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7-01 23:55:12

파푸아뉴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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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 독립국
Independent State of Papua New Guinea
Independen Stet bilong Papua Niug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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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1] 국장
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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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Independent State of Papua New Guinea
독일어: Unabhängiger Staat Papua-Neuguinea
톡 피신: Independen Stet bilong Papua Niugini
히리모투어: Independen Stet bilong Papua Niu Gini
국가(國歌) O Arise, All You Sons
면적 462,840km²
인구 9,292,172명(2022년) | 세계 96위
수도 포트모르즈비
접경국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인도네시아[2]
정치 체제 영연방 왕국,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69위(2021년)[결함있는민주주의]
국왕 엘리자베스 2세
총독 밥 다데 경
총리 제임스 마라페
통화 키나
언어 영어, 히리모투톡 피신
GDP 명목 $220억(2019), PPP $339억(2020)
1인당 GDP 명목 $2,637(2020), PPP $4,326(2020)
국부 $300억 / 세계 112위(2019년)
종교 기독교 96.5%
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1976년 5월 19일
북한: 1976년 6월 1일[4]
여행경보 특별여행주의보: 출국권고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코로나19]
출국권고: 서던 하일랜즈 주, 헬라 주
위치
파일:300px-Papua_New_Guinea_on_the_globe_(Oceania_centered).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apua_New_Guinea_map.png

1. 개요2. 국기3. 문화
3.1. 언어
4. 스포츠5. 지리 및 기후6. 역사
6.1. 독일 / 영국령 뉴기니6.2. 호주령 (파푸아 준주 & 뉴기니 영토)6.3. 독립
6.3.1. 부건빌 문제6.3.2. 2011-12 헌정 위기
7. 교통8. 부족 갈등9. 정치10. 관광11. 치안12. 군사13. 외교14. 경제15. 자연재해16.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태평양 뉴기니 섬에 위치한 나라. 뉴기니 섬의 동쪽 절반(서쪽 절반은 인도네시아령, 동경 141도 기준)과 비스마르크 제도, 부건빌 섬 등의 열대 제도들로 이루어졌다. 서쪽으로 인도네시아, 북쪽으로 태평양, 동쪽으로 태평양과 솔로몬 해, 남쪽으로 산호해·토러스 해협과 경계를 이룬다. 또한 토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호주가 있다. 호주를 제외하면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큰 나라다. 제2차 세계 대전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 기지가 있던 라바울 등 격전지였던 곳들이 많이 남아있다.[6]

정식 국가 명칭은 파푸아뉴기니독립국(The Independent State of Papua New Guinea)이며, 1975년에 독립했다. 톡피신어, 모투어 등의 현지어로는 파푸아 니우기니(Papua Niugini)라고 한다. 영어론 줄여서 PNG라고 부르곤 한다.

수도는 포트모르즈비(Port Moresby). 공업화는 거의 되지 않았으며, 목재, 커피, 구리 등을 수출한다. APEC 정상회담의 회원국이다.

'파푸아'는 말레이어로 멜라네시아인들의 곱슬머리를 가리키는 말이며, '뉴기니'는 스페인의 탐험가 이니고 오르티스 데 레테스(Yñigo Ortiz de Retez)가 1545년에 뉴기니 주민들이 아프리카 기니만 연안의 주민들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해 '누에바 기네아(Nueva Guinea)'라고 붙인 것을 영어로 옮긴 이름이다.

파푸아뉴기니는 중앙정부가 힘이 없기 때문에 지역들이 부족 중심 체제로 각자 자치령으로 살아가며, 이들의 세력이 워낙 센 편이다. 심지어 치안과 법까지 개별적으로 맡고 있으며 부족들이 온갖 중무장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때문에 치안이 불안하며 외국에서 쉽게 개발 사업을 벌이기 어렵다.

이처럼 막장인 나라임에도 문명 충돌 이론처럼 종교를 기준으로 세계 문화권을 구분하면 기독교가 다수이기에 서구권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멜라네시아와 비슷한 문화권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7] 밑의 호주하고는 제도나 경제 등 다른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오세아니아의 남태평양 섬나라들도 파푸아뉴기니와 비슷하게 기독교가 다수라는 공통점 때문에 서구권으로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문화적, 제도적, 경제적, 사회적인 면에서 멜라네시아 지역은 호주와 뉴질랜드, 서구권과 차이점이 많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처럼 아시아 동부와 같이 묶여서 언급되거나(아시아 태평양), 남태평양 군도 또는 제도(諸島)권으로 따로 분류할 때도 있다.

남아있는 영연방 왕국 중에서는 인구가 많고 큰 편에 속한다. 캐나다, 호주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넓으며, 뉴질랜드와 자메이카에 앞선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영연방 왕국들은 모두 인구 수십만 명 미만의 소국들이다.

2. 국기

빨강과 검정의 바탕에 황금색의 극락조와 하얀 별이 그려진 국기로 1971년에 제정되었다. 빨강, 검정은 과거 이 나라를 통치했던 독일 제국 시절의 독일 국기에서 본따왔으며 빨강에는 이 나라의 국조인 극락조가 그려졌고 검정에는 남십자 성을 상징하는 하얀 별이 있다.

이전에는 독일 제국 시절의 독일 식민지 당시에는 옛 독일 제국의 국기에 극락조 문장이 들어간 기를 사용하였고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영국의 유니언 잭이 들어간 문장의 국기에 영국 왕령을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진 깃발을 사용했다.

3. 문화

인구 대다수의 사고방식으로 원톡(wantok)[8]이라는 방식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부족 전체의 동지의식이다. 이게 지나쳐서 문제지만, 반대로 이를 이용해 잘 구슬리면 꽤 유리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한 부족의 지역권에서 그 부족원들만 고용하고 가게를 차리면 치안이 철저하다고 한다. 즉, 부족 내에선 "외국인이라도 우리 부족에게 잘 대해주니 그도 우리 부족, 원톡이다."라고 받아주는 것이다. 혹시라도 다른 부족이 해당 외국인에게 강도짓이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끔살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온갖 선물이나 부족들의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지고, 부족 남성 및 여성과 결혼이라도 하면 원톡 대우도 아니고 진짜 원톡의 일원이 돼버리기 때문에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 동족으로 받아들이며 그를 다른 부족이 다치게 하면 부족 전체가 무기 들고 다른 부족 가해자를 반 죽여놓는다고 한다. 실제로 이 곳 한인회 회장을 원톡으로 받아들인 어느 부족의 땅에서 이 회장이 다른 부족 불량배와 시비가 벌어졌는데, 그 곳 경찰들인 해당 부족의 원톡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와서 불량배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후 "죽여버릴까요?"라는 말까지 하는 통에 깜짝 놀라 회장이 이제 됐다며 말렸던 적도 있다고.

이렇듯 자신들과 가깝다고 여기면 한없이 관대하고 친절하지만, 반대로 부족들 전체가 자기들 원톡이 아닌 외국인들에게 강도짓을 비롯한 범죄를 저지르는 걸 정당하게 여기는 것이 문제다. 2000년대 초반 한 한국인 사업가가 트럭들을 도난당했는데, 각 차당 1,000달러씩 가지고 오면 차를 돌려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사업가는 어디 맛을 보여주마라면서 동업자인 필리핀인 및 여러 사원들과 같이 총기를 들고 갔다가, 강도 떼들 정체가 다른 지역 부족들이며, 소굴에는 각종 중화기로 무장한 수천여 명이 우글거렸기에 쫄아서 군말없이 돈 주고 돌려받았다고 한다. 이럴 경우 차량이 부족이 소유하는 땅을 통과하니 당연히 자신들도 돈 받을 자격이 있는데 돈을 안 주니, 부족민 입장에서는 차량이라도 가져가 팔거나 아니면 돈 받고 돌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가게일 경우엔 부족 다수가 와서 가게를 확 털어가기도 한다. 1990년대에 여길 여행한 최정현이 만난 현지 교포도 가게를 이렇게 털어갔기에 그냥 나도 강도였던 현지인들을 아예 가게 직원으로 고용하고 잘 대우하니 그들 부족 원톡 대우를 받게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강도가 뚝 사라졌다고 한다. 함부로 건드리면 그 부족에게 보복을 당할 걸 알기 때문에 이러지 못한다고. 그래서, 원톡 부족 장로 생일에 선물도 해주고 명절에 다 같이 잔치도 하라고 먹을 것도 싸가고 친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태평양의 여러 섬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에 의한 식인 풍습이 있었다. 1902년 선교사 해리 던시는 현지 건물에서 1만 두의 해골이 안치된 것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다만 독일과 영국에 의한 기독교 포교로 인해 20세기 후반 들어 사라졌다.

파푸아뉴기니 인구의 96% 이상이 기독교 신자이지만, 재미있게도 저 원톡 덕에 기독교 내부 종파적으로 꽤 광범위한 곳이다. 보통 한 종파가 상당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많은 기독교권 국가들과 달리 가톨릭, 복음주의 계열의 여러 개신교단들, 재림교회, 구세군, 침례회, 오순절파 등 무수한 교파들이 진출해 선교 세력을 잡고 있는데다 극소수 소수 토속 종교 신앙까지 여러 부족들이 믿는데, 워낙에 원톡 덕에 한 부족 다수가 기독교의 한 종파를 믿으면 부족 대다수가 따라서 개종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선교사들이 좀 가볍게 여기고 자주 가는데, 이것도 꽤 어렵다고 한다. 일단 원톡으로 들어가려면 장난 아닌 노력과 시간, 그리고 돈이 필요하며 애써 몇몇을 개종시켰더니만 "다른 종파에서 돈 더 준단다! 그러니까 우리도 그 종파로 개종하자!"라고 소문이 나면 다같이 그 쪽으로 개종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즉 종파 신념보단 물질적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크다.

이런 점 때문에 엄청난 자원과 수자원이라든지 천혜의 관광지 자원같은 것을 두고도 아직까지 개발이 부진하다. 그래서 오세아니아에서 호주 다음으로 인구수 2위, 면적도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큰 나라임에도 경제력이 그리 좋지 않아서 뉴질랜드보다도 영향력이 적다. 더불어 부족들이 혼혈을 더 귀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외국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여성들에게 강간 당하는 경우가 있으니 혼자 나돌아다니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있다. AIDS 문제도 꽤 있다.

손전등을 굉장히 탐낸다고 한다. 외국 선박 회사에서 물건 나를 사람을 구하는데 돈 대신 손전등을 줘도 될 정도다. 대부분이 정글 지대인 뉴기니 섬은 당연히 전기 조명을 설치하기 어려우니 낮에도 어둡기에 손전등이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그냥 버린다고 한다. 배터리를 파는 가게도 찾기 어렵고 배터리를 살 돈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한국인 여행자는 한국에서 사서 가져간 자가 충전 랜턴을 선물로 주면서 이걸 이렇게 한참 돌리면 쓸 수 있다고 가르쳐줬다고 한다. 3년 지나 다시 가보니, 그 라이트를 잘 쓰고 있었고 반가워하며 몇 개 더 얻을 수 있냐고 했기에 가지고 간 다른 1개를 줬다고 한다.

3.1. 언어

파일:파푸아뉴기니언어지도.png
이미지 출처[9]

공용어는 영어, 톡 피신, 히리모투어이다. 그리고 파푸아뉴기니는 다민족 국가라서 자그마치 800개가 넘는 언어가 분포하는데 방언연속체 아닌 별개의 언어들만 세어서 저만큼이다. 뉴기니 섬은 지형이 험준해 권역간 인적교류가 적었던 탓에 세계에서 언어다양성이 가장 큰 곳이 되었다. 파푸아 뉴기니와 인도네시아령 서파푸아를 모두 포함한 섬 전체에는 어족만 40~70여종류, 고립어는 30~50여가지가 분포해 도합 1000종이 넘는 언어가 존재한다.

이중 압도적으로 많이 이용되는 언어가 영어이다. 나라 안에 수많은 언어가 있다보니 전국에서 두루 사용 가능한 언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문서들은 영어로 작성되어있고, 방송에서도 영어 방송이 주류이다. 국민들도 초등교육만 받아도 어느 정도의 영어 회화는 가능하기 때문에 여행할 때도 언어로 인한 문제는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10] 국민들도 일상생활에서는 부족 언어, 공적인 상황에서는 톡 피신이나 영어를 사용한다.

파푸아뉴기니에는 독일령 뉴기니시절에 생겨난 운저도이치라는 독일어 크레올어가 쓰이고 있지만, 화자수가 매우 적다보니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

4. 스포츠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여느 영연방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럭비의 인기가 가장 많다. 특히, 호주와 마찬가지로 럭비 유니온보다 럭비 리그의 인기가 더욱 많다. 그러므로 럭비 유니온 대표팀은 약체로 럭비 월드컵 진출은 못하고 있지만, 럭비 리그 월드컵(Rugby League World Cup)은 꾸준히 진출하고 있다. 2017년 럭비 리그 월드컵(Rugby League World Cup)은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공동 개최하기도 하였다.
파푸아뉴기니 럭비 리그 대표팀과 영국(Great Britain) 럭비 리그 대표팀 간의 럭비 리그 경기

파푸아뉴기니 축구 국가대표팀은 가히 산마리노 축구 국가대표팀과 동급 먹을 정도의 약체이며 피파 랭킹 꼴찌 유경험국이다. 그 오세아니아에서조차 하위권이다. 2016년에는 FIFA U-20 여자 월드컵개최하였다.

수영의 라이언 피니가 유명하다. 이 선수는 오세아니아판 아시안 게임퍼시픽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었다.

5. 지리 및 기후

파일:Newguinea_topo.png
기후는 전형적인 몬순 기후로 무덥고 습하며, 1년 내내 비가 많이 내린다. 대부분 지역에서 우기는 12월~3월이고 건기는 5월~10월이다. 4월과 11월은 환절기로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지만, 보통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기후를 보인다. 래(Lae)와 알로타우(Alotau)는 예외적으로 5월~10월이 우기이다. 해변 연안은 일년 내내 비교적 일정(섭씨 25~30도)한 기온을 보이지만 습도 및 바람의 변화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국토의 80% 이상이 열대림이어서 농경이 가능한 토지가 1% 미만이다.

자원이 많지만 해안가의 광산들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데, 지형이 워낙 험난한 탓이 크다. 파푸아 뉴기니 중앙을 가로지르는 오웬 스탠리 산맥(Owen Stanley Range)은 해발 4,000m가 넘는 커다란 산맥이며, 주변의 고원지대도 험난하여 제국주의 시절에도 섬의 고지대는 접근 자체가 힘들어서 1930년대까지는 무인지대로 여겨졌을 정도였다.

6. 역사

파일:뉴기니 1885.jpg
1885년에 시장에 모인 파푸아뉴기니 원주민들의 모습

뉴기니 섬에는 약 4만년전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인류가 정착하였고, 이후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이 그 혈통을 유지하고 있다. 기원전 7천년경 섬 중부 고원에서 농경이 시작된 것도 독자적으로 이룩한 것이다. 기원전 500년경 오스트로-멜라네시아 인들이 해안에 정착하여 도기 제작, 돼지 사육, 어업 등이 전해졌다. 1545년 유럽인들이 섬에 처음 당도해 뉴기니라 명명했지만 말루쿠 제도와 가까운 서부만이 제한된 교류를 했을 뿐, 파푸아뉴기니에 해당되는 동부는 19세기 중반까지 나머지 세계에 있어 미지의 땅이었다. 그나마 18세기 서부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전해준 고구마가 점차 동부에서도 주요 작물로 수용된 것이 몇 안되는 외부의 영향이었다. 고구마는 기존 작물 타로를 대체하였고, 높은 생산력 덕에 인구 증가를 야기하였다.

6.1. 독일 / 영국령 뉴기니

파일:뉴기니 식민지.png
19세기 말엽 뉴기니 섬 정세

파푸아뉴기니에 대한 첫 외세의 지배는 기존 교역로이던 서쪽이 아닌 동쪽과 남쪽에서 뻗어왔다. 19세기 중반부터 사모아에 영향력을 키우던 독일 제국은 1877년 뉴브리튼 (당시 뉴폼메른) 섬 동부, 미래의 라바울 근방 마투피 섬에 정착지를 세웠다. 다만 수상 비스마르크는 식민지 건설을 반대했기에 파푸아뉴기니 본섬에 대한 식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영국은 1859년 호주 동북부 퀸즈랜드 식민지를 수립하고 독일의 활동을 주시하였다. 그리고 퀸즐랜드 총독 매실레이스는 대농장 확대를 원하던 지주들의 의견에 따라 1883년 산호해를 건너 포트모르즈비를 세웠다. 이는 영국 당국의 승인없이 독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어쨋거나 영국 당국은 이듬해 뉴기니 보호령을 수립하였다. 영국의 이러한 '도발'에 고무된 비스마르크는 결국 1884년 식민 정책에 수정을 가하여 민간 차원의 뉴기니 회사에 식민화를 맡겼고, 11월 3일 카이저 빌헬름란트에 독일 깃발이 올랐다.

이로써 동북부 뉴기니는 비스마르크가 추진한 몇 안되는 식민 사업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뉴브리튼 섬 일대는 '비스마르크 제도'라 불리게 되었고, 뉴기니와 뉴브리튼 사이의 바다 역시 '비스마르크 해'라 불리게 되었다. 영국령 뉴기니의 치소인 포트모르즈비에서 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뉴브리튼과 마주보는 반도 끝자락에 독일령 뉴기니의 치소로써 핀츠하펜이 세워졌다. 다만 독일령 뉴기니의 본섬에 대한 식민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1891년 말라리아의 창궐로 독일령 뉴기니의 치소는 핀츠하펜에서 북해안의 마당으로 옮겨졌지만, 그 역시 말라리아가 창궐하자 약이 오른 독일 당국은 본섬 대신 비교적 식민화가 진척된 뉴브리튼의 헤베르트쇠헤 (비스마르크 장남 헤베르트를 기념, 현재 지명은 코코포)로 치소를 옮겼다. 그러다 1910년에 1878년에 세워진 심슨하펜 (현 라바울)으로 다시 치소를 이전하였다. 결국 1870년대의 본 정착지로 돌아온 셈이다.

6.1.1. 1차 대전

한편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가 사실상 독립하자 이듬해 영국령 뉴기니 역시 그에 이양되었다. 1차 대전의 발발 직후인 1914년 9월, 호주에서는 2천의 오스트레일리아 해양 군사 원정대를 조직하여 독일령 뉴기니 정복에 나섰다. 당시 독일령 뉴기니에는 불과 5백의 군경만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중심인 뉴포메른 (뉴브리튼) 섬에 주둔하고 있었기에 호주군은 그곳으로 향하여 9월 12일 심슨하펜 (라바울)을 무혈 점령하였다.

주도를 내어주고 내륙으로 후퇴하여 방어 거점을 세우고 있던 독일군은 비타 파카 전투에서 호주군 지휘관 찰스 엘웰을 전사시켰으나 결국 패하였고, 다시 남쪽의 토마에서 항전했으나 호주군이 3일간 봉쇄에 나서자 결국 항복하였다. 본섬의 거점들 역시 9월 24일 마당을 끝으로 호주군이 무혈 접수하였고, 내륙에서 항전하던 수십여의 독일군도 11월까지 일소되었다. 일련의 뉴기니 전역에서 호주군은 39명, 독일군은 85명이 전사하였다.

6.2. 호주령 (파푸아 준주 & 뉴기니 영토)

1906년 당시 호주령 뉴기니이던 남부는 파우아 준주가 되었다. 1914년 독일령 뉴기니를 점령한 호주는 국제연합의 승인에 따라 뉴기니 영토로써 그를 위임 통치하였다. 뉴기니 영토의 치소는 독일 시기와 마찬가지로 라바울이었는데 1937년 라바울 화산의 분화로 40여년만에 본섬의 핀츠하펜 부근의 라에로 이전되었다. 한편 1908년 파푸아 지사로 부임한 허버트 머레이는 사망하는 1940년까지 부임하며 거의 부왕 행세를 하였다.

6.2.1. 2차 대전

파일:파푸아 호주.jpg
전리품으로 얻은 욱일기를 들고 기념 촬영하는 호주군

태평양 전쟁 발발 후 1942년 초엽 뉴기니에 접근한 일본군은 우선 뉴브리튼을 점령, 라바울을 거점으로 삼고 부건빌 등을 점령하였다. 호주 당국은 북부의 뉴기니 영토를 포기하고 남부의 파푸아 준주의 방어에 전념하였다. 파푸아 준주의 포트모르즈비가 점령된다면 일본군의 호주 본토 공격에 활용될 여지가 컸다. 따라서 필리핀에서 차출된 맥아더가 포트모르즈비에 배치되었고, 일본 해군의 포트모르즈비 점령 시도는 산호해 해전으로 좌절되었다. 이는 초기 태평양 전쟁에 있어 연합군의 몇 안되는 승전이었다. 1942년 말엽 일본군은 뉴기니를 가로지르는 오웬 스탠리 산맥을 가로질러 이번에는 육로를 통해 포트모르즈비를 점령하려 했으나 코코다 트랙 전투에서 대자연에 의해 격퇴되었다.

그후 반격에 나선 연합군은 1943년 1월 부나-고나 전투에서 승리하여 파푸아 준주를 평정하였고, 이듬달 일본군은 뉴기니 영토 내의 호주군 전초기지 와우를 공격했으나 격퇴되었다. 그해 3월 일본군은 라에를 라바울, 부건빌과 같은 대규모 기지로 삼기 위해 7천의 증원 병력을 파견했으나 비스마르크 해 해전에서 연합군에게 패하여 1천 정도만이 당도하였다. 결국 그해 9월, 연합군은 3만을 동원하여 공세를 펼친 끝에 라에의 1만 일본군을 섬멸하고 뉴기니 동해안을 평정하였다. 1944년 봄, 마당을 점령하며 본섬에서의 일본군이 일소되자 연합군은 라바울과 부건빌 평정에 나섰다. 하지만 해군의 섬멸에도 이미 2년간 경작지 확보와 요새화에 매진한 일본군은 엄청난 지하 방어 시설과 막대한 물자를 비축한 채로 버텼고, 1945년 8월 종전시까지 두 곳에는 10만이 넘는 일본군이 남아있었다. 뉴기니 전역은 양측 합쳐 70만이 동원되어 연합군 2만, 일본군 20만이 전사한 대규모 전장이었다.

6.3. 독립

전후 1946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유엔 신탁통치령이 된 뉴기니는 1949년 기존의 파푸아 준주와 뉴기니 영토를 합쳐 파푸아뉴기니 영토로 편성되었다. 1973년 자치를 얻은 후 1975년 9월 16일, 파푸아뉴기니 독립국으로 독립하였다. 1977년 첫 총선거가 실시되어 팡구 당의 마이클 소마레 (혹은 소매어)가 집권했으나 1980년 불신임결의로 축출되었다. 하지만 소마레는 2년 후 총선거에서 줄리어스 찬을 꺾고 총리로 복귀, 1985년 실업자 소요가 터지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하며 독재로 나아가는 듯 보였으나 1992년 파이아스 윙티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1994년에는 줄리어스 찬이 재집권했다가 1997년 빌 스케이트, 1999년 메케레 모라우타를 거쳐 2002년 '국부' 마이클 소마레가 재집권하였다.

6.3.1. 부건빌 문제

독립 2주 전에 이미 부건빌 섬의 주민들은 북솔로몬 공화국을 선포하며 파푸아뉴기니에서 분리되고자 하였다. 이에 정부군이 파견되어 1976년 8월 북솔로몬 주가 설치되었으나 1988년 부건빌 내전이 터졌다. 10년 간의 전쟁으로 양측 합쳐 1500명 가량이 사망한 후 1998년 휴전이 체결되었고, 2002년 부건빌 자치구역이 세워졌다. 2019년 선거에서 부건빌 독립이 가결되며 10년 내로 부건빌은 파푸아뉴기니에서 독립할 예정이다.

6.3.2. 2011-12 헌정 위기

2002년, 무려 3번째로 총리에 오른 마이클 소마레는 2007년 재선에 성공하며 장기 집권하였다. 그러던 2011년 3월 그가 치료차 싱가포르에 입원하자 의회는 총리가 공석이라 선포하고 피터 오닐을 신임 총리로 선출하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그해 12월 파푸아뉴기니 대법원은 소마레의 집권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양측 지지 세력 간의 분쟁이 촉발되었으나 2012년 총선에서 피터 오닐이 승리하자 소마레가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위기는 일단락되었다. 다만 소마레는 정계에서 은퇴하며 피터 오닐을 비판하는 뒤끝을 보였다.. 대인배 실패 그리고 2019년 총선에서 제임스 마라페가 승리하여 현재까지 총리로 재직 중이다. 파푸아뉴기니 현대사를 지켜본 마이클 소매어는 2021년 2월, 향년 84세로 사망한다.

7. 교통

오세아니아의 섬나라 중에서 가장 큰 섬나라이지만 경제력이 좋지 않아 교통시설이 부족하다. 도로환경은 전체도로 중 포장도로보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며, 고속도로는 내륙 하일랜즈 지역을 연결하는 하일랜즈 하이웨이와 남부 지역을 연결하는 마지 하이웨이 두 곳 밖에 없다.. 철도노선도 없어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 중 도로는 부족하며, 철도는 완전히 없다.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은 대부분 항공교통이지만 비행장도 포장된 활주로보다 비포장 활주로가 많다.

8. 부족 갈등

파푸아뉴기니의 민족은 크게 멜라네시아계, 미크로네시아계, 폴리네시아계로 나뉘며, 그 외에 중국계, 유럽계, 호주계도 소수 분포하고 있다. 파푸아인이 96%이고, 미크로네시아인 2%, 폴리네시아인 1%, 기타 중국인과 유럽인 등이다. 언어는 영어와 피진어, 모투어 등을 사용한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865여 종 이상의 지역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언어 하나당 평균 사용자 수는 7천 정도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언어감각이 매우 발달해있다고 한다. 2 ~ 3개 부족 언어를 구사하는 건 예사이며,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에 따르면, 어족이 완전히 다른 언어까지 포함, 17개 부족의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능력자가 목격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는 영어가 공용어이며, 영어, 톡 피신[11], 히리모투어는 세 국민어다. 영어는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지는 않지만 포트모르즈비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톡 피신어는 파푸아뉴기니의 중북부 및 섬, 그리고 포트 모스비에서 널리 사용되며 전국적으로 가장 널리 통하는 공용어이다. 톡 피신은 의회에서 사용되는 언어이며 많은 신문들이 톡 피신으로 출간되고 있다. 히리모투어는 주로 남부에서 사용되나 21세기 들어 톡 피신과 영어에 밀려 사용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다보니 오래전부터 부족갈등이 깊다. 그리고 2019년 7월 10일에 부족간 분쟁으로 보이는 괴한의 공격으로 임산부와 어린이 등 20여명이 무더기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내전이 오랫동안 벌어진 바 있다. 바로 부건빌(Bougainville) 제도가 그 곳.

이곳은 18세기에 프랑스의 항해가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에 의해서 발견되어 부건빌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으며 이곳에는 부건빌리아라는 꽃도 많이 있다.

여기 부족들은 그다지 힘도 없고 무장도 빈약해 중앙 정부에서 자원 및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며 착취해오자 반발한 부건빌 사람들이 내전을 일으키면서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다. 정부군의 가혹한 탄압 및 인권 침해가 지금도 골칫거리이다. 게다가 2006년에는 진도 7에 가까운 지진까지 벌어져 많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중앙정부의 훼방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지지도, 제대로 된 구호도 이뤄지지 않았다.

중앙정부도 여러 부족들이 이뤄진 곳이라서 말이 많다. 혼혈이 많아 2013년 기준 현 총리 피터 오닐도 아일랜드계 오스트레일리아인과 뉴기니인의 혼혈이다. 2016년 피파 부회장인 데이빗 청은 중국계 혼혈 파푸아뉴기니 국적이다.

1960년대만 해도 부족들이 구역에서 서로 로 싸우는 수준이었던 것이 지금은 각종 중화기로 무장해서 AK-47, M16 소총, RPG-7, MG42 같은 무장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밀림 속에 민간용 비행장을 건설하는데 도움을 준 원시 부족의 추장과 그 아들을 기념으로 비행기에 태워주었는데, 추장 부자는 타기 전에 커다란 돌을 가지고 와서 비행기에 실었다. 왜 돌을 싣냐고 묻는 파일럿의 물음에 추장 曰, "기왕 날아가는 김에 옆 마을 놈들 머리 위에 떨어트려 주려고." 책 《원시전쟁》에 수록된 일화인데, 저자는 이를 통해 원시부족들의 본능적으로 창의적인 전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내전까지 일어나는데, 보통 부족들 갈등으로 벌어진 일로 이럴 경우 중앙정부가 끼어들어서 합의해준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 부족끼리 화합하자는 의미로,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정부가 처음 조직해 지금까지 내려오는 싱싱 축제라는 대규모 축제를 매년 열 정도다.

문제는 외국 기업의 자원 개발이나 각종 사업이 진행되면, 그 지역에 사는 부족민들이 중앙정부와 별도로 보상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거부하면 정말로 RPG-7 탄이 날아오거나 여성들은 강간까지 당할 정도다. 미국 대사관조차도 토지 임대비를 부족에게 내라는 요구를 거부했더니 대사관 여직원이 본보기로 강간당해 임신하는 일[12]도 벌어졌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종교 광신자도 아니며, 반미도 아닌 대대로 살아온 땅의 임자임을 내세우며 주장하고 중앙정부도 이들을 응징하진 못하기에 미국은 순순히 돈 내주고 합의했다. 그리고 그 여직원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더더욱 큰 문제는 그렇게 보상해도 다른 이들이 또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돈 주고 합의했더니만 다른 부족 사람들이 우리도 그 부족 사람이 친척이니 우리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찾아오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 이러니 해외 기업들이 여기 진출했다가 끝없는 돈요구에 질려서 철수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것도 한 번 돈 주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일정 시간 계약이라고 한다.

치안 문제도 이들이 각자 알아서 담당하는데,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가해자가 외국인이라면 합의금 선에서 끝나지만 자국인이라면 달아나는 게 먼저란다. 행여나 머뭇거리다 잡히기라도 하면 큰일나는데, 피해자가 죽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처형시킨다! 이는 같은 부족을 죽인 정당한 응징으로 여기기에 별 문제가 없다. 그래서 달아나서 일단 다른 부족(가해자네 부족) 지역으로 달아난 다음, 중앙정부 협의 아래, 보상금을 합의하는 식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경찰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고 한다.

1990년대 만화가 최정현이 여길 여행하다가 도시 한복판에 불타버린 버스가 보여서 질문하자, 아이를 치어죽인 버스안에 운전자 채로 가두고 그 자리에서 태워 죽였다는 대답이 돌아와서 기겁했다고 한다.

2018년 10월 12일(현지시간)에 파푸아뉴기니가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고급 스포츠카 40대를 수입하자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13]

부건빌 섬에서 2019년 11월 23일에 독립투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투표 결과 독립 찬성[14]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어떤 방식이든 협상을 거쳐서 독립 승인을 해야 한다.

9. 정치

파일:파푸아뉴기니 국회 로고.png
파푸아뉴기니 국회의 원내 구성
(괄호 안은 파푸아뉴기니 국회 의석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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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독립 이후부터 쭉 독재 정부가 들어선 적은 없었고 민주주의 지수 또한 상당히 높게 나오지만 동시에 권위주의적 성격도 있다. 1975년 호주로부터 독립 후 마이클 토머스 소마레는 무려 36년간 네번 총리직을 수행했으나 어쨌든 민주적으로 선출되긴 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피터 오닐(Peter Charles Paire O'Neill)과 정치적 이유로 정당성을 두고 갈등도 있었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피터 오닐이 총리가 되었고, 2019년 5월 29일에 피터 오닐은 사임하였다. 현재 제임스 마라페가 파푸아뉴기니 제 13대 총리로 재임하는 중이다. 한편 피터 오닐은 2020년 5월 23일에 부패 혐의로 체포되어 현재 수감 중이라고 한다. 딱히 독재국가적인 모습은 없지만 부족 갈등과 지역 감정으로 인한 내분 때문에 치안이 너무 심각하다보니 정치적 내부에서는 권위주의적인 모습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다만 중앙집권이 약하기에 독재가 크게 심하지 않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이것만 제외하면 중앙정부의 통제가 제대로 통하질 못해서 한동안 국가 내부에서는 부족 간의 분쟁이 심했던 단점이 있었다. 과거에 비하면 나아졌지만 여전히 분쟁 중이라 치안이 안 좋다.

10. 관광

그다지 개발이 되지 않은 편이라 자연 상태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다양한 동식물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나무캥거루가 유명하며 바늘두더지, 주머니쥐, 화식조 같은 동물들이 있다. 식물은 3000여 종의 난초류와 여러 종류의 열대 해안 관목림 등 아주 다양하다. 열대 우림에서 자라는 1,200여 종의 나무와 뉴기니섬 해안에서 자라는 620여 종의 판다누스도 인상적이다.

스쿠버 다이빙의 낙원으로 유명하다. 카리브 해에 비해 10배나 많은 어류와 산호가 있고 이스터 필드는 산호와 큰 어류로 유명하다. 뉴 브리튼 섬과 부건 빌 섬도 스쿠버 다이빙에 좋은 조건을 가졌다.

대한민국에서 직항으로 운항하는 항공편은 없고, 거의 대부분 호주 브리즈번, 케언즈, 시드니 등에서 환승하는 식으로 이동을 한다.

11. 치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치안이 안좋은 나라. 외교부에서도 여행자제인 나라이다.[15]위키피디아에서는 파푸아 뉴기니의 성폭력이라는 항목을 따로 만들면서 세계 최악의 성폭력 국가 중 하나로 규정할 정도. 2013년 조사에 따르면 파푸아 뉴기니 남성의 7.7%가 같은 남성을 성폭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치안이 아직도 안 좋은 나라이긴 하지만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는 듯[16]https://blog.naver.com/gifu-kara-africa/222533889130

그외에도 조류 연구를 위해 파푸아 뉴기니로 온 미국인 부부와 가이드가 현지갱에게 범죄를 당하는 등, 찾아보면 거의 막장 수준의 현지 치안뉴스가 자주 보인다.

12.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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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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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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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자연재해

일본, 인도네시아 등에 비하면 잘 드러나진 않지만 여기도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있어 재해가 잦다. 다만 잘 드러나지 않을 뿐. 2017년 파푸아뉴기니 지진2018년 파푸아뉴기니 지진도 일어났다. 그리고 2020년에 눈에 띄게 지진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2022년 01월 16일 9시 52분 경 파푸아뉴기니 부건빌 아라와 서남서쪽 86km 해역 규모 6.1 지진이 일어났다.(깊이 408km)

16. 대중매체

일본의 만화가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만화 중 머드맨이라는 작품이 파푸아뉴기니를 소재로 하고 있다.

총몇명 시리즈의 등장인물인 루시퍼는 자신이 파푸아뉴기니에서 살다왔다고 지어냈다.

90년대에 크게 히트쳤던 영국의 일렉트로니카 듀오 Future Sound of London의 대표곡 제목은 <Papua New Guinea>이다. 브레이크비트와 앰비언트를 절묘하게 조화한 명곡이며 리믹스가 꽤 많이 쏟아졌을 정도.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조류 관찰을 주로 하던 곳이며, 여기서 총·균·쇠의 아이디어를 얻어 문명 3부작 시리즈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크립티드로펜이 목격되는 곳이다.

데드 아일랜드의 주무대인 바노이 섬이 바로 파푸아뉴기니다. 모르즈비 시도 등장하는데 수도인 포트모르즈비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초반 시작 지역은 고급 리조트지만 도시와 정글로 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어느 쪽이건 좀비가 득실대지만 주변 광경을 보면 도시와 정글은 좀비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막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작중 획득할 수 있는 쪽지에서는 실제 파푸아뉴기니의 실태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게 많은데, 이런 걸 보면 실제 고증에 잘 맞춘 셈이다. 이런 섬에 고급 리조트가 있다는 게 신기할 노릇인데 라이더 화이트도 이를 깐다.

[1] 국기에 그려진 새는 국조인 극락조[2] 서뉴기니를 통해 접경[결함있는민주주의] 6.10점[4] 1982년 2월 북한 사절단이 파푸아뉴기니에 방문했을 때 지나친 정치 선전활동을 펼쳐 페르소나 논 그라타가 발동되어 북한 외교관들이 추방되었다. 이후로도 북한 대사에 대한 아그레망 부여를 거부하다가 2003년 4월 대한민국 정부에 견해를 묻고 난 이후 아그레망을 부여했다.[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6] 일본군 기지가 있었던 건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상세한 건 권주혁이 쓴 베시오 비행장을 참고할 것.[7] 일단 파푸아뉴기니가 부족 사회이기도 하다.[8] 영어 One Talk에서 온 말이다. 수많은 부족들이 저마다의 언어를 사용하는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만이 동지라는 뜻. 거친 밀림에서 우연히 낯선 사람을 만났다고 가정했을때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부터는 서로 언제든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지금도 파푸아뉴기니의 부족사회는 이러한 언어공동체를 바탕으로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9] 위 지도는 파푸아뉴기니뿐만 아니라 파푸아 섬 전체와 티모르 섬 그리고 솔로몬 제도까지 보여주고 있다.[10] 물론 도시의 경우이다. 내륙 오지 지방으로 가면 잘 통하지 않는다.[11] 톡 피신어는 영어 기반 크레올로 영어 어휘 외에도 독일령 뉴기니 당시의 독일어 차용어, 폴리네시아계 단어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물론 문법적인 면에서 파푸아 제어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크리올이며 대략 20세기 중반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12] 최정현이 그린 만화에선 이 사건 피해자가 미국 대사의 아내라고 적고 있는데, 그것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미국 정부 차원에서 항의가 들어왔을 테니.[13] 다만 그 스포츠카라는게 페라리같은 슈퍼카가 아니라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이다. 스포츠카 브랜드에서 생산한 스포츠 세단이긴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그 스포츠카랑은 다르다. 정황상 APEC 개최 관련해서 날고 기는 국가들이 넘쳐나므로 나름 급을 맞춘다고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14] 98%[15] 이게 어느정도냐면 살인율 1위인 온두라스가 여행자제일 정도다.[16]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진 한 여행자의 글에 따르면 현지인이 말하길 예전보다 치안이 많이 개선되어 낮에는 자유롭게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으나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건 자제하라고... 물론 현지인 기준이므로 외국인인 입장에서는 걸러들을 필요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