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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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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현대판 공성전3. 야전과의 비교4. 실제 벌어진 시가전5. 미군의 시가전 훈련6. 한국군의 시가전 훈련7. 사례8. 서브컬처9. 관련 문서

1. 개요

시가전이란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뜻하는 말이다. 과거보다 현대에 들어 더욱 빈번히 벌어지는 전투방식이다.

과거에는 인권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시가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차별 포격이나 폭격으로 죽음의 땅을 만들어 버리거나 도시를 포위해버리고 자원 공급망들을 싹다 끊어버려서 아사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실제로 레닌그라드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바르샤바 봉기에서 드러났듯 도시는 포위당해 외부로부터 격리될수록 보급에 상당한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 공중 보급 의견이 나왔지만 제6군이라는 야전군 규모의 군대의 보급을 공군으로만 한다는 건 현대 미군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바르샤바 봉기의 경우는 아예 독일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도시 안에 우물까지 파가면서 필사적으로 보급을 했음에도 수많은 봉기군과 시민들이 전염병과 기아로 사망했다.

물론 이렇게 도시를 포위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규모가 도시의 적보다 일정 수준 이상이고 적의 포위망 돌파 시도를 기동전 등으로 충분히 저지시킬 정도여야 한다. 이렇게 포위를 유지할 만한 병력이 없으면 도시를 우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는 인권 개념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화생방 공격을 통해 도시 기능을 무력화했다.

현대에는 인권 개념이 있으므로 민간인이 다수 거주하는 도시에 폭발물을 퍼붓거나 식수, 식량 공급을 끊거나 화생방 공격을 가해 다수의 민간인 피해를 발생시킨다면 국내외의 비난 여론이 들끓는다. 이론적으로는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사전 통보 후 퇴거시킨 뒤 적군만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민간인이 없어지는 순간 패배할 것을 아는 적군 지휘관 측에서 민간인을 나가지 못 하게 방해하면서 인간방패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2. 현대판 공성전

시가전은 과거 성벽을 가운데 두고 서로 싸우던 공성전이나 근대의 요새전이 현대전에서 부활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차이가 있다면 성벽 대신 은엄폐가 가능한 콘크리트 진지가 되는 건물을 여러 개를 두고 싸운다는 점 뿐.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진 현대에는 도시의 각종 건물들과 고층 빌딩 등은 시야의 확보와 뛰어난 엄폐 진지의 기능을 해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건물을 엄폐삼아 적을 저지하고 또 그를 소탕하는 시가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투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시가전은 앞으로의 전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형태의 전쟁이 될 것이다. 즉 도시나 마을 별로 상대의 영토를 침략하는 것이 아닌, 건물 하나씩 점령해나가는 전투로 도시의 그 수많은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벙커요새가 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도시가 전장이 되는 경우는 건물 하나하나가 참호이자 요새가 되고, 도로는 무인지대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거리 가운데 같은 탁 트인 곳을 지나가면 얼마안가 기관총 세례에 벌집이 되거나 저격수에게 죽는다. 참호전은 벌판 같은 평지가 주요 전장이었기 때문에 곡사무기로 비벼볼수라도 있지만 시가전은 고층 건물로 인한 수직성이란 변수가 생겨서 그 어느 곳도 영원히 안전하지 않다.

몇몇 사람들은 건물 따위 포격이나 폭격 몇 번 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거 아니냐는 의문을 갖기도 하는데, 비용은 둘째치고 현대식 건축물들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설사 몇몇 건물과 지역이야 그렇게 무너뜨린다 쳐도 드넒은 도시 전역을 엄폐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초토화시킬 수는 없다. 도시 전역의 구조물을 한 개의 엄폐물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날려버리는 건 핵무기로도 힘들다. 그나마 이것도 정말 비효율적일 정도로 쏟아부어야 도시 전역을 엄폐물조차 남기지 않고 날려버릴수 있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핵전쟁 상정시에 하는 식으로 도시 하나당 핵탄두 한개 혹은 몇 개 정도의 핵폭격으로는 대부분 엄폐물을 남기게 된다. 핵탄두라고 해도 완전히 증발시키는건 폭심지에서 의외로 얼마 안 되는 범위이고 나머지 공격반경은 많은 열 에너지로 적당히 녹여버리고 파괴한 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수준에 그친다. 물론 차르봄바 같은 메가톤급 핵무기는 '완파'라고 할 수 있는 범위가 10km는 쉽게 넘기는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핵무기가 아니다.

게다가 철근 콘크리트 건물들은 핵폭탄의 열폭풍과 복사열에 매우 강력한 내성을 가지고 있다. 히로시마 핵 폭격 당시에도 석조건물은 폭심지에서도 유리만 아작났지 골조는 큰 타격이 없었다. 물론 밀려드는 폭압때문에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죽었지만, 문제는 골조 자체가 안 날아가고 버티면 그것 자체가 핵폭탄의 열폭풍과 복사열 확산에 막대한 방해를 가하며 거대한 음영지를 도시 전체에 생성해버리는 강력한 차폐제로 작용한다.

특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폭격때는 당대 일본 대부분의 건물이 저층 목조건물로 되어 있었고 이것들은 핵 폭풍에 그대로 흔적도 없이 가볍게 소멸했기 때문에 핵폭발의 위력을 차감시킬 요소가 거의 전무했지만 현대의 대도시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중~고층 건물들이 도배되어 있다. 당연히 이 건물 하나하나가 핵폭발의 위력 확산을 엄청나게 약화시켜 버린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수소폭탄 여러발을 동원하지 않는 한은 핵폭격으로도 도시에 대한 파괴능력은 생각보다 매우 제한적이다.

방사능 범벅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핵공격을 할 수도 있지만, 원자로 폭발도 아닌 핵폭격에 의한 방사능 확산량은 생각만큼 엄청나지도 않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사고 초기인 2011년 후쿠시마에서 배출된 방사능 물질 양은 히로시마 원폭에서 배출된 방사능 물질 양의 백수십배를 가볍게 넘어선다.

도시의 건물들이 잔뜩 남아있으면 그만큼 낙진에 대한 강력한 차폐제로 작용하므로 역시 그 또한 효율이 낮다. 위에서 쓴 것과 마찬가지로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격때는 도심지 자체가 거의 삭제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생존자들이 쏟아지는 방사능 낙진을 피할만한 곳도 거의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핵무기와 방사능 대한 지식이 대중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생명에 치명적인 건지도 잘 몰랐다. 심지어 사용자인 미국측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실제로도 우산과 우비 하나만 있어도 핵폭격 후의 낙진에 대한 노출도는 없는 것 대비 엄청나게 줄어든다. 당연히 건물들이 남아 있으면 유리가 깨졌건 뭐건 간에 낙진에 대한 노출도는 매우 크게 줄어든다. 정말 완전히 작정하고 방사능 오염을 목적으로 더티 밤을 쏟아부어서 도시를 완전히 방사능으로 도배하는 경우 도시를 못 쓰는건 공격측도 마찬가지가 된다. 돌파구를 만들려고 핵무기를 썼는데 정작 그 돌파구를 만들어놓고 쓸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물론 병사들 목숨 신경 안쓰고 진격시키면 되기야 하겠지만, 원래 목적이 뭐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독일군은 레닌그라드에 수십만발의 포탄과 항공폭탄을 쏟아부었지만 레닌그라드는 끝까지 버텨냈다. 게다가 도시의 중요 시설인 건물들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면 그 잔해가 또다시 새로운 엄폐물이 된다. 부서진 콘크리트와 철근, 벽돌 잔해로 쌓인 인공언덕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최악의 시가전으로 일컬어지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 육군이 포격으로 시가지를 파괴하자 소련군은 그 잔해 더미에 숨어서 진격해오는 독일군 보병과 전차들을 괴롭혔다. 결국 독일 육군은 포격을 포기하고 보병을 대거 투입해서 건물을 하나하나씩 수색해서 소탕하는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 시대에는 단순 석조건축이나 벽돌건축 비율이 높기라도 했지 현대 건축의 다수를 차지하는 철근콘크리트 건축은 단순 석조나 벽돌보다도 더더욱 튼튼하다. 스탈린그라드에서 건물들이 무너졌아도 대신 잔해들이 엄폐물로 작용했다고 하는데 현대라면 아예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지지조차 않을 가능성이 높다.

3. 야전과의 비교

멀리서도 피아 구분이 용이한 야전(野戰)과 달리 건물은 방어군 입장에선 지극히 유리한데, 적군이 IED를 설치해놓거나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더라도 직접 수색하기 전까진 안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건물안에 숨어 농성하는 적군을 탐색하고 소탕하는 것은 거의 무조건 방어력 약한 보병이 전담하게 되는데, 매복이나 부비트랩에 당할 위험이 있어 요즘은 탐색 같은 경우 바퀴달린 무인 드론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또한 건물들이 빽빽하게 밀집한 곳에서 교전이 발생되면 수십 미터 간격으로 적과 아군, 해당 도시에 이런저런 이유로 잔류하던 민간인들까지 한데 뒤엉켜 건물 내의 적 및 상대 전차를 상대로 각종 화기포격이 난무하는, 말 그대로 도그파이트가 일어난다.

그리고 전차가 제 성능을 발휘하기 힘들다. 먼거리에서 포격해 적을 섬멸하고 맷집과 기동성을 바탕으로 적진을 향해 돌격 혹은 보병을 엄호하는게 전차의 임무인데 ,건물 하나하나가 참호이면서 요새인 도시에 진입하면 '그 참호'에게 둘러쌓이며 거기서 전차에게 벌어질 일은 다 일어날 환경에 게다가 시내의 밀집된 건물들은 포의 발사범위를 좁히고 좁은 길은 기동을 방해한다. 생각보다 전차 포신은 그렇게 내구성이 좋은 물건은 아니다. 특히 조준경. 포탑을 돌리다가 포신이 조금이라도 건물에 부딛히는 순간 조준경 자체가 비틀어지기 때문에 정확한 사격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건물에서 떨어진 잔해들도 전차의 시야와 행동을 방해하는데다 대전차 무기를 든 적군과 대전차 지뢰, IED가 전차의 약점을 노리며 늘 도사리고 있다. 앞서 말한 스탈린그라드 전투 같은 경우도 탱크와 포격-폭격을 유기적으로 운용하는 독일군의 장기를 봉쇄하기 위해 소련군은 시가지와 무너진 건물들을 기민하게 움직이며 독일군에게 거친 육탄전을 걸었고 그 결과 연이은 패배에 장비도 변변치 않고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소련군이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독일군을 상대로 몇 달 동안 양측 모두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내는 소모전을 벌이면서 방어해냈다. 그리고 여기서 상당한 손실을 입은 독일군도 결국 전략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밀리다가 패주했다.

때문에 야전보다 시가전에서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공략하는 측에 상당한 부담이 되며 해당 도시가 정치나 전술, 문화역사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곳이 아니라면 대부분 점령을 포기한다.

4. 실제 벌어진 시가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시가전 중 규모가 큰 것으로는 사라예보 포위전 (1992~1996, 포위 전 인구 52만명), 그로즈니 (체첸 전쟁, 전쟁 전 인구 약 40만명), 라카 (전쟁 전 인구 22만명) 등이 있다.

이라크, 아프간전 등 최근에 벌어지는 시가전들은 국제 사회의 여론과 해당 지역의 주민들 사정을 고려해 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도시의 물자 공급 루트를 철저하게 봉쇄한 다음 항복을 권하는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도시는 그 자체로 최소 수십만명, 최대 수백만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소비 집단이기 때문에 아무리 평소 쌓아둔 것이 많아도 주요 보급 루트를 끊은 채 작정하고 포위하면 얼마 가지 않아 전부 다 식량 및 물 부족으로 굶어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방국의 지원이 있거나 항복할 경우 닥칠 결말이 비참해 결사항전을 외치거나, 적군이 굴복 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시민들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저 위에 경우가 하나라도 포함되면 끝까지 버틴다는 얘기다.

비교적 후진국이나 후진국에서 활동하는 무장 단체 상대로 전쟁을 하는 강대국 입장에서는 가장 골치아프고, 피하고 싶은 전략적 상황이 직접적인 대도시 점령과 시가전이다. 전차를 비롯한 기갑 전력도 제대로 활동하기 힘들고, 항공 폭격 등으로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으며, 보병들이 폐허 속에서 난무하는 부비트랩, 저격수, 자폭 테러병, IED 등을 상대해야 한다. 도시를 방어하는 측이 아예 건물, 산업 시설 다 파괴 될 것을 각오하고 같이 죽자 식으로 무한 시가전으로 나와버리면 강대국 군대가 가지는 기술, 자원 우위가 상당수 무효화되는 전투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민간인 피해가 어마어마하리라 보기도 어려운게 대도시는 융단 포격을 퍼부어도 무너지지 않을 건물 투성이다. 콘크리트는 그 강도에 따라 대구경 열차포 클래스의 포탄도 씹어버리는 위엄을 자랑한다. 일례로 베를린 전투 당시 국회의사당 근처에 강화 콘크리트로 구축되었던 동물원 대공포탑은 소련군이 203 mm 구경의 중곡사포를 가져와 직사로 때렸는데도 생채기 몇 개만 나고 씹어버렸다. 그 악명높은 모술공방전조차 대부분의 건물이 멀쩡하게 서 있었음을 생각해보자.

핵폭격도 위에 설명한 대로 생각만큼 엄청난 위력이 나오지 않는다. 흔히 웹에 돌아다니는 서울 핵폭격 시 인명피해 자료를 인용하는 경우기 많은데, 해당 자료는 현대의 철근 콘크리트 빌딩과 성냥갑 아파트 단지로 도배된 서울과 허약한 저층 목조건물이 대부분이던 당대 히로시마의 엄청난 도심지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작성된 자료다. 통신과 의료 인프라의 70년에 달하는 엄청난 격차 역시 무시한 건 덤. 단순히 히로시마 핵폭격 당시의 사상률을 현대 서울 인구밀도와 면적에 그대로 때려넣어 계산한 결과이다.

여기에 당연히 이 과정에서 상당한 인명 피해와 전비 손실 등 자국에서 정치적인 부담이 되는 손실을 강요당한다. 체첸 전쟁에서 그로즈니 시가전도 이랬고 테러와의 전쟁 중 바스라, 팔루자 같은 곳에서는 미군도 큰 출혈을 겪었다.

만약 마천루가 쫙 깔린 대도시에서 대규모 시가전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당시와 비교조차 안되는 현대식 빌딩 내부의 넓은 공간은 수많은 병력들이 숨바꼭질을 해댈 장소를 제공하고 공격헬기 등의 근접항공지원이 마천루들 사이에 들이닥치는 데다가 포격, 폭격으로 빌딩과 도로는 파괴된다. 그 커다란 마천루들 중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주위 일대에 퍼진 먼지 구름으로 앞조차 볼 수 없는 상황까지 펼쳐진다.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주변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보면 된다.

전쟁사 최악의 시가전이라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양측이 200만명에 달하는 엄청난 사상자를 기록했는데, 사실 당대 스탈린그라드도 현대의 메가폴리스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도시규모에 불과했는데도 그정도다. 1940년 당시 스탈린그라드의 인구는 단 45만명에 불과했으며, 당연히 시가지의 넓이도 현대의 대도시 시가지 크기에 비하면 훨씬 협소했다. 행정구역상 면적은 넓으나 상당수의 면적은 시가지가 아니라 스텝지역 평야였다. 그 정도로도 수십만명의 생명을 잡아먹는데에는 충분했다. 물론 실제 발생 가능성은 지극히 낮긴 하지만, 인구가 최대 천만에 달하는 현대의 대도시권에서 끝장을 보고야 마는 총력전 상황의 대규모 시가전이 터지면 어찌 될지는 충분히 상상가능할 것이다.

5. 미군의 시가전 훈련

미군은 시가전 사상률을 분대원이 10명일 때 2명은 죽는다고 보고 20%로 잡고 있으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의 시가전 훈련소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SWAT 역시 대표적으로 시가전에 특화된 작전 수행을 위해 훈련을 받으며 건물 안에서 방마다의 안전확보를 위한 진입 절차, 건물 외부를 확인할 때의 안전 절차 등을 중요하게 교육 및 훈련한다. 방 내부 진입시와 베란다의 경우 사상률이 가장 높은데 방으로 들어갈 때는 안쪽에서 노리고 있는 경우가 위험하고 베란다는 머리 내밀고 나가면 저격당하기 때문으로 반드시 벽에 붙어서 나가도록 교육 및 훈련시킨다. 또한 건물 내에서 건물 밖으로 사격할 때 절대 총구가 구멍(총안)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데 그러지 않으면 적의 입장에서 위치 파악이 쉬워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시가전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한다.

문을 따고 진입하는 과정은 여러가지 교리가 존재하지만, 진입하는 내부의 구조를 모르면 왼쪽으로 먼저 들어가다 오른쪽에서 공격당하거나 혹은 그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할수 있기 때문에 어느 경우에나 통하는 완벽하고 안전한 공략법은 없다고 봐도 된다. 주요 정부 시설 내에서 사진촬영이 허용되지 않는 이유도 구조를 파악하면 공략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육군은 건물 점령을 위해 사다리를 담당해서 들고 다니는 병사도 있고 미국 해병대가 산탄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시가전에 필수인 도어 브리칭을 위해서이며 이스라엘제 M100 총류탄도 사용할 정도로 신경쓴다. 시가전의 특성상 보병 화력이 매우 중요한데 이 때문에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군의 탄약 소모량은 실로 막대했다. 미국 내의 탄약을 생산하는 조병창을 24시간 풀가동하고 한국을 비롯한 친미 우방국들에서 생산하는 탄약을 수입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탄약을 생산하는 미국 내 민간 업체들에게 탄약들을 대량 주문해야 했다. 이 때문에 미국 내 민수용 탄약 가격도 크게 뛸 지경이었다고 한다.

6. 한국군의 시가전 훈련

한국군의 JSA 경비대는 주둔지의 특성상 미군과 비슷하게 시가전 대비 건물 진입 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군에서 유일하게 권총 사격술에 신경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전협정 상 판문점 내에서 소지할 수 있는 무장이 권총 한 정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인 점이 더 크다.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더 강한 화력이 동원될 수도 있겠지만 초동 조치는 권총으로만 해야 한다는 뜻이니 권총사격술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특수부대, 해병대를 제외한 나머지 한국군 부대는 제대로 된 시가전 훈련이 없는 상황이다. 일부 보병 훈련장에 간이 형태로 시가전 훈련 시설을 만들어 놓고 훈련을 진행하기도 하나, 훈련 시설의 수준과 훈련 내용 모두 말 그대로 임시 방편 수준이다. 북한군과의 전투 혹은 해외파병으로 대규모 시가전이 벌어질 경우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막사 건설이 완료되면 구막사를 시가전 훈련장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2차 KCTC 훈련장에는 시가전 시설도 추가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수준의 시가전 훈련으로는 만약 북한과의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아무리 낡아빠진 장비와 허접한 훈련도로 무장한 북한군이 적이라도 평양과 같은 대도시에 충분한 준비 없이 무작정 시가전을 걸면 국군의 손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7. 사례

  • 미군소말리아 모가디슈 전투 - 다만 이 전투는 모가디슈를 점령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아이디드와 그 측근들만 압송하는 게 목적이라 반군에 비해 크게 나을 게 없는 화력으로 맞선 게 피해를 늘린 요인이다. AH-1 공격헬기와 M1 에이브럼스, M2 브래들리 등등을 요청했지만, 미 국방부가 너무 큰 작전을 벌이지 말라고 거절했다. 이때문에 정찰용으로 써먹기도 부족했던 MD500에 델타포스 사격조를 탑승시켜 근접항공지원용으로 사용했는데, 끽해야 M16A2소총 3자루 든 병력으로 제대로된 항공지원이 될 턱이 있나... 항공지원은 항공지원대로, 정찰은 정찰대로 안되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 이라크 전쟁 당시 1,2차 팔루자 전투 - 국제 사회의 시선과 주민들의 생활을 고려해서 미군 피해가 늘어날 것을 알면서도 전통적인 포격 및 도시 봉쇄 전략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시가전을 강행한 측면도 있다.
  • 이스라엘의 2008년 1차 가자 침공
  • 이스라엘의 2012년 2차 가자 침공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 베를린 전투, 바르샤바 게토 봉기, 바르샤바 봉기. 바르샤바 봉기의 경우, 무기 상으로만 보면 독일군은 수백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는 물론 600mm 자주박격포 칼까지 보유하고 봉기군은 10명당 1명 꼴로 소총이나 기관단총, 수류탄 등으로 무장했지만 2달에 걸친 혈전 결과 독일군과 폴란드 봉기군 손실이 비등할 정도로 독일군도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경우는 무시무시한 독일 국방군이나 무장 친위대들도차도 소련군과 똑같은 수준의 소모품에 불과했다. 반대로 소련군도 베를린에서 사실상 전쟁막바지에 소년과 노인이 태반에 장비조차 제대로 없는 독일군을 상대로 거의 4배의 병력에 훨씬 우수한 장비와 보급을 지원해가며 전투를 벌였는데도 거의 비등한 사상자가 나오는 등 시가전이 공격측에 얼마나 어려운 전투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 체첸 전쟁 당시 그로즈니 전투. 1차 전투의 경우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양적 질적 저하가 심각했던 기갑병력을 제대로 된 보병의 엄호도 없이 무턱대로 시가지에 밀어 넣었다가 노련한 체첸 반군의 반격에 전부 다 터져 나가면서 그로즈니시는 연옥이다.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제대로 관광탔다. 이 체첸 반군은 대부분 소련군 참전용사, 전역자 였다. 온건파인 아슬란 마스하도프도 소련군 기갑 사단장 출신에 체첸의 초대 대통령인 조하르 두다예프도 소련군 공군 소장 출신이였다. 그야말로 호랑이 새끼를 키운격 2차 전투의 경우 본래는 대규모 포격과 도시 봉쇄를 통한 물자난으로 체첸 측의 투항을 유도했으나 여의치 않은데다가 국민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했던 러시아군이 1999년 12월부터 전투를 강행했다. 사전 포격과 작전 준비가 철저했기에 1차 전쟁 때처럼 어처구니없는 삽질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가전인지라 상당한 인명 손실을 입었다.
  • 보스니아 전쟁 당시 사라예보 포위전. 이 전투는 2차대전의 레닌그라드나 스탈린그라드 전투보다 더 긴 시간 동안 포위당했다.
  • 시리아 내전 - 알레포 전투, 코바니 포위전
  • 이라크 내전 - 모술 전투, 3차 팔루자 전투
  • 신주쿠 소란 사건 -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시가전에 버금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팔레스타인 인티파다 - 팔레스타인 지역은 수십년째 이스라엘군과 이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및 민간인들의 시가전 상태이다. 요르단강 서안지구가자 지구 모두 동일하다. 가자 전쟁, 2012년 11월 가자지구 폭격 문서 참고.

8. 서브컬처

소설 남북의 경우 한국군이 평양 포위에 동원한 병력은 무려 11개 사단에 달했다. 이 경우는 평양 점령이 목적이었고 실제 북진 상황에서는 굳이 대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를 이유가 없으니 1~2개 사단으로 간단히 봉쇄만 하고는 토마호크 등 미사일을 퍼부어 고가치목표를 날려버린 뒤 보병은 지하 통로에서의 교전에서나 주력으로 투입될 것이고 주 전력은 평안북도에 집결한 북한군 전략예비의 격멸에 투입될 것이다.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가 이 분야의 대명사다. 대테러를 묘사한 작품인 만큼 시가전 상황이 수도 없이 등장하며, 가장 최신 게임인 레인보우 식스 시즈는 아예 시가전말고 있는게 없다. 특히 빈민가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 그러다보니 대원들의 특수능력들도 공격쪽은 도어 브리칭, 무력화, 장애물 파괴며, 수비쪽은 함정, 강화, 정보가 대다수다.

정도전에서는 사극 역사에 길이 남을 시가전을 보여주었다. 사극에서의 전투는 보통 공성전인 경우가 많은데, 공성전은 다대다의 전투로 구성되어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꽝 부딪히느냐, 혹은 CG가 얼마나 화려하느냐가 관전포인트이다. 그런데 해당 드라마에서의 시가전은 개인전 위주로 진행이 되어 병사 개개인의 액션에 포커스가 맞춰져서 보여진다. 다만, 이쪽은 위에 설명된 대부분의 현대식 시가전과는 다르게 냉병기가 전투의 주요 아이템이다보니 근접전 위주로 장면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 근접전이 롱테이크로 쭈욱 이어지는 것과 동시에, 눈을 사로잡는 스턴트까지 보여주는 꽤나 신선한 시가전이다. #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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