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0 09:16:30

신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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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회장
롯데그룹 창립 1대 신격호 2대 신동빈
파일:신격호 회장.jpg
이름 신격호 (辛格浩)
일본명 시게미츠 타케오 ([ruby(重光 武雄, ruby=しげみつ たけお)][1])
출생 음력 1922년 10월 4일 ([age(1922-10-04)]세)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거주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2]
학력 울산공립농업학교
와세다대학부설 와세다실업학교 고등부 화공과
부인 및 동거인 故노순화, 시게미츠 하츠코[3], 서미경
자녀 신영자[4], 신동주, 신동빈, 신유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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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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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6일 고향 울산 둔기마을에서 사비로 여는 마을잔치에서.
2013년 기준 43년째로 사실상 마지막 마을 잔치가 되었다.[6]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2016061520083588770_1_99_20160615205304.jpg
2016년 5월 16일 정신감정을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을 찾았을 때.
1. 개요2. 생애3. 롯데판 왕자의 난4. A급 전범 가문과의 연관설
4.1. 연관설 긍정4.2. 연관설 부정
5. 가족 관계6. 후원7. 저서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롯데그룹의 창업주.[7]

울산광역시 출신으로, 본관은 영산 신씨. 일본 이름은 시게미츠 타케오 (重光武雄).

홀수 달에는 한국에서,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다만, 도호쿠 대지진 이후로는 주로 한국에 머무른다고 한다.

2. 생애

1922년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빈농인 신진수(辛鎭洙)의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5년 언양공립보통학교(현 언양초등학교)를 마치고[8] 가정형편상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일을 거들다가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울산농업보습학교에 진학했다. 1938년 졸업하면서 경남도립종축장의 기수보(技手補)로 취업했는데 주 업무는 양털깎기와 양돈 등이었고 박봉이었다.

1941년 부인 노순화[9]를 비롯해 가족과 고향을 모두 뒤로 한 채 성공하겠다면서 일본으로 밀항을 한다. 도쿄에 도착해 방을 하나 빌려 자취하면서 우유 배달 일을 하며 와세다실업학교 고등부의 야간부 화공과에 적을 두고 학업을 이어갔다.

고학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던 중 1944년 기회가 찾아왔다. 성실함을 인정받아서 하나미츠(花光)라는 사람이 5만 엔이라는 거금을 빌려 주면서 공장을 해보라고 했다. 이 돈으로 전쟁통에 수요가 충분했던 커팅오일과 밥솥을 만드는 공장을 차려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의 공장이 폭격을 당해서 완파되는 바람에 완전히 쫄딱 망했다. 다시 하나미츠에게 빌려서 다시 커팅오일 공장을 운영하는데 1년 반 뒤에 다시 미군의 폭격으로 망했다.

1945년 광복이 되었고, 하나미츠도 살길을 찾으라 위로를 하며 거액의 투자금을 포기한다. 진짜 자살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에까지 몰렸으나,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고, 죽을 땐 죽더라도 자신에게 거금을 빌려준 하나미츠에게 빌린 돈이라도 갚자는 심정으로 일어섰다.

1946년 와세다실업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린 후 이번에는 세탁비누, 세숫비누, 포마드 크림 등 유지류를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 다행히도 장사는 상당히 잘 되었다. 솥단지 하나로 시작해 1년 반 만에 하나미츠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고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집 한 채까지 선물했다.[10]

이후 신격호는 약간 남은 밑천으로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리고 유지류나 특수고무같은 물질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당시에 시판되고 있는 껌들을 죄다 사다가 한 번씩 다 씹어보고 각각의 껌들에 한두 가지씩 존재하는 장점들을 모두 집약해서 껌을 개발했다. 그런데 신격호가 이렇게 개발한 껌이 인기가 엄청 좋아서 과자점 주인들이 서로 납품하겠다고 신격호의 연구소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섰다. 이에 신격호는 투자자를 모집해서 본격적으로 회사를 차려서 껌을 팔기로 했는데 그것이 롯데그룹의 효시였다. 껌이 엄청나게 잘 팔렸기 때문에 신격호는 거대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괴테의 소설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히로인 샤롯데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보고 회사 이름까지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애초 로테(Lotte)는 독일어권에서 샤롯데(샤를로테)의 애칭(nickname)이기도 하기 때문이고, 실제로 괴테 소설에서도 이러한 애칭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식 츄잉껌을 처음 만들어 낸 Wringley사가 맨 처음 내놓은 츄잉껌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여성을 타겟으로 한 Vassar,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반시장을 타켓으로 한 Lotta였다. 또한 신격호가 츄잉껌 시장에 뛰어든 1948년 당시 츄잉껌의 주 소비계층인 젊은층,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고 한다.[11]

창작물 캐릭터가 이상형이라서 회사 이름까지 그렇게 지었다는 것 보단 최초의 츄잉껌 이름 +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 = 롯데(Lotte)가 더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실제로 롯데의 각종 건물, 브랜드, 온갖 서비스 명칭엔 늘 샤롯데가 붙는다. 각종 언론에서는 첩 서미경 씨를 신격호 회장의 샤롯데라 불렀다.

젊은 시절, 문학을 좋아해서 작가가 되고 싶어했다고 전해진다.[12] 하지만 현실은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였기에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여러 일을 하다가 주변으로부터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꾸리게 된 것. 롯데의 이름을 짓게 된 원인이라고 한다.

수도권에서 가장 중요한 군 비행장인 서울공항(서울비행장) 앞에 초고층빌딩을 세웠기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자세한 건 제2롯데월드, 롯데그룹 설명을 참조.

더불어서,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도 꽤나 많이 까이는 편이다. 롯데 자이언츠 특유의 보수적이고 꼭 써야할 돈조차 안쓰는 인색한 운영[13]이 전적으로 모기업의 운영 방침을 고스란히 따라가기에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 때문에 부산, 경남권에서도 신격호와 롯데에 대한 인식은 무관심 내지 냉랭한 편이다.

다른 재벌들에 비해서는 잠이 다소 많은 편이며 이건희, 정몽구 등 다른 재벌 총수들이 꼭두새벽에 기상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14]

신격호가 다른 재벌들과는 달리 큰 실패를 겪고도 불굴의 의지로 일어나서 재벌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롯데그룹은 입사시험을 위한 면접과정에서 신격호의 이력을 묻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신격호의 공과는 사람들마다 평이 다르겠지만, 창업자로서 가지는 노력과 끈기/도전정신 등은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15]

일본식 기업풍토에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시장지배력을 중시하는 재일교포 특유의 경영행태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16]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작업복 차림으로 영업이 끝난 백화점이나 마트 등을 둘러보고 담당자에게 세부적인 관리내용을 전화 등으로 꼬치꼬치 묻는가 하면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비행기도 민간 항공사 1등석을 혼자서 탑승하는 사실은 재계에서는 꽤나 유명했다. 어떤 사업이던 간에 '친정 경영'을 우선시한 탓에 타 대기업과 달리 상대적으로 계열사 CEO들의 권한이 낮았다.

그는 '얼굴보다 실적이 우선이다'라는 신조를 지키며 언론 노출도 꺼려서 인터뷰나 기고문 등은 별로 쓰지 않았고, 재계 모임에도 참석을 잘 안 했다. 심지어 그룹 내에선 신년 하례식, 그룹 사장단 회의, 전략 결정 회의체를 각각 꾸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롯데 자이언츠 팬북이나 계열사 사사 등지에 쓰이는 사진은 거의 20여 년 동안[17] 변하지 않았고, 계열사 대표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타 그룹 계열사 대표들과 달리 언론 노출이 적다. 한때 치매설과 정신 이상설이 시중에 나돌았지만, 근거없는 낭설로 취급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롯데가 범 삼성가범 현대가 같은 재벌들과는 달리 의료기관을 운영하지 않는 이유로 신격호 회장 본인부터가 원체 병원 갈 일이 없어서라고 해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속칭 왕자의 난 이후 신병 이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언론 보도로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롯데 측 핵심 관계자의 증언를 소스로, 2010년대 초반에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았으며, 치료제을 복용하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후의 신격호 명예회장의 인터뷰를 보건데 이 주장은 롯데그룹의 언론 플레이일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기사

한동안 그의 국적은 미스터리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인이고 일본에서는 일본인인 기묘한 형태. 때문에 편법적 이중국적자로 의심받았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일관계의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 회장은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에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일본과 대사급 외교 관계가 없었던 제1공화국 체제에서는 그의 일본 국적 취득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한국 국적이 유지되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1985년까지 이중국적을 허용했으므로 일본 내에서도 그의 한국 국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중국적이지만 이중국적이라 말할 수 없고, 신격호는 한국인이고 시게미츠 타케오는 일본인이라는 기묘한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그런데, 한 언론사가 입수한 일본 롯데 계열사의 대주주 목록에는 신격호와 시게미츠 타케오가 함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며, 신격호 회장은 한 번도 일본 국적 취득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중 호적이 심히 의심되는 상황이다.

2017년 6월 24일 오전 일본 롯데홀딩스는 도쿄 신주쿠 하쓰다이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을 새 이사진에서 배제한 인사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신 총괄회장은 1948년 (주)롯데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롯데그룹을 창립한 지 약 70년 만에 롯데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명예회장직을 대신 받게 되었지만 사실상 불명예 퇴진이나 다름 없다.

3. 롯데판 왕자의 난

2015년 7월 28일 신격호는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직에서 전격 해임되고 총괄회장에서 명예회장이 되었다[18] 27일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롯데 몰래 롯데가 인사 여럿과 함께 일본에서 자신을 제외한 차남 신동빈 회장을 포함 여섯 명의 이사들을 해임하려고 했다가 이사회에서 제동을 건 것이다. 한마디로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고령의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등에 업고, 차남 신동빈 회장 체제를 무너뜨리려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한 것이 된다.

문제는 장남 신동주가 처음에 해임했던 인물들에 포함된,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쓰쿠다 다카유키가 예전에 신격호 총괄회장으로부터 "잘 부탁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점. 그런 쓰쿠다를 신격호+신동주가 다시 해임했다는 것은 신격호 회장이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장남에게 설득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기자들의 분석이 있다. 하여 차남 신동빈 측에서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는 것. 이 때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 대행 신동인 역시 신동주의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무능함의 대명사이자 롯데 자이언츠 CCTV사건에도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는 신동인이 드디어 짤릴 수 있다면서(…).

하지만 2015년 5월 22일 잠실 롯데월드타워을 방문하여 건설보고를 받는 모습을 밀착취재한 기사들만 봐도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과 무리 없이 대화 했다고 하거나 건설에 대한 매우 상세한 사항을 물어보며 현장의 상황을 살폈기에 위의 신동주 쿠데타-신격호 노환설을 부정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무엇보다도 신격호는 꾸준히 신동빈을 밀어주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끈 다 떨어진 신동주를 다시 당긴다는 건 아귀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신격호가 신동주를 이용하여 양국 회장급에 취임한 신동빈에게 어떤 제스처를 취하며 권력의 운용과 책임에 있어서 무한대로 자유로운 상왕으로서의 포지션을 취하려고 했는데 신동빈의 갑작스러운 제스처에 당해 권력없는 상왕이 되어 버렸다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로 인해 본인은 1948년 회사설립 이후 처음으로 일본롯데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이고 신동빈 체제가 확고하게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귀국 때 엄청난 취재진이 몰려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2015년 7월 30일 신동주 부회장이 일본롯데에 대해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고 그 골자가 신격호 회장의 복위(+ 신동주 부회장의 복위)라고 한다. 신동빈 회장은 펄펄 뛰는 중이라고. 또한 신동주 측에서 "아버지 신격호 역시 신동빈+쓰쿠다를 그만두게 했다"라며, 이와 관련한 신격호의 (일본어) 육성 녹음 파일을 공개하면서 상황이 묘연해지고 있다. 신격호가 이전에 쓰쿠다에게 "잘 부탁한다"라고 한 것은 "(그만두고 나서도) 다른 데 가서 잘 하라"는 덕담이었다는 것(…). 기사 신동빈 쪽에서는 "롯데 경영 전반에 있어 아버님(신격호)의 의중이 중요하긴 하지만, 신동빈+쓰쿠다 해임 지시는 제대로 된 절차 없이 이루어진 것이므로 따를 수 없다"며 맞서는 중. 신격호의 장녀 신영자는 신격호+신동주에 가세하는 양상. 하지만 2011년에 신동빈을 한국 롯데 회장에 임명해 놓고 그런 적이 없다고 하는 등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모습을 보여 정말 신격호가 판단력에 문제가 없는 것인지도 의심 되었었다.

2015년 8월 2일 신동주 부회장이 인터뷰에서 한 발언에 따르면 6월달에 롯데그룹의 중국 진출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신동빈 회장을 추궁하던 중 격노하여 뺨을 때렸다고 한다.# (...) 결국 8월 28일에 있던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측의 안건이 죄다 부결됨에 따라 1차 표결은 신동빈 측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2015년 10월 15일 둘째 아들 신동빈으로부터 집무실에 CCTV 를 설치 당하고 직원들의 감시에 놓이게 되자 즉각 철수를 요구하였고, 10월 16일 장남 신동주와 직원들이 집무실에 진입하여 신격호의 거처를 탈환(..)하였다. 이후 한국 언론과 인터뷰 하였는데 고령이라 귀가 잘 들리진 않았지만 인터뷰도 아주 똑바로 하고 의사표시도 분명하게 하는 걸로 봐선 그간의 정신이상설은 모두 근거없는 헛소문임이 거의 확실해젔다. 롯데그룹의 언론플레이가 의심되는 상황. 이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장남 신동주에 대한 지지의사를 확고히 하였다. 기사,기사2

2016년 2월 12일, 신동주는 신격호가 경영관 분쟁과 관련해 인터뷰하는 동영상과 친필 서명이 들어간 일본어 문서를 공개했다. 일본말로 진행된 해당 인터뷰에서 신격호는 “당연히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또 신동빈을 롯데에서 추방해야한다는 내용도 남겼다. 문서는 2015년 12월 30일자 서명이 있었다. #

하지만 2016년 3월과 6월에 두 차례에 걸친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에서 또 다시 신동주 측의 안건은 죄다 부결되면서 신격호의 롯데그룹 자체의 장악력이 이제는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 6월 29일, 신격호 회장이 2010년부터 치매약을 복용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기사

보도의 출처는 롯데그룹이 아닌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측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진행 중인 롯데그룹의 각종 비리 의혹 문제에 자신들이 휘말릴수 있음을 우려한 신격호 회장과 신동주 측이 각종 수사를 피해가기 위해 뒤늦게 기존의 주장을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3부자가 자기 입맛에 맞게 꾸준히 말을 바꾸고 있는 것

2017년 6월 2일, 신격호는 대법원으로부터 한정후견인 판정을 최종적으로 받게 되면서 사실상 본인이 제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음[19]이 확정되고 말았다.

그리고 2017년 6월 24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이사직 재선임안이 통과되지 않음에 따라 결국 회사의 경영일선에서 모두 물러나고 말았다. 4차에 걸친 신동주 vs 신동빈의 싸움에서는 신동빈의 완승으로 끝나게 되었고, 신격호는 자신이 세운 기업의 경영 일선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되었다.

4. A급 전범 가문과의 연관설

신격호 회장의 현재 부인이자, 신동주, 신동빈의 어머니는 일본인인 시게미츠 하츠코인데, 그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 외무상[20]을 지냈던 A급 전범 시게미츠 마모루의 외조카라는 설이 있다.

전범 연관설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8년에 출판된, 언론인 출신 정순태씨가 쓴 책 ‘신격호의 비밀’이란 책이다. 롯데그룹의 A급 전범 집안의 비호 아래 일본에서 승승장구했다는 것이다. # #

2015년 롯데판 왕자의 난 때문에 가족 관계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전범 가족의 그룹이라는 설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내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지게 되었다. 창업주가 전범 시게미츠 마모루의 조카 사위일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일부에서는 과거 일본롯데의 엄청난 사업 성공을 보면 A급 전범 연관설이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80년대 중반 한때 포브스지에서 신격호를 세계 4위의 재벌로 공인할 정도로 신격호가 일본에서 사업을 크게 성공시켰는데, 매우 폐쇄적이고 외국인, 타민족을 배척하는 일본 사회에서 A급 전범 집안 정도 되는 소위 '명문가'의 비호 없이 신격호가 그 정도로 성공할 수 있었겠냐는 것이다. 근데 이 주장도 근거가 빈약한 게 일본롯데의 매출은 5~7조 정도로 분명 적은 편은 아니나 일본의 경제규모가 한국의 3배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기준으로 후하게 계산해봤자 매출 2~3조의 중견그룹에 불과하다. 롯데가 일본에서 그 이상으로 성장했다는 기록이나 정황은 찾아볼 수 없고 예나 지금이나 지분구조와는 별개로 롯데의 본진은 한국이었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빽이 있었다고 가정해도 그게 꼭 A급 전범가문일 필요는 없다.

이런 이야기는 1990년대부터 떠돌던 이야기인데 그동안 롯데그룹에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다가, 경영권 분쟁으로 한국내 여론이 악화된 2015년조선일보에 정정보도를 신청하는 등 공식적으로 부인했다.그럼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 맞다고 하겠냐 이에 대해서는 아래 문단에서 긍정의견과 부정의견을 모두 다룬다. 판단은 기본적으로 독자가 해야될 일이라고는 하지만, 긍정론의 근거를 보면 알겠지만 제대로 된 물증은 찾아볼 수 없고 막연한 정황을 늘어놓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룬 오마이뉴스의 기사에서는 '다만 하츠코씨가 실제 시게미쓰 마모루 가문과 무관한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그동안 국내 각종 언론 보도에서 하츠코씨는 시게미쓰 마모루의 조카나 외손녀, 심지어 딸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를 입증할 증거도, 부인할 증거도 확인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건 그냥 입증할 근거가 없다는 얘기일 뿐이다. 거증책임의 원칙을 생각해 보자.

2015년 현재도 이 의혹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시게미츠 하츠코 여사가 멀쩡히 살아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고 있지 않다.

4.1. 연관설 긍정

  • 정실 부인을 놔두고 공공연히 첩을 거느린 가부장적 가치관의 신격호가 부인 시게미츠 하츠코에게 그룹을 좌지우지하는 크나큰 지분을 순순히 넘겨주었을 리가 없다. 이는 그녀의 배경인 시게미츠 가문의 지분이라고 볼 개연성이 충분하다.
  • 신격호가 영산 신씨라서 시게미츠로 창씨했다 해도 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시게미츠 가문에서 성을 갈라는 압력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신격호는 일본 성을 갈지 않았을뿐더러 압력을 받았다는 어떠한 공식적·정황상 증거도 남아 있지 않다.

4.2. 연관설 부정

  • 정황상 근거를 토대로 신격호가 전범의 사위가 아니라고 추정한 글이 있다. 이쪽의 경우 신격호가 탄 줄은 아오오니 기시 노부스케 쪽이고, 재일조선인 폭력단 라인을 시작으로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후원을 받아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고, 장인뻘이라는 시게미츠 마모루가 조카가 자기 다리를 잃게 한 족속들과 결혼하는 꼴을 좌시할 리가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기시 노부스케 역시 A급 전범이므로 이 경우에도 신격호가 전범의 비호를 받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전범라인?
  • 오마이뉴스 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창시개명당시 영월 신(寧越辛)씨는 중광(重光; 시게미츠), 신도(辛島; 카라시마)'로 바꿨다는 기록이 있다. '영월 신씨'는 영산 신씨에서 분관한 것으로, 영산 신씨인 신격호의 아버지 역시 '시게미츠'로 창씨 개명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신격호 회장도 일본에서 창씨개명으로 바뀐 성씨를 그대로 썼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또한 많은 신씨 성을 가진 조선인들이 시게미츠 성씨를 선호한 것으로 나타나 원래의 시게미츠 가문이 시게미츠 성씨를 못 쓰게 막았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신(辛)씨가 중광(重光)으로 성씨를 바꾼 가장 큰 사유는 바로 고갑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10간 중 하나인 辛에 대응하는 글자가 바로 重光이기 때문이다.
  • JTBC에 따르면, 시게미츠 가문이 자신들은 시게미츠 하츠코나 신격호, 롯데그룹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혀왔다고 한다.
  • '시게미츠'는 신격호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부터 조선에서 사용하던 성씨다.『신격호의 비밀(1999)』[21]의 저자 정순태 전 기자[22]는 그 책에서 "울산 삼동초등학교에 답사 갔을 때 봤던 졸업생 목록에 '중광무웅'(시게미츠 타케오)이라는 이름이 있었다"며, 이 설이 신빙성 없는 카더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 '시게미츠'의 논란의 핵심은 시게미츠 하츠코(重光 初子)가 시게미츠 마모루와 같은 일족이냐는데 있는데, 실제로 시게미츠 하츠코의 결혼 전 이름은 타케모리 하츠코(竹森 初子)였고, 결혼후 남편의 성을 따라서 시게미츠(重光)으로 바꾼것이기에, 시게미츠 마모루와 다케모리 하츠코의 직접적인 인척관계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 성씨만 가지고 엮는것은 무의미하다고 볼수 있다. (솔직히 이런 인척관계 확인은 기자들이 추적하면 금방 알수 있는 문제다.) 아무래도 여성이 결혼과 상관없이 본인의 성을 유지하는 한국과는 달리 결혼후 여자의 성을 바꾸는 관습을 가진 일본을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한 해프닝이라고 보아야 할 듯.

5. 가족 관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범 롯데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현재 공식적인 부인 역할을 하는 시게미츠 하츠코[23](결혼전 이름: 타케모리 하츠코)는 이때 즈음에 만나 동거를 시작한 것으로 보여진다.[24]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확장하며 승승장구 하는데 1967년 롯데제과를 비롯 계속 여러 회사를 인수해 롯데그룹을 키워나갔다. 아역배우이자 1972년 초대 미스 롯데 출신 서미경과 사실혼 관계를 맺었다. 둘 사이에 낳은 딸이 신유미. 참고로 서미경과 신격호 나이 차이는 무려 38세. 거기에다가 딸 신유미는 1983년생인데 태어났을 당시 그의 나이는 만 62세, 진갑이었다.[25]

형제도 여럿인데 5남 5녀(10남매) 중 신격호가 장남이며, 3남 신춘호농심그룹[26] 그룹 회장, 5남 신준호푸르밀[27] 회장, 4남 신선호는 일본산사스 사장, 여동생 신정희는 동화면세점 사장이다. 가족 관계에 대한 내용은 범 롯데가 참고.

6. 후원

2013년까지 매년 5월 고향인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를 찾아 마을잔치를 열었다. 생가가 있던 이 마을은 1970년 울산공단의 용수공급을 위한 대암댐 건설과 함께 수몰돼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던 주민들은 집과 전답을 버리고 인근의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을 전해듣고 1971년부터 마을 이름을 따 '둔기회'를 만들고 자비를 털어 해마다 주민들과 그 가족들을 불러 마을 잔치를 열었다. # 수몰된 고향을 그리워 하며 어쩔수 없이 흩어진 친척들에게도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의 뜻과는 반대로 그룹에서는 형제 간의 분쟁이나 아들들의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2014년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애도를 위해 중단하였고, 원래 마을잔치를 열려고 했던 잔치비용 전액은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기부 되었다. 2015년에는 더이상 마을잔치를 열지 않는다고 롯데 측에서 밝혔다. 이유는 해마다 늘어나는 잔치 참석 인원들로 인한 교통 불편을 주변 주민들이 호소했기에 받아들인 것. 하지만 고향에 투자는 계속 될 것이라고 한다. # 그러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마을에 지원을 제대로 안 해 줬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 교민회에서 조치훈의 형과의 인연으로 조치훈을 후원하기 시작해 20년 이상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8] # 그 외에 유창순 전 국무총리와도 관계가 돈독했다.

7. 저서

  • 롯데와 신격호, 도전하는 열정에는 국경이 없다 - 청림출판. 2010.


[1] 중광무웅[2]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신동빈의 자택인 종로구 평창동 롯데캐슬 로잔으로 되어 있다. 참고자료[3] 사실혼 전 성은 '타케모리(竹森)'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부인 시게미츠 하츠코 법률혼 아닌 사실혼 관계.[4] 신격호 회장이 망처와의 사이에서 유일하게 법적인 혼인관계에 있던 중 태어난 딸[5] 1983년생으로 아버지인 신격호와 무려 61세나 차이난다. 장녀인 이복언니 신영자와 42세 차이다,[6] 참고로 뒤에 마스크를 착용한 남성은 장남 신동주. 뒤에서 모자 쓴 여성은 며느리 조은주. 오른쪽이 장녀 신영자.[7] 2019년 상반기 기준으로 대한민국 대기업 창업주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8] 학업성적은 57명중 42등[9] 둘 사이에서 낳은 딸은 신영자[10] #.[11] 같은 패전국인 독일의 작품이라는 점도 한몫 했다고.[12] 일본 유학생 혹은 밀항자들은 힘든 현실로 인해 소설을 읽고 자신이 직접 쓰고 싶다는 마음에 문학가를 동경하는 경우가 있었다.[13] 과자값 사건부터 시작해서 이걸로 발생한 병크를 열거하면 끝이없다.[14] 여담으로 새벽에 기상하는 재벌들은 다른 사람보다 일찍 잠에 든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9시 뉴스를 잠깐 보다가 잠에 들어서 새벽 4시쯤에 일어나던 왕회장.[15] 1980년대 이후에는 재무관리와 금융체계의 발전으로 투자안 평가 및 대출이 산술적으로 진행되고 사업 실패시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청산이 이루어지기에 신격호처럼 실패 후 다시 돈을 빌려 사업을 반복하는 경영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신격호는 수요초과시대에 사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돈 빌리는 운이 좋았던 사업가로 여기는 게 적합하다.[16] 보통 94세 노인이면 거동도 힘든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리고 염색을 자주 하는지 흑발인 사진만 있다.[17] 1990년대 이전까지 공개된 사진에선 입을 굳게 다물었으며, 예외적으로 2009년 발간된 <롯데쇼핑 30년사>에선 최근 찍힌 존영을 썼다.[18] 애초에 이전에 '명예회장'이라는 직함을 거부하고 '총괄회장'을 맡았던 것 역시 끝까지 경영을 직접 하겠다는 신격호의 똥고집 현역 의지 때문이었다 기사 해당 기사는 신격호와 신동빈의 경영 스타일 차이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19] 다만 성년후견이 아니라 한정후견이라서 경영 같은 중대한 결정만 못 할 뿐이지 일상적인 의사결정은 가능한 모양이다.[20] 한국의 외교부 장관[21] 해당 책이 발간되자 신격호 본인은 롯데그룹 홍보담당 임원들을 질책해 책을 전량 수거토록 하면서 레어템이 됐으며, 1999년 선친 묘소 도굴사건 당시 범인이 해당 책을 읽고 범행에 참고한 게 알려져 책이 화제가 됐다.[22] 경향신문 및 중앙일보 출신.[23] 둘 사이에 아들 2명이 있는데, 신동주(시게미츠 히로유키)와 신동빈(시게미츠 아키오)이다.[24] 본처가 한국에 살고 있는데 새로운 여자와 가정을 이루었다.[25] 불륜이지만 1988년 호적에 올렸다[26] 신춘호 롯데공업 사장이 1960년대 라면사업에 뛰어들자 신격호 회장이 회사 말아먹을 짓이라며 반대해서 둘사이가 완전 벌어졌다고 한다. 이후 롯데라면으로 성공해서 회사 이름을 농심으로 바꾸고 독립했으며 그 이후로는 아버지 제사도 따로 지내는 등, 이제는 완전히 남남사이라고. 관련 기사[27] 신격호와 1990년대 부동산 소유권 분쟁으로 재판까지 갔으나 패하자, 롯데우유를 가지고 독립했다. 이후 푸르밀로 사명변경[28] 아마 조상연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조치훈이 개명하기 전의 이름이 바로 조풍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