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18 17:24:41

염상(고려)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 삼한벽상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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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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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廉湘/廉相
생몰연도 미상

고려의 무장이자 개국공신

2. 생애

태봉의 마군장군으로 4명의 마군장(신숭겸, 홍유, 배현경, 복지겸)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로 국호가 회복된 후 개국 2등 공신에 봉해졌다. 1등 공신들 중 복지겸이 야전 사령관으로 활동한 다른 3명과 맡은 역할이 달랐던 것처럼 염상 또한 같은 2등 공신으로 일선 지휘관으로 활동한 김락이나 견권 등과는 장기가 달랐다.

918년 9월 복지겸이 청주 출신 순군리 임춘길(林春吉)과 동향의 배총규(裵悤規), 계천(季川: 전남 장흥) 사람 강길(康吉), 아차귀(阿次貴)와 매곡(昧谷: 충북 회인) 사람 경종(景琮)의 역모 사실을 밝혀냈을 때 왕건의 측근 중에서도 청주 출신이라 그 곳 사정에 밝았던 현율(玄律)은 경종이 매곡성주 공직(龔直)의 매제임을 들어 죽이는 대신 회유할 것을 권했다. 매곡성과 그곳을 다스리는 공직의 중요성을 모를리 없었던 왕건은 현율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들을 용서하려 했는데 염상이 나서 강하게 반대해 도망친 배총규를 제외한 일당 전원을 처형했으며 현율의 예상대로 공직은 후백제에 투항해 오랫동안 고려의 발목을 잡게된다. 이후 이흔암의 역모도 밝혀내어 그를 숙청하는데 일조했으며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고려사>에 등장하는데 내용은 모두 축성에 관한 기록이다.
928년 2월에 대상 염상과 경(卿) 능강 등을 보내어 안북부(安北府)에 성을 쌓고, 원윤 박권을 진두(鎭頭)로 삼아 개정(開定) 군사 7백 명을 거느리고 이를 지키게 하였다.
929년 (태조 12년), 봄 3월에 대상 염상을 보내어 안정진(평남 순안)에 성을 쌓고 원윤 언수고에게 이를 지키도록 하며, 또 영청현(평남 영유)에 성을 쌓았다.
930년 (태조 13년) 8월, 대상 염상을 보내어 마산(馬山)에 성을 쌓고 안수진(安水鎭)이라 이름하였으며, 정조 흔행을 진두로 삼았다.
934년 (태조 17년) 겨울, 이해에 대상 염상을 보내어 통해진(평남 평원군 영유)에 성을 쌓고, 원보 재훤을 진두로 삼았다.

고려 건국기부터 시작해 고려에서 이름 꽤나 날린 무장들은 거의 모두 참전한 일리천 전투까지 참전 기록은 전혀 없는데 종합하면 전투 지휘보다는 축성과 진지 구축에 조예가 깊었던 공병 사령관으로 추측된다.

943년(태조 26년) 5월 왕유, 박수문과 함께 임종 직전 왕건의 유언을 받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3. 대중매체

  • 2000년 KBS1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심우창[1]이 연기했다. 궁예의 내군장군인 은부의 측근으로 처음 등장했다. 극 초반부에는 은부와 함께 왕건을 견제하는 한편 아무런 거리낌없이 미향의 목숨을 거두려 하는 등 궁예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으나, 철원으로 천도한 이후에 궁예의 폭정에 점차 실망하고 회의를 느끼던 차에[2] 석총 처형 사건 이후 은부에 의해 내군에서 방출되어 군부로 자리를 옮겼으며[3] 그 뒤에는 배현경의 아이디어로 왕건을 옹립하려는 4마군장들의 회유에 넘어가 왕건의 쿠데타에 가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쿠데타에서 그의 임무는 내군 교란으로 내군에서 근무했던 이력 덕분에 염상이 대놓고 내군부장 장일을 찾아갔음에도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고 염상의 설득으로 쿠데타에 합류한 장일이 내군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면서 쿠데타를 마무리짓는 데 성공하여 왕건 정권이 성립될 수 있었다. 이후 조연급 무장으로서 틈틈이 최후반까지 등장하며 신숭겸 사후의 4기 오프닝에서는 박술희, 홍유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본래 박술희가 역사상으로는 궁예의 호위 무장 출신으로 알려지지 않은 경로로 어느 순간 왕건의 측근이 되었기에 <태조 왕건>에서 묘사한 염상과 장일의 행적은 역사상 박술희의 행적과 상당히 유사하다.
  • 2002년 KBS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는 배우 백인철[4]이 연기했는데, 혜종 사후의 행적을 알 수 없어서 그런지 비중은 애매하다. 박술희와 세트로라면 나름대로 중요한 역이지만, 혼자 떼 놓고 보면 병풍보다 살짝 나은 수준. 순군부령(지금의 합동참모의장)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왕규 일파에 의해 내의성령으로 직책이 바뀌고 순군부령은 왕규 일파인 김긍률[5]에게 돌아가는데, 염상은 "평생 장수로 늙은 내가 내의성은 무슨...?!" 이라는 식으로 사실상 좌천으로 받아들인다. 이후 박술희와 함께 태조의 유지를 받들었으면서도 왕규와는 갈등을 빚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왕규와 박술희가 함께 혜종을 보좌하는 것이 태조의 뜻이었던 것처럼 묘사되지만 왕규는 군부 조직에 지나치게 무지했을뿐더러 은연중에 경시하는 태도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급기야 왕규는 박술희를 유배보내려는 생각까지 하는데, 측근들조차 "박술희를 유배 보내는 방법으로 병권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라고 간언했지만 "잠시 유배 보내는 걸로 병권을 빌려 왕식렴을 제거한 후에 다시 불러서 더 잘 대우해 주면 되지 않느냐"라는. 박술희나 염상 등이 들으면 분개할 만한 말을 내뱉는다. 혜종도 반대하나, 왕규만 무조건 지지하지 근시안적인 장화왕후 역시 박술희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며 나중에 다시 데려오면 그만이라고 내쳐 버린다. 결국 박술희는 유배를 가는 대신 들고 일어나라는 염상의 권고를 물리치고 별 저항 없이 순순히 유배길에 오르는데, 문제는 왕식렴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던 인물이 바로 박술희였다는 것. 이윽고 박술희가 없어진 걸 기회로 여긴 왕식렴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에 맞서지 않고 오히려 동참하는 멍청한 짓을 하며 왕규 일파를 몰아낸다[6]. 하지만 이내 토사구팽당하는데, 이 때에도 "태조를 보좌하며 삼한 통일 전쟁에서 활약했을 때가 좋았다" 라고 한탄하며 순순히 낙향하는 것으로 퇴장한다. 정치력이 나름대로 있었다면 왕규와 박술희의 사이를 중재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하다못해 토사구팽당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나 정치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 최대의 한계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극중에서 박술희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왕규 일파의 경우는 왕식렴 일파가 정리되면 박술희를 불러들여서 우대할 생각이긴 했기에[7] 박술희를 죽게 만들고, 박술희의 세력마저 말아먹은 왕규 못지않은 트롤러의 역할을 보여주며, 왕규와 더불어 내부의 적 수준이었다. 혜종이 요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것을 반대하며 흥화군을 지지한 것이 박술희였는데, 왕식렴의 편을 들어서 왕규 일파를 모조리 몰락시킨 후에는 큰소리로 "흥화군을 후계자로 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며 떠드는 단순히 정치력 문제를 넘어선 멍청한 짓을 보인다. 당장 박술희가 흥화군의 편을 들거라는 것은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아는 문제였다. 왕식렴이 박술희를 죽인 것도 흥화군을 지지할 것이기에 죽인 것이었다.


[1] 2003년 KBS 드라마 <무인시대>에서는 양숙 역, 2014년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우현보 역. 참고로 타짜에서는 오 장군 역.[2]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과, 그런 참상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궁예왕(전혀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런 것보다는 북벌이 먼저였다)을 보고 점차 궁예에게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궁예가 조회에서 기침한 신하를 때려죽이라고 할 때 처음에는 염상에게 명령을 내렸으나 염상이 머뭇거리자 금대가 대신 그 신하를 죽인다. 바로 "염 부장은 무엇을 하는가? 저 자를 쳐라!"하는 대사의 염 부장이 염상이다.[3] 은부가 말하기를 "내군이란 궁예의 개와도 같이 무조건 충성해야 하는데 염상은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은부는 종간에게 "염상을 군부로 보냈다"고 말하면서 "목숨을 거두려 했으나 그간의 정이 있어 그렇게 처리했다"고 알린다.[4]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환선길 역.[5] 경박한 성격 탓에 왕규에게 점차 배척받아 정종-광종 형제에게 돌아서는데, 따지고 보면 이것도 왕규의 실책에 가깝다. 사람이 영 못 쓸 위인이라는 것은 정종-광종 형제도 잘 알고 있었으나 순군부령이라는 지위를 생각해서 호의적으로 대해 준 것이었기 때문.[6] 돌아가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고 판단한 장교들이 유배를 간 박술희 대신 상담을 요청한 것이 오랫동안 군에 몸을 담고 있었던 염상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염상은 처음에는 우회적으로 말하다가 장교들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이쯤 하면 알아들을 법도 한데..." 하며 직설적으로 명령한다. 이 직후 박술희의 뒤를 이어 병부령이 된 임희가 구금되어, 왕규 일파의 군 세력은 사실상 와해된다.[7] 애초 박술희를 귀양 보낸 문제도 왕규 혼자서 병력을 빌려야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벌인 일이지, 왕규의 측근들도 모두 반대했다. 심지어 김견술의 경우는 아예 박술희를 그런 충신이 또 어디있냐며 박술희를 귀양 보내는 것을 반대하며 박술희를 향한 존경심을 대놓고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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