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9 19:44:50

시리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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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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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이라크 내전 현황 및 IS 준동영역
기준
출처 (위키백과, CC BY-SA 4.0 국제 라이선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시리아 내전 이라크 내전
시리아 정부 이라크 정부
시리아 반군
(자유 시리아군 / 터키군 연합)
타흐리르 알 샴
시리아 쿠르드
로자바 쿠르디스탄 연방
이라크 쿠르드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레바논 내 점령지
나이지리아 내 점령지
시나이 반도 내 점령지
예멘 내 점령지
아프가니스탄 내 점령지


포격으로 불타는 농지에서 농부가 서둘러 수확하고 있는 사진이다. 출처
시리아 국기를 흔들며 전투 승리를 자축하는 시리아 정부군.
시리아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시리아 반군
AK-47 소총을 매고 전선으로 이동하는 시리아 반군
전선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있는 시리아 반군 병사.
이슬람 국가(IS)와 전투를 치르고 있는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호대(YPG)
데이르에조르 시에서 고립된 시리아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이는 이슬람국가(IS) 병사들
시리아 정부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슬람 국가(IS) 병사
T-72 전차를 조종하는 시리아 정부군의 전차병들
이슬람 국가(IS)와의 전투를 앞두고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시리아 민주군(SDF) 대원들
시리아 난민 여성이 시리아-터키 국경지역 수루크에서 구호품으로 받은 물 한 컵을 손에 든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1]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및 시리아 민주화 운동 이후 시리아에서 벌어진 내전 내역.
http://www.rudaw.net/NewsDetails.aspx?PageID=28345
https://www.cfr.org/interview/syrias-regime-change-challenge
https://carnegie-mec.org/diwan/63231
https://www.google.com/amp/globalpublicsquare.blogs.cnn.com/2011/04/26/why-syria-is-descending-into-civil-war/amp/
시리아 내전 관련 사건
시리아 민주화 운동 시리아 내전
(2012~현재진행형)
이라크 내전
(2014~2017)

1. 개요
1.1. 경과1.2. 시리아 내전만의 특징들
1.2.1. 미디어 전쟁1.2.2. 전술적 특색1.2.3. 시리아의 기묘한 내전경제
1.3. 시리아 내전은 왜 끝나지 않는가
1.3.1. 시리아 정부군의 문제점1.3.2. 반군 세력의 문제점1.3.3.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
2. 현재까지의 참상 및 난민 사태3. 주요 세력
3.1. 시리아 정부3.2. 시리아 반정부군3.3.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3.4. 북부 시리아 민주연방체제 - 로자바3.5. 주요 외부개입 세력
4. 무력 개입하지 못했던 이유
4.1. 국제 정치적 역학관계4.2. 아사드의 패배가 만들어 낼 세속주의, 소수종파의 패망4.3. 현시창 - 온건 반군은 없다
5. 트럼프의 당선이 미칠 영향6. 터키의 변칙적 행보가 미칠 영향7. 관련 문서

1. 개요

2011년 3월 15일에 발발해 지금도 진행중인 중동의 장기 내전이다. 시리아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혼란상에서 촉발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으나 사실은 시리아 내전/원인에서 설명된 대로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난 사건으로 본래 경제불황과 난민에 의한 일자리 교란 문제, 흉작으로 인한 이촌향도 현상이 심화되어 민심이 흉흉한 와중에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며 유혈진압에 의한 시민 사망으로 크게 격화되었고, 아사드 대통령은 종신대통령제 폐지, 연임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개헌을 통해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강경한 무력 진압을 견지하며 시리아의 시위는 점진적으로 잦아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네오 오스만주의를 추구하는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 시아파 정권 하야를 통해 이란의 영향력을 줄여보려는 카타르, 사우디의 의도가 겹쳐져 다양한 외교적 압박과 미디어 선동으로 하야를 추진하였으나 아사드가 포기하지 않고 하야를 거부하자 무기, 자금 지원을 통한 리비아식 무력 하야 옵션을 채택함으로써 내전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전개된 것이다.

초창기에는 정권의 무력 진압을 반대하여 탈주한 시리아군 장병들과 장교들, 그리고 야권 인사들로 구성된 민주주의 저항군의 형태를 띠었으나, 수십년에 걸쳐 반다마스쿠스 감정을 가진 알레포이들리브 지역민들의 이슬람 원리주의 지지 성향과 이들의 후원을 받은 무슬림형제단 계열 세력이 상당하다는 복합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노선 분열이 가시화된 계기는 2012년 7월 제1차 다마스쿠스 공방전에서 반군이 제4기갑사단의 활약 앞에 패배하면서였으며, 사우디와 카타르는 과격 이슬람주의자에 지원을 집중하면서 세속주의 민주주의 저항군들의 세력이 계속해서 축소되었다. 결국 2013년에 정부군이 반격을 개시하여 반군이 패배를 거듭하면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각각 이슬람 전선, ISIS, 알 카에다 계열로 분화하고 세속주의자들을 제거하면서 시리아 반군은 이슬람 원리주의 색채를 강하게 띠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현재 시리아 내전은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시아파+소수 종파(기독교, 드루즈파 등) vs 수니파의 종파전쟁이면서, 세속주의 vs 이슬람 원리주의의 이데올로기 대결이고, 이란 vs 사우디+카타르+터키의 인근의 중동 국가 간의 대리전이면서, 러시아 vs 미국+유럽의 강대국 간의 대리전이라는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국민들의 저주와 비난을 받아야 할 독재자인 바샤르 알 아사드[2] 대통령이 아이러니하게도 소수 종파와 세속주의의 수호자가 되고, 민주주의를 위해 들고 일어난 반군이 이슬람 원리주의[3]와 종파 차별을 추구하는 기형적인 형태가 되어버렸다.

1.1. 경과

2019년 3월 15일 기준
상세한 내용은 시리아 내전/경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syria.liveuamap.com에서 지속적으로 시리아 내전 상황을 살펴볼수 있다.

1.1.1. 2012년 - 진격의 반군

2012년 초 정부군은 요르단, 레바논, 터키 국경을 통해 침투하는 반정부 세력과의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으며 4월까지 1만여명 이상의 사상자를 강요하며 교전을 거듭하였다. 하지만 레바논 수니파 지역에서의 반군 지원, 터키의 지원을 통한 이들리브-알레포 지역과 요르단을 통해 지원받는 남부 다라 지역의 장악은 쉽지 않았으며, 지지부진한 교전이 이어졌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레바논 국경을 통해 알 자바다니에서 다마스쿠스 수도권역인 도마(Douma)시, 다라야(Daraaya)시로 이어지는 보급로가 개척됨으로써 반군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져 수도권역 동/서부 고타(Gouta)지역이 반군에게 넘어가 수도 다마스쿠스는 주요 도로를 제외하면 반정부 세력에 의해 포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국제적으로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가까웠다는 선전이 이뤄졌으며 이에 반군으로 탈주하는 정부군 병력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정부군의 처지가 좋지 않았다. 심지어 아사드 정권의 현직 국무총리도 반군에게 귀순하는 지경이었다.[4]

7월경 수도 다마스쿠스 방면 반군에 의해 수도함락작전 "다마스쿠스의 화산"이 입안되었으나, 정부군의 첩보망에 걸려 작전이 다급하게 시작되었다. 7월 15일 도우마 시 주변에서 정부군과 전투하던 반군이 다마스쿠스 방면으로 퇴각하면서 전체 방면에서 수도 다마스쿠스로 진입이 개시되었다. 17일에는 반군의 공격이 수도 내 미단(Midan)지구와 카프르 소세흐(Kafr Souseh)으로 이어졌으며 수도 중앙은행과 의회 건물 주변에도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로써 다마스쿠스는 최대 80%가까이 반군의 손에 장악당했으나, 정부군이 이스라엘 침공에 대비한 골란고원의 예비대를 차출하고 수도 방위 제4기갑사단과 제3기갑사단이 시내로 돌입하여 대격전을 벌이며 수도에 대한 직접 포격도 서슴치 않음으로써 7월 23일에는 반군이 도주를 시작하였고 정부군은 7월 30일 완전 승리를 선포하였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11월부터 반군이 공세를 시작하며 정부군은 반정부 성향이 강한 이들리브, 알레포의 교외 지역에서 철수하고 주요 도로와 군 주둔지, 주요 도시만을 방어하는 수세적 전술로 전환하였다. 이는 보급로와 후방에 대한 게릴라성 타격을 더이상 버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주요 기지에서 잘 버티기만 하면 국제적인 상황 변화를 통해 내전의 향방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 이 작전은 주효하여 오합지졸 시민군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자유 시리아군은 정부군의 방어를 전혀 뚫지 못하고 무력하게 사상자만 내었다. 하지만 이 방침 탓에 이들리브와 알레포, 시가지와 교외 지역은 전부 반군의 손에 넘어가 버렸으며 정부는 주요 도로와 대도시, 군기지만 포위된 상태로 겨우 통제하는 상황이 되었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반군의 11월 반격작전이 실시되어 반군은 카프르 소세흐 지역 장악에는 실패했으나 동부 고타 교외에서 다시 하라스타(harasta), 이르빈(Irbin), 자말카(Zamalka)등 외부 시가지를 재장악하는데에 성공했다. 이 전국적인 대공세는 2013년 3월까지 계속되어 3월에는 현재 IS의 수도인 라카(Ar Raqqah)가 반군에게 함락당했고 다라 지방에서도 38사단 방공기지가 함락되면서 요르단 국경지대 25km를 빼앗겼다. 이처럼 반군은 2012년 11월부터 2013년 3월까지의 공세로 시리아 내전에서 광대한 점령지를 얻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종파주의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보여 친정부 세력이 결집하여 무장단체를 결성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고, 세속주의자들과의 노선 차이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시리아 이슬람 해방 전선(S.I.L.F)를 결성하여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이른바 자유 시리아군 내부에 실존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2년 12월에는 홈스 주 알 오바이디 지역에 정부군의 소행이라고 주장되는 독가스 살포가 이뤄져 7명이 사망했다고 반군 측에서 주장했으나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 정부가 독가스를 사용하면 전면 개입한다고 발표한 이후 발생한 사태여서 정치적 자작극으로 의심받았으며 시리아 정부는 결백을 주장했다. 미국은 결국 전면 개입을 하지 않았으며 시리아 정부 지지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모든 독가스 이슈는 반군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5]

1.1.2. 2013년 - 반격의 정부군

하지만 정부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으며 반군이 공세종말점에 달하는 것을 노려 반격을 개시하였다. 주요 목표는 주요 군사기지와 도시로 이어지는 보급로를 다시 여는 것이었으며 반군에게 무기와 물자를 보급하는 해외 세력의 각 국경지대의 주요 거점을 장악하여 반군의 보급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4월 17일 이들리브 주의 와디 알 다이프(Wadi al-Deif)에 대한 공세가 이루어져 두개의 군기지에 대한 포위망을 깨버렸으며 다시 보급선을 확보하고 알레포 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망을 격전 끝에 확보했다. 뒤이어 홈스(Homs)주의 반군 보급거점으로 활용되던 알 쿠사이르(al-Qusayr)지역에 대한 공격을 펼쳐 4주간의 격전 끝에 주변 8개 마을들을 확보하여 레바논에서 홈스 주로 이어지는 여러 반군 보급로를 끊어버렸다. 한편 다마스쿠스 지역에서도 주변 수도권역을 꾸준히 점령하며 수도에 대한 압박을 해소해나갔다.

홈스 주에서 반군 활동이 격렬해져 정부군이 홈스로 파병된 틈을 타 반군은 알레포 주에서 칸 알 아살(Khan al-Asal)을 비롯한 교외의 정부군 지역과 메나흐 공군기지 등의 거점을 장악하고 알레포의 육상 보급로를 끊어버렸다. 다라(Daraa)주에서도 반군이 세력을 확장하기는 하였으나 8월 4일 실시된 반군 10개 여단 2000여명으로 구성된 라타키아 침공작전이 정부군의 반격으로 실패하였고, 여기서 알라위파를 학살하면서 친정부 세력이 더욱 결집하게 되었다. 8월 24일 반군은 이들리브 주의 아리하(Ariha)마을을 점령하였으나 유명한 타이거 대령이 여기서 처음으로 출병하면서 재탈환하였고, 타이거 대령은 반군 세력에 의해 포위되어 있던 시리아 제1의 도시 알레포의 서부 신 알레포 지역, 중앙 교도소, 국제 공항을 구원하기 위해 혼성부대와 함께 출병, 카나시르(Kanashir)마을을 경유하는 250km의 보급로를 확보하고 "북방의 폭풍"작전을 발동하여 알레포 시가지로 돌입하여 포위된 서부 알레포 지역에 보급로를 연결하고 80여단 기지를 재탈환하는 대활약을 보이며 반군의 알레포 포위를 끝장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8월 수도 다마스쿠스 동부 고타 지역의 중심도시인 도우마 시가지에 대규모 사린가스 공격 이슈가 터졌다. 이미 반군 측에서 정부군이 사린가스를 사용했다고 주장하여 OPCW(화학무기 금지기구) 조사원들이 시리아 내부에서 조사를 진행중이었던데다 반군 추산 1400여명, 시리아 인권관측소 추산 32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하여 큰 이슈가 되었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개입 의사를 내비칠 정도였다. 이에 아사드 대통령은 무고를 주장하면서 시리아 정부 통제 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화학무기 시설과 재고를 국제사회 감시하에 반출하여 폐기하겠다고 제안했으며 러시아의 옹호 아래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이슈는 종결되었다. 이후 UN보고서가 작성되었으나 정부군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뉘앙스만 강하게 비춘 채 실제 사용 주체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종결되었다.

정부군이 반군의 보급로와 포위 시도를 속속 끊어버리는 데 더하여 가스 이슈에 의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아사드 정권 축출이 불투명해지자 최대 스폰서였던 사우디, 카타르, 터키가 점차 발을 빼기 시작하고, 시리아 야권세력은 반군 통제에 실패한 데 이어 내분이 발생하였다. 한편 세속주의자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대립이 심화되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결국 2013년 말 이슬람 전선(Islamic Front)를 결성하여 자유시리아군에서 탈퇴하고 세속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ISIS 의 대립이 점점 커지고 있었으며, ISIS가 자유 시리아군의 영토이자 터키로부터의 보급거점인 아자즈(Azaz)지역을 비롯한 여러 영토를 9월부터 점령함으로써 양자의 대립은 결정적인 것이 되었고 결국 자유 시리아군-이슬람 전선-알 누스라 전선-ISIS사이의 광범위한 내전이 발발하게 된다. 반군 사이의 내전과 해외 세력의 발빼기, 정부군의 승리와 헤즈볼라와 이란의 지원 등으로 인해 이때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내전을 2014년 중으로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던 시점이었다.

1.1.3. 2014년 - ISIS의 발흥

ISIS와 반군이 라카 주와 알레포 주, 데이르에르조르 주를 두고 격전을 벌이는 동안 정부군은 순조롭게 전진해 나갔다. 레바논 국경지대의 콸라문 산악지대의 라헬, 홈스 주의 자라(Zara)를 장악하면서 반군의 보급로를 추가로 차단하였고, 크라그 데 슈발리에 성채, 다마스쿠스 반군들에게로 연결되는 알 자바다니 지역도 장악하면서 전체적으로 레바논 국경지대 재장악을 통한 보급로 차단을 충실히 수행해 나갔다.

한편 시리아 반정부군과 일진일퇴를 벌이던 ISIS는 이라크 북부 수니파 지역의 광범위한 지지로 얻은 병력과 영토[6], 이라크군의 졸전으로 인해 획득한 막대한 무기들, 체첸과 이라크 공화국수비대 출신 지휘관들의 뛰어난 지휘, 그리고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하여 얻은 거액의 금괴를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룩했으며 용병 시장이 활성화된 시리아 반정부군 사회에서 한달 400달러의 고액을 약속하며 반군의 간부와 병력을 흡수했다. 또한 확충된 전투력으로 인해 라카와 데이르에르조르 주에서 반군이 참패를 거듭하기 시작했으며 7월에는 정부군의 돈줄인 사헤르 가스유전지대를 장악하고 8월에는 라카 시 북쪽에서 3년동안 버티던 17사단 93여단 기지를 자살폭탄차량을 동원하여 돌파하고 점령하는 데에 성공했다. 뒤이어 라카 주에 대해 공습 견제를 담당하던 알 타브카(al-Tabqa)공군기지를 습격하여 점령하고 포로를 처형하였다. 2014년 9월까지의 기간동안 시리아 동부 사막지대와 알레포 주 북부지역, 홈스와 하마 주 일부와 남부 다라 주에 이르기까지 전부 ISIS에 넘어갔으며 비록 실속은 없는 땅일지라도 시리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내전의 제 4세력에 불과했던 ISIS는 시리아 정부는 물론 이라크 정부까지 압도하는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시리아 반군들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다. 정부측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이 이유 때문에 아사드가 ISIS와 동맹을 맺었다거나 ISIS를 설계 했다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

미국은 2013년 후반부터 아사드 정권과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의 확장을 막기 위해 이른바 "온건 반군"에게 무기를 제공하면서 걸프만 국가들이 발을 빼기 시작한 시리아 내전의 새로운 스폰서가 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군들의 사상적 경계가 모호하고 세속주의자와 "온건 이슬람"의 협력도 적지 않았으며 반군의 졸렬한 전투로 미제 무기가 극단주의자들에게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결국 ISIS의 발흥을 반군이 막아내기는 커녕 영토와 병력을 모조리 빼앗기면서 국제 테러리즘 격멸의 명분으로 ISIS에 대한 직접 공습을 2014년 9월부터 시작했다. 시리아 정부는 이에 환영에 뜻을 나타내었으나 시리아의 반미 정서 탓에 오히려 알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과 ISIS간의 대립이 완화되고 반군들끼리의 내전 양상이 사그라드는 역효과를 낳았다. 시리아 정부의 아사드 대통령은 미국과 프랑스가 시리아 정부군과 합동 작전을 한다면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단독 작전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였고 이를 입증하듯 2015년까지 ISIS는 확장을 거듭하였다.

1.1.4. 2015년 - 정부군의 대패와 러시아 참전

ISIS가 확장을 거듭하면서 정부군과 반군은 수세에 몰렸으며 이에 따라 피해가 막심했던 반군은 기존에는 성향에 맞춰 자유 시리아군, 이슬람 전선, 알 카에다 계열로 나뉘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연합작전이 가능한 지역별 연계 조직 형태로 반군 연합체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알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은 시리아 북부에서 활동하던 자유시리아군 연합체 시리아 혁명전선(Syrian Revolutionary Front)과 원리주의 조직인 하즘 운동을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이들리브를 중심으로 한 정복의 군대(Jaysh al-Fateh)를 3월 24일 출범시켰다. 구성체는 자유시리아군과 이슬람 전선, 알카에다 계열을 망라한 이들리브 지역의 군조직들로써 기존과는 전혀 다른 체계적인 지휘체계를 통한 대규모 작전이 가능하다는 것이 2015년부터 등장한 지역별 반군연합체의 특징이었다. 정복의 군대는 정부군이 공고하게 유지하던 이들리브 시에 대한 3면 포위공격을 개시하여 4일만에 이들리브를 점령했고 정부군은 강공을 견디지 못하고 이들리브 남부로 철수하였다. 정부군은 타이거 부대를 비롯해 시리아 전역에서 예비부대를 총동원하고 추가로 5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들리브 수복 작전에 돌입하였으나, 이들리브-아리하-지슈르 앗슈구르 세 도시와 이를 연결하던 M4고속도로에 동시다발적인 대공세가 4월 22일부터 개시되었다. 정부군은 순식간에 후방지역에 대공세를 당해 퇴로가 차단되었고 이들리브 공격군은 아리하 시가지에 고립되었으나 정복의 군대의 맹공에 의해 아리하 시를 빼앗기고 지슈르 앗슈구르에 주둔하던 타이거 부대도 탄약의 고갈로 참패를 당한다. 결국 정부군은 적지에 완전히 조각나서 격파당했으며 잔존부대는 라타키아 지방으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였다.

이들리브 지방은 반정부 정서가 아주 강했음에도 시리아 정부군은 주요 도시인 지슈르 앗슈구르, 아리하, 이들리브와 이를 잇는 M4고속도를 장악함으로써 주요 도시를 통제하고 주변에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기존의 반정부군의 수준으로는 도로 축선만 장악한 시리아군의 취약한 전선도 제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체계적인 대단위 작전이 가능해짐으로써 3방면의 정부군을 패배시킴으로써 이들리브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또 내전의 추가 이 사건으로 반군에게 크게 기울었는데 정부군은 이미 대량 탈영과 소모를 감당하지 못하고 점차 공세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부족한 병력으로 대부분의 점령지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들리브 대패로 병력 균형추가 확 뒤집힌 것이다.

이로 인해서 5월 13일부터 시작된 ISIS의 팔미라 공세에 대규모의 영토를 내주면서 13일만에 참패했다. 헤즈볼라는 정복의 군대의 레바논 국경지대 콸라문 산악지대 공격을 막아내느라 다른 지역을 신경쓸 처지가 아니었다. 정부군은 7월부터 팔미라 방면에 공세를 실시하였으나 T-4공군기지를 비롯한 군사시설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만 그치고 팔미라 시를 되찾는 것은 포기하였다. 다마스쿠스 지역에서도 동부 고타에 있던 반군조직 자이쉬 알 이슬람(Jaysh al-Islam)이 수도에서 홈스로 이어지는 M5고속도로를 일련의 공세를 통해 장악하는 등 병력 부족으로 인한 악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참전을 요청하고 푸틴이 이를 승인함으로써 9월 30일부터 러시아군이 시리아에서 작전에 들어갔다. 이는 큰 도움이 되었는데 시리아 정부군의 항공기 정비창은 알레포에서 반군에게 점령당하고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여서 극소수의 항공기밖에 운용할 수 없고 통 폭탄같은 열악한 무기가 고작이었지만 러시아 공군은 비교도 안되는 대량의 출격횟수와 첨단 무기들을 활용하면서 반군의 전선은 물론 후방의 무기고나 전략시설까지 가차없이 타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이란군도 기존의 아프간/파키스탄 난민으로 구성된 오합지졸 파병에서 제대로 된 이란 혁명수비대 파병을 감행함으로써 시리아의 지상군 손실분을 보충해 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9월 말부터 시리아군은 알레포 동쪽에 위치하여 3년간 포위당했던 쿠웨이르 군사 공항에 대한 구원작전을 개시하여 참패 분위기를 일신하였고, 주변지역을 해방하여 알레포 열병합 발전소를 탈환하여 알레포 동부 교외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알레포 주 남서부 지역에도 공세를 가하여 알 이스(al-Eis)지역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다마스쿠스 교외에서 일시적으로 M5고속도로를 장악했던 자이쉬 알 이슬람은 고속도로를 빼앗김은 물론 정부군 공습에 지도자인 자흐란 알루시가 사망하는 사태를 맞이하기까지 했다. 반군에게 크게 밀려났던 라타키아 북부 산악지대에서도 러시아 특수전부대의 도움을 받아 대부분의 지역을 회복했다.

2015년은 정부군의 참패로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가까워졌으나 러시아의 참전으로 기사회생한 해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전쟁에 전면적으로 발을 담글 생각은 없었고 반군과의 휴전을 제안하며 휴전감시센터를 운영하며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국제 회담을 통한 평화적 종전으로 끌고 갔으며,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2016년 3월에는 러시아군의 전면 철수를 감행하였다. 하지만 협상이 끝내 결렬되자 결국 개입을 연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2015년 12월, 러시아 공군기 Su-24 격추사건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와 터키 간의 대리전 구도가 조성되었다.

1.1.5. 2016년 - 정부군의 전략적 승리, 터키 참전

내전 5년차인 2016년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그간 패배를 거듭하던 정부군이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실상 내전의 전략적, 정치적 승리자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2017년에 와서도 내전은 종결되지 않았지만 시리아 정부는 이 내전에서 가장 강력한 입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내전 종식이 될 때 정부가 군사적인 승전으로 시리아를 통일하거나 그만큼 유리한 입장을 가지고 평화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기존에 반군을 후원하던 걸프만 국가들이 저유가 타격을 받고 이란과의 대리전 구도가 예멘으로 옮겨가면서 신오스만주의를 표방하는 터키의 에르도안 정부가 반군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한편 정부군은 동부 알레포 방면의 승기를 이어 1월달에 쿠르드족YPG가 주축을 이룬 SDF와 협력하여 알레포 북서부에 포위된 알 자흐라 지구와 연결하는 데에 성공했다. 본디 반군으로써 반 아사드 기치를 들고 활동하던 쿠르드족은 그러나 반군이 뿌리깊은 쿠르드 차별을 드러냄에 따라 중립을 표방하고 정부군에 대해 보급도 해왔으며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때부터 점진적으로 정부와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7]

한편 ISIS는 2015년 이후 정체된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1월부터 데이르에르조르에 포위된 정부군을 상대로 공세를 가했으나 러시아와 정부군의 공수보급과 항공지원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월에는 알레포 시로 이어지는 보급로인 카나시르 방면으로 공세를 가해 일시적으로 정부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였으나 타이거 대령의 활약으로 다시 개통되었다. 3월에는 인류의 유산을 파괴하는 ISIS의 만행에 대항하여 고대 유적을 보호한다는 정치적 선전 목적과, T-4공군기지와 사헤르 유전지대를 보호하는 전략적 목적을 통해 정예부대와 이란 혁명수비대, 러시아군을 모아 고대도시 팔미라에 대한 대공세를 실시하여 팔미라를 완전히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러시아군은 2015년 9월부터 2016년 3월까지의 전면 개입을 통해 전략 전술무기는 물론 지상감시 레이더, 항공장비나 로봇, 폭탄해체장비 등 수많은 무기들의 실전 테스트를 진행하였고 매우 뛰어난 평가를 얻었다. 이로 인하여 러시아군의 강함과 기술을 과시함은 물론 세계적으로 러시아제 신무기의 주문이 폭증하는 이익을 얻었으나,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의 완전승리를 지원하기보다는 평화협정을 통해 전쟁을 종결하고 철수하기를 바랬으며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재제와 유가 하락에 따른 경제난이 주요한 이유였다. 아사드 정권이 협상에 지지부진하자 3월에는 항공세력을 전면 철수시켜 시리아 정부를 압박하고, 정부에 충성한 시골 부족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며 휴전 감시센터를 세워 부분적 휴전을 만들어나갔다. 이는 7월달까지 지속되었으며 이때 시리아 정부군에 대한 지원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제네바에 모인 시리아 반정부측과 정부의 협상은 가장 큰 쟁점인 아사드 퇴진과 대통령 선거 재출마 금지를 놓고 파행을 거듭하였으며 휴전지역에서도 반군 조직들의 지속적인 도발이 이어져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다.

한편 4월에는 러시아 철수로 인한 전략 공백을 노려 이들리브 지방의 최대의 반군연합체 정복의 군대(Jaysh al-Fateh)가 알레포 지역의 칸 투만(Khan Touman)지역을 노리고 작전을 개시하였다. 4월 1일부터 다마스쿠스-알레포 고속도로를 감제할 수 있는 텔 알 에이스 (Tel el-Ais) 언덕마을에 대해 이뤄진 공세에서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헤즈볼라와 이란 혁명수비대는 참패를 거듭했으며, 정복의 군대는 시리아군과 이란군의 반격을 격퇴하며 놀라운 전투력을 과시했으며, 특히 최정예부대인 이란 제65공수특전여단조차 손쉽게 패배하고 도주하면서 중동의 강군으로 기대를 받았던 이란군의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반군은 4월 12일까지 엘 아이스 언덕 주변을 확보하고 육군탄약창이 있는 칸 투만으로의 공세를 개시하여 5월 6일에 점령하였고 주변 마을까지 확보했다. 이로 인하여 정부군의 알레포 시 포위망 중 남쪽의 두께가 크게 얇아졌다.

칸 투만 공세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더이상 후줄근한 반군이 아니라 정식으로 택티컬 교육을 수료하고 서방의 택티컬 기어를 체계적으로 장비한 택티컬 반군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으며, 러시아 공수부대 출신으로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 대원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말하마 택티컬도 이 칸 투만 전투 이후에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시리아 난민들이 터키에서 택티컬 기어 공장을 차리고 유사품을 무차별 생산하여 반군에 납품하는 것도 원인이었지만 러시아/중앙아시아 출신 대원들은 서방제 정품을 다량 장비하고 있어 관찰자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5월에는 ISIS가 사헤르 가스유전지대를 재점령하기도 했다.

결국 러시아의 종전 시나리오는 틀어졌고 6월부터 재참전에 들어갔다. 한편 반군의 수도격인 알레포 도심을 점령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어 알레포 도심 반군 지역의 보급로인 알레포 도심 북부의 카스텔로 도로와 말라 농장을 점령하여 완전포위를 달성하는 작전이 타이거 부대와 수도방위 제4기계화사단을 주축으로 결행되었다. 반군은 결사 항전에 들어갔으나 타이거 부대의 뛰어난 작전 지휘에 병력을 급속도로 소모하면서 결국 북부 지역을 내주어 알레포는 완전히 포위당했다. 이에 반군은 5월에 점령했던 칸 투만에서 출격하여 알레포 남부 포위망을 깨버리는 작전을 입안하여 7월 31일부터 자폭차량을 전선기지인 알 히크마 학교에 적중시키며 전례없는 대공세를 개시했다. 정부군은 히크마 학교를 내주었으나 러시아와 시리아 공군의 대규모 공습은 물론 전략폭격용으로나 쓰이던 통폭탄까지 마구 던져가며 반군의 소모를 강요했고, 1070아파트 건설현장에 돌입한 반군은 폭격을 맞다 못해 타이어를 모아 태워 연막을 쳐서 공군 폭격을 막아내자 정부군은 스커드 미사일을 쏘아가며 대 소모전을 강요하였고 하루만에 800여명의 손실을 입은 반군을 몰아치자, 반군은 라타키아 지역의 병력까지 빼내어 총 9000여명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공세가 4번에 걸쳐 돈좌되면서도 맹공을 가해 결국 알레포 남부의 육군포병학교를 탈환하면서 알레포 남부의 포위를 깨버렸다.

포위는 깨졌으나 정부군은 공습과 화력관제로 알레포로 들어가는 보급차량들을 타격하면서 8월부터 재공세에 돌입, 시멘트 공장을 확보하고 알레포로 들어가는 알 라무시 고속도로를 감제하는 텔 알카라 언덕을 확보하면서 보급로는 대전차 유도미사일의 직접 타격범위에 들어갔다. 반군연합체 정복의 군대는 기갑장비를 다량 동원하여 총 7차에 걸친 파상공세를 진행하였으나 모조리 격퇴되었고, 소모전을 견디지 못하고 9월 4일에는 포병학교를 내주며 다시 알레포 포위망이 재구축되었다.

한편 하마 지역에서는 9월 정복의 군대 소속 준드 알 아크사를 주축으로 하마 시가지를 목표로 한 공세가 시작되었으나, 초기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하마 방위를 맡은 11기갑사단은 무력하게 패퇴하며 며칠만에 여러 도시를 내주었다. 원인은 11기갑사단의 일부 장교들이 반군에게 탄약과 기름을 팔아먹어 전차를 기동시키지 못한 데에 있었다. 분노한 타이거 소장은 이들을 군사회의에 회부하면서 반격을 지휘하여 몇몇 도시를 탈환하였다. 하지만 준드 알 아크사가 사실 ISIS에 몰래 충성하면서 반군의 지휘관들을 암살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반군조직 아흐라르 알 샴 등과 내전이 발발하였고 준드 알 아크사가 반군과의 전투를 위해 병력을 빼면서 하마 전선은 상당부분 복원될 수 있었다. 결국 준드 알 아크사는 파멸 위기에 몰리자 독립조직으로써의 지위를 포기하고 파타 알 샴 전선(구 알 누스라 전선)에 흡수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편 알레포 포위가 지속되자 반군의 상징적 수도인 알레포를 잃지 않으려는 정복의 군대는 10월 27일부터 알레포 서부 도심을 공격하여 포위망을 뚫으려는 재공세를 실시하였다. 특히 이번에는 칸 투만에서 대활약한 택티컬 반군을 포함하여 쿠데타 방지를 위한 최정예병력까지 총동원하여 공격을 개시했으나, 정부군이 알 아사드 육군대학 건물을 중심으로 우주방어에 들어가고 하마에 출진해 있던 타이거 부대까지 돌아오고 택티컬 반군에 대해 보병교전보다 포병화력으로 승부를 보자 반군의 최정예병력들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11월 8일에는 오히려 정부군이 반격을 개시하여 7월에 상실했던 히크마 학교까지 진출하고 칸 투만을 위협하는 지점까지 점령했다.

결국 11월 15일 러시아 항모 쿠즈네초프에서 출격한 대규모 공습과 전략미사일이 알레포 동부 도심을 타격하면서 21일에 대공세가 시작되었고, 4년을 버텨온 알레포 동부 도심은 허망하게도 초고속으로 무너지면서 12월 13일에는 알레포 시가지의 95%를 제어하면서 정부군이 완전 승리를 선포했다. 6월부터 이어진 알레포 전역의 의미는 상징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반군의 병력이 거의 2만명 가까이 사망하여 2015년 정부군 이들리브 대패로 생긴 대위기가 이번에는 반군들에게 돌아갔으며, 내전의 균형추가 정부군에게 기울어졌다는 것에 있다.

한편 패배 분위기가 확실시되면서 다마스쿠스 주변부 반군 포켓도 속속 항복하기 시작했다. 반군들은 이들리브 지역으로 안전하게 이송되거나 무기를 반납하고 정권에 충성하기 시작했으며 2015년 12월 지도자인 자흐란 알루시가 사살당한 동부 고타 지역의 자이쉬 알 이슬람은 공화국수비대의 공격 앞에 점령지를 40% 이상 상실했다.

ISIS는 이라크 모술 시 전투 등 세력이 위축되고 패배 분위기가 짙어지자 12월 팔미라 지역에 대해 5000명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공세를 시작하고 병력이 부족했던 시리아/러시아군은 시가지를 포기하고 T-4공군기지로 퇴각하여 방어전을 개시하였다. T-4공군기지에는 막대한 무기와 탄약, 그리고 주변 유전지대에 대한 통제력이 있기 때문에 정부군은 이곳에 병력을 집중하여 ISIS공세를 격퇴한다는 방침이며 12월 19일 ISIS는 공세종말점에 도달하였다.

반면 2016년 9월, 로자바 자치정부의 SDF가 유프라테스강을 넘어 시리아 북부를 사실상 장악할 조짐이 보이자 쿠르드족 영향 확대를 우려한 터키가 시리아 북부 침공작전, 통칭 "유프라테스의 방패"를 결행했으며 아흐라르 알 샴을 비롯한 이슬람 전선 계통 반군들을 앞세우고 터키군이 지원하는 식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시리아 북부 자라불루스 시 점령을 시작으로 IS가 지배하던 알레포 주 북부를 점령하며 12월에는 순조롭게 알 밥(al-Bab)시가지에 도달하였다.

1.1.6. 2017년 -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전쟁

내전 6년차의 가장 큰 특징은 동맹, 적대관계가 지속적으로 뒤집어지는 현상으로 공공의 적이나 마찬가지였던 IS가 패주하여 구석으로 쫒겨나면서 그간 쉬쉬하고 있던 반군과 정부군, 쿠르드자치정부와 가장 주요한 외부개입자인 러시아, 터키, 미국 등의 알력관계가 터지면서 동맹-적대관계가 다시 씌여졌다. 그간 시리아 쿠르디스탄에 대해 적대적 방관으로 사태를 관망하던 터키는 알 밥의 공략이 끝남과 함께 시리아 쿠르디스탄에 대한 공개적인 적대에 들어갔으며, 한때는 반군의 일원이었던 쿠르디스탄이 사실상 시리아 정부와 러시아를 동맹으로 끌어들였으나 락까 공략 도중 시리아군이 SDF의 거점을 폭격하고 국제연합군이 이에 시리아군 항공기를 격추하면서 동맹관계는 다시 깨졌고, 연초까지 내전의 종식을 위해서는 시리아 정부와도 협력할 뜻을 밝혔던 트럼프 행정부는 칸 셰이쿤 화학무기 공격을 계기로 입장을 전환하여 정부군에 미사일 공격을 하였고, 시리아 남부에서는 미국과 요르단의 협력하에 새 반군 그룹이 ISIL의 영역을 침범하였다. 반면 이들리브 등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주의 반군은 한번씩 뭉쳐서 다마스커스와 하마에서 대규모 공세를 개시하기도 했으나 정부군에 의해 돈좌된 이후 책임소재와 반군그룹의 주도권을 따지면서 자기들끼리 내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2016년 12월 7일 시리아 정부군은 알레포 시의 100%통제에 성공했으나 2016년 재탈환했던 팔미라를 향해 IS의 대공세가 동시에 개시되었다. 시리아 정부군은 여러 지역에 주력부대를 내보내고 팔미라는 2선급 병력밖에 없어서 5000여명을 동원한 IS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었고 IS가 팔미라 북부의 후와이시스 지역과 남부의 사헤르 가스유전지대를 공격하여 포위섬멸을 기도하자 정부군은 즉시 철수하여 12월 11일 팔미라 시가지는 IS의 수중에 들어갔다. 하지만 IS의 진짜 목적은 별 의미없는 팔미라 시가지가 아니라 다량의 무기와 물자가 비축되었고 홈스 주 동부의 여러 유전지대를 통제하는 전략적 기지인 T-4공군기지였고 파죽지세로 정부군을 추격하여 주변 유전지대를 점령하여 수도 다마스쿠스의 난방용 가스와 군용 유류 공급에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기세를 더해 12월 13일에는 T-4공군기지 주변 고지 점령에 들어갔다. 하지만 러시아-시리아 공군이 주변 지역을 폭격하고 타이거 부대의 샤힌 그룹, 공화국수비대 800여단이 증원되면서 IS의 공세는 저지되었고 2017년 2월부터는 주변 지역을 재탈환하기 시작했으나 IS가 퇴각하면서 가스 유전에 불을 질러 다마스쿠스 겨울 난방연료의 수급은 여전히 어렵게 되었다.

한편 반군은 다마스쿠스 시의 식수원인 와디 바라다 지역에서 정부와 협상이 결렬되자 2016년 12월 22일 상수도 시설에 독약과 경유를 풀어 다마스쿠스의 수도공급이 차질을 빚었고 암시장 물장사가 횡행하기 시작했다. 정부군은 부족한 군사력을 차출해서 와디 바라다 탈환 작전에 투입했으며 1월 13일 협상이 결렬되고 정부측 대표가 사살당하는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최정예 제4기계화사단이 주변 고지를 장악하고 포격전으로 승부를 낸 결과 반군은 몇차례의 협상 결렬에도 불구하고 결국 항복했으며 외국인 반군은 이들리브로 버스를 타고 떠나는 데에 합의했고 3500여명의 지역 반군은 정부에 귀순함으로써 1월 30일 정부는 와디 바라다 취수장에서의 상수도 공급을 재개했다.

하지만 이 두 공세를 압도하는 대공세가 1월 14일부터 시리아 동남부 데이르에르조르에서 IS에 의해 개시되었다. 2015년 팔미라를 IS에게 빼앗긴 이후 포위당한 이 기독교인 거주 도시는 공화국수비대 104공수여단장인 차력장군 잇샴 자헤라딘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으나 이번 1월 공세는 무려 14000명이라는 대병력을 동원한 것으로 전 대원에게 아내와 집을 약속하며 독려한 대공세에 정부군은 그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데이르에르조르 군사공항과 시가지를 잇는 공동묘지를 비롯한 요충지를 빼앗겼다. 군사공항과 시가지의 정부군 탓의 대다수의 전력을 견제용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IS에게는 데이르에르조르를 반드시 함락시켜야만 북쪽에서 내려오고 있는 SDF에 대응하고 예비병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차례에 걸쳐 공세를 가했으나 모조리 실패했고 이번에 반드시 함락시키겠다는 각오로 전례없는 대공세를 가한 것이었다. 팔미라와 T-4공군기지 공격은 이를 위한 조공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결국 정부군이 탈환했다가 퇴각한 공동묘지 구역을 IS가 재장악하자 1월 22일 러시아의 Tu-22폭격기로 IS가 재탈환한 지역과 보급로를 융단폭격함으로써 IS는 대규모의 병력손실을 겪었고, 23일에는 정부군이 다마스쿠스에 주둔하던 104공수여단 예비병력을 22대의 헬리콥터를 동원하여 공수하여 방어선을 보강하면서 IS의 공세는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

한편 이들리브 지역의 유력 반군들 사이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 반군의 주도권을 놓고 2017년 1월 24일부터 전쟁이 발발하였다. 표면적인 원인은 원리주의 군벌 준드 알 아크사(Jund al-Aqsa)의 행보에 있었다. 이미 이들은 몰래 IS에 충성하며 반군 지휘관을 암살하던 정황이 드러나 2016년에 이미 협공을 받아 멸망 직전에 몰렸으나 파타 알 샴 전선(알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에 충성을 맹세하고 동맹조직에서 하부조직으로 들어감으로써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친 IS적 정서를 가지고 반군 내부에서 분탕질을 벌이자 결국 파타 알 샴 전선조차도 이들의 충성맹세를 파기하고 쫓아냈다. 하지만 파타 알 샴 전선과 동급의 세력을 가진 아흐라르 알 샴 운동(Harakat Ahrar al-Sham)은 파타 알 샴 전선 배후설을 제시하며 양측의 관계는 극히 악화되었고 1월 26일부터 이들리브-알레포-하마의 반군 지배지역에서 대대적인 공격과 여러 군소 반군들에 대한 영입 제의가 격렬해졌다.

이는 단순히 양측의 세력 다툼이 아니라 시리아 내전 시작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누가 이슬람 원리주의를 대표할 것인가에 대한 주도권 싸움이었으며 파타 알 샴은 단체를 해체하고 통합 원리주의 대조직 하이야트 타흐리르 알 샴(Hyat Tahrir al-Sham, 샴 해방기구)를 창설했다. 아흐라르 알 샴도 이에 맞서 자브핫 타흐리르 알 수리야(Jabhat Tahrir al-Suriya, 시리아 해방전선)를 결성하였으나, 아흐라르 알 샴 산하의 수많은 조직과 간부들이 이탈하면서 이들리브 지역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은 사실상 알 카에다 이념을 표방하는 타흐리르 알 샴 아래로 뭉친 격이 되었다.[8] 한편 분탕조직인 준드 알 아크사는 친 IS성향을 아예 선포하면서 하마 지방의 점령지를 토대로 독립 군벌로 나섰다. 이것으로 이들리브-알레포-하마 지방은 3개의 대조직으로 분열되었다. 반면 시리아-이스라엘 국경지대에서는 16개 반군 세력이 IS에 충성을 맹세한 군벌조직 자이쉬 칼리드 빈 왈리드(Jaysh Khalid Bin Walid)에 공격을 개시했으며 골란 고원에서는 이스라엘 방위군과 IS 분파간의 소규모 교전이 벌어져 이스라엘군이 폭격으로 답하기도 했다.

한편 중동의 강군으로 기대를 받았던 터키군은 알레포 주 북부 교외지역의 주요 거점인 알 밥(al-Bab)시를 향해 공세를 개시했음에도 계속해서 전차와 장갑차가 터져나가는 졸전을 보여주며 시가지 내에 진입조차 못하고 있었으나, 타이거 부대 본대가 알레포 주 북부지역으로 전진을 시작, 순식간에 알 밥 시가지를 5km남겨두면서 IS의 보급로를 화력통제 하에 두게 되자 그제서야 어부지리로 시내 진입을 개시하였다. 2월 24일 터키군은 알 밥 시의 완전점령을 선포했으나, 그동안 IS와 밀고밀리며 시간을 낭비한 탓에 타이거 대령의 혼성부대가 이미 알 밥 남쪽에서 차단기동을 개시해서 터키군의 진군로를 막아버렸다. 이 탓에 유프라테스 작전군, 시리아민주군, 타이거 혼성군이 한 자리에 모여버리면서 만비즈 일대에서 삼파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결국 쿠르드족의 시리아 민주군이 터키군의 만비지 공세를 막을 수 없게 되자 시리아 정부군에게 만비지 전방 구역을 내주고 공동방어구역으로 설정함으로써 결국 쿠르드족과 시리아 정부는 실질적인 동맹 상태가 되어버렸다. 3월 20일경, 쿠르드군은 줄곧 투르크 반군에게 위협받던 아프린 칸톤에 러시아군의 진주를 허용하고 만비지에서 쿠르드군 병력을 빼면서 터키와 로자바의 대치상태가 터키와 러시아의 대치상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터키군은 3월 30일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의 종료를 선언함으로써 점령지 확대를 중단했다.

한편 타이거 부대는 동부 알레포 교외지역을 거의 장악하고 아사드 호수의 정수장을 장악하여 알레포 주로 5년만에 수돗물이 공급되기 시작했으며, 뒤이어 3월 9일 지라흐(Jirah) 공항 장악을 시도했으나 전열을 정비한 ISIS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자 공세를 중단하고 알레포 시와 라카를 잇는 4번 고속도로를 제어하는 소도시 데이르 하페르(Deir Hafir) 를 포위하고 25일 점령했다.[9]

수도 다마스쿠스 부근의 반군 포위망 중 하나인 카분 포켓(al-Qabun)을 격멸하기 위해 정부군이 공세를 개시했으나 정부군이 공격을 위해 집결하여 지역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동부 고타의 반군이 땅굴 네트워크를 통해 병력을 집결시키고 대공세를 개시하여 바르자(Barzah)구역을 점령하더니 3월 18일부터 조바르 구역에서도 협공을 개시하며 2대의 자살폭탄차량을 동원하여 조바르와 카분 구역을 연결하기 위한 공세를 개시했다. 정부군은 제4기갑사단을 투입하여 반격에 나서 반군의 공세는 돈좌되었다. 이후 정부군의 공세에 공세 시작 5일만에 점령했던 구역들을 도로 빼앗겼다.

하지만 이것은 조공이었고 3월 21일부터 하마 주의 전 전선에서 샴 해방기구(HTS)가 주도하는 대규모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수란(al-Suran)시 전면에 2대의 자살폭탄차량 돌입을 시작으로 21일 당일에 카타브(al-Khattab)와 수란 시가 점령당했으며 22일에는 하마 시 4km전방까지 몰아붙이고 취약한 친정부 민병대가 지키는 지역을 맹공하면서 점령지를 초고속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홈스 주의 반군도 이에 호응하여 정부군의 보급로로 쓰이던 고속도로를 일시 차단하기도 했다. 11기갑사단은 교전 후 퇴각을 반복하며 예비대를 증원받아 하마 시 4km전방에서 방어선을 펼쳤다. 그러자 반군은 23일 무흐라다(al-Muhradah)시를 공략하며 전과확대를 시도하며 하마 공항에는 포격을 통해 제어를 시도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하마 지역을 경제적 근거지로 삼고 있는 타이거 부대는 어느 정도 정리된 알레포 지역에서 작전을 중지하고 예비대 1800명을 먼저 하마로 급파했으며, 타이거 소장은 23일 이미 도착하여 반격작전을 총지휘하기 시작했으며 하마 전역에 대한 영상 브리핑 하마 시 북쪽의 소도시 킴하나(Qimhanah) 북쪽 교외에 방어선을 펼치고 대대적인 방어전을 개시했다. 반군은 26일까지 킴하나 시에 맹공을 펼쳤으나 결국 공세는 눈에 띄게 둔화되었고 몇몇 점령지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3차에 걸친 킴하나시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정부군은 이후 반격을 펼쳤고 반군은 격렬하게 저항하며 할파야 시에 대한 정부군-헤즈볼라 합동 공세를 돈좌시키기도 하였으나 보급로에 대한 러시아/시리아공군의 강력한 공습에 보급과 예비병력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4월 16일 수란(Suran)시를 점령함으로써 반군은 막대한 손해를 본 채로 공세는 완전히 실패하였고 반군은 방어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타이거 부대의 맹공에 4월 20일 타이밧 알 이맘(Taybat al Imam) 시를 내주었으며 이것으로 반군은 공세 출발점으로 돌아간 것도 모자라 원래 보유하던 영토까지 빼앗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 와중 4월 4일 하마 주 칸 셰이쿤에서 사린 가스 공격이 벌어지면서 30여명의 어린이를 포함, 약 86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였다. 정부와 러시아는 결백을 주장하며 반군의 무기고에 화학무기가 있었다 주장하지만 미국에서는 사실상 아사드 정부가 사린을 사용한 것으로 보는 중.[10] [11]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 사건을 시리아 정부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사린가스 공격에 연루된 시리아 공군기의 항적을 공개하였으며 4월 7일에 해당 공군기가 이륙하였으며 사린가스가 적재된 곳으로 추정되던 시리아 정부군의 샤이라트 비행장에 60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여 유류창고, 격납고 등의 24기의 군사시설을 파괴, 6기(러시아측 주장)~15기(미국측 주장) 가량의 주기된 항공기를 파괴하고 비행장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맥마스터 장군은 이 공격이 사린유출을 막기 위해 해당 무기가 적재된 창고를 피해서 공격했다고 발표하였다. 시리아 내전에서는 최초로 미국이 시리아군을 직접 의도적으로 공격한 것. 그러나 무력시위의 성향이 커서 샤이라트 군사공항이 제구실을 못하게 하는 수준에 그쳤으며 인명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12][13] [14]

한편 4월 15일 정부군-반군 협약에 의해 이들리브의 시아파 마을 카파리야-후아[15]에서 정부군 지역으로 철수하던 시아파 마을 주민들이 알카에다 계열 샴 해방기구의 딴지로 알레포 시가지 입구에서 지체하던 도중 알카에다의 자폭테러가 벌어져 호송하던 자유시리아군 일부를 포함해 100명이 훨씬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복잡한 반군 내부의 알력을 나타내는 사건이자 정부군 화학공격으로 상승된 반군의 도덕적 포지션을 다시 추락시킨 사건이었다.

다마스쿠스에서는 알 카분, 조바르 구역과 하마 전선에서 계속해서 병력을 다량 소모하던 공세의 주체 샴 해방기구(HTS)의 작전 지휘에 불만을 가졌던 동부 고타 지역의 최대 반군인 자이쉬 알 이슬람(Jaysh al-Islam)이 4월 29일부터 알 카분 지역으로 증원되던 반군 병력을 체포하고 처형하며 HTS와 파일라크 알 라흐만의 사령부에 기습공격을 결행하여 HTS와 파일라크 알 라흐만 지휘관이 전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양측의 교전이 벌어지자 정부군은 알 카분 지역의 몇몇 구역을 점령하는데 성공했고 동부 고타 전역에서 반군들끼리의 대규모 내전이 다시(!)발발했다. 각자 반군들에게 자기 조직으로 들어오라고 권유하는 성명서가 뿌려지는 한편 전차와 포병까지 동원하며 발생한 이 내전으로 5월 5일까지 200여명이 넘는 반군 병력이 전사했으며 나름 온건이라던 자이쉬 알 이슬람은 반군들끼리 싸우지 말라고 시위를 벌인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사살하는 등 난리가 났다. 하지만 5월 4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장기간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휴전을 보장하는 합의안이 시리아, 반군, 러시아, 터키, 이란 등에 의해 채택되었고, 이에 의해 5월 5일 자이쉬 알 이슬람이 "알 누스라"에 대한 공격 중지를 선언하면서 동부 고타 지역의 내전은 일단락되었다.

한편 SDF는 미국의 전면적인 지원하에 그간 터키군과 유프라테스 작전군과의 전투로 인해 몇번이고 발을 빼야했던 '유프라테스의 분노' 작전을 재개하였으며 국제연합군의 지원과 헬리본 공수부대 등을 동원하여 타브카 댐의 일부를 점령하고 포위망을 만들었으며, 타브카 공군기지와 알 타우라 시가지를 점령하고 IS를 교외로 몰아붙여 포위하였다. 터키의 숱한 방해에도 6월에는 알 타우라의 해방에 성공하였으며 포위망이 성공적으로 좁혀지자 다에시 세력의 심장부 락까에 진입하였고 러시아의 공습으로 자칭 칼리프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폭사했다는 루머도 나타났다.[16] 이와 동시에 수헤일 알 하산 장군도 하마 전역으로 중지된 알레포 동부 지역 재탈환을 개시하여 지라흐(Jirah)공군기지와 마스카나 등 주요 거점도시를 장악하고 이트리야-라카 국도로 진출하여 SDF가 형성한 전선 남쪽으로 진출하여 향후 SDF가 중부 유전지대로 진출할 수 없게 교차로가 위치한 루사파 마을을 6월 19일 점거하였다. 이때 미국 F/A-18 전폭기가 시리아군의 Su-22공격기가 SDF를 공습했다면서 격추하고 탈출한 조종사가 SDF지역에 떨어지자 이를 구출하기 위해 SDF와 교전이 벌어졌으나 곧 잠잠해졌고, 타이거 부대는 이트리야-라카 국도를 장악하면서 알레포 동부 사막지대에 잔존하며 보급로를 위협하는 IS의 축출에 나섰다. 결국 6월 30일 IS가 병력을 온존하기 위해 알레포 동부 사막지대에서 전면 철수하면서 타이거 부대는 알레포 주에서 4년만에 ISIS를 완전 박멸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17]

이와 함께 러시아-이란-미국-터키의 협의에 의해 반군과 정부군간의 포괄적인 휴전이 합의되었고 이에 정부군은 대규모의 병력을 ISIS격멸에 쓸 수 있게 되어 동부 사막지대의 ISIS를 광범위하게 격퇴하는 <라벤다 작전>을 입안하였다. 17사단, 타이거 부대, NDF, 5군단, ISIS헌터즈, 공화국 수비대 등이 참여한 이 작전으로 인해 동부 사막지대에서 ISIS는 주요 거점인 알 수크나, 우콰리밧 등을 상실하고 특히 타이거 부대는 러시아의 협조를 받아 공중강습작전으로 ISIS의 후방을 타격하는 등 전술적 쾌거를 이룩하며 8월 말까지 동부 사막을 거의 장악하는 대 성과를 거두었고, 3년간 ISIS에게 포위되었던 데이르 에조르 시를 9월 5일 구원하는 데에 성공하였다.관련 다큐 뒤이어 데이르 에조르 군사공항의 포위까지 풀어버리고 유프라테스 강을 도하하려는 시도를 보이자 시리아 내에서도 가장 생산량이 많은 데이르에조르 유전을 장악하기 위해 SDF가 급히 남하하기 시작했으며 유프라테스강으로 도달하자 러시아-시리아 공군은 SDF에 공습을 가하며 더이상 전진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고, 설상가상으로 9월 16일 시리아 정부가 미국 지원 반군을 비롯한 모든 반군과 싸워 시리아 전토를 수복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여 SDF와의 밀월관계가 끝날 위기가 발생했다.

시리아-이스라엘의 국경지대에서도 반군이 상당히 밀리는 상황이기에 사실상 전선이 골란 고원 코앞까지 밀려있는데 그와중 6월말경 시리아군의 포격이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측에 착탄하면서 이스라엘도 즉각 보복공격에 들어갔으며 시리아군 지휘관을 포함한 13명이 사망하였고 이스라엘과 시리아군 양측 모두 병력을 증원하면서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있다. 시리아군은 이번 이스라엘의 보복공격과 반군의 역공이 겹쳐 피해를 보았고 이스라엘이 반군을 지원한다고 비방하였다.

그리고 2017년 7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 반군에 대한 CIA의 군사 지원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사실상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서 무의미한 아사드 퇴진을 고집하지 않고 그나마 합법적인 정부의 형태라도 갖춘 아사드 정권을 인정하고 아사드 정부군의 동맹인 러시아와 협력해 ISIS를 박멸하려는 수순인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미국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무능력한 군벌 집단들로 전락한 시리아 반군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자 전세는 점점 시리아 반군과 IS에게 불리해지고, 시리아 정부군과 쿠르드족 로자바 지역의 쿠르드계 민병대 조직 인민수호대(YPG)와 세속주의 성향의 아랍계 자유시리아군 반군 연합체 조직 시리아민주군(SDF)에게 상당히 유리해지고 있다. 덕분에 IS는 점거하고 있던 라카와 수크나, 마야딘등의 영역들을 시리아 정부군과 쿠르드계와 세속주의 성향의 아랍계 자유시리아군 연합체 조직인 시리아민주군(SDF)에게 빼앗기거나 밀려나가며 점점 몰락, 쇠퇴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2017년 10월 17일 IS의 수도격이었던 라카가 마침내 시리아 민주군(SDF)에 의해 함락되었다. 한편 IS의 수도격이었던 라카가 시리아민주군에게 함락되면서 IS는 라카를 잃고 시리아 동남부의 유프라테스강 유역과 시리아 사막 지대로 완전히 밀려났으며 라카 함락을 기점으로 시리아 내부에서 IS의 몰락은 가속화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아부카말도 11월 시리아 정부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이로써 IS는 모든 도시거점들을 상실하고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민주군의 협공을 받으며 몰락의 길로 치닫고 있으며 방대했던 영토들과 도시거점들을 대부분 잃고 일부 소규모 지역들만을 장악하며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민주군의 압박에 어렵게나마 허덕거리는 상황으로 전락해버렸다.

2017년 12월 시리아 정부군이 타흐리르 알 샴과 시리아 반군 세력들이 주 전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북부 이들리브 주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을 개시하여 이들리브 주의 반군 점령지에 대한 군사 공격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IS와의 전투에서 IS를 기선제압한 시리아 정부군이 이번에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적이 있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조직 타흐리르 알 샴도 쓸어버릴 겸 이들리브 지역의 기타 시리아 반군 세력들을 굴복시켜 전세를 완벽히 장악하려는 모양새인것 같다. 다마스커스 남서쪽의 반군 거점은 아예 정부군에게 항복하였고, 쿠르드와 정부군 간에는 불편한 공존이 계속되고 있지만 산발적인 교전이 벌어지면서 깨질 확률도 높아졌다. 그동안 전세계를 지배하는 이슬람 칼리프를 자칭하던 ISIS는 이라크와 시리아 양측의 거점을 전부 다 잃으면서 고작 컬티스트 군벌 수준까지 퇴화하여 몰락하였으며 7년동안 계속된 전쟁이 사실상 시리아 정부의 승리로 매듭지어지고 있다.

1.1.7. 2018년 - 정부의 승전으로 매듭지어지는 격전

내전 7년차에 접어드는 2018년 초반, 지난해에 IS가 몰락하고 어느정도 각 이해집단간의 입장이 정리되자, 시리아군은 작년 12월 말부터 시작하여 성향을 불문하고 시리아 반군의 본거지 역할을 해온 북부 이들리브 지역과 수도 다마스쿠스 근처 동구타(Eastern Ghouta) 지역의 시리아 반군 점령지들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투가 시리아 정부의 승리로 끝날 경우 정부군은 사실상 승기를 잡게 되며 반군도 자신들의 최대 거점을 잃을수가 없기에 필사적으로 대항하면서 지난해 조용한 편이었던 이들리브는 2018년초부터 격전의 장소가 되었으며 거의 모든 땅을 잃고 사이비 컬티스트 군벌 수준으로 몰락해버린 IS 역시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을 틈타 다시 재기하고자 타흐리르 알 샴, 자유시리아군등 시리아 반군들이 장악하고 있던 이들리브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두 세력을 공격했으나 오히려 두 세력들과의 싸움에서 패망해 북부 시리아에서 소멸해버렸다. 비록 이 전투에서 시리아 정부군은 이들리브를 완전히 반군으로부터 탈환, 함락시키지 는 못했으나 반군이 점거하던 이들리브 주의 영토 일부 지역들을 수복,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족을 겨냥하여 올리브 가지 작전을 본격적으로 개시해 시리아 쿠르드족 점거지인 아프린을 공격하면서 아프린에서는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와 터키군, 터키 지원 시리아 반군 사이에 전투가 격화되었다. 아프린의 쿠르드족 민병대는 터키군과 터키 지원 시리아 반군의 공격에 거세게 저항했으나 전력 열세를 뚫지 못하고[18] 결국 3월 터키 지원의 시리아 반군이 아프린 시를 함락, 점령하면서 아프린을 잃고 패전하였다.

한편 그 와중 이란제 무인기가 이스라엘 영공으로 침투, 이스라엘이 이에 보복폭격을 가했다가 시리아군의 반격으로 F-16 한대가 격추되자 또다시 보복으로 시리아군의 방공미사일 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한편 2월 20일 시리아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인근 시리아 반군의 점거지인 동구타 함락을 목표로 "다마스쿠스 강철"작전이 개시하여 동구타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과 포격에 나섰고 3월에 동구타의 반군 점거지들중 하라스타와 조바르를 함락시키는데 성공하여 동구타 영토의 90%를 장악했으며 현재 마지막 남은 반군 점거지인 두마 지역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3월말과 4월 초에 두마 지역을 점거하고 있던 시리아 반군들을 밀어내고 탈환에 성공하면서 동구타 전 지역을 완전히 수복하였고, 수도 다마스쿠스 내에 있던 시리아 반군 세력들을 모조리 축출하여 모든 동구타의 영토들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2018년 4월 미국과 프랑스, 영국은 화학무기를 사용한 아사드 정권에 대한 군사공격을 선언했고, 러시아는 이에 거세게 반발했다. 시리아가 주요 공군 자산 등을 러시아측 기지로 옮기면서 일각에서는 공습 철회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2018년 4월 14일 시리아 정부군에 정밀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시리아와 러시아측은 대다수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요격하였다고 발표하였으나[19] 미 국방부에서는 모든 미사일이 명중했으며 시리아 정부의 요격 시도가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발표하였다.

한편 미국 등 서방 강대국들의 시리아 화학무기 미사일 공습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정부군은 동구타 탈환에 승기를 잡은 나머지 다마스쿠스 남부에 위치한 야르무크와 하자르 알아스와드 지역을 점거하고 있는 IS 세력들에 대해 압력을 가했고, 그 결과 다마스쿠스 남부 지역을 점거하고 있던 IS들이 투항함으로서 아사드 정권은 내전 발발 이래 반군과 정부군, IS등이 전투를 벌이며 시리아 내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던 수도 다마스쿠스 일대는 완전히 시리아 정부군에게 함락되었다. 이제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반군과 IS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알카에다 계열 연계 조직 알 누스라 전선의 후신이자 가장 강력한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 단체인 타흐리르 알 샴과 기타 이슬람주의 반정부군, 터키 지원의 시리아 반군이 점거하고 있는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와 자라블루스, 아프린, 알바브와 중부 하마와 홈스 일대의 소규모 시리아 반군 점령 지역들, 남부 다라와 칼라문 지역의 남부 전선, 혁명 코만도군 등 반군 군벌 조직의 점거지, 시리아 동부의 시리아 정부군과 쿠르드족 점령 영토에 포위, 고립되어 있는 IS 점거 지역들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남부의 칼라문 지역의 시리아 반군들도 같은해 시리아 정부군에게 항복하여 자라블루스 등 북부 시리아의 반군 점령지로 퇴각함으로서 칼라문 지역 또한 시리아 정부군에게 함락되었으며 같은해 5월 하마와 홈스 주변을 점령하고 있던 시리아 반군 세력들마져 시리아 정부군에게 항복함으로서 칼라문과 하마, 홈스 지역들 모두 시리아 정부군에게 넘어가 내전의 전세는 시리아 정부군에게 점점 유리해지고 있다.

한편 2017년에 있었던 라벤더 작전과 동년에 시리아 반군이 점령했던 이들리브 일부 지역과 동고타 등 수도 인근 영토들에 대한 탈환을 기점으로 시리아 정부군은 데이르에조르 인근 동부 시리아 사막 지대에 남아있는 IS 잔당 세력들에 대한 대대적인 격멸 작전을 개시하여 IS 세력들이 점거하고 있던 시리아 동부 내륙 지대를 동쪽 방면에서 꿰뚫어 IS가 점거하던 내륙 영토 일부를 탈환하였다. 한편 홈스 북동부 지역의 이들리브, 알레포 등 북시리아 일대로 통하는 도로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시리아 반군들도 시리아 정부군에게 항복하여 시리아 정부군과의 협상 하에 이 지역의 반군들이 북시리아 이들리브로 철수 이동하면서 북시리아로 통하는 홈스 북부의 도로 지역을 시리아 정부군이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훌라 등 홈스 북서부의 반군 세력들은 전세가 완전히 시리아 정부군에게 뒤집혀진 현재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정부군과의 항복 밑 철수 권유를 거부하며 시리아 정부군에게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내전의 형세가 러시아와 이란, 이라크, 중국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에게 기울어진 데다 시리아 반군의 지원국도 터키군의 지원을 받는 터키-시리아 국경 지역의 자라블루스와 다비크 등 북시리아 영토 일부를 점거하고 있는 터키 지원의 반군 세력들을 제외하면 그간 미국과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조를 받던 시리아 반군 집단들은 모두 미국이 작년 2017년도에 반군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고, 또 다른 중동내 시리아 반군 지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가 2017년 카타르 단교 사태로 인해 앙숙이 되어버리면서(사우디의 카타르 보복 사태 이후에 사우디 지원 시리아 반군과 카타르 지원 시리아 반군이 지원국인 카타르와 사우디가 싸우듯이 서로 총질을 하며 전투를 벌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카타르와 사우디의 시리아 대리전.) 이러한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반군의 전력이 크게 약해져 홈스 북서부의 시리아 반군들도 시리아 정부군의 맹공에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홈스 북서부와 하마 남부 지역을 점거하던 시리아 반군들도 결국 정부군에게 항복하면서 시리아 정부군은 홈스 일대 전역을 손에 넣었고 이로써 수도 다마스쿠스 일대와 시리아 서부 내륙 지대를 모두 시리아 정부군이 장악함으로서 이제 시리아내에서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요르단, 이라크와 국경을 접한 남부 다라 주와 알 탄프, 터키 국경 지역의 북부 알레포 주와 이들리브 주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한편 쿠르드족이 통치하고 있던 아프린을 쿠르드로부터 뺏은 터키와 터키 지원의 시리아 반군은 아프린 일대를 전부 장악하여 인접한 만비즈를 점령하고 있던 시리아의 쿠르드 세력들을 압박했고 그 결과 쿠르드의 지원 문제로 대립하던 미국과 터키가 갈등을 정리하는 합의를 하면서 2016년 IS로부터 만비즈를 탈환한 이래 2년동안 만비즈를 통치했던 시리아의 쿠르드-아랍 연합 무장조직인 시리아 민주군(SDF)은 동년 6월 만비즈에서의 철수를 결정, 만비즈의 SDF 병력과 관리들을 모두 철수하여 유프라테스 강 이동 시리아 북동부의 SDF 점령 지역으로 퇴각했다. 그리고 동구타와 야르무크 등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지역들을 모두 평정한 시리아 정부군은 이제 다음 전투 작전으로 요르단과 국경을 맞댄 남부 다라 주를 점령하고 있는 시리아 반군들로 총부리를 돌렸고 남부 다라 지역의 반군들을 토벌, 다라 주를 탈환하기 위한 대대적인 무력 토벌 작전에 돌입하게 되었다.[20] 한편 시리아 정부군은 19일부터 본격적인 다라 지역의 반군들에 대한 공세를 시작하여 공세 당일 무사이카(Musaykah)마을을 점령, 돌출부로 이어지는 보급로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6월말에 다라 주 북부의 수웨이다 주 방면으로 나 있던 돌출부를 점령하고 있던 반군 세력의 일부가 시리아 정부군에게 항복하면서 시리아 정부군은 이번 다라 전투에서 커다란 승전을 두 번씩이나 이뤄냈다. 한편 시리아 정부군과 다라 지역의 시리아 반군의 격렬한 충돌로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쌍방 전사자와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시리아 정부는 26일 다라 주변 지역의 반군 세력들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과 군사작전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동년 6월말에 시리아 정부군에 포위되어 있던 시리아 동부 사막 지대를 장악하고 있던 IS의 잔당 세력들이 시리아 정부군의 공세에 토벌되면서 시리아 국내에서 IS가 차지하고 있는 시리아의 영토들은 다라 서남부의 쿠네이트라 지역의 IS 연계조직인 '칼리드 빈 왈리드 군대'의 점거 지역과 유프라테스강 유역 이동 지역의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민주군(SDF)의 영역권 양쪽에 포위되어 있는 하진 지역과 시리아 민주군(SDF)의 점거지에 포위되어 있는 이라크와 국경을 맞댄 시리아 북부의 내륙 지역 등 총 3곳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다라 지역에 대한 공세에 나선 시리아 정부군은 7월로 접어들면서 다라 동남부의 시리아 반군 점령 지역들과 요르단과 통하는 국경 검문소를 탈환했고 같은해 6일 러시아아군의 협상 아래 정부군과의 전투를 중단하기로 합의함으로서 시리아 정부군은 마침내 다라의 동남부 지역을 반군으로부터 탈환하여 현재 시리아 내에서 시리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다라 서남부와 쿠네이트라의 반군 지역들과 터키의 지원을 받는 자유시리아군 반군 세력들과 타흐리르 알 샴 등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장악하고 있는 이들리브, 자라블루스, 알바브, 다비크, 아프린 등 시리아 북부 지역, 한때 오바마 행정부 시절 IS와 시리아 정부군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양성한 시리아 반군 단체 구 신시리아군의 후신인 혁명 코만도스의 거점지인 남동부의 알탄프 일대 등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한편 시리아 정부군이 다라 동부 지역을 탈환하고 있을 무렵에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는 시리아 아사드 정부와 북시리아 일대를 점거하고 있는 쿠르드족과의 협상이 시작됐는데 이 협상에서 아사드 정부 측에서는 시리아 쿠르드족에게 시리아 쿠르드 무장 단체인 인민수비대(YPG)의 시리아군 입대 허용과 쿠르드족이 점거하고 있는 유전지대와 영토, 국경검문소의 통제권을 시리아 정부에게 넘길 것을 요구하는 요구사항을 내걸었고 이에 쿠르드 측에서도 시리아 정부 내에서 쿠르드족의 자리와 권익 보장을 요구하는 조건을 정부 측에게 제시하였었는데 이번 회담에서 시리아 쿠르드족은 터키와 터키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들의 공격을 받아 아프린을 빼앗기고 나머지 점거 지역 영토들까지 터키군의 위협에 노출된 상황에서 터키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지 못 하고 오히려 자신들을 이용만 하고 버리려는 미국이나 서방 국가들 대신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과 손을 잡고 아프린과 자라블루스 등 북시리아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터키군과 터키 지원의 시리아 반군들을 몰아내거나 견제하려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7월 9일에 시리아 정부군은 다라 동남부 지역을 탈환한데 이어 다라 주의 최대 도시이자 다라 주의 주도인 다라 시를 점령하고 있는 시리아 반군들을 4면으로 포위하는데 성공하였고 다라 서남부 지역의 반군 지역들 2곳도 추가로 탈환했고 결국 다라 주를 점령하고 있던 시리아 반군과 IS 연계 조직들은 모두 시리아 정부군의 거친 공세에 버티지 못 하고 7월을 전후하면서 모두 시리아 정부군에게 굴복, 투항하였다.

2018년의 절반이 지난 8월을 기준으로 18년 초와는 상황이 굉장히 달라져 중간요약을 하자면 시리아 정부는 현재 수도 다마스쿠스의 반군 해방구였던 동구타, 다마스커스와 이들리브를 잇는 하마와 홈스, 요르단과 이스라엘과의 접경지대이며 양측이 직간접적으로 반군을 지원하던 다라 주를 탈환하여 시리아 남서부 전체를 정부군 휘하로 장악하였다. 현재 시리아 정부의 미수복지는 데이르에조르 인근의 IS 잔존거점[21], 그리고 작년에 IS가 축출된 라카를 비롯한 북동부의 로자바 쿠르디스탄, 아예 터키군이 눌러앉은 알레포 북부와 반군의 본거지 이들리브 정도이다. 그나마 현재 로자바의 점령구역은 시리아 정부군과 큰 마찰이 없어 사실상 총성없는 전쟁 종식을 기대할 수도 있는 상황이며, IS 잔존거점은 국제연합군과 쿠르드가 상대하고 있는데, 아프린 쿠르드자치구역을 터키 지원 반군이 점령하면서 이들리브와 알레포 북부가 연결되어 사실상 터키의 영향권으로 넘어갔고, 이들리브에 전진기지를 건설하면서 전선이 교착되었다.

현 시리아 반군은 알 카에다 출신 알 누스라 전선 계열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이자 반군인 '하이야트 타흐리르 알 샴'(HTS)과 자유시리아군 일파들 + 터키의 지원을 받는 다소 온건한 성향의 반군단체였으나, 지하디스트 반군들과의 합병으로 지도부를 비롯해 이슬람 과격파들에 상당히 물든 '시리아 국가해방전선'[22] 이 두 그룹이 사실상 모든 반군점령지대를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타 군소 조직들도 있긴 하지만, 이들 중 그나마 세력이 있는 투르키스탄 이슬람 반군은 실상 HTS 의 하부집단인 이슬람 테러조직인데다, 또다른 반군단체인 '탄짐 후라스 알 딘'은 아예 공식 알 카에다 시리아 지부를 자처하는 상황. 나머지 반군조직들도 상당수 근본주의 계열반군에 붙어 협력하고 있다. 그나마 내전 중반부에만 해도 남부 지역의 반군 일부는 세속주의 성향이 있었지만 지금 시리아 남부 지역 반군은 정부군의 공세에 토벌당했고, 껍데기만 남아버린 자유시리아군 내 세속주의자들은 시리아 영내에 장악 지역이 없는 사실상 빈사상태로 주도권 따위는 오래전에 지하디스트들에게 상실해버렸고, 영향력이 거의 없다.

현재로써는, 이들리브 지역에서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간의 최후 결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시리아 정부군은 이들리브의 반군장악 지역에 투항하라는 삐라를 뿌리고 있으며, 이들리브 지역으로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고, HTS(알 누스라 전선)을 비롯한 시리아 반군들도 이대론 질 가능성이 높으니 정부군 세력과 협상하자고 주장하는 내부 교섭파를 연이어 숙청해버리고,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대규모 병력을 전선으로 이동시키며 결사항전 분위기로 가고 있다. 서방 외신들과 유엔에서는 이들리브-북알레포에서 최후 결전이 벌어질 경우 이들 지역의 350만명의 민간인들을 비롯해 이들리브 지역에 대규모 재앙적 상황이 발생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지금이 시리아 내전을 끝낼 마지막 기회[23]이기에, 터키군만 철군한다면[24] 대규모 공세를 시작해 시리아에서 반군을 완전히 밀어버릴 가능성이 거의 100% 확실하다. 이들리브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승리를 거둔다면 바야흐로 8년을 이어가는 시리아 내전이 아사드 정권의 승리로 비로소 종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리브가 정부군 수중에 들어가면 터키 방면으로 난민들이 또다시 다수 발생할 것으로 보이지만, 터키는 현재 경제위기에 빠진 상태인데다 이미 수용한 난민들이 300만명에 달해서 터키가 국경을 열어주고 또 난민을 받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9월 7일의 러시아-터키-이란 3자회담에서 "더이상 난민을 못받겠다"며 대놓고 선언해버렸다.

한편, 9월 9일부터 시리아 정부는 이들리브 공세를 시작했다. 현재는 러시아군과 시리아군 주도의 공습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다만 9월 18일, 에르도안과 푸틴 간의 타협이 성사되어 이들리브에 15~20km가량의 비무장지대가 설정되고 이들리브 내 극단주의 반군 그룹의 축출에 합의하면서 시리아 정부군 러시아군의 합동 공세는 일단 중지되었다.# 터키의 참전에 따른 예상에 가깝게 이들리브 전투는 일단 중지되었다. 9월 말경, 이들리브 비무장지대가 설정되고 중무장 반군의 퇴거가 시작되었는데, 비무장지대가 반군측으로만 설정되며 터키군과 러시아군이 합동으로 비무장지대 반군 퇴거현황을 사찰한다는 소식에 반군 그룹간의 반응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친터키 반군인 국민전선과 비무장지대 퇴거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HTS간에 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으며, 처음으로 퇴거를 수용한 팔리크-알 샴, 사찰을 돕기로 한 자이시-알 이자는 비무장지대 설정에 협조중이며 반대로 자유시리아군(FSA)은 비무장지대는 수용하지만 러시아군의 사찰을 반대하고 있다.

한편 내전이 아사드 정부군과 반군간의 대결이 끝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지난 3월 올리브 가지 작전으로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로부터 빼앗은 아프린에 이어 또 다시 쿠르드족을 겨냥한 군사작전을 개시하여 시리아 동북부의 쿠르드족-아랍인 연합 준군사 조직인 시리아 민주군(SDF)의 점령지역인 만비즈와 유프라테스 강 이동 지역의 코바니, 카미술리, 알 하카사 등을 공격하겠다고 시리아내 쿠르드족에 대한 무력 사용을 경고,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터키군의 군사작전으로 터키에게 뺴앗기기 이전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족 점령지와 단절, 고립된 월경지여서 시리아 정부군과 북동부 쿠르드족의 지원이 원활하지 않아 터키군과 국가해방전선 등 터키 지원 시리아 반군들에게 패배,함락당했던 아프린과는 달리 만비즈와 코바니, 카미술리, 알 하카사는 영토와 육로, 다리가 다른 YPG의 점령지역과 연결되어 있고, 북동부 시리아 지역의 YPG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SDF에도 합류하지 못 하고 사실상 북동부의 쿠르드 지역과 따로 떨어져 있었던 아프린의 고립된 YPG 병력들과는 달리 SDF에 소속되어 있는데다 SDF에 속해 있는 혁명주의자군, 라카 해방여단 등 여러 자유시리아군 반군 분파들 밑 여러 기타 하위 소속 무장 단체들과도 협력, 교류하고 있고,[25] 오랜 IS와의 전쟁으로 실전 경험 또한 풍부하기 때문에 아프린 전투 때보다 쌍방 모두 더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26] 그리고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족 점령지 내부에도 카미술리 시 남쪽의 외곽 지역과 알 하카사 인근 지역에 쿠르드족이 아닌 시리아 정부군이 통치, 주둔하는 시리아 정부군의 점령 지역이 두 곳이 존재하고 있는데 만일 터키와 터키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 단체인 국가해방전선이 카미술리를 치게 된다면 쿠르드족이 속한 YPG와 SDF 뿐만 아니라 쿠르드 지역 내에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 정부군과도 전쟁을 염두해야 할 상황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시리아와 터키 간의 전면 전쟁이 일어날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쿠르드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도 터키가 아프린에 이어서 시리아내 쿠르드족을 공격해 시리아내 영토를 장악하는 일을 막고자 터키와 국경을 맞댄 시리아 북동부 일대에 미군 감시초소를 설치하며 터키의 쿠르드 공격을 견제하기 시작했다.아프린까지는 허락해도 시리아 북동부는 사수한다.

한편 비무장지대 설립이 확정된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에서는 타흐리르 알 샴 등 시리아 반군이 비무장 지대를 넘어 정부군 지역에 포격 도발을 가하는 등 시리아 정부군에 대한 지속적인 도발을 시전하고 있다. 이미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이러한 도발을 멈추지 못한다면 군사적 옵션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독일-프랑스-터키-러시아 4자 회담에서 시사한 바 있었는데 이러한 반군의 공격에 계속해서 시리아 정부군에게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11월 9일에 시리아 정부군은 비무장지대가 설정된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서 반군들을 공격해 반군 조직원 22명을 사살하였다.

2018년 12월 현재 시리아 정부군은 시리아 쿠르드족 무장단체인 인민수비대(YPG)와 쿠르드-아랍 연합 무장단체 시리아 민주군(SDF)이 점거하고 있는 북동부 지역[27]과 터키군과 국가해방전선 등 친터키 시리아 반군이 점거하고 있는 아프린, 알바브, 자라블루스 등 북알레포 지역, 타흐리르 알 샴 등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 단체들이 통치 중인 이들리브 지역, 혁명 코만도스 등이 점거하고 있는 남부 알탄프, IS 잔존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하진 등 동부 시리아의 유프라테스강 중류 지역을 제외한 시리아 영토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다. 한편 미군 주도의 국제동맹군과 쿠르드-아랍 연합 무장조직 시리아 민주군(SDF)는 하진 등 유프라테스 중류 지대의 IS 점거 지역들을 겨냥하여 IS와의 마지막 토벌전을 펼치고 있으나 현재 IS 세력들의 극렬한 저항으로 SDF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하진 일대에서 SDF와 국제동맹군, IS와의 전투가 격화되고 있을 무렵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한달 내로 IS들을 무찌르고 하진을 함락시킬 것이라고 굳건한 승전 의지를 보였다. 만일 하진이 함락된다면 IS는 시리아 영내에 장악하고 있던 마지막 영토를 잃게 된다. 그러다 2018년 12월 14일 is의 극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SDF는 IS들을 격멸시키고 하진 진입에 성공해 마침내 하진을 IS로부터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IS는 시리아내에서 실질 통치하고 있던 마지막 영토였던 하진을 SDF에게 잃고 패배했다. 한편 지난 2018년 3월 아프린 작전으로 터키와 친터키 시리아 반군이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공격하여 점령한 북부 아프린 일대에서도 아프린을 잃은 YPG 세력들이 폭탄 공격과 게릴라 전 등 비정규전을 펼치며 북부 시리아 주둔 터키군과 국가 해방전선 등 터키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들을 공격하고 있다. 한편 전쟁이 시리아 정부군에게 유리해지자 시리아 내전 발발 당시 아사드 정권의 시민 학살에 반대하여 시리아와의 국교를 단절했거나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던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모로코, 튀니지 등 중동/북아프리카의 아랍 국가들도 사실상 아사드 정권을 인정하여 시리아와의 국교를 재개하거나 내전으로 패쇄한 대사관 재개관 등 국교 재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시리아 내전으로 정지당했던 시리아의 아랍연맹 회원국 자격 회복도 아랍권 외교가에서 거론되는 중이다.

그러나 2018년 12월 19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에 대한 철군 방침을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트위터에 "내 임기 중 시리아에 주둔해야 하는 단 한가지 이유였던 IS를 우리(미국)가 격퇴했다"며 시리아에서의 미군 철수를 시사했다. 한편 이런 트럼프의 미군 철수 결정에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던 러시아와 이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이를 환영하였고 IS 격퇴전에서 미국과 함께 대 IS 전쟁을 주도했던 쿠르드족은 이러한 트럼프의 미군철수 결정에 미국에게 배신이라는 뒷통수를 맞게 되었다. 이에 IS 격퇴전에서 시리아 주둔 미군과 연합해 미군의 지원을 받고 IS와 싸우던 시리아 쿠르드족들은 트럼프의 미군 철수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에 시리아에 있던 미군 병력들은 철수하기 시작했고 미군이 빠지는 틈을 노려 러시아와 시리아 아사드 정부, 이란, 이라크, 터키 등이 미군 철수 이후의 시리아 정세를 두고 주도권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시리아내 쿠르드족의 세력 팽창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터키는 쿠르드족이 점령한 북동부 시리아의 미군이 빠지는 틈을 타 2018년 3월에 점령한 아프린에 이어서 만비즈와 코바니, 아인이사 등 나머지 북부 시리아의 쿠르드 점령지들을 공격하려는 군사작전을 수립하여 동년 북 알레포 지역을 점령중인 친터키 시리아 반군과 함께 만비즈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2018년 12월 말 시리아 쿠르드족은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에게 도움을 요청해 시리아 정부군으로부터 터키의 침공을 막는 댓가로 쿠르드족이 점령한 북시리아의 영토들중 아리마와 만비즈의 영유권을 포기, 이들 지역들을 아사드 정권에게 넘기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에 시리아 정부군은 쿠르드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가 유프라테스강 이동 지역으로 병력을 철수, 시리아 정부군이 아리마와 만비즈로 진입해 아리마, 만비즈가 시리아 정부의 통제권에 들어오면서 쿠르드족을 공격하려는 터키군과 친터키 시리아 반군의 만비즈 공격은 끝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터키는 만비즈가 아닌 다른 북부 시리아내 쿠르드족 점령지를 공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현재 쿠르드족이 점거중인 북시리아의 다른 지역들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그럼 아인이사, 코바니, 카미쉴리, 알하카사도 시리아 정부군에게 바쳐야지. 한편 시리아에서 급히 주둔 미군 병력을 철군하려했던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12월 말 미군 철수시한을 1개월에서 4개월로 철군 계획을 변경했다. 한편으로는 미국이 쿠르드족을 토사구팽하는 이 사태는 예견되었던 것이, 냉정하게 말해, 터키가 보스포루스 해협을 갖고 있는 이상, 미국이 터키를 버릴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분명했던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IS야 미치광이 군벌에 불과하지만, 러시아 흑해 함대를 틀어막을 터키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말을 잘 듣기만 한다면.

1.1.8. 2019년 - IS의 몰락과 여전히 불안정한 시리아

내전 8년차에 접어드는 2019년 초반부의 가장 주된 정세를 요약하자면 ISIS의 소멸과 미군의 철수 예정, 그리고 이들리브 전선이 교착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교전은 격화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18년 말에 터키가 제안하여 에르도안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사이에 체결된 정부군과 반군간의 비무장지대 협정은 휴전에 반대하는 타흐리르 알 샴이 이들리브 반군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었고, 반군 세력들은 각각 이들리브는 알카에다 계열 조직인 타흐리르 알 샴이, 자라블루스, 다비크, 알바브 등 북부 알레포는 사실상 터키의 관할권 아래에 들어간 국가해방전선 등 터키 지원을 받는 자유시리아군 반군, 이라크, 요르단과 국경을 접한 알 탄프의 혁명 코만도스와 기타 남부 지역의 반군 세력들, 시리아 동북부 지역을 통치하고 있는 쿠르드족 로자바 자치정부 주도의 시리아 민주군(SDF)에 속해있는 여타 자잘한 자유시리아군 반군 조직들로 나뉘어졌다.

2019년 2월 현재, 시리아 내 IS 세력은 시리아 민주군(SDF)의 공격을 받아 완전 소멸 직전이다. 이들 IS들은 2018년 작년에 하진을 상실하고 수사, 이스 샤파 등 다른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IS 점거 지역에서 저항했으나 SDF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1월 초에 끝내 함락되었고, 시리아 내 최후의 점령지인 바구즈 지역이(지도상으로는 좀 더 점령지가 남아있지만 잔존 지역은 그냥 사막일 뿐이다) 현재 쿠르드 계열 SDF의 전면공세[28]로 1월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2월까지 수천명 이상의 IS 대원들과 그 가족들이 투항했다. 완전한 거지꼴이 되어 비참하게 도망나온 잔존 조직원들의 아내들과 자식들(영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월 6일 인터뷰에서 "아마 다음주면 IS에 대해 완전승리를 하지 않을까 본다"고 밝혔다. 2월 9일 기준으로 시리아 내의 IS가 장악한 지역은 사실상 소멸 직전이며 10제곱킬로미터 미만[29]으로 추산된다. 병력은 600명밖에 남지 않았다. 한편 바구즈의 IS 잔존 세력들은 SDF에게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3월 21일 SDF에게 바구즈가 함락되면서, 시리아 내 인구밀집지대에 위치한 마지막 점령지역이었던 바구즈를 잃고 사실상 패망하였다. 이로써 IS가 2019년 수사, 이스파샤, 바구즈 등 유프라테스강 유역 등 인구밀집지대의 점령지들을 모두 상실함으로서 이제 시리아 국내에서 남은 IS 세력들은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포위망에 갇혀 있는 동부 시리아 사막 지대의 IS 잔당들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시리아 정부군은 이들리브 비무장지대의 극단주의 테러단체 추방이 실패하여 휴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이들리브에 공격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다만 여전히 터키군이 이들리브의 반군과 정부군 접경지대에 세운 전초기지들에 눌러앉아 시리아군의 실질적인 진입을 사실상 막고 있기 때문에 점령 영역은 단 한줄도 안 바뀌면서 포탄만 줄창 오고가는 돈바스 전쟁과 비슷한 양상이 되었다. 한편 러시아는 터키가 비무장지대 협정 약속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아 터키를 압박하며 시리아 정부군의 이들리브 공격을 지지하고 있으며[30] 2월 18일에는 이들리브에서는 시리아 알카에다 지부 '타흐리르 알 샴'의 지도자였던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가 폭탄 공격을 받고 부상을 입었다.

한편 시리아에서 주둔 미군들을 전부 철수시키려던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에 대한 반대 여론에 부닥치자 약 200여명의 미군 병력을 시리아에 남겨 평화유지군 형태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평화유지를 위한 200명가량의 소규모 그룹이 당분간 시리아에 남을 것이다”라고 밝혔는데. ‘당분간’이 얼마 동안일지, 어디에 남아 무슨 일을 하게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남게 될 미군들이 유엔 지휘를 받을 것인지도 명확히 말하지 않았던 터라 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 외신들은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미군 병력 200명에 대한 시리아 주둔이 유럽 동맹군의 평화유지 병력 투입을 유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시리아 주둔 미군병력 200명 잔류 계획 역시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동맹국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프랑스는 반대하는 입장에서 미국의 시리아 미군 잔류 조치에 찬성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반면 시리아 정부와 러시아는 이러한 미국의 시리아 미군 잔류 조치에 대해 철수한다 해놓고 말을 바꿔 미군을 잔류시킨다는 게 말이 되냐며 이에 반발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미국은 시리아 주둔 병력 완전철수 기한을 5월까지 철수하기로 한 것을 11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한편 내전이 러시아와 이라크,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이 우위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북부 이들리브에서는 시리아 정부군과 이들리브 지역을 점거 중인 반군의 충돌이 지속되고 있으며, 2018년 시리아 정부군에게 함락된 남부 다라 지역에서는 정부군과의 싸움에서 점령 지역들을 잃고 패망한 남부 전선 등 다라 지역의 시리아 반군 잔당 세력들이 게릴라 전술을 통해 다라 지역에 주둔중인 시리아 정부군 장성들을 암살, 테러 공격을 하며 정부군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에 시리아 정부에서는 시리아 공화국 수비대 등 정부군의 정예부대를 다라 지역으로 다시 파견했는데 이는 불안정한 다라 지역의 치안도 안정화시킬 겸 반군의 잔당 세력들을 척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하진과 이스샤파, 수사, 바구즈 등 동부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점령 지역들을 상실한 IS들은 시리아 민주군(SDF)에게 함락당한 이들 지역들을 버리고 정부군의 통제가 느슨한 시리아 남서부 스웨이다 지역으로 재집결하여 조직 재건을 도모하려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중순에는 IS 잔당 세력들이 알수크나와 팔미라 등 동부 사막지대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공격하여 교전을 벌이기도 하여 이들 IS의 잔당 세력들은 흩어져서 시리아 정부군을 공격하는 점조직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에 들어서면서 북부 이들리브 전선에서는 타이거 부대를 위시한 시리아 정부군이 탈우스만, 우스만, 알 바나, 알 자라브나, 카르프 나부다등 반군 지역의 요충지들을 반군으로부터 탈환, 점령하는데 성공했으며 카프르 나부다를 순식간에 점령한 것도 모자라 10일에는 이들리브의 지슈르 앗슈구르 시로 이어지는 56번 국도의 첫 관문인 콰랏 알 무디끄를 순식간에 점령했으며 주변의 여러 마을까지 순식간에 정부군의 수중에 떨어지는 등 이들리브 전선에서 반군의 점거 지역들을 다수 점령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반군에게 주요 요충지들을 빼앗긴 타흐리르 알 샴과 자이쉬 알 이자 등 북부 시리아의 반군 세력들은 정부군에 대한 반격을 가했으나 콰랏 알 무디끄 북서쪽의 앗 샤리아 언덕을 점령하는 선에서 그치며 정부군에게 밀려 퇴각하고 말았다. 한편 시리아 정부군이 이들리브 남부 지역의 주요 요충지와 마을들을 점령하자 타흐리르 알 샴과 자이쉬 알 이자, 민족해방군(NLF) 등 이들리브 지역의 반군 단체들은 다마스쿠스 정복군(파타흐 알 다마스쿠스)이라는 연합 조직을 만들어 시리아 정부군에 대항하기 시작했으며 이들리브 남부 지역의 요충지들을 정부군에게 빼앗긴 반군 측은 하마 주의 정부군 도시에 보복 공격을 가하여 여러명의 사상자들을 내었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은 반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이들리브 주와 하마 주, 라타키아 주에 있는 반군의 점령 지역들을 추가로 더 탈환하였다. 한편 반군 역시 측면 공세를 통해 정부군으로부터 정부군 접경지역의 마을 2곳을 역으로 점령하였으나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이 점령한 이들 마을을 다시 탈환하였다. 한편 북부 이들리브 전선의 카르프 나부다에서 정부군이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노린 반군은 카르프 나부다를 공격, 탈환하였으나 전열을 가다듬은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을 공격해 카르프 나부다를 재탈환하면서 북부 시리아 전선에서 시리아 반군과 시리아 정부군, 러시아군의 3파전은 격화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6월 초에 시리아 정부군은 이들리브 지역에 대한 총공세를 단행하기 시작했으나 6월 12일자로 터키-러시아측의 합의에 따라 다시 72시간 사흘간의 휴전이 발효되면서 정부군과 반군간 전투는 잠시 중단되었으나 휴전이 종료되자마자 다시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가 재개되었다.

1.2. 시리아 내전만의 특징들

1.2.1. 미디어 전쟁

기존의 전쟁이나 내전은 대중언론에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통제된 내용만을 공보실을 통하여 내보내었으나, 시리아 내전은 정부군과 반군 모두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텔레그램과 같은 SNS미디어를 강하게 활용하며 전쟁 영상을 매일같이 찍어서 공개하고, 그 수단도 드론, 스마트폰 등 매우 다양하다. 시리아 정부를 편드는 언론매체와 반군을 편드는 언론매체가 제각기 기사를 내보내며 정보를 공개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이 아닌가 할 지경이다.

이는 민주화 운동 시기부터 내전 초기까지의 기간동안 아랍 왕정국가 언론, 서구 언론을 이용해 사악한 아사드 독재정권에 학살당하는 자유민주주의 희생자들, 반군은 위대한 민주화 투사들 식의 이미지메이킹을 국제사회에 일방적으로 어필[31]하는데 성공한 반군 측의 사례에서 기반한다. 특히 시리아 정권의 하야를 원하는 카타르 정부의 입김이 강한 알 자지라는 고의적으로 왜곡 보도를 통해 시리아 국내의 시위를 선동하는 데에 앞장섰으며, CNN이나 AP통신 등의 서구 언론도 독재자 아사드가 얼마나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는지,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는지[32] 중점적으로 부각해서 내보냈다. 이로 인하여 시리아 반군 내부의 이슬람 원리주의자와 친정부 인사에 대한 학살은 철저하게 숨겨졌으며 약자로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시리아 정부측이 전례없을 정도로 대중 SNS에 정보를 공개하고 아사드 대통령부터가 서구권 미디어와 한달에 한번쯤 될 만큼 자주 인터뷰[33]를 하는 것도 이러한 이미지 전쟁을 의식해서이며, 특히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아랍어를 쓰지 않고 유창한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백인 신사로써의 단정한 모습으로 서구권 독자들에게 직접 다가가고자 하는 의도를 강하게 드러낸다. 또한 반군을 조롱하는 코믹한 (Meme)을 만들어내며 아사드 대통령을 희화시키는 것도 서슴지 않으며, 정권 하의 생활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또 이슬람 극단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세속적인 삶을 보장해준다거나, 다문화 공존, 소수종파에 대한 관용과 생활 보장이 어느 정도인지, 또 반군의 이미지 메이킹의 실체를 분석 보도하는 등 상당히 입체적으로 미디어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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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통한 선전활동에서 선두에 서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미녀 종군기자 셀리 파델(Sally Fadel)의 모습. 기독교도이다. 정부군 측에서는 샐리 파델의 공식 페이스북까지 만들어놓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선 부대를 취재하러 다니는 모습도 인터넷에 자주 올라오는데, 러시아군 참전 탓인지 현장 사진은 러시아 쪽 트위터에 주로 사진이 올라온다. 공식 페이스북에는 셀카가 대부분.

반군측은 주로 아사드 정권의 공습에 의해 어린 아이와 여성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어가는지, 그리고 반군 내부에서 화이트 헬멧(White Helmet) 등의 소방조직이 얼마나 사람들을 열심히 구하고 화재를 진압하는지에 대해 중점을 둔다. 쿠르드족은 소셜페미니즘에 의거한 양성평등, 세속주의,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가장 깨끗하고 이상적인 조직임을 홍보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어두운 면도 크며 모든 진영이 자기에 맞게 왜곡보도를 하거나 연출을 한다. 가령 반군의 민간인 학살을 강조하며 옛날 사진을 최신 기사에 돌려썼다가 들통나는 경우가 정부나 친정부 언론사에서 간혹 등장하고, 숫자가 적긴 하지만 엄연히 세속민주주의자가 존재함에도 알카에다밖에 없다고 과장 왜곡을 한다. 반군은 알레포 내부에서 정부군 공습으로 병원이 전멸하였고 의약품이 하나도 없으며 시민들이 자기를 지지한다고 주장하지만 동부 도심지에 진입한 정부군에 의해 자기에게 충성하지 않는 시민들에게는 정수장을 차단해서 물을 끊어버리고 의약품을 반군용으로 숨겨둔 곳이 들통나거나, 사우디의 설비 지원으로 이뤄진 비밀 병원이 나타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특히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면 서로 자기들의 전과를 부풀리기 때문에 실체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어느 한쪽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듣기보다는 한가지 사건에 대해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고, 속단하기보다는 며칠 정도 여유를 두었다가 상황이 안정되면 그때 사태를 파악하는 신중한 태도가 관찰자들에게 요구되고 있다.

또 참고로, 시리아 내전을 다룬 외신 보도, 그리고 이를 인용하는 대한민국 언론의 보도를 볼 때도 편향성에 관련된 주의를 요한다. 주요 외신 중에서 CNN, NYT, BBC같은 영미권 언론들은 내전 초기부터 지금까지 겉으로만 중립적인 척하면서 지나치게 반군 쪽에만 편향된 보도를 내기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악명이 높다.[34]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의 시리아 관련 보도들도 대부분 시리아 정부군을 지나치게 악마화하고, 반군 측의 옹호입장 위주로만 편향되어 있다. 반면 러시아 계열 외신인 RT나 시리아 국영 사나(SANA)통신같은 친정부 언론은 모든 반군을 모조리 테러조직처럼 묘사하고, 정부군의 인권탄압, 과잉진압, 반정부 인사에 대한 고문 문제는 도리어 침묵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어느 한쪽 외신 보도나 대한민국 언론 보도만을 맹신하면 안 된다.

1.2.2. 전술적 특색

시리아 내전은 정부군, 반군 양쪽 모두 심각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금 사정이 충분하지 못하다. 이에 따라 다른 내전과는 좀 다른 특이한 전술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병력이 충분치 않고 소수 병력으로 광대한 전선을 유지하기 때문에 여단 편제가 대세이다. 반군 조직들은 사단, 군단 등 상위 제대 명칭을 조직명에 집어넣지만(ex: 자유시리아군 제1포병사단 등) 실제 규모는 2000~5000여명 수준이며, 수만명 수준의 조직이라도 내부에 여단급, 대대급의 소조직들이 연합을 이룬 상태이다. 이러다 보니 작전행동에 나서기가 가벼워 뛰어난 기동성과 순발력을 보인다. 정부군도 사정은 비슷하여 내전 초기 정규전 편제로 게릴라전에 대응하다가 어려움을 겪었던 점을 감안하여 비록 통제 자체는 사단 사령부에서 받지만 예하 제대들이 여단, 연대, 대대 기준으로 각 지역에 흩어져 독자적으로 작전한다. 4기갑사단의 본대는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지만 파견군은 알레포 시가지에 있고 11전차사단이 하마 광범위한 지역을 다 커버하는 것 등이 예시.

이러다 보니 기동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테크니컬을 이용한 기계화가 상당히 잘 되어 있으며, 어지간한 중화기는 죄다 트럭에 실어놓고 전투한다. 사정이 비슷한 정부군도 마찬가지로 정부군은 야지돌파능력이 뛰어나지만 다량의 기름을 소모하고 유지비도 많이 들어가는 기존의 군용 트럭보다는 저렴한 유지비로 굴릴 수 있는 민수용 트럭 위주로 기동부대를 편성한다. 테크니컬에는 중기관총이나 기관포, 대공포 뿐만 아니라 유탄기관포도 탑재하며, 병력을 전개하거나 이동시킬 때도 한국제 1톤 트럭들이나 픽업트럭을 활용한다. 대형의 트레일러 등에는 57mm대공포 같은 무기를 탑재하여 지상전을 지원한다. 양쪽 다 가볍고 뛰어난 기동력을 가진 편제 대비 고화력을 갖춘 소부대 운용이 대세이다.

기존 냉전시대에서 흔히 보이는 돌격 위주의 전술이 아닌, 화력 제압 위주의 전법이 기본이다. 시리아 내전은 주요 전장이 도시의 시가전이기 때문에 냉전식 보병돌격 전술을 사용했다간 대규모의 사상자를 내는데 이미 국가체제가 붕괴되어 정예병력의 유지가 반군과 정부군을 가리지 않고 중요한 시리아 내전에서는 절대 병력을 다량 소모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시리아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대비하여 구식 무기나 탄약도 버리지 않고 곳곳에 산재한 탄약고에 보관해놓았고 경제규모에 비해 잉여무기가 많기 때문에 화력전이 가능하다. 그래서 주로 전투하는 패턴을 보면 포격이나 대전차 유도미사일로 적의 거점을 포격하면서 3~4km전방부터 테크니컬 중화기나 전차의 화기 지원이 이어지고, BMP와 같은 장갑차들을 통해 병력을 수송하여 전개시키며 소화기 교전거리까지 진입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이상의 전진은 하지 않고 소화기를 이용해 화력 교전을 하면서 장시간 싸우다가 화력 제압에서 패배하는 쪽이 후퇴하면서 점령지를 내주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탄약 소모량은 엄청 많으면서 사상자는 생각보다 적다.

화력 제압이 중요한데 돈은 없다 보니 특이한 기형무기들이 많고 부대 규모 이상으로 과도한 화력을 운용한다. 가령 정부군과 반군을 가리지 않고 사용되는 엘리펀트 로켓이라는 무기가 있는데 여러 타입이 있지만 초반에 로켓엔진이 연소되면서 나는 코끼리 울음소리가 특색인데 정부군이 사용하는 형태는 대형 트레일러에 적제하여 발사하는 것으로 구경 750mm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물건임에도 대대급에서 운용한다. 반군도 대구경의 수제 박격포인 헬캐논(Hell Canon)이나 가스통에 날개와 로켓엔진을 달아 발사하는 무식한 고화력 무기를 사용한다. 알레포 도심에서 전투하는 팔레스타인 친정부 난민 군조직인 리와 알 쿠드스(Liwa al Quds)는 카츄샤 BM-21에 들어가는 그라드 로켓탄을 직사(!)로 발사하는 신무기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는 등 창의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다양한 무기들이 활약하고 있다.[35]

땅굴 작전도 다른 전쟁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리아 내전만의 특색이다. 시리아의 토질은 적당히 점성이 있는 마른 땅이기 때문에 곡괭이나 다른 공구만으로도 땅굴을 파는 것이 어렵지 않고, 파놓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특히 전선 근방의 지상에서는 저격수들이 수두룩하게 배치되어 주간에 함부로 돌아다니면 저격당하기 쉽다 보니 주요 지역으로 침투하거나 보급을 받기 위해서라도 땅굴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정부군은 땅굴 침투를 막기 위해서 주요 시설 주변을 포크레인으로 깊게 파놓고 모래를 채워 이게 내려가는지 감시한다. 땅굴 파다가 모래가 내려간 흔적이 나오면 적의 땅굴작전이 진행중인 것. 그러면 똑같이 땅굴을 파서 적과 교전하는 식이다. 또 땅굴을 파서 적 주요 시설 밑으로 침투한 다음 화약을 잔뜩 쟁여놓고 폭파시키는 터널폭파 전술도 유행하고 있다. 이것은 정부군과 반군을 가리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자살폭탄차량(VBIED)의 위력도 큰 특징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테러리즘 목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앞쪽과 바퀴에 방탄철판을 용접하여 보병화기 사격에는 끄떡도 없게 강화를 시켜놓고, 폭약을 대규모로 탑재하여 적의 방어선 화력거점에 돌격시킨다. 차량은 불도저, 트럭, 승용차, 장갑차, 전차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주요 사용법은 먼저 정찰이나 적과의 초기 교전을 통해 파악된 적의 화력거점, 강력한 방어거점을 향해 돌격시키면 적은 기관포를 동원하여 파괴하려고 하지만 두꺼운 방탄철판에 의해 요격에 실패하고 자살폭탄차량이 방어선을 들이받은 다음 점화하면 항공폭탄의 몇배에 달하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방어선이 순식간에 붕괴된다. 세속주의 반군은 쓰지 않지만 이슬람주의 반군들은 굉장히 자주 사용하며 알 누스라 전선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이것을 제일 잘 사용한다. 2016년 들어서는 원격 조작형 자폭차량도 등장하여 쓰이고 있다. 장비면에서 우월한 정부군이 패퇴하는 전투를 잘 살펴보면 자살폭탄차량이 원인이 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타이거 부대같은 정예부대에서는 자폭차량 전담반을 마련하여 대응하거나, 방어진지에 대피용 땅굴을 파놓기도 한다. 도저히 못막겠으면 급히 개인호를 구축해서 기어들어가기도 한다. 파편살상능력 없이 단순히 폭약만 잔뜩 집어넣은 것이라 대부분의 폭발력이 하늘로 솟구치기 때문이다.

자살폭탄차량은 대전차미사일, 휴대용 대공미사일과 함께 사용되며 만일 자살폭탄차량을 요격하기 위해 전차나 장갑차가 나와있으면 대전차미사일로 먼저 공격하고, 전차가 격파되거나 이를 대비해 보병 엄호하에 후방으로 물러나면 방어선에 자살폭탄차량을 투입한다. 이에 대응하여 공격헬기가 떠 있으면 대공미사일이나 대전차미사일을 이용하여 저공에서 근접지원하는 헬기를 요격한다. ISIS가 이 전술을 가장 잘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전법으로 시리아 정부군은 물론 2016년 개입한 터키군의 레오파드 전차를 비롯한 중장비를 손쉽게 파괴하며 큰 손해를 강요한다.

드론을 통한 실시간 정찰/지휘도 내전의 특색. 미군과 같은 고성능 드론은 날리지 못하지만 주로 중국산 쿼드콥터 드론과 무선 고화질 카메라를 연동시켜 원격으로 지휘부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 지휘하며, 작전 지휘뿐만 아니라 포격 관측, 선전 영상 촬영에서도 쓰인다. 정부군과 반군을 가리지 않고 자주 쓰이는 편이다. 이젠 군사용이 아닌 민간용 드론을 이용한 폭격까지 하고 있다.

미디어 전쟁이 워낙 중요하다 보니 전투마다 머리나 가슴에 액션캠을 장착한 병사들이 많이 활동한다. 편집되지 않은 실제 전쟁영상을 유독 시리아 내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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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들어 후줄근한 복장만하고 나오던 반군들은 어디가고 외국제 정품으로 도배한 택티컬 반군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지만 이것은 하이야트 타흐리르 알 샴(알 누스라 전선)과 전성기 IS의 일부 부대들, 그리고 일부 중앙아시아 지하디스트 계열 출신 반군들만 해당하는 사항이다. 이들을 보면 자유 시리아군 계열 조직들은 평범한 민병대로 보이는 수준,

1.2.3. 시리아의 기묘한 내전경제

시리아는 2011년 민주화 운동 때부터 서방국가와 터키, 아랍연맹의 강력한 경제 재제를 받아 수출입이 완전히 봉쇄되었으며 정부 수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석유 수출도 함께 봉쇄당했다. 이로 인해 정부의 정상적인 예산 집행은 매우 참담한 수준까지 추락했으며 거액의 전쟁 자금을 댈 수가 없어져 정부가 군대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또한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지고 공장과 주택이 파괴되면서 민간 경제도 괴멸되었고 행정력이 작동하여 세금을 걷기도 어려워졌다. 이렇게 되자 결국 정부는 군대에 월급을 주지 못하게 되었고[36] 2013년부터는 군대가 지역 행정을 보조하고 직접 세금을 걷어 군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었다. 각지에 퍼진 친정부 민병대와 군부대는 이렇게 지역 행정에 깊숙히 관여하며 직접 세금을 징수하고 치안을 담당하며 각 부대의 운영비로 사용한다.

반군도 처음에는 터키, 카타르, 사우디, 요르단 등의 광범위한 자금 지원을 받았으나 점차 카타르와 사우디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집중 지원하고 그 액수도 거금을 소모하는 군대를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해지자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에서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며 세금을 징수하고 군자금으로 사용한다.

또한 공식 무역이 재제당했을 뿐 그를 대체하는 광범위한 밀무역은 시리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밀무역에 각 지역에 주둔한 반군-정부군/친정부 민병대들이 개입한다. 정부군 정예 민병대인 사막의 매 여단의 사령관 모하메드 자베르 예비역 대령처럼 90년대부터 해외 밀무역에 도가 튼 사람도 있고 최소 단위부대라도 각 도로마다 검문소를 설치하고 물자 당 얼마 식으로 기준을 정해서 통행료를 받는다. UN구호단체도 여기에서는 절대 예외가 될 수 없고 이 과정에서 상당량의 구호물자가 지역 세력의 손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압류당한 구호물자는 필요에 따라 거래되며 양측의 군자금원이 된다. 여기서 일부 자금들이 정부까지 올라가 시리아 정부가 적으나마 예산을 집행하며 정부 구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비결이 되고 있다.

밀무역은 정부-반군 사이에도 이루어진다. 장기간에 걸쳐 포위된 반군 지역이 생존할 수 있는 원인은 첫째로 정부군의 병력이 부족하여 피해를 입을 듯한 작전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지만 거기에 정부군 검문소에서 반군 지역으로 물자가 들어가는 것을 묵인하며 막대한 뇌물을 뜯어낸다. 이것이 정부군 부대의 생존 방법이기 때문에 반군을 격퇴하느니 포위를 유지하면서 뇌물을 받아 챙기는 것이 이득이 되니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무기와 석유도 밀거래의 대상이다. 발전소나 가스 유전, 상수원이나 논밭 같은 지역에서 나오는 물자는 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므로 IS가 장악한 발전소에 정부 인원들이 가서 근무하고 IS가 생산한 석유를 중간 상인을 통해 반군과 정부군에 판매하거나 정부군 장교들이 무기를 반군이나 IS에 판매하고 대금을 받는 등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유착이나 동맹관계가 아니고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 세력들간에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상호 적대 관계이면서도 생존을 위해 중간 상인들을 통해 알면서도 묵인하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시리아 정부가 IS와 동맹관계이며 자유의 투사들을 압박하는 악마와 악마의 야합이라는 식으로 왜곡보도로 몰아가는 언론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반군과 정부군이 동맹이라는 식으로도 얼마든지 몰아갈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암묵적 묵인 하의 경제행위는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생존과 지속적인 전쟁 수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시리아같이 전국토가 황폐화 + 수백만의 인구가 난민으로 유출되거나 정부군과 반군, IS와의 충돌로 죽어나간 상황에서 7년 반 넘게 비교적 정상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하며 장기간 전면전을 치르는데 성공했다는 것 자체가 전문가들에게 기적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1.3. 시리아 내전은 왜 끝나지 않는가

1.3.1. 시리아 정부군의 문제점

시리아 정부군은 내전에 참가한 모든 군사집단을 통틀어서 가장 강력한 기갑장비와 항공기, 체계화된 군사제도와 장교단을 보유하고 있다. 자유 시리아군이 성향이 제각각인 500여개의 파벌로 구성되어 의견통일이나 통합작전이 불가능하고 심지어 그룹들끼리 교전까지 벌이는 분열상황을 보이는 것이나,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전선[37], 이슬람 국가의 경우 노획한 기갑장비가 고작이고 공군이 없다는 점만 보아도 시리아 정부군이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해보일 정도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먼저 시리아 정부군은 본래 국가간의 총력 전면전에 맞추어져 육성된 군대이며, 주적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 군대였다. 전선을 형성하고 후방에서 병력을 징집하고 집결지에서 각 전선으로 배분하며 항공기는 제공권 장악 및 지상군 지원을 하고 대공장비와 전략무기가 적을 타격하는 방식의 전쟁에 특화된 군대였기 때문에 본래대로라면 안전한 후방이어야 할 국내 시가지에서 반군이 일어나고 포위당해 보급이 끊어지는 사태는 시리아 정부군이 단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었다. 각 주둔지에 포위되어버린 시리아 군대는 한 곳으로 집결하여 전선을 형성할 수도 없고 전선을 형성하고 싶어도 적의 주력군도 없고 사단도 여단도 존재하지 않으며 실체조차 파악하기 힘든 게릴라 저항군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지역 주민들의 반군에 대한 묵인 혹은 협조였다.

이렇게 각지에 고립된 시리아 정부군은 군기지의 방어능력에 의지하여 해당 지역에서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고, 소규모로 쪼개졌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합동작전도 불가능했다. 내전 초기에 함락된 기지에서 기갑장비를 탈취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월한 지휘체계와 화력을 바탕으로 군기지에 공격을 가해오는 집단화된 반군 주력을 압도적으로 제압했고 이렇게 반군의 공격부대를 소탕하면서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이 연계하여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주요 도시들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의 주요 전법인 자살폭탄테러와 소규모로 침투해서 습격하는 방식의 공격법 때문에 통제권을 회복한 도시라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각 도로망에 광범위한 검문소와 초소를 운영하지 않으면 도시의 안전을 절대로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군대가 시가지를 탈환하고 다시 작전목표를 설정하고 계속해서 탈환해나가는 방식으로 싸울 수 없었고 그 지역의 장악을 위해 한 군데에 주둔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는 정부군이 영역을 탈환하면 할수록 작전에 쓸 수 있는 병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해당 지역의 장악을 위해서는 압도적인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공군기지의 유지가 필수적이다. 이 공군기지의 방어도 시리아 정규군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기동전과 공세를 가하고 있는 병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 헤즈볼라 의용군, 수헤일 알하산 대령, 통칭 타이거대령이 이끄는 혼성 태스크포스 타이거 부대, 시리아 공화국수비대 정도가 기동전을 수행하는 객체일 뿐이다. 추가적인 전면 공세를 진행할 병력 자체가 크게 부족한 것이다.

또 장악한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침투하고 수백명 단위로 작전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주둔병력은 끝이 보이지 않는 소탕작전에 나서면서 전력이 조금씩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었고, 이 상황에 질려버린 병사들이 탈영을 거듭하기도 했다. 시리아의 친정부 민병대격인 국가방위대(National Defence Force)와 정규군 대부분이 계속해서 이 소탕작전에서 소모되고 있다. 특히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외곽지역인 조바르(Al-Jobar)지역같은 다마스쿠스 동부 일부는 복잡하게 매설된 땅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반군 병력들이 기어들어오면서 수차례에 걸친 대규모 소탕작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군 지역으로 남아 있을 정도다. 이게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위해 한국의 경우로 비교하자면, 청와대와 정부중앙청사가 있는 서울특별시 명동에서 불과 5~6km정도 떨어진 동대문구 정도에 폭격과 격전이 나날이 이어지는 반군의 해방구가 떡하니 존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상황이다. 2018년 8~9월 현재는 상황이 크게 나아졌다. 동구타 지역 반군이 완전히 투항/궤멸되면서 다마스쿠스와 수도권지역 전역이 정부군 휘하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제 이러한 위험은 완전히 사라진 상황.

이러한 끝없는 병력 소모 때문에 2015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이들리브 참패 후 병력부족을 토로하며 이들리브 지방 재탈환 노력을 공식적으로 포기해 버렸다. 탈영병과 병역기피자에 대한 대사면령을 통해 조금이라도 병력을 확충해보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또 시리아군은 비축물자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시리아는 본디 생산력이 부족한 가운데 서방과 척을 지고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속하던 나라로써 수 차례 경제위기를 맞을 만큼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춘 나라였으며 군수물자를 다량으로 비축해둘 만한 생산력이 애초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전의 발발로 비축물자는 대부분 소모해 버렸고 강력한 경제 제재에 의해 국가 예산 집행 자체가 마비되었다. 이것이 가뜩이나 부족한 시리아 정부군의 작전능력을 더 위축시키는 주범이다.

이 모든 문제를 특별히 악화시키는 것이 바로 전략적 주적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전에서 한발 물러서서 방관하는 입장이지만 시리아는 시온주의자의 음모가 내전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38] 특히 이스라엘 국경과 수도 다마스쿠스는 상당히 가깝다.[39] 그렇기 때문에 비축물자와 병력을 반군 소탕에 올인할 수가 없다. 만일 그랬다가는 이스라엘의 전면침공에 의해 시리아 정부는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리아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에 대비한 최소한의 물자와 병력은 유지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병력 대부분이 주둔지에서 떠나지 않고 소탕작전만 하는 것이 꼭 지역 치안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내전 상황에서도 시리아는 2014년에 이스라엘을 의식한 통합 방공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래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출범 이전까지는 반군들끼리의 권력 다툼과 팀킬, 걸프만 아랍국가들의 지원 감소로 반군들이 조직 유지조차 어려울 만큼 작전능력이 저하된데다 정부군이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였고 특히 유전지대 대부분을 통제하여 2014년 초에는 내전을 2014년 안으로 끝내겠다고 장담했을 정도였지만, 통합적인 작전능력과 원정능력을 갖춘 ISIL의 출범으로 이슬람국가 수도 라카(Al-Raqaa)에서 3년동안 버텨오던 17기갑사단 소속 93여단이 주둔지를 함락당하고, 뒤이어 이들의 견제로 버틸 수 있었던 라카 인근의 타브카 공군기지가 함락당하면서 유전지대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이슬람 국가에 대부분의 유전지대를 내주었고 2015년 5월에는 정부군 최악의 참패인 이들리브 패배로 예비병력을 상실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이후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기사회생하여 다시 승세를 이어가긴 했지만.

시리아 정부군의 역량이 극도로 저하된 것도 문제의 원인이다. 평시 31만의 병력을 자랑했지만 내전이 벌어지면서 탈영병이 급증했고 초반에는 반군을 거의 압살하던 정예부대는 계속해서 기동전과 소탕전에서 소모되었고 처음에는 편제를 잘 유지하던 병력도 내전이 길어지면서 점차 탈영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병력 자원을 확대징집하면서 수준 이하의 병력이 충원되기 시작했고 이들은 적의 기습이나 방어전에서 무조건 도망부터 치고 보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기지를 포기하고 철수할 때의 기본인 중화기 및 차량의 파괴 유기도 절대 지키지 않는다. 2014년 알 타브카 공군기지 함락 당시에는 전투기와 트럭, 중화기와 기밀문서를 그대로 놔두어 IS가 선전영상에 노획품으로 출연시키기도 한 것은 물론, 2015년 10월부터 홈스 지역 마힌에서 IS에 연전연패를 당하며 러시아가 넘겨준 RPO-A 열압력탄두 로켓과 T-62전차를 그대로 빼앗기기도 했다. 이쯤되면 농담이 아니고 졸전은 아랍 정규군의 종특이 아닌가(...) 싶을 정도.당나라 군대 집합소[40] 대다수의 오합지졸을 공화국수비대, 타이거 대령이 지휘하는 타이거 여단 등의 최정예부대가 먹여살리는 형국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무리 정예부대가 반군을 격멸해도 지역을 안정화시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다른 부대가 인수했다가 도로 뺏기는 참담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2017년~2018년 현재는 이런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 2016년 초급장교 합동 임관이 내전 후 처음으로 이루어져 간부가 확충되었고 러시아의 강력한 항공 지원과 훈련, 첨단무기 공여를 통해 전투력도 크게 상승하였다. 정부군은 기존의 지리멸렬한 부대를 대신하여 러시아의 최신 훈련 지도를 받아 양성한 제5군단을 창설하여 팔미라 재탈환전에서 그 역량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내전에 참전하는 러시아 용병들의 증언에 따르면(#) 엘리트 부대가 아닌 기간병력들의 질은 시아파 민병대만도 못한 수준이라고 까이고 있을 정도로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이고 있다. 한편 반군이었던 쿠르드족의 시리아 민주군(SDF)도 터키군의 야욕에 맞서 북부 만비지 시 정면의 넓은 영역을 정부군과 공동방위구역으로 설정하면서 사실상 정부의 협력관계 내지는 동맹이 된 상황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이후 미군의 공습이 비록 IS에 한정되어 있으나 정부군의 작전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정부군의 사정은 많이 나아진 편. 반군에 점령당한 지역이었던 수도권의 동구타, 남부의 다라 지역과 IS 앞마당이었던 야르무크, 포위당해 있던 데이르에조르 등을 연이어 완전탈환하고 이들리브와 알레포 북부의 코너로 잔존 반군을 몰아치는 등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1.3.2. 반군 세력의 문제점

반군 세력도 전쟁을 결정적으로 뒤집을 능력은 없다. IS를 제외하고도 반군 세력의 숫자는 약 15만명으로 2016년 현재 10만명 정도를 겨우 유지하는 정부군보다 많다. 하지만 반군은 크게 나누어 이슬람 전선, 자유 시리아군,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 쿠르드족으로 4개 계파로 분류할 수 있으며 그 내부에는 수백개의 민병대들이 독자적인 입장을 가지고 연합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으며 내부에서 분열 분쟁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41]

내전 초기에는 민병대의 한계 탓에 정부군에게 압살당하기도 했지만 곧 리야드 알 아사드 전직 공군대령이 창설한 자유 시리아군에 가입하고 프랑스, 사우디, 카타르, 터키 등의 적극적인 무기와 자금 및 훈련 지원으로 점차 정예화되어 2012년에는 수도 다마스쿠스에 전면 공격을 개시하고 알레포 작전, 데이에르조르 작전, 라카 작전으로 순식간에 시리아 전 국토의 2/3를 차지할 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도 정부군에 비해 본질적으로 우월해서라기보다는 반군 세력이 장악한 지역이 주로 알레포 지역을 비롯해 반정부 정서와 지역감정이 매우 강했던 지역이었기에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몇년에 걸쳐 이들 지역에 잔존한 공군기지나 교도소, 중앙병원 등을 포위했으면서도 요새화된 이들 지역을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는 반군의 본질적인 역량 한계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아사드 정부군의 여러 취약점들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물자와 병기의 차이 및 역량 부족으로 정부군을 혼자서 격퇴하고 혁명정부를 세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지역 민심에 의존하여 점령지를 지켜내는 것이 고작이며 전선 근처로 일진일퇴하는 사실상의 소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반군의 능력 한계다. 현실적으로 외국 군대가 적극적으로 지상군을 파병하여 정부군과 전쟁을 벌이지 않는 이상 아사드 정부를 무너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리비아처럼 국제연합군이 개입할 수 없는 것은 반군의 구성 자체가 서방 국가들이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겨온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IS를 제외한 반군의 숫자는 대략 15만명 정도로 2016년 현재 10만을 겨우 유지하는 정부군에 비해 많다. 하지만 이중 세속주의 민주세력으로 분류되는 자유 시리아군은 4~6만명 사이로 매우 적으며, 그나마도 대다수가 남부 다라 지방에서 선전하는 자유시리아군 남부전선 소속(약 3만 6천명)이다. 따라서 사실상의 주 전선인 시리아 북부에서는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하다. 이에 대비되는 무슬림 형제단 기반의 이슬람 전선은 최대 8~10만여명으로 추산되며 이들은 자유시리아군보다 월등한 조직력과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시리아 북부에는 최고의 단합력과 전투력을 갖춘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이 약 1만명 정도 존재한다.

알 카에다의 극단주의 성향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른바 온건 이슬람 세력으로 알려진 이슬람 전선(Islamic Front)[42]조차도 "민주주의는 기만의 또 다른 이름" 같은 반 민주주의 팻말을 지역마다 내세우고 있으며 주민들에게 강제되는 샤리아 법원을 운영하지를 않나, 본질적으로 알 카에다보다는 온건해도 샤리아 통치의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세우는 집단이었다. 더욱이 이들은 수니파 이슬람이 아닌 타종파, 타종교에 대한 극도의 차별적인 종파주의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라타키아 지방을 일시적으로 점령했을 때 알라위파나 시아파를 학살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으며 반서방 경향도 크다. 알 누스라 전선계열 반군은 아예 대놓고 시리아의 기독교(시리아 정교회) 주교 등 성직자들을 납치하거나, 가톨릭 신부를 처형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지금도 알 누스라 계열(HTS) 세력이 장악한 이들리브 지역에서는 2018년 현재 전쟁이 계속되는 중임에도 담배를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고 금지시키고, 진열대 마네킹에조차 히잡을 씌우라고 명령하며, 미용실 등지엔 화장품을 버리라고 강요하고, 이성교제를 했다는 이유로 미혼 젊은이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등 이미 부분적으로 샤리아 율법을 지역주민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으며, 전황 취재차 방문한 서양 여성기자에게 무슬림도 아닌데 히잡과 몸을 두르는 검은 베일착용을 강요하는 등 전형적인 극단주의 통치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자유시리아군이라고 해서 반종교 반 이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어디부터가 민주주의자이고 어디까지가 종교주의자인지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유시리아군 내부에서도 극단주의 이슬람 성향을 가진 그룹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반군을 지원하고 아사드 정권을 무너트렸다간 시리아 내부에서 정권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2차 내전이 발발하기 쉬운데[43] 여기서 세속적 성향의 자유시리아군은 숫자로만 봐도 이슬람주의자들을 이길 수도 없고 전투력에서부터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2차 내전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승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그렇게 되면 반서방 반이스라엘의 이란 내지는 탈레반식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벌어지게 된다. 시리아 국민들은 이란 혁명 이후의 이란 사람들처럼 가혹한 샤리아 통치에 억압받을 것이고, 물론 여기에는 수백만에 달하는 알라위파, 시리아 내 시아파, 기독교를 비롯한 소수종파는 물론이고 아사드에 협력해왔던 바트당 지지자들, 수니파들도 코란에서 말하는 "위선자"로 취급받아 보복 학살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러시아와 중국의 아사드 지지 이외에도 서방이 전면적으로 아사드를 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속 성향의 반군, 자유시리아군이 이슬람주의 반군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주도권도 결코 잡을 수 없다. 병력과 전투력 면에서 완전히 열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정부군의 명장 소하일 알 핫산 대령, 통칭 타이거대령의 이들리브 공세 당시 허망하게 빼앗기던 반군은 그간의 반목을 접어두고 반군연합체 자이쉬 알 파타(정복의 군대)를 결성하고서야 정부군을 몰아치면서 반격 섬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도 정복의 군대는 이들리브 지방을 지켜내는 반군 최대의 전투세력이다. 이처럼 반군끼리 성향이 다르더라도 협력을 하지 않으면 지금의 점령지조차 지켜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2014~2015년에 ISIL의 만행이 전 세계에 알려진 뒤로는 일부 반군 세력 중에서 IS와 이슬람 극단주의 행보에 질린 나머지 친정부로 돌아선 세력도 있다고 한다.[44]

현재 남아있는 주력 반군간의 사이가 그리 좋은것도 아니다. 북알레포 거점의 국가해방전선 반군을 지원하는 터키는 이들리브 중심의 알카에다 계열 반군을 2018.8월 말 테러조직으로 공식 지정했다. 거기다 몰락해버린 IS의 잔당들은 점조직 형태로 반군 장악지역에서 레지스탕스(...)처럼 활동[45]하며 반군들을 피곤하게 하는 중이다. 쿠르디스탄-로자바 지역 반군도 사실상 정부군과 동맹상태인데다 이들리브의 근본주의 반군에 대해서는 이를 갈고 있다.[46] 지금은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의 대규모 공세에 같이 대처해야 하기에 가시적인 충돌은 자제하고 있지만, 이미 반군 간 새로운 내전의 씨앗은 싹을 틔우고 있는 상황.

2018년 현재, 수세에 몰린 시리아 반군의 핵심 전력과 점령지의 최소 절반 이상[47] ~ 사실상 대부분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인 상황이다. 2018년 봄에 이르면, 국제정세 전문가들도 시리아 반군은 더이상 이슬람주의/세속주의 반군으로 구분함은 무의미[48]하고, 시리아 내에서의 지하드 정체성을 지녔는지, (IS 같은)글로벌 지하디즘을 추구하는지로 갈린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그야말로 망했어요급 상황이다. 비록 국제사회에 피를 뿌리던 IS는 패망했지만, 이대로라면 반군이 내전에서 승리한다는 정말 꿈같은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시리아는 결국 카다피 실각 이후의 리비아[49]같은 대혼란을 겪거나 혹은 아프간처럼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화를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서방에서도 반군 입장을 편향되게 옹호, 언론플레이하는 주류 언론이나 정치인등을 제외하면 차라리 다문화 공존을 보장해주는 정부군이 이대로 반군을 다 쓸어버리는게 시리아의 미래를 위해 훨씬 나을 거라는 여론이 나오는 상황.

1.3.3.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

따라서 현재 국제사회의 종전 노력은 더이상 반군이나 정부군의 완전 승리를 통한 내전의 종식이 아닌, 평화적으로 내전을 중지하고 각 세력을 정당으로 구성하여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알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와 IS를 완전 격멸한 다음, 대선을 실시하여 투표로 선출된 새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IS는 몰라도 알카에다 계열은 세속주의와 원리주의를 막론하고 깊은 연계를 취하고 있어 상호간의 분리가 불가능했기에 원리주의자를 선택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시리아 정부측은 아사드 대통령의 연임 여부를 놓고 확고한 입장을 취하여 평화협상은 몇차례나 결렬되어 왔다. 결국 2016년 제네바 평화협상 결렬 이후 아사드 대통령은 독자적으로 전국적인 총선을 실시하여 새 국회를 구성한 다음 국제 테러리즘과 영원히 싸우겠다고 선포하며 협상을 거부했다.

하지만 반군의 스폰서인 터키와 정부군의 동맹인 러시아가 터키 쿠테타 사건 이후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평화 종전을 위한 2017년 아스타나 평화협상을 개최하였고 하필 알카에다 계열과 아흐라르 알 샴 계열로 원리주의 반군이 쪼개져 각자 동맹체를 결성하면서 마침내 알카에다 계열의 선택적인 배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아스타나 협상에서는 겨우 과도정부에 대한 합의가 도출된 상황이나 IS도 여전히 존재하고 또한 알카에다 계열의 원리주의 동맹 타흐리르 알 샴의 세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협상 참여 반군이 정부에 귀순하더라도 이들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전쟁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2. 현재까지의 참상 및 난민 사태

시리아 내전/참상과 난민 사태 문서 참조.

3. 주요 세력

7년에 가까운 장기간 내전을 겪으면서 크게 시리아 정부, 시리아 반정부군,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쿠르드족 로자바 자치정부, 터키휘하의 반군의 5개 세력으로 나뉘어졌다.

3.1. 시리아 정부

  • 시리아 정부
    • 시리아군
    • 시리아 공화국 수비대
    • 국가방위대(National Defence Forces) - 구 명칭은 국민군(Jaysh al-Shabi, 자이쉬 알 샤비), 아사드 대통령의 자제명령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학살 및 범죄를 저지르는데다가 제대로 된 정규군과의 작전 연대도 불가능한 샤비하 민병대를 해체하고 지역 민방위 조직과 구 샤비하 인원들을 통합하여 정부의 통제를 받는 향토예비군 조직으로 개편한 것이 바로 국가방위대(National Defence Force)이다. 병력은 9만에서 10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정부에서 지급하며 정부의 통제를 받고 시리아군의 작전에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거나 향토 방어를 전담한다. 2012년 7월부터 준비가 시작되어 2012년 11월 1일 정식으로 창설하였다.

      시리아 내전 동영상에서 티셔츠에 군복바지, 운동화나 사제 모자, 배낭을 맨 후줄근한 모습의 정부군이 바로 이 국가방위대 대원들이다. 일단은 국방부 산하조직이라 하와쉬 무함마드(Hawash Mohammed)준장이 사령관으로 취임해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측으로 전향한 구 자유 시리아군이나 지역 부족 민병대, 동네 자경단, 구 샤비하 등이 모인 오합지졸 민병대 집단이며 따라서 통합 작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와쉬 준장은 사실상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다. 전투력은 개별 차이는 있으나 평균적으로 상당히 낮은 편이며 특히 거점 방어에 투입되어 있다가도 적의 공격이 시작되면 좀 교전하다가 우르르 도주하는 추태를 매우 잘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 고향을 방어하는 데에서만큼은 그럭저럭 쓸모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 친정부 지역을 공고하게 장악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데에 막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상 시리아 정부를 지탱하고 있는 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시리아 보안군 - 경찰과 헌병대의 중간 성격을 띤 준 군사조직. 하지만 한국으로 치면 기무사 만큼이나 위세가 당당한 조직으로 군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는 엘리트는 반드시 보안군을 거쳐간다. 육군의 경우 출세가 보장된 엘리트는 보통 소령까지 진급했을 때 보안군으로 파견근무를 보낸 뒤 복귀시켜 중령으로 진급시키지만 일반 간부는 소령 다음 파견근무 없이 그냥 중령으로 승진된다. 아사드 가문의 친위대나 다름 없는 집단으로 그나마 시리아군이 국민을 위해 충성한다는 지극히 기본적이고 당연한 이념을 가지고 있지만 보안군의 충성 대상은 노골적으로 여당과 아사드 가문이다. 구성원 또한 친아사드, 여당 소속이나 관련된 사람만 채용하고 있다. 정권 유지에 혈안이 된 채 작은 일에도 심하게 과도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서 군에서도 이들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한다. 내전이 벌어지자 시리아군에서 반군에 합류한 군 간부가 많았던 것도 어찌보면 보안군이 원인인데, 이들의 광적인 충성심은 결국 아사드 정부를 승리의 길에 올려놓는 데 한 몫하였다.
    • 샤비하(Shabiha) 1980년대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의 사촌인 나미르 알 아사드(Namir al-Assad)가 조직한 범죄 조직(...) 라타키아 지방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대통령 가문의 사촌 빽을 받아 사회주의 국가인 시리아에서 허가되지 않았던 밀수업을 주력으로 활동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긴 명실 상부한 깡패 집단이었다. 주로 레바논-시리아간의 밀무역을 수행하였다. 샤비하라는 이름은 유령이라는 뜻으로, 이들이 밀수에서 주로 사용하던 메르세데스-벤츠 S600의 아랍어 명칭에서 유래했다. 정권의 빽을 믿고 부리는 행패 때문에 90년대 내내 악명이 자자했으며, 바샤르 알 아사드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2000년에 이들을 숙청해 버렸다. 하지만 2011년 3월부터 시리아 민주화 운동에서 아사드 퇴진여론이 발생하자 광적인 정부 지지자들이 민병대를 구성하면서 다시 시리아 정치전면에 재등장하게 된다. 단 이들이 과거 범죄조직 샤비하와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가, 샤비하가 실체가 있는 단일조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데 민중들은 친정부 포지션을 취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의미에서 과거의 범죄조직 샤비하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즉 친정부 민병대들을 싸잡아 샤비하라고 부른 것이 서방세계에서 하나의 조직으로 잘못 여겨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은 단지 친정부 과격 지지자뿐만 아니라 깡패, 범죄자등이 무리를 지어 친정부 조직을 자처하고 다녔고 강간, 살인, 폭력과 약탈을 일삼아 반정부 여론을 악화시키는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결국 국제여론을 의식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에 의해 2012년부터 해체 수순에 들어가 지역 민병대를 통합한 향토방위군 조직인 국가방위대(NDF)로 흡수당했다.
    • 바트당 여단 - 시리아 집권여당인 바트당이 보유한 자체 무장병력. 2012년 여름 알레포 지역 바트당원들이 집권당인 바트당을 보위하기 위한 결의 대회를 열면서 창설되었다. 당원들 중 지원자로 구성된 7000여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군의 작전을 보조하며 싸우고 있다. 주로 알레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 시리아 사회국가당(SSNP) 여단 - 시리아 사회국가당은 아랍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 1932년에 국가사회주의운동을 모델로 하여 창당되었으나, 하페즈 알 아사드의 쿠테타 이후 정당활동이 금지되어 레바논으로 옯겨서 정치 활동을 해왔다. 2005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다당제 개혁에 따라 시리아에서 야당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현재는 10만의 당원을 보유한 유력 제1야당이다. 아랍의 여러 정당들처럼 자체적인 여단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6000~8000명의 병력이 시리아에서 활동중이다. 세속주의, 아랍 민족주의를 같이 하는 바트당을 도와 정부군의 작전을 보조하고 있다.
    • 시리아 저항군(Syrian Resistance) - 터키 알레비파 시민 저항운동에서 비롯된 무장조직으로 터키 내 반정부운동이 으례 그렇듯이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건설을 표방하고 있는 시리아 무장조직으로 병력은 약 2000명 정도다. 알라위파 지역인 라타키아에서 주로 활동하며 정부군의 작전을 보조한다.
    • 아랍 국민당 근위대
  • 외부 무장조직들
    •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총사령부(PFLP-GC) - 기존의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에서 갈라져 나온 팔레스타인 무장독립운동단체로, 수니파 이슬람주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PFLP-GC는 내전 이전부터 시리아와 아주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시리아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시리아 정부를 강력히 비난한 하마스(하마스는 간접적으로 FSA를 지지하고 있다.) 와는 달리 바샤르 알-아사드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야르무크 캠프를 포함한 시리아 내 팔레스타인인 난민캠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FSA와 지속적인 전투를 치르고 있다. 이들은 시아파 무장조직들과도 거리를 두고 팔레스타인 내부의 세력들과도 괴리되어 있어 아사드를 잃으면 자신들의 운명도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싸울 것으로 보인다.
    • 자이쉬 알 무와히둔(Jaysh al-Muwahhideen) - 드루즈 민병대로 어디까지나 시리아 국내의 드루즈 교도와 공동체를 보호하는 목적으로만 움직인다. 일단 소수종교를 보호하려는 정부의 입장에는 환영, 지지하나 내전 이후로 드루즈 공동체 내에서도 아사드 정권에 대한 반발이 은근히 강하지만 친정부 성향의 몇 안되는 드루즈 무장단체다.
    • 수토로(Sootoro) - 카미쉴리 주변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아시리아 동방교회) 계열의 친정부 민병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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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군
시리아 민주화 사태 때만 하더라도 이란은 국제사회의 움직임과 아사드 정권의 운명을 관찰하며 신중하게 움직였으나, 2012년 들어 사실상 시리아 내전이 이란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걸프만 국가들의 무력 하야 옵션임이 명확해지면서 개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량 탈영으로 엉망이 된 시리아 정부군을 재건하기 위해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는 정도였으나, 2013년부터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통제하는 아프간/파키스탄 난민 부대를 참전시켰고, 헤즈볼라의 참전에도 어느 정도 관여했다. 이것으로 시리아 정부군은 보조병력이 확보되면서 2013년 3월부터 대대적인 반격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국제적으로 경제가 봉쇄된 시리아 정부에게 막대한 운영 자금을 대출해주고 시리아 정부군이 5000여명의 병력을 상실한 2015년에는 이란 혁명수비대 본진이 직접 출병하면서 시리아 정부군의 패배를 메워주고 2015년 후반의 동부 알레포 공세를 시작으로 여러 공세를 보조하여 패배 분위기를 역전시키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또한 이라크/시리아의 시아파 종파주의 민병대의 사실상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존재. 이 영향력을 바탕으로 사실상 내정 간섭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혁명수비대 장교들이 시리아 근무를 명령받자 대량 전역을 시도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고, 여러 전진기지에 배치된 혁명수비대가 그렇게 비웃던 아프간 난민 부대와 똑같이 차량과 중화기를 놔두고 도망을 치거나, 2016년 칸 투만 전투에서는 최정예부대라던 제65공수특전여단이 택티컬 교육을 받은 알 누스라 반군에게 패퇴하는 등 이라크를 이긴 중동의 강군이라는 이미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로 알레포 지역 일부를 비롯해 시리아 중부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

시리아 반군 세력에게는 악의 축 취급을 받는다. 아사드가 거의 망했는데 이란 놈들이 개입해서 시리아 혁명을 망쳤다고 보는 시각에 더불어 우리 수니파를 죽이고 시아파 세상을 만들려고 왔다는 종파적 반감, 여기에 이란군 장교들이 시리아 행정 당국에서 다양한 행패를 부리는 것도 있어서 시리아 국민들의 시각이 그다지 좋지 않다. 반군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아사드는 나라를 이란에 팔아먹고 꼭두각시가 되었으며 시리아의 대통령은 혁명수비대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라고 주장한다.

겉보기에는 시리아를 지배하는 흑막인 것 같지만 사실 입장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시리아에 막대한 자금과 군사장비를 대출해준 나머지 이란 경제가 휘청여 2018년 초에는 무려 팔레비 왕가를 지지하는 시위(!)가 이란에서 벌어지기도 했고 이렇게 돈과 군대를 보내 놓고도 실속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와 다양한 경제 협력을 약속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음에도 시리아 측이 고의로 이행을 안하기 때문에 경제적 이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으며, 2018년 5월 17일 아사드-푸틴 정상 회담에서는 모든 외국군대가 철수해야 한다는, 러시아에게 시리아에서 나가라는 투로 해석되는 언질을 들었고 이란은 이에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 이란 혁명수비대(IRGC) - 내전 이전부터 레바논 헤즈볼라 지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2000~3000명의 혁명수비대 장교단을 파견하고 있었던 혁명수비대는 2012년까지는 고문단을 파견하여 민병대를 훈련시키고 무기를 수출하는 데에서 그쳤으나, 내전이 걸프만 국가들이 주도하는 대리전임이 확실시됨에 따라 2013년 6월부터 아프간 난민 위주로 구성된 용병들을 파견하고 이들을 혁명수비대 장교가 지휘하면서 정부군의 병력 부족을 해결해 주었다. 2015년부터는 산하 특수부대인 알 쿠드스 여단을 파병하고 정부군의 작전을 보조하기도 했으나, 근본적으로 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 친 이란 민병대들을 통솔하는 컨트롤센터 역할을 한다.
  • 리와 파테미욘(لواء الفاطميون,파티마 여단)/리와 자이나비욘(لواء زينبیون,자이납 여단‬) - 이란 이슬람 혁명 수비대 소속으로 활동하는 아프간/파키스탄 난민 부대. 아프간인의 부대는 파테미욘, 파키스탄인 부대가 자이나비욘이다. 아프간 전쟁으로 이란으로 넘어와 있는 난민들을 시아파 자원병으로 시리아에 파병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란에서 차별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던 난민들에게 시리아로 가서 싸우기만 하면 가족 전체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살아갈 집과 정착금을 주는 제도를 만들어 상당한 숫자의 아프간 난민들이 같은 시아파를 돕기 위해 자원했다는 구실로 시리아로 들어가 싸웠으며, 특히 아프간에서 차별대우를 받던 몽골계 하자르인들이 많이 참전했기 때문에 아프간계 파테미욘 여단은 병력이 14000명에 달한다. 그에 반해 파키스탄계 자이나비욘 여단은 1000명 정도로 추정되며 규모가 워낙 차이가 나서 관찰자들에게는 파테미욘에 묻어가는 조직 취급을 받고 있다.
군대를 가본 적 없는 사람들, 그것도 가족이 딸린 중년 남자들이 주로 오다 보니 체력이나 숙련도 모두 별로 좋지 않은 편이고 전투력도 그저 그렇다는 평이 있으나,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용병의 증언에 따르면 오히려 시리아 정부군보다는 잘 싸운다고 한다. 2013년 힘들었던 시리아 정부군의 사정을 반전시켜준 당사자들이며 현재도 정부군의 작전에 보조/예비병력으로 참전하고 있다. 자국군의 활약만 보여주고 싶은 시리아 정부군에 의해 활약이 거의 비춰지지 못하며 태생적인 한계로 멋진 전투력도 보여주지 못하는 안습한 처지이다. 몽골계 하자르인들이 대다수라 한국인과 분간이 안갔고, 파테미욘/자이나비욘이라는 부대명도 2014년 후반에나 정해진 관계로 2013년에는 북한 용병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잦았다.
  • 시아파 민중기동대(Popular Mobilization Units/ People's Mobilization Forces) - 아랍어로 알 하시드 알 샤비. 사담 후세인 시절부터 반정부 투쟁을 지속해온 이라크 남부 시아파 저항조직들의 연합체. 반미투쟁에도 큰 역할을 했던 시아파 민병대 조직이다. 이라크 정부군을 지원하며 ISIS와 맞서 싸우는 가장 든든한 세력으로 역량은 정규군과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정도. 상당한 숫자와 전투력을 가지고 있으며 조직화도 잘 되어 있지만 종파적 동기로 뭉쳐 있기 때문에 ISIS같은 수니파 세력들을 잔인하게 학대 고문 학살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집단처형 영상도 자주 공개하지만 이슈는 되지 않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시아파, 기독교와 같은 소수종파를 보호 공존하는 이념을 내세우고 있으며 같은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리아에 자주 파견대를 보낸다. 주요 임무는 시아파 성지의 수호이지만 다양한 작전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며 함께 싸우기도 했다. IS킬러로 유명한 "이라크 람보" 아부 아즈라엘이 바로 민중기동대 부대 지휘관이다.
  • 헤즈볼라(Hezbollah 혹은 Hizballah[50]히즈불라라고 부른다.]) -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전에서부터 이란과 시리아의 자금/무기 지원을 받아 온 시아파 저항단체이자 레바논 야당으로써 2013년부터 시리아 내전에 정부군 편을 들어 참전하였다. 레바논은 시리아 군대가 내전 이후에도 주둔하고 정재계에 강한 영향을 끼치면서 반 시리아 감정이 강했음에도 헤즈볼라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참전한 것은 다양한 이유가 존재했다. 시리아 정계에 대한 의리, 대부격인 이란의 의중, 그리고 시리아에 극단 수니파 정부가 들어서면 레바논의 소수 시아파 국민들의 입지가 위험해진다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리아 난민들이 레바논 국경 산악지대에 캠프를 짓고 살면서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계속해서 유입되는 것 때문에 시리아 내전을 정부군의 승리로 이끌어 상황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2006년 이스라엘과도 싸워이긴 강군으로써 큰 기대를 받았고 지리멸렬해진 정부군의 보병전력을 보충해주며 레바논 국경 콸라문 산악지대 평정에서 대활약을 했고, 이는 하마-홈스의 반군이 보급이 끊겨 위축되는 전략적 성공을 낳았다. 하지만 여기저기 분산되어 전투하면서 내전의 향방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다. 병력 소모가 극심하고 정계에서는 비판받는 상황 아래 어려움이 가중되었으나 2015년 ISIS의 등장과 함께 위기의식을 느낀 기독교도(!)들도 헤즈볼라에 입대하여 시리아에 파병되었고 정계의 인식도 호전되었으며, 시리아 내전이 정부의 승리에 가까워짐에 따라 2017년 8월 29일에는 국경지대를 완전히 평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내전이 끝나야만 레바논의 안보가 확보되기 때문에 2018년 현재까지도 시리아에서 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 간접적 참전
    • 북한군 - 수십년간의 동맹관계 탓에 바샤르 알 아사드 지지를 선언. 일단 공식적으로 군사고문단을 비롯한 각종 지원 요원들과 더불어 대량의 무기와 탄약도 제공했다. 또한 비공식적이지만 2개 대대가 아사드 군에 편입되어 전장에 투입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간혹 아사드측에 속한 동양계 병사를 죽였다는 IS나 반군측의 발표를 북한군 사살로 오인할 수 있으나 대부분은 이란에서 파병한 아프간 난민 중 몽골계인 하자르인들이다.
    • 러시아군 - 2015년 9월부터 대규모의 항공기를 파병하여 본격 개입하였다. 대외적으로는 군장비 공여 및 고문단 파견, 공습 지원만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북부 라타키아에 특수전 부대를 운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포착되었다. 2015년 이들리브 상실 이후 불리한 입장이던 정부군을 기사회생시킨 장본인으로써, ISIS보다도 자유 시리아군이나 알 누스라 전선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가하여 군수창고나 병력 집결지 등을 집중타격하여 반군의 전투역량을 크게 저하시켰으며 북부 라타키아의 전황을 정부군에 유리하게 바꿔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사드 정권이 평화협상에 지지부진하자 압박을 위해 2016년 항공 부대는 대부분 철수시키고 일부 근접항공지원 역량만을 남겨놓았으나 2016년 4월 칸 투만 전투 패전과 휴전협정 결렬에 의해 2016년 후반부터 항공모함 쿠즈네초프를 파견하는 등 전력을 증강했다. 이뿐만 아니라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고 군수 공장을 복구-가동 시켰으며, 특수부대 SSO를 파견하여 전투를 보조하는 등 전투부터 군수 보급, 훈련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3.2. 시리아 반정부군

파일:attachment/시리아 내전/FSA.png
시리아 국민연합(Syrian National Coalition)
서구권에 알려진 대표적 시리아 반군 조직. 2011년 민주화 사태 당시 탈영하여 터키로 도주한 공군대령 리야드 알 아사드는 터키의 후원을 받아 자유 시리아군이라는 이름의 저항군 조직을 만들었다. 시리아 국내에서 아사드를 반대하여 일어난 수많은 반군 조직들은 성향과 규모가 천차만별이었고 자유 시리아군도 이런 자잘한 파벌 중 하나에 불과했다. 서구권에서는 이런 지리멸렬한 조직들 대신 소통 가능한 단일 창구를 요구했으며 망명한 시리아의 야권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시리아국민의회(Syrian National Council)가 그 창구 역할을 위해 결성되었다. 한편 터키에 의해 SNC의 정식 군대로 인정된 자유 시리아군에 가입하면 무기와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자 수많은 반군 파벌들이 앞다투어 자유시리아군에 가입하였다. 이들은 SNC가 통괄하는 최고군사회의(Supreme Military Council)의 작전 지휘를 받을 것을 의결했다.

하지만 성향과 이권이 각기 다른 파벌들인 만큼 분열은 예정되어 있었다. 크게 나누어 시리아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세속주의자들과 이슬람 보수주의 성향을 가진 원리주의자들이 있었고 지역별로 부족 민병대나 지역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부대도 있었다.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알레포 주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세력이 강했고 남부 다라 지방은 지역적인 유대감에 의해 움직였으며, 하마나 홈스 지역은 세속주의자의 세력이 그나마 있었다. 이들은 서로의 노선 차이와 충돌에 의해 2012년부터 내부 동맹조직을 따로 만들면서 갈라섰고 지역감정이나 편견에 의한 학살을 저지르면서 알라위파나 소수종파, 일부 세속주의자들이 친정부로 돌아서는 계기를 만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세속주의자들의 단결력이나 지휘력이 오합지졸 수준이었던데 비해 이슬람 원리주의는 카타르, 사우디의 선택적인 자금 지원을 받고 국제 테러리즘 세력과 손을 잡아 체계화된 군대가 되면서 세속주의자들은 계속해서 격멸 축소되었고, 이를 통제해야 할 시리아국민의회와 최고군사회의는 자기들끼리 정쟁을 벌이면서 통제력을 잃어버렸다. 2013년부터는 CIA가 최고군사회의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자금 지원을 시도하면서 이 분열상은 결정적인 것이 되어 2013년 11월 이슬람 전선의 창설과 함께 자유 시리아군은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한다.

2017년 현재도 자유시리아군의 마크를 내세우는 반군은 많으나 그 실체를 보면 누르 알 딘 알 젠키 운동처럼 원리주의를 표방하고 포로 참수 등 잔혹행위를 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거나 다라 지방의 남부전선처럼 지역 연합체이고, 세속주의를 표방해도 원리주의 군대와 연계하여 움직이거나 이슬람주의자가 주도하는 동맹에 가입하는 등 실체는 참담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자유시리아군을 표방하는 것은 서구 미디어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고 대외적으로 온건한 시리아 민주주의 세력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

한편 창설자인 리야드 알 아사드는 터키 정보부의 보호를 받으며 도망다니고 있다(...) 초창기부터 자유시리아군의 지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는데 아사드 정권이 자기를 암살한다는 공포에 빠져 패닉 상태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51]
  • 시리아 국민연합
    • 자유 시리아군
      • 시리아 혁명전선
      • 자유시리아군 남부전선
      • 제1해안사단
      • 제2해안사단
      • 13사단
      • 30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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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전선(Islamic Front)
자유시리아군 산하에 있던 살라피즘성향의 이슬람주의 반군 그룹은 일단 자유시리아군을 자처하고는 있었으나 세속주의자들과의 노선 차이 문제 탓에 독자적으로 2012년 9월에는 시리아 이슬람 해방 전선(SILF), 2013년 1월에는 알 타우히드 여단 등의 독자적인 내부 동맹조직을 만들면서 마찰을 빚어 왔다. 결국 세속주의자들과의 성향 차이로 결별하면서 이슬람주의자들이 모여 2013년 11월 23일 새롭게 창설을 발표한 반군 연합체가 바로 이슬람 전선이다. 시리아 이슬람 해방전선, 알 타우히드 여단을 흡수하면서 시리아 국민연합의 노선을 공개적으로 거부했으며 세속주의를 폐기하고 시리아 전체에 샤리아 법을 도입한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 창출을 목표로 선포하면서 등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걸프만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데다 전투력과 결속력도 명불허전이라 평가받는 알 타우히드 여단(لواء التوحيد‎),자이쉬 알 이슬람(جيش الإسلام‎‎), 아흐라르 알 샴(حركة أحرار الشام الإسلامية), 안사르 알 이슬람(كتائب أنصار الشام), 준드 알 아크사(جند الأقصى‎‎)을 비롯한 다양한 수니파 이슬람주의 군조직을 휘하에 두고 있다. 참여한 군벌들은 이들리브, 다마스커스, 알레포 등 다양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으나 주로 알레포 지역에서 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제1주적은 정부군이었으나 실제로는 한정된 자원을 강탈하고 반군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자유 시리아군을 공격하였고 자유시리아군 최고군사회의 의장 샐림 이드리스 참모총장이 이들의 공격을 받고 터키로 도주하기까지 했다.[52] 이후 ISIS의 발흥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서 자유 시리아군과 일단 화해했으나 세계 전체에 시리아 반정부군 모두가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오하는 부류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고히 각인시켰고, 세속주의자들이 극도로 소수이며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반정부군의 인기를 크게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슬람 군벌들끼리 연합한 것은 좋았으나 각 주요 군벌들의 활동지역이 너무 멀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연합작전이 불가능하다시피 하여 2015년부터는 각 지역별로 따로 동맹을 결성함으로써 실질적인 통합체로써의 이슬람 전선은 자연스럽게 와해되었다. 현재는 알레포 평정을 위해 만든 파타 할랍, 이들리브 정복을 위해 만든 자이쉬 알 파타 등 지역별 연합체로써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구성 조직도 자유시리아군, 알 카에다, 이슬람 전선 계열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전선을 따로 지칭하고 있는 것은 시리아 자생 이슬람주의 군벌들이면서 샤리아 통치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이념상의 공통점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백수십개나 되는 군소 이슬람 군벌을 일일이 지칭해도 되지 않는 편리함 탓에 실질적인 조직은 없어졌음에도 여전히 지도에서 이슬람 전선의 마크를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2016년 알레포 함락 이전까지만 해도 이슬람 전선 계통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2016년 12월 알레포 함락과 함께 이슬람 전선 계통의 군소 군벌, 즉 시리아 지역 지하드주의를 표방하는 시리아인 집단은 대부분 소멸되었다. 이후 2017년 1월 남은 반군들 사이의 내전과 세력 재편 과정을 거쳐 이슬람 전선의 이념을 계승하는 곳은 아흐라르 알 샴 정도만 남았다. 이슬람 전선이 해체되었음에도 구분법으로 유효했던 이유가 군소 군벌들을 일일이 지칭하기 힘들어 성향으로 구분하기 위해서였으나 이제는 아흐라르 알 샴만 남았기 때문에 이슬람 전선이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는다.
  • 이슬람 전선
    • 알 타우히드 여단 - 카타르가 집중 지원하던 원리주의 군조직으로 이슬람 전선의 모체가 된 곳이었으며, 시민군이 참패한 지역을 재수복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이슬람 전선 창설과 함께 해체되었으나 알레포 시내에 이름을 계승한 소조직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2016년 12월 알레포 함락과 함께 완전 소멸되었다.
    • 시리아 이슬람 해방 전선 - 2012년 자유시리아군 내부에서 민주주의자들과의 의견 차이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이슬람주의 동맹 조직. 원리주의 계열 군소 군벌들이 모여 형성한 동맹체였으며 이슬람 전선의 창설과 함께 해체되었다.
    • 자이쉬 알 이슬람 - 시리아 정권 밑에서 일하던 성직자의 아들인 자흐란 알로쉬가 창설한 이슬람 대대를 모체로 하는 반군 연합체. 알 타우히드 여단이 카타르 지원이라면 자이쉬 알 이슬람은 창설자 자흐란 알로쉬의 사우디 인맥을 활용한 사우디의 자금 무기 지원을 받았다. 이 덕분에 지원을 받기 위해 휘하에 수많은 군소 조직들이 가입해 있었다. 한때는 수도 다마스쿠스를 강하게 몰아치는 주역이었으나 2014년부터는 동부 고타 지역에 포위된 상태로 버티고 있었다. 자흐란 알로쉬의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에 힘입어 함께 포위된 자유시리아군, 알 누스라와 함께 합동작전실을 운영하였으나 2015년 자흐란 알로쉬가 공습으로 사망한 이후 점령지를 상당수 빼앗겼다. 여전히 동부 고타에서 강한 세력을 유지했으나 2018년 3월부터 이뤄진 정부군의 다마스쿠스 강철 작전을 버티지 못하고 항복, 터키 국경도시인 자라불루스로 떠났다가 2019년에는 터키가 조직한 반정부군인 시리아 국민군에 소속되었다.
    • 하라캇 아흐라르 알 샴 알 이슬라미야 - 샴 이슬람 자유운동이라는 이슬람 보수주의 정치세력을 모체로 발생한 군조직이며 내전 초반부터 터키의 지원을 받아 강성한 원리주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자이쉬 알 이슬람은 수도 다마스쿠스 근처에 있어 사실상 이들리브/알레포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양대 원리주의 세력이 알 누스라와 아흐라르 알 샴이었으며, 아흐라르 알 샴은 이슬람 전선의 대표격으로 알 누스라와 라이벌 구도를 장기간 이루고 있었다. 미국이 지원을 중단하자 터키 밑으로 들어가 터키 괴뢰군인 시리아 국민군의 주요 구성원으로 전향하였다.
  • 안사르 알 이슬람
  • 누르 알 딘 알 젠키 운동
  • 자이쉬 알 무하지린 알 안사르
  • 이슬람 전선 와해 이후의 연합체
    • 파타 할랍(Fateh Halab, 알레포 정복군) - 2013년 시리아 정부군의 반격으로 알레포 서부와 국제공항의 포위망이 붕괴되자 지리멸렬한 작전지휘를 개선하고자 2015년 1월 창설된 알레포 해방작전실을 모체로 하는 알레포지역 반군연합체였다. 정부군을 몰아내고 알레포를 수복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2016년 알레포 결전에서 정부군에 연전연패하기 시작하면서 정복의 군대와 내분이 발생했고 결국 정부군의 공격에 빠르게 붕괴되면서 2016년 12월 활동을 중단하고 정복의 군대 잔당과 연합하여 알레포 군대(자이쉬 할랍)을 창설하였으나 완전 소멸하였다. 공식적으론 2017년 1월 21일 해체.
    • 자이쉬 알 파타(Jaish al Fateh, 정복의 군대) - 알 누스라 전선 주도로 창설된 이들리브/알레포 반군 연합체. 부패투성이로 지역민의 원성을 사던 자유시리아군 시리아혁명전선과 원리주의 조직 하즘 운동을 공격하여 복속시킨 다음 알 누스라 전선의 지휘를 받는 반군 연합체로 재탄생시켰으며 기존의 성향 위주의 동맹체와는 달리 자유시리아군 조직도 참여하였다. 2015년 3월 정부군이 강력하게 방어하던 이들리브 시내를 공격하여 탈환하였고 정부군이 예비병력을 동원하여 이들리브 시 재수복에 나서자 보급로를 차단하며 대공세를 단행하여 정부군 5000여 병력을 참패시키는 이들리브 대승을 거두면서 지리멸렬하던 반군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병력을 잃은 정부군은 각 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하기 시작하였고, 러시아가 참전을 결심한 결정적 원인 제공자였다. 2016년 5월에는 알레포 남부 칸 투만에서 이란 공수특전여단까지 참패시키면서 다시 대승을 거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2016년 7월부터 시리아 정부군의 알레포 탈환 작전에 대항하여 한때 정부군 방어선을 돌파하고 포위를 푸는 기염을 토했으나 결국 참패해 알레포를 넘겨주었고, 2017년 1월 반군끼리의 내전 후 새로운 동맹체 샴 해방기구(타흐리르 알 샴)이 창설되면서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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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누스라 전선 → 자브핫 파타 알 샴 → 타흐리르 알 샴(HTS)
시리아 출신으로 오랜 기간 이라크에서 알 카에다 활동을 해온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أبو محمد الجولاني)에 의해 창설된 알 카에다 산하 조직. 본디 시리아 자생 이슬람주의 조직에서 출발했으나 알 카에다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산하 조직으로 들어가고 바로 국제 지하드 전사들이 합류하면서 2012년 1월 23일 공식적으로 출범한 후 시리아 내전에서 반정부군 최대의 세력이 되었다. 외국계 조직이기 때문에 시리아 자생 조직인 이슬람 전선 계열과는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사상적으로는 같기 때문에 일단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병력은 약 1만 5천명 정도로 추산되나 준드 알 아크사를 비롯한 몇몇 이슬람주의 조직과는 동맹을 맺고 하나의 단체처럼 움직이고 있어서 동원 가능한 병력은 더 많다. 거기에 IS의 행보에 실망한 국제 지하드 전사들이 알 누스라 전선을 대안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병력 충원이 수월하다는 것도 장점. 전세계에서 미국, 러시아를 상대로 지하드 항쟁을 거듭해온 베테랑 전사들이 많아 전투력과 조직력, 지휘체계는 반정부군 중에서도 최고에 해당한다.

그런 이유로 반군 연합체를 결성할 때 항상 중심적인 역할을 맺는다. 2015년 이후 이들리브를 몰아치고 2016년에는 알레포 남부를 몰아치며 정부군을 박살낸 반군연합체 정복의 군대(Jaish al Fateh)의 핵심이며, 정부군에 몇년째 포위된 다마스커스 주 동부 고타 지역을 자이쉬 알 이슬람과 협력하며 계속해서 지켜내고 있다. 2017년 1월부터는 친 알카에다 계열 원리주의 조직을 망라한 대규모 연합체 타흐리르 알 샴(샴 해방기구)를 창설하여 최대규모의 조직이 되었다. 서구식 택티컬 교육을 도입하여 2016년 칸 투만 공세부터는 택티컬 장비를 체계적으로 갖춘 병사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2017년 하마 공세에서도 놀라운 위력을 보였다. 2018년 이들리브 주의 농업 지대와 아부 앗 두후르 군사공항을 상실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2019년 이들리브 분쟁에서 터키가 지원하는 국가해방전선 소속 반군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몰아내면서 이들리브를 완전 장악하기도 했다.

2013년 4월부터 시리아로 기어들어온 ISIS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똑같이 알 카에다 산하 조직이었지만 ISIS가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알 카에다가 원하는 이슬람 국가 건설 문제를 가지고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다. 알 누스라는 시리아 전역에서 불신자를 몰아내고 시리아를 샤리아 국가로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알 카에다와 ISIS는 기존의 국경선이나 체제는 중요하지 않고 당장 점령지에서 이슬람 국가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 이 문제 때문에 알 누스라와 알 카에다의 결별 위기설이 돌았지만 ISIS가 알 누스라를 흡수했다고 선포하는 등 알 카에다의 지시를 넘는 월권을 행하고 알 카에다가 이를 저지하자 상큼하게 자유 시리아군, 이슬람 전선, 알 누스라 전선 전체를 기습공격하며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친 거대 국가로 성장했다. 이 때문에 알 누스라 전선은 ISIS를 카와지리파(이탈자)로 부르며 증오하며, 둘은 철천지 원수 사이다.
  • 알 카에다(2016년 7월 탈퇴)
    • 알 누스라 전선[53]
      • 투르키스탄 이슬람 정당 - 중국 신장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이 주축으로 이뤄진 조직. 국제 알카에다 네트워크를 통해 시리아에 진입했으며 상당한 전투력을 갖춘 조직이다. 알 누스라 전선과 동맹 관계였으며 이들리브, 알레포 등에서 정부군을 축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2019년 현재는 이들리브 주 지슈르 앗 슈구르 시 근방을 영역으로 삼고 있으며, 시리아 내전이 반군의 패배로 끝나가면서 조직원들이 꾸준히 신장 위구르로 복귀하면서 중국 정부는 엄청난 우려를 보내고 있다.
      • 카프카즈 에미레이트 - 체첸 반군 중 일부가 와하비즘 원리주의로 전향하고 국제 알카에다 네트워크에 소속되면서 시리아로 유입되었다. 대체로 전투력이 높은 원리주의 반군들 중에서도 게임체인져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특수부대급 전투력을 갖추고 있으며, 최신형 택티컬 장비들을 진품으로 도배하고 여러 전역에서 기동타격대로 운영된다. 전투능력뿐만 아니라 장교, 고문단, 지휘관으로써도 놀라운 실력을 보일 정도. 처음에는 알 카에다 소속으로 알 누스라를 지원했으나, 알카에다 계열이 ISIS와 알 누스라로 분열되면서 각자 흩어져서 각 조직에 가입하였다. 아부 오마르 알 시샤니는 젋은 나이에 ISIS 군 총사령관이 되어 탁월한 작전 지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 탄잠 후라스 알 딘 - 종교의 수호자 기구. 타흐리르 알 샴이 사령관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의 결정에 반발을 계속하던 알 카에다 계열 인사를 체포하면서 친 줄라니, 친 알카에다로 분열이 생기자 내부 권력투쟁에 진저리가 난다며 알 카에다 전사들이 탈퇴하며 만든 조직이다. 처음에는 여러 조직이 지휘관들을 따라 개별적으로 탈퇴하여 준드 알 말라힘(장대한 용사)와 같은 소조직들을 만들었고 알 카에다의 지부 인정을 받았으나, 다시 탄잠 후라스 알 딘으로 통합하여 공식 시리아 지부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타흐리르 알 샴과는 데먼데먼해지긴 했으나 같은 알 카에다 계열이기 때문에 비교적 가까운 편이고 서로를 돕기도 한다. 2019이들리브 분쟁에서는 중립을 유지하였다.
      • 시리아 투르크멘 여단
      • 준드 알 아크사 - 분탕 조직. 알 누스라와는 별개로 국제 알카에다 전사들이 주축이 된 조직이었으며 장기간 알 누스라의 동맹군으로 활약하였고 시리아 북서부에서 정부군을 축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라크 알 카에다가 ISIS를 자처하며 시리아 내부로 진입하자 친 IS, 반IS로 나뉘어 분열되었고, 여러 차례의 내부 분열 끝에 친 IS세력은 라카 주로 떠나 IS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잔존한 그룹 내부에도 친 IS간첩들이 있어서 이들이 광범위한 암살 테러 공작을 벌였고 참지 못한 타 이슬람 군벌이 이들을 공격했고, 알 누스라가 이들을 보호했으나 알 누스라에도 통수를 치면서 결국 해체당했다. 그럼에도 잔존 세력이 이들리브 IS를 결성하여 테러 공작을 벌이고 다니며, 2018년 내내 알 누스라를 주축으로 하는 반군연합체 타흐리르 알 샴은 이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 이슬람 전선 - 상단 참조. 알 카에다 계열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지만 반 동맹관계로 여러 작전을 함께 진행하였다.

3.3.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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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북부 수니파 지역에서 활동하던 알 카에다 그룹이었으며 원래 명칭은 이라크 이슬람국가였다. 시리아 내전에서의 알 카에다 활동은 시리아 지부 "알 누스라 전선" 에게 일임하고 있었으나 2013년부터 점진적으로 시리아의 이슬람 국가 건설을 위해 싸우는 형제들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군과 반군 둘다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던 시리아 동부 사막지대를 중심으로 점점 잠식해 나갔으며, 2013년 중반에는 라카, 알레포, 데이르알조르와 같은 지역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이라크와 시리아 양쪽에서의 이슬람 국가라는 뜻으로 이라크 샴 이슬람국가,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반군 세력 중에서는 알 누스라 전선과 더불어 강한 세력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알 카에다가 기존의 국경선에 구애받지 않는 실험적인 이슬람국가 건설을 위해 ISIS의 편을 들자[54] 시리아에서도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드러내며 알 누스라 전선을 합병했다고 주장했다가, 알 누스라 전선이 반발하고 합병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독단적으로 행동한 ISIS에 대해 알 카에다 본부가 비난하자 2014년 갑자기 알 누스라, 자유 시리아군, 이슬람 전선을 동시에 습격하며 간부들을 빼가고 점령지를 모조리 탈환하여 순식간에 시리아 최대의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정부군이 통제하던 라카 시 북부 93여단 기지와 타브카 공군기지, 가스 유전지대를 모조리 몰아치고 이라크에서는 누르 알 말리키 총리의 차별정책으로 불만이 팽배했던 수니파 거주지역을 순식간에 장악하며 국가를 선포, 국제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라크 바트당 잔당 세력, 특히 공화국 수비대 잔당을 흡수하여 가장 체계적이고 뛰어난 전투력을 자랑했고 모술 중앙은행의 막대한 금괴를 이용해 금본위제의 부활을 천명할 정도로 세력이 강했으나 이라크-시리아 양측의 반군-정부군과 원수지간이 되는 바람에 동맹 세력이 없고 반인륜적인 처형 비디오를 다수 공개하여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국제 사회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공습과 암살작전 탓에 구 공화국수비대 간부들은 대부분 사살당했고 2017년에 걸쳐 주요 거점인 모술과 탈 아파르를 상실, 수도 라카, 제2수도 알 마야딘, 제3수도 아부 카말까지 모조리 함락당해 잔당들이 시리아 동부 사막 지대에 은거하고 있는 등 2018년 현재는 사실상 몰락해버린 상황이다.

국제 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던 시리아 내전에 대한 관심을 단번에 환기시킨 장본인으로써 내전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인 아사드 정부의 이미지를 국제 테러리즘에 맞서는 세속주의 관용 정부로 순식간에 뒤바꿔 놓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참고.

3.4. 북부 시리아 민주연방체제 - 로자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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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시리아 민주 연방 체제(النظام الاتحادي الديمقراطي لشمال سوريا‎, Sîstema Federaliya Demokratîka Bakûrê Sûriy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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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쿠르드 무장조직 YPG(Yekîneyên Parastina Ge)[55]의 기
흔히 로자바(Rojava)라고 불리며 정식 명칭은 북부 시리아 민주연방체제. 시리아 북부에 드문드문 분포했던 쿠르드족은 시리아 정부에게 시민권도 받지 못하고 아랍인들에게 차별을 받아 왔으며, 터키의 PKK와 연계되어 왔다. 2011년 시리아 민주화 운동에서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여 자체적으로 무장하고 자경단을 구성하였다. 반정부 항쟁이라는 점에서 자유 시리아군과 뜻을 함께 한다고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아랍인들의 쿠르드 차별 등이 내재되어 있었고 아사드 대통령이 2012년 쿠르드족에게 광범위한 자치권을 약속하자 반정부 투쟁을 중지, 적대적 중립을 유지하고 2013년 로자바 자치 정부 수립을 선언하였다. 이런 이유로 반군들 중에서는 쿠르드족을 배신자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로자바란 쿠르드어로 '서쪽'을 뜻한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이 차후 성립될 대 쿠르디스탄의 서쪽 영역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기 때문. (터키 쿠르디스탄은 북쪽, 이라크 쿠르디스탄은 남쪽, 이란 쿠르디스탄은 동쪽으로 칭한다.) 그러나 IS와의 전쟁을 통해 시리아 북부 일대로 세력을 확장, 쿠르드족 지역을 넘어서 아랍인 지역까지 차지하여 더이상 쿠르드족 만의 자치 정부라고 부르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2016년 3월 로자바 자치 정부는 자체 헌법을 발표, '북 시리아 연방 - 로자바(فدرالية شمال سوريا - روجآڤا, Federasyona Bakurê Sûriyê - Rojava'로 이름을 바꾸었고 동년 12월 새 헌법을 채택하면서 아예 로자바란 단어를 떼버리고 북부 시리아 민주연방체제(النظام الاتحادي الديمقراطي لشمال سوريا‎, Sîstema Federaliya Demokratîka Bakûrê Sûriyê)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연합군의 반 ISIS 연합 파트너로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존재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 내전의 원인 중 하나이자 독재 정권의 수장이며 반서방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파트너가 될 수 없고, 자유 시리아군이나 이슬람 전선은 성향조차 불분명하거나 이슬람 원리주의를 기치로 삼고 있어 이들을 지원하면 반미 이슬람주의 국가가 탄생하기 때문.[56] 결정적으로 2014년 말 로자바의 YPG와 IS 간의 코바니 공방전을 통해 서방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며 쿠르드족이 IS에 대항하는 정의의 수호자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서 IS를 와해시키고자 하는 연합국의 주목을 받게되었다.

이후 로자바와 YPG는 서방 연합국의 물자 및 공습 지원을 받으면서 IS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시리아 북부 전역으로 세력을 크게 확장,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세속주의 반군 세력들을 흡수하게 된다. YPG 및 그와 연합한 반군 세력은 IS와의 전쟁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2015년 10월 시리아 민주군(Syrian Democratic Forces/이하 SDF)을 형성하게 된다. 다수의 무장 단체의 연합 세력이던 SDF는 2016년 12월 로자바의 정식 군사 조직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미묘한 입장에 있다. 미국의 동맹국인 터키는 YPG의 세력 확장을 달갑게 보지 않으며 이들이 터키 동부의 쿠르드 반군인 PKK와 연계되어 동부 내전상황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라고 보기 때문이며, 처음에는 ISIS를 지원하여 쿠르드족과의 대리전에 활용하다가 서방-러시아의 비난을 받고 원래 지원하던 알레포 주 북부의 투르크멘족/아랍인 반정부군을 이용해 견제하였다. 하지만 쿠르드족이 ISIS가 통제하던 만비즈 시가지를 해방시키고 크게 세력을 떨쳐 시리아 북부를 통제할 지경에 이르자 결국 2016년 9월 터키 정규군을 이용해 시리아 북부를 직접 침공하였다. 이 "유프라테스의 방패" 작전을 통해 시리아 북부에 완충지대를 형성함으로써 쿠르드나 ISIS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목적.

쿠르드를 지원하던 미국 또한 터키가 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쿠르드족에게 유프라테스강 동부로 철수할 것을 요구했으며 SDF는 불만을 쏟아냈지만 결국 SDF 소속 아랍인 부대만 남기고 철수하였다. 러시아도 본래 쿠르드족을 지원하는 입장이었으나 터키 쿠테타 이후 에르도안과 급격히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쿠르드 지지는 계속하되 군사적 확장에만큼은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다. 시리아 정부에게 있어서도 YPG의 세력 확장은 달갑지 않은데 시리아 북부를 쿠르드가 장악하면 시리아 북부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며 서방 연합국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쿠르드-아랍 연방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배신당할 위험을 떠안고 있는 처지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사드 정부는 반군과 IS를 같이 상대하는것 때문에 쿠르드인에게 자치권을 주었지 그들만 제압하면 다시 빼앗고 쿠르드인도 같이 제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보니 쿠르드인들도 이를 모를턱이 없어 아사드 정부를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1월 터키군이 친터키계 자유시리아 반군을 앞세워 아프린지역을 공격하자 방어가 버거웠던 쿠르드가 정식으로 시리아 정부군에게 파견을 요청했다. 그리고 시리아 정부 입장에서도 터키의 지상군 개입을 통한 영향력을 반가워 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리아 정부와 쿠르드 관계는 지속적은 작은 충돌이 생겨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미묘하게 맞아떨이지고 있다.

독재도 이슬람 원리주의도 아닌 민주주의, 세속주의를 지향하며 악의 축인 IS와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시리아 내전에 의용군으로 나서려는 서방 지원병들이 선택하는 진영이다.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나 5년에 걸친 내전 동안 잔혹해진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쿠르드족 민병대가 점령한 마을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쿠르드족을 이주시킨다던가[57] 자유 시리아군의 시체를 싣고 다니며 모욕하거나 사절단으로 파견된 여성 대원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자유 시리아군에 의해 사살되고 능욕당하는 등 상호 잔혹행위는 별 수 없이 존재한다. 최근엔 터키군의 지원을 받는 지하디스트 반군와 계속 충돌하자 시리아 정부와 군사-경제적 협력까지 개시함으로써 더욱더 내전의 상황이 복잡하게 되었다. 라카 공략을 완료하는 대로 지하디스트 반군 세력의 근거지인 이들리브로 목표를 돌리겠다고 선언하는 등 사실상 지하디스트들을 적으로 돌린 상태.
  • 북부 시리아 민주 연방 체제 - 로자바
    • 시리아민주군(SDF) - 2016년 로자바 자체 헌법을 통해 로자바 정부의 정식 군사조직으로 편입되었다.
      • 인민수비대(YPG)
      • 여성수비대(YPJ)
      • 알 바가라 부족 민병대
      • 알 샤이타트 부족 민병대
      • 하라비야 부족 민병대
      • 주바이드 부족 민병대
      • 알 사나디드 군 - 시리아 동부의 아랍계 유목민인 샤메르(Shammer) 부족의 민병대.
      • 혁명군(Army of Revolutionaries) - 지하디스트 반군 및 IS 사이에서 팽당한 반군 세력 및 세속주의 반군 세력의 연합군.
      • 알 누크바트 연대
      • 북부 민주 연대
      • 라카 혁명가 전선
      • 라카의 매 여단
      • 라카 순교자 여단
      • 우마나 알 라카 연대
      • 쇼헤다 하맘 튀르크 연대
      • 유프라테스 해방 연대
      • 만비즈 혁명가 여단
      • 자유 장교 연합
      • 하룬 알 라시드 연대
      • 만비즈의 매 연대
      • 타브카 군 연대
      • 라카 군 연대
      • 오와이스-알 쿠라니 연대 잔당 - SDF 소속 무장 조직 중 특이하게도 이슬람주의 성향이다.
      • 유프라테스 자라불루스 연대
      • 알 밥 교외 순교자 여단
      • 알 밥 혁명 전선
      • 카바신 순교자 연대
      • 키바 순교자 여단
      • 자유 아리마 여단
      • 알 라이 사일로 순교자 연대
      • 샤바 연대
      • 텔 아비아드 혁명가 연대
      • 시쿠르 엘 바디예 연대
      • 자유 자라불루스 여단
      • 알 밥 군사 평의회 여성 여단
      • SDF 소속 군사 평의회(만비즈/알 밥/자라불루스/데이르에조르)
      • 이외 기타 군소 무장 조직들
    • 아사이쉬(Asayish) - 로자바 정부의 자체 경찰 조직이다.
  • 지원 세력
    • 수토로(Sutoro) - 로자바 지역의 아시리아 동방교회 계열 민병대로 쿠르드족과 손잡고 고향을 지키고 있다. 쿠르드족과 손잡는다는 상부의 방침에 반발해 친정부 성향의 카미쉴리 지역의 대원들이 탈퇴해서 만들어진 게 위에 언급된 또 다른 수토로(Sootoro). 현지어로는 이름이 같지만 로마자 스펠링이 다르다.
    • 쿠르디스탄노동자당(PKK)
    • 국제자유여단 - 과거 스페인 내전의 국제여단을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극좌 공산주의 무장단체.
    • 이라크 쿠르디스탄
    • 러시아 - YPG와 연계된 PKK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한 탓에[58] 이전부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터키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 사건 이후 터키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YPG에 대한 물자 및 공습 지원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터키와의 관계가 급히 개선되면서 지원은 예전같지 않으나, 쿠르드족이 네덜란드에서 개최한 터키 동부 내전에서의 터키군경 전쟁범죄 전시회에 대해 지지 발언을 하는 등 정치적 지지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다 터키군이 만비지의 쿠르드군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로자바는 만비지와 아프린 칸톤에 러시아군을 끌어들이면서 실질적 동맹이 되어버렸다.
    • CJTF-OIR

3.5. 주요 외부개입 세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60px-Seal_of_the_Turkish_Armed_Forces.png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군
2016년 10월 쿠르드족 YPG로 주로 이루어진 시리아민주군이 유프라테스강의 도강에 성공함에 따라 터키 정규군이 직접 시리아 북부 국경지대의 FSA를 지원하고 나섰다. 터키군-FSA간의 동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군 특수전부대가 SDF와의 충돌 방지와 터키군의 작전 지원을 위해 참가하였으며 미국은 HIMARS 등을 제공하였다.

터키군이 지속적으로 쿠르드인들의 무장조직인 PKK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에 미국 측에서도 중재할 병력을 파견하는 등 어떻게든 충돌을 막고 있지만 시리아 민주군(SDF)가 터키군의 진공 경로를 미리 점령하여 터키군이 우회하도록 만드는가 하면 터키 측에서도 YPG 장악구역 주변을 정규군으로 봉쇄한 상태에서 터키의 지원을 받은 FSA가 YPG를 공격하는 등, 절대 쿠르드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현재 에르도안은 지속적으로 락까 공략에 시리아 쿠르드족을 배제하고 터키군과 그들의 지원을 받는 FSA들이 공격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고 미국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터키군은 다에쉬 이외의 쿠르드나 아사드 정부군을 공격하지 않고 있으나 민병대들이 터키 땅을 이용해 우회타격을 벌이는 등 대놓고 삼대 세력을 전부 적대하고 있다. 알 밥 시가지가 점령된 이후 타이거 혼성군에 의해 터키군의 기동로가 모조리 차단된 현재 시리아 정부 및 로자바와의 3자 긴장상태가 가장 큰 변수이다. 결국 2017년 3월, 기동로를 뚫기 위해 로자바 정부가 점유하고 있던 만비즈에 공세를 개시했으며, 로자바측은 터키군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만비즈 일대를 시리아 정부와 러시아군에게 넘기는 것에 합의했다.
이들리브 작전
2017년 10월 7일 터키는 시리아 북부 주도권 장악을 위해 현재 반군들이 점령중인 이들리브 를 터키 휘하의 자유시리아군(FSA)과 같이 공격했다. 이들리브 지방은 유일하게 반군이 제대로 지배중인 상황이며 특히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가 강력한 지배를 펼치고 있다. 그리고 터키의 이들리브 군사작전은 이들리브 안보를 보장하고 HTS를 몰아내는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들은 이들리브 북부의 일부 지역과 알레포 서부 일부 지역을 점령에 성공했다.
올리브가지 작전
2018년 1월 21일 터키는 시리아 북서부 아프린[59]을 공습, 쿠르드 민병대를 겨냥한 군사작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는 계속해서 쿠르드의 시리아내 세력 확장을 경계하던 터키가 결국 실행으로 옮긴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프린 군사작전이 지상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한편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에 대한 군사 공격실행에 국제사회는 터키의 공격을 비난했으나 이에 에르도안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시하며 전쟁을 지속했고 터키군과 터키의 지원을 받는 자유시리아군(FSA)의 협공에 불리해진 아프린의 쿠르드족은 쿠르드족에게 우호적이었던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카미쉴리, 알하카사, 코바니 등 시리아 북동부 지역을 통제하는 시리아 쿠르드족들에게 지원군 병력 밑 무기 제공과 같은 군사 지원을 요청하여 마침내 이를 성사시켰으나 끝내 전투에서 열세를 극복하지 못 했고 결국 동년 3월에 아프린 시가 터키군과 터키 지원의 자유시리아군에게 함락되면서 아프린을 상실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7px-Badge_of_the_Israel_Defense_Forces.svg.png
이스라엘 방위군
이 내전에서 다른 반군들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력이며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시리아군과 헤즈볼라를 공격하고 있는 세력. 이미 이전부터 중동전쟁과 골란고원 문제로 인해 UN에 의해 중립지대가 설정된 상태이나, 이미 십수차례의 국경충돌과 보복포격, 헤즈볼라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영내에 폭격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이 질적으로 시리아보다 훨씬 우위에 서있고 레바논 영공에서 기습적으로 수도 다마스커스나 국경지대에 전파방해공격과 폭격을 가하고 떠나버리기 때문에 시리아군은 이런 공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

이스라엘의 폭격은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으며 2017년 1월에는 다마스커스의 Mazzeh 공항을[61], 2017년 2월에는 국경지대의 버려진 UN 캠프를 장악하여 도발을 일삼던 다에쉬를, 3월에는 팔미라 탈환에 투입된 헤즈볼라의 사령관을 폭격으로 사살하고 다마스커스 조바에서 반군과 정부군의 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수도를 폭격하고 있다. 시리아 영내에는 이스라엘군의 UAV가 대놓고 활동을 하고 있어 추락한 이스라엘 무인기를 가지고 비난을 하는 경우도 일상. 이 상황에 대해 시리아가 대공미사일 발사로 응수하고 러시아가 이스라엘의 자제를 요구하자 이스라엘은 시리아 방공망 파괴작전에 들어갈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등 시리아내 헤즈볼라 공격을 멈출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8년 2월, 이란제 무인기가 이스라엘 국경을 월경하면서 이스라엘은 드론을 격추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시리아 영내의 도발원점 폭격에 들어갔는데 이 와중 시리아군의 방공망이 이스라엘 공군의 F-16 한대를 격추하자 이스라엘측은 이에 보복으로 알려진 시리아 방공기지 16곳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2018년 7월, 시리아 내전의 주요 전장이 골란 고원 국경지대로 옮겨감에 따라 이스라엘군의 경계도 역시 높아졌는데, 시리아군의 오폭으로 포탄이 골란 고원에 낙하하는가 하면, 7월 24일 경에는 시리아 공군기가 반군 거점을 공격하다가 중립지대를 침범하여 이스라엘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공격으로 격추되었다.

4. 무력 개입하지 못했던 이유

2011년 프랑스의 주도로 미국, 영국, UAE등의 서방 국가들이 군사 개입을 시도하여 정권을 축출한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에 대한 무력 개입은 복잡하다.

4.1. 국제 정치적 역학관계

카다피 정권 시기 국제적으로 왕따 신세에 다름아니던 리비아와는 달리 시리아는 강대국인 러시아, 지역강국인 이란의 동맹국이자 지지국이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부터 라타키아 항구, 흐메이밈 공군기지를 비롯한 군사기지를 임대하여 주둔했으며 대량의 장비를 시리아에 판매했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연방으로 전환한 현재에도 중동에 현존하는 유일한 러시아의 동맹국이자 군항을 제공하여 지중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유지시켜주는 아랍국가가 바로 시리아인 것이다.

이란은 이란-이라크 전쟁 때부터 시리아와 동맹 관계를 맺어왔으며 정권 수뇌부의 종파인 알라위파가 시아파에 속하는 관계로 유대감을 지니고 있다.[62] 시리아는 아랍연맹 내에서 이란의 입장을 아랍국가들에게 전달하는 중개자 역할을 해 왔다. 하페즈 알 아사드 시대 지리멸렬한 사회주의 경제의 폐혜를 이란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해결해왔음은 물론 레바논의 시아파들에게도 이란의 물자 지원을 수행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어 이란의 전략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리아라는 국가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했다.

중국은 러시아나 이란처럼 시리아에 대한 정치적 이해관계는 거의 없었고, 이 때문에 이란, 러시아와 달리 시리아 내전에 군사파병을 하지는 않았으나 내전 초기에 러시아와 같이 아사드의 편을 들며 오바마 정부 당시 미국 주도하의 시리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반대했고, 반군, IS와 내전을 벌이던 시리아 아사드 정부군에게 무기류들을 지원하였다. 게다가 중국 또한 티베트나 위구르 등 자국내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문제도 안고 있는데다, 실제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국시로 삼아 티베트와 위구르, 대만 등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강경하게 억제하며 영토의 통합을 강조하는 강대국이고, 게다가 양국 모두 똑같은 독재 체제의 국가였기에[63] 내전 발발 초기에 아사드 정부군과 반군, IS, 쿠르드족 등 여러 세력들로 갈기갈기 찢겨져가는 시리아의 실태를 사실상 강건너 불구경 하는 일마냥 치부할 수 없었던지라 IS, 반군들과 싸우며 분열된 자국 영토의 통일을 위해 애 쓰는것처럼 보이는 아사드를 지지했다. 게다가 내전이 2015년 이후 러시아군의 개입으로 아사드 정부군의 우위로 반전되자 중국은 시리아 내전에 대한 외교적인 발언이나 성명조차 내지 않으며 침묵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국의 전략적 영향력 확대 저지라는 측면에서 러시아, 이란과 공조하는 중국, 그리고 이라크 전쟁과 아랍의 봄의 실패로 인한 정치적 혼선들을 수습하지 못하다가 그 틈을 노려 시리아-이라크 역내에서 세력을 확장한 ISIL이 시리아 북동부 지역들을 비롯해 자국 영토의 절반을 장악당한 적이 있었던 이라크 역시 시리아 내전 와중에 자신과 똑같이 IS와 대립하는 시리아 아사드 정부군의 편을 들면서[64] UN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쿠웨이트, 요르단, 바레인, 모로코 등 친미/친서방 성향의 아랍 왕국들과 미국, 영국, 프랑스를 위시한 서방 진영 국가들의 시리아 공습 밑 아사드 정권에 대한 제재 시도를 속속 저지해냈다.[65] 이들은 2016년 현재 군병력을 파병하고 거액의 경제 지원을 통해 시리아 정부가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동맹국 역할을 철저하게 해내고 있다.

한편 시리아의 정권교체를 내세우던 미국, 프랑스, 카타르, 사우디, 터키의 입장도 제각각이다. 민주화 운동 때부터 미국, 프랑스, 카타르, 터키, 사우디는 알 자지라와 같은 언론을 이용하여 직원들의 항의 사직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과장해서 보도했으며 무력 진압과 시위 과격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무슬림형제단 집권 시나리오를 세우고 아사드 정권에 다양한 방향으로 압박을 가해왔다. 무슬림 형제단 집권을 통해 사우디와 카타르는 시아파 실각과 수니파 집권을 통해 이란의 영향력을 제거하고자 하였으며 터키는 시리아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자 했던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이해 관계가 대체적으로 일치하였으나 정작 자신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거액의 자금을 쓰면서까지 시리아 본토를 침공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프랑스 또한 처음 구상과는 달리 리비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리비아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항구적인 내전상태에 빠진 것을 우려하여 실익 없는 무력 개입을 피했다. 여기에는 러시아라는 강대국이 이들 국가의 개입을 외교적으로 저지하고 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미국은 일반적인 시각과는 반대로 초기 시리아 정권교체 시나리오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리를 두었으나, 2013년 정부군이 점차 반격을 개시하고 시리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실체가 드러나며, 카타르 터키 사우디가 정권교체 시나리오에 회의를 느끼고 발을 빼려고 하자 그제서야 점진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2013년 다마스쿠스 동부 두마 시에 대한 아사드 정권의 독가스 공격을 구실로 삼아 개입하려고 하였으나 아사드 정권이 사린가스를 국제사회 감시하에 전량 배출 폐기하고 러시아의 견제로 전면 개입할 구실을 잃었다. 여기에 이라크 아프간에서의 막대한 전비 지출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점도 있어 나름 철저한 심사를 통해 민주주의 반군을 엄선하여 TOW 대전차미사일을 지원하거나 종파문제에서 가장 깨끗한 쿠르드족을 파트너로 만들어 지원하는 식으로 간접적인 개입을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물러나고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는 반군 세력들에 대한 지원을 중지했다.

그 외에 이스라엘도 시리아의 주요 군사시설을 겨냥하여 간헐적으로 공습을 실시하고 있다. 시리아군이 보유한 무기(특히 탄도미사일, 화학무기)들이 헤즈볼라 등의 반(反)이스라엘 성향 무장단체에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명분. 여기에 러시아에서 제공받은 초음속 대함미사일 야혼트의 소재지로 추정되는 해군 무기창도 공격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시 시리아 내전에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미국과의 막후 교섭, 그리고 개입할 경우 일어날 심각한 정치적 파장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랍권 국가 민중의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을 고려했을 때, 자칫하면 제5차 중동전쟁으로 번져 이스라엘 대 전 아랍국가 구도가 될 가능성도 0%는 아니기 때문.

4.2. 아사드의 패배가 만들어 낼 세속주의, 소수종파의 패망

민주화 운동 때만 해도 시리아 문제는 순수하게 민주주의 세력 vs 독재 정권의 구도로 선전되었다. 하지만 갈등이 격화되어 내전으로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실체가 드러났으며 그 중 하나가 종교 극단주의, 종파주의의 존재였다. 특히 이들리브 주와 알레포 주를 비롯한 시리아 북부는 지역적으로 다마스쿠스와 대립해 왔던데다가 바트당 세속주의 정부를 반대하는 의미에서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했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지하는 정서가 매우 강했다.

처음에는 이들 이슬람주의자들도 자유 시리아군의 일파로 합류하여 소수종파에 대한 보호를 천명했고, 드루즈파와 기독교는 물론 정권 수뇌부의 종파인 알라위파에서도 반정부 저항군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이 알라위파 지역인 라타키아 등지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친정부 인사나 "이단"을 처형하는 비디오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주류 시아파나 알라위파, 드루즈파, 기독교인들이 아사드 정권 지지로 돌아섰다.

여기에 자유 시리아군 내부에서도 노선 갈등이 일어났다. 세속주의자들이 종교원리주의자들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종교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자신들을 조롱하는 것에 분노하여 2012년에 이미 자유 시리아군 내부에서 파벌조직 "시리아 이슬람 해방 전선"(SILF)를 창설하였으며, 이들은 카타르나 사우디의 특별히 선별된 자금 지원을 받았다. 결국 이들은 2013년 이슬람 전선을 창설하면서 자유 시리아군을 공격하고 반정부 세속주의자들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이때 결국 반정부를 포기하고 친정부 민병대로 소속을 바꾼 자유시리아군 그룹도 존재했다.

더욱이 알 카에다의 지휘를 받는 알 누스라 전선도 존재했으며 가장 큰 문제는 반정부 세속주의로 나름 큰 세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군소 군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단합력과 자금력이 뛰어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동맹을 맺고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반군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히잡과 부르카를 뒤집어쓰고 남성은 수염을 기르는데다가, 이들리브 지역 등에서는 "민주주의- 서구의 기만" 같은 반 민주주의 팻말을 세워두는 등 이슬람 극단주의가 만연하고 있어 아사드 정권이 패배하더라도 세속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들어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지경이다.

또 소수종파가 아니더라도 사상적으로 아랍민족주의, 세속주의는 종교원리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에 집권당인 바트당은 물론 야당인 국가사회주의 계열 정당 시리아 사회국가당(SSNP),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시리아 저항군 등도 의용군을 창설하여 아사드 정권과 함께 반군 상대로 전투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만일 서방 국가가 작정을 하고 개입하면 무력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와 이란을 시리아에서 몰아내고 아사드 정권을 퇴출시킬수 있지만, 이렇게 되면 이슬람 극단주의가 지배하며 세속주의와 소수종파가 학살당하게 되는 미래만이 존재하고 서방세계는 자신들의 돈과 물자를 써서 반미 반서방 극단주의 정권을 탄생시킨다는 최악의 결과만이 남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이점을 두고 시리아 남부 유목민으로 구성된 NSA(New Syrian Army)나 세속주의 반군으로 창설한 30사단(Division 30)등을 창설했지만 NSA는 IS와의 첫 전투에서 무기와 물자를 버리고 도주하였고 30사단은 시리아로 진입하자마자 알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에 무기와 물자를 모두 넘기고 해산해버리는 등 진퇴양난의 처지를 보여주었다. 이에 대안으로 쿠르드족이 주축을 이룬 시리아 민주군(Syrian Democratic Force, SDF)를 지원하며 이들은 민족주의, 사회주의, 세속주의, 양성평등 성향이 가장 강하고 전투력과 의지가 뛰어나 대 IS전투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터키 내 PKK와의 연계, 아랍민족주의와의 정면 충돌 문제로 대놓고 키워줄수만은 없다. 결국 세속주의 소수종파 보호를 천명하며 그 자신도 소수종파인 아사드의 정치체제가 아니고서는 전후 대혼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미 CIA에서는 2013년 12월 12일, 미국 전 CIA 국장이 시리아 내전의 '불쾌하지만 최선의 해결책'이 아사드 대통령의 재집권이라고 제시했다.

시리아뿐만 아니라 이라크이집트, 알제리 등에서도 군부 독재 정권은 기독교도 및 소수 종파를 박멸하려는 국민 대다수의 감정에 거스르면서까지 소수 종교 및 종파 보호에 나선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가 강해지고 있다보니 정부의 노력에도 소수 종교와 종파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극단주의자들에게 탄압받기 일쑤다. 공권력도 무능하고 부패하기 그지없어 극단주의자들을 제대로 단속할 생각을 안하고 처벌도 안하는게 비일비재하다. 이집트에서는 기독교 여성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집단폭행에 옷 벗겨 끌고 다녔는데도 검찰은 불기소한 사례가 있다.#

4.3. 현시창 - 온건 반군은 없다

아 글쎄, 그러니까 세속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비근본주의·비종파주의 성향의 '온건' 반군을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하나만 뽑아서 말해보라니까요!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 제임스 '짐' 자트라스 (전직 외교관), 토론 중에
알레포에서 반군이 은닉한 물자를 찾은 시리아군.

2014년 6월 19일,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012년 정부군 철수 이후 시리아 북부에서 실질적 자치를 하고 있는 쿠르드 자치정부의 인권침해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야권 인사를 임의로 체포, 감금하거나 지역 내 납치 및 살인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는 것. 또 HRW는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민주동맹당(PYD)의 군사 조직 인민수비대(YPG)도 소년병을 활용하고 있음이 밝혀져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밝혔다. # 23일, HRW는 IS을 포함한 시리아 반군 조직들이 '공짜 교육'을 미끼로 청소년들을 모집해 소년병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심지어 자살폭탄테러를 지시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숨진 소년병 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반군 측 모니터 그룹인 '시리아 위반기록센터'(VDC)에 따르면 2011년 9월부터 지금까지 사망한 민간인이 아닌 청소년 수는 194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2014년 7월 8일, 미국 정부관리는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외국 출신 용병이 7,000명에 이른다며, 이들 중 서방 국가 출신자들이 향후 고국으로 복귀해 잠복 바이러스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유럽 각국과의 연대 강화를 촉구했다. #

2014년 7월 9일, 영국 BBC는 1980년대 영국이 군수기업 등을 통해 독가스 원료와 제조장비를 시리아에 대량으로 수출했으며 이때 제조된 화학무기 일부가 시리아 내전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정부도 이미 자국의 화학무기 폐기를 진행하며 원료를 전적으로 영국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혀 영국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고 있다. # 역시 신사의 나라 영국

같은 날, 프랑스 정부는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교전을 경험하고 돌아온 프랑스 국적 무슬림 청년들이 자국 내에서 테러 활동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위험지역 여행가능성이 있는 이들에게 6개월 동안 해외여행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마련했다. #

한편, 미국 주도로 진행 중인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공습에 대해 시리아 반군들과 그 재정적 후원자들 사이에서 반대와 불신의 분위기가 확산되어 연합군의 공습 작전이 중동권에서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IS가 경쟁 관계에 있던 반군들과 화해하는 움직임이 감지돼 미국이 주장하는 ‘온건한 반군’은 대체 어떤 반군을 말하는 것인지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공습에 반대하는 이들은 공습이 시리아 정부군이 아닌 반군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는 이슬람 자체를 향한 공격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습 작전은 미국 지원을 받는 단체들을 포함한 다양한 분파의 반군들 사이에서 IS, 알누스라 전선과 시리아 내 알 카에다 연계조직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켜 반군들 사이의 화해‧협력이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결국 현실화 되었다. 2014년 말에 이르러서는 시리아 정부군과 IS가 암묵적인 동맹을 맺고 경쟁 관계에 있는 적대세력들을 먼저 박살내는 상황이 되어 더 최악의 상황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 관리들이 난데없이 '호라손 그룹'도 공습했다고 언급해 급속도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호라손 그룹은 음지에서 서방 국가를 공격하는 알 카에다 베테랑 정보원들의 네트워크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활동가들은 호라손 조직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며 공습 목표는 알누스라 전선의 진지였던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시리아 내 있지도 않은 호라손 그룹을 언급하면서 실제로는 알누스라 전선을 공격한 것이다. # 이 때문에 반군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알누스라 전선에 대한 공습은 곧 모든 무슬림에 대한 공격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알누스라 전선의 은둔 지도자, 아부 모하메드 졸라니는 이번 공습으로 미국과 아랍 각국에 엄청난 후폭풍이 불 거라고 예상하며 그것을 ‘화산 폭발’에 비유했다. 알누스라 전선과 IS는 2013년 중반 갈라졌고 혹독한 경쟁을 벌여왔지만, '공동의 적' 미국을 앞에 두고 “양측이 이미 화해를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고 시리아 문제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상황이다. 또한 IS의 본거지인 라카 시(市)에 억류당했던 알누스라 전선의 포로들이 (아마도 협력에 대한 우호의 증거로) 모두 석방되다고 전했다. 미군 공습 이후 많은 반군이 IS에 충성하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시리아 내전 현장은 극히 다양한 세력들이 분포돼 있다. 많은 반군 분파들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슬람 전사(무자헤딘)들은 이 그룹에서 저 그룹으로 자주 옮겨 다닌다. 또 각 분파들은 편의에 따라 동맹을 결성하기도 한다. 춘추전국시대가 따로 없다. 일단 대다수 반군들은 내전을 아사드 정권에 대한 반란-저항으로 보고 있다.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아사드 정부는 자기들이 이단으로 간주하는 시아파 이슬람의 알라위 종파, 곧 ‘이슬람 배교자’로 보고 있어 반군의 저항에는 종교적인 함의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이슬람 국가(IS)'도 정식으로 칼리프를 선포하기 전에는 미국이 지원하는 반군을 포함해서 다양한 반군과 함께 시리아 정부를 상대로 싸워왔다. 이 과정에서 2013년 8월 마나 공군기지를 접수하는 혁혁한 전공도 세웠다. 당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로 불렸던 IS는 두 차례의 자살 공격으로 마지막 저항을 분쇄하고 1년 넘도록 이어진 정부군과의 전투를 끝냈다.

2014년 9월 28일, 미군 주도 연합군이 공습 5일차를 맞아 IS를 노리고 공습 지역을 넓혀가며 공습을 이어간 가운데 시리아 북부 터키 국경지역에서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CNN이 보도했다. 반(反)아사드 성향의 인권감시단체 시리아 인권관측소(SOHR)은 공습 작전이 IS를 공격한다는 명목하에 민간인을 목표로 하는 단계“에 들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습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보도 이후 공습 반대, 항의와 함께 ‘서방으로부터 이슬람을 지키자’는 자체 결속의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 주도의 공습으로 IS 지배하의 임시 정유공장이 파괴돼 석유 부족에 대한 불평마저 나오고 있다.

9월 중순 인터넷에 공개된 동영상에서는 이들리브 주 나블 시에서 벌어진 공습 반대 시위에서는 알 카에다의 깃발이 휘날렸다. 한 수니파 교도는 “여기에는 알누스라 전선 같은 분파는 없다, 우리는 모두 수니파일 뿐이다. 연합군은 수니파와 민간인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

한편 2014년 10월 23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총기난사 테러를 자행한 테러범은 당초 시리아로 가길 원해 당국에 여권신청을 했다가 발급이 지연되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

10월 28일, CNN은 시리아로 떠났다가 돌아온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도와주는 덴마크의 갱생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덴마크는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시리아로 자진해 떠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귀국하면 처벌 대신 사회 복귀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일례로 2013년 덴마크의 집을 떠난 '오마르'는 뒤늦게 참전을 후회하고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내가 있었던 곳은 여러 집단들의 다툼과 폭력으로 무질서 상태였다"며 "그런 현실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싸우는 것에 신물이 났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떠난 것은 자유일지라도 귀국은 만만치 않은 문제다. 지난 12일 오스트리아 소녀 삼라 케시노비치(17)와 자비나 셀리모비치(15)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며 사실상 거절한 바 있다.[66] 오마르는 "(귀국하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았다. 귀국해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도 큰일이 아니다"며 "시리아에서 싸우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테러리스트 조직을 위해 싸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시리아로 떠났다 돌아온 이들에게 덴마크는 직업 교육과 심리 치료, 심지어 이슬람 종교와 관련된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다만 입국 심사를 거쳐 테러리스트 활동에 가담한 사실 등의 불법행위가 발각되면 당연히 처벌받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다시 시리아로 가려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단순히 관리감독 시설에 방치할 수만은 없다"며 "덴마크 법에 따르면 시리아에 가는 것이 불법이 아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시리아로 가지 않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시리아로 가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설명하고 테러리스트와 연계되는 것이 불법이란 것을 설명한다"며 "어린이들과 부모들에게 심리학자의 멘토링 서비스를 지원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르후스에서만 지난해 약 30명이 시리아로 떠났는데, 이 중 16명은 귀국해 덴마크에서 생활하고 있다. #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에도 불구하고 매달 1,000명 이상의 외국인 용병들이 꾸준히 시리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30일,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의 자료를 인용해 최근까지도 시리아 유입인구가 줄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정보당국 관계자는 "시리아로 향하는 무장세력의 수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시리아 내 외국인 용병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1년간의 추세를 살펴보면 현재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의 수는 대략 1만 6,000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섰던 무자헤딘 인원을 넘어서는 수치다. 유입 경로도 다양하다. 인근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물론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전 세계에 걸쳐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그 간의 조사 결과 IS의 세련된 신병모집과 더불어 오랜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무장세력들의 활발한 활동 등이 이 같은 흡인력을 가지게 만든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3년 넘게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정보당국의 예상보다 더 많은 수의 외국인이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국가대(對)테러센터(NCTC) 부소장이었던 앤드류 리프먼은 "미국의 시리아 공습은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시리아행을 좌절하게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시리아로 가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며 "이로 인해 시리아로 유입되는 외국인 수는 결국 과거와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

한편,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9월 중순 이후 이라크와 시리아에 600여 회의 공습을 감행했다. 공습으로 IS는 약 460명, 알 카에다 연계 단체 알누스라 전선은 약 60명의 조직원을 잃었다. 미국 국방부는 "공습이 IS의 활동에 지장을 주고 있다"면서도 "대대적인 공세는 아직 요원하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30일, CNN과 뉴욕타임스 등은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이 최근 내부적으로 백악관의 시리아 전략 미흡을 비판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IS 저지도, 쿠르드족 지원도 기대에 못미치고 아사드 정권의 연명에만 도움을 주게 된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라고 한다. # 결국 백악관과의 갈등 때문인지 헤이글 국방장관은 11월 24일 사임했다. #

2014년 11월 11일, 시리아 내전 현장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와중에 소녀를 구하는 소년의 모습이 포착되어 화제가 되었다. # 그런데 이건 연출이었단다... #

11월 19일,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기 위한 군사 작전이 최대 4년까지 소요될 수 있다고 미국 밀리타리 타임스가 보도했다. #

11월 30일, 미국 폭스뉴스는 최근 국방부가 작성한 보고서를 입수해 다국적 연합군의 IS 공습에서 미군의 역할이 85%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이 전투기와 무인기(드론)로 감행한 IS 공습 횟수는 무려 819차례에 이른다. 반면 IS 공습에 참여한 다른 10개국의 공습 횟수는 모두 합쳐 157회에 그쳤다. 즉 미국의 공습 규모가 다른 연합국을 5배 넘게 압도하는 것. 천조국의 위엄 폭스뉴스는 미군과 연합군이 이처럼 IS 공습 횟수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미국의 압도적 국방력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군용기 13,600대 가운데 전투기와 폭격기는 4,800대에 달하지만, 바레인 공군은 폭격 가능한 전투기가 5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천조국하면 쇼미더머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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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5일, '이슬람 국가(IS)' 공격에 가담한 연합국 중 하나인 호주의 대도시 시드니에서 극단적 이슬람주의자에 의한 인질극이 벌어져 각국과 유관기관이 충격에 빠졌다. 당초 호주가 IS 공격에 가담했기 때문에 IS 계열의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여겨졌으나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인질극을 벌이는 범인이 내건 깃발에 대한 분석 결국 호주 경찰의 진압으로 범인 만 하론 모니스는 사살되고(그 외 인질 2명도 사망) 인질극은 16시간 만에 끝났다. 그렇지만 광신적 지하디스트들의 테러에서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여겨진 호주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서방 각국은 물론 한국 정부도 주의해야 할 상황이다. #

12월 16일,《더스타》등 말레이시아 현지 언론은 과격 이슬람 단체에 가담하려고 시리아로 들어가려던 인도네시아인 7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25∼35세로 그 중 1명은 필리핀에 거점을 둔 테러조직 아부사야프와 연계된 인물로 인도네시아 출신 이슬람 과격세력의 시리아행을 돕는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자국 국적자 39명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슬람 국가(IS)'가 벌인 전투에 가담했으며, 이 가운데 5명이 숨졌다고 밝힌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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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로이터통신이 17일(현지시간) 미군 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12월 전반기까지 시리아 내 이슬람 국가(IS)에 대한 미군의 공습은 62회로 97%에 달했다. 반면 기타 동맹국들의 공습은 3%, 2차례에 불과했다. 미군은 그동안의 공습으로 표적 탐색이 어려워졌고 그새 다 깨부쉈냐 전체적인 공습 횟수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해명하고 있다. 미군 관계자는 “(고정된)목표물이 줄고 있다”며 “우리 관점에서 보면 좋은 것이다. 이는 공습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

세계은행(WB)은 최근 발표한 자료에서 시리아, 레바논, 터키, 요르단, 이집트, 이라크 등 6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분쟁이 없었다면 2007년 기준으로 350억 달러 더 늘어났을 수 있었을 것이라 추산했다. 시리아는 3년간 내전과 함께 '이슬람 국가(IS)'와의 전쟁이 겹치면서 1인당 복지비용이 16% 감소했다. 이라크도 재건 노력에도 불구하고 IS와의 전쟁으로 14% 감소했다. 주변국인 레바논은 밀려드는 난민들에 대한 부담(전 인구의 25% 수준)이 커지면서 1인당 복지비용이 11%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각종 수치와 통계를 포함해, WB은 분쟁으로 인해 여섯 나라가 최대 350억 달러(약 38조 5,000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고 추정했다. #

2014년 12월 23일, 국제언론인보호위원회(ICPJ)는 전 세계적으로 취재 중 숨진 언론인이 총 60명으로 시리아가 대표적인 언론인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발표 시점까지 17명이 시리아에서 숨졌고, 2011년 이후 사망자까지 합하면 79명에 이른다고 한다. #

2015년 1월 1일, 작년 7월 시리아에서 납치된 이탈리아 여성 2명이 구조를 요청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고 이탈리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작년 12월 17일 촬영한 동영상에는 얼굴을 제외하고 몸 전체를 가리는 이슬람식 검은 옷을 입은 그레타 라멜리와 바네사 마르줄로라는 두 명의 20대 이탈리아 여성이 한 명은 '17.12.14. 수요일'이라고 씌여진 흰색 종이를 들고 다른 한 명은 원고를 읽는 모습이 주로 촬영됐다고 이탈리아 뉴스통신인 안사는 전했다. #

최근 수 년 동안 3,000명 이상의 유럽 국적자가 시리아 내전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했으며, 이들 중 최소 500명이 유럽으로 돌아왔다고 CNN이 밝혔다. 이들은 프랑스 파리의 샤를리 엡도 테러, 덴마크 코펜하겐 테러 등 이른바 '외로운 늑대'의 테러 행각을 자행하고 있어 유럽 안보-치안 관계자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 실제로 미국 등의 정보 당국자들은 최대 180명의 극단주의자들이 테러 계획을 꾸미고 있다고 밝혔다. # 졸지에 시리아 내전은 유럽으로 '수출'되는 IS의 이슬람 테러리스트 양성소로 작동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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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여성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조지 브랜디스 법무장관이 밝혔다.

호주 ABC 방송에 따르면 브랜디스 장관은 이날 "약 6개월 전에는 젊은 남성의 가담만 걱정했지만, 안보기관들의 통계를 보면 갈수록 많은 호주 여성이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시리아와 이라크에)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그는 IS에 합류한 호주인이 지난해 약 75명에서 현재 약 90명으로 늘었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호주 젊은이가 IS를 위해 (시리아) 내전에 참여한다는 거짓된 화려함에 유혹당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호주인들은 이것이 심각한 문제이고 또 갈수록 커지는 문제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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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시리아 혁명전선은 온건반군인데? 출처 백업 1월 30일,《해럴드경제》는 종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니파 부국(富國)의 '석유 왕족'들이 '이슬람 국가(IS)'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여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을 꺾으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구체적인 실명과 행태까지 거론했다. #

1월 31일, 한국 언론《채널 A》는 북한군이 군의 실전 감각 유지와 훈련을 목적으로 시리아 내전에 일부 병력을 은밀히 파병하여 실전 경험을 쌓고 외화 벌이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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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한국 언론《중앙일보》는 IS가 일본인 인질 1명의 석방 조건으로 알 리사위의 석방을 요구한 것은 오랫동안 견원지간이었던 알 카에다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이미 2014년 9월 미국 등의 공습을 계기로 계속 으르렁대던 사이인 알누스라 전선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개선한 IS가 서방 세계의 압박에 맞서 힘을 결집하기 위해 알 카에다에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보인 것이라는 평가다. article|default # 이것이 사실이라면 향후 IS와 알 카에다가 협조적인 노선으로 돌아서서 서방 국가들에 대한 테러나 중동 각지에서의 세력 팽창에 함께 나설 것이라는 악몽 같은 가정도 해볼 수 있다. 꿈도 희망도 없어...

2015년 2월 22일, 영국 일간《인디펜던트》는 쿠르드 자치정부 수반의 수석 보좌관인 푸아드 후세인의 말을 인용, IS가 미국 등의 자금줄 차단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랍 지역 동조자들로부터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쿠르드족 지도자 중 한 명이자 최근 이라크 의원직에서 물러난 마흐무드 오트만 박사는 "걸프 국가들이 왜 IS에 자금 지원을 하는지에 대해 오해가 있다"고 꼬집었다. 오트만 박사는 "걸프 국가들이 IS에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은 IS를 지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IS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걸프 국가들은 IS에 재정 지원을 함으로써 IS가 그들의 영토에서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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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개트윅 공항 CCTV에 찍힌 모습. 왼쪽부터 카디자 술타나, 샤미마 베이검, 아미라 아베이스. 사진 출처《가디언》.

터키의 한 정보 당국자는 2월 22일(현지시간)《텔레그래프》에 “이들은 지난 20일 시리아 탈랄비아드에서 목격됐다”며 “한 시리아 남성과 함께 민간 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시리아 신분증을 썼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또 “소녀들이 이스탄불에 도착한 뒤에 외국인의 '이슬람 국가(IS)' 가담을 돕는 IS 조직원을 만난 것으로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런던 동부에 있는 학교의 동급생인 샤미마 베이검(16), 카디자 술타나(15), 아미라 아베이스(15) 등 3명은 지난 2월 17일 런던 개트윅 공항에서 터키를 향해 출국했다. 이들은 그 날 저녁 터키 항공편으로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익명의 소식통은 이들이 이스탄불에 도착한 뒤 이틀을 머물렀으며, 20일 시리아와의 국경선을 넘었다고 전했다. 이들 십대 소녀 가운데 샤미마는 친언니인 아클리마(17)의 여권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탄불에서 터키 경찰과 영국 경찰은 합동으로 수색을 폈지만 이렇다할 소득을 얻지 못했다.

샤미마는 앞서 지난 15일 트위터에서 스무 살의 IS 가담 영국 여성과 접촉, 이들이 SNS를 통해 급진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IS 가담 여성은 자신의 블로그에 자신은 글래스고에서 공부 하고 IS 대원과 결혼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영국 무슬림 여성들에게 시리아로 오라고 권유하는 글을 남겼다. 영국에서 IS 가담을 위해 시리아로 간 무슬림 여성과 10대 여학생은 5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담으로, 저 시리아로 날아가 IS에 가담한 여성 셋의 근황이 2019년 2월 알려져 영국 여론이 시끄러워졌는데 샤미마 베이검[67]만 살아있었고 아베이스는 행방 불명, 술타나는 폭발로 인해 죽었다고 한다. # 그리고 깨알같은 우즈베크계 시리아 지하디스트들의 한국행 희망

5. 트럼프의 당선이 미칠 영향

현재 정부군, 자유 시리아군, 이슬람 국가 등으로 나누어져있는 시리아 상황에서 러시아, 이란 등은 정부군을 지원하고, 미국 및 유럽은 자유 시리아군을 지원하고있다. 현재 자유 시리아군으로 통칭되는 반군 집단을 가장 많이 지원하는 건 미국이고, 다른 유럽 국가들은 거드는 정도이므로 러시아와 발 맞춰 정부군을 지원하겠다고 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됨으로써 시리아 내전도 좀 더 종전에 가까워졌다. 현재처럼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에서는 전쟁이 끝나기 힘들지만 강대국들이 한쪽만 지원한다면 결국 전쟁은 한쪽의 화력 우세로 끝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리비아 내전도 강대국들이 반군만 지원하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정부군이 순식간에 패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친미 정권이라면 인권 탄압을 해도 묵인해줬고, 반미 정부군 아래의 친미 혹은 중립 반군이라면 반군을 지원해왔다.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이 시리아 반군을 지원한 이유는 하나이다. 시리아 정부군이 친러시아 정권이라 미국과 유럽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항구와 공항이 러시아군이 중동에서 주둔하고 있는 유일한 군사기지이므로 시리아의 친러 정권만 무너진다면 중동에서 러시아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중동을 미국과 유럽의 영향권 안으로 완전히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정부군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는데 반정부군인 자유 시리아군이 그렇게 친미적이지도 않고, 되려 이슬람 극단파도 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 게다가, 아사드 정권이 적어도 무조건 반미도 아니기에 차라리 러시아와 같이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게 낫다고 판단한 듯 싶다.

그런데 아사드 군의 사린가스 살포를 빌미로 2017년 4월 6일, 미국이 시리아 공군기지를 타격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사드를 맹비난하며 동맹국들에게 시리아 내전에 참여할 것을 호소, 시리아 내전에 적극 개입할것을 천명함과 동시에 반군편을 들 것을 발표하여 터키와 시리아반군들은 쾌재를 부르고있다. #, # 하지만 문제의 사린가스를 살포한 쪽이 정말 아사드 군인가에 대해서 러시아는 부정하고 반군의 자작극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UN최종조사에선 사린가스를 살포한 집단이 정부군으로 최종결론이났다. 유엔 "시리아 사린가스 공격, 정부군 소행" 결론

2017년 7월 도널드 트럼프가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고 훈련하는 미중앙정보국(CIA)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트럼프, 시리아 반군 지원 중단 결정···러와 협력 모색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를 미국이 또 공격했다 #

6. 터키의 변칙적 행보가 미칠 영향

이전부터 터키는 시리아 반정부군의 은닉을 돕는가 하면 술레이만 샤의 유해를 터키로 호위해가기 위해 기습적으로 시리아 영내에 침투한 전적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2016년 9월, 터키군이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으로 시리아 영내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대놓고 시리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알-밥이 점령되기 전까지는 터키가 시리아 정부군과 경계를 접하지 않았고 터키군 내부에서도 터키 쿠데타 미수로 인한 장교단 숙청이 벌어졌기 때문에 터키가 근시일 내로 알-밥을 점령하고 에르도안이 주장한 약속대로 락까나 알레포로(...) 향할거라 보긴 어려웠으며, 실제로도 쿠르드족을 직접 공격하여 아프린을 점령하는 정도만 벌어졌다.

가장 주요한 변수는 터키가 이 지역에 FSA를 지원하여 개입한 것은 사실상 시리아 정부, 그리고 그 뒤의 러시아, 이란과 대리전을 치루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점. 실제로 러시아가 현재 터키와 지난 공격기 격추 사건 이후 화해 무드에 들어가면서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이 이뤄지는 지역에는 시리아군, 러시아군 모두 폭격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동안 알레포에서 지속적으로 공습을 당한 FSA 등 반군들에게는 터키군 주둔지역이 사실상 절대 공습당하지 않고 지원도 보수도 높은 안전지대가 된 셈이다.[68]

거기다 에르도안은 실제로 신오스만주의를 표방하며 시리아 북부, 이라크 북부 등을 자국의 영유권이라 주장하는 등 이 지역의 패권 강화를 위한 숟가락 얹기(...)에 들어간 상태라, 이해관계가 얽힌 열강들의 외교적 요구와 타협 없이는 터키군이 시리아 땅에서 퇴거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으며, 현재의 시리아군 사정으로는 터키군을 군사적으로 퇴거시킬 능력이 없다시피 하다.

사실 터키는 원래 내전 발발 초기부터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터키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전폭기가 터키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후 사이가 매우 안 좋아졌던 터키와 러시아는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졌으며 최근 알레포 휴전 협상도 러시아와 터키가 주도하였다. 터키의 지도자 에르도안이슬람 근본주의자이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시리아 반군을 지지할 의사가 없고, 반군과 같은 수니파사우디 아라비아에도 호의적이지 않아 결국은 반군 지지 세력(미국, 유럽, 사우디 아라비아)이 와해될 것을 직감하고, 서방에 의해 견제받는 동지인 러시아와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터키는 미국과 유엔을 배제하고, 러시아, 이란과 함께 2016년 12월 20일 시리아 내전 평화협상을 위한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하였다.[69]

6.25 전쟁휴전 협정이 당사국들을 배제하고 미국과 중국 주도로 체결된 것처럼 시리아 내전의 정전 협상에서도 당사자인 시리아는 배제되고, 러시아, 터키, 이란이 정전 협정을 하고 있다.[70]

2017년 3월 시점에서 터키측은 군사적으로 시리아 정부군과 그들의 동맹이 된 쿠르드자치정부와 시리아에서 대립하는 관계이나 정치적으로는 친러 스탠스를 조금씩 보여주면서 변칙적인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이때문에 로자바는 러시아군을 아프린 칸톤과 만비지에 불러들여 공동방어구역을 설정하는 등, 러시아의 개입을 유도하여 터키군의 개입을 막으려 했으나 결국 4월 26일에 터키-시리아 국경 전역에서 로자바 정부와의 전쟁에 들어갔으며, 군사작전의 결과로 아프린 주를 장악하는데 성공, 이들리브와 북알레포를 연결하였다.

2018년 9월 경, 반군 측을 지원중인 터키의 움직임을 고려해 봤을때 가장 가능성 높은 움직임은 이들리브와 북시리아 일대를 시리아군이 직접 손댈 수 없는 터키 정규군으로 채워 정부군의 점령 시도를 차단한 뒤 표면상 자유시리아군을 대표하는 국가해방전선을 앞세워 시리아 알카에다, HTS를 비롯한 지하디스트 극단주의 계열 반군에겐 해산 및 터키 지원 반군 휘하로의 편입을 명하고, 이에 불응/저항하는 조직은 제거하며, 터키의 지원을 받는 자유시리아군 계열 반군 조직(국가해방전선 휘하)을 대폭 지지해 세력을 키워주는 형식으로 형식상으로라도 이슬람 극단주의를 없애는 시늉을 한 뒤, 아사드가 통치하는 현재 시리아 정부와 다른 독자적인 친터키 시리아 반군 주도의 정부와 의회를 구성시키고 반아사드 성향의 반정부 해외 망명 인사나 국가해방전선 등 터키 지원 시리아 반군 단체의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을 대통령이나 총리로 옹립시켜 이들리브와 아프린, 자라블루스, 알바브, 다비크 등 북알레포 지역들을 터키 영향력 하의 괴뢰 미승인국으로 시리아에서 분리 독립시키거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과거 시리아에 속해 있었다 1939년에 터키에 귀속된 하타이 주처럼 터키의 정식 영토로 합병할 속셈으로 보인다.[71]

실제로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서 크림 반도를 이런 방식으로 괴뢰국가로 독립시켜 자체적인 주민 투표후에 병합한 적이 있었으며,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에서도 압하스남오세티야 등 조지아 사카슈빌리 행정부의 친미/반러시아 노선에 반발하던 러시아와 인접한 조지아내 미승인국가들 두 곳을 조지아로부터 강제로 떼어내어 러시아 영향권에 넣어 분리독립시킨 적이 있었고, 아르메니아 또한 1990년대 초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싸고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전쟁에서 나고르노 카라바흐와 이 지역과 근접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국경 지역의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들을 무력으로 점령하여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독립시킨 전적이 있다.[72] 터키 역시 1974년 키프로스를 침공하여 이슬람 터키계의 인구 비율이 높은 키프로스 북부 지역을 점령하고 수년뒤인 1983년에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으로 독립시켜서 사실상 터키의 영향권 하에 두었다. 물론 시리아 아사드 정권은 내전 와중에 자국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아간 터키가 이들리브와 북알레포를 사실상 터키의 괴뢰국으로 독립시키거나 시리아령에 대한 영토 추가 합병을 하려는 시도에 결사 반대할 공산이 크고, 러시아와 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부군을 지지하는 국가들과[73] 이외에도 그리스, 불가리아 등 터키와 역사적, 정치적으로 앙숙관계에 있는 다른 터키의 인접국들도 이러한 터키의 북시리아 지역에 대한 영토 합병 밑 친터키 괴뢰국가 건설을 통한 분리 독립을 좌시하지 않거나 반대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이 높아서 과연 터키가 북부 시리아를 병합하거나 괴뢰국가를 만들 수 있을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과거 역사속의 크림 반도나 북키프로스, 하타이 등의 지역은 애초에 합병한 국가 계열 시민[74]이나 지지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합병 내지 괴뢰국화가 수월했던 것이지, 반터키 감정이 상당하고 터키계가 다수인 것도 아닌 이들리브와 알레포 지역 주민들은 터키 영토로 편입당한다면 당장은 찍어누른다고 해도 현재 이스라엘 치하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나 모로코 치하의 서사하라 주민들,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 점령기의 쿠웨이트 주민들, 인도네시아 점령기의 동티모르 주민들처럼 지속적으로 독립투쟁이나 시리아로의 재편입을 주장하며 저항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당장에 현재 키프로스 분쟁과 앙숙관계인 그리스와 불가리아 등 주변국과의 갈등도 버거운 터키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7. 관련 문서



[1] 내전 4년째인 2014년 9월에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지역에서 찍음.[2] 현 시리아 정부의 수장[3] 독재자들이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갑자기 사라져버리고나서, 이슬람 극단주의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악용하여 창궐하는 경우는 현대 이슬람 국가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이슬람 근본주의 항목 참고. 다만 재스민 혁명으로 벤 알리 독재 정권 축출 이후 유일하게 세속주의적 정교분리 민주주의 신정부가 들어섰던 튀니지와 1998년 수하르토 독재정권 축출 후 다당제 민주주의 체제가 정착한 인도네시아는 예외.[4] Riyad Farid Hijab. 아사드 정부의 핵심 인물은 아니었으나 2012년 6월 23일 총리로 임명되었음에도 같은 해 8월 6일 망명.[5] 실제로 2016년 12월 함락된 알레포에서 반군의 독가스 제조 설비들이 발견되었다.[6] 시아파 출신의 이라크 총리 누르 알 말리키의 수니파 역차별 정책 및 독재권력 시도가 낳은 실책이었다.[7] 모든 지역의 쿠르드족이 정부와 협력한 건 아니어서 시리아 동북부 하사카 지역에서는 정치적인 문제로 쿠르드와 정부측의 무력 충돌이 상당히 많이 발생했다.[8] 이것은 아흐라르 알 샴이 터키의 지원을 받기 위해 원리주의적인 면을 억제하고 알 카에다와 비슷해보이지 않기 위해 내부 단속을 한 결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불만이 싾였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과거 자유 시리아군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독자 내부동맹조직을 만들다가 결국 이슬람 전선을 창설하고 민주주의자들을 습격하여 박살낸 것과 같은 동기인 것. 민주주의-세속주의-서방 관점을 가진 한국의 관찰자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지만 이들에게는 이슬람 원리주의가 지배하는 샤리아 국가의 건설이 19세기부터 이어진 커다란 사상적 기조이자 대의에 해당된다.[9] 정부 발표. 이를 부정하는 ISIS측 주장이 있었으나 28일 친정부 리포터 샤디 할위(Shadi Halwi)가 인증샷을 찍으면서 확실시되었다.[10] 3월 25일 반군에서 활동하는 의사 샤줄 이슬람(Shajul Islam)이 사린가스로 의심되는 환자가 나타났다고 트위터에 올렸고, 3월 30일 다시 사린가스 공격으로 주장되는 환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4월 4일 오전 6시 30분 소도시 칸 셰이쿤에 정부군 항공기가 공습하고 나서 사린가스 이슈가 터진 것. 사린가스가 문제가 되는 것은 시리아 정부가 2013년 6월 도우마 시 공격 후 UN감시하에 화학무기 재고와 설비를 전량 반출했는데 다시 결의안을 위반하고 화학무기를 빼돌리고 생산 시설을 다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염소가스는 가내수공업 수준에서도 만들 수 있지만 사린가스는 전문 설비가 있어야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 (반군을 통한 사린가스 공격이 벌어질 수 없는 이유) 정부는 절대로 화학무기를 쓰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친정부 페이지에서도 말 그대로 풀발기하는 중. 미국 프랑스 독일은 안보리 회의를 소집하여 시리아 정부에게 작전기록 제출을 요구했으나 러시아는 부정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작전기록은 군사기밀이기 때문에 무작정 제출할 수도 없는 노릇.[11] 정황상 하마 전선에서 승전을 거두고 있는 시리아군이 독가스를 쓸 이유가 없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과거 사린가스 이슈가 터져나왔던 2013년 6월은 정부군의 통상폭탄 재고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가용병력이 부족하여 수도권 동부를 장악한 자이쉬 알 이슬람 반군을 공격하기 어려웠고 사태가 벌어진 도우마(Douma)시는 자이쉬 알 이슬람의 본거지이자 수장 자흐란 알루쉬의 고향이라 강력한 공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2017년 4월의 시리아군은 전 전선에서 전진을 거듭하고 반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있는데 굳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는 가스 공격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마스쿠스 동부 카분 공세와 하마 공세가 실패한 반군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뒤집기 위해 국제 사회의 개입을 만들기 위한 자작극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친정부 계열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정부군은 가스 이슈 때문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반 시리아 관점을 나타내는 등 발을 사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4월 6일 다시 알 라타미나에서 염소가스 공격이 행해졌다는 반군 주장이 나왔는데 이전과는 달리 영상을 보면 기존에는 정부군 헬기에서 통폭탄이 떨어지는 과정이 자세하게 촬영되었음에도 이번에는 폭탄이 터지는지도 확실하지 않는 장면만 나오는 등 의혹의 여지가 있다.[12] 그러나 이는 하마 전역에서 시리아군의 공군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키지 않았다는 뜻이지 샤이라트 비행장의 유류 벙커가 날아가버리고 비행장 셸터가 다수 못쓰게 된데다가 시리아 공군력의 5~10%가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렸으니 전술적으로 시리아군에게는 사실상 큰 타격이다.[13] 한편 기지 한켠에 화학무기에 사린과 동종인 소만가스 탄두 BKF-P로 추정되는 캐니스터가 싾여있는 사진이 러시아 언론에 의해 개제되어 정부군의 화학무기 보유가 확인되었다고 난리가 났으나 근접 사진 결과 같은 케이스에 AO-2,5RT클러스터탄을 탑재한 BKF라는 점이 판명되었다. 사실 시리아 정부군이 아무리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해도 사린과 동급의 살상력을 가진 소만가스 탄두를 바깥에 아무렇게나 버려둘 리는 없는 것이었고, 근접사진을 보면 케이스들이 화분으로 쓰이고 있거나 녹이 심하게 슬어 구멍이 나 있는 등 빈 깡통으로 보이는 것들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금방 드러날 일이었다. 결국 하루만에 해프닝으로 종결되었으며 샤이라트 공군기지에서는 사린 보유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되었다.[14] 한편 UN산하 국제기구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서는 피해자 부검과 시료 채취 후 분석한 결과 4월 4일 칸 셰이쿤에서 사린가스가 사용된 것이 맞다는 최종 확인을 하였으나, 사용 주체는 알 수 없다고 발표하였다. 이로써 사린가스 사용 문제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15] 2015년 이들리브 대패 이후 고립되었으나 지역 자유시리아군과 협약을 맺어 보호를 받았다.[16] 순탄하지만은 않다. IS병력은 반격을 가해 라카 북부 17사단 기지 일부를 재장악했으며, SDF의 라카 남쪽 포위 시대를 다시 뚫기도 했다. 거진 혼돈의 카오스 수준.[17] AFP발표에 따름. 시리아 친정부 언론측에서는 ISIS잔당이 잔존하는 전황도를 공개하였으며 포위망 내부의 40여개 마을은 7월 5일 완전히 점령하였다고 발표되었다.[18] 이 당시 아프린의 쿠르드족은 쿠르드와 어느 정도 우호적이었던 시리아 아사드 정부군과 시리아 북동부 지역을 점거하고 있던 같은 쿠르드 민족 계열의 쿠르드-아랍 연합 무장조직인 시리아 민주군(SDF)으로부터 무기 밑 병력 지원까지 받으며 터키군과 친터키 시리아 반군에게 저항하였으나 전세를 역전시키지 못했다.[19] 이 와중에 친정부 성향의 언론과 소셜 미디어에서 시리아군의 러시아제 대공미사일 파편을 격추된 토마호크 파편이라고 주장하는 촌극이 벌어지면서 한동안 아무거나 싸잡아 격추된 토마호크라고 부르면서 어용집단을 조롱하는 밈이 유행하기도 했다.[20] 시리아 정부군은 2015년 12월과 2016년 1월에 다라 지역 반군들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시도했으나 도시 전 지역을 탈환하지 못 하고 셰이크 알-마스킨 지역 등 영토 일부 지역 만을 겨우 차지하였다.[21]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얼마 안되는 잔존 사막지역에 IS대원 4000여명이 남아있다.# 다만 이들은 2019년 시점에서는 시리아 내에서 정부군, 쿠르드군, 미군의 합동공세에 사실상 전멸했다.[22] '자브하트 알 와티니야 릴 타흐리르'라고 부른다. 이후에 반군조직 중 상당한 규모가 있었던 극단주의 계열인 '자브하트 타흐리르 수리야'까지 합병하여 이슬람 근본 성향이 강해진 상황.[23] 2014년에도 정부군이 한때 승기를 잡았다가 막장 상태의 이라크에서 넘어온 IS의 대규모 발흥으로 4년이나 참혹한 전쟁을 계속한 것을 생각하면, IS도 사실상 망했고, 터키를 제외하면 더이상의 전쟁상황을 역전시킬 변수도 없는데다, 이들리브와 알레포 일부 코너에 몰려 완전한 수세에 몰린 반군을 완전히 끝장내고 내전을 종식할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다.[24] 물론 현재의 터키군은 쿠데타 미수로 인한 대숙청의 여파로 질적으로 개판이 되어가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한국과 군사력 순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규모의 군대를 가지고 있기에, 아무리 재건되어가는 시리아군이라도 터키군을 공격하여 터키의 침공 명분을 주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를바 없다.[25] 대개 SDF 하면 쿠르드족이 이끄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YPG나 쿠르드 전선 같은 쿠르드족이 이끄는 준군사 조직이 아닌 여타 시리아 반군들과 아랍인 민병대들도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26] 시리아내 is 격퇴전에서 is 격퇴 역할을 담당한 시리아 쿠르드족의 주축도 대부분 시리아 북동부 지역의 쿠르드족이 맡아서 했지, 정작 아프린의 쿠르드족은 IS 세력들이 몰락하고 2018년 터키군의 공격으로 아프린을 잃을 때까지 시리아 내전에서 한 일도 별로 없었다.[27] 시리아 민주군(SDF)이 점령하고 있는 북시리아 영토 내부의 시리아 정부군이 통치하고 있는 카미술리 시 남쪽 외곽 지역과 알 하카사 인근 지역 및 알 하카사 도심의 중심부 일부 지역들은 제외.[28]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 공세가 다에시를 소멸시키기 위한 '최후의 공세'라고 밝혔다.[29] 이들이 전성기를 달리며 전 세계를 협박하고 피를 뿌리던 2014~2015년 영토가 대한민국 실효지배 면적보다 더 컸던 11만 제곱킬로미터였던 걸 보면, 그야말로 더 떨어질 나락도 없는 지점까지 몰락한 상황이다.[30] 러시아는 이들리브, 코바니, 아인이사, 아프린, 알바브, 알탄프 등 미군과 터키군이 주둔 중인 시리아 영토에서 미군과 터키군이 철수하고 이 지역들의 영유권을 모두 시리아 정부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31] 내전 초창기인 2011년~2012년에 이러한 언론플레이가 극한에 달했으며, 이 시기의 편향적 외신보도의 영향으로 이미 민주화 문제는 수년전에 물건너가고,근본주의 수니파/비수니파 종파간 대립과 근본주의VS세속주의, 국제사회의 대리전 양상으로 변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에서조차 시리아의 복잡한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 중에선 여전히 아사드와 시리아 정부= '무작정 절대악 독재자', 반군='독재자에게 잔혹하게 학살당하는 정의로운 민주투사들' 식의 왜곡된 프레임을 가진 케이스가 2018년 현재에도 의외로 많다.[32] 잔혹한 시위진압이나 민간인에 대한 학살은 명백히 실존하는 아사드 정부의 실책이었지만, 소위 민주주의 반군 식으로 묘사되는 반군 내에서도 사우디나 아랍 왕정국가에서 지원받는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 조직들 상당수가 포진해 있었고, 반정부 시위의 참가를 중립적인 일반 시민들에게 강요한다던지, 반군도 정부군 못지않게 인권탄압, 잔혹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거의 묘사하지 않는 편파적 기사를 보도하였다.[33] 당장 유튜브에서도 당장 영어검색 한번으로 아사드 대통령의 전쟁에 관한 서구 언론과의 수많은 인터뷰를 볼 수 있다. 댓글창에는 서방 주류 언론의 반군위주 편향보도를 까고 아사드를 옹호하는 서구 국가 유튜버들의 댓글이 많은 점(...)도 재미있다.[34] 예를 들면 반군 내의 이슬람 세력이 벌인 소수종파 테러행위나, 학살, 점령지 내의 샤리아 폭정, 반군들끼리의 잔혹한 내전 등은 거의 안 다루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하고(기껏해야 IS의 만행만을 취재하는 정도) 아사드 정권 덕에 핍박을 면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알라위, 기독교, 시아파 등의 소수 공동체나 세속적 수니파들, 그리고 아사드 정권이 보장해주는 여성인권이나 생활의 자유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모른체한다. 반면 정부군의 공세가 있을 때는 폭격당한 민간인 등을 과도하게 부각하면서 마치 평화롭게 잘살던 반군지역을 사악한 침략자인 아사드가 짓밟는다는 식으로 묘사하기 일쑤다.[35] 로켓탄 단발을 적당히 거치 조준해 쏘는 것이야 21세기 중국군 훈련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고, 대장간제 로켓탄을 단발 발사하는 것 자체는 레바논 내전에서 신물나도록 보여준 것이지만, 그럴 듯 한 발사기까지 만드는 등 점점 발전하고 있다.[36] 2017년 현재는 소액의 월급이나마 지급되고 있다. 대략 14,000시리아 파운드, 한화로 약 3만원(....)[37] 2016년 7월 알카에다로부터 이탈하였다.[38] 아이러니한 건 이스라엘은 오히려 수니파의 전면 봉기로 알라위파와 정교회로 구성된 친아사드 세력이 무너질 경우 그들을 지원해서 반군과 맞서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실제상황에서는 아사드의 군대가 최소한 대등한 수준은 유지했고 개입 잘못했다가 중동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 있어 실현되지 않았다.[39] 특히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의 군사적 요지이자 분쟁지역인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 골란 고원에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60km이다.[40]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도 이라크군은 조금만 사격을 받으면 곧바로 전차를 버리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걸프전은 물론 중동전쟁 전반, 심지어는 사우디가 최근 개입한 예멘 내전에서 후티 반군에게 사우디 정규군이 브래들리 등 미국제 무기를 빼앗기고 한심한 졸전을 펼치며 심지어는 사우디 국경까지 침략당하기도 했다.[41] 대표적으로 2016년~2017년 다마스쿠스 동부 동구타 지역에선 반군들끼리 내전이 일어나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고, 이를 막으려고 화해를 촉구하며 시위에 나선 점령지역 내 민간인들을 사살하는 막장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들 동구타 지역의 반군들은 시리아 정부군에 의해 토벌된다.[42] 2018년 현재는 해체된 상태.[43] 1989년 소련이 철군하고 소련의 지원을 받는 아프가니스탄 나지불라 정권을 1992년에 무너뜨린 뒤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에 평화를 가져오기는 커녕 서로 파벌싸움과 내전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80년대와 90년대 초 카르말 정권, 나지불라 정권때보다 더한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린 무자헤딘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44] 대표적으로 이슬람주의 반군이던 시리아 남부의 '쿠와트 샤밥 알 순나'와 동 콸라문 지역 반군 '리와 마그하위르 알 사하라' 같은 반군은 아예 아사드 정권으로 전향하여 2018년 8월 현재 정부군과 함께 수와이다 지역의 잔존 IS를 소탕하고 있다. 쿠와트 샤밥 알 순나는 정부군의 이들리브 공세에도 동참한다. 물론 시리아 반군에서는 이들을 대역죄인 배신자 취급중.[45] 2018년 8월 하순 HTS는 IS 점조직 대원들을 적발해 공개처형했다.[46] IS에 맞선 라카 탈환전 당시 이들은 라카 지역 수복 뒤 이들리브 반군들을 공략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터키의 침공으로 이뤄지지 못했다.[47] 알 누스라 전선으로 알려진 하이야트 타흐리르 알 샴, 탄짐 후라스 알 딘을 비롯한 알카에다 충성파 군소군벌, 터키 지원 시리아 국가해방전선(자브하트 알 와티니야 릴 타흐리르) 내 지하디스트 유입파들 다수[48] 사실상 주력 반군의 대다수가 이슬람 근본주의화 내지는 이슬람주의 반군화되었다는 것이다.[49] 리비아가 카다피 축출 이후로도 지금까지 대혼란을 겪은 주 이유가 부족갈등, 이권문제와 더불어 도처에 날뛰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통제하는데 실패한 점이 크다.[50] 보통 '헤즈볼라'라고 읽지만 타임에서 특별 발간한 Exodus TIME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실 후자가 더 정확한 발음으로, 아랍 사람들은[51] 창시자 리야드 알 아사드는 이러한 실체를 직시한 비판자들을 의식하여 2015년 정부군 이들리브 대패 후 이들리브를 직접 방문하였으며 그 의도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대세를 이루었다는 진실을 가리는 데에 있었고, 당시 국내의 일부 자유시리아군 지지자들도 리야드 알 아사드의 방문으로 자유시리아군의 건재함이 확인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반군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터키측의 선전에 불과했다. 당장 이들리브에서 승전한 비결은 알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의 작전 지휘에 있었다.[52]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2014년 초 내전의 승리를 확신하는 발언을 했는데 그 배경이 이런 반군들 사이의 분열상에 있었다. 이슬람 전선과 자유시리아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알 카에다 내부에서도 알 누스라 전선과 ISIL이 4자간 반목과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53] 복잡한 동맹 사항은 해당 블로그를 참조.[54] 알 누스라 전선은 시리아 그 자체에 한정된 이슬람국가 건설을 원했으며 이에 따라 아사드 정권을 격파하지도 못했는데 이라크 시리아에 걸친 국가건설은 시기상조라고 보았다. 하지만 ISIS는 알 카에다의 방침에 찬동했다.[55] 쿠르드어다. 영어로 번역하면 People's Protection Units[56] 실제로 미국이 TOW미사일을 지원한 자유시리아군 13사단은 알 누스라 전선에 된통 당해서 무기를 빼앗기고, 미국이 육성한 30사단은 알 누스라 전선에 장비를 모조리 헌납하고 같은 처지의 신 시리아군(NSA)는 장기간 훈련시켰음에도 ISIS와의 첫 전투에서 무기를 내던지고 도주하였다.[57] 코바니 공방전 이후 IS 장악 지역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며 현재는 아랍인 반군 세력 또한 많이 흡수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행각은 자제하는 중이다.[58] 소련 붕괴 이후부턴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을 버리고 민주연방주의 노선을 지향한다.[59] 아프린은 시리아 북부 알레포주의 쿠르드족이 통제하던 지역이였다.[60] 일단 미국에서는 어느정도 미국의 이해와 합치되는 세력이기에 쿠르드인들 다음가는 지원을 해주고 있으나 FSA들이 시리아민주군을 공격하는 트롤링을 저지르면서 갈등이 있다.[61] 이 폭격에 이스라엘군이 새로 도입한 F-35I(A) Adir가 시범적으로 투입됬다는 뉴스들이 있다.[62] 단 시리아는 세속국가로 이란 같이 이슬람 근본주의 통치는 하지 않는다.[63] 단 중국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해먹는 중국과 달리 시리아는 아사드와 바트당의 독재정권이긴 하나 대선과 총선도 하고 어느 정도 다당제 체제의 틀도 갖춰져있다.[64] 반대로 아사드도 IS와 싸우던 이라크를 지지했다.[65] 바레인, 모로코, 쿠웨이트는 2010년대 후반기 시리아 내전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아사드 정부군의 우위로 돌아가자 시리아 반군과 반아사드 성향의 망명 시리아 반정부 단체들에 대한 지지를 끊고, 아사드 정부를 사실상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사우디와 같이 친미/친서방 진영에 속해있긴 했으나 모로코와 쿠웨이트는 2017년 카타르 단교 사태때도 사우디 주도의 카타르 보복에 참여하지 않고 카타르를 지지하는 등 대중동 외교에서 사우디와는 다른 노선을 보이기도 했다.[66] 이들은 결국 공습으로 폭사하거나, 탈출하려다 오함마에 맞아 죽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67] 베이검은 영국 언론과의 2019년 2월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은 IS 선전영상 속 삶과 똑같았고, 쓰레기통에 담긴 참수된 민간인의 목을 보고도 어차피 비무슬림 이교도니까 별 감흥도 없었으며, IS가담에 대한 후회도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뻔뻔스럽게도 자기는 이제 영국에 다시 돌아가서 지내고 싶다고 영국에 송환을 요구했다. 일단 곧 출산될 아이가 기아로 인해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이에 대한 영국 여론은 '매우' 좋지 않다. 영국 토크쇼 진행자가 샤미마의 뻔뻔함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프로그램 설문의 90%이상 응답자가 입국을 거부하라고 할 정도. 이 자는 영국-방글라데시 2중 국적자로 알려졌기에 영국 정부는 결국 국적박탈 처리했으나, 방글라데시에서도 우리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서 무국적 상태가 되었다. 방글라데시 외무부에서는 '베이검은 우리나라와 아무 관계가 없지만, 만약 입국한다면 교수형에 처할 것'이라고 반응.#[68] 실제로 이 때문에 알레포에 남은 반군들은 알레포를 이탈하고 터키군에게 붙은 반군들을 단돈 200달러에 몸을 팔아먹은 배신자라고 욕하는 상황이었으나, 그렇게 배신자라고 부르던 HTS도 결국 이들리브로 밀려나 터키에게 의탁하는 처지가 되었다.[69] 미, 러 경제제재 확대… 양국 갈등 증폭 http://m.news.naver.com/read.nhn?oid=022&aid=0003128712&sid1=104&mode=LSD[70] 터키·러시아, 시리아 정전 조건 합의 2016/12/28 http://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61228_0014608089&cID=10101&pID=10100[71] 그러나 하타이 지역은 시리아가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었을 당시 시리아 영토였던 시절에도 터키인들의 인구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에 비해 이들리브와 북알레포는 시리아의 주류민족인 아랍인들이 더 많아 1939년 터키 귀속 당시에 터키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하타이와는 사정이 조금 다른 편.[72] 그러나 남오세티야와 압하스를 정식국가로 인정히고 대사급 정식 수교 관계를 맺은 러시아와 달리 아르메니아는 아르차흐 공화국을 정식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세한 건 아르차흐 공화국 문서 참조.[73] 사실 그리스와 터키, 터키와 불가리아의 앙숙관계만큼 덜 알려져서 그렇지.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 과거 오스만 제국 시기 터키의 지배를 겪었던 중동의 아랍 국가들도 역사적으로 반터키 감정이 몹시 심하다. 이라크의 경우 2000년대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과 영국이 터키의 이라크 전 참전을 고려하자 이라크 국민들과 정치권 수뇌부들이 결사적으로 터키군의 참전을 반대했을 정도였는데 자세한 건 터키/외교 문서 참조.[74] 크림반도는 러시아계, 하타이는 터키계가 다수이고, 합병을 공개적으로 찬성할 정도로 해당 국가의 지지율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