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9 05:47:50

사타바하나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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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타바하나
सातवाहन

Sātavāhana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px-Satvahana.svg.png
존속기간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2세기
수도 프라티슈타나, 아마라바티
국가원수
언어 프라크리트어
종교 힌두교, 불교
성립 이전 마우리아 왕조
칸바 왕조
멸망 이후 바카타카 왕조
팔라바 왕조
1. 개요2. 역사
2.1. 초창기2.2. 중후반기
3. 영향

[clearfix]

1. 개요

기원전 3세기 말 혹은 기원전 1세기에 중부 데칸 지역을 중심으로 시무카 왕이 건국한 왕조이다.

이 왕조를 안드라 왕국이라고도 부르는데,[1] '안드라'는 부족의 이름이고, 왕조의 이름은 '사타바하나'이다. 단, '안드라 왕국'은 외부인들이 붙인 이름이며 사타바하나 왕조가 남긴 기록에는 안드라라는 말이 없다.

데칸 지방을 중심으로 한 왕조들[2]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세력 중 하나였고, 오랫동안 그 힘을 유지하며 마우리아 왕조부터 슝가 왕조, 인도-그리스 왕국, 인도-스키타이 왕국의 남진을 저지하며 수시로 북진을 단행했다.

2. 역사

2.1. 초창기

사타바하나 왕조가 일어난 데칸 지역은 본래 마우리아 왕조의 영토였다. 하지만 마우리아 왕조가 힘이 미약해짐에 따라 시무카가 데칸에서 마우리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타바하나 왕조였다. 사타바하나는 마우리아 왕조 말기인 기원전 195~192년의 북진으로 인도 중남부의 왕국에서 명실상부한 중부의 패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마우리아 왕조가 멸망한 뒤에 사타바하나 왕조는 동쪽으로는 칼링가 왕국, 북쪽으로는 마가다슝가 왕조칸바 왕조와 경쟁했다. 기원전 1세기에 슝가 왕조를 물리쳤고, 뒤를 이은 칸바 왕조를 아예 멸망시키기도 했다. 그리하여 사타바하나 왕조는 중북부 통틀어 인도 아대륙 최대의 강대국이 되었다.

이후 사타바하나는 서북 지역으로 몰려오고 있었던 그리스계의 국가들, 즉 인도-그리스 왕국스키타이 일파인 사카족 즉, 인도-스키타이 등 이민족들과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기 4년에 동해안과 오릿사의 마하메가바하나 왕조의 침략을 받았고, 20년에는 인도-스키타이의 침략을 받아 쇠락해졌으며, 인도-스키타이에게 북쪽 영토를 뺏긴 다음에 같은 스키타이의 일파인 서사트라프 왕조[3]에게 53년, 정복당했다.

2.2. 중후반기

서기 78년부터 월지쿠샨 왕조의 침략을 받은 이후 서사트라프 왕조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저항을 통해 서기 88년, 사타바하나 왕조는 다시금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남아 있었던 샤카족의 서사트라프는 말와 지역을 정복하고, 서기 1세기 말 무렵에는 사타바하나 왕조로부터 나식을 포함한 남인도의 서북 지역을 빼앗았다. 이와 같이 나라가 어렵던 상황에서 사타바하나 왕조를 구한 왕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가우타미푸트라 샤타카르니 왕이었다. 그는 106년부터 130년까지 왕국을 다스렸는데, 사타바하나 왕조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었다고 칭송받던 그는 파르티아, 서사트라프 등을 비롯한 이민족들을 성공적으로 물리쳤다. 그리하여 구자라트. 카타이와르, 라지푸타나, 말와, 베라르, 북 콘칸 등의 지역들을 획득하여 사타바하나 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루어냈다. 그는 자신만이 유일한 브라만임을 자처하며 주변의 크샤트리아 계급의 지배자들을 물리쳤다. 북쪽으로는 말와에서 남쪽으로 카르나티크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 가우타미푸트라 샤타카르니는 정복자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가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는데, 당시 비문에 따르면 그는 사회 개혁에도 성공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말년에 이르러 서사트라프의 재침입으로 일부 영토를 손실했다.

이후 그의 아들 바시슈티푸트라 풀루마이가 왕으로 즉위하여 약 20여 년간 왕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서북의 강국 서사트라프에 의해 구자라트, 말와, 라지푸타나, 북 칸콘 지역 등을 빼앗기게 되었다. 서북에서는 별 다른 힘을 못 썼으나 남동으로의 영토 확장에는 성공했다. 비록 풀루마이가 샤카족들에게 영토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결코 무능한 왕은 아니었다. 그는 사타바하나 왕조의 해군력을 강화하여 외국과의 무역을 활발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경제적인 부를 이루었다.

풀루마이 왕 이후에도 사타바하나 왕조에는 몇몇 유능한 왕들이 있었으나 지속적으로 쳐들어온 서사트라프쿠샨 왕조 등의 이민족 세력들에 의해 힘을 점차적으로 잃게 되었다. 슈리야즈나 샤타카르니 왕 시절에 잠깐 마지막으로 전성기의 영토를 회복하기도 했으나 바로 다음 시대에 이 영토들을 상실하게 되었다. 날로 쇠약해지던 사타바하나 왕조는 서기 3세기 중후반 무렵 다섯 개의 작은 왕국들로 나뉘게 되었다. 거기서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바카타카 왕조의 힘이 강해지면서 완전히 정치력을 상실하고 흡수당하게 된다.

3. 영향

사타바하나 왕조는 지리적으로 중앙 인도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마우리아 왕조 이후 남인도 지역에 새로운 아리아인들의 문화를 전파해주는 매개자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반대로 북인도에는 남인도의 드라비다인들의 문화를 전파해주는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 후에 굽타 왕조가 들어설 때 완성된 힌두교 사상이 이전부터 남인도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도 이 사타바하나 왕조 때부터였다.

또한 사타바하나 왕조는 한창 절정기 시절, 크리슈나 강 남쪽에 위치했던 촐라 왕조, 체라 왕조, 판디아 왕조 등을 제외한 남인도 지역과 북인도 지역을 지배했었는데 이는 당시 인도에서 가장 거대했던 왕국이었다. 이렇게 강력했었던 왕국이라 사타바하나는 서사트라프쿠샨 왕조와 같은 이민족들의 침입으로부터 남인도나 기타 소국들을 보호해주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다.


[1] 그런데 동시대에 따로 '안드라 왕국'이라고 불리우던 국가가 존재했다.[2] 바카타카 왕조, 칼라추리 왕조, 찰루키아 왕조, 라슈트라쿠타 왕조, 서찰루키아 왕조, 야다바 왕조, 마라타 동맹[3] 35년 인도-스키타이 왕국 교체/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