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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24242><colcolor=#fff> 최민식 崔岷植[훈음] | Choi Min-sik | |
출생 | 1962년 5월 30일[2] ([age(1962-05-30)]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3] | |
출신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전주 최씨 (全州 崔氏)[4] |
신체 | 172cm B형 |
가족 | 부모님, 형 최찬식, 남동생 최광일, 최승준(1974년생) |
배우자 김활란(1999년 결혼)[5] | |
학력 | 서울숭덕국민학교[6] (졸업) 삼선중학교 (졸업) 대일고등학교 (7회 / 졸업) 동국대학교 예술대학[7] (연극영화학[8] / 학사)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9] |
취미 | 공연 관람, 수집, 그림 그리기[10] |
종교 | 불교[11] |
소속사 | 무소속[12] |
데뷔 | 1981년 연극 <우리 읍내> 1990년 KBS2 드라마 <야망의 세월> 데뷔 [age(1981-01-01)]년차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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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리 시대, 가장 뜨거운 얼굴.
그는 주름 하나, 숨소리 하나에도 인생을 담아낸다. 아무리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 속의 인물이라도 최민식이 연기하면 마치 어딘가에 꼭 그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은 현실성이 느껴진다.
조폭 같은 검사, 북한 특수요원, 아내의 불륜에 괴로워하는 소시민, 사랑에 빠진 삼류 깡패, 천재 예술가, 짐승 같은 연쇄살인마, 그리고 역사적 영웅이 최민식의 얼굴을 나눠가졌지만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그릇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는 크고 깊은 배우다.
CGV 피카디리 1958 - 2010년대 명예의 전당 배우 선정
대한민국의 배우.그는 주름 하나, 숨소리 하나에도 인생을 담아낸다. 아무리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 속의 인물이라도 최민식이 연기하면 마치 어딘가에 꼭 그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은 현실성이 느껴진다.
조폭 같은 검사, 북한 특수요원, 아내의 불륜에 괴로워하는 소시민, 사랑에 빠진 삼류 깡패, 천재 예술가, 짐승 같은 연쇄살인마, 그리고 역사적 영웅이 최민식의 얼굴을 나눠가졌지만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그릇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는 크고 깊은 배우다.
CGV 피카디리 1958 - 2010년대 명예의 전당 배우 선정
2. 2000년대 초반 위상과 인기
한때 2000년대 초반 엄청난 티켓파워와 에너지를 가진 배우로서 최정상의 자리를 고수하면서, 송강호와 함께 충무로를 이끌어갔다.엄청난 에너지와 캐릭터 몰입력이 특징인 연기파 배우로, 송강호, 이병헌과 함께 2000년대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파 트로이카 중 한 명으로 불린다.[13][14] 특히 한국의 느와르, 스릴러물에 있어선 자타공인 1인자.
대표작으로는 해피 엔드, 쉬리, 파이란, 취화선, 올드보이, 꽃피는 봄이 오면, 친절한 금자씨, 악마를 보았다, 명량, 대호, 침묵, 특별시민,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카지노, 천문: 하늘에 묻는다, 파묘 등이 있다.
지금은 영화쪽에서만 비중을 두고 큰 활동을 하고 있지만, 예전엔 연극, 드라마에서 수많은 주인공과 조연을 했던 배우이다. 드라마로는 야망의 세월의 꾸숑, 서울의 달의 박춘섭, 제4공화국의 김대중, 다시 만날때까지의 한석진, 아빠는 시장님의 한진국, 사랑과 이별의 김창기같은 역할을 하였다.
1999년 쉬리를 통해 슬럼프를 완전히 씻어내고, 1999년 영화 해피 엔드를 시작으로 2001년 영화 파이란, 2002년 영화 취화선, 2003년 영화 올드보이까지 영화에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력을 연타석으로 성공시키면서, 과거에 90년대 흥행보증수표로 이름을 날렸던 '한석규'의 최고 전성기 부분의 입지를 한자리 차지하였고, 그 이후로 송강호와 함께 확실하게 주연자리를 잡았으며 2000년대 초반 충무로 르네상스 시대를 연 배우 중 하나로 압도적인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2001년 파이란 에서는 건달 깡패 이강재역을 연기하면서 위장결혼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스토리의 이야기로서 영화의 흐름과 극을 잘이끌어갔다는 평가를 받았고,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시키면서 그해 2001년, 2002년에 연이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15] 점점 충무로 트로이카로 자리매김을 하였고, 다음해인 2002년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 역할을 맡으면서 또한번의 좋은연기를 보여준것과 동시에 비공식 짤로 유명한 아햏햏을 탄생시켰다. 다음해인 2003년 영화 올드보이는 전국 33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으며, 한국 3대 영화상인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등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옥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으며, 해외에서도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올드보이' 다음으로 박찬욱 감독과 두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악역으로 출연하면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같은 해인 류승완감독에 주먹이 운다에 출연하면서 류승범의 스승인 강태식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또 한번의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주먹이 운다를 끝으로 2000년대 후반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면서 관객들에게 점점 잊혀져가는 배우가 되었으나 2010년 영화 악마를 보았다로 악마 역할의 연쇄살인마 장경철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2012년에는 충무로의 풍운아로 등장한 하정우와 함께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첫 호흡을 맞추면서 찰떡같은 케미를 이루었고 흥행도 472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크게 성공하였다. 이 작품으로 최민식은 올드보이이후 9년만에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3년 영화 신세계에서 골드문을 장악하기위해 조직폭력집단 내에서 신세계 프로젝트 임무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는 캐릭터 강형철역을 맡으면서 이정재, 황정민과같이 영화 속 내에서 밀리지 않는 존재감과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2014년에는 영화 명량이 1761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면서 그동안 연이 없었던 천만배우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2000년대 충무로 르네상스를 시대를 연 트로이카 3인방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 모두가 천만배우가 되었다.
3. 연기 활동
"...이번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부산에서 어제 새벽에 서울로 올라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20대,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등학교 때 영화를 하고 싶다, 연극을 하고 싶다, 그렇게 꿈을 키웠던 시절의 최민식과 지금의 최민식이 과연 어느 정도 맞닿아있는지를... 정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너무 많이 변했고, 너무 많이 물들었고, 좋은 작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이 영화가 흥행이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 이런 것부터 많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그 여백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져서 지켜보겠습니다. 세상 살면서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항상 느끼고, 그렇게 자기위안 삼아 보지만 그래도 끝까지 그 여백을 지켜보도록 노력하고, 더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5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수상 소감 中
- 5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수상 소감 中
영화 《루시》에서 미스터 장역을 맡은 모습 |
1962년 5월 3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에서 함경북도 북청군 출신의 아버지와 경기도 의정부시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원래는 연기에 관심이 없고 학교 생활에도 별 흥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대일고등학교 2학년 때 13번 좌석버스를 타고 잠이나 자러[16]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외가이기도 한 의정부에 있는 중앙극장에 가곤 했는데 처음에는 정말 잠만 자다가 무심코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주연의 '스타 탄생'을 보고 처음으로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에 우연히 원로 영화감독인 하길종의 에세이인 '백마 타고 온 또또'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고 영화 관련 서적은 닥치는대로 읽었다고. 그렇게 무작정 영화감독을 꿈꾸기 시작했는데 신일고등학교에 다니던 형의 주선으로 당시 명동에 있던 필립이라는 경양식집에서 신일고의 국어교사이자 영화평론가인 변인식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그에게 영화감독은 공부할 게 많으니 학생 때는 일단 공부에 전념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영화감독의 길을 찾아도 늦지 않는다는 어쩌면 뻔한 충고를 받고 그 진지함에 감동을 받아 대학에 입학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큰 싸움에 휘말려[17] 얼굴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는데, 성형외과를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고 한다.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18]에도 불구하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기로 했다. 연극영화과는 실기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고3 때 '극단 뿌리'에 137,000원을 내고 3개월 연구단원으로 입단했다. 이때 생애 첫 연극인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에서 주인공 조지 역을 맡으면서 데뷔했다. 그때부터 연기에 두각을 나타냈는지 정식 단원으로 입단하라는 제의도 뿌리치며 이듬해 결국 13.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82학번으로 입학한다.[19] 당시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는 1학년 때부터 연극에 출연하도록 했고 최민식도 테드 모젤의 '즉흥극'에서 연출가 역을 맡았다. 이를 지켜 본 안민수 교수[20]가 배우가 될 것을 권유했고 이후에 '작은 여우들', '내 아들을 위하여',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여러 연극에 참여하며 미친 연기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렇듯 영화계나 TV 쪽에서는 낯선 얼굴이었지만 연극계에서는 천재라는 찬사를 듣던 유망주였다. 이후 독립을 하고 각종 아르바이트와 연극을 병행하다가 실험극단에 입단했다. 그리고 입대[21]를 하고 3년 간의 군 복무를 걸쳐 전역 후에 연극 '에쿠우스'에서 알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이 연극을 나연숙 작가가 보고 담당 PD에게 추천해 1990년,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휘향의 아들이자 극중 별명인 '꾸숑'[22] 역으로 드라마에 데뷔했다. 작중 보인 잘생긴 얼굴임에도 거친 이미지는 한동안 최민식의 아이덴티티가 될 것이라 여겨졌으나 이후 연기 변신을 시도해 '거칠기는 한데 덜 떨어진' 즉, 동네 날건달 아저씨로의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심지어 폐인스러운 몰골까지도 넘나들면서 점차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반항적인 꾸숑의 이미지를 지우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반듯한 이미지의 한석규와 이미지 체인지를 했던 서울의 달이다.
야망의 세월에 나오던 20대 시절 모습. 옆에 있는 사람은 바로 이동준. |
최민식의 회고에 따르면 연극만 하던 시기에는 3개월에 50만원을 벌었는데 드라마에 데뷔하니 2주 마다 수백만원의 출연료를 받고 거기에 광고에 출연하기 시작해 월 수입이 수백만원에 이르러 정신이 나갔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연극 '실비명'에서 만난 배우 이화영과 결혼을 한다. 그 뒤에도 드라마 몇 편에 출연했는데 시청률이 좋지 않았고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인기는 한 순간에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1994년, 서울의 달에 출연해 시골청년을 실제 시골청년보다 더 순박하고 촌티나게 연기했고 최민식의 인기는 다시 돌아왔다. 서울의 달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후배인 한석규와 출연했는데 당시 김운경 작가는 둘의 연기력을 불신하여 출연을 반대하며 김영철과 유인촌을 추천했다고 한다. 그래서 1화 방영 당시까지 잠적을 했는데 1회 방송이 나간 후 홍대에서 최민식과 한석규를 불러 맥주를 사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이후 드라마 몇 편[23] 에 더 출연했지만 시청률이 저조해서 또다시 슬럼프가 왔다. 1996년에 드라마 '그들의 포옹'에 전직 형사 역으로 출연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소매치기를 발견하고 뒤쫓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대본의 일부가 수정되긴 했지만 하차하지 않고 목발을 짚고 출연했고 설상가상으로 다른 사고까지 겹쳐 허벅지까지 깁스를 해야만 했다. 이때 이화영에게 전 재산을 위자료로 주며 이혼한다. 그리고 낙담하여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의 소형 아파트로 이사간 뒤 매일 술에 찌들어 살았다고 한다. 다행히 치료 끝에 불구 신세는 면했지만 여전히 술에 찌들어 친구들에게 꼬장을 부리기도 하고 전봇대를 이마로 들이받기도 했다고.
그렇게 몇 편의 연극[24] 과 드라마[25] 를 전전하다가 1999년, 마침내 쉬리에서 주연을 맡으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영화계 인사들과의 친분 관계가 좋은 편으로 같이 몇 편을 찍었던 한석규, 송강호와도 좋은 동료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서로 상대방의 연기에 조언을 해주는 관계라고 한다. 공형진의 경우 강심장에 출연해 파이란 촬영 당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는데, 12월 31일에 선술집 씬을 촬영하고 (해를 넘겨서) 최민식이 단독으로 촬영하는 현장을 찾았는데, 촬영이 끝나자마자 최민식이 공형진의 인사도 받지 않고 휙 가버리더니 바로 전화를 해서는 득달같이 12월 31일 공형진과 찍었던 선술집 씬에 대한 비난과 욕설을 퍼부으며 "나 보겠다고 여기 올 시간에 네 캐릭터에 대한 연구나 더 해라. 네가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영화에 피해가 된다"고 하는 바람에 공형진은 감독에게 사정해서 선술집 씬을 다시 찍었고, 영화 촬영이 끝나갈 무렵 최민식은 공형진을 불러 "지금의 너와 다시 처음부터 파이란이라는 영화를 찍으면 좋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고 공형진을 인정했고, 그때 공형진은 이런 게 바로 연기 대가구나 싶었다고 한다.
고액 개런티를 받는 배우라는 점에서 영화계의 말단 스태프 대우가 관심을 받을 때 한국 영화계를 걱정한다면서 스태프는 안중에도 없냐며 까였었다. 특히 이 문제를 제기한 강우석 감독과는 이후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26] 또한 이런 일로 인해 최민식은 42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홍보대사로 선정되었는데 이 일로 인해 대종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최민식와 함께 홍보대사로 선정된 문소리가 최민식의 빈 자리까지 대신 맡았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2005년 이래 근 5년간 저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을 제외하고는 영화 출연이 없었다. 올드보이라는 작품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며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행보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그저 아쉬운 행보였다. 위에 소개된 대로 자기가 먼저 거절한 것인지 영화계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 출연 제의가 끊긴 것인지는 불명. 그런데 후자인 경우에 무게가 쏠리는 것이 사채광고 출연으로 인한 영화배우 이미지 실추로 한동안 충무로에서 거의 제의가 끊긴 적도 있었고, 강우석 감독이 '충무로 1인자'다 보니 대놓고 강우석 감독을 깐 것이 되어 강우석 감독 라인이 주요요직을 차지하는 충무로에서 왕따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 개봉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로 복귀, 살인마 장경철 역을 제대로 소화하며 몰입도 높은 엄청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영화가 워낙 잔인해서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잔인성에 비해 높은 성적을 기록한 데에는 최민식의 연기도 꽤나 한몫했을 것이고, 최민식도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다시 안착했다.
2021년 이후 소속사가 없이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
3.1. 연기력
메소드 연기를 기반으로 한 강렬한 감정표출과 특유의 카리스마나 분위기 조성능력으로 느와르, 액션, 스릴러 장르의 무게감 있는 캐릭터 뿐만 아니라, 지적인 선생님, 싸이코패스, 힘없는 소시민, 찌질하고 비열한 범죄자, 바보스러운 코믹 캐릭터, 정치인, 장군 등 아래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모든 배역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이다. 심지어 해당 영화가 흥행이나 비평에 실패해도 최민식이 연기한 캐릭터는 살아남을 정도로 연기에 있어서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기력 면에서는 대한민국 배우들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히 압도적이면서도 독보적인 면으로 최고의 연기력을 가진 배우를 꼽을 때 항상 서너 손가락 안에 손꼽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연기력을 보유하고 있다.최민식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연극 → 방송 드라마 → 영화 테크트리를 탔다. 배우로서 웬만한 메이저 무대는 전부 경험해봤다는 이야기[27]이다. 아닌 게 아니라 최민식은 정극뿐만 아니라 가벼운 코미디물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연기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배우로서 이만한 입체적인 커리어를 가진 엘리트 코스의 배우는 정말 찾기 힘들다. 다만, 최근에 대중들이 기억하는 연기 이미지가 너무 강한 느낌인지 최근에는 이러한 선굵은 캐릭터 연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28]
최민식의 대단한 점은 배우 지망생이었던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기자로서 정석 테크트리를 탐과 동시에 무명도 겪지 않은 채 꾸준히 무리의 중심에 위치하며 주목을 받아온 배우라는 점이다. 실제로 동국대 시절, 연영과 내에서 연기를 가장 잘하는 에이스로 손꼽혔으며, 한창 연극에 몰두하던 1980년대에 이미 '에쿠우스'라는 작품을 통해 한국 연극계의 괴물신인으로 인정받았다. 드라마에서도 서울의 달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히트작을 만들었고, 영화판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본좌로 등극했다. 중간에 개인적인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최민식이라는 인물은 꾸준히 연기 괴물 혹은 경지에 오른 배우로 인정받아온 셈이다. 실례로 최민식 못지않은 대배우로 손꼽는 전도연과 이병헌의 경우 연극영화과와 연극 무대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방송무대에 데뷔하여 한동안 '실력은 없고 비주얼만 좋은 청춘스타' 인식을 벗지 못했으며, 송강호는 드라마에는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고 영화계에서 씬스틸러로 뜨기 전까지 무명 연극배우로 배고픈 시절을 겪었어야 했다. 무명도 겪지 않으면서 꾸준히 주목을 받고 정석 테크트리를 전부 경험해 본 배우는 이처럼 드문 셈이다.
같은 정통 메소드 연기를 하는 이병헌 역시 엄청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지만, 주연으로서 영화사에 남긴 굵직한 캐릭터들이나 임팩트(최익현이나 오대수 등등)에서는 아직 최민식의 위상에 도달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29]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송강호는 메소드 연기와는 거리가 조금 있는 생활 연기법으로 승부하기에 단순 메소드 연기로는 최민식이 국내 최고다. 사실 이게 최민식과 송강호가 라이벌인 이유이기도 하다. 둘 모두 역대급 연기력과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으면서 서로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연기를 하기 때문에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 것이다. 최민식이 끝없이 불타오르는 뜨거운 연기에 강점이 있다면 송강호는 완벽히 절제되고 정확한 연기에 있어서 따라올 자가 없다. 반대로 송강호가 자연스러운 감정 전달과 생활 연기에 일가견이 있다면 최민식은 다양한 종류의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데 굉장히 훌륭하다. 해외로 치면 톰 행크스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송강호와 최민식의 관계 정도 되겠다. 사실 관객이 느끼는 연기 스타일로 보자면 더 예전 배우인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관계가 더 비슷하다. 이 경우 배우의 커리어가 진행되는 과정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 실제로 최민식은 로버트 드 니로에게서 영향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고전주의자 최민식과 자연주의자 송강호가 한국 영화계의 굳건한 두 개의 축이라고 평가했다.
정통 연기를 전공하고 메소드 기법에 바탕을 둔 연기를 한다. 영화 《파이란》 이강재 역을 맡았을 때는 실생활에서도 어느 순간 3류 깡패로 둔갑했었다는 주위의 전언이 있다. 하지만 40대 이후로는 이런 방식의 연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듯하다. 결정적인 계기는 《악마를 보았다》에서 살인마 역을 맡았을 때였는데, 본인의 입으로 "너무 몰입하면 난 지금 구치소에 있어야 한다"고 했고,[30] 이 말을 들은 주위 스태프들은 추임새로 "그럼 저희가 사식으로 군만두를 넣어드리겠다고 했다"고 했다.
악마를 보았다 촬영 이후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보는 이들도 그랬거니와, 연기를 하는 최민식 역시 쉽지 않았다. 최민식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살인마의 ‘살’자도 다신 안 하고 싶다”며 손사레를 쳤다.
뿐만 아니라 최민식은 “영화 촬영을 하면서 평소 운동하러 가던 동네 피트니스 센터 엘리베이터에서 간혹 친근감을 표시하던 아저씨가 반말로 어디 최씨냐고 물어보자 ‘근데 이 새끼 왜 반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승강기 비상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그 순간 나에게 섬뜩함을 느꼈다.”며 살인마 연기에 따른 후유증을 털어놨다[31]
- 인터뷰 기사
뿐만 아니라 최민식은 “영화 촬영을 하면서 평소 운동하러 가던 동네 피트니스 센터 엘리베이터에서 간혹 친근감을 표시하던 아저씨가 반말로 어디 최씨냐고 물어보자 ‘근데 이 새끼 왜 반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승강기 비상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그 순간 나에게 섬뜩함을 느꼈다.”며 살인마 연기에 따른 후유증을 털어놨다[31]
- 인터뷰 기사
3.2. 작품별 상세
1992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6학년 2반 담임인 김정원 선생님으로 분하여, 엄석대의 절대권력을 무너뜨리고 학생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학급으로 만드는 역을 하였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정의감이 있는 교사로서 엄석대의 절대권력을 무너뜨리는 강렬한 교육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시간이 흘러 최선생의 장례식에서는 국회의원이 된 모습으로 나와 관객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인물로도 묘사된다.1994년 MBC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는 상경해 생활하는 순박한 시골총각 박춘섭 역할을 맡아 사기꾼인 김홍식(한석규)과 함께 2류를 꿈꾸는 3류 인생 연기를 선보였다. 1년 후 1995년에는 SBS에서 방영한 《다시 만날 때까지》에서는 오하영(전인화)를 사랑하지만 괴로워하면서 잊지못하는 외국증권계 사업가 한석진 역할과 MBC 에서 방영한 정치드라마 《제4공화국》에 김대중 의원 역할을 맡아 연기하였다.
1996년 드라마 《그들의 포옹》 촬영중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하여 한동안 연기를 쉬고,[32] 부상 후유증으로 인한 슬럼프로 한동안 방황했다고 한다.[33][34] 이후 1997년 영화 《넘버 3》의 깡패보다 더 깡패같은 3류 검사 마동팔 역으로 돌아오고, 그 다음해인 1998년에는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에서 어수룩한 삼촌 역을 맡는다.[35]
1999년 히트 포인트가 되는, 강제규 감독의 《쉬리》에서 최종 보스인 북한 강경파 소속의 특수 8군단 박무영 소좌 역할로 등장해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는다. 최민식은 이 영화로 그동안 주목을 받아온 주연 한석규를 넘어선 관심을 받게 되고, 그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초 캐릭터는 조연급 캐릭터였지만 주연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주연상을 받게 된다. 1995년 《태백산맥》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김갑수에 이은 2회 수상이고, 이후 2018년에는《공작》으로 역시 대종상 남우주연상 받은 이성민도 있었다.[36] 그리고 같은 해에 개봉한 《해피 엔드》에서는 무력한 중년 남자로 등장해 사람들을 혼란에 몰아넣었다.
2002년 《취화선》에서는 오원 장승업 역할을 맡아 약간 혼란스러운 자기 세계를 갖는 화가로 등장해 "야! 이 개자식들아!"라는 명대사를 남겼으며, 2000년대 초반에 필수요소로 강림해 많은 인기를 누렸었다. 물론 필수요소라는 파워 때문에 작중 최민식의 연기가 가물거리기도 하지만, 최민식의 연기는 "최민식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몰입도를 보여줬다. 그리고, 바로 전 해에 개봉한 《파이란》에서는 지방 조폭 똘마니인 이강재 역을 맡아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는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최민식은 그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탔다.
2003년 《올드보이》에서 오대수 역을 맡아 범인은 소화하기 힘들 스타일과 복수에 굶주린 짐승같은 연기[37]를 보여 남우주연상으로 그랜드 슬램에 올랐다.[38] 최민식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쟁쟁한 작품이 워낙 많지만 최민식의 연기 정점에 있는 작품은 누가 뭐래도 《올드보이》다.[39][40]
그 외에도 스크린 쿼터제 축소에 대한 극렬 반대의 입장에 서서 1인 시위 등을 했으며 옥관 문화훈장을 반납하는 항의를 보여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냈고, 미국의 2차 이라크 침공당시 한국군의 파병에 대한 반대 시위 및 FTA 반대 입장에 섰다. 스크린 쿼터 유지 입장과 같은 맥락에서인지 충무로의 영화 제작자들이 높은 개런티로 모셔오려고 해도 거절하다가 독립영화에 가까운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에 출연하게 된다.
2010년 《악마를 보았다》에서 장경철 역을 맡으며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같이 출연한 이병헌과 함께 연기 차력쇼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에선 청둥오리 '나그네'의 성우를 맡았다. 연예인 더빙으로 전체적인 더빙 퀄리티[41]에 큰 비판을 받았던 작품이지만 박철민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더빙 실력을 호평받았다.
2012년 2월 개봉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선 비리 세관 공무원 최익현 역을 맡았다. 이 작품에서도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악마를 보았다》보다 대중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최민식을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이것으로 2012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2013년 2월에 개봉한 영화 《신세계》에서 강과장 역을 맡아 호평받았다. 박훈정 감독에 따르면 대사를 현장 와서 외운다고 하며 황정민, 박성웅 등 후배 배우들은 연기 대선배인 최민식 앞에서 긴장할까 봐 본인들은 대사를 완벽히 외우고 갔으나 정작 최민식이 대사를 계속 까먹고 계속 틀린다고 폭로(?)했다.
2014년 초에는 뤽 베송 감독의 미국 영화 《루시》에 스칼렛 요한슨, 모건 프리먼과 함께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마약조직의 보스 역으로 공개된 예고편 상에서 가히 《악마를 보았다》 수준의 극악한 카리스마를 보여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참고로 원래는 더 중요한 역할이었으나 영어를 못해서 상당 부분이 짤렸다고 한다.
2014년 8월 10일을 기점으로 《명량》이 역대 최단 기간으로 천만을 돌파함으로써 최민식도 그동안 연이 없었던 천만 관객 배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42] 이로써 한 시대를 풍미한, 충무로의 트로이카라 불린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 모두가 천만 관객 배우가 되었다.
참고로 김한민 감독은 이후 명량의 후속작들인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도 연출하기로 하였으며 두 작품 모두 다른 배우들이 이순신 역을 맡는다고 전했다. 그리고 최민식은 명량 상영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순신 장군 연기에 부담감이 엄청났다고 말했으며, 더는 안 한다고 감독에게 단단히 얘기해뒀다고 밝혔기에 명량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순신 연기작이 되었다.
2015년 무려 손익분기점이 600만인 대호가 135만을 기록하는 대실패를 기록하였다. 2017년에 개봉한 특별시민과 침묵 역시 크게 실패했는데 특별시민은 손익분기의 절반, 침묵의 경우 손익분기 1/4도 미치지 못한 뼈아픈 실패를 겪었다. 2019년 하반기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손익분기점 돌파에 살짝 미치지 못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2020년 드라마로 복귀 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 영화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의 신작 시즌제 드라마인 카지노를 긍정 검토 중이라 하며, 2022년에 방영 예정이라고 한다. 출연 확정 시 1997년에 방영된 MBC 사랑과 이별 이후 25년만의 복귀인 셈이며, 결국 출연이 확정되었다. 성황리에 종영되었고, 디즈니+ 역대 한국 오리지널 최대 시청 시간을 기록하면서 엄청난 흥행을 했다. 이에 힘입어 디즈니+의 가입자 역시 대폭 상승했다. # 하지만 시즌 2의 차무식의 허무한 최후를 본인이 직접 건의해서 반영되었는데 정작 이 결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최악이었다. 올드보이 때와 다르게 실패한 것.
2024년에는 《파묘》를 통해 커리어 최초의 오컬트 영화에 도전했다. 파묘를 기획한 장재현 감독이 검은 사제들 → 사바하를 2연속으로 히트시키며 한국 오컬트 영화계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는데, 파묘 역시 호평받으며 개봉 3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였다. 오컬트 장르 영화로는 최초이며, 이제 최민식은 명량에 이어 10년 만에 두 번째 천만 영화를 보유하게 되었다.[43]
4. 명대사
최상급 연기력과 화려한 필모그래피, 그동안 연기해 온 독특한 인간군상들이 맞물려서, 비슷한 체급 배우들 사이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계속 회자되는 캐릭터들과 보유한 엄청난 명대사들을 보유하고 있다.명량 개봉 전에는 네이버 영화의 명량 명대사 항목이 죄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와 악마를 보았다 패러디들로 가득했을 정도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또 불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어. 그런 너희들이 앞으로 어른이 돼서 만들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해. 너희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야 이놈들아!''
- 다시 만날 때까지
- "전 고객이 맡긴 돈을 운영해주는 투자대행업자입니다. 기본적으로."
- "훗, 주가조작 운운하려면은 나 만이 전주해야하는데, 나까지 포함해서 29명이 세명건설 주식매입자입니다. 아랍인 열 둘, 미국인 아홉, 그리고 일본인 일곱."
- "내 아내라고 하지않고 오하영이라고 정정하면 대답하겠습니다." [44]
- 제4공화국
- "자, 앉지. 한 비서, 정말 오랫동안 고생했네. 정치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독재자들의 손에 의해서 가장 묷여있다가, 맨 마지막에 해금되는거 그 얼마나 동감이여. 하지만! 낙관하긴 아직 일러. 다 들 몸조심하면서, 더욱 정치를 하자구! 하긴 뭐,그 길고긴 유신시절에도 잘 버텨가고 있겠는데 앞으로 무슨일 있겄어? 이봐,노갑이, 옥두. 우리 한 비서좀 잘 봐줘."
- "사회안정과 정국의 안정은 내가 더 바라는 거유. 나 사면복권 안시켜도 좋으니까, 나 이런거 못 쓰것소! 나라 걱정같이하자는 사람이 대체 서약서가 뭐요?!"
- 넘버 3
-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좆 같아 하는 말이 뭔지 아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야. 정말 좆 같은 말장난이지.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좆 같은 새끼들이 나쁜 거지."
- 쉬리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니들이 한가롭게 이노래를 부르고 있을 이시간에도 우리의 북녁의 인민들은 못먹고 병들어서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어! 나무껍데기에 풀뿌리도 모잘라서 이제 흙까지 파헤쳐 먹고있어.. 우리 인민의 아들,딸 들이 매춘부로 그것도 단돈 백달러에 개팔리듯 팔리고 있어!!! 죽은세끼의 인육마저 뜯어먹는 그런! 애 미! 애 비! 너흰 본적있어!!??!! 썩은 치 즈에 콜 라 햄 버거를 먹고자란 너희가 알리가 없지..." #]
- 취화선
- "야! 이 개자식들아!"
- 친절한 금자씨
-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없는 겁니다. 사모님."
- 악마를 보았다
- "근데, 야 씨발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냐?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냐? 내가 너 좋아할 수도 있잖아. 이런 이 씨발 이거 세상 줫같은 것들이 왜 나한테만 지랄들이야 이 개, 그래 안 그래?!"[47][48]
- "대한민국 경찰이 이렇게 빨리 찾아?"
- "야 이 씨발아. 내가 니 새끼냐? 이런 씨발 왜 아무한테나 반말 짓거리야?"
-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살아있네"
- "그 실례지만 어데~ 최씹니까?"
-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 "수학은 답이 중요한 게 아니야. 답을 구하는 과정이 중요한 게지."
- "머리가 좋은 놈이 가장 먼저 포기하고 노력하는 놈이 그 다음으로 나가떨어지지. 수학은 말이야, 용기가 있어야 된다우. 문제를 풀다가 안 풀린다 싶으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 참 어렵네 내일 다시 풀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하다우. 그게 바로 니라."
- "그러니까 증명하라."
- 카지노
- "너, 나 감당할 수 있겠냐?"
- "니가 이 씨발 새끼야 얼마나 후회할 짓을 했는지.. 내가 72시간 안에 똑똑하게 보여줄게. 알았냐 이 씨발 새끼야? 끊어."
- "제가 관심이 있으면 다 알 수 있는 겁니다. 예. 영사님께서 저한테 관심이 많으시니깐 제가 사채업을 하느니, 수배중이니 다 알 수 있듯이 저 역시도 영사님께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 "여기 필리핀이야~"
- "아, 나는 차무식이라는 사람입니다."
- "너랑 나랑 뭔데, 너랑 나랑 뭐 사귀냐 임마?"
- "개념이 출장가서 아직 집으로 안 돌아왔네."
- "순대국이 좋잖아~"
- "우린 그렇게 600억을 벌게 되었어."
- "세숫대야 좆같이 생겼네."
5. 개인사
군대를 제대한 후에 본격적으로 연극무대에 오르게 되고, 그러다가 '실비명'이라는 작품에 동반 출연하고 있던 연극배우 이화영을 만나게 된다. 연극 작품을 하면서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을 했고, 1990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최민식은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당시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 6년 만인 1996년에 이혼을 했는데, 사유는 성격 차이로 알려져 있다.[50] 이화영과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이혼 후 3년 가까이 혼자 살다가 동국대 후배이자 소속사 대표 전영민의 소개로 김활란을 만나 1년 6개월의 열애 끝에 1999년 9월 재혼을 했다. 영화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에 진출했을 때 아내인 김활란과 함께 레드카펫에 서기도 했다. #[51] 김활란과의 사이에도 자녀는 없다.
6. 출연 작품
6.1. 영화
<rowcolor=#fff> 연도 | 제목 | 배역 | 활동 | 관객수 |
1988년 | 수증기 | |||
1989년 | 겨울의 길목 | |||
구로아리랑 | 진석 | 주연 | ||
1990년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태식 | 조연 | |
1992년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김선생 | 주연 | |
우리 사랑 이대로 | 준혁 | |||
1993년 | 사라는 유죄 | 음악 선생 | 조연 | |
1995년 | 말미잘 | 맘보 | 특별출연 | |
1997년 | 넘버 3 | 마동팔 검사 | 주연 | 29만명 |
1998년 | 조용한 가족 | 삼촌 | 조연 | 34만명 |
1999년 | 쉬리 | 박무영 | 주연 | 620만명 |
1999년 | 해피 엔드 | 서민기 | 주연 | 130만명 |
2001년 | 파이란 | 이강재 | 25만명 | |
2002년 | 취화선 | 장승업 | 45만명 | |
2003년 | 올드보이 | 오대수 | 330만명 | |
2004년 | 꽃피는 봄이 오면 | 이현우 | 71만명 | |
태극기 휘날리며 | 인민군 대좌 | 특별출연 | 1,174만명 | |
2005년 | 친절한 금자씨 | 백 선생 | 주연 | 365만명 |
주먹이 운다 | 강태식 | 172만명 | ||
2009년 |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 최 | 8,986명 | |
2010년 | 악마를 보았다 | 장경철 | 184만명 | |
2011년 | 마당을 나온 암탉 | 나그네[52] | 220만명[53] | |
2012년 |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최익현[54] | 472만명 | |
2013년 | 끝과시작 | 의사(목소리) | 특별출연 | |
신세계 | 강형철 | 주연 | 468만명 | |
2014년 | 루시 | 미스터 장 | 총수입 4억달러 | |
명량 | 이순신 | 주연, 천만영화 | 1,761만명 | |
2015년 | 대호 | 천만덕 | 주연 | 176만명 |
2017년 | 침묵 | 임태산 | 49만명 | |
특별시민 | 변종구 | 136만명 | ||
2019년 | 천문: 하늘에 묻는다 | 장영실 | 200만명 | |
봉오동 전투 | 홍범도 | 특별출연 | 478만명 | |
2022년 |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 이학성 | 주연 | 52만명 |
2024년 | 파묘 | 김상덕 | 주연, 천만영화 | 1,191만명 |
2025년 | 행복의 나라로 | 203 | 주연 | 명 |
미정 | 인턴 |
6.2. 드라마
<rowcolor=#fff> 방영 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 비고 |
1990년 | 조선왕조 오백년:대원군 | 박승환 | 단역 | |
야망의 세월 | 꾸숑 | 조연 | ||
1992년 | 정든 님 | 이동욱 | ||
아들과 딸 | 단역 | |||
1993년 | 일월 | 오정우 | ||
베스트극장 - 환상속으로의 여행 | 진서 | 주연 | ||
뜨거운 강 | 단역 | |||
1994년 | 서울의 달 | 박춘섭 | 주연 | |
마지막 연인 | 최진규 | |||
1995년 | 다시 만날 때까지 | 한석진 | ||
제4공화국 | 김대중 | 조연 | ||
베스트극장 - 사랑한다면 | 주연 | |||
1996년 | 그들의 포옹 | 안동출 | ||
아빠는 시장님 | 한진국 | |||
1997년 | 미스 & 미스터 | 민식 | ||
사랑과 이별 | 김창기 | |||
2022년~2023년 | 카지노 | 차무식 |
6.3. 연극
<rowcolor=#fff>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1981년 | 우리 읍내 | 조지 | 데뷔작 |
1982년 | 즉흥극 | 연출가 | |
1983년 | 작은 여우들 | ||
1984년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
1985년 | 미국에 산다 | ||
1986년 | 내 아들을 위하여 | ||
1989년 | 실비명 | ||
1990년 | 에쿠우스 | 알런 | |
1997년 | 택시 드리벌 | 덕배 | |
1998년 |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 ||
1999년 | 햄릿 1999 | 레어티즈 | |
2000년 | 박수칠 때 떠나라 | 최연기 | |
2007년 | 필로우맨 | 카투리안 |
6.4. 뮤직비디오
<rowcolor=#fff> 연도 | 가수 | 제목 |
2023년 | Zion.T | 모르는 사람[55] |
7. 광고
<rowcolor=#fff> 연도 | 기업 | 브랜드 명 | 비고 |
1991년 | 광동제약 | 운지천 | |
1992년 | 해태제과식품 | 썬키스트 껌 | |
한양어패럴 | 조다쉬 패션내의 | ||
1994년 | 광동제약 | 운지천F | |
LG화학 | 암브탈[56] | ||
1999년 |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 블랙버드V | |
2000년 | 딜웨이[57] | ||
2002년 | 상아제약 | 디오겔 | |
2003년 | 농심 | 신라면 | |
2004년 | 현대카드 | ||
교보생명 | |||
대상 | 쿡조이 | ||
2005년 | 동아제약 | 박카스D | |
S-OIL | |||
리홈쿠첸 | |||
멕시카나 | |||
2006년 | TU 미디어[58] | ||
리드코프 | |||
2011년 | SK텔링크 | 국제전화 00700 | |
2012년 | 농협 | ||
2016년 | BMW | BMW 7시리즈[59][60] | |
2017년 | 엔씨소프트 | 리니지M | |
2021년 | 유주게임즈 | 삼국지혼 | |
2024년 | 야놀자 |
8. 수상
<rowcolor=#fff> 수상 연도 | 시상식 | 부문 | 작품 |
1990년 | KBS 연기대상 | 남자 신인상 | 야망의 세월 |
1993년 | 제38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 남우조연상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1997년 | 제21회 서울연극제 | 남자연기상 | 택시 드리벌 |
1999년 | 제22회 황금촬영상 | 최우수 인기남우상 | 쉬리 |
제35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제36회 대종상 영화제 | 남우주연상 | ||
제2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 올해의 연기자상 | 해피 엔드 | |
씨네21 영화상 | 올해의 남자배우 | 쉬리 해피 엔드 | |
2000년 | 제45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 남우주연상 | 해피 엔드 |
2001년 | 제22회 청룡영화상 | 파이란 | |
제2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
제2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
제4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 올해의 연기자상 | ||
씨네21 영화상 | 올해의 남자배우 | ||
2002년 | 제4회 도빌 아시아영화제 | 남우주연상 | |
2003년 | 제24회 청룡영화상 | 올드보이 | |
2004년 | 제1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 최고의 남자배우상 | |
제40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제41회 대종상 영화제 | 남우주연상 | ||
문화체육관광부 | 옥관문화훈장 | ||
제49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 남우주연상 | ||
제12회 춘사대상영화제 | |||
제7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 올해의 연기자상 | ||
제2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남우주연상 | ||
제3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 |||
제1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 올해의 남배우상 | ||
2005년 | 미국 더 빌리지 보이스 필름 크리틱스 폴 | 최우수 연기자 40위 선정 | |
제9회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 남우주연상 | 주먹이 운다 | |
제5회 대한민국 청소년영화제 | 남자배우부문 인기영화인상 | ||
2010년 | 제13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 올해의 연기자상 | 악마를 보았다 |
2012년 | 제21회 부일영화상 | 남우주연상 |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제6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 |||
제33회 청룡영화상 | |||
2013년 | 제4회 올해의 영화상 | ||
2014년 | 제12회 피렌체한국영화제 | 공로상 | |
제2회 마리끌레르 아시아 스타 어워즈 | 올해의 배우상 | 명량 | |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남우주연상 | ||
제51회 대종상 영화제 | |||
제4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 대상 | ||
제3회 한국영화배우협회 스타의 밤 - 대한민국 톱스타상 시상식 | 대한민국 톱스타상 | ||
2015년 | 제6회 올해의 영화상 | 남우주연상 | |
제10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 최고의 남자배우상 | ||
제51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대상 | ||
2017년 | 제6회 한국영화배우협회 스타의 밤 시상식 | 대한민국 톱스타상 | 침묵 |
2023년 | 제18회 서울 드라마 어워즈 | 골든버드 개인상 | 카지노 |
제59회 대종상 영화제 | 시리즈 남우상 | ||
펀덱스 어워드 2023 | OTT 드라마 출연자 남자 최우수상 | ||
2024년 | 제25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남자 연기자상 | 파묘 |
9. 여담
- 지금도 가끔 까이는 흑역사라면 대부업체인 리드코프의 광고모델을 맡은 일[61]로 이때 한참 까였다. (리드코프 최)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분명히 잘못한 일이며 CF에 대해 나름대로 고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 10살 무렵에 결핵에 걸려 의사도 포기하고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절에 들어가 휴양을 하고 간호사 출신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다만 이때 치료를 위해 학교를 1년 쉬었다. 1962년생인 최민식이 82학번인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 권투 하면 또 최민식을 빼놓을 수 없다. 15년간 감금된 방에서 권투 특훈으로 다져진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그러했다면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는 퇴역 은메달리스트 강태식의 몰입 연기를 위해 실제로 강도높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조깅운동을 병행하고 정오 무렵부터 하루 4시간 이상 꾸준히 권투를 훈련하여 몸을 만들기도 했다.
- 알고 보면 합필갤의 전설이다. 취화선으로 아햏햏의 소재를 만들어주기도 했으며, 이후 디시인사이드와 일베저장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고인드립 때문에 또 불려나왔다. 과거 자양강장 드링크제 운지천 광고에서 뛰어내리는 씬이 있는데 이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과 엮은 아주 질나쁜 드립이었다.[62]
- 충무로의 소문난 골초이자 담배 예찬론자다. 술보다 담배를 더 좋아한다고 하며 돈이 없던 연극배우 시절 전철과 개비담배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개비담배를 사서 대학로에서 노원구 상계동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 상에서도 맛깔나게 피우는 배우 중 한 명.[63]
- 최민식의 동생 최광일도 배우다.[64] 다만 영화보다 연극에서 주로 활동하는지라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았지만 2017년에 김윤석, 하정우 주연의 영화 1987에서 유해진의 직속상관이자 교도관 안유 계장 역할로 나왔으며, 이후 각종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맹활약 중이다.
- 배우 지대한이 멘토로 삼는 배우다.[65] 다른 주연배우들은 보통 조연이나 후배 배우들이 자기보다 튀는 걸 싫어하는데, 최민식은 오히려 촬영할 때 이들에게 "네가 먼저 앞으로 나가라, 그래야 더 돋보이지 않겠냐."라며 배려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 힐링캠프 최민식 편에서 운지천 CF를 찍은 사연이 공개되었다. 1991년 당시 광동제약에서 운지천 CF 개런티로 8천만 원을 제시해왔고, 광동제약의 라이벌인 동아오츠카에서 운지천의 대항마로 내세운 로얄디 CF(당시 전속 모델은 최민수)에 1억 원을 제안했다. 최민식은 먼저 연락한 광동제약과 계약금과 광고기간 등에 대해 기록된 제안서가 상당 수준으로 오고 갔다. 그러나... 동아오츠카는 더 큰 개런티를 급 제안했고, 최민식은 당연히 돈을 더 준다는 동아오츠카의 로얄디 광고를 수락했다. 동아오츠카 정식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하루 앞둔 날에 최민식이 로얄디 광고를 수락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광동제약 홍보부장이 최민식의 집으로 직접 찾아왔다.
최민식은 진행이 다 된 일을 엎어버렸단 죄책감+돈을 더 올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홍보 부장이 가자는 족발집에 따라가 술을 내미는 대로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고, 몇 차례 술이 돌자 광동제약 홍보부장이 눈물과 함께 애걸복걸 사정을 하며, "이번 일을 놓치면 회사에서 짤립니다. 딸린 자식이 몇 명인데...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도와주십시오"라 눈물로 호소했고, 술기운과 측은지심에 운지천 CF를 찍게 되었다. / 이 다음의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광동제약의 매출이 얼마나 올랐는지, 최민식은 광고료를 더 받았는지 등등.
* 카지노 종영 이후부터 인스타그램에 최민식 사칭 계정이 생겼다. 처음에는 진짜 최민식인 줄 안 사람이 많았으나 이내 카지노에 양정팔 역으로 같이 출연한 이동휘가 본 계정이 사칭임을 밝혀내었다. 이 이후에도 또 사칭 계정이 생겨 24년 2월 21일 소속사에서 "최근 최민식 배우를 사칭한 SNS 계정이 발견됐다"라며 "현재 최민식 배우는 SNS 채널을 일절 운영하고 있지 않다"라고 명확히 입장을 밝혔다. #
*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 라는 오디오북에서 '오발탄'을 읽었다. 위 동영상에서 샘플을 들을 수 있는데 원본은 총 93분이다.
* 광복 76주년에 맞춰 여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봉환되는 것에 대한 소개 영상의 나레이션을 맡았다.
- 권위의식이 없고 소탈하며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 이른바 '발연기 배우, 정확히는 연기력이 부족한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등장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낸 적이 있다. ## 요약하면 아이돌의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하기만 해서는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아이돌 출신 연예인들에게 제대로 연기력을 향상시키려 하지 않고 무작정 '꽂아 넣기'를 하는 기획사를 비롯한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큰 점을 보자는 것이다. 또한 아이돌 출신 배우들도 제대로 연기 트레이닝을 받으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 잡채와 막국수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영화 촬영현장에서 밥차 메뉴로 잡채가 나오길 기다린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막국수는 1년 365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특히 좋아하며 만약 올드보이의 오대수에게 만두가 아닌 막국수가 제공됐다면 나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나가지 않았을 정도로 매우 좋아한다고. #
- 참여정부 시기에 스크린 쿼터제 폐지 흐름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당시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면 문화 패권주의에 빠질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였으며, 문화훈장을 반납하고 구로초등학교에서 반FTA 공개수업도 진행하였다. # #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선배인 이경규, 이효정과 절친한 사이다. 재학 시절 삼수갑산[67]이라는 술 모임을 가지며 친해진 사이이며 역시 같은 학과 후배인 한석규, 김상중과도 절친한 사이다. 또한 최근 예능에 출연하면서 보여준 모습들은 실제 성격은 되게 호탕한 동네 아저씨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반전 매력을 보여주며 소소한 화제가 됏다.
10. 둘러보기
최민식의 주요 수상 · 선정 · 수훈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 |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04년 | |
이름 | 최민식 | |
분야 | 배우 | |
옥관문화훈장(4등급) |
역대 | ||||
남우주연상 | ||||
제35회 (1997년)[68] | → | 제36회 (1999년) | → | 제37회 (2000년) |
한석규 (초록물고기) | → | 최민식 (쉬리) | → | 최민수 (유령) |
제40회 (2003년) | → | 제41회 (2004년) | → | 제42회 (2005년) |
송강호 (살인의 추억) | → | 최민식 (올드보이) | → | 조승우 (말아톤) |
제50회 (2013년) | → | 제51회 (2014년) | → | 제52회 (2015년) |
류승룡 (7번방의 선물) 송강호 (관상) | → | 최민식 (명량) | → | 황정민 (국제시장) |
{{{#white 역대}}} | ||||
남우주연상 | ||||
제21회 (2000년) | → | 제22회 (2001년) | → | 제23회 (2002년) |
설경구 (박하사탕) | → | 최민식 (파이란) | → | 설경구 (공공의 적) |
제23회 (2002년) | → | 제24회 (2003년) | → | 제25회 (2004년) |
설경구 (공공의 적) | → | 최민식 (올드보이) | → | 장동건 (태극기 휘날리며) |
제32회 (2011년) | → | 제33회 (2012년) | → | 제34회 (2013년) |
박해일 (최종병기 활) | → | 최민식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 | 황정민 (신세계) |
남우주연상 | ||||
제2회 (2003년) | → | 제3회 (2004년) | → | 제4회 (2005년) |
송강호 (살인의 추억) | → | 최민식 (올드보이) | → | 황정민 (너는 내 운명) |
영화 부문 대상 | ||||
제50회 (2014년) | → | 제51회 (2015년) | → | 제52회 (2016년) |
송강호 (변호인) | → | 최민식 (명량) | → | 이준익 (사도, 동주) |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 ||||
제34회 (1998년) | → | 제35회 (1999년) | → | 제36회 (2000년) |
박중훈 (할렐루야) | → | 최민식 (쉬리) | → | 박중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제39회 (2003년) | → | 제40회 (2004년) | → | 제41회 (2005년) |
차승원 (광복절 특사) | → | 최민식 (올드보이) | → | 조승우 (말아톤) |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 |||||||||
2004년 | ||||||||||
※ 200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안성기 | 장동건 | 설경구 | 최민식 | 한석규 | ||||||
6위 | 공동 7위 | 9위 | 10위 | |||||||
송강호 | 신성일 | 박중훈 | 정우성 | 원빈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전지현 | 미발표 | 엄앵란 | ||||||||
16위 | 17위 | |||||||||
미발표 | 전도연 | |||||||||
2009년 | ||||||||||
※ 2009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안성기 | 송강호 | 장동건 | 설경구 | 신성일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정우성 | 황정민 | 김수로 | 정준호 | 김혜수 | ||||||
2014년 | ||||||||||
※ 201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최민식 | 송강호 | 안성기 | 하정우 | 전지현 | ||||||
6위 | 7위 | 8위 | 공동 9위 | |||||||
류승룡 | 장동건 | 설경구 | 원빈 | 정우성 | ||||||
11위 | 12위 | 공동 13위 | 15위 | |||||||
조인성 | 이병헌 | 이정재 | 신성일 | 김혜수 | ||||||
공동 16위 | 18위 | |||||||||
한석규 | 강동원 | 차태현 | ||||||||
2019년 | ||||||||||
※ 2019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송강호 | 마동석 | 안성기 | 하정우 | 정우성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이병헌 | 황정민 | 유해진 | 장동건 | 신성일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공동 15위 | |||||
김혜수 | 설경구 | 최민식 | 공유 | 차승원 | 전지현 | |||||
17위 | 18위 | 공동 19위 | ||||||||
조인성 | 현빈 | 강동원 | 이정재 | 한석규 | 송중기 | }}} | ||||
2024년 | ||||||||||
※ 202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최민식 | 마동석 | 송강호 | 이병헌 | 정우성 | ||||||
공동 6위 | 공동 8위 | 10위 | ||||||||
이정재 | 황정민 | 김혜수 | 김고은 | 손석구 | ||||||
11위 | 공동 12위 | 14위 | 15위 | |||||||
유해진 | 윤여정 | 공유 | 한석규 | 현빈 | ||||||
16위 | 공동 17위 | 19위 | ||||||||
송중기 | 안성기 | 전지현 | 하정우 | |||||||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좋아하는 유튜버 |
올해를 빛낸 영화배우 1위 | ||||
송강호 (2013년) | → | 최민식 (2014년) | → | 유아인 (2015년) |
※ 매해마다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올해를 빛낸 영화배우 1위'를 선정.[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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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음] 산 이름 민 심을 식[2] 음력 1962년 4월 27일.[3] #[4] 전주 최씨 문열공파(文烈公派) 26세손 '植' 항렬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다. 문충공파(文忠公派) 26세손에도 '植' 항렬이 있어서 그렇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최익현이 영화 초반에서 "경주 최씨 충렬공파"라고 밝혀서 최민식도 진짜 그쪽 집안이 아닌지 착각한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다. 그 뒤 인터뷰에서 "전주 최씨"라고 확실히 밝혔다.[5]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슬하에 자녀는 없다.[6] 現 서울숭덕초등학교[7] 입학할 당시에는 문과대학 소속이었으나 1987년에 소속이 예술대학으로 변경되었다.[8] 82학번 22기. 재수를 한 게 아니고 국민학교 3학년 때 폐결핵을 심하게 앓아 학교를 1년을 쉬었다. 중학교는 1976년에 입학.[9] #[10] 사실 이렇다 할 취미는 없다고 밝혔다. #[11] 2012년 1월 31일에 방송된 힐링캠프에서 독실한 불자라고 밝혔다. #[12] 2024년 2월 기준, 유퀴즈에서 캐스팅, 촬영장까지 운전을 스스로 혼자 다 한다고 했다. 배우들이 소속사 없이 일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간혹 있다.[13] 2024년 현재는 '설경구'의 위상이 크게 떨어지고 이병헌, 하정우, 황정민, 김윤석 등이 최민식과 송강호의 아성의 도전하고 있다.[14] 해외 영화계 및 시네필 커뮤니티 등에서도 송강호와 더불어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배우로 평가 받고 있다.[15] 제22회 청룡영화상, 제2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제2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제4회 도빌 아시아영화제[16]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서울에 있는 극장에서는 영화가 끝나면 바로 나가야 했는데 중앙극장은 한 영화가 끝나고 다음 영화가 시작해도 나가지 않아도 됐다고 한다. 중간에 청소 아주머니가 들어오면 다리만 올려주면 돼서 꿀잠을 자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고 (...)[17] 대일고는 당시 정릉에 있었는데, 성북구와 도봉구를 나누는 능선의 산꼭대기, 우범 지대와 부촌의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통학하는 학생과 삥을 뜯으려는 동네 양아치들 사이에 싸움이 종종 일어났다.[18] 최민식의 형인 최찬식은 화가인데 아버지의 입장에서 장남과 차남이 모두 예체능을 지망한다고 하니 고생을 할 게 뻔해서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면서 아주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최민식의 아버지는 축구선수 출신이라 힘이 엄청나게 강했는데 아버지의 발길질을 손으로 막다가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고.[19] 82년 5월생이기 때문에 현역으로 입학했다면 81학번이 되는 것이 맞으나, 상술한 바와 같이 국민학교 때 폐결핵을 크게 앓아 학교를 1년 쉬게 되어 83년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니게 된 것이다.[20] 한국외대 불문과를 중퇴하고 한국연극아카데미 연극과를 졸업한 후 하와이 대학교에서 연극연출을 수학했다. 이후 서울예대 학장을 거쳐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었다. 최민식을 비롯하여 이경규, 한석규, 박신양 등의 동국대 연영과 출신 배우들이 평생의 은사로 생각하는 연극연출가 겸 교육자였다. 2019년에 별세했다.[21] 이때 후임이 배우 허준호였다고 한다.[22] '돼지'라는 뜻의 프랑스어라 소개됐다. 그러나 실제로 돼지의 프랑스어는 '꼬숑(cochon)'에 더 가깝다.[23] 다시 만날 때까지, 제4공화국 등[24] 택시 드리벌,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햄릿 1999 등[25] 아빠는 시장님, 미스 & 미스터, 사랑과 이별 등[26] 이후 강 감독은 당시 고액 개런티 배우라고 깐 배우들에 대한 사과를 하긴 했었다.[27] 다만 공채 탤런트 출신은 아니다.[28] 대표적인 사례가 카지노의 차무식. 폭력, 갈취, 협박, 사기 등을 일삼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이지만 대놓고 악랄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동네 아저씨 느낌으로 연기했다. 다만 그럼에도 최민식 특유의 발성 때문인지 소리를 지르거나 협박하는 장면에서는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을 연상한 시청자들도 많았다.[29] 단 이병헌의 경우 오히려 연기 스펙트럼만큼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배역을 맡아도 하나하나 다른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 연기 스펙트럼은 대체적으로 이병헌이 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최민식은 다른 방식에서 이병헌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애초에 명배우들 사이에서 연기력이란 비교하기가 애매한 면이 있다. 이 문장의 포인트는 두 사람의 연기력 비교가 아니라 한국 영화계에서 이병헌보다 최민식이 더 많은 흥행작과 임팩트 있는 캐릭터가 있어 위상이 더 높다는 것.[30] 실제로 영화에 나온 범죄(강간 및 토막살인(3건), 살인 및 사체유기(2건), 주거침입 및 살인, 미성년자 납치 및 강간, 준강간(협박에 따른 간음)만 해도 기본이 무기징역이고 사형도 충분히 가능하다.[31] 이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최민식 본인이 이 일화의 뒷이야기를 밝혔는데, 인터뷰가 다른 매체에 나간 이후 문제의 그 아저씨가 그걸 봤는지 목욕탕에서 한참 때를 미는 와중에 다가와서는 그때 그렇게 서운했냐고 물었다고(...). 때문에 최민식도 굉장히 무안했고 '그땐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서요' 식으로 얼버무렸다고 한다.[32] 《악마를 보았다》 인터뷰 때 영화에서 내용처럼 데뷔 후 실제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때가 이때다.[33] 인터뷰에서 일수 찍듯 방송국에 출근해 그냥저냥 지내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한석규에게 영화일을 부탁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90년대 초중반까지 최민식은 브라운관에서 정말 많이 나왔다. 드라마는 물론 예능프로까지 정말 많이 나온 배우였다. 가족오락관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출연을 했었다.[34] 한동안 연기를 쉬다가 시트콤 《아빠는 시장님》에서 시장 한진희의 동생인 코믹한 택시기사 한진국으로 나왔고, 코믹스러운 역할로 도전했다.[35] 97년에 《미스 & 미스터》 1기에서 역시 코믹역할로 나왔고, 2기가 시작되면서 하차한 다음 《사랑과 이별》에서 절절한 부성애스러운 김창기로 맡았으며, 당시 98년에 개봉될 예정인 조용한 가족을 찍을무렵이었고, 98년 사랑과 이별이 종영된 이후, 카지노로 복귀할때까지 더 이상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 영화를 주로 많이 하고 연극을 간간히 했다.[36] 이로 인해 최민식에게 붙은 별명이 한국의 게리 올드먼이다. 실제로 외모도 닮았다.[37] 메소드 연기를 했을 거라 생각하나, 배우 본인은 캐릭터와 거리를 두면서 연기했다고 한다. 최후반에 이우진에게 울부짖고, 말 그대로 개처럼 구는 유명한 씬도 세트장에서 푹 자다 일어나 한 연기라고 한다.[38] 대종상, 청룡영화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등 국내 남우주연상은 다 싹쓸이 했다. 로저 이버트는 최민식의 연기를 보고 마라톤 맨에서 나치 치과의사를 연기한 로렌스 올리비에를 평범한 치과의사로 만들 정도의 광기를 지녔다고 대호평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 이를 그냥 뽑아버리는 장면이 두 영화에서 똑같이 나오기 때문이다.[39]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올드보이가 그랑프리상을 받고 남우주연상의 후보에도 최민식이 이름을 올렸으나, 해당 년도의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였다.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2021년까지도 그 기록은 변함이 없다.[40] 최민식 본인이 말하길 "나는 화려한 기술로 연기했지만 그 친구(야기라 유야)의 연기는 그 캐릭터 자체였다. 깊은 깨달음을 줬다"고 한다.[41] 작품성 평가는 좋다.[42] 관객수 1,761만이라는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역사상 전례없는 기록을 남겼으며 이듬해에 백상예술대상 대상을 수상한다.[43] 여담으로 명량, 파묘는 서로 공통점이 꽤많은데, 일단 일본 관련 소제를 한 영화들이라는 점과 개봉년도가 짝수이자 끝연도가 4라는 점, 두 글자 제목 영화에다, 각각의 영역에서 베테랑이자 고수인 주인공이라는 점까지 많은 공통점이 있다.[44] 26화에서 임승국하고 대화할때 내용이다. 세명기업주식문제로..[45] 81화에서 아내인 박성미가 출장간사이에 아들 한국민이 엄마없다고 하자, 원장이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으로 오해하자 결국 앞날을 기대...[46] 혹은 10년이 아닌 15년. 10년은 불량배 패거리들에게 시비를 걸었을 때, 15년은 미도에게 강간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때다.[47] 여중생을 강간하면서 한다는 말이 저거다.[48] 넷상에서는 "제가 당신을 사랑해서는 안 되겠지요?"라는 정중하고 로맨틱한 대사로 왜곡된 버전으로도 유명하다. #[49] 영화에서는 "신에게는"과 "아직"의 순서가 바뀌어서 나온다.[50] 전처 이화영은 이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2014년 드라마 순금의 땅, 황금거탑 등으로 복귀를 한다. 지금도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을 하고 있다.[51] 경기도 일산에서 용역회사를 운영하는 김갑우의 1남 3녀 중 둘째딸로, 계원예고에서 발레를 전공한 발레리나였다. 결혼 전까지 집에서 가사를 도우며 신부수업을 받아왔었다.[52] 목소리 출연[53] 국산 애니메이션 최초로 100만 및 200만을 돌파해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54] 1985년이 배경인 탓에 30대 후반 역을 맡았다.[55] 자이언티가 직접 연락하여 섭외했고, 곡의 분위기와 잘 맞아 연예계 데뷔 이후 최초 뮤비 출연을 수락했다. 여담으로 개미 CG는 최민식 배우 본인의 아이디어였는데, 올드보이의 개미 환각 장면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많다. #[56] with 배우 김원희.[57] with 배우 박중훈.[58] with 배우 류승범.[59] JTBC 뉴스룸 시작 전 광고로 나오고 있다.[60] 2017년 개봉한 침묵에서 본인이 연기한 임태산 회장의 의전 차량으로 7시리즈가 등장한다.[61] 빅스타급 인사로는 최초 수준이었다. 시기만으로는 한채영이 약간 빠른데, 임팩트는 최민식이 더 컸다. 한채영은 그냥 하이틴 스타급 인지도였던 것에 비해 최민식은 당시 한석규, 설경구 급으로 대표되는 국민배우 반열이었다. 더구나 그 내용이 대출을 상당히 가벼운 일로 간주하게 만드는 내용이라서 파장이 엄청났다. 대부업 광고 모델들이 최민식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더구나 이때는 스크린 쿼터제 폐지와 외제차 논쟁이 한참 불이 붙은 뒤였다. 스크린 쿼터제 폐지 반대 운동 벌이던 사람이 외제차는 상관없다고 하더니 이제는 한국 사채업체를 살리나 하는 비판도 있었다. 리드코프가 유일한 한국자본출신 대부업체라는 것을 활용한 이야기.[62] 현재는 일간베스트가 망한 뒤 인터넷 커뮤니티 전반에 걸쳐 고인드립에 대한 비판적 풍조가 옅어지고 노무현 드립 역시 전시작전통제권 회수 연설문 등이 꾸준히 밈으로 사용되며 노무현 대통령을 밈으로 써먹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논란의 소지가 있을지언정 친노 지지자들도 사용할 정도의 허용 범위 안에 들어오고 있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운지 드립만큼은 내포하고 있는 비하적 성향이 너무 강하기에 시간이 지났음에도 특정 커뮤니티 밖에서는 쓰이지 않는 편이다.[63] 올드보이 대본 리딩 현장에서도 대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있으며,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당시 무인도에 술과 담배 중 딱 한 가지만 들고 가야 한다면 무얼 들고 가겠냐는 질문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담배라고 대답했다. 제45회 청룡영화상에서도 긴 시간 동안 담배를 피울 수 없어 불참했다고 장재현 감독에 의해 폭로(?)되었다[64] 1971년생[65] 영화 올드보이에서 극 중 최민식의 친구로 등장했다.[66] 영화 신세계에서 첫 등장 때 대사도 "스토킹 같은 소리하고 있네. 니들이 무슨 소녀시대야?"이다.[67] 삼수갑산에 가더라도 한 잔 빨자라는 의미라고..[68] 1998년에는 IMF 경제 위기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69] 틀:올해를 빛낸 영화배우 1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