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05:59:52

시가전

파일:시가전예시.jpg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5년 베를린 공방전
1968년 후에 전투 1994년 1차 그로즈니 전투
2004년 2차 팔루자 전투 2017년 마라위 전투

1. 개요2. 특징
2.1. 야전과의 비교2.2. 현대판 공성전
2.2.1. 특징2.2.2. 취약점2.2.3.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3. 전략
3.1. 미군의 시가전 훈련3.2. 대한민국 국군의 시가전 훈련
4. 사례5. 대중매체에서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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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Urban warfare

시가전이란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시가지)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뜻하는 말이다.

2. 특징

과거보다 현대에 들어서 더욱 빈번히 벌어지는 전투방식으로, 그 특성상 공성전에서 한층 진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모가디슈 전투, 그로즈니 전투를 들 수 있다.

공성전과 마찬가지로 도시를 포위하여 벌어지는 형태가 자주 벌어진다. 물론 이렇게 도시를 포위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규모가 도시의 적보다 일정 수준 이상이고 적의 포위망 돌파 시도를 기동전 등으로 충분히 저지시킬 정도여야 한다. 이렇게 포위를 유지할 만한 병력이 없으면 도시를 우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는 인권 개념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화생방 공격을 통해 도시 기능을 무력화했다.

땅만 넓은 최빈국에서 활동하는 무장 단체 상대로 전쟁을 하는 미국같은 군사강국 입장에서는 가장 골치 아프고, 피하고 싶은 게 대도시 점령과 시가전이다. 전차를 비롯한 기갑 전력도 제대로 기동하기 힘들고, 항공 폭격 및 포격 등으로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으며, 보병들이 폐허 속에서 난무하는 부비트랩, 저격수, 자폭 테러병, IED 등을 상대해야 한다. 도시를 방어하는 측이 아예 건물, 산업 시설 다 파괴 될 것을 각오하고 같이 죽자 식으로 무한 시가전으로 나와버리면 질적 우위에 있는 군대가 가지는 기술, 자원 우위가 상당수 무효화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1] 기껏 차와 포를 비싼 돈 들여 업그레이드해놨더니, 차포 떼고 졸로만 두자는 격이다.

이 시가전에서의 가장 효율적인 전투 방법이 흔히 알려진 CQB이다. 그러나 CQB는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전문전투기술이기 때문에, 이에 극도로 숙련된 특수부대가 아닌 이상 한정적으로 숙련된 일반 정규전 보병들에게 있어 시가전은 말 그대로 지옥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당연히 이 과정에서 상당한 인명 피해와 전비 손실 등 자국에서 정치적 부담이 되는 손실을 강요당한다.

MOUT(Military Operations in Urban Terrain, 도심 지역에서의 군사 작전) 라고도 부른다.

2.1. 야전과의 비교

파일:Turkish army ciagar war.jpg
전근대시기 공성전을 계승한 전투 형태이기 때문에, 시가전도 공성전과 마찬가지로 방어군 입장에서 굉장히 유리하다. 멀리서도 피아 구분이 용이한 야전(野戰)과 달리 건물과 여러 구조물들이 빽빽하게 밀집해있는 도시는 견고한 요새나 다름없게 된다.

특히나 제각기 다른 내부 구조를 가진데다 수도 없이 많은 건물들은 방어자가 공격자를 엿먹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건물을 하나하나 까보기 전까진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방어자들은 수류탄과 인계철선을 이용해 부비트랩을 만들거나, 문에다 IED를 설치해놓거나, 바리케이드를 치고 킬존을 형성하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공격자를 위한 저승길 선물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격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환장할 노릇이다. 드넓은 시가지에 있는 수없이 많은 건물을 다 깨부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건물 안에 숨어 농성하는 적군을 탐색하고 소탕하는 것은 차량과 항공기가 할 수 없기에 보병대가 전담할 수밖에 없으며, 위에 언급된 방법 등을 동원한 방어자들의 열렬한 환영으로 인해 공격자는 큰 인적, 물적 손실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다. 매복이나 부비트랩에 당하는 일이 하도 많다보니 탐색에 소형 드론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건물들이 밀집한 곳에서 교전이 발생하면 수십 미터 간격으로 적과 아군, 해당 도시에 이런저런 이유로 잔류하던 민간인들까지 한데 뒤엉키는 말 그대로의 도그파이트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야전에서처럼 항공기, 포병, 전차 등의 지원을 받기가 매우 어렵고 아군 오사가 발생하기도 매우 쉽다. 결국 이 또한 공격 측이 얼마나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든 그걸 100% 활용하지 못한 채 보병 자원을 갈아버리게끔 만든다.

시가전에서 공격 측이 큰 손실을 강요당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상전의 지배자인 전차가 제 성능을 발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먼 거리에서 포격으로 적을 섬멸하고, 보병의 엄폐물이 됨과 동시에 기동성을 바탕으로 전선을 돌파하고 적을 와해시키는 것이 전차의 역할인데, 하나하나가 참호이면서 요새인 건물[2]들은 충분히 튼튼해서, 하나 하나를 부수는 데에 꽤 큰 시간이나 자원을 소모해야 한다. 포격 한두 발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수준의 내구도를 지녔다. 이에 대한 예시로 서울 삼성동 헬기 추락사고에서 보듯 잘 만든 고층 아파트는 헬기가 정면으로 충돌해도 버티는 맷집을 자랑하며, 도시에 진입하면 '그 참호'에게 둘러쌓여, 골목, 창문, 옥상 등 대전차무기를 지닌 보병이 전차를 노리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에 떨어진다. 게다가 시내의 밀집된 건물들은 포의 발사범위를 좁히고, 좁은 길목과 수많은 장애물은 전차의 기동을 방해한다.

그리고 전차 포신은 생각보다 내구성이 좋지 않으며 특히 조준경이 취약하다. 조준경은 결국 투명해야 하니 방탄유리로 되어 있는데, 총알을 맞으면 금이 쫙 가서 사용이 불가능해진다.[3] 또한 포탑을 돌리다가 포신이 조금이라도 건물에 부딪히는 순간, 조준경 자체가 비틀어지기 때문에 정확한 사격을 할 수 없게 된다. 포구 감지기가 있는 전차들의 경우 미세하게 휜 정도는 즉각적으로 보정이 가능하지만, 심하게 휘었다면 포탄이 포신 내부에서 폭발할 위험이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차가 시가전에서 일반적인 야전상황에 비해서 활약할 구석이 적어진다는 뜻에 불과하다. 보병과의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시가전 속의 전차는 상당히 무서운 존재다. 보병은 대전차 화기를 가진 적 보병을 제거하고 전차는 보병을 막강한 화력으로 엄호하고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차가 도시에 안전하게 진입해서 주요 거점들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면 사실상 도시를 함락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며 잔존 수비병력들은 은밀히 철수하거나 항복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건물에서 떨어진 잔해들도 전차의 시야와 행동을 방해하는데다 대전차 무기를 든 적군과 대전차 지뢰, IED가 전차의 약점을 노리며 늘 도사리고 있다. 앞서 말한 스탈린그라드 전투 같은 경우도 탱크와 포격-폭격을 유기적으로 운용하는 독일군의 장기를 봉쇄하기 위해 소련군은 시가지와 무너진 건물들을 기민하게 움직이며 독일군에게 거친 육탄전을 걸었고 그 결과 연이은 패배에 장비도 변변치 않고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소련군이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독일군을 상대로 몇 달 동안 양측 모두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소모전을 벌이면서 방어해냈다. 그리고 여기서 상당한 손실을 입은 독일군도 결국 전략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밀리다가 패주했다.

때문에 야전보다 시가전에서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공략하는 측에 상당한 부담이 되며, 해당 도시가 정치나 전술 내지는 문화 역사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곳이 아니라면 대부분 점령을 포기한다.

2.2. 현대판 공성전

2.2.1. 특징

파일:데이르에조르/시가전.jpg
IS와 시리아 정부군과의 전투로 파괴된 데이르에조르 시가지

시가전은 현대전에서 부활한 과거의 공성전이나 요새전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비슷한 양상이 벌어진다.

차이가 있다면 성벽 대신 은엄폐가 가능한 콘크리트 진지가 되는 건물을 여러 개를 두고 싸운다는 점 뿐.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진 현대에는 도시의 각종 건물들과 고층 빌딩 등은 시야의 확보와 뛰어난 엄폐 진지의 기능을 해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건물을 엄폐삼아 적을 저지하고 또 그를 소탕하는 시가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투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시가전은 앞으로의 전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형태의 전쟁이 될 것이다. 즉 도시나 마을 별로 상대의 영토를 침략하는 것이 아닌, 건물 하나씩 점령해나가는 전투로 도시의 그 수많은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벙커요새가 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도시가 전장이 되는 경우는 건물 하나하나가 참호이자 요새가 되고, 창문 하나하나는 저격수가 자리잡은 총안구가 되며, 도로는 무인지대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거리 가운데 같은 탁 트인 곳을 지나가면 얼마 안 가 기관총 세례에 벌집이 되거나 저격수에게 죽는다. 참호전은 벌판 같은 평지가 주요 전장이었기 때문에 곡사무기로 비벼볼 수라도 있지만, 시가전은 고층 건물로 인한 수직성이란 변수가 생겨서 그 어느 곳도 영원히 안전하지 않다.

몇몇 사람들은 건물 따위 포격이나 폭격 몇 번 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거 아니냐는 의문을 갖기도 하는데, 전쟁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다. 확실히 현대 전투는 첨단 군사기술이 여러 도입되어 폭격 기술 자체는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나, 그와 동시에 건축 기술과 설계 기술도 함께 발달해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대식 건축물들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방대한 범위에 폭탄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는 압도적인 내구도를 가진 철근 콘크리트 건물들을 쉽게 파괴할 수 없다. 도쿄 대공습 같은 무차별 폭격공습도 어디까지나 '목조식 건물'에 소이탄을 퍼부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이며,[4] 현대에는 정치적 입장을 제외하더라도 도시 자체의 내구도가 크게 올랐기 때문에 고려하기 힘든 공격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과 달리, 전쟁에서 포격이나 폭격이 가지는 목적은 시설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 건물 자체를 부수는 것은 폭격만으로 달성하기 힘들며, 정교하게 시간을 들여 여러 폭탄을 적재적소에 배치시켜 '해체'시켜야 한다. 쉽게 말해 그 건물을 못 쓰게 망가뜨리는 것이 목적이지, 아예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다.

설사 몇몇 건물과 지역이야 그렇게 무너뜨린다 쳐도 드넓은 도시 전역을 엄폐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초토화시킬 수는 없다.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독일군은 레닌그라드에 수십만발의 포탄과 항공폭탄을 쏟아부었지만 레닌그라드는 끝까지 버텨냈다. 게다가 게임마냥 파괴된 건물들이 저절로 사라지지도 않으며 파괴된 건물이 남기는 잔해는 그대로 엄폐물로 남게 된다. 엄폐물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폭격을 써먹을 수 없는 것이다.

폐허가 되어 콘크리트 골조만 남은 건물도 일상생활에서나 흉물인 것이지 일촉즉발의 전시에서는 병력 엄폐는 물론 거점으로도 훌륭하게 써먹을 수 있다. 애초에 허허벌판 야전에서도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군대'라는 곳이다. 부서진 콘크리트와 철근, 벽돌 잔해로 쌓인 인공언덕에 주둔하지 못할 수가 없다. 게다가 현대 건축의 다수를 차지하는 철근 콘크리트 건축은 단순 석조나 벽돌보다도 더더욱 튼튼하기 때문에 폭격에도 골조 자체는 남기 쉽다.

지금까지도 최악의 시가전으로 일컬어지는 독소전쟁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양측 합해 20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사상자를 기록했는데, 당대의 스탈린그라드도 현대의 메가폴리스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의 도시에 불과했다. 1940년 당시 스탈린그라드의 인구는 단 45만 명에 불과했으며, 당연히 시가지의 넓이도 현대의 대도시 시가지 크기에 비하면 훨씬 협소했다. 행정구역상 면적은 넓으나 상당수의 면적은 시가지가 아니라 스텝 지역 평야였다. 그 정도의 도시조차도 수백만 명이 넘는 병력들의 생명을 잡아먹는 데에는 충분했다.

인구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건물들의 층수가 높지 않았으며 지하 시설이 많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전투는 폐허로 변한 저층 건물 사이로 벌어졌다. 그럼에도 소련군은 그 잔해 더미에 숨어서 진격해오는 독일군 보병과 전차들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결국 독일 육군은 포격을 포기하고 보병을 대거 투입해서 건물을 하나하나씩 수색해서 소탕하는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황이 반전되어 전쟁 막바지, 스탈린그라드 도시에 역포위되고 궁지에 몰린 독일군조차도 소련군이 내부로 들어가서 일일이 제압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군수물자 보급과 사기가 바닥을 친 패전 직전의 군대가 주둔한 소도시도 쉽게 제압하기가 힘들었던 것.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독일군을 직접 공략하기엔 부담이 크다고 느낀 소련군은 항복을 권유했으며 포위된 독일 제6군도 추위와 배고픔에 견디다 못해 승낙했다. 그만큼 시가전이 공격자 입장에선 부담이 매우 큰 전투라고 볼 수 있다.

건축 기술이 현대보다 떨어졌던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조차 이랬는데, 현대라면 아예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지지조차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현대의 고층 건물들은 층수가 높아진 만큼 지하도 깊게 파서 기반을 튼튼하게 만든다. 따라서 지상 대부분을 폐허로 만들었어도 지하 내부에는 훌륭한 지하 벙커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그게 한두 개도 아니고 수백, 수천 개가 자리잡고, 설상가상으로 어느 정도 크다는 도시는 지하철이나 지하차도 등으로 얼키설키 얽혀 있는 마당이니 도저히 공격자 입장에선 답이 없는 것. 심지어 지하철의 경우는 도시 외부와의 수송도 부분적으로 해결해주기도 하니 진정한 난공불락의 요새인 셈. [5]

제2차 체첸 전쟁 당시 러시아군이 그로즈니를 초토화시키긴 했으나 이는 일단 그로즈니가 근본적으로 당시 인구 30만대밖에 안되는 중소도시에 불과했고 당시 동유럽 건축물들 상당수가 과거 2차대전 당시와 비슷하게 구식의 벽돌공법으로 지어졌기에 그나마 가능했지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들이라면 정말로 155mm와 열압력탄을 도배해도 답이 안 나온다. 실제로도 그로즈니에서도 그런 건물들은 큰 손실이 없었다. 저층 건축물이라면 열압력탄이 내부 병력 소탕에 어느 정도 유효한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애초에 창문이랑 베란다가 있는 빌딩 및 아파트는 밀폐구조라 폭발력이 외부로 낭비되지 않는 지하실 구조도 아닌 데다가 건물 내부의 수많은 벽과 기둥들은 열압력탄의 위력 확산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중고층 건물쯤 되면 열압력탄도 모든 층에 도배 수준으로 쏟아부어야 할 판국이다. 여기에 한국의 아파트들이 그렇듯이 각 세대들이 모조리 쇳덩이로 된 방화문을 기본적으로 달고 있다면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 정도면 차라리 수류탄을 투척하는 게 더 낫다.

심지어 철근 콘크리트는 그 강도에 따라 대구경 열차포 클래스의 포탄도 씹어버리는 위엄을 자랑한다. 일례로 베를린 전투 당시 독일 국회의사당 근처에 강화 콘크리트로 구축되었던 동물원 대공포탑은 소련군이 현대의 자주포보다 강력한 203 mm 구경의 중곡사포[6]를 가져와 직사로 때렸는데도 생채기 몇 개만 나고 씹어버렸으며, TNT 25톤을 설치한 첫 번째 철거 시도조차 실패했다. 1940년대의 건축물이 이랬는데, 하물며 21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이라크 내전이나 시리아 내전 등 21세기에 벌어진 전쟁에 관한 영상들을 보면 많은 건물들이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지붕이 무너졌음에도 벽과 기반이 남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시간에 공격으로 철근 콘크리트 빌딩을 붕괴시키려면 건물 하나당 최소한 1톤 이상의 탄두를 가진 무기를 사용해야 할 지경인데 그게 얼마나 정신나갈 정도로 가성비가 나쁜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예시를 든 시가전들을 보면 비교적 낙후된 도시에서 치러진 전투임에도 이랬다. 만약 마천루가 쫙 깔린 대도시에서 실제로 대규모 시가전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당시와 비교조차 안되는 현대식 빌딩 내부의 넓은 공간은 수많은 병력들이 숨바꼭질을 해댈 장소를 제공하며, 이러한 빌딩이 한두 채도 아니고 여러 채가 존재한다.

2.2.2. 취약점

유명한 시가전은 총력전 개념으로 벌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예 무차별 포격이나 폭격으로 도시를 죽음의 땅을 만들어 버리고 도시를 포위하여 보급선을 끊어 굶겨죽이는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레닌그라드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바르샤바 봉기에서 드러났듯 도시는 포위당해 외부로부터 격리될수록 보급에 상당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도시라는 개념 자체가 제한된 토지에 많은 시설과 인구를 밀집시킨 요충지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공급되는 자원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도시는 요새로서의 기능은 훌륭하지만 생존주의 입장에서 도시는 일종의 사막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극한 상황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

예시로 10만명이 거주하는 도시라면 한사람 당 하루에 2리터의 물과 1킬로그램의 식량을 소비한다고 가정해도 하루에 물 200톤과 식량 100톤이 필요하다. 이 가정은 넉넉한 양이 아니라 정말 최소한의 양을 가정한 것이다. 하루 2리터로는 마실 물과 최소한의 조리에 쓰이는 물[7] 이외에는 전쟁통에 씻지도 못할 정도이고, 1킬로그램의 식량은 1그램에 평균 2칼로리를 가정해도[8] 2000칼로리로 환산되어 기초대사량을 조금 넘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데 전쟁통에 숨만 쉬어도 소비되는 기초대사량만으로 충분할 리가 없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생존의 위협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진대사량이 늘어난다. 긴장 상태를 유지하느라 몸에 아드레날린이 지속적으로 분비되기 때문이다. 총알 날아다니는 전장에 투입된 군인들은 운동량이 적어도 스트레스 때문에 전투식량으로 하루에 3600kcal를 섭취해도 살이 죽죽 빠져나간다. 괜히 베를린 봉쇄 때 서방 측이 기겁한 게 아니다.

물은 강물이나 지하수가 있지만 폭격 위험에 노출되는데다 적이 상수원을 오염시키면 독극물을 마시는 꼴이 되고, 평상시라면 대형마트 등지에 쌓여있는 먹을거리도 공급이 끊기면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사라져버린다. 무엇보다 전기가 끊길 경우 있는 음식들도 상당수 녹아버리거나 썩어버려 장기 보관에 최적화된 통조림이나 건식을 제외하면 버티기 힘들어진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막바지, 역으로 소련군에게 포위당한 나치 독일군에게 공중 보급 의견이 나왔지만 제6군이라는 야전군 규모의 군대의 보급을 공군으로만 한다는 건 현대 미군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바르샤바 봉기의 경우는 아예 독일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도시 안에 우물까지 파가면서 필사적으로 보급을 했음에도 종국에 가서는 오염된 물은 물론이요 식량이 없어 잡아먹을 쥐와 벌레마저 사실상 고갈되면서 수많은 봉기군과 시민들이 전염병과 기아로 사망했다.

또한 시가전은 도시에서 벌어지므로 시가전이 벌어진다는 자체가 수비측의 정치, 경제적 패배에 가깝다. 도시가 파괴되진 않을뿐 무력화되는건 쉽기때문에 도시가 가진 경제적 가치가 순식간에 식충이들만 가득한 마이너스 가치로 돌변하게된다 . 당연히 전투 도중 파손된 도시의 복구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되기에 수비측도 시가전은 좋아서 하는게 아니고. 전략적으로 꼭 필요한게 아니면 그냥 버리고 철수한다. 또한 시가전이란건 달리말하면 수비측이 홈그라운드 이점을 끼고도 야전으로 적군을 격퇴할 능력이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라 시민들의 군,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수직 하락한다. 그동안 낸 세금은 어따 쓰고 당장 내집에서 총알이 오고 가는데 좋아할 사람이 없다.

방어측이 시가전을 하면 당장은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만 공격측의 공격에 도시와 시민들이 휘말리기에 장기적으로는 아군의 사기도 꺾인다. 그래서 전력이 충분하다면 도시 밖에서 싸우지 일부러 시가전을 벌이며 도시에서 방어전을 하지 않는다. 자국 시민들이 시가전의 참상을 겪기 때문이다. 고대 전쟁에서도 강대강의 대규모 충돌은 주로 야전에서 이루어졌고 을 둘러싸고 하는 방어전은 한쪽이 열세인 상황에서 원군이 오거나 공격측이 포기하고 돌아갈 때까지 최대한 버틴다는 개념이었다.

현대에는 인권 개념도 더 중요해졌고, 총력전보다는 국지전으로 벌어지는 시가전이 많기 때문에 민간인이 다수 거주하는 도시에 폭발물을 퍼붓거나 식수, 식량 공급을 끊거나 화생방 공격을 가해 다수의 민간인 피해를 발생시킨다면 국내외의 비난 여론이 들끓는다. 이론적으로는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사전 통보 후 퇴거시킨 뒤 적군만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민간인이 없어지는 순간 무차별 공격이 쏟아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적군 지휘관 측에서 민간인을 나가지 못하게 방해하면서 인간 방패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라크, 아프간전 등 2000년대 이후 벌어지는 시가전들은 전쟁 성격 자체가 전격전이 아니고 국제 사회의 여론과 해당 지역의 주민들 사정을 고려해 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9]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도시의 물자 공급 루트를 철저하게 봉쇄한 다음 항복을 권하는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도시는 그 자체로 최소 수십만명, 최대 수백만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소비 집단이기 때문에 아무리 평소 쌓아둔 것이 많아도 주요 보급 루트를 끊은 채 작정하고 포위하면 얼마 가지 않아 전부 다 식량 및 물 부족으로 굶어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방국의 지원이 있거나 항복할 경우 닥칠 결말이 비참해 결사항전을 외치거나, 적군이 굴복 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시민들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러시아는 키이우 전투에서 우크라이나의 주요 국경 도시를 폭격하여 도시를 완전히 초토화시킨 후[10] 주변을 포위하여 철수를 강요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러시아가 전쟁 중 우크라이나 도시들을 주변의 주요 도로와 교통 요충지를 장악하여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점령하였다. 우크라이나 수비군 입장에서도 적군에 포위되어 보급로와 퇴로가 끊길 위험에 처하면 도시를 버리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2.3.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도시 전역의 구조물을 한 개의 엄폐물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날려버리는 건 핵무기로도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현대 사회의 건물들은 핵무기 에너지의 최소 수배에서 수십배 위력을 지닌 지진이나 태풍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 전세계 국가들이 핵무기를 경계하는 것은 많은 인명이 희생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이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지 한발 쏜다고 도시 전체가 지워지는 무기이기 때문이 아니다.

핵무기의 파괴력을 보면 알겠지만, 현대 도심지를 구성하는 철근 콘크리트 건물들은 핵폭탄의 충격파와 복사열에 매우 강력한 내성을 가지고 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당시에도 석조건물은 폭심지에서도 유리만 아작났지 골조는 큰 타격이 없었다. 석조건물도 이런데, 석조건물보다 훨씬 강력한 내구성을 가진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말할 것도 없다. 골조 자체가 안 날아가고 버티면 그것 자체가 핵폭탄의 열폭풍과 복사열 확산에 막대한 방해를 가하며 거대한 음영지를 도시 전체에 생성해버리는 강력한 차폐제로 작용한다.

물론 핵폭발 반경 내에 밀려드는 충격파와 지하 200미터 내의 치사량의 방사선, 그리고 이후의 열에너지로 인해 철근 콘크리트 건물 내부에도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 고층 건물은 상단부 피해로 9.11 테러처럼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 논지는 핵무기로 발생하는 인명 피해가 아니라, '핵무기 투하로 도심지를 엄폐물 하나 없는 평지로 만들어 시가전을 회피할 수 있는가?'하는 점이다. 건물 골조는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이기에 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핵무기가 쓰여도 도시 하나당 핵탄두 한개 혹은 몇 개 정도의 핵폭격으로는 대부분 엄폐물을 남기게 된다. 핵탄두라고 해도 화구와의 접촉으로 소위 '증발'시키는건 의외로 얼마 안 되는 범위이고 나머지 공격반경은 많은 복사열로 적당히 녹여버리고 파괴한 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수준에 그친다. 물론 차르봄바 같은 10메가톤 이상급 핵무기의 경우엔 '완파(20psi 이상의 충격파[11])'라고 할 수 있는 범위가 10km정돈 쉽게 넘어가지만, 일반적인 핵무기도 아닐 뿐더러 현대 시대의 '메갈로폴리스'급 도시들은 10km 정도는 우습게 넘어가는 범위를 자랑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폭격때는 당대 일본 대부분의 건물이 저층 목조건물로 되어 있었고 이것들은 핵 폭풍에 그대로 흔적도 없이 가볍게 소멸했기 때문에 핵폭발의 위력을 차감시킬 요소가 거의 전무했지만[12] 현대의 대도시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중~고층 건물들이 도배되어 있다. 당연히 이 건물 하나하나가 핵폭발의 위력 확산을 엄청나게 약화시켜 버린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수소폭탄 여러발을 동원하지 않는 한은 핵폭격으로도 도시에 대한 파괴능력은 생각보다 매우 제한적이다. 흔히 웹에 돌아다니는 서울 핵폭격 시 인명피해 자료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자료는 현대의 철근 콘크리트 빌딩과 성냥갑 아파트 단지로 도배된 서울과 허약한 저층 목조건물이 대부분이던 당대 히로시마의 엄청난 도심지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작성된 자료다. 통신과 의료 인프라의 70년에 달하는 엄청난 격차 역시 무시한 건 덤이다. 단순히 히로시마 핵폭격 당시의 사상률을 현대 서울 인구밀도와 면적에 그대로 때려넣어 계산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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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범벅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핵공격을 할 수도 있지만, 원자로 폭발도 아닌 핵폭격에 의한 방사능 확산량은 생각만큼 엄청나지도 않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초기인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배출된 방사능 물질 양은 히로시마 원폭에서 배출된 방사능 물질 양의 백수십배를 가볍게 넘어선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실제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핵투하가 끝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사람들이 다시 거주하기 시작했지만 체르노빌 원전 주변과 후쿠시마 원전 주변은 여전히 위험지역이다.

도시의 건물들이 잔뜩 남아있으면 그만큼 낙진에 대한 강력한 차폐제로 작용하므로 역시 그 또한 효율이 낮다. 위에서 쓴 것과 마찬가지로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격때는 도심지 자체가 주로 낮은 층들로 이뤄진 건물들이 위주였으며, 박람회 건물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삭제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생존자들이 쏟아지는 방사능 낙진을 피할만한 곳도 거의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핵무기와 방사능 대한 지식이 대중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생명에 치명적인 건지도 잘 몰랐다. 심지어 사용자인 미국측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실제로도 우산과 우비 하나만 있어도 핵폭격 후의 낙진에 대한 노출도는 없는 것 대비 엄청나게 줄어든다. 당연히 건물들이 남아 있으면 유리가 깨졌건 뭐건 간에 낙진에 대한 노출도는 매우 크게 줄어든다. 정말 완전히 작정하고 방사능 오염을 목적으로 더티 밤을 쏟아부어서 도시를 완전히 방사능으로 도배하는 경우 도시를 못 쓰는건 공격측도 마찬가지가 된다. 돌파구를 만들려고 핵무기를 썼는데 정작 그 돌파구를 만들어놓고 쓸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물론 병사들 목숨 신경 안쓰고 진격시키면 되기야 하겠지만, 원래 목적이 뭐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적어도 아직까지 현대의 국제 정치적, 현실적 문맥에서 도시 점령전 자체를 피할 수 있게 해줄 만큼 강력한 핵무기를 쓴다는 건 국제사회 눈치 별로 신경 안 쓰고 사는 중국,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독재국가들도 감당 못하는 정치적 파란을 일으킨다. 아예 핵보유국들끼리 서로 국가와 민족의 사활을 걸고 현대 기술로 세계대전 시대급의 총력전을 벌이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 시 짊어지게 될 정치적 부담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3. 전략

3.1. 미군의 시가전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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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시가전 사상률을 분대원이 10명일 때 2명은 죽는다고 보고 20%[13]로 잡고 있으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의 시가전 훈련소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SWAT 역시 대표적으로 시가전에 특화된 작전 수행을 위해 훈련을 받으며 건물 안에서 방마다의 안전확보를 위한 진입 절차, 건물 외부를 확인할 때의 안전 절차 등을 중요하게 교육 및 훈련한다.[14] 이 시가전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투방법이 그 흔히 알려진 CQB이다.

방 내부 진입시와 베란다의 경우에는 사상률이 가장 높은데 방으로 들어갈 때는 안쪽에서 노리고 있는 경우가 위험하고 베란다는 머리 내밀고 나가면 저격당하기 때문으로 반드시 벽에 붙어서 나가도록 교육 및 훈련시킨다. 또한 건물 내에서 건물 밖으로 사격할 때 절대 총구가 구멍(총안)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데 그러지 않으면 적의 입장에서 위치 파악이 쉬워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류탄이 날아들었을 경우, 절대 되던지면 안된다! 시가전에서 수류탄은 핀 뽑고 바로 던지는게 아니라, 거리에 따라 소요시간을 재면서 안전손잡이를 먼저 놓고 이어서 투척동작을 하기 때문에[15] 보통 되던질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이미 싹다 까여 없어진 채로 수류탄을 발견하게 되고, 따라서 수류탄이 날아들고 1초 내로 누군가 반드시 몸으로 덮어서 대신 죽어주지 않으면 분대 전체가 깡그리 다 죽는다. 이런 식으로 시가전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한다.

문을 따고 진입하는 과정은 여러가지 교리가 존재하지만, 진입하는 내부의 구조를 모르면 왼쪽으로 먼저 들어가다 오른쪽에서 공격당하거나 혹은 그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할수 있기 때문에 어느 경우에나 통하는 완벽하고 안전한 공략법은 없다고 봐도 된다. 주요 정부 시설 내에서 사진촬영이 허용되지 않는 이유도 구조를 파악하면 공략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미 육군은 건물 점령을 위해서 사다리를 담당해서 들고 다니는 병사도 있고 미 해병대가 산탄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시가전에 필수인 도어 브리칭을 위해서이며 이스라엘제 M100 총류탄도 사용할 정도로 신경쓴다. 시가전의 특성상 보병 화력이 매우 중요한데 이 때문에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군의 탄약 소모량은 실로 막대했다. 미국 내의 탄약을 생산하는 조병창을 24시간 풀가동하고 한국을 비롯한 친미 우방국들에서 생산하는 탄약을 수입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탄약을 생산하는 미국 내 민간 업체들에게 탄약들을 대량 주문해야 했다. 이 때문에 미국 내 민수용 탄약 가격도 크게 뛸 지경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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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미 해병 전투연구소에서는 시가전에 대비할 목적으로 도시 전사 작전(Operation Urban Warrior)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93년 영화 블랙 호크 다운으로 잘 알려진 모가디슈 전투가 일어났고 이에 미 해병대는 Operation Urban Warrior 프로그램을 앞당겨 실시하였다. 훈련중인 사진을 보면 어반 전투복과 일명 T-패턴, 테트리스 위장복[16]과 함께 입고 훈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위키백과 문서

3.2. 대한민국 국군의 시가전 훈련

대한민국 국군JSA 경비대대는 주둔지의 특성상 미군과 비슷하게 시가전 대비 건물 진입 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군에서 유일하게 권총 사격술에 신경쓰는 것도 정전협정 상 판문점 내에서 소지할 수 있는 무장이 권총 한 정으로 제한되어 있거니와 실전에서 실내전을 치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더 강한 화력이 동원될 수도 있겠지만 초동 조치는 권총으로만 해야 한다는 뜻이니 권총사격술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17]

특전사, 707특임대, UDT/SEAL 특수임무대대, 제35특수임무대대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군 부대는 본격적인 시가전이나 내부소탕에 대비한 CQB 등의 훈련이 없는 상황이다.

일부 보병 훈련장에 간이 형태로 시가전 훈련 시설을 만들어 놓고 훈련을 진행하기도 하나, 훈련 시설의 수준과 훈련 내용 모두 말 그대로 임시 방편 수준이다. 북한군과의 전투 혹은 해외파병으로 대규모 시가전이 벌어질 경우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막사 건설이 완료되면 구막사를 시가전 훈련장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2차 KCTC 훈련장에는 시가전 시설도 추가할 것이라고 한다. 군사경찰 병과가 병과 특성상 시가전 훈련을 하지만, 특임대가 아닌 이상 집중적인 훈련을 하진 않는다.

해병대와 육군은 미군과 훈련을 하고는 있으나 특수부대와 같은 전문적인 시가전 및 CQB 훈련체계와 방식, 빈도, 훈련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Q: Did CQB tactics evolve much during the time you were in the Unit?
질문: 당신이 복무하는 동안 CQB 전술이 더 진화하였나?
A: They have not evolved since WWII.
답변: CQB 전술은 2차대전 이후로 진화한 적이 없다.
John Mcphee 1991년 ~ 2011년 (총 20년간 미육군 복무, 75 레인저 연대, 그린베레 7특전단 CIF 특임대, 델타포스 원사 계급 전역.)

위 존 맥피의 말처럼 CQB를 포함한 시가전 전술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만들어진 체계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대한민국 또한 6.25 전쟁을 통해 미군의 시가전 및 CQB 전술을 받아들였으나 이후 1960~1980년대 전쟁이 베트남 전쟁과 남미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 같이 산악전과 정글전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미군은 물론 미군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국군 역시 시가전과 CQB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전후 경제개발을 거치며, 남북한 가릴거없이 도시화률이 높아지고 아파트들이 대량으로 건축되면서 아파트가 일반저인 주거형태가 되었지만, 기본교리는 큰 진척이 없던것이었다. 하지만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른 미군은 시가전과 CQB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아 모든 병력에게 체계적인 전술을 교육하게 된 반면 한국군은 아직 이에 대한 부분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한국군 역시 시가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한 적은 있다. 1990년대에 경기도 북부인 파주 지역에 일산신도시를 건설 할 때 국방부의 요청으로 도시계획/아파트 설계 단계부터 적 부대의 진격을 차단하기 위한 고려가 들어갔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군에도 시가전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초반 일산, 파주 일대 방어 임무를 맡은 제9보병사단이 시가전 전문 테스트 부대로 선정됐으며 실제 일산신도시의 ○○역을 중심으로 주변의 상가와 아파트 단지를 비례축소 시켜 만든 전문 시가지 교장/도시지역작전훈련장이 건설되었고 연대별, 대대별로 로테이션을 하며 시가전 및 CQB 교육/훈련을 받게 되는데, 이때 교관 역할을 한 것이 제9보병사단 내에 있던 특전사707 특임대 출신 중대장급 장교들이었다.[18]

이후 각 부대 및 예비군 교장에 이러한 시가전 교장이 만들어지긴 했으나 전문적인 교관단의 부재로 인한 전술 교육 미비, 그리고 부대별로 수준의 편차가 큰 시가전 교장의 규모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 해병대와 육군에서는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시가전 훈련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1분 13초에 나오는 제9보병사단 도시지역작전훈련장.

위의 설명을 모두 봤다면 알겠지만 만약 북한과의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아무리 낡아빠진 장비와 허접한 훈련도로 무장한 북한군이 적이라도 평양과 같은 대도시에 충분한 준비 없이 무작정 시가전을 걸면 한국군의 손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반대로 북한이 밀고 내려온다 쳐도 경기도 북부 도시 하나를 제대로 점령 못 하고 막힐 가능성이 높겠지만, 북한이 공세를 해올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이상 대한민국 국군이 평양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더 중요한 쟁점이다. 특히 한국은 전쟁 시 중국의 개입 가능성까지 생각해야 하므로 평양 같은 대도시를 신속하게 점령해야 한다는 큰 딜레마를 안고 있다. 북한군 주력이 소멸했어도 북한의 정권이 평양에서 물리적으로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외교적으로 매우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큰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논밭과 산악지대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서울과 대도시 뿐 아니라 일산, 분당, 남양주, 판교, 동탄 등 수도권만 해도 수없이 많은 신도시들이 생겨나는 추세이며 지방 또한 계속해서 아파트 단지 위주의 도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의 훈련은 지금도 6.25 전쟁 시절의 전투경험을 기반으로 한 고지전/야전을 염두에 둔 형태이다. 때문에 한국군에서는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의 전투 지역이 도시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육군과 해병대 전체에 체계적인 시가전 교리를 보급하고 실전과 같은 다양한 시나리오의 시가전 훈련이 필요하다.

2023년도부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위기감이 고조되어 군에서도 교관 양성과 훈련 지침서를 마련하는 등, 시가전 훈련을 일선의 보병 부대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게 되었다.#

4. 사례

5. 대중매체에서

소설 남북의 경우 한국군이 평양 포위에 동원한 병력은 무려 11개 사단에 달했다. 이 경우는 평양 점령이 목적이었고 실제 북진 상황에서는 굳이 대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를 이유가 없으니 1~2개 사단으로 간단히 봉쇄만 하고는 토마호크 등 미사일을 퍼부어 고가치목표를 날려버린 뒤, 보병은 지하 통로에서의 교전에서나 주력으로 투입될 것이고, 주 전력은 평안북도에 집결한 북한군의 예비부대들의 격멸에 투입될 것이다.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가 이 분야의 대명사다. 대테러를 묘사한 작품인 만큼 시가전 상황이 수도 없이 등장하며, 가장 최신 게임인 레인보우 식스 시즈는 아예 게임 자체가 실내전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특히 빈민가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 그러다 보니 대원들의 특수능력들도 공격은 브리칭, 무력화, 장애물 파괴, 수비는 함정, 강화, 정보 능력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정도전에서는 사극 역사에 길이 남을 시가전을 보여주었다. 사극에서의 전투는 보통 공성전인 경우가 많은데, 공성전은 다대다의 전투로 구성되어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꽝 부딪히느냐, 혹은 CG가 얼마나 화려하느냐가 관전포인트이다. 그런데 해당 드라마에서의 시가전은 개인전 위주로 진행이 되어 병사 개개인의 액션에 포커스가 맞춰져서 보여진다. 다만, 이쪽은 위에 설명된 대부분의 현대식 시가전과는 다르게 냉병기가 전투의 주요 아이템이다보니 근접전 위주로 장면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 근접전이 롱테이크로 쭈욱 이어지는 것과 동시에, 눈을 사로잡는 스턴트까지 보여주는 꽤나 신선한 시가전이다. #

게임 ARMA 3의 야전교범에서 시가전 항목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도심 지역에서의 군사 작전(Military Operations in Urban Terrain)과 근접전(Close Quarters Battle)은 보병 작전 중에서 가장 위험한 환경으로 꼽힙니다. MOUT 환경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보병 지휘관을 위한 조언입니다.

* 신중하게 기동하십시오. MOUT 교전에서 함부로 기동하거나, 과도하게 빠른 속도로 기동하거나, 병력이 너무 넓게 퍼져 있으면 사상자가 발생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 MOUT 상황에서는 연막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잘 활용하십시오! 연막을 올바르게 이용하는 방법을 익히고, 가능한 때마다 최대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활용하십시오. 연막탄 하나만 잘 던저도 거리나 건물의 한 면을 전부 뒤덮어 아군의 생명을 지키고, 적의 시야를 차단시킬 수 있습니다.
* 잘 배치된 기관총은 길거리 하나 전체에서 적이 기동을 하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관총의 배치가 시가전에서 승리하는데 크나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 화력조들이 서로를 지원하며 구조물 내부의 적을 소탕할 수 있도록 조를 편성하는 방법을 익히십시오. 구조물로 진입하는 소탕조에서 한 조는 왼쪽으로 이동하고, 한 조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등, 다른 조의 사각을 맡아서 처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편성을 잘 했을 경우, 이들은 구조물 내의 각 방을 체계적으로 확보한 후에 구조물 전체가 이상 없다고 판단될 경우 외부로 나와서 다른 화력조 조원들과 합류해 계속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 보통 정도 크기의 구조물까지는 하나의 화력조 이상을 투입하지 마십시오. 매우 큰 크기의 건물일 경우에는 최대 2개 조까지만 투입시키고, 3번째 조는 엄호조로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건물에, 그것도 함정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건물에 너무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 일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행위입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룬 레드 오케스트라 2에서도 지겹도록 경험할수 있다. 특히 전몰장병 광장이나 곡물저장고, 파블로프의 집 등 대부분 실내전투이되 개활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저격수와 기관단총, 기관총 세례에 한사람당 몇십 번씩 일방적으로 죽어가면서 거점에 닥돌까야 하고, 어찌저찌 안에 들어가도 점령은 커녕 또 죽으며 거점 하나 점령 못하는 생지옥을 체험하게 된다. 또 어떻게든 접근하는데 성공하더라도 폭발물이 하나도 없다면 죽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못할 때도 있다. 내부에 있는 기관총이나 복병을 제거해야 하는데, 수류탄이나 공병폭약이 없으면 이쪽이 직접 노출돼야 하고, 노출되면 높은 확률로 죽기 때문이다.

토탈 워 시리즈의 초기작에서는 공성전에서 성내의 건축물이 거의 구현되지 않아 성벽만 넘어가면 사실상 승리하곤 했지만 최근작에서는 시가지가 제대로 구현되어 성내에 진입한 뒤로도 나름 긴 시간 신경써서 시가전을 벌여야 점령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개발 단계가 높은 성일 수록 시가지도 더 크고 복잡해지며 자연히 공성측의 피해도 더욱 늘어난다.

6. 관련 문서



[1] 그러니까 현대전에서의 게릴라전투와 비슷한 양상을 띈다. 물론 게릴라전은 지형의 유리함을 이용해 적을 완전히 섬멸할 기세로 철저히 치고 빠지는 유형이고 시가전은 그 특성상 공성전과 더 유사한 면이 있다. 여기서 시가전과 게릴라전을 합치면 도시 게릴라전이 된다. 대표적으로 우루과이의 투파마로스가 있다.[2] 현대화된 도시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3] 예비 조준경이 있기는 하나 당연히 주 관측장비보다 성능이 한참 떨어진다.[4] 일부러 도쿄시의 당시 화재보험 등급정보를 모아서 가장 화재보상 등급이 낮은 저품질 목조건물, 심하게 말해서 초가집보다 조금 살만한 구식 목조건물들이 밀집한 지대를 노린 것이다. 이런 건물들은 수백년간 주로 일본의 도시 하층민들이 거주하여 대화재가 날때마다 싹 타서 이들이 이재민이 된 뒤 다시 급조해서 지어 들어오는 역사의 반복이라 간신히 비바람만 막는 수준의 값싼 건물이었기에 소이탄의 좋은 불쏘시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도쿄 대공습 사진을 보면 중간중간에 멀쩡한 건물들이 보이는데 그 건물들은 현재 아파트와 비슷하게 시멘트나 석재로 만들어서 그렇다.[5] 예를 들어 한양 도성 내부을 포위해 내부를 완전히 단절하고 싶으면 남쪽으로 평택까지 차단해야 제대로 된 효과가 나올 수 있다.[6] 일반적인 중순양함이 주포로 쓰던 구경이다.[7] 그것도 끓이거나 삶는 조리는 엄두도 못내고 물에 데치거나 타먹는 수준의 조리만 가능하다.[8] 이것도 후하게 쳐주는 편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1그램당 4칼로리 계산은 물없는 순수한 탄수화물(설탕 등)의 경우나 해당되는 상당히 높은 열량이다. 발열팩을 제외한 전투식량이 대략 500그램 정도 되며 1200칼로리 정도에 불과하다.[9] 한 예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가 점령했던 라카모술의 경우 연합군이 도시 내 건물들을 하나씩 전부 수색해서 적이 완전히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탈환 선언을 했다.[10] 초기에는 러시아도 도시의 주요 거점을 타격하는 방식을 썼으나 통하지 않자 민간인 구역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포격을 했다.[11] 10MT 기준 20psi는 9.6KM, 5psi는 14KM, 1psi는 40KM[12]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목조 건물이 파괴되기는 했지만 잔해가 가벼운 편이고 열복사를 차폐시키는 역할은 어쨌든 하기에 생존시간을 증가시킨 경우도 있었다.[13] 현대전에 한 부대의 사상률이 30%를 넘으면 전멸로 간주하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다. 다만 이는 부대의 전투인원이 30퍼센트 가량이고, 나머지 70퍼센트는 보급, 행정 등의 비전투원이기에 간주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부대의 3퍼센트가 죽는다는 의미인 것이다.[14]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이래 10년이 넘게 전쟁을 해 오면서 발달한 시가전/근접 전투용 교리와 장비들이 SWAT에도 영향을 주고 SWAT이 그동안 쌓아온 실내전투에 대한 노하우가 군대에도 적용이 되는 등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15] 보통 가까우면 쓰는 언더핸드 스로형 투척동작 기준 손에서 대기 1초, 투척 1초, 날아가서 적이 소리를 듣고 수류탄을 발견할 때까지 도합 1초 해서 3초가 날아가고, 먼 거리에서 쓰는 통상 투척동작인 오버핸드 스로 형태나 스리쿼터 스로 형태로도 조금 접근해서 안전손잡이 놓고 바로 던지는데 1초 남짓, 날아가는데 2초 남짓 해서 착탄 순간까지 거의 3~4초가 날아간 상황이며, 착탄 시점에서는 운이 좋아도 1~2초 남고, 운이 없으면 포탄마냥 착탄 즉시 터져버린다. 심지어 대전차용으로 개발된 대전차 수류탄들은 지연신관도 없이 착발신관만 쓰는 경우가 태반이라 시가전에서 얇은 쇳조각 몇개 감아다 던져서 보병들 날리는데 쓸수도 있다.[16] 파일:DM-SD-00-02959.jpg
위장복과 함께 뜬금없는 스케이트보드가 보이는데 미 해병대는 스케이트 보드를 시가전에 활용하여 저격수의 총격을 감지 및 회피하기 위해 건물을 빠르게 기동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테스트중이였다.
[17] 게다가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당시 북한군이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판문점 주둔지에 AK 소총을 몰래 보관해뒀다가 발포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더더욱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18] 당시만 해도 특전사와 9사단은 장군으로 진급하기 위한 필수 코스 부대였기에 대대마다 두어 명 이상이 존재했다. 해당 교장이 있는 부대는 일반 징집병 부대이지만 그렇잖아도 전술훈련을 많이 하는 부대라 시가전 훈련에 한해서는 웬만한 특수부대들보다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래도 수백미터만 걸어가면 나오는 장소라 걷는 거리가 짧아서 크게 싫어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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