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02:50:31

나렌드라 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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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수반이 아닌 총리
** 대통령 권한대행
*** 사실상 군부 소속
공산국가의 수상
전제군주국, 혹은 사실상 전제군주국인 입헌군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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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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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파 카말 다할 (3차) 줘룽타이 한덕수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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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 인민혁명당|
라오 인민혁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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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나나 구스망 (2차) 쏜싸이 씨판돈 나지브 미카티 (3차)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파일:몽골 국기.svg 몽골 파일:미얀마 국기.svg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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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인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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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와르 이브라힘 롭상남스랭 어용에르덴 민 아웅 흘라잉
파일:바레인 국기.svg 바레인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 방글라데시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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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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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빈 하마드 알할리파 (왕세자) 무함마드 유누스 (임시) 팜민찐
파일:부탄 국기.svg 부탄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브루나이 국기.svg 브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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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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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링 토브가이 (2차) 김덕훈 하사날 볼키아 (국왕)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파일:스리랑카 국기.svg 스리랑카*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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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인민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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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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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 디네쉬 구나와데나 후세인 아르누스 (2차)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싱가포르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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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웡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두바이 아미르)
압둘 가니 바라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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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야쿠브
(군사 작전)
시라주딘 하카니
(재정 및 군수 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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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전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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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드 아와드 빈 무바라크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 (국왕) 비셰르 알카사우네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우즈베키스탄 자유민주당|
우즈베키스탄 자유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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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다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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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드|
리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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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라 아리포프 모하메드 시아 알수다니 베냐민 네타냐후 (6차)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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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인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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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렌드라 모디 (3차) 이시바 시게루 (2차) 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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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자스 벡테노프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왕족) 훈 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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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드 알압둘라 알사바 (국왕의 조카) 아킬베크 자파로프 코히르 라술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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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무슬림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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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통탄 친나왓 셰바즈 샤리프 (2차) 무함마드 무스타파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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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수반이 아닌 총리
** 바티칸 시국의 명목상 정부수반은 바티칸 시국 행정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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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주주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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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2차) 주소이트 콘스탄틴 딕 스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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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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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당(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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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가르 스퇴레 메테 프레데릭센 (2차) 올라프 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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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당(루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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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카 실리냐 미하일 미슈스틴 (2차) 마르첼 치올라쿠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룩셈부르크 파일:리투아니아 국기.svg 리투아니아 파일:리히텐슈타인 국기.svg 리히텐슈타인
[[기독사회인민당|
기독사회인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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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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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연합|
애국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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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크 프리당 잉그리다 시모니테 다니엘 리쉬
파일:모나코 국기.svg 모나코 파일:몬테네그로 국기.svg 몬테네그로 파일:몰도바 국기.svg 몰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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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럽!|
지금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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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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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다르투 밀로이코 스파이치 도린 레체안
파일:몰타 국기.svg 몰타 파일:바티칸 국기.svg 바티칸**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노동당(몰타)|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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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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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VLD|
Open V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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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아벨라 (2차) 피에트로 파롤린 알렉산더르 더크로
파일:벨라루스 국기.svg 벨라루스*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파일:북마케도니아 국기.svg 북마케도니아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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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사회민주연대|
독립사회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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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
VMRO-DPM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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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 할로우찬카 (2차) 보랴나 크리슈토 흐리스티얀 미츠코스키
파일:북키프로스 국기.svg 북키프로스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
[[국민통일당|
국민통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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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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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진보당|
세르비아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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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날 위스텔 디미터르 글라브체프 밀로시 부체비치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온건당|
온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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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녹색자유당|
스위스 녹색자유당
]]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
]]
울프 크리스테르손 빅토르 로시 페드로 산체스 (3차)
파일:슬로바키아 국기.svg 슬로바키아 파일:슬로베니아 국기.svg 슬로베니아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
[[사회민주당(슬로바키아)|
방향-사회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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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운동(슬로베니아)|
자유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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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계약(정당)|
시민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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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피초 (4차) 로베르트 골로프 니콜 파시냔 (3차)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아이슬란드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독립당(아이슬란드)|
독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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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너 게일|
피너 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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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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뱌르드니 베네딕트손 (2차) 사이먼 해리스 알리 아사도프
파일:안도라 국기.svg 안도라 파일:알바니아 국기.svg 알바니아 파일:압하지야 국기.svg 압하지야
[[안도라 민주당|
안도라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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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사회당|
알바니아 사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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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타이라|
아이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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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비에르 에스포트 자모라 (2차) 에디 라마 (3차) 알렉산드르 안콰브 (2차)
파일:에스토니아 국기.svg 에스토니아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에스토니아 개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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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영국)|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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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인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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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텐 미할 (1차) 키어 스타머 카를 네하머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우크라이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파일:조지아 국기.svg 조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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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형제들|
이탈리아의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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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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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시미할 조르자 멜로니 이라클리 코바키제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 파일:코소보 국기.svg 코소보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크로아티아
[[시민민주당|
시민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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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결당|
자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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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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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르 피알라 알빈 쿠르티 (2차) 안드레이 플렌코비치 (3차)
파일:트란스니스트리아 국기.svg 트란스니스트리아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포르투갈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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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당(포르투갈)|
사회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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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연단|
시민 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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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마르티노프 루이스 몬테네그루 도날트 투스크 (3차)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파일:핀란드 국기.svg 핀란드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르네상스(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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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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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바르니에 페테리 오르포 오르반 빅토르 (5차)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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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수반이 아닌 총리
** 대통령 권한대행
공산국가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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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필립스 디콘 미첼 루스벨트 스케릿 (5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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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모틀리 (2차) 필립 데이비스 조니 브리세뇨
파일:세인트루시아 국기.svg 세인트루시아 파일: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국기.svg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파일:세인트키츠 네비스 국기.svg 세인트키츠 네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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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조셉 피에르 랄프 곤살베스 (5차) 테런스 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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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코닐 (권한대행) 개스턴 브라운 (3차) 앤드루 홀네스 (3차)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파일:트리니다드 토바고 국기.svg 트리니다드 토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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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 (3차) 마누엘 마레로 크루스 (2차) 키스 롤리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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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응기렌테 (2차) 압둘 하미드 드베이베 크리스티앙 은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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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겔 코칼라 마이가 (임시) 아지즈 아칸누시 프래빈드 주그노트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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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 울드 빌랄 아드리아누 말레이안 제르베 은디라코부차
파일:부르키나파소 국기.svg 부르키나파소** 파일: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국기.svg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파일:상투메 프린시페 국기.svg 상투메 프린시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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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리네르 조아킴 키엘렘 드탐벨라 (임시) 보우치라야 함무디 비요운 파트리스 에메리 트루부아다 (2차)
파일:세네갈 국기.svg 세네갈*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소말리아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 수단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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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만 송코 함자 압디 바레 오스만 후세인 (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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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모이니나 셍게 나디르 라르바우이 러셀 들라미니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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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마예 할리나 조셉 응구테 (2차) 울리스스 코헤이아 이 시우바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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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럭슨 샬롯 살와이 (2차) 피아메 나오미 마타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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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마이아 머넬레 시아오시 소발레니 펠레티 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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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중인 군주 · 재임 중인 대통령 및 총통 · 집권 중인 공산국가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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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46a38><colcolor=#fff>
인도 공화국 제14대 총리
나렌드라 다모다르다스 모디
नरेन्द्र दामोदरदास मोदी
Narendra Damodardas Modi
[1]
파일:नरेन्द्र_दामोदरदास_मोदी.jpg
출생 1950년 9월 17일 ([age(1950-09-17)]세)
인도 공화국 구자라트 주 반드나가르
재임기간 제14대 총리
2014년 5월 26일 ~ 현직
서명 파일:나렌드라 모디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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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46a38><colcolor=#fff> 학력 B N 고등학교 (졸업) (1963-1967년)
델리 대학교 (정치학 / B.A.)
구자라트 대학교 (정치학 / M.A.)
종교 힌두교
신체 170cm, 78kg[2]
소속 정당
[[인도 인민당|
인도 인민당
]]
약력 인도 인민당 총서기 (1998~2001)
구자라트 주정부 총리 (2001~2014)
구자라트 주의회 의원 (2002 / 라이콧 2구)
구자라트 주의회 의원 (2002~2014 / 마니나가르)
인도 하원의원 (2014~ / 바라나시)
인도 연방하원 인민당 원내대표 (2014~)
인도 연방하원의장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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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및 행적
2.1. 청년 시절2.2. 구자라트 주 총리2.3. 인도 총리
2.3.1. 모디 내각 1기2.3.2. 2019년 총선 승리2.3.3. 모디 내각 2기2.3.4. 모디 내각 3기
3. 경제 정책4. 외교 정책5. 복지 정책
5.1. 클린 인디아
6. 종교 정책7. 비판
7.1. 민주주의 후퇴7.2. 힌두교 극단주의 증진
8. 선거 이력9. 한국과의 인연10. 여담

[clearfix]

1. 개요

인도의 정치인. 인도의 제14대 총리이자 현임 인도 총리2014년 5월 26일에 취임하였다.

후술되어있듯 "인도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인도 내의 민족 및 종교 갈등힌두트바를 심화시킨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뉘고 있다.

2. 생애 및 행적

어릴 적 구자라트 지방의 빈곤한 하층 카스트 집안에서 태어나 힌두교 우익 단체인 RSS에 가입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청년 시절 인디라 간디의 계엄령에 반대하고 인도 국민회의의 독재에 반대하면서 정치적 체급을 쌓았고, 1980년 인도 인민당이 창립된 후부터는 구자라트 지방 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당 사무총장까지 올랐다. 당시 구자라트 주 총리였던 케슈바이 파텔이 건강 악화와 민심 이반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자 인민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2001년 구자라트 주 총리에 취임했다. 나렌드라 모디는 2001년부터 2014년까지 14년에 걸쳐 '최장기 구자라트 주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재임 기간 동안 경제적 자유화 정책과 제조업 육성 정책으로 구자라트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3] 인도내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이후 모디는 유능한 경제통 이미지를 내세워 2014년 인도 총선에서 무난하게 만모한 싱인도 국민회의를 꺾고[4] 제14대 인도 총리에 취임한다. 구자라트 주 총리를 맡던 시절과 비슷하게 작은 정부, 감세 위주 정책을 썼으며, 반면 이전 인도 국민회의가 만들어놓은 복지나 교육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 이같은 성장 위주 정책 덕에 인도 경제가 집권 초반에는 잠깐 반짝 성장하는 듯 싶었지만 2018 ~ 2019년 들어서 침체기에 들어갔고 특히 2020년 코로나 19 사태땐 되레 -6.6% 역성장하는 등 치명타를 입었다. 다만 2021년 들어서는 다시 8.7% 성장률이 반등해, 슬슬 경제 회복에 재시동을 걸고 있다.

2.1. 청년 시절

1950년 9월 17일생으로 봄베이 주[5]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카스트 계급으로 따지면 바이샤 계급 중 수드라에 가까운 하층 신분으로, 식료품・잡화상인 집안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기차역에서 짜이를 팔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토론은 잘했다는 교사들의 평이 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연극을 좋아해 종종 연극 배우로 연기를 직접 하기도 했다. 주로 주인공이나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연기하기를 좋아했는데, 이게 나중에 모디의 정치 입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8살 때부터 RSS(Rashtriya Swayamsevak Sangh)라는 우파 단체에 가입해 회원 활동을 시작했다. RSS가 현 인도의 집권당, BJP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디가 이 RSS → BJP 루트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닦았을 거라는 사실에는 별로 이견이 없다. 모디는 이 RSS에서 정치적 멘토인 락쉬만라오 이남다르를 만나 기초적인 정치 상식을 교육받았고 여러 정치적 거물들도 틈틈이 만나면서 훗날 정계 입문에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연을 쌓을 수 있었다. 청년이 되는 18세가 되자 카스트 관습에 따라 비슷한 카스트인 17세 자소다벤 치만랄 모디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가정적이지는 못했던 모디는 얼마 못 가 자소다벤을 버리고 밖으로 나돌아다녔고, 심지어 몇십 년 후 총선이 있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공공에 알리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이를 두고 비판이 일자 자소다벤과 재결합했지만 여전히 별거한다고 한다.

모디는 집을 떠나 북인도 지방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힌두교 아쉬람[6]을 여러 곳 방문했는데, 한 군데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고 여러 곳에 짧게 짧게 머물렀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대학 교육을 끝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절의 경험은 훗날 나렌드라 모디의 인생에 꽤나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968년부터는 콜카타를 거쳐 서벵골 지방과 아삼 주까지 유랑했다. 후에도 델리를 거쳐 1970년에는 아마다바드에 정착했다. 모디는 아마드바드에 살던 삼촌의 댁에 얹혀 살면서 구자라트 버스 터미널에서 노점상을 차려 음식을 만들어 팔면서 겨우 먹고 살았다. 그렇게 노점상으로 먹고 살던 모디는 아마드바드에서 옛 정치적 멘토였던 락쉬만라오 이남다르와 재회했고, 이때부터 모디는 본격적으로 정치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모디의 첫 정치 활동은 1971년 그가 '바라티야 자나 상' 당[7]에 가입하며 시작된다. 당시 바라티야 자나 상 당의 당대표는 훗날 총리까지 오르는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였다. 그는 바라티야 자나 상에 가입해 젊은 혈기에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 참전하려 들었지만,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가 파키스탄과 충돌할까 우려해 인도인들의 참전을 막으면서 모디는 잠시 동안 감옥에 갇혔다. 1971년에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일어나자 모디는 그때까지 하고 있었던 노점상을 완전히 때려치우고 RSS 활동에 뛰어들며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는다. 1978년에 델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해 졸업했고 5년 후에는 구자라트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까지 따내는 데 성공했다.[8]

1975년 인디라 간디 총리는 인도 전체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제 정적들을 싸그리 감옥에 처넣으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인디라 간디의 계엄령에 반대하는 대표적 정치단체였던 RSS는 당연하게도 인디라 간디에게 탄압받았고, 당시 RSS의 핵심관계자들 중 하나였던 모디 역시 지하로 숨어들어 밑에서 저항운동을 펼쳤다. 주로 정적들을 위한 세이프하우스들을 만들거나 돈을 모금하는 등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한다. 당시 인도 경찰이 집요하게 RSS를 잡아들이려 했기 때문에 심지어 승려로 변장하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참고로 1977년에 계엄이 해제되자 모디도 더이상 숨어다니지 않았다.

그렇게 끊임없이 활동하던 모디는 조직 내에서 승진을 거듭해 1978년에는 수라트와 구자라트 일대를 총괄하는 고위직까지 올라갔다. 1980년에 RSS를 모체로 인도 인민당이 창당되자 모디는 구자라트 일대에서 인도 인민당의 선거 활동을 지원하거나 선대위에서 활동하다가 1985년에 입당을 통해 정식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인도 인민당은 모디에게서 나온 선거 전략에 힘입어 손쉽게 구자라트주를 장악했고 당내에서 모디의 영향력도 점점 커졌다.

2.2. 구자라트 주 총리

모디는 1998년 구자라트 주 총선에서 탁월한 선거 전략으로 케슈바이 파텔을 주 총리로 당선시키며 인도 인민당의 총서기(중앙당 사무총장)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파텔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2001년 지진이 일어나 민심이 악화되어 재보궐선거에서 인도 인민당이 일부 패배했다. 신인을 등장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 인도 인민당이 나렌드라 모디를 새 얼굴로 내세우기로 결정했다.

물론 인민당 내부에서도 아무 경험이 없는 모디에게 주 총리직을 맡기는 안에 대해 찬반논란이 많았다. 당대표였던 L. K. 아드바니와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 역시 모디가 총리직을 맡기보다는 차라리 파텔을 도와 부총리직을 맡기를 바랐다. 그러나 모디가 '권한을 전적으로 일임하지 않으면 수락하지 않겠다.'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어쩔 수 없이 그에게 구자라트주 총리직을 맡겼다. 2001년 10월 7일부터 총리직에 취임한 모디는 2002년 2월 24일에는 총선에서 구자라트 주의회에 입성하는 데에도 연이어 성공했다.
파일:1_16a081ebf90.1908219_2422110044_16a081ebf90_medium.jpg파일:IndiaTvf8ba5d_Sharma-who-took44456.jpg
2001년 주 총리 취임 2002년 구자라트 폭동
그가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은 2002년 2월 27일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던 힌두교도 수백 명이 타고 있던 열차가 화재로 불타 인명피해 60명이 발생하는 사건이 터졌다. 모디가 이 사건은 무슬림이 방화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발표하자, 다음날 격분한 힌두교도들이 구자라트주 전역에서 반-이슬람 시위를 벌였다. 게다가 정부가 희생자들의 시신을 사건 현장에서 주도(州都)인 아마다바드로 옮겨온 것이 힌두교도들의 반이슬람 정서에 불을 붙였다. 구자라트 일대에서 힌두교도들의 대대적 폭동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무슬림 790명과 힌두교도 254명이 죽었지만, 실제로는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조사도 있다. 구자라트 폭동으로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라야 했고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등 구자라트 일대의 치안이 붕괴했다. 당시 구자라트를 총괄하던 모디는 이 사건 대처 문제로 상당히 욕을 많이 먹었다. 정부의 대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폭동을 조기진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디가 폭동을 조장•방치했다는 의심의 눈초리는 오늘날에도 이어진다.[9] 2022년 당시 무슬림 가족을 습격 강간, 살해한 일당 11명이 가석방되자 비난이 쇄도했다.

구자라트주 폭동이 외신에까지 보도되며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자 당연히 모디 총리는 당장 사퇴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심지어 같은 인도 국민민주동맹[10] 내부에서도 그가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모디는 하릴없이 2002년 4월 인민당에 주 총리를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당에서 허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디는 구자라트 주지사 S. S. 반다리에게 사퇴의사를 밝힌 다음, 주의회를 해산하고 2002년 12월에 조기총선을 치러 재신임을 묻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11] 결국 인도 인민당은 12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182석 중 127석을 거두는 압승을 거뒀고 2002년 12월 22일에 모디는 구자라트주 총리로서 2번째 임기를 시작했다.[12]

모디의 구자라트 2기 내각은 힌두트바 등 종교적인 문제보다 경제적인 문제에 훨씬 더 관심을 쏟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디 총리는 구자라트 지방 내에서 힌두 우익 조직의 영향력을 대폭 축소시켰고, 힌두 조직인 고르단 자다피야를 내각에서 해임하는 등 종교적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온건하게 나섰다. 게다가 구자라트 내 200여 곳에 달하는 불법적 힌두교 사원들을 강제로 밀어버려서 힌두교 단체들과는 거리는 날로 멀어졌다.

그렇다고 그가 아예 힌두교 중심 정책을 포기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모디와 무슬림들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당시 인도 총리였던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 총리마저도 북인도 지방의 무슬림 표심을 호소하는 유세에서 모디의 종교정책이 실수라고 비판했고, 미국영국, 유럽연합은 아예 그에게 종교탄압을 근거로 입국을 금지했다. 여전히 모디의 이슬람 정책이 적대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부분.

그는 임기 기간 민영화와 작은 정부, 감세라는 경제정책을 지향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수도시설이 미비한 구자라트에서 농지에 물 공급을 시키는 데 주력했는데, 이를 위해 50만 개에 달하는 구조물을 지었고 개중 11만 3천 개는 사방댐이었다. 사방댐을 지어놓은 덕에 지하수 수면이 상당히 올라오며 상황이 크게 개선됐고, 개선된 수도 공급을 기반으로 솜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인도 내에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로 솜 산업계를 구축했다.

덕분에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구자라트 지방의 농업 성장률은 전국에서 제일 높은 10%대를 기록했고 구자라트의 경제 성장률 역시 평균 10%를 넘나들면서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그의 경제적 성과 덕분에 구자라트는 인도에서 가장 사업하기 편한 지방으로 떠올랐고 특별경제구역까지 만들어지면서 경제적인 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냈다. 이에 더하여 농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농업용 전력과 일반 전력을 분리해 지방의 전력 공급을 안정화하기도 했다. 그렇게 경제성장으로도 상당한 지지세를 얻은 덕에 모디는 2012년 총선에서 182석 중 115석을 얻어내며 구자라트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모디 주 총리의 행적에도 의문이 가는 점은 많다. 그가 대표적인 업적으로 내세우는 평균 10%대 성장률은 인도의 다른 고도로 산업화된 주들에서도 나름 흔하게 나타나는 성장률이고, 결정적으로 90년대 인도 국민회의 치하에서 구자라트 주의 평균 성장률은 13%대였다. 10% 대에 달하는 큰 성장률이 단순히 모디 총리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

게다가 높은 성장률에 비해 빈곤율이나 빈부격차, 인간개발지수 등 복지와 관련된 지수는 별다른 개선을 보이지 않았다. 모디 총리의 재임 기간 동안 5세 미만 아이들 중 45%가 저체중이었고 23%가 영양실조에 걸려있다는 심각한 조사가 나오기까지 했고, 빈곤율과 여성 문해율 측면에서도 인도 내부에서조차 하위권을 연달아 차지하는 불명예를 얻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정부의 간섭이 줄어 노동권은 나날로 악화했다. 경제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갔냐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주로 혜택은 도시와 중산층에 집중됐고, 농촌이나 빈민들의 생활은 더 나빠지거나 하락했다는 평이 주류다.

2.3. 인도 총리

2.3.1. 모디 내각 1기

모디는 2001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재임하며 '구자라트 최장기 총리'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유력한 총리 후보로 급부상했다. 끝내 2013년 9월에는 2014년 하원 총선을 앞두고 인도 인민당의 총리 후보로 지명된다.[13] 모디는 선거 기간 내내 인도 국민회의만모한 싱 총리 하에서 이루어진 부정부패를 집중타격하며 유능한 경제 행정가라는 이미지를 부각했다. 이 이미지는 주로 젊은 층과 중산층들에게 잘 먹혀들어갔고 모디는 선거 기간 내내 지지율 1위를 달렸다. 반면 인도 국민회의는 모디의 힌두트바 정책과 극우 이미지를 반대로 부각하려 했지만 인도 내 방송계와 힌두 재벌들이 모디를 집중 지원하면서 전략에 실패했다. 결국 인도 인민당은 2014년 총선에서 31%를 득표, 하원에서 282석을 차지하며 1984년 이래 처음으로 하원 과반의석을 차지한다. 특히 무슬림들도 10% 넘게 인도 인민당을 찍어줬고 상위 카스트들도 상당수 인민당을 찍었다.[14] 모디 역시 지역구 2곳[15]에서 동시에 당선되며 당당히 하원에 입성했다.

파일:29iht-letter29-modi-superJumbo.jpg
2014년 5월 26일 취임사를 하는 모디 총리.

모디는 2014년 5월 26일 인도 총리로 취임했다.[16]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집권 직후부터 대대적인 중앙집권화 정책을 펼쳤다. 이전 인도 국민회의 하에서 일했던 공무원들을 대거 파직했고 총리의 권한을 대폭 확대시켰다. 다만 아직 상원까지는 인도 인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국회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총리령을 많이 썼다고. 또한 취임 직후 행정 비효율로 말이 많았던 계획위원회(Planning Commission)을 폐지하고 총리 직속 '인도전환위원회'를 설치했고, 판사들도 상당수 물갈이하면서 사법부에까지 행정부의 영향력을 늘렸다. 모디 총리는 자신이 후보 시절부터 그렇게 강조하던 경제 발전에 사활을 걸었는데, 이 과정에서 취임하자마자 정보부를 동원해 시민단체들과 각종 해외 NGO들에 대한 대대적 감사를 벌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많은 부패한 시민단체들이 하는 일도 없이 세금을 빨아먹으면서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집권 1기차 지지율은 순항해서 퓨 리서치 센터의 2016년 조사에서는 지지율 81%를 기록했는데, 심지어 야당인 국민회의 지지자 사이에서도 6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지지율이 더 올라 퓨 리서치 센터의 2017년 조사에서는 지지율 88%를 기록했으며, 국민회의 지지자 사이에서도 6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2.3.2. 2019년 총선 승리

2019년 5월 23일 총선 개표 결과는 모디에 비판적이었던 일부 외신이나 여론조사 기관들도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로 예상을 깬 압승 결과가 나왔다. 총 303석으로 절반을 훌쩍 넘겼고, 기존 의석은 물론 저번 선거치의 결과를 상회하였다. 여권인 NDA는 총 353석을 차지하였다.

전부터 인도 인민당의 강세가 유지되던 북인도는 물론이고 오디샤, 아삼, 카르나타카, 서벵골 등 BJP[17] 입장에서 험지였던 북동부, 남부에서 대약진을 하였다. 의석 39개가 걸린 타밀나두 주의 지역 패권 정당 AIDMK와 연정을 한 후폭풍으로 AIDMK가 1석으로 몰락하지만 않았더라면 개헌 발의 가능 의석인 357석을 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인도는 여러 정당이 난립하는 구도라 인민당만 놓고 봤을 때 득표율 자체는 37%로 압도적인 수준까진 아니다.

2.3.3. 모디 내각 2기

무슬림 등 동북부 소수 집단 탄압으로 논란이 된 '불법 이민자 색출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때문에 동북부에서 큰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3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4.5%)이 전년 동기(7.0%)보다 대폭 하강하며 근래 6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인도 내 코로나19 확산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에도 1345억 루피(약 2조 500억 원)가 투입되는 센트럴 비스타[18] 재개발 프로젝트 관련 공사를 강행하고 있어서 인도 야권의 비판을 받고 있다.#

모디 총리는 G7국가들에게 코로나19 백신 지적재산권 면제를 지지해 달라고 촉구했다.#

결국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내각을 일부 교체했다.#

2021년 4월부터 인도 내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고 변이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퍼지기 시작하면서 모디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백신이 남을 걸로 예상하고 AZ 백신을 네팔에 원조해주는 등, 코로나 국면에 대한 오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가 폭증하는데도 불구하고 지방선거를 무리하게 강행하였다.

결국 2021년 5월 2일 지방선거에서 모디가 이끄는 인도 인민당이 5개 주 중 3곳에서 야권에게 크게 패하고 만다.# 특히 웨스트벵골 주에서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TMC)라는 지역정당에게 크게 패하였고, 이 일로 마마타 바네르지 TMC 당대표 겸 웨스트벵골 주 총리가 차기 연방총리로 급부상하게 된다.#

다만 인도 정치에 있어서 3년이란 시간은 아주 긴 시간이고,[19] 모디 총리가 우타르프라데시 주를 필두로 한 북인도 지역에서 압도적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20] 모디 총리의 재집권에 위험하다 볼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서벵골 지역에서 2019년 총선 당시 BJP가 선전 했지만 애초 인도 서부 및 남부 지역에서 BJP가 선전한 것은 비유하자면 한국의 진보정당이 경북에서 대약진하는 급의 정치적 이변이었던 점도 감안해야 한다. 심판정서와 지역 정치성향을 감안하면 지방선거 패배의 파급효과가 평소 힌두트바 모디 총리에 비판적이었던 외신에 의해 과장되는 면이 없지 않다. 특히 인도는 주요국 중에서도 지역 정치 조직 및 선거와 전국 총선거에서의 그것과 괴리가 심한 나라 중 하나다. 마마타 바네르지가 과거 총선에서도 지역에서의 패권과 달리 고전했었던 전력이 있었기에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마하라슈트라 주의 시브 세나와의 관계 복구 등의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2022년 2월에 치러진 5개 주 선거 중 핵심지역으로 꼽힌 우타르프라데시주를 포함한 4개 주에서 승리를 거두어 2024년 총선 승리의 발판을 쌓았다. 특히 인도 국민회의의 아성인 고아주에서 승리해 모디 총리의 지지 기반이 두터워졌음을 시사했다. 인도 북부의 힌두스탄 벨트에서 모디 총리의 지지율이 굳건하다는 점을 입증했다. 이변이 없는 한 2029년까지 장기집권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실제로도 미국의 여론조사 업체 모닝컨설트의 2022년 조사에서 무려 77%라는 지지율을 기록해 주요국 지도자들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2022년 12월 25일, 인도 정부가 힌디어를 공식 국어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인도 남부와 동부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등 비판이 쏟아졌다.#1#2 인도는 다민족 사회로 각 지방마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영어가 중간언어격인 링구아 프랑카로 기능하고 있다.

2023년 2월, 힌덴버그 리서치에 의해 아다니 그룹(Adani Group)의 부채 및 회계 조작 문제가 폭로되면서 경제적 위기를 다시 한번 맞이했다.# ##

2023년 2월 말 지방선거가 치러진 인도 북동부 트리푸라, 나갈랜드, 메갈라야 주 등에서 모디의 인도 인민당이 속한 NDA가 모조리 승리하는 압승을 거두며, 최근 불거진 대내외 악재에도 불구하고 모디 총리의 내년 총선 전망을 밝게 했다.

2023년 3월 23일, 지난 2019년 총선에서 인도 국민 회의를 이끌었던 라훌 간디가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전에 했던 연설에서, 국외로 도피한 보석 회사 재벌(니라브 모디) 등의 경제범죄를 언급하며 "왜 도둑놈들은 모두 모디라는 성씨를 가지고 있는가?" 라고 발언했다가 구자라트 주의회 의원 푸르네시 모디에게 소송을 당해서 유죄가 나온 것이다. 이에 라훌 간디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어떠한 공동체도 겨냥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21] 라훌 간디는 연방하원의원직이 박탈되었으며 결과에 불복하고 항소했지만 다음 총선이 1년 남짓 남은 시점이라 선거에 나오지 못할 것이고 라훌 간디가 거느리고 있는 제1야당 학생-청년 조직의 힘도 분산될 것이라 예상된다.

5월 4일과 11일 양일에 거쳐 열린 우타르프라데시 시장 지역선거에서는 17개 시장직 모두 BJP와 여당 연합 정권이 승리하면서, 북인도의 압도적 지지세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5월 10일 열린 남인도 카르나타카 주의회 선거에서 20번이나 유세에 나설만큼 공력을 들였음에도 제1야당 인도 국민 회의에 주의회 과반을 내줬다. 여당 인도 인민당 소속 주정부 수석장관인 바사바라지 봄마이는 일찌감치 “모디 총리를 비롯한 당원들의 분투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고 패배를 시인했다.# 다만 해당 지역은 원래 인도 국민회의 지지세가 만만찮은 곳이기 때문에 모디에게 심각한 정치적 타격까진 아니다. 물론 선거 전 여론조사 및 당일 출구조사 이상의 대패를 당한 점은 지적받아야겠지만, 모디 내각은 연말의 텔랑가나 주의회 선거에서의 지역당 선전 여부와 마디아프라데시에서 NDA 현상유지 정도를 체크한 뒤 다음 총선을 앞두고 모디 총리 재신임 정국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종료 예정인 곡물 무료제공 프로그램을 5년 더 시행하기로 했다.#

12월 3일, 인도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가 집권하던 차티스가르, 라자스탄에서 깜짝 승리를 거두고, 경합이 예상되었던 마디아프라데시에서도 INC를 압살하면서, 2024년 인도 하원 선거의 모디 3연임 가능성을 한 층 더 높였다. 이에 화답하듯 니프티50과 센섹스지수는 사상 최고 장중가를 기록했다. 자나타 달(연합)의 NDA 이탈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야당의 기세를 대폭 꺾었다는 점에서 모디 총리의 매우 큰 호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월 7일, 모디 총리의 강력한 우군인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2024년 방글라데시 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1월 9일 연성 친중 성향의 로타이 체링 부탄 총리가 실각하고 친인도 성향의 야당이 압승을 거두며 모디 총리의 남아시아 맹주와 외교적 지위가 더욱 강력해진 상황이다. 대외적으로 3월에 있을 2024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앞둔 푸틴 및 러시아와의 외교적 공조도 보다 강화하며 # 모디 3연임으로의 이정표를 향해 순항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2024년 4월 선거운동기간중 만모한 싱 정권을 부정하는 의미로 인도내 무슬림들을 침입자라고 갈라치기해 야당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

독립 100주년인 2047년까지 인도를 선진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2.3.4. 모디 내각 3기

2024년 인도 총선에서 인도 인민당이 소속된 NDA는 293석을 차지, 전체 하원 의석수인 543석의 과반을 가까스로 넘었다. 그러나 그중 인도 인민당의 의석은 240석에 그쳐 정당 연합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자연스럽게 모디 총리의 국정 장악력은 약해졌고 정권 유지를 위해 연립정부 구성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반면 야권인 인도 국민 회의 주도 정당 연합, INDIA는 240석으로 크게 선방하여 전반적으로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결과 발표전 최소 과반인 300석 이상과 개헌선인 400석도 노려볼만했다는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이러한 요인으로는 인도 내의 부의 불평등 심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청년 실업 그리고 힌두트바에 의존한 종교 차별 정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2019년 자치권 박탈과 관련해 계속하여 논란이 되었던 인도령 카슈미르에선 자치권 재부여 이후 후보도 내지 못하는 등 선거 기간 내내 모디 총리의 1~2기 임기가 남긴 상처가 제법 선명하게 드러났다.

NDA 소속 정당들은 수요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당 대표로 선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며 단결력을 보여 3기 내각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2024년 6월 9일, 드라우파디 무르무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총리로 임명되면서 3기 임기를 시작했다.

3. 경제 정책

총리 취임 이후 인도 경제를 순항시키고 있다는 평를 받는다.[22] 주 총리 재임 당시 경제 자유화 정책과[23] 제조업 육성 정책을 통해 구자라트 주의 경제 성장을 이뤄냈듯 비슷한 방법을 인도에도 총리로서 적용시키려 했던 것. 모디는 외국 투자 규제를 대폭 줄이면서 해외 자본을 대거 인도 국내로 들여왔고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619억 6천만 달러2013년의 280억 달러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2014년 9월에는 이른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슬로건을 발표해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24] 값싼 노동력으로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메이크 인 인디아의 목표는 총 3개이다.

1. 인도의 제조업을 연 12~14% 성장
2. 2022년까지 제조업 일자리 1억 개 창출
3. 2022년까지 GDP에서 제조업 차지 비중을 25%로 증가.[25]

2016년에는 검은 돈의 흐름을 추적하기 위해 500루피와 1천 루피 지폐 사용을 전격 폐지했고[26] 다음 해에 개인 소득세 신고액이 무려 25%나 증가했다.

모디 내각은 이전 인도 국민회의 정부가 주도한 공공 교육 예산을 15% 넘게 대폭 삭감했고 대신에 대기업과 부유세, 소득세를 크게 줄였다. 뿐만 아니라 야당에게 크게 비판받은 이나 보석류 등 사치품에 부과되던 세금까지도 크게 줄이면서 감세 기조를 이어갔다. 덕분인지 모디 취임 후 4년 동안 인도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7.23%로 이전 만모한 싱 정부의 6.39%보다 약간 더 올라간 수치를 보였다. 모디가 공을 들인 제조업 생산액 역시 2017년 기준으로 모디가 총리에 취임하기 전인 2013년 대비 40% 가까이 성장했다.[27] 2017년에는 독립 이후 최대 세제개혁인 상품세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런 효과도 잠시,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경제성장률이 6%대로 떨어졌고 집권 후반이 되자 경제는 확연한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었다. 게다가 실업률도 이전보다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으며 소득 불평등 역시 딱히 개선되는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집권 초반에만 반짝했던 경제 성장인 셈이었다.

덕분에 모디 정부가 경제적으로 유능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국내외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특히 임기 초 반짝했던 회복기가 사그라들고 2019년 인도에 닥친 경기 침체 현상과 더불어 모디 총리의 화폐개혁 정책이 제대로 된 조치가 마련되지 않고 실행되어서 경제적 발전이 둔화되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여파[28] 또한 심각해졌다. 또한, 인도 중앙은행이 1991년 경제위기 이후 저축해둔 자산을 급격히 매각하여 포퓰리즘 정책에 남발하고 인도의 경제적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과 모디정부가 인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29] 또한 2019년 이후 불어닥친 경기 침체 상황에도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공급 관련 정책에만 주력하고 당장의 경기 침체를 해결할 수요 관련 정책을 수분기 동안 펴지 않고 방치했다는 점에도 어느정도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5.8%로 6.5%인 중국보다도 떨어져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라는 타이틀도 잃었으며 위에서 자랑한 제조업 생산액 증가도 2010년대 후반 들어선 지지부진한 상태다.

인도 경제는 2018년부터 GDP 성장률 6.12%, 인플레율 3.4%로 그럭저럭 양호한 개선세를 보였지만 2019년 총선 때문에 모디 정부가 경제보다 선거 캠페인에 더 집중하면서 다시 성장률 4.18%, 인플레율 4.7%로 주저앉았다. 모디 총리는 강력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총선에서는 어찌어찌 승리했지만 2020년대에 전세계를 강타한 COVID-19 팬데믹을 아주 제대로 얻어맞았다. 인도는 2020년 GDP 성장률이 -6.6%라는 독립 이래로 최악의 경제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고, 역시 모디 총리의 지지율도 함께 떨어졌다. 그나마 모디 총리에게는 2019년 총선이 코로나 이전에 치러져 팬데믹의 직격탄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 게다가 팬데믹 초반기에 모디 총리가 폭증하는 코로나 증가세를 잡기 위해 2달 동안 인도 전체를 락다운(Lockdown)시키면서 물류와 사람의 이동 자체가 멈췄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충격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인도인들이 적응하기 시작한 2021년부터는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더니 2021년 GDP 성장률은 8.7% 대를 기록하며 경제 회복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2020년 9월에 국가가 관리하던 농산물 유통과 가격 책정을 시장에 대부분 개방하는 법안을 통과하여 농민들이 크게 반발한 상태이다.# 12월에도 농민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2021년 1월 12일. 인도 대법원이 '농업개혁법' 시행을 잠정 보류하고, 정부와 농민 대표단의 협상을 주선할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하라고 명령했다.# 보류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시위는 이어진다.# 그러자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농민 집결 지역의 모바일 인터넷망도 차단했다. 2021년 11월. 농지개혁법이 1년 2개월만에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농민들도 시위를 마치게 되었다.#

2020년 미국의 유명 투자가 짐 로저스는 본인 저서에서 모디 총리가 자신의 치적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데만 치중했지 실속은 없는 인물이라고 혹평했는데, 모디 총리가 내세우는 치적 중 하나인 이른바 클린 인디아 캠페인은 인도 공중화장실을 깨끗하게 했다는 건 좋은 일이나 그게 도대체 인도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인도의 문제는 자국 산업을 키운다는 구실 아래 지나친 폐쇄주의로 외국인들이 투자할 공간을 스스로 닫아버리고 성장의 기회를 잃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30] 심지어 일당독재 중인 저 중국보다 더 폐쇄적인 투자 정책을 펴고 있는 나라라고 디스할 정도였다. 짐 로저스가 케인스주의를 비판하고 경제적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는걸 생각하면 꽤나 아이러니한 부분.

4. 외교 정책

외교적으로는 상당히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거 유세 기간 동안 대놓고 파키스탄이 테러지원국이라는 발언을 하는 등 적대적인 발언을 직설적으로 쏟아내며 강한 모습을 드러냈고,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물밑에서 2020년 인도 대중국 불매운동을 지원하는 등 중국과의 정면충돌도 불사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중립국 성향을 지켜온 인도인지라 중국과 아예 척을 지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 관계가 훨씬 험악해진 것은 확실하다. 특히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Quad에 가입하기까지 하면서 서방권과 점점 밀착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에게 무기를 대량 구입하는 등 반서방권 국가들과 관계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는 양국 수교 이래 최악에 최악을 꾸준히 갱신하는 중이다. 특히 모디 총리 특유의 직설적인 발언과 과감성이 해당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오는 면이 크다. 숙적처럼 지내는 파키스탄은 대놓고 테러지원 국가라고 비난했고, 파키스탄 남부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발루치족의 분리주의 운동을 지지하며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소유권을 주장하여 파키스탄이 반발하고 있다.# 다만 모디는 인도의 다른 주변 이웃국가들인 부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는 외교적으로 나쁘진 않게 지내고 있다. 오히려 남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확고한 패권국으로 자리잡기 위해 이들과는 협력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외 인도와 우방 중 하나인 미국과 군사 협력을 시작하며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다른 반중 성향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 속에서 중국 최대 경쟁국인 미국과 급속도로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인도가 역사적으로 중립을 고수하면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중립국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남아시아권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중국과 전통적인 남아시아 패권국인 인도가 충돌하면서 일단 반중 스탠스로 전환했다. 일본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전통적인 제1세계 국가들과의 관계도 양호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모디의 외교 정책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들 중 하나가 바로 Quad, 즉 사자간 안보협의체 참여인데, 사실상 인도-태평양판 나토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는 국제기구라 인도가 전보다 훨씬 본격적인 중국 견제에 나섰다는 평이 많다.

미국 외에도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국을 식민지배했던 영국과도 협력하고 있다.[31] 인도의 골칫거리인 낙살라이트 반군과 카슈미르 무장단체들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 반드시 멸망시키겠다며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토벌 작전을 지시했다.

중국과의 갈등 중에 국경 인근 연설로 팽창주의를 중단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2020년 11월. 파키스탄,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 다시 커지자 팽창주의를 비판했다.#

2023년 5월 20일에는 한국, 브라질, 호주 등과 더불어 올해 G7 의장국인 일본의 특별한 초청으로 G7 정상회담에 참여하게 됐다. 세계일보.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K-9 자주포를 비롯, 방위산업과 디지털, 바이오헬스, 우주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양국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정상은 2010년 발효한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을 고도화하고, 양국의 교역을 크게 늘림과 동시에 신규 분야의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글로벌경제신문.

또 정상회의의 한 세션에서 유엔 개혁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인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며 그동안 유엔 개혁 목소리를 내온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모디 총리는 "왜 우리는 다른 토론장에서 평화와 안정에 관해 논의해야 하느냐? 평화를 구현한다는 이상을 지니고 출발한 유엔이 왜 오늘날 분쟁 예방에 성공적이지 못한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그들(단체들)은 오늘날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며 "이것이 유엔과 같은 단체들에서 개혁이 실행돼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들은 또한 '글로벌 사우스'[32]의 목소리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분쟁 종결에 대해 논의만 계속하게 될 것"이라며 "유엔과 (유엔) 안보리는 그저 '잡담 장소'로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후 9월 9일~10일에는 인도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러시아는 다른 국가들의 규탄으로 푸틴 대신 외무부 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가 대신 참가했고, 인도와 영토 분쟁 중인 중국리창 총리가 대신 참가했다. 이때 모디 총리 자리의 명패가 나름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자국 국호를 영어인 '인디아(India)'가 아닌 힌디어 명칭인 '바라트(Bharat)'로 표기했기 때문.[33] 바라트는 힌두교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바라타 황제를 어원으로 하는 명칭으로,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모디 총리가 튀르키예의 선례처럼 국명을 바꾸는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와중 저 명패가 나왔다. 당연히 야권에선 비웃음만 당할거라며 반대하고 있고, 모디도 현실 가능성이 높다고 보진 않고 있는지 정치 전문가들은 걍 다음해 총선을 노린 힌두 결집용 정치 제스처로 보는 경우가 많다.#

2024년 7월 10일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대놓고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병원 미사일 사격을 비판하고 휴전 협상을 촉구하기도 했다. #

5. 복지 정책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경제성장에 몰두해 복지나 국민건강 예산을 대거 깎아버린 걸로 악명이 높다. 모디 총리는 당선된 첫 해에 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해버렸고, 2015년 1월에는 '신복지정책'(New Health Policy)'를 추진하면서 이전 인도 국민회의 정부가 구축해놓은 인프라를 많이 없애버렸다. 신복지정책의 핵심은 국민 복지나 건강 관련 문제에 정부의 개입을 최대한도로 줄이고 대신 개인 보험이나 사립 복지 체계의 비중을 키우는 것. 당연히 극빈층들이 넘치는 인도 내부에서 비판이 많이 일었으나 모디 총리는 그냥 밀어붙였다.

모디는 2015년 기존의 복지 예산의 15%를 깎았고 담배나 노인 연금에 쓰이던 예산들도 줄였다. 기존의 인도 국민회의가 만들어놓은 복지 시스템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셈. 전문가들은 이런 정책들이 계속 연발되면 안그래도 빈약한 인도의 공공의료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5.1. 클린 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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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인디아 정책으로 새로 지어진 공공 화장실.

그렇다고 아예 복지에서 손을 놓은 건 아니다. 2018년에는 흡연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담뱃갑의 최소 80% 이상을 경고문이나 경고성 사진으로 채워야 한다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관련해서 가장 대표적인 모디의 위생 정책은 이른바 '클린 인디아(Clean India)' 정책이다. 인도의 매우 높은 노상방분율 때문에 길거리나 하수마다 분뇨들이 넘쳐나는 열악하기 짝이 없는 위생 상태가 전염병들의 온상이 된다고 판단한 모디 정부가 취임하자마자 추진한 정책이다.

모디 정부는 5년 내로 인도 위생 상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시골이나 지방도시에 공공화장실 수백만 개를 건립했다. 모디 정부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추진한 사업이기 때문에 공공변소를 무려1억 개나 지었는데, 문제는 인도인들이 종교 관념의 문제[34]나 시민 의식의 부족 문제 등으로 이 기껏 지어놓은 화장실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게다가 부패한 인도 관료들이 화장실 건립에 배정된 예산을 떼먹는 일도 비일비재해서 아직 이 문제가 해결되기에는 멀어 보인다. 또 상기한 짐 로저스도 지적했듯 이게 그 많은 돈 들여 화장실 세우는 것 이상의 부가적인 사회적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클린 인디아 캠페인이 아예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모디 총리의 대표적 치적 사업이자 역점 사업이어서 정말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어가며 캠페인을 벌였기 때문에 정부 발표에 의하면 변소 1억 개가 시골 지방에 설치되었고 도시에 새로 6백만 개에 달하는 화장실이 들어섰다고 한다. 도심지에 있는 병원들 중 8만 1500여 개 남짓한 병원들이 화장실에 쌓인 변을 길거리에 내다버리지 않고 정식 하수처리를 통해 처분하며 개중 6만 5천 개가 완벽한 하수처리 시스템을 갖추기도 했다고. 클린 인디아 캠페인을 통해서 도심지에서 쏟아져나오는 막대한 양의 변들 중 65%가 제대로 된 하수도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성폭행 등의 범죄위험 감소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는 데다[35] 시골에서도 상당히 위생 상태가 개선되었다는 보고가 나왔다. WHO유니세프의 추정치에 따르면 2021년 노상방분을 하는 인구의 비율은 15%(도시 1%, 농촌 22%) 정도로 상당히 줄어들었다.# 물론 인도 정부가 발표하는 것처럼 노상방분이 완전히 사라졌다거나 모든 시골에 화장실이 갖추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똥을 그대로 거리에 버리고 인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노상방분을 했던 2010년대 초반 이전의 모습을 생각하면 변화된 것은 맞다.

CNN도 클린 인디아 캠페인을 비판하면서도 2014년에서 2018년 말까지 인도 시골의 노상 배변률이 70%에서 44%로 대폭 줄었다고 하고, WHO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설사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인도인 30만 명이 클린 인디아 캠페인으로 생명을 건졌을 것으로 추산했다. # 인도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인도 인구의 69%가 집에 화장실을 갖추고 노상용변 비율은 19%라고 하는데, 2014년 기준 인도 인구 13억 5천만 명의 45%에 육박하는 6억 명 이상이 노상방변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발전한 셈이다. #

2019년 2월, 인도에서 성역으로 대우받고 있는 하천인 갠지스 강의 심각한 오염을 참다 못해서 그동안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서 받은 기념품 1800여 점을 모조리 경매에 올린 후 그 수익으로 갠지스 강을 정화하기로 했다.#

6. 종교 정책

나렌드라 모디는 상당히 강경한 힌두트바, 즉 우익 힌두교 신자다. 이 때문에 그의 재임기간 동안 극우 힌두교 세력들이 크게 불어났고 인도내 소수종교 중 최대파인 이슬람과 빚는 갈등은 꽤나 심해졌다. 힌두교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도 정부에서 은연 중에 이 같은 극우세력들을 도와주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날로 커지는 상황. 심지어 정부에서 무슬림들이 힌두교시크교로 개종하는 사업을 지원한다는 등 모디 정부 내에서 무슬림들에 대한 대접은 썩 좋지 않다.

또 모디 총리가 어릴 적 가입하기도 했던 힌두교 우익단체 RSS가 모디 총리 재임기간 동안 정부 요직에 대거 발탁되면서 인도 정계 내에 힌두교도들의 입김은 갈수록 강해졌다. 대표적으로 RSS와 연이 있는 옐라프라가다 수데르샨 라오가 인도 고고학연구위원회(ICHR)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심지어 인민당에 호의적인 학자들마저 이 인사가 교과서와 역사학계 내에 힌두 민족주의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나렌드라 모디가 2005년에 "종교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이유로 미국 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2019년 2월 18일에, 인도에서 이슬람교도 등 소수종교집단이 종교적 이유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되고 있지만 가해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2019년 12월 12일 인도 시민권 법안이 개정되었다. 개정안은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이 되어 2015년 이전에 인도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슬림은 제외되었다.[36]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사상자가 발생했고#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인도 정부는 무슬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추가로 경찰병력과 무인드론을 투입하여 감시를 계속하는 한편, 무슬림 거주지역의 인터넷 접속까지 차단하여 시위를 막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0년 1월 10일 개정된 인도 시민권 법안이 발효되면서 모디 총리 인형을 태우는 등 인도 정부를 상대로 무슬림들이 더욱 격하게 시위하였다. 특히 모디 총리가 방문한 콜카타 지역에서는 무슬림 시위대 3만 명이 모디 총리를 비난하며 시위를 벌였고 그 규모는 점점 확대되었다. 인도의 인구 중 약 14%(2억 명)나 되는 무슬림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모디 총리는 이미 인도 시민권을 받은 무슬림들의 이익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발효된 법안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이민법으로 몇백 년 묵은 힌두교도들과 무슬림들 간 감정 싸움이 또다시 격화됐다, 심지어 2020년 2월 수도 델리 북동부에서 힌두교도들이 무슬림들을 공격해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수백 명이 다치는 2020 델리 폭동이 발생했다.

1992년 12월 힌두 극단주의자들이 벌인 유혈사태 과정에서 북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아요디아시 소재의 바브리 모스크(بابری مسجد, Babri Masjid)[37]가 파괴되었다. 힌두교도들은 바브리 모스크 터가 원래는 힌두교 비슈누 신의 일곱 번째 화신인 라마가 탄생한 자리이고 그래서 라마의 탄생을 기념하는 사원이 있었는데, 16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사원을 파괴하고 모스크를 세웠으니 원래대로 되돌리겠다는 명분을 들었다.[38] 해당 모스크의 수복 문제를 두고 법정 다툼이 벌어졌는데, 2019년 11월 인도 대법원은 모스크 터에 힌두교도들의 주장대로 힌두교 사원을 짓되, 무슬림들을 위해서 대체 모스크를 마련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결에 힘입어 2020년 8월 5일 모스크 터에 라마 사원을 건립하는 착공식이 열렸는데, 모디 총리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여기에 참석했다. 이 행사 참석을 근거로 모디 내각은 보수 힌두민족주의(Hindu nationalism) 노선을 강화하리란 우려가 나왔다. 인도 정부는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자국령 카슈미르 대부분에 통행금지령을 발동했다. #1 #2 인도 대법원은 불타버린 바브리 모스크를 대체하기 위해 정부에게 새 모스크를 지을 부리 5에이커를 무슬림들에 새로 지급하라고 명령했지만, 수백 년간 존재했던 모스크 터를 힌두교도들에게 빼앗기고 다른 땅으로 쫒겨나는 무슬림들 입장에서는 역사성으로 보나 감정적으로 보나 이래저래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024년 1월 23일, 모디 총리는 사원에 모신 라마 신상을 점안하는 의식을 자신이 직접 주관한 뒤 일장 연설을 하였다. 무슬림들의 불만이 점점 가속화되었다. #

이 와중 인도의 힌두 내셔널리즘화도 가속화되고 힌두교 내셔널리즘 단체들의 활동을 묵인하여 '소 자경단'이라 불리는 단체의 활동이 급증했다. 알다시피 인도의 다수종교 힌두교는 소를 성스럽게 여기는데 이 때문에 소를 도축하거나 소고기를 소지했다 여겨지는 이를[39] '소 자경단'이라는 작자들이 찾아서 구타하는 것. 모디 집권 이전 2012년에는 불과 1차례에 불과한 소 자경단의 폭력사태가 모디 집권 1차의 막바지인 2018년에 들어서는 55차례까지 증가했다. # 인도에서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심지어는 공개행사에선 무슬림을 죽이자라는 선동적 발언까지 나왔다.#

7. 비판

7.1. 민주주의 후퇴

모디 정권의 민주주의 후퇴와 관련한 논문 한국에서의 분석글 1 2 인도인 비판론자의 반응[40]

비록 오늘날의 인도가 야당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자유로운 다당제 선거도 지속적인 지속적인 만큼[41] 독재국가까지 다다르지는 않았지만,[42] 모디의 집권 후 인도는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비판과 함께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 하기에는 애매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인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진보 진영에서는 아예 대놓고 모디를 독재자로 부르는 경우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세계의 자유 지수에 따르면 모디 집권 직후인 2015년 인도의 세계의 자유 지수는 정치적 권리(PR) 35점, 시민 자유(CL) 43점, 총 78점으로 '자유'로 분류되었지만, 2016년 CL이 1점[43] 감점된 후 2019년 CL 2점[44], 2020년 PR 1점[45] & CL 3점[46] 감소했다가 2021년 CL 4점[47]이 감소하며 '부분 자유'로 강등되었고, 2022년 PR 1점[48]이 감소하며 PR 33점, CL 33점, 총 66점으로 강등된 후 2024년 현재도 이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49] 7년 만에 12점이나 강등된 셈이다. 참고로 시민 자유의 후퇴가 매우 큰 것과 정반대로 정치적 권리는 그렇게까지 크게 후퇴하지는 않은 편이다.

이 정도 감소폭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비판받는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큰 수치인 것은 물론 안제이 두다와 비슷한 하락치인 셈이며,[50] 현 인도의 점수인 66점도 대놓고 독재국가 소리를 듣는 오르반 빅토르헝가리보다 고작 1점 높은 수준이다. 사실상 주류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 중 가장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로 분류된 셈이다.

언론자유지수 역시 2024년 기준 180개국 중 159위로 아주 낮은데, 이는 타지키스탄, 베네수엘라, 팔레스타인, 튀르키예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심지어 이조차 2023년의 161위보다 높아진 것이다. 인도의 언론자유지수는 2015년 기준으로도 136위로 꽤 낮은 편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의 언론자유지수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심각한 수치다.

민주주의지수도 2023년 기준 7.18점(41위)로 ‘결함있는 민주주의’에 폴란드[51]와 동점이다.

반대파에 대한 공격도 거세지고 있는데, 2023년 3월 21일 인도 인민당에서 런던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인도국민회의 전 대표 라훌 간디를 '현대판 미르 자파르'라고 부른 바가 있다. # 참고로 미르 자파르가 인도 입장에서 어떤 인물인지를 감안하면,[52] 한국으로 치면 여당 측에서 야당 대표에게 '너 현대판 이완용이지?'라고 묻는 꼴이다.[53][54]

삼권분립도 위협받고 있다. 2021년 세계의 자유에 따르면 법원이 정부에 유리하게 판결하는 것은 기본에 최근 은퇴한 대법원장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원의원 12명 중 한 명이 되었다거나, 한 판사가 모디 정권에 비판적인 판결을 했다가 다른 직위로 강등되는 등 사법부의 독립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같은 편 입장에서도 모디의 의사결정 방식은 문제가 많다고 평가한다. 한마디로 BJP의 최측근들조차 모디의 의사 결정을 모른채 신문보고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7년 고액권 기습 교체나 2021년 코로나 상황에서의 갑작스런 도시 봉쇄를 담당 장관조차 모른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바람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했음에도 언론플레이를 통해 정책 피해를 BJP가 다 떠안고 모디는 아무런 정치적 피해를 보지 않는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의사결정이 BJP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취임 후 기자회견을 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2019년에는 2년 전 "모디는 히틀러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발언한 아난드 텔툼브데(Anand Teltumbde, 1951~) 교수가 낙살라이트와 연계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 이후 그는 2020년 모디를 비판한 다른 활동가 및 지식인들과 함께 수감되었다가[55] 2022년 보석으로 풀려났다.

2024년 5월에는 인도의 진보 민족주의 성향 야당 뉴델리 보통사람당(APP)의 지도자 아르빈드 케지리왈 델리 주총리가 총선 전인 2024년 3월 소비세 정책과 관련한 사기 혐의로 갑작스럽게 체포되었다가 임시 보석으로 석방되기도 했는데[56], 야당 측에서는 모디가 적수들의 선거 운동을 막기 위해 표적 수사를 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케지리왈은 총선이 끝난 후인 6월 2일 재수감되었다. #

또 해외 거주 반체제 인사들의 입국도 제한하고 있다. # 해외에서의 시크교도 암살에 대해 인도 당국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인도 주재 호주 기자의 비자 연장이 거부되기도 했다. #

7.2. 힌두교 극단주의 증진

모디와 인도 인민당의 집권 이후 급격한 힌두교 극단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 # # 특히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의 종교간 폭력 사태가 심각해지자 모디 총리도 이를 비난하며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들을 지지층으로 두고 있는 모디 총리의 성향상 실질적으로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며, 아예 관련된 현 상황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모디의 소속 정당인 BJP가 힌두 극단주의 단체인 RSS를 대변하는 정책에 몰두하는 것을 생각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른다. 인도의 야당과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언론에서는 가끔씩 등장하는 힌두극단주의자 비판에 대해서도 일종의 립서비스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8.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정당 결과 당선여부 비고
2002.02 구자라트 주의회 보궐선거 라지코트 2구
[[인도 인민당|
인도 인민당
]]
45,298 (57.32%) 당선(1위) 초선
2002.12 구자라트 주의회 선거 마니나가르 113,589 (73.29%) 재선
2007 139,568 (69.53%) 3선
2012 120,470 (72.38%) 4선
2014 인도 총선 록 사바 선거 바도다라 845,464 (72.75%) 초선
바라나시 581,022 (56.37%)
2019 674,664 (63.62%) 재선
2024 612,970 (54.24%) 3선

9. 한국과의 인연

한국에 친화적인 편으로, 이는 모디 총리가 쭉 시행해 왔던 동방정책(Act East)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중국을 견제하고, 해당 국가들의 경제적-군사적 협력을 얻어내고자 하는 외교 정책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인도 시장을 개척하고 인도에 투자함으로써 경제 면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군사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인도와 협력하며 다방면에서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상들과도 외교적 교류를 제법 하는 편인데, 2010년대 중반 방한했을 땐 한국어 트윗을 날려 화제가 되기도 했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날엔 한국어로 취임 축하#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이후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연락 후 한국어 트윗을 몇 차례 올리기도 했다. 2017년 7월 8일에 독일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2018년 11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본인이 입는 자켓과 동일한 제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착용샷을 찍었을 정도. # 이후 김정숙 여사가 도종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인도를 방문하게 되었다. # 금관가야 수로왕의 아내이자 인도 출신이라는 설도 있는 허황후 관련 발언을 한 적도 있었다.

2021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인 1월 24일에 맞추어 22일 청와대로 꽃다발을 선물했다. #

2023년은 대한민국-인도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에 맞춰 장재복 대사 이하 직원 50여명이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의 주제가인 < 나투 나투 >에다가 탭댄스를 추는 영상을 올렸다. 이에 대해 모디 총리 측에서는 공식 트위터로 리트윗하고 "생동감있고 사랑스럽다." 라는 평을 남겼다.

10.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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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공 윌리엄의 경우 손이 빨갛게 됐다.[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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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항저우에서 열린 G20 회담 당시 있었던 테레사 메이 총리와의 악수는 평범한 수준의 힘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추가로 모디 총리가 2017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서로 만났으며, 이 둘이 서로 악력 배틀을 하면 누가 이길까 하고 전 세계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했지만,[58] 실제로는 악수를 하지 않고 서로 포옹하는 것으로 끝냈다.[59] 그런데 2020년 2월 25일에는 인도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뉴델리 하이데라바드 하우스에서 모디 총리와 악수를 했다.
  • 요가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하며 수준급 실력자다. 원래 인도에서 요가는 남자가 하는 수련법이었다. 다만 모디 총리가 70이 넘은 나이에도 정정한 것은 집안 내력도 크게 한몫 한 듯하다. 모디의 모친은 1923년 태어나 2022년 12월 30일까지 무려 99살이나 살다 세상을 떠났고, 모디의 부친 역시 1915년경 출생하여 1989년 사망해 74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한국 기준에서는 74살까지 살은 게 대단한 건가 싶지만, 인도는 1980년대 후반[60]에는 아예 평균 수명이 50대였고, 현재도 평균 수명이 60대 후반[61]에 그치고 있기에 굉장히 장수한 셈이었다.
  • 2023년, 세계 각국 정상들의 지지율 조사를 실시하는 모닝컨설트 조사 기준, 70%대의 지지율로 선거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윤석열 대통령이 10~20%대 지지율로 꼴찌 기록하고 있다는 기사가 뜨는 그 여론조사 맞다.(...) 당시 국내 다수의 여론조사에선 윤석열 지지율이 20~30%대는 기록했던걸로 봐서 여러 의미로 10% 내외 오차 편차는 있다고 보는게 맞을듯하다. 사족으로 해당 조사에서 2위는 멕시코의 오브라도르 대통령, 3위는 호주의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였다.[62]
  • SNS 팔로워 수가 굉장히 많다. 2019년 2월 기준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팔로워 수가 4500만이 넘고, 후발주자인 인스타그램도 1800만 명이 넘는다. 사실 인도 인구가 세계 1위인 만큼 구독자 수가 많을 수밖에 없긴 하다.[63]
  • 방한했을 때, 김무성이 모디 총리를 오래 기다렸지만 못 만나고 그냥 돌아온 적이 있었다. #
  • 지하철을 자주 애용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이동의 경우 시민들이 탄 칸에 같이 타는 경우가 많다. 높은 지지율에 총리가 탄 칸은 약식 간담회장으로 바뀌기도 한다. 국빈 방문 중인 정상이 있으면 지하철 타고 이동하자고 권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인도공장에 방문할 때 모디 총리와 함께 지하철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SNS도 자주 활용하고 있다.#
  • 모디 총리의 지지율이 한창 높을 당시 모디를 신으로 모시는 힌두교 사원이 건립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렌드라 모디 본인부터 이 일에 대해 크게 언짢아했고[64], 결국 철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타밀나두에서 모디 총리를 신으로 숭배하는 힌두교 사원이 다시 세워졌다.#
  • 상술했듯 인권, 민주주의 후퇴와 관련된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2018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여러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관련기사. 빌게이츠 재단에서도 상을 수여했는데 이 때 인권단체들이 비난을 하였다.#
  • 2019년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SNS를 활용했는데, 한국어로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다만 번역기를 사용한 것인지 그 트윗들이 하필 음슴체로 쓰인 탓에 아바투르라는 별명을 얻었다.
  • 인도인 시크교도 및 타밀나두 주의 타밀족들과도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다. 역시 세속주의 성향과 공산당의 텃밭인 케랄라쪽에서도[65] 평은 좋지 않다. 그러나 북인도 지역의 힌두교도 사이에서는 카스트를 초월하여 전폭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 2020년 3월까지는 프로필에 있는 사진처럼 수염을 성글게 기르는 편이었는데, 2020년 3월 이후부터 2022년 초까지 산타클로스처럼 수염을 길렀다.# 인도 내에서도 갑자기 수염을 기르는 이유로 의견이 분분했는데,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인도 내 유행으로 이발사와 접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수염이 자연스럽게 길러졌다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코로나의 유행이 거의 끝나가는 2022년 말의 사진을 보면 거의 예전의 수염으로 돌아간 상태다.
  • So Sorry라는 인도의 정치 풍자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인도에서 만든 애니라서 온갖 주인공 보정은 다 받는다. 반대로 취급이 가장 안 좋은 등장인물은 시진핑이다.[66]
  • 가족으로는 1968년 결혼한 아내가 있는데, 현재는 몇십 년째 서로 얼굴도 보지 않은채 남이나 다름 없는 상태며 이유는 불명이다. 결혼 초부터 모디는 아내를 두고 인도 전역을 여행하러 돌아다니는 등 결혼 초부터 가정을 내팽개치다시피 했으며,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게 1987년인데 이혼 문제때문에 만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디의 아내가 이혼을 거부했고, 결국 현재에 이른 것이었다. 모디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은 2014년 인도 총선을 앞두고 모디가 아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아내가 있다는 걸 인정하기 전까지는 독신이어서 친인척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어필했는데,[67] 모디 입장에서는 당시 만모한 싱 정권의 인기도가 바닥이라 총리직 선출까지 영향은 가지 않았지만, 이 일로 가정이 있다는 것도 알려지고, 덤으로 가정을 외면하고 살았다는 것까지 알려져 이래저래 망신을 샀다. 그런데 모디가 총리가 된 뒤로 총으로 무장한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경호를 빌미로 일상생활을 통제한다고 하는데 모디의 부인은 이들의 정체를 알려달라고 법원에 청원까지 냈지만 모두 기각되어서 이들의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디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인도인들도 알고는 있다고 한다.
  • 인도의 총리들 중 최초로 인도 독립, 인도 공화국 수립 이후에 태어난 총리다.
  • 청년 두 명 중 한 명이 실업자일 정도로 인도의 청년 실업이 극심함에도 40% 이상의 청년들이 모디를 지지한다. 이유는 모디의 복지 정책과 능숙한 SNS 활용, 국격 상승 등으로 꼽힌다. #


[1] 구자라트어: નરેન્દ્ર દામોદરદાસ મોદી[2] 출처[3] 다만 후술되어있듯 이전 90년대 인도 국민회의 주정부 시절엔 더 고성장하고 있던 지역이라 모디의 정책이 과연 실제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다.[4] 사실 만모한 싱 시절에도 인도는 고속 성장했지만, 임기 말년에 경제가 정체기에 접어들었던게 정권 교체의 빌미를 줬다.[5]구자라트[6] 요가, 명상, 음악, 수행, 영성 또는 종교적인 가르침, 기타의 신념 등을 제공하는 장소나 공동체이다.[7] 당시 여당이자 인디라 간디 시절 점차 철권 통치로 향해가던 인도 국민회의에 반대하는, 여러 성향의 야당들이 모여 만든 정당연합에 가까웠다.[8] 근데 이것도 나중에 정적들에 의해 논란이 됐다. 그가 대학에서 전공했다고 밝힌 과목이 당시에는 해당 대학에서 수강이 불가능했다.[9] 모디는 폭동 도중 거리에 경찰들을 배치하고 폭동 발생시 즉시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다만 상황을 진정시키기는 무리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자라트 폭동 당시 모디의 대처는 두고두고 그가 정적들에게 비판받는 부분이다.[10] National Democratic Alliance. 인도에서 주로 힌두정치, 보수주의를 추구하는 당들이 연합한 정당 연합.[11] 야당 측에서는 유권자들의 명단 미비를 이유로 반대했지만 모디는 그냥 강행했다.[12] 이 선거에서도 말이 많았다. 모디가 대놓고 反이슬람적 캠페인을 펼쳐 종교적으로 양극화된 인도 사회의 불화를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비판이 많다.[13] 아예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니고 인민당의 창립 멤버인 L.K. 아드바니가 그의 개인적 종교관을 문제삼긴 했다. 다만 모디 개인의 인기가 너무 커서 묻혔다.[14] 인민당이 반무슬림 정당이라는 걸 집중공격했던 인도 국민회의로서는 뼈아픈 패배였다.[15] 인도에서는 하나 이상의 지역구에 출마가 가능하다.[16] 모디는 1947년 인도 제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태어난 첫 총리다.[17] 인도 인민당(Bharatiya Janata Party)의 약칭[18] 총리 집무실, 국회의사당, 대통령 관저를 비롯한 인도 정부 부처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인도문에서 대통령 관저(구 총독궁)까지 이어지는 대로(大路). 이 재개발 계획에 의하면 부통령과 총리 관저와 집무실, 새 국회의사당 건물과 그 외 부처 건물들이 재건축될 예정이다.[19] 투개표만 2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출구조사도 틀리는 경우가 다반사다.[20] 2021년 기준 80~90%대의 지지율을 구가하던 1기 때보다는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6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했으며 코로나가 진정된 2022년 들어서는 다시 70%대 후반으로 크게 올랐다.[21] 인도에서 성은 직업-카스트를 나타낸다.[22] 아이러니한 건 모디 이전 만모한 싱 총리 시절에도 인도 경제는 고속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 다만 집권 후반기 성장률이 정체되는 현상이 왔고 이를 잘 이용한 모디와 인민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23] 허나 짐 로저스는 후술되어있듯 모디 내각 역시 중국보다도 더 폐쇄적인 경제 체제를 가진 나라라고 디스하기도 했다.[24] 마침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독재를 빌미로 미국을 위시한 서방권이 나선 것도 인도에겐 호재였다.[25] 3번 목표는 나중에 2025년까지 기간을 연장했다.[26] 물론 반대는 엄청났지만 인도의 고액권 사용 부정부패가 워낙 엄청난 수준이어서 강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신권을 발행하면서 500루피권과 2천 루피권을 포함해 발행시켰는데, 이후 2천 루피권은 이전과 같은 명분(지하경제 척결)으로 2023년에 폐지.[27]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45년 만에 최고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 작물 가격 폭락으로 인한 농민층의 불만이 크다.[28] 2016년 화폐개혁 당시에는 수시로 깊은 시골에서는 화폐교환을 못해서 돈을 쓰지 못해 굶어 죽은 사례도 기사화 되었었다.[29] 모디와 모디의 당 BJP는 이미 인도 중앙은행의 총재를 두 번이나 갈아치운 전적이 있다. 모디 취임 당시의 인도중앙은행 총재는 2005년에 세계 최초로 대침체를 예견한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 시카고 대학교 교수였다. 하지만 모디는 라잔 교수가 전임 만모한 싱 내각에서 총재로 임명된 데다가 그 이전에 만모한 싱 총리의 경제고문으로 활동했다는 이력이 껄끄러웠는지, 라잔 교수가 총재직에 더 있기를 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기를 연장해 주지 않았다. 대신 모디는 당시 인도중앙은행 부총재였던 우르지트 파텔을 후임 총재로 임명했는데, 이 사람은 통화정책에서 모디 내각과 마찰을 빚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총재직을 내던졌다.[30] 그러나 비위생적인 환경에선 화장실을 통한 보건 위생 개선은 중요한 일이라는 점에서 로저스가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도인들에게 화장실 개선은 한국으로 치면 새마을운동 당시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꾼 것 그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31] 사족으로 인도 우익층들에게 영국은 인도를 못살게 만든 원흉 쯤으로 취급받는다. 실제 식민지배 시절 엄청 뜯어가기도 했고.[32] 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저개발국. 인도가 해당 국가들의 맹주가 되고자 하는 행보와 상통한다.[33] 바라트란 말 자체는 인도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고 한다. 다만 인디아도 예전부터 쓰이긴 했다.[34] 힌두교의 관념상 사람의 똥이나 오줌 등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된다. 인도 사람들이 집에 화장실을 두지 않고, 또는 화장실을 쓰지 않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볼일을 해결하려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소는 신성시되다 보니, 소똥도 신성시 여겨 일부 지역에선 명절이면 소똥을 몸에 묻히는 행사를 하기도 한다. 인도는 나라 안에 다른 문화공동체들이 엄청 많기 때문이다.[35] 노상방분은 자연히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36] 관련기사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무슬림을 지지하는 입장은 기사에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해당 법안에 대한 인도 정부 측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는 모두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국가이다. 무슬림 국가에서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인도에 난민지위를 신청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슬람에는 다양한 종파가 있고 기타 복잡한 사안이 여러 개 걸려있으며 인도와 국경을 맞닿은 다른 나라 미얀마에서는 당시 무슬림 로힝야 난민들이 생기던 시점이었다.[37] 바브리 / 바바리(بابری, बाबरी)는 무굴제국의 초대 군주 자히르 알딘 무함마드 바부르(ظهیرالدین محمد بابر, Ẓahīr al-Dīn Muḥammad Bābur)를 의미한다. 바부르는 차가타이(티무르)인들을 통솔하던 카불의 군주로, 1523년 델리의 로디 왕조 술탄에게 반기를 든 재지수장의 요청을 명분으로 차가타이 군대를 파병하여 1526년 파니팟에서 술탄 이브라힘 로디(ابراهیم لودی, Ibrāhīm Lōdī)의 군대에게 대승을 거두고 이듬해 칸와(Khanwa)에서 라즈부트 수장들을 격파하여 북인도를 정복하고 아요디아에 자신의 이름을 건 모스크를 건립하였다.[38] 역사적으로 정말로 바브리 모스크가 건립되기 이전 그 터에 라마의 탄생을 기념하는 힌두교 사원이 있었는지는 불명확하다. 그러나 현대의 인도 힌두교도들은 있었다고 주장한다.[39] 주로 무슬림이다.[40] 아예 대놓고 모디를 '사실상의 독재자'라고 부르며 모디가 인디라 간디보다 더 나쁘다고 맹비난하고 있다.[41] 일례로 엄청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2024년 총선에서 여당이 단독 과반을 획득하는 데에 실패했다.[42] 후술할 세계의 자유 지수에서 '정치적 권리'는 한국과 동점으로 평가받았다.[43] E2 1점. 그린피스 등 외국 기부에 대한 세부 정보를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 약 9천 개 자선단체의 외국 기부 규제법(FCRA) 라이선스를 취소한 것 때문에 감점되었다.[44] D1 1점, D2 1점. 전자는 언론인들의 신변 위협 증가, 후자는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의 폭력 강화로 감점되었다.[45] B4 1점. 무슬림의 시민권 약화로 인해 감점되었다.[46] D3 1점, E1 2점. 전자는 정치적 소재에 대한 학계의 논의를 여당 측이 압박한 것이, 후자는 2019년 시민권 개정법 시위에 대한 진압이 감안되어 감소했다.[47] D4 1점, E2 1점, F1 1점, G1 1점. 각각 선동법 남용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감소, 정부가 NGO에 대한 외국 자금 지원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함과 동시에 앰네스티 자산 동결로 인해 앰네스티의 인도 활동 중단, 행정부와 사법부의 유착 증가, 가혹한 팬데믹 봉쇄와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방역 위반 집행으로 감점되었다.[48] B1 1점. 여당의 부적절한 정경유착과 부패 혐의에 대한 편파적인 수사로 인해 감점되었다.[49] 2023년에는 CL에서 코로나 방역 완화로 G1이 1점 향상되었지만 무슬림 재산 압류 증가로 G2가 1점 감소하여 점수가 그대로이다.[50] 물론 오르반 빅토르보다는 하락폭이 확연히 낮다. 애초에 오르반은 모디와는 달리 사실상 독재자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은 인물인지라...[51] 이쪽도 모디와 동시기에 집권한 법과 정의당 집권기에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비판이 많다. 다만 세계의 자유 지수는 한국, 미국(각각 83점)보다 약간 낮은 수준(80점)이라 비자유민주주의 국가로도 부를 수 없는 수치다.[52] 자세한 것은 플라시 전투 문서 참조.[53] 다만 이는 인도국민회의 측에서도 여당에 대한 비난 수위가 매우 거세다는 것은 여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예시(인도국민회의의 공식 SNS 글) 확실히 인도에서 정치 갈등이 매우 심하긴 한 모양. 실제로 모디도 인도국민회의가 자신을 무솔리니, 히틀러에 비유한다고 공개적으로 불평하기도 했다. #[54] 실제로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모디가 히틀러랑 판박이라고 비난하는 인도인들의 유튜브 영상을 수두룩하게 찾아볼 수 있다.[55] 이때 기소가 조작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56] 케지리왈 측이 재판부에 제안한 석방 사유는 '선거 운동'이었으며, 대법원은 5월 10일 '선거는 매우 중요한 행사'라며 임시 석방을 허가했다.[57] 이 때문에 자기 힘을 과시하기 위해 남에게 통증을 주는 것 같다며 무례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몇몇 있다. 다만, 이같은 행동이 인도를 식민지배했던 영국에 대한 악감정을 이렇게 표출했다는 시각도 있다.[58] 도널드 트럼프와 나렌드라 모디는 전 세계 정상들 중에서 가장 악력이 강력하기로 유명하다.[59] 17년도에는 하지 않았지만 19년도에는 한 적이 있었다!# 단독 정상 회담은 아니고 G7 45회차 때였다. 서로 대화를 하다가 웃으며 동시에 악수를 했는데 정확히 얼마나 쎄게 한건진 알 수서없지만 악수를 하며 모디 총리가 악수한 채로 트럼프의 손을 내려쳤다! 악수 이후 트럼프가 모디 총리의 팔을 살짝 건들며 마무리되었다.[60] 이 시기는 한국의 평균 수명도 21세기에 비해 짧은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1989년 시점에 이미 평균 수명이 71살(남성 67세, 여성 75세)에 달했던 반면 인도는 1989년에도 평균 수명이 겨우 57세(남녀 모두 57세)에 불과했다. 한국은 이후 노태우 정권의 전국민 의료 보험제를 실시하면서 평균 수명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평균 수명 80세 시대를 열었다.[61] 인도는 아직도 위생과 의료의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큰 나라다. 부자들은 한국 부럽지 않은 특급 의료서비스가 가능하지만 힘없는 서민들은 인도보다 더 후진국 수준의 의료서비스조차도 못 받는 경우가 많다.[62] 비슷한 지지율로 스위스의 알랭 베르세 대통령도 기록은 되고 있는데, 사실 스위스는 의원내각제라 대통령은 권한이 크지 않은데, 스위스가 스위스식 의원내각제로 총리도 실권이 없고 각료들의 집단지도체제라 대표성 있는 지도자가 딱히 없어 대통령이라도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63] 이와 비슷하게 인도의 음악 레이블 채널인 T-Series도 (MrBeast보다도 많은) 유튜브 구독자 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64] 사실 정치나 권위적 문제를 떠나서도 살아있는 사람을 힌두교의 신으로 모시는 것을 주류 힌두교는 부정적으로 여긴다. 쿠마리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런 경우가 적거니와, 쿠마리조차도 인도 힌두교가 아닌 네팔 힌두교의 신이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을 수 있다.[65] 인도에서 비종교인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히며 이쪽의 힌두교 신도와 무슬림들은 서로의 종교축제에 참여를 해줄 정도로 사이가 좋은 편이다.[66] 정치 풍자 애니라서 내용이 많이 병맛이다. 그래서 내용이 인도 인민당 위주로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은 물론 자국의 여당인 인도 국민 회의까지 까는 내용까지 있다. 물론 병맛 때문에 유튜브에서는 인터넷 밈이 되기도 했다.[67] 한국의 박근혜가 독신이니 친인척 비리는 없을 것이라는 환상이 일부 지지자들에게 있었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참고로 이 때문에 모디의 정적이자 당시 총리직을 놓고 겨룬 맞수였던 라훌 간디 역시 미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