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7:45:02

신철호

신철호
辛轍浩 | Shin Cheol-ho
파일:Screenshot_20230311_015141_Chrome.jpg
출생 1923년 9월 12일
경상남도 울산군 삼동면 둔기리
(現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1]
사망 1999년 6월 9일 (향년 75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중앙병원
(現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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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영산 신씨[2]
직업 교사, 기업인
신체 180cm
부모 아버지 신진수[3], 어머니 김순필[4]
형제자매 신격호
남동생 신춘호, 신선호[5], 신준호
여동생 신소하[6], 신경애[7], 신경숙[8], 신정숙[9], 신정희[10]
배우자 송수영
자녀 1녀 신혜경 (1947 ~ )
2녀 신동선 (1953 ~ )
3녀 신미진 (1958 ~ )
1남 신동림 (1962 ~ )
2남 신동훈 (1963 ~ )[11]
4녀 신혜승 (1964 ~ )
5녀 신지은 (1965 ~ )
6녀 신수연 (1974 ~ )
경력 국민학교 교사
한국 롯데 대표이사 사장
한국 롯데 화학 대표이사 사장
메론제과 회장
동인 회장
(주)마로 회장
종교 불교

1. 개요2. 생애3. 형제의 난4. 사망5.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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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前 교사, 前 롯데그룹 사장.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의 바로 아랫동생이고 농심그룹 회장 신춘호의 둘째형이다. 신동빈의 작은아버지이기도 하다.

2. 생애

1923년 9월 12일, 경상남도 울산군 삼동면 둔기리(現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의 빈농가에서 아버지 신진수(辛鎭洙, 1902. 8. 25 ~ 1973. 6. 16)와 어머니 김해 김씨 김순필(金順必, 1904. 2. 12 ~ 1952. 10. 26) 사이의 5남 5녀 중 둘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신격호가 일본으로 돈 벌러 갔을 때 신철호가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돈을 벌면서 맏형의 자리를 채웠지만 몸이 약해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고 한다.[12]

때문에 7살 터울 동생인 신춘호가 일본 간 큰형과 병약한 작은형 대신 돈을 벌러 나갔고 한참 후 형 신격호가 일본에서 롯데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하면서 어느정도 기반을 잡게 되자, 신철호와 신춘호를 일본에 불러 경영수업을 하였고 1958년 '롯데화학공업'을 세우며 한국에도 진출한다. 이 때 신철호가 한국 롯데 사장이었고, 동생 신춘호는 일본 롯데 무역부장이었다. 그렇게 신철호는 롯데그룹의 2인자이자 한국 롯데의 실질적인 1인자가 되었다.

3. 형제의 난

롯데의 2인자가 되어 몇년간 회사가 잘 돌아가나 했는데 문제가 일어나고 만다.

1966년 형 신격호와 동생 신춘호가 해외로 출장을 나간 사이에 형, 동생 도장위조하고 회사 공금 4억여원을 손을 대서 롯데화학공사라는 회사를 세워 한국 롯데를 장악하려다가 들통이 나고 만 것. 이 소식을 먼저 들은 신춘호는 맏형 신격호에게 둘째 형의 만행을 전하게 되고[13] 이에 격노한 둘은 신철호를 횡령죄로 고발하게 되고, 신철호는 서울지검에 구속이 되어 서울교도소에 수감되고 만다.

1967년 수감 생활 중인 신철호는 원래 몸이 약했던지라 금방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를 가엾게 여긴 아버지 신진수가 '현재의 한국 롯데가 있게 된 거는 철호의 공이 크고, 모든 일은 자신이 시켜서 한 일로 철호가 한 행동이 죄가 된다면 내가 대신 감옥에 가겠다'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법무부 장관에 내는 한편 외국에 유학, 출장을 나가있던 나머지 아들들을 다 한국에 불렀다.[14]

이 부름에 제일 먼저 달려온 건 막내남동생인 신준호였으며 형들의 화합을 원한다고 말을 했고, 신춘호도 고소 취하랑 재판부에 화해서를 제출했다. 형인 신격호도 귀국하여 병실에 찾아와 동생이랑 1시간 넘게 대화를 했다고 한다. 이후 신철호는 보석으로 석방되었지만 법적인 죄는 벗었어도 형과 완전한 화해는 하지 못 했는지 그룹에 복귀하진 못했다. 대신 제과, 비스캣 쪽만 분리해 이후 메론제과를 세우지만 실패하고 나서 형제들과 왕래를 잘 하지 않은 걸로 알려졌다.[15]

4. 사망

1999년 6월 9일[16] 서울 중앙병원에서 숙환으로 향년 7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보통 재벌 기업인이 사망하면 뉴스에 보도되는 경우가 많은데, 신철호의 경우 오래 전 이미 롯데그룹에서 축출된데다 그나 그의 후손이 주요 기업을 경영 중인 상태도 아니기 때문에 그러지 않고 신문에 부고 알림문으로만 사망 소식이 알려졌다. 애초에 신격호 입장에서는 언급하는 것 자체가 거의 치부나 다름없는 인물이 되기도 했고.

5. 가족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범롯데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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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부인 송수영 사이에 슬하 2남 5녀를 두었다.


[1] 인근의 하잠리, 조일리와 함께 영산 신씨 집성촌이다.[2] 초당공파(草堂公派) 27세손 ○호(○浩) 항렬.(족보)[3] 辛鎭洙. 1902. 8. 25 ~ 1973. 6. 16.[4] 金順必. 1904. 2. 12 ~ 1952. 10. 26. 김해 김씨다.[5] 辛宣浩. 1934년 12월 28일생이다. 일본 산사스식품공업 사장을 역임했다.[6] 辛小荷.[7] 辛敬愛.[8] 辛敬淑.[9] 辛貞淑.[10] 辛貞姬.[11] 제이텔 대표, 1999년 아버지가 사망했을 당시 유산 상속을 포기해 화제가 되었다.[12] 그래서인지 그가 향년 75세로 그의 형제자매 중 가장 먼저 사망했다. 물론 1999년 기준으로 75세면 평균 나이 정도지만. 그냥 그를 제외한 신격호 일가 대부분이 장수해서 더 돋보이는 것도 있다.[13] 이때까지만 해도 신춘호는 맏형 신격호를 아버지처럼 따랐다.[14] 이 시절 대통령이던 박정희는 물론이고 이 시절 자체가 유교적인 영향이 매우 강해서 아들이 아버지를 감옥에 보내는 것 자체가 손가락질 받을만한 큰 죄로 여겨졌고 설령 부모가 살인을 저질러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식이 신고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당장 범삼성가이창희가 아버지 이병철이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와 껄끄러운 관계라는 것을 이용해 청와대에 투서를 보내 아버지를 회장직에서 쫓아내려고 했지만 박정희가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행위를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불효로 간주하여 무시하고 이병철의 편을 드는 바람에 삼성가의 후계가 이맹희/이창희에서 3남 이건희로 돌아가게 되었다.[15] 사실 신격호와 신춘호가 서로 완전히 연을 끊고 제사마저 따로 지낼 정도였지만 그 자식들인 신동주/신동빈-신동원-신동환 등 사촌들끼리는 가까운 것을 보아 안 그래도 형제들과 틀어졌는데 형제들끼리 최소한의 교류는 할 명분은 되는 기업활동마저 안 하다 보니 자연스레 본인들은 물론 후손들끼리도 영구적으로 남남으로 살게 된 것도 있다.[16] 사망하기 3개월 전에는 부친인 신진수의 유골이 도난 당하는 사고가 일어나 장례를 한 번 치르게 되었는데, 이 때 빈소에 신격호, 신춘호, 신준호 등 다른 형제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본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걸 보면 이 무렵 이미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어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