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2-24 00:11:43

사산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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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년 호스로 2세 시대 최대 강역[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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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년 ~ 651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파르티아 정통 칼리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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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이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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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반드 왕조|
카린반드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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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반드 왕조|
바반드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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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두스판 왕조|
바두스판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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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11594> 위치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 일부
수도 크테시폰
정치체제 봉건 군주제
국가원수 샤한샤[4]
주요 황제 아르다시르 1세
샤푸르 1세
샤푸르 2세
카바드 1세
호스로 1세
호스로 2세
언어 중세 페르시아어 (공용어)
그 외 다수[5]
종교 조로아스터교 (국교)
그 외 다수[6]
면적 3,500,000 km² (550년)

1. 개요2. 국호3. 역사4. 정치5. 종교6. 인구7. 민족 구성8. 사회 계급9. 군사
9.1. 지휘 계통과 편제9.2. 병과
10. 경제11. 문화
11.1. 건축11.2. 조각11.3. 수공예
12. 역대 샤한샤13. 언어별 명칭14. 대중 매체에서15. 둘러보기

1. 개요

사산 왕조(Sasanian dynasty)는 224년부터 651년까지 약 400여 년간 존속했던 이란 제국과 그 지배 왕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산 가문의 아르다시르 1세가 건국한 직후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를 멸망시켜 서아시아의 패권국이 되었고, 수백 년 동안 지중해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과 함께 서반구를 양분하는 강대국으로 군림했으나 7세기 초 아라비아에서 발흥한 이슬람 제국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사산 왕조는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예를 자처한 동시에 자신들을 이란인(Ērān)으로 명명하여 이란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슬람교의 도래 이후 아랍인에서 튀르크인, 몽골인 등 수많은 이민족들이 유입되어 이란 일대를 지배했지만, 이란인들은 거꾸로 이민족 지배자들을 문화적으로 동화시키며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해 냈다. 그러므로 그 정체성의 근간인 사산 왕조는 이란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페르시아인/이란인들은 이란 본토 바깥의 여러 제국들에서도 학자, 관료, 문필가, 지식인 계급으로 중용되었고, 페르시아 문화는 전근대 서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페르시아 문화의 기반도 대부분 사산 왕조 시대에 형성된 것이므로, 사산 왕조의 역사는 해당 지역사 연구에 있어서도 참고 자료로서 중요하다.

2. 국호

페르시아인들이 사산 왕조의 주도 세력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이름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7]이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파르티아,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연달아 나오기 때문에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헷갈리기 쉽다. 심지어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수도마저 같기에 어떤 나라와 교역했는가로 구분해야 한다.

사산 왕조란 말 그대로 제국의 황실인 사산 가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산 가문의 이름 유래는 아르다시르 1세 문서를 참고하면 된다. 영어로 쓸 때는 보통 Sassanids, Sassanid Empire라고 쓰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페르시아어 ساسانیان(sāsānīyān, 서서니연) 표기에 더 가까운 Sasanians, Sasanian Empire라는 표기를 더 선호한다.
an mazdesn bay šābuhr šāhān šāh ērān ud anērān kē cihr az yazdān, pus mazdesn bay ardaxšēr šāhān šāh ērān kē cihr az yazdān, nab bay pābag šāh, ērānšahr xvadāy ham.
나, 이란인과 비이란인의 왕중왕, 신들의 후손, 마즈다를 믿는 주(主) 샤푸르는 이란인의 왕중왕이자 신들의 후손이며, 마즈다를 믿는 주 아르다시르의 아들이고 왕, 주 파박의 손자이며 이란국의 군주이다.

샤푸르 1세 시대에 새겨진 카바예 자르토슈트 비문 中[8]

사산 왕조 당대에 쓰인 국호는 Ērānšahr(에런샤흐르)였는데 중세 페르시아어로 '이란인(Ērān)의 국가/영토/영역(šahr)'이라는 뜻이며, 샤푸르 1세 시대 페르시아어/파르티아어/그리스어 3중으로 새겨진 '조로아스터의 카바'(Ka'ba-ye Zartosht) 명문에서 처음 등장한다. (상기 인용) 해당 명문에서 페르시아어 Ērānšahr에 대응하는 파르티아어 단어는 ’ry’nhštr (aryānxšahr), 그리스어 단어는 ΑΡΙΑΝΩΝ ΕΘΝΟΥC(Arianōn ethnous)이므로 당시에는 Ērān이 아리아인이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국호 Ērānšahr는 오늘날 이란 국호의 직접적인 기원이기도 하다. 사산 왕조가 멸망한 뒤에도 이슬람 세계에서 지적 활동을 주도한 페르시아어 문필가들 사이에서 이란이라는 표현이 관념적으로 남아 있다가, 일 칸국에서 이란 땅(Irān-zamin), 티무르 제국에서 이란과 투란(Iran o Turan)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현실 정치에서 부활하여 사파비 제국부터 정식 국호로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사산 왕조의 사산은 Sassanid 혹은 Sasanian을 음역한 것이다. 오히려 중국 및 한자 문화권에선 사산(Sassan)이 아닌 파르스를 음차한 波斯國(파사국)이라고 불렀다. 신라 승려 혜초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에서도 파사국이 등장한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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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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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로 1세의 궁정
사산 왕조의 정치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산 왕조 이전 이란을 지배했던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 제국의 통치 체제를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아르사케스 왕조는 매우 지방분권적인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아르사케스 가문은 명목상 제국 전체의 지배자이지만 실질적으로 제국 전체의 말단 영지들까지 속속들이 통제할 수는 없었고, 가장 강력하고 유서깊으며 권위있는 가문으로서 다른 귀족 가문들의 지지와 복종을 받아내어 통치권을 유지했다.

중앙 정부가 지방 세력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그들과 적당히 타협하여 통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전근대 국가에서 일반적인 현상이다. 군주가 아무리 막강한 중앙집권화를 이루고 거대한 관료제를 운용한다 해도 전근대 기술 수준의 한계 때문에 국가의 최말단 지방까지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사케스 제국은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방 분권화가 심한 편이었다. 당장 사산 왕조의 발상지인 파르스 지역부터가 중앙정부의 관료가 아닌 번왕이 통치하는 지역이었고, 제국 내에 그런 번왕 혹은 속국 왕조가 한둘이 아니었으며 귀족들 역시 자기 영지에서 왕과 다름없는 권한을 누렸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와의 전쟁에 연달아 패배하여 아르사케스 황실의 권위와 실력이 점점 실추되었고, 급기야 파르스 번왕 지위를 찬탈한 사산 가문이 불과 10년 만에 아르사케스 황실의 중앙군과 정면대결을 벌여 격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산 왕조는 아르사케스 왕조의 이러한 통치로 이란이 분열되고 약해졌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시도했다. 아르다시르 1세 시대부터 이미 속국 왕조들을 축출하고 그 자리에 황족들을 분봉왕으로 앉혀 지방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또 황제를 정점으로 대규모 관료 조직을 구축하고,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아 교리와 경전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사제 집단 역시 정부의 중앙집권화에 동원하였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의 구체적 적용 양상이 어떠했는지는 사료 부족으로 알기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사산 왕조는 아르사케스 왕조 시대에 비해 큰 차이가 없는 영역과 자원을 가지고서도 로마를 상대로 훨씬 공세적이고 대등한 대결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강한 중앙정부' 모델은 수백년 동안 중앙과 지방에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귀족들의 이해관계와 정면 충돌하는 일이었으며, 황실이 가진 군사력도 한계가 있었기에 이들을 모조리 뿌리뽑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사산 왕조의 국가적 역량은 황제 개인의 능력과 카리스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사산 왕조의 역사가 상당 부분 황제와 귀족들 사이의 투쟁으로 점철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카바드 1세호스로 1세의 개혁 역시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다. 황제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바로 귀족들에게 제거당하는 상황에서 강한 중앙정부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므로, 귀족들의 힘을 줄이고 그만큼 중앙정부를 강화시키는 것은 꼭 필요한 작업이다. 마침 제국에 닥친 미증유의 위기와 마즈다크교의 준동이 개혁을 위한 적절한 환경을 제공했고, 카바드 1세와 호스로 1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개혁의 핵심은 조세 방식, 그중 특히 지세에 관한 것이었다. 기존 방식은 매년 정부의 징세관들이 각 지역에 파견되어 소출을 파악하고 현물로 거두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실제로 세금을 거두기 전에는 예산을 함부로 편성할 수 없었고, 대귀족들이 넓은 땅을 가지고 있어 황제에게 군사력을 제공하거나 고위관료로 복무하는 대신 독자적인 조세 권한을 가지는 등 비효율과 착취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일반 평민들은 이에 더해 화폐로 인두세까지 납부해야 했다. 그런데 마즈다크교가 선동한 대규모 폭동 때문에 많은 귀족들이 죽거나 쫓겨났고, 오랜 기근과 약탈로 농토가 황폐해져 조세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할 필요성이 생겼다.

카바드 1세와 호스로 1세 휘하의 관료들은 매년 수확량을 확인하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대신 명시적인 토지 대장을 만들어 소유주, 지목, 생산량 등을 기록한 뒤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액수의 세금을 화폐로 납부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대귀족들의 면세 세습 토지가 늘어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정부의 조세 수입을 늘리며, 그 양을 예측 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재정의 효율성을 늘리겠다는 취지였다. 세금을 정액화함으로써 발생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판관(주로 지역 사제) 주재 하에 지목, 생산량 등을 조정할 수 있게 했고, 인두세의 대상 역시 20세 이상 50세 이하로 제한되었다. 이 개혁이 과연 봉건 대귀족들의 세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후대 아랍인들이 크테시폰을 정복했을 때 발견한 엄청난 양의 화폐를 보면 최소한 "국가 재정의 효율화"라는 목표는 달성된 것이 확실하다.[9]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데흐건'(Dehgan 혹은 Deqhan) 계급의 대두이다. 데흐건은 소규모 토지 보유자를 가리키는 말로 원래 그리 중요하지 않은 하급귀족 분류였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조세 개혁과 토지대장 작성으로 많은 평민 혹은 하급귀족 토지 보유자들이 생겨났고, 중앙정부로부터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은 이들은 지방 향촌에서 정부의 행정 집행(주로 징세)을 직접 담당하거나 보조하면서 새로운 계급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독자적인 영지를 가진 봉건귀족들과 달리 이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통제를 대행하는 것이었으므로 데흐건의 대두는 단기적으로 중앙정부의 강화에 기여했다. 단 정부의 적절한 관리가 없을 경우 그대로 지역에 뿌리를 내린 데흐건들이 사실상 봉건귀족들과 다를 바 없어지게 되는 문제가 있었는데, 실제로 사산 왕조 말기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데흐건들은 이란의 황실과 정부, 대귀족 세력들이 아랍인들의 공세에 모두 무너져 사라진 뒤에도 아랍 정부 치하에서 지역의 관리자로써 상당수 잔존할 수 있었다.

5. 종교

사산 왕조의 국교는 조로아스터교였으며 왕조 초창기에는 조로아스터교 대사제 카르티르(Kartir)가 막강한 권세를 누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 향촌에서 토지 대장을 관리하거나 재판권을 가지는 등 조로아스터교 사제 집단과 국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인들의 민족 종교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사산 왕조 당국은 비 이란계 피지배 민족들에게 조로아스터교를 포교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산 왕조의 수도권이자 인구 밀집 지역인 아소리스탄(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인구 상당수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는 비 이란계 민족들이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기독교 공인 이후 이란 당국은 이들이 같은 기독교인 로마 제국과 내통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했고, 기독교도 주민들과 조로아스터교도 주민들 사이에 종교 문제로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여러 차례 기독교 박해와 학살이 일어났지만, 이미 인구 상당수가 기독교도였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죽이거나 추방하면 이란 입장에서는 국력에 심각한 타격이 되므로 그 규모는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의 박해에도 이란 내의 기독교도 인구는 크게 줄지 않았고, 역으로 동쪽으로 점점 교세를 확장하여 이란과 교역하던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도 네스토리우스파가 퍼지게 되었다. 이란 내 주류 종파인 네스토리우스파가 로마 제국에서 이단으로 단죄받자 이란 측의 의심도 줄어들었다.

한편 아르메니아와 캅카스 지역에선 단순히 기독교 탄압을 넘어 조로아스터교로의 개종을 강요하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와 캅카스에서 유독 그랬던 이유는 사산 왕조 당국이 이 일대를 조로아스터교 권역의 일부로 보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도입 이전 이 지역의 종교는 토착 아르메니아 신화를 바탕으로 해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다신교 신앙이 주류였다. 또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부터 오랫동안 이란계 세력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란과 인적 교류가 활발하여 문화적으로 매우 가깝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수백 년 동안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서 헬레니즘-로마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 이란의 아르사케스 왕조가 아르메니아와 캅카스 지역 왕조들을 전부 아르사케스 가문의 분가로 교체해 놓았기 대문에 사산 왕조가 이란의 아르사케스 왕조를 무너뜨린 뒤에는 당연히 이들과 적대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사산 왕조는 아르메니아의 기독교화를 '조로아스터교 권역의 일부가 로마의 괴뢰로 넘어간 것'으로 여겼고, 캅카스의 아르사케스 왕가들을 전부 축출한 뒤에 적극적으로 조로아스터교 개종을 강요한 것이었다. 이런 개종 시도는 바르단 마미코니안의 봉기(451년) 등 현지인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고, 사산 왕조는 현지 귀족들로부터 충성을 받는 대가로 그들의 기독교 신앙을 인정해야 했다. 이후 아르메니아인 후궁들이 제국 내 기독교도 동포들을 후원하거나, 아르메니아인 장수들이 전공을 세우며 아르메니아 기독교도들의 입지가 점차 개선되었다.

제국의 동부에서는 인도계와 중앙아시아계를 중심으로 불교도 널리 유행했다. 다만 이전 파르티아와 다르게 사산 왕조에서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화하는 과정에서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을 중심으로 불교를 적극 탄압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불교 교세는 고대에 비해 많이 약화되었다 한다. 그래도 파르티아 시기에 불교가 유행했던 덕분에 마니교에 불교 교리와 수행 방법의 많은 부분이 도입되었다. 불교의 환생이나 비폭력채식을 강조하는 교리가 마니교에 그대로 들어갔다.

야즈데게르드 1세는 모후 슈샨두흐트가 유대인이었던 영향으로 유대인에게 우호적이었으며 이스파한에 대규모 유대인 거주지를 신축하기도 했다.

왕조 초창기에는 조로아스터교의 변종 분파인 마니교가 창시되어 상당히 교세를 떨치기도 했다. 샤푸르 1세가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를 직접 만나 우호적으로 대할 정도였다. 그러나 샤푸르 1세 사후 권세를 휘둘렀던 대사제 카르티르를 중심으로 조로아스터교 세력들의 반발이 심해졌고, 결국 대대적인 탄압을 당해 지하로 숨어들거나 국외로 도피하여 명맥을 이어나갔다.

조로아스터교에서 갈라져나온 종교 중에서 마니교 다음으로 유행했던 종교로는 마즈다크교가 있다. 마즈다크교는 마니교와 유사하지만 대신 마니교의 염세주의와는 다른 쾌락주의적 성향이 있었다. 이 외에도 마즈다크교는 원시공산주의에 기반을 둔 개혁주의 분파로 모든 재산을 평등하게 나눌 것을 주장하는데, 바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대신 마즈다크의 의견을 중용한 카바드 1세가 귀족들과 마기들의 권한을 제한하고 동양의 춘대추납과 비슷한 형태의 복지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마즈다크교는 결혼 대신에 남녀가 서로의 짝을 공유할 것을 주장하는 파격적인 가치관을 두었다 하는데, 마즈다크가 정확히 이런 가르침을 전파했다기보다는 마즈다크교가 도시 빈민 계급에게 인기를 얻었다는 점 때문에 생긴 이미지로 보인다. 마즈다크교 신도 상당수는 도시 빈민들이었고 이들은 페르시아 귀족들의 하렘에서 여자들을 납치하는 일이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6. 인구

문서 최상단의 지도에 나와 있듯이 사산 왕조의 평상시 영역은 현대 이란+이라크 국경에서 동-서로 조금 늘어난 수준이다. 수도인 크테시폰이 영역의 서쪽 끝부분에 치우쳐 있는데, 이는 사산 왕조 인구의 상당수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자원을 확보 가능한 이란 남서부~남부의 후제스탄, 파르스, 케르만과 북서부~북동부의 하메단, 레이, 호라산, 마잔다란의 산간 및 고원 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사막 혹은 건조기후대이기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거의 없다. 따라서 당시 이란의 국력은 상당 부분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왔는데, 그렇다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영유하던 것도 아니었고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의 상류 유역인 서북부는 로마령이었다. 이것만 가지고는 통합된 로마 제국은 물론이요 동로마 제국만 따져도 인구와 경제력에서 크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고대 국가의 인구는 매우 부실한 기반을 가지고 추론할 수밖에 없으므로 정확한 숫자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기록이 많이 남은 편인 중세 말~근세 기준으로 비교해도 사산 왕조의 영역과 동로마 제국 영역의 인구 차이는 매우 컸는데,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에서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인구 4,000만에 로마제국을 우습게 보는 초강대국이라고 썼지만 실제론 아니다. 근대 왕조인 사파비 왕조 때도 몽골 제국의 침략 당시 농경지가 상당부분 황폐화되고 이후 목초지로만 활용되는 상태에서 회복하지 못해 인구가 고작 464만에 불과했고, 1920년대에 와서야 인구가 1,000만이 넘었고 이후 오일머니의 기운으로 8,000만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이란은 주적인 로마 이외에도 영토 정반대편인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으로 강력한 유목민 세력이 수 차례 침공해 오는 다중전선 상태에 있었고, 북서쪽 코카서스 지역이나 남쪽 아라비아 지역에서도 외침이 이어졌다. 따라서 사산 왕조는 더 부유하고 강력한 적국과 인접한 곳에 수도와 인구, 농업 생산력 등 모든 것이 몰려 있어 으레 말하는 군사적인 종심이 굉장히 짧았던 약점을 지닌 채[10], 다른 지역들까지 전부 방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려면 유사시 위험 지역에서 빠르게 병력을 동원해야 했는데, 고대의 행정·교통·통신 기술 수준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군인 귀족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병력 양성을 맡기는 봉건제 뿐이었다. 이 때문에 사산 왕조는 황실을 좌지우지하는 대귀족들의 병폐에 시달리면서도 군대의 핵심을 담당하는 이들을 완전히 축출할 수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사산 왕조의 멸망 역시 카바드 1세 이후 시작된 황실의 중앙집권적 개혁과 이에 반발하는 대귀족들 사이 갈등이 극에 달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거의 같은 지정학적 조건에 처해 있었던 파르티아가 1세기 동안 수도가 3번 약탈당하는 굴욕적인 전적을 보이다 망한 것이나, 먼 훗날 동로마-사산 구도를 거의 그대로 재연한 오스만-사파비 제국 간 충돌에서 사파비 제국이 메소포타미아는 물론이고 아제르바이잔마저 수시로 빼앗기며 열세였던 것에 비하면 사산 왕조는 멸망 전까지 400년 동안 로마를 상대로 호각 이상의 전적을 보이며 선전했다. 이 점에서는 취약한 기반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제국을 경영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동북방에서 밀려드는 유목민에겐 취약했다. 전 왕조인 파르티아는 사산조보다는 유목민에게 대응을 효과적으로 한 편이며, 먼 훗날 이란을 재건한 사파비 제국은 오스만에게는 상당히 밀렸을지언정 유목민 한정으로는 거의 일방적으로 털어버리는 강력한 모습을 보였으며 동북방 경계도 당연히 사산조나 파르티아에 비하면 훨씬 멀리 뻗어 있었다. 이유는 사산 왕조 시대에 이르러 에프탈돌궐 같은 강력한 거대 유목 세력이 부상한 탓이 크다. 반면, 파르티아의 경우 당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들은 군소세력으로 할거하고 있었는데다 그나마 강한 세력이었던 월지인들은 인도 영토로 밀고 들어가 쿠샨 왕조를 세웠기에 충돌할 여지가 적었고, 사파비의 경우 유목 제국이 쇠퇴하는 16세기 경의[11] 국가였기 때문이다.

파일:attachment/shahrestan.jpg
그림 7 - 사산 왕조 말기 주요 도시와 지역들을 표시한 백지도. 제국의 인구 분포를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출처] 현재도 이란의 인구 분포는 사산조 시절과 비슷하다.

사산 왕조의 역대 황제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아르다시르 1세, 샤푸르 1세, 샤푸르 2세, 카바드 1세, 호스로 1세 등 도시 조영 사업에 힘썼던 황제들은 거의 대부분 메소포타미아와 그 인근 지역에 도시를 만들었다. 위 지도에서 황제 이름이 들어간 도시들이 그것들이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의 물을 이용하기 위한 운하와 관개 시스템 구축 사업 역시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이는 아랍인들이 크테시폰을 파괴한 지 100여 년 뒤에 바그다드를 건설하고 번영할 때까지 이어져서, 당시 바그다드는 수많은 운하와 도랑, 거대한 농경지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수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도 카나트(Qanat)라는 지하 관개 수로를 이용해 최대한 넓은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7. 민족 구성

(...) imâ : dahyâva : tyâ : manâ : patiyâisha : vashnâ : Auramazdâha : adamshâm : xshâyathiya : âham : Pârsa : Ûvja : Bâbirush : Athurâ : Arabâya : Mudrâya : tyaiy : drayahyâ : Sparda : Yauna : Mâda : Armina : Katpatuka : Parthava : Zraka : Haraiva : Uvârazmîy : Bâxtrish : Suguda : Gadâra : Saka : Thatagush : Harauvatish : Ma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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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은 내게로 온 지방이니, 아후라마즈다의 은총에 따라 나는 그들의 왕이다. 페르시아, 엘람,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 바닷가 지방들(시리아, 페니키아), 리디아, 이오니아, 메디아, 아르메니아, 카파도키아, 파르티아, 드랑기아나(발루치스탄 일대), 아리아(헤라트 일대), 호라즘, 박트리아, 소그디아나, 간다라, 사카, 사타기디아(페샤와르 일대), 아라코시아(칸다하르 일대), 마카(오만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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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1세의 베히스툰 명문 출처
(...) ērānšahr xvadāy ham. ud dāram šahr pārs, pahlav, hūzestān, mēšān, āsūrestān, nodšēragān, arabestān, ādurbāyagān, armin, viruzān, segān, arrān, balāsagān, dā frāz ō kab kōf ud arrānān dar, ud hamag parišxvār kōf, māy, gurgān, marv, harēv, ud hamag abaršahr, kirmān, sagestān, tūrestān, makurān, pāradān, hindūgān, kušānšahr, dā frāz ō pašakbur, ud dā ō kāš, suvl sugd, ud cācestān, ud az hān ālag drayā, mazūnša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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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국의 군주이다. 다음 지방[13]들을 소유하고 있다. 페르시아, 파르티아, 엘람, 메샨[14], 바빌로니아[15], 아시리아[16], 아라비아[17],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이베리아, 세간[18], 캅카스 알바니아, 발라사간[19], 캅카스 산맥과 알바니아 관문까지, 파리슈화르의 모든 산맥(카스피 해 남안의 산악 지역), 메디아, 히르카니아, 메르브, 헤라트, 아바르샤흐르 전체, 케르만, 사카스탄, 투레스탄, 마쿠란, 파라단[20], 신드, 쿠샨샤흐르에서 파샤크부르(페샤와르)까지, 또 카슈(카슈가르)까지, 소그디아나와 차체스탄(타슈켄트)의 산맥들까지, 또 바다 건너편의 마준샤흐르(오만 일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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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푸르 1세의 '조로아스터의 카바' 명문 출처

사산 왕조의 주도 종족은 페르시아인이었다. 사산 왕조는 파르스의 토착 귀족인 사산 가문이 파르티아의 파르스 번왕 지위를 찬탈하면서 시작된 왕조이고, 파르스 번왕은 아케메네스 왕조가 멸망한 직후 셀레우코스 제국에 복속되어 자치권을 가지고 파르스 지역을 다스리던 페르시아인 통치자인 프라타라카(frataraka)들이 왕을 칭하면서 시작된 왕조이다. 따라서 아케메네스 왕조 멸망부터 사산 왕조 건국까지 약 500년 동안 파르스는 비록 다른 제국들에 복속된 속국 상태이기는 하지만 독자적인 왕국으로 존속했고, 이를 통해 페르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이들이 사용한 중세 페르시아어(Middle Persian) 역시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의 고대 페르시아어(Old Persian)에서 곧바로 이어진 언어이며, 이것이 다시 현대 이란의 공용어인 현대 페르시아어(New Persian)로 이어진다.

사산 왕조는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 왕릉 단지와 암벽 부조(현재의 Naqsh-e Rostam) 바로 옆에 자신들의 부조를 새겼고, 그 명문 양식과 왕관 장식 등에서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의 것을 답습하였다. 따라서 사산 왕조가 아케메네스 왕조 계승 의식을 가졌고 그 유적의 명문 내용까지 알고 있었음은 명확하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아나톨리아·트라키아·이집트 일대까지 지배했다는 것, 마지막 군주 이름이 다라(야바우쉬)였다는 것, 서방에서 침입한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까지도 확실히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상의 역사를 얼마나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사산 왕조 시대에 많은 고대 그리스 문헌들이 페르시아어로 번역되었고, 이것이 다시 이슬람 시대에 아랍어로 번역되면서 이슬람 문화 황금기 형성에 기여했기 때문에 이 때 고대 그리스 사료들을 접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사산 왕조 말기의 역사 서사시를 그대로 이어받은 이슬람 이후 이란 신화와 서사시들에서는 피슈더드 왕조, 카이 왕조 등의 신화적 왕조들에서 바로 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로 이어지는 형태만 남았다.

사산 왕조는 아르사케스 왕조의 통치가 이란을 약화, 분열시켰다고 주장하며 시종일관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왕조 말기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종말론에 따른 종교적 이유로 아르사케스 왕조의 역사 연대를 절반으로 축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르티아계 귀족들은 아르사케스 가문의 패망이 확실해지자 별다른 저항 없이 승자인 사산 가문 편에 가담하여 기득권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사산 왕조 초기에 왕조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각종 명문들을 페르시아어와 파르티아어 2중으로 새겼고, 지배계급을 가리킬 때 '페르시아인과 파르티아인(pars ud pahlaw)'이라는 표현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러나 페르시아인들과 파르티아인들 사이의 타자 의식과 경쟁 의식은 사산 왕조 말기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대놓고 왕조에 반기를 들었던 바흐람 추빈, 샤흐르바라즈 같은 장군들이 옛 파르티아 지역에 거점을 둔 파르티아계 귀족들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사산 왕조 중기~말기 대귀족들과 황제들 사이의 대결을 페르시아계와 파르티아계의 주도권 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파르티아어 및 관련 기록이 사산 왕조 초기(3세기) 이후 급격히 사라지고, 페르시아계인 사산 왕조가 멸망한 뒤에도 파르티아어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점을 볼 때 언어 및 문화의 측면에서는 파르티아인들 대부분이 사산 왕조 당대에 페르시아인에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페르시아인과 파르티아인 이외에도 수많은 이란계 종족들이 이란 전역에 흩어져 살았다. 이들 대부분이 제국의 공용어인 페르시아어를 받아들이며 점차 페르시아화되었지만, 왕래가 어려운 산악 지역을 중심으로 몇몇 이란계 소수민족들은 동화되지 않고 사산 왕조 멸망 이후까지 잔존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쿠르드인이다.

물론 사산 왕조에 이란계 종족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샤푸르 1세 이후 모든 사산 왕조 황제들은 공식 칭호로 "이란인과 비이란인의 왕중왕"(Shahanshah-e Eran ud Aneran)을 쓰며 모든 종족을 아우르는 지배자임을 주창했다. 제국의 중심지 아소리스탄(메소포타미아)은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문명의 요람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종족들이 대규모 인구 집단을 이루고 있었고, 기독교를 믿는 칼데아인과 아시리아인이 가장 많았다. 이 지역에서는 오히려 페르시아인과 파르티아인 귀족, 사제, 군인, 관료 등 이란계 지배층이 소수 인구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짐작케 하는 것이 조로아스터교의 3대 성화(聖火)인 Adur Gushnasp, Adur Burzen-Mehr, Adur Farnbag의 위치인데, 이들은 각각 메디아, 파르티아, 페르시아 지역에 있고 정작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에는 없었다. 사산 왕조와 인도 및 중국 사이의 무역에는 소그드인들이 로마 제국과의 무역에서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중계 무역으로 활약하였고, 로마인 전쟁 포로들은 대개 건축 사업에 동원되곤 했다.

그 외의 비 이란계 소수민족 및 외국인 집단으로 아랍인, 유대인, 그리스인, 조지아인, 알바니아인[21], 및 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온 시리아~아나톨리아 일대의 로마인, 인도인, 키다라인, 에프탈인, 튀르크인 등이 있었다.

8. 사회 계급

사산 왕조 치하 이란의 사회 계급은 크게 넷으로 나뉜다. 첫째 전사(Arteshtaran), 둘째 사제(Mobadan), 셋째 관료(Dabiran), 넷째 평민(Vasteryoshan-Hootkheshan‎)이다. 여기서 관료는 빠지기도 하므로, 실질적으로 전사 - 사제 - 평민으로 인도카스트 제도나 중세 유럽의 3신분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사산 왕조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각 신분 사이의 경계는 매우 엄격했다.

전사 계급은 곧 귀족이다. 귀족들 중 가장 높은 것은 물론 황제와 그 직계 자손인 황족들이다. 그 다음으로는 각 지역에 분봉된 분봉왕들(vassal kings; Shahrdaran)이 있고, 또 그 다음에는 소위 '일곱 가문'으로 알려진 대귀족들(Vaspuhragan)[22]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란 7대 가문 문서 참조. 대개 이 귀족들의 본거지는 과거 파르티아계나 샤카계 유목민들이 집중적으로 이주했던 메디아, 호라산, 시스탄 지역에 있었으며 분봉왕들의 영지는 시스탄, 쿠샨, 아파르샤흐르, 메르브, 케르만 등 제국 동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황실과 정부의 근거지는 수도 크테시폰을 중심으로 한 아수리스탄에서 후제스탄, 파르스에 이르는 영역이었다. 이들 밑에는 중상급 귀족(Vuzurgan)들과 관료들이 있었고, 그 밑에는 중하급 귀족(Azadan)이 있었다.

성직자들의 계급과 위계에 대한 것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최고 사제의 직함으로 추정되는 Mobadan Mobad 등이 있지만, 조로아스터교 교회 체계는 사산 왕조 성립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해 왔다. 다만 사제 집단, 특히 고위 사제들은 귀족들과 함께 사회적 지위가 굉장히 높았기에 매우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사산조는 교육, 결혼, 예배 의식의 참여, 축제와 애도식 등 사회의 모든 일이 종교의 규례와 종교적 전통에 따라 진행되다보니 종교의 영향력이 높을수밖에 없었다.

셋째 신분인 관료는 귀족 가문이나 사제가 아닌 하급 공무원을 의미한다.

평민 계급은 귀족과 성직자들을 제외한 농민, 상인, 수공업자 등 사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층 민중을 가리킨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기 때문에 생활상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물론 평민들은 전쟁과 무거운 세금에 시달려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귀족과 고위 성직자에 비해 삶이 어려웠다. 다만 인구 대부분은 농민이었을 것이고, 오늘날 전해지는 사산 왕조 시대 유물들의 높은 수준을 볼 때 공예품이나 사치품을 생산하는 장인의 수도 많았을 것이다. 실크로드 무역이 물론 중요한 요소를 차지했지만, 지중해처럼 일찍부터 대규모 해상 무역이 발달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상인들은 크테시폰 등 극소수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대상이었을 것이다.

노예들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5% 내외였다고 한다.

9.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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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왕조의 군대
서아시아를 몇 백년 지배했고, 로마 제국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다툰 패권국답게 충분히 강력했다. 사산 왕조의 군대는 기본적으로 기병 중심이었던 파르티아 군대의 양식을 계승했으므로 파르티아 군대와 유사했지만, 서로 다른 부분도 적지 않았다. 우선 군대의 핵심이 카타프락토이, 혹은 클리바나리[23]로 대표되는 중장기병이었고, 이들 대부분이 봉건 귀족과 그 가신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파르티아와 같다. 그러나 사산 왕조는 단순히 중장기병 - 경기병으로만 구성되었던 파르티아에 비해 더욱 다양한 병종을 동원하였다. 또 완전한 기병 중심의 봉건제 군대였던 파르티아에 비해 좀더 중앙집권화된 군사 체계를 발전시켰으며, 이는 제국 최고의 전성기인 호스로 1세 시대의 군제개혁으로 정점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7세기 초 로마와의 과도한 전쟁으로 군사력을 지나치게 소모하여 아랍 군대에게 무너지긴 했지만, 사산 왕조 군대는 수백년간 서방의 거대한 로마 제국과 동방의 위협적인 유목민들을 효과적으로 저지하여 중동의 지배자로 군림한 제국 국력의 핵심이었다.

9.1. 지휘 계통과 편제

기본적으로 군의 통수권은 "이란 총사령관"인 에란 스파보드(Eran Spahbod)가 가지고 그 휘하의 장군인 스파보드(Spahbod)들을 지휘했으며, 군정 및 평화 협상을 포함해 전쟁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황제가 대귀족 중 한 명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지만, 총사령관 대신 황제가 직접 나서 전쟁을 지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러던 것이 호스로 1세 시대의 군제개혁 결과 총사령관직은 없어지고, 대신 제국을 4분하여 각 영역을 담당하는 지방 사령관직을 신설했다. 이는 각각 남동/남(Nemroz), 북동/동(Xwarasan), 남서/서(Xwarwaran), 북서/북(Adurbadagan)으로 나뉜다.[24] 일반적으로 귀족(Vuzurgan, Azadan)이나 분봉왕들의 영지를 제외한 지역들은 중앙정부의 관리가 행정을 맡았지만, 일부 변경 지역에는 군사/행정의 전권을 위임받아 사실상 분봉왕과 다름없는 권한을 가진 총독들을 임명하기도 했는데 이를 마르즈반(Marzban)이라고 했다. 아르메니아가 대표적인 지역으로, 상황에 따라 페르시아인 마르즈반들과 아르메니아인 분봉왕들이 번갈아 가며 통치했다. 제국 동부 지역에 임명되는 카나란(Kanarang)이라는 직책도 있었는데, 특정 지역에 임명된다는 것을 빼면 마르즈반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사산 왕조 군대의 정확한 편제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파흘라비어 단어 중에 상/하위 부대에 관한 용어[25]나 천인대장(Hazarmard) 같은 용어들이 있는 것을 볼 때 10진법에 따른 부대 편제를 갖추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과거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도 10진법에 따른 부대 편제를 사용했으므로 그것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사산 왕조 말기를 다룬 기록에서 황제의 군단(Gund-i Shahanshah)이나 황금 창병대 같은 부대 이름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워낙 단편적인 기록들이라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사산 왕조 군대가 과연 중앙집권화된 상비군을 갖추었는가도 어려운 문제이다. 아르다시르 1세가 제국을 건설하면서 "상비군을 창설"했다는 설명이 있지만, 반대로 5~6세기 기록에는 "페르시아에는 동로마와 같은 상비군은 전혀 없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군대의 주력이 중장기병이었고, 이들은 양성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대부분 봉건 귀족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들은 전쟁시 샤한샤를 위해 싸우는 대신 중앙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지배/세습할 수 있는 독자적 영지를 갖추고 있는 봉건 계급이었다. 사산 왕조가 파르티아 시대에 비해 훨씬 강력한 중앙정부와 관료체제를 갖추고 있긴 했지만, 군사력의 주축이 소수의 봉건귀족 기병이라는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의 역할 역시 주요 대귀족들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서돌궐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던 장군 바흐람 추빈은 호라산의 파르티아계 대귀족인 메흐란 가문 출신이었다.

그러나 상비군 비슷한 것이 아예 없었다고도 보기 어렵다. 사산 왕조 시대에는 로마와의 국경이 이미 수백년 동안 고착되어 강력한 요새 도시들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전쟁 시 공성과 수성이 매우 중요해졌다. 따라서 요새를 지키려면 상당한 규모의 수비대가 있어야 하는데, 소수의 봉건 귀족들이 그 같은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또 사산제국은 파르티아에 비해 로마를 상대로 훨씬 공세적이었고[26], 수년 이상 걸리는 전쟁도 소화해 낼 수 있었으므로 어쨌든 파르티아에 비해서는 훨씬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이루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한편 근위대 비슷한 것으로 자예단(Zhayedan 혹은 Zhavedan)이 있었다는 설이 있으나 신빙성이 낮으며 정식 기록에 따르면 사산 왕조의 근위대는 푸쉬티그반이나 기안 아비스파르로 대표되는 1,000명의 중장 기병대였다(불사 부대 문서 참조).

대체적으로 봉건 귀족이 군사력의 주축이었던 것이 기존의 추세라면, 카바드 1세호스로 1세 시대의 개혁으로 인해 그 추세에 변화가 일게 되었다. 앞서 누차 설명한 대로, 이 시대 개혁의 목표는 중앙집권의 강화였다. 군 지휘체계에서 단일 총사령관직을 없애고 4곳의 지방 사령관직으로 나눈 것 역시 황제 이외의 인물에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호스로 1세가 군사 부문의 개혁에서 역점을 둔 것은 독자 영지를 가지고 자율적으로 무장하는 군사력을 황실과 관료제가 봉급과 장비를 통제할 수 있는 상비군 성격의 군사력으로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개혁을 통해 육성한 데흐건 계급이 행정적 측면에서는 황실의 지방 통제의 최말단이 되고, 군사적으로는 중앙정부 직속 군사력의 중핵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이 목표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달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분석하는 바가 다르지만, 최소한 개혁 이전에 비해서 군대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화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9.2. 병과

파일:Sasanian_calibanarius.gif 파일:attachment/sasaniancataphract.jpg
사산 왕조의 중장기병
이란 군대의 주력이 중장기병이었음은 상술한 바와 같다. 사산 왕조의 중장기병들은 시대에 따른 갑옷, 투구, 무기, 마구나 기타 장비들의 변화를 제외하면 대체로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 시대의 중장기병 형태를 그대로 계승했다. 근거리에서는 양손으로 잡는 장창을 사용해 돌격하고, 원거리에서는 활을 이용한 견제를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칼과 도끼, 메이스, 단검, 투창, 다트 등 다양한 보조 무기를 사용했다. 마갑을 갖춘 카타프락토이들이 가장 유명하고 중요하지만 그 수는 적었고, 아마 마갑 없이 기수만 갑옷을 입은 기병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Kaveh Farrokh 박사는 그의 책 《Sassanian Elite Cavalry》에서 시대에 따른 기병 무장 양식의 차이에 주목하여 사산 왕조 시대 중장기병들은 크게 3단계의 변화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우선 왕조 초기에는 로마와 주로 대립하면서 비싸고 불편한 파르티아식 판갑옷 대신 사슬갑옷을 도입했고, 마갑도 없거나 천으로 된 것들이 주류였다.

이것이 점차 중장화되어, 4세기경에 이르면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의 묘사대로 "눈구멍과 콧구멍을 제외한 전신을 철갑으로 가린" 식의 초중장기병이 나타났다.

그러나 4~5세기 이후 다수의 경장 궁기병을 운용하는 에프탈, 튀르크 등의 유목민들이 남하해 오자 소수의 둔중한 중장기병은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 결과 무장을 좀 더 가볍게 하고, 대신 숫자를 늘린 중장기병 운용이 나타났다. 거기다 본디 방패 없이 긴 창으로 무장했으나 창의 길이를 줄이는 대신 방패를 추가로 드는 방식으로 갑옷을 줄여서 생긴 방호력의 공백을 매우고자 했으며 또 칼의 패용법이나 활의 종류, 등자의 사용 등에서 스텝 유목민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웃인 로마 제국처럼 사산 왕조도 근위대가 존재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근위대였던 불사 부대의 인상이 강해 사산 왕조의 근위대도 중세 페르시아어로 불멸의 기병대를 의미하는 사바라니 저위던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사바라니 저위던의 실존 여부는 불분명하고, 기록상 나온 근위대의 이름은 푸쉬티그반(Pushtigban)과 그 예하 부대인 기안-아비스파르(Gyan-Avspar)였다. 이들은 전원 중장기병으로 구성되었는데 '사바란'(기병) 중에서도 1,000명의 최정예 병사들만을 차출해 구성되었다고 한다.

특히 기안-아비스파르는 그 1,000명의 푸쉬티그반 병사 중에서도 더욱 최정예만을 골라 구성되었는데, 이름의 뜻[27]에 걸맞은 열성적인 전투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이들의 전투력은 고르고 고른 정예병인 만큼 엄청났다고 하는데 야사에 따르면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의 동방 원정 당시 무방비상태였던 율리아누스를 죽인 게 푸쉬티그반 소속의 중장기병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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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군과 맞붙는 초창기 사산 왕조 군대를 묘사한 암벽 부조. 당시 귀족들의 기마 전투 양식을 잘 보여 준다
파일:Taq-e_Bostan-Khosro_Parviz.jpg
이란 서부 케르만샤 주의 타케 보스탄에 남아있는 사산 왕조 후기의 부조. 완전무장한 당시 중장기병의 형태를 알 수 있다.
경무장 궁기병 역시 중요한 전력으로 활용되었으나[28], 정주 문명의 역사가 오래된 사산 왕조은 더 이상 과거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와 카르헤 전투 시절의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처럼 대규모의 경무장 궁기병을 자체적으로 동원하기 어려워졌다.[29] 따라서 이란 본토의 군대는 거의 소수 귀족 전사 계급의 중장기병에 집중되었고, 경기병 전력은 주로 동맹, 속국 동원, 용병의 형태로 보충되었다. 대표적인 경우로 샤푸르 2세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의 유목민 집단인 히온인(Xionites)의 왕 그룸바테스와 전쟁을 벌여 그를 복속시킨 뒤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 동원한 경우가 있다.

파르티아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낙타 기병을 동원한 경우가 있지만, 사산 왕조의 경우 낙타가 전쟁에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이와 반대로 사산 왕조의 가장 큰 적이던 동로마는 낙타 기병대를 운용한 것이 확인되었다.
파일:Ancient_Sasanid_Cataphract_Uther_Oxford_2003_06_2(1).jpg 파일:external/s18.postimg.org/parth2.jpg
재현한 사산 중장기병 사산 군대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가 중장기병을 보조하기 위해 다수의 경무장 궁기병을 동원했다면, 사산 왕조는 기병의 부족을 만회하거나 보조하기 위해 다수의 보병을 동원했다. 보병의 지휘관은 파야간 사라르(Payyagan Salar)로 불렸다. 보병은 다시 궁병과 창병, 기타 용병들로 나뉜다. 대다수의 창병들은 임시로 징집된 농민이나 하층민으로써, 가죽 모자나 조잡한 투구, 고리버들이나 나무, 가죽 따위로 만든 커다란 직사각형 방패 외에는 별다른 방어구가 없었다. 이들은 주로 진지 수비나 공사, 기병대의 보조나 시중, 전장 정리 등 각종 잡일에 동원되었다. 물론 필요할 경우 전면전에 나서기도 했지만 화살받이 이상의 역할이 기대되지는 않았다. 단 공성전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보병의 역할이 중요했으며, 대오를 갖추어 이동했다는 기록 등을 보면 보병들도 어느 정도의 훈련은 받은 것 같다. 궁병들의 경우 최소한 활은 쏠 줄 알아야 하니 창병들보다는 취급이 나았던 것으로 보인다. 《탁티카》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궁병들은 활의 정확한 조준보다는 빠른 연사능력을 더 중시했다.

로마와 비슷한 중장보병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란 역시 근접전을 위한 보병들을 자주 동원했지만, 이는 상술한 경무장 궁기병들과 마찬가지로 농민 징집병이나 용병 혹은 소수민족, 동맹국, 속국 병력들이었다. 주로 데일람(카스피 해 연안의 이란 북부 산악지역), 쿠르드, 소그드, 아르메니아, 아랍 등에서 보병이 동원되었는데, 이들 중 특히 데일람 병사들이 투창과 칼을 잘 쓰기로 유명했으며 이후 이슬람 시대에도 용병으로 활약했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에 따르면 "철갑을 입은 기병과 보병"이라거나 "보병들은 검투사(murmillo)들처럼 차려입었고..." 등 보병들이 갑옷을 입고 있는 듯한 묘사들이 있는데, 더이상의 정보가 없어서 이 병사들의 정확한 정체나 성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른 기록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성벽 위에 늘어서 있었다는 묘사도 있으나, 사실 사산조에서는 중무장 궁병에 대한 기록들이 자주 보이고(당연하겠지만 기병과는 별개다.) 거기다 고대~중세 시절은 개인이 직접 장비를 구비해야 했기에 개인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갑옷을 입은 보병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당장 이웃에 있던 중보병 강국인 로마도 무장은 대체적으로 병사의 자비로 구했다.) 즉, 엄청 중무장을 했다고 무조건 이를 보병이 아닌 기병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더 말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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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왕조의 공성전 전쟁 코끼리
상술했다시피 수백년 동안 고착된 로마-이란 간 국경지대에는 강력한 요새들이 들어서 있었으며, 거점 도시들도 성벽으로 방비되고 있었기 때문에 양국의 전쟁시 공성전이 자주 일어났다. 따라서 사산 왕조는 로마 못지않은 다양한 공성 무기와 공성 기술을 발전시켰다. 공성전에 별 관심이 없던 파르티아와 달리 당장 시조인 아르다시르 1세부터 로마식 공성 장비를 도입했다는 설명이 있다. 공성 무기를 이용한 공격 외에도 대규모의 땅굴 파기 혹은 토산 쌓기도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대규모로 징집된 보병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산 왕조 군대의 또다른 중요한 특징으로는 코끼리를 전쟁에 적극 동원했다는 점이 있다.[30] 파르티아는 물론 사산 왕조 전과 후를 통틀어 이란 지역의 국가이면서 전투 코끼리를 적극적으로 동원한 나라는 셀레우코스 왕조밖에 없다. 이란 지역에는 코끼리가 살지 않기 때문에 코끼리들은 대부분 인도에서 수입되었으며, 위에 나무로 된 망루를 올리고 2~3명의 궁병이 탔다. 셀레우코스 시대와 달리 코끼리에 따로 갑옷을 입히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코끼리에 갑옷을 입혔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산조를 끝으로 중동에서는 더이상 전투 코끼리가 동원되지 않았다.

해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란이 당시 이란 본토와 페르시아 만을 끼고 마주보는 아라비아 반도 북부를 지배했고, 6세기경에는 아라비아 남부의 예멘까지 정복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해군 활동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만 기록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확한 양상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일단 알려진 바에 따른다면 사산 왕조의 해군 사령관은 나브베드(Navbed)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로 죄수들을 해군에 채용해 생각만큼 해군력은 강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반면 제국 서부의 경우 지중해로 가는 길이 동로마에 의해 완전히 막혀 있었기 때문에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을 건너다니는 배들 말고는 해군 비슷한 게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7세기 초 동로마를 완전히 코너로 몰아넣었을 때, 콘스탄티노플 공격을 위해 임시로 배를 만들었지만 동로마 해군의 공격에 패하면서 상륙에 실패하게 된다.

그밖에 사산 왕조 군사들의 복식을 현대에 와서 재현하거나 복원한 그림들을 보고 싶다면, 밑의 링크를 참조할 것. 군기를 든 기병 장교들의 군복이 굉장히 화려하다. #

10. 경제

파일:Indo-Sassanid.jpg
동로마 제국굽타 왕조를 이었던 사산 왕조
여느 고대 사회와 같이 사산 왕조 역시 농업 기반 사회였고 중계 무역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비단, 모직물, 금직물, 카펫과 양탄자, 페르시아만에서 수입한 진주와 가죽 따위를 수출했고, 중국의 비단과 종이, 인도의 향신료를 수입해 서쪽의 로마 제국에게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 팔아먹었다. 동방의 인도와 중국, 서방의 로마 제국 사이에 있다는 절묘한 위치 덕분에 사산 왕조는 거대한 해상 교통로를 틀어쥐고 고대 세계무역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31]

6세기 경 사산 왕조는 아라비아해페르시아만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다. 때문에 로마 제국은 중국의 비단을 사오기 위해서 사산 왕조에 매년 막대한 연공을 바쳐야만 했는데, 이에 불만이 많았던 로마 제국은 에티오피아악숨 왕국에 도움을 청했다. 페르시아만 대신 홍해를 거쳐 우회해 중국의 비단을 수입하려 시도했던 것.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에티오피아를 통해 비단을 들여오기를 바랐지만, 기존 페르시아 상인들의 현지 네트워크가 지나치게 탄탄했던 탓에 실패했다. 게다가 에티오피아가 끼어들 기미가 보이자 사산 왕조가 악숨-페르시아 전쟁을 일으켜 예멘을 장악, 홍해를 통하는 무역로조차 차단해버렸다.[32] 물론 비단 문제는 로마가 한나라로부터 누에를 들여오며 해결되었으나 사산 왕조는 여전히 동방중계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사산 왕조는 도시마다 바자르, 즉 시장(wāzarganan)들이 있었다. 바자르에는 '라스테(rāste)'라고 하여 품목과 업종별로 모두 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대장장이 구역, 이발사 구역 등등이 모두 딱딱 정해져 있는 식이었다. 길드도 있었다. 페르시아의 길드는 '키로그(kirrog)'라고 불렀으며 길드장을 '키로그베드(kirrogbed)'라고 했다. 바자르에는 질서유지를 위한 감독관 '바자르베드(wāzārbed)'를 두었다.

이렇게 상업이 번성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상인들의 취급은 썩 좋지 않았다. 국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 상인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 조로아스터교 최고 경전들 중 하나인 '메노그이크라드'를 보면 "일꾼들의 본업은 이것이다: 잘알지 못하는 일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고, 오직 자신이 아는 것만을 정확히 수행하여 공정한 봉급을 받는 것이다."라고 하여 상인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써놨다.
파일:Textile0001.jpg 파일:슈슈타르 이란.jpg
사산 왕조의 비단[33] 슈슈타르의 관개시설
페르시아의 야금술 발전으로 금속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이때 사산 왕조는 아시아의 무기고라는 별칭으로 불렸을 정도. 주로 아르메니아, 코카서스, 그리고 트란스옥시아나 등 변방지대에 광산이 풍부했다. 특히 트란스옥시아나의 파미르 산맥에 어찌나 광물들이 풍부하게 났던지, 타지크인들 사이에서는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실수로 발을 헛디뎌 파미르에 광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떨어뜨렸고, 이 항아리에서부터 전세계로 광물이 퍼져나갔다'라는 전설이 전해져내려올 정도였다.

사산 왕조는 동쪽에 여러 식민지와 무역소들을 건설했다. 말레이시아에는 사산 상인들의 무역소가 있었으며, 페르시아 말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스리랑카에도 사산 식민지가 생겼다. 페르시아인들은 활발한 무역 활동을 펼치면서 오만무스카트, 소하르에 항구를 건설했고 심지어는 동아프리카 해안가의 킬와에도 식민지를 지었다. 중국의 시안시에까지 진출했는데, 그 증거가 바로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시안의 배화교(조로아스터교) 사원이다. 이렇게 페르시아 상인들은 인도양 방방곡곡을 누비며 동로마 상인들을 몰아내고 수익성 좋은 독점 교역로를 챙기는 데에 성공했다.

사산 왕조의 핵심 지방은 농업이 제일 발전했던 이라크후제스탄 일대였고 여기서 대부분의 세입이 걷혔다. 이라크는 이미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부터 관개 수로가 발달해 수 천년간 중동의 곡창 노릇을 하던 곳이었고 지금과는 달리 사막화도 훨씬 덜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산 왕조도 이라크에 나라완 수로를 신설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신경을 썼다. 사산 왕조가 중앙집권화에 나서며 기존에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산악고원 지방의 유목민들에게도 세금을 거둘 수 있었고, 특히 정부개혁을 실시한 호스로 1세 재위기 들어서는 행정력 부족으로 세금을 못거둔 지방들에서도 세금을 거두기 시작했다.

11. 문화

11.1. 건축

파일:001125-TaqKasra-Iraq-IMG_7914-2.jpg
크테시폰의 타크 카스라 황궁 유적[34][35]
사산 왕조는 이슬람의 침공 이전 최후의 페르시아 제국이자 옛 아케메네스 왕조의 계승국으로서 고대 페르시아 건축의 절정을 이루었던 시대이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페르시아를 정복한 이래로 헬레니즘 건축이 동방으로 확산되었는데, 사산 왕조 역시 헬레니즘식 건축을 일부 물려받았다. 즉 고대 아케메네스 건축 + 헬레니즘 건축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사산 건축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산 왕조가 멸망한 후에도 비잔틴 건축과 이슬람 건축에 그 영향을 남겼다. 페르시아식 원통형 탑을 차용한 사마라의 대모스크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

피루자바드, 비샤푸르, 그리고 수도 크테시폰에 위치한 황궁의 경우, 파르티아 시대에 처음 유입된 원통형 궁륭을 그대로 이용했다. 다만 그 궁륭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는 것이 차이점. 사산 건축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수도 크테시폰 황궁 '타크 카스라'는 샤푸르 1세 시절 지어져 그 궁륭아치의 너비가 무려 80피트, 높이는 118피트가 넘어가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궁전 내부에는 알현실을 두었고 알현실의 천장은 돔으로 덮었다. 특히 사산 왕조는 스퀸치를 이용해 정방형의 방에 원형의 돔을 안정적으로 씌울 수 있었다. 방의 네 모서리마다 아치 형태의 스퀸치를 설치, 총 4개의 면을 더 추가해 팔각형의 기단을 만들어 돔을 더 견고하게 떠받칠 수 있도록 만드는 기법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피루자바드에 위치한 아르다시르 궁전이다.
파일:Firozahur.jpg 파일:Falak-ol-Aflak_Castle_07.jpg
아르다시르 궁전[36] 팔라크 올 아플락 요새[37]
사산 건축의 특징은 첫째로 건물이 기본적으로 거대한 직육면체 모양이라는것, 둘째로 아치의 너비가 건물 전체의 너비에 맞먹을 정도로 매우 거대한 아치 궁륭을 메인 입구로 삼는다는것(위의 타크 카스라 유적을 생각하면 된다), 셋째로 아치궁륭 홀을 거쳐 들어가면 원형 돔으로 덮힌 정방형 방들이 있다는것, 넷째로 방들의 수가 매우 많고 욕실이 각각마다 딸려있으며 복도가 없이 방들끼리 바로 연결되어있다는것, 다섯째로 건물 뒤편에 안뜰을 조성하고 방들과 연결해두었다는 점 등이 있다.

사산 왕조 궁전들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거대한 아치궁륭 입구가 건물 깊숙이까지 들어가있다는 점이다. 맨 위 타크 카스라 유적만 보더라도 아치궁륭 입구가 터널마냥 건물 깊숙이까지 들어가 거대한 홀을 이루고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산 황제들은 이 입구홀 자체를 알현실처럼 쓰기도 했다. 공간의 크기도 다른 방들과 비할 바 없이 컸고 입구다보니 한쪽 면이 아예 뻥 뚫려있는만큼 채광도 매우 잘되었기 때문이다.

사산조 건축물에는 아치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거대한 공공건물들의 경우 15~33.3m에 달하는 크기의 아치들이 세워져 있었다. 아치에 화려한 장식을 했던 로마 제국과는 달리 사산 아치에서 특별한 장식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사각형의 건물들은 너비가 33.3m에서 최대 40m 정도까지도 갔다. 건물들 위에는 3개 정도의 돔을 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돔들은 보통 원형 기단이었으나 일부는 3:2 정도로 타원형 기단이기도 했다. 이 돔들은 드럼이 아닌 기초적인 펜던티브 위에 세워졌다. 높이 20m가 넘는 건물들은 거의 없었다.

사산 왕조는 정교한 도시계획을 토대로 도시를 건설했다. 사산 시대에 지어진 도시들의 상당수는 원형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는 원형 성벽이 포위 공격을 막아내기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원형으로 성벽을 두르면 같은 길이로 더 많은 면적을 성벽으로 둘러쌀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아르다시르 1세 시절에 지어진 피루자바드로 지름 2km의 원형 도시였다. 2개의 대로가 도시를 4개의 구역으로 나누었고, 이 구역들은 각각 5개의 소구역으로 또 나뉘어 총 20개의 소구역으로 분할됐다. 그러나 모든 도시들이 원형인 것은 아니었다. 헬레니즘과 로마의 영향을 받아 직사각형의 도시도 많았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사로잡혀온 로마 건축가들이 지은 비샤푸르다. 비샤푸르의 왕궁에 화려한 헬레니즘식 모자이크가 붙어있는 것도 이 도시가 그리스-로마 건축가들의 손길을 강하게 받았다는 증거다.

11.2. 조각

파일:Shapur_statue_with_a_man_standing_in_front_of_it.jpg 파일:이란 샤푸르10.jpg
샤푸르 1세의 석상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은 샤푸르 1세
파르티아 시절에 비하여 사산 왕조는 독립된 개별적인 석상을 만드는 대신 바위에 부조를 새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예외도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3세기 경 만들어진 샤푸르 1세의 석상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독립 입상으로 거대한 석회암 동굴 안에서 발견되었고 그 높이가 6.7m, 어깨너비만 2m가 넘어가는 거대한 석상이다. 특히 그 자리에서 자라난 거대한 종유석을 그대로 깎아 만든 것으로 유명하며, 팔 일부가 날아간 것을 제외하면 1,800년 된 석상치고는 굉장히 양호한 보존상태를 자랑한다. 조각상이 쓰고있던 금속으로 만든 왕관은 현재 사라졌다. 원래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것을 1957년 팔라비 왕조가 다시 세웠으며 현재는 비샤푸르 지방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페르시아인들은 일부러 도로 옆 높은 곳이나 물이 있는 수원 근처 바위에 부조를 깎았다.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곳에 부조를 새겨 황제의 위엄을 돋보이고 페르시아의 영토임을 과시할 의도였는데 사산 왕조 역시 이 전통을 따랐다.[38] 사산 왕조의 부조들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점은 바로 황제들이 쓰고 있는 왕관이다. 황제들마다 다른 양식의 왕관을 쓰고있는데, 이를 주화에 새겨진 왕관의 모습과 비교해 부조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사산 부조들은 3세기부터 4세기 초까지의 왕조 초기의 짧은 기간 내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마저도 파르스 일대의 사산 왕조의 심장부 영토들에만 만들어졌으며 국경지대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아케메네스 왕조 황제들의 무덤 낙쉐 로스탐 아래에는 사산 왕조 시절에 새겨진 부조들이 있다. 주로 사산 샤한샤들이 신을 영접하거나[39] 전투를 벌이는 모티브의 부조들인데, 개중 샤푸르 1세가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사로잡은 모습을 묘사한 부조가 가장 유명하다. 필리푸스 아라부스는 하인처럼 무릎을 꿇은채 샤푸르 1세의 말고삐를 잡고 있으며 고르디아누스 3세 황제가 땅 위에 누워있는 모습이다. 260년 로마군을 궤멸하고 황제를 사로잡았던 에데사 전투를 묘사한 작품으로 당시 사산 왕조의 권위를 아낌없이 과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굳이 아케메네스 황제들의 무덤 바로 아래 새긴 것은 사산 왕조가 옛 아케메네스 황제들의 후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 외에도 타케 보스탄의 실물 2배 크기의 카타프락토이 중장기병 부조,[40] 피루자바드와 비샤푸르 부조, 바름에델라크의 부조[41] 등이 유명하다. 원래는 모두 색칠되어있었으나 지금은 색이 벗겨져 바위빛이다.

11.3. 수공예

파일:Coupe_de_Chosroès.jpg 파일:Head_horse_Kerman_Louvre_MAO132.jpg 파일:Sassanid_silver_plate_by_Nickmard_Khoey.jpg
<rowcolor=#fff> 호스로 1세의 보석접시 금제 말머리 조각 시무르그 은그릇
사산 왕조는 동방의 발달한 금속공예 문화를 아낌없이 발전시켰다. 시대의 은그릇이 현재 다수 남아있는데, 특히 음식을 담을 때 사용했던 큰 대접이나 은제 사발들이 많다. 왕궁에서 쓰이던 식기들은 말을 탄 황제와 영웅들이 사냥, 전투를 벌이거나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새겨놨다. 춤추는 여성 무희들을 양각해놓은 은제 물병들을 제작해 중국과 서방으로 수출했던 것 역시 바로 이 사산 왕조 시기다.

페르시아 카펫의 원조였던만큼 카펫 문화도 굉장히 발전되어 있었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했다. 특히 크테시폰의 황궁에는 '바하레스탄 카펫'이라 하여 27m X 27m 짜리 거대한 카펫이 깔려있었는데 금과 은, 비단과 보석으로 짜놓아 휘황찬란한 모습을 자랑했다는 말도 있다. 훗날의 이슬람 카펫과는 달리 동물의 형상을 새기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서 카펫에 장미 안에 수놓은 공작이나 숫양 무늬들을 자주 짜놓곤 했다. 특히 숫양의 경우 정복의 신 베레트라그나의 상징이었던지라 사산 왕조 예술가들이 특히 애용하던 무늬로 유명하다. 하지만 썩기쉬운 카펫 특성상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산 왕조 시대의 카펫이 전무하고, 이집트 등 해외에 남아있는 유물들로 유추해 연구해야하는 실정이라 많은 것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사산 왕조의 특산품은 바로 유리였다. 로마 제국의 유리 기술을 들여와 더욱 발전시킨 것인데, 사치품이기는 했지만 단순한 형태의 값싼 유리제품은 일반 서민들도 썼을 정도로 사회 각계각층에 널리 퍼져있었다. 사산제 유리는 동로마 제국은 물론 중국, 심지어는 저멀리 일본에까지 수출되었다. 식물제 소다를 썼기에 칼륨과 마그네슘의 양이 많아 투명한 소다석회 유리를 생산해낼 수 있었으며, 두꺼운 유리를 불어 통짜로 만들었기에 상대적으로 모양새와 장식이 단순한 편이었다. 대부분의 유리제품은 투명한 무색이었으나 실리카의 불순물 때문에 황록색 또는 황갈색을 띄는 경우도 많았다.

회화도 당연히 존재했고 인기도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사산조 회화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사산 시대의 벽화가 대량으로 남아있는 곳은 타지키스탄판자켄트와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 지방이다. 판자켄트 유적은 772년 무슬림들에게 점령된 후 버려졌다가 현대에 들어서야 다시 발굴되었는데 궁전과 저택 유적에서 방 전체에 걸친 거대한 7세기~8세기 벽화들이 발견되었다. 해당 벽화들은 왕의 즉위식과 연회, 전투, 아름다운 여성들이 주요 주제로 페르시아와 인도의 영향을 짙게 받은 모습이었다. 사산 왕조의 직접적인 영토는 아니었지만 사산 왕조의 회화에 큰 영향을 받았기에 이를 토대로 사산 미술을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하지아바드의 유적, 두라 유로포스 유적, 비샤푸르의 모자이크 유적 등에서 사산 회화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12. 역대 샤한샤

재미있는 점이 두 가지 있는데 6, 7, 8, 10대 샤한샤의 행적은 조선 6~9대 왕의 행적과 유사하다는 점이 있다. 또 하나는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인 호르미즈드라는 이름을 가진 샤한샤는 제대로 된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점인데, 재위기간이 짧거나 무능하거나 최후가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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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왕가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아르다시르 1세 샤푸르 1세 호르미즈드 1세 바흐람 1세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바흐람 2세 바흐람 3세 나르세스 1세 호르미즈드 2세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아두르 나르세 샤푸르 2세 아르다시르 2세 샤푸르 3세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바흐람 4세 야즈데게르드 1세 샤푸르 4세 호스로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바흐람 5세 야즈데게르드 2세 호르미즈드 3세 페로즈 1세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발라시 카바드 1세 자마습 카바드 1세
사산 왕가 메흐란 왕가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호스로 1세 호르미즈드 4세 호스로 2세 바흐람 추빈
사산 왕가 이스파부단 왕가 사산 왕가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호스로 2세 비스탐 카바드 2세 아르다시르 3세
메흐란 왕가 사산 왕가 메흐란 왕가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샤흐르바라즈 호스로 3세 푸란도흐트 샤푸르 샤흐르바라즈
사산 왕가 이스파부단 왕가 사산 왕가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페로즈 2세 아자르미도흐트 파루크 호르미즈드 호르미즈드 6세
사산 왕가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호스로 4세 파루카자드 호스로 5세 푸란도흐트 야즈데게르드 3세
비정통 비정통 비정통 비정통
페로즈 3세 나르세 바흐람 7세 호스로 6세
페르시스: 아케메네스 · 페르시스
이란: 엘람 · 메디아 · 아케메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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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 이란의 막간 · 셀주크 · 호라즘
몽골 · 일 칸국 · 분열기 · 티무르 · 흑양 · 백양
사파비 · 아프샤르 · 잔드 · 카자르 · 팔라비 · 이란
}}}}}}}}}}}}
<rowcolor=#fff> 순서 샤한샤 재위 기간(년)
초대 <colbgcolor=#fff> 아르다시르 1세 224 - 242
제2대 샤푸르 1세 240 - 270
제3대 호르미즈드 1세 270 - 271
제4대 바흐람 1세 271 - 274
제5대 바흐람 2세 274 - 293
제6대 바흐람 3세 293
제7대 나르세스 1세 293 - 303
제8대 호르미즈드 2세 303 - 309
제9대 아두르 나르세 309
제10대 샤푸르 2세 309 - 379
제11대 아르다시르 2세 379 - 383
제12대 샤푸르 3세 383 - 388
제13대 바흐람 4세 388 - 399
제14대 야즈데게르드 1세 399 - 420
제15대 샤푸르 4세 420
제16대 호스로 420
제17대 바흐람 5세 420 - 438
제18대 야즈데게르드 2세 438 - 457
제19대 호르미즈드 3세 457 - 459
제20대 페로즈 1세 457 - 484
제21대 발라시 484 - 488
제22대 카바드 1세 488 - 496
제23대 자마습 496 - 498
제24대 카바드 1세(복위) 498 - 531
제33.3대 호스로 1세 531 - 579
제26대 호르미즈드 4세 579 - 590
제27대 호스로 2세 590
제28대 바흐람 추빈 590 - 591
제29대 호스로 2세(복위) 591 - 628
제30대 비스탐 591 - 595
제31대 카바드 2세 628
제32대 아르다시르 3세 628 - 630
제33대 샤흐르바라즈 630
제34대 호스로 3세 630
제35대 푸란도흐트 630
제36대 샤푸르 샤흐르바라즈 630
제37대 페로즈 2세 630
제38대 아자르미도흐트 630 - 631
제39대 파루크 호르미즈드 630 - 631
제40대 호르미즈드 6세 630 - 631
제41대 호스로 4세 631
제42대 파루카자드 호스로 5세 631
제43대 푸란도흐트(복위) 631 - 632
제44대 야즈데게르드 3세 632 - 651

사산 공위시대 때의 샤햔샤들은 재위 기간이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제국 곳곳에서 각자 제위를 참칭한 이들이라서 그렇다.

13. 언어별 명칭

언어별 명칭
중세 페르시아어 𐭠𐭩𐭥𐭠𐭭𐭱𐭲𐭥𐭩 (Ērānšahr)
페르시아어 ایرانشهر / شاهنشاهی ساسانی
(Shâhanshâhi-ye Sâsâni / Irânshahr)
그리스어 Ερανσάρ / Αυτοκρατορία των Σασσανιδών
라틴어 Regnum Sassanidarum / Regnum Persicum novum
영어 Sasanian Empire
한자 波斯國 (파사국)[42]

14. 대중 매체에서

  • 로마: 토탈 워 - 바바리안 인베이젼에서 기본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등장한다. 세력 지도자는 샤푸르 2세이다.[43]
  • 토탈 워: 아틸라에서 기본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등장한다. 세력 지도자는 바흐람 4세로 설정되어 있으며, 본국 영토는 작은 편이나 8개의 속국을 거느리고 있다. 항목 참조.
  • 토탈 워: 로마 2의 DLC 분열된 제국에서는 고유 목표를 가진 5개의 세력(갈리아 제국, 로마 제국, 팔미라 제국, 고트, 사산조 페르시아) 중 하나다. 세력 지도자는 샤푸르 1세의 아들인 호르미즈드 1세.
  • 사산 왕조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이란 학자인 압돌 호세인 자린쿠가 쓴 <페르시아 사산제국 정치사>#가 2011년 국내에 번역 출판되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없고, 인터넷 중고 서점에서야 구할 수 있다.
  •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에서는 사산 가문의 방계로 알려진 바반드 가문과 바두스판 가문의 가계도를 보면 사산 왕조의 군주들이 등장한다.

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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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이란 혁명
이란 이슬람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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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연합국 과도 행정처
이라크령 쿠르디스탄 ISIL 이라크 신정부군
<nopad>

※서북부는 이라크령 쿠르디스탄 (다후크, 아르빌, 술라이마니야, 할라브자), 그 외 니네베, 키르쿠크, 살라흐 알 딘 포함
※서남부는 안바르 포함
※중부는 바그다드, 디얄라, 바빌, 카르발라, 나자프, 와시트 포함
※남동부는 무탄나, 카디시야, 바스라, 디카르, 마이산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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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왕조 (부바스티스 왕조) 제23왕조 제24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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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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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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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 (수니파) 아랍계 왕조, 진한 초록색 : 시아파나 하심 가문 왕조, 자주색 (짙은 핑크) : 이란 계통 / 연한 빨강 : 토착 예멘계 왕조. 쿠웨이트는 오만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사파비, 오스만의 지배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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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인 왕국, 카타반 왕국, 하드라마우트 왕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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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라마우트 하드라마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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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라트 캅카스|{{{#!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0; font-size: .8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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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산 왕조 말엽에 임금의 군대를 표시하는 깃발로 쓰였는데, 사산 왕조를 대표할 만한 다른 문양이나 상징물이 없기 때문에 사산 왕조의 대표 상징으로 여긴다. 페르시아어로는 'Derafsh Kaviani'나 'Darafsh Kaviani'라고 하며, '대장장이 카웨(Kaweh)의 깃발'이라는 뜻이다. 이란 신화에서 카웨가 사악한 뱀 왕 자하크의 폭정을 무너뜨릴 때 봉기군의 깃발로 쓰기 위해 자신의 대장장이 앞치마를 창대에 내걸었는데, 카웨가 이란 신화의 정통 왕조인 피슈더드 왕조의 자손 페리둔을 왕으로 옹립한 뒤 사람들이 이 깃발을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여 왕권의 상징으로 삼았다는 신화가 있다. 이 신화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케메네스 왕조 멸망 직후 파르스의 프라타라카들이 주화에 이 깃발을 새긴 것을 보아 최소한 그 당시부터 파르스 지방의 상징이었음은 알 수 있다. 이 깃발의 색 조합이 보라, 노랑, 빨강인 것은 확실하지만 깃발의 어느 부분이 무슨 색이었는지는 논란이 있다.[2] 해당 문양은 황실의 물건에도 자주 쓰였기 때문에 황실의 상징으로 추측하기도 한다.[3] 이집트레반트, 아나톨리아 등은 로마와의 전쟁 중에 점령한 일시적 영토로, 약 10년 정도밖에 유지되지 않았다. 참고로 구글에 검색하면 흔히 나오는 아나톨리아 전체와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의 해안, 동쪽으로는 파키스탄 거의 전부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남부 일부까지 사산 왕조의 영토로 나와있는 지도는 매우 과장된 것이며, 실제로는 약간의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직접 지배하진 못했다.[4] šāhān šāh. 샤푸르 1세 이후 주화에 새겨진 전체 칭호는 '이란인과 비이란인의 왕중왕'(šāhān šāh ī ērān ud anērān)이다.[5] 아람어(메소포타미아 지역 공용어 겸 행정 언어), 파르티아어(4세기 이전 귀족층), 코이네 그리스어(4세기 이전 귀족층 및 로마인 포로들), 시리아어(메소포타미아 서부), 엘람어(메소포타미아 동부), 이란계 지역 언어들(아제르바이잔, 마잔다란, 호라산, 시스탄, 소그드, 호라즘, 발흐, 토하리스탄 등), 캅카스 지역 언어들, 아라비아 지역 언어들, 라틴어(로마인 포로들) 등[6] 그리스도교(주로 네스토리우스파),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변종 분파들(마니교, 마즈다크교, 미트라교 등), 불교, 힌두교, 바빌로니아 고대 종교, 그리스 다신교[7] 경우에 따라서는 '사산조 페르시아'로 기재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조', '고려조'처럼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표기 탓에 '왕조'라는 뜻인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8] 출처[9] 638년 아랍인들이 크테시폰을 함락시켰을 때, 노획한 은화의 양은 무려 90억 개나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산 왕조가 누렸던 경제적 풍요가 어마어마했음을 보여주는 사례. 출처: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들》/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 51쪽[10] 반면 로마-페르시아 국경으로부터 로마의 종심은 수도인 로마 및 콘스탄티노플 기준으로 하면 아예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있으므로 비교할 수 없이 길고, 수도는 아니지만 레반트 일대의 최대도시이자 중심지인 안티오키아를 기준으로 해야 겨우 크테시폰과의 종심과 비슷했다. 바로 이 점이 602-628년의 대전쟁 때 굉장한 강점으로 작용하여 로마 측의 역전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11] 이 시기에 중앙아시아 일대에서는 티무르 제국이 분열되어 여러 군소 세력들이 할거하고 있었고, 그나마 세력이 컸던 백양 왕조는 내분으로 쇠락하다가 사파비 왕조에게 멸망당했다.[출처] Touraj Daryaee 역, 《Šahrestānīhā-ī Ērānšahr》, P. 107[13] 페르시아어 šahr, 그리스어 ethnous[14] 오늘날 이라크 남동부. 옛 파르티아의 속국 카라케네에서 이어진다.[15] 아수레스탄. 바빌론-셀레우키아-크테시폰을 중심지로 하는 바빌로니아 권역이지만 사산 왕조 시대에는 아시리아인이 지역 주민 중 가장 다수였으므로 페르시아어로 '아시리아인의 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16] 노드쉐라간. 오늘날 이라크 북서부. 옛 파르티아의 속국 아디아베네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옛 아시리아의 수도권이다.[17] 아라베스탄. 오늘날 터키 동남부, 옛 파르티아의 속국 오스로에네에서 이어진다. 오스로에네의 왕족이 아랍인들이었기 때문에 아라베스탄이라고 불렸다.[18] 오늘날 조지아의 밍그렐리아주 인근.[19] 오늘날 아제르바이잔 동부를 거쳐 카스피해로 흘러드는 쿠라강과 아라스강 사이의 지역.[20] 이상 4개의 지역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남부 ~ 파키스탄 서부로 비정된다.[21] 오늘날 발칸 반도의 알바니아가 아닌 아제르바이잔 일대의 원주민들을 일컫던 명칭[22] 오늘날의 아르메니아보다 더 컸던 역사적 아르메니아(터키의 동부지역 대부분 포함)의 지역명 중 바스푸라칸(Vaspurakan)이 있는데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23] 고대 그리스어로 빵 굽는 화덕이라는 뜻이다. 더운 날씨에 금속으로 된 갑옷으로 전신을 덮고 있는 대낮에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화덕 속에서 굽는 빵처럼 더울 것이라고 붙인 이름이다.[24] 북방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불길한 방위이기 때문에 방위명이 아니라 지명인 아두르바다간을 썼다.[25] Washt가 모여서 Drafsh가 되고, Drafsh가 모여서 Gund가 되는 식[26] 물론 나중에는 로마의 반격으로 오히려 역공당해 페르시아의 피해가 심각해져서 더이상의 공세를 못하고 화친을 맺는다.[27] 중세 페르시아어로 삶을 바친자/희생자라는 뜻인데, 이 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돌격의 최전방에서 적에게 죽든 아군에 밀려 죽든 미친듯이 싸우던 자들인 것으로 보인다.[28] 사산조 기병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했다.[29] 파르티아는 기병의 90%가 궁기병에 주요 전력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사산 왕조에서는 중장기병의 비중이 늘고 궁기병은 이들과 보병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30] 로마와의 전쟁 때는 코끼리가 700마리 정도 동원되었다고 한다.[31] 사산 왕조의 교역로는 크게 북부의 실크로드와 남부 해안가의 해안교역로로 나뉘었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산 비단을 수입할 뿐만 아니라 슈쉬, 군데샤푸르, 슈슈타르 등의 비단 공장에서 자체적으로도 페르시아산 비단을 수급했다.[32] 이렇게 예멘을 정복한 덕분에 571년부터는 사산 왕조가 예멘에서 생산되는 향을 독점적으로 사고 팔았다.[33] 시무르그가 짜넣어진 6세기 경 사산 왕조의 비단. 현재는 프랑스 파리 렌 성당의 성유물함에 보존되어 있다.[34] 전반적으로 웅장한 느낌을 주지만 섬세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고 궁전 전체가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황제의 거대한 위엄을 나타내는 데에 치중하여 정교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나타내지는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35] 지면부터 처마까지 외벽 장식이 빽빽하게 장식된 점이 포인트다. 여러 줄들마다 각기 다른 양식의 이중아치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으며 아치들 사이에 기둥을 배치해 단조로워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내부에는 금박으로 장식한 기둥과 그림들로 장식되어있었지만 물론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36] 사산 왕조의 초대 샤한샤인 아르다시르 1세가 224년 지은 궁전. 작은 호숫가에 위치한 궁전으로 전체적인 구조는 크테시폰 황궁과 비슷하다. 입구의 거대한 아치홀이 있고 그 위에는 22m 높이의 돔이 덮여있으며 메인 아치홀 양 옆으로는 2개의 돔덮인 방들이 딸려있는 모습이다. 한때는 내부를 화려한 스투코로 장식하고 정원들로 둘러쳐진 아름다운 장소였지만 현재는 벽돌더미일 뿐이다.[37] 사산 왕조 시대에 지어진 요새로 팔라비 왕조 시대에는 감옥으로도 쓰였다.[38] 이는 옛 고대 엘람아시리아를 거쳐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부터 시작된 오래된 전통으로, 사산 왕조 멸망 이후 한동안 대가 끊겼다가 카자르 왕조 시절 들어 다시 부활한다.[39] 아르다시르 1세아후라 마즈다와 함께 새겨져 있는데 중요한 점은 둘의 모습을 똑같은 크기로 조각해놨다는 점. 신과 황제가 동등하다는 점을 과시하는 모습으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40] 확실하진 않으나 호스로 2세와 그의 애마 샤브디즈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의 사냥 장면으로 왕은 측면상이 묘사되어있으나 얼굴만은 4분의 3 정도로 약간 틀어진 모습으로 새겨졌다. 정면을 선호한 파르티아와 달리, 사산 왕조의 예술가들은 측면 혹은 4분의 3 정도로 몸을 측면으로 튼 자세를 선호했다.[41] 황제가 왕비에게 꽃을 바치는 모티브.[42] 중국 남북조시대 역사서 《위서(魏書)》 등에 등장[43] 정확히는 이름이 샤푸르라 표기되어 있지만 스타팅 연도상으로 샤푸르 2세라 추측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