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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반적으로 드라비다인은 아리아계와는 다른 드라비다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모어로 하는 민족들을 뜻하며 인도 아대륙의 남부 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브라후이족은 파키스탄, 인도,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돌아다니며 유목 생활을 하고 있으며 말토족, 쿠르트족은 인도 동부에 거주하고 있다.인더스 문명의 건설자로 추측되지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5]
드라비다인들은 인도 북부에 있었다가 남부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아리아인들이 드라비다인을 일방적으로 대학살하고 남부로 쫓아냈기 때문이라는 설이 퍼져 있는데, 현재의 추정은 인더스 문명은 아리아인이 올 무렵에 이미 쇠퇴 상태였고 아리아인 자체도 한 번에 우르르 몰려온 것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꾸준히 유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정반대로 드라비다인은 처음부터 인도 남부에서 기원해서 북부로 진출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이는 인더스 문명의 주민들이 드라비다인이 아니라는 설과도 연결되는데, 모헨조다로를 포함한 관련 유적에서 출토된 유골을 분석한 결과로는 오늘날의 이란 등지에서 이주해온 수렵채집민 집단이 인더스 문명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드라비다인의 형질인류학적 조상으로 추정되는 인도 아대륙의 토착 수렵채집민과 조우하여 혼혈을 이루긴 했으나 인더스 문명인의 전체 게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고작 13%에 불과했기 때문에, 드라비다인의 기원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이 때문에 당초에 원시 드라비다인의 직계 후손이라고 추정되었던 브라후이족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 상황이다.
드라비다인의 기원이야 어쨌든, 상술한대로 아리아인은 드라비다인들을 무력으로 정복해서 학살하거나 강제로 동화시킨 것은 아니고, 그들과 공존하고 융화하면서 서서히 그들을 동화시켜나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물리적 충돌이 전혀 없을 수는 없고 지배계급을 대부분 아리아인이 차지한 건 사실이지만,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인더스 문명권과 드라비다 문화권에 '어느 날 갑자기' 아리아족 대군세가 한꺼번에 몰려와 토착민들의 씨를 말리거나 몽땅 추방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이들은 때로는 드라비다계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기도 하고, 그들과 평화롭게 융화되기도 하면서 인도 아대륙의 북부를 인도이란어파 계열 언어들의 권역으로 전환시켜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뒷날 북인도를 통일한 여러 인도아리아인계 왕조들이 여전히 드라비다어족 권역이던 남인도로의 진출을 시도했으나, 데칸 고원이라는 지리적 장벽에 막히면서 번번히 실패하였고, 때문에 남북 인도의 정치적 통합은 뒷날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기 시작한 후에 인도의 독립운동이 발발하면서 처음 이루어졌다.
인도의 정치, 경제적 헤게모니는 전통적으로 북부 아리아인들이 장악해 왔으나 현대에는 드라비다인들이 많이 사는 남인도가 인도에서 학력,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이다. 현재 인도 공화국의 빈곤 문제는 오히려 브라만교의 발상지인 힌두스탄(우타르프라데시 + 비하르) 지역에서[6] 주로 발생하는데 이유는 북부는 내륙인데 남부는 해안이기 때문이다. 마치 중국 내륙의 허난성, 산시성과 동남 해안의 광둥성, 푸젠성, 하이난성, 장쑤성 등의 빈부격차처럼 과거에 번영했던 지역이 빈곤해지고, 비문명적이었던 지역은 해양 무역에 힘입어 부유해졌던 것과 같다. 인도 IT 산업의 메카인 벵갈루루나 첸나이, 하이데라바드 등이 위치하며, 고아, 캘리컷, 퐁디셰리 등, 해안가를 끼고 대외적으로 일찍 개방된 도시가 많다.
남부는 과거보다 1인당 GDP가 크게 늘어난 도시들이 많은데 근현대를 거치면서 인도양에 가까운 항구도시들을 거느린 남부가 경제성장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적 권력은 북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도의 남북 갈등이 적지 않다. 당장 정치계에서 대권을 쥔 사람들은 대게 북부의 흰 피부를 가진 아리아계가 대부분이며 아직까지 타밀인이나 케랄라인 등 드라비다계는 정치에서는 소외되어 있다.
2. 특징
과거 진짜 인도 아대륙 원주민은 호주 원주민과 유사한 인종인 오스트레일리아 인종이며 그 마지막 후예가 스리랑카에 거주하는 베다족이라고 추측되기도 했다.[7]그러나 2011년 치아 특성을 기준으로 한 연구 결과 이들은 다른 남아시아인 및 서남아시아인과 유전적으로 밀접한 관계로 추정되고 있다. 니그로이드의 경우처럼 오스트레일리아 인종과는 수렴 진화로 외모가 비슷해진 셈이다. 자세한 건 베다족 문서 참고.
드라비다인은 대개 흑인으로 알려졌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흑인과는 유전적으로 상당히 멀고[8] 인종적 다양성은 미국, 멕시코, 페루, 브라질, 콜롬비아 등보다 더 크다. 논문, 논문 이미지, 링크
사실 이미 인도아리아인의 유입 이전부터 이들은 구릿빛 피부의 코카소이드 인종인 고대 엘람인과의 혼혈이 이루어졌다.
계급, 지역에 따라 인종 혼합의 정도가 다양한데 남동부나 하위 카스트로 갈수록 오스트레일리아 인종의 특징이 강해지며 드라비다인 중에서 상위 카스트나 북서부로 갈수록 코카소이드의 특징이 강해진다.
사실 피부색으로 유전적으로 가까운지를 정확히 알기는 힘들며 피부색은 거주 환경과 더 큰 관계가 있다. 그보다는 인도는 북부와 남부의 차이이고 북부인들과 혼혈된 드라비다인이면 충분히 흰 피부를 가질 수 있다. 인도 역사에서 정치권력은 늘 북부인들에게 있었기에 이러한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동남아시아에서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의 언어를 쓰는 민족 중 하나인 문다족과 카시족이 유입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안드라프라데시의 텔루구인, 오리사인, 아삼인들은 백황흑 삼중혼혈이다.
아이쉬와라 라이 | 실파 셰티 |
푸자 헤그데 | 니나 다불루리 |
그러나 위 사진처럼 네 명 다 드라비다인이지만 피부색이 일반적인 드라비다인들보다 비교적 밝은 사람[9]이 있다. 드라비다인 중 북서부 해안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펀자브인, 페르시아인, 그리스인과의 추가적인 혼혈 & 드라비다인 상층 카스트와 아리아인 상층 카스트 사이의 간헐적인 혼혈이 진행되어 피부색과 이목구비가 종종 차이를 보인다. 마찬가지로 북인도~파키스탄에 거주하는 아리안족들 중에도 다수의 드라비다인처럼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중 아이쉬와라 라이와 실파 셰티는 피부미백과 미용성형을 받았다는 소문이 유튜브에 떠돌고 있지만 아이쉬와라 라이의 홍채색은 선천적이며 조상 중에 인도아리아인 브라흐민이 있다.[10]
알비노 드라비다인 |
3. 역사
드라비다인이 언제 인도 아대륙에 정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석기 시대에 인더스 강 유역에서 농경이 시작되고 이로 인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인도 아대륙 전체로 확산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아리아인의 침공으로 데칸 고원 남부로 이동한 드라비다인들은 촐라 왕조, 판디아 왕조, 케랄라(체라 왕조)3국을 건설했는데 이들은 면화를 생산하고 거래했으며 기원전 2세기부터는 스리랑카와 전쟁을 벌이고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일대로 진출하여 여러 식민지를 건설했다.
고대 드라비다 타밀인, 케랄라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그리스인, 아랍인 상인들과 교역했는데 활발한 무역의 결과 그리스어로 쌀, 생강, 계피(κιννάμωμον) 같은 상품의 이름들이 고대 타밀어에서 파생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로마로 귀속되고 이른바 몬순 무역풍이 서기 1세기 초 발견되면서 무역이 크게 부흥했다.
서기 4~8세기에는 목판에 시를 쓰는 타밀어 상검(sangam) 문학이 발달했다.
이후 9세기 중반 촐라 제국이 성립되었으며, 18세기 말 마이소르 왕국까지, 남인도는 계속 힌두계 드라비다인 국가가 이어져, 북인도의 힌두아리안-이슬람 문화권과는 또다른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4. 종교
역사적인 이유로 드라비다인들의 절대다수는 힌두교를 믿으며, 소수가 이슬람교와 토착 기독교 종파 및 불교를 믿는다. 하지만, 오랜 기간을 인도양에서의 해상 무역을 통해 발전해왔던 드라비다인 사회의 특성 상 인도 북부의 아리아인계 민족들에 비하면 많이 세속적인 편이라서,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꽤나 유연한 편이다. 가령, 북인도에서는 카스트를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불변의 특성으로 여겨서 불가촉천민이나 타 종교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지만, 남인도는 이 자체를 단순한 사회적 계급으로 여겨서 돈을 주고 계급을 사거나 국가유공자에게 상위 카스트 지위를 포상으로 내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다[11]. 또 이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다소 약한 편이라서, 이 지역에서 IT 산업을 포함한 각종 과학 관련 산업들이 융성하기도 했고, 인도 공산당이 이 지역에서 당세를 크게 확장하면서[12] 종교를 포기하고 무신론자가 되는 비율도 꽤 많다.힌두교의 전파 이전에도 드라비다인들의 고유한 종교인 드라비다 신화가 있기는 했지만, 관련 사료가 부족해서 자세한 사항을 알기는 어렵다. 힌두교의 신들 상당수가 드라비다 신화의 신들에게서 기원했다는 추정은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일반적으로 종교학자들은 힌두교의 전신인 브라만교의 기원이 된 원시 인도유럽 신화의 신에서 기원하지 않은 신격들이나, 비슈누의 여러 화신들인 아바타라들이 드라비다 신화에서 유래한 신격이라고 추정된다[13]. 하지만, 아리아인들이 원시 인도유럽 신화를 그대로 들고온 것이 아니라, 이들이 유입되는 경로에 있었던 중앙아시아 선주민들이나 인더스 문명인들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채로 브라만교를 전파했던 것으로 추정되므로, 비 인도유럽계 신격이라도 무엇이 드라비다 신화 고유의 신격인지를 분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14].
인도 아대륙에 브라만교가 전파된 뒤로, 드라비다 신화를 포함한 여러 선주민들과 이주민들의 종교가 뒤섞이면서 힌두교를 형성했고, 그 이후로 힌두교는 드라비다인들의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비록 대승 불교의 창시자인 나가르주나의 출신지가 인도 남부 지역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의 영향을 아예 안 받은 것은 아니지만, 데칸 고원이 남인도와 북인도를 가르는 지리적, 문화적 장벽으로 작용하면서 남인도 지역이 힌두교의 전통적인 철옹성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후에 이슬람교가 전파되고 무슬림 군벌들이 이른바 데칸 술탄국으로 불린 여러 이슬람계 국가들을 형성하기도 했으나, 왕실이 잠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가 다시 힌두교로 원복한 마이소르 왕국이나, 이슬람 신앙을 고집하다가 인도의 독립 직후에 아예 왕실이 축출된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끝내 드라비다인 사회의 주류 종교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오늘날의 케랄라 주에 해당되는 말라바르 해안 지역은 레반트 지역에서 발원한 기독교가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무역로를 따라 전파되면서, 상당한 인구가 기독교로 개종한 바 있다[15]. 이들은 본래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기독교권 지역인 아라비아반도에서 유입된 네스토리우스파를 믿었는데, 16세기에 포르투갈이 디우나 고아, 코지코드 등의 인도 서부의 항구도시들을 정복하거나 그들과 동맹을 맺고 가톨릭을 전파하면서 일부가 그쪽으로 개종하기도 했다. 허나, 이 과정에서 포르투갈 측이 가톨릭의 기본적인 전례법인 라틴 전례를 따를 것을 강요하면서, 이를 거부하는 드라비다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반가톨릭 여론이 팽배해졌다. 결국 코지코드 측이 포르투갈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네덜란드와 동맹을 맺으면서 가톨릭이 축출되고, 기존의 네스토리우스파를 믿던 이들은 네덜란드 측의 주선으로 시리아 정교회로 개종하여 오늘날에 이른다[16]. 18세기에 이르러서 이렇게 개종한 시리아 정교회 신자들의 일부가 다시 가톨릭으로 개종하긴 했으나, 이들은 시리아 정교회 특유의 서시리아 전례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교황의 수워권만 인정하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파인 시로말랑카라 가톨릭을 믿었다.
5. 해당 민족
- 주요 4대 민족
6. 관련 문서
[1] 인도 동남부 타밀계 민족.[2] 파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드라비다계 민족. 다른 드라비다인들과 달리 인도 중남부와는 수천 km나 떨어진 곳에서 드라비다어를 구사해 언어학자들의 의아함을 자아냈다.[3] 인도 중부 드라비다계 민족.[4] 인도 서남부 드라비다계 민족.[5] 인더스 문명의 문자가 해독되지 않아 어떤 어족의 언어를 썼는지 현재 알 수 없다.[6] 우리나라에서 보통 인도의 이미지로 잘 알려진 바라나시나 타지마할이 위치한 아그라가 위치한다.[7] 정작 베다족은 언어적으로는 이미 스리랑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싱할라족에게 동화되었다. 현대 베다족이 사용하는 베다어부터가 싱할라어 기반의 혼합어다.[8] 한국인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의 유전적 거리와 비슷하다.[9] 위 사진 중에 니나 다불루리는 어두운 편에 속한다.[10] 북인도인의 전형인 펀자브인들은 버젓히 백인종에 속하는 사람들이며 인도 최북단 카슈미르에 사는 원주민 칼라쉬인은 아예 금발에 푸른 눈이 발견되기도 한다.[11] 이것이 역설적으로 인도 남부가 힌두교의 아성이 된 이유로 작용했다. 본래 북인도에서는 타 종교 출신자는 개종했더라도 무조건 불가촉천민으로 간주되었고, 이 점이 크나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남인도에서는 언제든 이런저런 방법으로 생전에 상위 카스트로 승급할 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부담없이 힌두교로 개종하거나, 힌두교 신앙을 유지할 수 있어서 불교나 이슬람교같은 타 종교로 개종할 요인이 다소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 남인도의 힌두교인들은 다른 종교로의 개종 압력에 맹렬하게 저항하는 경향이 컸다.[12] 실제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이 당세를 확장하기 전까지는 케랄라 주가 인도 공산당의 전통적인 표밭으로 기능했다.[13] 아바타라 중에서 라마나 크리슈나는 민중들 사이에서 신격화된 실존 인물에서 유래한 신격이라는 추정이 있는데, 이 경우도 드라비다인과 아리아인 간의 역사적 갈등의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사례라는 설이 있다.[14] 다만, 시바 신의 경우는 인더스 문명에서 이미 숭배했던 것으로 추정되므로, 본래 드라비다 신화에서 유래한 신격이라는 설은 있다.[15] 전승에 의하면 예수의 12사도들 중 한 명인 사도 토마스가 이 지역에 도달해서 처음 기독교를 전파하였다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기독교인 커뮤니티가 확실하게 언급되는 것은 4세기 이후에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인들이 이주하면서부터다.[16] 네덜란드는 개신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였으나, 이들은 무역에만 관심이 있지 개신교의 전파에는 별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로마 가톨릭을 강요했던 포르투갈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기에 시리아 정교회의 성직자들을 중동에서 초빙해가면서까지 현지인 가톨릭교도들의 개종을 장려했다. 이렇게해서 네덜란드는 현지의 기독교 신자들과 힌두교, 이슬람 신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가톨릭과 현지인들의 연결고리를 확실히 끊어버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