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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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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3. 명칭의 기원과 범위
3.1. 기원3.2. 어원3.3. 범위
4. 만주와 한국5. 역사
5.1. 만주에 존속했던 국가·정권들
6. 지리
6.1. 자연6.2. 기후6.3. 도시
6.3.1. 선양(묵던, 심양, 봉천)6.3.2. 창춘(장춘)6.3.3. 하얼빈(하르빈, 할빈, 합이빈)
7. 둥베이 사람들의 기질8. 소수 민족9. 둥베이 3성10. 관련 문서

1. 개요

만주(滿洲/满洲/Маньчжу)는 동북아시아 압록강두만강 북쪽의 광활한 지역을 일컫는다. 정확히는 시베리아의 남쪽이자 산해관몽골의 동쪽이다.

주의할 점은 현대 중국에서는 이 지역을 만주라고 부르는 걸 굉장히 꺼린다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공으로 세워진 만주국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도 크지만 소수 민족의 독립에 대한 두려움도 나름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청대 만주족 정부가 사용[1]했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동북(둥베이) 지방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동북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당연하지만 중국이다.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북쪽 지방이고 만주 거주자들을 기준으로 하면 중앙이다. 옛날에는 관동(關東/关东, 관둥)[2]이라고도 불렀는데 산해관 동쪽 지역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만주의 영역은 만주국 국토+일본 제국의 관동주 정도를 떠올리지만 그러한 영역 개념은 근현대의 일본 제국이 잡아놓은 것이고 실상은 좀 더 복잡하다. 현재는 중국 국토이지만 한국인과 몽골인의 역사 무대이기도 하고 중국을 지배한 만주족의 발상지이자 유럽 기준 극동 지역임에도 러시아도 발을 걸터 놓는 복잡한 지역이다. 그 외 퉁구스계 제족들이 사는 지역이기도 하다(옛날부터 만주를 이루던 종족은 예맥족계, 동호계 그리고 만주족계을 포함한 퉁구스계였다.).

매우 추운 지역이지만 외만주를 포함한 전체 만주의 인구는 1억 3천만이 조금 안 되는데, 2010년 인구 센서스 기준으로 만주로 간주되는 동북 3성의 인구는 세계 12위에 해당하며, 일본 전체 인구와 유사한 수준이다. 동북 3성에 3시1맹, 청더시, 화이러우구, 외만주에 속하는 아무르 주, 하바롭스크 지방 남부, 연해주, 유대인 자치주의 인구를 모두 더하면 1억 2887만명 정도가 나온다. 광의의 만주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만주라 인식되는 동북 3성의 인구는 1억 900만 명 정도다. 어쨌든 많다. 더불어 각종 자원도 풍부하다. 이 덕분에 변방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중국에서 산업화가 가장 빨리 마무리된 지역 중 하나. 중국의 경제 중심축이 동해안(우리나라의 서해)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 경제의 중추였고 요즘도 무시못할 지역이다.물론 그래도 지리적으로 해안 지역에 비해 불리한 건 사실이다. 중국 정부의 북방 지역 밀어주기가 없었다면 더 차이가 심하게 났을 가능성도 있다.[3]

21세기 들어서는 중국에서 산아 제한이 엄격하게 시행된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대도시 지역과 더불어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있으며 인구도 급속하게 감소하고있다. 이미 1980년대 중반에 출산율 2.1명이 붕괴되었고 1990년대에는 출산율 1.5명대를 기록했으며 2000년대 이후로는 이보다 더욱 낮아져서 인구 1000명당 출생률은 5명대에 합계 출산율은 0.8~1.0명대[4] 저출산 국가인 일본, 한국보다도 낮으며 단순히 출산율만 낮은 게 아니라 인구유출도 심해서 청년층들은 주요 대도시와 남부지역으로 빠져나가고있고, 한국과 러시아로 가서 일하는 경우도 많으며, 청년층들뿐만 아니라 은퇴한 노인들도 남부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라 1년에 수십만명씩 인구가 줄어나가고있는 실정이며 이는, 노인 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인구는 비슷한 일본보다도 인구 감소 속도가 훨씬 가파르다. 한 예로 인구 4300만이라는 랴오닝성의 연 출생아수는 20만명대에 불과하고 지린성이나 헤리룽장성도 마찬가지로 출생아수가 10만명대, 20만명대인 수준이다. 동북 3성 일대의 출생아수를 다 합쳐도 60만명대도 안된다는 충격과 공포의 결과가 나온다. 덕택에 오래지나지 않아 인구가 1억명에 훨씬 못미칠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있기 때문에 중국 당국에서도 젊은 인재들을 동북 지방에 배치시키는 식으로 대응하려하고 있지만 동북 지역의 소득수준이 낮은지라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그래서 중국의 미래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에선 만주와 연해주 지역이야말로 세계의 화약고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북한, 중국, 러시아라는 핵 보유국 3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기에 이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다른 분쟁 지역보다 높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러 양국은 현재 아주 가깝지는 않아도 크게 상충되지는 않는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하며[5] 북한은 두 강대국에 맞설 수 있는 국력 자체가 없어서(...) 사실상 무시해도 좋은 수준이긴 하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동양의 발칸 반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중국 혹은 러시아, 일본과 치열한 전투가 있긴 했었다. 만주/연해주의 소수 민족들이 내분을 일으키거나 아예 분리 독립을 이루어 국경 분쟁이 일어난다면 모르겠으되 어차피 이 지역들의 주민들 대다수가 이주해 온 중국인들이며,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있어도 중국인들과 러시아인들만큼 그 세력이 크지는 않다. 게다가 분리 독립을 강력하게 원하는 것도 아니며 사회주의 체제 시절의 영향으로 이들의 부족 문화 등이 세속화되면서 분쟁 가능성이 크게 완화된 상황이다. 만일 북한에서 내전, 쿠데타, 민중 봉기 등이 일어난다면 만주 지역의 불안정성도 높아지겠지만 어디까지 만일인 데다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불안정이라는 시나리오만큼은 결사적으로 저지하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가능성도 그렇게 높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곳도 고위도 특성상 여름에는 해가 일찍 떠서 늦게 지고 겨울에는 반대로 늦게 뜨고 일찍 진다.

2. 어원

명나라의 3대 황제인 영락제가 당시 이 지역[6]에 살고 있던 여진족을 복속시키고 건주위, 해서위, 야인으로 나누어 지배했다. 하지만 영토란 개념보다는 자치구의 역할이었다.

16세기 말 무렵 누르하치가 등장, 당시 건주위의 친명 유력 가문의 후예였던 누르하치는 명나라를 도와 반명파와 싸우던 도중 명군의 공격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같은 자리에서 죽는 참사를 겪게 된다.[7] 누르하치는 그 후 명나라의 신임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 명나라가 임명한 현지 총독과 같은 지위를 얻고 건주위 내는 물론 해서위, 야인에 있는 여진족 부락들을 전부 복속시키거나 정복해서 건주위로 통일하고 이름을 만주로 바꾼다. 그리고 1616년, 통일된 만주인들을 이끌고 명나라를 공략, 1644년, 손자인 순치제 때 북경에 들어와 만주인들의 왕조인 청나라가 중원의 지배자가 된다.

3. 명칭의 기원과 범위

3.1. 기원

과거에는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의 동부 흥안지방은 만주 전체에서 별개의 영역으로 취급되었으며 대강 대릉하~요하 동쪽을 요동이라고 불렀다. 중국의 북방 중 튀르크인이 주류이던 외몽골을 막북, 몽골계가 주력이던 내몽골을 막남이라고 통칭한 것과는 달리 현대의 만주(둥베이)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용어는 없었다.

그러다가 요나라의 흥기 이후 금을 거처 몽골이 탄생하고 몽골의 세력이 현재의 내몽골 동부로 침투하며 그 땅이 몽골계 민족인 우랑카이(오랑캐의 어원)의 활동 무대가 되고 명이 요동을 지배한다. 누르하치가 만주를 통일하고 그 뒤를 이은 홍타이지가 내몽골 동부의 우랑카이, 요동의 한인 등 당시 만주에 퍼저있던 종족을 모아 만주족을 주창한 것이 만주라는 개념이 탄생하는 근원이다. 그러나 만주인들에게는 '만주'라는 말은 지명이 아니라 '사람'에만 해당하는 용어였다. 현 동북삼성 전체를 포괄하는 말은 홍타이지시기 없었다. 나중에 생긴 통칭은 여러 개였는데 그게 심양[8], 동북 이런 말들이었다. 청말에 가면 관습적으로 흑룡강, 길림[9] 등이 성으로 칭해지고 나중에 진짜 성이 되자 동북삼성이란 말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만주의 지명화는 일본인들에 의한 것이다. 원래 서양에서는 만주를 대강 타타르의 동쪽이라 하여 동타타르라 일컫다가 만주인의 땅이라 하여 만주리아(Manchuria)라고 부르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에 주둔중인 주한미군 제9보병연대의 별칭이 만주(manchu)이기도 하다. 서양 지도에 만주리아라고 적혀 있는걸 본 에도 막부 시기의 일본인들이 이걸 만주인의 땅이라 번역하지 않고 그냥 만주라고 번역한게 만주가 민족명에서 지명으로 확대된 계기이다. 나중에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면서 만주국을 세우고 만주라는 지명이 더 널리 퍼져 서양과 한국에서도 사용하게 된다.

만주국의 로마자 명칭은 Manchukuo. 만주국의 중국식 독음은 만저우궈(Mǎnzhōuguó), 일본식 독음은 만슈우코쿠(Manshūkoku)이다. 영문 명칭은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인 Manchoukuo에서 유래했다.

3.2. 어원

한자로 쓰기는 하지만, 사실 만주어 만주(Manju)의 취음이며, 지명이 아니라 부족명으로서 먼저 쓰인 단어이다. 즉, 만주족은 만주에 사는 부족이라 만주족인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만주족이 있던 땅이기에 만주인 것이다. (흔히 잘 모르는 사실이라 이런 유래를 알고 충격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이 단어의 기원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전승된다.
  • 불교문수보살(文殊菩薩, 만주슈리)의 문수에서 유래한 만주(文殊, 曼珠→滿住→滿洲)에서 유래했다. 대단한 행운 혹은 대단히 길함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 15세기 당시 여진족의 수장이었던 이만주(李滿住)의 이름에서 기원하였다. - 이만주는 세종대왕 재위기에 명을 뒤에 업고 말썽을 부리면서 세조 재위 기간까지 살아남았지만 최후는 허무했다. 소득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무력 시위용으로 보낸 신숙주의 군대를 미처 예측하지 못해 가족과 함께 몰살당했다.
  • 여진족은 당시의 명 왕조가 음양오행의 오행을 상징한다고 보았으며, 이에 맞서기 위해서 을 상징하는 의미의 만주라는 지명을 붙였다.

1에서 2로 이어졌다는 설도 있다. 명나라 시대 여진의 수장 중에는 이만주 뿐만 아니라 문수(文殊:滿住)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적지 않았다. 누르하치 본인도 스스로 만주슈리라 내세웠기 때문에 아무래도 문수보살이라는 뜻이 가장 신빙성있다고 여겨지는게 대세.

3.3. 범위

파일:attachment/만주/manchuria.png

이러한 영역은 청나라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기 직전 러시아와의 충돌에서 승리해서 아무르강 하류까지 치고 올라간 것에 근거한다. 이후 러시아가 아무르강 하류와 연해주 일대를 청으로부터 뜯어가고 송화강과 고비 사막을 경계로 지금의 흑룡강성, 하얼빈의 북만주까지 집어삼키려다가 러일전쟁에서 패배후 만주의 범위는 일반적으로 현재의 둥베이 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연해주는 외만주 지역으로 분류된다.오늘날 중국 내에서 흔히 쓰이는 둥베이 지방의 정의는 둥베이 3성 또는 둥베이 3성+내몽골 자치구 내 동4맹이다. 이 문서 첫번째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칠해진 지역이 둥베이 3성이고 분홍색으로 칠해진 지역이 내몽골 자치구의 동4맹이다.
외만주에 해당하는 영역을 외동북이라 부르는데,[13] 중국 내에서는 회복해야 할 옛 땅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러시아에서 중국 내의 이런 여론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얼마 전에 러시아로부터 외만주와 동북 3성의 경계에 있는 만주 영역의 지극히 일부인 볼쇼이우수리스키 섬(헤이샤쯔 섬)의 반절을 79년 만에 받아냈다.

사실 불평등 조약인 아이훈 조약베이징 조약으로 러시아가 뺏어간 땅이라 홍콩처럼 외만주의 반환을 요구할 명분은 있지만 청나라 멸망 후 중화민국 수립 이래 중국이 외만주에 대해서는 영유권 주장을 한 적이 없고 홍콩과 달리 러시아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있기 때문에 명분도 약하며, 티베트나 위구르처럼 차지하기에는 러시아도 만만치 않은 군사력을 지니고 있어서 힘들다. 거기다 공동으로 미국에 대항하며 밀착하고 있는 현재의 중러관계를 고려하면 중국 정부가 갑자기 외만주의 반환을 요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4. 만주와 한국

한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땅이다. 고조선은 초창기에 요서-요동지역에 위치해있었고, 연나라에게 요동지역을 빼앗고 평양을 중심으로 하기 이전까지 만주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고구려, 발해도 마찬가지로 만주지역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고구려의 초기 수도인 졸본성-국내성이나 발해의 수도인 상경이 만주지역에 위치해있었다. 고구려의 백제의 조상국가로 여겨지는 부여도 만주 중북부 지역에 위치해있었을 만큼 비록 예맥계 주민들만 살았던 건 아니고, 다른 민족들도 어느 정도 비중이 되었지만 예맥인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쳤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발해 멸망 이후로 요나라와 금나라 때 들어서 그들이 예맥계 주민들을 죽이거나 강제 이주를 시키고 하는 와중에 유목민들[14]에 의해서 한족들에게 강제로 동화되거나 유목민들에게 동화되면서 수가 줄어나갔다. 그래도 심양왕 직위에 고려왕족들이 임명되었던 것이나 고려 말기와 조선초기 당시 요동정벌을 추진했던 것을 보면 의외로 생각보다 오랜 기간 동안 예맥계 주민들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요동 지역을 명나라가 차지한 이래로 시간이 차자 흐르며 이들은 한족에게 동화되어갔으며[15], 결정적으로 청나라가 들어서며 봉금령이 선언되고, 만주족의 땅이 되어버려서[16] 조선족이 재이주하기 전까지 한민족의 발자취는 사라져버렸다. 청나라 말기인 1897년 봉금령 해체이 해체되면서 산둥성과 허베이성 일대의 한족들이 대거 만주로 이주하면서 지금은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한족이 차지하게 되었다.

4.1. 만주회복?

한국에는 만주로 통칭되는 중국 동북 지방과 러시아의 연해주(외동북)를 회복해야 할 고토로 생각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은근히 많다. 회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영토였는데 빼앗겨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20세기의 아픔도 있고 고구려발해에 대한 대중의 환상, 그리고 반대로 신라조선 등에 대한 대중의 반감 등을 국토가 작은 것의 원인으로서 보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마이너적으로는 나름대로의 근대화를 이루고, 혹은 국력이 증가될 수 있는 최소한적 지역이란 점으로 아쉬워하는 원인도 존재한다. 사실 따지고보면 삼전도의 치욕을 계기로 북벌론이 조선내에서 성행하고 북벌론 논의가 한물간 이후로도 박씨전이나 임경업전 같은 반청사상을 담은 소설이 민간에서 유행하고 지식인들도 소중화 사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거기에 더해 발해고라는 책이 나왔던것을 보면 충분히 만주회복을 외칠만한 명분이나 당위성같은것은 있어왔지만, 막상 청나라가 아편전쟁, 태평천국의 난으로 쇠퇴했을때는 조선도 세도정치로 인해 같이 쇠퇴하여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렸기에 만주를 되찾을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고 보는것이 타당할것이다. 실제로 시도가 없는것이 아니라서 대한제국때 간도를 차지하려는 시도를 했기도 했다. 결론은 만주회복을 하지 못한것은 세도정치때문이니 세도정치를 욕해야된다는 얘기다

특이하게도, 한국에서는 중국 만주와 다르게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한 외만주는 대부분 러시아 땅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로, 실제로 만주를 되찾아야 한다는 사람은 꽤 많지만 연해주 및 러시아령 만주까지 되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약간이지만 연해주까지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다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다보니 연해주를 되찾자는 주장이 드문 경우이다). 더 나아가 만주는 빼고 연해주만 되찾자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한민족이 만주를 나갔던 건 근현대 이전의 일이고 이미 중국인들은 인구 팽창과 한족들의 대대적인 이주로 1997년 시점에 이미 1억 697만 명이라는 인구를 차지했다. 그런데다가 이미 한족은 민족주의의 아래에서 뚜렷하게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인식하는 상황이니 중국에서 만주가 떨어져나갈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 만에 하나 중국이 분열되어도 조선족이나 만주족의 나라라기보단 동북군벌처럼 한족의 지방정권이 들어설 확률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이렇게 한족이 압도적인 상황이라 한국이 만주를 차지했다가는 한국인이 역으로 한족에게 혼혈당하여 동화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명분 역시 부족해서 국제적 비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현재 어떠한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보자.[17]

고구려, 발해 문화재가 방치되거나 훼손, 및 왜곡식 복원[18] 때문에 이러한 감정으로 인하여 수복하자는 주장도 있기도 하지만, 설령 되찾는다고 하더라도 문화재가 제대로 관리될 수 있는지 알 수도 없다(당장 한국 본토의 문화재만 해도 제대로 복원되지 않거나 훼손된 문화재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왜곡식 복원을 했었던 중국의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5. 역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만주/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1. 만주에 존속했던 국가·정권들

  • 고리국 - 탁리국이나 색리국이라는 설도 있으나 고리국의 오자(誤字)로 본다. 실존 국가라면 북만주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 고조선 - 대릉하 유역, 요동, 송화강 유역, 한반도 서북부, 초기 중심지는 요동 반도였으며 기원전 4세기 연나라의 침입 이후 요서 대릉하 유역을 잃고 요동의 대부분을 상실, 이후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하다 위만조선전한의 침략으로 멸망.
  • 부여 - 송화강 유역 중심, 위만 조선이 멸망하기 이전인 기원전 2~3세기 무렵에 동명왕에 의해 건국되었다. 3세기 무렵에 동으로는 연해주 인근까지 접했고 북으로는 송화강과 흑룡강 하류 사이에 접했고 서쪽으로 요하 상류와 남쪽으로는 남만주 휘발하를 경계로 고구려와 접했다, 선비족의 침입으로 국가가 쇠약해져 고구려의 영향 아래 있다 동부여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정벌로 64성을 빼앗기고 멸망, 5세기 무렵에 북부여가 나라를 들어 고구려에 바침으로 멸망, 북부여의 일부 유민들이 송화강을 건너 옛 고리국이 있던 자리에 두막루를 세움.
  • 고구려 - 주요 영역은 남만주, 송화강 이남, 한반도 북부, 고구려의 주몽이 엄리대수(송화강 상류)를 건너 만주 동가강 유역의 졸본(요녕성 환인현)에 정착하여 해당 지역의 소국인 졸본부여의 왕이 되어 고구려를 세웠다. 통일 제국 중국 수나라, 당나라의 침입에 맞서다 당나라와 신라의 공격, 그리고 연씨 가문의 내전이 겹쳐 멸망. 현대에는 이 나라를 고구려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장수왕 이후에 국호를 고려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왕건이 세운 고려와 혼동하지 말 것.
  • 두막루 - 북만주 일대, 복식은 고구려와 같았음. 정치 제도는 부여의 사출도(마가, 우가, 구가, 저가)처럼 동물의 이름을 따서 관직명을 정했다. 지도자는 대군장이라고 불리었다. 언어는 본래 부여어를 썼으나 거란, 실위, 물길(말갈) 등의 북방 민족과 접하게 되면서 그 언어가 북방 민족의 언어와 유사해졌다. 발해에게 멸망당한 뒤 그 강역이 흑수부와 철리부에 편입.
  • 전진/전연 - 오호 십육국 시절 만주 일대를 차지했던 국가.
  • 연나라 - 중국 한족의 국가. 허베이성 동북부와 난하 유역 중심.
  • 후연 - 선비계 국가. 난하와 대릉하 유역 중심.
  • 북연 - 고구려인이 세운 요서 대릉하 일대의 국가.
  • 소고구려/소고려: 고구려부흥운동으로 일어난 정권. 이후 발해에 흡수.
  • 당나라: 고구려를 무너뜨리면서 일시 지배.
  • 발해 - 요동 반도, 송화강 유역, 연해주 일대, 한반도 북부 원산만 일대로 신라와 경계를 함. 흑룡강 이북에서도 성터와 유적 발견되고 있음. 거란의 침략으로 멸망.
  • 요나라 - 거란족이 세운 국가. 지금의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중앙 아시아, 동으로 연해주 일대까지 대제국을 건설.
  • 발해부흥운동
    • 동란국: 발해부흥운동이 맞는지는 애매하다. 요의 괴뢰국으로 보기 때문.
    • 올야국 또는 오사국 후발해
    • 정안국
    • 연파국(燕頗國): 연파라는 장수가 세운 나라.
    • 흥료국
    • 대발해/대원국
    • 고욕국(古欲國): 한국사로 보기 애매하다. 발해의 옛 땅이 아닌 거란의 한 주에서 일어난 반란이었기 때문.
  • 금나라 - 여진족이 세운 국가, 요나라의 뒤를 이어 만주와 연해주를 장악하고 북송을 멸망시켜 북중국을 접수. 이후 현재의 베이징으로 천도하고 몽골과의 항쟁 과정에서 만주가 떨어져나가서 이후의 금나라를 남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동요 - 거란족 출신 금나라 장수 야율유가가 요동에서 건국한 나라. 몽골의 칭기즈칸에 고개를 숙여 요왕에 봉해졌다. 칭기즈칸은 야율유가의 사후 야율유가의 아내에게 지배권을 인정해 그녀까지 2대만 존재했다.
  • 후요(後遼)/대요수국(大遼收國) - 동요의 야율유가가 몽골에 숙이자 거란족 일부가 반발하여 세운 정권. 이들이 동요에 의해 망하면서 거란 유민들의 고려 침공이 발생했다.
  • 동진/동하 - 금나라 장수 포선만노가 세웠던 나라. 처음엔 국호를 대진(大眞)이라고 해서 동진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대하(大夏)로 바꾸어서 당대에 있던 서하와 구분하기 위해 동하라는 이름이 붙었다. 몽골이 포선만노를 정벌해서 멸망한다.
  • 몽골 제국/원나라 - 몽골족이 세운 국가, 금나라의 뒤를 이어 만주와 연해주를 장악하고 이후 중국에 진출해 중국을 통일하고 고려도 사실상 복속.
  • 원나라 말기에 고려제1차 요동정벌로 아주 잠깐 요동성을 점령했었으나 금방 철수했다.[19]
  • 명나라 때는 여진족 지배자들이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벼슬을 받아 실질 지배하였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 지도를 그릴 때 만주를 그냥 명나라 영토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 명나라가 만주를 지배했다고 보긴 어렵다.
  • 후금/청나라 - 만주족이 세운 국가, 심양 일대가 발원지, 만주 세력을 통합하여 만주를 장악하여 서진하여 요동과 산해관 일대를 접수하고 이자성의 난을 틈타 중국 전역을 차지함, 전성기에 몽골 일대와 티베트 일대, 신강성 일대를 중국의 영토로 편입.
  • 만주국 - 일본 제국이 만주를 접수하면서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를 내세워 세운 괴뢰 국가, 실질적인 통치 권한은 일본 제국에 있었다.
  • 러시아 제국/소련/러시아 연방 - 아이훈 조약베이징 조약으로 청나라에게서 외만주(연해주)를 획득해 현대까지 지배 중. 제국주의 시대에는 부동항 뤼순을 차지하고 하얼빈 등의 만주 내륙 지역을 세력권에 넣기도 했다. 궁극적으로는 만주 전역을 비롯해서 내몽골, 신강 일대를 병탄하여 중국과의 경계를 만리장성으로 정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러일전쟁의 패전으로 좌절되고 만다. 그러나 소련 시절, 만주 전체를 8개월 간 점령했던 적이 있다.
  • 일본제국 관동주 - 일제의 조차지. 다롄과 뤼순 지역.
  • 봉천군벌 - 공식적으로 국가는 아니었지만 청나라 멸망 후 실질적으로 만주 대부분을 지배했던 세력. 일제에 의해 몰락하고 이후 괴뢰국인 만주국이 들어선다.
  • 중화민국(북양정부, 국민정부[20]) - 만주를 명목상 통치했던 국가. 하지만 실제론 봉천군벌이 지배하다가 일제 괴뢰국 만주국의 지배로 넘어가고 일제 패망 후에는 소련이 점령해 일시 통치했다. 그 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따라서 중화민국이 실질적으로 만주를 지배한 적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중화민국은 실질 영토가 대만과 그 주변으로 쪼그라든 현재도 명목상 헌법에 영토 안에 만주 일대를 포함시키고 있다(동북 9성).
  • 가오강 세력 - 만주가 명목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지만 초기에는 가오강의 독립 영지나 마찬가지였다. 가오강은 중국 공산당의 동북지구 최고 책임자이자 친소파였는데, 끝내 그는 만주를 소련에게 갖다 바치려다 이오시프 스탈린에 무시당하고 중국 공산당에 걸려서 처형당한다. 이후 만주는 실질적으로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된다.
  • 중화인민공화국 - 현재 만주를 통치 중인 국가.

6. 지리

6.1. 자연

지리적으로는 춥고 황량한 허허벌판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쑹화강(송화강)이나 랴오허(요하) 같은 큰 이 흐르고 한카 호 같은 거대한 호수도 있으며 풍성한 삼림이 우거져 있다.[21] 다만 굉장히 추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몽골 고원과 경계를 이루는, 해발 19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다싱안링산맥을 비롯한 여러 산맥들도 자리 잡고 있으며 늪지도 많[22]다.

산업으로는 일본이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로 쓰려고 했기 때문에 중화학 공업이 매우 발달했으며, 중국 내에서 철도가 가장 많이 설치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도 개혁개방 이전까지 중국 최대의 공업 지대로서 산업을 이끌었으나[23] 현재는 산업 시설의 노후화, 부실한 금융 대출 등으로 개발에서 뒤쳐지는 바람에 극심한 저출산과 인구 유출을 겪고 있어서 동북병이라 불리는 경기 침체를 앓고 있다. 동베이 지역의 인구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일본보다도 가파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중이다.

농업의 경우는 겨울이 길기 때문에 논 농사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의지의 조선인들은 이주해서 논농사를 짓고야 만다. 하지만 남북 길이 약 1000km, 동서 너비 약 400km에 달하는 중국 최대의 평야 지대이자 전 세계에서도 비옥하기로 손꼽히는 둥베이 평원이 위치하고 있어서 옥수수, , , , 사탕무, 등을 재배하는 대규모의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고대에 부여가 몹시 추운곳에 위치함에도 당시로써는 상당한 국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고구려와 발해때도 동베이 평원에서 농사를 지어서 국력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정도. 대두의 원산지 중 한 곳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1910년대에 유럽이 전화를 겪으면서 이 지역에서 재배된 대두와 곡물이 엄청나게 팔려나갔고, 중개무역를 한 일본 상인들도 돈을 많이 벌었다. 당시 만주로 건너간 조선인들 또한 이런 식으로 돈을 번 이들이 꽤 있다.

또한, 일본에 의해 중화학 단지로 육성될 만큼 천연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고구려, 청의 강력한 기병은 만주의 풍부한 광석 덕택이란 이론도 있다. 심지어는 석유도 매장되어 있다. 1959년에 발견된 헤이룽장성 다칭시의 다칭유전이 개발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발해만과 라오허 일대를 중심으로 유전이 개발되어 있다.

동물은 한반도에 서식하는 생물의 90%와 비슷하며 10종에서 9종이 한반도와 같은 종류이다. 호랑이나 표범, 반달곰과 불곰등 포식 동물이 서식하며 늑대도 서식한다. 사슴이나 인삼 등 약용 생물이 살아가고 있다.

식물상 또한 한국 토착 식물의 80% 이상이 만주 지역에서도 서식하며[24] 어류 역시 상당수 일치 한다. 나머지 20%는 한국에서 희귀하거나 멸종위기 판정을 받은 월귤 같은 고산식물들이다. 특히 모허는 중국 유일의 야생 블루베리 산지이다.

6.2. 기후

기후는 서유럽과 비슷한 위도임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 동장군이 직빵으로 들어오는 만큼 강한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겨울이 매우 길고 춥다. 가을은 빠르게 지나가고 여름은 북만주 지역은 선선하나 랴오닝성 일대는 한국, 일본처럼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을 받으므로 경악스럽게 덥다. 특히 차오양 시의 경우 여름 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기는 경우가 잦으며 최고 43.3도를 기록하였다.즉, 영하 30도와 영상 30도를 극과 극으로 오고가는 기후라고 보면 된다.

각 지역별로 어느 정도 기후 차이가 있다. 물론 모두 춥다. 만주에서 가장 따뜻한 다롄(1월 평균 기온 -3.6℃)조차 냉대기후를 띠고 있다. 다만 지구 온난화에 따라 앞으로 온대 기후가 될 가능성이 높은 동네이지만(...). 그리고 선양(-10.4℃)만 해도 남한의 어느 곳보다도 추워진다. 하얼빈(-18.1℃)쯤 가면 개마고원이나 시베리아 남부와 비슷한 날씨가 되고, 북만주 끄트머리의 모허(漠河)쯤 가면 1월 평균 기온이 -28.8℃까지 내려간다. 북극해 연안과 맞먹는 수준.[25] 그러나 냉대동계건조기후라서 눈은 잘 오지 않으며 매우 건조하다.[26]

6.3. 도시

랴오닝성의 성도인 선양, 지린성의 성도인 창춘, 헤이룽장성의 성도인 하얼빈이 크고 유명한 도시이다. 내몽골 자치구까지 포함하면 후허하오터[27], 그외 부성급시로 랴오닝 성 요동 반도 끝에 위치한 다롄(大連,대련) 시가 있다.

6.3.1. 선양(묵던, 심양, 봉천)

선양(심양, 瀋陽)은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로서,만주어에서는 버드나무 울타리를 둘렀다는 뜻의 묵던(Mukden, 한자로는 봉천(奉天)으로 음차.)이라고 불리웠고 서양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지금의 선양은 혼하(渾河)의 옛 이름인 심수(瀋水)에서 딴 이름이다. 강의 북쪽 땅을 양(陽), 남쪽 땅을 음(陰)이라하는데 심수의 북쪽에 있으므로 심수지양(瀋水之陽), 줄여서 심양 곧 선양이라 부르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서울한강의 북쪽이라 한양(漢陽), 중국의 낙양은 낙수의 북쪽에 있으므로 낙양이다.

선양 고궁, 청태조의 묘지 복릉(福陵)~東릉, 청태종의 묘지 소릉(昭陵) ~~北릉 등의 옛 만주족 유적들이 유명하다. 중국 내륙과 동북 3성, 한반도를 이어 주는 요충지이고 동북의 중심지이다.인구 2007년 기준으로 766만.

6.3.2. 창춘(장춘)

창춘(장춘, 長春)은 먼 옛날에는 부여의 중심지였고[28],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수도였던 도시로 당시에는 신징(신경, 新京, 신쿄)이라고 불렸고, 일본의 악명높은 731 부대의 중심 활동지였다. 만주 지구의 거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철도 교통의 요충지이다. 중국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이다. 인구 2007년 기준 747만 명.

6.3.3. 하얼빈[29](하르빈[30], 할빈[31], 합이빈[32])

하얼빈(哈爾濱)은 이름부터가 만주어 '하르빈(Harbin)'에서 유래한 도시[33]로 북방색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 도시는 러시아 제국헤이룽장성을 점유하고 있을 때, 서양의 기술자들과 중국의 노동자들을 불러들여서 만든 도시이다. 당대에는 동양의 파리라고 홍보를 하기도 하는 등 상당히 화젯거리였다. 유명한 의거인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배경이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겨울엔 얼음이 한번 얼면 거의 안 녹을 정도로 매우 춥다. 하지만 이런 기후를 살려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얼음 축제를 열기도 한다. 인구가 2007년 기준 986만명으로 중국에서 10번째로 큰 도시.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30도에 달하는 도시의 인구가 천만 명에 달하는 것이다!

7. 둥베이 사람들의 기질

만주, 즉 현대 둥베이 지방(둥베이 3성, 지린성·헤이룽장성·랴오닝성) 사람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 을 사랑한다. 일단, 날씨가 추우니 술을 마셔 몸을 데우는 게 당연할 테고, 술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 인간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 덕분인지 하얼빈맥주로 유명하기도 하다.
  • 중국의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우리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쓴다.
  • 의리를 중시한다. 그래서 친해지기 쉽다 카더라... 다만 사업적인 마인드를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흐름에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고.
  • 화끈하다. 그 덕에 둥베이 호랑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까지 갖고있다.
  • 둥베이 지방은 경작이 잘되는데 겨울은 기니 사람들이 늘어져서 하릴없이 노는 시간이 길다.
  • 틈관동 때 산동 지방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삶을 어렵게 꾸려나간 탓에 큰 꿈을 품기보다는 현세적이고 소극적이다.

한국인의 기질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될 소지가 있다. 둥베이 인구 1억의 대부분이 한국과는 별 문화적 연고가 없는 산동 지방에서 이주한 한족이기는 하지만, 산둥성이 바다 건너 한반도와 고대부터 상당히 교류가 밀접했으므로, 어느 정도 통하는 면이 있는 듯. 또한 200만 정도의 조선족은 구한말~일제강점기 때 올라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민족적 기질은 쉽게 바뀌는 점은 아니라서 조선족 민족성도 한국인과 비슷한 면이 많다.

중국의 개방 이후 개발의 중심이 중공업이 발달되었던 둥베이 지방에서 동남 해안 지방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둥베이 지방의 경제적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좀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한편 둥베이 사람들은 중국에서 가장 잘 교육받았다고 한다. 출처 추가 바람. 외지인이나 농민공이 적은 편이어서 그런지 베이징, 상하이보다도 교통 질서를 잘 지키는 편.

만주 사람들은 교자(흔히 말하는 만두)를 주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본군만두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만주에서 복무하던 시절 먹던 교자를 잊지 못해서 나온 음식이라고 한다.

한편 중국어 표준어인 보통화는 사실 북방 관화에 기초하여 규정한 것인데, 수도 베이징의 토박이들이 쓰는 북경어[34] 말씨보다 동북 지방 사람들의 발음이 보통화의 표준 발음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평가된다.[35]

8. 소수 민족

9. 둥베이 3성

10. 관련 문서



[1] 이들은 자신들의 본거지를 입관시기 때 현 만주지방에서 북경으로 옮겼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그들 북경 입장에서 만주는 동북쪽이어서 동북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했다.[2] 당대에 쓰였던 우정식 병음으로는 Kwantung으로 적는다. 이 관동이라는 표현은 틈관동(闖關東/闯关东, 촹관둥: 청나라 말기 한족들의 만주 대량 이주) 같은 용어나 일본제국이 조차한 지역인 관동주, 이곳 군대인 관동군 등에서 사용되었다.[3] 중국은 정치를 경제보다 중요시하는 나라고, 아무래도 북방인들의 정권이라 남방 지역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광둥성의 경우 중국인 글로벌 슈퍼리치 톱100 15명 중 10명을 배출하고, 200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억만장자가 다수 존재하고, 전국 31개 성급 지방정부 순위 가운데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지난 수십년간 광둥성 출신 정치국 상무위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4] 중국 전체 출생률은 1000명당 11~13명을 오가는 수준이고 합계 출산율은 1.5명대이다.[5] 공동의 가상 적국인 '미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중-소 이념 분쟁 사건도 실제로 있었던 만큼 매우 친밀한 것만도 아니며 지역 내 패권국으로서의 영향력을 서로 더 행사하려 들 가능성도 감안은 해야 한다.[6] 요하에서부터 연해주까지의 땅.[7] 누르하치는 친명파 가문 이어서 당시 명군 사령관인 이성량이 황제의 칙서와 가축 등으로 달래보려 했지만 누르하치는 이후 명 황실에서 사과의 용도로 받은 물품을 첫 거병 때 군자금으로 쓰게된다.[8] 도시 이름을 지역 전체로 확장시킨 케이스. 경상도 같은 거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9] 이 경우도 원래 도시 이름이었는데 지역명으로 확장된 케이스이다.[10] 동4맹(東四盟/东四盟)은 치펑시(赤峰市, 구 자오우다맹{昭烏達盟/昭乌达盟}), 퉁랴오시(通遼市/通辽市, 구 저리무맹{哲里木盟}), 후룬베이얼시(呼倫貝爾市/呼伦贝尔市, 구 후룬베이얼맹), 싱안맹(興安盟/兴安盟)을 한데 묶은 표현이다. 여기서 '맹'은 내몽골 자치구에만 있는 행정구역 단위인데, 현재는 행정 구역 개편이 되어 본래의 동4맹 중 3개가 시로 승격되었다. 현재도 이 네 곳을 묶을 땐 예전 행정 구역을 따서 동4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바뀐 행정 구역에 맞춰 3시 1맹(三市一盟)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1] 과거 중화민국 시절의 행정 구역 중 하나였으며 중심지는 청더. 지금은 내몽골, 랴오닝, 허베이 성에 각자 흡수되었다. 정확한 위치는 오늘 날 내몽골 자치구의 츠펑을 포함한 시라무렌강 유역, 랴오닝 성의 요서 북쪽과 챠오양, 허베이 성의 청더 시가 해당된다. 역사적으로 선비족, 오환족, 거란족이 거주했던 지역이었다. 다만 청나라 때도 이곳을 내몽골의 일부로 간주한 적도 있었다.[12] 사할린 그 근처의 섬들은 경우에 따라 포함될 때도 있고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만주, 그 땅, 사람, 그리고 역사'라는 책에서 보면 쿠릴 열도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건 좀 과장이나 확대해석에 가깝다. 차라리 현재의 쿠릴 열도는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보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홋카이도도 사할린 근처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만주라는 범위에 넣기에는 애매하다.[13] 정확히는 연해주, 하바로프스크를 포함한 극동 연방관구 동남부.[14] 여진족 문서 참고.[15] 사실 유목민들이 학살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점을 고려하면 유목민 영토에 있던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다. 일단 한족 영토에는 이성량 등 조선계 고위직이나 동화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좀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유목민의 영토에는 거의 없었다.[16] 그렇지만 만주족에 속하지 않은 상당수 통구스족이나 북시베리아계통의 원주민들도 쭉 주거하기는 했다. 청나라가 만주를 신성시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당시 시대적 한계상 다 쫓아내기 힘들었다.[17] 비슷한 사례로는 아르메니아가 현재 불법 점령 중인 아르차흐 공화국, 러시아의 크림 반도 점령이 있다.[18] 러시아도 방치되어 훼손된 발해성터들이 많지만 적어도 왜곡식 복원은 안했다.[19] 제2차 요동정벌은 위화도 회군으로 파토가 나고 조선 초 제3차 요동정벌은 제1차 왕자의 난으로 파토가 난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 나선정벌 때 조선군이 요동보다 훨씬 더 북쪽인 흑룡강까지 가지만 이건 청나라를 지원하기 위한 파병이었으므로 지배와는 무관하다.[20] 동북역치 이후.[21] 동북 평원(둥베이 평원 혹은 만주 평원)이 있긴 한데 풀만 있는 동네 정도는 아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부여나 고구려, 발해도 없었겠지 다만 아무르강 유역이나 내몽골 동북부 지역에는 초원이나 벌판이 조금 있긴 하다.[22] 식량 확보를 위해서 많은 곳이 개간당했다.[23] 이 당시 만주의 별명은 공화국의 맏아들(共和国长子). 중국 당국이 만주의 공업을 얼마나 애지중지 했는지 알 수 있다.[24] 실제로 학명에 만주를 뜻하는 "mandshurica"가 붙은 식물 거의 대부분 한국에서도 서식한다.[25] 같은 위도(북위 53도)의 독일 함부르크, 네덜란드 프리슬란트 지방이나 잉글랜드 중부 지방의 1월 평균 기온은 영상 1~4도이다.[26] 12월부터 2월까지 겨울 강수량이 다 합쳐 20mm를 겨우 넘는다.[27] 내몽골 자치구의 중심 도시로 몽골 도시이지만 내몽골의 동부 흥안성 일대는 만주로도 간주해 편의상 넣었다. 후허하오터(呼和浩特)는 고전 몽골어로는 쾨케호타라고 읽으며 현대 몽골어로는 후흐허트(Хөх хот)라고 읽는다. 몽골어로 푸른 성 혹은 푸른 도시라는 의미이다. 16세기에 남몽골(투메드 몽골)의 알탄 칸에 의해서 만들어진 고도(古都) 후허하오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역사적인 도시이지만 현재 인구의 대부분은 한족이며, 티베트 불교 사원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몽골 특유의 요소는 별로 없다. 원래 한족의 영토가 아니었던만큼 다양한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래도 한족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대한민국과 관계가 깊은 재중동포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약 200만명 정도. 동북 3성부터 베이징까지 전체적으로 분포되어 있긴 하지만 주로 지린성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참고로 국공 내전에 가장 먼저 협력하여 중국에서 최초로 생긴 자치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간 조선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한국 독립군과 조선 혁명군의 주요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네이멍구 자치구(내몽골 자치구)도 이름과는 다르게 한족들이 전체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몽골인의 비중은 17% 정도. 그래도 몽골국 내 몽골인보다 내몽골인이 더 많다(...).[28] 농안~장춘 일대.[29] 중국어의 외래어 표기법.[30] 만주어 발음에 가깝게 적은 표기.[31] 중국 조선족이 쓰는 표기.[32] 한국 한자음.[33] 실제로 로마자를 쓰는 외국어(주로 영어)로 이곳의 이름을 표기할 때 한어병음식으로 Ha'erbin이 아닌 만주어식인 Harbin으로 표기한다.[34] 북방 민족의 영향으로 얼 왈왈왈 발음이 붙는다.[35] 특히 하얼빈 발음은 가장 깔끔한 보통화란 평이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