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전 白兵戰 | hand-to-hand comb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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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중 세바스토폴 공방전 당시 독일군과 백병전을 벌이는 소련 해군 육전대(해병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
1. 개요
적에게 접근해서 몸과 몸이 닿을 정도(Hand to Hand, Corps à Corps)의 거리에서 근접전을 펼치는 것. 주로 보병과 해병이 수행했다.현대에 쓰는 CQB, CQC 역시 비슷한 말이지만 신체접촉이 없는 2~30m 정도의 전투까지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약간 다르다.
2. 역사
2.1. 지상전
과거의 전투는 항상 백병전이 빠진 적이 없으며 이것이 전투의 피날레를 장식할 정도로 중요했다.총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체적으로 화력이 부족했으며, 사람이 직접 힘을 실어 가까이서 공격하는 것이 가장 에너지 손실이 적어 효율적인 살상법이었다. 비록 야전에서는 산병이나 궁병, 쇠뇌병 등의 병종들이 사격전을 벌였으나, 투사 무기만으로는 우세를 점할 수는 있어도 적의 전열 자체를 쉽게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 일방적인 타격으로써 전열을 약화시키는 것은 가능했으나 절대적인 화력이 불충분하다 보니 어느 정도 방패과 갑옷을 구비하면 손실이 격감되었고, 특히 중장갑 수준으로 방비하면 원거리에서 두들기는 쪽의 탄약이 먼저 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흔히 원거리에서 두들기는 방식으로 로마군을 격파했다고 알려진 카르헤 전투조차도 실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은 중기병인 카타프락토이의 돌격 및 백병전이었다. 이렇듯 최종적으로 적의 전열을 무너트리고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백병전이 필수적이었으며, 백병전에서 강력한 위력을 보이는 엘리트 전사 집단들이 나타나고 사회 상류층에 합류하였다.
총기와 화포가 발달한 이후에도 꽤 오랫 동안 적의 돌격을 사격만으로 저지하기에는 화력이 부족하였으므로, 백병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보병 거의 대부분이 지급받을 정도로 총기가 비교적 흔해진 근대 전열보병시대에도 여전히 기동력을 활용하여 측면타격과 충격 전술을 구사하는 기병이나 사격을 버티고 돌격해오는 적 보병대에 맞서기 위하여 백병전 능력이 요구되었다. 그 결과 당시에는 산병대형과 선형진 사격대열, 대기병 사각방진 등의 신속한 전환을 위한 제식훈련, 사격대열에서의 철저한 사격 통제로써 화력을 극대화하는 일제사격으로 적 병력을 크게 줄여놓고 총검 돌격으로써 결정적인 충격을 가하여 적을 와해시키는 보병 전술 등이 대세가 되었다. 전열보병 시대쯤 되면 적의 화망에 닥돌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오히려 사격으로 제압한 다음 돌격했다. 사격전에서 밀린 측은 적들이 달려오면 붕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이러한 백병전은 고폭탄과 볼트액션 등의 연발총이 개발되고도 한동안 유지되었다. 비록 사격전의 비중이 이전 전열보병보다도 훨씬 커졌으며 보병 대열도 훨씬 간격이 넓은 여러 개의 산병선이 늘어선 형태가 되었으나, 고작 보병들이 쏘는 소총과 주퇴복좌기가 없고 초보적인 신관 및 작약 기술이 적용된 화포 수준에서는 여전히 기병이나 보병의 기습이나 대단위 돌격을 적시에 막아내지 못할 때가 있었다.
기관총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고 도입되기 시작한 제1차 세계 대전에서도 백병전은 빈번하게 발생했다. 특히 총검, 야삽, 대검, 권총, 기관단총 등을 활용한 백병전은 서부전선 참호전을 대표하는 심상이다. 당시 참호가 워낙 좁고도 복잡한 데다가 당시의 볼트액션 제식 소총은 너무 길었기에 트렌치 클럽, 트렌치 나이프 등의 백병전용 단병기는 물론이고 돌격대에 판금 갑옷 형태의 방탄복을 두르는 시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다만, 이러한 단병접전 수단들은 야전부대의 자구책으로서 많이 나타났고, 군 상층부에서는 발달하는 화력, 특히 수류탄이나 기관총의 활용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전술을 발전시켜 돌격 전후로 화력 투사를 정교히 하거나, 돌격하는 병력에 참호를 쓸어버리기 위한 기관단총, 산탄총, 경기관총(BAR, 쇼샤 등)을 들려주고, 전술 행동의 최소 단위를 소대나 반, 분대 등으로 낮추는 등 여러 시도를 하면서 서서히 현대전식 보병 전술의 기초가 형성되어갔다. 이는 참호전 상황에서만 해당되지 않아서, 이탈리아 방면 산악전에서도 사방팔방에 수류탄을 던지고 단검을 꽂는 이탈리아 왕국군 아르디티(Arditi)나 알피니(Alpini) 등이 활약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이르러 자동화기 및 반자동화기 보급율에 따라서 보병 간 전투력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났다. 당시 격발 후 자동으로 약실에 탄이 장전되는 M1 개런드 혹은 M1 카빈을 들고 있던 미군은 볼트액션 소총을 들고 있는 동맹군 영국군, 적군인 독일 국방군, 일본군 등보다 보병 간의 조우전에서 우위에 설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미군 외 타국군들도 자동화기의 이점은 잘 알고 있었으나 제식소총 수준에서 자동화기를 지급하는 것은 경제력과 공업력이 너무 많이 요구되어 쉽게 따라할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일본군은 백병전에서 기관단총이나 (반)자동 소총이 굉장히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도 공업 생산력 부족, 물자 보급 문제, 경직된 군부의 사고방식, 정글 위주의 환경 등등 요인으로 인해 전쟁 내내 볼트액션 소총과 총검, 군도를 내세워 백병전을 시도하고는 했으며, 이를 받쳐줘야 할 기관총이나 박격포, 척탄통, 야포 등도 보급 문제로 충분한 지원사격을 제공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이러한 돌격 시도는 대개는 실패하거나 오히려 백병전에서 미군에 밀려났다. 백병전에서 중요한 무기체계, 조직력, 훈련, 정신무장, 평균 체격, 영양상태 등이 총체적으로 미군보다 부족했다. 이러한 전장 환경으로 말미암아 미군은 특수전 및 정글전 등에서 백병전 수요가 높았고, OSS에서 군용 격투술, 권총 사격술 및 나이프 파이팅을 연구해서 정리하기도 했다.
20세기의 전훈이 반영되어 현대 각개전투, 백병전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맞붙어 싸우다가 약실에 총알이 남은 측이 방아쇠를 당겨버리면 맞붙어 싸우던 적은 피할 새도 없이 근거리에서 총알을 맞는다. 한국군의 각개전투 교리에서도 적 진지에 돌격하기 직전 반드시 하는 행동이 탄창을 갈아 끼워서 미리 탄약을 장전해 두는 것이다. 군 각개전투 전술에서도 그러하듯 쓸 수만 있다면 총기 이상으로 무서운 게 수류탄이다. 그래서 적 진지 돌입 이전에 수류탄을 던지고 약진하도록 교육한다. 학도병 수기를 봐도 코 앞의 인민군들을 수류탄으로 죽여버려서 마음이 편치 않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총을 쏠 시야각이 안 나오거나 병력들이 살인에 거부감을 크게 느낀다면 수류탄은 무서운 백병전 병기가 된다. 대간첩전 야간전 관련해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게 수류탄 활용 이야기다. 관련된 농담으로 백병전의 승자는 약실에 총알 남은 놈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가 있다. 백병전은 냉병기나 맨손으로만 하는 거라는 편견이 있으나 역사적으로는 화약 무기가 도입된 이후 지근거리에서 총기, 수류탄을 활용하는 사례도 많았다.
원거리 무기가 세계대전 시기보다 발달한 현대전에서도 총기를 이용한 CQB의 형태로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시가전과 같이 적군과의 교전 거리가 매우 가까워서 아군 오사의 우려가 클 때 주변에 민간인이 있거나 민간 자산이 많아서 섣불리 이것저것 때려부수지 못할 때 어김없이 행해지며, 심지어 그러한 문제를 무시할 때나 그러한 장애요소가 적은 야전에서조차 우발적인 조우전 상황에서 백병전이 벌어지는 일도 많다. 특히 이런 현대의 백병전은 전면전이 줄어들고 대테러전이나 대분란전이 늘면서 그 비중이 더 커졌는데, 즉 폭격이나 포격 같은 걸 안 하고 건물에 쳐들어가서 근거리 총격전을 벌이는 상황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과거에 귀족이었던 장수들이나 숙련된 전사들이 백병전 전문가였듯, 현대에는 특수부대가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위에서 언급했듯 현대 근접전에선 전통적인 단병기 중심의 백병전 대신 더 체계화한 CQB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총기의 편의성이 현대만 못했던 시대처럼 냉병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나, 설령 착검을 하지 않은 상태라도 필요시 총구나 개머리판 등 총기 그 자체를 활용한 다양한 대처법과 격투술이 존재하며, 이러한 체계도 "총검술"이라 통칭되고는 할 정도로 연속적인 개념이다.
2.2. 해전
지상전 뿐만 아니라 해전에서도 많이 등장했다. 화약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해전은 그리스의 불과 같은 특수한 무기 외에는 선박 자체를 파괴할 만한 무장이 특별히 없었으므로 결국 선박과 선박이 직접 충각을 통해 부딪히거나 병사들이 적군의 선박으로 건너가서 교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화약이 발명된 이후에도 고폭탄, 철갑탄 등 포탄이 더욱 개량되기 전에는 화포만으로 선박을 완전히 격침시키기가 어려워서 결국 백병전이 필요했다.나폴레옹 전쟁 등 범선시대의 해군을 다루는 창작물에도 자주 등장하며 재수없게 탄약고에 불이 붙지 않는 이상 그 결과는 둘 중 하나, 적의 배를 나포하든가 우리 배가 나포당하든가일 때가 대부분이다. 보통 적의 배를 나포하면 일개 수병도 평생 벌어야 할 돈을 일시불로 받을 수준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어서 많이 선호되었다. 게다가 이런 경우에는 포격전 끝에 백병전이 벌어지므로 양측 모두 함선 자체가 너덜너덜한 경우가 많아서 생존을 위해 백병전을 벌인 경우도 많았는데, 요컨대 우리 배가 침몰하기 전에 적의 배를 빼앗아야 했다. 당시 전투 중에도 함장에게 수시로 배에 들이친 물의 수위를 보고했는데 우리 쪽 배가 아니다 싶으면 적의 배로 건너가는 결정을 내리고는 했다.# 승패가 가려진 후에는 만약 아직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직전까지 서로 싸워댄 승자와 패자(포로)가 힘을 합쳐 물을 빼내고 응급수리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실 오늘날에도 의외로 도선 백병전이 벌어지고는 하는데, 해군끼리 하는 게 아니라 넘쳐나는 해적 때문이다. 해적들은 배를 나포하고 선원을 포로로 잡아야만 돈을 뜯을 수 있으니 당연히 함선에 올라타려 하고, 나포된 민간 상선을 탈환하려는 해군이나 해경은 해적이 항복하지 않는 한 배에 기어 올라서 해적을 직접 사살하는 수밖에 없다 보니, 배를 뺏기지 않으려는(?) 해적과 배를 탈환하려는 해경 및 군인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범선시대와는 무기의 수준이 다르기에 근접격투가 아니라 돌격소총과 기관단총을 활용한 CQB가 벌어지기는 하지만, 함포와 미사일 사거리가 교전 거리인 해군 기준으로는 엄연한 백병전(?)이다. 이에 대한 사례로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비스무리하게 들 수 있는 가까운 사례가 UDT/SEAL의 인질구출 해상 대테러 작전인 아덴만 여명 작전이다.
중국 불법어선을 진압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백병전이 일어난 적이 있으며, 이 때문에 해경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현재는 정선과 임검에 불응하는 불법어선은 발포하여 제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3. 특징
3.1. 효용성
탄환이 떨어지거나 총을 쓸 수 없는 상황, 교전 거리가 매우 짧은 환경에서는 냉병기 백병전조차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니 구닥다리 구식 전술이라고 감히 폄하할 수는 없다. 최후의 수단이지만, 정말로 순수한 근접 백병전은 일반 야전군 VS 야전군의 경우에는 보통1. 더 길고 우수한 무기를 든 쪽이나 2. 더 수가 더 많은 쪽이나 3. 더 전투훈련이 잘 돼있는 쪽이나 4. 더 육체적 단련이 잘 된 쪽이나 5. 체급이 큰 쪽이 이긴다. |
2020년대에는 극소수 케이스를 제외하면 전문적인 수준의 근접무기 숙달훈련을 실시하지 않으니, 결국에는 육체 단련 및 무술 수준이 비슷한 일반 야전보병들 사이에서 백병전이 일어난다면 3번과 4번은 제외하고 봐야한다. 헌데 이 또한 현대에선 미군과 같은 극히 특수한 케이스[2]를 제외한 나머지 G20+중견국 이내의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국가들의 일반 보병들은 영양상태와 체급 수준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3] 결국 1, 2번이 절대적인 영향을 발휘하게 된다. 결국에는 그 아래 조건은 뭐가 됐든 간에 수가 더 많고, (사거리가 길고 우수한 무기인)총기를 근거리에서도 잘 쏘는 쪽이 유리하다.
위의 예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20세기의 중국-소련 국경분쟁이다. 서로 사이좋던 중국-소련 국경수비대원들끼리의 사소한 오해로부터 시작한 단체 맨손격투가 진영 간의 대규모 백병전으로 넘어가게 된 좋은 사례이다. 첫 국경수비대원들끼리의 충돌 당시 못 먹어서 허약하던 중공군은 체급이 더 큰 소련군을 상대로 패배하였고, 이후 육체적 단련 수준이 다른 특수부대원을 투입했을 때는 소련군이 패배하여 후퇴했다. 그 다음에는 소련에서 스페츠나츠를 투입해 그 중 복싱 선수 출신이었던 스페츠나츠 장교가 대활약을 하여 소련군이 승기를 잡았고, 소림사 출신의 특수전 장교를 투입한 중공군이 봉술을 앞세워 복싱 선출 장교를 포함한 소련군에게 연승을 거두었다.
이후 소련군도 몽둥이를 들고 응전했으나 봉술을 전문적으로 익힌 중국군의 상대는 역시 되지 못하였다.[4] 무엇보다도 소련군이 전바오섬까지 빼앗기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조바심을 느낀 소련군은 중공군이 흉기를 먼저 꺼내 맨손격투에서 백병전으로 양상을 넘겼듯이, 자기들은 한술 더 떠서 총화기를 꺼내들게 되었고, 권총이 결국 중국군을 향해 불을 뿜게 되며 총격적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 이후에는 총격전/포격전으로까지 전쟁이 확산되게 된다. 전차와 장갑차, 대전차미사일까지 동원되었으며, 결과는 당연히 당시의 중공군과 비교도 안되게 화력이 막강했던 소련군의 압승이었고, 화가 난 흐루쇼프와 마오쩌둥은 서로 핵공격까지 계획하였으나 결국 미국의 중재로 화해하게 된다. 이후에는 평화협정을 통해 화해했다.
중일전쟁에서 대도로 무장한 국민혁명군과 일본도로 무장한 일본군이 서로 백병전을 벌인 사례가 있다.
6.25 전쟁 당시 튀르키예군과 프랑스군처럼 백병전으로 대활약을 한 사례가 종종 있다. 심지어 21세기에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견된 영국군이
2020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에서도 몽둥이를 휘두르는 백병전 상황이 등장했는데 군사분쟁을 막기 위해 무기를 쓰지 않기로 한 합의 때문에 맨주먹이나 몽둥이 같은 살상력이 떨어지는 무기로만 싸우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때 야쿠트인 출신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근접 백병전을 벌이는 처절한 영상이 2025년 1월 경 공개됐다.기사 이후 생존한 러시아군 병사가 친러시아 언론인과 인터뷰를 했는데, 백병전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 생존한 러시아군 안드레이 그리고리예프 상병은 러시아 영웅 칭호를 받았다.#
3.2. 고통
제1차 세계 대전을 다룬 게임 배틀필드 1의 오프닝.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 위 워 솔저스의 착검돌격 장면.
"전투는 매번 치열했어. 한 번은 백병전에 나갔는데...... 생지옥이 따로 없었지...... 그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 됐어...... 때려죽이고,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뼈를 으스러뜨리고.... 울부짖는 소리, 비명소리, 신음 소리. 그리고 그 오도독 소리...... 오도독! 죽어도 잊히지가 않아. 오도독 하며 뼈가 으스러지고...... 사람 두개골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거야. 쪼개지고...... 전쟁터에서는 사람이, 사람 같지 않다는 게 또 다른 끔찍함이었어. 전장에서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을, 난 절대 믿지 않아."
- 올가 야코블레브나 오멜첸코, 독소전쟁 당시 소련 육군 저격중대 군의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261p '그건 내가 아니었어......' 에서 발췌
상대를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인다는 느낌을 그 어느 전투보다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전투 형태인 만큼, 백병전을 감행한 측과 이를 맞은 측, 양쪽 군대의 생존자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남긴다.- 올가 야코블레브나 오멜첸코, 독소전쟁 당시 소련 육군 저격중대 군의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261p '그건 내가 아니었어......' 에서 발췌
전쟁이 다 그렇지만, 특히 백병전은 근거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죽인다는 점 탓에 양쪽 다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그래서 근대 이후로 실제 전장에서 돌격 후 접근에 성공했더라도 실제 백병전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은 편이라고 한다. 보통은 돌격을 당한 쪽의 사기가 떨어져 그대로 도망치거나 항복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전근대에도 백병전 사상자의 절대다수는 패주와 추격 과정에서 발생했으며,[6] 극소수의 사이코패스나 경험도 많고 훈련도 잘 된 정예부대가 아닌 이상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마셜 준장의 “오직 15%의 병사들만이 교전 가능 사거리에서 총을 쏘았다”는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6.25 전쟁 참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알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포탄은 애초에 운에 달린 거지만, 서로가 괴성을 지르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백병전만큼은 정말로 끔찍하게 싫었다고 한다. 맞서싸울 때는 광란 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지만, 전투가 끝난 다음에는 자신이 찔렀던 적군의 비명과 살려달라고 빌던 소년을 죽인 것이 생생하게 떠올라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정신적 문제가 생기거나, 반응속도 등이 떨어져 자살성 행동을 하다 죽은 병사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아무런 심리적 대비 없이 눈빛과 표정이 멀쩡히 살아움직이는 사람을 죽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당하는 쪽에서도 충격이 매우 크다. 군사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자신을 명백히 노리는 위협에 더 크게 겁을 먹는다. 저 멀리 떨어지는 포탄이나 허공에 울리는 기관총 화망도 맞으면 사지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위험하지만, “재수없게” 맞는 거라고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머리를 노리고 꽂히는 저격, 코 앞에 들이닥친 적이 나를 향해 내리치는 대검은 확실히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기에 더욱 큰 충격을 받는다.
냉병기와 격투기를 동원한 전통적인 백병전도 백병전이지만, 화기의 발달과 보편화로 초근거리에서도 순수 백병전 대신 근접사격술로 전투를 하게된 현대에는 CQB 상황 역시 극히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 내 앞에 벽이 터지거나, 날아든 폭탄의 폭발로 인해 눈이 멀고 귀가 웅웅 울리며 날아온 파편이 박힌 통증 때문에 인사불성이 돼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파란 눈깔 4개가 번뜩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난입해 듣도 보도 못 한 정갈한 사격술로 옆의 동료들을 벌집으로 만들고 있는걸 보면 보통 사람은 얼굴이 새파래질 수밖에 없다.
4. 창작물
원거리 전투보다는 근거리 전투가 더 멋있게 묘사하기 쉽기에 픽션에서는 백병전이 자주 등장한다. 두 진영이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구도를 강조하기도 좋다.서로 달라붙어 처절함과 악에 받힌 싸움이 나타나기 마련인 현실의 백병전과 달리 무쌍 찍기나 다름없는 철저히 멋에 치중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이 한바탕 회전을 하며 적병 여럿을 베어넘긴다. 게다가 진형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병력이 서로 뒤엉키는 난전으로 묘사할 때가 많다.
다만, 서구권 사극에서는 백병전을 비교적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편이며, 한국 사극에서도 황산벌과 같은 작품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백병전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양차대전을 다룬 매체에서는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기에 매우 좋은 소재라서 자주 등장하며, 특히 1차대전 서부전선의 참호전, 2차대전 태평양 전쟁의 반자이 돌격과 이어지는 정글 백병전은 상당히 유명하다.
4.1. 유희왕의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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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5. 관련 문서
[1] 요원 한 명은 짱돌로 ISIS 대원 하나의 얼굴을 짓이기는 동시에 다른 하나를 물속에서 익사시켰다고 한다.[2] 자세한 것은 미군 문서의 8.1.2번 문단 참조. 개인용 부무장과 산탄총이 상당히 보편화된 군대니 근접전에서의 위력은 뭐...[3] 특히 부대가 정예일수록 근육질에 잘 단련된 상태로 수렴되기 때문에 어느 국가던 간에 그런 부대들의 차이는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4] 중국 무술의 영향으로 봉술까지 격투로 치는 중공군과는 달리 소련군 입장에선 명백히 맨손 단체 싸움에서 저들이 흉기를 사용해 목숨 건 백병전으로 넘어간 더러운 행위로 인식 되었다. 중국의 역사는 진흙탕 싸움과 모략이 매우 잦았기에 계투를 비롯한 생사를 건 싸움이 일상이어서 나무 몽둥이 따위는 무기 취급도 못 받았던 것.하지만 그건 중국군 입장이고, 소련군 입장에선 흉기였다. 단체 패싸움에서 엄연히 목숨을 건 백병전으로 넘어가게 된 것. 물론 이후에 소련군이 불리해지자 아예 한술 더 떠서 총을 꺼냈으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흉기까지는 백병전이지만 총격전부터는 아예 양상이 다르니까 말이다.[5] 위의 6.25 전쟁, 아프간 전쟁에서 백병전으로 적들을 격퇴한 사례들 역시 아군들에 비해서 적들의 훈련도 및 사기가 밀리는 상황에서 백병전을 시도하여 이에 적들이 달아난 형태의 사례들이었다.[6] 뒤통수에는 얼굴이 없는 만큼 등을 돌리고 도망가는 상대에게는 오히려 살인의 거부감이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상대가 자신을 마주 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상대가 무방비하므로 자신이 일방적으로 유리하다고 느껴 공포감을 덜기 쉽다. 이 때문에 절대 등을 보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