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03 14:52:39

약육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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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2. 진화론과의 혼동3. 약육강식의 다른 용례4. 약육강식을 주장하는 캐릭터나 집단, 혹은 관련 작품5. 관련 문서

1. 설명

고사성어
약할 고기 강할 먹을
강자가 약자를 취하는 것은 생존의 본능이라고 하였소이다. 우리도 그와 같은 이치를 명심하고 힘을 더욱 크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오. 보시오. 천만 년을 갈 것 같던 저 당나라도 바람 앞의 등불이올시다. 우리가 좀더 힘을 일찍 얻고 이치를 깨달았다면 어찌 저 당나라를 취하지 못하겠소이까? 꿈을 가지십시다. 미륵의 큰 꿈을 가져보십시다. 그리하여 저 중원 대륙을 우리가 살아서, 우리 땅으로 만들어 보십시다.
- 궁예, 태조 왕건 37화 中

한유(韓愈)의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에서 유래한 말로, 불교를 비판하고 유교를 변호하는 와중에 인용된 표현이었다. 본디 문명의 개화가 없이 서로 죽고 죽이는 미개한 상태, 즉 미개하고 야만적인 상태를 비판하는 어구였다. (출처1, 출처2)
한유는 문창이 중이면서도 유학자들과의 교류를 계속하는 것은 유학의 윤리, 문물, 예악을 흠모하기 때문이며 그러면서도 유학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불법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지, 유학자라면 마땅히 그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했다. 도(道)에 있어서 인(仁)과 의(義)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가르침에 있어서는 예악과 형정(刑政)보다 바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을 천하에 시행하면 만물이 모두 합당함을 얻게 되고 그것들을 그 자신에게 적용하면 몸은 편안하고 기운은 평온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릇 새들이 머리를 숙여 모이를 쪼다가 다시 머리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나, 짐승들이 깊숙이 숨어살며 가끔씩 나오는 것은 다른 짐승이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약한 자의 고기가 강한 자의 먹이가 되는 미개한 상태가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근대 이후에는 일본이 사회진화론을 강조하는 뜻으로 의미를 왜곡시켰고, 원래 배경과 다르게 지금처럼 약한 것은 고기(먹이)가 되고, 강한 것이 먹어치운다는 의미만 남게 되었다.

보통 '먹이사슬', '정글의 법칙' 등으로 통하나 정작 야생과 정글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아프리카의 사례만 보아도 사자가 최강자가 아니며 가장 강한 동물은 코끼리다. 또한 코끼리는 가장 성질이 더러운 동물 중 하나로, 가까이 다가가면 공격받기 십상이다. 트럭도 들이받고, 작은 동물들은 밟아버린다. 특히 발정기의 수컷은 정말 사납다. 기린은 어떠한가? 그 발길질에 차이면 웬만한 동물들은 즉사한다. 하마는? 코뿔소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어야 한다면 코끼리가 사자를 잡아먹고 다녀야 마땅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육식동물초식동물보다 강하기 때문에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육식동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하고 사냥을 나서야 하는 것'이라 봐야 옳다.

육식동물 중에서는 사냥을 마다하고 스캐빈저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체면 일단 다가가서 대뜸 먹고 본다는 것은 사냥이 그만큼 만만한 게 아니라는 방증이다.[1] 사냥을 하다 보면 얼룩말의 뒷발에 차여서 턱이 박살 나는 사자도 있고, 기린의 발에 차여 두개골이 함몰되고 뇌가 으깨져서 즉사하기도 한다. 들소를 사냥하다가 들소 떼에게 집단 린치를 당해서 배가 꿰뚫려 죽는 사자도 종종 있다. 결국 육식동물들은 사냥을 하는 데 목숨까지도 걸어야 한다.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이다. 사냥은 곧 생존의 문제인 동시에 치열한 사투인 것이다.[2]

사자가 동물의 왕이네, 사자랑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긴다느니, 호랑이랑 곰이랑 싸우면 누가 이기네 하는 둥 인간은 피라미드를 만들어서 서열을 세우길 좋아하지만 야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할 것이 못 된다. 야생에서는 그 무엇이든 얕보이거나 혹은 다치거나 하면 곧바로 도태당한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동물에게 먹히기도 하는 것이다. 동물들이 위협의 의미로 으르렁대는 것에도 이치가 있다. 사냥을 할 때는 은밀함이 필수이므로 오히려 으르렁거림이나 발소리 등 잡소리조차 안 내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법이다. 다치면 자기 손해이기 때문에 싸움도 되도록 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죽도록 싸우는 경우는 사활이 걸린 영역을 침범당했을 때나, 새끼를 보호하고 있을 때나, 수컷이 힘을 과시해야 하는 번식기뿐이다.

생물학 전공자들은 아래와 같은 미분연립방정식으로 약육강식 관계의 동물 수를 분석한다.[3]
{dxdt=x(αβy)dydt=y(γδx)\displaystyle \left\{\begin{matrix} {dx \over dt} = x(\alpha - \beta y) \\ {dy \over dt} = - y (\gamma - \delta x) \end{matrix}\right.

만화나 게임 등의 창작물에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시킨다와 함께 악당들이 자주 내세우는 논리. 약한 것은 죄악이며 강자야말로 정의니 가장 강한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면서 마음대로 포악질을 부린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논리를 내세우는 악당들은 막상 더 강한 상대에게 밀려서 자기가 약자가 되면 이런 신념을 손바닥 뒤집듯이 엎어버리고 목숨을 구걸하는 추태를 보이곤 한다.[4] 일종의 클리셰인데, 창작물이 아닌 현실에서도 약육강식을 주장하는 이들 대다수의 사고방식이 내로남불의 극치인지라 자신이 약자로 굴러떨어져 잡아먹히는 상황에 처하면 담담하게 받아들이긴커녕 갖은 추태를 보여준다. 당장에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지도자들도 온갖 망언을 일삼다가 죽을 때 되니까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아무튼 이런 주장을 하던 악역들이 꺼꾸러지면서 결과적으로는 약육강식은 아니어도 적자생존 논리 자체는 성립한다는 게 입증된다고 볼 수도 있다. 악역을 위한 세상은 없다 하지만 주로 암울한 분위기의 다크 판타지물에선 되려 주인공이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흑화해서 이 논리를 주장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럴 경우엔 작 분위기가 매우 무겁고 시궁창스러워지는 게 대부분.

지금 현대 인간 사회를 대상으로 약육강식을 대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게 되면 자신의 이익만 무한대로 주장하는 포식자들에 의해서 아래쪽이 전부 먹혀버린 다음에 위쪽끼리 먹고 먹히는 싸움을 이어 가다가 마지막엔 전부 굶어 죽는다. 쉽게 말해 약육강식의 끝은 공멸이라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약한 것은 죄악이라며 이런 주장에 자발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도 종종 나타난다.

약육강식이라고 해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건 엄연히 자연주의의 오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망상 수준의 헛소리가 유럽의 정복자들이 식민지와 노예 체제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불문하고 정복자들은 신의 명령이라는 식의 명목으로 종교를 침탈의 정당화 수단으로 사용했다. 물론 신 때문에 침략이 벌어진 게 아니라, 그냥 '저 땅이 탐나서 빼앗았어'라고 하면 납득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럴듯하게 갖다붙인 것에 불과하다. '해방을 시켜준다'니 '외세에게서 보호해준다'니 침략자들의 명분은 많지만 실질적으로는 '땅이 탐나서'라는 근본적인 욕구에 의해 '약육강식'과 같은 모습이 벌어진 것이다.

불행히도 현대 사회에서도 돈 있고 힘 있는 강자가 돈도 힘도 없는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약육강식 문제가 계속 생기고 있다. 갑의 횡포유전무죄 무전유죄 그리고 금수저 문서를 참고할 것. 특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경우 정당화되어선 안 되는 약육강식이 돈의 힘으로 강제로 정당화되는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약육강식은 사람이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을 잡아먹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대체 왜 사람이 같은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계속되어야 하는가?[5]

간혹 생육강식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2. 진화론과의 혼동

대개 진화론이 이러한 논리에 기반해 있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지만, 진화론의 주요 메커니즘은 자연선택적자생존이다. 강자가 약자를 포식하는 것을 말하는 약육강식과는 완전히 다른 이론이다. 사실 이것도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강한 것이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오래 남는 것이 강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약육강식보다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강한 사자가 약한 사자를 잡아먹는 게 아닌 것처럼, 인간끼리 약육강식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자연의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자연계에서 강자와 약자의 기준이 굉장히 애매하다. 현재 지구의 자연계에 서식하는 사자와 들소를 봐도, 사자가 들소를 너무 많이 죽이면 들소들이 보복으로 새끼 사자들을 죽이는 경우가 있다.

포식자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멸종하고 피식자가 번성하는 경우는 지구 역사상 얼마든지 있었다. 예를 들어 공룡포유류. 공룡시대의 포유류들은 처럼 생긴 소형 포유류가 전부였고, 당연히 공룡들의 한 끼 식사 혹은 먹을 수조차 없는 미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K-T 멸종 이후 파충류와 포유류의 위치는 바로 역전되었다.[6]

약육강식주의자들을 중2병 환자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보험이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저 고리타분한 도덕 수준으로 치부한다. 강자가 약자를 마구잡이로 대하면 약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뭉치게 되고 끝내는 강자와 약자의 위치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역사에서도 프랑스 대혁명을 보면 알 수 있다. 강자의 위치에 있던 귀족들이 약자인 평민들을 마구잡이로 대했다가 그 평민들이 뭉쳐 혁명을 일으키니 약자가 되어버렸지 않았던가.

또한 기생충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 사자를 숙주로 하는 기생충이 사자 몸 밖에 있을 경우 사자가 더 '강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기생충이 사자에게 기생한 상태라면?

다른 예로 오늘날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데, 인간이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동물들을 도구로 능히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의 '강함'을 가지기까지 지식을 쌓고 기술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 국가 등 단위의 집단으로 뭉쳐 서로의 단점을 개체의 강력함이 아닌 결속력으로 메우면서 장점을 강화하는 식으로, 사람이라는 존재의 환경에 대한 생래적인 제약에 가장 적합한 생태로 맞추어 살아남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 개체는 순수 전투력만으로는 야생 짐승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약하지만[7] 그럼에도 인류라는 종족 자체가 야생 짐승들에 비해 생존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 것은 강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8]

인간끼리 약육강식을 거론할 때는 비유적 표현으로 많이 사용된다. 삼국지에서 관우 아들과 장비 아들이 혁혁한 공을 세우자 유비가 "하하. 아비가 호랑이면 새끼가 개일 리 없지(虎父無犬子)"란 말을 한 것처럼 말이다. 정작 유선은… 단 위의 비유도 사실 논리적으로는 엄격하지 못한데 실제 숫사자는 자신의 새끼가 아닌 어린 사자들을 학살하기도 하고 동물세계에서 같은 종 내에서 강한 개체가 약한 개체를 잡아먹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사회성을 가진 대부분의 동물은 서로 협력하고 경쟁은 적정선에서 끝내는 사회형태에 최적화되어 있다. 서로 협력하는 집단과 계속 분열하는 집단에서 어느 쪽이 포식자로부터 생존하기 쉬울까?[9]

물론 역사적으로도 '약육강식'보다 '적자생존'의 논리가 더 잘 들어맞음은 공부 조금만 하면 잘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명실상부 고대중세 비견할 국가도 별로 없는 최강국 중국 옆에 놓였음에도 잘만 살아남은 한국 역사의 국가들을 생각해보자. 이것과 관련된 또 다른 말로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가 있다.[10]

요약하자면 약육강식을 거론하며 악행들을 정당화한 옛 제국주의 열강 내지는 창작물 속 캐릭터들은 과학적으로 맞지도 않는 쪽으로 약육강식이라는 말을 끼워맞춘 셈이다. 때에 따라 '약자가 강자를 잡아먹는' 뒤집힌 상황에 반어적인 의도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우 '이긴 놈이 결국 더 강한 거였음'이라는 논리로 귀착되어, 약육강식이라는 명제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로서 '강한 자/약한 자' 위치만 바뀌는 뿐인 경우가 많다. 아예 약육강식을 주장하는 악당에 대해 주인공 측이 이 논리를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 자, 이제 누가 강자이지?

사실 이러한 문제는 '강하다/약하다'란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부터 시작하기에 결론이 날 수가 없는 문제다. 논리적인 대화를 하려면 상호 합의를 통해 한 단어에 대한 정의 자체를 제대로 내려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잘못됐으니 결론이 날 턱이 있나. 예를 들어 '강하다'라는 단어에는 '물리적인 힘이 세다'는 뜻 외에 '어떤 것에 적응하거나 견디는 능력이 뛰어나다'라는 뜻 또한 있는데, '추위에 강하다'라고 할 때는 후자의 뜻이다. 당장 본 문서에서도 해당 단어를 두 의미를 엄밀히 분별하지 않고 다루고 있다. 다만 이걸 가지고 "'강하다'라는 단어는 적자생존에 관한 뜻(어떤 것에 적응하거나 견디는 능력이 뛰어나다)을 의미 중 하나로 내포하고 있으니 약육강식이 옳다!"라고 하면 곤란하다. 힘이 강하다고 추위에 강한 것은 아니듯이.

또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의 말엔 중대한 허점이 하나 있는데, 사자, 호랑이 등 웬만한 맹수를 보면 알겠지만 약육강식의 논리를 펼치는 이들이 주로 펼치는 논리와 달리 '강자'인 맹수들이 오히려 더 굶고 산다. 그 어떤 맹수라도 사냥 성공 확률이 많아봐야 20~30% 정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강한 자는 비참하게 굶는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말이 더 논리적이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즉 누가 현재의 상황에 더 적응을 잘 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아프리카의 사자와 남극의 펭귄, 둘중에 누가 더 육체적으로 강한가를 보면 당연 사자가 강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남극에서 누가 더 잘 적응하고 더 잘 생존할 것인가를 따지면 누구나 펭귄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막에 사는 두꺼비와 북극에 사는 북극곰 중 누가 더 강할까? 북극곰이 더 강할 것이다. 하지만 사막에서 누가 더 오래 살아남는가를 따져보면 당연히 승자는 사막두꺼비일 것이다. 그리고 환경은 변하기도 하기에 지금은 이 종이 가장 적합해보여도 어느새 상황이 바뀌면 다른 종이 더 적합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는 '어느 종이 다른 종보다 무조건 우월하기에 약한 종은 결국 없어진다'이지만, 진화론의 세상에서는 '언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이기에 다양한 환경 각각에 맞을 수 있게끔 종의 다양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11]

3. 약육강식의 다른 용례

지금까지 내용과는 별개로, 인간 사회의 각박함과 막장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즉 약육강식의 법칙이 받아들여진다는 건 곧 지금이 꿈도 희망도 없는 막장 상황이라는 것. 즉 위와 달리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용례다.

뭔 소린지 모르겠으면 대다수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일단 이름 그대로의 약육강식이 통용되려면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규칙이 걸림돌이 되는데, 이러한 규칙들은 결국 포스트 아포칼립스 계열에서 자주 묘사되는 체제 붕괴 등으로 인해 아예 사라지거나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에 그 결과 여러 가지의미에서 힘을 가진 자들이 마음껏 횡포를 부리게 된다는 것이다.

굳이 창작물의 예시를 들지 않아도 현실에도 자주 존재한다. 역사에 기록된 대부분의 멸망한 국가들이 무너지기 직전, 혹은 무너진 직후에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보자.

물론 그때에만 쓰이는 건 아니고 현재의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주된 비유적 표현으로도 많이 쓰인다. 당연히 현재에 대한 비판 소스 중 하나. 말세 떡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코즈믹 호러도 어떤 의미에선 훌륭한 약육강식의 구현화라 볼 수 있다. 초월적인 존재들(강자) 앞에 한없이 무력하고 나약하며 결국 그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인간들(약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약육강식.

4. 약육강식을 주장하는 캐릭터나 집단, 혹은 관련 작품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악당이나 범죄자와 다름없을 경우 ※ 표시. 약육강식 사상을 버린 사람은 @ 표시.

5. 관련 문서



[1] 베어 그릴스도 동물 사체가 보이거나 까마귀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게 보이면 일단 다가가서 사체의 상태를 살펴본다. 야생에서 사체에 아직 살이 붙어 있는 것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일 가능성이 크며(며칠만 지나도 다른 무언가가 먹어치워서 뼈만 남으므로), 제법 오래되어 썩은 고기를 먹게 되더라도 육식동물의 경우 장의 길이가 짧아서 몸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 사람이 못 먹는 고기도 육식동물들은 먹을 수 있다.[2] 다만 육식동물들도 매번 목숨을 걸 수는 없기에 보통 새끼를 노리거나, 무리에서 처진 놈을 고르거나, 단체로 사냥을 하거나, 역할을 나누어서 몰이사냥을 하는 식으로 위험을 극복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육식동물들의 사냥 성공률은 잘해야 20% 정도이다.[3] 로트카-볼테라 방정식. '토끼는 여우가 적으면 적을수록 개체수가 더 빠르게 늘어나지만, 반대로 여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수가 더 빠르게 줄어든다. 여우는 토끼가 많으면 많을수록 개체수가 더 빠르게 늘어나고, 토끼가 적으면 적을수록 수가 줄어든다' 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저렇게 된다.[4] 그런데 가끔씩 진짜로 자신의 죽음 역시 자연스러운 순리라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인배…라기보단 신념에 경도된 광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쯤 되면 차라리 목숨 구걸하는 이들이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일 정도[5] 이유는 바로 인간의 욕심에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추구해왔고,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능이다. 단지 육체적, 경제적, 지적 능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은 다 100만원의 재산이 있을 때 본인 혼자 1조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재력을 동원하여 많은 사람을 자신의 아래에 두고 부려먹으려 할 것이며, 남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최신형 스포츠카나 개인 여객기를 구매하여 편안히 여행을 다닐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즉, 아무리 재산이나 권력, 힘이 많아도 인간은 그 이상을 항상 추구하고 있다. '능력껏 일해서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 는 공산주의의 이론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필요한 만큼' 이라는 기준이 사람 개개인 별로 무한대에 가까웠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6] 극소수의 공룡은 조류 형태로 현대까지 이어져 왔지만 중생대에 비하면 한 끼 식사 거리쓸데없이 많이 번식한 것들 수준으로 많이 위상이 떨어졌다. 심지어 뉴질랜드처럼 조류만 있던 지역들의 경우 포유류가 오니까 싹 쓸려나가기도 했다.[7] 인간은 한번에 다수의 새끼를 낳는 다른 짐승들에 비하여 겨우 10개월에 개체 하나만 출산할 수 있을 만큼 번식력도 나쁘고, 한 개체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데도 2 ~ 3년 정도면 충분한 다른 짐승들에 비해 십수 년이나 걸리는 등 상당히 성장 능력이 부실하며, 단순 근력이나 순발력 등도 뭇 짐승들에 비해 떨어진다. 단순히 개체 간의 강함으로만 알아보자면 사실 인간은 먹이사슬에서 꽤나 낮은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8] 인간은 어디서든 산다. 남극우주만 빼고.[9]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에도 비슷한 예가 나온다. 서로 믿는 집단과 거짓말을 하는 집단의 생존 확률로.[10]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페름기 대멸종을 이겨낸 생물 중에서 리스트로사우루스가 있는데 이 종족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단지 땅굴을 팔 줄 알았다든가 폐가 컸다든가 하는,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었고 그 덕에 이들은 살아남아 무려 지구의 60~95%를 뒤덮는 위엄을 과시했다. 이들과 공룡을 비교해보면 공룡 쪽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공룡이 페름기 대멸종 때 살았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11] 갑자기 지구가 건조해져 사막행성처럼 변한다고 상정해 보자. 대부분의 생물이 멸종할 것이다. 그래도 사막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적합한 생물은 적응하여 살아남아 지구에서 생물의 역사는 끊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지구의 생물 가운데 '사막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적합한 생물'이 없다면, 극소수만이 가까스로 살아남거나 아예 생물의 역사가 끊어질 것이다.[12] 이들 중 다수 이상이 ※에 해당된다.[13] 왕인 로슈오는 약육강식이 올바르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묵과했으며, 나머지 두 오버로드 인베스는 자신들을 따르는 세네마리의 오버로드를 빼고 약육강식으로 자신보다 약한 동족들을 모두 죽였다.[14]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고.[15] 약육강식이라고는 하지만 브릭스의 험난한 자연환경과 국경지역이라는 것에 대한 적자생존, 혹은 자연생존 쪽에 더 가깝고 지켜야 할 국민들에게 이 법칙을 적용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약육강식이 적용되는 군 부대 내에서도 부하와 동료들을 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너무 약하면 옷 벗기겠지만[16] 하지만 자기보다 강해질 것 같은 인간을 일부러 키워주기도 하는 등 기존의 약육강식과는 뭔가 다르다. 이 철학은 자신을 위험해 보이게 만들어 싸움을 걸도록 유도하려고 위장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17] 공식 프로필에 의하면 '좋아하는 말' 이 약육강식.[18] 2기 후반 전까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와 함께 '힘이 없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둥, 힘으로 디지털 월드를 지배하겠다는 그런 말을 자주 한다. 1기 때는 존이 붕괴될 상황에서 대량의 디지몬들을 단지 약하다는 이유로 내 알바 아니라며 다른 존으로 퇴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파트너인 그레이몬이나 메일 버드라몬이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에도 "녀석들이 저기서 살아돌아오지 못한다면, 녀석들도 결국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다."라는 식으로 보았을 때 철저한 약육강식 캐릭터였다. 나중엔 약육강식 사상을 버리게 된다.[19] 그가 상관을 살해한 목적과 나약함에 대한 처벌을 생각해본다면 이런 게 아닌지 의심해볼 만하다.[20] 픽대사부터 약육강식을 주장.[21] 점프 사상 길이 남을 적자생존주의자로, 소년만화 전개답게 주인공 일행의 활약 앞에 산화했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역사에서 그의 사상이 이루어지고야 만다.[22] 시시오와 처음 만났을 때 모종의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뒤 시시오의 신념을 맹신하며 암약했지만 시시오의 반대 그 자체인 검객한테 패배하고, 다른 길을 찾게 된다.[23] 항공모함 한정.[24] 원시 저그 우두머리들은 모두 힘만을 추구하나 데하카는 "힘은 함정이다"라며 그후 데하카는 케리건 아래로 들어가서 살아남았지만 원시 저그 우두머리 모두 좋게 좋게 끝나지 못하고 케리건을 먹이로만 보다가 끔살당했다. 확실히 주르반도 약육강식을 주장하기는 하나 좀 더 본능적이며 약육강식을 주장하는 다른 캐릭터들처럼 힘에 환장한 놈도 아니었다. 케리건을 상대로도 마냥 먹이로 봤다기 보다는 내가 지면 먹히고 이기면 먹는다. 라는 주의였다. 다른 약육강식을 주장하는 캐릭터들이 지면 자비를 베풀어달라며 비굴하게 굴고 자신에게는 다르게 적용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깨끗하고 본능적인, 언젠가 배신할 것은 정해져 있었지만 깨끗하고 현자다운 최후였다는 의견이 우세하다,요약하면 본능대로 살고 본능대로 죽었다.[25] 다만 협동전에서는 아몬의 공세를 막으면 약육강식을 언급하기도 한다.[26] 정확히 말해 원시 저그들은 문명의 발전이나(데하카는 테란의 기계들은 변하지 않는다고 깠는데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테란의 기계와 원시 저그의 변화 속도를 보면 데하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납득될 정도다. 이놈들은 단 몇시간 만에 변이하게도 한다.) 저그의 진화보다(아바투르는 이들이 빨리 변하나 그냥 계획없이 마구잡이로 변한다고 깠다.) 빠르게 끝없이 진화하여 강해지는 존재들이고, 데하카를 포함한 모든 원시 저그가 이것을 추구하기에 개체로서의 힘을 매우 추구하는 것은 맞다. 데하카가 함정이라고 한 힘은 지배자의 위치나 그로 인한 자존심과 같은 것으로 데하카는 자존심을 버리고 케리건에게 굴복했기에 살아남았지만 다른 우두머리들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존심 때문에 죽은 것이다. 실제로 데하카는 약육강식 임무 전에 합류하면서 케리건에게 "제루스 전체가 당신을 두려워한다." 라고 말했고 케리건은 야그드라와 싸우기 전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잖아?" 라고 말했다. 즉 무리 우두머리들은 자기가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똥고집 때문에 싸운 셈[27] 정확히는 타락한 젤나가인 아몬이 승천이라는 이름하에 고의적으로 조장한 것이고 탈다림들이 이에 홀랑 넘어가버린 것이다.[28] 주인공이 살아온 미래 사회가 지극히 암울했고 소설 자체가 이러한 약육강식적인 행보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모조리 생략해버리는 단편적인 이세계 먼치킨물에 반감을 가져 쓰여진 소설이라 더더욱 이런 잔인한 면모를 부각시켜서 묘사한다.[29] 이스터 사에 있을 당시 1기 중후반 한정. 아무와의 최종결전에서 패배하고 이스터 사 퇴사 이후엔 이런 사상을 버린다.[30] 48화에서 사바쿠 박사를 죽이기 전에 약육강식 소리를 한다.[31] 후반부에 아버지 노리즈키 코우에 의해 쫓겨난 이후에는 이런 사상을 버린다. 물론 다른 의미로 더 성격이 파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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