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 가니 바라다르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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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fff> | 탈레반 부지도자 아프가니스탄 제1부총리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Abdul Ghani Baradar[1] ملا عبدالغني برادر[2] عبدالغنی برادر[3] | }}} | ||
출생 | 1968년 ([age(1968-12-31)]~[age(1968-01-01)]세) | ||||
아프가니스탄 왕국 우루즈간 주 웨트막 | |||||
가족관계 | 모하마드 오마르 (동서)[4] | ||||
민족 | 파슈툰인 두라니족의 일파 사도자이 씨족 | ||||
국적 | [[아프가니스탄| ]][[틀:국기| ]][[틀:국기| ]] | ||||
종교 | 이슬람 (데오반드파) | ||||
재임기간 | 탈레반 부지도자 | ||||
2019년 1월 ~ |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제1부총리 직무대행 | |||||
2021년 9월 7일 ~ | |||||
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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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1년 탈레반 공세 직후 모습[5] |
탈레반의 부지도자, 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의 부총리 대행.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장악했을 때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를 대신해서 공개 석상에서 등장한 인물. 탈레반의 온건파를 이끌고 있으며,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와 도하 협정에 참여한 인물이다.
탈레반 최고 실권자로, 사실상 탈레반 최고지도자이다. 공식적인 탈레반 지도자인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는 다른 독재 정권들과 비슷하게 명목상으로 내세우는 대리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2. 생애
2.1. 2021년 탈레반 공세 이전
1968년에 아프가니스탄 왕국 우루즈간 주 웨트막에서 태어났다. 탈레반의 창시자 모하마드 오마르와는 절친한 친구 관계였으며, 이름의 "바라다르"는 오마르가 부른 명칭이며, 뜻은 "형제" 혹은 "물라 형제"를 의미했다.[6]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칸다하르 주의 오마르의 무자헤딘 단체에서 활약했으며, 1994년 당시 오마르와 다른 2명의 사람들과 함께 남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창설했다. 탈레반 집권 1기 (1996-2001) 당시 헤라트 주와 님루즈 주의 주지사, 국방부 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1년 11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시작 이후 오마르와 함께 산으로 대피하려 했지만 탈레반의 지도부 일원들과 함께 북부연합 군에게 잡혔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보부가 탈출하도록 도와주었다. 이후 탈레반 생존자들과 함께 파키스탄에서 거주했다.
2007년 탈레반 지도부 구성원들이 많이 죽고 나서 탈레반에서 사실상의 지도자로 부상했으며 2004년과 2009년 사이 탈레반의 평화 협정을 이끌었다.
2010년 2월 파키스탄 ISI에게 잡히고 나서 2018년 10월까지 파키스탄의 감옥에서 지냈다.
석방 이후 2019년 1월 탈레반의 부지도자가 되었으며, 2020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와 도하 협정에 서명했다. 이후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과 접견한 것이 알려졌다.# 블링컨이 달라이라마 만날 때 왕이는 탈레반과 접견
2021년 기준 탈레반의 최고지도자는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이지만, 서방 언론 The Diplomat과 The Economist는 바라다르를 사실상(de facto) 최고지도자로 보고 있다. # # 경향신문에서는 바라다르를 탈레반의 2인자로 보고 있다. #
2.2. 2021년 탈레반 공세 이후
2021년 탈레반 공세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 CIA 국장 윌리엄 번스와 비밀 회의를 해서 미국 정부 협력자가 카불 공항에서 8월 31일 이전에 탈출하는 것을 협조했다.카타르 도하를 중심으로 탈레반의 외교를 도맡은 바라다르는 탈레반의 승전이 외교적 승리였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파키스탄 페샤와르[7]에 기반한 시라주딘 하카니는 전투를 통해 승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 서로 격렬한 논공행상을 벌였다고 한다.# 바라다르가 친카타르파를 대변한다면, 하카니 네트워크는 탈레반 내 친파키스탄파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9월 3일 밤 판지시르 해결 방안에 대해서 하카니 네트워크와 논쟁하다가 카불에서 총격전이 발생했으며, 바라다르는 부상을 입고 다수의 경호원들이 죽었으며 파키스탄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 #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바라다르는 과도정부에 비탈레반 인사와 소수 민족 관계자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바라다르의 의견에 반대한 하카니 네트워크 간부 할릴 우르-라흐만 하카니(현 난민부 장관 대행)가 의자에서 일어나 바라다르를 주먹으로 쳤다. 블룸버그통신은 이후 양측 경호원이 다툼에 개입해 총격전을 벌였고 사상자까지 나왔다고 덧붙였다. 바라다르는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후 카불을 떠나 남부 칸다하르로 향했다.#
9월 7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의 내각 발표 이후 부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내각 발표에 불만을 가지고 13일 카불을 떠나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로 이동했다. 헤럴드경제에 의하면 총리 대신 부총리가 된 것에 불만을 가진 것 같다고 추정했다. # 블룸버그 기사에 의하면 칸다하르로 가서 최고지도자 아쿤드자다와 현 상황을 의논할 예정이라 한다. #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국제사회에 편견없이 아프간 지원을 호소했다.#
3. 평가
탈레반에서 친카타르파의 지도자로 여겨지고 있으며, 친파키스탄 파벌인 하카니 네트워크와 서로 견제하는 사이라서 온건파로 여겨지기도 한다.미국 정부와의 유연한 정치 및 외교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애초에 그가 2018년 출소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의 협상 능력 때문이었는데, 미국 CIA에서는 탈레반 인사 중 바라다르만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출소 이후에도 이런저런 수완을 발휘해서 카타르 도하에서 풍족하게 살았다고 한다.
온건파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탈레반 고위층들에 비해 일반 상식을 갖추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