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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7c14><colcolor=white> 시청 등급 | 15세 이상 시청가 | |
방송 시간 | 토 · 일 / 21:45 | |
방송 기간 | 2002년 3월 2일 ~ 2003년 1월 26일 | |
방송 횟수 | 97부작 | |
장르 | 대하사극 | |
제작 | KBS 자체제작 | |
채널 | KBS 1TV | |
제작진 | <colbgcolor=#ff7c14><colcolor=white> 연출 | 전성홍, 이원익, 김형일 |
극본 | 이환경 | |
음악 | 김동성 | |
출연 | 김상중, 최재성, 전혜진, 홍리나 등 | |
해설 | 임종국 | |
링크 |
[clearfix]
1. 개요
2002년 3월 2일부터 2003년 1월 26일까지 방영한 20번째 KBS 대하드라마. 'KBS 고려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총 97부작으로 KBS 1TV에서 방송되었다. 주연은 광종 역을 맡은 김상중이다. 내레이션은 성우 임종국.[1]
2. 공개 정보
시대적 배경은 고려 혜종대부터 광종대인 943년~975년[2]이며, 공간적 배경은 고려의 수도 개경과 제 2의 수도였던 서경 및 주변 지역(황주군, 평주(평산군) 등)과 그 외의 지역들이다. 일본에도 수출되어 "광종대왕 - 제국의 아침(光宗大王 〜帝国の朝〜)"이란 이름으로 방영되었다. #2.1. 오프닝
'제국의 아침'의 오프닝.[3][4] |
3. 등장인물
전작인 태조 왕건과 후속작인 무인시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작가가 연출을 했던 야인시대 등에 출연한 인물들이 많이 있다. 여담으로, 본 문서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한국어 위키백과 참고.자세한 내용은 제국의 아침/등장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
4. 줄거리
드라마 태조 왕건의 후속작. 고려 태조 이후의 혜종 - 정종 - 광종기의 왕조 초반의 혼란과 그 수습상을 그리고 있다.크게 태조 왕건의 사망까지를 프롤로그(943년, 1화 ~ 3화), 혜종의 치세(943년 ~ 945년, 3화 ~ 30화)를 1기, 정종의 치세(945년 ~ 949년, 31화 ~ 49화)를 2기, 마지막으로 광종의 치세(949년 ~ 975년, 50화 ~ 94화)를 3기로 구분한다.
전개상 전작 태조 왕건에서 바로 이어지는 내용이며,[5] 이후 한참 지나서 KBS에서 방영한 천추태후가 이 드라마의 종결 시점에서 시대가 바로 이어진다.[6]
극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청운의 꿈을 품고 왕위에 오른 '광종(光宗)'이 차츰 정치판에 찌들어가서 '광종(狂宗)'으로 변해가다 막판에 꿈에 나타난 아버지와 자신이 숙청한 호족들에게서 호통을 듣고 갱생하는 이야기. 특히, 고려의 기틀을 다지고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왕족과 호족의 대숙청을 강행하던 냉정한 전제군주 광종의 모습과 그 뒷면에 숨겨져 있던 광종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5. 시청률
5.1. 조기종영
원래 100회로 예정되었던 작품이지만, 이환경 작가가 시청률을 이유로 조기종영을 요청하여 94회로 줄어 들었다.#[7] 그리고 이환경 작가가 제국의 아침을 빨리 끝내고 제대로 전념한 작품이 바로 야인시대.그 때문에 남은 후반부 에피에서는 급전개를 보인다. 광종의 호족 숙청 정책 자체를 평주 호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국문을 하는 장면 하나로 거의 때워버렸으며, 호족들을 숙청한 뒤의 이야기는 통째로 생략해버렸다. 특히 94화 마지막회 중반까지 공포정치를 보여주던 광종이 갑자기 악몽을 꾼 후 반성하고 남은 치세에 선정을 약속하는 부분은 압권. 그나마 배우의 연기력이 뛰어났던 덕에 광종이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광종의 공포정치는 상당히 복잡한 배경을 지니고 있고 그 후폭풍이 광종 사후인 경종 재위기간에도 만만치 않았음을 고려하면 이 공포 정치를 단순한 광증으로 그려내고 부실한 급전개로 마무리한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 후폭풍을 아주 안 그리려고 한 것은 아닌데, 대표적이 노비안검법과 관련된 대목[8]이 대표적이며, 공포 정치를 시행하면서도 죄 없는 자들을 숙청하는 것은 알지만 다 나라를 위해서라면서 괴로워하며 독백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 외에 경종때 잠깐 시행되는 복수법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언급되는데 이 또한 후폭풍들 중 하나였다.
그 외에도 잔혹한 장면이 많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참수형, 능지형, 거열형은 기본. 황제의 국문 신에서는 시행장면이 등장하지는 않으나, 코를 베는 의형[9]과 발 뒷꿈치를 베는 월형, 궁형 등의 형벌을 가하라는 지시가 직접 등장했으며, 혜종의 자손들이 숙청당하는 장면에서는 혜종의 어린 아들이 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하드코어한 장면이 여과없이 방영되었다. 마지막화에서는 호족들을 철퇴로 처형하는 장면을 상당히 강도높게 집어넣었다. 문자 그대로 선혈이 낭자하게 때려죽인다. 이런 잔혹하고 과격한 장면들은 무인시대까지 이어졌다.
평균 시청률은 20% 초반대로, 태조 왕건의 버프에 역사스페셜까지 동원 되는 광고 효과로 첫 방송 시청률은 30% 초반선[10]에서 시작했으나, 결국 그게 최고 시청률로 끝났다. 이후 혜종 시대를 다루면서 지루한 덕택에 10% 초반선까지 뚝 떨어졌다가 정종/광종 갈등 시점에 22.6%까지 다시 올라가기도 했다.
의외로 따지고 보면 직후에 방영된 무인시대와 평균 시청률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거나 되려 높았다.[11] 그러나 꾸준한 시청자, 특히 매니아층이 확보되지 않은 사정으로 종영 이후 제국의 아침은 완전히 묻히고 말았다. 궁예, 견훤 네타로 십수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대중적으로 유명한 태조 왕건, 사극 매니아들에겐 비운의 수작으로 재평가받는 배우들의 무인시대,제국의 아침을 조기종영 시킨 후 전념한 메인 작가의 2부 주역 교체로 시청률이 추락하긴 하지만 심영 사건,4달러로 그 장면들이 네타화 된 기억에 남는 야인시대와 달리, 그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아닌 제국의 아침은 그대로 묻혀버린 것이다. 물론 2002 한일 월드컵이나 제16대 대통령 선거 같은 악재도 많았지만.[12]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2002년 KBS 연기대상에서 출연 배우들 중에 상을 받은 건 최우수상을 받은 메인 주인공 광종 역의 김상중뿐이었다.[13]
6. 탐구
복식면에서는 태조 왕건의 성공에 따른 상당한 예산과 소품들. 그리고 광종 시기에 구비된 관복적 특징, 정치 사극이란 특성으로 꽤 고증에 알맞은 수준이었으나, 드라마와 함께 거의 잊혀진 상태이다. 관련 기사 사실, 고려시대 왕이 후기 신라에서 이어지는 당나라와 오대십국시대의 제왕 복식(특히 복두)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기할 만한 드라마다.[14]일부에서는 혼재되어 나타나는데, 극중에서 황제가 바뀔 때마다 의상에 변형을 준 듯 하다. 대표적인 예가 왕실 여성들의 가채로, 혜종 시대에는 조선시대의 올림머리(!)가, 정종 시대에는 당나라 풍이, 광종 시대에는 고계형 머리가 등장한다. 또한 당나라 혹은 여말선초 식의 사모에서 신라형 복두를 거쳐서, 고려식 각진 사모관대로 이어진다. 사실 임금의 복두도 어느 정도 논란은 있으나, (왕건의 통천관 논란처럼) 일단은 이 이후 무인시대까지 당나라형 복두가 조선의 익선관을 대신해 사용되었다. 갑옷의 경우, 대부분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사용하던 걸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극중 여성들의 의상은 통일신라 때 많이 유행했던 치마를 가슴 선 위까지 끌어당겨서 입은 당나라식 제흉유군(齊胸襦裙)과 형태가 많이 유사한데, 아직 극 중 배경이 통일신라가 멸망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는 사실을 반영해서 당나라식 의상을 입고 나온 걸로 설정한 듯 하다. 이는 태조 왕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극 중 전개가 거의 후반부쯤 갔을 때부터는 치마를 저고리 위에 입어서 허리 선에 맞춘, 중국 송나라식 스타일의 제요유군(齊腰襦裙)을 입고 나오는 걸로 설정되었다.[15]
장소 역시 전작을 찍었던 문경새재(조령) 촬영장뿐만 아니라, 창경궁[16], 북한 개성시와 평양시의 을밀대, 평양성, 백두산 천지 로케이션 촬영이 주목되는데, 역시 전작인 태조 왕건의 성공과 더불어서 당시 남북관계가 좋아진 덕분에 전폭적인 후원과 촬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17] 다만 백두산 천지에서 촬영한 장면은 멋지긴 하지만, 관련 문서에도 나오다시피 1, 2화의 배경인 943년 당시는 아직 천지가 형성되기 전이다. 여기에 1회에서 왕소(광종)이 형인 왕요(정종)에게 백두산 등반을 하면서 가이드를 해주는데, 두 인물의 대화가 매우 환빠스럽다.
역사적 사실 측면에서는 영 좋지 못한데, 몇 줄 안 되지만 엄연히 있는 사료를 무시하고 창작해 넣은 부분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극 후반부를 장식하는 평주 지방 세력가들의 반란은 사료와 완전히 다른데, 고려사에는 박수경의 아들 삼형제가 참소로 옥에 갇혔고 이로 인해 박수경이 화병으로 죽었다고 되어 있고 효은태자는 성품이 포악하고 악소패들과 어울리며 반역을 꾀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극중에서는 막판 박수경의 아들들이 대놓고 반역을 도모하며, 효은태자는 박수경의 아들들이 밀어줄땐 우쭐했으나 유약하기 그지없는 인물로 거의 어거지로 추대된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참소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으니 반역죄가 씌워진 것으로 각색할 수는 있으나 광종을 직접 암살하려 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전혀 없고[18], 오히려 반란의 주도자로 묘사되었어야 할 효은태자를 심약한 인물로 그린 것은 각색이라는 말로는 변호가 안 된다.
또 다른 예시로는 극 초반에 다루어진 태조의 승하가 있다. 극중에서는 태조의 사후에 왕위 쟁탈전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는지 왕건이 "인생은 뜬구름 같은 것"이라는 회한에 찬 말을 남기고 승사했다고 소개했는데, 고려사 원문을 보면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줄 안 신하들이 통곡하자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신하들이 폐하께서 붕어하시려 하니 슬픔을 이길 수 없다고 답하고, 그러자 웃으면서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것(=사람이 한 번 왔으면 가는 게 순리)인데 뭘 그러느냐고 답한 것이다. 그러니까 왕위 계승 분쟁이 일어날 줄 미처 몰랐든 혜종이 알아서 잘 수습할 거라고 믿었든간에, 태조 자신은 회한이 아니라 아주 편안하게 승하한 것이다.
당대의 언어 반영면에서도 영 좋지 못한데, 위에서 언급된 환빠적인 대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후삼국시대'나 '민족', '문치주의', '고려 왕조'라는 당시에는 도저히 쓰였을 법하지 않은 말들이 수시로 남발되며, 극중 인물들이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뒤에나 받는 묘호나 시호로 부르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극중 시점에서 살아있는 후주의 세종을 '세종'으로, 의화왕후와 문성왕후를 "의화황후", "문성황후"라고 부른다[19]. 그 외에도 황주의 호족 황보씨를 '태자 주의 외조부'라고 하는데, 태자 주(경종)의 외조부는 태조 왕건이다. 또 원 간섭기 이후에나 나오는 수랏간이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한자어라 사이시옷이 들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에 '수라간'이 맞으며, 고려 초 왕실의 음식을 만드는 부서는 어주(御廚)라고 불렀다.
7.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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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태조 왕건의 뒤를 이어 방영되었던 지라 많은 기대를 받았고, 첫 방송에서 무려 31%라는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메인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시청률은 점점 바닥을 기게 된 작품이다.
그 이유를 보면, 우선 왕건, 박술희 등 태조 왕건에 등장했던 모든 배역들이 전부 교체[20]되어 위화감을 준 것이 첫번째며, 태조 왕건의 인기 요인 중 하나인 잦은 전쟁 장면도 아예 나오지도 않았고[21], 지루한 정치극으로만 흘러가서 시청층 대부분이 떨어져 나간 점이 두번째이다. 여기에 전작 태조 왕건에서 왕건 및 고려 측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삼한 통일을 위해 일치단결된 식으로 좋게좋게 묘사[22]하다 보니, 제국의 아침에서 많은 고려의 장성한 왕자들과 왕식렴,호족들이 피를 튀기는 권력 투쟁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심히 괴리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많았다.[23]
다만, 초반에 혜종 역을 맡았던 노영국의 '나약한 왕' 연기가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다.[24] 하지만 혜종 시대가 시청률이 가장 낮았던 게 함정이다. 사족으로, 혜종 역으로 나온 노영국은 전작이었던 태조 왕건에서 왕건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된 바 있었는데, 탁월한 연기력을 가졌으나 당시 많았던 나이 때문에 캐스팅 목록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전쟁 신이 적은 정치사극이라는 점이, 이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을 모두 설명해주기는 힘들다. 당장 본작의 대본을 쓴 이환경의 출세작이었고 같은 KBS에서 방영했던 용의 눈물부터가 위화도 회군부터 무인정사 사이에 전투 신 한 번 안 나오던 전형적인 정치 사극이었기 때문이다. 용의 눈물 전반부가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라는 대사건, 세자 책봉과 정치적 이상을 둘러싼 신덕왕후 강씨와 정도전 연합과 태종의 첨예한 대립과 그 대립을 보조하는 원경왕후 민씨, 하륜 등의 치열한 권모술수, 어둑어둑한 촛불 조명 연출 등으로 전투 신 한 번 없이 극적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던 데 비해 본작의 전반부를 이끄는 왕규와 정종+광종 간의 대립, 중반부를 이끄는 왕식렴과 광종 간의 대립은 그 긴장감의 밀도가 확연히 떨어졌던 것이 문제였다. 내용 면에서도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과 태종의 대립은 신권주의와 왕권주의라는 사상적 대립으로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이라는 것을 찾기 힘들었던 반면,[25] 이쪽은 그냥 기득권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지방 세력가들과 개혁 세력간의 갈등으로 작품을 대충 봐도 작가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싫어하는지가 대번에 드러나는 수준이다.
또한, 전작인 태조 왕건보다도 환빠적인 성향이나 시대에 맞지 않은 역사 의식이 묘사되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26] 전작은 그래도 지나가는 식이어서 크게 문제 되지 않았지만,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규가 숨겨져 내려온 진정한 역사를 배우고 신고려제국을 세운다는 등, 유사역사학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상술한 삼국기의 장면을 우려먹은 안시성 전투 당시 당나라를 패퇴 시킨 연개소문이, 당태종 이세민을 쫓아 장안까지 쳐들어가고 절까지 시킨 장면. 상식적으로 공격을 받던 수비군이 패잔병 소탕도 아니고 공격군을 쫓아 수도까지 쳐들어가는 게 가능한가는 둘째 치고[27], 심지어 그걸 함락 시킨 뒤 당 황제를 일개 실권자인 연개소문에게 절까지 하게 만드는 장면은 아무리 왕규의 과장과 국뽕을 위해서라지만 무리수 그 자체로 꼽힌다.
8. 기타
- 제목은 제목이 같거나 비슷한 작품의 유명한 사례로 시바 료타로의 인기 대하소설 '료마가 간다'의 한국 번안명인 제국의 아침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제국은 일본 제국이다. 그래서 방영 당시에는 말이 좀 있었는데, 방영 이후에는 오히려 드라마가 더 유명해져서 이후 판본부터 소설은 원제인 '료마가 간다' 로 제목을 바꿔 달고 출간되었다.
- 제국의 아침이 전작 태조 왕건의 후속작이라는 이유인지 태조 왕건의 배경음도 그대로 따온 것이 많다. 심지어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에서 궁예가 관심법을 쓸때 나온 일명 "기침 브금"마저 이 드라마에서 쓰였다.
- 용의 눈물에서 고려를 멸망시켰던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으로 나오던 김무생 배우와 김흥기 배우는 여기서는 정적으로 나와 항상 대립하였다. 그리고 차례로 두 배우가 타계하게 되면서 이 작품이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9. 유튜브 스트리밍
자세한 내용은 제국의 아침/유튜브 스트리밍 문서 참고하십시오.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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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e5e5e5>태조 왕건 2000~2002 후삼국 ~ 태조 AD 870~936 | 제국의 아침 2002~2003 혜종 ~ 광종 AD 943~975 | 무인시대 2003~2004 의종 ~ 고종 AD 1170~1219 | |
<rowcolor=#000,#e5e5e5>천추태후 2009 경종 ~ 현종 AD 975~1031 | 고려 거란 전쟁 2023~2024 목종 ~ 현종 AD 1009~1020 | }}}}}}}}} |
[1] 임종국이 제국의 아침을 끝으로 더 이상 내레이션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임종국의 내레이션 유작이기도 하다.[2] 초반 2화는 태조 왕건의 최후를 다뤘지만, 이는 혜종의 즉위와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후술하지만 조기 종영으로 인해서 태자 책봉식 이후의 일은 마지막의 나레이션으로 대체하였다.[3] 참고로 저 오프닝의 눈 덮인 백두산 천지는 북한 쪽에서 찍은 영상이며, 제1화에서는 광종 역의 김상중과 정종 역의 최재성 사냥 복장 차림으로 직접 눈 덮인 천지 주변을 걷는 장면까지 촬영해서 본편에 나온다. 2000 남북정상회담의 여파로 남북관계가 훈풍 무드일 때라 가능했던 것이다.[4] 여담으로 오프닝에 전작 태조 왕건의 씬을 재탕한 것들이 적지 않은데, 대표적으로 광종 역 김상중이 나타날 때 배경에서 위풍당당하게 어딘가로 들어가고 있는 인물은 다름아닌 무진주 첫 입성 당시의 견훤이다.[5] 1,2회부터 대놓고 전작 태조 왕건에서의 최수종의 왕건, 김영철의 궁예, 서인석의 견훤 등이 나레이션이 나올 때 화면에 비치거나 왕건이 회상을 할 때 나오며, 그가 승하할 때는 태조 왕건의 테마곡이 나온다. 배우들만 일부 교체됐을 뿐 방송사와 방영 시간, 배경 시대와 작가가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에 전작 태조 왕건과 이 드라마의 관계는 이를테면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같은 이환경 작가 작품인 야인시대 1부와 2부의 관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난세중의 난세인 후삼국시대와 통일된 고려 초기라는 두 시대의 성격이 매우 다르기에 분위기는 달라졌는데, 이것도 액션 활극 위주의 1부와 정치 사극화된 2부로 나뉘는 야인시대와 비슷하다.[6] 천추태후에서 배우 최철호가 연기했던 경종이 약간 미친 사람처럼 나오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이 드라마 후반부를 한번 보는 것을 권한다. 아마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자신을 시해하려는 반역자들(박수경의 아들들)이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려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광종이 유신성을 잃어 폭주하는 상태에서 반역자들을 죽이려고 들었으며, 측근들을 비롯한 모든 관료들이 다같이 반대하고 나오자 아들을 유폐를 시켜버렸다. 게다가 당시 경종의 나이가 8~9세에 불과했으니, 결국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7] 기사에는 86회로 되어 있으나, 그렇게 이듬해 2003년 1월 94회로 막을 내렸다. 회차에 대해서는 드라마 공홈 참고. 태조 왕건을 20편 연장방영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8] 원래 유튜브에 '노비안건법 - 왕과 노비 입장', '노비안검법 - 신하 입장'버전의 영상이 있었지만, 현재는 다 삭제된 상태다.[9] 이 장면은 직접 나온다. 다만 진짜 코를 베지는 않고 코에 칼을 대는 장면에서 화면이 전환되었다.[10] 최고 시청률은 2회의 33.7%(일본 예고편 출처) 혹은 4월의 31.9%나 35.5%# (중앙일보 기사). 이게 얼마나 높은 거냐면, 2000년대 전반기 드라마 가운데 첫 방송(1~3회)에서 세 번째로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였다.참고로 태조 왕건과 명랑소녀 성공기 다음.[11] 무인시대는 2003년 6월 28일부터 시간대가 주말 오후 9시 45분에서 10시 10분으로 옮겨지면서 시청률이 20%대로 떨어졌고, 급기야 후반기 때 같은 시간 방영된 SBS의 파리의 연인 탓인지 최종회 시청률이 13.6%에 머물렀으며 심지어 한자리수 시청률까지 가기도 했다. 반면에 제국의 아침은 일정 시청률을 유지한 셈이었지만 SBS가 제국의 아침 첫 회부터 유리구두를 통해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를 부활시키면서 2인자에 머물렀다.[12] 대선 시즌이라서 그런지 참언(?)까지 나돌았다. 당시, 한화갑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광주역 광장 유세에서 “한국방송의 사극 <제국의 아침>에서 광종 황제가 탄 백마의 앞다리에 ‘노’라고 쓰여 있었다”며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예고하는 상서로운 징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사진# 실제로 15대 대선에서도 용의 눈물 이방원의 말에 DJ라고 쓰여져 있던게 눈길을 끌었다. # 참고로 말의 낙인은 주로 소유주의 이니셜 등을 뜻하는 것으로 특정 후보와는 관계가 없다. 참고로 현재 유료로 서비스되는 유튜브 KBS Drama Classic 채널에서는 해당 부분을 옅은 모자이크로 처리하였으나, 완전히 다 모자이크된 것은 아니라 약간의 확인은 가능하다.[13] 사실 화제성이 덜 된 것도 있었겠지만 김상중의 광종 연기만큼은 자타가 인정할 정도로 출중했기에 이 수상에 대해 반론은 없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상을 남발하던 시기도 아니었다. 사실 제국의 아침뿐만이 아니라 2002년 KBS 드라마는 겨울연가를 제외하면 히트작이 거의 없었던 침체기였다.[14] 무인시대의 고려 인종 역시 같은 복장을 또 착용하고 있으나, 송나라의 관복이 이미 고려에 전해진 시대이므로 실제와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높다.[15] 이는 후속작인 무인시대와 같은 방송사에서 몇년 후 방영되었던 천추태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로 천추태후의 경우 제국의 아침과 바로 시대적 배경이 이어지기도 한다.[16] 혜종 시대의 궁궐 장면 일부. 여담으로 태조 왕건에서도 신라 시대의 궁궐 장면을 창경궁에서 촬영하였다.[17] 김상중과 최재성 둘 다 백두산에서의 촬영에 대한 소회가 남달랐다고 후기를 남겼는데, 촬영 당시 현지가 무려 영하 40도에 강풍도 상당히 불어서 특수방한복으로도 견디기 어려웠으며, 백두산 정상까지 오르기 위해 촬영팀이 눈밭에 방송장비를 짊어진 채 8km를 걷기도 했다. #[18] 이렇기 때문에 극중의 설정과는 정반대로 조선 초의 민무구 형제들처럼 광종의 친위세력이었다가 억울하게 걸려든 것으로 묘사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19] 극작가인 이환경 자신이 이런 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거나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의심된다. 역시 이환경이 쓴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전의 이씨의 시조인 이치를 멀쩡히 앞에 앉혀 놓고 "앞으로는 이름을 도라 하고 시호를 성절이라 할 것이며..." 라는 말을 왕건의 대사로 넣었기 때문이다. 즉 살아 있는 사람에게 시호를 내리는 장면이 들어간 것이다.[20] 태조 왕건 결말이었던 936년의 일리천 전투와 후삼국 통일 이후, 역사적으로 7년 정도 지났던 때라 주요 배역들이 노년이 되었다. 태조는 아주 팍삭 늙었고, 염정아가 맡았던 장화왕후(태후)는 반효정으로, 전미선이 맡았던 신명순성왕후(왕태후)도 정영숙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왕규, 염상, 박수문, 박수경, 박영규, 최지몽 등 주요 배역들이 다 바뀌었고, 박술희의 탈모가 사라진 건 대단한 일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또 웃기는 점은 태조 왕건에 출연한 배우 일부는 배역이 바뀌어 재출연했다.[21] 이 무렵, 고려는 수 십 년 간 이어져오던 후삼국을 통일이 된 직후였고, 아직 고려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던 시기가 아니라서 전투 장면이 안 나오는 건 당연했다. 여담으로 이 드라마에서 처음 나온 전투 장면은 어이없게도 왕규가 혜종에게 환단고기를 일러주면서 등장한 안시성 전투인데, 그나마 삼국기 영상을 짜깁기해서 연출했다. 그리고 작중에 묘사된 전투 중에 재활용된 것을 빼면 혜종이 죽은 직후에 벌어진 서경과 북쪽 지역(평주, 신천, 황주, 정주) 지역의 연합군과 개경 황도 수비군과의 교전, 정종대에 일어난 서경 역부들의 반란, 광종대에 일어난 평주 지방 세력가들의 반란 정도가 전부다.[22] 그렇다고 갈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고, 정윤 문제나 고창 전투 이후에 왕식렴과 홍유, 배현경과 유금필의 갈등이 나온 적이 있다.[23] 이런 사례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딱 한 사람만 예를 든다면 왕식렴. 태조 왕건에서의 그는 나중에 서경 총관으로서의 면모가 살짝 강조된 것 외에는 왕건의 사촌동생이자 측근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으며, 유금필과 잠시 갈등을 빚은 것을 제외하면 다른 관료들이나 지휘관들과의 사이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처럼 그려진다. 그런데 본작 1화에 등장한 말년의 그가 뱉은 말이 "형님 폐하께서 통일을 너무 급하게 서두르시느라 지방 세력가(호족들)들을 오냐오냐하며 봐주셨더니 이것들이 버릇없이 막 기어오르려고 한다" 라는 것이다.[24] 캐릭터 자체는 유약한 이미지였는데 배우 자신의 목소리가 좋아서 의도했던 이미지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입지가 어쩡쩡하고 몸이 골골대는 왕이 야심만만한 동생들(후의 정종, 광종) 보다 카리스마가 넘쳤다. 게다가 이 시점은 광종이 정종 앞에서 미친 척 하고 파락호 놀이하는 시점이라 심지어는 즉위 뒤에도 친위 세력이 모일 때까지 호족들에게 굽실거렸다. 그런데 혜종은 태자 시절부터 태조 왕건을 따라 종군하며 활약한 무골 기질이 다분했고, 자신을 암살하러 침입한 자객을 맨손으로 역관광했다는 기록도 버젓이 있기에 차라리 강인한 군왕의 모습을 보여주다 갑자기 요절하는 전개와 설정으로 가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는 이 괴리를 일리천 전투에서 생긴 PTSD로 해결해버린다. 힘이 있음에도 정신적인 문제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니 개연성은 어느 정도 갖추었다.[25] 작품의 주인공이 태종인지라 그와 그 측근들인 하륜, 이숙번 등에게 비중이 조금 더 주어지기는 한다. 정도전의 측근들 중 심효생이나 박위 같은 이들은 비중이 거의 없고, 남은이 그나마 2인자 정도로 행세하며 비중을 받기는 하지만 정도전을 추켜세우기에 바쁜, 어딘가 모자란 사람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정도전 자신은 굉장한 위인처럼 그려지지 절대로 악역으로 나오지는 않으며, 작중 묘사로는 1차 왕자의 난에서 패한 것도 측근들이 마음대로 일을 꾸몄기 때문이지 정도전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태종과 그 측근들도 정도전을 제거할 때는 물론 그의 사후까지도 아까운 인물이었다고 회상하며, 태종 같은 경우 즉위 초가 아니라 상왕으로 물러나 앉은 뒤에 세종에게 "삼봉이 꿈꾸었던 요동 정벌을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는데, 미처 이루지 못해서 안타깝다. 전하께서 대신 해 주셔야 한다." 라는 식으로 당부하는 장면까지 있다. 이런 까닭에 이전까지는 간신배 정도로 묘사되던 정도전을 재평가하여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정도전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를 확립한 것이 이 작품이라는 평도 받는다.[26] 태조 왕건에서도 이 부분은 지적 받아 마땅하지만, 이를 토대로 북벌을 추진하던 아지태와 궁예를 점점 악역으로 묘사하는 등 어느 정도 조절을 하였다. 다만 이후에 왕건이 황제가 된 후 우리 옛 조상의 땅인 중원 대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과 최응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 글 중 중원 대륙 운운한 건 빼도박도 못하는 환빠.[27] 사실 여기만 해도 장안까지의 보급선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이며, 수도까지 점령할 병력으로 왜 수비만 하고 있었는지 등의 문제가 수두룩하게 나온다.[28] KBS 홈페이지 내에 '종영 드라마 다시보기' 코너에는 2000년(2022년 이후로는 1990년대 드라마들도 등장)부터 최근까지 종영된 드라마들을 볼 수 있는데, 이중 사극에서는 유일하게 다시보기 서비스가 되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KBS 내의 개별 홈페이지에서 서비스를 해줬지만, 초저화질이어서 보기가 힘들었고, 그나마도 홈페이지가 개편된 지금은 아예 사라졌고, 다시보기도 아예 나오지 않고 있다. 대본 역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일부 올라와 있긴 하지만, 역시 잘 안되는 상황이다. 그러다가 2016년 들어서 곰티비와 네이버 스토어 등에서 회당 300원으로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재개했으며 POOQ에서도 볼 수 있다. 유튜브 KBS Drama Classic 채널에서도 1회는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했으며, 2회부터는 유료로 멤버십에 가입하면 시청할 수 있고 2020년 12월 28일부터는 아래처럼 무료로 스트리밍을 방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