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1 22:15:47

소총

근대 총기 발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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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 방식전장식후미장전식
격발 방식매치락휠락플린트락퍼커션 캡탄피
강선 유무머스킷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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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근대전과 소총

1. 개요

소총()이란, 총신(총열)이 길고, 총열 내부(내강)에 나선형의 홈(강선)이 파져 있으며, 개머리판(견착대)이 있어 어깨로 지탱하며 발사하는 총을 말한다.

민간용으로는 사냥과 타겟 사격에 사용하는 스포츠용 소총이 있으며, 군경용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소총이 있어 볼트액션 소총, 반자동소총/자동소총이나 돌격소총을 가리지 않고 보병용 제식화기를 모두 지칭한다.

소총(小銃)이란 한자어 자체는 일본 에도 시대에 쓰기 시작한 단어로, 당시 일본은 에도시기 이러한 총기류를 대포 등과 같은 대총(大銃)과 구별하여 사람이 들고 다닐 만큼 작은 총이란 의미로 소총이라 불렀다고 한다. [1] 그보다 전인 전국시대에는 총보다는 철포(鉄砲 てっぽう)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였고, 총을 처음 생산한 곳의 이름을 따서 타네가시마(種子島)라고 부르는 일도 흔했다. 소총이란 단어의 유래로 치면 현재의 영어에서도 개인화기와 그 외의 화기를 구분할 때 쓰이는 Small firearms(소화기小火器=individual firearms 개인화기)[2]와 같은 맥락의 단어로 볼 수 있다.

중국, 북한에서는 보총(步銃)이라고 하는데 보병의 총이란 뜻이다. 다른 권총이나 저격총에 대비되는 용어이다.

영어 명칭인 라이플(Rifle)은 본래 강선이란 뜻이며, 정확히 하자면 강선이 파여있는 총기만을 라이플이라고 해야 하지만, 산탄총을 비롯한 극히 일부를 제외한 현대 총기는 대부분 강선을 가진 총기이므로 특별한 설명 없이 라이플이라고 쓸 경우는 대부분 한자어인 소총과 마찬가지로 보병용 총기를 뜻한다. 영어 용어 중에 좀 옛날식 표현으로 라이플을 "장총(Long gun)"이라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19세기부터 미국 등에서 견착식 총기를 뭉뚱그려 가리키는 단어. 영단어의 라이플(강선)이라는 의미를 충실히 따르는 표현으로 선조총이라는 단어도 있으나 일상적으로 쓰이진 않는다. 심지어 권총도 강선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라이플 총기에 해당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라이플이 샷건으로 대표되는 무강선 총기(smooth-bore weapons)와 강선총(rifle, refled weapons)등을 다 포함해서 장총[3]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이건 마치 리볼버는 피스톨이라 부를 수 없지만 [4] 현대에는 피스톨과 핸드건(넓은 의미의 권총)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2. 역사


1776년부터 미군 제식소총의 진화과정

발전과정 : 전장식[5] 머스킷→ 전장식 소총 → 후장식 소총

강선이 파인 조총이 처음 고안된 것은 16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다. 본디 소총을 의미하는 라이플이란 강선을 새기는 작업, 혹은 강선 자체를 의미했으며 후에 선조 조총류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변했다. 특정한 총이 희한하게 명중률이 높아서 호기심 있는 사람이 이를 뜯어 연구해보니 총열 내부에 묘하게 예쁜(?) 선이 자연스럽게 파여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안은 16세기에 이루어졌지만 이때는 정밀하게 금속을 가공할 수 있는 선반이 아직 발달하지 못한지라 탄환의 모양도 고속 회전에 적합하지 않은 단순한 구형이었고 지나치게 컸다. 또한 강선에 물리기 위해 헝겊이나 가죽 등으로 총알을 감싸 빡빡하게 만들어 장전해야 했다.

이후 약실을 총열보다 좁게 한 후 무른 금속으로 된 총알을 작은 망치로 톡톡 두드려서 강선에 맞물리게 하는 방식이 등장하였지만, 총알의 모양이 찌그러져 명중률의 저하가 나타났다. 결국 탄두 변형의 명중률 저하를 줄이고자 앞이 뾰족한 총알까지 등장했지만 장전 속도는 변한 것이 없어 사냥용이나 저격용의 특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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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초기의 레드탄(납탄)


척후병 전술과 소총 사격에 대한 설명 영상. 척후병 얘기를 하기 이전에 활강식 머스킷 사격과 보병 진형 전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미니에 탄이 보급되기 이전의 척후, 수렵용 소총의 장전 과정은 현대인이 보기에 상당히 골 때린다. 소총 사수는 먼 거리를 쏴야 하는 만큼 전열보병들보다 화약의 양을 더 정밀하게 재야 하고, 상황에 따라 화약을 더 부어 넣어 일종의 오버클럭(?)을 가해야 할 때가 있었기에 전열보병들이 납탄과 정량 화약이 함께 담긴 종이 카트리지를 입으로 뜯어서 장전할 때 군장에 달린 황동 계량컵을 이용해 황동 탄피에 화약, 헝겊, 총알을 미리 재 놓고 다니거나 아예 계량컵에 화약을 적당히 모아서 그대로 총구에 부어 넣는 짓을 해야 했다. [6] 그 뒤에는 총알이 강선에 맞물리게끔 헝겊 조각을 끼워 넣는 절차를 거쳐야 했으며, 총알을 총구에 얹듯이 물린 뒤 군장에서 bullet starter [7]를 꺼내 톡톡 두드려서 끼워 넣고 그제야 여타 머스킷 사수들처럼 램 로드를 꺼내 총알과 화약을 다져 넣은 뒤 화약접시에 화약 붓고 코킹하고 쏘는 절차를 거칠 수 있었다. 물론 전열보병들처럼 지향(present)하는 대신 정밀 조준 사격을 추구하였으므로 여기에도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19세기 초가 되면 전열보병들처럼 페이퍼 카트리지를 쓰는 게 보편화되었는데, 화약 계량 문제 때문에 전열보병들처럼 총알과 화약이 같이 든 카트리지를 쓰지 못하고 납탄을 파우치에 따로 넣고, 헝겊을 모자에 따로 꽂고 다녀야 했다. 무겁고 비싼 황동 카트리지를 들 필요는 없어졌지만 헝겊과 총알을 따로 집어넣는 절차가 필요했다는 게 함정이지만, 어차피 조준하는 데에 시간도 걸리고 쏘고 튀어야 할 걸 감안하는 경보병 입장에서는 장전 절차가 조금 복잡해지는 대신 행군하기 편한(...) 무장을 갖추는 게 조금은 나았을 것이다. [8] 물론 소총병들이 페이퍼 카트리지를 쓸 때 전열보병들은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입으로 페이퍼 카트리지 뜯고 총알 뱉어 넣은 뒤 램 로드 쓸 필요도 없이 총을 땅에 쳐서 장전하는 테크닉을 쓰고 있었다. [9]

선조총이 실제로 보병의 제식화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반 이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미니에 탄(minie ball)이 보급된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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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에 탄

획기적인 발상으로 새로 개발된 뾰족하고 유선형의 탄두, 그리고 총열 내부와 총알에 정밀한 강선을 새길 수 있게 된 선반 등 가공장치의 발달은 수십m에 불과하던 유효 사정거리를 수백m로 왕창 늘려버렸고 노린 대로 맞힐 수 있는 정확도도 상승시켜버렸다. 당장 머스킷으로 조준사격을 하려면 해당 총기와 매우 익숙한 숙련자가 아닌 이상 50m 이상의 거리는 정확도가 떨어졌다. 평범한 보병들이 종래의 전열보병 교리에 따라 입으로 카트리지 찢고 꼬질대로 힘 안 들이고 쓱 넣어도 [10] 척후병들의 소총과 필적하는 명중률이 나오니 보병 개개인의 화력이 이전 시대에 비해 무시무시해진 건 당연지사다.

이 덕분에 크림 전쟁에서 영국프랑스 육군러시아군을 화력 면에서 압도할 수 있었다. 이어진 남북전쟁에서는 발달한 야포와 더불어 이 소총이 양측에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양측의 보병들은 서로에게 정밀한 조준사격을 해대었고, 이 때문에 전쟁은 점차 대량살상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러한 소총의 발전 뒤에는 특허제도가 있었다.

말하자면 철기, 기관총, 핵무기 등과 더불어 인간의 전쟁사에 엄청난 획을 그은 무기가 바로 소총이라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총의 발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이곳도 한 번 참조해보자. 딱 한 장이고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지만, 총에 맞은 상처의 사진이 나오니 주의할 것. 못 볼 것 같은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엄지발가락에 총을 맞아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구멍이 뚫려있다. 오발사고라는 게 중론이다.

3. 근대전과 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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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년 전에는 보병들이 오와 열을 맞춰서 전쟁을 했다. 여러모로 그래야만 유리했기 때문이다. 전열보병 항목 참조.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갈 무렵,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쟁의 양상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였다. 소총의 등장으로 인해 과거의 전술은 무용지물이 되고, 흔히 각개전투로 일컫는, 현대전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전술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 전장을 지배한 것은 활강 총열 머스킷이었으며, 총검, 세이버, 랜스 등의 백병전 무기가 여전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당시 머스킷은 사거리와 정확성이 라이플(소총)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예를 들어 당시 유럽 최정예 부대 중 하나였던 나폴레옹의 군대가 주 무기로 사용한 머스켓인 Modèle 1777 corrigé(1777형 머스켓 개량형)은 훈련된 사수가 사람 크기의 과녁에 명중시키는 것이 가능한 최대 거리가 90m였으며, 최적의 상태에서 연사 속도가 분당 3회였다.[11]

그리고 100년 가까이 큰 발전이 없던 머스킷을 대신하여 전장식 라이플(소총)이 보병의 제식 무기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840년대이다.[12]미니에 탄이 도입된 라이플은 연사 속도 면에서 머스킷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었지만, 유효 사거리와 명중률 면에서 이미 기존의 활강 머스킷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런 라이플로 무장한 보병은 2백여 미터 거리에서도 적에게 효과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머스킷의 낮은 명중률을 보완하기 위해 집단으로 사격해야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전열보병의 장점은 거의 사라지고 단점만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오와열을 맞춰 진격해오는 군대는 그저 크고 느려터진 손쉬운 표적이 되어갔다. 집단으로 사격을 하나 따로 떨어져 각개전투를 펼치나 명중률의 차이는 없었다. 따라서 멀리서 나무나 바위뒤에 숨어 조준사격을 가하는, 오늘날의 보병전투와 비슷한 전술이 가장 큰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전술의 발전속도가 무기의 발전속도에 비해 느렸던 것이 부각되는 편인데, 크림전쟁 시기부터 대량으로 쓰이기 시작한 전장식 강선총은 구시대 적인 전술과 맞물려 엄청난 사상자를 유발하기 시작했다. 이때문에 남북전쟁부터 이미 북군이나 남군이나 할것 없이 은엄폐전투가 더욱 빈번해졌고, 보어전쟁에서 기존의 전술로 일관했던 영국군은 보어군의 게릴라 사격전에 엄청난 희생을 치루게 된다.

1860년대에는 연사 속도가 높고 장탄수가 많은 후장식 소총과 탄창식 소총이 보병의 주 무기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이 시기를 소총의 황금기라 부르기도 한다. 이제는 정예 기병조차도 소총 사격을 뚫고 접근하여 백병전을 펼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소총의 사거리가 구식 활강포(화포)의 사거리를 능가하게 되면서 대포가 보병의 밥이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13]

이 무렵 등장한 프로이센바늘총[14]의 위력은 유럽 열강에게 소총의 무서움을 절감하게 하여, 이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근대식 소총으로 무장한 보병부대를 운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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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육군 제식소총이었던 M1841 경뇌관총(leichtes Perkussionsgewehr), 별명인 Zündnadelgewehr(격발침 소총, 바늘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최초의 근대식 제식 소총이다.

그러나 무기가 근대화되었다고 해서 전술도 근대화되는 것은 아니라서, 상당한 기간 동안 많은 나라들은 전근대적인 돌격을 시도했었고 그 결과는 항상 처참한 대살육이었다. [15] 고성능 원거리 무기가 지배하는 1870년대의 전장(예를 들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은 그야말로 도살장을 방불케 하는 지옥이었다.

한편 유럽 밖에서는 아직 현대식 소총이 제대로 도입되지 않은 나라들도 많았다. 미국만 해도 스페인과의 전쟁(1898년)에서 보병용 총기로 흑색 탄약을 사용하는 단발 소총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에는 총기를 개발해 판매하는 수많은 개인 기업들이 존재했고, 이런 회사들은 개량과 혁신을 거듭하여 머지않아 유럽의 제식 소총을 능가하는 고성능 소총(과 권총)을 만들어 군대와 개인들에게 공급하였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전은 소총이 전장의 왕자로 군림하도록 오래 내버려 두지 않았다. 소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연사력을 가진 기관총은 보병을 압도하였으며, 라이플링이 된 포신을 가진 속사 강선포는 그 사거리가 소총을 크게 상회하여 공용화기[16]가 전장의 저승사자로 다시 군림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초에는 유럽의 전장에서 소총의 황금기는 이미 끝나 있었으며, 이후 전쟁은 한동안 참호, 고지, 철조망, 폭격, 자살에 가까운 보병들의 돌격 등으로 대표되는 아수라장의 양상을 띠게 된다. 1차 대전 동부전선 같은 사례를 제외한다면 참호와 진지를 제대로 구축한 상황에서는 적의 거점을 손쉽게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으며(1차 세계대전 당시의 서부전선과 러일전쟁 당시 203 고지, 보어전쟁 등이 좋은 예다.), 모든 전면전은 필연적으로 장기전, 소모전의 양상을 띠며 무수한 인명의 희생과 거대한 경제적 손실을 수반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를 혁파한 것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전차의 등장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기동전(소위 블리츠크리그, 전격전)이 대두되며 20세기 초의 장기전이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는 참호 안에 있는 병사들이 거의 다 죽고 나서야 사령부 및 요충지(도시 등)가 함락되었던 것과 달리, 장갑판을 두른 기병대와도 같은 존재인 전차들이 적의 방어선에 구멍을 뚫고 그 뒤로 보병의 후속타가 이어지는 블리츠크리그에서는 전투 개시에서 종료까지 1개월도 걸리지 않는 고속전이 일반화되게 된다.

이러한 기동전 전술의 출현을 근대전과 현대전의 경계로 보며, 이를 시작으로 항공기 근접지원, 전차와 보병의 협공, 보병 전투차, 헬리콥터를 이용한 적 후방 병력 투입 등 기술적 전술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술이 등장하면서 현대전이 우리가 아는 21세기의 전투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근대전에서 보병과 소총이 주 무기, 즉 중세의 워해머나 창, 검처럼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역할을 했던 것에 비해 현대전에서는 이러한 역할은 주로 전차와 항공기, 드론 등의 기계가 수행하며, 보병과 소총은 요충지 점령을 유지하는 일, 그리고 해머나 창검이 아니라 목표를 수술칼처럼 도려내는 정밀 작전의 수행을 주로 담당한다.


[1]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일본이건 우리나라건 대포를 총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총을 포라고 부르기도 하는 등 총과 포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일례로 우리나라도 천자총통처럼 대포도 총이라고 불렀다. 뭐, 영어에서도 건(gun)은 총과 포를 모두 지칭하기도 하다.[2] 여기에 대비되는 개념은 일단 화기에 대칭되는 냉병기(cold arms)가 있고, 개인화기에 대응되는 중화기(heavy weapons)가 있으며, 포병이 사용하는 화포류(cannons)가 있다. 일단 arms이라는 사람이 휘두르는 무기를 지칭한다. 중화기는 개인화기에 대비되는 무기로 보병부대에서 사용하는 무기를 말하는데 포병과도 대비된다. 박격포나 중기관총 같은 화기중대의 무기들이 여기에 해당되고 화포류는 포병이나 군함 등에서 쓰는 무기를 말한다. 냉병기와 화기를 합쳐서 부르는 상위 개념인 small weapons라고 할 경우 총화기만을 지칭하지 않고 개인 병장기를 두루두루 지칭하므로 보통 (미)군에서는 weapons보다는 firearms를 주로 쓴다. 현대전에서 토마호크(원주민 투척 손도끼)나 재블린(투창) 휘두를 일 없잖아? 대신 토마호크랑 재블린을 발사하겠지.[3] 롱 라이플, 롱 건이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롱이라고 붙일 필요 없이 그냥 라이플이라고 하면 장총 심지어 강선이 없어도 배럴이 긴 총을 죄다 라이플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올림픽 사격 경기에도 쓰이는 에어 라이플이다. 공기총은 무강선 총기로 라이플이라 부르면 안 되지만 올림픽에서 조차 Shooting 종목들 중 공기총 부문(airgun)에 air pistol경기와 air rifle경기가 있다. air long gun 하면 뭔가 구닥다리 같은 어감이긴 하다.[4] 핸드건에는 피스톨(총열과 약실이 붙어있는 권총.), 리볼버, 데린져 권총 등과 같은 하위 개념이 있다.[5] 총알을 총구에 넣고 장전하는 방식.[6] 그 당시의 사냥꾼들이나 현대의 전장식 라이플 마니아들이 이렇게 장전하고는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장전해도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라이플 경보병들의 경우 초기부터 페이퍼 카트리지를 썼을 가능성이 크다. 솔직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페이퍼 카트리지를 보급받거나 아님 개인정비 시간에 미리 준비하면 될 텐데 굳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쟁터에서 화약 양을 계량해서 넣는 짓 따위를 할 리가 없다.[7] 전 문서에는 나무망치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장전 시 사용하는 해당 공구의 명칭은 이 이름이 맞다. 애초에 용도도 때리는 용도가 아니라 손잡이에 달린 돌기로 헝겊을 감싼 탄을 밀어 넣는 역할을 한다. bullet starter 사진[8] 장전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헝겊으로 감싸 바느질한 총알을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9]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이 썼던 방법이다. 사격 속도를 최대한 올리기 위해 쓰는 임시방편으로, 원래 정석대로라면 꼬질대를 써야 한다.[10] 전 문서에서는 툭툭 넣는다고 되어 있는데, 원형탄과 다르게 미니에 탄은 강선에 걸려 쭉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꼬질대로 넣어줘야 한다. 남북전쟁을 묘사한 매체에서나, 당시를 재현하는 리인액터들도 장전 시 꼬질대를 쓴다.[11] 이전 본문에서는 당시 머스킷은 주무기로서 신뢰할 수 없었고, 머스킷을 통한 화력전보다 총검 등의 냉병기를 이용한 백병전이 더욱 확실하며 효과적인 전술이었다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이는 심한 오류이다. 18~19세기 전쟁은 기본적으로 머스킷과 대포를 이용한 화력전이 기본이었다. 병사의 무장과 장비, 군의 대형과 편제 모두 이에 초점을 두고 맞춰졌으며 나폴레옹이 즐겨 사용하던 종대돌격 등의 전술도 당시로서는 다소 변칙적인 전술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 총검에 의한 사상자는 2퍼센트 이하 정도에 불과할 정도였으며https://en.wikipedia.org/wiki/Bayonet 냉병기 사상자를 전부 합해도 15퍼센트를 넘지 못했다.http://egloos.zum.com/charger07/v/3619209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169468 기병의 주무기가 검이었고 추격임무까지 전담했음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라고 볼 수 없다. 당대 병사들의 수기에 따르면 총검과 기병도가 두꺼운 군모나 군복 때문에 큰 상처를 못내거나 흘려맞는 경우도 많았다. 머스킷 탄환에 비해 치명상률이 높다고 볼수도 없었으며, 총상이 치료하기 더 어려웠다.http://egloos.zum.com/GLOB/v/4191183 당연히 당대 장교들에게 있어 군의 화력은 우선적인 목표였으며 훈련과 교리를 통해 머스킷의 명중률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 이루어졌다. 통상적인 전투에서는 수시간에서 반나절 이상 사격전을 주고 받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통념과 달리 단순히 오와열을 맞춰 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뛰어다니고, 엄폐하고, 산병전을 벌이고 할 거 다 했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169696 이는 가능한 사격전에서 우위를 차지해보려는 노력의 일부였다. 보통 총검돌격은 사격전 끝에 적이 심리적, 물리적으로 무너지기 직전의 상황에서 이루어졌으며 기존의 인식과 달리 순식간에 끝났다. 이전 본문의 주장대로 머스킷이 도저히 주무기로 신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면 18세기 이후 기어코 갑옷을 도태시키고 유럽 전역의 필수 제식병기로 등극할 이유가 없다.[12] 이전 본문에서는 머스킷이 100년 가까이 별다른 발전이 없었으며 라이플이 보병용 무기로 등장한 것이 1840년대라고 언급되어 있었지만 이것 역시 오류이다. 머스킷은 17~19세기를 거치며 규격, 구경, 격발장치, 뇌관 등이 계속해서 계량되었으며, 라이플은 이미 18세기부터 경보병들에게 사용되었고 1775년 발발한 미국독립전쟁에서 활약한 바 있다.[13] 물론 지휘관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대포를 토벽 등의 진지로 보호함으로써 소총탄으로부터 보호하였다.[14] Zündnadelgewehr. 원래 이름은 "1841형 경뇌관총"으로, 종이로 싼 카트리지를 이용하는 후장식 뇌관 소총이다. 바늘총이라는 별명은 뇌관을 격발 하는 공이가 바늘 형태였기 때문에 붙은 별명.[15]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주요 참전국들은 사이좋게 참호를 뚫으려고 시도하다가 기관총과 철조망에 죽어나갔다.[16] Crew-served weapon. 병사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작동시키는 무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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