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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도{{{#!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fff,#1f2023><tablebgcolor=#fff,#1f2023> | 평안북도 平安北道 Pyeonganbuk-do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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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03764><colcolor=#fff> 도청 소재지 | 평안북도 신의주시 앵동[1]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길 64[2] | |||||
| 하위 행정구역 | 1시 19군 | |||||
| 면적 | 28,442.9㎢ (2008년) | |||||
| 인구 | 약 4,049,700명[추정] (2008년) | |||||
| 인구 밀도 | 142.38명/㎢[추정] (2008년) | |||||
| 도지사 | [[관선| 관선 ]] | 이세웅[5] | ||||
| 행정자문위원장 | 김영철[6] | |||||
| 사무국장 | 백구현[7] | |||||
| 중앙도민회장 | 윤동진[8] | |||||
| 상징/도가 | 평북도가 | |||||
| 산하 조직 | 명예시장(1) 명예군수(19) 명예읍장(10) 명예면장(164) 명예동장(10) | |||||
| 관할 시도사무소 |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전라남도 (2025년) | |||||
| 홈페이지 | | |||||
1. 개요
한반도 서북부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이며, 이북 5도 중 하나이며, 도청은 신의주시에 위치해있다.[10]면적은 광복 당시 28,443㎢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넓었으며, 인구는 약 400여만 명[11]으로 추정된다. 남쪽에 평안남도, 동쪽에 함경남도가 있다. 서남쪽은 서해 바다가 펼쳐져 있으며, 서쪽과 북쪽으로는 압록강(한만 국경선)을 경계로 중국 랴오닝성과 지린성에 접한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은 일부 지역[12]을 실효지배한 적[13]이 있다. 하지만 수복 직후 중국 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곧바로 청천강 유역으로 후퇴한 바람에 청천강 전투 이전까지 청천강 일대[14]를 제외한 도 대부분 지역은 북한 지배 아래에 있었다. 유엔군이 평안북도에서 후퇴한 이후로도 전략도서 확보 작전의 일환으로 가도, 신미도 등의 평안북도 서해안 도서 지역을 정전 협정 체결 시까지 점유했다.
2. 상징성
2.1. 도기(道旗)
| | |
현재 이북5도 중 유일하게 평안북도 및 산하 시·군에서 대한민국 정부상징을 상징으로 지정했다.
종전까지 사용되었던 평북도기(道旗)는 2019년 12월 26일 폐지되었다. 유관 보도에 따르면, 도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데다가 깃발 자체가 스포츠 단체의 깃발과 흡사해 다른 도와 비교할 때 상징성으로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 2019년 11월 26일 제정된 ‘평안북도 상징물 관리 규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상징 아래 '평안북도'라고 쓰여진 깃발로 교체되었으며, 그에 맞춰 하위 시/군의 상징도 전부 정부상징으로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평안북도를 비롯한 북한 북부 지역에 사는 백두산 호랑이를 상징한다고 생각해보면 상징성이 크게 떨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국 정부를 상징하는 정부상징은 평안북도에 대한 상징성이 전혀 없는데도 교체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있다. 또한 평북의 도기와 별개로 하위 행정구역의 상징까지 일괄 폐지한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15]
2.2. 도가(道歌)
《작사: 정비석(鄭飛石), 작곡: 김동진(金東振)》
1. 내 고향은 관서천리 백두산 아래
봄이 오면 마을마다 진달래 피고
가을이면 머루다래 곱게 영그러
온누리가 향기로운 겨례의 복지
2. 내 고향은 관서천리 압록강 기슭
뗏목노래 구성지게 흘러오는 곳
인풍루 통군정 약산 진달래
기름진 용만[16]들엔 오곡이 풍등
(후렴) 산 높고 물 맑고 인심도 좋고
씩씩한 그 기상 날랜 호랑이
싸우면서 지켜온 국경 이천리
그 이름 정다울 손 평북이라네
3. 평북도민의 날
매년 개최되고 실시되는 도민의 날 행사를 2025년 4월 26일 신일고 운동장에서 "제46회, 도민의 날"을 200만 도민들과 함께 개최되었다.주최는 평안북도청과 평안북도 중앙도민회이다. 주관은 평안북도 중앙체육회와 평안북도 중앙청년회가 맡는다.
중앙도민회 창립일은 1947년 5월 일이다.
※ 제46회. 도민의 날
- 명예대회장: 평안북도지사 이세웅
- 대 회 장: 평북중앙도민회장 윤동진
4. 특징
주요 도시로는 도청 소재지인 신의주시를 비롯해 강계시(강계군), 만포시(강계군 만포읍), 정주시(정주군), 희천시(희천군), 구성시(구성군)가 있으며, 그 외에 영변군, 의주군, 선천군, 중강진(자성군 중강면) 등이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의 핵시설이 영변군에 있다.
현재는 북한에서 자강도에 있지만, 강계 지방은 공기 좋고 물 좋은 동네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지금까지 미인의 고장으로 상당히 유명하다고 한다. 서해안 지방은 섬이 많은 다도해 지역이며, 갯벌이 많아 항구나 해수욕장은 잘 발달되지 않았다.
일제 말기인 1943년 당시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 총수의 약 40%(약 3만 명)가 평북에 거주했는데,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이란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 이는 대륙과 인접한 지리적인 특성 때문이다.[17]
5. 인구
| (1925년~1944년) |
1925년 1,417,091명 |
1930년 1,562,791명 |
1935년 1,710,352명 |
1940년 1,768,265명 |
1944년 1,882,799명 |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00만 명 |
| 시군별 인구 통계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강계군 208,002명 |
정주군 164,261명 | |
영변군 158,921명 | |
의주군 155,979명 | |
용천군 155,973명 | |
신의주시 118,398명 | |
선천군 95,173명 | |
박천군 89,460명 | |
철산군 81,125명 | |
초산군 79,289명 | |
구성군 78,202명 | |
희천군 72,258명 | |
자성군 71,542명 | |
삭주군 59,969명 | |
태천군 55,302명 | |
벽동군 54,241명 | |
운산군 52,774명 | |
창성군 46,433명 | |
후창군 46,199명 | |
위원군 39,298명 | |
| 1944년 기준 통계청 인구총조사, 그래프 최대 값은 20만 명 |
6. 교통
경의선, 강계선, 만포선 철도가 지난다. 명목상이긴 하지만 1번 국도, 3번 국도, 5번 국도, 10번 국도 등이 평안북도를 지나간다. 그런데 78번 국도(강계~만포)는 1996년에 폐지되었다.7. 특산물 및 산업
이 지방의 유명 음식으로는 순대가 유명하다고 한다. 의주의 왕만두도 유명했다.특산물로는 정주 약밤이 유명하다고 한다. 운산 대유동 광산에서는 금이 많이 났다. 수력 발전소로 수풍댐이 유명하며 북한 치하에서 운봉댐, 위원댐 등이 더 건설되었다.
황해도와 함께 평지가 많아 농업이 많이 이루어진다.
중국과의 국경지대라 북중무역의 거점지로서 성장하는 중이다.
8. 관광지
영변군의 묘향산, 동룡굴, 약산동대, 선천군의 동림폭포, 의주군의 통군정과 의주남문, 삭주군의 수풍호, 강계 인풍루, 후창군의 갈전협 등이 있다.9. 남북통일 후 전망
북한 지역들 중에서도 발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신의주시 같은 경우 중국 단둥과 압록강을 두고 접하는 만큼 한중 무역의 거점이 되는 도시로 발전할 것이며, 경의고속도로와 경의고속선이 지나가게 될 정주군, 선천군, 용천군과 같은 지역들도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평안북도는 국경 지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으로부터 마약, 불법 무기 등이 들어오거나 혹은 중국이 포격 등의 도발을 하면 치안이 크게 나빠질 수도 있으니 철저한 경계와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대표 도시들도 지금의 일산신도시처럼 군사도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하지만 발전이 기대되는 곳은 경의선이 지나는 지역 및 강계시 - 만포시 지역뿐이고, 강남산맥, 적유령산맥이 지나는 내륙 산간 지역은 북한 정권의 인구 통제가 없어지게 되면 결코 기후도 매우 추워 거주할 이유가 거의 없는 최전방 시골로 남아 급속히 인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10. 하위 행정구역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평안북도(이북5도위원회)/하위 행정구역#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평안북도(이북5도위원회)/하위 행정구역#|]]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1. 출신 인물
11.1. 독립운동가
- 평안북도 출생 및 본적을 둔 독립운동가는 모두 1,377명이다. 가장 많은 출신 시(市),군(郡)으로는 의주군이다.
- 2024년 포상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등록된 책자이다.
신의주시 20명, 의주군 265명, 용천군 98명, 철산군 77명, 선천군 155명, 강계군 97명, 정주군 135명, 박천군 32명, 태천군 18명, 영변군 56명, 자성군 27명, 운산군 23명, 구성군 63명, 창성군 45명, 벽동군 65명, 후창군 8명, 삭주군 47명, 초산군 65명, 위원군 35명, 희천군 46명이다.
11.2. 실향민/대한민국
실향민, 1953년 정전 협정 체결 이전(1953.07.27)에 태어난 사람에 한하여 작성할 것.- 강영훈(평안북도 창성군)
- 계광순(평안북도 선천군)
- 계용묵(평안북도 선천군)
- 계철순(평안북도 선천군)
- 계훈제(평안북도 선천군)
- 고병간(평안북도 의주군)
- 고병국(평안북도 의주군)
- 공병우(평안북도 벽동군)
- 길옥윤(평안북도 영변군)
- 길재호(평안북도 영변군)
- 길창덕(평안북도 선천군)
- 김규원(평안북도 선천군)
- 김덕승(평안북도 용천군)
- 김득황(평안북도 의주군)
- 김묵(평안북도 의주군)
- 김사성(평안북도 희천군)
- 김삼락(평안북도 박천군)
- 김상철(평안북도 태천군)
- 김선도(평안북도 선천군)
- 김성이(평안북도 신의주시)
- 김성일(평안북도 철산군)
- 김세윤(평안북도 영변군)
- 김숙현(평안북도 선천군)
- 김승학(평안북도 의주군)
- 김신재(평안북도 의주군)
- 김애실(평안북도 강계군)
- 김영도(평안북도 정주군)
- 김영일(평안북도 정주군)
- 김영철(평안북도 선천군)[18]
- 김영훈(평안북도 운산군)
- 김우영(평안북도 선천군)
- 김우전(평안북도 정주군)
- 김원용(평안북도 태천군)
- 김윤도(평안북도 정주군)
- 김익준(평안북도 선천군)
- 김정남(평안북도 자성군)
- 김정흠(평안북도 용천군)
- 김종성(평안북도 박천군)
- 김준섭(평안북도 신의주시)
- 김준엽(평안북도 강계군)
- 김진기(평안북도 후창군)
- 김창순(평안북도 의주군)
- 김창영(평안북도 강계군)
- 김학원(평안북도 강계군)
- 김홍일(평안북도 용천군)
- 리영희(평안북도 운산군)
- 명창식(평안북도 영변군)[19]
- 문선명(평안북도 정주군)
- 문용채(평안북도 정주군)
- 문윤극(평안북도 정주군)
- 문정숙(평안북도 선천군)
- 문창극(평안북도 삭주군)
- 문창모(평안북도 선천군)
- 문창탁(평안북도 신의주시)
- 박관숙(평안북도 위원군)
- 박성범(평안북도 선천군)
- 박승준(평안북도 의주군)
- 박찬극(평안북도 박천군)
- 박희현(평안북도 박천군)
- 방상훈(평안북도 박천군)
- 방우영(평안북도 정주군)
- 방일영(평안북도 박천군)
- 방응모(평안북도 정주군)
- 방종현(평안북도 정주군)
- 배성서(평안북도 영변군)
- 백구섭(평안북도 태천군)[20]
- 백낙준(평안북도 정주군)
- 백낙환(평안북도 정주군)
- 백도웅(평안북도 의주군)[21]
- 백영엽(평안북도 의주군)[22]
- 백영철(평안북도 용천군)[23]
- 백창섭(평안북도 영변군)
- 백철(평안북도 의주군)
- 백형린(평안북도 용천군)[24]
- 사광욱(평안북도 철산군)
- 선우연(평안북도 정주군)
- 선우진(평안북도 정주군)
- 선우휘(평안북도 정주군)
- 설경동(평안북도 철산군)
- 손기정(평안북도 신의주시)
- 손인호(평안북도 창성군)
- 송성문(평안북도 정주군)
- 송우범(평안북도 위원군)
- 송지영(평안북도 박천군)
- 송춘희(평안북도 영변군)
- 승병일(평안북도 정주군)
- 신상초(평안북도 정주군)
- 신언한(평안북도 의주군)
- 심기철(평안북도 구성군)[25]
- 안두희(평안북도 용천군)
- 안철원(평안북도 후창군)
- 안형일(평안북도 정주군)
- 안치순(평안북도 벽동군)[26]
- 오형근(평안북도 선천군)
- 유기천(평안북도 박천군)
- 유봉영(평안북도 철산군)
- 유창근(평안북도 의주군)
- 윤흥정(평안북도 초산군)
- 이규도(평안북도 의주군)
- 이기건(평안북도 의주군)
- 이기백(평안북도 정주군)
- 이명현(평안북도 신의주시)
- 이봉수(평안북도 의주군)[27]
- 이세웅(평안북도 의주군)[28]
- 이석봉(평안북도 선천군)[29]
- 이석제(평안북도 삭주군)
- 이성순/시라소니(평안북도 신의주시)
- 이승복(평안북도 선천군)
- 이영근(평안북도 정주군)
- 이용설(평안북도 희천군)
- 이우근(평안북도 용천군)
- 이유립(평안북도 삭주군)
- 이윤영(평안북도 영변군)
- 이익흥(평안북도 선천군)
- 이정선(평안북도 의주군)
- 이찬영(평안북도 철산군)
- 이태영(평안북도 운산군)
- 이홍근(평안북도 선천군)
- 이하영(평안북도 철산군)[30]
- 오상원(평안북도 선천군)
- 오영찬(평안북도 신의주시)[31]
- 양순규(평안북도 영변군)[32]
- 임동원(평안북도 위원군)
- 장경근(평안북도 용천군)
- 장기려(평안북도 용천군)
- 장덕창(평안북도 의주군)
- 장덕희(평안북도 의주군)
- 장도영(평안북도 용천군)
- 장상(평안북도 용천군)
- 장정렬(평안북도 용천군)[33]
- 장재민(평안북도 정주군)
- 장준하(평안북도 의주군)
- 장철(평안북도 의주군)
- 장호강(평안북도 철산군)
- 정기엽(평안북도 용천군)
- 정비석(평안북도 신의주시)
- 정영숙(평안북도 선천군)
- 정의채(평안북도 정주군)
- 조덕영(평안북도 신의주시)
- 조경철(평안북도 선천군)
- 조상건(평안북도 정주군)
- 조영식(평안북도 운산군)
- 지명관(평안북도 정주군)
- 차기벽(평안북도 용천군)
- 차봉오(평안북도 영변군)
- 차약도(평안북도 선천군)
- 차인태(평안북도 벽동군)[34]
- 최대현(평안북도 정주군)
- 최명헌(평안북도 정주군)
- 최윤식(평안북도 선천군)
- 최응찬(평안북도 신의주시)
- 최창봉(평안북도 의주군)
- 최창윤(평안북도 선천군)
- 최창학(평안북도 구성군)
- 최훈(평안북도 정주군)
- 채수반(평안북도 영변군)
- 탁원제(평안북도 박천군)
- 한달선(평안북도 영변군)
- 한이윤(평안북도 구성군)
- 함석헌(평안북도 용천군)
- 허순오(평안북도 구성군)
- 현상윤(평안북도 정주군)
- 홍두영(평안북도 영변군)[35]
- 홍종철(평안북도 철산군)
- 황용하(평안북도 자성군)
11.3. 북한이탈주민
정전협정(1953.07.27) 이후 북에서 탈북(이탈)한 사람에 한하여 작성할 것.12. 관련 문서
[1] 명목상 소재지[2] 이북5도위원회 소재지[추정] 추정치 기준[추정] [5] 前 대한적십자사 총재 역임, 예술의 전당 이사장 역임, 現 신일학원 명예이사장, 現 제16대 평안북도지사[6] 金永哲 / 제13대 前 평안북도지사, 1970년 육군 소위(3사 1기)로 임관, 9군단 참모장, 1군사령부 군수처장, 육군보급처장을 거쳐 1군수지원사령관(육군준장) 예편, 재향군인회 이사, 목원대 경제학 교수, 평북성우회 사무총장을 역임, 前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겸직)[7] 白九賢 / 평안북도 업무 총괄[8] 尹洞鎭 / 1957년생. 강계군 2세. 제56대~제57대, 2022.09.27~2023.12.31 / 2024.01.11~현재[9] 평북도정협의회[10] 1921년에 이관(移管)함. 과거 평안북도 도관찰부 / 도청은 정주군 정주면(1896~1897), 영변군 영변면(1897~1907), 의주군 의주읍(1907~1921)에 있었다.[11] 광복 당시 행정구역 범위 기준으로 2008년 추산.[12] 정차동 - 구성 - 운산 - 초산 - 희천 이남 지역.[13] 1950년 10월 24일(청천강 도하) ~ 1950년 12월 2일(청천강 전투 종료)[14] 정주 - 박천- 영변 - 구장 이남 지역[15] 물론 전 평북도기를 거의 빼다박은 후창군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상징성이 높고 더욱 자료가 많은 신의주시 등의 나머지 시군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16] 龍灣. 압록강 하구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의주의 옛 이름 중 하나가 용만현(龍灣縣)이었다.[1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평안북도[18] 이북5도위원화 제13대 평안북도지사[19] 소림면 용강리. 1919~. 감리교 목사이며, 큰아버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한 초대 감사원장을 지낸 명제세이다.[20] 이북5도위원회 제 대 평안북도지사[21] 이북5도위원회 제 대 평안북도지사[22] 이북5도위원회 제1대 평안북도지사[23] 이북5도위원회 제 대 평안북도지사[24] 이북5도위원회 제 대 평안북도지사[25] 이북5도위원회 제7대 평안북도지사 역임, 주 이란·주 말레이시아·주 그리스 대사 역임[26] 이북5도위원회 제4대 평안북도지사[27] 李奉守, 1916~2000년 5월 14일 소천 신일고등학교 설립자, 아들 이세웅(李世雄)은 제16대 평안북도지사 역임[28] 아버지는 구리 이봉수(李奉守)의 자제이자 아들로 현지 출생, 아버지와 같이 실향민 1세대 (명목상 실향민 2세), 이북5도위원회 제16대 평안북도지사[29] 이북5도위원회 제3대 평안북도지사[30] 이북5도위원회 제2대 평안북도지사[31] 이북5도위원회 제14대 평안북도지사[32] 제15대 평안북도지사를 지낸 양종광의 부친[33] 이북5도위원회 제 대 평안북도지사, 장호진의 부친[34] 이북5도위원회 제 대 평안북도지사[35] 남양유업 창업주[36]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활동, 탈북 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2023년 5월 3일 국립통일교육원 원장 취임