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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재까지 살아남은 수메르 찬가들 중 가장 유명한 '후리안 찬가 No.6'을 재현한 음악. |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음악.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수메르인의 출현으로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 지역을 제패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성행하였다. 특히 수메르인들의 점토판들 중 몇개는 음악에 관해 언급된다. 따라서 다양한 음악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는 있지만 이민족의 침입과 그에 따른 새로운 왕조의 수립으로 유물들이 많이 훼손이 되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고대 음악들이 그렇듯이 메소포타미아 음악도 굉장히 부분적으로만 알 수 있다. 발굴된 악기의 구멍이 5개이면 5음계, 줄이 6개이면 6음계, 등으로 추측하는 정도가 한계이다.
2. 상세
원래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곡들이 있었지만 현재 전해져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가장 유명하고 그나마 온전하게 보존된 곡이 '후리안 찬가(Hurrian Hymns)'다. 바로 위에 있는 유튜브 곡이 이 '후리안 찬가'를 재현한 곡. 기원전 1400년 경 시리아의 도시 우가리트에서 발굴된 토판에서 발견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온전한 작곡 음악으로 여겨진다. 우가리트 출신의 4명의 작곡가들이 모여 만들었으며 암무라비와 입살리라는 이름의 2명의 서기관이 악보에 옮겨적었다. 대부분의 곡조는 유실되었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것을 모아 재현한 결과 위와 같은 작품으로 부활했고 2009년에는 이걸 재해석해서 '우가리트의 메아리(Echoes from the Ugarit)'를 발표하기도 했으니 궁금한 사람은 들어봐도 괜찮다.#메소포타미아 음악은 화성이나 대위법이 없고 단선율 음악이 대부분이라, 화려한 다성음악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입장에서 듣기에는 소박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후리안 찬가의 내용 자체는 왕과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짧은 대음 반복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길이와 곡조의 찬송가인 것이다. 다른 찬송가들도 남은 걸로 추측해서 보면 대부분이 4행 구절이 단순하게 계속 반복된 구조의 것들로 연주하는 악기에 따라서 곡조나 음의 높낮이가 계속 달라졌다. 후리안 찬가는 신과 왕을 찬양하는 내용이지만 모든 찬가가 이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유행가 목록을 적은 아카드어 토판을 보면 노동자의 노래, 양치기의 노래, 사랑의 노래, 청년의 노래 등 그 장르도 다양했다. 물론 멜로디는 대부분이 유실되어서 복원하기조차 어렵지만 확실한 건 당시 고대인들도 다양한 음악을 즐겼다는 것이다.
음악은 아카드어로 '니구투(nigūtu)'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곧 '기쁨'과 '즐거움'을 의미한다. 음악은 삶과 분리할 수 없을만큼 필수적인 요소였고 악사들은 높은 대접을 받았다. 전문 악사를 기예라고 해서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던 동양에 비하면 천지차이. 사회적으로 악사와 가수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교도 있었다. 신전이 이 역할을 겸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음악학교에서는 전문적인 가수와 음악가들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후견을 양성했다. 음악가들은 왕족과 귀족 등 사회 고위층들과 원활히 교류했으며 대접도 일반 농부에 비하면 월등히 좋았다. 보통 친선의 의미로 도시 간에 음악가들을 교환하는 일도 있었으며 왕이 음악가를 얼마나 데리고 있느냐는 곧 그 왕의 권위와 부를 나타내는 지표였다.
우르 제3왕조 시대의 명군 슐기 왕은 음악을 대폭 장려했다. 하지만 유독 갈대 피리만큼은 싫어했다. 그 이유는 음악은 자고로 사람에게 기쁨과 낙을 가져다주어야 하는데 갈대피리의 처량한(...) 음색은 영혼에 슬픔을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갈대를 제외한 다른 모든 악기들은 매우 좋아했기에 슐기 왕은 음악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악사 양성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우르 제3왕조 시대의 가장 유명한 음악가 '다다(Dada)'는 메소포타미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음악가로 여겨진다. 다다는 단순한 악사는 아니었고 축제 개최, 왕실 행사 주관, 악기와 엔터테인먼트 주관, 심지어는 축제에 쓸 새끼 곰까지 관리하는 등 온갖 사무를 다 맡았다. 아들들도 성공해서 왕의 직속 음악가로서 명성이 굉장히 높았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다다보다는 못한 삶을 살았겠지만 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음악가의 위상이 상당했음을 알려주는 일화다.
3. 악기와 연주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다양한 악기를 썼는데 클래퍼와 스크래퍼, 딸랑이, 시스트라, 심벌즈, 벨, 드럼 같은 타악기 뿐만 아니라 오보에, 플루트, 팬파이프 같은 관악기도 썼다. 가장 대접이 좋았던 건 배우는 데 노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현악기였다. 주로 하프, 류트, 리라 등을 썼다. 10개의 현이 있는 리라의 몸통은 황소, 송아지, 당나귀 등 다양한 동물들의 형상을 따서 만들었고, 동물의 다리처럼 만든 받침대로 악기를 받쳤다. 일부 학자들은 몸통에 쓰인 동물이 곧 리라의 높낮이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황소 머리 리라는 베이스, 소 머리 리라는 테너, 송아지 머리 리라는 알토라는 것. 그 외에 류트는 기원이 확실치는 않으나 우루크 시대의 인장에도 등장하는 등 굉장히 오래전부터 썼다고 한다.현재 메소포타미아의 악기들 중 보존된 건 거의 없다. 현악기 11개, 거문고 9개, 하프 2개만이 회수되었으며 모두 우르의 왕립 묘지에서 발굴됐다. 개중 가장 유명한 건 '우르의 리라'라고 해서 총 4개의 리라들인데 2개는 대영박물관, 1개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박물관, 1개는 이라크 박물관에 있다. 다만 개중 이라크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것은 '우르의 황금 리라'라고 불렸는데, 이건 이라크 전쟁의 바그다드 공습 도중 약탈자한테 털렸다. 약탈자들이 금과 진주로 만든 황소 장식을 죄다 벗겨버리고 부순 다음 남은 잔해들을 침수된 지하주차장 바닥에 버려버린 것. 금을 벗기는 과정에서 악기를 아예 망가뜨려놔서 복원도 불가능했다. 현재 전시된 건 복제품이다.
왕립 묘지에서 발굴된 다른 악기들에는 한 쌍의 은 파이프와 드럼, 시스트라, 심벌즈 등이 있었다. 기원전 3200년 경에 만들어진 키시의 두쌍 구리 클래퍼도 있으며 베를린 박물관에는 아시리아식 종이 있다. 님루드에서는 3개의 뚜렷한 음을 내는 뼈로 만든 호루라기가 발견된 적도 있지만 사회혼란 통에 사라졌다.
음악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도구이자 예술로써 그때도 매우 중요하게 대우받았다. 종교적으로 제례 도중 음악이 쓰이는 건 당연했다. 마리에서 발굴된 벽화를 보면, 도시의 신상 앞에 리라를 놓고 리라 오른쪽에 가수들이, 왼쪽에 오케스트라가, 오케스트라 뒤에 여성 합창단이 선 자세로 노래부르는 모습이 나온다. 의식의 내용은 신에게 제발 도시를 떠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내용. 벽화를 만들 당시 도시의 상황이 많이 안좋았는지 도시와 신전이 파괴된 것, 그리고 신들이 욕보여진 것, 그리고 성전과 제사장들의 없어진 것 등 온갖 종류의 것들을 애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슬픈 일에만 쓰이는 건 아니었고 전쟁 승리를 축하하거나 신에게 정기 제사를 지낼 때도 음악을 썼다. 지혜의 신 에아에게 황소를 산제물로 바칠 때 드럼을 사용해 박자를 넣었고 오보에 비슷한 악기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음악가마다 요구되는 스타일이 달랐는데 종교적 성악가는 종교적 구호를 강조하고 집중하기 위해 아름다움보단 거칠게 노래해야 했고, 사회적 성악가들은 아름다운 선율이 강조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악기인 리라의 모습.
기원전 2600년경의 우르 지역의 세공 벽판. | 기원전 2000년경의 수메르 점토판 |
우르의 왕릉에서 발굴된 황소머리 리라. 무려 4500년이 넘은 악기이다. |
우르의 버팀목에 그려진 연회 그림을 보면, 연주자는 가죽으로 연결된 리라를 앞에서 연주하고 있으며, 당시 리라의 현의 개수와 연주 방식, 모습 등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직업으로서의 음악인이 존재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악기에는 황소머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메르의 황소 모양의 입식 리라가 그 예이다. 가벼운 것은 옮겨 다닐 수 있는 정도이고 크기가 1m가 넘는 입식 황소 리라도 있다.
4. 음악
세계 최초의 작곡가도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왔다. 그 주인공은 아카드 제국의 공주 '엔헤두안나'(Enheduanna). 기원전 2300년 경에 활동한 난나 여신의 사제이자 사르곤 왕의 딸이었는데 공주이자 시인, 사제이자 작사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이난나 여신에게 바치는 여러 찬가를 포함해 수많은 곡들을 작곡했는데 유난히 이 엔헤두안나의 곡들은 보존이 잘되어 있어 현재까지도 무려 50여 곡이 남아있다. 그녀가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그녀의 작품 속에서 스스로를 1인칭으로 말하는 자전적인 내용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신이나 왕을 찬양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작품 속에서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세계 최초의 시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녀가 남긴 작품들은 바빌론에서도 인기가 많아서 이후 수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기원전 1800년경의 바빌로니아인들은 음악에 대한 더욱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그중에 하나는 7음 온음계를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현악기 조율 지침이 있다. 이러한 음계는 고대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기원전 1400~1250년경 우가리트에서 음악에 관한 석판이 발견되었는데, 아마 달의 신의 부인인 니칼에게 바치는 찬미가로 추정된다.
‘길가메시 서사시’도 일종의 음악으로 볼 수 있는데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 문자로 가사는 알아낼 수 있지만 음악을 완전하게 재현할 수는 없다. 불멸의 생을 찾아 여행에 떠나다 만난 여신이 한 말을 기록한 내용이다. 매우 현세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