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0:07:58

통혼

1. 개요2. 양상
2.1. 과거 유럽 왕실에서
3. 영향4. 여담5. 관련 문서

1. 개요

통혼()의 사전적인 정의는 1. 혼인할 뜻을 전함. 2. 두 집안 사이에 서로 혼인 관계를 맺음이다.

일반적으로 성격이 같은 집단 내에서 통혼한다. 다만 성격이 같은 집단 내의 통혼은 너무나 당연하므로 A와 B가 통혼했다는 것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경우는 둘이 서로 다른 집단일 경우가 많다. 특히 다른 민족 구성원끼리 결혼하는 경우.

2. 양상

종교나 문화 등의 이유로 한 국가 내에서도 이질적인 집단끼리 전혀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도 흔하다. 선민의식이 있는 집단이나 사회적으로 심하게 차별받는 집단은 다른 집단과 통혼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도 전통사회에서는 농민보다 어민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인접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농촌과 어촌은 통혼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흔했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지금도 중국계와 말레이계는 거의 서로끼리만 결혼한다. 사실 두 민족이 같은 나라에 사는데도 말레이계는 종교적 이유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고 반대로 중국계는 돼지고기가 주식에 가까우므로 문화적으로 상극이다.[1] 사실 미국에서도 20세기 중반까지 인종 간의 통혼이 사회적으로는 금기시되었다.[2] 혈통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는 조선족이나 유대인 같은 소수민족 역시 타 민족과의 통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백인의 나라, 인종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라는 인식이 있는 러시아에서도 의외로 통혼을 많이 한다. 블라디미르 레닌이나 세르게이 쇼이구도 러시아계와 동양인 혼혈이며 고려인들도 그 쪽으로 이주한 지 불과 몇 대밖에 되지 않았지만 러시아계와 통혼한 집안이 많다. 다만 이쪽도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나 우랄족 거주지역에 가까운 곳이나 그렇지 도시 쪽은 이민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순혈 백인들이다.

다만 거주지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라도 통혼을 하려는 지역이 있다. 이미 근친혼으로 인한 심각한 장애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아내나 딸을 나그네에게 빌려주는 풍습까지 존재하는 곳도 있다.

2.1. 과거 유럽 왕실에서

현대 유럽 입헌군주국왕족들은 평민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지만 불과 1세기 전까지만 해도 정략결혼이 기본이었고 연애결혼은 극소수였다. 귀천상혼 개념 때문에 결혼은 통치 가문, 즉 왕실 간에만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히 왕녀들은 훗날 여왕이 될 추정상속인이 아닌 한[3] 거의 대부분[4] 외국의 왕비나 왕태자비나 왕자비로 시집갔다. 때문에 유럽 왕족들의 모계혈통을 추적해 보면 가관(...)인 경우가 많다. 는 러시아 황녀, 엄마는 헤센 대공녀, 외할머니는 영국 왕녀, 외외증조할머니는 영국 여왕

이 때문에 모계 계승권을 인정하는 나라에서는 국왕이 아들도 딸도 남동생도 없이 죽으면 온 유럽 나라들에 진출시집간 국왕의 누이들, 즉 왕녀들이 시집간 나라에서는 너도나도 그 왕실 왕녀의 피가 흐르는 국왕 자신이나 그 후손들을 그 나라의 차기 국왕으로 세우려고 들어 전쟁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전쟁없이 동군연합으로 가는 경우도 많긴 했다.

3. 영향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통혼정치에서도 알 수 있듯 어떤 이질적인 문화/혈통집단을 한 집단으로 엮는 데는 상당히 효율적이다. 브라질인종 차별이 적은 이유도 인종 간 통혼이 당연시되는 것이 큰 역할을 하며 대만외성인/본성인 갈등도 외/본성인 통혼으로 인해 많이 잦아들었다. 한국의 많은 소수민족들[5]도 현지인들과의 통혼으로 인해 서서히 한민족으로 편입되었다. 일본에서 아이누가 극감한 이유도 통혼의 영향이 있다.[6]

4. 여담

한국민속학이나 방언학 등의 분과에서는 소규모 집단 구획을 할 때 부차적인 구획 요인 혹은 교차 검증적 요인으로 통혼권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행정 구역이 다른 두 지역이 언어적으로 동일한 특징을 보이면 통혼권이나 재래시장 상권 등과 함께 여러 요인을[7] 확인하여 같은 방언권으로 묶는다.

5. 관련 문서



[1] 하지만 프라나칸 문화 및 양국의 식문화에서 볼 수 있듯이 반대로 말하면 종교를 제외한 면에선 양 민족이 거의 공통된 생활양식을 가진다고 볼 수도 있다. 말레이계 국민과 중국계 국민이 락사 혹은 마라탕을 사이에 놓고 겸상하는 모습은 꽤 흔하다. 법적인 개종 의무에서 자유로운 싱가포르에선 말레이계 신랑/신부의 약 6%가 중국계 배우자와 결혼하는데 이는 한국에서 한국인 남성-외국인 여성의 결혼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힌 수준이다.[2] 1960년 이전에는 법적으로도 불법이였다. 물론 법적으로만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는 경우도 대부분이였다.[3] 이 경우 외국의 계승권 낮은 왕자를 자신의 나라로 데려와 남편으로 맞이했다.[4] 물론 왕후의 몸을 빌어 태어난 적통 왕녀 한정.[5] 예를 들면 함경도 일대의 여진족이라든지...[6] 정확히는 통혼이 전부가 아니라 아이누를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은 일본 정부에 의해 아이누에게 본토 일본인과 동일한 교육, 정책이 강요됨에 따른 문화의 파괴가 주요한 원인이다. 아이누는 본래 외부인과의 통혼을 선호하는 문화가 있어 일본의 지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일본인이나 러시아인과의 통혼이 아주 흔했다.[7] 추수하고 남은 볏단을 쌓아두는 모양(어이없을 정도로 소소한 특징인데 언어적 경계와 놀랍도록 들어맞는다!)이라던가, 군 지역일 경우 상급학교 진학 시 주로 선택하는 인근 도시가 어디인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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