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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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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공산당의 당기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당에 대립하는 특수한 당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실천적으로 모든 나라의 노동자당의 가장 단호하고 언제나 추동(推動)적인 일부이다. 그들은 이론적으로 다른 노동자대중에 앞서 노동자운동의 조건, 경과, 일반적 결과에 대한 인식을 갖는다.
-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공산당 선언』 中

共産黨
Communist Party
러시아어: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1. 공산당? 사회당? 공산주의? 사회주의?2. 공산당의 역사
2.1. 러시아 혁명에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2.2. 2차 세계대전 직후2.3. 68혁명 이후 현재까지
3. 한국의 공산당
3.1. 일제강점기 활동3.2. 해방 후3.3. 한반도의 공산당 역사
4. 국가별 공산당
4.1. 공산주의/공산주의 지향 국가 집권 공산당4.2. 다당제 국가 집권 및 연립정부 참여 공산당4.3. 현존 비집권 공산당4.4. 금지된 나라 및 금지였던 국가4.5. 옛날의 공산당
5. 관련항목6. 기타

1. 공산당? 사회당?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전적인 정의로는 공산주의를 강령으로 삼은 정당을 일컫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의미로는 사회주의 정당 가운데 소련의 공식적인 승인을 얻어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공산주의 체계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정당만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즉, 소련이 망한 오늘날에는 공산당 역시 기반을 상실한 상태이고, 실제로 많은 공산당이 해체하거나 당명과 강령을 개정하여 전혀 다른 성격의 정당으로 변신하였다.[1]

원시적인 형태의 공산주의 정당은 프랑스 혁명 시기의 마르쿠스 바뵈프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실제로 공산당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20세기 러시아 혁명에 이르러서이다. 공산주의나 공산당이라는 이름 자체가, 200여 년에 이르는 근대 사회주의의 계보 가운데에서 다른 사회주의 정당과의 차별화를 주장하고 싶어하는 레닌-마르크스 주의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스스로의 과학성을 자랑할 때도 그랬고,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면서 말뿐인 서유럽 사회주의자들을 비웃을 때도 그랬다.

따라서 어떤 집단이나 정당의 이데올로기가 (조직명/당명과는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공산주의/공산당이라고 통용되는 성격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려면,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스의 사상 가운데에서도 레닌이 주창한 소위 마르크스 - 레닌주의(ML)를 추종하면서, 조직적으로는 마찬가지로 레닌이 고안한 민주집중제적 혁명 전위 정당의 구조를 가진 정치조직, 그 가운데서도 스탈린주의나 이를 수정한 흐루쇼프식 현실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조직을 부를 때만 써야 한다.

그러므로 계급 독재나 폭력/평화 혁명론을 포기한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즉 영국 노동당이나,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등등의 다른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은 공산주의 정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대로 혁명론은 계속 유지하고 있으나 혁명 전위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국가 권력을 분쇄한 후 새로운 형태로 다시 편성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완전히 없애 버려야 할 대상으로 보는 아나키스트 계열 단체들 또한 공산당이 아니다. 또한 혁명 전위를 표방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2]와 무장 혁명론까지도 견지하면서 국가 권력에 대한 분쇄 후 재편성을 추구하지만 스탈린주의나 현실사회주의가 아닌 트로츠키주의 노선을 따르는 단체들도 공산당으로 부르지 않는다. 이쪽은 주로 '사회주의 노동자당', 정당이 아닌 경우에는 '사회주의 노동자 XX'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국가/민족/성별보다 '계급'을 중시하며, 자본주의와 산업 혁명의 발달로 부르주아에게 집중된 생산수단을 박탈하여 공공화한 뒤 노동자가 필요한 몫을 받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실현되기만 하면 이른바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대다수의 민중에게는 전쟁도 없고, 종교도 필요없고, 모두가 형제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적인 사회가 되겠지만, 부르주아나 지주 같은 프티부르주아들은 피 한 방울까지 착취한 다음에 모든 재산을 빼앗고 수용소에 처넣거나 집단농장으로 귀속시켜 반혁명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래야 다른 프티부르주아들도 노동자 계급에게 고분고분해진다고.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유럽의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제2인터내셔널이라는 하나의 회의체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볼 때, 공산당과 마르크스-레닌 주의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큰 분기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전에도 분열이 좌파의 일상이긴 했지만...

참고로 한국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 공산당이라는 말 자체가 높은 확률로 북반네 놈들을 가리켰다. 당시에는 하나의 중국과 비슷한 '하나의 한국'이란 개념이 있어서, '북한'이란 말은 금기시했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북한을 북한이라 하지 않고 '공산당' 또는 '북괴'라고 불렀다. 그런데 정작 위쪽에는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당이 없으니 웃기다.[3]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가리킬 때도 '중국'이 아닌 '중공(中共, 중국 공산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중국'은 대만으로 천도중화민국[4]을 가리켰다.

2. 공산당의 역사

2.1. 러시아 혁명에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서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선거를 통한 집권에 근접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독일의 사회민주당(SPD)은 오랜 역사에다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정통성, 수많은 당원과 전국에 걸친 튼튼한 당 조직, 카를 카우츠키, 베른슈타인,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 등 지성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지도자들을 갖춘, 그야말로 당대 서유럽 최강의 정당이었다. 이들이 모여서 열나게 치고박고 싸운 제2인터내셔널은 사회주의를 넘어 당대의 사상적 흐름을 주도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회주의자들은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자는 기존의 합의도 산산조각내버린 채, 서로 상대편 국가의 전제적 통치를 비난하며 애국자로 돌변했다. 사회주의도 결국 근대 국가 체제의 안에 있었다는 좋은 사례만을 남긴 채 전쟁은 끝났고, 전후 이들 사회주의 정당의 지도력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쟁 대신 혁명을 선택한 소비에트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레닌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에서 그때까지 이론적으로만 존재했던 사회주의 공산국가가 탄생하자, 이미 기존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에 환멸을 느끼던 많은 지식인과 노동자들은 일단 덮어놓고 러시아와 레닌의 편을 들었다. 이에 독일을 필두로 서유럽, 중유럽을 가리지 않고 많은 국가에서 공산당이 설립되기 시작했고, 전후의 우울한 사회상에다 기존 사회주의 정당들이 움츠러든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들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게 되었다. 물론 이 시기에 공산주의 정당들만 급격히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만. 또한 이 시기, 사회주의 이념이 아시아를 포함한 제3세계로 널리 전파되면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물론 당시 일제 강점기 조선에도 공산당이 나오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시기 공산당 최대의 위험 요소는 다름 아닌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집단지도체제에서 정권을 잡을 때 트로츠키, 부하린, 지노비에프 등 적어도 스탈린 자신보다는 훨씬 똑똑하고 활동력 넘치는 동지이자 경쟁자들을 그 특유의 음험한 책략으로 모두 제거하고서야 레닌의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뒤가 구린 스탈린은, 특히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이 컸던 트로츠키의 지지세력을 말살시키기로 마음먹고, "한 국가에 존재할 수 있는 혁명 전위 정당은 오직 단 1개의 공산당만이 존재할 수 있는데, 여러 정당 가운데 어느 정당을 공식적인 공산당으로 인정할지는 내가 결정한다 "라는 이뭐병스러운 지침을 내렸다. 이 지침 탓에 각국의 공산주의 세력은 자기들끼리 피터지게 싸우게 된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든 스탈린의 간택을 받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떠는 딸랑이 신세로 전락했다.교황님이 되셨군

어쨋거나 다른 사민주의 정당과 타협하지 말라고 했다가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자기 말을 우걱우걱 쳐묵고 사민주의는 고사하고 중도 자유주의 세력까지 끌어모아 인민전선을 결성하라고 하질 않나, 그렇게 인민전선으로 집권하자마자 보수파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난 스페인(스페인 내전)은 나치 독일 눈치 보느라 찔끔찔끔 도와주는 척만 하질 않나,[5] 그러다가 좀 도와주나 보다 싶더니 갑자기 총구를 돌려 인민전선 내부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을 공격하는 팀킬을 지시하질 않나,[6] 스탈린이 1930년대에 저지른 짓들은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7]

당장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라는 유럽 대륙의 메이저 열강 세 나라에서 스탈린 장단 따르느라 공산당이 좀 더 제도 정치권에 가까웠던 온건 사회주의 정당, 경제적 정책과 별개로 역사적 공화주의, 급진주의를 표방하던 자유주의 계열 정당들과 하루 아침에 연대하자->"사회 파시스트" 개드립->다시 연대하자 갈팡질팡하고, 또 그 와중에 하부 조직들은 (다른 비공산주의 좌파 정당 관점에선) 막 훔쳐 가려 들면서 정치적 신뢰가 파탄나서 이탈리아, 독일에선 파시스트들이 솓아 오를 때 이를 막아야할 범 좌파권의 연대가 콩가루 처럼 무너지게 만들었고, 프랑스에서도 인민 전선 정권 창출이 더디게 했으며 그 와중에서도 내부 혼란과 침몰에 큰 기여를 했다. 아예 내전 중 내전이라는 바르셀로나 5월 사태라는 막장판을 초래한 스페인의 경우야 말 할 것도 없고, 하여튼 당시 세계 정치판에서의 지분, 지식인 사회에서의 호응, 대중적 조직력으로 보면 엄청난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범 좌파권이 제도권 온건 사회주의 계열, 코민테른 계열 국제 공산당, 반국가적 아나키즘 진영 등으로 뿔뿔이 나누어져 서로 으르렁 거리다가 망하게 되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다.

물론 2차대전 이후 냉전이란 형태로 명목상이나마 공산주의 진영은 세계를 양분하게 되었지만, 대전 후 공산주의 '진영'에 편입 된 지역 태반은 전간기 사회주의자들의 투쟁과 달리, 자발적인 혁명이 아니라 그 전 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이 하던 짓 그대로 답습한 소련이 자본주의 열강들과 사이 좋게 지도를 나눠 먹으면서 진출한 소련군이 연줄 있던 현지 출신 혁명가 몇몇 '대리고 온' 공산주의였다. 일제 시대 후반기와 해방 공간 당시 조선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세력들이 임정에 참여를 한다니 만다니 좌우합작을 한다니 만다니 하며 서로 통수는 엄청나게 때리고 온갖 어그로를 끌다가 결국 사상적으로는 제일 공산주의와 상관도 없었다 할만한 김일성이에게 집어 먹힌건 결국 큰 문맥에서 보면 전간기 유럽에서 충분히 터졌던 스탈린주의적 트롤링의 재탕이었던 셈이다. 이런 갖은 사건 끝에 결국은 독일한테 수도 모스크바 코 앞까지 털리는 개망신을 당했으니 자업자득이랄까... 여러모로 불쌍한 것은 소련 인민들과 진짜 순수한 이상주의적인 면에 넘어가 이타적인 동기로 살다 윗대가리들 야합으로 서방, 파시스트 세력들에게 팔려 넘겨진 말단 혁명가들 뿐이다.

2.2. 2차 세계대전 직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공산당이 이러한 1930년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덕택이었다. 독일이 북으로는 노르웨이서부터 서로는 프랑스, 동으로는 폴란드, 남으로는 그리스까지 전 유럽을 제패했을 때, 독일 세력하에 놓이게 된 타국인들은 저항은 하고 싶은데 마땅히 참여할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고, 이때 가장 먼저 각국의 공산당이 반독 저항운동에 앞장선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독소 불가침조약의 체결 당시 독일 점령지의 공산당 조직들은 모스크바의 지령을 받고 나치의 점령 통치에 침묵 내지는 암묵적인 협조로 일관한 까닭에 독일군도 크게 신경쓰지 않아 장기간 세력을 보존하며 미래에 대비할 수 있었다.

독소전쟁이 터지자 독일 점령지 내의 공산당 조직들은 곧장 지하로 들어가 처절한 저항 운동을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국내에서 레지스탕스를 앞장서서 주도하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세력이 바로 프랑스 공산당이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베니토 무솔리니가 실각한 이후 이탈리아 공산당이 주도하여 반독 무장 항쟁을 벌였으며,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공산당 역시 마찬가지로 격렬한 무장 저항운동을 벌였다. 오히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중부 유럽에서는 공산당의 세력이 미미했지만, 이 지역은 소련에 가깝다는 점 때문에 소련의 후원을 업은 공산주의 조직들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중국의 경우는 국공합작, 국공내전, 중일전쟁대장정 문서 참조.

이러고 보니 1945년이 되자, 미국과 영국을 뺀 전세계에서 붉은 깃발이 휘날릴 가능성이 매우 올라갔다. 그러자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들이 하는 짓거리는 비슷해서, 미국과 영국은 스탈린에게 핵무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빅딜을 제시했다.[8]

한마디로 세계지도를 놓고 땅따먹기를 했는데, 스탈린이 오케이 싸인을 날리자 실제로 세계가 저렇게 나뉘어 좀 무섭다. 당시 스탈린은 "몸빵은 우리가 다했는데 물주는 미국이니 폴란드 정도까지만 어떻게든 먹었으면..."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미국과 영국은 "실질적인 몸빵은 쟤네가 다했으니 유럽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할 텐데... 프랑스부터 서쪽까지만 어떻게든 지켜야지"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마침 미국이 제시한 "독일 반띵"(...)라인은 마침 서로의 기준보다 조금씩 많았기에 서로 놀라며 후딱 수락해버린 것이다.[9] 어쨋거나 저 약속은 잘도 지켜서, 스탈린은 그리스 공산당이 영국의 후원을 업고 전직 나치 괴뢰 점령 정권의 부역자들을 대거 받아 들인 그리스 임시정부에게 떡실신하는 꼴을 그냥 구경만 했고, 윈스턴 처칠도 전쟁 내내 영국을 지지한 데다 상당한 규모로 대독전쟁에 참전하기까지 한 폴란드 망명 정부를 나몰라라 배신했다. 이건 뭐... 어른의 사정

여하튼 이 결정을 바탕으로, 소련의 강력한 지원을 업고 동유럽 각국에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단숨에 공산주의를 채택한 국가 수가 급증했다. 또한 서방세력하에 포함된 서유럽 각국에서도 공산당의 위신이 크게 신장되었다. 특히 프랑스 공산당과 이탈리아 공산당(PCI)은 전후 선거를 통해 순식간에 제1야당 규모로 성장하였다. 실로 인류가 가장 공산주의에 근접했던 순간.

그러나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이 시작되는 순간, 공산주의는 그 전성기를 다했다. 더군다나 각지에서 활동하는 공산당 운동을 원조할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적 딜레마에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국익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말로만 듣고 꿈에서만 보던 소말리아, 모잠비크, 앙골라 같은 아프리카의 수많은 듣도 보도 못한 민족과 나라들의 공산주의 혁명 운동을 정치적/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 일일이 규합해주고 지도해가며 지원까지 해줘야 했다. 물론 국가에 따라서 이득이 된 일도 있는데 소련은 서방세계의 두목인 미국의 뒷통수를 언제든지 때리기 위해 미국의 등짝에 위치한 쿠바에서 체 게바라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할 당시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쿠바를 공산국가로 만들어 놓았다.[10] 물론 냉전 초중반기에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는 내내 공포에 떨어야 했다. 각국 식민지제3국가가 공산주의에 호의적이기만 하면 적극 지원해주며 서방세계 국가들이 식민지를 진압하려다 피를 너무 많이 보았고, 소련이 가진 항공우주 기술, 국방기술은 냉전 동안 벌어진 스푸트니크 쇼크, 한국 전쟁,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 등에서 미국에게 큰 공포와 출혈을 내게 만들었다. 소련 특유의 선전/프로파간다적 정치와 폐쇄성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소련의 출혈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소련은 공산권 동지 국가들을 돕는 과정에서 미국에게 피해를 주긴 했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이득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또한 공산주의의 큰형님 격이었던 소련은 2차대전 이후 과장을 보태면 (무력을 써서라도)세계의 절반을 거의 휘하에 두는 셈이었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지나 위성국가 굴려먹는 데는 이골이 난 서유럽 열강들과 달리, 해외 진출 경험도, 국제적인 리더 경험도 없는 소련의 동유럽 정책은 동유럽 국가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반발을 무력을 내세워 진압하면서[11] 국방비 지출이 늘고 소련의 위신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2.3. 68혁명 이후 현재까지

또한 서유럽에서도, 거대 정당으로 성장한 서유럽 공산당이, 실상 규모가 커진 만큼 체제 내에서의 안락한 위치에 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68운동으로 불리우는, 기존 체제에 대한 전후세대의 격렬한 저항 앞에서 공산당은 오히려 기존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총대를 맨 것. 공공시설을 점거한 학생들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 인신공격한다든지, 공산당 주제에 노조에게 파업을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든지... 이게 공산당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정도.

프랑스 공산당이야 이런저런 논란에도 지금까지 쌓아온 도덕성의 우위-결정적으로 나치에게 대항했던 공적-가 있어서 아직 세력 기반이야 든든했지만, 이런 사건들이 동유럽에서 소련이 무력으로 시민들의 요구를 짓밟은 사건들과,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공산당과 공산주의에 대해 회의를 품게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 베트남쿠바에서 공산주의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것이 미국에게 실점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소련에게 득점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 약체화된 서구 각국의 공산당은 1970년대 경기침체를 겪으며 등장한 신자유주의의 역습에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백기를 들었고[12], 동유럽 공산국가도 1989년 도미노처럼 붕괴하고, 소련마저 1991년 홀라당 망하면서 공산당의 수명도 다하게 되었다. 서유럽 최대의 공산당이던 이탈리아 공산당(PCI)이 공식적으로 해산하고, 좌익민주당으로 재창당을 선언한 것이 하이라이트.[13][14]

그리고 공산당사(史)에서 가장 중대하고 위험한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그게 바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인데 이 사고가 나는 바람에 소련은 혼비백산했고 이 사고를 수습하느라 사람도 너무 많이 죽고 돈도 너무 많이 탕진하고 말았다. 다른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버티고는 있었는데 이 사건이 결정타가 되어 소련은 점점 삐걱거리기 시작하다가 결국 1990년을 기점으로 소련은 붕괴되고 말았으며 이에 따라 냉전은 종식되었다. 그런즉, 1990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까지는 서방의 자본주의의 맞수로서의 기능을 지녔지만 그 이후에는 그저 명맥만 이어나갈 뿐이 되었다. 공산당의 붉은 옷이 군복이었다가 한낱 코스튬 플레이어의 아이템이 되고 만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도 각국에 공산당은 잔존하고 있으며, 공산주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가 급격히 도입되면서 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유럽에서는, 공산당이 다시 세력을 키우거나 당명을 바꿔서 다시 집권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혹은 현실사회주의라는 사상적 지향 자체가 대중적 기반을 상실하고, 노조 관료 내지는 진보적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의 덕질 대상으로 전럭한 상황에서 남아있는 공산당이 과거의 공산당과 같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과거 공산당이 차지하고 있던 극좌 포지션은 전부 다 트로츠키주의 내지는 '스탈린에 비판적이면서 트로츠키주의도 아닌' 레닌주의 정당 혹은 정치세력이 다 털어 갔다(...) 정말 근본적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극좌적 지향과 강령을 갖고 활동하고, 또 그런 성향의 대중들에게 지지를 받는 정당 혹은 정치세력은 전부 다 그쪽 성향이다. 쉽게 말해 극좌 성향 대중들은 아무도 공산당 지지하지 않는다! 즉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리즈시절 자기네들의 최대 라이벌들에게 집을 털린 셈이다. 비록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사회주의 운동이 세계적으로 다시 고양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 공산당의 자리는 없는 거나 다름이 없다. 공산당한테 '수정주의자'라고 욕 먹던 좌익 개량주의자들이나, 아니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욕 먹던 비스탈린계 레닌주의 정치세력이 21세기의 사회주의 운동을 양분하고 있기 때문이다.[15]

서유럽에 남아있는 공산당의 경우를 보면, 기존에 주장하던 공산주의는 망했는데 생태주의[16]페미니즘과 같은 새로운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자니 다른 좌파 그룹들에 비해 너무 구닥다리인 데다 과거의 실패가 있어서 사람들이 안 쳐다보는 곤란한 상황이다. 동유럽의 공산당은 확고한 강령과 특정한 사상적 지향이 있다기보다는 개량주의적인 정책 좀 들고 나와서, 공산주의 시절을 '좋았던 옛날'로 추억하는 이들의 표를 노리는 보수파 정당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래저래 상황은 영 좋지 않은 편이다. 앞서 말했듯 진짜 '공산주의'적 소신과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안 찍는(...) 동유럽에서는 공산주의자가 공산당을 안 찍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자리는 동유럽에 진출한 트로츠키주의 혹은 비스탈린 레닌주의 정당이나 단위들이 차지하고 있다. 1차 인터내셔널 시절 그 자체부터 대양과 대륙을 넘나들며 지긋하게도 싸워온 아나키스트들도 그 특유의 의회 정치 불참여를 불구하고 남유럽이나 중남미 몇몇 나라에서 재야 노동, 진보 운동권에서 여전히 독자적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보면 이건 아예 권력을 잡아본적도 없는 배다른 형제격 원쑤에게도 밀린 셈이다.

독일의 좌파당이 구 동독의 공산주의 세력을 후신으로 성공한 케이스에 속하다. 좌파당은 베를린브란덴부르크에서만 지지가 높은 편이다. 그 이외에도 몰도바키프로스에서도 공산당이 집권한 예가 있다.[17] 2000년대와 2010년대 전반기에 걸쳐 중남미 국가에서 좌파정당들이 세를 넗히며 칠레, 브라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우루과이, 페루, 파라과이에서 공산당이 주요 중도좌파 내지 좌파정당들과 연합하며 장관직을 내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공산당이 주도해서 정권을 잡은건 아니기 때문에 큰 존재감은 없다. 그나마 공산당이 선거로 집권한 나라는 남아시아의 네팔 정도가 있는데 공산당이라고 해서 다 같은 공산당이 아니고 마르크스 레닌주의 공산당과 마오이스트 공산당과 일성 공산당 등 공산당이 여러개로 나눠어서 경쟁하는 구도이다.

이 와중에 현재의 중국 공산당과 같은 미묘한 변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단 현재까지는 소수의 집단지도층이 주도하여 국유 경제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새로운 형태의 개발독재 정도로 평가할 수 있다. 잡탕

일본 공산당은, 과거에는 급진 폭력혁명 노선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경착륙을 추구했지만 60년대 이후로 평화혁명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연착륙를 추구하고 있다. 2013년 이후로 꾸준히 10%~15% 정도의 득표율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민주적 공산당이다사실 위 문단 설명대로 보면 동구권 노인정이 아닌 진짜 '공산당' 중에선 냉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공산당이라 봐도 된다. 이전에는 일본 공산당이 온건 사민주의 정당이라는 서술이 있었지만, 일본 공산당은 생산수단의 공유화를 강령에 내걸고 좌파 내지는 극좌파적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이다.

미국의 공산당은 사회당[18]과 달리 아직도 존재하는 정당이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쇠퇴한 데다, 현재 하원 한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약소정당 중 하나다. 선거제도가 개편된다면 모를까, 양당체제가 확실히 잡혀 있는 현재 미국 정치계에서 이들의 입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중도파나 보수파, 진보파 가릴거없이 제3정당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라이니 당연할수밖에 없기는 하다. 자유지상주의 우파 정당인 자유당이나 녹색주의를 내세우는 녹색당도 지방의회 선거에서나 겨우 당선자를 내는 수준이고 중앙선거에서 당선자를 내는 건 꿈에 불과한 수준인데 이런 상황에서 공산당이 세를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3. 한국의 공산당

3.1. 일제강점기 활동

파일:external/www.tldm.org/Hammer3.png일제강점기 한국 공산주의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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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명당 고려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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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총국/일본총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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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파
무산자동맹회 경성 트로이카
조선노동당
신사상연구회 신흥청년동맹 화요회
북성회 북풍회 비합법적 적색노동조합
일월회 비합법적 적색농민조합
서울청년회 고려공산청년회 레닌주의동맹 공산주의 무장투쟁단체
전진회 춘경원당 }}}}}}


한국 공산당의 역사는 고려공산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9년에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문창범의 주도하에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소련)이 설립되었고, 1920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내 좌파와 이동휘의 주도로 상해파 고려공산당(중국)이 설립되었다. 이르쿠츠크파가 볼셰비키 속성이 강했다면, 상해파는 중국공산당처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운동단체 성향이 강했다. 그리고 레닌한테 200만루블 타내기 한편 조선에서는 박헌영 주도로 조선공산당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스탈린의 지침에 더해 충분한 토론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관계로 공산당 내 파벌다툼이 장난아니게 이루어졌고, 조선 내부 공산당이 이러한 경향이 특히 심했다. [19] 화요파, 엠엘파, 서상파 등등 여러 파벌들이 난립하여 다퉜는데 이런 다툼은 조선 내 민족운동가들에게 "공산당은 분열을 일삼는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에 한몫했고, 이는 해방후 명망가들이나 직접 공산주의 운동에 참가했던 김준연 (ML파)나 장덕수 (상해파) 등의 반공 정서 형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20] 한편 이러한 공산당의 과거는 북한에게 "종파주의를 없애기 위한 1인 영도자 체제 구축"의 빌미를 마련해주었고, 김일성은 종파숙청 명분을 내세워 김일성주의 아래 사이좋게 연안파, 남로당파, 갑산파 등을 숙청하였다.

해외의 한인 공산당도 정통성 문제를 두고 파벌대립을 하였는데, 제1차 국제공산당 자금사건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임시정부와 항일무장투쟁 단체에서 용공-반공을 둘러싸고 대립이 일어났다. 우선 임시정부의 경우 김구, 조완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보수층은 혁신세력 및 소장파들이 공산당을 받아들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러한 갈등은 제2차 국제공산당 자금사건에서 증폭되었다. 결국 고려공산당을 만든 이동휘는 시베리아 벌판으로 쫓겨났고 심복 김립은 상해 한복판에서 김구가 보낸 청년들에게 암살당했고, 고려공산당 회원 여운형은 동남아로 떠나버렸다.

한편 무장투쟁 쪽에서도 용공-반공의 대립이 있었다. 반공성향이 강하여 중국 국민당군과 협력하려했던 이범석, 지청천의 한국독립군, 중국 공산당군과 협력하려했던 김두봉의 조선의용군 세력은 용공-반공 문제를 두고 합작을 꺼렸고, 김원봉은 사상보다 항일투쟁과 민족해방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여 국공합작 시기에 양쪽의 군사협력을 추진하였다.

3.2. 해방 후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광복~5.16 군사정변
제3공화국 이후 →
조선공산당 남조선로동당 조선로동당과 합당 노농당 민족주의 민주사회당 한국사회당 강제해산
연안파 남조선신민당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 독립노농당
건국준비위원회조선인민당
독립노농당
민주주의독립전선
민주독립당
인민공화당
사회민주당
분단의 공고화로 세력약화되고 해체사회당납북으로 해체민주혁신당 사회대중당 통일사회당
혁신당
진보당 등록취소 사회대중당


해방 후 한반도가 38도선으로 갈리고 남한과 북한의 공산당은 갈림길을 걷게 되었다. 남한의 경우 박헌영이 공산당 활동을 주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여운형과 입장차이를 보이면서 심하게 다투었다. 여운형은 통일임시정부 수립부터 하고 난 뒤에 사회 체제는 인민들에게 물어도 된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박헌영의 경우 마르크스-레닌 주의에 기반한 폭력적인 공산주의 혁명이 우선이었기 때문.
특히 좌파정당 3개를 합당하여 남로당으로 개편했을 때 박헌영이 공산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지도부를 편성을 하여 남로당은 비공산적 요소가 거의 없게 되었다. 결국 여운형은 박헌영과 싸우다가[21] 좌우합작운동을 원활히 하고 미소공위를 성사시키기 위해 남로당을 탈퇴해 근로인민당을 창당했으나 2달 만에 암살당했다. 중도파 여운형마저 없어지면서 남로당은 더욱 좌성향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미군정 체제에서 공산당 활동이 용이할 수가 없었고, 남로당의 활동은 큰 제약을 받았다. 박헌영은 결국 월북해버렸고, 남한에 남아있던 남로당원들이 폭력투쟁으로 저항하였으나... [22] 반공주의 성향의 인물들이 정부 요직에 있는 상황에서 무자비한 색출이 진행되어 남로당에 호응했던 사람들 혹은 남로당에 몸을 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까지 학살당하거나 [23] 월북하거나[24] 지하로 숨어버리면서 남로당은 제1공화국 때 사실상 공중분해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거치게 되자, 수십 년간 국시는 반공이 되었다.

북한의 경우, 앞서 중국과 소련 등지에서 활동했고 용공의 입장에 있었던 빨치산 부대들이 해방 후에 들어왔고, 소군정은 김일성을 지도자로 내세웠다. 북한 또한 공산당이 그렇듯이 무수히 많은 파벌이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김일성은 종파주의 숙청 명분을 내세워 김일성주의 아래 빨치산파[25]를 제외한 모든 파벌들을 숙청하여 사실상 김일성-김정일을 위시한 조선노동당 유일 체계를 확립했다. 거기에 더해 주체사상, 부자세습...

3.3. 한반도의 공산당 역사

  • 북한
    • 남로당파: 남한에서 남로당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이 월북하여 형성되었으나 숙청됨[26].
    • 소련파: 소련 공산당 소속이었던 고려인들이 주를 이룬 소련을 추종하는 파벌로 한국전쟁 때 거의 숙청됨.[27]
    • 연안파: 장제스의 중국국민당과 함께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세력과 노선을 달리하여 모택동의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있던 연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귀국한 세력이 중심이 된 파벌. 한국전쟁 중 일부가 숙청당한 뒤, 한국전쟁 후 8월 종파사건으로 숙청됨.[28]
    • 빨치산파: 항일유격대파, 혹은 김일성. 사실상 김일성 친위대다. 김정일을 후계자로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북한 최종 집권세력으로 남았다[29]. 나중에 뽀그리우스가 벌인 심화조 사건 때 대부분 쓸려버린다.
    • 갑산파: 보천보 전투가 일어난 함경남도 갑산에서 명칭을 따왔으며,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 세력으로 이루어졌던 파벌. 50년대까지만 해도 김일성파, 빨치파와 같은 개념이었으나 이 중에 김정일 권력이양과 경제정책에 대해 김일성과 관점 차이를 보인 사람들이 숙청당하면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한정 되었다. 1967년 김일성의 국방·경제 병진노선에 반발한 박금철, 이효순, 김도만 등 중심세력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 조선노동당: 김일성-김정일 주도로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한 북한의 정당. 사실상 북한 정치의 전부다. 하지만 지금은…

4. 국가별 공산당

4.1. 공산주의/공산주의 지향 국가 집권 공산당

4.2. 다당제 국가 집권 및 연립정부 참여 공산당

4.3. 현존 비집권 공산당

4.4. 금지된 나라 및 금지였던 국가

  • 대한민국 - 1946년 미군정 치하에서 공산주의 정당인 남로당이 개입한 대구 10.1 사건이 일어나면서 공산주의 활동이 금지되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금지되었다. 그랬다가 1991년 5월 31일, 보안법을 개정하면서 공산주의 활동을 법으로 막지 않게 되었고 공산당 활동이 법적으로는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윗 동네의 영향으로 인한 공산주의나 공산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공산당 합법화 이후에도 공산당은 창당되지 못했고, 공산당이 창당되더라도 군소정당을 벗어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 태국 - 1952년 쁠랙 피분송크람의 군사쿠테타로 인해 반공법이 제정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시 쿠테타의 나라
  • 중화민국 - 1949년 국공내전에 패배한 중국 국민당타이완에 정부를 세우고 정통성 확립을 위해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으나, 반공법이 폐지되고 2008년에 대만 사법원(헌재)에서 국보법에 위헌 판결을 내려 공산당이 생겼다. 그 대신 중국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을 만들 수는 없으며, 세력은 거의 없는 군소정당이다.
  • 독일 - 비스마르크 독일 제국 당시 반공법이 존재하였으나, 바이마르 공화국 성립 이후 폐지되었다가, 나치 독일 때 다시 반공법이 부활하였고, 패망 이후 서독에서 공산당 활동은 불법이였으나,[42] 1968년, 구 서독에서 독일 공산당이 다시 창당되었고, 통일 이후에는 동독의 공산당[43]의 후신인 좌파당이 존재한다.
  • 발트 3국, 루마니아, 헝가리 - 원래 공산독재 국가였으나 공산 정권 붕괴 후 공산당을 금지했다. 그러나 기존 공산당의 후신 정당들은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내세워서 여러 번 집권하였다. 사실 루마니아에서 민주화 이후 첫 집권세력이 구 공산당인데 비 차우세스쿠파 공산당원들이 차우셰스쿠를 축출한 혁명에 합세하고 기존 루마니아 공산당의 당권을 차지한 다음에 루마니아 사회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며 개칭한 것이다.
  • 우크라이나 - 이쪽은 위의 발트 3국이나 루마니아와 달리 독립 이후에도 공산당의 세력이 비교적 크게 유지되고 있었고 1999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당 후보가 결선에 진출한적이 있었지만 2002년 총선때부터 세가 약화되기 시작하더니 2004년 대선을 기점으로 동서간의 지역구도가 확립되며 세력이 크게 약화되는 바람에 군소정당으로 전락하였고, 유로마이단 이후 공산주의 금지법이 통과되면서 일개 단체 정도로 전락하게 되었다.
  • 미국 - 1910년대에 반공법을 제정하였으나, 1974년 폐지된다. 그러나 여전히 공산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남아있는 상태이다. 실제로 미국은 귀화 희망자가 공산당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을 경우 시민권 취득을 불허하고 있다. 또 공산주의자 통제법(Communist Control Act of 1954)으로 미국 공산당은 여전히 미국 내에서 활동이 제한되어있다.
  • 인도네시아 - 수카르노 시절에는 핵심 집권세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카르노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연립정당에 해당되는 위치에 있었는데 1965년 대학살과 수하르토에 의한 쿠테타로 당원들이 학살당하고 반공법이 제정되면서 해체되었으며 민주화가 이루어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터키 - 1947년부터 공산당 활동을 금지했다.
  • 말레이시아 - 1960년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공산당 활동이 금지되었고, 2012년 폐지 후에도 안보위반특별조치법이 신설되어 공산당 활동 금지화.
  • 남베트남 - 1955년 정부 성립 직후 반공법이 제정되었으나 1975년 패망하여 폐지됨.
  • 칠레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는 반공 국가였으며, 칠레 공산당은 불법화되고 1000여명의 공산당원이 처형당한다.[45] 1990년 민주화 이후 다시 합법화되었다.
  • 필리핀 - 필리핀 공산당은 미국의 자치령인 필리핀 자치령 시절부터 심각한 탄압을 받아왔다. 이는 독립이 이루어진 필리핀 제3공화국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1969년 공산당 휘하의 신인민군이 봉기하여 필리핀 내전이 터졌다. 1990년대 피델 라모스가 공산당을 합법화하지만 필리핀 사회에서는 아직 반공적인 인식이 퍼져 있는 상태이고 신인민군도 아직 활동중이다.

4.5. 옛날의 공산당

5. 관련항목


6. 기타

파일:external/www.cyburbia.org/communist_party.jpg
COMMUNIST PARTY!!![48]

왼쪽부터 이오시프 스탈린, 피델 카스트로, 블라디미르 레닌, 마오쩌둥, 카를 마르크스이다. 엥겔스 : 시무룩
마르크스의 니코니코니가 신경쓰인다
[1] 스탈린주의 혹은 현실사회주의 노선의 패배가 소련의 붕괴로서 확실시되고, 철의 장막이 거두어지고 동유럽의 안습한 실정이 여실히 밝혀지면서 각국의 스탈린주의 혹은 현실사회주의자들은 제3세계 막장국가가 아닌 이상 그저 망상주의자 내지 그걸 내세워서 자기네 밥그릇을 챙기려는 장사꾼 취급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산주의 정당은 사민주의정당으로의 변모를 꾀하였고, 일부 국가에서는 소련의 지시에 의해 단 1개만 존재하던 공산당이 우후죽순 난립하게 되었다.(...)[2] 트로츠키주의에서 추구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는 무장한 노동계급 그 자신에 의한 것이며, 스탈린주의에서 말하는 노동계급과는 구분되는 관료 집단에 의한 것이 아니다. 트로츠키주의 쪽에서는 스탈린주의나 현실사회주의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름만 도용한 짝퉁이고,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3] 사실 조선로동당의 전신 중에 조선공산당이 있었지만, 그것도 북한이 나오기 전이다.[4] 주로 '자유중국'이라고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전까지의 한국처럼 '자유'롭지 않았던게 함정.[5] 그것도 독일 국내에서 나치의 탄압으로 독일 공산당이 사실상 와해된 와중에도 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6] 이것은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에도 잘 묘사한다.[7] 중국 공산당이 이런 스탈린의 공격을 극복하고 결국 내전에서 승리한 단 둘 뿐인(나머지 하나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은 스탈린이 간섭하기엔 중국이 모스크바에서 너무나 먼 곳이었고 스탈린이 파견한 정통 모스크바 공산주의자들이 실제로는 무능의 극을 달려 실권하고 모택동과 같은 토종 공산주의자들이 중국내 혁명적 세력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유고슬라비아는 냉전기에도 독자행보를 폈다. 한편 북한은 후에 주체사상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응?[8] 한방에 제시한 것은 아니고, 여러 번 회담을 거듭하여 조정을 거쳤다. 상식적으로 NATO가 그리스 터키를 가져가서 잠가라 흑해를 시전하겠다는데 소련이 그냥 인정할 리는 없잖아?[9] 이 상황은 한반도에서도 똑같이 전개되어 경계선이 북쪽에 그어질 것이라 보던 소련, 까딱하면 한반도를 먹힐 거라 생각하던 미국은 또 38선이라는 중간지점을 내세우고, 양쪽 다 냉큼 인정하면서 38선이 그어지게된다.[10] 다만 이 부분은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에게 퇴짜를 맞자 소련에게 접근했던것도 컸기는 했다.[11] 헝가리 혁명, 프라하의 봄[12] 그나마 프랑스 공산당은 사회당과 손을 잡아 1981년에 드디어 1940년대 이후 오랜만에 집권하긴 했지만 연립대상인 사회당에 밀려 당세가 크게 쇠퇴하였다. 지금은 타 좌파세력과 손을 잡아도 하원에서 단 10석을 확보하는 정도. [49] 한때 100석 넘게 확보했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13] 이 때 해산을 결정한 마지막 전당대회가 볼로냐에서 열렸고, 그 때문에 아직도 유럽 각지에서 볼로냐 꺼져 등의 낙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14] 뭐, 그래도 몇 년 뒤에 드디어 만년 야당신세에서 벗어나 집권하긴 했다. 상대당이 베를루스코니라는 게 문제였지만...[15] 레닌주의가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로 well-partition 가능한 것은 아니다. 스탈린은 스탈린대로 까면서 트로츠키에 대해서도 극좌 모험주의라며 비판하는 양비론적 레닌주의자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남한 운동권의 경우 양비론적 레닌주의가 가장 우세하다.[16] 성 소수자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17] 사실 몰도바 공산당은 공산당이라기보단 친러당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키프로스 '공산당'의 진짜 이름은 노동인민진보당(AKEL).[18] 1972년 해체[19] 일제강점기 때 공산당 활동은 국가체제전복 혐의가 적용되는 중죄였으므로 걸리면 감옥행이었다. 이러니 편안히 토론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였고, 국내 공산당원들은 해외로 망명하거나 지하에 숨어서 이론서나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박헌영 같은 이론가가 나오는 것이다.[20] 임시정부 봉대를 내세운 한민당 인사들이 주로 이러한 입장을 견지했다.[21] 박헌영은 이때 공산당의 험한 꼴은 다 보여주었다. 건준에 프락치를 넣는다거나, 조선인민당에 프락치를 넣는다거나, 사회노동당에 프락치를 넣는다거나, 나중에는 근로인민당에 프락치를 넣는다거나...[22] 대구 10.1 사건 참조[23] 여순사건, 4.3 사건, 보도연맹 사건 참조[24] 이들은 북한에서 남로당파를 형성했다.[25] 라고 쓰고 김일성파로 읽는[26] 박헌영, 이승엽 등[27] 허가이, 정상진, 남일, 방학세 등. 방학세는 허가이와 김일성의 갈등 때 김일성에게 줄을 서 소련파 선배들의 숙청에 앞장섰고, 덕분에 나중에 내무상, 중앙재판소장 등의 요직을 지냈다.[28] 김두봉, 무정, 최창익, 허정숙 등. 허정숙은 허헌의 딸로, 연안파였다가 김일성파로 건너가서 숙청되지 않았다.[29] 김일성 등[30] 명목상으로만 공산당이다.북한은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 관련 도서를 읽는 것을 제한-대략 여기서 북에서 나온 책들을 국립중앙도서관 "북한자료센터" 가야 볼 수 있는 것처럼-하고 있고 헌법상에서 공산주의를 삭제하는 등 공산주의를 포기한지 오래이며, 주체사상으로 변절한 수정주의다.[31] 집권당인 급진좌파연합에 참여[32] 집권당인 아프리카국민회의의 연립정부에 참여[33] 연립정부 참여[34] 집권 베네수엘라 연합사회당과의 연립정부에 참여[35] 세르비아 진보당세르비아 사회당의 연립정부에 참여[36] 집권 민족진보전선 연립정부에 참여[37] 집권당인 파이스 연립에 참여[38] 집권 광역전선 연립정부에 참여[39] 집권당인 포르투갈 사회당과의 연립 여당[40] 트로츠키주의, 민주사회주의, 맑스레닌주의의 연합정당이다.[41]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을 지향하고 있는 공산주의 정당. 양당우위제의 두 정당 중 한 축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힘을 못 쓰는 대신 좌파의 주류를 공산주의 정당이 차지하고 있는 정말 특이한 정치지형.[42] 콘라드 아데나워 정부 당시 서독 내에 있던 독일 공산당(KPD)을 연방헌법재판소에 제소해 강제해산시킨 전력이 있었다.[43] 정식 명칭은 독일 사회주의통일당.[44] 이 중에선 무려 역사적으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모두 반대하고, 카톨릭 신정정치에 기반한 봉건 사회로 복구를 주장하다가 나름 '현대화'한다고 좌향좌하여 포지션이 무려 왕정 사수, 카톨릭 사회 전통 강화, 농촌 공동체 재건에 더해서 지방 자치 강화, 자본주의 철폐인 카를리스타들도 있었다(...)[45]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는 칠레 공산당원들을 헬리콥터에 태우고 바다 한가운데에 던지는 짓거리도 했다고 한다.(...)[46] 제3인터내셔널, 국제공산당[47] 실제 심영을 찾고 싶으면 심영(배우) 문서 참조[48] Party가 사람들끼리 모여 즐겁게 노는 파티라는 뜻도 있고, 정당이나 단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점을 이용한 언어유희. 예시로 민주당은 democratic party, 공화당은 republican part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