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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어: toxic parents[1], manipulative parents[2], poisonous parents, abusive parents[3]일본어: 독친(毒親[4])
이름 그대로 부모로서의 기본적인 도리조차 지키지 않는 막장 급의 부모를 다루는 문서. 주된 내용은 아동 학대로 대표되는 청소년을 향한 부모의 패륜 행위부터 부모로서 지양해야 할 점까지 넓은 의미로서의 영역이 포함된다.
한국어로는 표준어로서 이런 성격의 부모를 향한 공식적인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막장 부모'도 나무위키를 포함한 일부 커뮤니티나 소수 언론에서[5] 제한적으로나마 쓰이는 일종의 신조어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며, 이런 성격의 부모를 향해 '쓰레기 부모'같은 표현도 구글 관련 검색어로도 등장하는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편이다. 외부에서 해당 명칭을 사용할 시 이에 유의할 것.
2. 설명
아동 학대의 범위는 상당히 넓기에 부모가 무심코 한 행동이 아동 학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른이 아이를 보호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도 역시 아동 학대에 속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막장 부모는,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않은 것이나 무지한 정도를 넘어 말 그대로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지른 부모를 막장 부모라 할 수 있다.대한민국에서 자식들이 법적으로 할 수 없는 의절에 문의가 빗발치게 들어오는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관련 법률 및 제도가 없다. 대한민국 가족법에는 가족 구성으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는 자가 나머지 구성원을 상대로 절연소송을 낼 수 있게 하는 법률조항이 없다. 의절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한 실제 사례(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15가합73340)도 있었으나, 법률조항의 부존재로 의절에는 실패했다.
한국 내에선 2000년 초 만 하더라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 아닌 이상 학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지 않았고, 가족이라는 공동체 특성상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사회에 알려지기 어렵다. 알려져도 개입하는 게 쉽지 않기에 아주 위험한 유형의 범죄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막장 부모 문제는 전세계적인 사회 문제다.
실제적인 학대 행위로는 아동에 대한 방치, 도를 넘어선 신체적 제약, 육체적, 언어적, 성적 학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학대를 당한 아동은 성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자신의 부모가 저지른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기에 세습되는 범죄군상이라 할 수 있다. 성인 범죄의 양형 기준에서 상당수의 국가, 심지어 미국조차 범죄자의 가정학대 경험을 정당한 감형 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은 완전히 성장한 이후에도 인간의 행동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막장 부모 대물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성인으로 성장해 간신히 막장 부모, 아동 학대, 학교폭력, 집단괴롭힘, 가정폭력 등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도와줘야 한다. 주변에 별 것도 아닌 것에 불같이 화를 내거나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경우, 막장 부모가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어릴 적에 억압된 공포감이나 혐오감이 시간이 지나며 분노로 바뀌어 표출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피해자가 가정을 이루게 되면 막장 부모의 대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혹시 가정 불화를 통해 이 문서를 열람하게 되었다면 자극적인 내용이 대다수 포함된 해당 문서 하나만으로 본인의 부모를 무턱대고 막장이라 단정지으면 안 된다. 이 문서는 막장 급의 죄질이 나쁜 부모를 주제로 다루지, 단순히 부모자식 간의 갈등을 서술함으로서 개인적인 기분을 해소하는 문서가 아니므로 기여자로서도 이 사실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나무위키는 단순히 참고용으로만 사용해야 하며 만일 해당 문서를 읽고 나서 자신의 경우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학교 및 가정 법원 등의 전문 상담소 혹은 믿을만한 지인과 함께 충분히 상담하고 이를 신중히 행동에 옮겨야 한다. 본 문서 하나만으로 본인의 부모를 함부로 판단해서 경솔한 행동으로 가정의 불화가 커질 경우 나무위키가 아닌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
상담 및 도움 요청을 원할 경우 국번없이 1388 청소년 상담센터로.
3. 보편적인 원인
과거부터 현재까지 부모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불가침의 영역인 것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자식에 대한 훈육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일종의 불가침 영역으로 인정되어왔다. 부모로서 자식을 대하는 예의도 존재하지만 아동은 훈육을 받는 입장으로서 어떠한 상황에서든 부모를 믿고 따라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양육 능력이 부족할지언정 자식에게 의도적으로 위해를 가하거나 방치하는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기에 건강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막장스런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공감하기 어려워한다. 이렇기에 동서고금 자연스레 발달된 관념이다.또한 부모 개인이 자식 앞에서는 자신의 치부나 말 못할 수 있는 사연 등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자식이 이를 알지 못하도록 강제적인 억압을 하는 경우 또한 포함된다. 부모들 일부는 이러한 사례로 자신이 가진 과거사의 치부 등을 자식이 알면 자신에게 대들거나 건방진 태도를 보이거나 불응할 수 있거나 부모로 인정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해 자식은 항상 자신의 명령에만 따를 수 있도록 불가침 강요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거에 자신을 버렸거나 자신 몰래 자기 만족에 빠져서 자식을 외면하는 이중적인 태도 또한 포함된다. 쉽게 말하자면 자식은 부모의 아래인만큼 명령을 따르는 것 이외에는 절대로 부모의 사적인 마음이나 치부 또는 과거사를 알아서는 안되며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보복을 통해서 강압적인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경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치한다. 일각에서는 '한국 사회가 워낙 아동 학대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사랑의 매'와 같은 개념을 적용하거나, 유교적 사회의 그릇된 편견을 통해 아동 학대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도 부모의 훈육을 중요한 권리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이런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서구권이 동양권에 비해 아동의 인권에 대해 실질적, 제도적으로 정비가 잘되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어린애가 우는 소리만 나면 누군가 반드시 신고하고 곧바로 경찰이 들이닥쳐 상황을 판단하는 서양[6]과 애 우는 소리가 나서 신고해도 어지간하면 넘어가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 국가들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다만 서양의 체제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쌓아올린 것이고, 고대 로마 시대부터 근대 초기까지는 동양권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유럽사에 길이 남을 명군인 프리드리히 대왕도 세자 시절엔 부왕에게 몽둥이로 맞고 살았고, 독일 태생의 대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또한 성악가 출신의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로부터 영유아기부터 매우 혹독하게 피아노를 배웠다. 1900년대 영미권 소설에서는 애가 말을 안 들으면 따귀부터 올려붙이는 묘사가 굉장히 흔했다. <올리버 트위스트>,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포르투갈어권 소설인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같은 당시 소설들 보면 아이들이 정말 죽도록 맞는다. 심지어 90년대 DC코믹스 배트맨과 로빈에서는 로빈이 뭘 잘못하거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을 했을 때 배트맨이 로빈의 귀싸대기를 날리는 묘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2006년 영화 터네이셔스 D는 록 음악으로 반항하는 아들을 엎어놓고 허리띠로 두들겨 패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심지어 아동인권이 잘 보장된 프랑스도 2010년 무렵까지도[7] 자녀의 귀싸대기를 날리지 말라는 공익광고까지 할 정도였고 아동에 대한 폭력과 노동력 착취 문제도 역시 말할 것이 없었다.
설령 피해자가 범죄를 인지하고 신고까지 이어지더라도 이렇게 부모와 관계가 단절되고난 이후 또한 큰 문제. 막장 부모에게 시달리는 경우는 대개 힘없는 미성년자인 경우에 이들은 가출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집을 떠나다간 취업, 경제, 숙식[8] 문제 등 심히 열악한 환경에 맞딱드릴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가출 청소년은 위처럼 부모를 향해 대드는 양아치라는 편견어린 따가운 시선 또한 한몫하고 사회적으로 약자 취급을 받는 청소년으로선 숙식이 결여된다면 건강과 안전에도 큰 위협이 생기는데다 범죄, 가출팸, 성매매 등등 어둠의 유혹에 노출당할 여지 또한 많은 등 피해자로서도 훗날의 불이익에 신고를 주저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피해 아동/청소년을 향한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9]
비단 피해자들만을 위한 지원이 아니더라도 공공적인 아동/청소년 복지 또한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사안으로서, 유치원, 보육원, 학교, 지역아동센터 등등 아동청소년관련 교육복지 시설은 사회적인 가르침과 함께 만에하나 존재할 아동학대 피해자의 안식처로서의 역할 또한 담당할 수 있는 중요한 시설이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이런 시설의 중요성은 여실히도 부각되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학교 등 시설들이 셧다운되어버리자 아동학대 범죄가 증가하는 등의[10][11] 현상을 맞는 점을 봐선 단지 부모에게 묶어두기만 하는 훈육 방식은 잘못되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제도적인 문제를 떠나 사회의 미온적인 인식과 무관심, 잘못된 대처 또한 큰 원인으로 꼽힌다. 피해자가 쉽사리 신고할 수가 없는 가정 범죄 특성상[12] 공권력의 레이더망엔 포착되기가 쉽지 않아 사회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인 영역인데, 남의 일이라 여기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간 이런 범죄는 음지에서 활개치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오스트리아만 해도 가정폭력범인 요제프 프리츨이 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친딸을 강간하고 7명의 자녀를 출산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을 때 이웃 주민들은 그가 친딸을 납치, 감금, 강간하는 건 몰랐어도 수시로 가족을 패고, 자녀들을 노예 취급하고, 아내를 물건 다루듯 학대하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도 그들은 전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프리츨의 만행이 수십 년간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령 신고가 이뤄지더라도 후속 조치가[13] 마땅이 이뤄져야 하건만, 위 인식 등으로 말미암아 대수롭지 않은 가정 갈등 쯤으로 여기고 미온적인 대처로 참극은 해결되지도 않고 심지어는 해당 사실을 가해자인 부모에게 통보하거나 신고자를 돌려보내며 보복 범죄 위험에 노출시키는 황당한 대처를 보여주기도 한다. 차마 실현되어선 안될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에선 이런 대처로 소녀를 부모에게 살해당하는 참극까지 내몰아버린 사건도 있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돌아간 신고자들도 가해자들의 계속된 폭력을 더는 견딜수없어 가해자를 폭행하고 살해하여 가정이 파괴되는 패륜 범죄가 발생하는 참극이 발생되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막장 부모를 토로하는 글이 올라오면 "그래도 낳아주신 분인데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류의 답글이 달리는 게 일반적이었다.[14] 이런 잘못된 관념이 막장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를 음지의 영역으로 밀어넣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통념은 전 인류가 공유하고 있다. 이것을 범죄 행위로 간주하지 못하고 훈육의 시각차에 따른 결과로 오해하거나, '그래도 부모지. 설마 자식 나쁘게 되라고 하겠느냐.'고 단순히 온정적 시각으로만 바라보아 피해 자녀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의 훈육 권리에 대한 존중은 분명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반대로 그 훈육이 잘못된 방식이라면 제지할 사회적 수단이나 인식 또한 미비해지는 난점이 있다. 부모라는 존재를 무조건 완벽하고 옳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낳고 기르되, 소유하려 들지 말라."는 말을 되새겨야 할 때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자제해야 한다.
4. 대한민국의 원인
4.1. 구시대적 사고관
보통 대한민국에서 막장 부모가 생기는 원인으로는 왜곡된 유교 문화로 인한 구시대적 사고관이 많이 꼽히며[15] 더불어 일제강점기~군사독재 시기의 수직적 조직 문화가 겹친 것도 한 몫 한다. 거기에 상명하복과 까라면 까로 대변되는 군대문화의 영향으로 군대에서 이러한 문화를 접한 남자들이 가정을 꾸려 아버지가 되면서 자식에게 이러한 성향을 적지 않게 드러내게 되었다.[16] 이로 인해선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갑의 횡포 또한 한국의 막장 부모의 필수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4.2. 맞벌이로 인한 가정의 관심 저하
맞벌이로 인해 자녀에 대한 관심이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가정도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부모의 역할을 잘 해내는 가정도 많다. 하지만 잘못된 부모의 경우 자식을 낙태 또는 유기 등으로 없애려하거나, 키워도 애물단지, 아예 자신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여기기도 한다.극단적인 예시로는 독립운동가 등의 지사(志士)가 있다. 민족, 국가, 역사, 인류 등 큰 사명을 가지고 큰 일을 이루려 노력하다 보니 가족에게 소홀한 경우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홀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 역시 상황마다, 자식들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의를 위해서 어디까지 자식을 희생시킬 수 있는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인간의 감정이란게 꼭 합리적이지는 않아서 자녀들이 '부모님의 큰 뜻은 이해하나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식으로서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지사로서의 부모님은 정말로 존경하지만, 내 개인의 부모로는 훌륭한 분이 되지 못하셨다'라며 끝내 앙금이 남는 경우도 있다.
4.3. 가난
사회안전망 및 사회관심이 필요한 문제다. 부모당사자가 도박이나 사치등으로 가난하다면 모를까, 개인의 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위기나 재난으로 가난해진 경우도 있기에 함부로 막장 부모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가봐도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최악의 경제적, 환경적 여건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욕심만으로 낳은 부모라면 비판의 소지가 있다.
4.3.1. 경제관념 없음
위에서 설명한대로 경제 요건이 안되면서도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욕심으로 부모가 된 것보다 더 최악의 경우로 아래와 같다.- 전문가도 힘든 주식, 개인사업을 하다가 돈을 크게 잃는다.
- 도박에 거금을 쓴다.
- 보증을 선다. 심지어 자녀 명의로 보증을 서주는 바람에 자녀는 졸지에 신용불량자에 부모의 빚때문에 매춘으로 몰락하거나 원양어선 탄 경우도 있지만 이에 대한 미안함은 전혀없다.
- 친구나 친척에게 차용증이나 담보 없이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다. 일명 해결사로 친구나 친척들 문제는 적극 가담하면서 막상 가족들에게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금전적 부담을 안기는 타입.
- 생각 없이 대출을 한다. 대출의 만기가 도래하면 다른 대출을 내어 갚고, 종국에는 가족이나 자녀에게 대리 상환을 요구한다. 상환을 해주면 또다시 다른 대출을 내어 탕진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 종교활동에 거금을 들인다. 이런 경우는 사이비 종교에 빠졌을 확률이 높다.
- 자녀가 10대~20대 초반일 경우 부모의 나이가 40~50대인데 모아둔 돈이 거의 없다. 만약 부모 중 한 명이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인하여 지출이 많아지거나, 경제불황 등으로 인하여 직장을 잃어서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을 전전하는 케이스면 그나마 덜하겠지만, 만약 도박이나 사치 등으로 흥청망청 쓰는 케이스라면 답이 없다.
- 자녀나 가족의 치료비까지 몰래 가져가서 흥청망청 써버리는 경우도 있다.
- 키워준 값요구: 자신이 낳아주고 키워주었으니 그 값을 요구한다. 물론 부모가 힘들면 자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자녀도 여유가 있으면 부모를 도와야하는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자녀의 능력을 넘어서는 생활비를 요구하거나[17] 심지어 제대로된 양육도 하지 않았다가 성인이 된 자녀에게 금전적인 수탈을 한다.[18]
그 중 가장 위험한 경우는, 자존심이 지나쳐 위에 있는 행동을 하고도원인을 분석하고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은 완벽한데 단순히 운이 없거나 상황이 안 좋아서 가난해졌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 미래에 빚이 얼마나 늘어나든 간에 취미, 음식, 기부 등에 돈을 아끼지 않고, 친자녀에게 들어갈 교육비, 생활비,병원비는 인색해하면서 친척 아이에게는 용돈을 쥐어주고,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경조사, 모임에 일일이 찾아다니며 돈을 내고 온다.
그에 대해 누가 잘못된 생활태도를 지적하면 "인간다운 삶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우리가 무슨 거지인 줄 아냐, 돈이나 쥐어주고 욕하라, 사회생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면서 꾸짖는다. 그런 후에 전혀 변화없이 반복적으로 무의미한 경조사, 모임 등에 참여하고, 자기과시를 하며 재산을 탕진하든지, 아니면 남는 시간에는 소설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빈둥거리며 늘어져 낮잠을 자거나 하면서 니트족으로 산다. 사이코패스들이 범죄를 저지른 후 본인이 뭘 잘못했다는 인식 자체가 애초에 없을 때 하는 행동이다.
이 과정에서 돈이 모자라면(필연적으로 모자랄 수밖에 없다.) 가족 몰래 집이나 재산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린다. 더 심하면 가족에게 내놓으라고 폭언을 해서 돈을 얻어낸 뒤 마구 낭비한다. 그보다 더 심하면 가족의 명의를 훔쳐서 돈을 빌리거나 사채를 쓴다. 더 나아가 신용등급이 나락으로 떨어져 사채에서도 채무 보증을 요구할 정도가 된다면 가족들에게 보증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를 거절하면 "그럼 나보고 죽으라는 거냐? 너는 너만 살려는 나쁜 놈이다. 자식을 잘못 키웠다. 인간적인 정이 없다, 자기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다니 인간답지 않다. 부모보다 돈이 먼저다. 부모를 버리는 후레자식." 등의 폭언을 한다. 거기에 지금껏 해준 건 기억에서 삭제하고 남의 집 자식들은 뭐를 해줬더라 어쨌더라 하면서 자식을 순식간에 해준 것 없는 배은망덕한 인간으로 만든다.
하지만 자식에게 본인의 채무를 떠안으라는 것부터가 정상적인 부모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자식을 자식으로 보지 않고 1회용 방패막이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 보증 문서에도 나왔듯이 본인의 인감도장을 챙기고, 인감증명서 본인외 발급금지 신청을 한 후에 과감히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것을 추천한다
4.4. 대물림
학대에 대물림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극단적인 사상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있다. 예로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은 극단적인 아버지의 사상을 물려받아 러시아 바깥 국가한테 전범 취급 받는 마당에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사망하였다.4.5. 원하지 않은 출산
말 그대로 부모가 처음부터 자녀를 양육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으나 여러가지 불가피한 이유로 자녀를 출산, 양육하게 된 유형이다. 피임에 실패하거나 불장난과 같은 실책도 있지만, 성범죄로 임신한 경우도 있다. 특히 후자의 성범죄로 인한 출산은 부모와 자녀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낙태 찬성론의 논거 중 하나가 이런 원하지 않은 출산을 막는 마지막 수단이 바로 낙태라는 점이다.특히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의무적으로 결혼해서 자녀를 만드는 부모가 적지 않았다.[19]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녀를 낳은 다음 어떻게 육아 환경을 조성할지, 어떻게 키울지는 생각조차 해보지도 않고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했으니, 우리도 남들처럼 아이를 낳아야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자녀를 만들었다는 것. 심지어 본인의 능력이 가정을 꾸리기에 부족하단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살다보면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는[20]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정을 꾸린 경우까지 있다.[21]
4.6. 애정 없는 결혼
여기에 대한민국 특유의 유교적인 사상으로 인해 대를 잇지 못하면 불효라는 인식이 강하게 잡혀있어, 결혼적령기에 무조건 결혼해야 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풍조는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22] 애초에 이들은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닌, 의무적으로 한 결혼이었기에 출산 자체가 비극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존재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큰 희생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낳아준 것만으도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인식을 아이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까지[23] 뒷받침하여 권위적인 부모의 모습을 보이고, 자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여, 수동적인 인물로 키워내게 하는 게 당연한 풍조였던 것도 한목했다. 또한,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를 지닌 인간이 아닌, 그저 미래에 자신을 부양할 일종의 자신의 노후 보장을 위한 노동력 확보 수단으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에게는 미래의 기대소득을 높이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지만, 딸은 시집 가면 출가외인이라며 별다른 교육이나 투자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24]또 다른 문제는, 애초에 애정 없이 그저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했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본인 자녀를 배우자와 동일시하면서 미워하는 경우도 생기기 십상이다. 사랑해서 결혼했다 할지라도 결혼 생활이 100% 화목하다는 보장이 없는데, 억지로 아무런 감정 없이 한 결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막장 부모만 느끼는 게 아니다. 어차피 자식은 자기 혼자서 낳을 수 없기 때문에, 내 자식이라 해도 나의 유전자는 50%밖에 안 되며, 나머지 50%를 구성하는 것은 싫어하는 배우자의 유전자이다. 따라서 자식이 타고난 외모와 식성 등, 싫어하는 배우자의 모습을 연상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육아 카페를 보면 이런 감정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다. #로그인 필요
현실에서 화목한 가정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차마 말하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시월드 얘기가 빠지지 않는 주부 커뮤니티에서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 그래서 무턱대고 결혼했다가는 막장 부모를 양산하며 가정폭력을 증가하게 만들기 때문에 애정 없이 결혼하는 것은 자신과 자식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다.
게다가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고, 부모가 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해도, 일단 아이가 생기면 달라진 상황 때문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자유롭게 친구를 만나고 술자리를 갖고, 여행도 다녔지만, 일단 아이가 생기면 한동안은 이런 재미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25] 게다가 여성의 경우 임신, 출산, 호르몬 변화, 경력 단절 문제로 인해 산후 우울증으로 하여금 불안정한 감정이 아이에게 악영향을 끼칠 여지도 많다.
그래서 이런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만이 진정한 부모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제대로 된 한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뚜렷한 의지와 책임감을 가지지 않는다면 모성애, 부성애를 이야기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부모도 사람이니 아이들이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다. 다만 이런 감정을 얼마나 잘 통제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전에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규칙이 있었을지라도,[26] 민주주의와 개인주의가 주축이 되는 현대 사회와는 더 이상 맞지 않는 룰이다. 부모도 사람이고 자식도 사람이다. 자식이 정말 잘못을 저지른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낳아주고 길러 줬으니 너는 나한테 빚을 졌다고 말할 권리는 없다.[27] 그런 맥락에서 자녀 교육은 자식에게 효도를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남에게, 더 나아가서는 세상에 피해를 주지 않고 같은 인격체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28]
기성세대는 출산율이 낮아진다며 "좀 젊은 것들은 결혼하고 애 낳는 일을 뭘 그리 고민하는지 모르겠다? 애들은 낳기만 하면 다 지들 알아서 크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청년층에게 비난을 받는다. 사실 그들의 생각이 이럴 수밖에 없는 게, 여기에 해당하는 세대가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이고, 이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 결혼하고 애 낳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났던 시기는 한국사 시간에서 배웠다면 알 수 있듯 한국 근현대 최악의 지옥도가 펼쳐졌던 시대였고, 이런 시기에 태어났으니 생활 문제가 우선이었다. 가정교육은 고사하고 밭일하는 것부터 먼저 배우기 일쑤였고, 국민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도 현대적인 양육 철학을 가르칠 여유가 없었으니 선진적인 양육관이라는 것 자체를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키워나가는 건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현대는 다르다. 과거에 비해선 배울 것부터가 많은 세대다. 경쟁도 치열해서 옛날이면 대충 부모 일 물려받으면 될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다. 그런 만큼 옛날 방식대로의 양육은 아이를 경쟁에서 뒤처지게 만들어 끝내는 사회에서 도태시키는 것밖에 더 안된다. 차우셰스쿠의 인구 정책과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하다.[29] 닥치고 낳아라, 낳고 나선 대충 기르기, 그래서 자란 아이들은 정상 생활 못함 3박자가 똑같다.
그래도 언론의 접근성이 높아지며 2016년자로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 일련의 사건들이 사회의 주목과 공분을 사며[30] 아동 학대를 향한 경각심이 생겨나는 추세며, 자녀 양육과 아동 인권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면서[31] 21세기 시점에서는 이런 무책임한 부모가 적발되고 처벌당하며 많이 줄어들어가는 그나마 낙관적인 현상이 지속되는 중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 특유의 막장 부모들은 서양에서도 안 좋은쪽으로 유명해 수많은 아시안 부모들의 스테레오타입[32]에 기반한 밈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러한 밈들은 주로 서양에 거주하는 아시아인들이 많이 만드는 편이다. 동양권에 거주하는 사람들 눈에는 자기비하적이고 인종차별적으로 보일수가 있는편.#
5. 이후
아동 학대와 가정폭력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상처는 매우 심각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막장 부모에게 학대당한 아동은 성인으로 성장했을 경우 사회성 결여, 심각하게 낮은 자신감 및 자존감 형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향이 있다. 또한, 본인의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매사에 의기소침한 경우가 있다. 심하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에선 범죄를 저지르며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거나 심지어는 그 피해자가 부모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막장 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자녀는 정신적 육체적 충격을 크게 받을 수 있다.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이며 쉽게 해결하기는 어렵다. 가출을 하거나 가족의 곁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데[33] 더 심하면 가출팸, 조직폭력배, 사이비 종교 등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34] 자녀가 남에게 이러한 상황을 고발하면 부모의 귀에 들어갈 것은 뻔하다. 이런 미친 듯한 혼란 속에서 "이번 생은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부모를 욕하면서 죽여버릴 거라고 협박하거나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35]결정적으로 정상적인 가정 모델을 경험하고 자연스레 체득하여 가치관 형성에 절대적인 행사력을 미치는 성장기에 그러한 것을 배우지 못하거나 내면화하지 못해 그들도 막장 부모가 되곤 하거나, 부모가 되지 않더라도 어딘가 뒤틀린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장 유명한 살인자나 아동 성범죄자들을 보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막장 부모 밑에서 자랐다.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도 가정 환경이 워낙 가혹해서 그의 범죄에 분노하는 사람들조차 막장인 가정환경만큼은 동정할 소지가 있을 정도였다. 또한 유영철도 역시 가정 환경이 좋았다고 하지 못하고 고창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 김해선도 성인이 되어서까지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살았고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의 범인 고종석 역시 자식의 피를 빨아먹는 부모에게 맞으며 자랐다. 오죽하면 그가 저지른 죄가 매우 무겁다는 걸 아는 마을 주민들조차 그를 옹호하겠는가.[36] 셋 다 사이코패스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도 있지만, 이것도 사회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인 것이 설사 사이코패스라 해도 제대로 된 부모의 밑에서 제대로 된 교정을 받으며 자라면 양심은 없을지라도 흉악범이 될 확률은 크게 떨어진다는 점에서 결코 변명이 될 수 없다.[37]
단, 학대의 종류에 상관 없이 폭력을 겪었다고 해서 무조건 막장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정폭력과 학대를 경험한 피해 아동들이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우울한 유년 시절에 가했던 상처와 아픔을 그 어떤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본인이 가정을 꾸렸을 때 본인의 가정과 아이들을 더욱더 소중히 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이행하려 노력하는 참된 부모들도 분명 존재한다. 단, 이 경우 막장 부모를 대신해 그 사람을 끝까지 믿어주고 밀어주는 또 다른 헌신적인 후원자 혹은 사회 역시 있었기에 가능했다. 절대로 부모만의 능력과 노력으로 좋은 가정을 꾸리진 않았다는 뜻이다. 미국 흑인 사회에서 똑같은 막장부모 집안 출신이지만 그럭저럭 성실한 사람이 된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들에게 조건 없는 후원을 베풀고 도덕 교육을 시킨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가정폭력이 대물림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연구 사례들이 많다는 점도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막장 부모의 성장사를 수사 과정에서 재조명해보면 본인 역시 막장 부모의 피해자라는 이야기는 주변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렇다 할 동기도 이유도 없이 단순히 가학 행위로 인한 쾌락을 목적으로 일어나는 가정폭력이나 학대를 더 찾아보기 힘들다. 더 나아가 학대 피해자가 나중에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으로, 이른바 학대 피해자-가해자 가설은 학계 내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가설이다. 즉, 악마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의 무관심과 병폐 속에서 악순환에 의해 길러지고 그렇게 길러진 악마가 또 다른 악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38] # 피해자가 반드시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막장 부모 밑에서도 정상적으로 성장하거나 최소한의 인간성만은 버리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정상적으로 성장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당한 끔찍한 기억을 자식에게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거의 손도 대지 않는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한국 사회에서 막장 부모가 존재할 수 이유는 부모를 중시하고 효를 강조했던 유교적 사상에 입각한 한국 전통 사회로부터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다. 평등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중시하는 21세기에도 부모와 자식간에 소통이 단절되기 십상에, 모순적이고 경직된 변질된 유교적 전통은 사회적 요구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배척되고 있다. 전근대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했고, 사회 구조는 급변의 급변을 거듭하고 있어도 실질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는 상대적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에 따라 생기는 모순이고 과도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막장 부모의 막장짓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서 다시 대물림되거나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들의 부모에게 학대와 폭력을 받았다 하더라도 정작 그것을 다시 자식에게 돌려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고, 결국 사회의 인식 개선과 의식 개선은 나부터 시작해야 하는 점에서 악순환은 타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단,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성장기도 제대로 보내지 못했고, 성장기에 가정이나 주변 환경에서 미리 배워뒀어야 했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건전한 가치관을 의식적으로 이성적으로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 과정 그 자체가 이미 정신적 트라우마가 뇌리에 깊숙히 뿌리 박은 피학자와 피해자에겐 엄청난 스트레스고 그 과정 속에서 열등감, 자기비하, 무기력을 접하게 된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이성적으로 본인의 가치관, 사고 방식, 습관적 행동 양상을 변화시키려 노력을 한다고 해도 유아기와 청소년기의 부모의 행동과 정서의 색채는 자신도 모른 채 그대로 닮기 때문에 말이야 어쨌든 쉽겠지만 굉장히 어려운 의식 개선이고, 설마 완전히 바꾼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또한 피해 아동에게 그 후유증이 뒤늦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주로 정서적 학대의 경우에 나타난다.[39] 어릴 때는 티가 안 나다가 성장한 후에 학대의 결과로 우울증, 공황장애, 심각한 대인 불신, 자기 혐오, 세상에 대한 분노 등에 시달리는 결과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떤 사례로는 남편이 갑자기 심각한 공황장애를 겪게 되어 일상생활도 힘들 정도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학대 당했던 것이 원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른 사례로는 피해 아동이 부모가 자신에게 가한 학대를 학대라고 인식하지 못하다가[40][41] 뒤늦게서야 이게 비정상이라는 걸 알고 충격을 받기도 한다. 이렇듯 막장 부모의 행각은 반드시 피해 아동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가해자, 주변 사람들, 혹은 피해자 본인조차도 이건 문제가 안 된다고 믿어도 그건 착각일 뿐이다. 실제로는 학대 당한 상처는 이성과는 별개로 항상 마음 속에 남아있으며, 위 사례처럼 수십 년이 지난 후에 표면에 떠올라서 큰 고통을 안겨주고, 때때로 복수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상기했듯이 모든 피해 자녀들이 폭력의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타인보다 높은 가능성을 보유하고 폭력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인생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주변에 후원자 견문인, 단순히 물질적인 부분만을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라 부모가 병들게 만든 정신적인 성장을 도와줄 페이스메이커[42] 같은 존재의 노력과 정말 타고난 천성으로 인한 본인의 깨달음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치유가 되기도 한다. 다만 이 중 하나라도 부족하더라면 어떤 형태의 학대[43]이든 연결고리를 끊기가 어렵다.
가정폭력은 사회 전반에도 그 폐해를 남긴다. #, #, #, #, #, #
거시적으로는 저출산에 따른 국가의 대책 마련 과정에서 더 심해지기도 한다. 대개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낳으면 키워 주겠다는 식으로 묻지마 출산을 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결과 가정폭력이 심해지는 것이다. 이미 논문 등에서 저출산과 가정폭력 문제를 같이 취급하는 정도이다. 일각에서는 그래서 그냥 인구 감소를 받아들이자는 말도 있지만, 애시당초 막장부모는 국가가 떠밀어서 결혼한 게 아닌 이상 경제적인 여건의 문제[44]가 아니라 인간성의 문제라는 점에서 헛소리다. 가난하기만 하고 자식을 제대로 키울 의지가 충만한 부모이라면 다소 교육면에서도 영양면에서 모자라다고 해도 절대 막장부모라고 하지 않는다.[45] 당장에 가난에 쩔으면서도 자식 교육은 잘 시킨 사람도 존재한다. 한편 자식이 부모의 행태에 학을 뗀 나머지 부모가 되지 않으려는(= 독신, 딩크족)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막장 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사람이 자신은 꼭 좋은 부모가 되리라 다짐해도 막상 아이를 낳아서 기르다가 정작 막장 부모에게 학대를 받아 생긴 트라우마가 발동해서 무의식적으로 자식을 학대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학대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결국 학대의 대물림을 막으려면 막장 부모를 처벌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식의 트라우마 치료까지 해야 한다. 특히 온갖 방해[46]를 뚫고 막장 부모를 처벌하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양육권 박탈 이후의 자녀 생존 문제 때문에 당장 관계 끊고 나면 이미 폐인인 상태로 혼자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경우가 있다. 재정 문제와 강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신체 발작 증상이 엮이면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해도 돈을 벌지 못하고 병을 고치기 위해 치료를 해야 하는데 돈도 없다는 무한루프에 빠질 수 있다.
5.1. 가해자들의 일반적인 최후
아무리 건장하고 난폭한 부모라도 결국은 사람이자 수명이 정해진 생명체이니 자연스럽게 늙어가며 완력과 위압감이 감소하고 은퇴, 퇴직 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식은 성장함에 따라 신체적으로 강해지며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47]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다.이때 자식이 지금껏 쌓인 원한을 폭력이나 무관심, 의절 등으로 되갚아주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수순이다. 특히 무관심, 의절은 법적으로 저촉되지 않으며 의절은 자신이 막장 부모에게 컸다는 사실만 밝힐 수 있게 되면 비난 받을 게 없다. 그 밖에도 깊은 원한을 품은 자식들에 의해 폭행당하거나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데, 대표적인 예로 과천 부모 토막살인 사건, 광주 남매 존속살인 사건, 하왕십리동 방화 살인 사건, 구의동 고3 존속살인 사건, 분당 존속살해 사건이 있다. 참고로 이 사건들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어서 가정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자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나올 정도다. 이 사건 외에도 가정폭력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어 사회적인 충격을 주게 되어 더는 가정폭력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옛날에야 부모를 존속살해한 사람은 무조건 패륜아로 지탄을 받았지만 인권의식이 발달되고 가정폭력과 아동 학대가 사회문제가 되자 막장 부모의 악행을 참다 못한 자녀가 부모를 존속살해하면 대부분 반응이 "오죽했으면", "잘 죽였다"라고 성토할 정도로 막장부모에 대한 사람들 인식이 변하고 있으며 부모의 학대와 양육 미비가 확실히 되면 법원에서도 정상참작하여 형을 줄여주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 사례로 딸이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가 중풍과 치매로 쓰러지자 매일매일 아버지를 폭행했다. 그러나 폭행당한 아버지의 가족부터 마을사람들까지 맞아도 싸다며 딸을 옹호했지 폭행당한 아버지를 돕지 않았으며 일단 폭행당한 아버지는 멀리있는 요양원에 가는 것으로 끝나고 가해자 딸은 아무처벌도 받지 안았다.
부모에게 학대, 폭력, 착취를 당했던 사람이 아무 대가 없이 부모를 용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는 게 더 이상하지만. 심지어는 학대의 대가를 치르겠다며 용서를 구하더라도 그 갱생조차 때가 너무 늦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 불화가 심한 경우엔 자식에게 학대를 당하거나[48] 존속살해를 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가족들에게 연락도 끊긴 채 쓸쓸하고 가난하게 연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부양청구권 같은 걸 들이밀어 억지로 부양받게 되어도 법에서 정한 최저금액만 지원하거나,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등 좋은 대접은 받지 못한다. 게다가, 부양청구권을 들이밀어도 부모가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증명하고 법적으로 부양을 거부하면 그만이다. 마침 2021년부터 부양의무제도 일부 폐지되었다. 그러다보니 폐지를 주우며 어렵게 살거나 단칸방에서 고독사한 노인들 중에선 사실 가족이 있는데 자식을 학대했다가 훗날 인연이 끊기고 방치돼서 몰락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심하면 노숙자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막장부모지만 기본적인 의식주가 되는 요양원에 모신 경우에는 효자라고 소리 듣는다.
또한 마지막 가는 길에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않고, 장례도 치르지 않은 상태로 시신이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시신이 발견하고 수사한 경찰이 자식들에게 연락해도 "그런 사람 모른다"나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다"식으로 모른 체하며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무연고 사망자 취급이 되는데, 실제로는 하늘 아래 혈육이 있으므로 무연고 아닌 무연고라는 아이러니한 신세다.
5.2. 자녀들이 끝까지 충성하는 경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은 실천하기 힘든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부모에 대해 철저하게 이 격언을 실천하고 있다.[49]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에서
하지만, 자식이 정말 호구처럼 착하거나, 부모가 자식이 충견마냥 잘 따르도록 복종 교육을 강경히 시킨 경우라면 죽을 때까지 절대적으로 충성한다. 부모가 늙어서도 심하게 대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이 늙었을때 부양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법원에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하기에 강권하는 모든 것을 강제로 다 받아주고 따르고 모시며, 거기서도 극단적으로 심하면 부당한 유언조차도 끝까지 들어주고 죽은 뒤에도 보복이 두려워서[50] 그 유언에 따라 이미 존재하지 않는 부모의 꼭두각시로 평생 살아가게 된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부모에 대해 철저하게 이 격언을 실천하고 있다.[49]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에서
특히나 대한민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사회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이렇게 효를 철칙으로 세우는 동아시아 사회에서의 막장 부모의 학대는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리 모질게 학대한 부모라고 해도 자녀가 존경하고 모시지 않는다면 패륜으로 몰아붙이는 여론들이 꽤 많으며, 과거부터 법원에서도 대부분 이런 부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자녀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판례가 많았기에[51] 이도저도 못하는 자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끝까지 막장 부모에게 충성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자란 자녀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더욱 잔인하게 체벌하며 그 악의 대물림을 또 다시 자식들에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52] 엄하게 교육받은 사람이 상급자가 되면 더 표독해지는 사례는 사회는 물론이고 친족간에서 상당히 흔하다.
게다가, 부모가 자신들의 기준에서 자식이 잘 되라는 생각[53]으로 심하게 체벌과 훈육을 가하던 경우에는 더더욱 부모에게 충성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부모의 분노가 섞이고 그 강도가 심해져 학대가 되어갈수록 자녀 입장에선 원망과 두려움이 커져서 '부모가 날 학대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효를 강조하는 주변 사회와 부모에게 받은 강한 교육으로 인해 반 강제로 끝까지 충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보통 "부모님에게 감사는 하지만 사랑하진 않습니다." 라는 시각을 가지는 자녀들이 대부분 이런 부모 아래서 자라난 아이들이며, 부모에게 감사는 하더라도 결정적으로는 부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덧붙여 이렇게 길러진 자식들은 대부분 두 가지 유형의 부모로 성장하게 되는데, 첫번째는 자신의 부모처럼 "잘 되라는 목적"을 이유로 똑같이 또는 더욱 강하게 훈육과 체벌을 자행하는 표독한 부모가 된 경우이며 일반적으론 이런 경우가 많았었다. 두번째는 이와는 반대로 아이에게 강한 체벌을 대물림하지 않고도 올바르게 키우려 노력하는 부모가 된 경우이며 이렇게 대인배로 자라난 자녀들의 사례가 최근 들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54] 물론 정말 심하게 체벌받은 경우에는 '그런 존재 속에서 태어난 나도 같을 거야. 이런 고리는 끊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극단적인 행동[55]을 하거나 반사회적인 성향을 갖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6. 결론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자신의 부모가 인격적으로 문제점이 없고 자식에게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었다면 그에 대한 존경과 배려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지키지 않고 정상적인 부모에게 해를 가하면 패륜아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부모로서의 정도를 지키지 않는 막장 부모 역시 패륜 이상을 저지르고 있음은 당연지사다. 키워주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배려도 중요하지만 부모 된 입장에서 가지는 책임감과 태도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키워주는 것의 중요함이 크다고 해서 부모의 잘못을 합리화할 수 있는건 아니다. 괜히 교육을 국가 백년지대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56]또한, 무조건 범죄자라고 낙인찍어버리고 비난만 하기보다, 그의 가정 환경을 먼저 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안 다음 교정할 방법을 찾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류의 삐뚤어진 사람을 지칭하는 언어 유희가 대부분 그렇듯 이런 단어도 오용, 악용될 여지는 얼마든지 생겨날 수도 있기에 막장 부모를 지칭하는데 있어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살해, 상습적 폭력 및 성추행, 완전한 방치에 가까운 미지원 등 명백한 막장급 만행이라면 모를까, 가벼운 훈계나[57] 사소한 의견차로 인한 갈등마저도 멀쩡한 부모를 막장으로 취급해 악용하는 사례 또한 얼마든지 존재하며 자녀에게 자상한 부모마저도 과보호로 우기는 등 그저 개인 눈에만 차지 않으면 막장부모로 몰아가는 상황도 발생할 수도 있기에, 막장부모를 대응하는 행동으로 옮기기 앞서 피해자의 집안의 사정부터 면밀히 파악하고 최대한의 사람들과 상담하는 등 막장 여부에 대한 대체적인 공감대부터 확보해 나가는것이 바람직한 현상일 것이다.
가장 큰 복수이자 용서는 성공이다. 성공으로 학대받은 과거를 날려버린 일례 중 하나를 들자면, 아버지의 아동 학대를 피하기 위해 서울에 상경한 뒤 2015년부터 2020년 8월 28일까지 6년 동안 서울에 청년 노숙자로 지내다가 이후에 성공한 시민위원 조형준의 경우가 있다. 그는 청년 노숙자 시절을 청산한 뒤 서울 시민회의[58]의 시민위원이 되고 나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게 된 제안인 청년 노숙자 대상 정보제공 및 상담지원이 서울창의상[59]의 장려상을 받으며 성공이라는 큰 전환점을 제대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 서울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형준이 직접 쓴 기사다.
7. 전망
저출산 시대에 이르러, 막장 부모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 걸로 보인다. 막장 부부는 있을 수 있지만, 자녀를 낳지 않는 부부는 막장 부모는커녕 부모가 된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은 1987년 민주화 이후,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치고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들어오며 비정규직 양산, 양극화 등의 문제가 생기고 이로 인해서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아동학대를 당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이 많아졌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보다 사회 문제로 법과 교육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줄여나가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아동학대를 향한 경각심과 피해 아동/청소년을 향한 관심은 단발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8. 막장 부모가 되지 않는 법
- 자식을 먼저 이해해주고 부모로서 자식의 앞길을 인도해주어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가정을 위해 앞으로 이끌어가야 할 주역이기 때문에 부모가 되는 여러분이 먼저 자식을 올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부모 본인이 과거의 일에 얽매이거나 그 자식이 배우자의 나쁜 기억을 떠올려 자식을 구박하면 안 된다. 부모도 부모만의 개인 인생이 있듯이 그 자식도 성장하면 개인의 인생이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 지나치게 자신의 불행하고 아픈 과거를 빌미로 자식을 억압하거나 구박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들 중 일부에서 과거에 대한 불행한 기억으로 또 자기 부모나 배우자 등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을 주어서 그런 트라우마에 시달려도 스스로가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에 관한 기억은 여러분의 인생사 한정으로 그치는 것도 좋다. 자식의 인생은 자식이 만들어 나가야 하므로 올바르고 착실하게 유도해주는 것을 위주로 하되 지나치게 그에 대한 아픈 기억을 빌미삼은 억압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억압 속에서 자란 자식일수록 나중에는 비행 청소년이 되어서 비뚤어질 수도 있다.[60]
- 자식에게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내가 그 자식을 성실하고 다정하게 키워나가야 하는 다짐을 해야 한다. 본디 자식은 낳은 정보다는 기른 정에 더욱 중시하는 존재이다. 여러분이 부모가 되어서 그 자식을 어떻게 가르치고 기르게 되었느냐에 따라 자식이 부모가 된 여러분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기른 정 앞에 있어서는 친부모 못지않은 애정이 있는 법이다.
- 엄하게 가르칠 수는 있으되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행패적인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엄하게 가르치는 것과 폭력적으로 억압하며 가르치는 것은 그 행동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자식을 대할수록 자식이 비뚤어지거나 나중에는 히키코모리나 대인기피, 학교폭력, 존속범죄 등을 유발할 수 있다.
- 자식이 약해보이거나 못났다고 해서 억압하거나 다른 자식들과 비교하거나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지나치게 억압을 받은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거나 교제 행위, 기본적인 사회 배려 등을 스스로 과도하게 금기시하거나 철저히 무시하는 등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참된 진정한 부모는 절대로 제 자식과 남의 자식을 함부로 비교하지도 않고 차별하지도 않으며, 남들 앞에서도 자식 앞에서만큼은 남 앞에서도 당당하면서 무섭게 보이는 법이다.
- 자식이 약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부모가 된 자들이 스스로 교육하고 강하게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자식은 부모 같은 윗사람의 조언과 유도를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에 부모의 교육이나 자식 사랑에 따라서 강약이 점점 바뀌게 변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낳은 자식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함부로 버리거나 쫓아낼 수 있는 존재가 절대 아니다. 그 자식이 잘나건 못났건 결국은 당신이 낳은 자식이다. 당신이 낳았던 만큼 당신이 책임지고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강하게 기르라고 해서 쓸데없이 엄하게만 훈육하라는 뜻은 아니다. 자식에게 쓴소리나 훈계를 하는게 어렵고 힘든 일이긴 하지만, 지나치면 바로 위 항목에 나와있듯 자식이 부모에 대한 증오만 키우며 아예 탈선할 수 있다. 자식도 학교에서 공부하듯, 부모도 반드시 올바른 교육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자식 앞에서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 솔직히 고백하는 것도 좋다. 비록 과거사가 나쁠지 몰라도 자식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먼저 자식들에게 자신의 과거사를 신중하고 솔직하게 얘기하여서 자식들에게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것도 좋다. 진정한 부모들은 좋지 않은 기억도 자식에게 해를 끼치기 않기 위해 과감히 고백을 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며 자식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부모가 된 입장에서 '어린 놈이 그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겠지만 자식은 집 안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다. 자신의 자존심에 얽매이지 말고 자식 앞에서 어른으로서 올바른 모범을 보이며 자식을 이해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 자식 앞에서 지나치게 부모만의 자존심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 부모로서도 자존심으로 그렇게 할 수는 있겠지만, 자식에게는 경우에 따라 마음의 상처나 트라우마로 남아서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나친 자존심은 남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듯이 부모의 지나친 자존심도 자식 앞에서는 마음과 정신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집 안의 가장으로서 자식의 입장에 먼저 이해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 자식이 어려움에 처할 때 부모가 먼저 인도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을 키우는 의무와 책무를 가진 존재인 만큼 이를 아는 참되고 진정한 부모들은 제 자식이 어려움에 처할 때 자신이 스스로 발 벗고 도와주려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 자식 앞에서 부모인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부모들, 특히 막장 부모들은'자기 자신이 부족함을 알면서도 정작 제 자식 앞에서는 자존심과 약한 놈한테 망신당하기 싫다는 심정으로 오히려 제 자식 앞에서는 오만스럽게 부족함을 숨기며 자식을 억압하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그와 반대되는 참된 부모들은 자식 앞에서도 '부모이면서 내가 너무 부족하다, 너한테 너무도 미안하다'고 솔직히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장부모들의 경우는 자신이 힘 없고 약한 존재일수록 그것을 숨기면서 자기가 자식보다 똑똑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헛소리를 해대면서 자식을 속이는 양면전'로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 자식의 미래를 먼저 바라보는 것도 좋다. 시간이나 세월은 한도 없이 흘러가게 되고 강산도 변하게 되듯이, 자식 또한 영원히 갓난아기나 어린애 또는 청소년으로 남을 수 없다. 결국은 그 자식들도 세월이 가면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다. 만약 당신이 '내 자식은 세월이 가도 평생 어린애로 남을 것 같다', '정신적으로 어린애 같을 거다'라는 오해를 가진다면 당장 고치는 것이 좋다. 세월이 흘러가는 이상은 자식은 영원히 어린애로 남을 수 없다. 그렇기에 부모인 여러분이 자식의 미래를 먼저 바라보면서 그 자식의 미래를 보장하고 준비해주는 것이 좋다. 이를 알고 있는 참된 부모들은 자식이 어리게 보여도 앞날이 바뀌고 쟤도 어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자식의 미래를 준비해주는 경우가 있다. 단, 미래를 먼저 바라본다고 자식을 부모가 정한 방향으로만 가게 강요하면 그것도 막장 부모로 가는 첫걸음이 될수 있다.
-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부모가 먼저 인도해줘야 한다. 부모는 나이가 많고 서열이 높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존재는 아니다. 진정한 부모야말로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식을 먼저 생각하고 자식이 부족하고 어려울 때 먼저 힘을 주고 인도해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막장 부모들에게 그 말은 그저 헛소리라거나 자기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우려가 높은 발언으로 들리기 때문에, 아무리 얘기해줘도 통하지 못할 수 있다.
- 남의 가정 자식이나 친척네 자식보다 못하다고 대놓고 비교하지 말자. 남의 가정에서 키운 자식은 자기 가정의 방식과 다르게 키워낸 자식들일 뿐, 결코 내 가정이나 내 자식의 교육노선과는 전혀 다른 존재일 뿐 내 가정이나 부모인 나에게는 이익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부모들일수록 남의 시선에서는 미친 인간이나 남의 자식 빼앗으려는 무모한 인간이라거나, 내정간섭에 사생활 침해하는 인간으로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남의 가정 자식은 남이 키워낸 자식일 뿐이자 남의 손에서 다르게 키워온 자식일 뿐 내 이익이나 기여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 내 친척네 자식이라도 친척과 내 식구는 서로 다른 노선을 취할 수도 있는 만큼 내 자식은 저런 자식보다 못하냐고 비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인 입장에서는 답답할지 몰라도 자식의 시선과 입장에서는 그 자식에 대한 질투심과 증오심만 유발시킬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경쟁 시대에 살아가는 만큼 절대 남의 자식들과 비교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그 자식에게서 이겨보려는 심보가 심한 편이라 이러한 비교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심보를 가지지 못하더라도 자존심 센 이상은 누구나 그 자식에 대한 질투와 증오심만 키워줄 뿐이다. 이런 부모에게 키워진 자식들은 경우에 따라 성격이 비뚤해져서 비행 청소년이나 불량배로 성장할 위험성도 크며, 심하면 반사회적 행동이나 상대방에 대한 질투와 혐오심을 크게 키워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 기대를 하되 강요는 마라. 예를 들자면 아이의 공부 방식이 잘못되었고, 그 때문에 성적이 부진한데도 아이가 학습법을 바꾸지 않을 수 있다. 몇 번을 고치라고 충고해도 고치지 않는다. 그게 몇십번 반복되었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되면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대신 아이 옆에 앉아서 아이가 공부할 때 계속 교정시키자. 아이도 당신도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순간, 그 순간에는 확실히 당신 아이는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 물론 '고쳐야 하는 자신의 행동이 그릇되었다' 라고 느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이 자신에게 손찌검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 당신이 아무리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행동하지 말라고 했어도 의미는 없다. 누구나 자기 보호가 우선이다. 당신이라면 매를 피하는 것이 먼저겠는가, 아닌면 당장 자신이 틀렸다고 판단하는 것이 먼저겠는가? 당장 코앞에 당신을 팰 누군가가 있는데 과연 당신이라면 판단이 될 것 같은가? 자식에게 기대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기대 때문에 당신 자식에게 끔찍한 기억을 심어 주는 것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 이미 부모가 되어버린 경우가 아니라면, 애초에 부모가 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부모가 되어야만 할 마땅한 이유 같은 것은 없으며, 막연한 자신감으로 벌인 일이 부모 자식 모두에게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부모가 되는 것이 부모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평균적으로 부모의 행복을 저해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Anderson, Russel, & Schumm, 1983 or Campbell, 1981) 이를 부모됨의 역설(parenthood paradox)이라고도 한다. 또한 인간은 언제든 다양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으며, 한결같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결코 나쁜 부모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예 아이를 낳지 않아 부모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여건(경제력, 성격 등)을 숙고한 후 자신이 없다면 낳지 않는 것이 더욱 책임감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
- 자신이 자녀를 대하는 방식이, 올바른 사랑이었는지 그릇된 사랑이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8.1. 훈계 강도의 완화
구박 대신에 사랑을, 주먹 대신에 손길을, 차별 대신에 관용을, 냉대 대신에 온정을. 엄한 것과 천박하게 폭주하는 것은 그 의미와 원인부터가 다르다. 기업인으로 비유한다면 전자는 구본무, 후자는 조현민이라고 봐야 합당하다.자식을 사랑하는 진정한 부모들은 막장 부모와는 달리 이러한 내용을 대부분 실천하고 있는 편이다. 자식에게 때로는 엄하면서도 사랑을 해주는 것이 전부이다.[61] 또한 고통스럽고 고생스럽게 얻은 자식이니만큼 강자든, 약자든 따지지 않고 자식을 낳은 기쁨에 충만하여 자식을 제대로 키우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러한 참부모들의 행동은 막장 부모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고, 실제 부모들이나 앞으로 부모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하고 지향해야 할 내용이다. 여러분들 중에 정말 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위에 나온 이런 내용은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자식을 제대로 사랑해주고 키워내는 부모야말로 나중에 자식에게도 귀감이 되어서 부모에 대한 보은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식도 역시 부모가 되어서 대대로 물려줄 수 있다.
- 내 자식이 약하고 못났다고 해서 구박하지 말고 자식이 올바르게 자라고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랑을 보태주자.
- 내 자식이 미워보인다고 날카로운 손찌검을 하지 말고, 따스한 손길로 인도해주자.
- 내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때로는 형제, 자매, 남매보다 부족하다고 차별하지 않고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자.
- 내 자식에게 냉대의 시선보다 온정의 마음으로 보살피자.
8.2. 부모의 정보를 중립적으로 전달하기
부모의 장점만 내세우기 보다는 단점도 알려줘야 한다. 자식에게 지나친 장점이나 권위만을 내세우는 부모는 부모라 할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의 단점 및 치부가 자식 앞에서 드러나면 창피하다 해도 오히려 자식을 모질게 대하고 구박하는 행위야말로 부모로서의 자격을 갖추지도 못한 것이다.자식을 사랑한다면 장점을 일러주는 것도 좋지만 부모의 단점도 일러주면서 자식에게 새로운 장점을 키울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부모의 장점을 말해주는 것은 물론 단점 역시 말해줘야 한다. 부모의 단점이나 치부를 숨기려 지나치게 장점만을 내세우며 자식을 구박하는 행위는 자식에게 또 다른 정신적인 충격을 줌과 동시에 자식 역시 부모를 증오하게 되며 나중에 막장 부모로 변하거나 패륜 범죄를 저지를수 있다.
세상에는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만 존재할 수 없다. 부모의 장점만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고 단점도 알려주면서 자식에게 새로운 장점을 찾아내어서 올바르게 키워주는 것이 부모된 도리이기도 하다. 자식은 부모의 장단점을 인식하며 새로운 부모로서의 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막장 부모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이러한 지나친 장점만을 부각하며 단점이나 치부를 자식에게 보이지 않으려 폭정과 구박으로 대한다. 자식이 부모의 단점이나 치부를 알게 되면 부모 자신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자식이 부모를 깔보거나 가벼이 볼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숨기던 단점이나 치부를 자식이 알게 되었을 때에 돌아오는 것은 업신여김, 무시보다는 배신감, 충격이다.
8.3. 남의 자식과 비교하지 않기
막장 부모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이 남보다 못났다며 남의 자식과 비교하면서 남의 자식에게 과찬하거나 아부를 떨며 자랑한다. 이 경우는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는 만족하지 않지만 남의 자식은 좋아하는 것을 의미한다.참된 부모는 막장 부모와는 다르게 경우에 따라 우열을 가리지 않고 자기 자식에 대한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절대로 남의 자식과 비교하지 않거나 많이 안 한다. 만약에 후자에 해당해도 부모가 직접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알고 보면 자기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어떻든 자기 자식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운명이 갈려서 그들이 서로 다른 것이지만 상식적으로는 같은 자식뻘이나 다름없으므로. 자기 자식을 강하게 키우되 남의 자식과 지나치게 비교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언행이나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도록 자제해야 진정한 부모가 될 수 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경쟁의식이 심각하기 때문에 남에게 뒤처지지 않아야 할 경쟁의식을 가진다. 남의 자식과 지나치게 비교해도 경쟁의식을 가진 아이에게도 자존심에 상처를 주거나 불쾌감을 받게 한다. 가장 심각한 경우 아이가 남보다 못났다며 아예 그 주장을 인정해서 포기할 수도 있다. 특히 후자가 전자보다 더 심각하다. 아이가 자신감을 잃으면 사회생활하는 데에 큰 지장을 준다.
무엇보다 자기 자식을 남의 자식과 비교하는 것은 절대 부모의 소득에 도움을 줄 수 없다. 남이 해주는 평가로 먹고 사는 여론 조사나, 남에게서 인기나 평판을 받으며 돈벌이하는 연예인도 아닌 이상 남의 자식과 비교하는 행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를 다른 집 자녀와 비교하는 순간 자녀 또한 부모를 다른 집 부모와 비교하며 부모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더 심하면 부모에 대한 적개심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부모들은 "비교를 들었으면 더 잘하겠다고 마음먹고 공부나 해라!"라며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자녀들을 다그치지만, 이런 처사들이야말로 오히려 자녀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길이다.
형제, 자매, 남매 사이에서도 자식을 비교하면 안 된다. 남의 자식과 비교하는 것만큼 좋지 않다. 더 심하면 부모와의 관계를 넘어서 가족 전체의 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그 좋지 않은 영향이 열등감이나 질투, 또는 증오심으로 번지면 절대로 과장이 아니며 각종 사건사고들이 연발로 터지거나 최악의 경우 가족들 중 일부나 모든 가족들의 생명이 그 아이의 손에 증발할 수도 있다.
8.4. 불행한 과거는 자식을 억압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막장 부모들 중에서는 자신의 남편 또는 아내에 의해서 좋지 않은 기억이나 가슴 아픈 트라우마나 혐오증을 안게 되었던 것을 계기로 결국은 그 남편이나 아내와의 관계에 의해서 낳아진 자식에 대해서 그 남편놈이나 그 아내년을 닮았다느니, 그놈이나 그년의 더럽고 추한 피와 성격을 이어받았다며, 혹은 그들의 면상이 생각난다며 통틀어 잡아 싸잡아 억압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그와 관련이 없는 자식만 졸지에 아무것도 모른 채 상처만을 줄 뿐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결국 그로 인해서 억울한 정신적인 피해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은 그 자식들이다.자기에게는 좋지 않다며 과거사 얘기는 진지하게 하지 않고 기피하면서 자식도 모르는 과거사의 안 좋은 기억만 들먹이고, 그 남편이나 그 아내를 닮았다며 또는 그들의 피와 정신을 이어받았다며 매정하게 구박하고 학대하는 막장 부모들이 많이 있다. 그들 입장에서는 한풀이나 화풀이를 한다며 그런다고 하지만, 과거사와는 관련도 없고 영문도 모르면서 그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으며 자라는 자식들에게는 또 하나의 상처를 주는 일이자 정신적인 고통만 주는 일일 뿐이다. 자기의 불행한 과거사에 얽매여져서 결국 그 트라우마로 인해서 자식을 억압하는 것이다.
굳이 이것은 남편이나 아내 뿐 아니라 부모들 자신의 부모, 즉 자식들의 조부모나 선대적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강압이나 불화 등을 겪은 사람 사이에서도 정신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굳이 부부끼리의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부모의 부모가 막장이었다면 결국은 그 유전과 대물림을 이어받게 되었던 것도 막장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대개는 부부끼리의 불화나 갈등에서 나온 것이라지만 개중에 절반은 그 자식의 부모의 부모, 자식들의 조부모의 불화와 모진 억압 및 폭정에 시달렸던 정신적인 트라우마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특히 과거에 아동 학대에 시달렸던 적이 있는 부모들이 이런 편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개인으로서는 그 과거사가 어쩌면 좋지 않을 수 있고 불행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모르는 자식들에게는 그저 억울하게 피해를 당할 뿐이다. 아무리 내 과거사가 불행하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구박받고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면서 그 남편이나 그 아내의 피를 이어받았다며 자식을 미워하고 구박하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과거사가 불행할지 몰라도, 과거사를 얘기하고 싶지 않아도 결국은 자식에게 다 털어놓아야 한다. 부모인 내가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왜 내가 너를 이렇게 대하는지 대해서 솔직하고 진지하게 얘기해보자. 비록 이해를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자식들은 경우에 따라 그런 부모의 과거사를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그것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자식밖에 없기 때문이다.
8.5. 자식의 장래 인정
학생엄마: 저는 한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집이 가난해서 한의사가 되지 못해서 제 자식을 한의사로 만들고자 합니다.
상담가: 어머니, 본인의 희망을 자식에게 강요하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어머니가 공부하셔서 한의사 되는 것이 빠릅니다.
학생엄마: 저는 공부머리가 나빠서 한의사 되기가 어렵습니다.
상담가: 어머니, 어머니 스스로 힘들다고 하신 것을 자녀분이라고 쉬울까요?.
학생엄마:......
막장 부모들의 유형 중 자녀에게 고난이도의 학업과 부모가 원하는 진로를 강권하는 호랑이 부모에서 많이 등장하는 사례이며, 한국 막장 부모들 중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유형인 동시에 최악의 유형이다. 적어도 사랑의 매는 자녀를 훈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라도 있겠으나, 특정 장래희망을 강요하는 것, 특히 부모 자신의 직업 또는 자신이 목표로 했다가 갖지 못했던 직업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짓은 자식에게 있어 평생을 고생시키는 길이다. 가령 수학과 물리에 소질이 없는 자녀에게 이공계 학과와 직업을 강요한다면 답이 없다.[63] 자식이 부모의 강요로 인해 적성과 흥미에도 맞지 않는 공부와 일을 강제로 꾸역꾸역 하는 것은 학대의 악순환이다.상담가: 어머니, 본인의 희망을 자식에게 강요하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어머니가 공부하셔서 한의사 되는 것이 빠릅니다.
학생엄마: 저는 공부머리가 나빠서 한의사 되기가 어렵습니다.
상담가: 어머니, 어머니 스스로 힘들다고 하신 것을 자녀분이라고 쉬울까요?.
학생엄마:......
자식의 장래희망이 나와 다르다고 특정 장래희망을 강요하지 말자. 부모와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자신의 인생의 설계를 다르게 할 수가 있다. 장래 얘기를 한다는것 자체로 자식간의 불화가 생길수 있다. 심한 경우는 부모가 장래를 얘기 하는것 조차 자녀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어 부모는 몰라도 자녀는 몸이 타들어가는 기분이 들 정도다. 굳이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 해도 장래희망은 다를 수 있다. 또한 부모와 자식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같은 직업이라도 인식은 매우 달라져 있다. 예를 들어 장교는 군사독재정권 당시에는 상당히 고급 직렬에 속했지만 현재는 그렇게까지 선호받지는 못하는 직업이며, 반면 아이돌은 과거에는 '딴따라'라며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은 직업이었으나 현재는 서로 못해서 안달인 최고의 유망직종이 되었다. 교사, 공무원 등도 현재에 이르러 유망직종이 되어버렸다.[64]
이렇게 되는 원인은 있는데 본인이 이루고는 싶었지만 이루지 못해 자식에게 이루길 강요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즉, 자식을 독립적인 인격이 아닌, 순전히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 즉, 소유물로만 보는 것. 하지만 본인이 이루지 못했다면 그걸로 끝내고, 본인이 새로운 장래희망을 찾아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사고방식이다. 그걸 자식에게까지 대물림시키는 것은 단언컨데 자녀 학대이다. 하면 안 되는 짓이다. 쓴 맛이 나더라도, 그 직업에 들어가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이 아깝다 하더라도 깨끗하게 포기하자. 현실의 팩트폭력을 가미하자면 어차피 포기하지 않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포기를 못하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짓은 본인 혼자로 끝내자. 자녀한테도 자신이 하고 있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짓을 강요하면 안 된다.[65][66]
이러한 부모들의 특징이 어릴적 애정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거나 억압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 자존감이 바닥인 상태이다. 따라서 안 좋았던 과거에 대한 보상을 얻고자 하는 보상심리가 자신의 자녀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내가 잘난 건 없었어도 내가 낳아서 키운 자식이 잘 크면 내 욕심이 채워진다라는 심리가 반영된 것.
대한민국에서 부모가 (거의) 강압적으로 자식에게 자신의 직업을 세습하는 대표적인 직종 중 하나는 운동선수이다. 대한민국은 일부 인기종목을 제외하면 선수층도 엷고 인프라 구축도 미약하고 서구 선수들에 비해 피지컬도 딸리다보니 많은 선수들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학창시절부터 운동에만 올인하다시피하기 때문에 맛보기로라도 다른 일을 체험해 볼 기회가 거의가 아니라 전혀 없다고 하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자식에게 지도해 줄 진로를 운동 이외에는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니 자녀들도 부모의 영향에 의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운동선수의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둘 것은 있다. 자녀가 원하는 장래희망을 가도록 허락하되 '그 분야로 가기 위한 책임은 네가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나중에 자식이 그 진로로 가길 도전했다가 실패할 경우 왜 자신을 말리지 않았냐고 원망할 경우를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이다. 그 대신, 자식이 도전했다 실패하고 다른 길을 간다고 해도 구박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녀가 진로를 여러 번 시도해가며 노력하는 것도 인생에서 성장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럴 때는 구박하지 말고 자녀가 실패에 주늑들지 않도록 격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자녀의 진로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자녀가 선택한 진로에서 실패했을 때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자녀에게 본인의 진로 선택 인정 조건으로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식의 장래희망을 강요한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이은석 사건인데, 이은석의 어머니는 장교와 결혼하려는 이유부터 남편이 쿠데타를 일으켜줘서 제2의 육영수가 될 야욕에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한 남편은 육군 장교가 아니라 해병대 장교였기 때문에 군사반란의 꿈은 물 건너갔다. 그것 때문에 아들인 이은석에게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길 강요했다. 하나 이은석은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진학했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었는데도 진학하지 않은 아들을 심하게 학대했다. 결국 참다 못한 이은석은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하게 되었고 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형을 선고받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가정이 파멸하게 되어 형과 유족들이 큰 충격을 받았고 사회적으로도 충격이 컷다. [67]
심한 경우, 수능 끝난 당일날, 부모나 가족 누군가가 원서 접수 사이트(유웨이, 진학사 등)에 접속하여 자식의 주민번호를 도용해서 아이디를 만들어서, 자녀의 의사와 관계 없이, 원하지 않는 대학교에 원서를 제출한후 강요하는 사례가 있다. 이렇게 자녀의 수험생활과 미래를 농락하는 경우도 있으니 암담한 일이다. 대체로 자녀들이 공부 잘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자녀가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아서 자연대나 공대에 지원하려고 하는데, 부모가 강제적으로 의대에 정시 원서를 넣어버린다면? 그런 부모는 자녀의 적개심만을 키우고, 효도 받을 자격도 잃어버린다.
급기야 2018년 일본에서는 어머니로부터 어려서부터 의대 진학을 강요당하며 9년간이나 재수를 강요당한 딸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특히 이 딸은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커서 어머니를 괴물이라고 말하며 교도소가 집보다 편하다고 말하여 충격을 주었다.
8.6. 자수성가 강요 금지
자수성가를 강요하는 부모 치고 제대로 된 인간 없다. 막말로 자수성가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결국 자식을 나이가 찼다고 아무 상황도 파악하지 않은 채 무일푼으로 내쫓아 알아서 살라는 일명 낳아서 팽개치는 짓을 저지른다.굳이 자녀라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기반이 있어야 뭘 해보는데 아무 기반도 없이 그냥 몸뚱이 하나 던져놓고 알아서 해라 라는 식으로 완벽한 남이 되어버리는 부모는 결국 자녀를 노숙자로 만들 뿐이다.
정말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어쩔 수 없는 것과 유복한데도 일부러 이러는 것은 절대 같은 게 아니다. 당장 고시원에서 10년 이상 썩고 있는 인간들을 보면 이런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모라면 자식이 가진 목표에 대해 최소한의 도움은 줘야 한다. 부모라고 해서 자식을 무일푼으로 내쫓아버리면 자식은 부모에 대한 증오가 커져서 역으로 부모를 찾아가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비극이 터진다.[68]
8.7. 부모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기
나도 어릴 적 의사인 부모에게 매일 학대 당하면서 자라서 적어도 영재에게는 내 부모만큼 괴롭히지 않았으니 나는 깨어있는 부모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어.
- SKY 캐슬 中 박수창
한데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고, 아직 자아가 덜 형성된 사춘기 이전 어린이라면 모를까, 정체성이 이미 굳어 변하기 힘든 어른들에게 잘못된 점을 말해줘도 그걸 인정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하고 설령 알더라도 그걸 고치려고 하지는 않을테니 설령 자기 부모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면 차라리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기본적으로 막장 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말 따위는 절대 듣지 않고 얼버무리려 하는 성향이 강하기에 자식이 좋은말로 설득 하려고 해도 그냥 씹거나 대놓고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는 선에서 끝나면 양반이요, 보통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폭언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축사장에서의 돼지에게 아무리 고급 사료를 먹이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주어도 주인이 폭언이나 폭력을 주기적으로 행사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데, 얼마나 자녀에게 풍요로운 경제적 지원을 해주어도 자녀에게 폭언, 폭력, 독재 등을 했다면 아무리 효심이 강한 자녀라도 부모에 대한 원망과 상처는 생긴다. 그런데 그 원망과 상처를 자기 부모에게 털어놓는다?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가 범죄이니 그만두라고 말하는 꼴이다. - SKY 캐슬 中 박수창
사실 이건 세상 모든 사람들 대부분은 누구나 자신의 단점이나 치부만큼은 남이나 나보다 아랫나이 사람들 또는 윗사람들에게도 숨기고 싶은 심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거짓으로 과장된 자신만의 장점만을 내세우며 오만을 부리는 경우가 많고 경우에 따라 그것을 보이지 않기위해 나 자신은 속으로는 아쉽고 미안해도 결국은 나의 단점이나 치부를 숨기기 위해서는 나보다 아랫사람을 억압하고 함구하는 방법이 옳은 것이라며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 진짜로 솔직담백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누구나 자신의 단점이나 치부는 숨기게 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나 자신에게는 단점이나 치부를 숨길 보장이나 대가는 생겼지만 상대방에게는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안게해주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에 대물림되거나 이 같은 치부를 숨기고 싶게 되면 새로운 상대에게 저절로 똑같은 되풀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세대들 중에서도 괜히 꼰대나 노인충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 아니다. 이들 역시 젊은시절에 선대시절 윗 사람들에게 갈굼과 억압을 받고 살아왔던 아픔과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치부와 고통이 되기에 나이가 들고 나보다 아랫사람들 및 젊은이들에게는 이를 숨기거나 보이지 않게하려고 일부러 꼰대질이나 삿대질을 하는 경우가 있곤 한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도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되면 또다른 새로운 젊은이들에게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단점이나 치부를 숨기는 것은 본인에게는 필수적일지 모르지만 결국 누군가는 자연히 알게되고 먼 훗날에도 후손들에 의해 밝혀지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솔직담백하게 인정하는 것이 옳을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은 아무리 숨겨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결국 그 장점이든 단점이든 당신 인생사의 진실어린 일부에 속할 수 있다.
자신의 장점은 물론 단점도 알면서 정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로 이런 막장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사회가 본받아야하고 아랫이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사람이며 아래사람에게 주먹질보다는 손을 잡아주며 함께 가려는 것이 이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9. 관련 법률과 판례
- 영아 살해죄(嬰兒殺害罪, infanticide): 죄명 때문에 "국내법에서는 영아살인을 성인에 대한 살인보다 가볍게 처벌한다" 라는 오해가 퍼져있지만, 저 법률은 직계존속이 자신의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서(강간에 의한 임신 등)나 자신이 아동을 양육할 수 없을 때, 또는 기타 참작할 만한 사정에 의해 신생아를 죽였을 경우 일반 살인죄보다 낮은 형량을 주는 제도이다. 하지만 그 참작할 만한 사정도 없이 일어난 경우 일반적인 살인죄로 처벌되며 당연히 일반적인 살인보다 죄질이 악랄하다고 인정되어 가중처벌되는 경우가 많으나 그 가중처벌이랍시고 주는 형량조차 10년이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금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상 아동학대살해죄가 추가되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위에서 말한 '참작할 만한 사정' 으로 인한 영아살인에 대해서는 처벌이 가벼운 경우가 많다. 영아 살해죄의 형벌은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일반 살인죄보다 처벌이 가볍다. 게다가 실제로는 산후 우울증을 이유로 들면 집행유예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많고, 징역은 2년에서 3년 징역 정도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법 체계는 사실 어머니에게 어린 자식의 생사여탈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오인되지만 이런 경우 정상 참작이라 봐야 한다.
- 부작위범: 위의 사례 대부분은 부진정부작위범에 해당된다. 부진정부작위란 작위로 규정된 구성요건을 부작위로 실현하는 것을 말하는 바, 보증인적 지위에 있는 자를 주체로 하고 있는 특징을 지닌다. 즉 자식을 보호해야 할 지위에 있는 부모가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자식이 사망/상해에 이르게 될 경우에는 작위범인 살인/상해죄와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받게 된다. 문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와 달리 친족이나 13세 미만의 미성년자,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한 살인을 가중처벌하는 조항이 따로 없는데다 부모의 자녀 살해 사건은 대부분 참작 동기 살인으로 처리되다 보니 형량이 지나치게 낮게 나온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판결문에는 죄질이 나빠 가중처벌한다면서도 묻지마 살인만도 못한 형량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존속살해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자녀의 부모 살해는 패륜범죄라며 가중처벌하면서 부모의 자녀 살해는 생활고에다 실체도 없는 처벌불원으로 감형되는 일이 많아 미성년자 살해죄, 장애인 살해죄[69] 등을 추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이 모방범죄를 부추기기도 하는데, 실제로 한 고3 여학생이 동급생을 살해하고 뻔뻔하게 "저 살인했는데 징역 5년이죠?"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사례까지 나오기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성년 자녀를 무참히 살해해 놓고 우울증과 생활고로 감형받을 생각이나 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확실한 건 고등학생이 살인을 저지르고도 양형 기준을 교묘하게 악용할 정도로 처벌 수위가 물러터졌다는 것이다. 당연히 성인인 막장 부모의 경우는 이게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부모에 의한 자녀 살해 사건 중 열의 아홉이 참작 동기 살인으로 처리되는 기조가 지속되는 한 "너 죽여도 5년밖에 안 살아"와 같은 말을 꺼내며 자녀에게 몹쓸 짓을 하는 부모가 나올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뻔뻔한 부모에게마저 판결문의 내용 상으로는 최소한 10년은 선고될 것 같이 보이지만 이 역시 5년형이 나오기도 한다.[70] 언론의 문제도 한 몫 하는데, 미성년 자녀 살해 사건에서 징역 10년은 중형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벼운데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아무리 무거운 범죄라도 10년만 넘으면 중형이라고 서술하는 경우가 많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71]
- 형사소송법상 직계존속 고소, 고발 제한의 경우에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6조 2항(피해자는「형사소송법」제224조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행위자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인 경우에도 고소할 수 있다. 법정대리인이 고소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7조(성폭력 범죄에 대하여는 형사소송법 224조 제한에도 불구하고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할 수 있다)에 의거, 가정폭력과 성범죄의 경우에는 직계존속을 고소할 수 있다.
- 서두의 주석에도 언급하였다시피 부모와 자식이 극한 다툼을 벌인 실제 사례가 있다. 이 사례는 가족 관계 그 자체를 문제삼아 법정 다툼을 벌인 최초의 사례이다. 부모가 자식으로 인해 가족 관계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자식의 출생시로 소급하여 관계를 끊고, 가족 관계에 따라 부여되는 모든 권리와 의무를 잃게 하며, 장래애도 절대로 주장하지 못하게 하라는 취지로 법정 다툼을 벌였다. 가족 관계 그 자체에 대해 다툴 수 있게 하는 법률조항이 없어 각하 판결이 나왔으나, 사례 자체의 막장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 판결은 가족법의 근본적 맹점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였다. 이 근본적 맹점이 알려진 이후 법 집행에 발목이 잡히는 사례가 속속 드러나자 검찰조차 법률 집행기관으로서 법원에 유감을 표명했을 정도다. 영미권 국가에서는 이러한 취지의 청구가 가능하며, 인용 사례도 존재한다. 유명인 중에서 이와 같은 사건을 겪은 사람으로는 맥컬리 컬킨이 있다.
10. 어록
아빠는 나를 좋아합니다.
아빠는 말 잘 들을 때만 나를 좋아합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합니다.
엄마는 기분 좋을 때만 나를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는 나를 예뻐합니다.
엄마, 아빠는 남이 볼 때만 나를 예뻐합니다.
-공익광고협의회, 2014[72]
아빠는 말 잘 들을 때만 나를 좋아합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합니다.
엄마는 기분 좋을 때만 나를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는 나를 예뻐합니다.
엄마, 아빠는 남이 볼 때만 나를 예뻐합니다.
-공익광고협의회, 2014[72]
자식들은 부모에게서 온갖 구박과 학대를 당하기만 해도 정신적인 고통과 우울증, 그리고 자폐증과 대인기피 등에 시달려서 결국에는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의 부모에게 구박당한 아이들일수록 불행한 인생사와 과거사로 인해서 영원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미래에 가서 자신의 자손에게도 자신의 부모가 가해왔던 악습을 대물림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따뜻한 보살핌과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하겠습니다.
부모에게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아이일수록 사회적으로 일탈 행동이나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기피를 부를 수도 있으며 어린 정신일수록 어른에 비해서 상처가 깊어지면 트라우마에도 시달릴 수 있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온화하고 친절한 보호가 절실할 것으로 보입니다.
- 한국 가정법률상담소[73]
부모에게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아이일수록 사회적으로 일탈 행동이나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기피를 부를 수도 있으며 어린 정신일수록 어른에 비해서 상처가 깊어지면 트라우마에도 시달릴 수 있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온화하고 친절한 보호가 절실할 것으로 보입니다.
- 한국 가정법률상담소[73]
대개 부모님들 중에는 자식을 비효율적으로 키웠던 분들이 계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부모님들일수록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다는 얘기가 될 수 있으며 부모님이 자식을 올바르고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도록 권장해드리는 바입니다.
- 한국 가정법률상담소
- 한국 가정법률상담소
"너희 중에 아비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또는, 달걀을 달라 하면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74]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늘..."(후략)[75]
루카 복음서 - 11장 11-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늘..."(후략)[75]
루카 복음서 - 11장 11-13절
한낱 짐승 새끼들도 제 자식 귀한 줄은 압니다. 그런데 폐하께선 도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한고제가 팽성대전에서 참패하고 도주하던 중에 자기 자식들을 무거워서 마차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달리는 마차 밖으로 던지자, 마차를 몰던 하후영이 노하면서 유방에게 하는 일침.
한고제가 팽성대전에서 참패하고 도주하던 중에 자기 자식들을 무거워서 마차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달리는 마차 밖으로 던지자, 마차를 몰던 하후영이 노하면서 유방에게 하는 일침.
부모는 하나의 중요한 직업이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자식을 위해 이 직업의 적성검사가 행해진 적은 결코 없다.
조지 버나드 쇼
조지 버나드 쇼
부모? 그쪽은 내 재능을 상품의 일부일 뿐이라 했어. 더는 내 아버지가 아니야.
단 쿠로토
단 쿠로토
증오스러운 미친 아버지. 경영에 재능 하나 없는 주제에 회사를 좀먹기나 하고, 하다 하다 인간을 아내로 삼는 짓까지 하다니... 그 날 이후, 스토머크 가는 이상해졌어. 없어져 버리니 속이 후련하구만.
랑고 스토머크
랑고 스토머크
교육이었다... 애 버릇 고치려고 그랬다... 너같은 쓰레기 부모의 레파토리가 늘 그렇지.
잘 들어! 아이를 위하는 것이 교육! 부모가 자기 편하자고 벌주는 건 『사육』이라고 한다!
나화진
잘 들어! 아이를 위하는 것이 교육! 부모가 자기 편하자고 벌주는 건 『사육』이라고 한다!
나화진
11. 관련 문서
[1] 미국 심리치료사 수잔 포워드가 쓴 《Toxic Parents, Overcoming Their Hurtful Legacy and Reclaiming Your Life》라는 책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정식 학술용어는 아니다. 해당 책은 한국에서 《흔들리는 부모들》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하였다.[2] manipulate는 조작하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3] abuse는 학대하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4] 자식에게 '독이 되는 부모(毒になる親)'. toxic parents라는 영어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위 책이 일본에서는 《독이 되는 부모, 평생 고통받는 아이(毒になる親 一生苦しむ子供)》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5] 대부분의 언론에선 '막장'과 '부모' 키워드를 떨어뜨리는 형태로만 주로 검색에 잡히며 '막장스런 부모' 본래 뜻으로 쓰이는 사례는 없는건 아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뉴스로 막장 부모 키워드 검색 결과[6] 실제로 심슨 가족 에피소드에서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7] 대한민국에서 2010년대에 들어서야 학생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음을 생각해 보자.[8] 더구나 밤이 된다면 자유롭게 출입 가능한 성인과는 달리 찜질방, PC방 같은 저렴한 시설이 금지되는 등 숙박에 제약 또한 많다.[9] 국가 차원의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위 링크로 소개된 청소년 상담센터도 국가 차원의 복지 센터도 존재하고 이곳에서 '청소년 쉼터'라는 숙박 시설 또한 운영하기에 가출 및 학대에 노출된 청소년이라면 참고해자. 취재대행소 왱에서 취재한 청소년 쉼터[10]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했던 기간에 발생한 창녕 9세 아동 학대 사건을 계기로 가정에서 장시간 또는 온종일 부모와 함께 머물게 된 아동들의 학대 피해 문제가 대두되었다.[11] 아동학대 뿐만 아니라 이혼율도 전세계적으로 급증하는 등 가정 문제가 터져나오기도 했다.'Covidivorce'에 관한 기사[12] 가정에서 벗어난 뒤 마주칠 경제적 어려움 등이 있다.[13] 막장 부모보루터 양육권 박탈, 격리 조치나 해당 부모 처벌과 교육 및 정신 치료, 그리고 피해 아동 및 청소년을 향한 지원 등이 있다.[14] 사실 지금은 그런 댓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호구냐고 반문하면서 빨리 연 끊으라고 반응하면 반응했지 이런 식으로 반응하면 오히려 꼰대네, 뭐네 하면서 숱한 저격 퍼레이드와 함께 매장당한다. 그래도 사람들의 인식이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증거이지만, 오히려 그 글을 쓰는 사람이 본인이 불효자식인가?라고 질문한다.[15] 제대로 된 유교 문화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잘하는 것 또한 중요하게 가르쳤다. 특히 "자식이 잘 한 것은 부모가 잘 가르쳤기 때문이다"라는 동인을 주어 밥상머리에서 잘 가르치는 것을 덕목으로 여겼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막장 부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근현대 사회에 왜곡된 것이 크다.[16] 설령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아버지라도 대한민국 사회가 군대 갔다온 남자들이 학교에서 교련 교사로, 직장에서 상사로 두루두루 퍼져 있기 때문에 군대문화를 민간에서도, 심지어 여성들도 아주 쉽게 학습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징병제 국가인 만큼 군대문화를 경험해보지 않은 남성은 소수에 불과하다.[17] 예를 들어 자녀 월급이2백대인데 생활비는 3백대 이상을 매달 요구[18] 한예로 이제 고아원에서 막 독립한 자녀에게 나타나서 자립지원금부터 자녀가 벌어온 돈을 모두 강탈한다.[19] 1980년대까지 국민학교는 교실이 부족해서 오전/오후반을 나누고 한 반에 5~60명을 채울 정도로 아동이 넘쳐났다. 이게 6.25 전쟁으로 인구가 엄청 바닥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렇게 인구 포화 수준까지 올라오는 주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이후에는 저출산이 심각해지고 결혼기피가 증가하여 202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인구 감소가 시작되고 있다. 급기야 2020년대 들어서 서울에서도 2020년 강서구 가양동 염강초등학교에 이어 2023년 광진구 화양동 화양초등학교가 폐교되는 등 소규모 학교들의 폐교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20] 대한민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아이는 다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속담이 전해져 왔는데 이는 영아살해를 막기 위한 일종의 민간신앙에 가깝다. 한마디로 일단 낳고 보면 애는 어떻게든 지가 알아서 크게 돼 있고, 또 그렇게 안 되어 애가 죽더라도 그건 그 애가 가진 복이 거기까지였기 때문이니 부모가 자책할 필요 없다는 논리인데, 피임 방법도 마땅히 없고 부모가 물심양면으로 노력한다고 해도 영아 사망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전근대 농경 사회에선 이게 당연한 사고방식이고 원치 않게 아이를 잃은 부모들에게 위안이 되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현대화된 사회에서마저 먹고 살기 힘든 집에서 애를 계속해서 가진 데에는 이런 사고도 한몫했다. 2009년에 대통령이 거론할 정도로 한국에 꽤 뿌리깊게 남아 있는 사고 방식.#####[21] 당연한 얘기지만 이 경우 계획도 없고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어거지로 가정을 꾸린 터라 십중팔구로 막장 가정이 될 수밖에 없는데 1997년 외환 위기 이전 경제 호황기에 미래에 대한 낙관이 너무 강해지면서 이런 사고 방식이 절정에 이르렀었다. 물론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경제가 개판이 난 이후에야 서서히 그런 사고 방식이 줄어들었다. 아무튼 이 같은 경우 아이들 입장에선 '낳아 주신'이 아니라 낳음 당했다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이며 현재 한국에서 가정불화와 패륜범죄가 잊을만하면 터질 정도로 심각한 이유다.[22] 석주명이 대표적인 예다. 이때문에 석주명도 결혼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엉망으로 하여 아내와의 불화가 극심해져 결국엔 이혼으로 끝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부모가 될 마음 준비도 안 한 상태에서 억지로 결혼을 했으니 필연적으로 막장 부모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23] 자녀가 스스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자녀의 기분을 헤아리지 않고 갑과 을의 관계로만 수직적으로 접근하여, 마치 창작물에 나오는 사악한 신이 된 것마냥 "내 너를 낳아주었으니, 너는 투정 부리지 말고 나에게 보답해줘야 한다"는 식으로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과 부모가 자식의 성장을 위해 힘쓰는 것은 똑같이 중요한데,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한쪽만 강조하다 보니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태어나게 해줬어도 지옥과 같은 생활을 살게 한다면 자식 입장에서는 태어나지 않았음이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당연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경우엔 부모가 "낳아준 걸 감사히 여겨야지" 라는 말이 귀에 들릴 리가 없다. 이러다보니 자식 입장에선 부모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커져서 최악의 경우엔 존속 폭행과 존속살해로 이어지기도 하니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다.[24] 다만 김봉곤 훈장이 말하길 자신의 노후 준비보다는 자식 뒷바라지가 우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라는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자식 뒷바라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효도 받기를 바란다는 것은 유교적 관점에서도 옳지 못하다. # 자녀가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장성하면 더 이상 자식에게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자식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자식 뒷바라지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도 포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대한민국이 권위주의적 가치관에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세대 갈등과 문화적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세대교체가 되면 해결될수 있는 문제이다.[25] 2010년대 들어 한국에서 독신자와 딩크족이 늘어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한데, 특히 후자는 배우자까지는 감내한다 치더라도 아이 뒷바라지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자유의 포기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6] 자식 입장에서는 그래도 밥을 먹여줄 사람은 친부모밖에 없고, 친부모 입장에서도 애를 학대한다 쳐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사고관 때문에 그 사고관에서 벗어나는 선은 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자식이 막장 부모를 벗어나도 받아줄 곳이 마땅치 않던 시대니 뭐 문제는 이 문제가 쌓이고 쌓인 끝에 폭발하여 패륜범죄로 악화되어 가정이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27] 애당초 자식이 태어나는 것부터가 자식의 의지가 아닌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모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일이기에 자식이 어지간히 막장이 아닌 이상 이런 주장은 궤변에다 적반하장에 불과하며, 오히려 자식은 부모에 의해 생명이라는 무거운 짐을 억지로 떠맡은 피해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괜히 낳은 죄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28] 예를 들어 키워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것만 강조한다면, 부모가 사학 재단 이사장일 경우 부모의 재단 비리를 묵인해야만 한다는 딜레마가 생긴다. 공익을 위한 행동이 불효가 되는 것. 또한 평소엔 남을 패거나 심지어 살인이란 짓까지 하고 다녀도 부모에게만 잘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학교폭력이나 살인범죄를 조장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자식과 부모 모두 잘못된 인격체를 형성하게 된다.[29] 특히 차우셰스쿠의 인구 정책도 시행 과정이 막장이었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한데다 성과도 나쁘며 결국엔 실패했다.[30] 연달아 드러나는 가정 범죄, 아동 학대 사건들 때문에 2010년대 들어 사건이 급증했다는 의견도 보이나, 이전 사건들은 공론화가 되질 않아 주목받지 못하거나 묻히며 최근의 사건들만 돋보이는 가능성 또한 높다. 이전에도 이은석 사건 같은 아동 학대 관련 엽기적인 사건들이 존재했다는 점을 보아선 당시에도 분명히 막장 부모는 존재해 왔다.[31] 2020년 초중고생의 부모 세대는 학창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듣고 자란 세대이다. 특히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와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학부모 세대들은 자녀의 학업성취도, 석차보다 건강, 안전, 올바른 교육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다.[32] 특히 자식의 성적에 엄청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건 절대 빠지지가 않는다. 워낙 교육열이 높아서 그렇지 사실 자식의 성적에 과하게 매달려 자식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것 역시 충분히 막장 부모라 할 수 있다.[33]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하여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다보니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자식에게 자신의 직업을 세습할 것을 강요하여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34] 실제로 사이비 종교는 범죄와 가정파탄의 큰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35] 사실 막장 부모를 용서한 강용석 같은 케이스도 아버지가 사기꾼이라 막장인 경험을 당해도 자식들한테는 잘하니까 용서를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나, 결국 강용석 본인도 이런저런 구설수들에 휩싸인 별반 다를 바 없는 막장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36] 표창원 의원이 이러한 부모의 행태를 보고 '있는 그대로 이실직고했다가 거짓말만으로도 두드려 패는 부모가 이런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는데 폭력과 체벌을 하지 않겠느냐?' 고 반문한다. 이어 '겁나고 두려웠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지.'라는 발언 역시 한다. # 고종석이 어떤 인간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그가 저지른 엄청난 범죄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했다.[37] 착각하기 쉽겠지만 사이코패스는 의외로 사회에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무려 전 인구의 1%쯤 된다. 이 수치에 이들이 모두 흉악범이라면 아마 매일매일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 사건이 일어날 것이고, 주변 인물들이 사이코패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건 별로 보기 드문 일은 아니게 될 것이다.[38] 자식이 부모 보고 배운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속담과도 연관이 있다.[39] 방치, 방임, 언어적 폭력, 폭력적 환경에 노출 등이 있다.[40] 아무리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도, 계속해서 그 속에 젖어있다보면 그것이 설령 끔찍한 악행일지라도 익숙해지는 게 사람이며 설령 그 사람이 원래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해도 말이다. 하물며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가정에서 자라며 평생을 그런 학대 속에 살았는데 어떻게 그게 비정상적이라는 걸 알 수 있겠는가. 비정상이 옳은 일처럼 인식하는 환경에서 그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며 자라니, 교육을 받거나 남의 가정을 보고 자신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게 비정상이라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것이지. 이은석 사건만 봐도, 그의 가정에선 사이가 지독하게 나쁜 부모가 이은석 형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쭉 각방을 썼기에 이은석의 형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에야 친구네 집을 보고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이걸 계기로 자신의 가정이 비정상이라는 걸 처음으로 인식했다고 한다.[41] 뒤틀린 가족의 예시에 훌륭하게 부합할 또 다른 실제 사례로, 어떤 가정에서는 부모가 뼛속까지 남존여비에 찌들어 있어 자기 아들들의 뒷바라지를 모두 딸에게 맡긴 나머지, 딸이 학원에서 자습을 하다가도 아들이 뒷바라지 셔틀로 부르면 집에 가서 일을 해주는 삶을 살면서도 자기 가족이 이상한 가족인 걸 전혀 모르는 사례도 있었고, 또 어떤 가정에서는 자기 오빠가 요구할 때 성적인 요구를 포함해 뭐든지 들어주는 게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있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그래도 이 경우는 뒤늦게나마 법의 심판이 따랐지만, 그마저도 오빠 한 사람만 감옥에 가는 걸로 끝났다.[42] 친구, 애인, 선생님, 절이나 교회 성당의 성직자나 신도 등. 또는 아동학대로 친권자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 경우 아동은 지역아동복지센터, 즉 옛날 말로 고아원에 가는데, 사실 의외로 요즘 차라리 복지센터가 웬만한 부모보다 교육면이나 영양면에서 비교적 잘 양육해준다. 그리고 추후 성년이 되어 퇴소 후 아동에 의사에 따라 담당 복지사가 자립조사도 꾸준히 한다. 못해도 자식이 삐뚤어지지만 않으면 바르게 자랄 수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동들은 사실상 아동복지사가 정신적 부모인 셈. 또한, 사회복지법인에 등록이 되어있는 아동복지센터도 감사를 상당히 철저히 하는 편이다.[43] 무지에 의해서 발생한 학대도 포함이며 의외로 자기의 신념을 고집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44]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보면 미국에서는 엘리트 변호사가 아내와 입양한 딸을 상습적으로 구타하다가 결국 딸을 죽게 만들어 체포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45] 다만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는 양극화 문제로 인해 경제력 격차에 따른 여러가지 불합리한 요소들이 더욱 크게 부각되면서 젊은 연령층을 중심으로 저소득층 부모에 대한 인식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46] 증거 은폐, 협박, 감금, 증인이 없음, 판결까지의 난점, 관련 지식의 부족, 정신승리, 예상외로 낮거나 가벼운 형량 등이 있다.[47] 물론 이러한 부모의 영향을 받아 똑같이 막장이 되거나 방황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더 독하게 마음 먹어서 사업이든 기술이든 어디에선가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48] 자식이 폭행을 하여 존속범죄로 처벌되어 감옥에 간다해도 신체에 큰 상처를 입게 되어 장애를 가지게 되며 트라우마까지 발생한다.[49] '막장 부모'로 불릴 최악의 부모라도 자식들에게는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할 수 없고, 자신을 학대한 부모를 두려워하는 한편으로 그런 부모에게서의 애정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가정폭력에 시달린 아이들 가운데는 씁쓸하게도 심리적으로 부모에 대해 이런 감정을 품은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50] 꿈에서 부모가 나와서 자식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악몽 또는 부모가 혼령으로 나타나 학대하는 경우 등[51] 현재에 들어 차츰 막장 부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는 판례들이 등장하는 등 법이 차차 개선되어가고 있지만, 과거에는 한동안 이러한 막장 부모에게 무죄를 선고하거나 특혜를 주는 경우가 많았었다. 부모의 학대가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었기에 부모는 무죄로, 자녀는 유죄로 선고되어 판결상 자녀가 불리한 위치인 경우가 많았다. 또한 늙은 막장 부모의 경우 학대에 지친 자녀가 자신에 대한 부양을 기피하는 것에 대한 소송을 걸면 법원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 자녀를 유죄로, 부모를 무죄로 선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52] 시어머니에게 모질게 시집살이 당하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자신 밑으로 들어오는 며느리에게 더 모질게 대하는 것 처럼, 학대받고 자란 자녀가 부모가 되면 자기 자식에게 더 험악하게 체벌하는 경우가 꽤 많다.[53] 이 역시도 부모 본인의 기준이다. 자녀가 부모의 뜻과 일치하고 최대한 잘 따라준다면 문제가 적을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자녀의 취향이나 진짜 잘하는 쏨씨를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인 성공과 부모 기준의 진로에 맞추어 강권하며, 설령 자녀들이 좋아하고 바라는 진로라 해도 혹독하게 교육하여 능률과 열정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54] 두번째 성향으로 자라난 자녀들의 경우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분을 삭이곤 한다. "난 내 자식에게는 절대 이렇게 안할 거야. 내가 얼마나 힘든지 직접 겪어봤으니까." 이러다가도 정말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손찌검이라도 하게 되면 "내가 그렇게 당해놓고는 내 자식한테도..."라며 자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대인배 자녀들이 부모가 된 후에라도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자식에게 심하게 대한 경우가 생긴다면, 심리 치료를 받아서라도 자신이 당했던 트라우마와 작별을 고하고 마음을 챙기는 자세가 중요하다.[55] 폭행,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56] 재밌는 점이 보통 '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고 말하는 부모중에 육아를 제대로 한 부모는 없다. 그 정도로 육아를 열심히 했다면 저런 말이 입에서 나올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57] 체벌의 경우 엄연히 폭력이므로 현재 들어서는 아동학대의 범주에 논의되는 문제이다.[58] 말 그대로 서울시에서 선정된 서울 시민이 시민위원이라는 위원이 되어서 서울시에 어울리거나 서울시에 필요한 제도를 직접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59] 서울창의상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민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시의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만든 상이다.[60] 당장 경우가 다르지만 아돌프 히틀러를 보자. 그 전범짓 한 전직 독재자 총통 양반도 타락하기 전엔 그냥 미술가 지망생이었다. 특히 히틀러는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했지만 자신의 여동생에게는 따뜻한 오빠였다.[61] 엄한 것과 폭력적인 성격은 의미부터가 차이가 크다.[62] 이 발언 이후 덧붙인 발언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존중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공부를 잘할 수 있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발언을 했다.[63] 기사 자격증 항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기사 자격증은 이공계 대학에서 4년 동안 해당 분야를 피와 땀과 눈물이 나게 머리 터져라 공부하며 높은 학점을 받아낸 전공자들에게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64] 최근에는 자녀에게 교사와 공무원이 되는 것을 강요하여 자녀사이가 틀어지거나 자식에게 살해된 부모도 있다.[65] 다만 자신이 아이가 죽을 때까지 삶과 행복을 책임져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 부모는 자식보다 먼저 세상을 뜬다. 자신이 죽으면 아이는 인생의 지침표를 잃게 되는데, 그 때 원망받는 것은 당연히 자신이다.[66] 가스라이팅을 수준으로 아이를 바꿔버렸다면 이미 망한거다. 본인은 아이를 위해서 그랬다지만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그걸 계속해야한다고 강박관념에 빠지게 되는데 그게 잘되든 안되든 거기에 집착하게 되므로 부모가 무슨 말을 해도 그 집착을 떨쳐내기 어렵다. 가령 어떤 일에 집착해서 결과는 안나오는데 5년, 10년 붙잡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고 다른걸 찾아보자고 설득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부모가 그걸 강요했던게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67] 미국의 유명한 가문인 케네디 가문도 자신의 집안을 명문가로 만들고자 한 케네디 대통령 아버지 조지프 패트릭 "조" 케네디의 보상심리와 야망으로 아들들을 정치가로 강제로 키워졌으나 막상 자식들 대부분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 했다. 특히 조지프 조 케네디는 아들들을 정치가로 키우기 위해서 마피아와 결탁하여 상대방 후보를 협박하여 자진 사퇴시거나, 지지서명을 강요하여 아들들의 지지세력을 결집시켰고 당시 지체장애가 있던 장녀 로즈마리 케네디를 전두엽 절제술로 폐인으로 만들고 평생을 정신보호원에 강제감금 시키고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68] 광주 남매 존속살인 사건이 좋은 예이다.[69] 예시: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을 살해한 때에도 또한 같다. /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나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을 살해할 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전2항의 미수범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70] 애초에 이런 사례가 없었으면 성인도 아닌 고등학생이 살인을 저지르고 양형 기준을 악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71] 특히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경우, 원칙적으로는 무기징역까지도 권고되지만 가해자가 부모라면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다. 가중인자가 산적해 있으면 어거지로 감경인자를 욱여넣어서라도 가볍게 풀어주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심각한 경우에는 아예 검사가 살인이 아닌 아동학대치사로 기소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나서야 살인죄 추가 적용을 검토한 사례도 있다. 게다가 여기서 가해자가 부모, 피해자가 자녀라는 점을 빼고 보면 저항할 힘도 없고 한창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가 집에서 살해당한 끔찍한 사건이 된다. 즉 가해자가 누가 됐던 간에 미성년자 살해는 최악의 흉악 범죄 중 하나라 가중처벌 사유인데 가볍게 처벌하면 그 누구도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72] 해당 공익광고 영상.[73] 실제 가정법률상담소 변호사로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부모의 막장 행각을 두고 직답을 들은 내용.[74] 개신교 KJV 한글판 성경에서는 떡이나 빵을 달라 하는데 돌을 줄 부모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쓰여있다.[75] 후략된 내용은 '하물며 하느님이 만약 사람이 성령을 구한다면 내려주지 않으시겠느냐'는 역설인데, 이것이 요점이다. 예수가 "자식에게 일부러 나쁜 것을 주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느냐"며 역설한 것에는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는데, 그런 짓을 저지르는 부모는 이미 인간의 도리를 넘어섰다는 것이다.[76] 선후배 사이에서도 통하는 말이다.[77] 하지만 호랑이 역시 새끼와 장기간 떨어지거나 새끼에게서 체취를 느끼지 못하면 인지하지 못해 공격을 서슴지 않기까지 한다. 다만 이는 자신의 새끼임을 인지하지 못해 일어나는 실수로 자신의 새끼임을 알면 죽이지 않는다. 자신의 새끼임을 알면서도 자기 새끼를 해치는 건 인간뿐이다.[78] 해당 광고는 부모의 잘못된 이미지를 덧붙인다며 지적받았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비난받을 면은 없었다. 왜냐하면 양부모는 그 아이를 직접 낳은 적이 없어도 아이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가지고 키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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