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6:45:30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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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그림이 그려진 금속제 카이트 실드

1. 개요2. 설명3. 역사
3.1. 한국3.2. 유럽3.3. 일본3.4. 현대
3.4.1. 군사적 목적3.4.2. 비군사적 목적
4. 사용법
4.1. 방패벽(Shield Wall)
5. 형태
5.1. 손잡이의 위치5.2. 재질5.3. 그림 및 장식
6. 종류
6.1. 과거6.2. 현대
7. 관련 어록8. 언어별 명칭9. 상징으로서의 방패 문양10. 가상 매체에서의 등장11.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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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투 중에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드는 병기.

의미의 확장으로, 사이언스 픽션에서 흔히 나오는 방어막같은 개념을 '방패처럼 적의 공격을 차단한다'는 의미로서 실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2. 설명

갑옷과 달리 방패는 적의 무기가 신체에 닿기 전에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다뤄서 피격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무구로, 다른 수동적인 방어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방패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이나 둔기, 화살 등의 충격을 더 효과적으로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갑옷을 입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게 전투할 수 있다.

방패는 흔히 방어적인 무기로 여겨지기 쉬우나 그 견고함과 크기를 적절히 이용하면 방패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무기가 될 수 있다. 우선 방패를 수비용으로 쓰다가도 필요한 경우 직접 움직여 묵직한 타격을 주는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시 이는 중세의 실전이나, 현대 경찰의 진압 방패 활용에서도 적용되었다.[1] 혹은 방패에 검이나 스파이크를 달아서 돌격용 방패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 그냥 방패를 디밀고 몸으로 돌격하는 게 곧 공격이다. 영화 300이나 트로이를 보면 방패를 방어 뿐 아니라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쓰는 액션씬이 잘 나와있다.

무엇보다도, 사용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 대단히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무기가 방패이다. MMORPG에서 검방전사가 하는 역할 때문에 얼핏 수비적이고 방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겠지만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로, "방어력이 상승해서 웬만한 피격에는 피해를 입지 않음" = "상대의 공격에 위축되지 않고, 내가 더욱 공격적으로 나갈 수 있음"의 등식이 성립하는 병기다.[2] 단순히 생각해봐도 적이 화살을 쏜다면 방패 없이는 엄폐물을 찾기에 급급하겠지만, 타워실드 하나만 있다면 정면으로 받아내며 돌격이 가능하다. 현대에서도 주로 실내전을 치르는 SWAT가 제일 선두로 나서는 포인트맨은 화력 끝내주는 기관총이 아니라, 주로 방탄 방패와 권총을 들고 진입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애초에 고대 그리스나 로마 병사들, 중세 기사들이 창과 방패를 같이 들고 돌격했음을, 그리고 그러한 방패 든 창병들의 돌격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생각해보자. 거기다 아래에도 설명되지만 제대로 된 갑옷을 갖추기 힘든 가난한 병사들이 '나를 한 방에 찌르거나 베어죽일 수 있는 무기를 든 적'을 상대할 때 방패의 유무 여부가 가져오는 심리적 영향은 막대했다.

고대에는 갑옷보다도 인기가 많은 방어구가 방패였다. 갑옷은 착용자의 신체에 정확히 사이즈를 맞춰야 하는 등 손도 많이 가고 재료도 많이 들어가서 무척 비쌌지만, 방패는 좋은 널판지나 철판 등을 튼튼하게 다듬어 주는 정도의 작업으로도 제구실을 다할 수 있어 충분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드는 방법이라고 해봤자 넓은 판때기 가운데에 손잡이만 달아놓으면 완성인, 아주 간단하게 제작할 수 있는 방어구였다. 그래서 갑옷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가난한 병사들이라도[3][4] 방패만은 갖출 수 있었다.[5] 이런 방패의 특징과 장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군대가 바로 로마군이다. 공화정 시기의 로마군은 귀족으로 구성된 지휘관과 대다수의 징병된 시민으로 이루어진 시민군이었기 때문에 전쟁시 소집된 시민은 스스로 무장을 갖추어야 했다. 이때 방패는 값싸면서도 목숨을 보호해주고 대강의 규격만 정해놓으면 생산하기도, 전장에서 운용하기도 편리하기 때문에 로마군의 필수장비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물론 방패와 갑옷을 둘 다 사용하는 편이 훨씬 생존률이 높기 때문에 로마군도 제정시대로 넘어가서 중앙보급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가급적 (싸구려로 타협하는 한이 있더라도) 둘 다 챙기는 방향으로 보급이 이루어졌다. 또한, 검투사 사이에서도 대부분의 검투사에게 방패를 쥐어준 것도 더 격렬한 전투를 유도하기 위함이며, 반대로 창과 그물을 사용하는 검투사에겐 방패를 쥐어주지 않는 것으로 밸런싱을 했다.

물론 다른 무기나 갑옷이 그러하듯, 방패도 장인의 손을 거쳐 제대로 만든 것은 매우 비싸서, 재력을 갖춘 기사 계급 이상이나 갖출 수 있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6][7] 물론 그렇게 제대로 만든 방패는 아이러니하게도 실전용이라기보다는 각종 귀금속과 정교한 세공으로 가문의 문장을 그려서 성에 장식하는 등의 용도로 쓰였다. 다른 무기와 마찬가지로, 방패 또한 기본적으로 소모품이기 때문에 실전용 방패는 장식을 최소한으로 하고 실용성에 중심을 둔 방패를 별도로 사용했다.

방패의 가치가 사라진 건 개인화기가 생겨난 후이지만 그 전부터 점차적으로 가치가 하락해왔다. 서양사에서 중장보병들이 위력을 떨치던 고대~중세 초창기에는 육박전이 주가 되는 전투 양상을 보였으므로 보병에게 방패가 가지는 의미는 지대하였으나 보병의 전술적 한계가 드러나는 중세기부터 점차 쓰이지 않게 되었는데 방패를 병용하는 보병진으로는 기병을 막을 수단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병에게 방패는 궁병들에게 사격각을 제공하고 보호하는 바리케이드의 역할같이 제한적으로만 쓰였다. 물론 방패 자체의 가치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서 조선군팽배수 등과 같이 여러 상황에 맞추어 재해석(여러 병과의 유기적 조합)되고 응용되는 사례도 상당히 있었지만, 방패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역할로 전투의 주가 되지는 못했다. 또한 중세 말엽에 접어들며 생산력 증가에 힘입어 갑옷 보급률이 높아지며 방패의 비중이 낮아졌다. 제철기술과 금속생산량이 떨어지던 고대엔 가벼운 갑옷+방패+한손무기 조합이 많았지만, 제철기술이 발전하며 묵직한 장검 등 양손병기, 전신을 보호해주는 갑주가 보급되며 팔 하나가 묶이는 방패 선호도가 낮아졌고, 아시아의 경번갑이나 유럽식 판금 갑옷쯤 되면 화살이나 가벼운 냉병기 정도로는 뚫을 수 없게 되었다.(당장 조선의 두정갑경번갑만 해도 화살이나 검 정도론 뚫리지 않는다.) 방패가 없이도 우수한 방호력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더더욱 방패를 버리고 양손으로 더욱 큰 무기를 드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결국 머스켓 등 개인화기가 보급되며 방패는 갑옷과 함께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래도 민간에서는 쓰임새가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개인 호신용으로 소드&버클러를 사용한 것처럼 소형방패들이 호신용이나 결투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지금도 화기를 쓰지 않는 전투에서는 방패가 현역이다.

그러나 전장에선 애저녁에 퇴역한 방패지만 현재까지도 소수 운용되는 등 여전히 쓰이고 있는데 이는 접근을 막는 등의 비위력적이고도 효과적인 저지에 탁월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시위 진압용 사각방패, 폭도 저지용 원방패 등 여러가지 비살상 무기들과 함께 사법 기관에서 쏠쏠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여전히 발전과 개량을 거듭하고 있다. 실제로 이 방패들은 적어도 본인의 몸 정도는 보호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SWAT이나 특수부대가 실내전에서 방탄방패를 운용하기도 한다. 이 경우 냉병기 전투에서의 적극적인 면모보다는 아무래도 수동적인 면모가 강조된다. 사실상 휴대용 벽인 셈. 작고 한손으로 휴대할 수 있는 것들은 보통 권총탄 정도를 막는데 그친다. 한편 두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묵직하거나 아예 바퀴가 달린 것들도 있는데, 바디 벙커라고 주로 불린다. 이런 방패들 중에서는 소총탄을 막아내는 종류도 있다.

3. 역사

3.1.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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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 3호분의 행렬도에 그려진 고구려군의 방패.
파일:국보275호도기기마인물형뿔잔우측면.jpg 파일:국보275호도기기마인물형뿔잔좌측면.jpg 파일:삼국시대 방패2.jpg
대한민국의 국보 제275호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과 묘사된 방패를 복원한 물건, 도자기에선 [8]과 방패, 갑옷마갑으로 중무장한 가야중기병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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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방패, 나무로 만든 방패에 쇠가죽을 두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왼쪽의 것은 장방패, 오른쪽의 것은 원방패이다.

한국의 경우 청동기 시대 암각화에 방패가 묘사되며 고구려 고분벽화나 신라가야 기마 토용에서 방패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구려 고분벽화 특히 안악3호분 행렬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방패가 보이는데, 작은 원형 방패, 타원형 방패, 위아래가 뾰족하고 긴 직육면체 방패 등이 보이며, 방패와 함께 창과 도검을 패용하고 있다. 특히 직육면체 형태의 방패는 일본 정창원에 있는 유물과 형상이 비슷하며, 일본과 교류가 있던 백제 역시 비슷한 방패를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정창원의 것은 나무로 만들어 테두리를 철로 둘렀으며, 겉에는 옻칠을 하였다.

고려시대는 자료가 빈약하지만,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를 다녀와서 쓴 기행문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수패(獸牌)라는 특이한 방패가 묘사되어 있다. 나무에 가죽을 덮어서 사자를 그려넣고, 방패 전면에 다섯 장의 칼날을 단 뒤 꿩 깃털을 붙여 칼날을 가리고 접근해오는 적을 찍어 버렸다고 한다.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데 애들이 갖고 노는 물건 같아서 화살과 돌을 막지는 못할 것 같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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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방패의 전면, 방패의 가장자리를 쥐는 "엔암스(Enarmes)"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장방패와 원방패를 사용했다. 장방패는 위는 뾰족하나 아래는 평평하여 유럽의 파비스처럼 땅위에 세워놓아 사용했으며 원방패는 보병이 환도와 같이 들고 사용했는데 방패를 든 병사는 팽배수라 불리며 전면에 서서 적 화살을 막아냈다고 한다. 둘다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테두리에는 철을 둘렀고 전면에는 주로 짐승의 그림을 그려넣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명나라를 통해 들어온 등패를 사용하게 된다. 무예도보통지에 등패 운용법이 잘 나오는데, 휘두르는 칼을 막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가볍다고 한다.[9] 그러나 이 등패는 가벼워서 타격기에 약해 곤방으로 후려치면 뒤집어져 무력화된다고 적혀있다. 사실 등패수가 쓰이는 원앙진 자체가 조합을 중시하는지라 조합만 잘 되면 큰 걱정은 없긴 하다.

3.2. 유럽

유럽에서도 방패는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호플리테스들은 상체를 모두 가릴 수 있는 큰 원형 방패(아스피스)를 들었으며, 로마 군단병은 크고 직사각형인 스쿠툼을 사용했다. 심지어 갑옷을 안걸쳤을 것 같은 소위 야만인들도 방패는 대부분 사용했으며 대체로 위아래로 긴 타원형의 방패를 애용하였다.

갑옷을 입지 않았던 그리스군 경보병도 '경방패병' 이라 해서 크고 가벼운 방패(펠타)를 썼는데 이는 사격전에서 투사체 방어용으로, 주로 가벼운 화살을 막는데 썼다고 한다.

스쿠툼은 로마군의 주력 무기가 글라디우스에서 스파타로 바뀌면서 다시 원형(파르마)으로 변했으며, 이는 중세로 넘어가며 라운드 실드로 발전했다. 보통 방패의 손잡이가 정중앙에 하나가 달린 센터그립형이 많았는데, 방패의 면을 앞으로 내밀고 막기도 하지만 모서리를 앞으로 내밀어서 밀거나 때려서 상대의 방패를 제껴 빈 틈을 만들어서 거기로 창이나 검을 쑤셔넣는 전법도 사용했다.

그런데 사실 라운드 실드를 직접 들어보면 좌우로 너무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다. 방어는 좋아도 사용자의 팔 역시 걸리적거리게 된다. 그래서 좌우 튀어나오는 부위를 자르고, 아래쪽으로 길게 늘려서 다리를 보호하게 만든 카이트 실드의 모양으로 변해가고, 손잡이도 센터 그립에서 팔목과 손잡이로 지탱하는 엔암스 방식으로 변해간다. 손잡이에 관한 것은 아래쪽에서 자세히 서술되어있다. 이 과정에서 그냥 라운드 실드 자체를 적당히 작게 만든 변종들도 주류는 아니었지만 등장했다.

파일:Shields.jpg
13세기 경, 이후 하체를 보호해주는 판금제 그리브 같은 방어구가 슬슬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기사는 더이상 다리까지 카이트 실드로 막아줄 필요가 없어진다. 때문에 방패의 크기는 줄어들고 카이트실드에서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튀어나왔던 아래쪽 부위도 잘라내는 형태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히터 실드이다. 14세기가 되면 카이트 실드는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이때에는 방패에 문양으로 장식하여 개개인을 나타내었다. 비단 방패 뿐만 아니라 갑옷 위에 걸치는 서코트라든지, 투구 장식 같은 식으로 기사들은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드러내서 전장에서의 전공을 뚜렷하게 남들에게 보여 검증받고 강한 인상을 남기려 했다.

그리고 기마병이 전신에 판금 갑옷을 두르게 되면, 이제는 방패보다는 양손무기, 특히 창을 쓰는게 효과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방패 사용률이 낮아졌다. 물론 전장 한켠에서는 여전히 화살 방어용 특히 한편으로는 파비스맨틀리트 같이 설치해서 투사 무기를 받아내기 위한 용도의 방패가 있었고[10], 방어구가 부실한 병력용, 그리고 기마전 시에 조금이라도 더 막아주기 위해서 방패를 사용하기도 했다. 판금 갑옷의 절정기가 되면 기마전용 방패는 아예 어깨나 팔 같은 부위에 고정하는 작은 것만 남는 일도 있었다.

버클러는 이것과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 일반적인 방패는 방어력은 좋아도 휴대성은 좋지 않아서 항상 갖고 다니기엔 힘들었다. 그래서 일종의 휴대용 방패로 고안된 것이 버클러다. 주로 호신용 한손검과 같이 운용했으며, I.33 같은 중세 검술 서적에 이 소드 앤 버클러 검술이 잘 묘사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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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방패로 가자면, 탈호퍼 검술서에서 나오 사람 크기의 거대한 방패(듀얼링 실드)도 있는데 이건 아예 지면에 세로로 세워놓고 한손검으로 운용하거나, 양 손으로 방패를 잡고 방패 모서리의 뾰죽한 부분이나 가장자리의 갈고리로 적을 걸고 당기고 치는 용법을 지니고 있었다. 이름대로 결투에 특화된 것이라 전장에서는 잘 쓰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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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방패라고 하면 팔을 가로로 놓았을때 세로로 긴 스타일이 많다. 카이트 실드나 히터 실드가 이런 형상이다. 팔이 편하도록 약간 각도를 더 주는 일은 있지만, 대체로 각도가 꺾인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방패가 팔과 평행한 방향으로 긴 방패도 가끔 있는데 유럽의 경우 헝가리식 방패가 이런 타입이다. 이 타입의 방패 중 큰 것은 팔을 세로로 세웠을때 위쪽 모서리가 목과 얼굴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기다란 경우도 있다.

한편 방패를 들면 무기를 쓰는 법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서양 검술에서는 방패를 사용하는 기법도 상당히 연구했다. 소드 앤 버클러는 방패 검술의 중요한 일부분.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누르는 기법, 상대의 방패를 눌러서 막지 못하게 하는 기법, 그리고 나와 적의 방패를 피해서 공격을 밀어넣는 법이 방패 검술의 주요 핵심. 말하자면 맨손 무술의 전법, 특히 그 중에서도 앞손으로 견제를 하고 뒷손으로 결정타를 넣는 권투와 유사하다. 게임이나 영상매체에서는 방패를 주로 몸에 붙이고 있지만 검술서적에서는 다들 권투선수의 주먹처럼 방패와 한손무기를 함께 앞으로 내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형 방패, 소형 방패에 검을 섞어쓸 뿐만 아니라 한손으로 들 수 있는 단창과 방패를 같이 쓰는 일도 흔히 있다. 당연히 도끼나 철퇴도 해당된다. 그림 사료만으로 보자면 한손 무기는 대부분 다 방패와 무난하게 사용 가능하다.

3.3. 일본

5세기 이전 조몬 시대야요이 시대엔 한 손으로 장비하는 전형적인 방패를 사용했다. 하지만 5세기에 일본에 이 전래되어 기병이 등장하게 되면서 전투양상이 보병 간의 접근전에서 기마병이 중심이 되는 전투로 크게 변화하게 된다.[11] 마상에서 긴 창이나 활을 사용하면서 방패를 손에 들 수는 없으니 방패 역시 형태가 크게 변화하여 갑옷에 직접 탈부착 할 수 있게 된다. '소데'라고 불리는 오오요로이의 어깨부분에 평평한 사각형 부분이 바로 그것으로, 비슷한 유형의 방패로는 유럽의 타지가 있다. 갑옷의 일부분으로 보여 사무라이들은 방패를 쓰지 않는다는 오해도 생겨났지만, 형태가 바뀌었을 뿐 원거리 공격을 방어하는 장비로서의 방패는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쓰인 셈이다.
파일:타케타바.jpg
전국시대의 대나무 다발 방패 타케타바

한 편으로 화살 등을 막기 위하여 철포 전래 이전에는 파비스 형태의 설치형 방패 카키타테(掻盾)를 사용했고, 철포 전래 이후에는 대나무 다발을 엮어서 만든 타케타바(竹束)를 사용했다. 타케타바는 속이 빈 대나무의 가벼움+공간장갑 효과에 대나무 다발이 벌집구조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방어력까지 더해져 철포 탄환을 막아내는데 기존의 나무방패보다 더 효과가 좋았는데, 일반적인 교전거리에서 철포의 탄환이 관통할 수 없었던 경우가 대다수였다. 동시기 아시가루(말단 병사)는 목제(이후 철제로 변경) 삿갓인 진가사(陣笠)를 방패 대용으로 사용했다. 버클러나 소형 방패급에 해당하는 방패가 존재하긴 했다는 사료도 드물게 있으므로 일본에서 손으로 장비하는 방패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관련 자료 그래서인지 아시가루 중에서는 진가사 2개를 갖고 다니면서 하나는 투구, 다른 하나는 방패로 각각 사용하기도 했다.

중종 조에 왜구가 방패와 급조한 차일을 설치해 아군의 접근을 막자, 최임이 녹각목으로 왜구의 접근을 차단하고 왜구의 방패와 급조한 차일을 안동 아재들의 돌팔매질로 격파한 적이 있지만, 당대의 평가에 의하면 안동 아재들은 석전놀이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조선의 석전놀이는 그냥 돌을 던지는 것 뿐만 아니라 흉악한 관통력의 줄팔매는 물론 메주만한 크기의 돌을 날리는 망팔매 등 별의 별 흉악한 도구를 다 동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방패가 약해서 털린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3.4. 현대

3.4.1. 군사적 목적

냉병기가 사라진 현대 전장에서는 방패의 필요성이 사실상 사라진 것과 다름이 없다. 현대 돌격소총은 꽤나 먼 거리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관통력을 발휘하며,[12] 포병과 기갑, 항공 장비가 크게 발전하여 정규군 간의 전면전에서는 방패가 아예 쓸모가 없는 수준까지 왔다. 애시당초 16세기나 17세기 화승총만 되어도 갑옷과 방패를 도태시켰는데 현대라면 말할 것도 없다. 소재공학이 발전했다지만 그건 총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상당한 면적에 거의 완벽한 방호를 제공하는 방패를 효율 좋게 쓸 수 있는 일부 군사 및 경찰 조직에서는 여전히 방패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실내전을 위주로 하는 경찰특공대나 특수부대. 상술했듯 개활지의 전면전에서는 워낙 방패를 무력화하는 무기가 많기 때문에 방패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실내전에서는 상호간의 화력이 끽해야 산탄총이나 소총 정도로 제한되기에 방패의 방호력이 유의미하게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실내의 좁은 공간이라면 큰 방패 하나로 복도 하나, 방 하나를 막아낼 수도 있게 되므로 구역을 점거하기도 훨씬 쉬워진다. 즉 방패가 있으면 적어도 부대원들의 희생을 줄일 수가 있다.

파일:external/www.englands1.com/leveliiitrolley2_ballistic_shield.jpg
총탄을 막아내기 위한 방패도 있다. 방탄 방패(ballistic shield), 혹은 보디 벙커(body bunker)라고 불리며 한팔로 들 수 있는 가벼운 것은 권총탄이나 산탄 정도를 막는 레벨 IIIA 급의 성능이다. 사용자가 휴대할 수 있다고 해도 작은 방패가 5kg, 큰 방패는 10~15kg대의 꽤나 무거운 무게를 가지고 있다. 정규군보다는 대테러부대SWAT 등 건물 내부로 돌입해야하는 특수부대들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돌입조 선두의 포인트맨이 방탄 방패로 자신과 팀원을 보호하면서 돌입한다. 방패에 한 손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포인트맨은 레이저 사이트를 장착한 권총이나 기관단총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방탄방패에는 방탄유리로 투명한 창을 만들어두기도 한다.

소총탄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있는데, 방탄복에 삽입하는 소총탄 방어용 방탄판이 그렇듯이 억소리 나게 무겁다. 전신을 가릴 정도의 소총탄 방탄 방패는 50kg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밑에 바퀴를 장착해서 밀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방탄복과 같이 기술의 발달로 무게가 매우 가벼워진 소총탄 방탄 방패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기와 함께 들고다니기는 무리다. 권총 정도나 함께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 그나마 들만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거의 10kg에 달한다. 더구나 주요 부위나 가릴 정도로 작아서 방패역할을 제대로 못할 정도.

중세 기사들의 갑옷이 1-2mm였는데 화승총에 뻥뻥 뚫렸고, 2차대전 탱크를 개조할 때 1cm 추가장갑 장착했다 엔진이 터진다고 비명을 질러대곤 했는데, 소총탄 방어하는 방탄복 플레이트가 15-25mm 쯤 되니, 총탄을 방어하는 방패는 사람이 운반하는 게 불가능하다 보면 된다.

이스라엘에서 접었다 펴는 간이 방탄 칸막이 같은 느낌의 군용 방탄 방패 아이디어 상품을 낸 적이 있지만, 그다지 호응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방탄 방패를 제한적으로 시험한다는 말도 있지만 감감무소식. 사실 이런 물건들은 오래 전 제1차 세계 대전참호전을 돌파하기 위한 수많은 몸부림 중 이미 써 본 물건들이고, 그때도 채택되지 않았다(...).

방패가 현대의 정규전에서 이용되지 않는 것은 전술적 이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현대전은 병사 개인이든 부대 단위든 '기동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소총탄을 막을만큼 두꺼운 방탄방패는 너무 무거워 기동력을 다 잡아먹어버린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리고 막을 수 있는 방향도 한정되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제한되기 때문에 오히려 사용자에게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량장갑차로 소총탄과 파편을 충분히 막을 수 있고, 기동성까지 챙길 수 있으므로 굳이 방패를 선택할 이유도 없다.

더구나 현대전장은 기동전 뿐 아니라 화력전으로 패러다임이 바뀐지 오래이다. 소총탄을 막는 물건이 있으면 기관총을 긁어 버리고, 기관총으로 안 되면 유탄을 쏘아대고, 그것도 안 먹히면 박격포를 쏘거나 본격적인 포병사격을 요청하거나 전차를 끌고 오고, 그마저도 소용없을 때는 미사일을 쏘거나 항공기를 동원해 폭격을 퍼붓는 일이 자주, 그리고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이런 거창한 지원이 없이 보병전에서도 기관총을 갈겨 경장갑차를 파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수류탄 하나 던지면 개인이 휴대하는 방패 따위는 무력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방패를 아무리 힘들게 들고 와 봤자 아무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파편 등에 대한 방호를 위해 포방패 등의 형태로 방패의 개념이 어렴풋하게나마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장갑차와 같은 중장비에나 붙이는 액세서리 개념이라 전통적인 방패로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기술의 발전으로 화력이 엄청나게 강해진 현대에 정면으로 막기는 최후의 수단이고 그 이전에 회피, 그 이전에 은폐를 우선적인 방어 수단으로 사용한다. 요약하자면 전투에선 막는 것보단 안 맞는 게 더 좋고, 그보다도 아예 공격을 안 받는 게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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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파리 테러 당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바타클랑 콘서트장에서
27발의 총탄을 막아낸 BRI의 방탄 방패
하지만 SWAT이나 대테러부대 등 건물에 돌입해야 하는 특수부대는 방탄 방패를 절찬리에 사용 중이다. 건물을 청소하려면 중화기를 가져오거나 기갑, 항공 병과의 도움을 받아 잔해더미로 만드는 게 최고지만 그런 방법을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저런 수단을 동원할 수 있어도 정보 수색이나 사살 확인을 위해 사람이 직접 진입해야 하는 상황도 있는 법이다. 특히 자국, 우호국 도심에서 작전해야 하는 위 조직들은 거의 100%로 중화기는 꿈도 못 꾸고 직접 진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단 문으로 진입을 해야 하는데, 집 안에서 버티고 있는 적대자는 그러한 좁은 곳에 화력을 집중하기 쉽고, 따라서 선두에 서는 대원이 벌집이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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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5일 타이완 합동 대테러 훈련 중
방탄 방패를 들고 콘서트홀로 진입하는 벽력소조, 유안특근대 대원들
그래서 건물 내에서 특수부대가 작전시, 최선두의 포인트맨이 방패를 들고 총알을 받아내며 전진하는 동시에 나머지 대원들이 그 뒤로 줄줄이 진입하는 식으로 방패를 사용한다. 작전 시간이 몇 일씩이나 될 수 있는 야전에 비해서 몇 분 이내로 아주 짧게 끝나므로 방패가 무거워도 견딜 만하며, 좁아터진 건물과 방 내부에서 총격전을 벌여야하는 상황에서 방패가 본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렇게 실내전에서 사용하는 방패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상체만 가릴 정도로 작은 사이즈가 많고, 한 팔로 들고 다른 손으로는 권총이나 작은 기관단총을 들고 운용한다. 이럼에도 무게가 무거워서 외골격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상대방의 저항이 격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위 BRI처럼 확실한 방호를 위해 바퀴달린 바디벙커를 끌고 다니기도 한다.

3.4.2. 비군사적 목적

그러나 비 군사적영역으로 들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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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경찰시위 현장에서 시위대를 방어하는 데 사용하는 진압 방패는 굉장히 중요한 장비로 일선에서 활용되고 있다. 시위대의 투석과 둔기를 막아낼 뿐만 아니라, 스크럼으로 방패벽을 만들어 시위대를 (비공격적으로) 차단하고 밀어내고, 상황에 따라 포위하기 위한 방어구로서 이만한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한손용과 양손용이 있으며,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 가볍고 투명한 방패도 많이 쓰이는 편. 다만 게임에서의 묘사와는 달리 실탄에 대한 방탄 능력은 없다. 권총탄 한 발도 못 막아낼 정도.. 였으나 일부 소구경 권총탄 정도는 막을 수 있는 방패가 제품으로 나오긴 했다. 진압 방패 문서 참조. 다만 전경 전역자 말에 의하면 신형 방패는 때리는 시위대 보호용이지 막는 전경 보호용이 아니라 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호신용 방패도 존재하며 여전히 매우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다. 충분히 상술되었듯 방패는 이미 그 자체로 대단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가진 무기일 뿐더러,현대인은 기본적으로 방패를 든 상대와 싸워 본 경험이 전무하다는 게 핵심 포인트다. 이는 유도검도 등 무술이나 무기술을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가 아닌데,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무술이 살상용 뿐만 아니라 스포츠로도 변했기 때문에, 냉병기 혹은 맨몸으로 방패를 든 상대를 상대하는 기술 자체가 스포츠의 영역에서는 도태되었기 때문이다.[13] 게다가 방패는 방어용 도구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둔기나 날붙이와 같은 명백한 공격용 무기들에 비해 법적인 문제에서도 훨씬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평범한 회전의자로 무장(?)한 남성 세 명이 칼을 든 은행 강도를 일방적으로 제압한 사례도 있었다. # 의자의 쿠션이 가진 방어력 및 손잡이가 주는 압력 뿐 아니라, 스파이크와 같은 견제효과와 긴 리치까지 가진 의자 다리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보블비사의 하드쉘 가방 등을 이용한 호신술 등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대략 이런 식.

그리고 유사시에 책상을 엎어서 방패로 활용하거나 의자의 앉는 부분을 방패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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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구권에서는 나이트스탠드(베드사이드테이블)를 적절히 개조한 이런 신박한 물건(Self-Defense Decor)을 팔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처럼 방패 또는 그 대용품(손잡이가 달린 판자 등), 그리고 적절한 몽둥이를 손이 빨리 갈 수 있는 곳에 미리 준비해 두고,[14] 간단한 훈련 및 기초 체력만 꾸준히 갈고 닦아 놓는다면 유사시 (쌍방 모두) 위험 부담을 줄이면서[15] 침입자를 쫓아내거나 제압하는데 충분하니 참고해 두도록 하자. 단검 들고 몰래 기어들어갔는데, 고대 중무장 보병이 환영해준다니 여기에 사슬갑옷도 미리 챙겨두자. 그러면 살인마vs시민이 아닌 경보병vs중보병이 된다.

4. 사용법

일단 방패를 들면 생각보다 꽤 넓은 범위를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공격자는 방패를 부술 수 있는 중병기를 사용하거나, 방패 범위 바깥으로 노출된 머리나 사지 정도나 공격할 수 있다. 심지어 이것도 숙련된 방패 사용자가 적절히 대응하면 기껏해야 다리나 노려봄직 하다. 그리고 방패를 들면 심리적 안정감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훨씬 안정적으로 공세에 나설 수 있다. 방패 하나만 들면 초보자가 대충 들이대도 적의 반격을 대부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겁쟁이용사로 만들어준다고 할 정도.[16] 무엇보다도 방패를 들면 보병의 천적인 화살, 투창, 투석등 투사무기에 대한 방호력을 제공해준다, 방패가 없다면 이러한 무기들이 날아오는 족족 몸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다.[17]


중세병기를 다루는 유튜버 Skallagrim의 강좌영상


Achille Marozzo의 스파링 동영상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보다 역동적인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서 보다 크고 과장된 동작으로 방패와 칼을 휘두르고, 칼과 방패가 따로 노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움직이면 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 첫번째 강좌영상에서도 나오지만, 칼로 상대를 공격할 때도 칼을 쥔 손을 보호하기 위해 방패로 감싸며 공격하고, 칼을 쥔 손보다 방패를 쥔 손이 앞서 나가며 손을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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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매체에서는 방패를 밀착해서 정면을 향해 쥐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면에서 봤을 때 살짝 비스듬하게 옆으로 약 45도 정도로 틀어서 쥐고 있어야 정면에서의 공격을 미끄러뜨릴 수 있고, 자신의 상반신과 특히 무기를 쥔 손을 더 많이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내뻗기 쉽게 만들어서 상대를 보다 안전하게 공격할 수 있다. 때문에 방패벽을 제외하면, 방패를 정면으로 쥐는 사용법은 되려 전투에 불리한데, 실제로 대부분의 삽화에서 전사들은 정면에서 봤을 때 방패를 옆으로 비스듬히 쥐고 있다.

방패를 들면 각각 다른 무기와 맞붙었을 때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다. (방패를 가진 쪽은 모두 단(短)병기만 들었을 때의 예)
  • 공격자 장병 vs 방패 단병
    투핸디드 소드, 양손 도끼, 폴암 같은 무기는 간격으로든 무게로든 방패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방패-단병 조합의 경우 장병기의 첫 타격을 방패로 흘리면서 장병 간격 안으로 뛰어들어가 공격할 수 있다. 따라서 물고 물리는 관계라 할 수 있다.
  • 공격자 중(中)병 vs 방패 단병
    무게나 길이가 적당하고 올레인지로 싸울 수 있는 롱소드 급의 무기를 말한다. 이런 무기들은 방패가 막아주기 어려운 아래쪽 다리나 방패 너머의 머리를 노리면서 밀고 들어오는 방패를 피해 적극적으로 뒷걸음치며 짤짤이를 하거나, 방패 모서리 걸어서 당기기 같은 빈틈 만들기를 하는 것이 주 전략.
  • 공격자 단병 vs 방패 단병
    그냥 답이 없다. 일단 때릴 데가 없다. 방패와 간격이 동일하기 때문에 공격을 하는 순간 방패에 막히는 동시에 반격을 받는다. 한손 무기로는 아무래도 질량 타격으로 밀어붙이기도 힘들고, 기술을 걸려고 해도 방패의 공격범위 안이라 기술 거는 동안에 맞아 죽기 십상. 결국 단병이 방패를 공략하려면 똑같이 방패를 들고 나와서 상대하는 것이 최적, 또는 머리를 공격하는 것처럼 페인트를 걸어서 상대가 방패를 들어올리게 유도해 방패의 시야를 차단하고 다른 오프닝을 때려야 한다. 다만 방패 측 역시 이런 것에 익숙한 편이기 때문에 반격 받을 공산이 크다.
  • 방패 vs 방패
    방패가 막아주는 몸통의 막대한 영역을 서로 쉽게 치고 들어갈 수 없으니 방패가 가려주지 못하는 부위, 대개 허리 아래의 허벅지나 몸 아래를 막으면 비게 되는 머리 부위를 넘겨치려고 온갖 수를 다 쓰게 된다. 방패가 활발히 쓰이던 중세 이전, 혹은 초기의 전장에서 유골을 찾아 분석해본 결과 다리와 머리에 부상이 집중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것을 어느정도 막을 정도로 방패 숙련이 쌓인 사람끼리 싸우면, 상대 방패 가장자리를 내 방패 모서리로 밀어서 젖혀지도록 빈틈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칼을 쑤셔넣는 식의 고급 기법이 등장한다. 이걸 또 카운터하기 위해서 방패를 밀기 어렵게 모서리를 상대 방향으로 내세우다가 쑤셔들어오는 칼과 방패를 동시에 눌러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봉쇄한다든지 하는 기법등 방패술에 관해 다루는 것도 초급부터 상급 수준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방법이 줄줄이 들어간다.

단점은 방패가 본인의 시야도 가린다는 것으로, 움츠러들며 주도권을 넘기는 게 아니라 방어력을 믿고 밀어버리라는 조언이 있다. 현대의 '탱크' 와 유사한 셈.

4.1. 방패벽(Shield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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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팔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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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테스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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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채널의 드라마 바이킹스에서 묘사된 바이킹의 방패벽. 이 방패를 담당하는 전사들을 Svinfylking- 멧돼지 전사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말그대로 보병이 방패로 벽을 세워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전술이다. 방패 하나 만으로도 전투력에 크게 기여하는데, 이것을 체계적으로 훈련하여 여러 병사가 같이 들면 그 방어력은 그야말로 성벽과 같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커다란 인상을 남겨주었고, 고대 그리스 시대의 팔랑크스나 고대 로마의 테스투도 전술은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였다. 굳이 몇몇 특정 문화권에서만 쓰인 게 아니라, 보병이 방패를 들고 적 투사무기에 저항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전술이라 고대 수메르 때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쓰였다. 화살이나 돌, 투창 등의 투사무기로부터 보병을 잘 보호하고, 대열도 촘촘하여 압도적인 힘이 없으면 정면에서 뚫는 것은 힘들었다.

흔히 알려진 편견과 달리 유럽은 서로마의 멸망 이후에도 한동안 방패벽 전술이 자리 잡았고, 기병이 주력이 되었던 중세-근세때도 방패벽 자체는 이어져서 바겐부르크까지 응용되며 이어졌다.

다만, 방패벽을 이루면 공통적으로 대열이 너무 촘촘하여 이동속도가 평상시보다 매우 느려져 기동력이 떨어졌고, 또 대개 대열을 구성하다보면 정면부나 왼쪽 측면에서는 방패가 촘촘하지만, 무기를 쥔 오른쪽이나, 후방은 방패로 보호되지 않아 투사무기의 공격에 취약한 면모도 보였다. 레카이움 전투에서는 아테네 경보병들이 방패를 든 스파르타 중보병들을 그렇게 패배시키기도 하였다. 물론 지휘관이 포진을 잘 짰거나, 원진을 짤 경우 후방이나 측면은 보호되었고, 또 대열이 워낙 촘촘하다보니 기마병의 돌격으로부터도 강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

진짜 약점은 도리어 장창을 든 보병을 상대할 때인데, 투사무기에는 잘 저항해도, 정면에서 창병 여럿이 거리의 이점을 두면서 장창으로 찌르는 것에는 취약하였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단창인 도리와 큰 방패를 든 호플리테스가 이런 이유로 보조병력으로 전락하고 사리사를 든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가 보병 주력이 되었으며, 고대 로마 시대에도 비록 로마군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큰 방패를 든 로마군은 장창을 든 마케도니아군을 상대로 정면에서는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세말~르네상스 초기의 유럽에서도 같은 이유로 방패를 든 병과가 폐지되고 창병과 총병으로 대체되었다.

동아시아에서도 오래전부터 방패를 든 보병이 방패벽을 이뤄 싸웠는데, 춘추전국시대 모순 일화에서부터 방패와 창을 든 보병에 대한 흔적은 여럿 보이고 한국에서도 안악3호분 행렬도에서 방패와 창 혹은 검을 쥔 병사들이 눈에 띈다. 특이하게도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방패를 든 보병이 폐지되는 양상이었지만, 명나라 때에 중국 장수 척계광이 고안해낸 12명의 분대전술인 원앙진은 방패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전술이었고, 이후에도 창병이나 아군 보호를 위해 방패를 든 병사가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다(이는 당시 척계광이 상대한 적이 남중국을 약탈하던 왜구로, 대규모 회전보다는 수십~수백단위 소규모 보병전 위주고 화포와 기병 등이 적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방패수의 역할은 방패로 막을 뿐만 아니라 방패로 밀쳐서 후방의 창병이 찌르기 쉽게 돕는 소위 넉백까지 담당했다. 조선의 방패 전술들은 팽배수등패 항목 참조.

현대에는 시위대와 격돌할 때 방패벽을 사용하곤 한다.

5. 형태

5.1. 손잡이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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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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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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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그립과 엔암스를 겸하는 형태.

크게 중앙에 손잡이가 달린 센터 그립(Center Grip)방식과 엔암스(Enarmes) 혹은 스트랩(Strap)방식이 있다. 센터 그립은 문자 그대로 방패 정중앙에 딸랑 손잡이 하나가 달린 방식이고, 엔암스는 방패 가장자리에 손잡이가 있고, 팔목을 잡아주는 띠가 있는 형태다. 고대 그리스의 호플리테스나, 중세의 카이트 실드, 히터 실드 등은 엔암스 방식의 손잡이를 취하고 있고, 로마의 스쿠툼이나, 바이킹의 방패, 중세의 버클러는 모두 센터그립형이다. 센터그립형 방패에는 손잡이 부분을 더 돌출되고, 덧대어 강화한 Boss라는 부위가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엔암스 방식에도 보스가 달린 경우가 많았으나, 장식적인 역할이거나, 나중에 사라지기도 하였다.

방패의 손잡이 모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센터그립과 엔암스가 거의 항상 병행 공존하였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다.[18]

우선, 센터 그립은 팔을 뻗는 것에 중점을 둔 방패다. 방패를 쥔 손이 방패의 정중앙에 있어서 상대의 무기로부터 손이 확실하게 보호되고, 손잡이가 중앙에 있기 때문에 방패로 공격하면, 엔암스보다 먼거리에서 모서리로 상대방을 때리기가 수월하다. 방패로 상대를 가격할 때 방호면적이 줄어들어 빈틈이 생기지만, 빈틈이 그리 크지는 않다. 손잡이가 하나이기 때문에 손목과 팔꿈치까지 방패에 메여있는 엔암스 방식 보다 더 다양한 각도로 더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고, 특히 다방면에서 날라오는 화살이나 투사무기를 막을 때 이점이 두드러진다. 더불어 엔암스 방식에 비해 방패가 상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투창이나 화살이 방패를 꿰뚫더라도 바로 부상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근접전에서도 팔을 뻗는 방어는 빛을 보는데, 특히 버클러가 근접전에서의 센터 그립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패. 센터 그립 구조 상 정권을 치듯 팔을 쭉 뻗어 상대방에게 방패를 들이댈 수 있고, 그러면 상대의 관점에서는 원근감의 차이 및 기하학적으로 방패가 가리는(방해하는) 면적이 크게 된다.

단점으로는 첫째, 상대가 방패 가장자리를 타격하면 특히 둥글고 평평한 방패는 뒤집혀져서 빈틈이 노출된다. 그중 안쪽으로 뒤집혀서 바깥쪽인 사각 즉 신체의 뒷면이 노출될 위험이 크다. 둘째로, 상대가 방패 가장자리를 잡고 비틀면 특히 크기가 작은 버클러의 경우 방패손잡이를 계속 쥐고 있으면 손목이 꺾이면서 빈틈이 노출되거나, 꺾이지 않으려고 손을 놓다가 방패를 놓칠 수 있다. 셋째, 오로지 손으로만 쥐기 때문에 팔을 움추리고 방패를 몸에 기대어도, 손목이나 손에 피로가 많이가고 오래 들고있기 불편하며, 그 때문에 방패의 크기나 무게 또한 더 무겁게 만들기 힘들다.

엔암스는 팔을 당기는 것에 중점을 둔 방패다. 팔꿈치와 손 일체가 방패에 메어있어 일단 팔만 오므려도 상반신 전체를 이용하여 방패를 지탱하기 때문에 손과 팔의 피로감이 훨씬 덜하다. 덕택에 센터그립보다 더 무겁고 큰 방패를 들 수있다. 게다가 손으로만 지탱하는 센터그립형과 달리 팔 전체로 방패를 지탱하기 때문에 상대의 타격에 방패가 뒤집힌다거나, 방패를 잡고 돌린다고 해도 센터그립형처럼 쉽게 손목이나 팔이 꺾이지는 않고, 꺾인다고 해도 보다 많은 근육과 관절이 개입하기 때문에 저항하기가 더 쉽다.

반대로 손이 방패 가장자리에 있어 센터그립형보다 방패를 쥔 손이 다칠 위험이 크고, 방패로 상대를 가격할 때에도 모서리와 방패를 쥔 손의 위치가 그리 멀지 않아, 센터그립처럼 거리의 이점을 살리면서 때리거나 면을 밀어붙이기 힘들다. 게다가 손으로만 잡는 센터그립과 달리 다양한 각도로 방패를 움직이기 힘들다. 더불어 방패를 상체와 가까이 쥐는데다 손목을 이용해 방패를 같이 쥐기 때문에, 화살이나 투창이 방패를 꿰뚫을 경우 팔과 함께 상체가 다칠 위험이 비교적 더 크다.

5.2. 재질

냉병기 시대에 사용된 방패의 재질은 주로 나무였다. 로마군은 목재조직을 얇게 핀 다음, 가로와 세로로 겹치어 마치 오늘날의 합판처럼 방패를 만들었고, 바이킹은 잘 쪼개지지 않는 참나무속으로 방패를 만들기도 하였다. 널빤지를 나란히 놓고 접합하는 형태의 경우, 널빤지 모서리끼리 접하는 각도가 취약하기 때문에 (뻔히 보이는 이 선을 노리고 후려치면 방패가 접히거나 칼이 깊게 박힌다) 널빤지 판을 두 겹 90도로 교차하게 겹쳐서 내구성을 보강했다. 또한 방패 겉면에 색을 칠해서 널빤지 경계선이 안 보이게 하거나, 널빤지의 각도와 어긋나는 선을 그어서 상대방이 널빤지의 취약점을 보고 노리기 어렵게 궁리했다.

나무 방패에는 보통 방패 표면에 가죽을 덮거나, 손잡이 부분에 쇠징 모양의 보스(boss)를 달거나, 테두리에 질긴 가죽이나 금속을 보강해서 썼다. 가죽을 덮어 보강한 방패는 나무만으로 이루어진 방패보다 성능이 더 뛰어났는데, 나무 방패가 단방에 작살나는 공격을 가죽까지 덮은 방패는 탄성있게 튕겨낼 수 있었다. 이는 구조가 2~3중으로 되어 있는 방탄 유리와 비슷한 원리다. 내구력이 떨어지는 방패는 격렬한 전투 후에는 파괴되어서 교체하였지만, 잘 만들면 여러차례 거듭 쓸 수도 있었다. 테두리에 금속을 다는 경우는 방패 모서리를 치는 것에 대단히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나무나 가죽일 상대의 칼이 방패에 박혀서 뽑기 어렵게 되므로 이걸로 상대 무기를 잡아채는 기술로 쓸 수도 있으므로 일장일단이 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나무가지로 틀을 짠 다음 코뿔소 가죽 같은 튼튼하고 질긴 동물 가죽을 당겨붙여 만든 방패-흔히 우리가 아프리카 토착민들 하면 생각나는 위아래가 뾰족한 타원형 방패를 사용했는데, 가죽의 탄력 때문에 화살이나 둔기는 물론 화승총까지 튕겨낼 정도로 방어력이 좋았고 가죽제라 무게도 크기에 비해 가벼웠다. 큰 짐승 가죽을 넓게 벗겨 땅에 고정하고 나뭇재와 진흙과 햇빛으로 가공한 뒤[19] 나무 심재를 깎아 만든 틀에 씌워 가죽끈으로 묶은 간단한 형태지만 이들은 이걸 들고 사자도 잡곤 했다.

금속을 사용하면 보다 높은 방어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정작 냉병기 시대에 금속 재질 방패가 사용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았다. 일단 금속 방패는 무게 때문에 다루기 힘들고 사용자가 쉽게 지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특히 전신으로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갑옷과는 달리 한 팔로 무게를 버티고 다뤄야 하는 방패의 경우 무게 증가는 큰 단점이었던 것. 게다가 금속의 경우 나무나 가죽등 다른 소재보다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다는 소소한 문제도 있었다. 반면 방어력의 경우, 방패는 어차피 상당한 두께가 있는 구조물이므로 나무나 가죽, 섬유등의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근력에 의존하는 도검이나 화살등의 냉병기로는 쉽게 관통하거나 파괴하기 힘든 내구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점은 당장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목재 가구 따위의 나무판도 완력을 이용해 휘두르는 도구는 그리 쉽게 부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순금속제 방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을만한 것은 버클러 정도인데 이는 딱 냄비 뚜껑만한 크기의 소형 방패로 주무장이기보다는 보조 무장, 전쟁터에서보다는 평상시의 호신용으로 더 자주 쓰이는 물건이었다. 그 외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대형 청동 방패를 사용했으나 이 역시 시대가 뒤로 갈수록 소형화되는것과 함께 주 재질 역시 청동제 테를 둘러 보강한 나무로 변모하였고, 르네상스 시대 유럽이나 오스만 투르크, 한국의 삼국시대등에도 종종 완전한 금속제 방패가 발견되기는 하나 역시 주로 사용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그보다는 나무 등 다른 재질을 금속 테나 심으로 보강한 방패가 더 널리 애용된 것.

현대의 진압 방패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다.

발사 혹은 투사 무기를 방어할 때는 큰 면으로 막아내나, 근접 무기를 막을 때는 방패의 끝으로 막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나무나 가죽 방패에 끄트머리 부분을 금속으로 덧대어 방어력을 향상시킨 방패도 많다. 실력만 좋으면 작은 방패를 들고서도 상대의 공격을 잘 막아낼 수가 있다.

5.3. 그림 및 장식

서양에서는 방패에 가문의 문장 같은 것을 새겨 자신을 나타내는 경우가 꽤 있었다. 혹은 방패에 주술적인 문양이나 상징을 그려 넣어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도 했으며, 때로는 무서운 모습의 괴물이나 맹수 등을 그려 넣어서 적이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여신 아테나가 자신의 방패 아이기스메두사 머리를 단 것은 오래된 예라고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어릴 때 아버지 친구의 부탁으로 나무 방패에 무서운 괴물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 괴물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고어물을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말 그대로 온갖 동물을 도축해가며 최대한 잔인하게 그렸다 하는데, 현실적인 인물화를 그리기 위해 시체 해부도 마다하지 않은 그의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설도 있다. 괴물 그림이 아니라 메두사의 머리를 그리기 위해서 뱀 수십마리를 가져다놓고 관찰하면서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방패를 든 캐릭터를 그리면 편하다. 그리기 어려운 부위를 방패로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카이트 실드 정도 되면 거의 머리와 발 정도만 그려도 되므로 거저먹는 수준이 된다. 방패 표면에 복잡한 문양이 그려져 있더라도 사실 그냥 기존에 그려 둔 방패에서 복붙해버리면 끝나기 때문에 방패의 디자인이 난이도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20] 하지만 방패를 드는 자세 등도 잘 고려해야 하는데, 어떻게 방패를 드는지 생각해서 위치를 잡아야지 대충 사용자를 방패로 아무렇게나 덮어버리면 심히 어색하고 맥빠지는 모양새가 나올 수 있다.

6. 종류

6.1. 과거

6.2. 현대

7. 관련 어록

이것은 나의 방패,
전투에 나설 때면 방패를 드네.
하지만 방패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네.
방패는 곁에 있는 나의 형제를 지키네.
방패는 내가 사는 도시를 지키네.
절대 나의 형제가 방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고,
내가 사는 도시가 방패의 보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리.
나는 내 앞에 놓인 방패와 함께 죽으리.
적과 맞서 싸우며.
스티븐 프레스필드(S.Pressfield), "방패의 원칙"(Law of the Shield)
H ταν ή επί τας(방패를 들고 돌아오거나, 방패에 얹혀 돌아오너라)[22]
플루타르코스, 모랄리아 241 “스파르타 어머니의 말들”

8.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영어 Shield
한국어 방패
한자

중국어 [ruby(盾牌, ruby=dùnpái)]
[ruby(盾, ruby=dùn)]
일본어 [ruby(盾, ruby=たて)]
베트남어 [ruby(牵, ruby=khiên)]
[ruby(𪩔, ruby=chắn)]
[ruby(盾, ruby=thuẫn)]
러시아어 Щит
프랑스어 Bouclier
스페인어 Escudo
아랍어 درع

9. 상징으로서의 방패 문양

방패의 심상이 "보호"에 있기에 그에 관련된 경우 상징물로서 삼는 경우가 많으며, 그밖에 중세 유럽의 역사적 상징으로서 관련 매체에서도 곧잘 등장한다.

특히 유럽에서 방패를 가문의 문장으로 삼은 경우가 많았으며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발달하였기에, 그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구미권 및 그 영향을 받은 국가들에서는 유서깊은 가문은 물론이거니와 국가 및 공공기관이나 도시지방자치단체, 기업, 대학교 등 여러 단체에서 문장 혹은 방패가 들어간 엠블럼을 사용하기도 한다. 일례로 롯데캐슬의 이전 로고는 방패 안에 독수리가 들어간 형태였고 지금은 독수리의 가슴 부분에 방패가 있는 도안이다.

안보와 밀접한 법 집행기관이나 군경조직의 로고에도 많이 사용되는 것은 당연지사. 이를테면 수도방위사령부는 부대마크 뿐 아니라 애칭도 '방패부대'다. 미국에서는 경찰 등 법 집행기관 대부분의 로고에 방패나 독수리, 별 중 최소한 하나는 대부분 등장한다.

경비업체부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업체, SSL 개발업체까지 "보안"이라는 뜻이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관련한 업체들이 제품 이미지나 로고를 방패에서 따오므로 그야말로 수많은 방패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컴퓨터 보안 장비나 프로그램에서는 보안 기능이 작동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아이콘으로써도 방패 로고가 자물쇠 로고와 더불어 널리 사용된다. Firefox에서는 TLS 적용 여부를 나타내는 아이콘이 방패 모양이다.

방패가 군용으로 쓰여온 역사를 기반으로 방어용 장비 위주로 개발/생산하는 방산업체들도 방패를 상징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보통은 공격적인 이미지를 상징으로 쓰지만, 좀 더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지기 위해 다니엘 디펜스처럼 업체명부터 "~DEFENCE" 등으로 바꾸거나 방패를 이미지화해서 쓰는 경우도 많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18:2
성경에선 하나님이나 믿음을 방패로 비유하기도 한다. 반면 성령은 방패에 대비되는 검으로 비유된다.

그 외에도 미국과 한국에서는 방패 문양을 고속도로의 상징으로 쓰며, 방패 문양 안에 노선번호를 넣는다.
  • 기업
  • NHL
    NHL의 메인 로고가 마치 방패처럼 생겼기 때문. 물론 공식적인 내용은 아니고 하키팬들이 자율적으로 만들어 내었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위 예시들과 조금 다른 성격의 상징이긴 하지만 중세를 배경으로 각 시대별 업그레이드 아이콘을 들 수 있겠다. 암흑시대의 라운드 실드, 봉건 시대의 카이트 실드, 성주 시대의 히트 실드에 이르기까지 실제 시대에 따른 방패의 형태 변화를 이미지로서 사용하였다. 마지막 시대인 왕정 시대는 화려한 상징과 무늬들이 그려진 대형 히트 실드가 아이콘으로 사용되었다.

10. 가상 매체에서의 등장

방패/창작물 문서 참조

11. 여담

  • 그리스어로 "ἢ τὰν ἢ ἐπὶ τᾶς"(이 탄 이 에피 타스)는 "방패를 들거나 혹은 방패에 얹혀서"라는 뜻인데, "돌아올때는 방패를 갖고 돌아오든지 아니면 방패에 얹혀서 돌아오거라" 라는 의미를 갖는 문장이다. 이는 옛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이 아들들을 전쟁에 내보낼때 해주는 말이었는데, 옛 그리스의 중장보병(호플리테)들은 무거운 청동방패를 버리지 않는 이상 전쟁터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었으므로, 방패를 갖고 집에 돌아온다는 말은 전쟁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즉 이겼다는 의미이다. 한편 방패에 얹혀서 온다는 것은 물론 시체나 중상자로서 돌아온다는 뜻. 문명 6 스파르타 안건 이름으로 나오기도 했다.
  • 동로마 제국에서는 '방패를 탄다'라는 말이 곧 '황제 제위에 오른다/도전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반란을 일으킨 장군들이 병사들의 추대를 받아 병사들이 지고 있는 방패에 타는 것으로 자신의 제위에 대한 야심을 보여준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1] 다만 진압방패의 모서리로 시위자를 찍는 행위는 과거에 존재했으나 지금은 금지돼 있다. 그 대신에 진압방패로 후려치는 것은 폭력을 쓰는 시위자 한정으론 가능하다.[2] 물론 방호를 위하여 방패를 능숙하게 다룰 기술과 숙련도가 전제 조건으로 뒤따라야 하겠지만, 피격당할 부위가 그저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와 비교하면 방패를 착용한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따른다. 단순히 피격에 피해를 입지 않는 걸 떠나서 피격을 당하더라도 적을 공격하거나 더 나아가 반격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한 이점이라 스페인 검술의 경우, 상대의 무기를 막을 수단으로 방패는커녕 아무것도 집거나 두를 게 없으면 빈 손을 내놓아서라도 치명상을 피하도록 발전했을 정도로 심리의 영역에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낼 수단이 있는 것은 대단히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이 개념이 더 발전해 아예 온몸을 판금 갑옷 및 방패와 같은 철갑으로 두른 중갑기사로 이어졌고, 이 개념이 그대로 계승된 현대병기가 '탱크'이다. 이런 개념은 육상에 한정되는게 아니라서 바다에서도 무시무시한 두께의 떡장갑을 두르고 다닌 전함도 이와 같은 등식으로 만들어진 무기다. 이 개념은 최초의 전함인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는데 드레드노트라는 이름은 Dread(두려움, 무서움, 겁, 공포)+Nought(없음)의 합성어다.[3] 사실 필요하다면, 갑옷도 어느 정도 싼 재질로 타협할 수도 있다. 물론 본격적인 철갑의 방어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가죽, 심지어 종이(한지)를 여러 장 덧댄 싸구려 갑옷이라도 입는 것과 안 입고 그냥 맨몸을 드러내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공격을 완벽히 못 막는다고 해도, 어느정도 피해를 경감시켜 줄 수는 있기 때문. 갑옷 항목 참조.[4]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갑옷이 부족하여 국경선의 병사들에게 과거시험 당시 썼던 한지로 제작한 갑옷인 지갑을 입히기도 했다. 실제로 종이를 여러겹 덧대고 풀을 발라 딱딱하게 만든 갑옷은, 화살 정도는 거뜬히 막아낸다.[5] 중세시대는 '상비군'의 개념이 없었으며, 왕이나 영주가 돈을 주고 고용하는 용병이나 휘하의 기사들, 그리고 그들이 다루는 사병들이 곧 '군대'에 가까웠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군대에 통일된 장구류를 지급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병사 개개인이 알아서 장구류를 장만해야 했다. 따라서 급하게 추가징병을 할 때는 방패와 같은 가성비 좋은 싼 장비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6] 특히 방패는 갑옷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평하고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어서 깃발과 함께 전장에서 귀족들이 본인의 신분과 상징을 나타내는 수단으로도 쓰였고, 이 영행을 받아서 대부분의 귀족 가문 문장이나 국장은 방패 모양이다.[7] 물론 방패는 수호의 의미가 있어서 어느 지역을 수호(통치)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8] 창은 원래 저렇게 짧진 않았지만 발견했을 때 이미 부러져 있었다.[9] 예나 지금이나 보병들은 가벼운게 장땡.[10] 특히 궁병들 그중에서도 석궁을 들었던 병사들이 아예 방패를 전담하는 병사들과 같이 다니는 일이 많았는데 당연히 석궁은 발사이후 크렝크를 돌리는 시간덕분에 공격에 그대로 노출이되고 무거운 중갑옷을 입기에도 사수라는 특징상 거추장스럽고 불편할수 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영국의 장궁병들과 프랑스의 석궁병들은 방패를든 병사들과 같이 다녔다고 한다.[11] 일본도에 목숨을 거는 창작물의 묘사와 달리, 사무라이는 전통적으로 창과 활을 대단히 중요한 무장으로 여겼다. 사실 냉병기를 든 인류 전체가 그렇다...[12] 200m에서 10mm 강판을 관통하는 수준이다. 기갑장비 장갑재로 쓰이는 균질압연강은 아니고 자동차 외판같은 연철강 기준이다.[13] ARMA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이건 원산지인 서구권에서도 마니악한 영역이라 일반인이 접할 기회는 매우 드물다.[14] 그래도 걱정된다면 공사장 헬멧 같은 것도 함께 구비하자.[15] 몽둥이로 꼭 가격할 필요없이, 방패로 차근차근 밀어 붙이면서 위협 및 대화(조용히 나갈 것)를 시도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16] 초창기 탱크도 대포나 기관총 이전에 적의 총탄을 막아주는 장갑이 핵심이었음을 고려하면, 방어력은 곧 공격력이다[17] 로마군은 이걸 역으로 이용하여 필룸이 방패에 꽂히면 무거워져 방패를 들 수 없게 만드는 전술을 썼다.[18] 다만 현대의 방패들은 엔암스다. 진압 방패의 경우 화살이나 투창을 맞을 일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며 방탄 방패의 경우 무겁기도 하고 뚫리는 순간 차라리 팔에 맞고 끝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이상 방패를 다채롭게 활용할 일이 없다.[19] 당연히 우기에는 못 만든다.[20] 건담 시리즈에서 80년대 말에 이미 빔 실드의 설정이 나왔음에도 후속작에서 실체형 실드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관련있다. 빔 실드는 실드를 전개해도 내부가 다 비치기 때문이다. 프라모델을 팔아야하는 반다이 입장에선 투명 플라스틱으로 표현해야해서 생산비용이 높은데 비해 별로 인기도 없기도 했다.[21]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둘은 엄폐물에 가까운 방패라고 할 수 있다.[22] 스파르타의 격언으로 “승리 또는 죽음”이란 의미. 스파르타군의 방패는 무거웠기에 전장에서 도망치기 위해서는 방패를 버려야만 했다. 즉 살아서 방패를 들고 오든, 패배해서 방패에 실리든 상관없으니 도망치지 말고 명예롭게 싸우고 돌아오라는 격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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