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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제국 36대 샤한샤 𐭱𐭧𐭯𐭥𐭧𐭥𐭩𐭩 𐭧𐭱𐭨𐭥𐭥𐭥𐭰 |샤푸르 샤흐르바라즈 | ||
제호 | 한국어 | 샤푸르 샤흐르바라즈 |
중기 페르시아어 | 𐭱𐭧𐭯𐭥𐭧𐭥𐭩𐭩 𐭧𐭱𐭨𐭥𐭥𐭥𐭰 | |
영어 | Shapur Shahrvaraz | |
존호 | 샤한샤 | |
생몰 년도 | ? ~ ? | |
재위 기간 | 63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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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산 왕조의 제36대 샤한샤.2. 생애
샤흐르바라즈와 호스로 2세의 여동생 미흐란 사이의 아들이다. 630년 4월 29일 크테시폰을 함락하고 아르다시르 3세와 귀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샤한샤가 된 아버지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630년 6월 9일 이스파부단 가문의 수장 파루크 호르미즈드가 정변을 일으켜 샤흐르바라즈를 죽이고 아르다시르 3세의 이모인 푸란도흐트를 샤한샤로 추대했다. 그는 수도를 탈출한 뒤 아버지를 따랐던 무리를 수습한 후 반격을 가하여 푸란도흐트를 축출한 후 샤한샤가 되었다. 그러나 파르시그 가문의 피루즈 호스로가 곧바로 그를 폐위시켰고, 아자르미도흐트가 뒤를 이어 샤한샤로 즉위했다.아자르미도흐트는 자신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파루크 호르미즈드가 자기와 결혼하겠다고 제안한 것에 반감을 품고 미흐란 가문 귀족은 시아바흐쉬의 도움으로 그를 살해한 뒤, 샤푸르 샤흐르바라즈와 결혼하려 했다. 샤푸르 역시 이에 호의를 보였으나, 파루크 호르미즈드의 아들 로스탐 하로흐자드가 크테시폰으로 쳐들어가 아자르미도흐트를 붙잡은 뒤 먼저 실명시킨 후 죽여버렸다. 이후 샤푸르 샤흐르바라즈가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