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4 12:10:09

차별

差別
discrimination

1. 개요2. 취향과 차별 문제3. 발생 원인: 사회심리학적 설명들
3.1. 현실적 집단 갈등: 희소한 자원을 놓고 벌이는 집단 간 쟁탈전3.2. 사회적 정체성: 우월한 우리 편, 열등한 너희 편3.3. 공포 관리: 문화적 세계관 사이의 충돌3.4. 사회적 지배 경향: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4. 차별에 의한 눈물과 좌절5. 차별에 관한 어록6. 같이 보기


파일:IE001939077_STD.jpg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규정한 19가지 차별사유의 이모티콘.[1] 물론 이는 예시규정이기 때문에 이 19가지 사유 이외의 차별이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란다: "독일인을 짐승에 비유한다면, 매에 가깝지요. 노련하고 강인한 포식자! 반면 유대인을 짐승에 비유한다면 쥐새끼에 가깝소. 총통 각하와 괴벨스 장관도 항상 그렇게 강조하지요. 하지만 난 그 비유가 모욕이라곤 생각 않소. 쥐가 사는 세상을 한번 생각해봐요. 온 사방이 적이오. 만일 지금 쥐가 문 앞을 지나간다면 적대적으로 내쫒겠습니까?"


라파디트: "아마 그럴 겁니다."


란다: "쥐가 무슨 미움 받을 짓을 했나요?"


라파디트: "질병을 옮기고 사람을 물지요."


란다: "한때 흑사병을 옮기긴 했지만 다 지나간 옛날 얘기요. 쥐가 옮기는 병은 청설모도 옮길 수 있소. 안 그렇습니까?"


라파디트: "네."


란다: "하지만 청설모를 쥐만큼 싫어하진 않지요?"


라파디트: "네."


란다: "둘 다 같은 설치류요. 꼬리 외엔 생긴 것도 비슷하지요."


라파디트: "흥미로운 생각이군요."


란다: "하. 아무리 흥미롭더라도 선입견이 없어지진 않지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쥐가 이 집에 들어온다면, 선생께선 이 맛있는 우유 한 잔을 대접하며 환영하겠소?"


라파디트: "아마 그러지 않을 겁니다."


란다: "그렇겠지요. 싫거든. 이유도 없고 왠지 그냥 싫은 거지."
-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유명한 가택수색 장면 중.

1. 개요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행위. 차별에 있어 그 집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든 부정적인 영향을 주든 둘 다 차별에 해당되지만, 주로 우리가 집중하는 것은 특정 집단에 불이익을 주는 차별이다.

단어의 본뜻은 '차등을 두는 구별'을 의미하는 용어. 하지만 일반적으로 차별 받는 사람들의 실제행동과는 거의 무관하거나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걸쳐 차별이 이루어지는데, 편견을 기초로 한 민족, 집단 또는 그것에 속하는 개인에 대한 차별적 개념이라 행위라고 한다.

이러한 차별은 사회생활 속에서 인종, 민족, 생활양식, 국적, 성별, 언어, 종교, 사상, 재능 등을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차별은 시대적 상황으로도 달라지는데, 봉건제도 하에서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서열로 구성된 신분제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서열간의 상호관계가 매우 차별적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러한 차별제도는 존재하지만, 차별당하는 집단이 설사 동일하다고 해도 근대 이전과 현대는 사회적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차별이 법률이나 규정에 의해 합리화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미국에서의 흑인차별 등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 등을 통해 사그라들게 되었지만 여전히 각종 차별은 사회에 남아 각종 문제를 일으킨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차별을 '증오 범죄' 또는 '증오발언'이라 하여 법적으로 처벌하고 있으나, 대한민국에서는 특정 지역이나 계층을 공연히 비방하더라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 명예훼손이 적용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특정될 것을' 요하므로 특정 지역이나 계층을 비방하는 경우에는 그 범위가 너무 크고 막연하여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를 적용할 수가 없다. 단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 대하여 특정 지역이나 계층을 근거로 비방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 즉 '덕후들은 사회의 쓰레기'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지만, '아무개는 덕후라서 쓰레기'는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 직접적인 차별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차별도 존재한다. 간접적인 차별이란 피차별계층에 대하여 형식상으로 제한·배제·분리·거부 등 다르게 대하지 않지만, 차별당하지 않는 사람과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정당한 사유 없이 피차별계층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구에서는 그 어디서나 크고 작게 있다. 인류는 영역 동물이라서 그렇다. 똑같이 영역동물인 고양이, 원숭이도 서로 알력 다툼이 존재하고 자기 영역에 들어온 낮선 개체를 차별한다. 집고양이들 중 집에 새 고양이나 다른 동물이 들어오면 하악질을 하거나 고양이들끼리 서로 죽어라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지성과 이성을 가진 만큼, 이 차별을 최대한 근절시키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많은 나라에서 차별이 알게모르게 자행되고 있다. 미국은 인종으로 아직도 은근히 사람을 차별하는 습관이 백인을 중심으로 남아있고, 황인은 외부인으로 소속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기 일쑤다. 히스패닉의 경우 흑인과 유사한 위치이지만 인구수가 늘어나고 있어 복잡한 모습을 보인다. 한국, 일본, 대만의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나이와 학벌 등으로 채용이나 결혼시장에서 차별이 매우 강해 문제가 된다. 또한 인종 차별도 극심하다는 평. 구 영국령이나 영연방은 이러한 차별은 없는 편이지만 백인국가인 호주뉴질랜드는 인종 차별은 미국 못지 않다.

반댓말로는 역차별이나 무차별이란 단어가 있는데, 어째 이 단어들이 좋은 어감으로 쓰이는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 전자는 기존의 차별과 정확히 반대의 방향으로 차별이 이뤄지는 경우를 가리키는데, 후자의 경우 말 그대로 차별이 없지만, 대개 뒤에 붙는 단어들이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를 강화시킨다. (예: 무차별 학살, 무차별 대입 공격)

차별화와는 구분해야 한다. '차별'은 기준에 공정성이 없을 때 발생하지만 '차별화'는 완전히 다른 것, 달리 말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냄을 뜻한다. '출신 지역에 따라 선발에 차별이 있었다'라고는 해도 '출신 지역에 따라 선발에 차별화가 있었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차별은 불공정 · 불평등을 내포하지만 차별화는 새로움을 내포한다. 이 때문에 각종 업계 쪽에서는 차별화를 고급화의 다른 말로 쓰기도 한다.

2. 취향과 차별 문제

취향(preference)차별(discrimination)의 차이는 정확히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내리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단순히 취향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지만 차별은 위의 링크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양되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예를 보자.
  • 나는 백인 남성이 아니면 영 내 취향이 아냐.
  • 나는 흑인 여성과는 사귀지 않아.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지.

과연 이것은 취향인가, 차별인가? 개인의 기호에도 차별이 적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기란 실로 쉽지 않다. 위 문장을 아래와 같이 단어만 바꿔 보면 매우 일상적인 표현이 된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위의 인종 취향 발언이 인종 차별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다른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저 취향일 뿐일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네이버 등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와 관련한 글이 거의 전무하다. 반면 해외 사이트에서는 "difference between preference and discrimination"과 같은 제목으로 무수히 많은 글이 쏟아져 나온다. 그 동안 한국 네티즌들이 차별취향이라는 단어를 너무 막연하게 써 온 것은 아닐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사회심리학에서 차별은 행동적인 범주에 들어간다. 즉, 구체적으로 자신의 기호에 맞게 타인을 가려 혜택을 차등화하면 그것이 곧 사람에 대한 차별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취향은 자신의 내적 기호의 측면이므로 차별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이런 심리가 특정 대상에 대한 과잉일반화 때문이라면 고정관념에 입각한 취향이 되고, 특정 대상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감정 때문이라면 편견에 입각한 취향이 되므로 주의할 것.

3. 발생 원인: 사회심리학적 설명들

사회심리학 문서에서도 나오지만, 이 분야 자체가 워낙에 이론적 조망이 수두룩 빽빽하게 널려있는 바닥이라서 이론을 바탕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연히 차별에 대해서도 설명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이론들이 몇몇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그 중 많이 거론되는 몇 가지를 우선적으로 언급해 보기로 한다. 이들 중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두번째로 소개되는 "사회적 정체성 이론".

3.1. 현실적 집단 갈등: 희소한 자원을 놓고 벌이는 집단 간 쟁탈전

일찍이 무자퍼 셰리프(M.Sherif)가 이제는 고전이 된 연구 "Robber's Cave Study" 를 통해 밝혀냈듯이, 많은 차별들은 어떻게 보면 여러 이해관계 집단들 사이의 이권다툼으로 인해 초래되기도 한다. 셰리프는 이것이 집단 사이의 갈등에 대한 본질이라고 생각했고, 이 건조하기 짝이 없는(…) 설명은 곧 현실적 집단 갈등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정립되었다.(1961년)

이 관점에 따르면 집단 사이의 갈등은, 그리고 제도화된 갈등으로서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여러 집단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적 자원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문제는 이 자원 자체가 우리끼리 나누어 먹기에도 빠듯할 만큼 희소한지라, 남들(패배자)에게 줄 여유는 없다는 것. 결국 승자 집단이 자원을 독식하고 패자 집단은 자원에 접근하는 데 실패하면서 차별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이론의 이름에 "현실적" 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게 괜한 게 아닌지라, 여기에는 갈등 이전에 두 집단이 사적으로 얼마나 친밀한 관계였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서로 하하호호 하면서 좋은 무드를 만들던 사이에서도 일단 처지만 바뀐다면 곧장 서로 으르렁거리는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

그러나 셰리프는 다행히 이 차별을 완화시킬 수 있는 길을 암시했다. 아무리 서로 갈등을 빚고 차별대우를 밥 먹듯이 하던 앙숙 같은 관계일지라도, 두 집단이 공통적으로 추구할 만한 목표를 정해 주고 협력하게 하면 차별이 사라진다는 것. 두 집단이 힘을 합쳐야만 모두가 원하는 이상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두 집단은 곧 서로가 갖고 있는 자원을 상대방에게 공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면 희소한 자원의 양을 늘리기 위해 애를 쓰지 않아도 차별을 줄일 수 있다. 셰리프가 강조했던 것은 경쟁과 협력의 맥락이 차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설명이었기 때문.

3.2. 사회적 정체성: 우월한 우리 편, 열등한 너희 편

현대 사회심리학의 거의 모든 거시적 논의는 이 단락의 서술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차별이라는 행동이 과연 무엇으로 인해 촉발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던 헨리 타이펠(H.Tajfel)은, 내친김에 차별을 불러일으킬 만한 모든 예상 변인들을 철저하게 소독하다시피 통제해 가면서 차별의 최소한의 조건을 찾고자 했다. 이를 위해 타이펠은 일명 최소 집단(minimal group)이라는 연구 패러다임을 만들었는데, 참가자들을 옷 색깔이나 동전 던지기 같은 시답잖은 기준으로 청팀 백팀으로 나누어서 조 배정을 한 다음, 임의로 두 명을 뽑아서 일대일로 대면시키고 1만원의 금전 중 어느 정도를 상대방에게 나누어 줄 것인가를 묻는 것이 골자이다. 여기서 핵심은, 만난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집단일 수도 있지만 다른 집단일 수도 있다는 것. 연구 결과,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집단의 상대방에게는 굉장히 후하게 베푸는 경향을 보였지만, 다른 집단의 상대방에게는 그런 관대함을 보이지 않았다. 내집단 편애(ingroup favoritism)가 발생한 것이다.

금전의 배분에 있어서 이런 차별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서 가능한 모든 외적 설명은 배제될 수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부정적인 태도도 없고 선입견이나 범주 관련 고정관념도 없었기에, 이 상황은 편견고정관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나타난 셈이었다. 남은 것은 이들이 자신의 자기(self)에 관련된 이슈 때문에 일부러 자기 집단에게 좀 더 이타적인 행동을 했다는 설명뿐.

현대의 연구자들은 일명 C-I-C 프레임워크라고 부르는 논리적 설명의 단계를 취한다. 이 사람들은 "내가 어떤 범주에 소속되어 있는가" 를 우선적으로 생각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그렇다면 사회 속의 나는 누구인가" 를 정립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속한 집단은 저들에 비하면 어떠한가" 의 생각으로 이어짐으로써, 사람들은 자기고양적인 삼단논법을 통해 자존감을 끌어올리게 된다. 즉,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하여 "나는 이 집단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 집단은 우월하다. 따라서 나도 우월하다"의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 이제 사람들은 자기 집단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심리적인 경쟁에 불이 붙게 되면서 제한된 자원과 무관하게 이미 경쟁이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동전을 던져서 임의로 배치한 집단일지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 어딘가는 남들보다 잘난 구석이 있기를 바란다.[2] 그렇기에 그들은 자기 집단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 대해서라면 자원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반대로 외집단에 대해서는 (설령 모든 경우에 꼭 공격성이나 폄하가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더 대충 생각하려 하고, 기회만 된다면 얼마든지 편견 및 고정관념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 이는 추가적으로 외집단에 대한 자원의 제공을 더욱 마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사회적 정체성 이론이 이야기하는 집단 속의 개인의 심리다. (1979년)

이렇게 말하면 이게 차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겠지만, 이 이론의 성과는 차별과 같은 거시적인 현상조차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뭇 사람들의 개인적이기 짝이 없는 생각, 즉 "나는 누구지? 나는 잘난 놈이지! 이렇게나 잘난 집단에 속해 있거든!"(…)을 만들어내고 확인받고 싶어하는 심리에 기초해 있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현대의 연구자들이 이들의 영향력 하에 있다는 얘기는, 결국 이런 거시적인 사회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통찰하기 위해서 이제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의미다.

이 맥락에서 수많은 차별 완화 방법들이 제안되었다. 개인의 정체성이 그 소속 집단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을 경우 그 사람을 탈범주화시키는 방법, 경쟁 관계의 외집단과 자신의 내집단을 아우르는 상위 집단을 강조함으로써 상대적 우월성에 대한 집착(?)을 줄여주는 방법, 자신의 내집단과 자신의 상위 집단 양쪽에 대한 다중적인 정체성을 복합적으로 가질 수 있게 하는 방법 등등이 있으며, 이 각각의 제안들에는 저마다 관련 논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3. 공포 관리: 문화적 세계관 사이의 충돌

젊은 사회심리학도 제프 그린버그(J.Greenberg)와 그 친구들은 인류학 관련 문헌을 뒤적거리다가 아주 우연히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인간의 사회적 삶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통찰을 얻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 죽음 내지 인간의 필멸성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실존주의적인 공포 내지는 거북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전제였다. 결국 사람들은 그 꺼림칙한 기분을 몰아내기 위해서 다양한 수단들을 동원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문화적 세계관(cultural worldview)을 통해 상징적으로 불멸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상의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의 몇몇 주요 내용은 《Public Self and Private Self》 라는 책에 실렸다. (1986년)

여기서 문화적 세계관이라 함은 결국 그 사람이 죽음으로 완전한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징적 방법으로 불멸을 보장받도록 믿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 라고 믿을 수 있게 하는, 개인의 가장 근본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떠오르듯이 종교가 그 중 하나의 수단이고, 사후세계를 믿는다면 현세의 죽음에 대해서도 좀 더 초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속적인 방법 역시 포함하기에, 현충원에서 고인을 기린다거나, 제사를 지낸다거나,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다거나 하는 것들 역시 불멸을 얻고자 하는 개인에게 선망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것이 차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공포 관리 이론가들에 따르면 다양한 집단들은 서로 다른 문화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같은 집단 내에서라면 같은 세계관이 존재하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갖는 집단끼리 서로 만나면 두 집단 모두 어마어마한 실존적 위협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그래서 어쩌면 내가 죽음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그 자체만으로도 개인을 가볍게 압도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단 이렇게 접촉한 두 집단은 서로에 대해서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물고뜯고 싸우며 상대방에게 차별적 행동을 보이게 된다.

국내에 이와 관련하여 아주 전형적인 차별의 사례가 바로 근본주의 개신교계가 동성애자들에게 보이는 차별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동성애자들을 용인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들이 믿고 있던 근본주의적 신앙의 안전성이 위협받게 됨을 의미한다. 자신들이 배우기로는 남녀가 짝을 이루어 한 몸이 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의 섭리이기 때문. 이들의 신앙이 위협받는다는 것은 곧 다시 말하면 그것과 결부된 구원과 내세의 약속까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끔찍한 결론까지도 이어질 수 있으므로, 실제로 일부 극단적인 교회들에서는 커밍아웃을 한 교인은 아예 내쫓아 버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사실 공포 관리 이론은 종교심리학이나 정치심리학 등에서만 한정적으로 쓰이며, 그나마도 그렇게 확고한 이론까지는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상기된 호모포비아의 심리도 사실 어지간한 집단 관련 사회심리학 이론들이 죄다 적용 가능한 주제인지라... 게다가 공포 관리 이론으로 집단 간의 차별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사실 문헌적으로도 그렇게 누적되어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해야 할 것은, 이 이론이 굉장히 참신하고 특이한 발상으로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연구자들의 이목을 끌었다는 것이다. 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알고보니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공포 때문이더라는 설명은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그야말로 뜬금포(…)가 따로 없기 때문.

3.4. 사회적 지배 경향: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흑인 심리학자인 짐 시다니우스(J.Sidanius)와 여성 심리학자인 펠리시아 프라토(F.Pratto)는 사회심리학 역사상 사회학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이론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회적 지배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제도적 차별과 개인의 심리가 상호작용하는 메커니즘을 구명하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갈등론적 세계관의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의 논리를 적극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수직적 위계가 되게 하는 다양한 층위의 원인들을 고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9년)

이들이 전제하는 것은 일견 현실적 집단 갈등 이론과도 유사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자원들은 결국 강한 집단이 약한 집단보다 더 많이 가져감으로써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불평등은 시간이 지나도 잘 해소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어떤 개인들이, 어떤 제도나 사회적 조직들이, 그리고 어떤 사회적 체제가 그것을 긍정하고 옹호하며 보호하고 있기 때문. 결국 이 이론은 "차별? 불평등? 그거 당연한 거 아냐?" 라고 말하는 심리를 개인에서부터 사회적 구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적 지배 경향(social dominance orientation)이 강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을 긍정하고 적극 찬동하거나, 잘해봐야 필요악 정도로 치부하고 넘긴다. 반대로 이 경향이 낮은 사람들은 가능한 한 모두가 평등하게 자원을 나누어가질 수 있도록 애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조직이나 집단, 제도의 수준에서도 발견되며, 개인의 이런 성향이 제도 수준에서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제도 수준에서의 차별과 불평등이 개인의 심리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쪽 이론가들이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고용시장에서의 여성 차별이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등에 점차 둔감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는 특히 보수주의자들(보다 엄밀히는 아마도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심리, 어퍼머티브 액션의 필요성, 유리천장 문제, 임금격차가 끼치는 심리적 영향, 남초/여초 성비 및 위계질서/평등주의적 기업 분위기를 논의하는 데 적절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유례없이 거시적인 수준의 논의를 전개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성격심리학적인 측면도 강한데, 그 이유는 사회적 지배 경향이 일종의 개인차(individual difference)로서 취급되고 있기 때문.[3]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게 당연하다" 고 믿는다. 다시 말해, 원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 그리고 그것이 반영된 제도가 뭇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제도 수준의 노력이 요청된다. 우리 사회의 억압적인 구조를 갈아엎어야만 개인의 삶의 질과 사회적 정의에도 모두 해피한 결말이 도래하기 때문. 차별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주장을 펼치는 이론은, 그 수많은 이론의 춘추전국시대를 누리는 사회심리학계 속에서도 정말 흔치 않다. 그렇기에 거꾸로 말하면 페미니스트들이나 사회학도들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볼 만한 논의거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4. 차별에 의한 눈물과 좌절

차별을 받게되는 사람은 차별이라는 벽과 담 앞에서 결국은 눈물을 흘리고 좌절을 하게된다. 이러한 이기주의적인 인간의 팽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정신적인 고통과 피해, 마음의 상처, 인생사의 씻지 못하는 비극 등을 낳을 수 있으며 심하면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치 않게 될 수 있다. 차별을 받은 경우 깽판을 치거나 차별하는 사람을 때리고 심하면 죽이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차별한 사람이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고 이들을 제제할 수단이 사적복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차별을 하거나 놀려도 경찰이 붙잡아 가는것도 아니니까... 이를 줄이려면 적어도 차별 발언을 하거나 차별 대우를 하는 사람에게 법적인 불이익을 주는 수단이 필요할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잃을 것도 아쉬울 것도 없으니 때리거나 죽여서 법적인 처벌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서슴치 않게 되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보잘것 없어 보인다고 함부로 대하면 어떠한 협상과 교섭도 통하지 않는 통제불능이 된다.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지만 차별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고 폭력은 그게 물리적이던 정신적이던 폭력으로 되돌아 오게된다.

차별을 받은 사람이 흘린 눈물은 자신을 차별하여 버렸던 이들에 대한 말 못할 원망과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그것은 어쩌면 차별하는 인간에 대한 무언의 표현일 수도 있고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안고사는 이들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무리 내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않아도 결국은 나도 너도 그리고 그 사람도 모두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인간일 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살아있는 이상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기에 차별이라는 행위는 이렇게 그들의 권리를 앗아가고 상처를 주는 원흉이자 죄악거리라 할 수 있다.

5. 차별에 관한 어록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더 나아가 개인이 속한 국가 또는 영토가 독립국, 신탁통치지역, 비자치지역이거나 또는 주권에 대한 여타의 제약을 받느냐에 관계없이, 그 국가 또는 영토의 정치적, 법적 또는 국제적 지위에 근거하여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 세계인권선언 제2조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ㆍ미혼ㆍ별거ㆍ이혼ㆍ사별ㆍ재혼ㆍ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ㆍ개정 및 정책의 수립ㆍ집행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이하 "차별행위"라 한다)로 보지 아니한다.
가. 고용(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 임금 및 임금 외의 금품 지급, 자금의 융자, 정년, 퇴직, 해고 등을 포함한다)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ㆍ배제ㆍ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나. 재화ㆍ용역ㆍ교통수단ㆍ상업시설ㆍ토지ㆍ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ㆍ배제ㆍ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다. 교육시설이나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ㆍ훈련이나 그 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ㆍ배제ㆍ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라. 성희롱(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공공기관(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초ㆍ중등교육법」 제2조, 「고등교육법」 제2조와 그 밖의 다른 법률에 따라 설치된 각급 학교, 「공직자윤리법」 제3조의2제1항에 따른 공직유관단체를 말한다)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직위를 이용하여 또는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행위
-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호
Each person possesses an inviolability founded on justice that even the welfare of society as a whole cannot override.

모든 사람은 정의에 기초한 불가침권을 가지며, 이는 사회 전체의 평온이란 이름으로도 희생시킬 수 없다.
- 존 롤스, 《정의론》 中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보여질 수 있는데 정작 신분제도에 의해서 양반들은 일도 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평민과 천민만 일을 하거나 아예 평민과 천민을 통해서 일을 시키고 있다. 사람이 일하는 데 있어서 양반이든, 평민이든, 천민이 따로 있던가. 양반도 땅을 가졌으면 자기 손으로 일해야 한다.
- 다산 정약용
양반들은 자신이 일하기보다는 거의 노비나 소작농 평민들을 시켜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평등한 세상에서는 양반도 제 손으로 일할 줄도 알아야한다.
- 연암 박지원
세계의 모든 국가와 민족은 어떠한 경우에도 특정국가나 민족을 폄하하고 차별하는 언행이나 행동을 삼가해야하며 상대방 국가나 민족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통해서 서로간의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 국제연합(UN)
올림픽에 참가한 전 세계 모든 선수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특정 국가, 인종, 집단 등에 대해서 차별적인 발언이나 행위를 삼가해야하며 선의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선수들끼리의 우정과 신뢰를 쌓도록 노력해야한다.
-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월드컵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은 특정의 나라, 인종, 집단 등에 대한 어떠한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행과 행동을 삼가해야한다. 만일 경기 중에 이러한 행위가 있을 경우 출전 자격을 박탈할것이며 해당 국가 축구협회에 대해서는 징계를 통한 제재를 내린다. 또한 선수들을 응원하는데 있어서도 특정 나라, 인종, 집단을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행위를 삼가한다.
- FIFA

6. 같이 보기


[1] 왼쪽 위부터 1)성별 2)종교 3)장애 4)나이 5)사회적 신분 6)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7)출신 국가 8)출신 민족 9)용모 등 신체 조건 10)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11)임신 또는 출산 12)학력 13)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14)인종 15)피부색 16)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17)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18)성적(性的) 지향 19)병력(病歷)[2] 이는 사실 수련회나 MT 등의 모임에서 무선적으로 조별 배치가 이루어졌음에도 이를 바탕으로 조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3] 이런 경우 보통은 우익 권위주의(right-wing authoritarianism)라는 개념과 쌍으로 엮어서 취급한다. 그리고, 사회적 지배 경향은 성격심리학에 존재하는 다른 개념인 지배 특질(dominance trait)과는 다르므로 주의. 이쪽은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을 은연중에 찍어누르려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4] 많은 사람들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나, 태생적인 시민이 아닌 사람들, 즉 귀화자들은 어마어마한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특히 귀화자들은 종종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문제를 직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대한민국은 없으나 미국만 해도 귀화자에게는 정/부통령 피선거권을 박탈한다. 말레이시아는 이보다 더해서, 지방자치단체장까지도 막으며 심지어 국가대표로 뛰지도 못하게 한다.[5] 이건 아예 생물학적 차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