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6 22:48:09

바빌론

파일:external/kingofwallpapers.com/babylon-008.jpg
3D 복원도. 한가운데에는 푸른 빛의 바빌론의 문이, 옆에는 바벨탑으로 알려진 마르두크의 대신전이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이름 한국어 바빌론
영어 Babylon
아랍어 بابل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19년
등재기준 (iii)[1], (vi)[2]
지정번호 278

아카드어: 𒆍𒀭𒊏𒆠 (Bābilim, Bābili)
아람어: ܒܒܠ‎‎ (Bāḇel)
히브리어: בָּבֶל‎‎ (Bável)
고대 페르시아어: 𐎲𐎠𐎲𐎡𐎽𐎢𐏁 (Bābiruš)
고대 그리스어: Βαβυλών (Babylṓn)
라틴어: Babylon / Babylonia
아랍어: بَابِلُ‎‎ (bābilu)
영어: Babylon

1. 개요2. 역사3. 특징4. 트리비아

1. 개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남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인류 문명 초창기의 관개농업을 시행한 도시들 중의 하나이고, 현대의 시계에도 사용되는 60분 체계를 확립했으며, 잉여 자원을 통해 교역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도시.

주로 성경에서 자기 나라를 멸망시킨 바빌로니아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 의해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 찬 악의 도시, 복마전 등과 같은 이미지[3]로 서구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 한국에도 기독교의 영향으로 오만한 인간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서 높은 탑을 쌓다가 천벌을 받는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빌론이다. 또 서아시아 문명의 중심지로서 장기간 큰 영화를 누린 것 때문에 화려한 대도시, 위대한 제국의 수도 같은 이미지로도 많이 등장한다.

2. 역사

기원전 2000년대 수메르족과 아카드족의 여러 도시들이 한참 이전투구를 벌이던 시절, 셈족의 일파인 아모리족은 바빌론을 세우고 조용히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이후 도시국가 바빌론이 확장된 영토국가 바빌로니아가 되어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마침내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석권하는 대국이 되었다. 이후 함무라비 대왕 등의 명군들에 의해 번영이 계속되면서 바빌론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의 수도'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4]

바빌로니아가 망한 뒤 아시리아 등 여러 제국들의 패권이 이어진 뒤에도 바빌론은 여전히 주요 대도시로서 건재했다. 아시리아가 망한 후 칼데아인들에 의해 신바빌로니아가 세워지자 바빌론은 다시금 '세계의 수도'로 재등장한다. 그 전성기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치세로 당시 인구만 약 15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였다. 하지만 재건한 지 몇세기 만에 다시 키루스 2세페르시아에게 멸망당했다.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는 수사, 페르세폴리스, 엑바타나와 함께 4대 대도시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3세는 바빌론을 수도로 삼았고 바빌론에서 죽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바빌론을 차지한 셀레우코스 왕조는 바빌론 옆에 셀레우키아라는 새로운 대도시를 조영하여 바빌론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5] 또한 전쟁 중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바빌론까지 밀어붙이는 기염을 토했다. 파르티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한 후에는 셀레우키아 옆에 새로운 도시 크테시폰을 만들었고 이 크테시폰이 사산 왕조 시대에도 수도가 되면서 바빌론은 완전히 쇠락하였으며 바빌로니아인들은 파르티아/페르시아인에게 동화되었다. 이후에는 로마 제국트라야누스 황제가 파르티아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 때 수도인 크테시폰을 털어버린 후 이곳에 성지순례땅밟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바빌론은 사라졌어도 풍요로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계속 오리엔트 세계의 중심지로써의 지위를 누렸다. 바빌론의 위상을 대체한 크테시폰이슬람교 발흥 이후 사산 왕조에 쳐들어온 아랍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그 옆에 또다시 새로운 도시 바그다드가 세워지면서 수백 년 동안 번영하였다. 하지만 수천 년에 걸친 집약적 관개 농업으로 토양의 염화, 사막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으며 훌라구몽골군이 바그다드를 파괴한 뒤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현재의 이라크 꼴이 되어버렸다.

3. 특징

당시 바빌론의 거대함과 아름다움은 여러 문헌에서 많이 거론되며 특히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바벨탑바빌론의 공중정원으로 유명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성경 속에서나 나오는 전설 중 하나로 치부받았으나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6]가 찾아내면서 실존했던 도시임이 드러났다. 전설적인 고대 바빌론의 문도 이 도시에서 발굴되었다.

도시의 규모는 당대 최고 크기였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도시 건축에 사용된 기술들은 현대에 와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는데 기원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대도시이자 당대 최신 기술의 산물이었던 곳이었다.
  • 도시의 여러 건물과 문들에 구워서 만들어낸 흙벽돌과 아치 기술이 사용되었다.
  • 성벽 높이는 14m, 짧은 쪽 성벽의 길이는 18km, 긴쪽은 72km에 달하며, 3중 성벽 중 제일 안쪽의 성벽의 경우 8마리의 말이 동시에 달려도 넉넉할 만큼 너비가 넒었다고 한다. 성벽 바로 밖은 강과 연결된 거대한 해자에 둘러싸여 있었고 해자를 넘어 도시로 통하는 8개의 성문과 연결된 튼튼한 석조 다리들이 있었다.
  • 각각의 성문에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적들이 혐오하는 문이라는 뜻인 우라쉬(Urash), 침입자들이 싫어하는 문이라는 뜻의 자바바(Zababa) 잡아봐, 군인들을 지켜주는 문이라는 뜻의 아다드(Adad), 전쟁의 신이 지키는 문이자 정문인 이슈타르 문 등.
  • 유프라테스 강을 활용해 해자의 물이 도시 내부의 토관과 연결되어 생활용수로 사용되었다.
  •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하수관을 건설해 운영한 도시이다.
  • 역청, 즉 아스팔트를 깔아 포장한 벽과 도로가 존재했고, 하수도 등에도 아스팔트를 이용해 물이 새는 것을 막았다.

4. 트리비아

  • 2012년, EBS에서 직접 현지 답사를 통해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 사담 후세인이 고대 도시 바빌론을 복원하고 싶어했고, 그 결과 지금 바빌론 유적지에 가보면 실제 바빌론 유적은 땅 속에 묻혀있으며 그 위에 현대식으로 복원되어 있다.

[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2]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3] 이 정도로 싫어하는 국가는 로마 제국뿐이다.[4] 이후 역사에서는 로마,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장안, 파리, 런던, 뉴욕처럼 '세계'를 석권한 나라들의 대도시들이 명성을 계승하게 된다.[5] 그러나 바빌론인들의 영향력은 커졌다. 헬레니즘 건축양식에는 바빌론 건축양식이 도입되고 소수의 그리스&마케도니아인들은 바빌론의 신을 믿기 시작했다.[6] 1855~1925. Robert Koldewey, 독일의 고고학자로 18년간 바빌론 유적을 발굴, 바빌론이 실제한다는 사실을 밝힌 인물이다. 바빌론의 문도 이 사람이 발굴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