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28 17:23:44

검사(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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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대한민국의 검사3. 검사의 이모저모
3.1. 기소독점주의3.2. 기획통·공안통·특수통 파벌3.3. 땅개3.4. 인맥질
3.4.1. 혼맥
3.4.1.1. 관련 문서
3.5. 조기퇴직3.6. 검사의 봉급(월급)
4. 위상5. 직급 체계6. 검사가 되는 방법
6.1. 사법시험(2017년부터 폐지)6.2. 법학전문대학원
7. 비판
7.1. 회식에서 폭탄주 문화7.2. 실비(촌지) 관행7.3. 골프 향응7.4. 술 접대 향응7.5. 스폰서
8. 검사/사건 사고9. 검찰개혁10. 관련 서적11. 창작물 속 검사
11.1. 검사가 나오는 작품
1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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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Public Prosecuting Attorney / Public Prosecutor

1. 개요

검사, Public Prosecuting Attorney[2]는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공적형사소추인을 의미한다. 형사소추, 즉 형사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공무원인 존재가 검사다.

영미법계에서는 공소 그 자체의 주체자로 해석되며, 대륙법계에서는 공소를 총괄하는 주체[3]을 뜻하는 것으로 약간 차이가 있는데, 전자의 경우 사적 형사소추가 허용되는 법 체계인 반면, 후자의 경우 국가가 소추권을 독점한다. 즉, 영미법에서 검사란 형사소추를 업으로 하며 국가에 의해 고용된 주체라는 의미이며, 대륙법에서는 국가의 형사소추를 이행하는 주체라는 의미인 셈이다.

영미법에서는 국가 질서의 파괴 행위인 범죄가 있을 경우 이에 대해 소추하는 것을 명목상 "개인이 국가에게, 아무개가 질서를 깨트렸다고 (범죄) 공소를 제기, 곧 정정을 요구 하는 것"[4]을 의미한다. 반면, 대륙법에서는 "국가가 국가의 질서를 깨트리는 (범죄) 행위를 정정하기 위해 적법한 절차(법원에 기소)를 거치는 것"으로 보므로, 전자의 경우 "국가가 질서유지에 도움을 주는 것"인 반면, 후자는 "국가가 질서유지를 총체적으로 집행"하는 것이므로 따지고보면 개와 고양이 수준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검사가 없던 시절에는 범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려면 개인이 직접 소추해야 했다. 이말인 즉슨, 자기 돈으로 형사소추인을 고용하여, 자기 돈으로 수사해서, 자기 돈으로 공소하고, 자기 돈으로 형사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어지간히 썩어 넘치는 게 아닌한 형사 사건에 대해 재판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돈이 아무리 많아도 개인 단위로는 동원 가능한 자산에 한계가 있으므로 국가에게 질서 유지를 집행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차단되는 것과 다름 없다.[5]

이 문제는 국가의 질서유지 기능을 무의미하게 만드므로 "당사자주의"를 가진 영미법 국가들에서조차 국가가 나서서 질서유지를 도와야한다는 의견이 대두, "공적 형사소추인"이 탄생하였으며, 이것이 매우 당연히 대륙법 국가들에도 도입되어 지금의 영미법/대륙법 국가들의 검사가 된 것이다.

원론상 당사자주의를 적용하는 영미법 국가들에선 형사 소추를 당사자가 직접 해야 하지만, "편의를 위해 국가가 대행해주며" 이것이 영미법 국가의 검사 제도이다. 한편, 대륙법 국가들에서는 질서 집행을 위한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보므로 "직권주의"[6] 를 적용하며, 그에 따라 형사 소추를 국가가 전담하고, 그를 위해 전담 공무원에게 형사 소추를 일임하며, 이것이 대륙법 국가의 검사 제도이다.

실상, 질서 유지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영미법 국가들에서조차 당사자 개인의 사적 형사소추는 거의 무의미해졌다. 지금도 굳이 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실상 아무 짝에 쓸모가 없고, 심지어 "악의적"인 의도로 하는 경우에도 별 의미가 없기 떄문이다.

법률 체계라는 것이 인류 문명에서 가장 발전이 느린 것이다보니 검사 제도도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적어도 국가가 질서유지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 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에 검사 제도는 정상적인 현대 문명 국가라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제도로 취급된다.

2. 대한민국의 검사

검찰청법 제4조(검사의 직무) ①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다음 각 호의 직무와 권한이 있다.
1. 범죄수사, 공소의 제기 및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 다만,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는 다음 각 목과 같다.[7]
가.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8]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나. 경찰공무원이 범한 범죄[9]
다. 가목ㆍ나목의 범죄 및 사법경찰관이 송치한 범죄와 관련하여 인지한 각 해당 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
2. 범죄수사에 관한 사법경찰관리 지휘·감독
3.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 청구
4. 재판 집행 지휘·감독
5. 국가를 당사자 또는 참가인으로 하는 소송과 행정소송 수행 또는 그 수행에 관한 지휘·감독
6. 다른 법령에 따라 그 권한에 속하는 사항
②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10]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넓은 의미로서의 검사는 "검찰권을 행사하는 사법관. 범죄를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며 재판을 집행하는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을 의미하며, 검찰청법상 검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소속의 수사처검사, 군검사, 특별검사 등이 있다.[11] 그러나 본 문서는 검찰청법상 검사인 법무부 산하 검찰청 소속[12] 특정직 공무원을 다룬다.

검사는 임관 시 아래와 같은 선서를 한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검사선서에 관한 규정 제2조 (검사 선서)출처

파일:검사님 1.png
파일:검사님 2.png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중략)(검찰청법 제4조).[13].

검사는 판사, 변호사와 함께 법조삼륜(法曹三輪)을 이룬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다. 일반 공무원과 달리 검사 한 명은 기관장의 보조를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하나의 국가기관(단독제 관청)이다. 따라서 여타 행정기관이 문서의 기안은 주무관이 하더라도 처분의 발령은 그 기관장의 명의로 하는 것과 달리, 공소권의 행사 등은 결재를 거치긴 하나 주임검사 개개인이 자신의 명의로 한다. 기소유예, 부검명령 등 행정처분 역시 검사 개개인이 단독기관으로 행한다. 다만, 행정기관으로서 검찰청의 행위는 행정청인 검찰총장, 검사장의 명의로 행해진다. 검사는 여타 다른 공무원(특정직 포함)과 다르게 법관에 준하는 신분보장을 받으며, 검사에 대한 징계 등은 국가공무원법이 아닌 검사징계법에 따르며, 검사의 업무관장은 국가조직법의 특별법성을 지니는 검찰청법에 의한다. 판례상 검사는 준사법기관이라고 명명되곤 한다.

prosecutor으로서의 검사(檢事)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독일 비스마르크 형법의 의용을 통해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찰은 '조사하고 살피다'란 뜻으로 나오지만, 근대 아시아에서 prosecutor이란 뜻으로는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과 검사는 나라마다 뜻이 좀 다르다. 우리가 잘 아는 검사를, 일본과 중국에서는 검찰관(検察官/检察官)으로 부른다.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에서는 검사를 소추관으로 호칭한다.

판사와 마찬가지로 탄핵소추 대상이 될 수 있는 공무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헌정사에 있었던 15건의 탄핵소추 발의 중 10건이 고위직 검사에 대한 것이었다.

2018년 12월 18일부터 검사인사규정이라는 대통령령이 공포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2019년 조국 등 문재인 정부 주요인사 수사와 관련하여 상시인사와 수시인사에서 관계 검사의 필수보직기간을 무시하고 있으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에는 사실상 형해화되었다. 문재인 정권이 만든 규정이나 만든 지 1년도 안 돼서 같은 정권에 의해 유명무실해진 실정이다.

판사 및 경무관급 이상의 경찰과 함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및 기소 대상인 고위공직자에도 해당한다.

군검사는 군사재판에 한하여 검사의 업무를 행한다. 고로, 계엄시국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군인 신분을 가진 자와 기타 소수 민간인에 대해서만 수사 및 공소제기권을 가진다. 다만 상관은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국방부 장관이다. 이 들의 소속은 법무부(대검찰청)가 아닌 국방부 검찰단이기 때문. 임관계급은 단기법무관은 중위, 장기법무관은 대위이다. 장기법무관의 경우는 통상적으로 장기군법무관은 임관 후 2년반 가량이 지나면 소령으로 진급하고 이후 4년반 정도가 지나면 중령으로, 이후 5~6년을 경과하면 대령으로 진급한다. 임금은 보직계급의 40%를 가산하여 받는다.

보통 근무지에서 1~3년 주기로 근무한다. 첫근무지가 수도권이면 그후엔 지방, 지방이었으면 수도권 이런식으로 돌아가면서 순환한다.

3. 검사의 이모저모

3.1. 기소독점주의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형사사건은 물론 가사사건(가족법[14] 및 법인의 법률관계)과 행정사건(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서도 권한이 법정되어 있다. 물론 주 업무는 형사소송에서 원고로서의 권한이자 직책인 검찰권을 행사하는 것이며, 범죄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수사할 수 있으며, 경찰을 관리 감독할 수 있고, 재판에도 참여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기소 여부는 검사가 판단한다는 것이다. 피의자를 피고인으로 만들어 재판에 회부하는 것을 기소라 하는데, 이 기소를 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이를 기소독점주의라고 하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범죄 용의자를 재판에 넘기느냐 마느냐는 검사만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은 임기 동안 내란,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소추가 불가능한 거지 수사 자체가 불가능한 게 아니어서, 대통령이 제하는 조직이나 수단을 만들어 놓았다. 기소권과 불기소권을 동시에 가지면서 견제하거나 제재할 수단이 없는 공권력은 세계에서도 보기 힘들며, 실제로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학자나 변호사들에게 한국 법체계에 대해서 설명할 때 가장 이해 못 하는 것이 이것이다. 경찰들도 마찬가지. 미국의 경우 검사가 직접 기소를 하는 게 아니라 소송적 절차를 통해 대배심(Grand Jury)에게 기소를 청구하는 방식이다. 대배심이 기각하면 기소가 무효화되는 게 아니라 기소 자체가 아예 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다만 위에서 주장하는 검사의 기소권 견제는 영미법제에서의 형사소송제도이며, 이는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제도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법 체계인 대륙법계는 공소의 주체를 검사로 설정하고 시작하는 법제이다. 기소대배심과 같은 영미법계 절차랑 판이하다. 검사의 공소판단을 판사의 판결과 같이 단독판단으로 두어 검사의 독립적 기관성을 부여한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는 우리나라의 특유한 기소독점제가 아니라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검찰관의 권한과 동일한 대륙법계 표준이다. 이러한 대륙법계상 기소독점제의 견제는 대법원 판례의 권위가 부여하는 실질적 강제성처럼 검사동일체성에 따른 기소의 표준화 내지 일본과 같은 내부 기소심의를 통해 이루어지거나, 검사의 기소판단에 불복하여 재정신청과 같은 사법부에 의한 견제수단으로 뒷받침된다. 영미법계와 대륙법계의 장단은 시민주의 내지 보편적 가치의 반영(배심제), 전문적 법 적용 및 중우주의 방지(독점제)의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기소권 독점에는, ①검사 동일체 원칙과 결부되어 기소권이 분산되어 있는 경우에 비해 기소 기준이 일정하여 피의자의 예측가능성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 ②법률전문지식이 없는 자에 의한 기소 남발로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불구하고 피의자들이 법정에 서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는 점 등의 장점이 있다. 현재는 이런 사건들은 형사조정에 회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면에선 ①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으면 재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검사들의 사법정의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으면 정의 확립에 맹점이 생기고[15][16], ②법률전문가인 검사가 무죄가 떨어질지도 모르는 사건에 대해서는 기소유예처분 등을 해버려 실질적으로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가 법원의 재판이 아닌 검찰의 기소 처분 여부에 달려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기소된 사건에 대하여 무죄 판결이 떨어질 가능성은 5% 미만이다. 이 때문에 "즉, 일단 기소가 이루어지면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있기도. 실상은 무죄가 떨어질 것 같거나 기소의 의미가 없겠다 싶을 정도로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혹은 성폭력 무고로 끌려왔는데 여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좀 없거나 그것 이외의 증거가 너무 부족하다 싶은 피의자는 검찰이 아예 기소를 안 한다.

사실 이러한 '확정기소'는 승, 패소율이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검사 자체를 그만두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검찰이 소심해졌다는 비판이 있으나, 이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볼 수도 있다. 만일 인사고과에 승, 패소율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검찰 기소권은 남발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일단 법정싸움이라는 게 이기든 지든 간에 당사자를 피 말리는 것임은 분명하며, 변호사 선임 비용이 들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뺏겨 일반인에게 있어선 지옥문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소송, 특히 형사소송에 걸리게 되면 중압감이 장난 아니다. 범죄자가 되냐 마냐의 기로에 들어선 거니까. 그런 이유로 검사들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철저한 조사를 해서 유죄라는 확신이 없거나 반드시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는 경우 어지간해서는 넘어가고[17] 대신 유죄라는 확신이 있고 처벌[18]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길 경우 일종의 유죄추정의 원칙을 가지고 자신의 기소가 법적으로 완벽하다는 신념으로 피의자 조사에 들어간다.[19]
그 때문에 발생하는 무리한 수사, 그보다 더 나가면 강압수사[20]는 매우 자주 있는 일. 이 때문에 우리 형사사법체계가 여전히 전근대적인 규문주의, 근대의 조서재판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사는 규문주의, 조서재판주의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수십 년간 욕 박박 먹어가면서 독재권력 주구노릇을 했던 경찰도 21세기에는 안 하는 '고문'을 검찰이 21세기에도 하다가 경을 치기도 했다.관련기사 딱히 경을 치지도 않았다. 주범이면서도 고작 1년 6개월 형을 받아 종범인 검찰수사관보다 약한 처벌을 받았고 정권 바뀐 후 대통령특사로 변호사개업도 무리 없이 했다. 참고로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으면 그 형이 종료되고 난 후 5년이 지나야 변호사로 등록할 수 있다.

예외적인 경우는 특별검사재정신청[21] 정도.

여담으로, 변사체에 대한 검시나 부검에 검사가 입회하는 경우가 있다.[22] 투신자살한 중고등학생부터 길거리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노인까지 발가벗겨진 시신을 봐야 한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고역일 수 있다.[23] 검사인 친척이나 가족을 둔 사람이 검사인 그 친척/가족이 책상에 놓은 부검/검시 사진을 보았다가 토할 뻔했다는 경험담이 나올 정도. 사실 그래봤자 10건중 시신상태 좋은 1건 정도 올까말까지만. 겪기 힘든 시신은 사법경찰관에 떠넘기는 게 관행이다. 정확히는 검사의 변사체 검시 업무는 피살가능성을 상정하고 수사의 주체(수사권 조정 이후는 사법경찰관도 수사의 주체가 됨)인 검사가 육안으로 피살 여부를 확인하라는 취지인데, 육안 관찰이 무의미한 전문적 검시가 필요한 영역은 의료인도 아닌 검사의 검시 필요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그 말고도, 어망에 어쩌다 걸려든 고래를 처분하는 일을 맡고 있는 경우도 있다.[24] 주로 해양경찰과 관련된다.

3.2. 기획통·공안통·특수통 파벌

검사의 주요 직무
기획조정 반부패 · 강력 형사 공공수사 공판송무


2019년 기준으로 검찰의 직무체계 구성이 세분화되긴 했지만, 과거의 검찰 직무 분류의 큰 구분은 공안, 특수, 기획, 강력 4개로 분류되어있으며, 수는 가장 많지만 권력과는 거리가 있는 강력을 제외한 공안과 특수가 검사들의 직무 분류에서 가장 큰 파벌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었다. 그래서 공안과 특수는 검찰 세계를 양분하는 양대 파벌이며 잘 나가는 검사들의 대부분이 공안, 특수 혹은 기획쪽에서 중점적으로 근무한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검사를 통칭 기획통이라 한다. 여느 조직의 수장들과 마찬가지로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도 자신의 참모로 유능한 검사를 원하기 때문에 몹시 가기 어려울 뿐더러 인사권자인 장관과 총장의 눈에 들 수 있는 자리이므로 경쟁이 치열하다. 이들은 법령안 입안 및 심사, 대국회 업무, 수사 지휘, 인사, 예산, 정책 등의 법무·검찰 행정을 담당한다.

공공안전, 줄여서 공안통은 국가보안법집시법 전문 검사[25]들로 과거 자유당과 군사정권 때 최고 엘리트들이 가는 자리였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 권위주의 정권 당시에는 공안검사들이 엄청난 권력을 누렸다. 이승만 정부 시기에는 서울지검 정보부가 공안검사들의 무대였는데 반공검사로 유명한 오제도가 공안검사의 시초로 유명했고 그 외에도 조인구, 강서룡 등이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리면서 이승만 때 서울지검 정보부는 공안검사들의 주요 집결지였다. 하지만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몰락하면서 공안검사들은 한 때 위축되는 듯 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 이후 반공법이 공포되면서 공안검사들은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3공화국 때부터 서울지방검찰청에 공안부가 신설되면서 검찰 공안부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특히 유신정권이던 4공화국 시절에는 1973년에 대검 공안부가 설치되고 1975년에 법무부 검찰3과가 설치된데다가 1979년에 서울지검이 3개 차장으로 개편된 뒤 차장실 중에 가장 선임인 1차장실이 공안검사들을 총지휘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공안검사들의 기능이 확대되었으며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있던 5공화국 시절에는 서울지검 공안부가 공안1부와 공안2부로 확대개편 되면서 공안검사들의 권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민주화 이후 들어선 노태우 정부 때만 해도 공안검사들이 상당히 승승장구했다. 이 공안검사들이 일 많이하는 시기 정치권 상황을 일명 공안정국이라고 불렀을 정도니 말다한 것. 특히 대검 공안부장은 검찰국장(기획통)[26], 중수부장(특수통)[27],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검찰 Big4라고 불리는 요직으로 알아줬다. 지난 세기만 해도 주로 공안부에서 검찰총장이 나왔다. 출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안통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공안통 정점인 대검 공안부장은 주로 서울중앙지검 2차장,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대검 공안기획관 및 공안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등 공안통 출신 중에서 선정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공안업무 축소 기조에 맞춰 대검 공안부장을 계속 비공안통 검사로 임명할 분위기이다.

그러나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민주화 정부가 들어서면서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그나마 문민정부 때까지는 여전히 공안통이 주류였는데, 같은 보수정권이었던데다가 김영삼 때만 하더라도 국가보안법 관련 공안사건들과 선거, 노동, 집회시위 관련 사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국민의 정부 들어서서 공안통의 세력이 줄어들고 대검 공안4과가 폐지되면서 공안 수사 기능도 약간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자리를 공안통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참여정부 때 들어서서 공안검사들이 계속 축출되면서 공안통의 위상이 계속 떨어졌다. 특히 공안 관할 사건의 양대 축중 하나이자 공안부 내에서도 한때 공안의 상징이었던 간첩 사건의 비중은 줄어들고 대신 선거, 노동 사건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그 뿐 아니라 참여정부에서 검찰 직제가 개편되는데 공안사건을 담당하는 차장이 서울중앙지검 차장 중에 선임인 1차장에서 본래 형사부 수사 지휘를 담당했던 2차장으로 이동하고[28] 공안3과도 폐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법무부 검찰3과도 공공형사과로 바뀌면서 공안검사들은 계속 위축되었다. 그래도 참여정부에서도 공안통은 어느 정도 목소리를 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 들어서 다시 올라갔다. 참여정부 시절 폐지한 대검 공안3과를 이명박 정권에서 부활시키고 법무부 공공형사과를 공안기획과로 바꾸는 것은 물론,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 휘하에 있던 외사부를 공안수사를 지휘하는 2차장으로 옮겼을 뿐만 아니라 서울중앙지검에서 공안3부 격인 공공형사수사부도 신설했으며 예산도 부쩍 늘렸다.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격상, 정례화하는 등 공안파트 기능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또한 천성관, 노환균, 임정혁, 신종대, 송찬엽, 오세인, 황교안, 김학의, 이진한, 공상훈, 이영만, 안병익, 변창훈 등의 공안검사들이 줄줄이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종북세력 척결을 강조한 한상대가 검찰총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때는 공안통 전설인 김기춘대통령비서실장, 대표적인 공안통 황교안법무부장관을 하다가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공안통 검사였던 곽상도홍경식도 민정수석을 했다. 그리고 이석기 사건을 수사한 김수남이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거쳐서 검찰총장에 올랐으며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정점식이 대검 공안부장에 오르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어느 정도 공안 경력이 있던 박한철도 헌법재판소장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의정부지검과 서울남부지검에도 공안부가 신설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공안검사가 다시 홀대받기 시작했고, 특히 검사장 승진자들 중 공안검사 출신이 아예 없을 정도로 홀대가 특히 심해서 대공, 선거, 노동사건의 수사 전문성과 역량이 저하되고 맥이 끊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 초반기인 문무일 총장 시기 때는 여전히 적지 않은 공안통이 나름 검사장으로 있었으며 다수의 공안통들(이금로, 장호중, 공상훈, 이상호, 윤웅걸, 한찬식, 차경환, 봉욱, 조상철, 이정회 등)이 검찰에 남아있었고 공안 경력이 어느 정도 있던 이금로가 법무부차관에 오르고 대검 공안기획관을 했던 봉욱이 대검 차장에 오르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선거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와 대검 공안2과의 공안검사들은 좌천당했지만 의외로 대공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와 대검 공안1과의 공안검사들은 여전히 영전을 했을 정도로 공안검사들의 힘이 여전히 제법 살아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감찰실장을 했던 장호중 부산지검장[29][30]이 국정원 관련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고 이상호 대전지검장도 2018년 초 검사장 인사에서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되면서 본격적으로 힘을 잃기 시작했으며 결국 이상호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과 공상훈 인천지검장도 끝내 사의를 표하면서 2018년부터는 공안통이 본격적으로 쇠락기에 들어섰다. 다만 여전히 봉욱이 대검 차장으로 있었고 윤웅걸, 차경환, 한찬식, 이정회 등이 검사장으로 있으면서 그나마 명맥이라도 유지했었으나 문재인 정부 임기 중반기인 2019년에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 취임하고 특수통 위주로 인사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대부분 공안통들이 검찰에서 없어졌으며 대검 공안부장 등과 공안 라인이 앉는 자리에도 특수통이 임명되면서[31] 공안 경력이 어느 정도 있는 검사들이나 공안통들은 줄줄이 사표를 냈다. 이후 검찰 공안부는 공공수사부로 개칭되었으며 공안1~3과도 공안수사지원과, 선거수사지원과, 노동수사지원과로 개칭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 공안3과가 진행했던 학원, 사회, 종교단체 관련 수사 지휘기능, 대검 공안기획관이 하던 공안 정세 분석, 공안 관련 출판물,유인물 분석, 남북교류협력지원사건수사 기획, 지원 업무도 없애버리고 법무부 공안기획과도 공공형사과로 환원하면서 공안통은 더욱 위축되었다. 그래도 그 이후에도 검찰의 공공수사부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를 하는 등 영향력이 있었고 일부 공안통(조상철, 이정회 등)이 검사장에 남아있기도 했지만 2020년에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여러 차례의 검찰 인사와 직제개편으로 대검 공공수사정책관(과거 공안기획관)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부 2곳과 2개 지검(부산, 수원) 공공수사부를 제외하고[32]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와 주요 지방검찰청의 공공수사부가 폐지된데다가 외사부도 폐지되고 공공수사부 담당이 2차장에서 3차장으로 이동하면서[33] 그마저의 힘도 없어졌다. 그리고 2021년에 공공수사부는 외사부와 통합되었다. 그러나 2022년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안통이 다시 요직에 등용되고 있다.

검찰 내 공안통과 특수통은 검찰 내 권력을 다투는 양대 계파라 하여 대부분의 사건을 이 두 계파 간 알력다툼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수통 공안통 격돌… 내분, 대검 감찰로 2차전 돌입 예를 들어 국정원 댓글 수사 사건을 처리하다가 날아간 채동욱 검찰총장이 특수통에 속하는데, 이를 치는데 동원된 조직이 공안통이라는 것이다. 특수통 정점은 역시 대검 중수부장이다. 이후 중수부가 폐지되기는 했지만, ‘제2의 중수부’ 대검 반부패부가 생김으로서 전국 특수부를 총괄하는 자리가 되었고, 이어 ‘미니 중수부’라고 불리는 대검 특별수사단이 생김으로서 직접 수사 기능도 부활했다.

검찰총장 승진자도 공안통 한 번, 특수통 한 번이라는 배려를 할 정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특수통과 공안통 중 어느 쪽이 맡는지도 치열하다. 2017년 7월 검찰 총장 후보자 4명의 예를 들어 보자. 총장 후보였던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은 법무부 검찰국에 오래 근무하고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내 ‘기획통’으로 분류된다. 문무일 부산고검장은 대검 특별수사지원과장, 대검 중수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친 ‘특수통’이다. 오세인 광주고검장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대검 공안기획관을 거친 전형적인 ‘공안통’이다.[34] 다만 최초 여성 검찰총장 후보였던(유일한 지검장급) 조희진 의정부지검장[35]은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을 했으니 ‘여성통’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기획/특수/공안 업무를 못 해보고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 등 형사부에만 있었으니 ‘땅개’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당시 후보자추천위원회는 ‘기획통’, ‘특수통’, ‘공안통’, ‘땅개’ 등 분야별로 각 1명씩 추천했고 특수통 문무일 낙점.

다만 이러한 분류 방식에 대해 현직 검사들은 ‘양대 계파라는 것은 언론의 글짓기이며 실제로는 그보다 복잡하다’며 다소 냉소적이다. 즉, 실제 검사들의 파벌 구성은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훨씬 복잡한 관계, 학연,지연,혈연이 더 중요하지 공안이냐 특수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

특수통은 권력형 범죄를 다루는 부서로 시대 막론 가장 스케일이 큰 범죄를 수사하는 만큼 특수통은 최고의 요직이며, 공안통과 함께 검찰 내 양대 계파로 알려져 있다. 주로 대검 중수부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출신자들을 뜻한다. 한 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거치면 이후 전국 어느 검찰청으로 파견되어도 해당 지검에서 특수부 출신자들끼리 뭉친다. 대검 중수부 출신 검사 부친이 상을 당했는데, 바쁜 와중에 희한하게 집에 안 가고 밤새도록 장례식장을 지키는 검사들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한 번이라도 대검 중수부에서 근무했던 전국 검사들이 한 명도 집에 안 가고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홍만표, 우병우가 대검 중수부 기획관을 거친 대표적 특수통. 그 중 홍만표는 실명이 거론되기 전에 "20세기 모든 전 대통령 사건을 다룬 전설적인 특수부 검사"로 표현되었다.

특수통들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반부패수사부로 이름을 바꾸고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이명박 구속사건, 사법농단, 이재용 부회장 승계문제 등을 수사하면서 승승장구하고, 특수통이었던 문무일과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 있는 동안 검찰인사에서 특수통에 힘을 실었다. ### 하지만, 2019년 8월 9일 조국법무부장관 후보자 지명으로 시작된 조국 정국에서 공수처신설, 특수부 약화 및 공판, 강력부의 강화를 중심으로 한 강도 높은 검찰개혁 정책(관련기사)을 추진하자 윤석열을 비롯한 구 특수통을 중심으로 강력 반발하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이에 청와대는 조국의 후임 법무부장관으로 5선 국회의원으로 여당 대표를 역임한 추미애 의원을 세우면서 강도 높은 검찰개혁 방안을 준비하고 그 시작으로 2020년 검찰 정기인사 때, 불과 6개월 전 취임 때 특수통 검사들을 대거 중용하여 일명 윤석열 사단을 형성했던 한동훈, 박찬호, 윤대진등 윤석열의 대검 참모진을 전원 대검, 서울중앙지검의 요직에서 일선 지검, 사법연수원 등으로 발령을 내는 전례없는 인사를 단행하였고 검찰 수뇌부와 보수언론, 야권은 검찰 대학살이라며 강력반발하고 있다. ####. 또한 추가 인사에서도 패스트트랙 안건 통과로 개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발맞추어 검찰의 직제개편을 단행해 직접수사과를 폐지하고 형사부와 공판부를 강화하는 조치의 인사발령까지 단행했다. 그리고 2021년에 반부패수사부는 강력부와 통합되었다. 하지만 2022년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특수통이 다시 승승장구하고 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공안통이 지는 대신 뜨고 있는 것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부(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다. 이들 부서는 ‘금조부’ 라고 하는데 경제사범 중 IT기업, 벤처나 주식거래, 첨단금융범죄 등을 다룬다. 금융 사건은 관계 기관과의 연계가 중요한 만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예금보험공사 등에 검사가 여러 명 파견된다. 금조부 자체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부서라 금융통 같은 단어는 없다. 애초에 이런 경제사건들은 특수부 사건의 연장선으로 보는 게 옳기도 하고.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부 외에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공정거래조사부, 조세범죄조사부, 방위사업수사부, 첨단범죄수사부 등도 괜찮은 자리다. 이러한 특수부, 공안부, 금융조사부 등을 인지부서라고 한다. 공판부/형사부가 이미 일어난 사건(경찰에서 송치받은)을 처리하는 부서라면, 인지부서는 상부의 지시를 받아 혹은 첩보를 수집하거나 스스로 기획하여 사건 조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적 올리기 좋다. 다만 이런 부서들이 서울중앙지검에 몰려있기 때문에 잘나가는 검사들이 법무부-대검-서울중앙지검 트라이앵글을 도는 것이다. 직접 수사 권한이 없고 주로 항고 사건 수사와 공판, 국가송무, 감찰을 담당하는 고등검찰청이 한직에 속하는 이유다.

그리고 검찰 빅4인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반드시 기획통, 공안통, 특수통 출신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다수이며 정권에 찍히거나 대형사고에 연루되지 않는 이상 빅4 자리를 거치면 고검장 급으로 승진하거나 고검장 승진까지는 못해도 서울의 재경(동부, 서부, 남부, 북부) 지검장이나 수원, 인천, 의정부 등의 수도권 지검장, 주요 대도시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의 지검장을 하는 경우가 있고 나중에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빅4 자리는 통상적으로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는 고참 검사장들이 많이 가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다만 현재 들어서서 대검 공공수사부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초임 검사장들이 주로 많이 임명되는 수순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법무부 검찰국장 또한 최근 들어서서는 초임 검사장들이 임명되는 수순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반부패강력부장을 자세히 보면 옛 대검 특별수사부장과 대검 중앙수사부장과 대검 반부패부장에 해당하며 특수통 최고 요직이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초대 특별수사부장이던 강우영은 특별수사부장을 하기 이전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거쳤고 특별수사부장을 한 이후 공안부장으로 또다른 요직에 올랐다가 전주지검장으로 발령난 뒤 서울지검장으로 다시 영전했다가 대법관에 오르고 중앙선거관리위원장까지 했다. 2대와 4대에 걸쳐서 특별수사부장을 지낸 한옥신은 특별수사부장을 하기 이전에 대전지검장, 대구지검장을 거쳤고 특별수사부장을 한 이후에 대검 공안부장이 되었다가 다시 특별수사부장을 지내고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 된다. 3대 특별수사부장 서정각은 특별수사부장 이전에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이라는 요직을 거쳤고 특별수사부장 이후에 대검 사무부장을 거쳐 광주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옷을 벗고 대우재단 이사, 한국기원 이사장을 했다. 5대 특별수사부장 김병리는 이후 대검 공판부장이 되었으나 전두환 정부 당시 공무원 숙정으로 인해 옷을 벗었다. 전두환 정부 때 7대 특별수사부장 김성기는 특별수사부장 이전에 청주지검장을 했고 특별수사부장 이후에 대검 총무부장, 대구고검장 등을 하다가 사회정화위원장을 거쳐 법무부장관으로 입각했으며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전국구 국회의원도 했으며 그 뒤에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한국주택은행의 이사장까지 했다. 그리고 전두환 정부 당시 중앙수사부로 바뀐 후 초대 이종남 중앙수사부장은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중앙수사부장에 발탁되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이후에도 서울지검장, 법무부차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감사원장으로 계속 출세가도를 달렸고 2대 중앙수사부장인 김두희는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에 서울고검 차장검사, 대검 형사2부장을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뒤에도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법무부차관, 대검차장,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으로 영전 후 성균관대학교 이사, 유민문화재단 감사, 중부재단 이사, 세종재단 이사, 한국컴퓨터 사외이사, 한국기원 고문 등을 하고 있다. 3대 한영석 중앙수사부장도 중앙수사부장 이전에 법무부 법무실장을 했고 중앙수사부장 이후에 법무부차관까지 했다. 4대 김경회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 직위를 하기 전에 대검찰청 감찰부장, 인천지검장 등을 했고 중앙수사부장 직위를 한 뒤에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하고 이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까지 했다. 노태우 정부 당시 5대 강원일 중앙수사부장도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에 사법연수원 부원장, 춘천지검장, 대검 형사2부장 등을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후에 인천지검장을 한 뒤 물러났지만 이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을 한 뒤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와 신세계 사외이사,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자문위원까지 했다. 6대 중앙수사부장인 박종철은 중앙수사부장 이전에 대구고검 차장검사, 서울고검 차장검사, 청주지검장, 대전지검장, 대구지검장 등을 했고 중앙수사부장 이후에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등의 요직을 거쳐서 대구고검장, 법무연수원장, 대검 차장을 거쳐 검찰총장까지 했고 이후 민자당과 신한국당 국책 자문위원을 했다. 7대 최명부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 이전에 서울고검 차장검사, 청주지검장을 했으며 중앙수사부장 이후에 다른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서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했고 대전고검장까지 했다. 8대 신건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광주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등을 거쳤으며 중앙수사부장을 하고 광주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법무부차관을 거쳐서 김대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하다가 국가정보원 제2차장, 국가정보원장까지 했고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 전주에서 18대 국회의원까지 했다. 9대 송종의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 이전에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 형사2부장, 대검 강력부장, 대전지검장 등을 두루 했고 중앙수사부장 이후에 서울지검장으로 계속 요직을 하다가 대검 차장으로 고검장 승진에 성공했고 이후 법제처장을 하다가 퇴임 이후 현재는 천고법치문화재단 이사장을 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 당시 10대 정성진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에 제주지검장,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대검 총무부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법무부 법무실장, 대구지검장 등을 두루 했으며 중앙수사부장을 한 후에 승진이나 영전을 하지 못하고 탈락했지만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국민대학교 총장, 한국법학원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 때 부패방지위원장과 법무부장관까지 하고 나중에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까지 한다. 11대 중앙수사부장인 김태정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법무부 보호국장 등을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뒤 부산지검장을 하다가 법무부차관으로 임명되고 검찰총장을 하다가 김대중 정부 때 법무부장관까지 한다. 옷로비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무죄를 선고받았고 로시컴 대표이사를 하고 있다. 12대 이원성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제주지검장, 대검 형사부장 등을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뒤에 대구고검장,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하고 대검 차장까지 하며 이후 충주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도 한다. 13대 안강민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 이전에 대검 감찰부장, 대검 공안부장을 했고 중앙수사부장 이후에 서울지검장과 대검 형사부장을 한 뒤 퇴임했고 이후 대기업 사외이사와 한나라당 검증위원장을 했다. 14대 최병국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이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 공안부장을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이후 인천지검장, 부산지검장을 거친 뒤 한나라당 소속으로 울산에서 3선 국회의원을 한다. 15대 심재륜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 대검 감찰부장, 대검 강력부장, 대전지검장, 광주지검장, 인천지검장 등을 두루 했으며 중앙수사부장을 한 뒤 대구고검장,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했고 16대 박순용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 이전에 대검 공판송무부장, 춘천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의 직위를 두루 거쳤고 중앙수사부장 이후에 서울지검장을 하다가 대구고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이 되었다. 김대중 정부 때 17대 이명재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 임기 이전에 사법연수원 부원장, 대검 총무부장을 했으며 역시 중앙수사부장 임기 이후에 부산고검장,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한 뒤에 검찰총장까지 되었고 18대 이종찬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이전에 부산고검 차장검사, 울산지검장, 대검 총무부장, 전주지검장 등을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뒤에 부산지검장을 거쳐서 광주고검장, 대구고검장, 서울고검장까지 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 서울특별시 법률고문, 서울특별시립교향악단 감사, 한국석유공사 비상임위원 등을 하다가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했다. 19대 중앙수사부장인 신광옥은 중앙수사부장 임기 이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구지검장을 지냈고 중앙수사부장 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법무부차관, 민정수석까지 지냈다. 20대 중앙수사부장인 김대웅은 서울지검장을 하다가 광주고검장으로 승진했고 대검 차장까지 한다. 21대 유창종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에 청주지검장, 대검 강력부장, 대검 마약부장 등을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후에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가면서 한직으로 갔으나 이내 요직으로 복귀해 법무부 법무실장, 서울지검장, 대검 마약부장을 한 뒤 퇴임하여 박물관 관장을 하고 있다. 22대 김종빈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 임기 이전에 전주지검장, 법무부 보호국장 등을 했고 중앙수사부장 임기 이후에 대검 차장,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한 뒤에 검찰총장까지 했고 이후 GS 계열사와 CJ오쇼핑, 동양강철 등의 사외이사를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23대 안대희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 이전에 부산고검 차장검사를 했고 중앙수사부장 이후에 부산고검장, 서울고검장 등을 거쳐서 대법관까지 지냈지만 이후 국무총리 후보에 올랐다가 낙마했고 20대 총선에서 마포구 갑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총선 출마를 했지만 낙선했다. 24대 박상길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 임기 전에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했고 중앙수사부장 임기 후에 대구지검장을 거쳐 대전고검장,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김앤장 변호사와 포스코 사외이사까지 했다. 25대 박영수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후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이후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하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의 특별검사까지 했다. 26대 이귀남 중앙수사부장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이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 공안부장을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이후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이명박 정부 때 법무부차관, 법무부장관까지 했고 이후 GS와 오리온의 고문과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27대 중앙수사부장인 박용석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이전에 대전고검 차장검사, 청주지검장 등을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뒤 부산지검장을 하다가 법무연수원장으로 고검장 승진에 성공했고 대검 차장까지 한 뒤에 롯데케미칼 사외이사와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를 하고 있다. 28대 중앙수사부장 이인규는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이전 대전고검 차장검사,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했고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주도하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큰 비판을 받고 사직했지만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와 인연이 있는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 법률고문도 했다. 29대 중앙수사부장 김홍일은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 사법연수원 부원장,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 등을 했으며 중앙수사부장을 하고 난 후 부산고검장까지 지낸 뒤에 로펌 세종의 변호사가 되었다. 30대 중앙수사부장 최재경은 중앙수사부장에 오르기 전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했고 중앙수사부장 시절 한상대 검찰총장과 충돌하다가 중앙수사부장 자리에서 내려온 후 전주지검장, 대구지검장, 인천지검장을 한 뒤 퇴임했지만 이후 박근혜 정부 말에 청와대 민정수석을 잠깐 했고 현재는 동아일보 논설위원, 삼성그룹 법률고문을 하고 있다. 31대 중앙수사부장 김경수는 중앙수사부장을 하기 전에 부산지검 제1차장, 서울고검 형사부장, 서울고검 차장검사, 전주지검장 등을 했고 중앙수사부장을 한 뒤 대전고검장, 부산고검장, 대구고검장 등으로 승진했고 이후 법률신문 편집위원, KBS 보도자문 변호사,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이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등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초대 반부패부장 오세인은 반부패부장을 하기 전에 서울고검 공판부장, 대구고검 차장검사,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두루 거쳤고 반부패부장을 하고 난 뒤에 대검 공안부장, 서울남부지검장을 거쳐 광주고검장까지 하면서 승진에 성공했고 2대 반부패부장 강찬우는 반부패부장을 하기 전 광주지검 차장검사, 사법연수원 부원장, 법무부 법무실장을 두루 했고 반부패부장을 한 후 인천지검장 직무대리와 수원지검장까지 했다. 3대 반부패부장 윤갑근은 우병우 사단으로써 반부패부장을 하기 전에 서울중앙지검 제1차장, 대검 강력부장을 거쳤고 반부패부장을 한 뒤 대구고검장까지 하면서 승진에 성공했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뒤에 옷을 벗었고 21대 총선 당시에 상당구 지역구에서 출마를 시도했다가 낙선했으며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으로 있다. 4대 반부패부장 박정식은 반부패부장을 하기 전 부산고검 차장검사, 제주지검장, 울산지검장 등을 했고 반부패부장을 한 뒤 부산고검장,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 5대 반부패부장 김우현은 반부패부장을 하기 전에 대구고검 차장검사,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등을 했고 반부패부장을 한 뒤 인천지검장을 하다가 수원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초대 반부패강력부장인 이성윤도 반부패강력부장을 하기 전에 대검 형사부장을 했고 반부패강력부장을 한 뒤에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으며 연이어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2대 반부패강력부장이자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은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반부패강력부장에 올랐으나 추미애 장관 취임 이후 첫 인사에서 검찰 내 특정 사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윤석열 사단 해체를 시도하면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당했고 연이어 채널A 기자 취재윤리 위반 사건으로 인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수사와 법무부의 감찰을 받게 되자 수사 라인에서 제외되고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한 번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좌천당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장관이 되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3대 반부패강력부장이자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측근인 심재철도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반부패강력부장이 되었으며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영전했으며 서울남부지검장으로 또다시 영전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동훈 장관 취임 이후 첫 인사에서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되었다. 4대 반부패강력부장인 신성식도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반부패강력부장에 올랐으며 수원지검장으로 영전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동훈 장관 취임 이후 첫 인사에서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두 번째 인사에서 5명의 연구위원이 증원된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되었다. 5대 반부패강력부장인 문홍성 때부터는 다시 고참 검사장이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앉았는데 그 자리에 오르기 전에 대검찰청 인권부장, 창원지검장, 수원지검장을 지냈으며 반부패강력부장을 지낸 뒤에는 한동훈 장관 취임 이후 두 번째 인사에서 전주지검장이 되어 지방으로 쫓겨났다. 6대 반부패강력부장인 신봉수한동훈 장관 취임 이후 두 번째 인사에서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대검 공안부장은 공안통 최고 요직이기도 하다. 우선 박정희 유신정권 때는 초대 공안부장인 설동훈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광주고검 차장검사를 했고 공안부장을 한 이후에는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영전했다가 광주지검장과 대검 공판부장까지 지냈고, 2대 공안부장인 강우영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서울고검 차장검사, 대검찰청 특별수사부장을 했으며 공안부장을 한 뒤에는 전주지검장으로 발령났다가 서울지검장으로 다시 영전한 뒤에 이후 대법관까지 올랐고 연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장까지 하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3대와 5대, 두 번에 걸쳐 공안부장을 지낸 김태현은 수원지검장과 부산지검장까지 했고, 첫 번째로 공안부장이 될 때는 이례적으로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공안부장이 되지만 두 번째로 공안부장이 될 때는 수원지검장을 거쳤다. 연이어 4대 공안부장인 한옥신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대전지검장, 대구지검장, 대검 특별수사부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이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 된다. 6대 공안부장인 박준양은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공안부장을 한 이후 대구지검장을 하다가 고검장으로 승진해서 대구고검장을 하다가 감사원 감사위원까지 지냈다. 전두환 정권 때는 7대 공안부장인 정치근은 공안부장이 되기 전에 춘천지검장을 했으며 공안부장을 한 이후에는 부산지검장을 하다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까지 지냈고 8대 공안부장인 이창우는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공안부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뒤에 요직인 서울지검장을 했으나 외화 밀반출 사건으로 사직했다. 9대 공안부장인 최상엽은 최장기 공안부장으로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는 사법연수원 부원장, 대검 형사2부장을 했고 공안부장이 된 뒤에는 5공의 대다수 시국사건들을 처리했고 이후 대검 차장으로 바로 고검장 승진에 성공, 이후 법제처장, 한국법제연구원 이사장을 거쳐 역시 법무부장관까지 지냈다. 10대 공안부장인 정경식은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공안부장이 되기 전에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을 거쳤고 공안부장을 한 이후에는 청주지검장을 거쳐 대구지검장, 부산지검장을 하다가 대구고검장으로 승진, 그 뒤에 헌법재판관까지 했다. 노태우 정권 때도 11대 공안부장인 이건개 역시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공안부장 이전에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대검 형사2부장을 했고 공안부장 이후에 요직인 서울지검장을 거쳐 고검장 승진에 성공해 대전고검장까지 했고 한 때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으나 이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12대 공안부장인 변재일도 공안부장 이전에 제주지검장, 법무부 보호국장, 마산지검장, 수원지검장을 했으며 공안부장 이후에는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퇴임했고 김영삼 정권 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했던 13대 공안부장인 최환이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공안부장에 임명되었지만 공안부장을 한 후에는 마찬가지로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등의 요직을 거쳐 대검찰청 총무부장을 하다가 고검장 승진에 성공해서 대전고검장, 부산고검장까지 하다가 퇴임한다. 14대 공안부장인 안강민은 공안부장 이전에 대검 감찰부장을 했고 공안부장 이후에는 대검 중수부장, 서울지검장 등의 요직을 거치고 대검 형사부장을 하다가 퇴임하고 이후 현대그룹 계열사 사외이사와 대우종합기계,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는 물론 한나라당 검증위원장도 했다. 부림사건을 수사한 바가 있는 15대 공안부장인 최병국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뒤에는 대검 중수부장으로 계속 요직 진출에 성공했으며 인천지검장, 부산지검장까지 하다가 퇴임하고 이후 울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 국회의원을 했다. 16대 공안부장인 주선회는 공안부장 이전에 부산고검 차장검사,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거쳤고 공안부장 이후에는 청주지검장, 울산지검장을 하다가 역시 고검장 승진에 성공해서 광주고검장, 법무연수원장을 했고 그 뒤에 헌법재판관까지 임명된다. 김대중 정부 때도 17대 공안부장인 진형구는 공안부장 이전에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거쳤고 공안부장 이후에는 대전고검장으로 승진했지만 조폐공사 파업 유도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고 이후 신익희기념사업회추진위원회 위원장을 하고 있다. 18대 공안부장인 김각영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사법연수원 부원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쳤고 공안부장을 한 뒤에 서울지검장으로 요직을 다시 거친 뒤 대검 차장으로 고검장 승진에 성공하여 부산고검장, 법무부차관을 거쳐 검찰총장까지 했고 이후 퇴임한 뒤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하나고등학교 이사장 등을 하고 있다. 19대 공안부장인 이범관은 공안부장 전에 대구고검 차장검사를 했고 공안부장 후에 서울지검장을 하다가 광주고검장으로 승진에 성공하고 여주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까지 했다. 20대 공안부장인 박종렬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법무부 보호국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이후에 광주지검장, 법무부 법무실장, 서울서부지검장 등으로 영전했다. 21대 공안부장인 이정수는 공안부장을 하기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했으며 공안부장을 한 후 부산지검장을 하다가 부산고검장으로 고검장 승진에 성공했고 대검 차장까지 한다. 노무현 정부 때는 22대 공안부장인 이기배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후에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다른 요직으로 갔다가 광주지검장, 수원지검장을 거쳐 퇴임하고 이후 LG와 대신증권 등의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하다가 하나은행 이사회 의장까지 한다. 23대 공안부장인 홍경식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대전고검 차장검사, 법무부 법무실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뒤에 의정부지검장을 거쳐서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했고 법무연수원장, 서울고검장을 거친 뒤 퇴임해서 법무법인 광장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이명박 정부 때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한국정보화진흥원 감사 등을 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했다. 24대 공안부장인 강충식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전주지검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뒤에 대전지검장으로 발령났다가 서울북부지검장으로 다시 수도권에 올라왔고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을 하다가 퇴임한 뒤에 공무원연금급여심의회 심의위원까지 했다. 25대 공안부장인 권재진도 공안부장을 하기 전 서울북부지검장, 울산지검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뒤 대구지검장을 거쳐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했으며 대검 차장, 서울고검장을 하다가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을 하고 법무부장관까지 하고 퇴임 후에는 LS 사외이사까지 했다. 26대 공안부장이었던 이귀남도 공안부장 이전에는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했고 공안부장 이후에는 대검 중수부장을 하다가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이명박 정부 때 법무부차관을 거쳐 법무부장관까지 했고 퇴임 뒤에 오리온그룹 고문, GS그룹 사외이사, 기아자동차 사외이사, 기아자동차 감사위원, 기아자동차 투명경영위원회 위원장 등을 하고 있다. 27대 공안부장인 이준보도 공안부장 이전에 대검 기획조정부장, 청주지검장 등을 두루 거쳤고 공안부장 이후에 광주고검장, 대구고검장으로 고검장 승진에 성공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28대 공안부장인 박한철이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는 울산지검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후에는 대구지검장, 서울동부지검장을 하다가 사직했지만 이후 헌법재판관으로 선출되고 헌법재판소장까지 했다. 29대 공안부장인 노환균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부산지검 제1차장, 울산지검장 등의 직위를 거쳤고 공안부장을 한 이후에 서울중앙지검장, 대구고검장, 법무연수원장 등을 하면서 고검장 승진에 성공했고 퇴임 이후에도 CJ그룹 고문, 현대미포조선 사외이사 등을 하고 있다. 30대 공안부장인 신종대는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부산지검 제1차장, 춘천지검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뒤에 대구지검장을 하다가 뇌물의혹으로 사직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후 롯데칠성음료 사외이사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한국남동발전 사외이사를 했다. 31대 공안부장인 임정혁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서울고검 형사부장, 대구고검 차장검사 등의 직위를 거쳤고 공안부장을 한 뒤에 서울고검장으로 고검장 승진에 성공했고 대검 차장, 법무연수원장까지 했으며 퇴직 이후에는 대한민국 바로알기연구원장, 자유민주연구원 정책자문위원장,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 강원도 홍천군 고문 변호사,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진상조사위원장, 내외뉴스통신 회장, 바이오빌 사외이사 등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공수처장 추천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는 32대 공안부장인 송찬엽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부산지검 제1차장, 서울중앙지검 제1차장, 서울고검 차장검사 등의 직위를 거쳤고 공안부장을 한 후에 서울동부지검장까지 하다가 퇴직한 뒤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를 하고 있고 롯데 사외이사도 하고 있다. 33대 공안부장인 오세인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는 서울고검 공판부장, 대구고검 차장검사,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등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후에는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영전한 뒤, 광주고검장으로 승진했다. 34대 공안부장인 정점식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는 서울고검 공판부장을 하다가 통합진보당 해산TF 팀장을 맡았고 연이어 법무연수원 기획부장도 맡은 적이 있으며 공안부장을 한 후에는 문재인 정부 출범 뒤라서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되어 고검장 승진에 실패하고 사표를 냈지만 이후 법무법인 아인 대표변호사, 녹원씨앤아이 사외이사 등을 하다가 정계에 진출하여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2019년 재보궐선거에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통영,고성 지역구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21대 총선에서도 당선되면서 재선에 성공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문재인 정부 초반기만 해도 35대 공안부장인 권익환은 공안부장을 하기 전에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했고 공안부장을 한 후에 대전지검장으로 발령났다가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영전에 성공했고 36대 공안부장인 오인서도 공안부장을 하기 이전에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지냈고 공안부장을 한 이후에 서울북부지검장을 거쳐서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하고 수원고검장까지 했다. 그러나 37대 공공수사부장인 박찬호는 2차장 시절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과 삼성 노조 파괴 의혹 등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으로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공공수사부장이 되었고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으로써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수사했다가 제주지검장으로 좌천되었다가 거점 지방검찰청 검사장 중 하나인 광주지검장으로 이동했으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사표를 내고 의원면직되었다. 연이어 38대 공공수사부장인 배용원도 역시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공공수사부장이 되었는데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앉혔지만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수사 기소에 찬성했다가 전주지검장으로 좌천되었다가 서울북부지검장으로 부활했으며 현재는 청주지검장으로 가 있다. 39대 공공수사부장인 이정현도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공공수사부장 자리에 앉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동훈 장관 취임 이후 첫 인사에서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되었다. 40대 공공수사부장인 김유철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동훈 장관 취임 이후 첫 인사에서 초임 검사장 신분으로 공공수사부장 자리에 앉았다.

그 외에도 법무부 기획조정실장과 대검 기획조정부장 또한 제법 요직에 해당한다. 그리고 차장검사 중에서는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들이 요직인데 최선임인 서울중앙지검의 제1차장, 서울중앙지검 제2차장[36], 공공수사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 반부패수사부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검 제4차장[37]은 검사장 승진이 거의 가능한 요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차장은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 중에 최선임 보직이다. 과거에는 공안부 쪽을 관할하기도 했으나 참여정부 때 형사부를 관할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한 때는 검사장 대우를 받았던 적도 있을 정도였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차장검사 보직으로 환원되었다. 1대 서울지검 1차장인 백광현은 서울지검 성동지청장으로 갔다가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전주지검장, 법무부 법무실장, 광주지검장, 부산지검장, 대구고검장, 법무연수원장을 두루 거치고 헌법위원회 상임위원을 했으며 노태우 정부 말기에는 내무부장관까지 지냈다. 2대 서울지검 1차장인 안경상도 역시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청주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대구지검장, 인천지검장, 대검찰청 총무부장 등을 했고 이후 감사원 감사위원까지 했다. 3대 서울지검 1차장인 이중근도 대검찰청 형사2부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수원지검장, 부산지검장까지 했다. 4대 서울지검 1차장인 서정신도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하고 이후 전주지검장, 인천지검장, 대검찰청 형사1부장, 부산지검장을 거쳐 노태우 정부 초반기에 법무부차관을 지냈으며 이후 법무연수원장과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낸 뒤 서울고검장까지 했다. 5대 서울지검 1차장인 김영재는 서울고검 검사로 좌천당한 뒤에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6대 서울지검 1차장인 박종철은 대구고검 차장검사, 서울고검 차장검사, 청주지검장, 대전지검장, 대구지검장을 지낸 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등의 핵심 요직을 지냈고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법무연수원장과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거쳐서 검찰총장까지 지냈으며 퇴임한 이후에도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의 국책자문위원을 지냈다. 7대 서울지검 1차장인 신건도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광주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하고 광주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김영삼 정부 때 법무부차관을 한 뒤 김대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을 지냈고 국가정보원 제2차장과 국가정보원장을 했음은 물론이요, 전주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8대 서울지검 1차장인 변재일 또한 제주지검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법무부 보호국장, 마산지검장, 수원지검장을 거친 뒤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지냈고 이후 부산고검장까지 지냈다. 9대 서울지검 1차장인 최명부도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청주지검장을 거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핵심 보직을 거쳐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하고 대전고검장까지 했다. 10대 서울지검 1차장인 김택수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거쳐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이후 제주지검장, 서울고검 차장검사, 창원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등을 하다가 부산고검장을 하고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까지 되었다. 11대 서울지검 1차장인 김기수도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부산고검 차장검사, 춘천지검장, 법무부 보호국장, 법무부 교정국장, 부산지검장 등을 하다가 부산고검장, 법무연수원장, 서울고검장 등을 거쳐 검찰총장까지 했다. 12대 서울지검 1차장인 김종구도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을 거쳐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전지검장을 하다가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등의 핵심 요직을 거쳐서 김영삼 정부 때 법무부차관이 되었음은 물론, 이후 서울고검장을 거쳐서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법무부장관까지 했으며 퇴임 후 KT 이사회 의장도 했다. 13대 서울지검 1차장인 최영광 역시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을 하다가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청주지검장, 대검찰청 강력부장 등을 하고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등 핵심 보직으로 영전하고 법무연수원장을 거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까지 했다. 14대 서울지검 1차장인 최환도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을 하다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되면서 검사장이 되었고 서울지검장과 대검찰청 총무부장, 대전고검장을 거쳐 부산고검장까지 했다. 15대 서울지검 1차장인 안강민도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에 있다가 대검찰청 감찰부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이후 대검찰청 공안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서울지검장 등의 핵심 요직을 거쳤다가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 퇴임한 후에 기업의 사외이사와 한나라당 검증위원장까지 했다. 16대 서울지검 1차장인 최병국도 부산지검 울산지청장을 거쳐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 핵심 요직을 거쳐 인천지검장, 부산지검장을 하다가 퇴임 이후 한나라당에서 3선 국회의원을 했다. 17대 서울지검 1차장인 김영철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을 하다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반열에 오른 뒤 법무부 보호국장, 법무부 법무실장, 부산지검장을 거쳐서 대전고검장, 대구고검장으로 고검장 승진에도 성공하고 법무연수원장을 하고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과 선거방송심의위원장까지 했다. 18대 서울지검 1차장인 조준웅도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을 거쳐서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춘천지검장, 광주지검장, 인천지검장을 했고 물러난 이후 나중에 삼성 특별검사까지 했다. 19대 서울지검 1차장인 한부환도 서울지검 3차장을 거쳐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대검찰청 총무부장을 하다가 법무부 검찰국장이라는 핵심 보직을 지내고 대전고검장, 법무부차관, 법무연수원장 등을 지낸 뒤 퇴임, 이후에도 교육과학기술부 법학교육위원회 위원, SK하이닉스 사외이사 등을 했다. 20대 서울지검 1차장인 김원치도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을 하다가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되면서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창원지검장, 대검찰청 감찰부장과 대검찰청 형사부장을 했다. 21대 서울지검 1차장인 이범관도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파견되었다가 이후 다시 복귀해서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대검찰청 공안부장, 서울지검장 등 요직을 거쳤고 광주고검장으로 승진했다가 이후 여주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을 했다. 22대 서울지검 1차장인 박종열은 서울고검 공판부장을 하다가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파견되었고 이후 법무부 보호국장이 되면서 검사장으로 승진, 이후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하다가 광주지검장, 법무부 보호국장, 서울서부지검장까지 한다. 23대 서울지검 1차장인 이정수는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대전지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부산지검장 등의 요직을 거쳐서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했다가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끝으로 옷을 벗은 뒤 법무부 검사인사위원장까지 했다. 24대 서울지검 1차장인 임승관은 서울고검 검사로 갔다가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장, 서울지검 동부지청장 등을 거쳐서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부산고검 차장검사, 서울고검 차장검사, 창원지검장, 부산지검장 등을 거쳐 부산고검장과 대검찰청 차장검사까지 했다. 25대 서울지검 1차장인 김재기 또한 대전고검 차장검사가 되며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춘천지검장, 울산지검장, 대전지검장, 부산지검장, 수원지검장 등을 했다. 26대 서울지검 1차장인 고영주도 서울지검 동부지청장, 서울지검 서부지청장을 한 뒤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대구고검 차장검사를 하다가 청주지검장, 대검찰청 감찰부장과 서울남부지검장을 한 뒤 퇴임하고 나중에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한다. 하지만 27대 서울지검 1차장인 신태영은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장, 서울고검 송무부장, 서울고검 검사를 하다가 검사장 승진에 연속으로 실패하고 사의를 표했고 단국대 교수, 홈테크 사외이사가 되었다. 그 뒤 28대 서울지검 1차장인 안영욱은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장을 하다가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울산지검장, 법무부 법무실장, 광주지검장, 부산지검장을 했고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이 되면서 고검장 승진에 성공, 그 뒤 법무연수원장을 하다가 물러난다. 29대 서울지검 1차장인 김회선은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을 하다가 서울서부지검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이란 요직에 올랐다가 사의를 표했으나 이명박 정부 때국가정보원 제2차장이 되었고 서초구 갑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제19대 국회의원도 한다. 30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박만은 송두율 사건을 수사하다가 성남지청장으로 발령나고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검찰을 떠났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으로 부활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까지 한다. 31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김수민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옮겼다가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이후 법무부 보호국장, 서울서부지검장, 부산지검장, 인천지검장을 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제2차장을 했다. 32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을 했던 황희철은 법무부 정책홍보관리실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광주지검장, 서울남부지검장을 한 뒤 이명박 정부에서 법무부차관까지 했다. 하지만 33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던 김영철은 가족이 제이유그룹과 거래해 조사대상에 오르고 무혐의를 받았으나 검사장 승진을 못하고 검찰을 떠났다. 그러나 34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박철준이 검사장 신분으로 그 자리에 오르면서 다시 출세길로 바뀌는 듯 했지만,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하지만 35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최교일부터는 다시 1차장이 출세를 하기 시작하는데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거쳐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핵심 요직을 거치고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영주에서 20대 국회의원을 한다. 36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정병두도 춘천지검장,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법무부 법무실장, 인천지검장 등으로 영전했다. 37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신경식은 대전고검 차장검사를 하다가 청주지검장, 광주지검장, 수원지검장 등으로 영전했다. 38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송찬엽은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하다가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했고 서울동부지검장까지 했다. 39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변찬우는 울산지검장, 광주지검장으로 영전했으나 세월호 사건 수사에서 박근혜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후배 기수가 갈 차례인 대검찰청 강력부장을 하다가 검찰을 떠났다. 40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윤갑근은 우병우 사단으로 대검찰청 강력부장,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등의 요직을 거쳐 대구고검장을 한 뒤 21대 총선에서 청주 상당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이후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을 했다. 41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신유철은 전주지검장, 수원지검장, 서울서부지검장으로 영전했고, 42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전현준도 우병우 사단에 해당하며 대구지검장으로 영전했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되었고 사의를 표했다. 43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노승권도 우병우 사단에 해당하며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 좌천 가능성이 있었으나 대구지검장으로 영전했다가 사법연수원 부원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 후 사의를 표했다. 44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윤대진은 다시 직급이 차장검사로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의 측근으로 핵심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임명되어 검사장으로 승진, 수원지검장까지 했으나 현재는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거쳐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좌천되었다. 45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이두봉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이 되면서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대전지검장으로 가서 월성 원전 경제성조작 의혹 수사를 지휘하고 있으며 인천지검장을 하다가 대전고검장까지 했다. 하지만 46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신자용은 부산동부지청장으로 좌천된 뒤 검사장 승진에서 연속으로 탈락했고 서울고검 송무부장으로 이동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부활했다. 47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이정현은 이성윤의 측근으로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이 되면서 검사장으로 승진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48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김욱준은 이성윤의 측근이었음에도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국면에서 이성윤과 갈등을 빚고 사의를 표했다. 49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나병훈도 수원고검 검사로 이동하면서 검사장 승진에 실패했고 사의를 제출했다. 50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인 정진우는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으로 가면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다.

3차장 또한 이 자리를 거친 검사들은 검사장으로 거의 승진했다. 역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중에 검사장 승진이 안 된 사람은 변진우 검사, 정현태 검사 뿐이다. 말 그대로 검사장 승진 불패의 요직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는 공공수사부(구 공안부)를 관할하는 곳으로 변경되었다. 우선 박정희 유신정권 당시 초대 서울지검 3차장인 안경상은 그 이후 서울지검 2차장으로 갔다가 서울지검 1차장으로 이동한 뒤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청주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대구지검장, 인천지검장, 대검찰청 총무부장 등을 했고 그 이후에도 감사원 감사위원까지 했다. 그 다음 2대 서울지검 3차장인 강달수는 이후 서울지검 2차장을 하다가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대검찰청 형사1부장, 춘천지검장까지 했다. 전두환 정부 때 3대 서울지검 3차장인 이우각도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대구고검 차장검사, 청주지검장, 부산지검장, 대검찰청 형사1부장, 춘천지검장 등을 했으며 4대 서울지검 3차장이었던 강용구는 역시 검사장으로 승진해 춘천지검장, 대검찰청 총무부장, 광주지검장, 대구지검장,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등을 했다. 5대 서울지검 3차장이던 김유후도 부산지검 2차장, 부산지검 1차장 등을 하면서 지방으로 밀려났으나 이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이 되면서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법무부 법무실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의 요직을 거치다가 부산지검장을 지내고 광주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청와대 사정수석을 지냈으며 이후 서울고검장까지 했다. 6대 서울지검 3차장인 황길수도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광주고검 차장검사, 법무연수원 연구부장, 전주지검장, 대검찰청 형사1부장, 법무부 법무실장까지 했다. 7대 서울지검 3차장인 정경식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청주지검장, 대구지검장, 부산지검장 등을 두루 하고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헌법재판관까지 했다. 8대 서울지검 3차장인 이건개도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대검찰청 형사2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서울지검장, 대전고검장 등을 하다가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15대 총선에서 자민련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9대 서울지검 3차장인 김영일은 검사장 승진에는 실패했지만 현직 검사 신분으로 민정수석비서관과 사정수석비서관을 한 뒤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 국회의원을 했다. 노태우 정부로 넘어간 뒤에는 10대 서울지검 3차장인 김종구도 서울지검 1차장과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을 거쳐서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대전지검장을 거쳐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등의 요직을 하다가 법무부차관으로 승진했고 이후 서울고검장을 거쳐서 법무부장관까지 되었으며 퇴임 이후에는 KT 이사회 의장,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조직위원장 등을 하고 있다. 11대 서울지검 3차장인 김정길도 서울지검 서부지청장을 거쳐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 광주고검 차장검사, 전주지검장, 광주지검장, 수원지검장을 지낸 뒤 고검장 승진에도 성공해서 광주고검장을 하고 사직했지만 이후 김대중 정부 때 법무부장관을 두 번 한다. 12대 서울지검 3차장인 변진우는 심장마비로 별세하면서 검사장 승진을 못했지만 13대 서울지검 3차장인 공영규는 서울지검 북부지청장을 거처셔 검사장 승진에 성공, 이후 서울고검 차장검사, 대검찰청 형사부장, 수원지검장, 법무부 법무실장, 부산고검 차장검사를 하다가 부산고검장이 되었고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까지 했다. 14대 서울지검 3차장인 심재륜은 대전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대검찰청 감찰부장, 대검찰청 강력부장, 대전지검장, 광주지검장, 인천지검장 등을 두루 한 뒤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라는 요직에 갔다가 이후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하고 부산고검장까지 했다. 김영삼 정부 때도 15대 서울지검 3차장인 신승남은 서울고검 검사로 발령나면서 검사장 승진에 실패했지만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법무부 법무실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전주지검장을 두루 거쳐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요직에 오른 뒤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고검장 승진에 성공하고 검찰총장까지 되었으나 동생 신승환이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퇴임했고 이후 컨트리클럽 회장으로 있다. 16대 서울지검 3차장인 주선회는 부산고검 차장검사가 되면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대검찰청 감찰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청주지검장, 울산지검장을 거친 뒤 광주고검장으로 고검장 승진에도 성공하고 법무연수원장을 거쳐 헌법재판관까지 했다. 17대 서울지검 3차장인 이종찬 또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할 당시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았고 이후 서울남부지청장을 거쳐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울산지검장, 대검찰청 총무부장, 전주지검장을 하고 최고 요직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하다가 광주고검장, 대구고검장, 서울고검장을 했고 이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서울특별시 법률고문, 법무부 검사적격심사위원장을 하다가 이명박 정부 초반에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했다. 18대 서울지검 3차장인 한부환도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대검찰청 총무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의 요직을 거쳐서 대전고검장으로 승진했고 법무부차관을 한 뒤 법무연수원장을 했으며 그 이후에도 교육과학기술부 법학교육위원회 위원, SK하이닉스 사외이사, 대한변호사협회 법학전문대학원 평가위원장, 에스코홀딩스 사외이사, 영광학원 이사장 등을 두루 하고 있다. 19대 서울지검 3차장인 정홍원은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을 하다가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을 했고 대검찰청 감찰부장, 광주지검장, 부산지검장 등을 거쳐 법무연수원장을 한 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등을 하다가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위원장을 하고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까지 했다. 이는 김대중 정부 때도 계속 이어지는데 20대 서울지검 3차장인 이정수도 서울지검 1차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해 서울고검 차장검사,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대전지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부산지검장, 부산고검장, 대검찰청 차장검사 등을 두루 했고 퇴임 후 현대글로비스 사외이사와 법무부 검사인사위원장을 맡았다. 21대 서울지검 3차장인 김규섭 역시 검사장에 승진해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대전지검장, 대검찰청 강력부장, 수원지검장 등을 했고 22대 서울지검 3차장인 임양운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을 하다가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승진하면서 검사장 반열에 올랐으나 이후 사의를 표한 뒤에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했다. 23대 서울지검 3차장인 이기배도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광주고검 차장검사, 대검찰청 공안부장, 법무부 법무실장, 광주지검장, 수원지검장 등을 한 뒤 하나은행, 대신증권, LG생활건강 등에서 사외이사를 하고 있으며 하나은행 이사회 의장까지 했다. 24대 서울지검 3차장인 박상길 또한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을 거친 뒤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대구지검장을 했고 고검장 승진에도 성공해서 대전고검장, 부산고검장까지 했으며 퇴임 후 포스코 사외이사도 했다. 25대 서울지검 3차장인 김회선도 서울지검 1차장을 거쳐서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을 하다가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서울서부지검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했고 그 뒤에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2차장을 하다가 19대 총선 당시 강남구 갑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활동까지 했다. 하지만 26대 서울지검 3차장인 정현태는 검사가 고문치사를 한 사건에 연루되면서 검사장 승진이 좌절되었고 고검 검사로 한직을 돌다가 2017년에 정년퇴임했다. 그러나 27대 서울지검 3차장인 신상규는 수원지검 안산지청장을 거쳐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창원지검장, 광주지검장, 인천지검장 등을 두루 했고 광주고검장까지 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서울지검이 서울중앙지검으로 바뀌는데 이 때 이후로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계속 잘 나가는 자리였다. 28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이준보는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청주지검장을 하다가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지낸 뒤 광주고검장, 대구고검장까지 하고 퇴임 이후 마니커 사외이사도 하고 있다. 29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박한철은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법무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을 한 뒤 울산지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대구지검장, 서울동부지검장을 하다가 퇴임했지만 이후에 헌법재판관이 되었고 연이어 헌법재판소장까지 되었다. 30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이인규도 대전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거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표적 수사 논란으로 퇴임을 했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 법률고문을 했다. 31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김홍일도 마찬가지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사법연수원 부원장,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뒤 부산고검장까지 승진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32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김수남은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 되었고 이후 청주지검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서울남부지검장, 수원지검장을 하다가 이석기 사건을 수사한 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고검장 승진에 성공했고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거쳐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을 지냈다. 33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최재경도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한 뒤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거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되었지만 이명박 정부 말기에 검란을 주도했다가 전주지검장으로 밀려났다가 대구지검장, 인천지검장을 하고 이후 박근혜 정부 말에 잠깐 청와대 민정수석을 했다. 34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김주현도 안양지청장을 한 뒤에 대전지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했고 법무부차관을 거쳐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김수남 검찰총장을 보좌했다. 35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윤갑근도 성남지청장으로 갔다가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대검찰청 강력부장,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등을 거쳐 대구고검장까지 승진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 우병우 사단으로 찍히면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되었다가 옷을 벗고 21대 총선에서 청주 상당구에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하고 이후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을 했다. 36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전현준은 우병우 사단으로써 대전지검 차장검사, 수원지검 안산지청장을 하다가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이후 대구지검장까지 되었다. 박근혜 정부 때도 37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박정식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제주지검장, 울산지검장을 거쳐서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이 되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고검장으로 승진해서 부산고검장과 서울고검장을 했다. 38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유상범은 우병우 사단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을 거쳐서 창원지검장까지 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윤회 문건 부실 수사 의혹으로 광주고검 차장검사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된 뒤 옷을 벗었지만 21대 총선에서 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 지역구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39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최윤수 역시 우병우 사단으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한 뒤 국가정보원 제2차장까지 했다. 40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이동열도 우병우 사단인데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사장 승진에 탈락할 뻔 했으나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이후 청주지검장을 거쳐 서울서부지검장까지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1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한동훈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오른팔로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취임한 이후에 검사장에 승진해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되었지만 조국 사태를 수사하다가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인사로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의 한직을 전전하고 있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장관이 되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42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송경호는 조국 사태를 수사하다가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고 여주지청장으로 좌천되었으며 연속해서 검사장 승진을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수원고검 검사로 또 좌천되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이 되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그러나 43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신성식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해서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고 수원지검장이 되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되었다. 44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구자현은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임명되어 검사장 승진에 성공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되었다. 45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인 진재선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윤석열 사단 독점 인사에 의해 결국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되었다. 좌천 이후 사표를 냈으며 2023년 1월 27일자 인사에서 의원면직처리되었다. 법무부, (보도자료) 2023년 상반기 검사 인사 (배포즉시보도).pdf, (보도자료) 2023년 상반기 검사 인사 (배포즉시보도).hwpx, 2023-2-6 보도자료-별첨(전입청).hwp , 2023-2-6 보도자료-별첨(전출청).hwp

그리고 기획통, 공안통, 특수통 등의 검사들은 사직 이후에도 잘 나가는 편인데, 대형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거나 기업의 임원이나 CEO가 되는 경우도 있고 사학재단이나 장학재단의 이사장이나 이사진으로 취임하는 경우도 있으며 그 외에도 국정원장, 법무부장관이나 국무총리 등으로 취임하거나 청와대 수석이 되거나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이런 검사 사이의 부익부 빈익빈은 강력범죄율은 낮은데 공안사건은 물론 화이트칼라 범죄가 만연하는 현대 사회 특성에 기인한다. 사회가 고도화되면 당연히 범죄도 고도화된다. 때문에 형사법을 적용해 처벌할 범죄의 종류와 질은 나날이 강도가 올라간다. 따라서 기소독점권을 쥔 검사가 이런 화이트칼라 범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수백억의 돈을 꿀꺽한 사기범이나 정경유착 등의 사건을 덮거나 혹은 키워서 매장시킬 수 있다. 이는 사회인으로서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 그만큼 의뢰인은 이런 대형 범죄를 저지른 뒤 살기 위해 특수통, 공안통 검사에게 몰래 줄을 대거나, 전직 검사를 통해 로비하는 식으로 피해간다.[38] 이 때문에 이런 화이트칼라 범죄를 전담하는 특수통, 금융조사부 등이 요직이 되는 것. 이 때문에 적어도 검사들의 입장에선 공안사범, 경제사범, 권력형 범죄자가 아닌 범죄자는 아무리 죄질이 나쁘고 피해가 커도 오가는 돈 규모가 적어 잡범 취급하는 것. 특히 마약, 조직폭력 등 다른 나라라면 중요할 수 있을 대형 강력범죄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의 범죄 유형 때문에 더더욱 공안, 특수 외에는 범죄자 잡아서 검사가 공 세우는 게 상당히 어렵다.

3.3. 땅개

『검사님의 속사정』( 2011년 12월 출간, 저자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 이순혁.)이라는 책에 의하면 대한민국 검사 중 80%는 지방에서 뺑뺑이만 도는 형사/공판부 소속이며, 우리 민생과 치안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가며 가장 성실하게 근무하시는 분들이라고 한다. 다만 승진은 부장검사까지며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 형사/공판부만 도는 검사들은 자조적으로 자신들을 땅개라고 부른다.

사실 뉴스에 주로 나쁜 일로 나오는 검사들 대부분은 정말로 지연, 학연, 혈연의 3연을 따져서 상층부에서 몇 년 정도 시간을 두고 사람을 찍은 뒤 정말로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아서[39] 선배가 끌어서 이너서클에 들어가는 검사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획통, 공안통, 특수통, 금융조사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검사들은 공판부와 형사부, 강력부에서 근무한다. 실제 대부분의 지방검찰청에서는 형사 1~4부와 공판부 정도로만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특수부/공안부 X). 서울중앙지검도 형사 1~8부, 공판 1~3부가 부서 중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이 공안 1~2부와 특수 1~4부 등으로 구성되는 것인데, 이것은 서울중앙지검만 유달리 인지부서가 몰려 있기 때문이고 다른 지검/지청에는 공안/특수부를 찾기 힘들다. 다시 말해 간첩이나 재벌이 아닌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접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검사들이 근무하는 부서인 형사부와 공판부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형사통이나 공판통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형사부, 공판부 외에 마약/조직범죄를 담당하는 강력부도 있다.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지검에는 설치되어 있는 부서다. 형사부 출신 검사들을 올려주어 강력통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박진규, "김진태, 가장 센 '군기반장 왔다'…검찰 내 평가"에 따르면 결국 ‘공안통’과 ‘특수통’만 있을 뿐이지 ‘강력통’이라는 단어는 잘 안 쓴다고 한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강력통이라고 하면 빽 없는 무계파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강력통=흙수저'라는 뜻에 가깝기 때문에 존칭이 아닌 비칭에 해당한다. 함부로 쓰지 말자. 참고로 경찰에서 ‘강력통’이라고 하면 주로 강력계 형사들을 뜻한다.

지방에서 형사부/공판부 뺑뺑이만 돌다가 검사장 이상으로 승진하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 지검장 승진 레벨만 해도 공안통과 특수통 중 한쪽에 계파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면 검사장 승진만 해도 공직자 재산공개 대상인데 그런 공직자 심사를 하는 사람이 바로 공안통, 특수통 중 하나에 속해있는 민정수석 라인이기 때문이다. ‘이너서클’ 못 들고 겉도는 ‘승포검’… 변호사시장 불황에 눈치 보며 버티기에 따르면, 형사부 출신 검사들은 승진을 포기한 장포대 승포검이라고 자조하며 지검장 승진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사실 위에서 말한 '일 잘 하는 검사'라는 것도 대부분 그들끼리 형성한 리그 내에서 평가할 뿐, 형사부나 공판부에서만 도는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이러한 리그에 들어가긴 하늘의 별따기다.

다시 말해 능력 있는 검사들은 형사부 근무를 기피한다. 이 때문에 2017년부터는 총 근무경력 1/3 이상을 형사부에서 근무해야만 부장으로 승진한다는 내부 룰까지 만들었다. 이때 조사부, 여성아동범죄부, 공판부 같은 땅개 보직 들도 전부 형사부 경력으로 인정된다.

특수/공안/기획 경험 없이 형사부 근무만으로 지검장 승진한 경우라면 여성 지검장 1호인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 2호인 이영주 춘천지검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형사부만 전전하며 다른 남성 지검장들처럼 요직을 거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검사 배려차원 승진[40][41]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기수별 선두주자가 아닌 2차나 3차 때 승진을 하기도 했었고. 실제 경력을 보면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을 하거나, 일선에서는 여성/아동 범죄 수사를 담당했다.

이 때문에 검사 프로필을 보면 특수부나 공안부, 금조부 출신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이라고 자랑스럽게 써 놓지만 형사부 출신은 그냥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라고 쓰여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장이라는 것만 해도 충분히 잘나가는 검사에 속하지만, 그래도 형사부라는 점 때문에 쪽팔리기도 하고 보통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로 얼버무린다.

평검사와 부장검사들은 일부의 공안/특수통과 대다수의 땅개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차장검사만 승진해도 공안/특수통 비율이 확 올라간다. 검사장급이 되면 전원 공안/특수통이지 땅개들은 단 한명도 없다시피 하다.[42] 오죽했으면 검사장 1차 보직이 대검 형사/강력/송무부장 같은 땅개 보직들이고 승진 직전인 3차 보직이 공안통인 대검 공안부장, 특수통인 반부패부장이겠는가.

뉴스에는 대형 비리사건을 전담하는 전담팀에 검사만 2자릿수 배치되기 때문에 검사가 한 사건만 잡고 씨름하는 걸로 보이나, 위의 80%를 차지하는 검사들은 월 150건~300건 가까운 사건을 담당한다.

반면 인지부서 업무량은 좀 애매하다. 뉴스에 나오는 특수부 압수수색 장면에서 박스째 서류들 다 털어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걸 검토해서 뭔가 발견해내는 작업 업무량이 적을 리 없다. 아무리 검찰수사관들도 검토한다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봐야 하는 건 검사다. 그래도 어떤 해는 대검 중수부 기소가 0건에 불과할 때도 있었다. 즉 그해에 이렇다 할 큰 사건이 없어 그냥 놀았다. 2016년 서울남부지검 형사2부 김홍영(33) 초임 검사가 업무 과다와 김대현 부장검사 폭언으로 자살하자, 검찰 측에서 형사부 업무량을 줄여주기 위해 각 인지부에서 2명 정도씩 인원을 빼서 형사부 인원을 보강해 주었다. 검사들이 보기에도 형사부 업무가 많고, 인지부서는 상대적으로 업무가 널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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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이거이거 검사 이거 생각보다 노가다네요. 완전 3D야. 박봉에. 맨날 야근이나 하고. "
영화 " 더 킹(영화)", 박태수
대부분 땅개 검사들은 매일같이 이런 서류들을 검사실 내 검찰직 공무원들과 함께 확인 하며, 요약본도 있고, 전부 꼼꼼히 읽어야 할 서류들은 아니지만 업무량이 적은 편은 아니다. 처음에는 일처리가 오래 걸릴 수 도 있는데, 연차가 쌓이면 노하우가 생겨 당연히 업무가 빨리지는 구조다. 검사 수가 늘고 있지만 대한민국 형사 사건 수는 더 빠르게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지청의 경우 검사 4~5명이 전부인 경우도 많은데 누구 한 명 휴가라도 써야 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명약관화하다. 여검사들이 출산 후 다음 날부터 산후조리원에서 출퇴근하는 풍경은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출산휴가 후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검사들이 늘곤 있다지만, 담당사건 후속업무가 있을 경우 당연히 출퇴근해야 하는 데다 그럴 경우 위에 나오는 '일 잘하는 검사' 타이틀 달기란 불가능하다. 거기에 점점 나아지곤 있지만 검사 조직 특유의 회식 문화까지 겹치면... 빽 없는 보통 검사들이 보면 저기 스폰서 잡고 정계 인맥 잡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저런 시간이 나서 저런 짓을 하는지 의아할 정도다. 초임검사가 업무량과 상사 폭언에 못 이겨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43]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검찰의 현주소를 말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공안통, 특수통 같은 검찰 내 자칭 엘리트 파벌이 정치검사로 변질되어 검찰 전체가 권력에 충성하고 보신주의, 권력의 개로 지내다가 정권 말기에 레임덕이 발생하면 바로 차기 권력으로 갈아타는 반란이 일상인 정치적인 집단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정치검사들이 인사권을 독점하는 심각한 내부 불균형은 검찰이 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갈수록 고도화되고 피해규모도 커지는 현대사회의 모든 범죄를 밝히고 처벌해야 할 집단은 검찰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검찰의 수뇌부를 독점한 정치검사들은 자기들 보신을 위해 소수의 권력형 범죄수사부만 비대하게 권한을 집중하고, 자기 말 한마디면 어떤 범죄자도 무혐의로 만들 수 있는 권한을 남용해 경제, 언론, 사법 등 이 사회의 권력층과 유착해 권력을 휘두르며 검찰 전체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고 있다. 전관예우, 정검유착, 검사들 비리, 이런 이야기 대부분은 공안/특수통이 아닌 보통의 형사부, 공판부 검사들 입장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다. 홍만표우병우같은 사람이 수백억대의 자산을 모았다느니, 특수활동비가 얼마 나온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허탈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검사다. 검사 월급이야 뻔하고 업무량에 비해 박봉인 거 알 사람은 다 안다. 적지는 않은 월급이지만 살인적 업무량을 감안하면 별로 높지도 않은데다, 검사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적지 않은 월급이 들어간다. 여태껏 검찰조직이 부패한 것도 사실이고, 비민주적인 관행 개선을 게을리 했기에 국민들의 검사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검사에게 적대감을 갖기 전에[44] 이런 검사들이 검찰의 8~9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

물론 땅개들 입장에서도 국민들이 비난하는 비리나 적폐는 정치검찰들인 공안/특수통들이 다 만들어 놓고 이럴 때만 자기들을 방패로 내세우는 꼴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때문에 검찰개혁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검찰 내부 여론도 꽤 높다. 단지 조금만 올라가도 그럴 생각이 없어지는 사람들이 많을 뿐더러 검찰조직 특성상 아래 여론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3.4. 인맥질

대한민국 국가조직 중 3연을 가장 심하게 따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검사 정도 되면 일반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한 해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로(2001년 이후) 그 이전에 비해 합격하기 많이 쉬워졌기는 하지만, 그 중 상위 2~30%만(한 해에 검사 100명, 판사 100명, 대형로펌 약간) 판검사가 될 수 있으니 고르고 고른 뛰어난 인재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능력자들은 부장검사까지는 누구나 자동승진하지만 이후 사다리꼴로 좁아지는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게 된다. 이때 작용하는 것이 학연, 혈연, 지연이다. 즉 현실 정치가들이 자기 사람을 뽑을 때 학연, 혈연, 지연부터 따져왔 듯이 정치인들과 연결되어있는 정치검찰 선별 자체가 3연 없인 불가능하다.

검사들 사이에도 흙수저가 있다. 예를 들어 아무런 3연관계가 없는 서울 태생에 평준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 출신인 한 검사는 스스로 흙수저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중 엘리트만 가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 왜 스스로 흙수저라고 할까. 그것은 어차피 실력은 검사 임용으로 어느 정도 검증된 반면, 승진 경쟁에서 철저하게 마피아적으로 검찰이 움직이는 건 본인의 엄청난 줄대기 능력이 아닌 이상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강력한 닫힌 사회의 조건이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서울대라는 최고 학맥을 보유하고도 또 다른 인맥을 찾아야 할 정도로 검찰 승진이 치열한데, 그보다 처지가 안 좋은 비영남/비서울대/비고려대 출신이라면 상대적인 박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지의 사실과 같이 황해도 출신인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수도권과 충청권이 검찰 인사에서 약진했고 그 다음 영남 출신 대통령 시절(박정희 약 18년+전두환 약 7년+노태우 약 5년=약 30년)[45]에는 영남 출신이 잘 나갔으며, 검사장 이상은 영남 출신이 싹쓸이하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영남 중에서도 TK가 중용되고, TK중에서도 ‘경북고’ 출신이 중용된다. 문민정부 때도 영남 출신이 중용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TK보다는 PK가 약진하였다.

이 당시에 호남 출신이라면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는데 평검사 시절 서울지검으로 갈 수 조차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단 서울지검을 가야 발탁되어 법무부-대검 경력을 쌓을 수 있는데, 호남 출신들은 경력을 쌓을 기회가 원천 차단된 것이다. 이 때문에 승진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구색 맞추는 차원에서 검사장 한 자리 정도 배정되었으나, Big4 같은 요직은 꿈도 꿀 수 없고 한직만 맴돌다 나가야 했다. 차라리 장성진급 때 10-15% 정도의 호남 쿼터가 지켜지는 편이었고, 육참총장 및 기무사령관 등 정권의 사활이 걸린 수준의 요직 두세 개만 제외하고는 임명이 되던 군대보다도 차별이 더 심하다는 말이 돌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호남 출신 검사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PK, TK 출신 중심 인사가 되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물론, 박근혜 정부에서도 검색만 하면 검찰청 수뇌부 PK와 TK 싹쓸이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시 민주당계 문재인 정부에서는 집권 1년차에 이명박-박근혜 전임정권 때에 한직을 맴돌던 호남계 인사들을 대거 발탁했다. 법무부 차관, 광주고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과학수사부장 4명중 법무부 검찰국장을 제외한 3명이 모두 호남계 인사라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그리고 나머지 법무부 검찰국장은 충남계인데, 전임자에 비해 4기수나 낮은 파격인사이다. 밑 기수가 치고 올라오면 옷을 벗어야 하는 검찰에서는 사실상 중간 3 기수에게는 옷을 벗으라는 압박. 윤석열 정부에서는 수도권 출신과 영남 출신이 약진하고 있긴 하지만 호남출신의 검찰총장도 나왔다.

이 때문에, 반대로 이 바닥의 마이너[46]인 비서울대, 비고려대 라인의 단결력은 거의 목숨 건 수준이다. 학벌의 경우 검사들 중 약 34%가 서울대 출신이기 때문에, 단지 서울대 나왔다는 것만으로 학연 운운하기는 힘들다.[47] 워낙 서울대 출신이 많아 자신들끼리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 사법연수원 내 서울대 동문회도 그다지 모임이 활발한 편은 아니다.[48] 연수원은 한 반에 70여 명인데, 그것도 많다고 반을 A/B/C 등 3개로 나눠 조별 회식/모임을 하는 판에 연수원 동기 중 서울대 330명이 어떻게 모여서 동문회를 하고 인맥을 다지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서울대 출신은 출신 고등학교 단위로 노는 경우가 많다.

대학 중에서 동문 의식이 가장 강한 곳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고려대다.워낙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이 강하다보니 서울대가 10중 7을 차지하던 세대인 검사장급 이상에서도 매년 12명 가량이 검사장으로 승진할 때 2~3자리는 고려대 출신에게 보장되었고, 그보다 윗줄인 검찰총장도 2~3명 정도 서울대 출신을 기용하면 한 번 정도 고려대 출신에게 기회가 돌아갈 정도다. 2006년에는 검사장급 46명 중 고작 1명 만이 고려대 출신이었으나, 이명박이 집권한 이후 동문 버프까지 받고 고려대 출신 이귀남 장관 아래 검사장급 54명 중 고려대가 무려 10명, 그것도 최고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을 한꺼번에 차지하며 양과 질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49] 이명박 정권에서 TK 출신 고려대가 크게 흥했다면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는 호남 출신 고려대가 크게 흥하고 있다. 검사장 수는 동일하지만 전체 검사장 수가 크게 줄면서 비중은 더 높아졌고, 여전히 요직(검찰총장, 법무부 차관 등)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 서울 소재 대학교[50]들 역시 동문의식이 매우 강하다. 홍만표, 진경준, 우병우를 비교해보면, 홍만표는 검찰에서 마이너리티인 성균관대 출신이고, 진경준과 우병우는 메인스트림인 서울대 출신이며 게다가 학생시절 합격한 이른바 소년급제 엘리트다. 그런데 셋 중 가장 잘 나간 것은 홍만표다. 워낙 서울대 출신이 압도적이어서 가려졌을 뿐이지 성균관대는 역대 사시 합격자 숫자가 4위에 달하는 명문학교다.(로스쿨 출신 합격자 순위도 4위) 또한 홍만표는 검찰 내 성균관대 학맥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성균관대 학맥이 바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곽상도 민정수석비서관. 그에 비해 서울대는 모임 자체가 그냥저냥 수준이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특히 우병우는 서울대 동문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못 받았다. 이들을 포함한 인서울 TOP 10 대학까지는 연수원 동기들끼리 동문회가 있고, 이들은 연수원 수료 후 각자 로펌, 검찰, 법원으로 퍼져 향후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선후배 라인이 탄탄히 형성되어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이 당연시된다.

그러나 지방대 출신은... 그런 거 없다. 아무리 사법시험 합격자 1천 명 시대라도 연수원에 가보면 지거국 정도를 제외하고 해당 학교 출신자는 자기 혼자다.[51] 검찰로 들어가면 지방대 출신 검사장은 역사상 딱 11명 뿐일 정도로 밀어주고 끌어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검사가 총 2천 명 가량이긴 하지만 동문 선후배 중 1명은 제주지검에 있고 다른 1명은 속초지청에 있다면 동문회가 형성될 수 없다. 이러니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 특수부나 공안부 또는 중앙지검으로 가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지방 형사부만 전전하다가 부장검사를 끝으로 퇴임하게 된다. 학연이 없다보니 퇴직 후 로펌 가는 것은 어렵다. 로펌이 전관을 비싸게 고용하는 이유는 그 사람 인맥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아는 사람 많고, 권력자 주변에 접근할 기회가 많아야하고 전관의 말을 따를 하부조직이 있어야 한다. 학연과 지연 없는 검사는 그냥 검사일 뿐이다.

대학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진짜 지연을 알 수 있는 고등학교 학맥이다. 대학교의 경우 고향이 어디든지 최상위권의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대에 진학한다. 때문에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보다 그 사람 고향에 해당하는 고등학교가 중요한 인맥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의 모교 출신이라면 금상첨화. 또한 공무원 규정상 인사서류에 본적을 못 적게 하는데, 고등학교까지는 기재된다. 때문에 출신 고등학교는 그 사람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출신대학은 그 사람 학연과 연계되지만, 출신 고등학교는 그 사람 지연과 학연이 동시에 연계되는 것이다.

과거 경기고경북고(노태우), 경남고(김영삼) 출신을 알아줬는데, 특히 정통의 명문인 경기고-서울대 출신은 KS 라인이라고 하여 최고 성골로 친다. 경기고와 거의 맞먹는 명문인 경북고의 경우 검찰총장 출신만 7명이다.

2017년 기준 역대 검사장급 345명 중 경기고 출신은 무려 43명, 경북고는 31명이다. 뒤이어 전주고 13명, 부산고 13명 순이다.

경기고 출신이 아니라도 대통령 모교라면 즉시 성골로 바뀌는데 YS 시절 성골은 경남고였다. 김영삼은 재임시절 9명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중 8명을 영남사람으로 도배하는 지독한 지역차별을 하였는데, 그 중 경남고 출신만 박희태 장관, 안우만 장관, 김기수 총장 등 3명이다.

국민의 정부 때(5년)는 장관, 총장 12명 중 50%인 6명이 호남 사람이었다(법무장관 2번 한 김정길 장관을 2회로 계산함). 군부독재 시절과 문민정부 시절(총 약 35년)에서 영남 사람만 90% 가깝게 임명 하던 것과 비교할 때 호남 사람이 50%면 비율이 상대적으로는 심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지독한 차별 때문에 검사장급 중 호남 사람 씨가 마른 상태라서, 몇 안 되는 호남 사람을 요직에 등용했기 때문에 법무·검찰 내부나 언론에서 말이 많았다.[52](다만 김대중노무현상업고등학교 출신이라, 모교 사람들만 요직에 임명하는 기형적 추태는 없었다.[53])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이 호남의 지원을 받는 영남(부산) 출신이라 8명의 장관/총장을 딱히 한쪽 인맥만 썼다는 비난은 없었다.[54] 상고 출신이라 모교 출신을 요직에 임명하는 경우도 없었다. 장관/총장은 영남 4명에 호남 3명이었고, 사상 최초로 제주 출신에다가 여성인 강금실 장관을 임명했다는 것이 특이사항이다. 지역차별보다는 ‘공안통’홀대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 그 이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고졸이라는 이유로 평검사들조차 노무현을 무시하고 공개석상에서 조롱해댔다. 사실 대한민국 사회가 검사라는 직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공론화된 시점이, 노무현 대통령이 주최한 검사와의 대화에서 평검사들이 한 주옥같은 발언들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검찰 인사 경향도 복고풍이었다. 장관/총장 6명 중 영남 3명, 호남 1명, 서울 2명[55]으로 배분했다. 얼핏 보면 공평한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이건 다 훼이크고, 경북고 출신 2명(김경한 장관, 권재진 장관)이고, 다른 2명(이귀남 장관, 한상대 총장)은 역시 대통령 모교인 고려대 출신이었다. 이명박 정권 때는 검찰 최고위직만 TK 출신에 경북고 나온 검사들이 차지한 것만이 아니라, 인사 실무자인 법무부 검찰1과장은 무조건 경북고 출신이었다. 당시 얼마나 막장이었냐면, 이명박 정권 당시 2008년 3월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자 11명 중 경북고 출신만 3명(김영한, 최교일, 김병화)이었고, 5명(권재진, 김태현, 박용석, 정진영, 박기준)은 핵심 요직에 배치되었다. 심지어 법무부 장관도 경북고 출신 김경한이었다. 참고로 김경한 장관은 부장검사 시절인 노태우 대통령 때 경북고만 갈 수 있는 검찰1과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후반인 2011년 8월 위에 언급된 권재진은 법무부 장관, 최교일은 검찰국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을 했으니... 권재진의 경우 이미 2009년에 유력 검찰총장 후보였는데 아무리 이명박이라도 장관과 총장을 동시에 경북고 출신으로 하는 것은 무리라고 봤는지, 민정수석으로 끌어와 2년 쓴 다음에 장관으로 보냈다. 최교일은 TK의 경북고에 고려대까지 나온 TKK라고 불린다. 때문에 경북고-서울대를 '신KS'라인이라고도 한다.[56]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이 2명, 총장이 3명이로 총 5명이다. 서울 2명, 영남 2명, 호남 1명이 임명되어 지역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사실 선거 때는 박근혜가 ‘TK의 딸’로 변하기는 하지만 실제 산 적은 한번도 없고 성인될 때까지 18년을 청와대에서 살다가 구속될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던 현재는 서울구치소에서 사는 중이고 그냥 서울사람이다. 다른 대통령들 고향 모교 출신을 요직에 등용하는데, 박 대통령은 모든 학교를 서울에서 나왔다.[57] 즉 아버지의 고향이 영남이지, 박 대통령 본인은 국회의원을 대구에서 내리 4선을 했지만 이는 아버지의 후광이었을 뿐 영남에 연고가 아예 없는 것이다.[58] 다만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단 한 번도 요직인 빅4에 호남사람을 임명하지 않은 점이 흠이다. 또한 ‘공안통’을 우대하여 황교안 장관, 김수남 총장 등이 승승장구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아직 빠르기는 하지만 일단 검찰 첫 인사를 보자. 기세가 등등하던 TK 출신은 줄었지만 대신 PK 출신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영남 출신 검사장 숫자 14명에는 변화가 없었다. 대신 수도권 검사장을 17명에서 13명으로 확 줄였다. 그 와중에 강원 출신 검사장 2명이 0명으로 줄어든 것은 덤.[59](충청은 2명에서 변화 없음) 그리고 그 줄어든 자리에 검사장 자리 5개 축소, 호남 검사장을 9명에서 12명으로 늘렸다. 이래서 서울 출신에 서울대 나온 검사가 자신은 흙수저라고 징징대는 것이다. [60][61] 강원,충청,제주는 정권이 바뀌어도 웁니다.

단지 호남 출신이 늘어난 것만이 아니라 알짜배기 요직을 차지했는데, 박상기 법무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등 장관 - 총장이 동일 지역에서 임명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관례를 깼으며, 박균택 검찰국장, 김우현 반부패부장 등 빅4중에서 2자리를 호남이 차지했다(남은 2자리는 서울 출신). 장관-총장이야 외부에서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호남 출신이 가기도 했지만 빅4의 경우 중요도에 비해 언론 주목도가 낮다보니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주변 눈치 안 보고 빅4에서 호남을 아예 배제되었는데, 이제 2자리를 서울 출신, 2자리를 호남 출신으로 채우면서 거꾸로 영남 출신을 기용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처음에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하려던 영남 출신의 안경환 전 서울대 법대 교수가 자폭한 것이 컸다.

학벌을 보면 서울대 31명, 고려대 13명에서 서울대 25명, 고려대 11명으로 약간 조정되었다. 특이한 점으로 사상 최초로 경희대 출신 검사장이 탄생하였다(이성윤 대검 형사부장, 전북 출신.). 참고로 문재인의 모교가 경희대다. 지난 정권에서 잘나가던 고려대 강세는 여전했는데 총장, 차관, 서울고검장이라는 요직들이 전부 고려대다. 나머지는 모두 서울대니 결국 서울대/고려대 편중이 이어졌다.

고등학교는 특정학교 편중 현상이 많이 해소되어 경북고 출신 검사장은 3명으로 줄었고, 문재인 모교인 경남고는 0명인 것은 물론, 정통의 명문인 경기고까지 0명이다.[62]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으로 기존 명문고들이 전멸한 이후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검사장급으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첫 검찰총장 후보였던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 박근혜 정권의 황교안 법무장관이 1976년에 경기고를 졸업한 마지막 비평준화 세대이고, 2011년에는 검찰총장에 (대도시 기준)평준화 1세대인 한상대가 부임했고 이후 부임한 채동욱, 김수남도 평준화 세대다.

이렇게 고교 학벌이 깨지는 것처럼 보였던 것도 잠시, 2005년부터 2010년 9월 1일까지 신규 임용된 검사들 출신 고교를 보면, 대원외고 34명, 한영외고 18명, 대일외고 11명, 검정고시 10명, 서울고, 이화외고, 순천고(이상 9명), 명덕외고, 서문여고(이상 8명), 현대고, 공주사대부고, 대전고(이상 7명) 순으로 외고 출신만 87명이 임용되었다. 인사와 조직을 총괄하는 한 검찰과장 출신 간부는 “지금은 지역이 어디네, 고교가 어디네 따지지만, 10~20년만 지나면 그런 구분들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그때는 어느 외고를 나왔다는 것 정도나 얘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리고 6년 뒤, 한국일보 2016년 8월 22일자 <검찰 고위 간부들은 ‘강남파’>에 따르면 2010~2016년 지검장 이상 검찰 고위직을 지낸 98명 중 본인이 서울 소재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은 31명 뿐이지만, 현재 거주지는 98명 중 81명이 강남 3구에 살고 있으니 이들의 2세는 당연히 서울 출신이 된다. 현재 검찰 내 영남 출신이니 호남 출신이니 하는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 내 A외고 출신이니, B외고나 강남 A고나 강남 B고 출신이니 하는 말로 대체될 것이다. 영호남 갈등이 한방에 사라졌다

학연과 지연에 비해 혈연은 언론 등을 통해 비교적 잘 안 알려져 있지만, 가장 중요하면서 위험한 인맥이다. 이 혈연이라는 것은 학연과 지연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한 응집력과 파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부자(父子) 법조인이라고 하면 법조계 내에서 누구인지 다 알 정도였다. 아무리 아버지가 서울대 출신 천재 법조인이라고 해도 그 아들도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사법시험 합격만은 아버지가 아무리 돈과 빽을 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시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시 출신들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법시험 폐지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개천에서 용 되고 싶은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동조할 수밖에 없는 것.

참고로 공직자 통틀어 재산 증가율 1위가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이다. 이 사람은 준재벌 사위도 아님에도 공직자 재산 공개 때 워낙 어마어마하게 재산이 증가하여 언론 등이 수상하다고 의혹을 파헤치다가 넥슨에게 뇌물받은 것이 들통나 구속된 경우다.

조금 더 알아보자면 2013년 대한민국 개인 납세자 순위 15위이자 변호사 수임료 랭킹 1위홍만표 전 검사장이다. 역시 재벌 사위는 아니고 탈법적인 거액의 수임료로 돈을 챙겼다. 그런데 구속사유가 몰래 변론 의혹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여러 사건에서 변호사 선임계를 안 내고 불법적인 변호를 하여 세금탈루했다는 것이다. 즉 세금탈루하면서 일부만 신고한 게 수임료 랭킹 1위. 이때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되어 함께 구속된 최유정 전 부장판사도 변호사 수임료 랭킹 1~2위를 다툰다고 한다.

이상 언급한 학연과 혈연, 지연 3가지 요소로 일부 검사들끼리만 이너서클을 만들게 되고, 이들은 서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제식구끼리 밀어주고 끌어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법무부-대검-서울중앙지검의 트라이앵글을 도는 검사들을 소개한 신문기사 프로필을 보면 항상 학연/혈연/지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3가지 요소 외에도 인연을 꼽을 수 있는데, 같은 부서 근무했던 인연의 경우, 특수통과 기획·공안통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같은 형사부나 강력부, 공판부에서 근무했던 인연은 인연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2000년 하반기 인터넷법률정보회사인 '로티즌'이 변호사와 판검사의 친밀도를 점수로 매겨 소개하는 '법조 인맥 찾기' 사이트를 열었다. 이런 점수 산정 방식으로 법조계의 얽히고설킨 인연을 찾아내어, 재판을 받게 되어 변호사 고용할 때 담당 판검사와 인맥으로 얽힌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 1점 - 같은 지역 출신, 사법시험사법연수원 동기
  • 2점 - 같은 근무지, 대학 동문
  • 3점 - 고교 동문
  • 5점 - 고교 동기동창

이와 같은 점수 산정방식을 통해 법조계에서는 학연, 그 중 고등학교 학연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63] 그러나 2000년대까지만 해도 혼맥 개념이 약했던 시기다. 그에 비해 2010년대 들어서는 고위 법조인이 촉망받는 젊은 법조인을 사위로 맞아들이는 혼맥이 가장 중요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3.4.1. 혼맥

고위 법조인이 자신의 자식을 법조인으로 만들 방법이 없다면 검사 사위를[64] 맞아들여 자신의 후계 권력을 키워주는 방법이 있다. 이 때문에 고위 법조인들의 가계를 살펴보면 아들도 사시 합격한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법조인 사위를 맞아들이는 경우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사실 과거 야심만만한 젊은 검사들은 과거에는 정치인이나 대기업, 고위 관료의 사위로 들어가는 걸 선호했다. 이 때문에 2010년대에 접어들어 고위직들은 부유하거나 힘센 처가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나면서 야심 있는 젊은 검사들은 법조인 사위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사위족’ 또는 ‘법조 귀족’의 탄생이다.

이들 법조 귀족들은 눈에 안 보이는 이너서클을 형성한다. 젊은 시절부터 서로 잘 알고 근무지도 서로 밀어준다. 주로 법무부나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 등 노른자위 보직을 주고받고 한다. 이에 대해 한 고위직 인사는 “과거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이 검사 사위를 맞을 때 아무나 고르는 게 아니었다. 빠릿빠릿해 보이고 똑똑한 검사들을 골라 사위로 맞았다. 머리 괜찮고 업무 능력도 있고 배경까지 좋으니, 잘 나가는 경우가 많지 않겠냐”고 했다.

이러한 ‘사위족’의 대표적인 사례가 박희태 국회의장 사위 김형준 부장검사다. 김 검사는 2011년 9월 주UN대표부 법무협력관으로 아직 임기가 6개월 남았음에도, 선호보직인 대검찰청 범죄정보2과장으로 발령났다. 이때 ‘장인 빽이 좋긴 좋다.’라는 검찰 내부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그리고 바로 이 범죄정보2과정 시절 고교 동창에게 뇌물받고 이후 구속되었다. 자세한 것은 아래 ‘김형준 부장검사 스폰서 사건’항목이나 김형준 문서로.

그리고 2022년 또 다른 사위족의 케이스가 있는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런 케이스이다.
한동훈의 부인인 진은정은 남편과 같은 서울대 법대 캠퍼스 커플이었고, 현재 김앤장 미국 변호사인데, 아버지는 과거 대검 공안부장 출신의 대전고검 검사장이어서 장인과 사위가 대를 이어 검사장에 오른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사법연수원 교수의 경우 가장 중요한 임무가 사윗감 찾아보기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을 정도다. 꼭 자신의 사윗감에 한정된 말이 아니라 동료 판검사들에게 사윗감 찾아봐달라는 전화가 엄청나게 많이 온다고 한다. 사법연수원 2년 동안 똘똘하고 괜찮아보이면 맞선을 통해 부자, 고위 법조인 등의 사위가 되면서 강력한 혼맥을 얻을 수 있다.[65] 연수생들이 고위법조인 처가를 얻게 된다면, 1차 발령은 성적순이라 지방을 가도 어쩔 수 없지만, 2차 발령부터는 서울로 끌어주는 강력한 빽이 생기는 것이다. 다만 남자 연수생들이 아무리 고위직 딸이라도 외모가 떨어지면 그다지...

다만 최근에 수가 늘어난 여성 검사들의 경우 부부 검사가 되지 않는 한 혼인 시장에서 애먹는 편이다. 사시생들은 오랜 고시 공부로 대부분 나이가 많은데 남자 검사들은 나이가 많아도 결혼하는 데 지장이 없지만 여성 검사들은 지장이 매우 많다. 또한 외모가 가장 중요한 기준인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자기보다 고학력에 소득 높고, 능력 있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선호하는 편인데, 그 기준에 맞추면서 여검사들과 결혼할 수 있는 남자가 과연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사법연수원 교수(여성 판사)가 쓴 『사법연수원 교수의 비밀강의』를 보면 여자 연수생은 가능하면 연수생 때 결혼하라고 쓰여 있다. 이에 따르면 일단 검사가 된 이후에는 나이도 많아지고 눈도 더 높아져서 결혼하기 힘들다고 한다.

반대로 강골로 소문난 검사거나 지방 형사부만 도는 검사일수록, 고위직 처가 대신에 연애를 통해 결혼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자는 성격상 고위법조인 장인에게 살랑거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고, 후자는 그런 짓 해가며 출세하느니 그냥 이대로 살고 말겠다는 마인드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대한민국 검사 중 재벌가 아들이 검사가 되거나, 재벌 사위로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다.[66] 재벌 아들 중 사법시험 합격했던 사례도 없을 뿐더러, 재벌가 안 법무실에 대법관 출신/고검장 출신 기업 변호사들이 수십 명씩 굴러다니는데 일개 평검사와 정략결혼을 시도할 이유도 없다. 재벌가 사위로 가려면 재벌이 되는 수밖에 없다. 아시아 최대 로펌이라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대표 변호사인 김영무 변호사는 아들이 GS그룹 회장 장녀, 딸은 구인회 LG 창업주 조카와 결혼했다. 이 정도 아니면 안 된다.

하지만 수십억~수백억대 부자와 결혼하는 사례는 간혹 있다. 신흥 갑부로 떠오르고 있는 강남 졸부들이 권력을 얻기 위해 검사 사위를 선호한다. 2016년 대한민국 공직자 통틀어 재산 1위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인데, 이 사람도 전형적인 준재벌의 사위로 일찍이 5공시절 경찰계의 스폰서로 뒷소문이 자자했던 정강중기·건설 이상달 회장의 사위다.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행정·법조] 우병우 민정수석 393억 부동의 1위
3.4.1.1. 관련 문서

3.5. 조기퇴직

검찰만의 독특한 문화로 동기나 후배 기수가 승진하면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 알아서 물러나기(용퇴/勇退)가 있다. 일종의 철저한 자체 기수관리.

설명하자면 특정 기수가 부장검사일 경우 동기가 차장검사로 승진하면, 함께 승진하지 못한 검사 중 몇 명 정도는 바로 옷을 벗는다.[67]그리고 다음 인사 이동 때 동기 중 일부 외에도 관례에 따라 바로 다음 후배 기수 중 일부가 승진한다. 이때를 2차 승진기회라고 하는데 여기서 승진하지 못한 대부분의 동기가 옷을 벗는다. 이것이 차장검사 승진 때는 물론, 지검장 승진, 고검장 승진 때도 반복된다. 부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다시 차장에서 지검장 승진을 하지 못 하면 고등검찰청으로 내쫓기는데 사표를 안 쓰고 버티는 케이스도 드물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은 검찰총장 승진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김대중 정권인 1999년 5월 사시 8회인 박순용 대구고검장이 검찰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자 선배인 사시 5,6,7회인 고검장 6명이 모조리 옷을 벗고 나갔다. 심지어 지검장급 중 박 총장 동기인 사시 8회 7명도 몽땅 용퇴했다. 원래 1, 2명 정도 남기려고 했으나 8회 출신 검사장 중 1명인 이재신 당시 수원지검장이 반발해 전원 용퇴로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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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사퇴할 때 내세운 명분은 “인사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터주기 위해서 용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법무부가 이들에게 “원활한 인사를 위해 협조해 달라”며 자진 사퇴를 종용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수(期數)문화’ 관행에 따른 반강제적 사퇴라는 것이다.

이게 깨진게 검찰 역사상 단 한 번 있는데 1999년 1월에 항명파동을 일으켰다가 잘리고 2001년 7월에 복직한 심재륜 前 고검장이 그 케이스. 심 前 고검장은 김태정 총장 시절에 대구고검장직에서 경질되고 내쫓겼지만 행정소송 끝에 복직하는데 성공한다. 다만 이미 검찰총장의 기수는 박순용(사시 8회), 신승남(사시 9회)까지 내려온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검찰 사상 최초이자 최후로 법무부 장관[69]과 검찰총장보다 선배인 현직 고검장이 나오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심재륜 고검장은 정원 외인 무보직 고검장[70]을 거쳐 부산고검장[71]을 지내고 2002년 1월에 이용호 게이트의 여파로 검찰총장이 교체되자 사의를 표명하였다.

이명박 정권 때는 사법연수원 12기인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되자, 연수원 10~11기 선배 7명과 동기 4명 중 고검장급 8명 전원이 다음 날 옷을 벗었다. 그런데 며칠 후 천성관이 돈을 너무 심하게 밝혔다는 것이 인사청문회를 통해 알려지자 후보 직을 사퇴해버린다. 그러자 이미 옷을 벗어버린 11기 선배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이 불려와 37대 검찰총장이 된다. 이때 언론들은 '검찰총장이 확정도 안됐는데 너무 빨리 옷을 벗었다'니, '엉뚱한 부분에서 상명하복을 목숨처럼 여기다니 무슨 조폭이냐?'며 비웃었을 정도다.[72]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난 4월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한 뒤 “평생검사제도를 실현하는 게 목표다. 동기가 총장이 됐다고 옷을 벗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황 장관 재임시에도 채동욱 총장이 임명되자 동기와 선배 고검장&지검장이 옷 벗고 나가는 등 검찰의 조기 퇴직 문화는 여전했다.[73] 그리고 이는 김진태, 김수남 총장 시절에도 되풀이된다.

2017년 7월 사법연수원 18기 문무일이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되자, 2명밖에 안 남아있던 17기 선배인 김희관 법무연수원장과 박성재 서울고검장이 즉시 사의를 표명했다. 26일에는 지검장 중 18기인 이명재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김해수 대검 공판송무부장, 박민표 대검 강력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시에는 검찰총장 기수가 5기수나 내려갔으며, 이 때문에 현직 고검장과 지검장인 연수원 19~22기 대부분이 옷을 벗었다. 대부분이 나가면서 잔류한 연수원 22기 김영대 서울북부지검장, 양부남 의정부지검장이 고검장으로 승진하여 각 서울고검장과 부산고검장에 보임되었고 윤석열 총장의 동기인 연수원 23기가 고검장에 보임되었다. 또한 차장검사였던 연수원 27기까지가 지검장에 승진하였다. 이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과 함께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 국면에서 이뤄진 인사를 통해 22~24기는 퇴직하거나 고검장 승진으로 이뤄지고 연수원 29기까지가 지검장에 올랐다.

이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통령 당선 이후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지검장/27기)의 법무부 장관 영전으로 인해 큰 폭의 인사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김오수 검찰총장(20기)의 임기 보장이 이뤄지면서 큰 폭의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국회 통과가 이뤄지면서 결국 김오수 총장이 사퇴했다. 이후 친문, 친 정권 성향의 고검장, 지검장들을 전부 연구위원과 고검차장 같은 한직으로 밀어내는 등의 인사가 이뤄졌으며,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의 신임 검찰총장 취임이 이뤄지자 고검장에 승진한 25~26기 고검장들이 3달도 지나지 않아 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현재 해당 공석을 채우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일부 고검은 고검차장이 직무대리를 맡아 이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2년 후반기 인사를 통해서 앞으로의 인사가 결정될 전망이다.

검사 개인 역량이나 전문성, 업무 수행 적합성 등의 자질보다는 기수 중심 인사가 진행되다 보니, 검찰 특유 일사불란한 조직체계와 상명하복 조직문화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선배기수나 동기들이 알아서 퇴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사들 중 2/3는 의원면직하고 1/3은 명예퇴직으로 검찰을 떠나게 된다. 연금을 받기 위해 20년도 못 채우고 나오는 검사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명퇴할 나이조차 안 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정년 꽉 채워서 퇴직한 사람은 정년이 57세였던 시절에 10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그 외는 극소수 징계자(면직/해임)를 제외하면 다들 알아서 물러나는 사람들이다.

부장까지는 99%가 승진하지만 다음 단계 차장검사는 동기 중 1/3이 승진한다. 그러면 승진 못하는 사람들은 정년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의원면직으로 죄다 그만둬버리는 것이다.[74] 이 때문에 가장 일선에서 고생하며 검사의 능력에서 완숙기에 접어든 부장에서 그만두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사법연수원에서 세금으로 공짜로 먹여주고 입혀줬는데, 평균 근속기간 10년 만에 알아서 나가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한다.

이렇게 정년 안 지키고, 직급별로 동기나 후배가 먼저 승진했다고 사퇴하는 바람에 자리가 많아 사법부에 비해 검사들은 빠르게 승진하는 편이다. 검찰 최고점인 검찰총장에 오를 때 사법부 연수원 동기들은 이제야 법원행정처 실·국장급으로 아직 지방법원장으로 나가지도 못한 상태다.

일반행정직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군대나 경찰의 경우 동기나 후배가 먼저 승진했다고 알아서 옷 벗는 문화는 없다.[75] 일반행정직의 경우 50대 초반 파격적으로 발탁되어 차관 승진했다고 해보자. 그럼 그보다 선배인 50대에서 60살 사이 공무원들이 몽땅 나가야 하나? 그런데 검찰은 정말로 다 나갈 것 같은 조직이다. 동기 승진하는 것은 참아도 다음 해 후배가 승진하면 모두 나가 버리는 것이 검찰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기수파괴라는 것이 없다. 항상 기수 맞춰 승진시킨다.[76] 몇 기는 부장검사 승진할 차례, 몇 기는 차장검사 승진할 차례라는 것이 공식처럼 정해져 있다.

경찰의 경우 경찰대 2기가 경찰청장까지 했지만 무려 경찰대 1기 중 1명이 경위, 2명이 경감을 하며 꾸역꾸역 잘 버티고 있다. 군대는 그 유명한 “사람에게 경례하는 게 아니라 계급장에 경례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상명하복이 엄격한 조직일수록 기수가 아니라 계급에 따라 행동한다.

후배가 승진했다고 내가 옷 벗어야 한다는 것은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다. 검찰의 조기퇴직 문화는 조직 활력을 위해라고 주장하지만 부장검사까지만 달고 변호사로 나가면 전관예우 문화로 인해 공직 있을 때 보다 오히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어차피 부장검사에서 더 이상 승진도 안 될 거 나가서 돈이나 벌자는 생각인 것이다. 고검에서 정년까지 버틸 바에는 그나마 변호사 개업이 더 현실적으로 낫기 떄문. 군이나 경찰에서 후배가 먼저 승진했다고 미친 척 하고 40대에 퇴직하면, 나가서 할 일은 백화점 보안 요원 밖에 없는 현실[77]과 대조적이다.

대한민국에서 검사로서 정년까지 근무하는 예는 드물다. 일례로, 정현태 검사(연수원 10기)가 2017년 6월 9일 퇴직했는데, 검찰 사상 15번째 정년퇴직한 검사였다고 한다.# 그 주인공인 정현태 검사는 한때 차장검사 통틀어 최강 꽃보직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까지 했을 정도로 잘나가는 검사였다.[78] 그런데 휘하 검사가 바로 홍경령 검사(...). 홍 검사는 이 문서 하단에 나오는 "서울지검 고문치사 사건"이라는 초대형 사건을 터트려 구속되고, 정 차장검사는 지휘책임을 물어 검사세계의 시베리아인 고검으로 쫓겨난다 이 사건의 여파로 김정길 법무부 장관과 이명재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일[79]이 터졌으니 바로 밑의 정현태 차장검사가 무사하기는 힘들었다. 차장검사급의 고검발령은 사실상 알아서 나가라는 뜻인데 여기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15년 동안 버틴다.

결국, 정년퇴직자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나오기는 힘들고, 무수한 수모와 압박에도 끝까지 버티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 바람에 정년퇴직 검사들은 몇 년에 한 명 정도밖에 안 나온다. 일례로 2006년 12월 19일 정년퇴직한 서진규 검사(연수원 6기)가 검찰 사상 11번째 정년퇴직이라고 화제가 된 바 있는데,# 그 후 정현태 검사가 퇴직하기까지 10년 동안 정년퇴직한 검사가 4명밖에 안 되었다. 참고로, 판사의 경우 검사보다는 정년퇴직의 예가 '훨씬' 많다. 어느 정도냐면, '아주 많으면' 1년에 3명 정도(...). 2013년 법관 정년이 만 63세에서 만 65세로 조정된 이후 정년퇴임한 판사는 2016년 8월 한병의(연수원 12기)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와 2017년 12월 29일 김정학 인천지법 부장판사(연수원 12기) 딱 둘이다. 특히 변호사나 검사 등 다른 직역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법관의 한 길만 걷다 정년퇴임한 것은 처음이다.#

다만 원래 고위 공직자들의 경우엔 정년 전에 퇴직하는 일이 비교적 많이 일어난다. 하급 공무원들과 다르게, 첨답형 구조의 특성상 고위직 공무원 자리는 매우 적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5년 10년 씩 하고 있을 수가 없다. 때문에 많은 행시 출신 관료들은 승진길이 막히게 되면 50대 초중반에 조직을 떠나곤 한다.[80] 하지만 검사처럼 기수를 기준으로 칼같이 퇴직하는 조직은 없다.

이런 문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원체 부자연스러운 관행이기도 하고, 변호사 수의 증가, 사법체계의 성숙, 누적된 전관 법관 등으로 인해 전관 시장의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 때문에 가면 갈수록 검사들이 어떻게든 정년까지 조직에 남으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동안 16명의 검사들이 정년퇴임했다.

3.6. 검사의 봉급(월급)[81]

파일:검사의 봉급표(2021년).jpg

이 표로만 따졌을 때 초봉이 1년에 약 3,889만원으로 보이지만, 공무원 봉급표에 나오는 월급은 본봉 즉 기본급이며 당연히 각종수당 합하면 훨씬 더 많다. 수사지도수당, 직급수당 등 각종 수당을 더하면 세전 월 650만원 이상은 넉넉히 책정된다. 다만, 추가업무(조근 및 야근)을 정말 수없이 함에도 초과근무수당이 지급되지 않고, 수사과정에서 각종 소모비용이 많기 때문에 수당보다 지출이 많은 것이 대한민국 검사의 애환이다. 현행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의거, 일반직 4급 이상 공무원 및 4급 상당 이상의 특정직공무원에게는 초과근무수당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공무원 중 교장, 경찰공무원 중 총경부터 초과근무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 대신 이들에게는 월정액으로 관리업무수당이 지급된다.

참고로 사법연수원 수료자는 연수생 기간 동안 공무원이므로, 연수원 기간 2년도 호봉에 합산되며, 군필 남성은 군 기간도 합산되어 적용되므로 연수원 군필 기준 4호봉부터 시작한다. 로스쿨 출신도 군필이라면 군 기간은 포함되어 2호봉부터 시작한다.

# 여기를 참고하면

초임 검사 4호봉(사법연수원 수료, 군필(중위 제대) 기준) 월급 계산
  • 기본급 - 4,273,900원
  • 정근수당 - 미지급
  • 수사지도수당 - 100,000원
  • 관리업무수당 - 384,651원(기본급의 9%)
  • 봉급조정수당 - 74,793원
  • 정액급식비 - 140,000원
  • 직급보조비 - 500,000원
  • 직무성과금 - 1,001,750원
  • 세전 월급 합계 = 6,475,094원 + 연가보상비/12월
초임 검사의 경우 세전 연봉은 77,701,128원 수준이다. 세후로는 63,052,968원 정도가 된다. 여기서 연가보상비를 받으면 더 받을 수도 있다.

검사는 14호봉까지는 1년 9개월마다 1호봉씩 상승한다. 다른공무원들이 1년에 1호봉오르는것과는 큰 차이. 14~16호봉까지는 2년에 1호봉씩, 16~17호봉은 6년이다.

4. 위상

검사 잘못 건드리면 3대가 피 봐요.

한때 "대한민국에서 검사를 잘못 건드리면 3대가 피 본다."라는 말이 있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무서운 사람으로 많이 묘사된다. 하지만 조사실 외부에서 검사라는 계급장을 내세우고 범죄행위를 저지르거나 불합리한 강요 등의 행위를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차피 검찰청 조사실 외부에서 작성한 수사자료의 경우 증거능력이 부정되기도 하고. 사실 퇴근만 하면 그냥 동네 아저씨 아줌마 혹은 총각 처녀지 딱히 뭐 없다...[82] 정치에 관심 없고 일선에서 묵묵히 일하는 보통의 검사들은 오히려 밖에서 자신이 검사임을 내세우는 것을 싫어하며[83] 자녀의 학교에도 검사라는 것을 굳이 내세우지 않으려고 그냥 '공무원'이라고만 알리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국내 사법시스템이 좀 더 발전하게 되면 판사와 검사의 힘은 점점 더 약해져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선 약간의 의견 대립이 있는 것이, 지금 형사재판의 추세가 당사자주의로 흐르는 이상 검사 측과 피고인 측이 재판상 당사자로서 역할이 커지기 때문이다. 즉 판사의 힘은 약해지되(기존의 원님재판 식 진행에서 탈피) 검사와 피고인(=변호사)의 발언력은 강해지는 것이 옳은 방향일 수 있다.

다만 이게 심각해지면 미국처럼 재판의 스포츠화가 될 우려가 있다. 형량이나 유무죄를 서로 협상하거나 거래하는 수준까지 갈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미국에서는 1명을 죽인 살인범은 사형장에 끌려가는데 여러 명을 죽인 살인범은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종신형으로 내려가거나 심지어 기소가 면제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사자주의보다는 배심원제의 문제에 가까운 것으로, 검사랑 경찰이 백날 뼈빠지게 증거수집해서 법정에 보내도 피고가 배심원 앞에서 인생스토리를 읆으며 감성에 호소하거나, 사건을 인종문제로 비화시켜서 무죄를 받아내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사법거래가 허용되지 않아 이런 사태가 안 벌어지고 범죄에 맞는 양형이 내려지니 미국보다는 나은 셈이다. 당장 미국에서 종신형을 수십 번씩 받으면서도 사법거래로 목숨을 보전한 게리 리언 리지웨이는 한국에서는 얄짤 없이 사형감이다. 물론 한국 특성상 집행은 안 될 가능성이 높아 어지간해서는 구치소에 수감되어 평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형이 실질적으로 가석방이 불가능한 무기징역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84] 간혹 연쇄살인범을 놓고 사형 요구가 빗발치긴 하지만, 20년 가까이 집행하지 않던 형벌을 갑자기 시행하는 건 유럽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각종 인권단체의 반발, 집행관들의 심리적 부담감 등으로 불가능하다. 애초에 엄벌을 내린다고 범죄가 감소하지도 않는다.

검사 중에서도 공안 관련 사건을 다루는 공안 검사와 부패사범을 다루는 특수부 검사의 위세는 아주 막강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국보법 등 사상사건을 다루던 공안 검사는 그 힘이 약화되었다가, 공안쪽 인사들이 득세하는 박근혜 정권에서 위상이 올라갔었지만 그쪽 라인이 박근혜 게이트와 연루되고 이미지가 실추되면서 다시 도루묵...

또한 검사란 직업은 기본적으로 공무원이므로,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 취업 전까지는 전문직 같은 높은 연봉을 받기 힘들다. 물론 임용되면 3급 공무원(공안직 4급 상당)에 준하는 보수를 받으니 보통의 공무원보다는 다소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든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정말 로펌에 비하면 안습 그 자체다. 가끔 검사 또는 판사끼리 연애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맞벌이를 해도 시원찮아 상당히 고생하는 듯하다.(변호사 자격증 가진 사람들 관점에서)

최근 로스쿨생들에게 졸업 후 직업 선호도 순위가 1위 대형로펌, 2위 검사, 3위 로클럭이다. 대형로펌은 적어도 판검사의 3~4배, 파트너 변호사 같은 경우에는 5~10배까지도 받는다. 여기에 붙는 여러 인센티브는 기본급을 훨씬 초월한다.

공무원 정년은 1963년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전에는 뇌물이나 스폰서같은 음성적인 부수입이라도 있었지 이제는 그렇게 했다간 언론에 걸리기 십상이다보니 딱 법적으로 정해진 수입만 받기 때문에 메리트가 격감했다.

갑과 을 사이에서 범죄자들에게 절대적 갑의 위치에 있다. 멋있게 현장에서 범죄자들을 때려잡고 조폭의 협박에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실제로 그러했던 몇몇의 사건설정 자체가 코미디다. 이건 지휘소에서 사단을 지휘해야 할 장군소총 들고 이등병들 데리고 적진에 뛰어들어 백병전 하는거랑 똑같은 레벨이라 생각하면 된다. 현실에서 검사와 조폭의 파워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조폭이 검사를 협박한다는 건 조직 그만 정리하겠다고 콩밥 먹여 주십시오!! 선언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소리다. 즉 강자인 검사를 약자로 만들어 당연한 것을 용감한 것으로 포장한 거다.

하지만 몇몇 강력부 출신 검사의 수기에서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전화로 협박을 당했다는 경험이 나오고, 경북 안동시에서는 토착 조폭단체인 대명회가 안동지청 과장을 폭행하고 지청장 차와 관사대문에 "힘 있을때 잘하라"는 낙서를 했던 적이 있었으니 현실이 픽션보다 더한 것 같다. 물론 그 조직은 말단까지 통째로 쓸려나가는 엔딩으로 마무리.

어느 나라에서는 범죄조직을 수사하다 죽는 검사도 많다. 참고로 이탈리아는 검사가 사법부 소속이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검사들은 정치인들을 마구잡이로 수사한다. 자세한 것은 검찰 이탈리아 부분과 이탈리아/정치 문서로.

사실상 몇몇 높으신 분들[85], 기관들[86], 기타 권력자들[87]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검찰을 강력하게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으며,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고 파워 막강한 직업 중 하나다.[88] 대기업 고위 간부나 고위공무원[89] 등도 증거가 명백하거나 중형을 면치 못한다는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면[90] 충분히 조질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못 조지는 범죄자가 없는, 그러한 권한을 가진 직업이 바로 검사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수사권이 대폭 축소되었다.

2023년 1월 현재, 26년간 검사로 재직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그 검사의 최측근이었던 사람법무부 장관까지 되었고, 기타 공공기관의 장으로 검사 출신들이 임명되면서 현실에서 검사의 위상은 더욱 더 높아질 전망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검찰 간 대립의 결말은 검찰의 판정승으로 끝나게 되었으나, 대통령 임기 종료 직전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무리할 정도로 추진하고 통과시키면서 예전처럼의 위상은 아니게 되었다.

5. 직급 체계

검사의 직급 체계나 공무원 대응 급수, 승진 코스 등에 대하여는 해당 문서로.

6. 검사가 되는 방법

연좌제 폐지로 인해 부모의 전과는 살인죄, 공안사범이라도 문제없다.

그러나 지원자 본인의 기소유예, 공소권 없음 등의 수사경력, 학폭위 가해자 회부경력은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단, 11대 중과실이 아닌, 보험처리가 끝난 1회성 일반 접촉사고의 경우 신원진술서 상세형에 기록은 해야 하지만 이 정도 사고로 인한 불이익은 전혀 없다) 심지어 군 복무 중 휴가제한, 영창, 보직해임 기록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영창 입창 기록과 보직해임 기록은 일반 사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검사 임용은 판사 임관과 더불어 일반 공무원이 아니라 아주 특수한 공무원으로 국가정보원 공채와 맞먹는 급의 신원조사를 거친다. 아래 사이트의 신원진술서 상세형(1-다)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군대 영창, 보직해임 등까지도 기록해야 할 정도면 보통 신원조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검사에 대한 신원조사는 국가정보원에서 직접 실시한다(보안업무규정 시행세칙). 과거에는 기무사 신원조사를 거쳤으나 현재는 안보지원사가 아닌 국방부 본청 신원조사를 거치며 여기서 군법무관 시절 보직해임 기록의 징계는 물론 병사 신분의 영창 기록까지 다 확인한다. 학폭위 가해자 회부경력의 경우 만약 이로 인한 행정소송이라도 연루되었다치면 그 행정소송 기록으로 인해 불합격 사유가 된다.

첨부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도 문제를 삼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소명을 잘 하고 치료가 잘 되었다면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현재 증상이 있는 사람이면 합격 가능성이 확연히 낮아지니 주의를 요한다.

즉 일반 공무원 및 변호사도 다 하는 경찰청 신원조사에 추가로 감사원, 국정원, 국방부, 국토교통부(부동산), 국세청, 건강보험공단, 심지어 농림축산식품부(쌀직불금 수령기록) 등등 있는 조사는 죄다 거친다고 보면 된다. 검찰과는 관련이 없지만 민사소송기록도 본다. 물론 소송에 엮인 적이 있더라도 피해자인 원고로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경우는 사실만 제대로 적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빌린 돈을 갚지 않았다던가 손해배상을 미루고 있었다는 등 가해자이자 피고인 소송에서 패소(= 도덕적 문제 + 법률실력 미비)한 사건이 있는 경우는 임용에 큰 타격이 있다. 윗문단에 있듯 학폭위 가해자 회부로 인한 행정소송 기록의 경우도 당연히 소송기록으로 인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러한 소송이력은 지원서에 전부 기재해야 한다.

인품, 능력, 적성, 청렴성, 건강 등을 고려하여 검사의 직무수행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군인사법에서 말하는 사상이 건전하고 품행이 단정하며 신체가 건강한 자와 사실상 동일한 내용이다. 국가정보원직원법, 경찰공무원법에도 유사 조항이 있으며 이런 게 모집요강에 있다면 기소유예는 치명적으로 불리한 평가요소로 작용한다. 단, 국가공무원법 자체에는 해당 조항이 없으므로 기소유예 등이 있다면 일반 5~7급 공무원으로 뽑는 변호사로 가면 된다.

벌금형 기록은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기소유예보다도 더 심한 마이너스가 된다. 그런데 아스트랄하게도 2016년 음주운전 전과자를 검사로 임용하여 크게 난리가 났다. 명시적 불합격 사유는 아니지만 신원조사에서 매우 불리한 요소가 됨에도 1회성이란 이유로(...) 법무부가 임용해버렸다. 아마 검사 지원자 중 이상한 사람이 많아서 다 추려내다 보니 이런 사람이 남아 뽑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원칙적으로 벌금형 전과는 검사 임용 시 타격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음주운전이 검사 임용 후에 발생한 경우 선배 검사가 왕따시키기 때문에, 징계를 받은 뒤에 짐 싸서 나가게 될 정도로 크게 다루어져야 하는데, 임용되었더라도 조직 생활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금고형 이상(집유 포함)을 받은 자는 검찰청법에 의거 지원 자체가 봉쇄된다.

관련 자료 - 2017년도 법무부 검사 신규임용 지원서

6.1. 사법시험(2017년부터 폐지)

사법시험이 2017년도 시험을 끝으로 폐지됨에 따라 더 이상 사법시험을 통해서는 검사가 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사법시험의 내용과 어려움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로. 사법시험 체제에서 판사가 되는 법은 해당 문서로.
  • 1,000명 뽑던 시절에는 250등 이내면 가능했다. 군필 남자는 300등까지 가능했다. 물론 끝자락 잡고 들어가면 첫 발령지가 비선호 지역이 되기 쉽다.
  • 2012년부터는 로스쿨에 배당인원을 떼어줘야 했기 때문에[91], 검사만 선발했다.
  • 2016년 이후엔 300명의 사법시험 합격인원 중 많아야 60명만 검사가 될 수 있었다.(연수원 41기의 경우 연수원 인원이 1,000명에 달했음에도 검사 임용자가 62명에 불과했다. 연수원 인원이 줄어듦에 따라 검사 TO도 점점 줄어든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므로, 사법시험 300명 시대부터는 사법연수원 검사 TO는 60명 아래로 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6.2. 법학전문대학원

2009년 도입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경우도 검사임용이 가능하다. 기존 사법연수원 체제와 비교해서 검사가 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전국의 법전원생은 한 학년당 2,000명으로 사법연수원생(가장 많았던 해 1,000명)에 비해 2배에 달하고, 정원 대비 선발인원도 사법연수원생에 비해 적기 때문. 법학전문대학원 출신이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략 각 학교별 상위 10%의 성적을 받고, 2학년 2학기에 수강하는 검찰실무1과 2학년 겨울방학 중에 시행되는 검찰심화실무수습, 3학년 1학기 수강하는 검찰실무2에서 모두 높은 성적을 취득한 후 3학년 2학기에 실시되는 검사 선발과정(서류, 필기, 면접)에서 합격한 후[92] 3학년 겨울방학에 실시되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검사로 임용이 가능하며, 2012년 기준 졸업생 수 대비 비율로 보면 2.4%정도 된다고 한다. 물론 신규 임용에서 떨어졌다고 검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2년 이상 경력을 가진 변호사를 상대로 '경력 변호사 검사'도 꾸준히 채용하고 있다.
<rowcolor=#373a3c,#212121>로스쿨 기수(임용 연도) 즉시 임용 법무관[93] 합계
1기(2012년) 42명 0명[94] 42명
2기(2013년) 37명 37명
3기(2014년) 35명 35명
4기(2015년) 39명 6명(1기 법무관) 45명
5기(2016년) 39명 9명(2기 법무관) 48명
6기(2017년) 38명 10명(3기 법무관) 48명
7기(2018년) 47명 21명(4기 법무관) 68명
8기(2019년) 55명 23명(5기 법무관) 78명
9기(2020년) 70명 25명(6기 법무관) 95명
10기(2021년) 73명 20명(7기 법무관) 93명

위 표는 경력 검사를 제외한 신규 임용자만을 나타낸 표다. 대략 70명 전후가 임용함을 고려해보면, 로스쿨 인원 2,000명 기준 대략 3.5%, 변호사시험 합격자 1,600명 중 대략 4.3%가 임용되는 걸 알 수 있다.

7. 비판

검사는 한국의 사법제도 특성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기 쉬운데 견제장치는 전무하다. 여기에 국회의원과 거의 같은 1인 사법기관으로서 독자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보낸 인간들도 보인다는 것이다. 범죄자도 아닌 참고인한테 진술서가 마음에 안 드니 씹어먹으라고 강요해서 인권침해를 저지른 검사가 있는가 하면, 자기 잘난 맛에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다 검사 스스로가 법을 어겨 검찰총장한테 제재를 먹는 경우도 있다.

실제 90년대 초반에 있었던 사건으로 이런 게 있다. '진달래'라는 회지를 만든 문학모임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내건 명분이 진달래북한의 국화라는 것이었다. 무려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죄였다. 문제는 북한의 국화는 목란이지 진달래가 아니다. 이걸 변호사가 법정에서 지적하자, 검사 왈 '내가 북한의 국화를 진달래로 알고 있으니 진달래가 맞다(...)'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쓴 일이 있었다. 물론 원고 승소.

결국 가장 큰 문제점은 2가지, 기소독점권과 견제장치 부족이다. 사람을 법적으로 죄인으로 만들 수 있는(즉, 작정하고 사회에서 매장시키거나 절대 면죄부를 부여할 수 있는) 직업인데 또 그 검사가 법적으로 유죄여도 그걸 판정하는 사람이 검사라는 게 또 다른 문제점. 거기다 현재 체계에서 검사가 작정하고 나가면 막을 수 있는 쪽은 윗선뿐인데,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법무부 산하에 있는 검찰 수장인 검찰총장도 대통령이 임명하고, 이런 검찰의 특수한 사정을 대통령과 조정하기 위해 두는 민정수석비서관 역시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검찰 힘은 대통령이 쥐고 검찰총장과 민정수석을 통해서 흔드는 셈. 대표적인 예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버티다, 당시 김영삼대통령이 처벌하라고 한마디 하자마자 전두환, 노태우를 기소한 일이다. 다만, 김영삼도 1993년 5월 5·18 특별담화에서 “진상규명과 관련해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훗날의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며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다가 여론에 따라 헌법재판소 분위기가 점점 바뀌니까 선수를 친 셈이다.

어쩌다가 정말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보낸 검사가 나오는데 음주운전, 불법촬영이나 강제추행 같은 성범죄도 은근히 나온다. 이건 직무상의 범죄도 아니고 그냥 인성이 글러먹은 잡놈이다. 검사는 파면징계[95]가 없고, 검사들끼리 쉴드쳐준다고는 알려져 있지만, 이런 짓한 검사는 사실 왕따로 인해 결국 더 높은 검사들 등쌀에 못 이겨 자진사퇴하게 된다.[96] 특히 뉴스에 복자처리되어서라도 보도되었다면 커리어는 완전히 구겨지게 된다. 민주화 시대 이전이야 판검사가 범법행위를 하다 걸리면 "나 검사요" 이 한마디로 경찰도 안 건드렸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도시전설이다. 2010년대 이후로 그랬다가는 신상털이 크리로 인해 적어도 판사나 검사직은 내려놓아야 한다. 판검사는 그런 범죄수준의 대민마찰을 마음 놓고 일으켜도 되는 계급장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김형식 전 서울시의회 의원의 친형[97], 에이미 사건의 전직 검사[98] 등이 그렇다.

문제는 검사 관둔다고 끝이 아니라, 변호사 등록만 되면 PROFIT!이라는 점.검사 사회는 지금은 폐지됐다한들 검사동일체 원칙 이래 철저한 마피아식 상명하복 조직체계다. 때문에 검사장 못 해보고 퇴임한 연수원 선배 > 검사장인 연수원 후배 구도가 성립한다. 하물며 직급까지 차이가 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때문에 검사 출신 전관변호사는 다른 변호사보다 특히 형사사건 수임에 유리하고, 수백억이 오가는 화이트칼라 범죄 수임에도 유리하다. 또한, 연수원 선배 기수를 앞세워 현직 후배 검사들에게 전술한 검사 주요 비리 수단인 무혐의처리, 기소유예, 기소항목 부실작성 등을 강요하여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수백억이 오가고 권력층과 줄이 닿는 화이트칼라 범죄자를 상대로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건 당연히 퇴임 후에도 얼마든지 권력과의 유착이 쉽다는 걸 의미한다.

뇌물, 속칭 '떡값'[99]을 받아먹었다는 이유로 붙은 '떡검'이라는 별명이 세간에서 검찰의 이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심지어는 2010년 1월 김준규 검찰총장도 점심 식사 도중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400만 원대의 촌지 이벤트를 벌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해당 기사

사실 스폰서는 해묵은 문제다. 박재동 화백의 1993년도 만평을 보면 이해가 더 빠를 것이다.

결국 법원과 함께 '신뢰하지 않는 기관'의 양대산맥이라는 통계까지 나왔다.한국갤럽 통계

7.1. 회식에서 폭탄주 문화

검사는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로도 악명이 높다.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한 검사 출신 정치인 박희태는 동료 국회의원들과의 정기 회식 때 소주잔 22잔을 비우고 멀쩡히 집까지 걸어갔는데#, 후에 이를 듣고 놀란 기자에게 자신은 검사 동기들 중에서는 평범한 수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폭탄주의 원조격을 자신이 발명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검사들은 부검과 관련된 징크스가 있다. 부검을 한 날에는 밤 12시가 넘어 귀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검을 하면 그 끔찍한 모습 때문에 이를 잊고자 술에 취해지고 싶어진다. 이 징크스는 검사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으로 술 한잔 하고 귀가할 수 있게 해준다.

잘못된 술 문화는 확실히 대한민국 조직문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젯거리지만, 검사의 경우 법을 지켜야 하는 입장인 데다 폭탄주 때문에 패가망신하고 옷 벗은 검사도 윗링크에서 보이듯 실제로 있기 때문에 검사의 잘못된 술 문화는 더욱 더 비판을 받고 있다.

7.2. 실비(촌지) 관행

우선 판검사가 변호사로부터 직접 실비를 받는 관행은 모두 과거의 것으로 지금은 완전히 없어진 상태라는 것을 염두에 둔 채로 아래 서술을 읽도록 하자.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판검사가 변호사에게 받는 혜택을 크게 3가지로 나눈다.

첫째, 변호사에게 이른바 실비를 조달받는 관행. 휴가비나 전별금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지만 첫 번째 범주 안에 든다.
실비란 일반적으로 변호사들이 수시로 판검사실 들를 때마다 여직원에게 맡기며, 소액으로 10~30만 원 정도이며 50만 원이면 위험하여 골라 받았고, 100만 원이 넘으면 실비가 아니라고 생각해 받지 않았다.(1997년 이전 상황이기 때문에 화폐 가치를 지금보다는 2~3배 크게 생각해야 한다.)

적립해 두었다가 주로 판검사 식사할 때 밥값으로 쓰고, 명절 때면 계장, 주임, 여직원에게 떡값으로 주고, 가끔 회식하면 술 마시는 용도로 사용했다. 판검사들은 이 돈은 나눠 가진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나눠 가진’ 것은 죄이지만 ‘먹은 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근본적으로 ‘’‘돈을 받든, 청탁을 받든, 사건에 영향을 주지만 않으면 된다’‘’는 인식을 폭넓게 가지고 있다.

둘째, 향응 수준의 술접대를 받거나 골프 도박 비용을 받는 경우.

일반적으로 브로커와 변호사들이 평소 판검사들을 관리하는 수단이다. 노골적으로 사건 관련하여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판검사들은 해당 변호사와 관련된 사건이 있으면 향응받는 것을 거부하여 문제 소지를 차단하며, 사건 관련해서는 받은 것이 없으니 나는 떳떳하다고 실제로 생각한다. 사건 이전에 받아먹은 것은 원래 친해서이고

셋째, 사건과 관련하여 거액의 돈이 노골적으로 오가는 경우.

일반인들은 판검사들이 주로 3번째 경우인 거액의 돈을 노골적으로 받는다고 비난하지만, 실제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이다. 판검사들은 일반인 생각과 반대로 생각하는데 과거(1997년 이전) 문제가 되었던 관행은 1997년 의정부와 대전 법조 비리가 터지면서 이제 없어졌고, 사건 관련하여 돈을 받는 경우가 없으니 법조계는 깨끗한데 일반인들은 믿지 않는다고 한다. 2번째 경우는 원래 친해서 향응받은 것이니 제외하고 사건 당사자들이 변호사를 통해 돈을 전달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당사자들이 그랬을 것이라고 넘겨짚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일정 부분 사실일 수도 있다.

일반인이 오해할 수 있는 게 사건 당사자가 직접 판검사에게 돈을 주는 것은 영화에서나 있지 실제로는 매우 드문 경우다. 한 예로 2007년 11월 전직 국회의원 강숙자가 자신의 민사소송을 담당한 재판장 집으로 현금 800만 원이 든 유자차 상자를 들고 찾아가 부재 중인 재판장 대신 그의 딸에게 전달하고 간 사건이 있었다. 담당 부장판사가 다음 날 이 사실을 알고 즉시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에 전화해 강 씨가 구속되었다. 판검사들은 전직 국회의원 돈도 받지 않는데 평범한 일반인들의 경우 돈을 사과상자에 채워간다고 해도 받지 않는다.[100]퍽이나 안받겠다

오직 안전하게 검증된, 그리고 실제로 해당 판검사와 현직시절 함께 일하며 깊은 인간관계를 맺은 전관 변호사를 통해서만 판검사에게 로비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 경우도 전관변호사가 판검사에게 직접 돈을 전달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고, 대부분 평상시 향응을 제공하며 관리하는 것이다. 판검사의 경우도 은퇴하고 나면 자신도 로펌에 취직해야 하는데, 변호사 세계에서 저 사람은 전관예우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 소문나면 로펌 취직이 안 된다. 왜냐면 로펌이 값싸고 젊고 쌩쌩한 사법연수원 졸업생들 대신 몸값이 비싼 전관을 고용하는 것은 전관예우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인데 전관 안 통하는 사람이라면 고용할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판검사들은 자신이 잘 알던 전관 변호사가 향응을 제공 안하고 단지 전화 한 통만 한다고 할지라고 거부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변호사가 자신이 저 판검사를 잘 안다며 돈 1억을 갖고 오면 불구속시켜주겠다고 하는 것은, 직접 그 돈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1억을 다 먹고, 대신 평상시 인맥으로 전화 한 통 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최유정 변호사(전직 판사), 홍만표 변호사(전직 검사장) 사건 때도 일단 검찰 판단은 의뢰인에게 했던 말과 달리 직접 판검사에게 돈을 전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그럴 리 없다고 분노하지만, 그동안 숫한 관행을 보자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판검사에게 가는 로비 수단이 예전에 없어진 실비 관행도 아니고 사과상자도 아니라면 결국 남은 것은 향응 제공, 특히 술자리와 골프밖에 없다.

물론 김영란법 시행으로 변호사가 판검사에게 향응을 제공하는 것은 관련 사건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원칙적으로 불법이 되었다. 저 유명한 3·5·10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7.3. 골프 향응

평검사가 골프를 칠 시간이 있는가는 둘째치고, 검사는 2~3년 단위로 순환보직일 뿐더러 특유의 기수제 때문에 부장하다가 나간 분들이 한둘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검사장도 아니고 굽신거릴 필요가 없다. 군법무관 출신 검사의 골프 이야기도 법전원 이후에는 사실상 과거 이야기다.

정말 질 나쁜 일부 예외 검사도 있지만, 상당수 검사들이 현재 소송 당사자나 이해관계자에게 향응을 받는 것은 피한다. 그들과 골프 치는 것은 물론 그 변호사와 골프도 자제한다. 그리고 그것이 법조인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상시에 안면 트고 향응을 받든가, 사건 터진 다음에 받든가 문제를 생각해 보면 결국 ‘그게 그거’이다.

골프 접대는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단계는 부킹, 2단계는 골프비 대납, 3단계가 가장 문제가 되는 내기골프다.

먼저 부킹단계부터 보자. 골프는 치고 싶은데 대한민국 골프장은 부킹부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아는 힘 있는 사람을 통해 골프 부킹을 받는 것부터가 특혜다. 특히 골프장 사장의 경우 부킹 특혜를 통해 평검사부터 검찰총장을 지나 법무부 장관까지 모든 법조인에게 로비가 가능하다. 또한 골프장 사장이 마음만 먹으면 “검사님, 평생을 회원권 없이도 검사님 이름만 대면 그냥 치게 할 테니까 아무 때나 와서 치십시오!” 같은 엄청난 로비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건설업체 사장과 함께 골프장 사장이 가장 대표적인 법조 브로커로 손꼽힌다.

2단계의 골프장비 대납의 경우를 보자. 일단 검사들은 자기 돈을 내고 치지 않는다. 검사끼리 골프를 치러 갈 때는 항상 비용 납부할 변호사 1명을 끼고 간다. ‘정말 친한 사법연수원 때 동기이니, 예전 꼬꼬마 평검사 때 신세졌던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이니, 하늘같이 모시던 지검장님 출신 변호사이니’. 하는 것은 다 필요 없다. 무조건 변호사가 낸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줄 안다. 만약 판사와 검사, 법조출입기자 그리고 국회의원이 골프를 치면 골프장 사장이 대신 낸다.(...) 어찌됐건 검사가 골프비 낼 일은 없다.

3단계인 내기골프가 가장 악질적인 문제로 언론에 자주 다루어진 합법적(?) 뇌물이다.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한 타에 몇 만원씩 돈을 걸어 해당 검사가 다 따도록 몰아주는 방식이다. 액수는 비교적 소액으로 각자 25만 원씩 걸고 우승자가 그 판돈을 다 따먹는 방식을 쓴다. 검사들은 이보다 액수가 크면 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초 묻어두는 판돈도 해당 검사가 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스폰서가 대신 내준다. 결국 남의돈 놓고 게임해서 다 내가 먹는 방식이다. 실태가 이렇기 때문에 검사들끼리 칠 때는 내기골프가 없고, 주로 변호사와 브로커들을 끼고 치면서 이런 뇌물이 가능하다.

노골적인 뇌물이나 다름없는 내기골프를 즐기는 검사는 소수다. 그리고 이런 내기골프도 평소 잘 알던 변호사나 브로커하고 치지, 조사 중인 사건 당사자와 치면서 직접 받아먹는 것은 그 소수의 검사들도 금기시하고 있다. 그러나 내기골프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거절하는 대부분의 검사들도 부킹이나 골프비 대납정도는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정도 인식을 갖고 있다. 주의할 것은 검사들은 다 그렇고 그런 놈들이라고 일반화시킬 필요는 없다. 일단 평검사 시절에는 살인적인 업무량으로 골프칠 시간이 없다. 군법무관 출신이 아니라면 골프 배울 시간도 없고.

7.4. 술 접대 향응

다음으로 주요한 향응에는 술 접대가 있다. 검사들의 폭탄주 문화의 경우 유명하여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돈 역시 변호사나 브로커가 대신 내준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101] 예전에는 이러한 회식을 변호사들이 검사 사무실에 들를 때마다 주는 ‘실비’로 해결했지만, 이제는 실비 관행이 없어지면서 변호사들을 직접 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서 실비 관행과 같이 아무 변호사나 이들만의 이너서클에 들어갈 수 없다. 역시 전관변호사 정도나 가능하다.

과거 어두운 시절 이런 술값 대납은 매우 일반적인 일로, 제 돈 내고 술 마시는 검사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천년대 이후 민주화 정권도 들어서고, 법조 비리가 연이어 터지면서 자제 분위기가 되었고 검사들 스스로도 자정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백만 원에 가까운 1차 폭탄주 회식비나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2차 룸살롱비를 쥐꼬리만한 공무원 월급을 받는 검사가 내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돈은 누가 내는가? 결국 변호사나 브로커 혹은 스폰서가 끼게 되는 것이다. 김영란법 적용이 시급합니다.

이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평상시에 변호사들에게 술접대를 받기만 하던 검사들도, 자기 돈으로 술 접대 할 때가 있다. 바로 법조출입기자와 술 마실 때다. 영화 부당거래에도 이 과정이 잘 나와 있다. 영화에서는 권위의식 쩌는 검사가, 기자하고 있을 때만 비굴해지면서 자기 돈으로 술접대를 한다. 영화에 나오는 기자가 엄청난 찌질임에도 굽실거린다.

검사들의 술 접대 관행을 이해하기 위해 1개 형사부 검사들이 단체 회식을 하는 경우를 가상해보자. 부장검사가 예전에 모시던 검사 출신 변호사가 한잔 사고 싶다고 해서, 자기 돈으로 폭탄주 회식을 시켜준다. 이때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변호사가 차비 하라며 상품권 돌릴 때가 있다. 먼저 변호사가 자신과 친한 부장검사에게 상품권 10만 원쯤 주고, 거듭 말하지만 검사들은 액수가 크면 비리라고 생각하여 오가는 돈이 꽤 소액이다. 이어서 평검사들에게 상품권 10만 원씩 나눠준다. 자신의 상관인 부장검사부터 시작해서 동료 검사들이 하나씩 받다 보면 이 정도는 받아도 괜찮겠다는 의식이 든다. 검사들은 술값은 당연히 변호사가 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죄의식 자체가 없다. 오직 상품권 받아도 되나? 안 될 것 같은데. 정도만 고민한다. 이때 당차게 거절하는 검사도 있지만 분위기 흐리는 사람 취급 받는다. 이때 먼저 받은 상관인 부장검사가 똥씹은 표정으로 “자네 오늘 왜 이러나?”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안 받겠다고 문을 박차고 나가는 정의의 검사들도 분명 존재한다. 이런 당찬 검사들조차 변호사가 술값 내는 것은 문제 삼지 않는다. 영화 내부자들을 보면 정의로운 주인공 검사가 기자와 술자리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기자가 소개한 스폰서가 방에 들어오자 즉시 일어서며 자기 술값 계산하고 가버린다. 적어도 평검사 개인 레벨에서는 스폰서건 브로커이든 박차고 나갈 수 있지만, 직속상관인 부장검사가 데려온 전직 고관출신 변호사 술접대를 박차고 일어나기는 검사조직의 구조상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기자가 술자리로 부르면 달려가야 하기도 하고

2차는 룸살롱이라는 단어와 동일하다. 이번에는 변호사나 브로커 등 외부인이 안 끼고 검사들끼리만 가는 경우를 가정해보자.[102] 폭탄주 돌리는 1차는 어떻게 낸다고 쳐도, 2차 룸살롱은 비용이 상당하다. 밴드가 전자기타로 생음악을 연주하고 아가씨들이 검사마다 붙기 때문에 수백만 원씩은 기본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스폰서가 준 법인카드다. 스폰서 법인카드로 한 번에 수백만 원씩 그리고 평생 긁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2008년 말 건설업자 법인카드로 1억 원가량을 사용한 부산고검 김모 검사 사건이다. 스폰서 카드사용은 대부분의 검사 비리 문제에 단골로 따라 붙는 죄명이다.

재벌집 검사나 재벌 사위인 검사는 현재 대한민국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재벌집 법무실에는 검찰 고관 출신을 포함하여 변호사 수십 명씩 근무하고 있다. 뻔한 공무원 월급 봉투로 이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결국 이 비용을 다 브로커나 스폰서를 통해 처리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전관 출신 변호사가 후배 검사에게 용돈주고, 골프 함께 치고, 술집 데려가주는 것은 평소에 관리하는 것이다. 여차할 때 청탁이 들어가는데, 이때는 "사건 기록 좀 꼼꼼히 봐주세요"라는 문장을 사용한다.[103] 그리고 검사들이 변호사들에게 향응을 대접 받고 청탁을 받아주는 것은 다 같은 사법연수원 출신 가족이라는 생각과, 그 변호사들이 10년 뒤 자기 모습이기 때문이다.

선배 변호사들의 향응도 안 받고 청탁도 안 받다 보면 싸가지없다는 평판이 돌고, 이럴 경우 조직 화합을 헤치고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좋은 평가받기 어렵다. 그리고 승진 실패한 검사들은 변호사가 되는데, 청탁이 잘 안 통한다는 소문이 도는 전관변호사를 누가 이용하겠는가?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검사시절 청탁을 잘 안 받았다면, 이제 와서 후배 검사들에게 청탁도 쉽지 않다. 결국 현직 검사들은 10년 뒤 자기 모습을 그리면서 선배 변호사들과 향응과 청탁을 주고받게 된다.

결국 근본적으로 모든 판검사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선후배로 연결되고, 모든 판검사가 결국은 변호사를 하게 된다는 법조계의 구조가 문제로 볼 수 있다. 이 구조를 깨기 위한 방편 중 하나가 로스쿨제도와 법조일원화인데 시행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은 지켜보는 단계다.

7.5. 스폰서

정관용의 시사자키 법조계 스폰서, 예전엔 더 많았다?" 기사에 따르면,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에 처음 스폰서 검사 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104] 이후로 벤츠 여검사, 그랜저 검사, 7억 검사, 주식대박 검사(진경준 검사장)에 이어 내연녀 스폰서 검사(김형준 부장검사)까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스폰서 검사라는 단어가 2009년에 등장 했을 뿐 스폰서 문화라는 것은 수십년전부터 이미 검찰 내부에 만연했던 문화였다. 그게 노무현 정부 때 판사 출신 강금실 변호사가 여성 최초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한 번 대청소되었고, 또한 여검사들이 25%가량 차지하면서 폭탄주 회식문화가 많이 줄어들어 많이 깨끗해졌다. 일부 검사들은 예전이나 (강금실 장관 이전) 스폰서 문화가 있었지 이제는 없다 할 정도. 무엇보다 2010년 부산지검과 진주지청의 스폰서이던 정용재라는 사람이 작심하고 스폰서 검사 명단을 터트려서 PD수첩에까지 나오는 바람에 과거 스폰서 문화는 작살났다. 정용재 말로는 역대 부산지검과 사천지청 모든 검사들을 매달 용돈으로 100만원씩 주고 수시로 붕가붕가 시켜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검사들이 깨끗한 여자들이랑 하고 싶어 해서 부산 모델학원에서 모델들을 사천까지 공수해서 붕가붕가 시켜주었다고 한다. 그 대가로 누구누구를 처벌하지 말고 빼달라는 식으로 지역 민원을 해결받았다고 한다. 관심 있으면 PD 수첩이나 정용재가 쓴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에 나온다.

스폰서 문화는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 첫 번째로, 예전에 스폰서 문화가 상당했을 때는 꼭 대가를 바라지 않는 스폰서도 있었다. 예전에는 시골 유지가 돼서 옆에 있는 친구나 또는 그 마을의 어떤 사람이 검사라면 성공했다고 보고, 후원자처럼 그렇게 돈을 주는 경우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자본주의가 더 고도화되고 물질주의가 되면서 이런 유형의 스폰서들은 거의 없어졌다.
  • 두 번째가 요즘 문제되는 것으로, 대가를 기대하며 사전 투자하는 스폰서다. 주로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보험 차원에서 연줄이 닿는 검사를 스폰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검사들이 "예전이나 그랬지 요즘 스폰서문화 다 없어졌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첫 번째 유형이 검찰 전반에 만연했던 대가 없는 스폰서문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두 번째 유형 스폰서들이 일반적이 되었다. 두 번째 유형은 좀 더 음성적이며 잘나가는 일부 검사들에 한해 존재한다.

김현정의 뉴스쇼 검사는 왜 스폰서를 필요로 할까?에서는 검사들이 스폰서가 필요로 하는 이유는 다섯 가지로 보고 있다.
  • 첫 번째는 수사비가 필요해서. 2000년 이후로는 수사비 실비가 보전되기 때문에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수사비를 검사가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는 직원 월급을 검사 개인 돈으로 줬다고 한다. 90년대만 해도 수사비 없어서 검사가 경찰들을 동원 하려면 그들의 식사비를 내줘야 하고, 심지어 잡아온 사람들 식사도 검사 돈으로 제공해야 했다. 이 때문에 변호사들에게 실비(촌지)를 받는 관행이 있었는데 자세한 것은 위의 "실비(촌지) 향응" 항목으로.
  • 두 번째는 잦은 회식문화 때문이다. 고급 양식집이나 고급 중식집이나 고급 일식집이나 고급 한정식집 등에서 비싼 식사를 하고 술은 주로 유흥주점에서 비싼 양주를 마셨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위의 "술접대 향응" 항목으로.
  • 세 번째는 골프문화다. 골프는 비용도 엄청나게 들지만 무엇보다 부킹이 힘들다. 또한 4명이 치는 경기라 스폰서 개입이 쉽다. 자세한 것은 위의 "골프 향응" 항목으로.
  • 네 번째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검사로서 잘 나가기 위해서는 스폰서가 필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폰서 검사'라는 말을 가장 널리 퍼뜨린 게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문제가 된 '스폰서 검사'나 뇌물수수로 구속된 사례를 보면 이른바 잘나가는 검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부산경남지역 '스폰서 검사' 사건 때 문제가 됐던 박기준 부산지검장, 다단계 사기범인 조희팔 측 수사 무마 청탁 대가로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7년형을 확정된 김광준 전 서울고등검찰청 부장검사[105], 친구로부터 비상장 주식과 구입대금, 승용차 등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진경준 검사장, 그리고 김형준 부장검사까지 다들 잘나가는 검사였고 스폰서를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스폰서 검사'들은 검찰에서도 잘나갔고 문제가 돼서 퇴직하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잘나간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경우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검사 옷을 벗게 된 후 김앤장에서 근무하고 있고 지금도 후배검사들에게 밥도 산다고 한다. 삼성X파일에 등장하는 검사 7명도 검찰 핵심요직을 두루 거친 뒤 유명 전관변호사로서 누릴 걸 다 누렸다. 스폰서를 뒀다가 적발될 경우 불이익을 받을 뿐 아니라 퇴직 후 후배들 보기 부끄럽게 된다면 후배검사들이 스폰서 문화를 따라갈까? 검찰 고위관계자는 "스폰서 문제로 적발될 경우 엄정하게 대처했더라면 이 지경까지 왔겠느냐?"고 말했다.
  • 다섯 번째는 검사로서 일종의 선민의식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내가 검사인데 이 정도 대접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그런 생각을 갖기도 하고 또 선배들로부터 배우기도 한다고 한다. 전직 한 고검장은 '스폰서문화에 대해 "내가 잘났으니까 남들이 당연히 나를 잘 대접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또 후배들에게 비싼 밥이나 술을 사면서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대전법조비리 사건 이전에는 후배검사들에게 전별금을 주거나 출장이나 해외 연수를 갈 때 장도금 등을 줬는데 그 돈이 월급에서 충당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검사출신 한 국회의원은 "과거에 선배들이 대접받는 거 봤는데 요즘 세상 달라진 건 생각 안 하고 그대로 따라하려다 보니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폰서 검사의 가장 큰 문제는 스폰받아도 별다른 처벌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약 40여 명의 검사들이 징계를 받았는데 이 중 법적인 처벌까지 받은 사람은 딱 2명이다. 대부분 문제가 커지기 전에 자진 사퇴하거나, 보직 해임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한 일반 직장인들이야 회사 잘리면 생계가 위협받지만 검사들은 관두고 나가는 게 변호사가 되어 떼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관두고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폰서에 대한 처벌도 거의 없는 편인데, 국내 최대 스폰서는 바로 삼성 X파일 사건의 삼성이다. 검찰 핵심 요직 검사들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주는 것이 삼성 최고위 관계자의 육성파일로 밝혀졌지만 어영부영 하면서, 이 사건을 언론에 터트린 노회찬 의원만 법적 처벌받는 것으로 끝났다.

2016년 한 해에만 전대미문의 스폰서 검사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지만 지금까지 관례에 의하자면 또 어영부영 끝날 확률이 높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검찰이 고강도의 자체 개혁안을 내놓겠다고 말만 하다가 흐지부지 끝나곤 했다.

8. 검사/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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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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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정권이 막을 내리자 군부는 물론 안기부, 헌병, 보안사령부, 경찰의 힘이 급속도로 떨어 졌다. 이 공백을 타고 힘을 키운 것이 검찰이었다. 이에 사법제도 개혁이 국정운영의 주된 화두가 되자, 김영삼 정부 시절 세계화추진위원회 사법개혁 담당 소위원회, 김대중 정부 시절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가 만들어 졌다.
김대중은 취임 후 검사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행사를 하였고,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는 문장을 써주었다. 검찰들은 ‘역시 우리는 나라의 중심이야’라는 뜻으로 받아 들였지만, 실제로는 ‘검찰이 바로 서지 않았다’라는 뜻이었다. 이 문장은 아직도 대검 청사에 걸려 있다.

본격적인 검찰 개혁 신호탄은 2003년 참여 정권 때 판사 출신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부회장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함으로 시작되었다. 이로써 검찰 내부에서 강조되어온 조직순혈주의, 관료이기주의, 기수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등이 모두 깨졌다. 그러자 서열을 중시하는 검찰에서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보다 사법시험 기수로 10년 후배였다는 것도 문제 삼았다. 강금실의 연수원 동기들이 이제 부장검사 짬밥이라는 궤변과 함께 한 검사 출신 국회의원 증언에 따르면 당시 몇몇 검사들은 강금실 변호사가 법무부 장관으로 오면 함께 옷 벗자는 결의를 했다고 한다.

결국 법무부와 검찰 조직은 인사문제 등을 내걸고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게다가 강금실 장관이 서열 파괴 인사를 하자 서울지검의 평검사들이 회의를 소집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를 내세우며 검찰 인사제청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길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결국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3월 9일, 강금실 장관을 배석하고 10명의 평검사들과 TV 생중계로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시간을 마련했다. 젊은 평검사들은 취임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가장 힘이 막강한 시기의 대통령 앞인데도 당당했다.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온 강금실에게만 책상 없는 의자에 앉혀 운신 폭을 줄이고, 대통령에게는 사전에 검찰 내부망을 통해 알아낸 수사 정보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수사개입했다며 몰아세웠다. 노 대통령은 검찰 개혁에 대해 토론하려고 하였는데, 검사들은 대통령의 검찰 청탁 전화 여부만 취조하듯이 추궁했다. 한 사람과 대화가 끝나면 다음 사람이 똑같은 내용으로 추궁했다.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자 노 대통령은 웃으면서 반농담으로 그 유명한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했다. 이에 검사들은 고졸 신화를 이루었던 노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 83학번이라는 보도를 봤습니다.“라며 조롱하거나, 이런 토론 왜 하냐며 공격했다. 또한 검찰 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기라고 하고, 검찰이 오늘날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 것을 정치권 탓으로 돌렸다.

이로인해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국민적 지지를 받아 팬카페만 8개가 생겼다. 평검사들의 행태에 언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김각영 검찰총장은 그 날 저녁 사퇴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측도 토론을 통해 검찰개혁에 대해 평검사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서울지검장 서영제는 인터뷰에서 “인사제청권을 넘겨달라는 건 법에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는 3권 분립에 의해 고위공직자의 인사권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두고 왈가왈부 할 순 없습니다.”라며 부하들의 인사권 요구에 대해서는 비판했고, ‘평검사들은 TV토론을 다룬 언론보도에 불만인 모양이다. 자신들의 진의를 왜곡하고 과장했다는 것. 하지만 토론 자체에 대해선 대체로 만족해하는 분위기. 할 말을 다 했고 대통령이 직접 검사들의 얘기를 들어준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하며 검찰 내 분위기를 전했다. 당시 검사로 대검 기획과에 있던 금태섭 의원에 의하면 함께 TV로 시청하던 다른 검사들이 “야 역시 검사들이 말을 잘한다”, “잘됐다.”라고 했는데, 방송이 끝나니까 온 국민에게 욕을 먹었다고 말했다. 검사들과 일반인들의 인식에 엄청난 괴리가 있던 것이다.

검사와의 대화 다음 날 새로 임명된 송광수 검찰총장은 검찰개혁 시도 때마다 맞섰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서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움직임을 보이자 “내 목을 먼저 치라”고 하였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도 반대하였다. 강금실 장관과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과도 정면 대결을 서슴지 않았다.[106] 천정배 장관도 “송광수 검사를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은 최대 실수입니다. 검찰 개혁에 가장 저항하는 중심인물을 검찰총장에 앉혔잖아요? 인사의 최대 실패작입니다.”라고 하였다. 훗날 강금실은 적지에 혼자 보내 놓고 청와대와 여당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회고하였다. 그리고 강 장관의 자문을 위해 법무부에 정책위원회가 있었는데 이때의 위원장이 2017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었다가 낙마한 안경환 교수였고, 위원은 두 번째로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박상기 교수였다.

그럼에도 당시 정권은 정경유착 청산과 검찰 독립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 노 대통령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정치적 불간섭을 했고 대선자금을 공개했다. 강금실 장관은 대선자금 수사과정에서 철저하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수사의 독립성을 확보해 주었다.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과 검찰 사이 핫라인도 끊어졌다. 검찰 개혁에 맞서 정권과 날을 세우던 송광수 검찰총장조차 “(검찰 인사는) 청와대에서 별로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주문사항이 과거보다 적었다고 봐야죠.” 라고 할 정도였다. 이에 더 이상 청와대 눈치를 볼 필요 없는 검찰은 집권한지 1년도 안 된 대통령의 최측근들을 무더기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107]. ‘대선공신’ 서상수·정대철, ‘대통령의 왼팔’ 안희정, ‘집사’ 최도술, ‘그림자’ 여택수, ‘후견인’ 강금원·문병욱이 차례로 구속되었다(대검 중수부장 안대희). 언론은 수사 결과 여당 119억원, 야당 823억원을 받았고, 4대 기업 기준으로 여당은 30억원, 야당은 730억원을 받았다. 이에 언론들은 검찰의 정의감이 한 쪽(여당)을 상대로만 발휘 된다며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했다.(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도 이 직전에 나옴) 10분의 1이 넘든 안 넘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니 권력의 중심부를 친 것은 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당시 검찰이 ‘국민검사’라는 칭호까지 얻으며 워낙 잘하니 국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고비처’와 같이 검찰을 견제할 새로운 기관의 신설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더욱이 참여정부의 계획이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하는 것은 정치적 보복 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었다.

그나마 노무현 정권에서 이뤄낸 성과는 검사 특유의 상명하복과 상의하달 구조로 일선의 수사가 검찰지휘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진행되어 검찰권 행사가 왜곡될 소지가 있는 근본 원인인 '검사동일체 원칙'을 개정했다. 2002년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를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로 다소 뉘앙스를 바꾼 것이다.

2003년 2월에는 검찰청법 제34조 2항이 개정되어 검찰총장 후보자도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됐다. 이후 2009년 이명박 정권에서 실제로 천성관 후보자가 스폰서 문제로 탈락하기도 했다.

2004년 1월에는 검찰청법 제6조를 개정하여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검사 직급을 일원화해서 검찰총장과 검사로 구분했다. 촘촘히 짜진 관료적 위계질서를 깨기 위해서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유명무실해 지고 ‘부부장급 검사’가 생기는 등 법적 근거도 없는 직급은 오히려 늘어났다. 또한 검사 직급 일원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검찰총장을 제외한 검사 ‘단일호봉제’를 실시했는데, 2007년 2월 13일 ‘대검찰청 검사급 이상 검사의 보직 범위에 관한 규정’이 실시되어 사실상 ‘검사장’급이 부활하였다.

같은 날에 검찰청법 34조 1항을 개정하여 ‘장관은 총장의 의견을 들어 대통령에게 인사를 제청한다.’라는 조문을 만들었다. 검찰 측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2003년 말에 한나라당 의원이 다수인 국회 법사위가 통과시킨 조항인데, 이는 이후 인사이동 때마다 장관과 총장 간 다툼 의 원인이 되었다. 강금실 장관도 이 제도가 ‘실제로 검찰총장이 지속적으로 검찰의 개혁 인사에 반발과 도전을 하게 된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 외에도 같은 날 검찰인사위원회를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상시켜 검찰 인사의 공정을 제고하였으며, 검사적격심사 제도를 도입해 모든 검사는 임명 후 7년마다 검사 적격심사위원회에서 적격심사를 받도록 하였다.

공안부 폐지는 부분적인 성과가 있었는데[108], 대검 공안부 3과(학원 운동, 노동 문제 담당)를 폐지하고 서울지검과 울산지검을 제외한 전국 13개 지검의 공안과가 폐지되었다.[109] 불구속 수사 원칙이 강화되어 김영삼 정권 때의 60%, 김대중 정권의 40%의 구속기소율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바로 31.1%, 정권 말기에는 14%까지 극적으로 떨어졌다. 이에 교도소 수용자들이 1999년 최고 69,087명에서 2010년 46,457명까지 줄어들었다.

결국 ‘검경수사권 조정’이나 ‘고비처 설치’, ‘대검 중수부 폐지’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당시 의도했던 검찰의 ‘정치적 중립’ 대신, 이를 빌미로 법무부 장관의 통제마저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검찰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즉 노무현 대통령처럼 ‘검찰에 대해 정치적 개입을 안 하면 알아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지.’하는 건 오산이며, ‘검찰의 상층부 일부 정치검사만 권력지향적일 뿐, 평검사들은 내 뜻을 알아주겠지'가 아닌, '검찰의 업무 자체가 원래 정치적이다.', '검찰개혁을 하는 데 검찰의 정치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통치자가 검찰에 대한 중립성을 지켜주는 개인적인 성향에 기대기보다는, 검찰 제도와 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 정부 두 번째 장관은 2004년 7월 29일에 부산고검장과 법무부 차관을 거친 검사 출신 김승규 장관이 임명되었다. 검사 출신 답게 검찰 내부 조직 장악력이 뛰어났다. 검찰 내 이렇다 할 반발도 없었는데, 김승규 본인이 개혁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검찰과 부딪칠 일이 없었다. 한 청와대 핵심 인사는 ‘처음에 검찰을 개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강금실 장관을 보냈는데 조직을 전혀 모르고 장악을 못하더라. 그래서 검찰 출신을 보내니까 그 조직의 대표자가 되어서 저항하더라’고 훗날 토로하였다.

그 해 11월 대통령 공약이었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가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에 관한 법률로 구체화되어 국회에 제출되었다. 검찰들이야 자신들의 권한이 줄어드니 당연히 반대하였지만 일개 외청이 반대하고 말고 할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정부가)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정부에 대한 비판 기능에 제약을 가하겠다는 의도”라는 이유로 반대하여 회기 종결 후 자동 폐기되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이 포함된 관계로 여당인 열린우리당조차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2005년 1월에 법무부 감찰관실, 2005년 4월엔 외부 인사 중심의 법무부 감찰위원회를 각각 출범시켰는데, 검찰에 ‘이미 감찰부가 있는데 왜 또 만드느냐? 검찰을 장악하려 하느냐?’는 시비에 부딪쳤고 이후 정권에서 법무부 감찰관실은 검사들에게 장악되어 자리 늘려주기가 되었다.

세 번째 법무부 장관은 2005년 6월 29일, 두 번째로 비검사 출신[110]인 천정배 의원이었다. 이때는 이미 참여정부의 인기가 슬슬 식고 있어[111] 검찰개혁의 동력이 떨어질 때였고,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어 자칫 하면 정치적 보복 논란을 나을 우려가 있었다. 천정배 의원은 강금실 장관 시절 국정감사에서 검찰개혁이 부진하다고 강력하게 비난하였지만, 정작 자신은 장관을 하면서 강금실의 반 만큼도 해 놓은 게 없었다. 나중에 천정배는 ‘검찰개혁을 어떻게 혼자 하느냐, 내가 지금 당과 국회에 있으니 법률도 만들고 같이 해야지, 나한테 전화 한번 안하고 혼자서 그러고 있냐’라는 의미로 말했다고 해명했다. 강 장관 역시 훗날 인터뷰에서 “내가 그때 미숙했다. 정치 경험이 없어서 당정협조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천정배 장관의 경우 이렇다 할 개혁은 없었고, 그보다는 역대 법무부 장관들이 늘상 했고 법적으로 보장된 ‘수사지휘권 발동’(2005년 10월 12일)을 했다는 이유로 김종빈 검찰총장이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며 사퇴한 것이 가장 큰 사건이었다. 천 장관은 공안사건인 강정구 교수 사건과 관련해 법에 따라 불구속 수사 원칙이라는 수준의 지휘를 했는데도 김 총장이 반발해 항명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112]다만 당시 검사들은 ‘수사지휘권 발동’이 있을 수 없는 일[113]이라며 검찰 총장에게 “검찰조직을 위해 결단하셔야 한다.”라며 사표 쓰고 나갈 것을 요구하여 김 총장이 당혹해 하면서 사퇴하였다는 후문이 있다.

이후 정권에서 검사 출신의 법무부 장관들이 수사지휘권을 수시로 발동했지만 이에 검찰총장이 항명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2008년 임채진 검찰총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수사지휘권 발동이 일상적으로 있었다며, “강정구 교수 사건은 받아들이지 않아서 문제가 됐지만 어쨌든 문서로 수사 지휘 내려오는 게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단지 노무현 정권 때만 ‘대한민국 검찰은 주임 검사가 다 결정한다. 수사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통제나 지휘도 받아서는 안 된다.’라는 결기 어린 발언이 나온 것이다. 검사들은 강금실 장관 때는 장관의 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기라고 하고, 천정배 장관 때는 장관의 검찰 지휘·감독권을 완전히 폐지하자고 요구하는 패기를 보였다. 왜냐면 자신들은 준사법기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행정기관이고 법무부 장관으로 대표되는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천 장관은 당시 정권 기조인 ‘과거사 정리’에 따라 검찰의 과거사 정리도 시도하였다. 사법부도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취임사를 통해 “우리는 사법부가 행한 법의 선언에 오류가 없었는지, 외부의 영향으로 정의가 왜곡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며 잘못된 과거사 정리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실제로도 사법부는 과거사위원회에서 진상이 규명된 사건을 재심을 통해 과거사를 정리하였다. 경찰도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과거 상당수 시국·공안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돼왔던 국가기관 개입 및 조작 의혹에 대해 자발적으로 조사하고 인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과거사 정리를 거부하였다. 천정배 장관이 검찰 과거사 청산 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음에도 검찰은 끝까지 외면했다. 당시 검찰의 속내는 자신들은 잘못된 수사와 기소를 한 적이 없다는 ‘무오류의 신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경우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대통령 앞에서 두 사람이 자기들이 잘 조정해서 하겠다고 약속했고, 대통령은 이 말을 믿었다. 두 기관은 ‘검경수사권조정협의체’와 ‘검경수사권조정자문위원회’를 구성했지만 합의에 실패하였다. 경찰은 수사권 조정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사권 독립’을 이루려고 했지만 이를 검찰이 합의해줄 리가 없었다. 검찰은 ‘경찰 자질론’을 내세우며 경찰은 아직 수사권을 넘겨받을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하였다.

결국 노무현 정권 때 검찰 개혁과제였던 ‘검찰 정치적 중립(검찰수사의 독립성 확보)’과 ‘검찰 민주화’는 의도는 좋았다.[114] 그러나 그 결과가 검찰 좋은 일만 시켜준 것이고, 정권이 바뀌자 검찰 독립성과 민주화는 끝이 났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통해 “검찰개혁을 완수하지는 못했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도, 검경수사권 조정도 이루지 못했다. 법무부 개혁도 충분하지 않았고 과거사 정리도 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검찰공화국』에서는 민주파가 집권하던 10년 동안 검찰개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평했다.

이러한 원인을 살펴보자면 당시 정권 초반 여당이 소수파여서 제도 개혁을 위한 법안 밀어붙이기 힘들었고, 정권 후반 검찰 개혁안은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비판적이어서 개혁 동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정권에서는 ‘고비처’나 ‘검경수사권조정’은 결국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방법이기 때문에, 정권 차원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올 줄 알았다. 검찰은 원래 선한 존재이며, 정치인들이 악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니, 정치적 중립만 보장 해준다면 선한 검찰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권의 착각이었다.

이명박 정권에서도 국회에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위원장 이주영)가 꾸려져 ‘대검 중수부 폐지’, ‘특별수사청 설치’, ‘법원 상고심 개편’, ‘양형기준법 개선안’, ‘검경수사권조정’등이 논의 되었다. 그러나 검찰의 힘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보다 강했다.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해 일괄 사표라는 극단적인 방식도 불사했다. 실제로 2011년 7월 이완규 부장검사 같은 사람은 검경 수사권조정 논의에 사직원을 내고, 검찰총장도 ‘직을 걸라’라고 일갈하였다.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바로 이때 검경수사권 조정 논의의 검찰 쪽 파트너였다가 사의를 표시하고 떠났다. 이후 4명의 검사장급 검사들이 추가로 사의를 표명하고 떠났다. 결국 김준규 검찰총장마저 검찰 간부들의 집단행동에 떠밀려 사퇴를 표시하였다. 또한 검찰 출신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이 아닌 전직검사로서 철저히 검찰 뜻에 따라 움직였다.

그나마 성과는 제18대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대검 중수부 폐지를 결정 한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잉수사 및 자살로 인해 대검 중수부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빗발쳤으며, 중수부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들도 들어가기 때문에 여야 국회의원들의 의견 일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도 검찰 개혁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권의 여러 가지 법무부 개혁 방안은 무시되었고, 법무부 문민화를 위한 개방형 직위는 모두 검사들 차지가 되었다. 역대 정부가 요구한대로 검찰 스스로의 개혁은 없었다. 그나마 가끔 검찰 비리가 터지면 과거 누구도 문제제기를 못했던 어두운 관행이 눈 녹듯이 없어지곤 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민간인 ‘대한변호사협회’가 2015년 10월 검사평가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 한 적이 있었는데, 검찰 반발이 워낙 대단해서 변협측도 비공개로 평가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하는 등 흐지부지해졌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 일환으로 검찰 개혁 목소리가 컸다. 일단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문 대통령 지지도 81.6%…적폐청산·개혁 “가장 인상적”이라며 문 대통령과 적폐청산에 대해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적폐청산의 우선순위에 대해 리얼미터에서는 문대통령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개혁 과제 1위로 검찰개혁을 꼽았고, 같은 시기에 조사 된 리치앤리서치에서도 국민 34.9% “검찰-경찰 개혁이 가장 시급해”, 한국리서치 60살 이상 뺀 모든 연령대서 “검찰개혁” 가장 높았다. 또한 문재인은 이미 2011년 저서에서 “다음에 들어설 민주정권은 첫 번째 개혁 작업으로 검찰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계속 제기되는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진전되어야 한다.”며 검찰 개혁이 최우선과제임을 밝혔다. 이는 2016년 하반기에 터진 홍만표, 진경준 두 전현직 검사장과 김형준 부장검사의 법조비리, 박근혜 정부 시기의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 및 국정농단 협조, 검찰 내의 우병우 사단 의혹 등으로 인해 검찰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었기 때문에 전국민적으로 검찰개혁을 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생겼고 정권이 이를 추진할 동력이 생긴 것이다.

문 정권이 내세우는 검찰 개혁과제는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이다. 과거 노무현 정권 때 주장했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쏙 빠진 것이 의미심장하다.

검찰 개혁을 위해 법무부 장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출신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명됐었는데 허위 혼인 신고(...) 등으로 인해 낙마하였다. 이어 두 번째 지명자로 박상기 연세대 교수가 선택되었다. 박 교수는 지명일성으로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정책 과제중 하나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 개혁과 법무부의 탈(脫)검찰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안경환보다 강성 학자 박상기, 검찰 개혁을 떠맡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여 사상 3번째 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한편 검찰총장은 호남 출신 문무일 부산고검장이 되었다. 그는 2017년 8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시국 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 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라며 참여정부 때 홀로 거부했던 ‘검’ 창설 69년 만에 첫 사과를 하였다. 이에 같은 날 세계일보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검찰이 대한민국 검찰 사전에는 없는 사과를 처음 했다. 검찰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다.”라고 평했다.

이어 문무일 검찰총장은 형사부 위상 높이고 특별수사 줄이기로 라며 검찰 조직 개편 방향을 밝혔으며, 미니 중수부라 불린 부패범죄수사단 축소도 언급하였다. 여기에 외부인사로 구성되는 ‘검찰개혁위원회’와 자체적으로 차장급 검사가 이끄는 ‘검찰개혁추진단’(차장검사급 단장 포함 검사 5명으로 구성)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8월 9일 법무부에서 ‘법무·검찰개혁위원회’를 출범하여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고, 총 17명의 민간인으로 구성했다. 주의할 점은 전날 문무일 총장이 말한 ‘검찰개혁위원회’와는 별개의 조직이다. 이 때문에 전날 문무일 총장이 셀프 개혁안을 발표하게 됐는데, '박상기 법무 장관이 이를 무시한 것이 아니냐’, 또는 ‘법무부와 검찰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경찰 측에서도 지난 7월에 수사권조정 문제를 위해 사전 정지작업으로 민간인으로 구성되는 ‘경찰개혁위원회’를 만든 바가 있다. 단, 법무부 측에서는 수사권조정 문제는 별도 논의기구를 만든다고 밝혔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한인섭 위원장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낙마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함께 참여정부 시절 사법개혁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특이한 점으로는 전직 검사로 2008년 서울 중앙지검 형사2부장으로 재직 중 PD 수첩 제작진 기소를 놓고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다 옷을 벗은 임수빈 변호사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아래 관련 도서에 <검사는 문관이다>를 지은 그 사람이다. 참고로 이 책은 원래 동명의 논문이었는데 해당 지도 교수가 바로 한인섭 위원장이었다.

9월 18일에는 법무검찰 개혁위원회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권고안’이 발표되었다. 고위공직자들과 판검사들의 비위 사건을 전담하는 안으로 처장과 차장 아래 최대 검사 50명, 수사관 70명으로 구성되는 조직이다.

같은 달 19일자로 검찰 자체 개혁 추진을 위한 검찰개혁위원회가 출범했다. 법무부의 개혁위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범이 늦어진 이유는, 그동안 검찰에서도 몇 번 개혁위원회가 있었지만 계속 보여주기 식이라 이번에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외부위원들이 계속 고사하여 구성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민변 회장 출신 변호사인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외부위원 15명에 내부 위원 2명 등 총 18명으로 구성되었다. 위원장을 포함 8명이 변호사이며 그중에서 2명은 검사 출신이다(김종민 순천지청장, 박준양 전 검사). 역대 정권 검찰개혁위원회를 보면 듣도 보도 못한 시민단체 출신이나, 평소 검찰을 옹호하던 법대 교수, 직전까지 검찰 근무하다가 옷 벗고 나온 변호사로 채웠던 것에 비하면 이번에는 확실히 내실 있는 위원들로 채워졌다. 내부위원으로는 우병우의 동기이자 라이벌인 봉욱 대검 차장검사와 차경환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일단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법무부 개혁위에서, 입법이 필요 없는 부분은 검찰 자체 개혁위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을 단행한 결과는 오히려 내로남불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당장 문재인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연관된 사안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던 시점에서 검찰개혁을 논하면서 조직을 축소하니 오히려 당위성을 잃어버리고 김오수, 이성윤, 김관정, 이정수 같이 정권에 빌붙어서 편파적인 수사를 하는 검사들이 핵심요직에 중용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검찰개혁에 대한 의구심으로 표출되었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새 대통령에 당선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만다.

10. 관련 서적

대부분의 책들이 MB 정부 초기(2010년, 2011)에 나왔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이 참여정부 시절 검찰 개혁 필요성에 대해 못 느끼다가, MB 정부가 들어서자 급속히 검찰 문제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저자 김두식. 창비. 2009.05.15
판검사들의 스폰서 문화, 술자리 문화, 촌지 문화에 대해서 인터뷰를 통해 계량적인 접근을 하였다. 이러한 문화에 대해 판검사들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물론, 브로커, 기자, 경찰 등 밖에서 판검사와 접하면서 보고 느낀 것, 심지어 마담뚜와 인터뷰하여 사법연수원생들을 어떻게 준재벌들과 연결해주는지 다양한 시각에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밝혀 놓았다.
이 문서에서 ‘비판’ 항목의 ‘실비(촌지)’ 관행, ‘골프 향응’ 항목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노무현은 왜 검찰은 왜: 박연차 게이트와 법조 출입기자의 188일』
저자 박희준 이우승 정재영 김정필 김태훈. 글로벌콘텐츠. 2010.04.20

● 『법원과 검찰의 탄생: 사법의 역사로 읽는 대한민국』
저자 문준영. 역사비평사. 2010.05.19
문준영 교수는 한국법사학자인데, 저 책은 대한민국의 법사학 저작 중에서도 기념비적인 역작으로 꼽힌다.

● 『대한민국 검찰을 말하다1, 2』
저자 조성식. 나남. 2010.04.19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조성식 신동아 기자의 작품. 출판 시기는 이명박 정권 초기이며 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일을 다루고 있다. 2권으로 구성되어 있어 1권은 검찰 전반을 다루고, 2권은 당시의 사건들과 검찰출신 고위직들을 인터뷰를 실어 놓았다(신동아 인터뷰 모음). 대표적으로 강금실 장관과의 인터뷰가 당시 신동아에 실렸을 때 대단한 화제를 불라왔다. 작가는 대표적인 보수지 기자이지만 검찰의 현 실태에 대해 문제 인식을 갖고 있어 직접 비판 대신 슬쩍 돌려 질문한다. 예를 들어 검찰 고위직에게 ‘왜 열린우리당의 대선 자금만 수사 하느냐?’ 또는 ‘노무현 정권 때 법무부 장관 수사권 발동을 하니 길길이 날뛰면서 이명박 정권 때는 왜 가만히 있느냐?’, ‘노 정권의 목표였던 ‘검찰의 독립성’이 이명박 정권 때 무너진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내용이 행간에 숨어 있다.[115] 그 외도 강금실 장관의 개혁 카운트 파트너였던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이나, 대선자금 수사책임자인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등 중요한 인터뷰가 많이 실려 있어, 다른 책에서도 많이 인용된다.

●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저자 김희수, 서보학, 오창익, 하태훈. 삼인. 2011.02.25.
실무가(김희수 전 검사), 운동가(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형사법학자(서보학 경희대 교수, 하태훈 고려대 교수)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4명이 쓴 검찰의 현실과 개혁 방안을 다룬 책이다.
이 문서의 ‘법무부의 검찰화’ 항목은 이 책을 인용하였다.

●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 견검에서 떡검 그리고 섹검까지 대한민국 검찰, 굴욕의 빅뱅』
저자 정용재, 정희상, 구영식. 책보세. 2011.04.15.
2010년 4월 중순, PD수첩에서 ‘검사와 스폰서’ 편이 방송되어 그 유명한 ‘부산지검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졌다. 스폰서인 정용재가 다른 죄로 구속되자 검사들이 아무도 안 도와주자 화가 나서 작심 폭로한 것. 그러나 사건 관련하여 처벌 받은 검사는 없었다. 이후 스폰서 정용재가 감옥에서 구술하고 PD수첩의 기자 정희상과 구영식이 편집하여 이 책이 나오게 된다.
책에는 부산지검과 부산고검, 사천지청의 40여 명의 검사들 실명이 나오며, 검사들이 떡값을 받고 룸살롱에서 붕가붕가한 이야기들이 거의 책의 처음과 끝까지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정작 정용재가 위태로울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원망이 가득 차 있다. 그동안 떡값과 룸살롱 접대를 모두 거부한 검사는 딱 한 명뿐인데, 오직 그 검사만 자신에게 위로 전화를 해왔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 『위험한 권력』
저자 최재천. 유리창. 2011.11.15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활동 중인 전 국회의원 최재천이 현 실태와 사법개혁 열망을 다룬 책이다. 다만 검찰을 다룬 초반 이후에는 현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을 단편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저자 문재인, 김인회. 오월의봄. 2011.11.23.
참여정부 시절 검찰개혁 시도에 관한 속사정과 그 실패 과정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문서의 ‘검찰 개혁의 길’은 이 책을 인용하였다.

● 『검사님의 속사정 : 대한민국 검찰은 왜 이상한 기소를 일삼는가』
저자 이순혁. 씨네21북스. 2011.12.12
한겨레 기자 이순혁의 검사 그 자체를 다룬 책. 검사들의 술문화에서부터 왜 이렇게 권력을 지향하는 지가 잘 나와 있다. 특히 검사들의 승진체계와 인사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어 본 문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다만 책이 2011년에 나와 검사장 직급 축소가 되기 전이고, 2012년의 대규모 인사적체 문제가 터지기 전이라 현 체제와는 꽤 차이가 있다.
또한 2:8론을 내세우며 80%의 형사부 검사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20%의 법무부/대검/서울중앙지검에서 일하는 일부 정치 검사들이 전체를 욕 먹이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 그래서 언론 등에서 정치검사를 비난하면 80%의 열심히 일하는 형사부 검사들을 방패로 내세운다는 것.

● 『분노하라, 정치검찰 :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정치검찰의 행태를 고발한다』
저자 이재화. 이학사. 2012.02.29
변호사 이재화가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정치검찰의 행태를 고발한다’며 7가지 사건을 다루었다. ‘정봉주 의원의 BBK 사건’, ‘곽노현 교육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김현미 의원의 뇌물 수수 사건’, ‘한명숙 전 총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이강철 전 수석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염동연 의원의 제이유그룹 로비사건’, ‘이부영 의원의 허위사실공표 사건’등 7가지인데 이는 ‘정치검찰’의 행태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

● 『젊은 변호사의 고백 : 그들은 어떻게 최고 권력을 위해 일하는가?』
저자 김남희. 다실북스. 2013.01.14

● 『어느 칼잡이 이야기』
저자 홍경령. 나남출판. 2016.03.05.
“대한민국 검찰청을 뒤흔들었던 전설적인 조폭 전담검사 홍경령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하는데, 서울지방검찰청의 전설적인 고문치사 사건의 그 검사가 맞다. 홍경령 검사가 고문치사를 저지른 사건이 터지고서 장관, 총장, 검사장, 차장, 부장이 모두 날아갔다는 후문.

● 『검사는 문관이다』
저자 임수빈. 스리체어스. 2017.05.22
저자인 임수빈 변호사는 2008년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수첩 사건의 주임검사였다. 당시 PD들의 무혐의를 주장하다가 검찰 지휘부에게 밉보여 검찰을 떠났다.[116]
책 내용을 보자면 서문에서 거시적 문제 대신 미시적 문제만 다루겠다고 밝혀 놓았다. 이때 문에 주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나 ‘별건 수사’, ‘피의자 조사 절차의 명문화’, ‘검찰시민위원회 제도의 법제화 필요성’등 지엽적인 문제에서 개선을 촉구하였다.

● 『권력과 검찰: 괴물의 탄생과 진화』
저자 최강욱. 창비. 2017.6.2.
상술했듯이, 군법무관 출신 최강욱 변호사가 오랫동안 검찰과 가까운 곳에서, 혹은 검찰조직 안에서 일해온 전문가들과 만나서 대담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 『누구를 위한 검사인가』
저자 서영제 [117]. 채륜서. 2015.12.10

● 『검사내전』
저자 김웅[118]
부제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11. 창작물 속 검사

한국 창작물에서 가장 흔히 등장하는 직업 중 하나로 의사와 더불어 엄친아 캐릭터나 높으신 분들을 꾸며주는 악세서리처럼 쓰이는 직업이다. 그런 만큼 작가가 검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그냥 '만만한게 검사구나' 싶을 정도로 남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회적인 영향력이 크고 '정의'를 실제로 구현하는 직업인만큼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윗 문단에서도 언급된 한국 사회에서의 특수성 덕분에 유난히 자주 쓰인다. 이런 검사 역할의 캐릭터들이 "내가 대한민국 검사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하나의 클리셰가 되었을 정도.

하지만 위에서 소개했듯 검사에 대한 비판이 워낙 크기 때문인지 안 좋은 역할로 나오는 경우도 상당수인데, 한국 TV, 드라마, 영화 등에서는 시험 전까지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 해준 배우자나 애인을 사법시험에 붙자마자 수준에 안 맞는다며 쉽게 차버리는 모습도 그려진다. 더군다나 돈과 권력이 매우 막강한 집안에서 검사들을 스폰서해주면서 키워서 나중에 자기편으로 써먹기도 하는 경우 이건 현실에도 있다 위쪽 항목을 다시 보자 등 그런 예는 상당히 많다. 특히 정치와 권력의 암투가 그려지는 드라마에선 경륜있는 검사, 혹은 검사 출신의 공직자가 분명한 한 축을 담당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특히 그 중에서도 공안검사에 대한 취급은 시궁창. 독재정권 시절에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해서(부림사건, 김제 가족 고정 간첩단 사건 등) 인생 말아먹은 쓰레기 같은 공안검사들의 사례도 실제로 수두룩했고, 독재정권 이후로도 공안검사 출신이라는 인간들 상태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다 보니, 검사가 종종 안 좋은 역할로 등장하는 한국 창작물 내에서도 특히나 공안검사(혹은 공안검사 출신 캐릭터)는 십중팔구 쓰레기로 등장(...). 드라마에서는 이태준이나 이명득이 좋은 예시이며, 공안검사에 대한 취급이 아주 나락까지 떨어진 극단적인 사례로써 소설 이것이 법이다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공안부에서 간첩사건 조작할 때 죄없는 사람들 열심히 고문하면서 변태성욕에 눈을 뜨는 바람에 여성들 살해하면서 스너프 필름이나 찍는 변태 엽기살인마가 된 공안검사(!!!)까지 빌런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래 목록에서 보이듯 검사가 창작물에 출연할 경우 부당한 권력이나 범죄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그리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많은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 직업이 검사다. 검사 역할을 수행하며, 수사와 추리, 법정에서의 논박 등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남주인공의 똑똑함을 부각함은 물론, 강력범죄 수사 중 이를 방해하는 무뢰배 등을 멋지게 제압하는 모습을 그려내 남주인공이 문무를 겸비한 멋쟁이임을 어필하기가 매우 쉬운 직업. 또 이런 활약상을 그리는 데 상대적으로 권력이 강하고, 혼자 움직일 때, 경찰 등의 기관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있기에 때문에 검사 역할은 그야말로 남자 주인공의 화려한 능력을 보여주기엔 아주 적합한 직업.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 창작물들에서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것은 영화 《부당거래》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일 것이다. 이를 통해 보통 검사를 '정의'의 구현자라기보다는, 자기 멋대로 남들은 조질 수 있고, 상급자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그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고 욕을 마음껏 퍼부어 줄 수 있는 현대사회의 왕으로 인식하고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혹은 반대로 검사 출신 정치인들의 갖가지 논란과 비판 요소때문에 실제 검사에 대한 이미지가 수직으로 하락하면서, 공안검사가 아닌 일반 검사들까지 대놓고 악역으로 그려내는 경우도 날로 늘고 있다. 가령, 드라마 빈센조에서는 검사가 주인공인 빈센조 까사노의 조력자 행세를 하다가 중간에 배신을 하는 것으로 나오며[119],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검사라는 작자가 주인공 우영우자폐성 장애를 대놓고 조롱하는 것으로 나온다. 21세기 들어서도 검사들의 부정부패가 많고, 그 반동으로 변호사들이 선역으로 등장하여 악역인 검사와 대적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120].

상술된 작품들과, 《펀치(드라마)》 혹은 검사 강철중의 모습 때문인지, 검사는 조사할 때 소리치고 화낼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직 검사에 따르면 그런 검사는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121] 실제로는 조곤조곤하게 물어보면 알아서 대답을 다 한다고 하더라. 일단 이 증언을 한 검사의 포스가 남달랐다. 조용한데 눈빛이 살아있어서 정말 무서웠다. 제일 실력 있는 검사는 말하지 않아도 다 말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검사 미화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무술 고수 수준의 검사들이 조폭이나 마약조직과 자기가 직접 몸으로 맞서 싸우는 장면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사실상 한국에 조폭과 주먹질, 총질을 해서 잡는 그런 검사는 없다. 우연히 근무와 무관한 장소에서 범죄자를 봐서 잡은 검사는 있을지도 모르나, 검거계획을 자신이 직접 나서서 잡는 식으로 하는 검사는 없다는 말이다. 범인, 특히 강력범을 범죄 현장에서 직접 잡는 것은 원칙적으로 경찰 몫이고, 검찰이 하는 경우는 특별한 경우[122]인데 이때도 검사가 아니라 검찰 소속 수사관이 소수의 경찰들과 함께 나서지, 검사가 직접 몸싸움하는 일은 없다. 강력범 담당하는 검사에게 소속된 수사관들 중 형사들과 동급이나 그 이상의 신체 능력을 가진 무술 유단자가[123] 꽤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식으로 검거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애초에 검사란 직업군은 현역검사 숫자와 숙련시간이 말하듯 대체성이 낮으며, 업무에서 다른 직업보다 더 두뇌의 이용 비중이 크다. 그런 사람이 몸 쓰려다가 큰 부상이라도 당하면 일시적으로 수많은 사건 수사가 도미노 효과로 인해 개판이 되므로, 검사가 아무리 사적으로 무술을 익힌 고수라 해도 직접 폭력적 상황에 몸을 쓰게 하는 것을 검찰조직적으로 지향할 수 없다. 검사가 검거계획이랍시고 직접 범죄자와 맞짱을 뜨러 가야할 정도의 검찰조직상태라면 경찰과의 연계도 엉망에 몸을 쓸 수사관도 제대로 없다는 뜻이니 국가 치안행정, 나아가 국가 자체가 개막장에 이르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으로 치면 FBI 요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어찌 됐건 드라마나 영화에선 악역이건 선역이건 간에 엘리트에 문무겸비 이미지가 강하며 외모도 출중한 경우가 많다. 그 덕에 검사들은 현실과 드라마의 괴리를 유독 심하게 느끼는 직업이라고 평하기도. 반대로 드라마의 여자검사는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검사 프린세스》나 《가문의 위기》 정도. 이 때문에 영상매체에서 직업의 성별 스테레오타입이 가장 심한 직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새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더 킹》이나 《노리개》에서는 나름 분위기가 바뀐, 주도적인 검사캐릭터가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더킹의 주인공 조인성 역할의 설정은 고2때까지 허구헌날 싸움질을 하던 학교짱 불량학생이었는데, 고3때 갑자기 시끄럽고 산만한 곳에서 공부에 집중을 잘 하게 되는 괴이한 현상을 겪어 산만한 곳에서 공부를 시작해 갑자기 전교 1등을 1년간 하고, 서울대학교를 들어가 검사까지 되는 내용이다. 심지어 90년대에 군대를 갔는데 시끄럽고 엉망인 소속 내무반 생활이 더 공부성향에 잘 맞아 사법시험 공부를 집중적으로 한다.

검사를 지칭하는 단어로 '영감님'이 대표적이나 최근 영화에서 나오는 속칭 '프로'도 있는데 여기서 프로는 기본적으로 'professional'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prosecutor', 즉 영어로 검사를 뜻하는 프로시큐터의 프로를 따온 것이다. 물론 '프로페셔널한 검사다'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어서 살짝 비하가 섞인 '영감님' 과는 달리 긍정적 의미를 가진 별칭으로 그 검사와 친한 사람들[124]이 쓰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옛말이고 요즘 젊은 검사들은 김 프로, 이 프로라고 부르면 오글거려서 싫다고 한다.

11.1. 검사가 나오는 작품


12. 관련 문서



[1]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이라 선비 사(士)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 사(事)가 맞다. 판사(判)도 마찬가지. 가끔씩 언론에서는 검사(檢事)를 검사(劍士)에 빗대어 칼잡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검사들 사이에서도 칼잡이, 검객 등의 호칭을 자주 쓴다. 참고로 다른 법조인인 법무사나 변호사는 선비 사(士)를 쓴다.[2] 줄여서 Public Prosecutor[3] 공소판단을 위한 일체의 과정(=수사)를 포함한다.[4] 이는 원님 재판과 완전히 동일한 개념이다. 그만큼 영미법 체계가 대륙법보다 오래된 법률 체계인 것이다. 대륙법은 물론 로마법에 기반하므로 기원만 보면 영미법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나, 법률 체계에서 가장 큰 일거리인 재판에 관해서는 실질적으로 영미법이 훨씬 더 역사가 싶다. 이는 곧, 영국이 대륙권 유럽에 비해 고소미 배틀(...)이 훨씬 잦아서 고대 그리스 마냥 법조인이 발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륙법 중에서 상당부분이 영미법에서 주체만 바꾼 것인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 때문에 단순히 원론적인 이야기를 논한다면 영미법 용어를 기준으로 보는게 훨씬 더 정밀하지만, 실제 법리로 가면 또 전혀 딴판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따로 공부해야만 한다. 괜히 법조인이 문과 최종 테크로 취급되는게 아니다.[5] Pro Bono가 모든 법조인의 기본 덕목이지만, 유독 영미법 국가들에서 더욱 강조되는 것은 다 이런 배경 때문이다. 예전에는 아주 특출나게 잘 배우고 높으신 분, 곧 법조인 나서서 돕지 않는다면 공익 유지가 불가능했다.[6] 단, 권력분립을 따라 판단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관리하는 별도 기관인 법원을 두어 질서 집행에 관한 판담을 일임한다. 그러므로 직권주의가 적용된다.[7] 종전에는 모든 범죄를 수사할 수 있었으나,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2021년부터 수사권이 제한되었다.[8] 검수완박으로 인하여 부패범죄, 경제범죄로 한정됨[9] 검수완박으로 공수처 소속 직원까지 포함[10] 구 검찰청법(2020. 12. 8. 법률 제1756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서는 "...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라고만 하였다.[11] 2021년 1월 28일, 헌법재판소헌법이 규정한 "영장신청권자로서의 검사"를 "검찰청법상 검사"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2020헌마264)#. 이 판시는 사실 검찰청 소속이 아닌 공수처의 수사처검사들이 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으로서 헌법에서의 "검사"가 단순히 검찰청법상 검사만을 특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 예로 군검사특별검사 등이 더 있다.[12] 법무부는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 소속이다. 이탈리아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경우 법무부나 검사조직은 행정부 소속이다.[13] 사법체계의 기둥을 이루는 법관, 검사, 변호사는 각 법에서 그들의 역할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먼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다(검찰청법 제4조). 변호사는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변호사법 제1조). 그리고 법관은 이들의 주장을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대한민국 헌법 제103조) 이러한 법조의 3축을 법조삼륜이라 말한다[14] 가사소송 중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 사건에서 그 적법한 상대방이 없는 때에는 검사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15] 물론 불기소처분의 적법성을 다투는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번거롭다.[16] 떡검이나 섹검 같은 검사 관련 비리가 일어나기라도 하면 경찰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수사권 내놓으라고 물고 늘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검찰은 이런 경우에도 수사권을 내놓기는 싫다는 태도지만, 그렇다고 경찰이라고 쉽게 물러서랴?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검사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17] 유죄이긴 하지만 경범죄 등은 기소유예벌금형 등의 처분은 한다.[18] 징역 등으로 교도소에 집어넣어야 할 정도[19] 이 점은 일본은 한국보다 더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기소가 되었는데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라면, 일본에서는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을 정도.[20]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한다고 보면 된다. 합법이건 불법이건. 과거에는 대한민국 헌법이 절대 금지하는 고문까지 동원했다.[21]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내렸을 경우 고소인, 그리고 일부 범죄의 고발인이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한 뒤 이유 있다고 판단되면 강제로 기소하게 하는 것. 원래 일부 범죄에만 인정되었으나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고소인 한정 모든 범죄에 확대 적용되었다.[22] 형사소송법 제222조에서 변사체 검시는 원칙적으로 검사가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조문에서 사법경찰관에게 일임할 수 있도록 해뒀는데, 그 탓에 대부분의 변사체 검시는 사법경찰관이 한다.[23] 사법연수원생도 국과수부검을 하러 갈 수 있는데, 고려대 법대 모 교수는 그 날 밥을 잘 못 먹었다고 한다.[24]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수산업법'과 '수산자원관리법'에 근거하여 제정된 해양수산부고시)가, 경찰관이 불법포획 또는 불법포획의 의심이 있는 고래류를 발견한 경우에는 검사의 지휘를 받아 사건을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25] 보통 대공사건을 수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선거, 노동 사건들도 수사한다. 이때만 해도 야당의 선거관련 수사나 노조파업 진압같은 사건들은 높으신 분들이 무조건 운동권과 엮어서 마녀사냥하는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공안이 관리했던 것.[26] 검찰국장도 공안통, 특수통 출신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27] 중수부장도 과거에는 공안통이 맡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최명부, 송종의, 최병국, 안강민 등이 공안통 출신 중수부장이었다. 중수부장의 전신인 특별수사부장의 경우에도 한옥신이 특별수사부장을 맡았던 전력이 있다.[28] 1차장은 형사부 수사 지휘를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29]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본래 이 사람은 정통 공안통 출신은 아니었던 듯하다. 본래는 기획통 검사였다.[30] 그 이후 부산지검장은 배성범 대검 강력부장이 대행하다가 2018년 1월에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사법연수원 1기수 선배이자 특수통 출신인 김영대 창원지검장이 부산지검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또다시 5개월 만인 2018년 6월에 부산지검장이 교체되는데 특수통이면서도 BBK 수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무혐의를 준 사람이자 한명숙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의 2차 수사를 전담하기도 했던 사람, 다름 아닌 우병우 사단의 핵심인물이자 박근혜 정부 때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을 했던 김기동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새 부산지검장으로 온 것이었다.[31] 공안 라인이 앉는 자리에 기획통이 앉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나, 특수통 검사가 대검 공안부장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32] 2020년 1월에는 의정부지검, 서울남부지검, 창원지검, 울산지검의 공공수사부가 폐지되었고 2020년 8월에는 거점 지방검찰청이라고 불리는 대구지검, 대전지검, 광주지검, 인천지검의 공공수사부도 폐지되었다.[33] 반부패수사부 총괄 차장은 기존 3차장에서 4차장으로 이동했고, 기존에 공공수사부 수사를 총괄하던 2차장은 말석 형사부들과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등의 수사 지휘를 맡는 것으로 변경되었다.[34] 기획통에 해당하는 대검 기획조정부장, 특수통에 해당하는 대검 반부패부장을 역임하는 등 대검 근무만 9차례 하여 안해본 일이 없다. 그래도 주력은 ‘공안통’[35] 최초의 여성차장검사, 여성지청장, 여성검사장이자 여성지검장. 일종의 상징성 때문에 연수원 19기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선두주자인 김진모보다 1년이 늦었으니.[36] 과거에도 형사부 쪽을 관할했으나 노무현 정부 당시에 직제 개편이 된 이후 공안부 쪽을 관할하다가 문재인 정부 때 다시 말석 형사부들을 관할하게 되었다.[37] 현재 반부패수사부(구 특수부)를 관할하고 있다.[38] 이를 썰전에서 전원책 변호사가 말하길 수임료 = 의뢰인의 재력×형사처벌을 두려워하는 정도라고 말했다.[39]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주 80시간~100시간 수준의 비인간적인 노동을 불만 없이 견디는 것도 이 '일 잘한다는 평가' 항목에 들어간다.[40] 조희진 지검장은 19기 선두주자인 김진모보다 1년 늦게, 후일 가장 높은 직위까지 올라가는 봉욱보다는 8개월 늦게 검사장이 되었고 2013년 12월 김진태 총장 취임과 함께 진행된 인사에서 연수원 19기에서 마지막이자 유일하게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검사장 승진자 7명 중에서 6명이 후배인 20기였을 정도.[41] 이영주 지검장은 연수원 22기로 문무일 검찰총장 취임과 함께 진행된 2017년 5월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22기 선두주자 7명은 2015년 12월 김수남 검찰총장 취임과 함께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관례대로라면 김수남 총장 1년차 때에 검사장급 인사가 한 번 더 있었어야 하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검찰인사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다음 검사장 승진은 1년 반만인 2017년 5월에 이뤄졌으며 이영주 차장검사를 포함하여 3명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42] 38대 김준규 검찰총장이 드물게 공안/특수통이 아니다. 그렇다고 땅개는 아니고... 굳이 분류하자면 법무부 국제협력과에서 오래 근무했으니 국제통?[43] 물론 특수, 공안통들 역시 땅개보다 일을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는다. 근무지에 상관없이 모든 검사들은 살인적인 업무량에 시달린다. 그저 승진하느냐 아니면 승진도 못하느냐가 문제일 뿐.[44] 피의자를 보면 한 번도 검사를 만나본 적 없는 일반인들이 가진 이미지는 대부분 그렇다. 대놓고 "당신 같은 부패한 검사에게 수사받기 싫다"고 버티는 사람부터(물론 절대 이러지 말자. 검사도 사람이니 이렇게 나오는 사람은 아무리 사람 좋은 검사라도 당연히...), 아무 말 없이 겁먹어서 있는 사람까지 같은 이미지를 가진 경우가 많다.[45] 그 다음 대통령도 경상도 출신인 김영삼이었으니 이 기간까지 더하면 약 35년 가량 인사권 독점이 발생했으므로 지연으로는 영남을 당할 지역이 없고, 마음에 안 드는 지역 출신은 찍힌 지역의 씨를 말리는 인사 불이익 주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46] 한양대 출신이 마이너가 되는 게 검찰이다.[47] 70%라고 적혀 있을 때도 있지만 그건 90년대까지 그런 것이고, 2021년 10월 30일 기준 2,247명의 검사 중 768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고려대는 423명으로 약 18.8%, 연세대는 292명으로 약 13% 이다. 다만 검사장급 고위직은 예전의 압도적 다수가 서울대이던 시절의 흔적이 남아서 지금도 그 정도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48] 여담이지만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서울대 출신 모임에서 까칠하게 굴어 동문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싸가지 없는 놈"으로 찍혀있었다. 나이 많은 복학생 형님 중 한 명이 서울대 사시 동기회 회장을 맡는 것이 일반적인데, 동문회에서 우병우에게 술 한 잔 받으라고 하면, 회장과 사시 동기이기는 하지만 학생 시절 소년급제하여 기수 차이가 엄청난 우병우가 “당신 나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라고 하여 전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단적인 예겠지만, 우병우는 서울대 동문회에 인맥질을 해봐야 그다지 얻을 것이 없다고 봤을 가능성이 있다.[49] 이 고려대 출신 서울중앙지검장이 한나라당 후신인 자유한국당최교일 국회의원이다.[50] 연세대 같은 경우는 검사 2,247명 중 292명을 배출했으나, 검사장이 0~2명에 불과하다. 검사장이 45명 가량 되는데 그중 12명 정도를 차지하는 고려대나, 27명 가량을 배출하는 서울대에 비해서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51] 2005년부터 2010년 9월 1일까지 신규 임용된 검사를 보면 서울시립대, 경찰대, 카이스트(이상 3명), 단국대, 인하대, 영남대, 충북대(이상 2명), 강원대, 경기대, 국민대, 명지대, 숙명여대, 인천대, 포항공대, 홍익대, 한동대(이상 1명)가 있다. 6년간 신규 동문 검사가 한두 명 밖에 안 되면 끌어줄 사람도 밀어줄 사람도 없다.[52] 능력이라는 게 수치화가 어렵지만 인재풀 자체가 한계가 있는데 억지로 지역출신을 임명하려고 하면 상대적으로 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진급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거기에 그동안 해먹었던 영남에서는 요직을 독식하다가 굶게 되니 반발이 더 심할 수 있다. 영남 출신만 천년만년 해먹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53] 2017년 현재 검사가 2,300여명인데 그것보다 정원이 적었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기 대통령 고교 동문인 상업고등학교 출신이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나서 검사를 지원하고 김대중과 노무현 집권기에 검사장급 승진 대상 정도가 될 짬이 있어야 하니 시기까지 맞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54] 다만, 영호남으로 도배한다는 말은 있었다. 영남 출신은 박정희 시절부터 지역적 버프를 받았고, 김대중 시절만 제외하면 집권당이 바뀌어도 평균치 이상은 해먹은 셈.[55] 사상 처음으로 서울 사람이 나온 것에 주목해야 한다.[56] 엄밀히 말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북고 출신이 아니며, 포항 동지상고 출신이다. 하지만 TK 출신 대통령 답게 지역 명문고인 경북고 출신이 득세했다는 평.[57] 서울장충초등학교-성심여자중학교-성심여자고등학교-서강대학교.[58]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명박을 왜 TK 출신이라 하냐면, 어렸을 때 제외하고 학창시절을 다 TK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즉 그 사람이 어디에서 태어났나보다는 그 사람의 출신 고등학교를 보고 출신지를 따진다. 같은 논리로 경남고 출신인 김영삼, 문재인 대통령을 거제시 출신이라 하지 않고 부산 출신이라고 한다.[59] 그 2명 중 1명이 사상 최초 강원출신 검찰총장 후보인 오세인 고검장이었다(강릉 → 강릉고등학교). 그러나 민주당 정권에서 상당히 싫어하는 공안통 출신이라 총장 승진에 실패. 바로 옷 벗었다. 또 1명의 강원 출신은 유상범 창원지검장인데 우병우 사단 핵심 멤버라 인사이동에서 광주고검 차장을 거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되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사직서를 냈다(영월 → 경기고). 결국 강원 출신은 전멸.[60] 이러한 경향은 단지 검찰 인사뿐만 아니라 정부 장차관 인사에서 수도권 출신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확인된다. 그동안 지역차별을 받기도 했지만, 민주당 뿌리인 호남 출신을 늘리긴 늘려야 하는데, 영남은 못 건드리고 어딘가 줄여야 하는데 수도권만 줄이는 것이다. 결론은 영남은 보수든 진보든 어느 정권이든 우대 받는다. 즉, 적나라하게 말해서 정권을 누가 잡든 항상 가장 큰 파이를 먹는 영남 파이를 갈라야 타 지역들도 골고루 먹을 수 있게 된다.[61] 다만 이렇게 고향을 분류하는 방식은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수도권 검사장이 20명에서 13명으로 대폭 줄었다 하고, 대신 호남이 확 늘었다고 보고 있다. 박근혜가 TK에서 태어나 평생 서울에서 살고 있듯이, 검사장들도 태어난 곳과 자란 곳에 차이가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고등학교를 어디에서 나왔는지 보는 것이 편하고, 그게 아니라 출생지 기준 고향을 따지다 보면 실제와 왜곡이 생기고 매우 복잡해진다.[62] 사실 경기고 출신이 1명 있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강원도 출신 유상범 광주고검 차장이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징계성 발령받자 그날 즉시 사직했다.[63] 참고로 2005년 생긴 비슷한 성격의 로마켓에서는(www.lawmarket.co.kr) ▲고향 ▲출신학교 및 학과 ▲유학간 학교 ▲사법연수원 기수 ▲법원 및 검찰청 근무경력 등 6개 주요 지표를 기본으로 이들 요소가 친소관계 형성에 기여하는 정도를 29개 항목으로 나누고, 항목별로 각각 0∼20점까지의 점수와 가중치를 주는 방식으로 산정해 친소관계를 수치로 보여주는 ‘법조 인맥지수 시스템’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출신 고등학교의 경우 졸업 동기면 20점, 1∼3년차 선후배인 경우는 10점, 4년차 이상 선후배인 경우는 2점의 점수를 주며 또한 고교 동기면서 대학 같은 과 동기이면 3점, 고교 동기면서 같은 대학 다른 과 동기인 경우에는 2점의 가산점을 주고 있다.[64] 법조계 안에서도 검찰조직이 가장 보수적, 남성 중심적이라서 며느리는 해당되지 않는다. 첫 여자 검사장인 조희진이 검사장이 된 게 2013년 12월이고, 2020년 1월 시점에서도 그 동안 두 명이 추가되어 이영주, 노정연까지 이렇게 3명이 전부다.[65] 단, 사법연수원 판사 출신 교수는 잘나가는 판사들이 가는 자리이지만, 검사 출신 교수 자리는 한직이고 승진경쟁에서 밀린 사람들이 가는 자리라서, 야심 많은 사법연수생에게 별로 선호되는 장인 어르신(...)은 아니다.[66] 극히 예외적 케이스로 범 삼성가 홍석조의 경우 재벌가임에도 공부를 매우 잘하여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사시 합격 후 검사를 했었다.[67] 사직하면 대부분이 변호사로 개업한다.[68] 사진 출처 간부 사퇴 종용 … 검찰 인사 회오리.[69] 최경원 법무장관은 사시 8회.[70] 이미 고검장 TO가 다 차서 무보직 고검장으로서 주어진 특수업무를 맡았다.[71] 이용호 게이트 여파로 임휘윤 부산고검장 사퇴.[72] 참고로 김준규는 기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특수활동비로 촌지를 돌렸다가 논란이 되었던 그 검찰총장. 특수활동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돈봉투 만찬사건 때도 언론은 과거 비슷한 사례로 홍준표와 함께 김준규 검찰총장을 수없이 언급했다.[73] 참고로 이 시기에 13~15기 고검장, 지검장이 줄사퇴를 했다. 이 때 19~20기가 지검장 승진 대상이었는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승진을 노리던 우병우가 검사장 승진에 실패했고 결국 사표 쓰고 나가고 만다. 검사 출신의 공직기강비서관 조응천이 이를 막았다고.[74] 물론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 사명감이 있는 사람들은 정년까지 버틴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75] 물론 군대는 진급에서 밀린 사람들이 알아서 나가는 쪽이 아니라 인사이동을 통해 밀어내기로 전역 시키는 쪽에 가깝다. 영관급은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사단장보다 선배인 대령이 행정부사단장을 맡거나 군단장의 동기인 말년대령이 군단 감찰참모나 대외협력실장 같은 한직을 맡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장성급으로 올라가면 계급정년까지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인사 적체 현상은 막아야 하기 떄문. 특정 기수가 대장에 진급하면 원할한 지휘권의 행사라는 명목으로 선배 기수, 동기 장성들이 다음 보직 없이 대부분 전부 연구관으로 이동하고 전역 준비를 하게 된다. 이 현상이 그나마 완화된 것이 문재인 정부 - 윤석열 정부 교체기인데 육군참모총장 기수가 3기수가 내려갔기 때문. 그런데 44~45기 소장들을 전부 그만두게 하면 인사의 폭이 상당히 커지는데다가 임기도 지키지 못 한다. 그래서 육군참모총장(육사 44기)와 동기인 소장~중장 일부는 여전히 현역이며 이 들은 육사 50기가 소장에 진출하는 2022년 후반기 인사 때 순차적으로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76] 물론 조직 차원에서 외면 받은 사람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임은정(30기)는 동기가 검사장 승진을 앞둔 차장급임에도 꿋꿋히 부장을 달고 있고 서지현(33기), 진혜원(34기) 역시 부장급임에도 부부장을 달고 있다. 조직 내부에서 평판이 부정적인 진혜원과 달리 임은정과 서지현은 각각 차장 보직과 부장 보직으로 이동했지만 정치적 편향성 등이 문제가 되어 결국 임은정은 한직인 대구지검 중경단 부장으로 좌천, 진혜원은 부산지검 중경단 부부장으로 다시 좌천되었으며 서지현은 사직했다.[77] 물론 군무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이 있긴하다만 수는 적은 편[78]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검사장 승진을 안 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불패 요직이었다.[79] 김진환 서울지검장은 수사권이 없는 지검장급 한직만 돌다가 퇴직한다.[80] 그리고 대학 행정학과 강사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가게 된다.[81] 여담으로,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변호사 가급의 기본급이 같은 호봉의 검사의 기본급과 똑같다. 다만, 성과급 등 때문에, 실제 급여는 같은 호봉의 검사보다는 많다고 한다.[82] 빠방한 스폰서가 있는 검사들은 예외.[83] 서로 ‘ㅇ 프로’하고 부른다고도 한다. 무슨 프로스포츠 선수 같지만, 영어인 prosecutor의 앞 글자 pro를 딴 것.[84] 사형이 아직 집행되지 않은 미결수 신분이긴 해도 사실상의 종신형.[85] 국회의장 포함 국회의원들, 대통령, 총리,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을 포함한 사법부 인사(판사)들, 선관위장 포함 중앙선거관리위원들과 같은 각 헌법기관의 최고위직 인사들. 특히 대통령과 총리는 검찰청의 지휘계통에 포함된 인물들인데 건드릴 수 있을 리가 없다.[86] 대통령비서실, 국무총리비서실, 법무부, 기재부, 국세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정원, 감사원 등. 맨 앞의 세 기관들 중 법무부는 아예 검찰청의 직속 상급기관이고 대통령비서실과 국무총리비서실은 각각 대통령과 총리의 대리인 노릇까지 하므로 검찰총장까지 찍어누를 수 있고 나머지 기관들은 검찰을 위에서 누른다기보다는 검찰과 비슷한 수준의 막강한 권력을 지닌대다가 서로 업무상 접점이 없어 검찰이 건드리기 매우 꺼리거나 건드릴 껀덕지도 없는 기관들.[87] 5대 대기업 부사장급 이상 고위 경영진 및 오너 일가, 제도권 언론사 사주, 3대 종교 최고위 종교인, 판사/고위직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 or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 등[88] 대한민국의 상류층들이 검사 사위를 두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사실상 높으신 분들이라면 뒤가 구린 짓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기에, 이러한 사람들의 뒤를 캐고 감옥에 보낼 수 있는 검사의 힘은 공무원 중 가장 막강하다고 봐도 무방하기 떄문이다. 또한 대통령, 국회의원 등 처럼 선출되지 않기 때문에 딱히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정년 퇴직 할 때까지 검사 생활을 할 수 있기에 더욱 강력하다.[89] 그 공무원이 어디 부처에 있느냐에 많이 갈리지만. 청와대나 국정원, 감사원 등등은 자기보다 낮은 직급이라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데, 고용노동부나 여성가족부 같이 권력이 매우 약한 기관은 장관도 전현직 정치인이 아닌 이상 부장검사급에게 충분히 박살날 수 있다.[90] 아무리 증거가 명백해도 판사가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면 (벌금형, 집행유예 등등 권력자가 처벌 이후에도 권력을 행사하는 데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가벼운 형벌을 뜻한다.) 그 검사는 향후 커리어가 작살난다.[91] 2012년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 중 42명이 신규로 검사로 임용되었다.[92] 본시험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평이 지배적이다.[93] 법무관의 기간은 3년이기에 졸업자에 비해 3회 전 변호사시험 합격자이다.[94] 로스쿨 1기 졸업생이 법무관으로 복무할 경우, 3년 뒤인 2015년에 임용이 가능했다.[95] 해임이 최고수준의 징계다. 다만 집행유예 이상 판결이나 탄핵소추 가결이 나오면 이때는 파면되고 국가적립분 연금도 뺏긴다.[96] 검사들도 사람이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인간적으로 싫은 행위를 한 사람은 바로 따돌림당하는 조직이다. 오히려 권위와 명예 2가지만으로 먹고 사는, 군대보다도 위계서열과 불합리한 권위주의가 팽배한 집단이라 저런 짓을 한다는 건 바로 생매장당하겠다는 신호다.[97] 김형식 사건과는 관련 없지만 골프장 사장 납치감금 사건을 퇴직 후 주도했다.[98] 성형외과 의사에게서 돈을 뜯어낸 사건으로 인해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파면당했다.[99] 뇌물을 가리키는 말이다.관련 문서.[100] 2008년 조희팔 측근 강태용에게 현금 2억 7천만 원을 받고 2011년 구속된 김광준 검사의 경우도 있으니, 모든 검사가 일반인 돈을 안 받는다고 일반화하긴 힘들다. 그러나 해당 검사도 현재 자기가 수사 중인 사건이라면 돈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판검사들은 자신이 담당 중 사건에 한해서만 접대(드물게는 뇌물)를 안 받는다는 나름의 특이한 윤리 의식이 있다. 7년형 받고 콩밥 먹는 중인 김광준 검사 본인은 아직도 자신은 돈 받은 게 아니라 평소에 친해서 빌린 거라고 억울해하기는 하지만.[101] 판사들의 경우 1주일에 이틀 정도 재판하는데(심리 하루, 선고 하루) 마지막 사건을 꼭 술값 내줄 변호사 사건으로 배정한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면서 합의부 판사 3명+변호사가 함께 회식하러 가는 것이다.[102] 2차는 일반적으로 여자 검사들에게 택시비를 주며 집으로 돌려 보내고 남자 검사들끼리 간다. 아가씨들이 술만 따라주는 룸살롱은 여검사들도 남검사들과 같이 가는 경우가 있다. 『사법연수원 교수의 비밀강의』라는 책에서 저자인 사법연수원 여자 판사교수는 여제자들에게 "악착같이 회식 자리에 따라가라."고 책에 써놨다. 중요한 이야기는 대부분 회식 자리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 남자들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빠지지 말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여자들이 술만 따라주지 않는 룸살롱이란 무엇일까? 어느 여성 변호사 김남희가 쓴 『젊은 변호사의 고백』에 의하면 공개적인 룸 안에서 오럴섹스를 해주는 변태적인 곳을, ‘남자 법조인들끼리만 가는 룸살롱’이라고 부른다.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에 의하면 2차는 무조건 룸살롱에서 붕가붕가라고 하고 있다. 가끔 검찰청 여직원들을 룸살롱 구경시켜주었다는 말과 함께.[103] 법조계에서는 이 문장이 청탁을 의미한다. 나경원 의원 네티즌 댓글 사건에서, 나경원 의원의 남편 김재호 부장판사가 담당 검사에게 사건 청탁할 때도 ‘나 의원 사건이 있는데, 한번 살펴봐주세요’라는 문장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후 담당 검사인 박은정 검사의 양심선언이 있었지만, 수사 결과 해당 부장판사는 혐의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왜냐면 ‘청탁’이라는 단어가 안 나왔기 때문에. 그러나 해당 부장판사이든 양심선언한 검사든, 이 청탁사건을 조사한 검사들이든 ‘한번 살펴봐주세요.’라는 문장이 뭘 뜻하는지는 모를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은 없다.[104]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재력가로부터 강남 아파트 구매대금과 고급 승용차 해외여행 등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스폰서 검사'라는 단어가 일반화됐다는 게 검찰안팎의 분석이다.[105] 차장검사급 직책.[106] 역설적이게 노무현 정권에서는 원칙에 충실해 송광수의 검찰총장 2년 임기를 지켜 주었다.[107]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면 뇌물을 받은 범법자들을 수사하여 구속해도 되는것이고, 청와대 눈치를 보아야 한다면 이런 범법자들을 수사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 내용은 정치적인 의견일 뿐임.[108] 대공·테러 사건이야 당연히 공안부 담당이다. 그러나 선거·학원·노동 사건까지 공안부에서 담당하면서 정치적 사안마다 공안부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109] 그러나 2009년 3월 대검 공안 3과가 부활, 2012년에 서울중앙지검에 일명 공안3부라고 불리는 ‘공공형사수사부’ 신설, 2015년에 의정부지검에 공안부를 새로 만들었다.[110] 인권변호사 출신.[111] 이미 200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를 한나라당에게 패배한 상황이었다.[112]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천 장관에게 전화 보고하며 강정구 교수 구속 지휘를 해야 하는데 그 이유가 ‘불구속 지휘를 하면 보수세력마저도 검찰의 적이 되고 그러면 검찰이 어려워진다.’라는 이유였다. 즉 철저히 정치적 사유로 검찰을 위해 강 교수를 구속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천 장관은 후일 자신에게 물어볼 만한 사건도 아니었는데, 김 총장이 전화로 장관에게 사전보고하며 일이 커졌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강정구 교수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면서 처음부터 구속될만한 건이 아님이 밝혀졌다.[113] 법적 권한임을 근거로 검사들은 경찰에게 수사지휘를 하면서 법적 근거가 있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쓰지 못하게 하려는 아니러니...[114] 이때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옴에 따라 문재인 정권때는 과거 2대 과제는 쏙 들어가고 ‘검경수사권 조정’과 ‘법무부의 비검찰화’로 검찰 개혁과제가 바뀌었다.[115] 책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불편한 질문들을 하면 검찰 고위직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답변을 안 한다고 쓰여 있다. 작가가 검찰들의 이중적인 행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볼 수 있다.[116] 임수빈 검사 대신에 MBC PD들을 기소한 전현준 검사는 이후 대표적인 우병우 사단이 되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전지검 차장검사, 수원지검 안산지청장, 서울중앙지검 1차장 등의 요직을 달리다가 대구지검장까지 승진하지만 2017년 6월 8일 갑자기 좌천되자 그대로 사직해 버린다. 그 밑에서 수사를 담당한 박길배 검사도 역시 승승장구해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등의 요직을 달렸다. 그러나 박길배는 우병우 사단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수원지검 특수부장 등을 하고 춘천지검 형사1부장을 거쳐서 차장검사로 승진해 서산지청장, 수원지검 안산지청 차장검사까지 했지만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2020년 8월 인사 이후 역시 사직했다. 마찬가지로 PD수첩 사건 수사를 담당한 주임검사인 송경호 검사도 그 이후에 승승장구를 거듭했고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을 거쳐서 수원지검 특수부장까지 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신임 중앙지검장윤석열의 간곡한 요청에 승승장구해서 윤석열 사단이 되었고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의 서명 검사로 참여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승진해서 조국 사태 수사를 지휘했지만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2020년 1월 인사에서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으로 좌천되었다. 언론에서는 MBC PD수첩 사건 때 무리한 기소가 원인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후 수원고검 검사로 지내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취임 후 첫 인사에서 검찰 BIG4 중 하나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한다. 그리고 수사에 참여한 김경수 검사 역시 창원지검 특수부장, 대전지검 공주지청장, 수원지검 특수부장 등으로 요직을 달렸고 금융부실책임조사본부에도 파견되었다. 그러나 김경수 검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되어 옷을 벗은 전현준 검사나 고검으로 좌천되어 사직한 박길배 검사나 특수통의 핵심이자 검사장 승진 불패 자리라 불리던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란 요직에서 여주지청장이란 초임 차장검사 보직으로 좌천당한 송경호 검사와 다르게 2020년 8월 인사에서 차장검사로 승진해서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장이 되었다. 여담으로 2009년 8월 검찰 인사 이후에 전현준 검사의 후임으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이 된 장호중 검사는 PD수첩 사건의 공소유지를 담당했는데 1심에서 무죄가 나자 항소를 했는데 공소유지를 담당한 장호중 검사 역시 부산지검 형사2부장, 춘천지검 강릉지청장, 법무부 감찰담당관 등으로 승진을 거듭하다가 국정원 감찰실장으로 파견되었고 검찰로 돌아온 뒤 수원지검 안산지청장을 거쳐 전주지검장으로 승진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좌천당하지 않고 부산지검장이 되었지만 과거 국정원에 파견되어 있을 당시에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일때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구속되었다. 물론 당시 PD수첩의 보도내용 자체가 상당한 과장이기는 했지만 그걸 기소한 것 자체도 문제는 컸다.[117] 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초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118] 서울대 정치학과 졸, 1997년 39회 사시 합격, 2000년 사법연수원 29기 수료, 현 21대 국회의원[119] 물론, 이 검사는 빈센조 까사노에게 곧바로 참교육당해 죽어버렸다. 빈센조가 모국인 이탈리아에서 검찰이랑 이골이 날 정도로 맞짱뜨던 마피아 출신 변호사다보니, 검사 하나 담그는 건 일도 아니었다.[120] 사실 한국의 현대사에서 검사들은 군사독재정권과 대기업, 기득권층의 부역자 노릇을 하는 일이 잦아서 원래부터 이미지가 좋은 편이 아니었고, 변호사들이 이에 맞서서 인권변호사나, 노동변호사, 소비자 단체의 법률고문으로 맹활약하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쌓았기 때문에, 이는 매우 당연한 수순이다.[121] 그렇다고 소리치는 걸 못 해서 항상 차분하게만 말하는 검사도 없으며, 그걸 실력이라 보지도 않는다. 피의자들의 성향은 다양하며 수사하다보면 여러 상황이 오는데, 대다수 증거 정황상 뻔한 상황임에도 피의자가 독하게 작심하고 어설픈 말바꾸기를 대놓고 쉽게 하거나 시간끌기를 목표로 계속 뻗대는 경우 이런 상대를 짧은 시간에 조사해야 할 때면, 며칠 동안 계속 조용히 말하다가도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소리치는 방식으로 멘탈공격하는 형태의 수사도 적은 비율이나마 할 수 있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소리를 계속 지를듯이 안 지르며 눈빛과 목소리 톤으로 겁만 주는 압박수사도 있다. 단, 미리 스스로 그런 시간적 압박이 최대한 조금 오게 관리할 수 있는 게 실력이라는 것일 뿐이고, 아무리 그렇게 해도 검사생활을 웬만큼 짧게 하는 게 아닌 이상 뛰어난 검사 역시도 한 번씩 소리치고 압박주는 상황이 적게라도 오긴 온다는 것이다.[122] 강력범이 아닌 범인을 잡으려고 검찰 주도로 수사하다 보니, 수사 중간에 그 사람이 폭력 조직과 연관이 있는 걸 갑자기 알게 되어 잡으려면 어쩔 수 없이 같이 잡아야 하게 되었다든가.[123] 한 부서에 소속된 수사관은 경찰처럼 한 번에 동원할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비상시에 대비해, 오히려 개개인의 신체능력은 일반 형사보다 더 뛰어난 사람으로 뽑으려 한다.[124] 검사들끼리 즐겨 쓰는 경우가 제일 많다.[125] 단, 봉면필은 가문의 부활에서는 출소 후 도끼파와 손을 잡았고, 김진경의 남편이 된 장인재와 대적한다.[126] 실제로 임용된 모습이 나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127] 성찬우의 법학과 입학 동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