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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프리드리히 빌헬름 라인홀트 피크 Friedrich Wilhelm Reinhold Pieck | |
출생 | 1876년 1월 3일 | |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주 구벤 (現 폴란드 루부스키에 주 구빈) | ||
사망 | 1960년 9월 7일 (향년 84세) | |
동독 동베를린 (現 독일 베를린) | ||
재임기간 | 동독 초대 대통령 | |
1949년 10월 11일 ~ 1960년 9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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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독의 초대 대통령, 서기장.[1][2]2. 생애
구벤[3]에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수 생활을 하다가 1894년 목세공인노동조합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독일 사회민주당에도 입당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대부분의 사회민주당 당원들은 전쟁을 지지하였으나, 피크는 전쟁에 반대하여 군사교도소에 투옥되었다. 석방 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다.1918년 베를린으로 복귀하여 독일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22년 국제 공산주의 원조 기구의 창립 단원이 되어 전문 위원회에 근무하였고, 1925년에는 독일 공산주의 원조 기구 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나치당이 집권하자 피크는 일단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1935년 소련으로 간다.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코민테른 서기장, 1943년 '자유 독일을 위한 국민위원회'(NKFD) 창립인 중 하나가 되었고, 소련군이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나치 독일을 패망시키자 함께 귀국한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동독 지부와 독일 공산당을 합당시켜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을 출범시키고 오토 그로테볼[4]과 함께 사회주의통일당의 공동 서기장이 된다. 그렇지만 이 둘은 발터 울브리히트와 사이는 안 좋았고 그의 똘마니에 불과했다. 다만 북한의 최용건이나 김두봉, 김영남등 상징적 국가원수들이 실권이 거의 없거나 김일성, 김정은에 비해 실질적 권력이 매우 적었던것에 비하면 이 사람은 실권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며[5], 오히려 실권은 별로 없었어도 동독 건국 초기에는 이 사람이 개인숭배 대상으로 내세워졌었다.
1949년 동부 독일에 동독이 세워지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50년 발터 울브리히트가 서기장 직위를 이어받았다. 그가 사망한 1960년 9월 7일까지 대통령직에 있었다. 그는 동독의 유일한 '대통령'이었는데, 그의 후임인 발터 울브리히트는 국가원수의 직위명으로 국가평의회의장(Vorsitzender des Staatsrats) 직위를 썼다.
3. 기타
- 그의 고향인 구벤은 1961년부터 1990년까지 "빌헬름 피크의 도시 구벤(Wilhelm-Pieck-Stadt Guben)"이라는 이름이었다.
- 한때 함흥시에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빌헬름 피크 거리(Wilhelm-Pieck-Boulevard)가 있었다. 함흥에서 손으로 꼽는 큰길인데, 6.25 전쟁으로 떡실신한 북한의 도시들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함흥이 소련과 동독의 지원을 얻어 재건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북한이 이른바 주체사상을 내세우면서 빌헬름 피크 거리도 동독이 무너지기도 전에 '정성거리'란 이름으로 개명됐다.
- Hearts of Iron IV의 독일의 공산주의 정권 지도자로 등장한다. 해당 게임의 독일 자체가 민주주의든 제정복고든 파시즘이든 결국 공산주의와 그 수장인 소련을 정면으로 맞상대하는 길 외에는 전혀 없으므로 정석대로 진행해도 빌헬름 피크가 나올 일은 없으며 강제로 공산주의 내전을 일으키거나 전쟁에서 독일을 멸망시킨 국가가 괴뢰국을 설립하거나 정부를 공산 정부로 교체해야만 볼 수 있다. 가끔씩 독일이 두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동독과 독일 괴뢰국으로 분할되면 분명 다른 국가의 괴뢰국들인데 지도자가 한쪽은 한글, 한쪽은 로마자로 출력되는 차이 빼면 둘 다 빌헬름 피크로 나온다.
[1] 피크는 1949년부터 1960년 사망할 때까지 독일민주공화국의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Pieck von 1949 bis zu seinem Tode 1960 einziger Präsident der DDR.) 출처 : 독일어 위키백과.[2] 국민일보 특별 취재팀. (2014). 독일 리포트. #[3] 1945년 이후로는 오데르강 서쪽은 독일령 구벤, 동쪽은 폴란드령 구빈으로 나누어졌다. 참고로 피크 본인의 고향은 정확하게는 폴란드령 구빈이다.[4] 이 사람은 동독 지역 독일사회민주당 지도자였던 인물로, 소련에 의해 강제적으로 사민당과 공산당이 합당해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을 창당할때 사회민주당측 대표로 합당에 참여한 인물로서, 원래부터 공산당 출신이 아니기에 어처피 바지사장에 가까운 상징적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동독 총리를 지냈다.[5]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개인적인 친분관계 및 신뢰관계도 있었던 거물급 공산주의자여서 울브리히트가 실권을 가지게 된 이후로도 권력에서 아예 밀려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