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0 23:53:18

최수종

최수종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KBS_로고.png 연기대상 대상
유동근
(1997)
최수종
(1998)
채시라
(1999)
김영철
(2000)
최수종
(2001)
유동근
(2002)
하지원
(2006)
최수종
(2007)
김혜자
(2008)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유동근
(1998)
최수종
(1999)
차인표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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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수종(崔秀宗)
직업 탤런트, 영화배우
출생 1962년 12월 18일 ([age(1962-12-18)]세)
서울특별시 중구
신체 174cm, 68kg[1], B형
본관 해주 최씨
종교 개신교(장로회)[2]
학력 서울충무초등학교
배재중학교
배명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데뷔 1987년 KBS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배우자 하희라 (1993 결혼 – 현재)
자녀 아들 최민서(1999년생), 딸 최윤서(2000년생)
가족 누나 최지원[3], 매형 조하문, 조카 조태관
소속 웰메이드스타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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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데뷔 전 스토리3. 1990년대4. 2000년대5. 2010년대6. 기타7. 출연작
7.1. 드라마7.2. 광고
8. 시청률의 제왕9. 영화에서의 최수종10. 논란거리
10.1. 사채광고 출연 논란10.2. 학력 위조 논란10.3. 병역관련
11. 수상 내역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2. 데뷔 전 스토리

최수종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고위 공무원으로, 어린시절은 꽤 유복했다고 한다. 부모사이도 화목했으며 아버지가 늘 집안일을 손수 하고 어머니와 자주 포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롤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둔 뒤 파라과이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일이 번창하자 온 가족이 이민을 갔으나 당시 고교생이던 최수종과 누나는 학업때문에 한국에 남았다. 이후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등 평탄하게 살았으나 아버지 사업이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졌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최수종은 한동안 방황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생업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는데 여고생의 과외 알바도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여고생의 아버지가 KBS 예능국 국장이었는데 최수종의 외모를 눈여겨본 국장은 최수종에게 배우를 제의했고 그 데뷔작이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였다.[4]

3. 1990년대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했는데, 드라마 초반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당대 청춘스타 최재성, 손창민이 주역이고 최수종은 조연A 정도였다. 그러나 드라마가 가면 갈수록 그의 배역이 자리를 잡아가다가 후반에 가선 이미연을 두고 손창민과 삼각관계의 모습을 보이면서 아예 드라마의 중심에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최재성, 손창민과 함께 당대의 청춘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거기다 KBS 일일 드라마 '서울뚝배기'의 주연을 맡아 도지원파트너로 대히트를 쳤다. 이로써 소녀들의 우상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냥 그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 연기력까지 보였다.

이후 주 무대를 MBC 쪽으로 전환, 배종옥, 이응경과 함께 연기한 '행복어사전'으로 눈길을 모았고, 또 한 번 배종옥과 공연하면서 음정희까지 곁들인 '도시인'에 출연해 발랄한 청년 스타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최진실과 공연한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질투에서 이런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다.

이렇게 발랄하고 현대적인 청년 역으로 인기를 끌던 와중에 갑자기 노선을 전환해 아들과 딸에 출연했다. 부담스럽고 편파적인 어머니의 애정과 그 와중에 희생 당하는 누나 사이에서 고민하는, 1960-70년대를 살아가는 어느 우유부단한 젊은이 '이귀남'역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이 드라마로 김희애는 인기의 정점을 찍었고, 최수종 역시 자신이 청춘스타 이미지로만 먹고 사는 연기자가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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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아들과 딸》에서 김희애와 함께 한 최수종.

파일럿에서 다시 한 번 발랄한 현대 청년 스타일로 사랑을 받은 후, 몇 개의 드라마에 주연을 맡다가 주무대를 다시 KBS로 옮겼다. 일일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바람은 불어도'에서 재치 있는 막내 아들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그의 주가가 가장 상승했던 시점은 역대 TV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드라마[5]인 '첫사랑'(1996~1997)의 주연으로 나왔을 때이다. 이승연, 박상원, 배용준, 최지우 등과 함께 한 이 드라마에서 최수종은 첫사랑인 이승연과 끝내 맺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훈남 이미지를 극적인 연기로 풀어냈다. 최수종 본인은 아직까지도 이 작품을 자신의 연기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으로 꼽고 있다.

게다가 일년 뒤에는 유동근, 채시라, 염정아 등과 함께 한 시대극 '야망의 전설'에서 혼신의 연기로 생애 첫 연기대상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6]

이렇게 데뷔 때부터 1990년대까지 최수종은 명랑한 청년 스타일과 가족과 시대 환경 속에서 고민하는 남자 스타일을 오가며 히트작을 양산한 연기자였다. 거기다 각종 토크 프로그램에도 출연, 드라마에서 써먹은 명랑 청년 스타일의 캐릭터에 걸맞는 오도방정과 입담으로 주말 KBS, MBC 쇼 프로그램의 MC와 시청률을 보장하는 게스트로 활동하면서 당대의 예능을 주름잡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도 입담으로 시청률을 올리다 보니 아예 최수종이란 이름을 걸고 토크쇼도 진행했고, 이 토크쇼 역시 높은 시청률을 찍었다. 오늘날로 치면 유재석에서 좀 덜 독하고 좀 더 부담 없이 웃긴 스타일. 요즘 사극에서 무게 잡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 전혀 이런 모습이 떠오르지 않지만. [7] 특히 일밤에서 이경규와 같이 호흡을 맞추는 최수종의 모습은 최수종이 코미디언으로서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4. 2000년대

30대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최수종은 두 번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그 역할이 KBS가 기획하던 대하 드라마 태조 왕건의 주인공 왕건. 기실 이 때 사람들의 반응은 "최수종이 사극을 한다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최수종이 왕건? 안 어울리겠는데?" 정도였다. 실제로 태조 왕건이 방송하기 전에 예고편에서 최수종이 왕건으로 나와서(수염을 붙이지 않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본 몇몇 시청자들이 웃기까지 했다.(...)

사실 최수종이 사극 연기를 한 게 태조 왕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데뷔 초기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에서 사도세자[8][9]철종 역을 한 적도 있고, 정보석, 염정아와 함께 한 드라마인 '야망'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젊은 선비 역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사극 출연작이 많지 않았던 최수종의 사극 연기에 대한 우려는 컸었다.

그러나 최수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온유함 속에 강함이 숨겨져 있는 왕건 역할을 잘 소화하면서 중후한 이미지의 사극 배우, 일명 수종(宗)으로 다시 거듭나게 되었다.[10]

거기다 최수종은 왕건이란 이미지에 시청자가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도 즐기던 쇼 프로 게스트 출연을 왕건 방영 기간 동안 일절 하지 않을 정도로 공을 쏟았고, 그런 노력은 노력만큼 보답을 받았다. 그리고 태조 왕건 종영 후 가족오락관에 왕건팀이 나온 왕건 오락관, 출발 드림팀에 왕건 출연진이 나온 왕건 드림팀과 같은 예능 출연을 하기도 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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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의 김영철과 최수종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에는 거의 완전한 사극 전문 배우로 전환,《태양인 이제마》, 《해신》, 《대조영》 등 KBS의 대표 사극에서 모두 주연을 꿰찼다. 이런 이유로 2000년대 들어서 드라마를 본 1990년대 이상 세대는 최수종이 사극 전문 배우, 특히 왕이나 장군 전문인 줄 안다.

최수종이 사극 전문 배우로 성공한 데에는 그의 체력과 운동 신경이 기여한 바가 컸다고 한다. 최수종은 연예인 축구단에서 센터 포워드를 도맡았을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으며,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체력도 발군이라는 게 중평이었다. 산에서 들에서 무거운 갑옷 입고 칼과 창을 휘두르며 말을 타고 달려야 하는 사극 연기를 하려면 고도의 체력과 운동 신경을 갖춰야 하는데, 최수종은 그런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 능력 외에도 사극에서 최수종의 투입 빈도가 높아진 이유 중에는 동안 외모[12]도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대부분 사극의 주인공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는 시기가 중년 시기라서 기존 사극들은 주연 배우의 나이가 젊어봐야 30대인 상태였고, 이로 인해 청년기를 다룰 경우 젊은 배우를 따로 캐스팅해 청년기를 다룬 후 중년 시기로 점프해 시작하거나 해당 배우가 분칠하고 젊은 척을 해야 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을 감수해야 했는데... 40대 후반 시절 최수종은 조금만 분칠하고 보정하면 30대 중반까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동안 외모를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주인공의 청년기부터 장년기까지를 한 배우로 표현할 수 있어 인물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도 면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13]

그러나 최수종이 사극 배우로 성공한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유발하는 선한 인상과 탁월한 연기력, 그리고 체력과 운동 능력을 그가 한몸에 모두 갖추었다는 데 있었다. 사실 체력과 운동 능력만 놓고 보면 이태곤도 최수종 못지 않고, 연기력만 놓고 보면 이민우정태우도 최수종 못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최수종처럼 연기력과 외모, 운동능력을 모두 완벽하게 갖추지는 못 했다.

5. 2010년대

2010년에는 '전우'라는 드라마에서 비교적 현대적인 배역으로 등장했다. 사실 전우도 시대극이지만 이 정도면 다시 연기변신을 시도한 셈이다. 너무 사극에만 나와서 지겹다, 똑같은 연기만 한다 등 부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믹한 연기나 정극에서의 진지한 연기도 충분히 소화할 만한 역량이 있는 검증된 배우이기 때문에, 다시 역할을 전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14]

그러나 이렇게 장기간 사극을 하는 바람에 직업병이 생겼는데, 은연중에 말투가 자기도 모르게 사극화된다는 점이다. 이런건 최수종 뿐만 아니라 최재성 등 대부분 사극 위주의 배우들도 마찬가지.

이러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전우'의 다음 작품은 현대극인 '프레지던트'로 골랐으며, 절대선이 아니라 악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사극에서 왕을 하던 배우라서 그런지, 현대극에서도 대통령 역할을 맡았다. 2년 뒤인 2012년에는 광개토대왕 후속작 대왕의 꿈에 캐스팅되어 또 왕 역할을 맡았다.

정리하면 최수종은 삼국을 통일한 뒤 발해를 창건하고 청해진을 설치한 후 고려를 세우고 후삼국도 통일하며 조선을 구한뒤 뒤주에 갇히기도 했으나 사상의학을 확립 했으며 한국전쟁에도 참전한 후 실미도에 끌려가 죽을 뻔할 위기를 넘기고 대한민국의 철강 산업 건설에 앞장서 그 지지기반으로 경선 끝에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15][16][17]최수종 한명으로 성배전쟁도 치를 수 있다더라

2012년 12월 대왕의 꿈을 촬영하던 도중 낙마사고를 당해서 쇄골과 손에 골절상을 입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2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사극은 별로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았다.[18] 자신이 김춘추를 다룬 많은 역사서적을 탐독하면서 배역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심지어 마지막 대사 리딩 연습 때에는 배역에 대한 몰입과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그만 울음을 터뜨렸을 정도라고. 여담이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수시로 사비를 털어가면서 연기자들에게 밥차를 불러 대접하는 등 출연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어 스태프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상기한 사극 네타(...)가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진 덕에 2013년 8월 10일 SNL 코리아의 호스트로 출연했을 때 '사극왕 최수종'이란 제목의 디지털 숏컷에서 본인이 본인역으로 메타 개그를 했는데[19] 본인이 맡았던 주요 배역들이 거의 다 나왔다. 근데 브금은 여인천하 브금이라는게 함정 안 나온 배역들도 중간에 최수종이 대본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조연> 파트에 다 적혀있었다(...).[20] 쌍커풀 메이커에서는 궁예분장을 한 김민교가 "수종 네 이놈의 차기작은 퇴계 이황 이니라." 하고 드립을 날리면서 1000원권 지폐와 최수종의 눈이 합성된 장면이 나오는데 싱크로율이 장난 아니다!! 이러다가 퇴계 이황 드라마가 나온다면 캐스팅 될지 모른다...

2014년 TV조선 불꽃 속으로에선 포스코 박태준 회장을 모델로 한 박태형으로 분해 일제시대와 6.25의 혼란을 이겨내고 제철소를 건설하는 기업가역을 맡았다.

2016년 KBS에서 한중합작으로 방영하는 임진왜란 1592에서 무려 이순신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정말 이쯤되면 걸어다니는 한국사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현재의 입지는 KBS를 대표하는 드라마 배우. 많은 드라마 배우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연기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막내 김일병(김민석 분)이 간호사 리예화(전수진 분)에게 우리말 어투가 아닌데 누나는 어디 출신이십니까?라고 묻자 예화가 '고려인'이라고 답하는데 고려요? 그거 최수종이 세웠다가 유동근한테 망한 나라 아닙니까? 그거 엄청 오래된 나란데 그나라 사람이 아직 살아있습니까?라고 말하는 신이 있다. 우습게도 그 드라마에 최수종의 진짜 조카가 출연하고 있다! 최수종의 친누나의 아들이라고 하며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이자 예화의 남편인 다니엘 스펜서 역으로 출연한 조태관이 바로 그 주인공.

2018년 동상이몽에 출연해서 잠깐 언급한 바에 의하면 붓글씨도 제법 잘 쓰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올해 9월 대왕의 꿈 이후 5년만에 KBS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으로 복귀한다. 드라마 초반에는 안타까운 아버지 캐릭터라는 특성이 돋보였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최수종이 막장 드라마에 출연했을때부터 알아봤다.라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21]

6. 기타

  • 선하고 이쁘장했던 외모와 왜소해 보이는 체격과 달리, 생각보다 한 주먹 한다고 한다. 권투를 배운 적도 있다고 하는데, 권투 꽤나 한다는 이계인수종이 싸움 잘 한다며 이동준같은 놈 아니면 수종이랑 붙으면 맞아 죽는다고 언급했다.[22][23] "사랑하세요"라는 주말 드라마에서 복싱 선수역할을 맡을 당시 전 복싱선수이자 절친인 조성규에게 복싱을 배웠다. 그 외 발언으로는 해동검도의 창시자 겸 배우인 나한일의 말에 의하면 연예계에서 임성훈을 제외하면 주먹으로는 적수가 없다란 말을 하기도 했다.[24] 연예계에서 싸움 좀 할 것 같이 생긴 친구가 최수종한테 따끔한 맛을 봤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고. 최수종에게 혼난 배우가 "수종아 우리 안 본걸로 하자"라고 했다고 한다(...).
  • 싸움 뿐 아니라 운동 신경이 좋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청소년 시절 축구선수를 해봤던지라 연예계에서 축구 잘하는 사람 하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25]. 그래서 2002년 월드컵 기념해서 최수종의 골든볼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한국 연예인팀의 일원으로 일본 연예인들과 친선 축구경기를 가진 적도 있다. 축구가 아니더라도 나한일의 말에 의하면 평소에 단련하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운동신경이 탁월하다는 점도 그가 사극에서 장군 역으로 자주 캐스팅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과거 출발 드림팀이나 각종 예능 등에서 축구나 운동하는 모습들을 보면 예사 운동신경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축구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새벽 4시까지 촬영을 하고 돌아오고 딱 1시간만 자고 바로 나가기 위해 축구복을 입고 잘 정도라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호흡이 긴 대하사극을 여러번 해보았다는 점과 기본적으로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탓에 우리나라 배우들 중에서도 승마실력이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는 소문도 있다. 이는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점이 사극배우 자체가 어느정도의 체력과 육체능력이 필요한 직업이다.
  • 평소에는 화를 거의 안 내는 성격이라고 하는데 축구할때만 되면 승부욕이 강해져서 화를 자주 낸다고 한다. 얼마나 심한가 하면 아들과 함께 축구하는 중에도 시합이 잘 풀리지 않자 소리를 지를 정도이고, 친한 선배 연기자인 이덕화의 증언에 의하면 시합하다 지거나 다치면 짜증을 낸다고 한다.
  • 최수종 본인은,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고 한다. 해신 촬영 당시 어떤 후배 연기자가 2시간이나 지각을 하자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섭게 꾸짖었다고 한다. 실제 라디오를 할 때도 10시 시작이라면 7시에 미리 나와있을 정도라고 한다.
  • 카리스마도 대단해서 드라마 전우 촬영당시 최수종을 때려야 하는 신에서 그걸 맡은 후배 배우들이 속으로 죽을 맛이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 야망의 전설을 찍을 당시 폐소공포증이 생겨버려서 오랜 기간 동안 고생했다고 한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제대로 못 보고 나와야 할 정도였다고. 최수종이 상당한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1998년 연기대상 대상과 1999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으며 최수종의 연기인생중에서도 최고의 연기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야망의 전설은 대부분 인정하는 편이다.
  • 아내인 하희라와는 현재도 깨가 쏟아지는 잉꼬부부로 유명하며 어느정도냐면 기념일마다 언제나 다른 이벤트를 개최해줄 정도라고 한다. 그야말로 애처가의 모범. 출연했던 잘 살아보세라는 예능에서 밝히길 아내에게 잘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희라의 4번의 유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내인 하희라와 자식들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26] 최근 시작한 인스타그램에서도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이벤트의 황제답게 각종 기념일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그가 유일하게 하희라의 생일을 깜빡한 적이 있었으니, 2004년도에 중국에서 드라마 해신을 촬영할 때였다고 한다. 사정상 본인이 직접 축하해주지는 못하고, 친한 선배인 이덕화에게 축하 편지를 낭독하는걸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덕화는 그 내용이 너무 닭살스러워서 본인이 다 읽지 못했다고 했다. 이러한 애정 행각 덕분에 최수종과 교분이 있는 연기자 남편들은 "집에 들어가면 최수종 선배처럼 해달라고 해서 죽겠다."며 통사정을 할 정도라고 한다.[27]
  • 역시 연예계의 애처가로도 익히 알려진 차인표는 토크쇼에 출연하여 자신도 애처가라는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최수종 선배의 스케일이 너무 커 자꾸 주눅들고 신애라의 눈치가 보인다라고 불평한 적이 있다. 이재룡 또한 예능에 출연하여 차인표와 비슷한 발언은 하기도 했다.
  • 청춘스타의 연애가 지금보다 더욱 금기시 되던 시절 최수종과 하희라의 열애설은 오랫동안 카더라로 떠돌았고 둘이 결혼에 골인했을때는 드디어 결혼했네 라는 반응이었다.
  • 이덕화와는 세대와 나이를 초월했다고 할 정도로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 최수종은 이덕화를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하며 이덕화 또한 최수종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이덕화도 최수종 하희라 부부의 애정행각은 도저히 못봐주겠다나.
  • 촬영장 알바의 증언에 따르면 촬영장에서 목소리가 과장이 아니고 쩌렁쩌렁하게 울린다고 한다.[28] 인심 또한 후한 편이라 대왕의 꿈 한 화분 촬영 뒤, 회식 자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뜰 때까지 자기에게 사인 요청한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 주었다고(촬영 알바 증언. 촬영 PD들에게서 직접 들었다).
  • 악역을 아예 안 맡은 건 아닌데, 과거 1990년대 중반 KBS 주말 예능에서 파우스트를 패러디한 <최수종의 파우스트>란 코너에서 메피스토펠레스를 모델로 한 악마를 열연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절망에 빠진 인간들 앞에 홀연히 나타나 교묘하게 계약을 이끌어내고 마지막에 나락에 떨어트린다는 내용.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다.[29]내용 중에 자신이 계약시킨 한 인간이 나락에 떨어진 끝에 자신의 후배 악마가 되는 장면이 있는데 홍경인이 너무 잘해 최수종은 짤려버리는 장면도 나온다.[30]
  • 정식 드라마에서 자신이 계속 선역, 주인공 위주로 배역을 받다보니 되려 이를 질려하고 있다. 그래서 악역, 그것도 사연이 있는 악역이 아니라 완전히 천하의 개쌍놈 역을 한 번쯤은 맡아보고 싶다고 한다.#
  • 2000년대 들어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1990년대에는 코믹 댄스로 일세를 풍미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코믹 댄스 = 최수종으로 통할 정도.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 막춤을 춰 대면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내인 하희라가 춤추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하도 잔소리를 들어서인지 나중에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하)희라가 이미지 망가진다고 춤 추지 말랬는데..."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춘다.
  • 30년이 된 연기 인생 중에서도 SBS에는 딱 한 번 출연했다. (2003-2004년 최수종쇼) 하지만 2018년 2월 무렵부터 동상이몽 예능에 출연하고 있다.
  • 대왕의 꿈에서 진짜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씬을 찍다가 말이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대형 사고를 당했는데 그 말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낙마한 최수종은 등뼈가 부러지는 중상까지 입었다가 겨우 살아났다.[31] 무서운 건 저 부서진 등뼈가 아직 완치되지 않았는데도 그냥 아랑곳하지 않고 진통제를 먹어가며 촬영했다는 점이다.[32]
  • 역시 탁월한 신체 관리를 꽤 잘 하는 걸로 봐서도 동안이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기준 한국나이 58세다. 이만기가 모 방송프로에서 민증까자 했다가 데꿀멍했다. 참고로 이만기보다 1살 연상이며# 심지어 우현보다도 연상이다. 워낙 자기관리를 잘해서 최수종이 60세가 얼마남지 않은 나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50대 초반까지만 해도 굉장한 동안이었으나 다만 50대 중반부터 얼굴살이 눈에 띄게 빠지는 바람에 예전보다 나이든 티가 확 나는게 아쉬운 부분. 몸무게는 30년 째 70kg이하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 여배우들 중에서는 채시라와 7번이나 같은 작품을 찍었으며, 아내인 하희라와 5번, 최진실/염정아/이승연과 3번, 김지수/이응경/오연수/채정안과 2번의 작품을 함께 하였다.
  • 본인이 상당한 동안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상대 여배우들은 대부분이 그보다 연하였다고 한다.
  • 2018년 9월 주말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같이 살래요의 후속작)의 주역으로 출연이 결정됨으로서 2011년 프레지던트 이후 7년여만에 현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고위층이 아닌 서민층의 아버지로 출연하게 되어[33] 화제가 되기도.
  • 과거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여 학창 시절 은사를 찾았지만 수소문 끝에 이미 돌아가신 것을 알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 대조영에서 아버지 역할이었던 원로배우 임혁을 이후에는 실제로도 아버지처럼 모신다고 한다.
  • 사극 연기를 할때는 국어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장단음을 체크해서 발음한다고 한다.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들은 임혁, 한인수등의 사극전문인 선배 연기자들에게 직접 물어본다고 한다.

7. 출연작

수종(秀宗)[34]
사극에서 맡은 배역들을 보면 대부분 아니면 장군이다. 특이하게도 조선 시대 왕보다는 고대사 왕 역할을 매우 많이 맡았다.
어째서인지 SBS 드라마에 단 한 편도 등장한 적이 없다.

7.1. 드라마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1987년 KBS 사랑이 꽃피는 나무 현우
1988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 한중록 사도세자
1989년 MBC 사랑은 구름을 비로 내리고 오상민
진국
1990년 MBC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 상훈
조선왕조 오백년 대원군 철종
KBS 서울뚝배기 박만봉
1991년 KBS 가족 영재
MBC 행복어사전 서재필
도시인 최치원
1992년 MBC 질투 이영호
춘원 이광수 이광수
1992~
93년
아들과 딸 이귀남
1993년 MBC 뜨거운 강 중수
파일럿 강민기
1994년 MBC 야망 이인수
마지막 연인 영규
1995년 KBS 바람은 불어도 황산해
1996년 KBS 프로젝트 형우
첫사랑 성찬혁
1997년 MBC 불꽃놀이 성태, 윤민호[35]
KBS 그대 나를 부를 때 강범수
1998년 KBS 야망의 전설 이정태
1999년 KBS 아름다운 비밀 유민
사람의 집 서원탁
사랑하세요 박상현
2000년 KBS 태조 왕건 왕건[36]
2002년 KBS 태양인 이제마 이제마
2003년 KBS 저 푸른 초원 위에 차태웅
2004년 MBC 장미의 전쟁 박수철
KBS 해신 장보고
2006년 KBS 대조영 대조영
2008년 KBS 전설의 고향 - 사진검의 저주 윤인
2010년 KBS 전우 이현중
2010~
11년
KBS 프레지던트 장일준
2011년 KBS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 아들을 위하여 성호
2012년 KBS 대왕의 꿈 태종 무열왕
2014년 TV조선 불꽃 속으로 박태형[37]
2016년 KBS 임진왜란 1592 이순신
2018~
19년
KBS 하나뿐인 내편 강수일/김영훈[38]

7.2. 광고

항목명 바로가기는 현재명칭|과거명칭 배치로 한다.

8. 시청률의 제왕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시청률
1996년 KBS 첫사랑 65.8%
1992년 MBC 아들과 딸 61.1%
2000년 KBS 태조 왕건 60.2%
1992년 MBC 질투 56.4%
1995년 KBS 바람은 불어도 55.8%
1998년 KBS 야망의 전설 50.2%
2018년 KBS 하나뿐인 내편 49.4%
1994년 MBC 야망 49.0%
1993년 MBC 파일럿 46.2%
2006년 KBS 대조영 33.3%
2004년 MBC 해신 31.7%
2003년 KBS 저 푸른 초원 위에 31.1%

명실상부 현존하는 배우들 중 시청률의 킹. 영화라면 몰라도 드라마 커리어로 최수종을 뛰어넘는 필모를 자랑하는 배우는 존재하질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최수종과 시청률로 맞먹는 배우는 채시라, 최진실정도. [39][40]

참고로 여기 나열된 시청률은 전부 대박급 시청률이고 중박이상까지 나열한다면 더욱 많아진다. 그의 데뷔작인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정확한 시청률은 알 수 없지만 최수종에 언급에 의하면 그 당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작품이었다고 하고 '서울뚝배기'나 '행복어사전'도 시청률이 높았다고 한다. 대조영 이후의 작품들은 아쉬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세운 기록만 봐도 시청률에 있어선 역대급이다. 태양인 이제마도 28%정도이고 중박 이상의 작품까지 생각하면 더욱 많아진다.

90년대 후반의 김희선이 짧은 기간에 8개의 드라마를 연속으로 히트시킨 것보다는 덜하지만, 시청률에 있어서 최수종 만한 전설급인 배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워낙에 다양한 드라마를 히트시키다보니 한때는 최수종의 상대역을 맡은 배우들조차 상대역이 최수종이라고 하면 안심하고 출연한다는 소문조차 있었을 정도였다.

<아는형님>에서 합산시청률이 530%라고 나왔다.

9. 영화에서의 최수종

주무대가 TV인 최수종이지만 영화에도 몇 편 출연했다, 데뷔 초의 영화 몇 편은 흑역사 수준.

1990년 남기남 감독의 영화인 '슈퍼맨 일지매'에선 변신 히어로도 해 먹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선 얼굴 나오는 장면도 얼마 안되며 거의 복면쓴 스턴트맨이 연기를 다 한다.(...) 그러나 6백만원이라는 거액의 출연료를 건넨 이 영화 덕분에 최수종은 곰팡이 슬던 단칸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당시 최수종은 데뷔하자마자 청춘스타로 등극했지만 집안의 빚을 갚고 이민 가 있는 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돈을 벌어도 모으질 못 하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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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히어로답게 뿔테안경을 쓰고 있는 최수종

다행히 같은해 1990년, 당대의 청춘스타이던 하희라와 같이 출연한 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가 쏠쏠한 인기를 끌면서[41] 여러 청춘영화에 연속해서 주연을 맡는다. 이미연, 홍학표와 함께 한 '비 개인 오후를 좋아하세요'. 다시 하희라와 함께 찍으면서 김민종 변진섭까지 나온 '너에게로 또다시', 하희라와 함께 찍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이 시기의 영화들이다.(이렇게 하희라하고 계속 영화를 찍으며 함께 하다 보니 결국 최수종과 하희라는 결혼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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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인연을 이어준 영화. 맨 오른쪽 사람은 어째 흑역사화 되어 있지만.[42]

그러다 오연수와 함께 연기한, 치고 박는 신혼부부 이야기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가 좀 히트를 했고, 그 덕인지 몇 년 후에 김혜선과 신혼부부로 치고 박는 이야기인 《키스도 못하는 남자》를 찍었는데, 키스도 못하는 남자가 별 재미를 못 보기도 했고, 이후로는 정극 위주의 드라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영화를 찍지 않고 있다.

탁월한 연기력을 가졌지만, 시리즈로 기획된 드라마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인 만큼 굳이 영화계로 복귀하려는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1월, 영화계에 오랜간만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철가방 우수氏 '라는 작품에 노 개런티로 컴백했다.

10. 논란거리

10.1. 사채광고 출연 논란

2006년 최수종은 과감한 외적 변화(?)를 시도한다. 바로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하기로 한 것.[43] 그러나 톱스타라는 사회적 위치와 기존의 모범적 이미지에 크게 반하는 것이라 곧바로 시청자로부터 질타가 쏟아졌으며, 사회적으로도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관련기사 이에 최수종은 반성한다는 사과문과 함께 해당 계약을 체결한 매니저를 해고함으로써 해당 사건을 마무리 지으나, 이후 터진 학력위조 사건과 겹쳐 한동안 방송 출연이 힘들게 됐었다.

10.2. 학력 위조 논란

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학과 출신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합격만 하고 등록은 하지 않았다.그러나 꽤 오랫동안 이 학교 출신인척 했던 바람에 학력 위조 논란이 일었다.

학력 위조 열풍이 거셌던 2007년 당시, 이와는 무관할 듯 보였던 배우 최수종마저 학력 위조 사실이 드러나자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다니지도 않았던 학교임에도 학교 관련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여 그 학교 출신 마냥 행세를 해왔었기에 논란은 더욱 불거졌었다. 관련링크1 이른바 국민배우로 불리던 그였고, 대외적으로도 바른 생활 이미지만을 보여왔었기에 그 충격은 한층 더 깊었다.

이에 대해 본인은 의도적인 위조가 아닌 전달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고 해명했으나,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1990년대부터 최수종 자신이 직접 여러 매체를 통해 해당 대학 재학 및 졸업 사실을 언급했으며, 총 3권으로 발간된 본인의 자서전 모두에서 해당 대학 재학 및 졸업 사실을 기재했다는 것이 드러나며 배우 최수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관련 링크2 또한 이후 주장한 유학 생활에 대한 언급도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의혹이 일었었다. 관련 링크3

그러나 이후, 해당 대학에 합격은 했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하지 못했다는 해명으로 사건의 포커스가 해당 대학 재학이나 졸업이 아닌 해당 대학 합격 유무로 옮겨가더니, 결국 해당 대학 측에서 합격 사실을 확인해 준 후로는 해당 사건은 더 이상의 해명 없이 유야무야 묻혀 버렸다. 한국외대, 최수종 합격사실 공식 확인

사실 학력위조 연예인중에 제일 논란없이 잠잠해졌는데 이는 대학졸업보다 입학이 압도적으로 어렵고 힘든 한국 특유의 교육시스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외대의 경우 지금에도 상위그룹 대학 중 하나이고 이 당시 대학 학사관리는 지금보다 널널한 편이었기 때문에 최수종이 재정적 사정만 아니면 일단 들어가서 뭘했든 졸업은 따놓은 당상인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더더욱 관심에서 멀어졌다. 21세기가 된 지금에서도 한국은 입학과 졸업의 난이도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레벨인데 1980년대는 더 말해서 무엇할까.

나중에는 해당 대학 측에서 최수종에게 명예졸업장을 건네주어 동문으로 인정해주었다 카더라라는 루머도 돌았지만, 이는 학력위조 사건이 터지기 한참 전의 일이며 되려 최수종 본인이 모종의 이유로 명예졸업장을 고사했었다. 관련 링크4

이와 같이 큼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통에, 배우 최수종에 대한 도덕성은 막대한 상처를 입었으며 그로 인해 2010년 KBS 전우로 복귀할 때까지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려야 했다. 허나, 당시 최수종의 대처 방식 또한 그리 훌륭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앞선 대부 업체 광고 논란이나 학력 위조 사건의 책임을 자신이 아닌 모두 매니저 탓으로 돌려 비난을 키운 면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 관련링크5, 관련링크6 이는 2010년 이효리 표절 사건의 대처방식과 유사점을 보이기도 한다.

이후 최수종은 2008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0.3. 병역관련

생계곤란 사유로 병역이 면제되었는데, 위의 학력 논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원인인듯. 2004년 장혁, 송승헌, 한재석이 병역비리에 걸렸을 때 덩달아 논란이 되었는데, 어렵게 합격한 명문대를 포기해야 했을 정도로 집안사정이 어려웠던게 사실이고 공소 시효도 지난 데다가 이미 만 40세를 넘어버려서 민방위 대상도 아니었던지라 큰 논란으로 번지진 않았다.

그리고 최수종이 징병신체검사를 받았을 때가 1980년대 초반인데 이 때는 청년층의 인구비율이 높던 시절인지라 병역자원이 넘쳤기 때문에 지금보면 말도 안되보이는 이유로 병역이 면제되거나 방위병으로 전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수종보다 어린 정준하처럼 4대 독자라서[44] 박명수처럼 시력이 안 좋다는 이유, 최불암 시리즈같은 유머 소재로 흔히 쓰인 평발 등등. 1970년와 80년대에는 현역판정비율이 40~50%대였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를 지니고 있었으면 병역면제가 되거나 방위병으로 복무했으며 대학 등록도 못할 정도의 생계 문제면 면제 사유로 충분했다. 다른 연예인들의 병역비리 논란과 달리 탈법적이거나 문제될 부분이 없으며, 여기에 딴지를 거는 사람도 적다. 비슷하게 생계곤란으로 면제된 사람으론 리쌍의 길이 있다.

11. 수상 내역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90년 KBS 연기대상 인기상 서울 뚝배기
1991년 제2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KBS 연기대상 인기상 가족
MBC 연기대상 남자 우수상 춘사 나운규, 행복어사전
1992년 남자 최우수상 질투
1993년 아들과 딸
1994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인기상
1995년 KBS 연기대상 남자 인기상 바람은 불어도
1996년 남자 최우수상 첫사랑
1997년 그리메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1998년 KBS 연기대상 대상 야망의 전설
포토제닉상
1999년 올해의 명예 외대인상[45]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야망의 전설
대한민국 최고 인기 연예대상 탤런트부문 남자연기상
제26회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KBS 연기대상 남자 인기상 사람의 집
2000년 제1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포토제닉상
2001년 KBS 연기대상 대상 태조 왕건
2002년 남자 인기상 태양인 이제마
2003년 특별상 저 푸른 초원 위에
2005년 남자 최우수상 해신
2007년 문화관광부 장관상
KBS 연기대상 대상 대조영
네티즌상
2008년 제35회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페스티벌[46] 남자 최우수상
2010년 납세자의 날 대통령표창
2011년 가장 문학적인 상 연예인부문
대한민국 휴먼대상 나눔인상
KBS 연기대상 연작·단막극상 KBS 드라마 스페셜 - 아들을 위하여
2012년 제1회 행복나눔인 보건복지부장관
2013년 국회대상 올해의 공로상
2014년 미스 아시아 퍼시픽 월드 슈퍼탤런트 서치 쇼 비즈 한류문화 탑 월드스타상
2018년 제23회 소비자의 날 KCA 문화연예 시상식 2018 관객이 뽑은 올해의 배우 하나뿐인 내편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
베스트커플상(with 진경)
2019년 제31회 한국PD대상 탤런트부문 출연자상


[1] 전성기 때 키는 174cm였다고 한다. 현재 50대 중후반이니 한참 떴을 때인 30년 전보다 몇cm 줄었을 것도 생각해야 한다. 구글에서는 173cm로 나오고 야망의 전설 출연에서 현상수배장면이 나올때 아나운서의 언급으로 174cm로 언급된다.[2] 2017년 11월 19일자로 장로 안수를 받았다.[3] 前 가수 조하문의 아내, 前 연기자. 유인촌과 상대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4] 토론토 주사랑 교회에서 최수종이 직접 간증한 내용.[5] 최종회에서 시청률 65.8%를 찍었다. 15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다만 이것은 한 회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고 드라마 전체의 평균 시청률이 최고인 작품은 사랑이 뭐길래이다.[6] 이 때 전년도,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 역으로 대상을 수상하여 시상자로 나온 유동근의 시상 발표가 백미. "전년도에 제가 수상 했죠. 이제 (극중의) 동생이 탈 차례인가 봅니다. 대상!!~~" 참고로 백상예술대상도 1998년 최우수가 유동근, 1999년이 최수종이었다.[7] 사실 연기할 때만 그렇지 예능에서의 모습을 보면 최수종은 중년이 된 이후에도 발랄하고 장난끼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8] 이 드라마가 방영하기 몇 달 전에 이미 KBS에서 한중록을 다룬 하늘아 하늘아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그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하희라였다. 한 마디로 결혼하기 전 미래의 아내에게 같은 소재의 작품으로 시청률에서 졌다는 것.[9] 이 작품이 그의 첫 사극 연기였는데, 본인이 직접 이 당시의 사극 연기는 발연기였다고 인정했다.[10] 초기에는 궁예 역할을 맡았던 김영철이나 종간 역을 담당했던 김갑수의 카리스마에 밀리는 감이 있었으나, 명백한 주연으로 등장하는 중반부 이후부터는 폭풍간지였다. 다만 이 때는 최수종이 워낙 오랜만에 왕 역할을 맡다 보니 가래 끓는 소리가 거슬린다는 의견이 꽤 많았다. 이런 발성법의 문제는 차기 사극 출연작인 해신에서 상당 부분 해소된다.[11] 참고로 이 드림팀 구성원은 최수종(왕건), 김영철(궁예), 김시원(수달), 김형일(신숭겸), 정태우(최응) 등으로 역대 최고령팀이었다. 그때문에 난이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자 중년들이 전부 떨어지고 정태우만 남아 분전하다 결국 졌다.[12] 최민수, 최민식과 동갑이다![13] 다만 당대 사극에서는 웬만큼 비중 있는 역들은 실제 인물의 나이를 불문하고 중견급 이상의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에 딱히 최수종의 동안 외모만이 특별한 요소라고 볼 수는 없다. 당장 위에서 궁예 역을 맡은 김영철은 당시 40대 후반의 나이였음에도 궁예의 10대 시절부터 말년까지 죄다 커버했으며, 라이벌인 견훤 역의 서인석은 무려 50대 초반이었으나 마찬가지로 20대부터 말년까지 전부 맡았었다.[14] 본인은 악역을 맡고 싶어하기도 한다고. 실제로 1997년 MBC 납량특집 드라마 '불꽃놀이'에서는 1인 2역 쌍둥이로 한쪽은 선역, 한쪽은 악역으로 열연하기도 했다.[15]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이와 비슷한 배우개그가 나왔었다.[16] 여기서 태조 왕건 시기 자신이 세운 나라의 황태자인 대광현 이 대려온 발해 난민을 받아준적이 있다,최수종이 세운나라 최수종이 거둔다![17]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송강호가 있다, 송강호는 근현대사 영화에 많이 나왔기 때문.[18] 대왕의 꿈 드라마가 흥행이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배우가 다쳐 누워있으니 주인공이 몇 주째 드라마에 나오지 않고 대신 목소리만 줄창 등장하니... 물론 부상을 입고 싶어서 입은 게 아니므로 어쩔 수 없었고 이 드라마는 다른 악재도 많았다. 심지어 최수종 뿐만 아니라 대왕의 꿈 전반부 주역이던 선덕여왕 역의 박주미는 자택과 촬영장을 오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부득이하게 드라마에서 하차하고 해당 배역은 홍은희가 대신 맡기도 했다. 사실 후에 밝히길 6개월 이상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2주만에 퇴원을 해서 촬영을 감행했다 한다.[19] 사실 미 SNL 본편에서 인기 있었던 디지털 숏컷 앤디 샘버그의 '저주'편을 한국 SNL에서 거의 그대로 재활용해 만든 것. 세르지오의 저주 한글 자막판[20] 여담으로 이 대본에서 주연 역할로 단군(...)이 나왔는데 실제로 최수종이 유일하게 한국사에서 담당한적이 없었던 시기가 고조선 시기이긴 하다. 물론 그 이전에 애초에 고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 자체가 없었다는게 흠이지만...[21] 캐릭터의 행보가 점점 발암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22] 전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겸 배우인 이동준은 연예인 싸움 순위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최상위권에 언급되기로 유명하다. 이동준 본인은 이계인에 대해서는 자기보다는 아니지만 나이에 비하면 싸움 좀 한다고 평가했다.[23] 참고로 이계인과 최수종 둘 다 권투를 좋아하기에 권투도장에서 처음 만나서 친해졌다고 한다.[24] 물론 립서비스 성격이 강하다. 당장 힘좀 쓴다는 연예인들은 줄리엔 강, 마동석, 강호동, 김영호, 김종국 등등등 많다. 그리고 이계인이라는 인물 자체가 허풍이 센 성격이다.[25] 그 때문에 박수홍최용수가 작당해서 몰래카메라로 골려먹은 적도 있다.[26] 다만, 하희라는 그냥 반말을 쓴다.[27] 실제로 최수종이 최근에 출연한 예능 토크쇼 영상의 리플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내용이다(...)[28] 다만 발성 자체로만 보면 의외로 약점으로 평가받는데, 흔히 연극이나 사극 연기하면 떠오르는 굵고 울림이 큰 발성이 아니라 다소 짜내는 듯한 느낌의 발성이기 때문.[29]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당시 터보로 활동하던 김종국이 주연으로 나온 에피소드에서는 김종국이 미국에 가고 싶다고 최수종과 계약했는데 김종국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고 전 무심코 쓴 장기 기증 신청서대로 그의 심장은 미국으로 보내져 환자에게 이식된다.ㄷㄷㄷ[30] 이때 당시는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정리해고가 사회이슈로 떠오르던 시절이어서 적절하게 사회풍자도 겸하는 내용이었다. 악마자리에서 짤려서 사라지는 와중에 최수종의 "아니, 제가 이 나이에 지금 와서 또 무슨 일을 하라고...!!!" 라는 대사는 코믹하면서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31] 불행 중 다행으로 척추는 다치지 않아 신체 마비는 면했다고 하나 견갑골은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32] 사극을 촬영할 때 특유의 복부에서 끌어올리는 발성을 하다보니 대사를 할 때마다 온몸이 울려 통증이 극심하게 몰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극 중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언성을 높이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대사 한마디 하고 통증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쉬고 다시 한마디 하고를 반복했다고.[33] 딸 역할은 유이가 맡는다고.[34] 우연의 일치로 왕에게 쓰는 종(宗)자(태종, 세종...)를 쓴다[35] 1인 2역의 쌍둥이 역할.[36] 태조 왕건 후속으로 방영되었던 제국의 아침(태조왕건 처럼 이환경 작가가 맡았다.)에서도 왕건의 최후를 연기할 예정이었지만당시 기사 내용 어떻게 된 일인지 출연하지 않고 배우 이민수가 대신 맡았다. 대신 죽기 직전의 회상에서 잠깐 출연하였다.[37] 실존인물인 박태준 포스코 초대 회장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38] 모종의 이유로 신분세탁을 하는 역이라 이름이 두 개다. 후자가 본명.[39] 참고로 최수종이 상대역으로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배우도 채시라이다. 무려 7편의 작품에서 같이 출연했는데, 단막극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1990)를 시작으로 아들과 딸(1991), 파일럿(1993), 야망의 전설(1998), 해신(2004)은 성공했고, 사람의 집(1999)도 25% 정도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조선왕조 오백년은 알 수 없다(..) 이렇게 최소 중박이상 대부분 대박일 정도로 두 사람이 같이 나온 작품들은 망한 작품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 사이도 좋고 연기자로서도 인정하는 편이라고 한다.[40] 최진실과도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1988)을 시작으로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1990), 질투(1992), 장미의 전쟁(2004)까지 4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최진실과도 상당히 친한 사이여서 최진실이 친근하게 오빠라고 부르면서 따를 정도였고 그녀가 이혼 이후 복귀하는 데 고초를 겪을 때 그녀를 추천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가 자살하기 며칠 전에 거리에서 만나서 밥도 사줬다고 한다.[41] 방학 무렵에 개봉해 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를 얻었다.[42] 명배우 이경영으로 1990년대 영화 출연 이후 최근에 거의 출연을 안하고 있다가 부러진 화살, 푸른 소금, 최종병기 활, 후궁, 제왕의 첩, 26년(영화), 남영동19852011년 이래 갑자기 출연빈도가 늘었다. 그림과 달리 사실 하희라와 플래그가 서지 않는 담임 선생님 역(최수종은 교생역). 플래그는 동급생 역의 김민종이 선다.[43] 그 대부업체가 2015년 현재 Pile이 출연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부업체와 같은 곳.[44] 1990년대 초반까지는 부모 두명이 모두 60세 이상이거나 아니면 아버님이 사망해서 생계를 책임져야한다든가 아버지도 외아들이여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키면 6개월만 방위병으로 복무하면 되었고, 정준하이 3대 독자 이상이면 아예 합법적으로 군면제가 가능했다.[45] 공식 수상 기록으로 여러 사이트에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있으나 위에서 상술했듯이 본인이 거절했다.[46] 現 코리아드라마어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