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4 13:40:38

카스트

인도의 전통적 카스트
제1계급 브라만 성직자
제2계급 크샤트리아 왕·귀족·무사
제3계급 바이샤 자영농·상공업자
제4계급 수드라 농노·육체노동자
계급 외 불가촉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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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도의 와르나(Varna)
2.1. 역사2.2. 카스트에 대한 오해: 제도가 아니다2.3. 복식
3. 카스트의 하위계급과 그 폐해
3.1.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인도 정부의 정책과 비판
4. 현실5. 이모저모6. 카스트별 유명인물
6.1. 창작물에서의 카스트


Caste System

1. 개요

카스트라는 말은 포르투갈어 카스타(Casta)[1]에서 비롯된 세계 각지의 정교하게 고착화된 신분질서제도를 칭하는 학술적 일반명사이다. 이 문서에서는 주로 인도의 신분제도에 대해 다룬다.

2. 인도의 와르나(Varna)

일반적으로 카스트 제도라고 하면 인도 힌두교도 특유의 신분제를 지칭한다. 인도 사람이라도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시크교, 기독교 등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카스트 제도를 거부한다.[2] 인도 사람들은 이 제도를 와르나(Varna)라 부른다. 뜻은 색깔, 정확히는 피부의 색깔이라는 뜻.

사실 인도에서는 카스트라는 것 자체가 신분제는 아니며, 한국에서 예전에 무슨무슨 김씨, 무슨무슨 이씨처럼 족보를 따지듯이, 인도 사람들이 각자 속해있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족보 비슷한 카스트에 저마다 속해 있다. 이름만 봐도 어느 카스트인지 대강 구별이 가능하다.[3] 그리고 이 카스트를 분류해서, 상류층에 속한 카스트 족벌과 하류층에 속한 카스트 족벌 등으로 이것을 등급화 시켜놓은 것이 바로 바르나이다. 즉 한국에서는 브라만, 수드라 등의 카스트 계급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인도에 가면 카스트는 각 개개인이 속한 족벌에 불과하고, 그 카스트 족벌들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불가촉천민 등등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 바로 바르나이다. 그러니까 더 무섭다. 사회적 계급이라면 상하위 이동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있지만 이건 핏줄이라 벗어날 길이 없다. 최근에는 같은 카스트들끼리는 서로 합체(?)하여 구분이 불가능하기는 하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 사람들(이슬람이나 시크교나 기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은 해당사항이 없다. 그러나 힌두교에서는 이들을 천시한다. 이슬람교도는 힌두교의 관점에서는 수드라다.)은 누구나 카스트 중의 어느 하나에 자동적으로 귀속되며 대대로 이 카스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공덕을 완수하면 상위 카스트로 다시 태어난다고는 하지만...[4] 또한 카스트 제도의 터부에 따르면 바다(Kala Pani, Black Water)를 한 번이라도 건너면 그 전 계급과 상관없이 카스트 계급에서 축출하고 불가촉천민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다른 종교를 갖고 있던 사람이 힌두교로 개종하게 되면 대부분 수드라에 속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인도인으로 귀화해도 수드라 카스트로 간주받는다. 실제로 외국인으로써 평소의 대접은 크샤트리아 수준이다. 물론 선진국에서 온 옷 잘 차려입고 현금 좀 들고 온 사람이라면 브라만 이상의 행세를 할 수 있다. 이는 주기적으로 외부 세력에 침입과 정복을 당해왔던 역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에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로 외국인=돈으로 보고 잘 해준다는 의미도 있다. 돈 걱정 없는 부유한 상위 카스트 사람들은 외국인을 벌레 보듯 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상위 카스트 출신인 승무원이 더러운 카스트 밖의 외국인에게 접근하기 싫다 하여 무례하게 굴기도 했다. 그럴 거면 승무원 왜 했니? 또한 카스트를 신봉하는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은 외국인들에게 극진한 환대를 하며 질그릇[5]에 온갖 귀한 음식을 담아서 대접한 뒤, 그 외국인이 귀국하거나 다른 지방으로 가면 그 그릇을 깨버린다. 다만 의식의 현대화와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적어도 대도시에서 외국인을 천대한다든가 계급으로 차별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아예 그런 화제에 관심을 안 가지는 경우가 많아 관광객으로선 그런 계급 구분하는 모습을 보긴 힘들다.

현대 인도에서 서로 '너 크샤트리아 계급이냐, 바이샤 계급이냐?' 이렇게 묻지는 않는다. 사실 인도에서는 여기 나와 있는 것처럼 네 층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잘 안 쓰고 직업으로 나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등의 카스트는 일종의 대분류고,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쟈티'이다. 인도인들은 일종의 가문/씨족이자 직업과 생활양식을 강제하는 쟈티에 속해 있고, 사람을 상대할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쟈티를 따지는 것이 먼저고, 크샤트리아, 바이샤, 브라만 등의 대분류는 각 쟈티를 포괄하는 대분류로써 일종의 속성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 브라만들이 가끔씩 '나 브라만이야' 할 때 외에는 들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인도 헌법상으로는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당수 주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을 위해 카스트 증명서를 발급하거나, 아예 주정부 신분증에 카스트를 기입해서 나눠주기도 하는 등 모순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이렇게 신분이 나뉘어져 있다. 옆의 퍼센테이지는 2004-05년 기준.
  • 상위 3계급(Forward Caste) -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인구의 30.8%.
  • SC(Scheduled Caste) - 지정 카스트(불가촉 천민): 인구의 19.5%.
  • ST(Scheduled Tribe) - 지정 부족[6]: 인구의 8.7%.
  • OBC(Other Backward Caste) - 기타 소외 계급[7]: 인구의 41.1%.

카스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다. 하지만 복잡한 인도의 사회와 역사, 그리고 카스트의 기원(起源) 등에 관한 제설(諸說)과도 관련되어 한 마디로 단정내리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2.1.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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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카스트의 기원을 아리아인의 일부가 인도에 침입한 기원전 1300년 전후 무렵으로 여기고 있다. 결과만 보면 아리안족의 침입 내지는 정벌의 형국이었지만 한꺼번에 정벌한 것은 아니고 약 천년에 걸쳐 제각기 나라를 세워 항쟁하며 때로 이민족끼리의 연합이 이뤄지기도 하는 양상이었다. 그러니까 칭기즈 칸이나 알렉산더 대왕처럼 파도처럼 밀려와 쓸어버리고 상황 끝낸 게 아니란 이야기다. 선주민의 영역은 이 과정 중에 남쪽으로 점점 밀려나고[8] 마침내 아리안족 왕조가 인도 아대륙의 대부분을 석권하게 된다. 이 침입을 당하여 선주민(先住民)인 드라비다인들은 아리아인의 지배를 받게 되어 하층 계급으로 전락하여 수드라의 근원이 되었다.[9] 또한 오스트로아시아 계통의 소수민족인 문다인들도 아리아인에게 정복당하였고, 이들은 정황상 불가촉천민 계급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사는 페르시아어의 '다하'에 해당하는데, 고대 이란에는 제승(祭僧)·무사(武士)·농민·공장(工匠)의 네 다하가 있었다. 아리아인이 침입했을 때만 해도 인도에는 '자유민'과 '선주민'의 두 신분(또는 계층)뿐이었으나 이란의 네 다하가 이 인도의 신분제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아리아인은 브라만 문화를 완성하고 그 후 많은 변천을 거쳐 사제(司祭)와 무사가 분화[10]했고 선주민의 혈통은 오직 육체노동이나 잡역에만 종사하게 되었다. 이것이 브라만(Brahman: 사제자)·크샤트리아(Kshatriya: 무사·귀족)·바이샤(Vaisya: 자영농·상인·공인 등의 생산직 중산층), 피정복민(被征服民)으로 이루어진 수드라(Sudra: 육체노동자 및 농노)의 네 바르나, 즉 카스트로 나타났다.[11]

이에 대해 카스트 제도의 성립 과정에서 아리아인과 토착민의 구별은 근거가 없고 자의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카스트의 성립 시기에 이미 인종적으로는 서로 융합하여 구별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참고바람. 해당 인물은 국내의 최고 인도사 권위자라고 한다.

긴 시간을 거치면서 다양한 혼혈과 혼족이 이뤄짐에 따라 카스트도 다시 분화를 거듭하여 현재 인도에는 약 3000여 개의 자티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티란 4단계의 큰 카스트에 종속하는 체계로써 계급의 성격도 띄지만 대충 가문 정도 개념으로 이해해도 된다. 가령 단적인 예로 힌두교인이 운영하는 식당(외국인도 출입할 수 있는)의 경우 주방장은 거의 다 브라만 출신이다. 왜냐하면 위생과 정결함을 교리로 못박아놓을 만큼 중시하는 힌두교에서 어떤 음식은 깨끗하고 어떤 음식은 불결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사제들의 역할이기도 했거니와, 바이샤나 수드라 같은 천한 카스트가 만든 음식은 그보다 높은 카스트의 사람이 먹으면 부정을 탄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카스트가 만든 음식은 같은 계급이나 그 아래 계급 누구에게나 줄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을 만지는 미용사 일도 상위 카스트가 하는 경우가 보통이고 불가촉천민 중에서도 야경꾼으로 일하는 자티의 경우 그나마 짭짤한 부수입이 주어지는 식으로 또 차별화되었다.

물론 그래도 기본은 초기의 4가지 계급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완전히 다른 계층의 카스트와는 통교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용 문제에서는 카스트가 그리 중시되지 않는다. 가령 바이샤 출신인 상인이나 공장주가 크샤트리아나 브라만 출신의 직원을 고용하는 것도 전통 시대부터 얼마든지 가능했다.

카스트 제도가 만든 직업 차별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영학이 발달하기 오래 전부터 분업과 전문화를 가능케 해서 인도의 생산성을 높이기도 했다. 면직물 생산을 예로 들자면 목화를 재배하는 자티, 그걸 강으로 운반하는 자티, 면사를 만드는 자티, 직물로 만드는 자티, 도매상에 넘기는 자티 등등. 자티별로 모든 업무를 분업한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침략이 이런 분업 시스템을 망가뜨리자 오히려 생산성이 감소하기도 했다.

2.2. 카스트에 대한 오해: 제도가 아니다

이 문단의 출처는 뉴스톱 기사에 근거한다.

현대의 인도 공화국은 헌법으로 카스트를 부정할 뿐, 카스트 제도를 폐지한 적은 없다. 카스트가 제도화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카스트 '제도'라는 말을 사용하여 카스트가 일종의 '정책'이나 '법률'처럼 여겨지지만 카스트는 엄연히 힌두교의 교리일 뿐이다. 다만 인도 내의 힌두교도들 다수가 아직 세속화되지 않았고, 전근대적인 차별 교리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그 수가 인도 내에서 많기 때문에 성문법화된 국가 정책인 것처럼 오해되는 것뿐이다.

역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 만약 현대 인도가 카스트를 '폐지'하였다면, 반대로 말하자면 그 이전에는 카스트 제도가 '법제화'되어 있었다는 소리인데,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령 무굴 제국은 중동 쪽에서 티무르계의 후손이 인도 지역을 정복하고 세운 국가로서 이슬람계 국가이다. 그런데 이슬람계 국가에서 카스트 제도를 법제화하고 인정하였다고 하면 아귀가 맞지 않다. 왜냐하면 전근대적 이슬람 교리에서 비록 차별적인 내용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힌두교처럼 '영혼 자체에' 귀천이 존재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으며 '영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12] 또한 기독교권 국가인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할 때 영국 정부도 법에 카스트를 박아넣고 카스트에 따라 통치하였다는 소리도 맞지 않다. 이 두 세력이 '인도에 만연하던 카스트 의식'을 뿌리뽑지 못하고 그 의식을 유지시켰다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이 카스트 '제도'를 시행했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그와는 별개로 현대 인도 공화국 정부는 카스트를 뿌리뽑기 위해 애를 썼다. 특히 독립 이후로는 헌법 차원에서 카스트를 부정했으며, 인도 정부에서 카스트 제도를 "악습"으로 규정하고 완벽히 근절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는 당연하게도 이런 제도가 현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데다가 국가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지방 깊숙한 곳까지는 철폐가 쉽지가 않아서 카스트 근절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실제로 인도의 경우에는 지방분권이 강한데다가 도시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도입해서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는 정책을 펴오기는 했지만[13]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그리 강하지 못한 나라이다보니 토지개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카스트 의식을 유지하던 지방 토호들의 힘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시골을 중심으로 카스트 제도가 잔존하게 된 씁쓸한 현실로 남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도 정부는 카스트 자체가 아닌 카스트로 인한 신분차별 악습을 근절하려 하는 것이고, 아예 법률에도 명시해 놓았다.[14] 그러나 오히려 하위 카스트 및 불가촉민들에게 어퍼머티브 액션을 취하기 위하여 카스트 목록을 이용하는 등의 대책을 취하고 있다.

2.3. 복식

카스트 제도에서 각 카스트마다 다른 복식과 다른 문양을 채택하고 있다. 특히 이마에 표시를 새기는데 이 표시는 카스트에 따라 다르게 새겨진다.
  • 브라만: 백색 또는 보석장식
  • 크샤트리아: 적색
  • 바이샤: 황색
  • 수드라: 흑색

3. 카스트의 하위계급과 그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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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 제도의 실태를 잘 알려주는 그림.[15]

수드라를 제외한 세 카스트는 종교적으로 재생[16]할 수 있다는 이유로 드비자(再生族)라고도 한다. 네 카스트는 존귀한 자와 비천한 자라는 고저(高低)의 서열을 나타내고 있어 더 높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더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의 곁에만 가도 더럽혀진다고 볼 정도다.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부정시(不淨視)되었다. 따라서 각 카스트는 직업을 세습하였으며 카스트 상호간의 통혼(通婚) 역시 일반적으로 금지되었다. 정확히는 남성이 한두 계급 아래의 여성을 받아들이는 일만 드물게 일어나고 반대로 고위의 여성과 신분이 비천한 남성의 혼인이 철저하게 금기시되었다. 해외단신에 결혼했다가 신분 차이로 헤어지고 죽고 죽이고 했다는 얘기는 대개 이쪽 경우에 해당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자기보다 약간 신분이 낮은 카스트의 여성과 혼인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엄청난 성비 파괴로 인해[17] 자기 카스트 내에서만 여자를 찾을 경우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 남자들이 너무 많고, 또한 낮은 카스트의 여성에게 혼인을 대가로 도에 넘치는 혼수를 요구하려는 이유 등도 포함되어 있다. 매우 드물지만 자기보다 약간 신분 높은 카스트의 여성과 혼인하는 남성도 보이고 있다.

또한 이 네 카스트 밑의 불가촉민(不可觸民: 언터처블·하리잔. 달리트라고도 한다)을 '아웃 카스트'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카스트제(制)라고 할 때는 불가촉천민도 포함된다. 이 불가촉천민은 힌두교에서 완전히 배제된 존재로 힌두교의 가르침은 물론 사원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조차 금지되어 사원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며, 신의 이름이나 가르침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경전을 보았다간 눈을 뽑히고 경전 등에 대해 입이라도 뻥끗하면 혀를 뽑히고 실수로 타 카스트와 접촉하면 그 신체부위를 절단당하는 등 고대부터 갖은 가혹행위를 당했다. 법으로 금지된 요즘에도 비공식적으로 많이 자행되고 있다. 인도군에 입대해서 장성의 자리에 오른 불가촉민이 고향에 갔을 때 다른 사람 눈에 보일까봐 밤에 숨어다녔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18]

또한 인도판 KKK 정도 되는 집단도 있는데 주로 브라만을 비롯한 상위 카스트로 구성된 자들이다.[19] 이들은 평소에는 조용히 생업에 종사하다가 눈에 거슬리는 하위 카스트 신분이 나타나면 서로 연락을 해서 총, 칼 같은 무기를 가지고 밤중에 은밀히 모여서 하위 카스트를 사냥하러 간다고 한다. 이들은 카스트 제도를 어긴 하위 카스트에게 신을 대신하여 처벌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인도가 발전하면서 더 이상 과거처럼 하위 카스트를 마음대로 노예 부리듯 할 수 없고 경제적인 궁핍에 처하자 성공한 카스트 재산을 약탈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길 목적으로 벌인 것이다. 반대로 이런 식으로 살해당한 하위 카스트들이 복수 차원으로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이런 집단들과 그 가족들을 역으로 죽이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 2 계급이 아니면 높은 계급이여도 대우[20]가 좋지 못하여 바이샤 계급인 구자르인은 유혈 폭동을 일으켜 불가촉천민의 계급을 받기도 했다. 공무원, 대학, 복지 등에서 오히려 불가촉천민이 더 유리하기 때문.

이런 일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어나고 있어서 사회통합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그나마 이것도 과거에 비하면 좋아진 편이지만...

3.1.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인도 정부의 정책과 비판

한편 인도 정부도 이런 신분제도 때문에 계급적으로도 사회적인 빈부 격차가 악화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독립 이후 건국 초기부터 낮은 계급을 위한 쿼터제를 실시해오고 있다. OBC, ST, SC를 위해 일정한 할당제를 공기업이나 공무원, 대학 입학 등에 도입했는데 사회적인 빈부 격차를 꽤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 쿼터제의 혜택을 받는 OBC, ST, SC의 비중이 상위 3계급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인도의 각 주마다 다르지만 대개 SC는 20%, ST는 10%에 비해 OBC는 전체 인구의 무려 4~50%를 차지한다. 원래 극소수의 차별 받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쿼터 할당제인데 전체 고용자 수 중 무려 50%의 취업자가 이 혜택을 받는다.

일반 상위 계급은 이 쿼터제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쿼터제가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지만 최근 인도 정부는 이 쿼터제를 의대에 도입했고[21] 곧 사기업 전반에도 확장할 계획이라 이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사실 이 카스트 제도라는 것이 현대 인도에서 법적인 기준이 확연하지 않아 원활한 쿼터제 시행을 위해 정부가 2011년에 그 전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카스트별 인구 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헌법에서 부정하는 카스트 제도를 이제 와서 공인하는 꼴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어찌 되었건 인도는 민주주의 국가다.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을 얻게 되는 건 인도도 똑같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인도에서는 힌두교상으로는 낮은 계급인 OBC, SC, ST의 인구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주요 정당인 인도 국민회의인도 인민당[22]은 이들 하층 계급이 결집한 다른 정당[23]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모으기 위해 쿼터제를 더욱 확대하려는 추세고, 특히 OBC가 인구 비중이 제일 많기 때문에 이 계급을 위한 움직임이 가장 많다. 이 추세에 대한 반발 및 논쟁이 현대 인도의 카스트 제도의 가장 핵심적인 논쟁 부문이라고 보면 된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하층 계급을 위해 만든 쿼터제가 카스트 제도의 와해는커녕 도리어 각 계급 간의 결속을 더 강화해버리는 게 아이러니하다. 인도 정부도 이 인과관계를 알고 있지만 신분제는 그 특성상 지배계급이 무너져야만 끝이 나는 것인지라 어쩔 수 없이 피지배계급인 수드라, 불가촉천민, 바이샤 등에게 계속 힘을 실어주는 듯.

4. 현실

인도도 지방토호의 힘이 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장기간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는 국가이고 교육수준도 시간이 갈수록 향상되어가고 있는 추세인지라 카스트 의식은 이전보다는 많이 희미해졌다. 현실적으로 브라만이라고 늘 돈이나 먹을 게 쏟아지는 게 아니라서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는 브라만이 평소 우습게 여기던 수드라나 바이샤 출신의 대박을 거둔 사업가 밑에 들어가 일하기도 한다. 실제로 인도에 진출한 현대중공업 간부의 증언을 보면 현지 하청업체 사장 밑에 브라만 출신의 부하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속으로 카스트를 가지고 뭐라고 욕할지언정 바이샤 출신인 사장 옆에서 열심히 아부하면서 술자리에서 굽실거리는 걸 봤다고 한다.[24] 인도인들 사이에서도 재력이 카스트를 대신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보호 정책을 펼치고는 있지만 동시에 상위 카스트들이 상대적으로 고위직에 많은 만큼 국가에서부터 차별적인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위 카스트에게 공식 정책 용어로 후진 계급이라는 용어를 쓰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열등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근대적인 교육을 받은 젊은층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카스트를 따지지는 않는 것 같다. 같이 잘 어울려 다니고 어른들이 카스트 가지고 뭐라 그러면 오히려 "저 꼰대 어르신은 왜 저러신다냐?" 하고 오히려 비웃는다고. 카스트 따지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나? 도시의 젊은 층들은 카스트건 종교건 상관 안 하고 다같이 어울려 밥도 같이 먹고 다니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여하튼 잘만 어울려 다닌다. 심지어는 크샤트리아 남자와 불가촉천민 여자가 서로 사귀다가 남자 쪽 부모의 강한 반대에 못 이겨서 둘이 야반도주한 사례도 있다. 물론 부모 세대의 인식은 너무나도 달라서 이렇게 도망갔다가 잡히면 죽을 수도 있다. 현재도 버젓이 사람을 고용해서 이렇게 야반도주한 자녀 부부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2018년 기사에 나온 부부의 경우, 여성은 상위 카스트에 속하는데 남자가 불가촉천민이었고, 결국 24세에 불과한 젊은 나이에 임신 5개월인 부인의 눈 앞에서 살해당했으며, 아내는 자신의 아버지가 사주했다고 주장했다. 2019년에도 딸이 불가촉천민과 결혼하자 장인이 사위를 청부살해한 사건이 터졌다. #

시골에서 쭉 자라온 사람이 다른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렸단 증언이 있는 걸 보면 지역간의 차이도 있는 듯하다. 특히 인도의 최대도시인 뭄바이가 위치해있는 마하라슈트라 주는 현재 세속주의적 경향이 가장 강한 곳인데, 그 이유가 인도의 경제 중심지라서 그런 것도 있으나, 16세기부터 카스트 제도의 철폐를 주장하던 힌두교 개혁주의자들이 자주 활동하던 곳이라서 그렇다. 이들이 세운 나라가 바로 마라타 동맹이며, 이들이 한때 인도 아대륙을 통일할 뻔했을 만큼 큰 호응을 얻은 이유가 이런 종교개혁운동에 동조한 이들이 많았다는 점과 이슬람을 믿는 무굴 제국 정권에 대한 증오가 컸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에야 뒤늦게 인도 연방에 가입한 시킴[25]는 아예 인구의 대다수가 티베트 불교의 신자인 것에 영향을 받아서, 이곳에 사는 일부 힌두교 신자들도 카스트 제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카스트 따위는 장식으로 여기고 그냥 각 계층들끼리 잘 화합했다.[26]

이런 사례는 드문 편이긴 하나, 거꾸로 말하면, 이는 카스트 제도가 원래부터 힌두교에 있었던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가령 옆 동네 네팔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쯤에나 카스트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것도 대대로 왕비를 배출하던 왕실의 외척 가문인 라나 가문 때문에 그런 것이라서 공화정으로 전환하고 라나 가문이 나가리된 오늘날에는 카스트에 연연하는 일 따위는 없다.[27] 카스트 제도의 역사가 너무 짧아서, 이 나라에서 카스트는 가업을 대대로 이어받은 집안을 직군별로 구분하거나, 출신 민족을 알아보는 용으로만 쓰인다. 위에서 언급한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나오는 '자티' 개념이나 구 소련의 직군별 계급 구분 방식에 더 가까운 식이다. 특히 브라만이 아니고서야 카스트 가지고 사람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네팔의 카스트 제도는 소련의 계급 구분에 더 가깝다. 인도네시아발리 섬힌두교를 도입한 후에 카스트 제도가 정착했으나, 정작 귀족층인 브라만 빼고는 카스트 따위는 장식으로 여겼다. 심지어 대놓고 불가촉천민이 상위 계층인 크샤트리아나 바이샤, 수드라와 친구먹고 다니기도 하는 등, 인도보다는 훨씬 유연했다.

더불어 옛날 라자[28]들도 관광업에 의존하면서 옛날에 살던 성을 호텔로 개조하여 열심히 돈벌이를 한다. 덕분에 옛날 같으면 "어찌 라자가 이런 일을 한다는 말이냐?"라면서 우습게 봤었을 심부름이나 청소까지 라자가 직접 하는 경우를 실제로 본 여행자도 있다고 한다. 여행자가 "정 그러면 사람을 고용하여 쓰시든지 하죠?"라고 질문하자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하던 라자는 옛날 자신이 어릴 적만 해도 돈 안 줘도 카스트를 빌미로 좋은 업을 쌓는 것이라는 구실로 아랫사람들을 마구 부려먹으며 호강하던 적도 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고. 근처에 있던 라자의 어머니도 옛날에는 하인을 수백여 명이나 부리던 시절이 있지만 이제는 돈 없으면 카스트도 소용 없다고 과거를 그리워했다. 자랑할 걸 자랑해야지 ㅉㅉ 하지만, 이런 라자들의 삶도 극과 극인데 잘 나가는 부유한 지역의 라자는 인도 정부도 못 건드린다. 이를테면 타지마할이 있는 곳의 라자는 엄청난 부자에 시장 자리까지 거저 차지하고, 다른 잘 나가는 라자들도 국회의원직을 상대 후보가 양보하여 독점하기도 한다.[29] 하지만 관광객이 안 오는 무수한 시골 동네 라자들은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타지마할에 견주면 초라하다고는 해도) 수백여 년 역사를 가진 웅장한 성을 호텔로 개조하는 경우도 있다.[30]

이런 경우는 그나마 잘 풀린 경우고, 인도나 파키스탄의 왕위 요구자들을 보면, 이 정도도 못 되어서 아예 군주위를 상실한 사람도 적지않이 있다. 일단 무굴 제국의 황실 가문[31]부터가 당장의 끼니도 잇지 못할 만큼 가난하게 산다고 하며, 인도파키스탄 양국 정부의 시책에 반대하다가 괘씸죄로 폐위되어서 동네 바보형(...) 취급받는 신세로 전락하거나, 아예 나라 밖으로 추방당한 경우도 있다.

일례로 오늘날의 안드라프라데시주와 텔랑가나주의 전신인 하이데라바드 왕국술탄은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힌두교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왕실이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유로 파키스탄 편입을 선언했다가, 인도군의 침공을 받아서 패망하고 말았으며, 술탄 본인을 포함한 왕족들이 죄다 체포되어 사우디아라비아로 추방당했다. 그리고 왕실이 폐위될 때, 국민들로부터 아무런 동정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국민들이 인도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열렬히 환영했다. 비슷한 시기에는 잠무 카슈미르 왕국의 왕이 왕실 대대로 힌두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절대 다수가 이슬람 신자여서 파키스탄 편입을 지지하던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인도 편입을 선언했다가, 나라 전체를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를 보면 하이데라바드 왕국술탄이 얼마나 멍청한 짓거리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파키스탄에서도 훈자[32] 번왕을 포함한 여러 군주들을 폐위시키는 대신에 어느 정도의 자치권과 실권을 보장하고 작위의 상속을 허가했는데, 군부의 영향으로 파키스탄 정부가 이슬람 근본주의에 물들면서 세속주의를 지향했던 번왕들이 이에 반발하자, 이에 대해 정부는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에 순응한 일부 번왕들을 제외한 나머지 번왕들의 자치권과 작위 세습권을 박탈해버리는 것으로 화답했다. 정부의 결정 앞에서는 카스트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부 인도 유학생들의 말로는 카스트는 아직 살아 있다고 한다. 한 예로 인도인 학생인데 영어만 쓰는 사람들을 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낮은 카스트 출신이라 상위 카스트에게 존댓말을 해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존댓말 안 써도 되는 영어만 한다고. 서울의 모 대학에 인도 유학생들이 있는데, 크샤트리아 출신의 학생들이 수드라 학생을 왕따하는 것과 달리, 브라만 학생은 그를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이 브라만 학생은 "실력은 개뿔도 없는 놈들이 낡아 빠진 계급제도로 으스댄다"며 카스트 제도를 비판했다고.

인도인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최하위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아직까지는 공권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는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소녀가 전교 1등을 하자, 이에 자존심 상한 브라만 지역 유지들이 소녀에게 학교 출입 금지 명령을 내렸다가 전세계적인 비난과 중앙정부의 개입으로 그 명령을 취소하는 추태를 보였고, 심지어는 정당한 재판 없이 불가촉천민 청년을 처벌하여 국제적 논란을 낳았다. 물론 경찰은 있으나 경찰들도 브라만 유지들의 눈치를 보느라 이를 묵인하였다.

명백히 인도의 발전 가능성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는 적폐의 하나. 현재 도시 지역에서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시골 등의 저발전 지역에서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고. 그러나 역으로 덕을 쌓아 다음 생애에서 더 높은 계급으로 태어나기 위해 주어진 계급에 일에 더욱 충실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물론 아웃 카스트에겐 그런 거 없다. 때문에 소수(정말 극소수) 아웃 카스트의 경우엔 역인센티브 혜택을 못 보는 걸 감수해가면서 다른 종교(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로 개종하기도 한다. 그 중 불교의 경우 2001년 기준 인도 내 0.77% 정도.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덕을 쌓아 상위 카스트로 윤회하려 해도 인도 인구 4명 중 3명이 수드라인 현실에서는 그 치열한 경쟁율 때문에 또다시 수드라로 태어날 확률이 지극히 높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할 바에는 유럽 같은 곳에서 다시 태어날 확률을 생각하는 게 훨씬 낫다) 게다가 과학적인 근거도 전혀 없으니 대부분의 하위 카스트들은 카스트 제도를 없애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 세뇌 작업은 쉽게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전망은 불투명하다.

외국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카스트 차별은 그야말로 웃음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외국계 기업들이 인도에 진출하게 되면 그 기업의 입장에서는 '카스트고 나발이고 우리는 일만 잘하면, 우리가 쓰려는 직렬에 맞으면 무조건 고용한다\'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능력 있고 영어 잘하는 불가촉천민이 빈깡통 브라만보다 훨씬 대우받는다. 실제로도 하위 카스트들은 뭐라도 하려고 노력하고 잘 되면 정말 고관대작이 되기도 하며 하다못해 애견용품 관련 사업으로 대박치는 경우까지 있다. 반면 상위 카스트는 그저 조상님께서 물려주신 성 하나로 호텔을 차려서 근근히 먹고 사는 수준이 대부분이다.

전세계적으로 점차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처럼 인도에서는 불가촉천민이나 비(非) 힌두교 신자들이 온갖 차별을 다 받는 현실에 지친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예 종교를 버리거나, 그 정도까지는 아녀도 세속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날로 늘고 있다. 힌두교에서 타 종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늘었다. 물론 이는 거의 다 불가촉천민 같은 하위 카스트들의 경우지만, 흔히 힌두교의 나라로 불리는 인도에서 힌두교 신앙을 버리는 사람이 늘었다는 건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불교기독교로 개종하며, 드물게 시크교바하이교로 개종하는 사람도 있다. 전통적으로 시리아 정교회가 큰 교세를 자랑하는 케랄라 주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인도인 기독교도들의 대부분은 힌두교에서 성공회 등의 개신교로 개종한 경우가 많다. 이는 영국 식민지배 시기의 영향이 큰 데, 당시의 친영파 부역자들 중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이들이 많았기에, 인도 사회에서 '개신교인들은 곧 부자'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인들 중에는 꼭 외국에서 살고 있지 않아도, 종교를 버리고 무신론자가 된 이들이 꽤 되어서, 유명인 중에도 경제학자아마르티야 센이나, 천문학자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33], 역사학자인 미라 난다 등, 익히 알려진 이들이 많다. 사실 인도에서 무신론자라고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취급받아서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지만, 이미 인도인들 중에서도 카스트 제도의 모순으로 인해 촉발된 종교관에 대한 회의주의 경향은 날로 강해져서[34], 독실한 힌두교 신자가 바보 취급을 받는 장면이 나오거나, 대놓고 자국의 종교 문제를 디스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영화가 버젓이 개봉할 정도가 되었다.

가령 영화 세 얼간이에서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라주 라스토기라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등장하는 내내 얼간이 취급만 받다가 나중에 종교를 버리고 세속주의자가 되고서야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것으로 나오며, 영화 피케이에서는 아예 종교에 빠진 광신자들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런 신도들의 코묻은 돈을 갈취하는 사이비 종교 교주가 TV 프로그램을 통해 개망신당하는 것으로 나오는 등[35], 전통적인 종교관이 크게 흔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카스트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로도 이어지고 있어서, 요즘에는 영화와 같은 창작물에서도 이것이 반영되고 있다. 영국-인도 합작 영화인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는 주인공 자말 말리크가 이슬람교로 개종한 불가촉천민이었다는 점 때문에 그의 눈 앞에서 어머니가 힌두교 근본주의자 폭도로 가장한 용역깡패들에게 맞아죽고, 형이 조폭으로 전락했으며, 여자친구 라티카가 조폭 두목의 첩이 되는 막장 상황을 겪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가 개봉할 당시의 인도에서는 자국의 부끄러운 부분을 너무 드러냈다고 싫어하는 여론이 꽤 있었지만, 정작 그러면서도 인도 시장에서도 꽤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미 카스트 제도의 문제를 인도인들도 공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카스트 제도 때문에 냉전도 끝난 21세기에 진짜배기 공산당이 크게 위세를 떨치는 경향이 인도에 나타나고 있다. 인도 공산당이 그것으로, 불과 얼마 전까지는 인도케랄라 주에서는 공산당이 선거 때마다 압승을 거뒀고, 처음 공산당이 집권했을 때는 공산당 출신 주지사가 케랄라 주 내의 부유층들의 재산을 상당부분 몰수해서 주 재정을 확충하고 각종 복지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금은 더이상 케랄라 주인도 공산당의 표밭이 아니지만[36], 여전히 주 내에선 제1 야당으로 있으며, 공산당 자체는 여전히 인도 남부를 중심으로 매우 큰 당세를 자랑한다. 그리고 현 인도 국회의 제1야당이자, 인도 최대 정당인 인도 국민회의[37]도 진보 성향의 정당이라는 점에서, 카스트 제도가 발을 붙일 여지는 더더욱 사라져가고 있다.

해외의 인도계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카스트 가지고 사람 차별하는 건 씨도 안 먹히는 짓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에 의하면, 바다를 한 번이라도 건너면 제아무리 브라만이라도 불가촉천민이 된다지만, 정작 브라만 출신 정치인이 외국 정상과의 회담을 위해 외국으로 가도 아무 말 없는데다[38], 공부 때문에 자식을 해외로 유학보내는 일도 잦아서 그런 규칙은 사문화된지 오래다. 게다가 인도 밖에는 저 카스트 제도 때문에 차별을 피해 외국 이민의 길을 택한 사람도 많고, 자기가 원래 어느 계급이었냐와 무관하게 외국의 세속주의적인 분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고, 더불어 일단 외국에 나가면 카스트를 막론하고 인종차별을 당하기 때문에 오리지날 카스트로 단련된 멘탈 앞에서 인종차별 따위... 외국에서는 카스트 제도가 안 통하는 경우가 많다.[39] 그리고 이런 경향이 외국물 먹은 인도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에도 큰 영향을 주어서 카스트 제도의 붕괴에 기여한다. 인도의 초대 수상인 자와할랄 네루가 카스트 중에서 최상위 카스트인 브라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카스트 제도를 결사반대하고 헌법에 이를 못박은 이유도 그가 영국 유학 중에 당시에 겨우 태동하기 시작한 사회민주주의에 크게 감화된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래서 동시에 네루는 본인이 부유층 출신이기까지 했음에도 그의 성향은 매우 진보적이었다.[40] 의외로 귀족들이 이러는 경우가 많다. 카를 마르크스도 귀족 출신이다.

5. 이모저모

카스트의 폐해는 식민지 시절 영국 정부에 의해 규제되기 시작했다. 카스트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진 시기도 이때다. 현대의 인도 정부도 이러한 차별을 바꾸려고 불가촉민 계층에게 일정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일종의 '역차별법'을 제정하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카스트로 인한 사회적 차별이 뿌리 깊게 남아 각종 사회적 문제의 한 근원이 되고 있다.

이제는 하도 괴악한 문화가 된지라 종교 극단주의, 명예살인, 여성할례 등과 더불어 문화 상대론자를 깔 때 가장 자주 쓰이는 무기 중 하나이다.

웃기게도 인도 내에서는 기독교도무슬림 사이에서도 자기 나름대로의 카스트를 정해 서로 차별하고 논다. 즉 카스트는 종교 이상의 사회적 규범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정작 힌두교와 전혀 상관없는 외래종교들도 인도에 유입되어서는 현지인들에 의해 개악되어 카스트를 그대로 고집하는 반면, 인도 내에서 힌두교를 바탕으로 파생된 종교인 불교, 시크교, 자이나교 등은 카스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41] 그래서 이슬람이 대세인 방글라데시에도 카스트 개념이 있어서, 이곳의 불가촉천민들은 이슬람에서 금하는 여러가지 일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고, 당연히 온갖 차별은 다 받아가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인도에서의 크샤트리아에 해당하는 각지의 미르[42][43]들 같은 지역 번왕들, 그리고 브라만에 해당하는 이슬람 신학자들이 사회의 상류층으로 대접받으며, 수드라에 해당하는 막노동꾼들이나 소작농들은 그날 벌어서 그날 먹고 사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에서, 인도와 하나도 다른 게 없다.

피부색도 어느 정도 따지는 듯하다. 남인도 드라비다인 중에는 피부색이 검은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가 많지만 북인도 사람들이 별로 높게 쳐주지 않는다.[44] 하지만 현대 인도에서는 북부에 비해 남부가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월등히 높아서[45], 우대받는 흰 피부 사람들이 많은 북부인 힌두스탄은 과잉 인구로 인한 빈곤 문제가 심각하고, 드라비다인 비중이 높은 남인도는 안드라프라데시 주를 제외하면 빈곤 문제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다. 피부가 검을수록 부유할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는 이야기. 유명한 인도 영화 산업 또한 명실상부 인도 최대도시인 뭄바이 외에는 남부의 첸나이하이데라바드가 가장 발달해 있는 편이다.

그리고 이놈의 카스트(바르나) 제도가 하도 지랄맞게 복잡하고 뭐 같은 제도라 한국인 입장에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가장 흔한 착각은, 위의 삼각뿔 그래프처럼 위에서부터 브라만(귀족보다 높아서 왕족 비슷한 신관)-크샤트리아(귀족)-바이샤(평민)-수드라(천민이나 노예) 계급이 수직적으로 나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학교에서도 (카스트제 설명에 너무 시간을 쓰다가는 진도를 못 뽑아서 그러는지)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넘어간다. 사실 바르나 제도에서 신분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신분과 직업을 규정하는 씨족/가문 집단인) 쟈티이고, 널리 알려진 4대 카스트는 각각 무수한 쟈티를 포함하고 있는 대분류이자 각 쟈티에 부여되는 속성으로서, 대략적이고 평균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상하관계의 경향 정도를 규정하는 것뿐이다.

4대 카스트의 신관/무사(귀족)/농상공업 종사자/천민 구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외로 중세 유럽의 신분 구별(기도하는 자/싸우는 자/일하는 자)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세 이란의 신분 구별도 이와 유사하다. 이 점에 주목한 사람은 쉽게 예측할 수 있겠지만 사실 4대 카스트 중에서 권력자들이 주로 분포한 카스트는 크샤트리아다. 중세 유럽에서 대부분의 왕, 제후, 영주, 귀족들이 2계급인 싸우는 자에 속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의 라자(영주, 토호)들 역시 기본적으로 크샤트리아에 속하며, (특히 영토가 부와 권력의 원천이던 근대 이전에는) 최대의 권력자는 크샤트리아에서 나왔다. 즉, 브라만을 가장 존귀한 계급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중세 유럽에서 성직자가 귀족보다 더 귀하다고 한 것처럼 어느 정도 립서비스이거나 명목상으로 그러하다는 의미이다. 물론 유럽의 경우에도 주교쯤 되면 기사들보다 훨씬 큰 부와 권력을 가졌듯이, 무조건 크샤트리아가 브라만보다 더 권세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럽의 경우는 시대에 따라 신관과 장교의 서열관계가 자주 바뀌어왔고 신관이 장교를 이긴 카노사의 굴욕이나 반대로 장교가 신관을 이긴 아비뇽 유수 등 신관과 장교의 서열경쟁은 굉장히 치열했고 상하관계 역시 자주 바뀌어왔다. 브라만과 크샤트리아는 중세 유럽의 귀족 제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군사/실질 권력과 종교/문화 권력을 담당하는 귀족층의 두 축이고, 이 두 계급의 관계는 명목상 브라만이 더 '정결'하다고 받아들여지지만 동시에 실질적인 최고 권력 소유자는 크샤트리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이샤의 경우 평민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중세 유럽에 비유한다면 부르주아 계층 정도에 해당한다. 즉, 직업적 전문가나 기술자, 상공업 종사자 등이 분포하는 계층이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자영농 등도 이 계층에 포함된다. 실질/문화적 권력을 소유한 크샤트리아 및 브라만과, 생산을 담당한 바이샤를 묶어 상위 3계급을 따질 경우 대체로 브라만과 크샤트리아가 계층의 상위를 차지하고 바이샤가 하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절대적으로 바이샤가 하위 계급이라고 할 수는 없다. 크샤트리아 중에서도 하위 크샤트리아가 있고, 바이샤 중에서도 상위 바이샤가 있으니 권력 관계가 역전되는 현상은 얼마든지 일어난다. 예컨대 큰 상회나 농장, 작업장 등을 경영하는 바이샤가 하위 크샤트리아(예컨대 전시에는 전사를 겸하는 목동 계급 등)를 고용한다면? 두 사람 다 카스트 제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신의 바르나와 쟈티에 따르고 있으나 실질적인 권력 관계는 바이샤 쪽이 우위일 것이다.

이 외에 수드라 등의 하위 계급이 있는데 이 역시 단순히 평민 이하의 천민 계급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일단 수가 매우 많다. 상위 3계급을 합쳐 30%를 넘은 경우가 역사적으로 없었으니 실질적으로 수드라가 평민[46] 역할을 했으며, 실질적인 천민에 해당하는 계층은 아예 카스트(바르나)에서 벗어난 불가촉천민들이다. 즉, 수드라는 역시 중세 유럽에 비교하면 농노(예속 농민)나 육체노동자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하간 카스트 제도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4대 카스트가 그 자체로 완전히 계층적인 것이 아니며, 진짜 카스트 제도의 억압성은 문화적, 세속적, 종교적인 측면에서 상하 계층 관계를 구성하는 쟈티들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알아두자. 다만 바이샤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수드라는 바이샤하고도 다르게 인도 전통에서 중요한 베다 경전도 공부하지 못하게 하고 골품제처럼 일상에도 제한이 많아 천민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힌두교도들도 과거에는 카스트를 엄격하게 자행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흐지부지되어 지금은 인도와 달리 거의 사라졌다. 인도에서 상위 카스트와 하위 카스트가 외모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것과 다르게 이 지역은 상위 카스트와 하위 카스트가 똑같은 인종의 똑같은 사람인데 굳이 차별을 지속할 이유가 있냐는 것. 나이 든 노인들이나 따지는 수준으로, 그다지 영향력이 없다고 한다. 애초에 여기는 섬이라서 다른 카스트끼리 부대끼고 사는 일이 많은데다, 발리가 이슬람 신자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의 속국이 된 뒤로는 힌두교인이 인도네시아 전체에서 소수가 되는지라[47], 애초부터 카스트로 사람 차별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힌두교를 국교로 삼았던 마자파히트 왕국[48] 시절에도 카스트가 직업 구분을 위한 용도로만 쓰일 뿐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던 터라, 인도보다는 훨씬 유연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 발리 섬에서의 카스트 구분은 구 소련에서의 직군별 구분법에 더 가까운 상황이다.

네팔힌두교 영향이 컸지만, 산악 지대라는 특성 상 카스트로 사람 차별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49], 사실상 직업별 구분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왕정 시절에 벌어진 세도 가문들의 전횡과 갸넨드라를 포함한 몇몇 폭군들의 폭정의 영향으로, 이 자체를 하나의 신분처럼 취급하는 경향도 어느 정도는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일례로, 이 지역에서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하는 티베트 불교 신자들에게 불가촉천민의 지위를 부여하여, 이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는 등의 혼란도 당연히 있었고, 단지 네팔 사회에서 카스트 별로 사람 차별을 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지라[50], 카스트에 따른 신분 구분이 무의미한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마오이스트들이 자기들끼리 카스트 제도를 써먹으며 신분을 구별하는 일을 벌이자, 대다수 불가촉천민들에게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불가촉천민 출신이자 전직 마오이스트였다가 국회의원(당연히 네팔 역사상 처음으로 불가촉천민 출신 정치인)이 된 골체 사르키는 TV에 나와, 마오이스트들은 정체가 카스트 마오이스트에 지나지 않는다며 신랄하게 깠을 정도이다.

인도 동부 차티스가르 주 및 웨스트벵골 주 등 여러 주에서, 낙살라이트(Naxalite)라고 불리는 마오이스트 반군도 카스트를 '쓰레기 같은 것' 이라고 비난하며 시골 쪽 불가촉천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데 말이다. 하긴 인도 낙살라이트와 네팔 마오이스트는 서로 외면하는 관계이긴 하다. 그 때문에 마오이스트와 달리 인도 낙살라이트는 세력이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그 힘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나 마오이즘 문서에 나오듯이 낙살라이트들도 결국 마오이스트처럼 지역에서 온갖 횡포를 부리며 불가촉천민들에게 극과 극 반응을 얻고 있다. 결국 이렇다보니 힘을 키워간다고 해도 낙살라이트도 극히 일부 지방에서만 힘을 키우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인도 내에서 비슈누의 화신이라 하여 신성시하는 에게도 카스트가 적용된다. TV 등을 통해 접해보았을,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에게 비킬 것을 강요하는 성우(聖牛)는 대개 브라만 계급이며, 노동에 쓰이는 소는 주로 바이샤 내지 수드라 계급이다. 주로 암소나 흰 소, 또는 특이한 소(오족우처럼 다리가 5개 달린 희귀종 기형 소)들이 상위 계급 소로 인정받고, 보통 수소들은 수드라나 바이샤 정도로 취급받는다. 인도에서 종종 도축되는 소들도 거의 이런 하위 카스트 소들이다. 신성한 동물로 대우받는 원숭이의 경우 브라만, 크샤트리아보다는 낮지만 수드라보다는 카스트가 높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원숭이를 돼지와 동급으로 여기고 혐오하는데, 이 덕분에 원숭이를 둘러싼(?) 문화적 충돌이 종종 일어난다.

6. 카스트별 유명인물

  • 석가모니 - 크샤트리아 출신으로 인도가 여러 왕국으로 구성되었을 당시에 한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 드로나 - 브라만 바라드와자의 아들.
  • 아슈와타마 - 드로나의 아들이자 바라드와자의 손자.
  • 에깔라위야 - 드로나의 제자. 고산족 니샤다 추장의 아들로 계급으로 치면 수드라다. 드로나를 존경하여 제자가 되기를 청했지만 천출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숲에 들어가 드로나의 상을 만들고 섬기며 궁술을 독학한 끝에 아르주나를 넘는 신기를 터득한다. 그 후 사냥갔다가 이를 안 아르주나가 드로나에게 알렸고, 드로나는 에깔라위야를 찾아가 닥쉬나(수업료)로 그의 오른손 엄지를 받아갔다.[51]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 바이샤 출신으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 자와할랄 네루 - 브라흐민 중에서도 가장 계급이 높은 카슈미르 판디트 출신으로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당시에 태어났다.

6.1. 창작물에서의 카스트

창작물에서도 카스트 제도는 존재한다. 여기서 카스트는 단순히 사회적 계급을 표시하는 게 아닌 사회 구성원의 대략적인 역할을 보여주는 설정이거나, 현실처럼 신분제도인 것으로 묘사된다.
  • 멋진 신세계: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으로 알파부터 엡실론까지 정해진다.
  • 아트록스: 인텔리언 종족의 설정에 프로토스와 비슷하게 장로회, 전사족 등으로 나뉜 카스트가 있다.
  • 창세기전 3: 파트 2: 글로리 항성계는 ESP 능력에 따라 거주민의 계급이 나뉘며 고정된다. ESP 능력이 거의[53] 없는 발룬티어 레지던스 주민들은 ESP 능력을 갖춘 파이오니어 레지던스 주민들에게 차별받으며 노예로 착취당하는데 이에 맞서기 위해 만든 단체가 로드다. 로드와 파이오니어, 아르케 중앙정부의 대립은 게임 스토리에서 한 축을 맡고 있다.
  • 1984(소설): 오세아니아도 카스트와 비슷한 제도가 있어서 내부당원-외부당원-프롤(노동자)로 나뉜다. 1984의 세계관은 전쟁에 모든 물자를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상위 2%의 내부당원이 사치품으로 누린다는 게 고작 와인 정도이고, 중간층인 외부당원들은 혹독한 노동 속에서 싸구려 진이나 가짜 초콜릿, 거친 비누 등의 질 떨어지는 물자로 형편없는 수준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도리어 노동자들은 당원들과 달리 정부의 감시나 사상 통제에서 훨씬 자유롭다는 점에서 외부당원보다 나은 면이 있을 정도. 물론 프롤이라도 당의 기준으로 지나치게 똑똑하거나, 반항적 기질이 있다고 판단되면 스파르타에서 같은 이유로 똑똑하고 유능한 헬롯을 죽이던 것처럼 숙청당하며 당은 프롤사육(Prolfeed)라는 우민화 정책으로 이들을 통제하고 있다.
  • 배틀테크: 배틀테크 세력 중에 클랜에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며, 전사 과학자 상인 기술자 노동자 카스트로 계급화되어 있다. 이게 계급이자 자신들의 역할을 나타낸다. 당연히 전사 카스트가 가장 높은 직위를 차지한다.
  • 파이널 판타지 14에서 갈레말 제국은 이름에 넣는 단어로 신분을 구별한다. 식민지인이 시민권을 얻으려면 20년 이상 병역의무를 수행하거나 제국을 위해 특별한 공을 세워야만 하며, 요츠유아사히, 포르돌라처럼 제국에게 등용된 식민지 출신은 중간관리직[54]이나 전선 지휘관까지는 승진할 수 있지만 총독이나 군단장급 이상의 최고위직 및 황족은 모두 지배민족인 갈레말인이다.
  • 파이널 판타지 14: 칠흑의 반역자에서 등장하는 마을 율모어는 노동시민과 상급시민으로 주민의 계급을 나누며, 율모어 거주자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은 율모어 밖의 슬럼가인 문전촌에서 거주한다. 그 중에서 특기할 기술이 있거나 등으로 뽑힌 문전촌 주민만 율모어에서 거주할 자격을 얻으며, 율모어 안에서도 계급에 따라 거주구역이 다르다. 해고된 노동시민은 다른 상급시민에게 고용되거나 율모어 자체를 위해 '봉사'할 임무가 주어지는데, 둘 다 불가능하다고 판정될 경우 율모어의 통치자인 돈 바우스리가 '최종 판결'을 내린다. 한가지 특이한 점으론 대체적으로 상급시민들이 노동시민들을 굉장히 아낀다는 점이다.[55]
  • 세갈래 길: 주인공 중 한 명이 인도의 불가촉천민이다. 그녀는 상위 카스트의 똥을 맨손으로 퍼내는 일을 하고 그들이 주는 음식으로 생활한다. 그녀의 남편은 상위 카스트의 밭에서 들쥐를 잡는 일을 하는데, 따로 보수는 없고 잡은 들쥐를 먹고 산다.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다 잡히면 죽임을 당하는데 여성의 경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강간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불가촉천민에게 닿기만 해도 부정하다고 생각하지만 강간할 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 혈통. 혈액의 순수성 보존을 위한 사회적 설법(說法)이라는 뜻.[2] 외부에서 넘어온 기독교나 이슬람은 차치하고, 애초에 불교나 자이나교, 시크교는 힌두교(와 그 모태인 브라만교)의 카스트 제도를 비롯한 악습을 거부하는 개혁적 운동으로 시작됐다.[3] 그래서 카스트 제도를 부정한 시크교에서는 남자 이름을 전부 '싱(Singh, 사자),' 여자 이름을 '카우르(Kaur, 암사자)'로 통일시켰다. 그래서 전세계 시크교도들의 이름에는 이 이름이 들어가 있다. 유명한 예가 만모한 싱(Manmohan Singh) 전 인도 총리.[4] 물론 바로 다음생에 그리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억겁의 윤회를 거듭한 뒤에야 가능하다고 한다.[5] 원래 인도에서 격식을 갖춘 그릇은 금속제 그릇이다. 자기네 손님으로 외국에서 방문할 정도면 최소한 그 나라에서는 크샤트리아급이라고 쳐서 극진한 대접을 하되 부정을 탔다고 생각하여 외국사람들이 썼던 그릇을 다시 안 쓰는데, 은제 그릇 등 금속제 그릇은 질그릇에 비해 귀하기도 하고 깨버리기 힘들기 때문에 사기그릇으로 대접한 뒤에 부정을 물리치기 위해 그릇을 깨버린다.[6] 인도는 오늘날에도 오지에서 원시적으로 살아가는 산악 부족이 많은 편이다. 거의 수드라 계급 취급 당한다.[7] 계급이 서로 뒤섞여서 확실한 계급 판단을 할 수 없는 사람들. 주로 다른 계급끼리 혼인하는 경우 자식의 카스트를 판정하기가 어렵다.[8] 다만 최근의 연구 결과는 인더스 문명의 원주민들은 드라비다인들과는 다르며 오히려 인도유럽계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남인도의 드라비다인이 원래 인더스 문명권에 살다가 밀려났다기 보다는 드라비다인은 원래 남인도에 살았고 아리아인의 유입 이전에 이미 인도유럽계와 관련있는 선주민들이 북인도에 살았는데 그들을 아리아인들이 정복했다고 보는 관점이 주목받고 있다.[9] 물론 사성제가 성립되기 시작한 고대의 이야기.[10] 두 상위계급이 한 데서 갈라진 게 아니라 별개의 민족 내지는 세력에서 각자 발원했다는 견해도 있다.[11] 한자 음역어로는 각각 순서대로 바라문(婆羅門), 찰제리(刹帝利), 비사(毗舍), 수다라(首陀羅)라고 한다.[12] 이것 때문에 이슬람이 인도에 전래되었을 때 유의미하게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도로 개종했다.[13] 물론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면에서 사회주의 정책을 펴왔지 정치체계가 소련처럼 일당독재로 나아갔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고, 인도재벌들도 안정적으로 하청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유화에 찬동(!!!)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타타그룹 같은 인도 재벌들이 현재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14] 인도 헌법을 보면 'Prohibition of discrimination on grounds of religion, race, caste, sex or place of birth'라고 해서 카스트가 결코 철폐대상이 아니며 인종, 종교, 성별, 고향 등과 같은 선천적인 속성 같은 것으로 취급됨을 알 수 있다. 다만 카스트를 가지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일 뿐.[15] 그림은 노빈손 시리즈를 지은 이우일 선생의 일러스트다. 출처[16] 쉽게 말해 베다 경전을 공부할 자격이 되는 신분.[17] 인도는 옛날 한국처럼 성감별 여아 낙태도 종종 있고, 좀 더 직접적인(...) 영아살해도 빈번한 나라이다.[18] 웃긴 것은 힌두 신화에서는 불가촉천민이 수행을 통해 신이 되어 곤란에 빠진 신들을 구해준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수행만 하면 누구나(심지어 악마라도!) 불로불사나 전지전능 등의 신통력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런 식으로 특권을 얻어 깽판을 치다가 응징을 당하는 것이 바로 힌두 신화의 주 클리셰 중 하나이다.[19] 이들의 의식은 이슬람극단주의자들과 거의 비슷한데 인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하위 카스트에서만 일어난다고 MBC 다큐멘터리에서 당당하게 말하다가 PD가 인도 브라만들이 벌인 범죄 사건을 보여주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20] 진짜 개돼지 취급이다.[21] 의사는 전통적으로 인도에서 낮은 계급에 속해있지만 역시 자본주의 국가라 그런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엘리트로 추대받는 건 한국과 똑같다.[22] "인민당"이라고 번역을 고쳐놔서 은근히 오해하기 쉬운데 한국 기준에서는 극우성향의 사회보수주의 정당이다. 내용상으로는 "국민당"이라는 번역이 더 적절한 측면이 있다.[23] 인도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고 의회에 여러 정당들이 진출해 있어 단독 과반의석이 잘 안 나온다. 그래서 연정이 필수적이다. 지금 집권당인 인도 인민당은 단독과반을 차지하지만, 하층 계급이 결집한 다른 정당과 정당연합을 꾸려 선거에 임하고 이들에게 일부 장관 자리를 배분한다.[24] 사실 옛날에도 불가촉천민만 아니라면, 자기보다 상위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을 고용하는 건 별로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특히 인도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도축업자나 요리사 같은 식재료를 만지는 직업은 브라만만 할 수 있어서 사장 본인이 브라만이 아닌 이상, 무조건 자기보다 상위의 카스트인 사람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25] 인도군의 진주를 통해 합병당했다.[26] 이런 식으로 뒤늦게 인도에 합류한 이유로 본토의 아리아계드라비다계와는 문화나 종교, 인족 구성이 판이하게 다른 몇몇 주는 카스트 제도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랄로이드계 원주민들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안다만니코바르 제도나 인구의 대다수가 개신교 신자인 버마계 소수민족들이 차지하는 나갈랜드마니푸르, 미조람 등의 동남아시아에 가까운 동부 지역 주, 그리고 파키스탄과의 영토 분쟁으로 유명한 카슈미르 지방 등의 변경 지역들이 있다.[27] 이때 티베트 불교를 믿는 부족들을 불가촉천민으로 규정했는데, 이들이 해당 규정을 당연히 무시하고 평소에 살던 대로 살면서 사문화되었다.[28] 지방 영주 내지는 총독, 또는 옛날 인도 내에 난립해 있던 소왕국의 왕족이나 그 출신 등을 가리키는 말. '마하라자' 할 때의 그 라자로 말이 영주이지 사실상 왕이다.[29] 신분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이면 대개 그렇다. 예를 들면, 인도만큼은 아니어도 역시 신분제 사회인 일본의 경우, 몇몇 정치 명문가 집안이나, 구 화족이나 재벌 출신인 지역 유지의 경우, 대놓고 지역구를 세습해서 대대로 정치인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최후의 황태자인 오토 폰 합스부르크유럽 의회의 의원으로 재직한 전적이 있다.[30] 이슬람을 국교로 하던 무굴 제국의 영향도 있고, 한때는 인도 남부에 이슬람이 널리 전파된 역사도 있어서, 라자들 중에는 무슬림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아무리 망했어도 엄연히 현지에서는 가장 힘있는 지역 유력자인 만큼, 아예 폐위당해서 거렁뱅이 신세가 된 거 아니면, 제아무리 콧대높은 브라만이나 힌두교 근본주의자들도 이슬람 교도인 라자한테는 감히 큰소리 한 번 치지 못한다. 그랬다간 코로 카레를 먹는다 그러니 이놈들은 만만한 하층민 출신 비(非) 힌두교도나, 불가촉천민한테만 린치를 가한다. 전형적인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케이스.[31] 힌두교의 관점에서는 이슬람 왕조인 무굴 제국의 왕족 또한 그냥 벼락출세한 수드라일 뿐이다.[32] 장수마을로 유명한 그곳이다.[33] 찬드라세카르 한계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34] 2008년에 인도에서 방송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선 초능력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자,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그럼 어디 한 번 나를 죽여봐라."라고 해서 그 사람이 진행자를 향해 주문을 외더니, "이 사람의 신앙심이 너무 강해서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못 죽인다."개소리를 시전했다. 그러자 그 진행자가 "나는 무신론자라서 신앙 따위는 있지도 않은데?"라고 말하여, 자칭 초능력자가 제대로 개망신을 당한 사례가 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무신론자이며, 당시 이 방송을 보던 인도인들의 반응은 "거 참 고소하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이미 인도인들 사이에서 종교 같은 영적인 주제에 대해 회의가 일어나고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되는 사례다.[35]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인도의 국민배우인 아미르 칸이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아미르 칸은 전통적으로 힌두교인들에게 엄청난 차별을 받아왔던 이슬람 신자다.[36] 하지만 여전히 케랄라 주는 진보 정당의 세가 강한 편이다. 당장 인도 공산당을 몰아내고 주의 집권여당이 된 트린나물의회당부터가 사회민주주의 좌파 정당이다.[37] 원래는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에 친영파 인도인 유력자를 모아서 창립한 친영 제국주의 단체였으나, 인도의 걸출한 독립 영웅들인 마하트마 간디자와할랄 네루에 의해 독립운동 단체로 성격이 바뀌면서 성향이 포괄정당으로 바뀌었으며. 독립 이후에는 완전한 좌익정당으로 탈바꿈 하였다.[38] 브라만 출신이던 인도의 초대 수상인 자와할랄 네루부터가 어린 시절에 영국 유학을 갔으며, 그 이외에도 여러번 영국을 방문했는데도 별 말이 없었다.[39] 외국에서의 얘기는 아니지만, 세포이 항쟁이 일어난 원인도 이것이다. 영국인들이 카스트에 관계없이 인종차별을 하는 것에 빡친 인도인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대규모의 봉기로 확산된 것이다.[40] 이는 마하트마 간디도 그랬다.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어서 매우 유복하게 자랐음에도 결국 카스트 제도의 철폐와 힌두교 신자와 타 종교 신자들과의 화합, 퍼라이어에 대한 권리 신장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그가 젊은 시절에 영국 유학 생활과 남아프리카 체류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일들에서 느낀 바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41] 다만 스리랑카에서는 불교를 믿는 싱할라족 내에도 카스트 제도가 존재했다.[42] 번왕이라는 뜻이다.[43] 몽골 제국 할 때 그 칸 맞다. 한때 몽골인도 아대륙 일부 지역으로도 쳐들어간 적이 있어서, 여기도 왕을 칸이라고 부르는 곳이 좀 있다.[44] 이는 와르나 개념이 원래는 근대의 유색인종 개념과 흡사한 인종 구분 개념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전쟁 포로의 처우 문제나 인도 남부 드라비다인 왕족들이 상층 카스트를 자처하면서 "피부색=카스트"라는 개념에서 "계급=카스트"로 변화하긴 했으나, 카스트 제도의 근간인 피부색에 기반을 둔 인종차별 개념은 유지된 셈이다.[45] 이는 북인도가 주로 내륙 지방에 속하고 남인도는 해안 지역이 대부분인 탓이 크다. 대항해시대 이후에는 항구를 건설할 수 있는 해안 지역이 경제 발전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인도도 바다를 왕창 끼고 있는 남인도가 부유할 수밖에 없다. 요르단이 괜히 석유가 나는 지역사우디아라비아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사우디 정부로부터 항구도시 한 곳을 사들인 게 아니다.[46] 사실 수드라에 대한 취급이 좋지 않은 이유는 인도에 유입된 서로 다른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진 이민족들이 하도 많아서 그렇다.[47]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폭탄 테러가 발생할 만큼, 독립 논의가 왕왕 일어나는 편이다.[48] 그 유명한 가자 마다가 이 나라의 재상이었다.[49]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은 있지만, 이건 카스트와 관계없이 어디나 다 있어왔던 악습이다. 과거 제도의 존재로 인해 평민이 양반으로 승격되거나, 반대로 양반이 평민으로 강등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만큼, 신분제가 무의미했던 조선 사회에서도 백정같은 천민 계층이 엄연히 존재했던 걸 생각하면, 딱히 네팔의 카스트 제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은 아니다.[50] 당장 네팔힌두교 신자들 사이에서 카스트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된 게 20세기 초반의 일이다.[51] 드로나가 '어느 누구도 아르주나를 따라올 자 없다'는 맹세를 했기 때문.[52] 물론 카스트와 다르다면 카스트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계급간 차이를 두는데 칼라이 프로토스의 경우엔 심판관, 기사단, 칼라이의 3개의 계급이 있고 카스트처럼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셋 다 공식적으로는 평등에 가깝다. 즉 원래는 심판관이나 칼라이나 그게 그거인 편인데 비공식적으로 칼라이 신분이 쩌리 취급을 받는 거다.[53] 발룬티어는 ESP 능력이 없지만 루크랜서드디에네 라미엘처럼(살라딘 같은 다른 단원이나 동조자 캐릭터들도 많지만, 특히 이 둘은 글로리 지배층인 팡테온 출신이다) 사상적으로 발룬티어에게 동조한 파이오니어 계급 이상인 로드 단원도 있다.[54] 요츠유는 도마 총독인 제노스 예 갈부스의 대리인이다.[55] 한 하인은 원래 좋은 생활을 하고 싶어서 마님의 하인으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마님을 모시는 게 자신의 기쁨이라고 할 정도고 그 마님도 하인을 가족처럼 아꼈으며, 노래가 특기라서 노동시민이 된 하인은 자기 목이 망가져서 주인이 자길 버릴 거라며 절망하지만 주인은 그럼에도 이 하인을 버리지 않으려고 했고, 그럼에도 하인이 우울해하자 그럼 바우스리에게 하늘로 올라가게 부탁해볼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