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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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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최일남
(1986)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87)
임철우
한승원
(1988)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우리들의 일그러진 英雄
파일: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jpg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장르 단편 소설, 사회 고발[1]
작가 이문열
출판 문학사상사
발표 세계의 문학 1987년 여름호
수록 구로 아리랑 (문학과지성사, 1987)

1. 개요2. 특징3. 등장인물4. 줄거리5. 결말6. 줄거리, 인물 해석
6.1. 한병태6.2. 엄석대6.3. 김 선생6.4. 종합6.5. 교양물, 학원물 측면에서6.6. 그 밖에
7. 표절 의혹8. 미디어 믹스
8.1. 만화8.2. 영화8.3. 연극
9. 여담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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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문열이 1987년에 발표한 대표적인 단편 소설. 한국의 현대사를 작은 사회국민학교[K] 학급()으로써 표현한 우화라는 평이 보편적인 평이며, 이문열은 그 해에 이 작품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선정 이유에서 "이상이 살아 있어 이 작품을 접하더라도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으리라"며 극찬했다.[3]

2. 특징

대중적인 인지도가 매우 높고 초등학교부터 국어 교과서의 단골 소재이며 시험 지문으로도 종종 등장한다. 영화화도 이루어졌으며, 영화 또한 이문열 소설의 영상화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통한다. 이문열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역작이다. 7차 교육과정 시절 5학년 읽기 책에 실리기도 했다.

어른 한병태가 과거 일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작중 기본 시간적 배경은 1987년 가을쯤, 병태가 떠올리는 주 배경은 1959년1960년 봄→1987년 여름으로, 소설 초두에 "자유당 독재가 아직은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해…"라는 문구와 엄석대가 몰락한 시기를 다룰 때 "석대가 물러난 지 얼마 안 되어 4.19 혁명이 있었다"라는 문장이 있다. 병태가 과거 일을 떠올린 시기도 꽤 의미심장한데,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시작된, 중학교 입학 후 26년 후이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역산하면 작중 한병태와 급우들은 1948년생이 되고,[4] 작중 회상 시점인 1987년 시점에서는 39세이다. 엄석대는 '출생 신고가 늦었다'는 작중 언급을 고려하면 그보다 몇 살 정도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파일:attachment/1293963612.jpg
영역판.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국내외 모두 엄석대가 성장해서 몰락한 첫 번째 결말로 끌난다. 이름 표기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문열'의 매큔-라이샤워 표기 'Yi Munyŏl'에서 특수 부호를 떼면 'Yi Munyol'이 된다.

이문열 식 영웅 찬가가 새로운 발돋움을 했다는 평을 듣는 이문열의 기념비적 작품. 해외에 번역되어 출간되어 그의 명성을 쌓는 데에 가장 일조한 것으로 알려진 소설이다.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문열을 중견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해준 작품은 바로 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그만큼 이문열의 작가 경력에서 중요한 작품이며, 한국 문학사의 입장에서 봐도 여러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우선,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작은 사회인 국민학교[5] 학급으로써 구현한 솜씨가 매우 빼어나며 소설적 재미를 살렸고 통상적인 교양 소설의 형식으로도 읽힐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 뛰어난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3.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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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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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주인공 어른 한병태의 회상으로 시작되어 국민학교[K] 5학년 소년 시절 시점으로 바뀐다.[7]

서울에서 일하던 잘나가는 고위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일에 열중하다가 장관의 초도순시에 나와보지 않았다고 시골 군청의 총무과장으로 좌천되어서[8] 가족 모두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하였고[9], 당연히 병태의 학교도 시골에 있는 조그마한 학교로 전학했는데, 서울에서 유복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며 명문 초등학교에 다니던 병태에게 이사한 동네는 촌 동네, 학교 역시 초라한 시골 학교로만 비쳤다. 그리고 도시 아이를 외국인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보는 학급 아이들도, 서울 학교 선생들과 달리 학생들에게 좀체 살갑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교사들도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런데 전학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무척이나 특이한 아이를 보게 됐다. 전학한 학급()의 급장(반장)인[10] 엄석대였다. 그는 5학년인데도 전교에서 싸움을 가장(즉 6학년보다) 잘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학교의 모든 아이들은 석대를 두려워하였고, 학교의 모든 대소사는 철저하게 석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담임을 비롯한 교사들은 석대를 무척 훌륭한 아이로 평가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석대는 그것을 바탕으로 폭력과 회유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사실상 학교의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런 석대가 두려워서, 그리고 다른 학년 학생들도 모두 그랬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석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석대는 새롭게 자기 학급에 든 병태 역시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만들려고 했다. 병태는 석대의 독재에 반감을 품고 저항했지만, 학교의 상황은 이미 병태 혼자의 힘으로 도무지 대적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다른 학생들은 병태의 회유에 넘어가지도 않았다. 급장 선거도 석대의 손아귀에서 굴러가기만 했으며, 심지어는 서울 모범생 출신이라 병태가 자신한 공부에서조차[11] 이기지 못해서 등수에서 밀려났다. 고발 기회를 노리곤 했지만, 교활한 석대는 병태 앞에서 악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한 번은 어떤 급우가 학교에 아버지의 라이터를 가져와 자랑했는데, 몇 시간 지나고 잔뜩 풀죽은 모습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병태는 석대가 그것을 빼앗았음을 짐작하고 선생님에게 고발하려 했다.[12] 그러나 석대는 그것마저 눈치채고 선수를 쳐 라이터를 가져온 급우에게 라이터를 돌려주고 "잠시 빌렸을 뿐입니다." 하고 무마해버렸다. 돌려받은 급우가 석대가 두려워 그의 말이 바르다고 증언해 고발을 노리던 병태는 교사와 급우들 앞에서 제대로 망신만 당하게 됐다.[13]

병태가 학생들에게 남모르게 석대의 잘못을 고발하게끔 하라고 교사에게 얘기했지만, 병태만이 석대의 잘못을 적었고, 학생들 중 1/4 정도는 병태의 잘못을 적었다. 그리고 석대는 병태 몰래 학생들에게 시켜서 더더욱 음습하게 괴롭혔다.

분명히 규칙 위반이었는데 똑같은 사소한 짓으로도 다른 아이들은 그냥 넘어갔으나, 병태만은 칼같이 고발되어 혼나기 일쑤였고,[14] 이런 일이 쌓이고 쌓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병태는 교사들조차 그의 이야기만 나오면 '쟤는 왜 저러니?' 취급 하는 골칫거리 취급을 받게 됐다.

힘겨운 학교생활을 이어가면서 성적을 점점 추락시키고 말았으며, 싸움에서도 거의 꼴찌에 가까운 수준으로 자연스레 내려갔다. 친구들과 싸워서 이기면 권력 서열이 올라가고 지면 내려가는 구조였지만, 병태와 다른 학생이 싸웠을 때는 구경하는 애들이 비겁하게 뒤치기를 하거나 상대 아이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며 병태의 기를 꺾어 병태가 질 수밖에 없게 조장했다.

병태는 어느 날 미화 시간에 창문을 닦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창문을 닦았어도 석대는 꼬장을 놓으며 보내주지 않았고, 다른 급우들이 모두 하교한 뒤에도 혼자 남아 외롭게 창문을 닦다가 눈물을 흘리고 해가 서산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쯤이야 석대가 비로소 "이만 가도 좋아. 유리창 청소 합격."이라고 하자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석대에게 복종하기 시작했다. 이때 병태가 석대에게 투항하며 드는 심경 변화 묘사가 일품이다. 다음 날엔 아예 샤프펜슬까지 뇌물로 바쳐가며 석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자 석대는 병태에게 자신의 권력을 일부 맛보게 해줬는데, 먼저 병태의 항복 전까지 불공정하던 싸움 권력 서열을 바로잡았다. 병태의 서열이 다른 학생들의 비겁함 때문에 거의 꼴찌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나, 석대가 대놓고 병태가 이기게끔 병태를 응원하여 상대 아이의 기를 죽였고, 다른 애들이 석대에게서 겁 먹어서 병태의 서열이 오히려 실제 싸움 실력보다 조금 더 위의 서열로 올랐다. 본문에서는 '싸움 서열도 예전보다 두세 단계 오른 12번째로 올라섰다'고 회고하는데, 한 학급이 60명 가량이던 시절이니 요즘으로 따지면 대략 5짱 정도.

그리고 석대는 병태를 다른 아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당번, 셔틀짓 등에서 제외해 주는 이례적인 특권까지 안겨주었다. "내가 주는 물건은 받지 않았고, 어쩌다가 한번 받게 되면 반드시 배로 갚아주었다."라고 회고하기도 한다. 사실상 넘버 2로 올려준 것이다. 석대가 준 달콤한 특권으로써 교사들에게서도 모범생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점차 급우들과 동화되었고, 떨어진 성적을 상위권으로 다시 올렸다. 다만 결국은 석대가 다른 학생들에게서 뺏은 것을 준 것이라서 병태는 속으로 찝찝하게 생각했고, 미술 시간에 석대의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셔틀짓을 자발적으로 한 것 같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어느 날, 병태는 수학 시험 시간에 석대의 측근 박원하의 수상한 행동을 목격하였는데,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시험지에 쓴 자기 이름을 지우고 석대의 이름을 쓴 것이다. 까막눈이 아닌 이상 자기 이름조차도 쓸 줄 모르는 바보는 있을 리가 없으니 병태는 남몰래 원하를 찾아가 추궁하였고, 원하는 망설이다가 석대의 부정행위 사실을 털어놓았다.

석대는 과목별로 자신의 대리 시험 셔틀을 두고 있었고, 이들과 시험지에 이름을 서로 바꿔서 제출하는 방식으로 제 실력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 1등 행세를 한 것이다. 원하가 말하길 보통 이렇게 대리 시험을 친 애들은 보통 그 과목에서 10점 이상은 기본적으로 손해 보고 들어간다고 했다. 병태는 "그럼 너는 최소 15점은 손해를 보잖아?"라며 경악했다. 하물며 그 시대는 중학교도 입시 시험을 치고 들어가는 시대였으니 더욱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원하는 병태에게 너는 눈치 봐서 그림을 두 장 그리면 되지 않느냐며 병태를 부러워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 석대가 무조건 자신한테만 부탁하지 않고 시험마다 번갈아서 시키며 우등생 하나한테 두 과목 이상을 부탁하는 일이 없기에 다른 과목에서 다른 애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으니 공평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석대를 옹호했다. 또한 석대가 과목당 80점 정도는 받았고 두 과목 정도는 대리 시험 셔틀을 두지 않고도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15]

엄연히 상위권 성적에 속한 병태는 한 학기 동안에는 석대에게 저항하느라, 다른 한 학기 동안에는 상술된 비교적 사소한 셔틀짓을 자발적으로 해서 대리 시험 셔틀에서 제외되어 있던지라 이런 부정행위가 벌어지는 걸 그동안에 모르고 있던 것이다.[16][17] 더구나 자기 점수를 아예 석대에게 갖다바쳐야 한 다른 과목들과 달리 미술만큼은 빨리 그리기만 하면 2장을 그릴 수 있으니 시간 손해는 있었을지언정, 점수 손해는 보지 않았다.

병태는 이것을 교사들에게 고발해야 할지 고민했다. 모르는 척하기엔 찜찜했고, 고발했다가 예전보다 더한 왕따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더욱이 라이터 사건의 실패를 겪었기에 일단은 함구하기로 했다. 또한 석대가 다른 상위권 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 학급 2등은 확실하게 지킨 데다가 석대를 제외한 급우들 중 유일하게 전교 10등 이내에 들어간 것도 있어서 일부러 모르는 척을 택한 것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에 석대가 벌인 시험 뒤풀이에 따라가야 했기에 선생님에게 고발할 기회가 없던 것도 이유였다. 석대는 그날의 뒤풀이를 거의 병태를 위한 자리 수준으로 만들었고, 여기 참석한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음식을 가져오게 하거나 용돈으로 군것질거리를 사 오게 하거나 모닥불용 장작을 주우라고 보내고 병태는 그냥 옆에 앉히고 다른 급우들이 돌아왔을 때까지 같이 얘기만 했다.[18] 그렇게 미창의 어느 버려진 공장에서 또 다시 권력을 맛본 병태는 석대의 체제에 안주하기로 했다.[19]

그리고 한 해가 지나 학년이 바뀌었다. 병태와 석대는 6학년 때도 같은 학급에 배정되었고, 서울에서 새로 부임한 젊은 남교사인 김 선생이 담임이 되었다.

그런데 김 선생은 학급 자체가 생기가 없고 뭔가에 짓눌려 있다던지, 급장 선거 때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석대를 뽑는 등 초반부터 이상한 분위기들을 여럿 느꼈다. 총 61표 중 무효표 하나와 석대 본인의 표를 제외한 59표 전원 일치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본 김 선생은 재투표를 지시하였고, 다른 후보 총 9명이 나왔지만 이번엔 석대와 학생들이 손을 써 타 후보 9명에게 단 1표씩만 주고 석대에게 51표를 몰아주는 결과가 나왔다. 김 선생도 하는 수 없이 석대를 급장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만, 묘한 분위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김 선생은 문제가 어렵다 싶었을 때마다 바로 석대에게 앞으로 나와 문제를 풀게 했는데, 명색이 2년간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그 우등생이 정작 수업 시간 중 문제 풀이 시간에는 잘 몰라서 쩔쩔매는 것에도 의문을 가졌다. 특히 한두 과목은 수월하게 잘했으면서 다른 건 전혀 못 푼 것이 더욱 의심을 불렀다. 아이들이 담임 교사가 아닌 석대에게서 청소 검사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검사 받는 등의 이질적인 행동 역시 수상하게 볼 만한 대목이었다.

이 때문에 김 선생은 다른 동료 교사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자기가 잘 알아서 하는 학생이다', '성적도 1등, 청소도 1등, 운동도 1등인 학생이다', '석대 학급은 뭐든 1등 학급이다' 라고 반응하는 등 여전히 둔감한 반응을 드러냈다.

석대 역시 김 선생이 평상시에 자신을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의심하는 걸 눈치채어 주먹 날릴 일은 눈흘김으로, 눈흘김할 일은 웃음으로 바꾸고 애들 상대로 삥뜯기를 중단하는 등 술수를 부리며 감시망을 벗어나려 했지만, 대리시험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갑자기 대리시험을 그만두어 성적을 추락시키면 전교 1등으로서 쌓아온 가장 큰 명성을 잃을까 두려워서였으며, 화자인 어른 병태는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격이었다고 회고한다.[20] 그러나 새 담임 김 선생은 기존의 교사들과 달리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결국 새 학년이 된 지 한 달 정도 지나 사건이 터졌다. 학교에서 치른 새 학기 첫 일제고사에서 김 선생은 석대가 부정 시험을 치렀음을 직감하고 채점이 끝난 시험지를 돌려주자마자 석대를 교단에 엎드려 뻗치게 하고 어린애 팔목 굵기만한 굵은 몽둥이가 절반 정도가 부러졌을 만큼 무지막지한 체벌을 가하였다. 이번에도 석대는 독보적으로 전교 1등을 차지했으나, 석대의 상위권 대리 시험 셔틀들(수학 - 박원하, 국어 - 황영수 등등)이 평소 특기 과목에서 갑자기 낮은 점수를 받고 병태를 포함한 나머지 학생들과 같이 전학년 10등 밖으로 밀려났으며,[21]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석대의 시험지에서 다른 이름이 먼저 쓰였다 지워진 자국을 김 선생이 포착한 것이다. 이를 물고 인상을 찡그린 채로 매질을 버티던 석대도 마침내는 교실 바닥에 엎어져 버렸고, 그 순간을 기다린 듯한 김 선생이 증거로서 보여주는 시험지를 보고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잘못…했습니다."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였다. 그런 석대에게 김 선생은 교탁에 꿇어앉고 손을 들게 했다.[22]

이어 김 선생은 석대의 대리 시험 셔틀들을 불러내어 누가 셔틀을 시켰는지 질문했고, 김 선생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석대가 고개를 쳐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공포에 질린 학생들은 김 선생과 석대 쪽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엄석댑니다."라고 자백했다. 김 선생은 그들에게 그렇게 한 이유를 묻자 폭행, 체벌, 따돌림 등 병태가 겪은 일들을 겪을까 봐 그랬다고 했고,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각자 선생님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났다거나 죄스러웠다거나 잘못했다고 했다. 잠자코 듣던 김 선생은 마지막 아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들에게도 석대와 같은 체벌을 10대씩 가하고[23]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나는 되도록 너희들에게는 손을 안 대려고 했다. 석대의 강압에 못 이겨 시험지를 바꿔준 것 자체는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너희들의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듣게 되자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들의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너희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모두 교단 위에 손 들고 꿇어앉아 다시 한번 스스로를 반성하도록.[M]

그리고 김 선생은 석대의 비행을 출석 번호대로 차례차례 고발하라고 하였는데, 이때도 석대가 고개를 쳐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학생들을 쳐다보자 아이들은 석대의 비행을 고발하는 것을 망설였고, 이를 보다 못한 김 선생은 5학년 시절 담임 교사로부터 그가 반을 맡았을 당시 아무도 석대의 잘못을 써내 주지 않아서 반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알고 계속해 석대를 믿게 되었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자신 역시 학생들이 석대의 다른 잘못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다시 석대에게 반을 맡길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한 뒤 1번부터 석대의 비행을 고발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간 석대가 저지른 잘못을 평범하게 "석대가 ~(으)라고 했습니다." 식으로 일렀으나 뒤로 갈수록 \'임마', '새끼', '자식' 등 상상도 할 수 없던 욕설들을 내뱉으면서, 나중에는 선생님에게 고발하기보다는 석대 면전을 향해 곧바로 쌍욕을 퍼붓는 식으로 변했다고 회고하는데, 해당 대목은 그 석대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을 평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며, 게다가 그런 욕을 담임 교사 앞에서 내뱉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는 것이다.[25] 그 시절 청소년들의 욕설도 2020년대 현재보다 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석대의 비행을 앞장서서 고발하는 와중에 병태만은 전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른다는 핑계를 대어 석대의 잘못을 단 한마디도 고발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담임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병태가 석대에게서 평상시에 좋은 대접을 받았기에 그런 행동을 한다는 식으로 하나같이 병태를 욕하며 정신적으로 다구리를 쳤다. 이 역시 담임 교사가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김 교사는 알겠다는 말만 하고 다음 아이에게 발언권을 넘긴다.

이런 병태의 행동에도 해석할 여지가 많은데, 이건 원작에서 그냥 설명해준다. 쉽게 말해 비겁하단 것. 덧붙여 병태는 의외로 석대의 악행을 잘 모르기도 했다. 5학년 한 학기 동안에는 석대에게 반항해 학급에서 왕따로 지내고 나머지 한 학기 동안에는 역으로 석대의 오른팔처럼 지냈기에 속을 터놓지 못했는데, 석대는 위에 서술된 대로 병태 앞에서 악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병태의 번호가 전체 61명의 학생 중 뒷번호에 속한 39번이다 보니 병태도 알고 있는 어지간한 석대의 잘못은 다른 애들이 이미 다 말하기도 했고.

모든 학생의 발언이 끝난 뒤, 김 선생은 걸레 채를 꺼내고 아이들이 지난날에 겪은 비열함의 값과 앞으로 삶에서 교훈의 값으로 모든 아이들에게 체벌 5대 씩을 가하였다.[26] 이 매질 역시 석대와 대리시험 셔틀들을 때렸을 때 못지 않은 강도의 모진 매질이어서 한동안 반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훌륭한 학급을 만들라고 하고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겠다고 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석대는 새로운 급장 선거 끝 무렵, 자신의 표가 하나도 나오지 않자 학교에서 뛰쳐나갔다. 이때 나온 명대사가 "잘해봐 이 새끼들아!!!!"다. 학생들이 잠시 동요했지만 급장 선거는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병태는 이때도 어차피 반장 선거의 결론이 난 이상 양심이라도 지키고자 무효표를 던졌다.

그리고 석대는 등굣길에서 아이들을 습격하며 끈질기고 한 달 가까이 집요한 복수를 했다. 아이들은 담임인 김 선생한테 고발하였으나, 김 선생은 오히려 고발한 아이들에게 "다섯 놈이 하나한테 하루 종일 끌려다녀? 병신 같은 자식들"이라던지 "너희들은 두 손 묶어 놓고 있었어? 멍청한 놈들"이라고 가차없이 비난하면서 모진 체벌까지 가했다. 이에 결국 학급의 아이들 중 별나고 당찬 소전거리[27] 아이 다섯이 정면으로 석대와 맞붙게 되는데, 석대는 그날도 똑같이 아이들을 압도하였지만 아이들이 5:1로 기를 쓰고 협공을 하니 석대도 결국 밀려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다음날 미창에서도 아이들을 기습했으나 똑같이 참패한 뒤 결국 그 작은 읍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김 선생은 그렇게 석대를 물리친 아이들에게 인기 있던 책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저서로 유명한《용기 있는 사람들》을[28] 선물한 다음, 학급의 아이들한테 그들을 굉장히 치켜세우는 식으로 아이들에게 앞으로의 삶에서도 역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라고 자극했다.[A]

읍내에서 자취를 감춘 석대는 아버지가 일찍 죽자 어린 석대를 외조부모에게 버리고 재가한 어머니가 계신 서울로 떠났다는 소문만이 들려왔다고 한다. 영화판에서는 석대가 시험 뒤풀이에 앞서 병태에게 "너 창신동이 어디있는지 알아?"라고 언급했으니 아마도 창신동으로 간 듯하다.

5. 결말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뒤에 석대가 잘나간다는 무성한 소문을 들으면서 지극히 평범한[30] 인생을 바쁘게 살아가던 도중, 회고 시기로부터 몇 달 전 여름쯤에 가족과 휴가를 보내려고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가다가 강릉역에서 석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석대는 형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두들겨 맞고 체포돼 연행되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병태는 석대를 알아보았으나, 석대도 알아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병태는 석대는 모르는 눈치였다고 회고한다. 병태는 그날 저녁, 자고 있는 가족 곁에서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을 마시다 눈물을 흘렸는데, 그때 그 눈물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생각하는 것으로 회고를 마친다.[31]

2005년 경 작가의 말에 또 다른 결말을 언급했는데, 석대가 화려하게 성공한 결말이다. 병태가 가족과 바다로 여행을 갔다가 숙소를 잡지 못하고 있던 도중, 우연히 만난 석대가 병태를 알아보고 여행하는 내내 지낼 수 있도록 고급 호텔을 잡아주게 되었다. 그날 저녁 석대는 병태의 가족에게 만찬을 제공하고 병태와만 같이 술을 마시러 갔는데, 석대는 "나중에 들었다. 그 무효표 둘. 한 표는 틀림없이 너의 것이었겠지. 세월이 지나도 그 귀중한 한 표를 잊을 수 없었다."라고 하며 병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32] 그리고 병태에게 "신통치 않으면 날 찾아와라, 여기에도 업체가 있지만 본인의 주력 사업 본사는 서울에 있다. 옛날처럼 우리 둘이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다."라고 같이 일하자는 권유를 하며 다 못한 얘기는 다음에 서울의 식당에서 하자며 일어났다. 이에 병태가 방에서 나가는 석대를 앞질러서 오래전부터 모셔온 사람처럼 문을 열고 맞이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회고를 마친다.
현실 세계에서는 악당이 더욱 번성하는 수가 많고, 현대 소설에서는 그것이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존중되어 왔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뻔한 리얼리티가 싫었고, 그 무렵의 유행이던 '어둠과 악의 승리'라는 결말에 식상해 있었다.

악당은 수갑을 차라. 그런 단순하고도 정직한 느낌으로 지금 발표된 것과 같은 결말을 선택했다.
개정판에 추가된 작가의 말
이문열이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을 개작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퍼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 결말은 정식 결말이 아닌 개정판을 내면서 작가가 일종의 부록으로 첨부한 것이며, 개정판에서도 본문은 원래의 결말대로 끝을 맺는다. 아마도 이 문단 맨 아래에 서술된 영화판의 결말이 소설과 다른 뉘앙스로 마무리된 것이나, 또는 2005년 출간 버전에서 또 다른 결말을 작가의 말에서 함께 실어놓은 것이 결말이 개작되어 바뀌었다고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병태가 어린 시절에 석대를 모시던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처럼 석대를 앞질러 나가서 문을 잡아뒀다느니 하는 묘사가 악인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찝찝한 결말을 넘어서 아무리 현실 반영, 하이퍼 리얼리즘이래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꽤나 불쾌감을 가져올 수도 있는 내용이라 이 결말을 사족에 가깝게 보는 사람도 있다. 이문열 본인도 이걸 알고 있기 때문에 부록의 개념으로 첨부한 것일 뿐이다.

작가 왈 세 번째 결말도 존재했으나 작가 본인도 찾을 길이 없다고 언급했다. 석대가 몰락했는지 성공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했다.

이 결말들에는 추가적인 비하인드가 있다. 영화판 제작 당시에 이문열과 인터뷰를 했는데, 1980~1990년대 당시에는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상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상당히 구시대적 발상으로 평가되는 추세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결말을 내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는데, 이문열은 이에 대한 반발 심리로 엄석대는 나쁜 놈이니까 감옥에 가는 게 바르다는 생각으로 낸 게 첫 번째 결말이다. 그런데 영화판 제작 당시에 영화판 감독이 권성징악 결말을 지적해서 두세 번째 결말을 만든 것인데, 개정판에 부록으로 첨부한 게 위에 서술된 두 번째 결말이고, 마지막으로 자기도 잘 모르니 각자 알아서 상상하라고 한 것이 세 번째 결말이다. 영화판은 세 번째 결말대로 갔다.

6. 줄거리, 인물 해석

90년대부터 꾸준히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이기 때문에[33] 이 작품과 그 해석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이 작품을 정치적인 우화로 해석하는 경향인데, 이는 90년대에 교과서에서 채택하면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식된 해석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면에서 조금씩 해석이 달라진다. 당시에는 부당한 권력이나 독재의 종식을 이야기하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양상을 띠었다.

현재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으로 종식되고 새로운 폭력의 시대가 열리는 것에 대한 냉소, 그리고 주인공 병태가 향수를 느끼는 장면 등을 들어서 권력을 순응하고 동경하는 자세를 그린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선 어떤 결말이든 한병태의 태도가 찜찜하게 끝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그저 한 소시민의 씁쓸한 회상인지 권력에 대한 향수와 동경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병태는 분명히 달라진 시대상의 불만족에 빠져 있으며 동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석대의 몰락과 그 후의 과정에서 강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석대의 경우도 끝이 좀 다르긴 하지만, 또 한 번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것 자체는 동일하다.

이를 통해, 작가가 긍정과 부정을 떠나 한국의 현대사 흐름에 강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음은 두말 없이 알 수 있다. 이런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식자층이 느껴온 어떤 무기력과 회의주의적인 감성이 나타난다는 측면, 다른 하나로 작가 개인의 보수적인 입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측면이 있다.

사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지식인층의 무력감은 리얼리즘 계열 작품에서 흔하게 묘사된다. 오히려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작품들은 대체로 혁명가독재자로, 이념가가 현실에 매몰된 속물로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 또한 결코 무탈하게 지나오지 않은 만큼, 그 과정에서 식자층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만족이 문학 작품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이 작품에서 다루는 바는 오히려 주류적인 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뚜렷한 정치적 스탠스의 문제보다는 식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회의주의적인 자세, 현실 순응적인 자세를 여과 없이 묘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6.1. 한병태

주인공 병태가 스스로의 굴종을 타락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작중 스스로의 입으로 "굴종의 단맛에 취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한편으로 석대가 몰락하기가 무섭게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인 김 선생에게 고발하는 아이들을 보며 병태가 느낀 아이러니는 원작에서 그냥 설명해주는데, 대충이나마 '나나 설레발을 치는 저 녀석들이나 똑같잖아? 석대가 실각하기 전에는 석대한테 반항할 용기도 없이 석대 밑에 바로 배 깔고 누워 꿀 실컷 빨았으며 (내가 투쟁했을 때) 누구도 나에게 호응을 주지도 않은 주제에 석대가 박살 나자 등 밟으면서 까대는 것이 아닌지??'란 비난처럼 읽히기도 하며, '나는 너희들보다는 지조가 있다.'라는 냉소처럼도 읽힌다.[34] 비단 학생들 사이에서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는 더욱 비일비재한 일이란 걸 생각해보면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결말부에서 병태가 '석대의 새로운 왕국이 생기고, 거기에서 예전과 같은 호사를 누리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다(판본마다 조금 다르긴 하다). 물론 초등학교 때 엄석대의 왕국을 위협한 위치에 있던 것과 달리 사회에서는 한병태는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평범한 학원강사고 조폭두목이 된 엄석대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없기 때문에 엄석대가 굳이 한병태를 2인자로 대우하며 곁에 둘 이유는 없다.

위와 같은 대목들에는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는데, 첫째로는 작중 병태는 바뀐 환경에 대해서 강한 괴리를 느끼는 캐릭터이며 항상 거기에 쫓아가지 못하고 소외된 인물이다. 둘째로는 결말부의 병태는 평범한 소시민 신분으로 각박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무엇보다 석대는 또다시 실패하고 경찰에 잡혀가는 더욱 초라한 신세로 나온다.

여기서 나타나는 병태의 감정은 결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자기 삶에 대한 자조에 가까운 것이며 당시 한국 사회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생각해 보면 자포자기에 가까운 망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 뒤에 나온 다른 작품들, 특히 90년대 이후에 보여준 작품 활동에 대한 비판이 이 작품으로 번진 것도 고려해야 한다.

6.2. 엄석대

병태는 결국 석대한테 굴복하였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니었다. 비교적 석대 치하에 머무른 시기가 짧아 자유에 대한 갈망도 더 컸던 병태는 무려 학교 전체를 적으로 돌린 채 한 학기 가량을 버텨냈다. 물론 석대가 세워놓은 왕국이 너무 거대하고 강해서 병태 혼자서는 무리였지만, 아예 이런 시도 자체가 없던 이전과는 달리 외부의 저항을 최초로 받은 석대 입장에는 자신한테 도전하는 놈도 있을 수 있음을 느끼고 경각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티가 나지 않게 괴롭히며 기세를 확실히 꺾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병태가 굴복하자 다시는 반란을 생각지도 못하도록 수많은 특혜를 주며 우대한 것이다. 석대 입장에선 일차적으론 가장 큰 위협을 꺾은 것임과 동시에, 최초로 자신에게 도전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강적이었던 병태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 것에 대한 기쁨 역시 마음 속에 존재했을 것이다.

교활하게 사람을 다루는 지능적인 모습과 남다른 카리스마를 보여주긴 하였으며, 상대인 병태는 단순히 몇 살 형이란 것 이상의 압박감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석대의 출생신고가 잘못돼서 나이가 같은 학년 애들보다 두세 살 많다는 언급을 감안하면 대단한 위업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 나이 차이 하나 때문에 국민학생들의 눈에 대단하게 보였을 뿐이고 실제로는 별 볼일 없는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영화판에서는 석대가 국민학생임에도 중학생들을 부리고 심지어 고등학생들과 섞여 다닌 점을 감안하면 석대는 작중 언급보다 한 살 정도 더 많은 중고등학생 나이로 추정할 수도 있다.

몰락 후 투표 때 자신의 표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굴욕을 못 이기고 학교에서 뛰쳐나갔고, 다음날부터 학교에 안 가고 고작 등굣길 국민학생들을 괴롭히는 한심하고 끈질기고 집요한 복수를 저질렀으며, 두세 살 적은 국민학생 동기 다섯 명이 협공해서 반격하자 역으로 두들겨 맞고 그 길로 동네를 뜨는 추태를 보여줬다. 이런 석대의 행적은 평범한 사춘기 소년보다도 못할 정도로 생각이 짧고 충동적이었다.

대리 시험 또한 6학년 담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들키지 않았을 뿐이고, 실제로는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알아차릴 수 있는 허술한 행동이었다. 더욱이 그 나이로 국민학교 5~6학년 시험에서 80점대를 받은 건 사실상 전교 최하위권의 학업 능력이나 같다고 할 수 있다.

싸움 실력도 나이 또래에서는 그렇게까지 강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싸움 실력을 타고나서 국민학교 4학년 때 중학생(몇 학년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1학년이라고 하면)을 이겼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같거나 한 살 정도 많은 한 명을 이긴 것도 그렇게까지 대단한 업적으로 볼 수 없으며, 위에 적힌 대로 동기들이 덤벼들자 도망친 것을 봐도 그렇다.

다만, 나중에 거물 조폭 두목이 되어서 성공한 걸 봐서는 공부 쪽과는 달리 사회의 어두운 면인 조폭 운영 쪽으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벗어나고 다음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은 건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한 가지는 엄석대가 다시 학교에 등교해서 참고 기다리다가 언젠가 다시 정권을 재탈환하고자 신중하게 생각하지를 못한 것을, 또 한 가지는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엄석대의 적성에 맞는 조폭 쪽으로 진로를 바꿔서 조폭두목으로서의 성공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한병태도 엄석대가 강자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나갈 때와 물러설 때는 아는 무서운 아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국민학교 6학년 때 자신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진 6학년 담임에게서 대리시험이 밝혀지고 그동안에 저지른 악행들이 전부 드러나서 몰락했으니 나중에 조폭두목이 된 후에도 몰락했다는 결말 자체는 자연스럽다. 작품의 결말대로 시정잡배가 되는 게 현실적인 말로에 가깝다는 말도 있다.

6.3. 김 선생

나는 되도록 너희들에게는 손을 안 대려고 했다. 석대의 강압에 못 이겨 시험지를 바꿔준 것 자체는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너희들의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듣게 되자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이라는 너희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모두 교단 위에 손 들고 꿇어앉아 다시 한번 스스로를 반성하도록.[M]
폭압적이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권력자 석대, 석대의 압제에 진작에 굴복한 학급 아이들, 그것에 저항하다 결국은 무너지고 석대의 회유에 넘어간 소시민적 지식인 병태는 소설에서의 성격이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으며 또한 비유한 세력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적은 편이지만, 소설 후반부에서 나오는 6학년 담임 김 선생에게는 입체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상당하며, 해석에도 논란이 있다.

먼저 김 선생은 어디까지나 급장으로서 학생들의 대표자였을 뿐인 석대와는 달리 최 선생처럼 '학급 운영에 대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한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석대도 김 교사에 비하면 김 교사의 지시와 교육 대상인 하급자일 뿐이었다. 지휘권이나 교육권을 가진 자가 지시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며, 교사의 제1의무는 '학생의 지적 수준을 특정 수준 이상까지 향상시키는 것과 학생의 인격적 도야를 돕는 것.'이고, 오히려 사적 제재를 가하는 불순분자를 뿌리뽑는 것이 지휘권을 가진 자의 의무이며, 학생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 지시에 순응할 의무를 지고 있다. 김 교사가 석대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이 있어서 방법의 문제는 있었던 것이 맞지만,[36] 1950~60년대 당시에는 그 방법이 오히려 교육의 왕도였고, 김 교사가 석대의 권력을 그대로 두고 보거나 전 담임처럼 이용했으면 그것 자체가 직무 유기이고 방조죄이다.

그리고 과연 '엄석대에게 빌붙어서 대리시험을 쳐 주고 교사를 기만한' 학생이 죄가 없다 할 수 있는가? 예나 지금이나 대리시험은 학교 차원에선 출석정지, 전학, 퇴학급의 중징계감이며 국가시험에서도 중대한 부정행위이기에 시험자격을 수년 박탈당하거나 경우별로 형사처벌까지 당할 수도 있다. 김 선생은 그 시절 기준으로 과도한 체벌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부정을 저지른 학생들이 학교 차원에서의 공식적 처벌을 받았다거나 부모에게 혼났다는 말은 없는 것을 보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자신의 선에서 끝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무르게 끝냈다고 해석하기에도 충분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 하면, 김 선생은 석대의 불법적인 권력과 권위를 제한한 교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인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김 선생은 폭력을 동반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했을 뿐이고, 민중에게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시키는 존재가 아니던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측면 때문에 해방자적인 면이 있을지언정 순수한 해방자가 되기는 힘들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무능하고 폭력과 억압의 질서를 방기한 관리자인 5학년 담임 최 선생보다는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나, 무능한 민중이라는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이문열 특유의 허무주의로 이어지기 쉽다.

이 작품에서 다루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석대가 가진 최대의 권력 기반은 교사의 지원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 병태가 석대에게 저항하던 5학년 시기에 석대는 주로 숙제 검사나 소지품, 복장 검사, 청소 검사 등 교사의 권한을 대행하는 영역에서 병태를 탄압했다. 곧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석대의 폭력을 방조한 5학년 때의 담임인 최 선생으로, 최 선생은 단순히 석대가 반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방치한 것을 넘어 폭력의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방조했다. 이는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교직에서 파면되고도 남는 것은 물론이요, 직무 유기죄로 형사 처벌까지도 가능한 중범죄이다. 책임자로서의 방관도 공범이라는 논리로 보면 최 선생 또는 석대를 방관한 대다수의 교사들도 김 선생이 말한 불의를 보고도 분한 줄 모르는 일명 비겁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영화판에서 최 선생은 김 선생에게 대리시험이 들통나서 처벌받는 엄석대와 아이들을 교실 밖에서 지켜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굉장히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며, 다른 교사들도 양심에 찔려서 김 선생의 눈을 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김 선생에 대한 해석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 중 하나가 '불의의 대가를 피해자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킨 것'이다. 김 선생이 석대와 마찬가지로 폭력과 정치적 술수로 권력을 장악한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데에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 선생이 석대를 방조한 것은 아니라지만 학생 대 교사란 권력 관계 내에서 동료 교사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던 것은 분명하며, 석대가 지은 강압적 지배 구조에서 학생들은 설령 굴복하고 영합했을지언정 한편으로 일종의 피해자이기도 하던 점도 고려하여야 할 부분이나, 석대 문제의 책임을 이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인 최 선생이 아닌 아이들에게 강압하여 일정부분 전가했다. 즉, 석대의 독재로 인해 입은 해에 더하여 석대에게 저항하는 대가까지 치르게 한 것이다. 김 선생의 역할을 통해 '영웅의 연쇄'라는 순환 고리를 완성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도 똑같지만, 결국 자기 자신은 편안하고 안전한 위치에서 따돌림의 대상을 석대로 바꾸어 내쫓아 버리고 학생들을 싸움터로 내몰고 문제를 배제한 것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니 진정으로 학생들의 의식 성장을 노렸다고 보기도 어렵다.[A]

대다수의 해석에서도 김 선생 역시 석대와 똑같이 '폭력과 권모술수'를 통해 학급의 정권을 탈환하고 석대 비판 작용을 통해 새로이 권력을 공고히 한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언급하며, 특히 영화판의 결말에서 등장하는 '국회의원 김 선생'의 모습은 이러한 의식을 보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던 김 선생은 5학년 때 담임 교사의 장례식에서 그 막장스러웠던 5학년 때 담임 교사를 '훌륭한 교사'로 치켜세우고 아부까지 하는 변절해 버린 모습이 나온다.[38]

분명히 작중에서 김 선생은 또 다른 폭력이며 그 증거로 병태가 초기 석대에게서 느꼈던 저항감을 김 선생에게서도 똑같이 느낀 점을 보아야 할 것이다. 상술된 요소들 때문에 김 선생은 압제자, 해방자 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입체적 인물로 남은 것이다. 김 선생을 '해방자'로 해석하는 경향은 작품의 해석을 '독재 타도'로 보던 과거의 것이며, 오히려 김 선생이 '해방자가 아닌 또 다른 억압자'로 해석된 것이 이 작품을 재평가하게 된 계기였다. 특히 이문열의 아래 언급 때문에 이런 해석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6.4. 종합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철저하게 우화적인 구도를 가진 소품이다. 거기서 석대가 보여 주는 행태의 원관념은 정당성과 정통성이 없는 권력이고, 그를 둘러싼 분단장급의 상위 그룹은 지식인 출신의 관료 내지 행정 기술자들이다. 첫 번째 담임 교사는 미국이며,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레이먼드 보너가 '독재자와의 왈츠'라 이름 붙인 미국의 6, 70년대 외교 정책이다. 또, 두 번째 담임 교사는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이념이며, 그가 아이들의 의식을 일깨워 주는 방법은 그 폭력성에 다름이 아니다.

결론을 내자면,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우화 양식에 충실한 작품이다. 정치색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른 이문열의 작품들, 장편 선택, 시인이나 단편 〈아우와의 만남〉, 〈구로 아리랑〉, 〈달아난 악령〉 등과 달리 노골적이지 않다. 정치색에 대한 여과 없는 어필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후의 몇몇 작품들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러한 작풍과 비교하면 명백하게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일그러진 영웅'이며 그 성장과 절정, 그리고 몰락,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어지는 '영웅의 연쇄'에 있다. 그 사이에서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식자이든 소시민이든 그 틈바구니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아이러니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다.

6.5. 교양물, 학원물 측면에서

작가 이문열이 2010년도 인터뷰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성장 소설"이라고 코멘트한 바가 있는데, "말하는 덕분에 권력에 순종하면서 사는 게 좋다는 역설적인 교훈인가?" 하는 야유도 있으나 이는 '성장 소설'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다. 교양 소설, 성장 소설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는 인간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자연주의 계열에서는 오히려 속물적으로, 타락하는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는 인간을 통해서 인간성이 얼마나 쉽게 유린될 수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그 인간성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보통 독자들에게는 믿기지 않겠지만 사드 후작의 대표작들 또한 성장 소설, 교양 소설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한병태의 타락과 자포자기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한 소년이 불의를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높여간다 하는 점에서 분명 성장 소설적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이 소설은 '학원 소설' 측면에서도 읽힐 수 있다. 특히 소위 빵셔틀로 요약되는 학교 폭력 문제의 현실을 보면 이 작품은 수십 년 전 작품임에도 오늘날 교실 내에서의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매우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집단 괴롭힘에 대처하는 실질적인 해결 방법은 교사나 공권력에 의하는 통제밖에 없으며, 이 구조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크게 변화하지 않은 걸 볼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학교 폭력 관점에서 이 소설을 바라보면, 소위 일진인 석대와 그 패거리가 병태를 왕따로 만들었고, 복종시킨 다음에는 셔틀로 만들어간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석대의 일진-셔틀 행위는 집요하고 치밀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석대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이진'들을 조직하여 다양한 이득을 꾀한 점[39]에서 단순히 폭력을 휘두른 깡패가 아닌 학교판 조직폭력배로서의 일진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또한 석대의 실체를 몰랐거나 실체를 알고도 눈감아주면서 오직 성적과 질서에만 골몰한 교사들의 모습, 김 선생마저도 결국 아이들을 내몰아 석대를 공격시킨 '또 다른 집단 괴롭힘'을 저질렀으며, 교육자로서 석대를 대하기보다는 '문제아를 잘라내는 활동'에 집착한 점에서 일선 교육 현장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런 요소들은 오히려 요즘에 발표된 학교를 소재로 한 매체들보다 더욱 적나라하다.

작중 김 선생은 아이들의 저항 정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체벌을 가했는데, 잘못 툭 치기만 해도 부모들이 빼애액거리고 학교를 뒤집을 뿐만 아니라 교사가 아동 학대로 린치되는 2020년대 이후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시절엔 학교에서 교사에게서 맞은 것 이상으로 가정에서 부모에게서 맞았으며,[40] 부모들이 교사를 찾아가서 회초리를 선물하며 자기네 아이 사람 좀 되게 최대한 많이 때려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었고, 학부모가 항의하러 찾아가면 되려 집에서 그리 오냐오냐하니까 애가 그 모양이 된 거라고 교사가 학부모에게 호통을 치며 훈계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당시가 아닌 현대의 일선 교육 현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교사는 "일진 한 마리한테 몇 년을 휘둘린 애들을 보듬어주진 못할망정 어디서!"라는 비난부터 들을 것이다. 특히 학교 밖에서 석대에게서 보복 폭행을 당한 것을 일러바친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가혹한 체벌을 가한 것은 현대 대한민국의 정서로는 빼도 박도 못하는 학부모 민원 대상이며[41], 더 나아가 해당 교육지원청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을 처벌한 것이니 말이다. 이런 학생 체벌이 현시대 기준으로 엄연히 2차 가해아동 학대에 해당하나, 불과 수도권은 2010년대 초반, 지방은 2010년대 중반만 해도 체벌은 정당한 교육 방법으로 인정되어 있었다. 치안의 사각지대가 현대보다 더 산재해 있던 1959~60년인 것도 적절히 감안해야 할 것이다.

6.6. 그 밖에

이문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일그러진 영웅'형 인물이 이 작품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이전에도 일그러진 영웅형의 인물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 소설에서 엄석대를 기점으로 하여 이러한 인물상이 뚜렷하게 확립되었다. 이문열의 데뷔작인 〈나자레를 아십니까〉에서 나오는 목사의 아들이 일그러진 영웅의 시작 지점 같기도 하나, 이는 오히려 훗날에 나타난 타락한 지식인, 냉소적인 지식인의 형태에 가깝다.

여기서 나타난 석대의 처참한 몰락은 후대의 일그러진 영웅들에게는 없는 것인데, 이에 따라 석대 자체도 '보다 센 권력의 용인하에 설쳐댄 나팔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작가인 이문열 특유의 엘리트 의식이 나타나는 소설이라는 평가도 있다. 우선 병태가 전학 초기에 보였던 태도는 전형적인 엘리트 의식의 발현이고 병태가 전반적으로 보이는 식자적 태도, 그리고 결말부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몰락한 인간이나 실패한 인간으로 치부하는 태도에서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엘리트 의식을 싫어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문열의 부정적 특징이 최초로 드러난 소설로 이 소설을 꼽는다(다만 이 작품 이전에 내놓았던 작품들 또한 그러한 엘리트 의식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작품 내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났던 '식자의 무력함'은 우리나라 식자 계층의 자기 합리화 논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식자 계층의 자기 합리화 자체가 이 소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없는 데다, 문학 작품을 누가 악용한다고 해서 그 문학 작품 자체나 그 작가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관계로 많이 악용되기도 할 뿐이다.

작품의 절정이자 클라이맥스인 엄석대의 몰락 장면은, 현세대를 살아가는 정치가·논객들의 처신과 허탈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부당한 권력이 몰락했을 때, 그에 최대한 저항했던 지식인과 비굴하게 아첨하여 연명한 시정잡배들은 어떤 행동의 차이를 보이는가?"에 관하여 현실을 돌아보면, 부당한 권력이 위세당당할 때에 모든 것을 부딪쳐 저항한 사람은 그 권력이 몰락한 후에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반면 권력이 강성할 때에는 찍소리도 못 하던 비겁자들이 오히려 그 권력이 쇠한 뒤에는 태도를 돌변하여 마치 자신은 그 권력자와 3대째 철천지원수로 지내오기라도 했다는 듯 못 잡아먹어 안달복달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석대가 독재하던 시절에 권위에 억눌려서 찍소리도 못하던 친구였던 만순이 있다.

참고로 지금은 소설을 정치에 대입하는 것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정치의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여겨져 거의 시도되지 않지만, 과거에는 최 선생을 이승만으로, 그리고 석대를 이기붕이나 곽영주로 해석하고 김 선생을 박정희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 때 현 86 출신 과거 운동권 국회의원들의 면모와 같아 이문열 작가의 전체적인 사람의 행동 양식의 흐름을 묘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즉, 이기붕이나 곽영주 등이 대통령의 힘을 업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것 같았으나 결국 자신을 비호해 준 이승만(=합법적 권력자, 5학년 시절 담임인 최 선생)이 하야하자 급격히 힘을 잃고(=일개 학생에 불과하므로) 박정희(=새로운 권력자, 6학년 시절 담임인 김 선생)에게서 축출된 것. 그리고 위 서술에도 있듯이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결국 이런 흉포한 권력을 사실상 묵인하거나 모르던 5학년 시절 담임에게 있었듯, 실제적 악인은 이승만이지만 정작 본인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천수를 누렸고, 그 아래 사람은 축출되어 사형까지 당한 점, 새로운 권력자가 새 질서를 수립한 점에서 유사하다.

서상훈은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 석대는 전두환으로, 어린 병태는 당시의 지식인들로, 화자인 어른 병태는 이문열 자신으로, 다른 학생들은 일반 국민들로, 5학년 담임인 최 선생은 독재를 묵인하던 미국으로, 6학년 담임인 김 선생은 독재 정권을 버린 미국으로 보는, 6월 항쟁을 평가한 작품이라는 해석이다. 그것도 6월 항쟁에 상당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 것. 위의 또 다른 결말이 작가가 생각한 진엔딩이고 본래 엔딩은 돈 때문에 타협한 거라는 해석이다.[42] 실제로 작가가 후에 한나라당을 위시로 한 보수, 우익 진영에서 활동한 것도 생각하면 뭔가 앞뒤가 맞는다는 주장이다. 덧붙여 6학년 시절 담임이 우등생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내용도 있는데, 그 담임의 말대로는 거짓말이 아닌 셈이다.

이문열의 다른 작품인 필론과 돼지(필론의 돼지)에서는 비슷한 듯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전형적인 악당형 독재 세력(검은 각반들)이 민중에게서 제압되지만, "과연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폭력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와중에 주인공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방관자스러운 입장을 취한다.

7. 표절 의혹

영화화되었을 무렵, 황석영의 단편 〈아우를 위하여〉(1972년 발표)를 표절했다는 소문이 잠시 돌았으나 영화의 흥행으로 인해 별 반응 없이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2004년, 문학 평론가인 반경환이 직접적으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했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내게 됐다. 반경환은 이 주장으로 책도 냈다.

표절설에 이문열은 자신의 위치를 시샘하는 이들이 억지 주장을 한다는 식으로 넘어갔는데, 2008년 즈음부터 다시 재논란이 되었다.

반경환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아우를 위하여〉가 전달하려는 구조와 스토리가 아주 유사하고, 화자로서 5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위치와 성격, 전달하는 부분이 모두 똑같다는 점을 지적하며 집필 당시 정치색을 그리 띠지 않았던 이문열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유독 강렬한 정치색을 주입한 이유는 이와 같은 표절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 밖의 표절 의혹에 관한 의견은 아래에 나와 있다.
  • 황석영의 소설인 〈아우를 위하여〉는 1970년대 초에 출판되었으며,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87년에 출간되었다.
  • "〈아우를 위하여〉는 그의 초기 단편선 '객지(1974)'에 수록된 단편 중의 하나로 황석영의 작품 세계를 논의할 때 필수적으로 언급된다. 이런 작품을 이문열이 표절했다는 것은 난센스이다. 표절설은 반경환이란 이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이런 주장에 응답하는 이는 평론계에 없다. 2008년에 재점화된 것도 이문열의 촛불집회 비난이 물의를 빚자 데일리 서프라이즈가 이문열을 공격하기 위해 반경환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선전된 것에 불과하다."라는 견해도 있다.
  • 〈아우를 위하여〉는 가시와바라 효조의 〈먼 길(長い道)〉(1968)을 표절했다는 설이 있는데 2008년 시점에선 표절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먼 길〉은 일본 근대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로 같은 계보주의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은 왕국〉(1918)의 비극적인 결말에 대해, 다른 해석과 희망을 제시하기 위해 집필된 것이란 평론을 고려해야 하며, 〈먼 길〉의 대립 구조는 〈아우를 위하여〉와 반대되는 형태(입장이 역전되어 있다.)라, 표절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문예지나 대중 언론 매체 등에서는 이와 같은 표절설을 대대적으로 다루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 이문열 본인도 표절이라는 주장에 대해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배경 및 스토리 라인의 유사성을 근거로 표절이라고 한다면 이사벨 아옌데가 쓴 <영혼의 집>은 <백년의 고독>의 성별 반전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 영향 관계를 지적하는 평이 있을지언정 이를 표절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이런 이유로 표절이라고 하기 시작하면 남아날 작품이 없기도 하고. 근래 비슷한 맥락의 의견을 원로 평론가 유종호가 자신의 에세이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서 이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기도 하다.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는 비평계에서 〈아우를 위하여〉보다는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과 많이 비교되었다고 한다.

8. 미디어 믹스

8.1. 만화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 대표작선 1·2권으로 나왔다. 이 작품에서는 6학년 교사에게서 혼이 난 세 명이 이판사판으로 석대한테 1대3으로 덤비다가 유일하게 무기를 챙기지 않은 박원하가 초반에 도망친 듯하다가 몰래 석대의 뒤에서 볼링공 크기의 돌덩이로 퍽치기를 하였고, 박원하의 퍽치기에 당한 석대는 신나게 밟혔다. 엄석대는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병태에게 샤프 펜슬을 돌려주고 또 보자며 어디로 사라졌다. 또한, 졸업 후부터 어른이 된 석대를 보기 전까지 내용은 생략된 듯하다.

상술된 서상훈판 만화도 있다. #

이미 절판된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라는 제목의 만화판 서적이 있다. 물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고 단순히 '엄석대'라는 이름만 사용한 작품이다.

거기에서 꿈을 찾아내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빌런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동 인물 정도인 특정 학급의 '폭군' 반장이 바로 엄석대다. 석대가 폭압적으로 반우들을 이끌어 결승점에 도달하려고 하면서 - '성군' 반장인 왕공상 중심의 다른 학급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데, 결론은 모든 아이들이 석대를 동굴에 가둬놓고 빠져나온 걸 공상이 다시 빼 오자고 설득하는 것을 거쳐 석대가 개심하고 왕공상과 친구가 되는 교과서적인 결말.

8.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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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연극

연극판의 경우 엄청난 악평을 듣고 있다. 한 학교는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을 했는데 선생님들이 완전히 멘붕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해당 연극은 원작을 각색하여 현대식으로 풀이했는데,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석대와 병태의 대립을 거의 전부 생략했고, 석대가 한 비행도 엄청나게 축소되어, 마치 병태같이 반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인도적인 폭력으로 다스리나, 그것도 먹히지 않자 사람적인 대우를 해주는 학교 폭력 미화로 재탄생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무능도 대부분이 생략됐고, 부모님들은 아예 극 중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새로온 선생님도 강압적인 체벌이 아니라 손바닥만 때리는 것 정도로 완전히 가감되어, 극 자체만 본다면 학교 폭력은 경우에 따라선 아주 많이 필요하다. 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방백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데, 이 작품은 인물들의 표정과 심리가 잘 묘사되어야 완벽해지지만, 연극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모든 관객에게 보여줄 수가 없으므로 거의 대부분을 방백으로 처리했다.

9. 여담

10. 관련 문서



[1] 사실상 한국의 현대사를 국민학교 학급으로 표현했다고 봐도 무방한 한국의 대선배 격인 사회 고발물이다.[K] 이 시기는 '초등학교'라는 말이 아직 생기기 전이었다. '국민학교'는 1996년에 '초등학교'로 바뀌었다.[3] 1987년은 이상의 50주기로, 당시도 살아 있었다고 하면 이상의 나이는 77세였을 것이다. 이 해는 1977년 이상문학상이 제정된 지 10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이때의 심사위원들이 김동리, 김윤식, 이병주, 이어령, 이청준이었다.[4] 공교롭게도 이 해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해이다. 그리고 작가인 이문열 본인의 생년이기도 하다.[5] K[K] [7] 영화에서는 어른이 된 병태의 현재 모습을 도입부에서 보여준 후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과거 시점으로 바뀐다.[8] 물론 총무과장이 군청 내에서는 손에 꼽히는 고위직이지만, 어쨌든 병태의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중앙부처에서 일하다가 시골 군청으로 좌천된 처지가 좋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9] 원작 소설에서는 5학년 학기 초인 봄에 이사했지만, 영화판에서는 학기 도중인 가을에 이사하는 것으로 설정을 바꿨다.[10] 이 당시에는 '급장'과 '반장'을 혼용하였다. 1970년대부터 '반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11] 당대 수도권 학교와 지방 학교의 격차는 어마어마했다.[12] 석대는 전부터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었으면 "야, 이거 좋은데.", "그것 좀 빌려줘."라는 은근한 말로 압박해 가져가고는 물건을 가져온 급우에게 돌려주지 않았다.[13] 병태가 망신을 당하도록 석대가 일부러 짜고쳤을 가능성도 있다.[14] '조금만 손톱이 길어졌어도, 조금만 이발이 늦어졌어도'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15] 아마 예전에는 반에서 국어를 가장 잘 한 황영수가 국어 대리 시험을 쳤다는 말을 참고하면 석대가 대리 시험 셔틀을 두지 않고 90점 이상 받은 과목은 사회, 자연(현시대의 과학)인 듯하다.[16] 여기서 담임교사의 무관심을 알 수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필체의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리고 원래 상위권 아이가 특기 과목에서 갑자기 낮은 점수를 받고 필체마저 달라지면 의심할 법한데, 작중 어떤 교사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17] 사실 석대가 상술된 미화 시간 전에 마음 먹고 병태에게도 시킬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한 것에 가까울 것이다. 진작에 시켰으면 고발되었을 것이니.[18] 석대가 몇 명씩 차례로 지목해서 두 집단을 먼저 보내고 나머지에게 나뭇가지를 주워 오라고 하자 병태는 당연히 자신도 간다고 생각하고 같이 나무를 주우러 가려고 했는데, 석대가 자신을 도와줘야 하니 남으라는 석대의 말 때문에 혼자 남고 한 것이다. 그리고 술 심부름을 시키는 등 결코 호락호락한 심부름이 아니었다.[19] 정황상 원하가 석대한테 병태랑 한 이야기를 알린 듯하다. 병태도 자신의 기색이 심상찮단 것을 석대가 눈치채고 입막음을 하였다고 추측했다.[20] 사실 수년 간 전교 1등 자리를 지켜오던 학생이 갑자기 눈에 띄게 낮은 점수를 받아 등수가 크게 하락했으면 이 또한 이상하게 생각되어 의심을 샀을 것이다.[21] 영화에서는 병태는 10등 안에 들었다.[22] 영화판 기준으로 무려 하키 채로 29대나 맞았다. 그나마도 석대가 중간에 쓰러지고 잘못을 인정했기에 여기서 멈춘 것이니 석대가 항복하지 않고 계속 버텼으면 더 맞았을 것이다.[23] 맞는 동안 두 번쯤은 몸이 내려앉아 바닥에 닿을 정도로 모질었다고 언급한다.[M] 영화판에서는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의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또 불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어.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서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해..! 너희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야 이놈들아!!"라고 더욱 강조하며 소리쳤다.[25] 영화에서는 김 교사에게 석대의 잘못을 고발하고 "저 새끼 나쁜 새끼예요." 식으로 말하기만 했다.[26] 영화에서는 손바닥 4대씩 때렸다.[27] 소를 사고 파는 장이 있는 거리.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우시장.[28] 1956년 상원의원을 지내던 JFK가 훌륭하게 생각했던 상원의원 여덟 명의 이야기인데, 이들은 모두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옳다고 믿었던 것을 용기 있게 주장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JFK는 이 책으로 다음 해에 퓰리처상을 받았다.[A] 추후에 병태는 석대의 독재를 끝낸 것이 자기들 스스로의 힘이 아닌 새로운 권력자(김 선생)라, 독재로 말미암아 독재가 종말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씁쓸해하기도 했다. 확실히 김 교사가 석대의 폭거를 멈춘 인물이기도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그가 석대의 독재를 파괴한 방식은 엄연히 똑같은 독재였다. 더구나 김 선생의 행동은 폭력을 똑같은 폭력으로 갚으란 이른바 사적 제재를 조장하는 행위였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라 가르치지 않고 사적 제제를 조장하는 것은 어느 시대든 결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30]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퇴사하고는 외판원 생활을 거쳐 사업을 하다 실패하여 학원 강사로 재취업했다고 나온다.[31] 이경재 문학 평론가는 "이 눈물은 거의 강박적이라고 할 만큼 새로운 가치 체계를 찾았지만, 끝내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자가 느끼는 비애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해설하였다.[32] 석대 체제 붕괴 후에 나온 무효표 중 한 표는 당연히 석대 본인의 표였고, 또 하나는 상술된 내용대로 병태의 표였다. 작중 석대는 병태가 끝까지 양심을 완전히 굴복하지 않은 것만 언급했지만 사적으로는 모든 아이들이 앞다투어 비속어까지 써가며 탄핵했을 때 자신을 유일하게 탄핵하지 않은 병태에게서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33]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삽화가 위화감 투성인데, 제1공화국이 배경인 소설에서 남학생반, 여학생반이 나누어져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도 남녀 공학두발자유화에 사복까지.[34] 최소한 병태는 한 학기 가량 석대의 위치를 위협했다. 게다가 석대에게 가장 비굴하게 굴던 놈들이 이제서야 가장 적극적으로 석대를 욕하고 있었으니 이질적으로 느꼈을 수밖에 없다.[M] [36] 특히나 대리시험을 주도한 석대와 대리시험에 직접 가담한 학생들 외에 다른 반 학생들까지 모두 체벌한 것은 관점에 따라서 지나치다고 볼 만한 여지가 있다.[A] [38] 다만 엄연히 선배 교사이고 고인인 사람에게 이 정도 립서비스는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기도 하나, 젊은 시절의 의기로운 이미지와는 상당히 동떨어졌다고 병태의 동기들이 말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연하지만 국회의원이 된 시점에서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나 자세를 우선해야 하는 것이고, 국회의원의 일이 죽은 시민에 대한 도덕적 평론은 아니다. 죽은 사람 장례식장에 안 가면 되지, 가족들 앞에서 "이 새끼 순 나쁜 놈이었어요." 하는 게 말이나 되나. 물론 소설이나 영화는 주된 에피소드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각색된 것이고, 그렇게 해석하라고 애초에 도덕적으로 안 좋은 이미지의 직업인 국회의원까지 시켜서 이런 장면을 넣었을 터이지만.[39] 집이 가게나 농가인 아이들에게 물건을 바치게 한 것은 현대 일진이 돈을 상납시키는 것과 일치한다.[40] 대략 레퍼토리가 잘못을 저지름 - 학교에서 맞음 - 집에서 부모님이 흔적을 보고 왜 맞았냐고 물음 - 설명 - 니가 잘못했네 더 맞아라 식이다. 그래서 이 시절엔 오히려 체벌을 당했어도 꽁꽁 숨기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41] 물론 학부모중에서도 왜 바보같이 맞고 다니냐 너도 때려라 또는 니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다그치거나 심지어는 체벌도 하는 소위 김 선생 같은 케이스도 있다[42] 1987년에 출간된 만큼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두 가지 엔딩이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처벌받아 몰락한 부분(기존의 결말), 사면된 후로 호의호식하며 여생을 보낸 것(또 다른 결말) 두 모습 전부와 오버랩된다는 평도 있다.[43] 정확히는 윤석열 & 윤핵관들이 전당 대회에서 차례로 후보들을 끌어내리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후보만 살려두는 것을 보고 이를 엄석대에 비유하며 비판한 것이다. 친윤계에서는 엄석대를 윤석열에 비유했다며 분개하고 있지만, 이준석 본인은 특정인을 비유하지 않았다면서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 응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