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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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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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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
[[1996년|
1996
]]
김희선
[[1998년|
1998
]]
심은하
[[1999년|
1999
]]
* 1997년은 시상식을 개최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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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희선(金喜善)
출생 1977년 6월 11일[1] ([age(1977-06-11)]세)
경상북도 대구시 [2]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본관 김녕 김씨[3]
신체 167cm, 45kg, O형
가족 부모
배우자 박주영 (2007 결혼 – 현재)
자녀 딸 박연아(2009년생)
학력 서울숭인초등학교
종암여자중학교
혜성여자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연극학 학사
종교 무종교[4]
데뷔 1993년 CF '꽃게랑'
소속사 힌지엔터테인먼트
팬페이지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png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1. 개요2. 활동
2.1. 데뷔와 전성기2.2. 2000년대2.3. 2010년대
3. 외모4. 스타일5.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톱스타 김희선6. 그밖에
6.1. 언제 태어났는가?
7. 출연 작품
7.1. 영화7.2. 드라마
8. 기타 활동
8.1. 방송8.2. 예능8.3. 교양8.4. 라디오
9. 광고 및 홍보대사
9.1. 광고9.2. 홍보대사
10. 수상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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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여배우. 1990년대에 가장 인기가 있던 여배우를 꼽으라고 하면 전반기에는 최진실, 후반기에는 김희선을 꼽을 만큼 여타 여배우 여럿의 인기를 다 합친 것을 압도하는 인기를 누린 여배우이다. 또한 한 시대를 대표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마지막 여배우라고도 볼 수 있다. 김희선 시대 이후 김희선만큼의 인기를 누린 여배우는 없다.

2. 활동

2.1. 데뷔와 전성기

1992년 혜성여자고등학교 재학 당시에 '고운 얼굴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5] 잡지 모델로 데뷔해 각종 광고 모델로 출연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첫 광고는 1993년 출연한 롯데삼강(現 롯데푸드) 꽃게랑.[6] 같은 해 SBS 인기가요에 당시 최연소의 나이로 MC가 되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일부러 나이를 20살로 속이고 화장과 머리도 최대한 나이 들어 보이게 했다고 한다.

배우로는 1993년 SBS 청소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했다. 이어 1994년 KBS 추석특집극 《춘향전[7], 이듬해 1995년 초 SBS 추리 드라마 《이(李)가사 크리스티》에 출연하여 처음으로 성인연기를 보여주었고, 바로 뒤이어 방영된 KBS 드라마 《바람의 아들》로 '김희선' 이라는 이름 석 자가 비로소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8] 1996년 봄에 방영된 연작 드라마 '컬러'로 비로소 팬덤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1990년대 중후반 김희선은 자신만의 통통 튀고 발랄한 신세대 이미지와 매력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KBS 《목욕탕집 남자들》, 《웨딩드레스》, 《머나먼 나라》에 이어 30~5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SBS 《미스터Q》, 《토마토》, MBC 《해바라기》로 인기 정점을 찍으며 김희선 신드롬을 일으키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 드라마들은 아시아권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어 김희선은 중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고, 당시 프랑스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전성기 커리어는 놀라운 수준이었는데, 1997년부터 1999년까지[9]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들의 시청률은 《세상 끝까지》(30.6%), 《웨딩드레스》(32.5%), 《안녕 내 사랑》(34.5%)[10], 《프로포즈》(35.6%), 《해바라기》(38.2%), 《미스터Q》(45.3%), 《머나먼 나라》(47.2%), 《토마토》(52.7%).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시청률 30%를 넘긴 작품이 8편이라는 점은 역대 배우 중에서도 본좌급이다.

그만큼 당시 김희선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며, 그녀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무조건 대박 취급을 받았다. 이 당시엔 여배우가 원톱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간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는데,[11] 《미스터Q》나 《토마토》 같은 대박 작품들은 거의 김희선의 힘으로 시청률을 끌어낸 것이며 《토마토》에선 상대역의 신인 배우 김석훈을 띄워주기도 했다. 《미스터Q》로는 1998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까지 수상했다. 만 21세에 수상해 방송 3사 통합 문근영과 함께 최연소 대상 수상 기록인데, 2018년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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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의 인기는 단연 독보적이다. 사실상 천하통일이라고 할 정도. 연속극 분야에서는 어느 인기 여배우도 김희선 앞에서는 무명 배우일 뿐이었다. 위의 표를 보면 영화 분야에서 심은하의 인기 점유율도 만만치 않지만, 당시 영화연속극에 비해 저명도가 한참 낮은 편이다 보니[12] 체감 인기도는 김희선에게 심은하는 물론이고 어느 영화 배우들도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사실상 그 시점에서 미녀 스타 김희선의 인기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그녀를 예뻐하던 故 최진실의 후계자가 된다. 미녀 배우의 위상이라는 면에서는 황신혜가 있었지만 김희선이 라이징 스타가 될 시점에 황신혜는 점점 저무는 해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황신혜의 필모그래피는 김희선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종합한다면 연기자로서의 최진실의 위상, 미녀로서의 황신혜의 위상을 모조리 이어받은 슈퍼 스타 여배우.

최진실을 제외하고 1990년대에 활동한 여배우들은 물론이고 1990년대 중후반에 누린 그녀의 전성기와 비견가능한 2000년대 이후의 여배우는 없다. 김희선 이름 석 자로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 2년 연속으로 제작, 편성될 정도면 그녀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유행을 선도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출연한 드라마에서 착용한 액세서리는 다음날이면 번화가나 중고등학교 근처 팬시점에 김희선 ㅇㅇㅇ 라는 식으로 등장하여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모 드라마에서 들고 다니던 요요, 소위 머리 곱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머리밴드, 머리띠 등.[13] 특히 《토마토》 방영 당시 남성들의 로망은 흰색 스키니 진에 하얀 자전거를 탄 생머리 여성으로 이는 극중에 등장하는 김희선의 모습이었다. 덕분에 근처 공원에는 이런 스타일의 여성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중화권에서도 인기가 대단했었는데,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임에도 그녀의 외모가 중국에서도 큰 화제를 일으키며 '한국제일미녀' 라고 소개됐고 중화권에서 많은 CF를 찍기도 했다.

2.2. 2000년대

드라마에서 역대급 커리어를 쌓은 김희선은 본격적으로 스크린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패자부활전》, 《카라》 등 출연한 영화는 평단의 혹평을 받거나 흥행에 실패했다. 드라마 커리어에 비해 영화로 큰 재미를 못 본 김희선이었지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모두 실패를 한 건 아니었다. 2000년에 개봉한 《비천무》는 그해 관객순위 3위를 기록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천무》는 내용도 엉망인 데다 원작팬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퀄리티로 흥행에 비해 혹평을 들었다. 또한 영화내에서 김희선의 연기력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창 드라마 전성기 시절에는 가벼운 트렌디 드라마 히트작들이 많았고, 본인이 자신있어 하는 캐릭터(발랄하고 착한 캔디형 인물)로 주목 받아 연기력에 관한 논란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에 진출한 이후로는 다양한 캐릭터를 살리지 못해 연기폭이 좁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쪽에서 큰 비판을 받아서 인지 김희선 본인은 영화에 트라우마가 있는 듯 하다.)[14][15]

2000년대 초반은 김희선이 큰 시련을 겪은 시기이기도 하다. 2000년부터 약 2년간 사진작가 조세현과 관련된 누드집 고소 파문을 겪기도 했다.[16] 김희선과 조세현 사이의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판명났지만[17], 이 사건으로 인해 김희선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그래도 순정만화 같은 멜로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김희선은 이 작품에서 평단의 상당한 호평을 이끌어냈고, 김희선의 최고작이라고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서 김희선이 거절한 작품들이 대박을 치는 반면에 실제 선택한 《슬픈 연가》, 《스마일 어게인》 등의 성적은 저조해 이전과 같은 파급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다만 이 부분은 다소 억지가 많다. 애초에 배우들 사이에서 작품 섭외가 들어왔다가 불발되는 케이스가 한 두건도 아니고, 김희선 정도 위치의 배우라면 못해도 어지간한 미니시리즈 섭외 요청은 다 들어온다. 그리고 원래 캐스팅이란게 A급 배우에게 먼저 요청이 가다가 불발되면 그 다음 급 되는 배우들에게 가는 식으로 이어진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어도 김희선은 한 시대를 평정한 스타였는데, 1순위로 작품 섭외가 안 들어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게다가 김희선이 거절한 이유들을 보면 대부분 시기상 안 맞거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발된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작품 보는 눈이 없다고 무작정 까기에는 무리가 있다.

2007년 10월 사업가로 알려진 박주영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공백기를 가졌으며 2009년 1월 20일 딸을 출산했다. 딸의 이름은 연아. 출산 이후에도 공백기를 이어가며 육아에 전념했다.

2.3. 2010년대

2012년 8월 SBS 월화드라마 《신의》로 6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이전의 《슬픈 연가》의 캐릭터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여서 기대를 모았으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10% 정도의 시청률로 나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사극에 타임슬립물로 수십 억 제작비를 들인 것을 감안하면 동시간대의 드라마들과 비슷한 시청률이 나왔다는 것은 사실상 대실패.

2012년 12월 SBS 토크쇼 힐링캠프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강심장 후속 프로그램인 SBS 화신 - 마음을 지배하는 자의 MC로 발탁됐다. 과거 버라이어티쇼 진행 경력이 있어서인지 순조롭게 적응 중이었으나, 시청률이 갈수록 좋지 못하자 김구라봉태규까지 투입하며 메인 MC에 변화를 주고 한국 역대 예능 토크쇼 사상 최초의 생방 토크쇼를 선보이는 등 실험을 해보기도 했지만 끝내 3~4%대의 시청률로 종영했다.

2014년 2월부터 8월까지 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 출연했다. 꽃보다 할배로 한층 주가를 올리던 이서진과 《웨딩드레스》 이후 무려 16년 만에 KBS 주말드라마로 컴백한 김희선의 결합이었다. 거기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습니다》등의 작품을 쓴 이경희 작가까지 투입된 드라마로 상당한 기대를 받았지만, KBS 주말드라마 불패신화를 깨버린 데다 경쟁사 MBC 개막장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 시청률이 밀려버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최고 시청률은 초반의 30.9%, 평균 시청률은 24%대를 기록하며 주말 드라마치고는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했다. 하지만 김희선의 연기는 꽤나 호평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2014 아시아태평양 스타 어워즈에서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5년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에 일진 출신의 억척스러운 엄마 '조강자' 역으로 출연했다. 딸로 출연한 김유정과는 실제 23살 차이로, 김희선의 첫 엄마 역할이었다. 드라마 전반을 뛰어다니며 모성과 액션을 소화했다. 비록 시청률은 낮았지만 '역시 김희선'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연기력도 한층 좋아졌다는 반응도 많이 얻었는데, 드라마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연기 칭찬만 들었던 드라마는 처음이라며 김희선 본인도 무척 만족해 했다.

2017년 6월부터 8월까지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 비주얼, 인품, 재력을 다 가진 주인공 '우아진' 역으로 출연했다. 드라마는 JTBC 드라마 역사상, 그리고 종편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김희선은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이며 우아하고 기품있으면서 똑부러지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극중 선보인 화려한 패션은 연일 화제였고 외모에 대한 칭찬 역시 끊이질 않았다. 김선아와 함께 드라마를 전적으로 이끌어 인생작을 만들었다는 평과 함께 그동안 부진했던 드라마 성적을 깔끔히 정리하며 본인의 스타성과 연기력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찬사를 받았다.

동시대의 인기 스타들이 작품 출연에 몸을 사리거나 CF로만 모습을 비추는 것에 비해 꾸준히 여러 드라마에 도전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가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고 열심히 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20대 초반 이미지로 먹고 살았던 시기는 오래전에 끝났음에도 지금까지 건재한 주연급 여배우로 활약할 수 있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스타성과 본인의 연기력 덕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화면 장악력이라는 거대한 재능에 더해 차근차근 쌓아온 연기력덕분이다. 2018년 현재 연기로 김희선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연차가 쌓이며 완성형 배우로 성장한 케이스이다.

3.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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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배우로 성형외과 의사가 뽑은 가장 완벽한 미인, 컴퓨터 미인 등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항상 일반인은 물론, 연예인이나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꼽는 실물이 가장 예쁜 연예인 1위에 꼽히곤 한다. 사진발, 화면발이 극악으로 안 받는 얼굴로 남녀 연예인 통틀어 최고라고. 비슷한 내용을 장동건 항목에서 본 것도 같은데 중국일본에서도 아시아 최고 미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수십년간 수많은 여배우와 연기를 했던 성룡이 자신과 연기했던 여배우중 가장 미인으로 김희선을 꼽기도 했다. 그중 가장 정점은 성룡과 함께 작업한 영화 《신화 - 진시황릉의 비밀》로 칸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세계적인 모델들을 키워냈고 샤론 스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에이전시를 맡고 있던 모델 계의 대모 마를린 고티에가 직접 찾아와 "나는 오늘 당신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라고 말을 건넨 것이다. 후에 에이전시에 김희선을 소속시키고 싶다고 계약서를 몸소 가지고 오기도 했다. 김희선의 외모에 대한 연예인들의 언급

사진작가 조세현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날 김희선이 몸이 매우 아픈 상태에서 화보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이후 결과물에선 아파서 창백했던 탓인지 평소보다 더 예쁘게 나와서 새삼 감탄했다는 일화도 있다.

한때 한예슬, 문채원 등의 후배 미인 배우들이 포스트 김희선이라며 주목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사실상 '포스트 김희선'이라고 불릴 여배우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18] 다만 김태희가 등장한 이후로는 포스트 김희선이라는 말이 조금 무색해진 감이 있다. 일단 대한민국의 대표적 미녀라는 차원에서는 김희선의 후속이 김태희지만, 김태희가 포스트 김희선이라기에는 외모를 제외하고는 배우로서 커리어와 대표작이 천지차이이기 때문. 최근에는 오연서가 김희선과 비슷한 외모로 주목받았다.

전성기에 중국에서도 "한국 제일 미녀"로 소개되어 1세대 한류여신으로 거듭났다. 그 당시 방문했을 때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급의 국빈대우를 받기도 했으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또한 2000년대 한국 관광 공사가 선정한 한류스타로 뽑히기도 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중국 방송 관계자들이 선정한 최고의 한류스타로 선정되었다. 참조 2012년에는 중국 미용계의 오스카상인 '코스모폴리탄 아시아 뷰티 어워드'에서 올해의 뷰티 아이콘상을 수상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7년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하여 모든 남성 MC들에게 '벽 밀고 고백하기' 게임을 했는데, 수없이 많은 아이돌 혹은 여배우들을 만나왔던 출연진들이 김희선에게는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으며, 이수근, 강호동, 서장훈은 기존의 철옹성 같던 이미지까지 무너트리며 얼굴이 빨개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클립영상 90년대 가요계의 최고 스타 중 하나였던 이상민 왈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었다"고 전해진다.

4. 스타일

김희선은 외모외에도 90년대 대표적인 스타일 아이콘으로도 유명했다. 드라마, 예능, 잡지 등에 나왔던 의상과 헤어스타일이 당시 10대 20대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행했었다.

5.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톱스타 김희선


https://mnews.joins.com/article/3608429#home

김희선은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많이 필요한 톱스타다.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포괄하는 '가장'이다.

김희선은 가장 어린 나이에 톱스타가 됐고,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친 톱스타다. 작품 속 그의 의상과 액세서리가 모두 유행이 된 점에서 스타일과 패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톱스타다. 가장 어린 나이에 연기 대상을 수상한 기록도 있다.(1998년 SBS 연기대상) 반면 김희선은 열애설 등 스캔들에 가장 많이 휩싸인 톱스타다.

동시에 연기력 논란도 가장 자주 휘말린 톱스타다. 게다가 너무 솔직하다 못해 천방지축으로 여겨진 톱스타다. 최근 들어서는 가장 인기에 미련을 두지 않는 톱스타로 여겨진다. KBS 2TV '컬러' '프로포즈' '웨딩드레스' 등에서 인연을 맺은 윤석호 PD는 이런 김희선을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톱스타"라고 정의했다.



■데뷔와 동시에 톱스타 등극

김희선은 데뷔와 거의 동시에 시대의 아이콘이 된 기록적인 존재다. 김희선은 1992년 고운얼굴선발대회 대상을 수상하며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듬해 KBS 2TV 청소년 드라마 '공룡선생'과 SBS TV '생방송 인기가요' 초대 MC로 데뷔했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눈부신 미모와 거침없는 자신감으로 연예계를 장악한 김희선은 1994년 KBS 2TV 특집극 '춘향전'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며 톱스타로 발돋움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7세였다. '춘향전'의 연출자였던 최상식 전 KBS 드라마국장은 "당시 오디션을 통해 성춘향을 선발했다. 그러나 김희선이 오디션에 참가한 순간 이미 성춘향 역은 결정됐다"고 회상했다.

김희선은 요즘 톱스타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94년~1999년 그는 한해 평균 3편 이상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쉬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TV 프로그램은 김희선이 충연한 프로그램과 출연하지 않은 프로그램 두 종류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김희선은 출연작 대부분을 크게 히트시키는 흥행 메이커였다. 쉴새없이 히트작을 만들어낸 점에서 진정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여겨질만 했다.

■끊임없는 논란에도 흔들림 없는 위상

어린 나이에 톱스타로 군림하면서 김희선은 끊임없이 논란에 휘말렸다. '연기 연습을 게을리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연기력 논란과 '선배들에게 천방지축으로 군다'는 예절 논란이다.

KBS 2TV '목욕탕집 남자들'에 출연할 당시 김희선이 대선배 중견 배우에게 버릇없이 말대꾸하다가 크게 혼났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전해 내려온다. '목욕탕집 남자들'의 제작사인 삼화프로덕션의 신현택 회장은 "김희선은 자유분방했다. 그래서 한 중견배우가 엄하게 꾸짖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김희선은 한결 같이 밝았고 자유분방했다. 대선배들에게 '젊음은 좋은 것'이라는 점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희선은 대본 연습을 게을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목욕탕집 남자들'의 김수현 작가가 "김희선 출연하면 대본 안쓴다"며 모처럼 대본 연습에 참가한 김희선을 내쫓았다는 소문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신현택 회장은 "김희선은 대단한 재능을 지녔지만 노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조금만 노력하면 정말 좋은 연기자가 될 거'라고 충고했다. 1~2개월 무섭게 노력하더니 대선배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김희선은 노력하는 연기자다. 내가 본 여배우 중 가장 예쁘고 열심히 하는 연기자다. 당시 내가 본 김희선 만큼 열심히 하는 여배우를 요즘은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수현 작가는 2000년 SBS TV '불꽃'에서 극중 드라마 작가 이영애를 통해 "난 김희선처럼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아는 애는 캐스팅 안 해요"라고 김희선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런 김수현 작가도 2001년 영화 '와니와 준하' 개봉 이후엔 "확실히 달라졌다. 많이 성숙해졌고 더욱 예뻐졌다"고 평가를 달리했다.

■미련없이 인기를 뒤로 하고 현모양처의 삶으로

김희선은 활동 기간 내내 연기력에 있어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필모그래프를 보면 누구보다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목욕탕집 남자들' '프로포즈' 등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신세대를 표현했고, SBS TV '토마토' '미스터Q' 등에서 씩씩한 캔디를 연기했다. MBC TV '안녕 내 사랑' '해바라기' '세상 끝까지' 등에서는 청순가련형의 눈물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작품이 모두 성공했으니 연기력 논란은 의미없는 손찌검에 불과했다.

김희선의 이미지를 가장 잘 살려낸 연출자인 윤석호 PD는 "김희선은 이제 막 하늘에서 내려온 천상의 인물 같은 이미지를 지녔다. 이미지를 살려내는 것만으로 작품은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그는 "김희선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자유분방한 영혼을 지녔다. 연출자를 즐겁게 하는 재미있는 친구다"고 말했다.

사실 2000년 이후 김희선은 부진했다. 영화 '비천무' '와니와 준하', SBS TV '요조숙녀' '스마일 어게인', MBC TV '슬픈 연가' 등의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김희선은 한층 성숙해진 선배의 모습으로 변함없는 톱스타다. 오히려 김희선 스스로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인상이었다.

'스마일 어게인'에 함께 출연한 이진욱은 "김희선 누나가 촬영장에 가장 먼저 나오고 연출자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다"라고 말했다. 김희선은 편안하게 일상을 즐겼고 좋은 베필을 만나 결혼해 최근엔 예쁜 딸도 낳았다.

김희선은 2006년 '스마일 어게인' 제작발표회에서 "2년 안에 결혼하겠다. 이후엔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 30세 이후 배우 김희선은 없을 수도 있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1년 남짓 지난 뒤 결혼했고 현모양처로 살고 있다. 선언한 대로다. 30세 이후 배우 김희선이 정말 없는 건 아닐지 걱정되기도 한다.

6. 그밖에

인형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성격에 술도 잘 마신다. 1990년대부터 알아주는 연예계 여자 주당이고 지인들 사이에선 별명이 토마토였다고 한다. 주연을 맡은 드라마 제목이기도 했지만 '토하고 마시고 토한다'의 줄임말로 그 정도로 술을 좋아한다. 당시 90년대에는 여배우들이 술을 즐긴다는 이야기가 돌면 광고 캐스팅에 지장을 줄 정도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 했는데, 당당하게 술자리를 좋아하고 주당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술을 즐겼다. 결혼한 후에는 주로 남편이랑 마시는데 남편도 꽤나 주당이고, 한번은 딸인 연아가 엄마가 숙취로 고생하자 "맥주로 해장하라"고 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일화들은 김희선이 직접 말한 것으로, 그녀가 토크쇼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도 이처럼 비밀 없이 속에 있는 말을 시원시원하게 내뱉는 성격 덕분이었다.

업계에서는 굉장히 당돌하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 목욕탕집 남자들 당시 대본리딩 현장에서 대선배들이 앉는 자리에 턱하니 앉는 바람에 배우 강부자로부터 큰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숙이기는 커녕 '자리에 이름 써있는 것도 아닌데 니 의자 내 의자가 어딨냐' 며 역으로 따졌던 일화가 유명하다. 또한 이 당시 대본 연습도 불성실하게 임하는 바람에 작가 김수현으로 부터 "앞으로 대본 리딩에 나오지 말라" 고 으름장을 받았음에도 기죽기는 커녕 정말로 이후 대본 리딩을 모두 불참해버렸고, 그 후 김수현 작가는 자기 드라마에서 배역의 입을 빌려 틈나는대로 김희선을 디스했다고 한다.[19] 이러한 김희선의 성격은 호불호가 극도로 갈려 '거만하고 버릇없는 연예인' 이라며 싫어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여담으로 게임 매니아다. 스타크래프트,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등의 게임을 즐겨 했고# 원사운드에 따르면 마비노기를 한창 할 땐 넥슨에 전화해서 "안녕하세요 저 김희선인데요, 아이템 좀 주세요."라고 한 적이 있다고(…) 템귀가 따로 없다 한번은 KOEI 삼국지를 하다가 태사자의 능력치가 너무 좋아서 같은 소속사 후배였던 가수의 이름을 태사자로 추천했다고 한다. 2012년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애니팡 66만점을 찍었다고 밝히며, 자세한 노하우를 설명하기도 했다. 2017년 넥슨의 모바일게임 신작 AxE의 광고를 찍었다.덕업일치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95학번으로, 2005년 2월 입학 10년 만에 졸업을 하였고 공로상을 받았다.#

연하의 아이돌 스타와의 스캔들이 있었다. 인기가요를 진행하면서 밝은 성격 탓에 오해도 많이 생겼고, 같은 기획사 아이돌을 응원해주는 것으로 인해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에릭과의 열애로, 둘은 실제로 오래 사귀었다. 그러나 에릭이 뜬금없이 잡지를 통해 '할 수 있다면 생방송으로 공개 청혼을 하고 싶다'고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양쪽 관계자 모두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고, 김희선의 어머니가 직접 에릭 술먹었냐 며 저격을 하는 등(...)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당시 김희선 측 어머니 뿐만 아니라 소속사도 전혀 모르는 사안이라며 꽤 당혹스러워했다고. SM 엔터테인먼트도 "우리와 합의된 인터뷰 아니다" 라며 곤혹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어쨌든 조용조용 잘 사귀다 난데없는 공개청혼 논란때문에 둘 다 흑역사로 끝난 연애사.

운동을 싫어해서 주로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심지어는 걷는 것도 싫어한다고. 그래서 스스로 지은 별명이 삼보승차, 삼초땡. (삼보or삼초간 걷다가 차를 탄다는 의미)

늦둥이다. 김희선의 부친과 모친이 30대 후반에 낳으셨다고 한다. 지금이야 30대 후반에 출산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그 당시 30대 후반 나이에 낳은 거면 굉장히 늦은 셈이다.

그녀의 연기 필모그래피를 보면 상대 남자배우와 호흡이 잘 맞는 경우 최소 두 작품 이상 같이 출연한 작품들이 많다. 신현준(바람의 아들, 웨딩드레스, 비천무), 김민종(머나먼 나라, 웨딩드레스, 미스터 큐[20]), 이창훈(컬러-화이트, 머나먼 나라, 프로포즈), 안재욱(해바라기, 안녕내사랑, 신의[21]), 류시원(프로포즈, 세상끝까지)[22], 손창민(바람의 아들,요조숙녀)[23]

김희선의 어머니는 연예계 헬리콥터 엄마. 일명 '희선마마' 로도 유명했다. 연예계 부모님 치고는 항상 자신이 대중매체에 나서서 인터뷰 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김희선이 어떤 구설수에 오를때마다 소속사보다 본인이 직접 앞장서서 "우리 희선이는 그런 애 아니에요" 라는 식으로 입장표명을 자주 하였다. 그래도 자식이 난처한 입장에 처할때는 확실히 강경하게 나가기도 하였다. 특히 누드집 사기 사건 당시에는 본인도 굉장히 분노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 대응이 꽤 현명한 행보로 평가받기에 지금와서는 '모범적인 연예인 부모' 라는 재평가도 많이 받는다. 몇몇 연예인 부모들이 이리저리 사업벌리고 사기치다 자식 이름에 먹칠하는 사례들과 비교하면 적어도 자식에게 폐 안끼치고 적정한 선을 유지하는 편이었기에 딱히 나쁘게 보는 시선은 없었다.

김희선의 부모님들은 당시 언론에 공개되었던 외모가 김희선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부모가 아니다' 라는 식의 루머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심지어 '내가 친부모다' 라며 나타났던 사람마저 있었을 정도로 꽤나 곤욕을 치뤄야 했다. 당시 월간지 인터뷰에 나서며 직접 해명하기도 했을 정도. 상술된 에릭의 공개 프로포즈 사건과 더불어 누드집 파문, 친부모 논란등 여러가지 사건 때문에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앞서 언급된 헬리콥터 엄마 이야기도 워낙 불미스러운 루머에 휩싸이다보니 본인이 나서기 힘든 상황이 만들어진 탓도 있다.

아무로 나미에의 팬인걸로 유명했다. 일본 기자회견 당시, 좋아하는 일본 연예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우타다 히카루, 아무로 나미에를 좋아한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90년대 몰래카메라 같은 프로그램에서 채널V 라고 속인 뒤,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합의 안 된 인터뷰라 계속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김희선이 "이거 아무로 나미에도 인터뷰했던 방송이에요" 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반응이 180도로 바뀌어(...) 생글생글한 태도로 인터뷰를 임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 외 김희선이 입고 나왔던 스타일링 측면에서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아무로 나미에 벤치마킹 같다' 는 의견이 많았다.

6.1. 언제 태어났는가?

생년월일에 대한 의혹이 존재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977년 6월 11일생이 맞다. 과거 김희선의 생부 논란이 있었을 때, 언론에서 김희선의 생년월일을 조회해 본 결과 1977년생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김희선의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은 1977년 2월 25일이다. 기사에 따르면 김희선 부모님의 혼인신고와 김희선의 출생신고가 1981년에 한달 간격으로 이루어진 걸 확인할 수 있다. 참조. 따라서, 김희선은 주민등록상의 나이로 국민학교를 세는나이 7살에 입학하고, 대학교도 95년에 들어갔다. 연예계에 데뷔하며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희선은 1976년생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프로필에서 보듯이 그녀의 데뷔초기 프로필을 보면 호적상 나이인 1977년으로 표기된 경우도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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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에 출연해 본인을 23살[24]로 소개하기도 했다.

김희선 본인은 매년 자신의 생일을 6월 11일로 기념한다.

7. 출연 작품

7.1. 영화

개봉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97년 패자부활전 은혜 주연
1999년 자귀모 진채별
카라 장지희
2000년 비천무 설리
2001년 와니와 준하 와니
2003년 화성으로 간 사나이 소희
2005년 신화 - 진시황릉의 비밀 옥수공주 중국영화
2011년 전국 : 천하영웅의 시대 중국영화 • 특별출연

7.2. 드라마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비고 최고시청률
1993년~1995년 SBS 공룡선생 김희선 주연
1994년 KBS1 춘향전 성춘향 주연 • 추석특집극
1995년 SBS 李가사 크리스티 이준희[25] 주연
KBS2 바람의 아들 이연화
1995년~1996년 목욕탕집 남자들 김수경 조연 53.4%
1996년 KBS2 컬러 - 화이트 김혜진, 송은영 주연
1996년~1997년 머나먼 나라 서운하 47.2%
1997년 KBS2 프로포즈 김유라 35.6%
1997년~1998년 SBS 뉴욕스토리 재인
1997년 KBS2 웨딩드레스 김두나 32.5%
1998년 MBC 세상 끝까지 한서희 30.6%
SBS 미스터Q 한해원 45.3%
1998년~1999년 MBC 해바라기 한수연 38.2%
1999년 SBS 토마토 이한이 52.7%
MBC 안녕 내 사랑 서연주 34.5%
2003년 SBS 요조숙녀 하민경 22.3%
2005년 MBC 슬픈 연가 박혜인 19.7%
2006년 SBS 스마일 어게인 오단희 10.2%
2008년 온에어 본인 특별출연
2012년 신의 유은수 주연 12.2%
2014년 KBS2 참 좋은 시절 차해원 30.3%
2015년 MBC 앵그리맘 조강자/조방울 9.9%
2016년 환성 : 신들의 전쟁 연희 중국 드라마 • 특별출연
2017년 JTBC 품위있는 그녀 우아진 주연 12.1%
2018년 tvN 나인룸 을지해이 주연 6.2%
드라마 커리어로만 본다면 동나이대에 김희선만큼의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기록한 배우는 현재도 없다. 사실 동나이대에 한정하지 않아도 과장 조금 보태어 국내에서는 전무후무하다고 봐도 좋다.

8. 기타 활동

8.1. 방송

출연 연도 방송사 프로그램 역할 비고
1993년 SBS SBS 인기가요 진행자
1995년 MBC TV시간여행
1996년~1998년 SBS 생방송 TV가요 20
1997년 SBS 가요대전
1998년 SBS 가요대전
추석특집 스타쇼 김희선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드림콘서트
KMTV KMTV 가요대전
1999년 SBS 결식아동돕기 기금 마련 사랑의 콘서트
2000년 설특집 스타쇼 김희선의 아주 특별한 선물
2013년 2월 19일~2013년 10월 1일 화신 - 마음을 지배하는 자
2017년 5월 22일~2017년 12월 25일 O'live 섬총사 고정출연
2018년 1월 15일~2018년 4월 2일 토크몬 진행자

8.2. 예능

8.3. 교양

  • 2009년 MBC 휴먼다큐 사랑 -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Ⅲ (내레이션)

8.4. 라디오

9. 광고 및 홍보대사

9.1. 광고

  • 1993년 롯데푸드 꽃게랑 (데뷔작)
  • 1993년 한국쉐링 아젤리아 여드름 치료제 with 015B
  • 1993년 서울우유 리이브
  • 1993년 롯데푸드 통통 (아이스크림)
  • 1993년 롯데제과 슈가프리껌
  • 1993년 오리온 미네뜨 (초콜릿)
  • 1993~1994년 롯데칠성음료 하이칼스
  • 1995년 애경산업 그랑비아샴푸
  • 1995~1996년 해태제과 안전지대 (아이스크림)
  • 1996년 한국전력 전기절약캠페인 (공익 광고)
  • 1996년 LG전자 LG프리웨이 with 전인화김희애 등[26]
  • 1996년 해태음료 갈아만든 배
  • 1996년 중흥건설 거평프레야 (쇼핑몰)
  • 1996년 해태제과 쿨사이다
  • 1996년 보루네오 가구
  • 1996년 한독 씨메이저 (비타민 음료)
  • 1996년 한국샤프 미니 콤포루카 (오디오)
  • 1996~1998년 라미화장품 끄레앙, 야채베타
  • 1997년 대현패션 페페 (여성 의류)
  • 1997년 SK텔레콤 디지털017 with 배종옥송승환
  • 1997년 삼성전자 삼성독립만세 냉장고 따로따로냉장고
  • 1997년 삼성전자 삼성세탁기 수중강타세탁기 with 고두심
  • 1997년 삼성전자 삼성와이드폰 매직스테이션 with 장동건
  • 1997년 해태htb 썬키스트 레몬에이드 (음료)
  • 1997년 해태제과 포테칩
  • 1998년 KT 원샷018
  • 1998년 삼성전자 애니콜PCS
  • 1998년 마이젯 프린터
  • 1998~2000년 신원패션 베스띠벨리 (여성 의류)
  • 1999~2000년 웅진출판 한글짝꿍 학습교재, 곰돌이웅진아이큐
  • 1999~2000년 파리크라상 파리바게트
  • 1999~2001년 라미화장품 지오
  • 1999~2002년 한국후지필름 후지필름
  • 1999~2006년 미니골드 (주얼리) with 장동건
  • 2000년 한국후지필름 인스탁스 (미니카메라)
  • 2000년 삼성SDS유니텔
  • 2001년 오뚜기 야채야음료
  • 2001~2003년 닉스 인터내셔널 소 베이직 (의류)
  • 2002년 LG전자 디오스 냉장고
  • 2002년 오리온 오리온 초코파이 with 전인화김규리박용하최정윤, 배민희 등[27]
  • 2002년 한국후지필름 파인픽스
  • 2002~2003년 우리금융그룹 우리카드 with 이병헌
  • 2002~2007년 인디에프 조이너스 (여성 의류)
  • 2003~2005년 DHC화장품
  • 2003~2006년 대우자동차판매 이안 (아파트)
  • 2004년 한국관광공사 - 중국 편 with 장동건
  • 2004년 LG전자 청신 에어컨 (중국 광고)
  • 2004년 LG전자 LG 냉장고 귀빙냉장고 (중국 광고)
  • 2007년 LG생활건강 라끄베르 (화장품)
  • 2008~2011년 더베이직하우스 VOLL (여성 의류)
  • 2009~2010년 대상청정원 마시는홍초
  • 2009~2010년 (주)스킨푸드 아름다운 술 달 (화장품)
  • 2010년 한화L&C 한화 칸스톤
  • 2010년 남양유업 드빈치 애경산업 에스따르샴푸
  • 2010~2012년 미니 골드
  • 2011년 드마리스
  • 2011~2012년 보령메디앙스 퓨어가닉
  • 2012~2015년 엔유씨전자 갤럭시 원액기
  • 2012~2016년 KGC라이프앤진 동인비 (한방 화장품)
  • 2013년 한국코카콜라 미닛메이드
  • 2013~2014년 PAL&C PAT (의류)
  • 2015년~ 인디에프 조이너스 (여성 의류)[28]
  • 2015년 웅진씽크빅 웅진북클럽
  • 2016년~ 베지아쿠아 친환경세제
  • 2017년 랑콤
  • 2017년 넥슨 AxE
  • 2017년 오뚜기 3일 숙성카레
  • 2017년~ GNC
  • 2017년~ 참나무통 맑은이슬
  • 2017년~ FENDI
  • 2018년 LG생활건강 이자녹스 (화장품)
  • 2018년 골프웨어 임페리얼
  • 2018년 LG생활건강 꽃담초
  • 2018년 LG생활건강 아우라
  • 2018년 LG생활건강 샤프란
  • 2018년 LG생활건강 한장세제 테크
  • 2018년 LG생활건강 세탁세제 피지
  • 2019년 파파존스

9.2. 홍보대사

  • 1999~2000년 프랑스관광부 한불명예친선대사
  • 2006년 CJ 중국영화제 홍보대사
  • 2010년 대한민국 통합의학박람회 홍보대사

10. 수상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92 고운 얼굴 선발 대회 대상
1996 제3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신인연기상 목욕탕집 남자들
KBS 연기대상 우수연기상 《머나먼 나라》
1998 SBS 연기대상 대상 미스터Q
1999 SBS 연기대상 SBSi상, 빅스타상 토마토
2000 제21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비천무
2001 제22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와니와 준하》
2002 제38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2005 제39회 납세의 날 국무총리 표창
2007 제3회 앙드레 김 베스트 스타 어워드 스타상
2009 제4회 앙드레 김 베스트 스타 어워드 스타상
2012 제9회 코스모 뷰티어워드 올해의 아이콘
제20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드라마 여자 최우수상 신의
2014 아시아태평양 스타 어워즈 장편드라마 여자 최우수상 참 좋은 시절
2015 아시아태평양 스타 어워즈 중편드라마 여자 최우수상 앵그리맘
MBC 연기대상 10대 스타상
2016 아시아태평양 스타 어워즈 아시아태평양 스타상


[1] 생일에 대한 이야기는 하단의 언제 태어났는가?를 참고[2] # 현 대구광역시. 참고로 부모님도 대구 출신이시라고 한다.[3] 김해김씨라는 말도 있다. 확실한건 불명. 나중에 김희선의 김씨 본관이 정식으로 알려지면 다시 또 알려주길 바람.[4] 김희선 다음 팬카페 운영자의 말에 의하면 종교가 없다고 한다.[5] 연기 학원에 등록했는데, 이미 예선이 끝나고 본선이 들어간 대회에 김희선을 바로 넣어줬다고 한다. 결과는 우승.[6] 빙그레의 스낵 제품과는 다른 꽃게 모양의 모나카형 아이스크림이다. 신해철의 밴드 N.EX.T와 동반 출연해 데뷔곡 '도시인'이 BGM으로 삽입되었다.[7]드라마를 연출한 최상식PD가 "당차고 자신만만한 모습이 고전적 춘향이와는 정반대인 성격으로 보여서 캐스팅했다"라며 "앞으로 김희선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예언했었다.[8] 하루 팬레터가 200여통이 왔다고 했다.[9] 종영 기준[10] 《안녕 내 사랑》은 당시 경쟁작인 SBS 드라마 《퀸》 때문에 고전했지만, 《퀸》 종영 후 가파르게 상승해서 마지막엔 34.5%라는 좋은 시청률을 남겼다. 반면 《웨딩드레스》는 초반엔 30%대를 넘는 기염을 토했으나 'IMF 시대에 역행하는 사치성 드라마'로 낙인찍혀 결국 중반 이후 15%대로 시청률이 떨어져 22회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11] 당시에는 남자 배우의 위상이 여자 배우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김희선은 그 모든 남자 배우들을 자기 밑으로 둘 수 있었던 최고의 스타였다.[12] 한국 영화1970년대부터 수상기의 보급으로 연속극에 점차적으로 영상매체로서의 지분을 상실해 왔다. 급기야 1980년대에는 에로영화 범람으로 인한 질적 하락으로 연속극은 물론 헐리우드, 홍콩 영화와 비교하여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았고, 이러한 상태는 1990년대까지도 지속되었다. 물론 1990년대에는 영화계의 내적인 노력으로 일부 질적 발전을 이루었으나 구매력 자체도 지금보다 낮았으므로 영화관람 연인원도 확실히 떨어졌고 따라서 인기에서는 여전히 연속극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영화가 드라마를 대중의 인식에서 능가하기 시작한건 쉬리의 흥행 이후이다.[13] 드라마 해바라기에서 김희선이 실삔을 맨 모습을 보고 실삔이 유행하기도 했고, 토마토에서의 곱창밴드는 유명했다.[14] 당시 김희선은 반드시 '영화배우 김희선'으로 불리우길 원한다고 영화 출연할때마다 인터뷰를 했었으나, 드라마와는 정 반대의 결과만 연속으로 받다보니 '와니와 준하'이후부턴 자제했다. 사실 한류로 해외시장에서 한국드라마의 위상이 한국영화를 추월한 2000년대 후반 전까지는 드라마 배우는 '탤런트'라고 불리며 하위직 취급을 받았고 '영화배우'만이 배우로 대접받는 분위기였다.[15] 그러나 《세상 끝까지》나 《안녕 내사랑》 같은 작품에서의 김희선을 보면 결코 가볍고 발랄한 연기만 잘하는 배우라 여기기 힘들다. 데뷔 초 아역에서 성인연기자로 넘어가던 시기에 출연한 바람의 아들이나 '머나먼 나라'에 비련의 여주인공 역을 맡아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16] 자세하게 설명된 포스팅. 참고로 인터넷 상에 떠돌고 있는 김희선 누드라고 하는 사진은 일본 배우 칸노 미호의 사진이다.[17] 본래 두 사람은 중앙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김희선은 '진희경, 박영선, 이영애'와 함깨 조세현 작가의 뮤즈였다.[18] 외모로는 어떻게든 비빈다고 쳐도 화려한 출연기록을 따라잡기는...[19] 이후 김희선과의 관계는 김수현쪽이 와니와 준하의 연기를 호평하며 조용히 잘 매듭된 걸로 보인다. 빈말이 아니라 김수현은 이후 사랑과 전쟁 리메이크 판에서 김희선을 캐스팅하려고 하였으나, 이번엔 김희선 측이 거절해 불발되었다.[20] 다만 '웨딩드레스'의 경우 김민종은 김희선이 아닌 이승연과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이후 '미스터 큐'에 함께 출연할 당시 김민종이 김희선의 뺨을 때렸다는 말도 나돌았다.[21] '신의'에서는 안재욱이 특별출연이다.[22] 류시원은 훗날 예능프로에서 김희선을 깠다.[23] 손창민과 김희선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선후배지간이다.[24] 당시 1976년생의 한국나이[25] 제목 그대로 성이 '이'씨라 '이가사 크리스티'라고 불리움[26]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 동문들과 함께 출연, 광고료는 모교 발전기금 기탁하였다.[27]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 동문들과 함께 출연, 광고료는 모교 발전기금 기탁하였다.[28] 8년 만에 전속모델로 재발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