한 이후 최종화(제200화)까지 살아남아 왕건의 얼굴과 함께 맨 마지막 장면에 찍히는 영광을 누리며 후삼국 통일을 지켜본다.[16][17]
[1] 1992년 KBS 드라마 <삼국기>에서는 의자왕 역, 2006년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보장왕 역. <삼국기>에서 김유신 역으로 같이 출연했던 배우는 견훤 역의 서인석, <대조영>에서 대조영 역을 맡았던 배우는 왕건 역의 최수종으로 배우개그가 성립했다.[2] 궁예가 독립하기 전에 은부가 복지겸에게 대놓고 양길을 비판했지만 복지겸은 이에 대해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복지겸 역시 양길이 군주가 될 재목이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3] 실제로 양길이 욕심이 좀 앞서긴 했고 의심병 환자라 모든걸 그르치긴 했지만 적어도 장수로써의 능력과 배포만큼은 충분히 갖춘 상태였고 적어도 자신의 세력을 폭정으로 다스리거나 사람을 함부로 죽여대지는 않았으니 만약 황제가 됐다면 의심병 기질만 빼면 그럭저럭 나라를 운영해 갔을 가능성도 있다.[4] 처음 궁예가 나라를 세우고 신료들의 벼슬을 정할 때 병부령은 내군장군이던 은부가 겸하고 있었지만 순행 이후에 병부령 직을 복지겸에게 주었다.[5] 후백제 및 신라와 전쟁 중이고 천도 및 잇따른 가뭄 등으로 인해 국고가 바닥나 세금걷기도 힘든 상황에서 궁예는 북벌을 준비한다며 부역과 세금을 배로 늘려버리는데 계획이 진전이 안되면 책임자를 엄벌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6] 사실 궁예가 미친 이후 궐 내 요직에 앉았던 인물 중 다수는 좌천 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이제야 한 숨 돌렸다며 좋아했다. 업무 자체의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광기에 사로잡힌 궁예가 계속 미친 짓거리를 벌여댔고 이에 질린 것이 가장 큰 이유. 왕건조차 전선에 나와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7] 궁예가 완전히 미쳐 돌아가면서 신하들을 학대하거나 죽여대니, 궁예를 직접 알현해야 하는 병부령에 있는 게 되려 살얼음판이었고, 장군이 되면서 더 이상 궁예를 알현하지 않아도 되는 임지로 가게 되니 복지겸에게는 이게 되려 더 좋은 것이다. 게다가 궁예의 관제 개편으로 병부의 권한이 약화되어 병부가 갖던 군령권이 순군부로 이관되어 병부는 군정권만 갖게 되고 위상이 떨어져 버렸다. 정권의 실세도 아닌 패서계 호족의 하나인 원극유가 병부령을 맡게 되고, 원극유 본인이 스스로 '문서나 만지작거리는 늙은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말 다한 셈. 병부령보다 마군장군이 직위는 낮아도 실제 동원 가능한 병력이 있으니 실권은 있는 셈이다. 극중의 복지겸은 이 군권을 이용해 궁예를 몰아내는 역성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8] 처음 장군들이 새로운 왕조의 안정을 위해 내군의 역할은 꼭 필요하며, 그 역할로 복지겸이 적절하다고 입을 모아 추천하자 복지겸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다. 비록 내군장군은 지위도 높고 권한도 막강한 요직이지만, 일종의 필요악으로서 때론 비윤리적인 행동도 감수해야 하는 자리라 내심 맡고 싶지 않았던 모양으로 이전 정권인 궁예 시절 내군장군이 바로 은부였으니 그가 궁예 정권을 위해 했던 더러운 일들을 모를 리 없어 더더욱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복지겸 스스로도 자신 말고 내군장군 감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장군들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고 내군장군 자리를 받아들였다.[9] 이때 신숭겸이 계책을 입안하고 죽음을 자처하자 자신들만 살고 그들은 죽게 두란 말이냐며 망설이지만 신숭겸의 설득에 결국 수긍한다.[10] 일명 엑설런트 갑옷. 복지겸과 철원성주 외에 명주성주 김순식을 비롯해 똑같은 갑옷을 입는 인물이 몇 명이 더 있는데 이에 맞는 투구는 철원성주가 입을 때만 갖춰져 있었다. 표정 연기를 가린다는 이유로 투구 착용을 제대로 시키지 않는 근래 사극과 달리 주조연 할거 없이 투구 착용도가 높았던 태조 왕건인데 군주를 제외하고 투구를 착용하지 않는 몇 안되는 무장이 복지겸이다.[11] 만약 복지겸이 순백을 살리라 주청했다면 그를 살린 사람은 왕건이 아니라 복지겸이 된다. 어찌됐든 연좌제가 너무나도 당연시되는 이 시대에, 신하인 복지겸은 속마음은 어떻든 일단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게 왕조 국가의 정치로는 맞다. 그래서 건의를 받아들여 죽인다면 어린 아기를 죽인 잔인한 처사는 복지겸의 책임이 되고 살린다면 그건 주군인 왕건(태조)의 덕이니 막 혁명으로 창건한 나라에서 민심을 수습하려면 이렇게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한다. 다만 작가가 작중의 고창 전투 당시에 신검의 패륜 행위가 전통 동아시아 왕조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이런 것까지 생각해서 연출한 장면은 아닐 것이다.[12] 궁예 정권 하에서 역모 사건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받자마자 발빠르게 부인하고 강 장자가 먼저 찾아왔음을 불어버려 문책을 피하거나, 왕건 정권 하에서 정윤 책봉 문제로 조정이 시끄럽자 대부분의 신하들이 왕건한테 불려나가 갈굼을 당하는 동안 공신팀에서 섞여서 왕건 앞에 나갔을 때"저는 정윤 책봉 관련 상소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눈치 빠르게 말해 빠져나가서 같이 불려갔던 배현경과 홍유가 왕건에게 개털리는 동안 안 혼나고 열외상태로 대기한다던가, 공산전투 탈출 중 백제 군사들에게 들키자 아무렇지도 않게 군졸처럼 연기하며 굽실거리다 다짜고짜 칼로 베는 등[13] 내군장군이라는 역할은 지금의 대통령경호처장 정도의 위치로 전쟁터 일선에서 싸울 일이 별로 없다.[14] 애초에 사료에서도 이 둘과 세트로 나온다.[15] 이흔암을 맡은 배우가 센 이미지가 아닌 코믹 이미지의 최주봉이 맡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드라마상에서의 이흔암은 박술희, 애술, 배현경, 홍유 등과 비슷하게 쳐줄 수 있는 인물이다.[16] 살짝 나오는 정도로 복지겸 외에는 홍유도 같이 찍혔다.[17] 드라마에서 고려 건국 이후의 복지겸은 실제 강공훤의 역할을 대신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